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2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 김종인에 반발한 친노, 더민주 주인이 누군지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어제 김종인 대표 없이 회의를 열어 김 대표의 비례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했다. 또 비례대표를 당선 가능성에 따라 A, B, C그룹으로 구분한 데 대한 당 중앙위원회의 반발을 받아들여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의 명단을 추려냈다. 어제 종일 당무를 거부했던 김 대표는 비대위의 결정을 듣고 “14번 못 받는다”며 거부 의사를 밝혀 당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김 대표는 비례대표 칸막이가 당헌 위반이라는 전날 중앙위의 반발에 “자기들 정체성에 안 맞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자꾸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맞는 얘기다. 비례대표 갈등의 본질은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다. 비례대표 당선권에 친노(친노무현) 운동권 출신을 대거 공천했던 19대와 달리 이번에는 각계 전문가들을 포진시킨 것이 중앙위 시각에는 당 정체성을 해친 일로 보였을 것이다.
1월 말 더민주당에 입성한 김 대표가 지금까지 안보는 ‘우클릭’하고, 경제를 총선 화두로 삼는 한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한 골수 친노를 쳐냄으로써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총선 때까지만 문재인 전 대표를 대신하는 ‘바지사장’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전권을 갖고 있는데 그들(친노)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반면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반기를 든 중앙위는 기초단체장과 현역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당의 주류 세력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혁신 공천안’을 전폭 지지했던 범친노이기도 하다. 이들이 비례대표 명단에서 총선 이후 5월 전당대회에서 손잡고 당권투쟁에 나서야 할 자파 세력이 빠져 있자 칼을 빼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도 안이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 만일 김 대표가 처음부터 자신을 비례대표 14번 정도로 배정했어도 주류세력이 ‘때는 왔다’는 식으로 벌 떼처럼 달려들었을까. 사정(司正)의 칼을 휘두르는 자는 사심(私心)을 보여 약점을 잡히면 안 된다. 지역구 공천도 끝나고 새누리당 막장 공천으로 한숨을 돌리게 되자 그를 토사구팽(토死狗烹)하려는 친노 운동권 본색이 성급하게 드러난 셈이다.
어제 문 전 대표가 일부 비대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김 대표를 설득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은 이 당의 실질적 오너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준다. 비대위가 비례대표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을 추리는 과정에 문 전 대표 측이 간여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친노 운동권 세력을 비례대표의 이름으로 다시 더민주당에, 국회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더민주가 다시 과거 같은 친노 운동권 당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김종인의 ‘개혁’에 박수쳤던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2. 서울지하철 첫 노동이사 도입한 박원순 속뜻은 뭔가
내년 1월 출범할 서울지하철통합공사에 공기업 최초로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의 통합을 추진 중인 노사정대표단은 이사회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를 조례와 정관에 명시하기로 잠정합의했다. 두 공사 노조가 25∼29일 투표에서 승인하면 31일 노사정대표단이 노동이사의 수와 경영협의회 구성을 확정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지하철의 막대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작년 말부터 통합에 착수했다. 두 공사는 당시 총 4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누적부채도 4조6000억 원에 이른다. 노후시설 교체 자금 1조6000억 원을 조달할 방안도 없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이미 노조에 “인위적으로 인력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노동이사제 도입도 보장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이사제를 저성과자 해고 등을 막는 수단으로 홍보한다. 이래서야 서울지하철의 방만 경영을 수술하고 적자폭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일부 도입됐다. 노조 대표가 아니라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해 감시 기능에 집중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의사결정만 더디게 하고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한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박 시장이 얼마나 신중한 검토 끝에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우리 지하철 노조는 1987년 노조 결성 이후 거의 해마다 빠짐없이 분규와 파업을 일삼았다. ‘통합 공룡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시민의 발이 묶일 우려가 크다.
