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주요 이슈
■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 분석 : 저출산, 고령사회 진입
■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 분석 : 여초 시대
■ 교육복지 예산 부족
■ 북한의 위협과 북한인권법 제정
■ 울진 원전 대타협
■ 중국 위안貨 금리 인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 분석 : 저출산, 고령사회 진입
[한국일보 사설-20141124월] 저출산ㆍ고령화 또 경고음...'폭탄 돌리기' 안 된다
내년 국내 여성인구가 1960년 인구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남성을 추월해 ‘여초(女超) 시대’에 접어든다는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결과인데, 원인은 저출산과 고령화다.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는 지난해 기준 105.3으로 여전히 남아 출생이 조금 많지만,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로 고령인구의 비중이 급속히 늘고 있는 가운데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길어 빚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지만 수치로 거듭 확인된 여파는 자못 심각하다.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인구가 유소년(0~14세) 인구를 앞지르며 700만명을 돌파해 고령사회(14% 이상)로,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로 접어들게 된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성장률 하락과 복지부담 증가에 따른 재정 악화 등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세대갈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문제를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대비책을 세울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왕좌왕하다가는 ‘국가 위기’를 넘어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문제를 겪은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보듯 저출산 및 고령화 대책은 말 그대로 ‘백년대계’가 절실히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장기적 전략이 부재하다 보니 그나마 내놓는 정책들도 지속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존재감조차 없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위원회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14개 부처 장관과 민간전문가 10명이 참여해 저출산고령사회 종합대책을 수립ㆍ조정ㆍ평가한다는 기구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공식 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저출산 대책과 무관하지 않은 무상보육과 학교급식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폭탄 돌리기’ 식 논쟁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철학의 빈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니 고용 구조개선과 일ㆍ가정 양립 등을 위해 필수적인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유명무실한 컨트롤타워부터 시급히 정비해 중장기 전략과 단계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최근의 복지정책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증세 문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초고속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41124월] 임박한 저출산·고령 사회, 정부대책은 뭔가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3년 뒤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또 내년부터는 여성인구가 남성을 앞지를 것이라며, 이는 저출산·고령화 현상 속에서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저출산·고령화가 마침내 ‘발등의 불’로 현실화한 것이다.
고령사회에서는 전반적인 노동력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세금 및 연금 수입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면 예산 및 연금 지출과 국가 채무는 늘어난다. 통계청도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부터, 취업자 수는 2026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마디로 경제 활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20여년 뒤엔 생산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전문기관의 예상도 나와 있다. 노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지갑을 굳게 닫기 때문에 소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고령사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자칫 나라 살림이 파탄에 빠질 것이란 경고가 괜한 엄포가 아닌 것이다.
국가경제적 측면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버젓한 사회구성원이면서도 빈곤과 건강 악화에 시달리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일자리 등 사회참여 확대는 노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자아실현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인층의 물리적·사회적 연령이 계속 낮아지면서 사회적 역할 증대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특히 과거 성장의 주역인 노인층이 연금 고갈의 주범이나 세대 갈등의 피해자로 몰리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인구의 여초 현상도 고령사회의 해결책과 맥락을 같이한다. 임신·출산의 국가 부담을 늘리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제도적으로 대폭 확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저출산 현상을 극복한 선진국들도 한결같이 출산과 육아 비용을 국가가 전폭 지원한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고령사회 등장의 경고등은 갑자기 돌출된 게 아니다. 정부도 그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나 사회보장기본계획 등을 마련해 대처해왔지만 예상보다 빠른 고령화 속도에 속수무책인 상황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어린이집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논란만 보더라도 정부와 정치권의 고령사회 대처가 안이한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국가의 사활적 사안이므로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과정에서도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서울신문 사설-20141124월] 코앞에 닥친 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해야
내년에 우리나라의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한다고 한다. 196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통상 세상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남성이니 ‘여초’(女超)시대의 진입이 경천동지할 뉴스는 아닐 수도 있다. 남아선호가 줄어든 데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기 때문에 고령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조만간 앞지를 것으로 예상돼 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한국 사회가 당초 전망했던 것보다도 더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2017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됐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7년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다. 선진국인 일본이 36년, 독일이 77년 걸린 것에 비해 너무 빠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간다.
의료 수준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면서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우리 사회가 늙어가면 적잖은 부작용이 따른다. 노인인구가 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회 각 분야의 활력도 대체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인들을 지원할 보호시설, 복지비용도 비례해서 늘어나야 하므로 국가재정 부담은 커진다. 올해 639만명인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2017년에는 700만명을 넘어서면서 유소년(0~14세) 인구를 사상 처음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2016년 정점을 찍은 뒤 2017년부터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실질성장률은 올해 3.6%에서 2060년에는 0.8%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인구재앙’ 수준이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해법은 출산, 육아와 관련된 실효성 있는 대책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을 비롯해 저출산·고령화를 겪은 선진국들이 먼저 겪은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대처를 제대로 못하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세계 최하위권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비 등의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게 겁이 난다는 말이 많다. 직장 여성이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시스템도 더 갖춰야 한다. 노인들에게는 세부 유형별로 ‘맞춤형’ 지원책을 펴고 50~60대 은퇴자들이나 일할 의사와 능력을 갖춘 노인들에게는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124월] 사상 최악 여초·고령사회 진입, 손 놓고 있을 텐가
노인들로 가득한 시골 마을에 미래가 있을까. 아이의 울음소리는 끊기고 장례만 연달아 치르는 끝은 소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딱 이렇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에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 남녀 인구 역전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54년 만에 처음이다. 여초(女超)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반길 일이다. 여초 현상이 장기 지속적인 평화와 남녀 평등사상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용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가 105.3으로 여전히 남아가 많이 태어나는데도 인구 성비가 역전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84.6세로 남자(78세)보다 높기에 출산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여성 노인 인구비율은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그렇다면 미래는 뻔하다.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비중 7% 이상)에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14% 이상)로 변하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를 피할 수 없다. 서구 산업국가들이 80~130년 걸린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26년밖에 안 걸린다는 점은 급속한 산업화처럼 급속한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는 양극화도 심화시킨다.
문제와 해답은 같은 곳에 있다. 무엇보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2005년에 설치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대통령들은 몇 번이나 참석했는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통치권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여성 인력 개발 극대화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요구된다. 통일도 고령사회 진입을 늦출 수 있는 기회다. 야당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후손들은 우리를 '몽땅 날린 선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 분석 : 여초 시대
[한겨레신문 사설-20141124월] ‘여초 시대’ 대비책 서둘러야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를 분석해보니 2015년에는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23일 나왔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벌어지는 현상이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와 함께 인구구조 격변의 서막이 펼쳐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인구구조의 동태적 변화에 맞지 않는 요소가 많다. 경제 활력의 급속한 저하가 우려되는 이유다.
