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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국가안전처 장차관 군 출신 인사

■ 삼성 인사맨 출신 인사혁신처장 임명

■ 아베노믹스의 함정

■ 말썽 많은 수능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국가안전처 장차관 군 출신 인사

 

[한국일보 사설-21041119수] '공룡조직 군사작전' 우려 앞서는 국민안전처

 

‘재 난안전 컨트롤타워’를 표방한 국무총리 직속 국민안전처가 오늘 공식 출범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세월호 참사 관련 담화에서 국민안전 업무를 강화한 정부조직 개편 방침을 밝힌 후 198일 만이다. 장관급으로 신설된 국민안전처는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 맡던 안전관리 및 재난방지 업무를 총괄하고 차관급인 중앙소방본부(소방방재청)와 해양경비안전본부(해경)를 아우르는 정원 1만명을 넘는 거대 조직이다. 장관 아래 3명의 차관을 둔 것도 국내 정부조직으로는 전례가 없다.

 

조 직개편 과정에서도 누차 지적됐지만, ‘재난대응 체계의 통합’이란 취지에 걸맞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관련 조직을 한데 모아 덩치만 키운 꼴이 됐다. 더구나 장관-차관-차관급2본부 등 ‘옥상옥(屋上屋)’ 구조로 대형재난 발생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악화시킨 부처-기관 간 엇박자가 조직 내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어 제 단행된 인사에서 장ㆍ차관에 모두 재난안전 관리와는 거리가 먼 군 출신을 앉힌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안전처 장관에 박인용 전 합참차장이 내정됐고, 차관에는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출신인 이성호 안행부 2차관이 발탁됐다. 청와대는 인사 배경에 대해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최우선시했다”고 설명했지만, 재난안전 관리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군사작전’에 국한된 경험과 전문성을 확대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일 각에서는 세월호 사고 직후 우왕좌왕하느라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참사로 이어진 주 원인으로 지적된 만큼 ‘작전’에 능한 군 출신을 기용해 일사분란한 대응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가재난관리는 사전 예방과 대비, 재난 발생 후 대응과 복구 등 4단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각 단계별 유기적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대응에만 치우친 절름발이 조직으로는 재난관리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적 어도 장관에 군 출신을 앉혔다면 차관에는 재난안전 분야 관료나 민간 전문가를 기용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했어야 한다. 야당들이 일제히 “청와대를 군 출신으로 채우더니 국민안전도 군인들에게 맡기느냐”며 반발하고 나선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 경을 대체한 해양경비안전본부에 홍익태 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내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물론 과거에도 해경청장은 ‘육경’ 출신 차지였다. 그러나 해경의 주 기능인 해상안전과 경비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면서 ‘약체 해경’의 주된 원인이었던 인사 관행을 답습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직편제와 인사 등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국민안전처가 제대로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1041119수] ‘군 출신 만능주의’ 인사를 우려한다

 

정 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설한 국민안전처 장차관에 군 출신 인사를 기용했다. 장관은 해군 출신이고, 차관은 육군 출신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 출신 인사가 재난안전의 사령탑을 맡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장차관을 모두 예비역 장성으로 채우는 걸 보면서, 군 출신을 중용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몹시 우려스럽다.

 

새 로 기용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나 이성호 차관의 개인 역량과 자질에 대해선 서로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유난히 군 출신 인사들의 기용이 많은 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인사 직후에 ‘또 군 출신이냐’는 반응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터져나오는 건 의미심장하다.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우리 외교가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를, 외교안보정책 사령탑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군 출신 인사가 계속 맡는 데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육군 참모총장 출신을 청와대 경호실장에 기용한 것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군부 실력자를 경호실장으로 쓰던 관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야 대통령은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군 출신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군 출신을 써야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게 바로 ‘군사문화’에 젖은 리더십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국 민안전처란 거대 부처를 새로 만든 것은, 세월호와 같은 예기치 못한 참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의 재난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최근 군에서 잇달아 터지고 있는 상식 이하의 사건·사고를 보면, 군 출신 인사가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재난에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설마 재난 대응을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면 된다고 청와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 사혁신처장에 삼성 출신의 인사전문가를 기용한 것도 적절치 않다. 청와대는 “공직사회 인사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효율성·실적을 최우선에 두는 기업 인사와 정책 수행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공공부문 인사는 다른 점이 많다. 더구나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가장 공정해야 할 ‘인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선거운동을 도운 재벌기업 출신 인사를 기용한다면 앞으로 누가 공직 인사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 관련 사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19수] 국민안전처 출범만으로 '안전사회' 되는 건 아니다

세 월호 참사 이후 국가 안전체계 강화를 목표로 추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장관급 국민안전처가 공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민안전처 장관에 박인용 전 합참 차장을 내정했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는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 안전행정부의 안전관리 기능과 소방방재청의 방재 기능을 각각 이어받은 '안전정책실'과 '재난관리실', 항공·에너지·화학·가스·통신 등 분야별 특수재난에 대응하는 '특수재난실'로 구성된 정원 1만여명의 거대조직이다. 그뿐 아니라 재난안전예산 사전협의권과 재난 관련 특별교부세 배분권은 물론 안전점검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이 주어지는 등 권한도 한층 강화됐다.

 

국 민의 기대 또한 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재난 앞에 총체적 무능을 드러낸 정부의 민낯을 직접 봐왔기 때문이다. 중앙안전대책본부는 참사 직후 피해자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정부 부처 사이에는 소통도 협업도 없었으며 뒤늦게 구성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마저 우왕좌왕하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정부의 설명처럼 부디 "이번 정부조직 개편으로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국가를 구현"하기 바란다.

 

하 지만 국민안전처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고위공무원단 이상의 자리가 12개나 늘어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민안전을 핑계로 결국 공무원 자리만 늘린 꼴 아니냐는 말에 뭐라고 답변할 텐가. 이번에 국민안전처로 옮기는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안전관리본부의 간부 공무원들이 줄줄이 진급하는 것 또한 민망하다. 문책도 시원찮을 정부조직에서 '승진잔치'라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갓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이 점을 유념해 재난대응 시스템을 촘촘하게 가다듬고 조직의 내실을 다져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절박한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안전사회'는 정부조직을 키우거나 바꾼다고 저절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 삼성 인사맨 출신 인사혁신처장 임명

 

[중앙일보 사설-20141119수] 민간 출신 인사혁신처장,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

 

세 월호 참사로 촉발된 국가개조 작업이 드디어 첫 발을 떼게 됐다. 새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어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우선 육상과 해상의 재난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국민안전처(장관급)를 신설하고 해양경찰청·소방방재청을 각각 해양경비안전본부와 중앙소방본부로 통합한 게 큰 변화다. 대규모 재난 발생 시엔 국무총리가 컨트롤타워가 돼 사고를 지휘·수습할 수 있도록 해 인명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했다. 안전행정부가 관할해온 공무원 인사와 윤리·복무·연금에 관한 업무는 따로 떼어내 신설되는 인사혁신처가 맡도록 했다.