조합원이 노동이사가 될 수 있는지는 노동조합법과 충돌 가능성이 있어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한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유럽과 한국은 노조 운영시스템이 다르다”며 부정적이다. 진보좌파 계열에서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 시장은 노동이사제를 산하 19개 공기업으로 확산하려고 한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을 이용해 노동계의 우군을 확보하려는 ‘대권 프로젝트’라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 박 시장은 당당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3. 88년 만의 美대통령 쿠바 방문, 北 김정은 보고 있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국빈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禁輸) 조치 해제 등 2014년 국교 정상화 선언 이후의 양국 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 미 대사관에서의 연설에서 “쿠바 국민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라고 말했듯이 이번 방문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과 비교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주 대륙의 유일한 고립 국가였던 쿠바가 당장 정치적 개혁을 하지는 않는다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은 쿠바에 개혁 개방의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 분명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카스트로 독재 정권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는 더 이상 미국의 목적이 아니라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문 마지막 날인 22일 쿠바 국민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쿠바의 미래는 쿠바 국민에게 달려 있고, 이를 위해 인권과 자유 확대가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이란 베트남 미얀마에 개입해 ‘게임 체인저’로 역할을 한 미국이 쿠바와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두고 중국과 북한이 물밑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며 교감하는 움직임도 감지되는 상황이다. 김정은 집단이 대화 테이블로 나온다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북-미 수교를 고려하는 단계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물론 핵 위협을 계속하는 북한은 핵이 없는 쿠바와 다르다. 미국과 쿠바는 소규모 무역거래도 하고 있고 미국에는 쿠바계 이민자 180만 명이 거주한다. 북한의 형제국을 자처하는 쿠바마저 안보가 아니라 경제, 고립이 아닌 개방을 택한 엄중한 현실을 북의 김정은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한반도 문제 해결은 미국도, 북한도 아닌 한국이 주도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쿠바 사례를 주시하면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교한 전략과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이데일리]
4. 집토끼 다 몰아내고 선거 치를텐가
4·13 총선에 즈음한 여야의 ‘막가파’ 공천 놀음에 유권자들이 기존의 지지 정당을 대거 이탈할 조짐이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새누리당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마구잡이 친박(親朴)계 밀어주기로 ‘사천’(私薦), ‘박천’(朴薦) 등의 신조어를 양산하느라 전통적 지지층조차 상당수가 당을 등지는 것도 모르는 듯한 눈치다.
새누리당의 경우 무엇보다 이한구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장의 독선이 문제다. 비박(非朴)계를 무더기로 탈락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원내대표까지 지낸 3선의 유승민 의원에게 ‘정체성’을 들이대며 자진 탈당으로 몰아가는 고압적 태도에 대한 반발이 여간 거세지 않다. 그런데도 당 일각에선 “며칠만 더 끌면 무소속 출마마저 어렵다”는 해명까지 곁들이며 해당 지역구를 무공천으로 방치하자는 황당한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집권당의 ‘공천 학살’은 원칙도 없고 정의도 사라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제19대 국회 출석률 상위 10명 가운데 4명을 다음 국회에서 볼 수 없게 된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윤두현 전 홍보수석을 비롯한 친박계가 새누리당 표밭에서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줄줄이 고배를 든 것도 여간 쑥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면 더 문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낙천자들의 탈당 사태에 이어 전통적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이 유 의원을 낙천시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응답이 10명 중 3명꼴에 이른 여론조사도 있다. 물론 의석을 내주든 말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새누리당이 책임질 문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내홍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도 사정은 오십보백보다. 유권자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집토끼 다 놓친 다음에 산토끼 잡겠다고 부산떨어 봐야 부질없는 일이다. 국민을 우습게 알고 대한민국을 정치 후진국으로 주저앉히는 공천 장난질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무엇이 진짜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 이뤄지는 공천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인지부터 따져보길 바란다.
5. KF-X 사업, 벌써 '호갱' 신세가 되었는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사업이 시작부터 꼬이는 모습이다. 전투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을 놓고 외국의 방위산업체들이 핵심기술 이전 약속을 번복하는가 하면 일부 업체는 최신형 엔진이 아닌 구닥다리 제품을 제안하는 얌체짓을 벌이고 있다. 지금껏 우리가 방위산업 거래에서 국제적으로 얼마나 호구를 잡혔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만하다.