여성 인구가 남성을 앞지르게 되는 현상은 저출산·고령화 추세의 한 단면이다. 출생아 성비를 보면 여전히 아들이 딸보다 조금 더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 10여년째 지속되고 고령 인구의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길어지면서 ‘여초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런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령화 자체가 국가의 성장 잠재력과 재정건전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여기에다 경제활동에서 남녀 불균형이 심한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여성 인구 비중의 상대적 증가는 고령화 충격을 더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국내 남성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10월 현재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4.3%인 반면에 여성은 51.9%에 머물고 있다. 만 15살에서 64살까지의 여성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취업자의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은 50.4%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중하위권 수준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저조한 이유는 법과 제도, 사회문화, 고용관행 등이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임금격차만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남녀 임금불평등이 가장 큰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성고용률 제고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성별 임금격차는 더 벌어졌다. 한국고용정보원 통계를 보면, 2009년 기준 여성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8%에 머물다가 2012년 70.7%선으로 꾸준히 개선되는 듯하더니 지난해에는 70.5%로 뒷걸음질쳤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당장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여건을 개선하는 게 절실하다. 보육·양육 서비스와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지원 등 관련 법률과 제도가 갖춰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원 대상을 넓히고 정책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124월] 여초 시대, 여성인력 활용은 국가적 과제다
내년에 우리나라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를 처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 여성인구는 2531만 명으로 남성(2530만 명)을 추월한다. 1960년 인구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이다. 이는 노인층 가운데 여성이 많고, 남녀 성비가 정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여성(84.4세)이 남성(77.6세)보다 훨씬 높아 노인층으로 갈수록 여성이 많다. 또 남아 선호사상으로 90년 역대 최고(116.5)를 기록했던 남녀 성비도 지난해 105.3으로 떨어졌다. 신생아의 성비가 7년 연속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있어 여초(女超) 현상은 이제 대세나 다름없다.
반면 우리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저출산이 고착화되면서 이민을 통해 외국인 노동력을 들여오지 않는 이상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12년 기준 55.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62.3%)에 못 미친다. 이 격차는 고학력 여성일수록 더 심하다. 우리나라 여성 대졸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4%로 OECD 여성 대졸자 평균(82.6%)보다 훨씬 낮다.
취업을 하더라도 결혼·출산으로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이 406만여 명에 이른다. 여성의 비경제활동인구는 20대엔 남성과 비슷한 37.1%지만 30대 들어서면 44%로 남성(6.7%)에 비해 훨씬 높아진다. 한쪽에선 노동력이 모자라는데 한쪽에선 고학력 여성 인력이 취업을 포기하는 기형적인 구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 경제활동 포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매년 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제 여성인력 활용은 단순한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내야 할 때가 왔다. 노동력이 모자란다고 갑자기 출산율을 높일 수는 없다. 육아 문제 등으로 일을 못하고 있는 여성 인력부터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이 출산·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탄력근로시간제·재택근무·시간제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보장하는 국가·기업·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이 육아·자녀교육·가사를 도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꾸로 남성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낡은 인식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남녀 모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도 확 바꿔야 한다. 아직도 채용·인사·승진에서 여성이 불리한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왜 많은 다국적기업이 한국의 여성 인력을 높이 평가하고 중용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력 부족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는 지금, 여성인력 확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124월] 사상 최악 여초·고령사회 진입, 손 놓고 있을 텐가
노인들로 가득한 시골 마을에 미래가 있을까. 아이의 울음소리는 끊기고 장례만 연달아 치르는 끝은 소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딱 이렇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에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 남녀 인구 역전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54년 만에 처음이다. 여초(女超)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반길 일이다. 여초 현상이 장기 지속적인 평화와 남녀 평등사상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용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가 105.3으로 여전히 남아가 많이 태어나는데도 인구 성비가 역전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84.6세로 남자(78세)보다 높기에 출산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여성 노인 인구비율은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그렇다면 미래는 뻔하다.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비중 7% 이상)에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14% 이상)로 변하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를 피할 수 없다. 서구 산업국가들이 80~130년 걸린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26년밖에 안 걸린다는 점은 급속한 산업화처럼 급속한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는 양극화도 심화시킨다.
문제와 해답은 같은 곳에 있다. 무엇보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2005년에 설치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대통령들은 몇 번이나 참석했는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통치권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여성 인력 개발 극대화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요구된다. 통일도 고령사회 진입을 늦출 수 있는 기회다. 야당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후손들은 우리를 '몽땅 날린 선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 교육복지 예산 부족
[한겨레신문 사설-20141124월] 지자체 쥐어짜며 ‘공약 이행’ 자랑하는가
정부는 내년부터 만 1살 이하 영유아를 둔 저소득층 부모에게 기저귀와 분유 값 등을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고위험 임산부에게는 출산 진료비도 지원하기로 했다. 애초 지난 9월에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는 빠져 있던 것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의 사업타당성 검토 과정을 거치며 되살아난 것이다. 이로써 저소득층에 분유·기저귀 값 등을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약속은 지켜지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국고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48%)와 지방정부(52%)가 재원을 나누어서 부담하기로 했다는 데 있다. 대선 공약을 지킨다는 생색은 정부가 내지만 실상 재정부담은 지방정부가 떠안게 된 셈이다.