 

 정부의 발표 중 눈길을 끄는 건 인사혁신처장(차관급)에 관료 출신이 아닌 민간인을 기용한 대목이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지명된 이근면 전 삼성광통신 대표이사는 ‘삼성맨’이다. 삼성코닝·삼성SDS·삼성전자 등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주로 인사 업무를 도맡았던 인사통이다.

 

 이 처장 내정자의 발탁은 참신한 시도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선 공직사회 개혁과 국가시스템 개조를 더 이상 관료들의 ‘셀프 개혁’에만 맡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근무 연수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직급과 호봉이 올라가는 시스템, ‘규제’라는 권한을 휘두르며 민간 위에 군림하는 관료들의 갑(甲) 의식이 바뀌지 않고선 우리 앞에 놓인 개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는 게 세월호 참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과거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끼리끼리 해먹는 담합문화, 업자와의 검은 유착 고리가 강고해지는 병폐도 쌓여 왔다. 문제는 적폐가 뿌리 깊고 구조적이어서 비상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직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책임을 맡게 된 이 내정자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크다. 민간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능력 위주의 신상필벌, 학벌과 배경 타파, 경쟁시스템의 과감한 도입으로 공직사회의 개혁을 유도해내야 한다. 발등의 불이 된 공무원연금 개혁이 처리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을 설득해내는 리더십도 발휘하길 기대한다.

 

 잇따른 ‘인사 참사’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인사혁신처의 신설로 고위직 인사시스템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앞서 청와대는 공직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을 인사혁신처→인사수석실→인사위원회로 이어지는 3각 체제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가 장·차관 등 고위직 인선에 관여할 수 있는 발언권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 내정자는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행복한 일자리 추진단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적 인연에 얽매여 좌고우면하지 말고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해 인사 참사와 국정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소신 있게 발언권을 행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119수] ‘삼성 인사맨’에게 주어진 관피아 척결 소명

미 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6년 펴낸 저서 ‘부의 미래’에서 시대 변화를 좇는 기업과 정부의 속도를 각각 100마일과 30마일로 규정한 바 있다. 적자생존을 설파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대입시킨다면 시대 변화에 굼뜬 관료 조직이 이끄는 사회는 그만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신설한 국무총리실 산하 인사혁신처의 초대 수장으로 ‘삼성 인사맨’ 이근면 삼성광통신 고문을 발탁한 것은 그래서 사뭇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소 극단적으로 본다면 지금의 관료 조직은 ‘세월호 이후를 위한 혁신’의 대상이지 결코 주체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알 려진 대로 이 신임 처장은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뒤로 35년간 인사관리 업무를 책임진 인사 전문가다. 정보기술(IT) 관련 특허를 여럿 갖고 있으면서도 기업 대표나 심지어 조직 행정이 전공인 대학 교수들에게까지 인사조직 관리를 강의하고 인사 관련 저서도 다수 펴냈을 정도로 기업 인사 분야에서 높은 식견을 자랑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으며 공직인사 개혁을 주도한 적은 있으나 민간 기업의 인사 전문가가 공직 개혁을 주도할 자리에 앉은 것은 이 처장이 처음이다. 그만큼 공직 인사 개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예사롭지 않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료사회의 적폐, ‘관피아’의 굴레를 걷어 낼 주체는 관료사회가 될 수 없으며, 민간의 전문 역량을 빌려 공직을 개혁할 뜻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 개 기업의 인사 전문가가 어떻게 거대 관료 조직을 개혁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은 충분히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관료사회의 지금 모습을 만든 긍·부정의 요소들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한 개혁은 변죽만 울리고 끝날 공산이 크다. 그동안 정부 각 부처에 많은 민간 인사들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투입됐다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퇴출된 전례도 많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공직 혁신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중요하다. 민간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손을 털 게 아니라 그가 개혁의 성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인사혁신처의 호흡이 중요하다. 인사수석실이 장·차관 등 정무직 고위 공직자 인선과 검증에 주력하고, 인사혁신처가 일반 공무원 인사관리를 중심으로 충원 시스템 개혁과 관피아 척결 방안 모색에 힘을 쓴다면 역할 중복 논란은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처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인사’를 강조해 왔다. 이제 실행하고 입증해야 한다. 세월호가 부여한 소명을 허투루 여기지 말기 바란다.

 

 

■ 아베노믹스의 함정

 

[한국일보 사설-20141119수] 아베노믹스 좌절 조짐, 장기적 엔低 대비해야

 

아 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중의원을 해산과 조기 총선 방침을 밝혔다. 일본 중의원은 일부 민생법안을 서둘러 처리한 후 주중에 해산될 전망이며, 선거일은 12월 14일이 유력하다. 아베 총리의 중의원 해산 방침은 그제 발표된 일본의 3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연율 -1.6%)에 머문 게 직접적 계기다. 일본은 2분기에도 -1.9%(연율 -7.3%) 성장률을 기록,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로써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통해 연 2% 대의 안정적 인플레이션을 이끌어 장기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려던 아베노믹스의 좌절 조짐이 한결 뚜렷해졌다. 앞으로 지지율 저하를 피할 수 없는 마당이어서, 아직 지지율이 40%로 비교적 높고 야당의 세력 결집이 부진한 지금 총선에 들어가 정권을 2년 더 연장하겠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계산인 셈이다.

 

그 는 어제 중의원 해산 방침과 함께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을 2017년 4월로 1년 반 연기할 뜻을 밝혔다. 수출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등 한동안 순항하는 듯하던 아베노믹스는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후 급격한 소비심리 후퇴에 시달려야 했다. 인위적 금융완화와 재정출동의 결과 경제 활력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인 데다 수익이 늘어난 기업의 급여 인상 움직임까지 나타나 소비세 인상의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으리란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장기불황을 겪으며 체질화한 일본 국민의 ‘생활방어’, 즉 지출이 늘어날 경우 그 이상의 절약과 내핍으로 스스로의 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자세가 뚜렷했다. 소비세 인상에 앞서 이미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을 겪은 소비자들은 추가적 물가상승인 소비세 인상을 맞아 지갑을 더욱 단단히 닫아버렸다. 엔저 효과로 수출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은 나아졌지만,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12% 내외밖에 되지 않아 큰 의미가 없었다.