KF-X 개발 주관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차세대 전투기에 적용할 엔진 사업에 유럽업체 유로제트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들 업체들이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제트는 당초 한국에 핵심기술을 모두 이전할 것처럼 홍보하다가 입찰 제안서에는 기술이전 비중을 60% 정도로 낮춰 써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GE도 전투기 엔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최신 세라믹복합소재(CMC) 기술을 개발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KF-X 엔진으로는 1990년에 개발된 구형 엔진을 제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응찰업체들이 당초 약속과는 달리 제멋대로 꼼수를 부린다면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KF-X는 총 사업비로 17조원에 달하는 혈세를 쏟아붓는 중차대한 방위산업이다. 개발 일정이 길게 잡혀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16년 뒤인 2032년에야 전투기가 공군에 배치될 예정이다. 따라서 응찰업체가 핵심기술 이전에 미온적이거나 이미 퇴물 상태에 이른 구닥다리 엔진을 장착해서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 GE의 제안처럼 1990년 개발된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면 40년이 훨씬 지난 엔진을 장착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고도 ‘차세대 전투기’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정작 필요한 첨단기술을 제대로 이전받지 못한다면 국제 무기시장에서 ‘호갱’ 이라는 놀림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세계 무기시장은 지역분쟁 감소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무기 수출국은 수입국에 금융과 기술지원을 하는 등 판로 확대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한국에 엉터리로 무기를 팔아먹으려 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방위사업청은 유로제트나 GE로부터 명확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서울신문]
6. 비판 여론 듣고야 비례 후보·순서 바꾼 野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과 14번을 남겨두고 김대표의 판단에 맡기는 선에서 봉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천 갈등으로 어제 당무를 거부한 김 대표가 14번으로 조정한 비대위안을 거부해 중앙위의 중재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표면적인 당내 갈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 대표가 자신을 2번으로 셀프 공천한 것이고, 또 하나는 비례대표 순번은 중앙위에서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비대위가 3등급으로 나눠 칸막이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자체 공천과 부적절한 후보 공천에 모아졌다.
김 대표는 당 안팎의 여론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셀프 공천이라는 비판을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였다. 비례대표 순번 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도 코드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김 대표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셀프 공천과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비판까지도 무시하는 것은 국민 정서를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었다. 또한 아무리 비대위가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당헌이 정한 절차를 어기는 것은 당원과 유권자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나마 비대위가 김 대표의 순위를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14번으로 돌리고 비위 혐의가 있는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을 후보에서 제외해 여론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다행스럽다. 또한 당헌을 수용해 비대위에서 순번을 정하는 것을 3명정도로 최소화하고 나머지 순번은 중앙위의 투표로 정하기로 한 것도 정상적인 절차에 복귀한 것이다.
더민주의 비례대표 공천에 비난이 쏟아진 것은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개혁 노선에 박수를 보낸 국민과 당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2순위로 올린 셀프 공천은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감만 안겼다. 비대위가 뒤늦게 셀프 공천 등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은 잘했지만 여전히 김대표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데다 더민주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논문 표절 시비가 있는 박경미 후보를 1번으로 그대로 둔 것도 그렇다.
특히 여러 이익단체 중에서 서울시의사협회장인 김숙희 후보를 공천한 것은 쉬 동의하기 어렵다. 의료계에는 원격진료 등 민감한 현안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계의 한 축인 의사협회의 대표를 공천한 것은 야당의 정체성이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한의사협회나 간호사협회 등 보건의료단체들의 반발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것도 그런 이유로 보인다. 야당으로서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대변하며 정부 정책을 견제할 사람을 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7. 與, ‘진박’ 후보 역풍으로 드러난 민심 읽어야
새누리당의 총선 경선에서 ‘박심’(朴心), ‘진박(眞朴) 마케팅’이 외려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주말과 어제 발표된 새누리당 지역구 여론조사 경선 결과 친박계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그것도 새누리당 텃밭인 서울 강남과 대구·경북에서 ’진박’ 후보들이 맥을 못 춘 것이어서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청와대와 내각 등에서 일한 이들이 빨간 점퍼를 입고 한자리에서 사진까지 찍으며 대통령이 선택한 ‘진실한 사람’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민심은 이들을 덮어 놓고 찍어 주지는 않았다. 친박들은 비박을 솎아 낼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서울 서초갑에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유승민 의원 측근인 이혜훈 전 의원에게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서초을에서도 친박 현역인 강석훈 의원이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에게 패하는 이변이 속출했다. 친박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도 중·성동을에서 지상욱 후보에게 패했다. 이들 지역에서 친박의 고전은 수도권 민심의 풍향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픈 대목이다.