정부의 기저귀 값 예산 떠넘기기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무상보육 예산 지방정부 떠넘기기와 완전히 판박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대선 과정에서 되풀이한 ‘아기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느니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사실은 ‘지방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약속’이었던 셈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른바 ‘세 모녀 법’ 예산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법이 시행되면 늘어나게 되는 교육급여(수업료 및 교재비) 예산의 상당액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수정법안을 국회에 냈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부담해온 기초생활 보장 예산을 일선 교육청에 떠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올해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3%로 1991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53.9% 수준이던 지방재정 자립도는 해가 갈수록 더욱 떨어지는 추세다. 여기에다 농어촌 지역 기초자치단체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재정자립도가 사실상 10%를 밑도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가가 지원을 확대해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오히려 부담을 떠넘기니 지자체들로서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복지 예산 문제의 본질은 돈은 부족하고 쓸 데는 많다는 것인 만큼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여당과 야당, 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허심탄회한 상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런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뜩이나 형편이 쪼들리는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의 목을 쥐어짜면서 대통령 대선 공약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입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김회승(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20141124월] 국가 양육론 / 김회승
미국에서 결혼한 부부의 절반은 이혼하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40%는 미혼모 자녀다. 준 카본 미네소타대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결혼은 ‘지킬 수 없는 의무’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결혼이 자손을 낳고 교육하는 사회적 계약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정서적·경제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협상의 하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편차가 큰 결혼은 어느 한쪽의 ‘협상 실패’로 여겨진다. 결국 협상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결혼은 자신들이 지킬 수 없는 의무에 불과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혼 제도의 위기는 교육 문제와 직결돼 있다. 스웨덴 복지모델은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스웨덴 모델의 창업자 중 하나인 군나르 뮈르달의 초기 관심사 역시 저출산 대책이었다. 그는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야 한다’는 의제를 내걸고, 아동수당, 주택보조금, 무상급식 등 광범위한 교육복지 정책을 주창했다. 당시 우파는 피임과 낙태 규제 등 강압적 출산 장려책에 매달렸고, 좌파는 고용 경쟁 심화를 이유로 저출산 문제를 가벼이 여겼다. 뮈르달은 “교육복지는 질 높은 고숙련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적 투자”라며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뮈르달의 복지정책은 ‘빈곤이 빈곤을 낳는다’는 그의 학문적인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빈곤과 차별이 재생산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미국 흑인 사회를 관찰한 연구를 통해 경제적 지위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요인과 유기적으로 연관된다는 점(누적적 인과관계)을 입증하려 했다. 한 가정의 경제력 차이가 교육, 취업, 결혼 등 사회적 지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며, 이런 영향력이 강력한 재생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 복지 공약을 쏟아놓은 박근혜 정부가 요즘 돈이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능력 없이 친권만 주장하고 아이의 양육권은 나몰라라 하는 나쁜 부모가 떠오른다.
■ 북한의 위협과 북한인권법 제정
[중앙일보 사설-20141124월] 핵위협에 동요 말고 북한 인권법 제정해야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에 북한이 연일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그 대응책으로 핵을 언급해 주목되고 있다. 북한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는 어제 성명에서 “대조선 인권결의를 두고 무슨 경사나 난 것처럼 까불며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박근혜 패당에게 따져 묻는다”며 “이 땅에 핵전쟁이 터지는 경우 과연 청와대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위협했다. 북핵 위기가 전쟁 직전 상황으로 치달았던 1994년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시키는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협박이다.
인권결의안 통과 다음날인 20일에도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조선 적대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핵시험을 더는 자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인권결의안 채택을 4차 핵실험의 명분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권 문제 제기에 핵실험과 핵전쟁 운운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얼토당토않은 대응이다. 오죽하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북한의 무분별한 반응을 비판하며 인권 개선에 힘쓰라고 목소리를 높였을까.
북한의 핵위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핵실험도 인권결의안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진행할 공산이 크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협박과 위협에 동요하기보다 이 기회에 여야는 10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유엔이 나서서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을 규탄하고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촉구하는 마당에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북한인권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인식 아래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여당 의원들이 제출한 5건의 북한인권법안을 통합한 새로운 법안과 지난 4월 발의된 야당의 북한인권증진법안이 오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일괄 상정된다. 양측 법안을 보면 일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당이 각각 강조하는 인권과 민생의 통합과 절충이 가능해 보인다. 여야가 한발씩 물러나 이번에는 반드시 합의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124월] 北, 허튼 도발로 파국 자초하지 말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4주년인 어제 북한 국방위원회가 성명을 내고 미국과 우리 정부를 맹비난하며 무력도발 가능성을 내비쳤다. 걸핏하면 보복이니 성전이니 하며 엄포를 놓기 바쁜 그들이지만 어제 성명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 최고권력기관이 ‘핵전쟁’을 들먹이며 청와대 공격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국방위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 국권을 해치려는 가장 노골적인 선전포고”라며 “미국과 그 하수인들이 유엔 무대를 악용해 조작해 낸 인권결의를 전면 거부하며 이에 맞서 초강경 대응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국방위는 특히 “미국은 우리의 무자비한 보복세례를 받을 첫 과녁”이라면서 “일본과 유럽연합(EU), 박근혜 패당도 무사할 수 없다. 이 땅에 핵전쟁이 터지는 경우 과연 청와대가 안전하리라 생각하는가”라고 위협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유엔 차원의 문제 제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북측이 올해 유난스럽게 반발하는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결의안이 ‘최고존엄’이라 칭하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름이 적시되진 않았으나 유엔 제3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인권 탄압의 최고책임자’ 같은 표현으로 김 제1위원장이 지목되자 그를 에워싼 주변의 북한 권부가 과도한 충성 경쟁에 나서면서 강경 태도를 확대 재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움직임이 우려스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에도 북한의 도발은 대개 권력 주변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등도 북한 군부의 충성 경쟁이 배경에 깔려 있다.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 2명을 전격적으로 풀어 주며 오바마 행정부에 어설픈 유화 제스처까지 취했던 북한 당국으로서는 유엔 인권결의안 채택과 함께 자신들의 ‘노력’이 허사로 끝난 지금 상황이 ‘반동적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인 것이다.
국방위는 “유엔은 20여년 전 우리 공화국이 나라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정의의 핵선언 뇌성을 울렸던 때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상기시켰다.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북핵에 관한 한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이고 보면 당장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북이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핵실험 가능성을 접어둘 수만도 없다고 본다. 더욱 걱정인 것은 북한 군부의 과도한 충성 경쟁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평양의 핵심 권력층과 군부는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확실하게 내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대남 도발로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려 할 공산이 높은 환경인 것이다.
국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에 맞춰 군 당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북한인권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 이를 빌미로 한 북의 도발과 이에 따른 남북 간 무력충돌을 원천 봉쇄하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당국도 4년 전 연평도 포격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상황임을 직시해 그 어떤 허튼 도발도 삼가야 할 것이다.
■ 울진 원전 대타협
[서울신문 사설-20141124월] 울진 원전 대타협, 갈등 해소 典範 되길
정부와 경북 울진군 간 신한울원전(1∼4호기) 건설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지난 주말 보도된 것처럼 한국수력원자력이 울진 주민들이 원하는 자율형사립고와 의료원 건립 등에 28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다. 그 대신 울진군은 건설 중인 신한울원전 1∼2호기는 물론 앞으로 3∼4호기 건설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간 각종 국책사업이 지역민을 포함한 이해집단 간 갈등으로 번번이 벽에 부딪혔던 게 현실이다. 모쪼록 이번 합의가 ‘대한민국=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전범(典範)으로 정착되길 바란다.