 

물 론 이번에 발표된 3분기 성장률만을 가지고 아베노믹스의 파탄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경제침체의 지표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소비세 인상의 충격이 2분기보다 많이 완화됐고, 기업의 생산조정으로 재고가 감소한 영향도 작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가 거듭 후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문 제는 양적완화의 대안이 없어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가 확대되거나 현재의 양적완화 장기화에 따른 엔저의 가속화다. 현재 야당 지지율이 10%도 안 돼 12월의 총선에서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확보는 무난할 전망이다. 양적완화의 지속과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국내 수출기업과 한국경제 전체에 드리운 엔저 그늘이 더욱 짙어질까 걱정이다. 정부와 기업이 부단한 주시와 기민한 대응으로 장기적 엔저 위기에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41119수] 아베노믹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 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국회 해산과 총선 일정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선거 정국으로 돌입했다. 성장률 급락으로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봉착하자 민심을 묻겠다고 역공에 나선 것이다. 출혈이 있더라도 야당에 정권을 넘겨줄 만큼은 아니라는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이지만 경제 실정을 국회 해산으로 덮으려 한다는 비판도 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 베노믹스의 한계 노정은 일본을 흉내 내는 한국에도 음미할 대목이 많다. 일본의 총선 돌입은 그제 발표된 3분기 성장률(-1.6%)이 계기가 됐다. 2분기 성장률(-7.3%)은 4월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3분기 마이너스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베 스스로도 “안타깝지만 좋지 않은 수치”라고 말할 정도다. 당장 돈 푸는 정책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무제한 양적완화→엔저 유도→수출 대기업 이익 증가→임금 인상→내수 자극→경기확장의 선순환 예측도는 비용 증가를 우려한 기업이 임금 인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어그러졌다. 여기에 무역적자가 25개월째 지속되면서 엔저가 수출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전제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오히려 엔저는 수입 물가를 밀어올리면서 소비를 위축시키는 양상이다. 내수·중소기업도 엔저 후폭풍으로 고통받고 있다. 더구나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기업 경쟁력 전체를 갉아먹고 있지만 성장론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태다.

총 선의 직접 빌미가 된 소비세 인상 연기는 방만한 재정운영이 훗날 국가경제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은 1990년 거품 붕괴 뒤 건설 위주의 단기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늘어 1038조엔(약 1경)에 달한 상황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2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기존 5%였던 소비세를 지난 4월 8%로 올린 데 이어 내년 10월 10%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증세가 인기 없는 정책이고, 소비를 위축시키지만 후대를 위해 의미있는 시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국 두번째 증세는 연기됐다. 증세를 강행하면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현실론을 앞세우지만 재정건전성을 위해 증세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정권 유지를 우선한 정치인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일본경제의 침체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기업 성장동력 부재 등 여러 경제사회적 요인에 선심성 재정투입 등 잘못된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문제는 돈을 쏟아붓고 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경제에서 배워야 할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19수] 경기를 살려낼 마술은 없음을 보여준 아베노믹스

 

아 베노믹스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17일 공개된 일본의 3분기 실질 GDP 증가율(-0.4%)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4월부터 단행된 소비세 인상 여파로 2분기 GDP 증가율이 -1.9%였을 때만 해도 충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였다. 3분기엔 2% 정도로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침체가 공식화되면서 돈 풀기와 엔저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에 부정적 평가가 불가피해졌다.

 

‘GDP 쇼크’의 1차 원인은 소비세 인상이다. 4월부터 적용된 세율인상(5%→8%)은 2012년 여야 합의 사항이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 증가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결국 내수에 직격탄이 되었다. 아베 총리는 소비세 인상 충격을 아베노믹스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돈을 풀고 엔저를 유도하면 수출에 힘입어 기업 이윤이 늘고 이것이 임금상승과 소비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엔저는 수출증가보다는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내수를 더욱 위축시켰다. 3분기 소비자물가는 소비세 인상과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까지 겹쳐 4%나 올랐다. 이것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쇼크로 이어졌다. 2차 경기후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아 베 총리는 2015년 10월로 예정된 추가 소비세 인상을 2017년 4월로 연기하고 국회해산을 통해 조기 총선으로 새 판을 짜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 연기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국가부채가 1000조엔이 넘는 상황에서 증세 연기는 국채 폭락, 금리 급등,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금융시장은 이를 징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소비세를 인상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일본이다. 이 딜레마는 경기를 살려낼 마술과도 같은 부양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상황이 강 건너 불구경일 수만은 없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119수] 소비 살리지 못해 주저앉는 아베노믹스의 교훈

일 본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경기후퇴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17일 올 3·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1.6%(연율)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4분기 성장률도 -7.1%에서 -7.3%로 수정됐다. 중앙은행까지 가세한 전방위적 '돈 풀기' 정책과 엔저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들이닥친 성장 쇼크다.

 

2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후폭풍은 조기총선 등으로 정치권에까지 번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8일 경기상황을 점검하는 전문가회의와 자민당 임시 임원회의 등을 거쳐 중의원을 해산하고 내달 총선을 실시하는 방침을 밝혔다.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10%) 2단계 계획도 2017년 4월 이후로의 연기하기로 했다. 연초까지 회복 조짐을 나타내던 일본 경제가 더블딥 양상을 보이자 일본 언론은 일제히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원 인은 무엇보다 극도의 민간소비 부진이다. 이런 판에 4월 단행된 소비세율 인상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돼버렸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단행한 것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취임 이후 단행한 금융완화·재정투입·성장전략 등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3개 화살'이 증세 충격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3·4분기 개인소비 증가율이 0.4%에 불과할 정도의 소비침체는 기대 밖의 결과가 돼버린 셈이다.

 

일 본의 성장침체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도하는 이른바 '초이노믹스'는 경기부양을 초점으로 하는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 그리고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산업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공격적 경기부양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재정악화만 초래하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을 너무 가벼이 본 일본 아베노믹스의 교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말썽 많은 수능

 

[중앙일보 사설-20141119수] 수능·EBS 연계, 대학입시를 완전히 망쳤다

 

올 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 오류 논란을 빚은 문항이 EBS 교재 내용을 바탕으로 출제됐다고 한다. 출제진이 부실한 EBS 교재 내용에서 문제를 출제하다 보니 오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제진이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를 혼동한 영어 25번 문항은 물론 지난해 수능 출제 오류 파동을 몰고 온 세계지리 8번에 이르기까지 이들 문항은 EBS 교재 내용을 근거로 했으며, 교재에도 비슷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출제진의 부주의나 실수도 잘못이지만 교재 자체가 부실한 탓에 오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고 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린 수능 출제 오류의 근본 원인은 부실한 EBS 교재에 있으며, 이런 교재에서 수능 문제 70%를 연계해 출제하도록 한 교육부 정책에 있다. 물론 수능과 EBS 교재 연계 정책 덕분에 수험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사교육을 찾아보기 힘든 농·산·어촌 지역 학생들도 EBS 수능 인터넷과 교재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수능·EBS 연계 정책이 시행된 2010년부터 EBS 교재 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으며, 지난 5월에도 국어·수학·사회탐구 등의 교재에서 오류나 오탈자가 발견됐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처럼 EBS 교재가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도 수능·EBS 연계 정책을 고수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부 역시 출제 오류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교과서보다 EBS 교재가 우선인 현실은 정상일 수 없다. 교육부는 대학입시를 완전히 망쳐놓은 수능·EBS 연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70%라는 연계 수치부터 폐기할 필요가 있다. 수험생들이 EBS 교재 내용만 달달 외우는 건 70%란 수치와 관련이 깊다. 또한 평가원과 함께 시중에 나와 있는 EBS 수험 교재 전체를 면밀히 검토해 부실한 교재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아주기 바란다. 더 나아가 이번 출제 오류를 계기로 수험생들이 교과서를 바탕으로 공부하면 시험 대비가 가능하도록 수능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119수] 말썽 많은 수능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난 이도가 낮아 변별력을 잃은 ‘물수능’ 논란에 이어 출제 오류가 또 발견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재판 끝에 출제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치욕을 당한 교육 당국이 한 해도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수능에서 문제가 된 문항은 생명과학Ⅱ 8번 문항과 영어 홀수형 25번 문항이다. 특히 영어 25번 문항에 나온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는 상식에 속한다. 이를 출제자들이 몰랐다는 것은 그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먼저 당부할 것은 이번에야말로 오류가 있다면 신속히 인정하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 지난해처럼 질질 끌었다가는 애꿎은 수험생들의 피해만 키울 뿐이다.