특히 친박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친박 성적표도 시원찮다. 친박이라고 다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윤두현(대구 서구)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은 경선에서 유승민계와 김무성계 현역 의원들에게 밀렸다. 정치 신인으로 현역 의원보다 불리한 점이 작용했겠지만 과거처럼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이라고 무턱대고 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의원이 경북 상주·군위·청송·의성에서 김종태 의원에게 진 것도 인구가 많은 상주 출신인 김종태 의원이 유리한 지역구도임을 고려해도 친박 책사로 불리던 김재원 의원의 고배는 친박 내에서조차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권의 지지 기반에서 ‘진박’ 후보들이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 공천 과정에서 보여 준 친박계의 ‘무소불위’ 행태 때문이다. 사실 공천권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간의 공천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총선마다 되풀이된 정치권의 고질병이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그래도 과거 주류, 비주류 간의 갈등이 비교적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고 어느 정도 정치 명분과 원칙, 기준을 갖고 양측 간의 조율 끝에 공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드러내 놓고 싸우면서 ‘배신자’와 ‘진실한 사람’ 가려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또 공천의 마지막 칼날은 당 정체성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유승민 찍어 내기’에 있다는 점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친박들을 외면한 경선 결과를 여권 지도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야당심판론’을 외친 여권이 야당을 심판하기도 전에 먼저 국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승민 의원 공천과 비례대표 의원 공천도 민심에 역행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자명하다. 깊은 자성으로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참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때 180석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과반은커녕 여차하면 ‘여소야대’까지 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8. 北, 오바마의 역사적 쿠바 방문에서 느끼는 게 없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 땅을 밟았다. 1928년 1월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첫 쿠바 국빈 방문이다. 역대 두 번째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흘간의 방문 중 첫 일정인 미국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 자리에서 “역사적인 방문이자 역사적인 기회”라고 밝혔다. 미국 측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1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쿠바는 지금껏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남아 있던 냉전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따라서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역사로 충분히 기록될 만하다. 미국과 쿠바의 새로운 출발이자 도전인 까닭에 환영하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1972년 2월 닉슨 당시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에 견줄 만하다. ‘죽의 장막’에 둘러싸였던 중국이 개방으로 나아갈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은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가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지 1년 3개월 만에 이뤄졌다. 미국으로서는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고 쿠바 내 미국의 자산을 몰수하면서 1961년 단절했던 외교 관계의 실질적인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밝힌 “북한·이란·쿠바 등 불량국가의 지도자들과도 만날 수 있다”는 공약의 실천인 것이다. 임기 마지막 해에 쌓은 또 하나의 외교 치적이다.
쿠바는 빗장을 풀었다. 중국이 장막을 거뒀듯 미국과의 경제 교류와 함께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따져 보면 이상보다 현실에 무게를 둔 실용주의 노선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1년부터 점진적으로 배급제를 축소하고 자영업을 확대하는 등 시장경제로의 부분적인 개혁·개방 조치를 취해 왔다. 쿠바의 경제성장과 활성화라는 새로운 바람의 세기를 지켜볼 만하다.
문제는 핵개발에 몰두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강력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잇단 도발로 대응하고 있다. 지구상에 개방을 거부하고 문을 닫은 곳은 북한뿐이다. 북한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쿠바가 결국 왜 문을 열고 개혁의 길을 선택했는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핵에 매달려 주민의 삶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친다면 언젠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9. 미래 일자리전쟁 승자 되려면 교육 확 바꿔야
'미래 직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면 향후 5년간 일자리 135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본지와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규제만 철폐해도 빅데이터, 스마트홈, 바이오 의약 등에서 일자리를 대거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소 뒤처져 있는 미래형 자동차, 드론, 지능형 로봇 등 ICT융합 제조부문은 특별법으로 육성할 경우 12만5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도 로봇과 인공지능 발달로 2020년까지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고 이전에 없던 일자리 200만개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5년간 510만개의 일자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청년실업 대란에 처한 우리에게 큰 충격이다.