한수원과 울진군은 지난 21일 ‘신한울원전 건설 관련 8개 대안사업 합의서’에 서명했다. 1999년 신한울원전 부지로 울진군이 지정된 지 무려 15년 만의 대타협이다. 국책사업들은 보통 인구밀도가 낮은 벽지에 입지하는 반면 이로 인한 혜택은 대개 대도시 거주자들이 누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국가 전체로 봤을 때는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지역민들이 극심하게 반발하는 게 상례였다.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 보듯 혐오성 시설이 자리 잡게 되는 지역에서 일종의 님비(Not in my back yard: ‘내집 마당에는 안 돼’) 현상이 만연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지역민들이 안전 사고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란 리스크를 안게 되는 원전 입지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원전을 수용한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과 혜택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합의는 ‘윈윈 모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정부·한수원이 관동팔경대교 건설과 지방 상수도 확장 등을 포함해 당초 방침을 뛰어넘어 통 큰 지원을 결심했고 울진군도 막무가내로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일은 자제한 덕분이다.
물론 주민 설득을 통해 원전을 무작정 늘리자는 주장도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 리스크나 사용 후 연료 처리 비용까지 감안하면 원전은 반드시 저렴한 에너지라고 보기도 어렵다. 까닭에 중장기적으론 원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다만 신재생에너지가 비용 대비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현시점에서는 이번 합의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원전에 부정적인 여론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자체들이 눈여겨볼 만한 사례임은 틀림없다. 2011년 원전 입지가 결정됐으나 지난달 주민투표에서 부정적 여론을 확인한 강원 삼척이나 경북 영덕도 ‘울진 모델’을 벤치마킹할 만하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24월] 원전 반대세력 뿌리친 울진군민의 결정을 환영한다
경북 울진군에 140만㎾급 원자력발전소 두 기를 추가 건설하는 신한울원전 협상이 15년 만에 지난 주말 타결됐다. 울진군이 기존 1, 2호기와 더불어 신한울 3, 4호기 건설에 적극 협조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울진군이 추진하는 8개 대안사업에 28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 합의의 골자다. 서명식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 말대로 ‘상생 발전의 새 이정표’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2년 전에 원전 예정지역으로 지정한 강원 삼척이 불법적인 주민투표를 거쳐 ‘원전 불가’를 선언한 게 바로 한 달 전이다.
한국의 반원전 운동은 악명이 높다. 이들이 개입하는 바람에 방폐장 부지 선정에 10년을 허비했고 1단계 공사에 9년이 걸렸다. 삼척도 그렇다. 이런 세력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대승적 결단을 내려준 울진 주민들에게 먼저 경의를 표한다. 에너지 전부를 사실상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원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정부도 올초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현재 26%인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29%로 올리기로 목표를 정해놓고 있다. 이를 위해 700만㎾ 규모를 더 건설해야 하는데 이번 타결로 사업에 속도가 붙는 셈이다.
사실 원전에 대한 반대가 커진 것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발생한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계기였다. 그러나 이런 일본조차도 당시 사고는 원전 자체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일본은 더 나아가 최근 가고시마현 센다이 원전 1, 2호기를 내년 초부터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원전 비중을 높여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 많다. 현안으로는 2012년 11월 설계수명(30년) 만료로 가동을 중단한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여부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또 정부가 경북 영덕에 150만㎾급 2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확정(본지 22일자 1면 보도)한 만큼 주민들과의 협상도 시작해야 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을 마련하는 것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정부는 소신을 갖고 설득에 나서라.
■ 중국 위안貨 금리 인하
[한국일보 사설-20141124월] 위안貨도 약세 드라이브, 한국경제 '사면초가'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주말 위안화 대출ㆍ예금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예금 기준금리를 3.0%에서 0.25%포인트 인하했고, 1년 만기 대출 기준금리는 6%에서 0.4%포인트 낮췄다. 중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2012년 7월 이후 2년4개월여 만이다. 중국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은 성장률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시장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다. 중국의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은 7.3%로 2009년 1분기(6.6%) 이후 5년6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1~3분기 전체성장률은 7.4%로 올해 목표 7.5% 달성이 어렵게 됐다. 특히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 정도를 점하는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데다 제조업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구조개혁과 함께 질적인 성장을 강조해왔던 중국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는 경제 정책을 다시 경기부양 쪽으로 선회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에 이어 최근 유럽연합(EU)마저 양적완화를 선택하자 중국이 급격히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경기하락 압박이 이어지는데다 중소기업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어 금리인하 조치를 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단 금리인하 효과가 가시화하면 중국 경기는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 기업들은 이자부담을 줄이면서 기력을 회복할 수 있고,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면 중국 제품의 경쟁력이 올라간다. 그만큼 우리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고 우리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경기회복세를 띠면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선 반면, 일본과 EU의 양적완화에 이어 중국마저 금리인하를 통해 자국 화폐의 가치하락을 유발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방향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을 ‘멈춤(STOP)’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내년도 우리 경제에 나타날 특징을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에 낌(Sandwich) ▦산업경기 회복력의 급락(Traffic jam) ▦철강ㆍ유화 등 중국발 공급과잉 직면(Oversupply)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drop in Price competitiveness)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이 구조적 불황에 가까워지고 성장에 한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중국의 금리인하 조치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강대국들의 통화전쟁 틈바구니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24월] 중국 전격 금리인하, '글로벌 D의 함정' 대비해야
중국 인민은행이 2년4개월 만에 1년 만기 예금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2.75%, 1년 만기 대출금리를 0.40%포인트 내린 5.60%로 조정했다. 전격적 금리인하에 대해 "리커창 총리가 경기둔화에 굴복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제대로 된 결정'이라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요국 증시의 반등과 국제유가 상승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리 총리는 연초 이후 줄곧 미니 경기부양을 고집해왔다. 중소기업 등에 선택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요 도시에서 부동산 가격이 속락하고 은행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자금난을 겪는 등 부양대책은 한계를 보였다. 이 여파로 중국의 올해 1·4~3·4분기 전체 경제성장률이 7.4%에 그쳐 목표인 7.5% 성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마저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인하를 결정함에 따라 일본,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경제축들이 모두 통화완화정책에 돌입하게 됐다. 이미 지난달 31일 자산과 국채 매입규모를 80조엔으로 늘린 일본은행에 이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도 유로존 경제회복을 위해 1조유로 상당의 국채 매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모든 국가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통화 확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대외경제 환경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는 내부적으로는 지지부진한 소비와 투자를 살려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응해야 하는 '이중의 전선(戰線)'에서 모두 이겨야만 그나마 정상 궤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가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범죄가 아닌 이상 무엇이든 해야 할 시점"이라는 한 전직 관료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1041124월] 임대시장 구조개혁 핵심은 임대금융 활성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택 임대시장 구조개혁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잇단 전ㆍ월세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셋값 고공행진에 따른 전세난이 계속되자 ‘외과 수술’을 시도하겠다는 얘기다. 최 부총리는 지난 주말 주요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전세에서 월세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해 민간 임대시장을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는 임대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반영해 다음달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간 임대업 육성이 전세난을 잠재울 정답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다.