 

수 능은 1994학년도 대입부터 도입됐으니 올해로 시행 21년이 됐다. 암기력 시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학력고사의 폐단을 고치고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려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체 문항의 약 70%를 EBS 교재의 문제와 연계해서 출제함으로써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었다. 그러나 애초 내세웠던 목표 달성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국·영·수 중심의 문제풀이식 교육을 하고 있으며 기대만큼 사교육비도 줄지 않았다.

 

무 엇보다 큰 문제점은 ‘물수능’ 또는 ‘불수능’이라고 불리면서 해마다 난이도가 널뛰기를 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오락가락식 출제가 대통령이나 장관의 한마디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수험생이 무슨 실험동물도 아니고 바뀐 정권마다 수능을 이래라저래라 하니 시험이 장난인 줄 아는 모양이다. 이번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만점자가 몇% 이상 된다면 변별력이 생명인 시험의 가치를 이미 잃었다. 그렇다고 수능 외의 다른 전형 수단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것도 아니다. 형식적인 활동과 조작된 스펙을 써 넣은 학생부와 표절이 판치는 자기소개서 또한 믿을 것이 못 된다. 대학들이 수시모집을 줄이고 수능을 반영하는 정시모집 비중을 늘린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 부가 입시제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온 것도 수십 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지경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생각대로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려면 다른 보완적인 전형제도가 있어야 한다. 논술이나 학생부 외에 예를 들어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본고사와 유사한 제도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숙명적인 장애물에 봉착하게 된다. 학생부 전형 또한 앞서 지적한 대로 형식적이고 관대한 기재라는 문제가 있고 그전에 학교 간의 격차 반영에 대한 논란이 따른다.

 

그 렇다면 결론은 수능밖에 없다. 점수를 컴퓨터로 채점하므로 수능만큼 객관적인 시험도 없다. 지금부터 어떻게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고 출제 오류를 없앨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출제위원의 자질을 높이고 합숙 기간을 늘려서라도 오류가 없도록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문제은행식 출제는 문제 유출 등의 문제점을 극복해야 하니 쉽게 시행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차제에 문제 유형의 변화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고 단순 암기력이 아니라 폭넓은 사고력을 가진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수능이 돼야 공교육과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41119수] 금감원 쇄신, 금소원 독립부터 제대로 하라

 

최 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전격 사퇴했다. 3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1년8개월 만에 중도 하차한 셈이다. ‘일신 상의 사유’로 사표를 냈다지만, 사실상 동양사태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KB금융 내분 등 잇단 금융사고에 따른 경질 인사인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을 지체 없이 새 금감원장으로 내정 발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로써 금감원은 새 정부조직 출범에 맞춰 쇄신의 계기를 맞게 됐다. 차제에 ‘금융소비자보호원’ 독립이라도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동안 다수 전문가들은 업무 중복에 따른 갈등과 혼선을 해소하고, 감독업무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정부기구인 금융위의 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업무를 금감원의 감독기능과 합쳐 독립적 ‘금융감독위원회’ 같은 기구가 총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금융위원회가 존치됨으로써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은 또 다시 장기과제로 유보됐다. 그러자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기능은 지금이라도 분리가 가능한 만큼, 금융소비자보호원 같은 독립기구부터 세우자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금 융소비자보호원 설립 요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저축은행 사태 등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금감원이 금융사의 입장에만 서다 보니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에 소홀했고, 그 결과 저축은행들이 사기성 채권을 일반에 판매하는 것을 막지 못해 막대한 소비자 피해를 낳았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현 정부 들어 불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이나 동양사태도 결국은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활동이 미흡해 빚어진 셈이다. 하지만 2012년 제출된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법’이 여야의 입장 차로 표류하면서 관련 논의는 금감원 산하에 일단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설치한 것으로 미봉된 상태다.

 

독 립적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금감원의 본래 기능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유지ㆍ감독이다 보니, 단기적으로 금융사에 손해를 줄 수 있는 소비자보호 업무를 도외시 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이 여태 지지부진 하면서 동양사태 식의 대규모 범죄는 물론, 금융사들의 금리 담합, 대출자에 대한 고무줄 가산금리 적용 같은 해묵은 비리도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금 감원장이 쥐락펴락하는 현행 금융소비자보호처 같은 미봉책으론 소비자 보호를 위한 행정과 감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원장 교체로 금감원이 내부 혁신의 계기를 맞은 만큼, 여야도 서둘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119수] 문학의 사명을 다시 생각하는 작가회의 40돌

 

한국작가회의가 18일로 창립 40돌을 맞았다. 파란과 곡절의 지난 세월을 거쳐 작가회의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단체로 성장했다. 이런 뜻깊은 날을 맞아 축하의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엄혹한 시대 현실을 둘러본다.

 

작 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가 태어난 1974년 11월18일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긴급조치로 온 나라를 질식시키던 때였다. 그날 고은·백낙청·염무웅·박태순·황석영 등 문인들이 광화문에서 기습시위 벌이듯 모여 ‘문학인 101인 선언’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은 긴급조치로 구속된 문인·지식인·종교인·학생의 즉각 석방, 언론·출판·집회·결사와 신앙·사상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그렇게 정치적 폭압을 뚫고 태어난 자실은 1987년 6월항쟁 직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거듭났으며, 200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과 역사를 온전히 계승”하는 한국작가회의로 이어졌다.