과거 산업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렸듯 로봇과 인공지능 등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되는 국가는 새 일자리를 대거 챙길 수 있는 반면 낙오하면 다른 국가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알파고 쇼크'는 4차 산업혁명의 서막에 불과하다. 미국, 영국 등은 승기를 잡기 위해 AI, 로봇 등에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 있다. 이들 국가와 경쟁하려면 먼저 규제를 걷어내 기업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드론산업이 중국에 뒤처진 것만 해도 가시거리, 무게, 조종 자격증 등 각종 규제로 옥좼기 때문이다.
알파고 시대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육내용과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교육개혁이다. WEF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의 65%가 현재 존재하는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론 조종사, 에코 컨설턴트, 디지털 장의사 등 새로운 일을 하며 살게 된다는 얘기다. 정해진 답만 달달 외우고, 국영수만 들고파는 현재의 교육으로는 인공지능 시대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게 하려면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고력 훈련이 필요하다. 5세부터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영국처럼 우리도 국영수에서 벗어나 코딩에 비중을 둬야 한다. 또한 결국 인공지능, 로봇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은 인간인 만큼 과학기술이 미래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면 윤리 교육, 인성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10. 노동개혁 4대 실천과제, 임금·단체협상 반영하길
올해 정년 60세 시대 개막과 더불어 임금·단체협상이 곧 시작될 예정인데 어느 때보다 험난한 협상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6% 임금 인상안을 내놓았으나 올해는 국내외 경영여건 악화와 정년 60세 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아예 임금동결을 회원사에 권고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보다 높아진 7.9%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 간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여기에 노동개혁 법안들은 국회에 계류된 채 한 발짝도 진전이 없고 4월 총선이 치러지는 과정에서 노동시장 개혁방향을 둘러싼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가 20일 이런 개혁의 정체 상태에서 현장실천 4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근로소득 상위 10%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한 청년고용 확대,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 공정한 인사관리 확산, 청년·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제들은 정년 60세 연장과정에서 법률에 추진원칙이 명시됐거나 노사정 합의에 그 기본방향이 반영됐던 내용들이다. 이제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후 최고치인 12.5%까지 치솟은 상태에서 노사 상생은 물론 노노 상생을 위해서도 긴요한 일들이다.
올해 정년 60세가 적용되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에서도 80%는 아직 능력·성과와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이들 기업 중 27.2%에 그치고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하면 도입률은 12.1%에 불과하다. 그 결과 근로자 상위 10% 임금수준이 하위 10%와 비교하면 4.6배에 이르는 상황이다. 고소득층 임금인상 자제와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자 간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경영계는 열정페이라는 미명 아래 청년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노동계도 부당한 해고·징계를 막기 위해 감시·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자리를 유지·확대하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에는 전향적인 자세로 협조해야 한다.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조선·해운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일수록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가 더 적극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물밥(水飯)
효종 5년(1654년) 2월 10일, 정언 이상진이 영의정 정태화와 병조판서 원두표를 탄핵한다. 병조판서가 술상과 기생, 음악을 준비하여 상급자인 영의정의 집에서 한바탕 놀았다는 것이다. 상소문 중에 세종대왕 당시 영의정 황희와 호조판서 김종서의 ‘물에 만 밥’, 수반(水飯) 접대가 등장한다. 김종서가 황희에게 물에 만 밥을 준비하여 접대(?)하려 했더니, 황희가 김종서를 뜰아래 세워놓고 “아첨하려 한다”고 꾸짖었다는 내용이다.