임대시장 구조개혁의 골자는 자본력이 있는 민간이 적극적으로 주택임대사업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전세든 월세든,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셋집 품귀현상은 물론 가격앙등까지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구체적 방안에는 기업형 임대사업 육성을 겨냥한 적정수익 보장방안을 중심으로 규제완화, 세제, 금융지원책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론 지난해 8월 이미 발표된 민간 임대사업자 주택구입자금 대출금리 인하에 이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임대 리츠업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 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차원에서도 민간 임대업 육성책이 잘못된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이 전세난을 해소하는 필요충분대책이 될 것이냐는 점이다. 알다시피 지금의 전세난은 전ㆍ월세 공급물량 부족과 함께 주택 임대비용의 급등이라는 이중고로 나타나고 있다. 민간 임대업 육성으로 전ㆍ월세 공급물량이 늘어난다 해도 이미 과거에 비해 연간 2~3배 수준으로 급등한 임대비용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기는 어렵다. 따라서 공급확대와 함께, 급격한 임대비용 상승이라는 충격파를 맞은 서민가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책도 시급히 확대돼야 한다.
저금리와 주택가격 안정에 따라 주택임대 형태의 대세가 전세에서 월세로 서서히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임대 형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데도 이를 방치한 데 이어, 주택보유 수익을 높여 오히려 비싼 월세 전환을 더욱 부추기는 정책적 우(愚)를 범했다. 그 결과 무주택자들은 빚을 내 집을 사지 않는 한, 고스란히 3~4배나 뛴 전ㆍ월세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정부는 전ㆍ월세 가격급등 대책으로 부분적인 전ㆍ월세 비용 대출금리 인하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임기응변으로는 800만 전ㆍ월세 가구의 안정적 주거를 지원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따른 피해 구제 차원에서라도 차제에 전ㆍ월세 가구에 장기모기지론에 걸맞은 수준의 저금리 임대비용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반적인 주택임대금융 지원책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124월] ‘이희호 방북’과 ‘나진 경협’, 남북관계 전환 계기로
남북이 여러 사안을 두고 대치하는 가운데서도 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남북 당국이 이들 계기를 잘 살려 새로운 남북 관계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의 방북은 남북 당국의 대화 의지를 가늠해볼 좋은 기회다. 이씨는 육로로 평양으로 가 두 곳의 어린이집과 애육원을 방문하기로 지난 21일 남북 관계자 접촉에서 합의한 상태다. 방북이 이뤄지면 이씨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가능성도 적잖다. 남북 사이 대화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자연스런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북 당국은 이씨의 방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최대한 협력해야 할 것이다. 방북 시기를 아직 합의하지 못했으나 정세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이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 초를 넘기지 않는 게 좋겠다.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운송 사업은 남-북-러 경협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캔 유연탄 4만500톤(400만달러어치)이 철도로 하산을 거쳐 24일 북한 나진항으로 온 뒤 중국 국적의 배로 옮겨져 29일 밤 경북 포항에 도착하는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체는 북-러 합작사인 나선콘트란스이며, 정부는 앞으로 이 회사의 러시아 지분 절반 정도를 사들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 나라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새 경협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 프로젝트 참여를 두고 5·24 조처의 예외라고 말하는 데서 보듯이 5·24 조처는 이미 현실성을 잃고 있다.
지금 남북 관계는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 문제 등으로 고위급 접촉이 무산된 이후 남북 당국은 최근 북한 인권 문제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연평도 포격 4돌(23일)을 앞두고 각자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핵 문제를 풀기 위한 관련국들의 6자회담 재개 노력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교착된 한반도 정세가 더 굳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구도는 빨리 바뀌어야 하며 그만큼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은 최근 대러 관계 강화에 부쩍 공을 들인다. 김정은 체제에서 북-중 정상회담보다 북-러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남북 관계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음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124월] 글로벌 디플레 공포 … 정교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디플레이션에 우려가 확산되면서 각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이미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밝힌 데 이어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21일 2년4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여기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그간의 부양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양적완화 조치의 확대를 포함한 추가적인 인플레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세계 각국이 디플레 방어에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경제권이 모두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 등을 통한 통화 공급 확대에 나섬에 따라 자칫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통화전쟁이 벌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통화 공급 확대가 경쟁적인 화폐가치 하락(평가절하)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단 통화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나라가 이에 대응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추가 금리인하나 양적완화 조치를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거나 통화 공급을 지나치게 늘리면 환율 하락 효과는 있겠지만, 동시에 외화 유출의 위험도 커지게 된다. 대외경제환경이 요동칠수록 더욱 정교하게 거시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하는 이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주요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으나 돈이 용처를 찾지 못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생기고 있다”면서 “금융·노동·교육 분야의 개혁을 통해 돈이 돌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돈맥경화’를 막기 위해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길게 보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작금의 경기침체와 디플레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다소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여건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활로를 찾을 것인지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내놓을 때다. 단기 부양책과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 사이의 연관성도 높여야 한다. 경제평론가처럼 당위론을 설파할 게 아니라 실제로 결과를 낼 수 있는 정교한 정책 구상을 밝히라는 이야기다.