 

이 40년 동안 작가회의 문인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맨 앞에서 싸웠다. 문학은 저항의 언어였고, 희망의 언어였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 시기에 문인들의 글은 시대를 고발하는 가장 큰 함성이었고 시대의 환부를 도려내는 날카로운 메스였다. 겨레의 화해와 남북의 통일을 위해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앞장선 이들도 문인들이었다. 작가회의는 펜으로 시대의 어둠을 헤쳐온 우리 문학정신의 집성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작가회의가 문학이 본디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사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 한눈팔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 런 점에서 작가회의 40돌을 기해 젊은 작가들이 문학의 갱신을 다짐하고 나선 것은 반갑고 고무적이다. 김근·김경주·진은영 시인이 대표 집필한 ‘젊은 문학 선언’은 “지금 우리 문학은 작품 속에서 인간을 버렸다”며 인간의 고통을 고발하는 데 게을렀던 우리 문학에 대한 준열한 자기비판을 감행했다. “남쪽 바다에서 침몰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었다는 증명인지 모른다”는 젊은 작가들의 언어는 절박하고, ‘문학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기억하고 질문하는 데 있다’는 작가들의 다짐은 절실하다. 이들의 발언이 우리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기를, 작가회의가 현실과 맞붙어 인간성을 드높이는 문학의 고유한 사명을 다하는 데 튼튼한 진지가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119수] ‘세 모녀 눈물’ 닦아줄 수 없는 ‘세모녀법’

 

서 울 송파구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공과금과 함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 아홉달 만에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여야 간에 잠정 합의됐다. 지체된 시간도 아쉽지만 내용 또한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

 

개 정안은 2000년 도입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큰 틀을 15년 만에 흔들었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에 각종 급여를 한꺼번에 주던 방식 대신,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급여별로 대상자 선정 기준을 달리 설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급여별로 대상 인원과 지급 액수는 늘어나지만, 개별 수급자 처지에서는 이제까지보다 기초생활 보장 수준이 후퇴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의 사례를 새 기준에 대입해 봐도 교육급여 정도만 새로 받을 수 있어, 빈곤층 복지의 확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를 만드는 독소 조항들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일할 능력과는 상관없이 성인이면 월 60만원가량을 벌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는 그대로다. 성인인 두 딸이 지병 등의 문제로 일할 수 없었던 세 모녀 가정과 유사한 상황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을 수 있다.

 

부 양 의무자에게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실제야 어떻든 부양을 받는 것으로 ‘간주’해 수급 자격을 주지 않던 제도는 일부만 개선됐다.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높이고, 교육급여에서는 이를 폐지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관계의 변화 현실에

 

맞 게 사위와 며느리는 부양 의무자에서 제외하거나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2012년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목숨을 끊은 사건도 부양 능력이 없는 사위가 부양 의무자로 인정된 게 원인이었다. 이처럼 불완전한 개선 탓에 수급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빈곤층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복지단체 쪽은 추정한다.

 

세 모녀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는 ‘그들이 처한 실제 상황’이 어떤지 파악도 못하는 책상물림 복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이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맞춤형 복지’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지만, 여전히 소득 수준을 ‘추정’하고 ‘간주’하는 제도로 위기 현장을 어떻게 포착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살기 힘들면 이유를 직접 설명해 보라’는 식의 접근법부터 고쳐지지 않았다. 일단 빈곤층 복지의 문턱을 크게 낮추고 접근성을 높인 뒤 복지 누수 문제가 있으면 사후적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제2, 제3의 세 모녀는 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1041119수] 입법로비·승용차 수수 … 한전 자회사의 추악한 부패

 

한 국전력공사의 한 자회사가 총체적 공기업 비리를 보여주고 있다. 한전이 100% 출자한 한전KDN이 자사에 불리한 내용의 법률 개정을 막기 위해 입법로비를 벌이고 허위 서류를 꾸려 거액의 출장비를 횡령해온 혐의가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와 별도로 회사 간부들이 납품업체에서 승용차를 포함한 거액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 공기업 자회사가 검찰과 경찰에서 서로 다른 사안으로 동시에 조사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이 벌인 입법로비는 교묘하고 조직적이었다. 한전KDN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공공발주 소프트웨어사업에 대기업·공기업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즉각 대응팀을 꾸렸다. 여야 2명씩, 모두 4명의 의원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아 정치후원금을 몰아주기 시작했다. 직원 500여 명의 이름으로 10만원 안팎 단위로 의원당 1000만~1800만원씩을 기부해 주었다. 소액 단위로 실명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이들은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수백 권을 사주기도 했다. 결국 개정안에서 공기업에 대한 제한 규정은 사라졌다.

 

 회사 임직원의 모럴해저드도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경찰은 임직원들이 출장을 가지도 않고 허위보고서를 내는 방식으로 출장비 11억원을 타냈다고 밝혔다. 또 고위 간부들은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납품업체에서 승용차와 거액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해당 납품업체는 한전KDN에서 총 13건의 사업을 따냈다.

 

 수사 결과가 맞다면 한전KDN이 보여준 행태는 공기업 부패의 결정판이다. 밑으로는 납품업체에 ‘갑질’을 해 금품을 챙겼고 내부적으로는 서류를 조작해 공금을 빼돌렸으며 외부적으로는 집단적인 입법로비를 벌였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공기업 비리 척결의 본보기이자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입법과정에서 여야 의원 4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해 이들의 불법 여부도 밝혀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41119수]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용두사미 돼선 안된다

 

‘채 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과 관련된 개인정보 불법유출 사건은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말 것인가. 그제 1심에서 정보 유출 관련자 가운데 전 서울 서초구청 국장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고 한다. 전 청와대 행정관은 수사단계에서 범행을 시인했음에도 모호한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앞서 검찰이 ‘윗선은 없다’며 꼬리를 잘랐는데, 그 꼬리마저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검찰총장이 불법적 뒷조사를 당하고 무고한 어린이의 사생활이 낱낱이 까발려졌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전직 구청 국장뿐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서 울중앙지법은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정보를 불법조회한 혐의로 기소된 조이제 전 서초구청 국장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채군 정보를 넘겨받은 국가정보원 직원 송모씨에게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보 조회를 요구해 전달받은 혐의로 기소된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 행정관은 지난해 6월11일과 13일 조 전 국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6월11일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수사 결론을 듣고 ‘채동욱 찍어내기’에 돌입했다는 게 정설이 되다시피한 터다.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송수신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인정한) 조 전 행정관의 검찰 진술은 언론 보도 등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니 스스로 죄를 뒤집어썼다는 말인가.

검 찰은 지난 5월 청와대 민정·교육문화·고용복지수석실이 채 전 총장 뒷조사에 나선 사실을 밝혀내고도 ‘정당한 감찰 활동’이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조 전 행정관과 국정원 직원 송씨를 기소하면서도 청와대나 국정원과는 무관한 ‘개인적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개 청와대 행정관과 국정원 정보관이 독자적으로 검찰총장 뒤를 캤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기소된 ‘꼬리’들에게까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합리적 상식과 시민의 법감정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정 권이 불법적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개인정보를 파헤쳤다면 이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 인권유린에 해당한다. 더욱이 어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이러한 폭력을 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상급심에서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41119수] 새누리당 남경필 지사의 민주화 유공자 예우

 

남 경필 경기지사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경기도립의료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했다고 한다.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재준 경기도의원이 도의회 도정 질의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 지원을 요청하자 남 지사가 최근 경기도립의료원의 ‘취약계층 진료비 지원사업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날 선 정쟁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보수 집권당인 새누리당 소속의 지자체장이 ‘민주화운동 유공자 예우’라는 야당의 ‘껄끄러운’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남 지사의 결정에 이례적으로 감사를 표시하며 환영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하겠다.