[경향신문 사설-20141124월] “41조원 풀어 선거에 재미 좀 봤다”는 최 부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구설수에 휘말렸다. 지난 20일 열린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연수 행사에 참석해 한 인사말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41조원 규모의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7·30) 재·보궐 때 (이걸로) 재미 좀 봤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회복세가 만족스럽지 못해 정부가 앞장서서 지출을 늘려 경제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최 부총리 말은 불신과 오해를 살 소지가 다분하다. 경제정책 사령탑인 그의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경제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는 정통관료가 아닌 친박 실세 정치인 출신이다. 자칫 청와대나 정치권과 연결돼 뜻하지 않은 논란을 부르기 십상인 자리다. 그만큼 평소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당일 행사의 성격상 최 부총리가 ‘친정 식구’를 모아놓고 자기 자랑 삼아 선거 얘기를 덧붙여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적절치 못한 얘기다. 야당이 “선거 개입을 자인한 꼴”이라며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줬다”고 공박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 돌아가는 경제 사정을 봐도 최 부총리의 자화자찬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부총리 취임 후 쏟아낸 각종 경기부양책은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게 현실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마저 손을 댔지만 결과는 어떤가. 거래 활성화는커녕 전세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꼴이다. 내수 불씨를 살리겠다며 동원한 금리 인하와 마구잡이식 재정 확장정책은 가계부채와 나라 곳간 사정을 옭아매고 있다. 당장 올해만 10조원 넘는 재정적자를 메워야 할 판인데 내놓을 게 없어 빚잔치를 자랑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최 부총리는 취임 후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맞는 얘기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경제주체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경제 심리는 신뢰를 먹고 자란다. 내수 진작을 위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파급력이 큰 경제수장의 말 한마디가 보다 진중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 확대가 선거용이라는 의심을 자초한 최 부총리의 말은 그래서 더 유감스럽다. 최 부총리는 ‘집토끼’ 몇마리가 중요할지 몰라도 국민들에게는 시장의 밥그릇을 통째 걷어찬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41124월] ‘상시적 휴대전화 감청’ 통비법 개정 안된다
새누리당이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을 매우 용이하게 하는 관련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2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통신업체에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고, 이를 어기면 1년에 20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헌법의 기본권과 ‘사생활 보호’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악법이다. 각 통신사에 감청장비가 설치되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 도·감청이 광범위하게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 휴대전화 등 모든 통신의 감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장을 받아도 휴대전화 감청설비가 없어 중대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설령 그 주장의 타당성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불법 도·감청을 원천 차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청장비 설치’는 국민 기본권을 유린하는 재앙이 될 소지가 크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전 국민을 상대로 언제든 휴대전화를 엿들을 수 있게 된다. 법원이 영장 심사를 한다고 해도, 법이 허용하는 감청 대상이 워낙 많은 데다 특정인 사찰을 목적으로 ‘끼워넣기 감청’을 영장에 포함시켜도 막을 방법이 없다.
대규모 ‘사이버 망명’ 사태를 야기한 ‘카톡 사찰’에서 보듯, 지금도 갖은 도·감청과 사찰이 수사기관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자체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보유했던 국정원이 이를 폐기한 것도 다름아닌 불법 도·감청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는 감청설비를 의무화할 통신사업자의 범위는 “시행령에서 정하겠다”고 한다. 시행령을 통해 네이버·다음카카오 등 인터넷기업의 통신서비스까지 감청설비 의무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국민의 사생활, 통신비밀이 ‘빅 브러더’ 국정원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정안은 지난 17,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됐던 법안과 유사하다. 당시에도 기본권과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게 일어 폐기됐다. 정치개입과 간첩증거 조작, ‘카톡 사찰’ 등 수사기관의 헌정농단과 기본권 침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시적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된다. 지금은 ‘감청수사 강화’가 아니라 국정원과 검찰 등의 ‘제자리 찾기’가 먼저다. 새누리당은 감청장비 설치 의무화를 다룬 통비법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24월] 현대차 '생산공정' 파괴한 판결, 그리고 이 소동
현대차 사내 부품 협력사에서 일하는 파견 근로자도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지난 9월 법원 판결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정규직 시비를 피하기 위해 울산 공장 내 200여개 부품 협력사들이 일제히 작업장과 근로자들을 현대차 공장 밖으로 이전해야 하는 일대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협력사들은 새로 공장을 세울 만한 부지도 마땅히 없고 부품 조달에도 큰 애로가 예상된다며 현 체제를 유지해줄 것을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도 협력사도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급기야 협력사들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사내 협력업체는 독자적인 경영권과 직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법원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때늦게 반발하고 있다. 실로 자동차 생산공정은 1만개의 부품이 순서에 따라 조립되는 과정이다. 1, 2, 3차의 단계별 부품 공급업체들이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여 있는 구조다.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부품 공급이 기민하고 원활하게 작동하는가에 있다. 각 단계의 부품 소요가 있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이를 제공하는 소위 적기공급(JIT)시스템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다.
부품업체들은 경직적인 고용제도의 완충 역할도 하고 있다. 이 체제가 붕괴되면 조립라인의 경쟁력은 무너지고 현대차의 효율적인 생산시스템도 심각한 문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현대차는 바로 이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 공장에서 수십년 동안이나 생산 노하우를 구축해 왔다. 이 시스템이 잘 구비돼 있는가에 따라 자동차 회사의 시간당 생산능력과 편성 효율이 달라진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원이 고도화된 자동차 공장의 부품조달 체계를 비정규직 보호라는 간단한 명분으로 무너뜨리고 말았다. 물론 비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근무 형태를 직접 고용으로 전환해 근로자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에 이를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판사 개인의 희망사항이 판결로 둔갑하면서 지금 현대차 공장에 들어와 있던 200개 납품사들이 공장 밖에 따로 공장을 만들어야 하는 일대 소동에 빠져든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24월] TPP협상 참여 더는 실기하지 말라
한덕수 무역협회장이 지난주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주최한 미국의 차기 무역정책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한국의 조속한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한국이 TPP 협상 참여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고 미국 등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한 만큼, 참여국들을 위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 무역대표부와 상공회의소 대표까지 만나 이런 의사를 거듭 전달했다고 한다.
한국의 TPP 참여 의지를 부각하려는 한 회장의 활동은 여러 측면에서 시사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아태지역 영향력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미국 조야가 한국의 중국 밀착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한·중 FTA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이를 지지하거나 원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 회장이 미국 당국과 싱크탱크에 TPP 조기 가입 의사를 천명한 것은 물밑을 흐르는 다급성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정부와도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TPP 협상 참여는 불가피하다. 당장 실익이 적지 않다. 12개 협상 참여국이 사용하는 중간재 부품 중 한국산 비중이 5.1%나 된다. TPP가 발효되면 연간 1조원 정도의 생산 증가 효과가 생겨 10년 후엔 GDP가 최대 1.8%포인트 증가한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석이다. 물론 이미 체결한 각 FTA의 과실부터 챙기자는 신중론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TPP 협상 참여는 곧 일본과의 FTA 협상을 의미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과의 FTA도 마냥 늦출 수 없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농업 개방에 소극적이다. 한국은 이미 캐나다 등 농업 강국들과 FTA를 체결했다. 한·중 FTA는 대일 협상력에 좋은 지렛대다. 피할 수 없는 협상이라면 협상력이 높을 때 해야 한다.
TPP 협상은 미·일 간의 이견으로 내년에도 타결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는 1년 전에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다. 창설국과 후발국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협상에는 때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24월] 실속없는 GDP 대비 R&D 투자비중 세계 1위
우리나라가 지난해 59조여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고 한다. 세계 6위다. R&D 전담 연구원도 32만여명으로 6위권에 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4.15%로 2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실속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부가가치가 높은 원천·핵심기술 개발 실적이 저조한데다 잔챙이들마저 바로 사업화할 수 있을 정도로 완숙된 게 많지 않다. R&D 과제의 잠재력·부가가치보다는 목표달성 여부, 논문 게재를 중시한 탓에 재탕 삼탕 연구, '안전빵' 연구가 판을 친 결과다. 지난 5년간 정부 R&D에 74조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구원 보유특허의 활용률은 33.5%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술이전수입(843억원)이 연구비의 3.9%에 그쳐 R&D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1을 밑돈다.
낙후된 R&D 생산성은 혈세 낭비에 그치지 않고 특허권 사용료 등 기술무역수지 적자를 키운다.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간 기술무역적자는 57억달러를 넘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1,000달러어치를 수출하면 447달러가량이 해외로 빠져나가 부가가치 유출률이 미국·독일·일본 평균의 2배를 웃돈다.
정부 R&D 사업의 생산성 제고는 발등의 불이다. 정부도 성실실패인정제도를 도입하고 특정 기업이 특허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로 하는 등 기술이전·사업화 활성화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시설·하드웨어 투자비중을 낮추고 R&D 과제의 참신성·창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심사체계와 투자집행 방식을 전면 손질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 쓸모있는 연구 결과물이 쏟아져나오도록 과제선정 단계부터 기업 참여도 높이는 등 시스템 전반을 시장친화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시장을 잘 모르는 공무원과 연구자들에게 정부 R&D 사업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김회승(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20141124월] 국가 양육론
미국에서 결혼한 부부의 절반은 이혼하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40%는 미혼모 자녀다. 준 카본 미네소타대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결혼은 ‘지킬 수 없는 의무’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결혼이 자손을 낳고 교육하는 사회적 계약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정서적·경제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협상의 하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편차가 큰 결혼은 어느 한쪽의 ‘협상 실패’로 여겨진다. 결국 협상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결혼은 자신들이 지킬 수 없는 의무에 불과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혼 제도의 위기는 교육 문제와 직결돼 있다. 스웨덴 복지모델은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스웨덴 모델의 창업자 중 하나인 군나르 뮈르달의 초기 관심사 역시 저출산 대책이었다. 그는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야 한다’는 의제를 내걸고, 아동수당, 주택보조금, 무상급식 등 광범위한 교육복지 정책을 주창했다. 당시 우파는 피임과 낙태 규제 등 강압적 출산 장려책에 매달렸고, 좌파는 고용 경쟁 심화를 이유로 저출산 문제를 가벼이 여겼다. 뮈르달은 “교육복지는 질 높은 고숙련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적 투자”라며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뮈르달의 복지정책은 ‘빈곤이 빈곤을 낳는다’는 그의 학문적인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빈곤과 차별이 재생산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미국 흑인 사회를 관찰한 연구를 통해 경제적 지위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요인과 유기적으로 연관된다는 점(누적적 인과관계)을 입증하려 했다. 한 가정의 경제력 차이가 교육, 취업, 결혼 등 사회적 지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며, 이런 영향력이 강력한 재생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 복지 공약을 쏟아놓은 박근혜 정부가 요즘 돈이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능력 없이 친권만 주장하고 아이의 양육권은 나몰라라 하는 나쁜 부모가 떠오른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41124월] 산이 나를 깨웠다
한국의 시상식은 천편일률이다. 일편단심은 좋은데 천편일률은 왜 평가가 낮을까? 수상자들의 소감이 한결같아서다. 소신은 하나면 족하지만 소감은 다채로운 게 낫지 않나? 신에게 감사하고 가족에게 감사하고 스태프에게 감사하고 팬들에게 감사한다. 감사는 나쁘지 않다. 감사의 내용과 형식이 똑같은 게 아쉽다. 관객과 시청자는 여배우의 과감한 뒤태가 아니라 새로운 수상소감을 기대한다.
시상식이 끝나면 나는 별도의 시상식을 한다.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남긴 자들에게 따로 상을 준다. 호명도 안 하고 트로피도 안 주지만 나는 기억으로 보상한다. 사흘 전 제51회 대종상영화제를 보면서 두 명을 뽑았다. 수상소감이 인생을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시상식장에는 상 받은 자도 있지만 상처 받은 자들도 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가슴엔 서운함이 번지는 이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민식씨는 탈락한 후보자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그들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송강호씨는… 박해일씨는… 그리고 정우성씨, 강동원씨….” 그가 마련한 ‘새로운’ 수상소감이었다. ‘명량’의 장군답게 도량도 컸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유해진씨의 소감도 파격적이었다. 해적 출신 산적 ‘철봉’역으로 상을 받았는데 조연상만 두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는 ‘왕의 남자’로 수상했다. 영화에서 그는 왕도 아니고 왕의 남자도 아니었다. 광대 ‘육갑’역이었다. 그의 입이 수줍게 열렸다. “제가 외롭거나 힘들 때 저에게 위안을 준 국립공원….” 여기까지 듣고는 국립공원 관계자나 등산객이 나올 줄 알았다. 시청자의 부실한 상상력에 그는 ‘철봉’을 휘둘렀다. “국립공원 북한산에 감사드립니다.”
웃기려고 작정한 것일까. 그가 북한산 다람쥐에게 감사한다고 했으면 웃음은 나와도 여운은 작았을 것이다. 그는 산에 감사한다고 했다. (‘신’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아파트 반경 1㎞에 산을 두고도 못 본 체 지나던 내게 갑자기 산의 존재감이 엄습했다. 산은 구걸하거나 구애하지 않는다. 지치고 힘든 자들을 말없이 품어 준다. 그래서 산이다.