 

우 리가 이번 남 지사의 결정에 여야가 서로 소통·화합하는 미담사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최근 들어 군사독재체제에서 자행된 갖가지 악행과 불법행위들을 청산하는 과거사 판결 등에서 독재를 합리화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역주행’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말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를 적용한 수사·재판은 그 자체로는 불법행위가 아니어서 손해배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민주화운동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원고 측 주장을 배척하면서 “긴급조치가 당시 실정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것을 집행한 것 자체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으며 고문 등 가혹행위 사실이 인정돼야 국가에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수백만명의 인명을 학살한 독일 나치체제의 법도 그 당시에는 정당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사법부와는 달리 독일연방공화국은 나치시대의 법과 제도, 그것에 근거한 온갖 만행을 철저히 단죄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독 재정권 시기에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이들이 당시의 집권세력에게 몸과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독재를 합리화하고, 피해자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안기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 아무쪼록 남 지사의 결정이 정부와 사법부 등 모든 공적 부문에 확산되면서 과거사 청산 역주행 움직임을 제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119수] 부실 통일교육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각 급 학교에서 이뤄지는 통일교육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일부 학교통일교육 강사 중 절반 가까이는 북한이나 통일 등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더구나 외부 인사가 진행하는 통일교육의 경우 정부 부처 간 조율도 제대로 안 돼 혼란을 빚기 일쑤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통일부 주관 학교통일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인원은 지난 9월 기준 58명이다. 이 가운데 북한·통일 등 관련 전공자는 55%인 32명에 불과하다. 애당초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통일교육 전문강사에 대한 처우도 그리 좋지 않아 이직이 잦다 보니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우리의 통일교육은 그야말로 안팎곱사등이 신세인 것이다.

 

통 일교육 전문강사로 선발되면 통일교육원에서 20일 동안 교육을 받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시스템상의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비전공자가 이처럼 속성 교육을 받고 학생들에게 복잡다단한 통일 문제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통일부가 양성한 전문강사가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찾아가 통일교육을 실시하는 이른바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은 2012년부터 본격화돼 올해는 전국 468개 초·중·고에서 교육이 이뤄졌다. 내년에는 1000여개 학교에서 통일교육을 할 예정이다. 양적 확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준 이하의 통일교육으로 그릇된 북한상이나 통일관을 심어 준다면 차라리 백지 상태로 놔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강제낙태·영아살해 등 잔인한 내용이 담긴 북한 인권유린 관련 영상이 여과 없이 소개돼 논란을 낳기도 했다.

 

우 리나라 청소년의 상당수는 남북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에도 민족공동체의 회복이나 한반도의 평화정착 같은 당위론적 이유보다는 통일 후 누리게 될 경제적 효과 등 현실적인 이유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이라는 자극적인 용어까지 구사하며 통일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통일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미래의 주역인 학생 세대에 대한 통일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참에 통일부가 주관하는 학교통일교육, 교육청이 관여하는 보수단체 중심 안보교육, 군 당국의 교육 등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통일교육 체계 전반에 대해 총체적으로 재점토해 보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19수] 정부가 직접 장사까지 해보겠다는 기묘한 발상들

* 제7 홈쇼핑 차라리 민간단체에 주라

 

정 부가 내년 중반 개국할 제7 TV홈쇼핑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작심한 모양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엊그제 ‘공영TV홈쇼핑 승인정책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치하는 1안과 주식회사로 설립하되 공공기관, 비영리법인, 공익을 위해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법인만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2안이다. 어느 쪽이든 민간기업의 투자를 배제한 100% 공영 홈쇼핑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TV홈쇼핑만 6개다.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제로 가도 될까말까 한 판국에 거꾸로 가겠다는 얘기다. 기묘한 발상이다.

 

정 부 설명은 이렇다. 중기제품 등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존 홈쇼핑과 다른 성격의 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판매 수수료율 20% 상한선 설정, 운영수익 전액 재투자 등의 명분도 내세웠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경영이 안 되면 소용없다. 공공기관이 주주로 참여한 홈앤쇼핑도 실패한 마당이다. 비효율과 적자경영이 뻔하다.

 

제 7홈쇼핑 신설은 기획재정부 등이 요구해 시작됐다고 한다. 앞에서는 공기업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가 뒤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니 정부 의도가 의심받는 것도 당연하다. 관이 이런 식으로 나서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 정부가 한국석유공사를 내세워 시작한 알뜰주유소는 엊그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을 해치는 대표적 사업으로 지목했다. 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검사,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한국표준협회의 교육사업 등도 똑같이 지적받았다.

 

어 디 그뿐인가. LH 산업은행 등 여전히 민간과 경합하거나 중복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통신 금융 의료 등에 유독 규제가 많은 이유도 정부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탓이다.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서비스하면서 민간시장을 죽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을 개혁하랬더니 오히려 공기업을 더 늘리겠다고 나오는 정부를 어찌해야 하나.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19수] 중국에서조차 핀잔 듣는 지경에 이른 한국의 은행들

 

중 국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들이 최근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국내 은행의 중국법인 경영실태에 유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경이 보도했다. 중국 측은 국내 5개 은행 중국법인들이 현지에서 중국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는 대가로 과도하게 지급보증을 서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출 때 담보와 보증에 대한 엄격한 평가, 여신관리 강화, 충분한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산건전성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항목들은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한다. 그것도 선진국이 아니고 금융질서가 있는지조차 궁금한 중국으로부터 받은 따끔한 지적이다. 금감원도 전례없는 일이라며 당혹해 하는 표정이다. 권고라기보다 경고의 의미가 더 짙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금감원은 국내 해당 은행에 엄격한 여신관리를 당부하는 공문도 보냈다고 한다.

 

중 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지만 금융 등 서비스는 아직 글로벌 경쟁력이 한참 뒤처진다. 이런 중국에조차 핀잔을 듣고 있는 판이다. 국내 은행들이 중국에 진출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한국 금융사의 경쟁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국제 평가도 바닥권이다. 더 뱅커지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평가한 세계 100대 은행 중 한국 은행은 5개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국내 은행의 건전성은 144개국 중 122위로 사실상 꼴찌다.