33년 방송기자 생활을 마친 구영회 선배가 산중일기를 보내 왔다. 정신이 번쩍 든다.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 사장 후보로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렸던 형이 이제는 지리산을 오르내린다. 뜻과 다르게 펼쳐지는 세상을 원망함 직한데도 형은 어느새 산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산의 품이 넓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41124월] 인터스텔라 열풍
시간여행의 비밀을 알아낸 천재 수학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연인이 과거에 외모를 크게 바꾸는 성형수술을 했으며 원래는 남자였는데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자가 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알아서는 안될 마지막 비밀까지 알아낸다. ‘그녀’는 바로 미래에서 온 자신이었다!
스티븐 스프륄의 소설 <야누스의 방정식>에서 보듯이 시간여행은 많은 논리적 역설을 안고 있다.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를 죽이면 내가 존재할 수 없게 되고(할아버지 역설), 과거의 나에게 타임머신 기술을 가르쳐 주게 되면 타임머신 기술의 원천이 없어진다(정보 역설). 내가 나의 아버지가 된다든가(성 역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현재를 바꾸어 버리는가 하면(빌커의 역설), 또 다른 나와 상면하는(자아 역설)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은 “시간여행을 금지하는 물리법칙이 있어야 한다”며 ‘연대기 보호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의 시간여행이나 항성 간 이동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이를테면 빨리 달리는 우주선 안에서 시간은 천천히 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수없이 증명됐고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러시아 우주인 아프데예프는 우주공간에서 748일 동안 머물러 0.02초가량 미래로 돌아왔다고 한다.
항성 간 이동과 시간여행 등을 소재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SF 팬이 그리 많지 않는 한국에서 유독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린다고 하니 놀랍다. 영화적 감동이나 완성도가 작용했을 법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항성 간 이동이나 시간여행 등을 공상이 아닌 과학의 영역으로 잘 포장한 것이 한몫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과학의 힘이다. 19세기 위대한 과학자로 불리는 사이먼 뉴컴은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새로운 금속이나 알려지지 않은 자연의 힘이 발견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유인비행의 불가능을 단언한 그의 논평이 지면에 실린 지 불과 1년 뒤인 1904년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았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김선태(논설위원)-20141124월] 소금 전매제
영어 표현 중에 ‘sit above the salt’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소금 위쪽에 앉다’로 상석에 앉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서양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소금이 워낙 귀해 귀족들의 커다란 식탁에도 한가운데만 달랑 소금통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귀중한 손님에게는 소금이 손에 닿는 가운데 쪽 자리를 권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금에서 먼 자리에 앉는 게 관례였다고 전해진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앙집권적 국가에서는 소금을 국가가 전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 제나라에서 이미 소금 전매제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렬왕 때 처음 도입했다. 전매의 대상은 소금에 국한하지 않았다. 국가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철, 술, 차(茶), 담배, 홍삼, 때로는 마약까지, 귀하고 돈이 될 만한 품목이라면 모두 포함됐다.
전매제도는 현대의 재정회계가 정착되기 전에는 국가가 돈을 조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시황의 통일 사업과 만리장성 축조, 한 무제의 영토 확장 등은 모두 소금과 철 전매 덕분이었다고 한다. 근대적 조세제도가 확립된 뒤에도 부족한 재정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종종 사용됐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나라의 담배, 홍삼 전매가 그런 사례다.
국가가 특정 물품을 독점 판매하는 전매제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기원전 81년, 중국 한나라 조정에서 벌어진 ‘염철론(鹽鐵論)’ 논쟁이 대표적이다. 한 무제가 시행한 소금, 철, 술 전매제를 그의 사후에도 지속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유가사상을 앞세운 젊은 학자들은 백성의 이익에 반한다며 철폐를 주장했다. 반면 고위 관리들은 부국강병의 법가사상을 내세워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국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간섭과 규제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급적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오늘의 논쟁과 많이 닮아 있다.
중국이 전통의 소금 전매제를 폐지한다는 소식이다. 전매 수입이 국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란다. 소금 전매를 담당하는 중국염업총공사는 재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2012년 7억2000만위안(약 1300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집권 후 그 전까지 국민당의 큰 수익원이던 식용소금 사업을 전매사업화했다. 어쨌든 소금 전매 폐지는 중국이 현대식 시장경제로 한발 더 다가섰음을 알리는 또 다른 시그널이 아닌가 싶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41124월] 비만경제학
스웨덴 소설가 레나 안데르손의 '덕 시티'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 '덕 시티'도 한때는 불쑥 튀어나온 배가 부(富)의 상징이었지만 체지방은 이제 공공의 적일 뿐이다. 한국인의 초고도비만 환자 비율 증가율이 최근 10여년 새 3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급속히 빨라지자 급기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비만관리 대책위원회'을 지난달 출범시켰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우량아 선발대회'까지 열며 통통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한국에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비만은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의 뿌리가 될 뿐 아니라 호흡기 합병증, 관절염 등을 유발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경제적 손실 또한 크다. 지난 20일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는 비만으로 인한 글로벌 비용을 연간 2조달러(약 2,230조원)로 추산했다. 알코올(1조4,000억달러)과 기후변화(1조달러)로 인한 비용을 훨씬 상회할 뿐 아니라 전세계가 전쟁·테러로 말미암아 지급하는 비용(2조1,000억달러)에 근접하는 막대한 비용이다.
더 큰 문제는 비만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인류의 비만 실태를 고발한 '강요된 비만'(프랑시스 들프슈 외)을 보면 가난한 나라일수록 비만 인구가 많다. 소득수준이 낮은 후진국 국민들이 값싸고 푸짐하며, 열량이 높은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이 가장 적은 계층의 초고도 비만율은 최상위 고소득층의 3.5배에 달한다.
이대로 간다면 현재 전세계 인구의 30%에 달하는 비만·과체중 인구 비중이 2030년엔 50%까지 늘어난다니 비만 퇴치를 서둘러야 한다. 그 일환으로 일찍이 미국과 프랑스는 정크푸드에 세금을 매기는 '비만세'를 도입했다. 과세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요즘 격론 중인 담뱃세는 물론 싱글세와도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한국 정부에서 비만세를 도입하려 한다면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겠지만.
'뉴스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11월 25일 신문 브리핑 (0) | 2014.11.25 |
---|---|
11월 25일 신문을 통해 알게된 이야기들 (0) | 2014.11.25 |
11월 24일 신문을 통해 알게된 사실들 (0) | 2014.11.24 |
2014년 11월 24일 신문 브리핑 (0) | 2014.11.24 |
11월 20일 신문을 통해 알게된 이야기들 (0) | 201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