 

한 국 금융을 이다지도 부끄럽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고질적인 관치금융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서민대출을 늘리라고 야단이더니 이번 정부는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며 금융위는 기술금융, 금감원은 관계형 금융을 요구하면서 은행 등을 떠밀고 있다.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대출심사방법까지 정부가 강요하는 식이다. 시시콜콜 간섭하며 은행을 아예 온실 속 화초나 어린애로 만들고 있다. 정책금융, 관치금융이 판치면 은행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여기에 온통 ‘관피아’요 ‘정피아’다. 아시아에서조차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한국 금융의 현주소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19수] 성공 조짐 보이는 일·학습병행제 더 키워가야

한 국형 도제(徒弟) 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학습병행제는 근로자들이 일하면서 기업의 현장교사들에게 실무를 배워 자격증이나 학위까지 취득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로 정부가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학습병행제를 도입한 기업은 2,000개사. 당초 올 한해 목표로 잡았던 1,000개사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학습근로자 수도 1,100명에 달한다.

 

최 근 들어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롯데호텔과 우리은행·포스코·CJ CGV 등 대기업의 참여 또한 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기업들이 속속 합류하는 것은 그만큼 이 제도로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를 신속히 익힐 수 있고 기업으로서는 직무교육에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인력난 해소도 가능하다. 기업과 근로자가 윈윈할 수 있는 셈이다.

 

CJ CGV의 경우 고졸자와 비전공 대졸자를 대상으로 영사산업기사 자격증과 관련된 이론·실습교육을 6개월간 집중적으로 실시해 인력운용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노동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 교육과 기업의 수요가 따로 노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다. 너도나도 대학을 가지만 졸업해도 취업하기 어렵고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기업 눈높이에 맞지 않아 재교육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구조다.

 

한 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직원 채용 후 실무투입까지 신입사원 한 명을 재교육하는 데 평균 6,088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일·학습병행제는 이 같은 낭비와 비효율을 최소화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제도가 일자리 연결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벤처·창업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조한혜정 칼럼-조한혜정(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20141119수] 음유시인 신해철님을 보내며

 

동 네 미장원에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지 말라며 주의를 주고 있었다. 병원에 간 사람마다 입원하라고 했다더라며 거대 병동을 짓더니 병실이 남아서 그러나 보다고 했다. 한국 의료계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동한 지가 꽤 되었지만 이런 말을 동네 미장원에서 듣게 되니 참담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신해철씨 사망 소식을 듣는다.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시대적 병폐에 곧잘 돌직구를 날리던 그였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이렇게 온몸으로 돌직구를 남기고 떠나다니!

 

1988 년 <문화방송>(MBC) 대학가요제에 마지막 팀으로 무대에 오른 그에게 아나운서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얼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며 너스레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을 했던 해맑은 미소년이었던 그는 마왕처럼 몸집을 불리면서 음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빈약한 공론의 장에서 맹활약을 해왔다. 그는 내가 하는 대중문화연구 수업에 초대하면 기꺼이 와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주곤 했다. 나는 “아직 단 한 번의 후회도 느껴 본 적은 없어.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항상 너야”로 시작하는 노래를 동성동본 결혼을 선택한 이들을 응원하는 노래인 줄 모르고 좋아했었다. 알고 보면 그의 노래 대부분은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였고 시대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갔기에 장르적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 수 있었던 듯하다.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백일 음악회에서 고 이보미 학생과 김장훈씨의 ‘거위의 꿈’ 녹음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이 사회에 있어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1987 년에 대학에 입학한 학번답게 그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만들어 왔다. 나는 그가 간통죄나 동성동본 금혼과 같이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영역까지 관리하려는 봉건적인 법에서부터 스크린쿼터나 소리바다, 영어 공교육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발언을 통해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비롯한 90년대에 출현한 굵직한 대중음악가들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대단한 음유시인이자 노래꾼들이며, 개인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감각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시장이 모든 삶의 영역을 압도하는 경향이 역력해지고 시장이 제조한 스타들이 판을 치게 되면서 이런 예술가들을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 이런 시대에 ‘실존적 명석함’과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 러나 그런 명석함과 용기를 가진 예술가들이 만든 노래 한 구절은 참으로 큰 힘을 갖고 있다. 엄청난 충격을 받거나 심신이 지쳤을 때 떠오르는 어떤 가락을 흥얼거리게 되면서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지 않는가? 그 고픔을 그대로 두면 얼어붙어 버린 심장을 가진 괴물과 같은 존재가 생겨나게 된다. 위장에 음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배가 고프듯이 가슴과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배고픔 못지않은 마음의 ‘고픔’이 있는 것이고 그 고픔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애도의 정이 온라인, 오프라인상에서 넘쳐흐르고 있다. 그 애도하는 마음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미래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덧없이 지나간 공감의 순간들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한 하워드 진의 말을 떠올린다. 마음의 고픔을 외면하고 애도의 시간을 생략하면서 돌진했던 폭력의 시대, “굳건한 안보 위에 다시 뛰는 한국 경제!”라는 구호를 여전히 외치는 조울증의 사회를 등지고 큰 별 하나가 떠나가고 있다. 함께 늙어갈 음유시인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를 애도하는 기억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다시 시대의 음유시인들이 모이는 자리를 찾아가 보려 한다. 어쩌면 마왕은 그런 곳 어딘가에서 홀가분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평안하시기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 부문 기자)-20141119수] 나도 인구증가에 기여하고 싶다 하지만 …

지 난주엔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해 봤다.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농담’으로 했다는 ‘싱글세(稅)’ 이야기를 접하고서다.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에게 세금을 매긴다는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 이것이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으나 실체는 모호했)던 ‘창조경제’로구나 이해해 보려 했지만 마음은 차갑기만 했다. 안 그래도 싱글에게 가혹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건만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라한테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건가.

 

 SNS에 올라오는 싱글들의 자학개그를 보며 화를 달랜다. “싱글세 걷으려면 기본애인 보장하라” “앞으로 프러포즈 거절은 ‘너랑 결혼하느니 차라리 싱글세를 내겠어’로 하자” 등등이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전기세를 안 내면 나라에서 전기를 끊고, 수도세 안 내면 수돗물을 끊잖아요. 그럼 싱글세 안 내면 나라가 싱글 생활 끊어주는 건가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듯 싱글과 아이 없는 부부도 이 나라 잘되는 꼴 보기 싫어 애를 안 낳는 게 아니다. 일자리는 불안하고, 집값은 비싸고, 아이 키우기는 팍팍한 사회에서 추락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을 딛다 보니 그리되었을 뿐이다. 나 하나 지탱하기도 자신 없으니 진지한 연애 대신 ‘썸’을 택하고, ‘매력 자본’에서 밀리거나 감정 노동마저 싫은 사람들은 아예 관계를 포기한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조혼(早婚)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 없긴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의 78%가 대학에 가고, 취업난에 몇 년씩 졸업을 미루다 가까스로 일을 시작하면 여자들도 20대 후반.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일본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이란 책을 읽다 이 구절에 밑줄 쫙 그었다. “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 오해받기 쉽다. 고영오연(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또한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균형이 어렵다.” 싱글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호소하자는 게 아니다. 싱글이건 커플이건 이 나라의 지속가능을 위해 아이를 생산해야 하는 도구가 아니며, 저마다 자신의 조건 안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존재란 거다. 나라의 정책이란 게 그렇게 개인들의 속사정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거라 한다면, 정말 그런 나라엔 살고 싶지가 않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41119수] 깡패와 양아치

 

자 유당 시절 정치폭력배 유지광은 자서전 <대명(大命)>에서 깡패·건달·협객 등을 나열한 뒤 깡패의 어원을 풀었다. 폭력단 갱(gang)에 무리를 뜻하는 패(牌)가 결합해 ‘갱패’가 나왔고, 갱패→깽패→깡패로 전화했다는 것이다. 유지광은 깡패를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나름 정의한다. 그러면서 김두한·김동진 등 당대의 주먹들이 깡패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 이유를 “돈을 노리고 주먹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들이 ‘깡패’ 대신 선호한 게 ‘건달’이다. 건달의 어원을 추적하면 그럴 만하다. 건달은 산스크리트어 ‘간다르바’를 한자로 표기한 ‘건달바(乾達婆)’에서 유래한다. ‘간다르바’는 수미산 금강굴에 살면서 천상의 음악을 맡는 신으로 향만 먹고 허공을 날아다닌다. ‘건달바’가 조선시대 부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일컫는 ‘건달’로 전복돼 쓰였다. 낭만과 의협을 내세우는 주먹을 포장하기에는 태생적으로 깡패보단 건달이 웃질이다.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 서태주가 자신을 시종 깡패라고 칭하는 마동팔 검사에게 “건달이라고 불러주쇼”라고 소리친다. 마동팔 검사의 답변이 걸작이다. “건달? 너 그게 무슨 뜻인 줄이나 아니? 하늘 건, 이를 달. 하늘에 통달한 사람이란 뜻이지. 간다르바라구. 하는 짓마다 썩은 냄새 피우는 새끼들이 무슨 건달이야? 깡패지.”

현 실에서나 영화에서나 폭력배들이 ‘깡패’보다 치를 떠는 명칭이 ‘양아치’다. 양아치는 집집을 전전하며 걸식하는 ‘동량아치’의 줄임말이다. 조폭을 다룬 영화에서 ‘양아치’는 상대를 가장 모욕하는, 도발하는 호칭이다. 저들에게 건달과 양아치의 차이는 뭘까. 영화 <약속>에서 건달두목 공상두가 여주인공 채희주에게 간명하게(?) 알려준다. “한번 하자! 이러면 건달이고, 한번 해주라아~ 이러면 양아치야.”

깡 패와 양아치 싸움이 영화나 조폭 세계에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저 XX 깡패야” “양아치 같은”. 예산을 다루는 국회 예결소위에서 여야 의원 간 치고받은 말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던가. 깡패, 양아치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헌법기관으로서 품위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 터. 깡패와 건달의 차이를 갈파한 마동팔 검사의 대사가 제격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41119수] 일본의 국회 해산

 

일 본 총리들에겐 두 가지 야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루라도 직책을 더 수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임 중 자기 손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시행해 승리하는 일이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되면 당연한 듯 국회해산권을 행사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의원(衆議院) 해산이다. 자민당이 장기 집권한 배경에는 이 같은 국회해산권이 큰 역할을 했다. 해산이야말로 총리가 가진 전가의 보도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총리 권력의 최대 원천은 해산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국회 해산은 1947년 일본 새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22차례나 단행됐다. 평균 2년6개월에 한 번 이뤄진 셈이다. 해산에 의한 총선거는 해산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실시한다. 또 총선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특별국회가 소집되고 새 내각이 구성된다.

 

해 산하는 명분이나 케이스도 다양하다. 올림픽을 앞두고 선거를 일찍 끝내야 한다거나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이유로 해산한 경우도 있다.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해 해산한다는 것은 다반사다. 자민당 의원들의 갑작스런 불참으로 야당이 발의한 내각불신임안이 통과되면서 할 수 없이 해산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국회해산을 한 직후 의원들이 만세삼창을 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는 것도 재미있다. 소위 천황의 정무에 대한 칭송과 복종을 의미한다고 하니 실로 일본식 만세삼창이다.

 

해 산을 가장 많이 활용한 총리는 1950년대 일본 정치계를 풍미한 요시다 시게루다. 요시다는 집권 8년 동안 네 차례나 국회를 해산했다. 특히 그가 1953년 한 야당의원에게 ‘바카야로(바보녀석)’라고 욕을 한 것이 발단이 돼 해산에 이르게 된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의원들은 내각불신임안을 결의했고 요시다 총리는 국회를 해산해버렸다. 이에 반해 1976년 총리가 된 미키 다케오는 자신의 임기(4년)를 다 채우고 퇴임했다.

 

아 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공약사항이었던 소비세 인상 연기를 명분으로 중의원을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집권 2년이 채 안 돼 국회를 조기에 해산하는 아주 드문 사례다. 아베가 장기 집권을 위해 생떼를 쓰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지지율은 40%선이다. 총선에서 쉽게 패배할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다. 아베가 총선을 거쳐 재집권한다면 아베노믹스 2.0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리도 많다. 물론 아베는 헌법 개정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동북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것 같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웅재(논설위원)-20141119수] 성매매 과세

 

우 리나라에서 성매매와 성매매 알선은 명백한 불법(성매매알선등처벌법)이다. 성매매 알선·권유, 성매매 장소 제공, 성매매 여성 모집행위 등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또 범죄로 얻은 금품이나 재산은 몰수·추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형사적으로만 그럴 뿐 성매매 업자 등의 세금 문제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 울고법 형사1부는 성매매 영업을 하고 세금을 탈루한 전모(37)씨 항소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140억원을 선고했다. 전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성매매를 겸한 유흥업소인 풀살롱을 차려놓고 2010년 8월부터 2년4개월 동안 하루 평균 150명의 남성에게 성매매를 알선했다. 그러고서는 포주 역할을 하는 영업상무와 여성 접대부에게 봉사료조로 지급한 금액을 매출에서 빼 조세를 포탈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 과세표준에서 제외되는 봉사료'도 '사업소득 필요경비'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성과급과 비슷한 성매매 손님유치 수당 내지 성매매 수당으로 본 것이다. 법의 허용 범위에 있는 영업방식이 아니라는 점도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올 바른 판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성매매알선등처벌법의 관점에서 보면 성매매는 범죄이므로 그에 따른 봉사료도 범죄로 얻은 금품에 해당한다. 따라서 봉사료 전부를 몰수·추징하는 것이 법 논리상 바람직한 것 아닐까.

 

성 매매를 범죄로 봐야 하느냐, 합법화하는 게 현실적이냐에 대한 견해는 사람에 따라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이 이를 불법으로 명시하고 몰수·추징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세제 등도 이에 걸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되면 법원에서 성매매 알선 등 불법 영업으로 발생한 성매매 수당 등을 적법한 봉사료나 필요경비로 인정할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몰수·추징 대상 불법수익에 대해 그런 것을 따지는 건 '성매매는 형사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세법 차원에서는 합법'이라는 인상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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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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