‘수반’은 밥상 차리기 귀찮을 때, 밥 먹기 번거로울 때 후루룩 먹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밥’은 정식식사는 아니다. 간편식이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반은 때로는 정치적인 음식이다. 성종 1년(1470년) 5월 29일 ‘조선왕조실록’에 수반이 나타난다. 성종이 “가뭄이 심하니 낮수라를 수반으로만 올리라”고 명한 내용이다. 조선왕조 때에는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을 경우 국왕이 음식을 줄였다. 이틀 후인 6월 1일 원로대신들이 수반을 멈출 것을 청한다. 내용이 상당히 길다. “근래 가뭄으로 인하여 감선(減膳)한 지가 오래되었다. 낮에 또 수반을 올리게 하시니 예전에도 이렇게 한 적은 없었다.” 성종이 답한다. “세종대왕 때에는 풍년이라도 수반을 올리게 했다. 지금 수반을 먹는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노(老)대신들도 지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비위(脾胃)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된다. 보통 사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지존(至尊)이겠습니까?” 성종이 까칠하게 응답한다. “경(卿)의 말과 같다면 늘 건식(乾食·마른 음식)을 올려야 하겠는가?”
한 달 남짓 후인 7월 8일에도 또 수반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노대신과 승지가 “요즘 비가 흡족해서 곡식이 잘 익으니 식사를 제대로 하셔야 한다”고 아뢴다. 재미있는 것은 성종의 태도다. 끝까지 수반을 고집한다. “감선하는 것은 가뭄 때문이 아니다. 낮에 수반을 먹는 것은 더운 날씨 때문이다.”
성종은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왕위계승이었다. 왕은 어렸고 대신들은 노회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공이 큰 대신들도 많았다. 노대신들이 국가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왕은 원상회의의 결과를 확인하는 역할만 맡았다. 성종의 즉위를 주도한 이들도 바로 원상들이었다. 게다가 수렴청정 체제였다. 어린 왕은 스트레스가 심했다. 입맛이 없으면 늘 수반을 찾았다. 성종의 수반은 정치적인 투정, 저항일 수도 있다. 한의사들은 성종이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속에 열이 많았고 따라서 수반, 물에 만 밥을 찾았다고 말한다.
광해군 역시 울화병으로 수반을 먹었던 경우다. 인조는 반정으로 실각한 광해군을 강화도로 보냈다. 인조 6년(1628년) 2월, 광해군에 대한 근황이다. “삼시 끼니에 물에 만 밥을 한두 숟가락 뜨는 데 불과할 뿐이고 기력이 쇠진하여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지경이다.” 물에 만 밥은 속이 타는 사람들이 먹었던 것이다.
인조 역시 몸이 아플 때 수반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조 9년(1631년) 1월의 ‘승정원일기’에는 인조가 인후염 등으로 고생하는 내용이 자주 나타난다. 30일에는 신하들의 낮 문안을 받고 “(몸 상태가) 아침과 같다. 수반을 조금 먹었다”고 말한다.
정조에게 수반은 효도의 상징이다. 수원 화성 언저리(지금의 화성시)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모셨던 정조는 묘에 다녀오던 날 시를 남겼다. ‘비석 뒤에서 수반을 먹고 더디 더디 출발한다’고. 아버지를 떠나기 아쉬워하는 아들의 효성이 엿보인다.
2. [동아일보][동아광장/권영민]‘부모 되기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보도된 ‘원영이 사건’을 보면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자신이 낳아 키우는 아이를 죽이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에 모두 걱정을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보호하고 잘 키워야 하는 부모들이 남모르게 어린 자녀를 학대하면서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5년 동안 아동 학대 사건이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 내용도 놀랍다. 특히 그 가해자가 대부분 부모였다는 사실을 함께 접하면서 피폐해가는 우리 사회와 허물어져 가는 가족 문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녀 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불화와 갈등이 언제나 첫째로 손꼽힌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들의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정서적 욕구 불만이나 알코올 중독 등이 자녀 학대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보다 먼저 따져보아야 할 근본 문제는 부모로서의 책무에 대한 무지(無知)와 방기(放棄)가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부모가 되어 자기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소중한 기쁨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어린아이가 잘 자라나도록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부모로서의 의무가 뒤따른다. 어린 생명이 자라서 올바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돌봐야 하는 것은 부모가 맡아야 하는 사회적 책임에 해당한다. 이 책임을 망각하면 아이는 아이대로 방치되어 문제아가 되고, 부모는 부모대로 고달픈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힘들고 올바른 부모 노릇 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부모가 되려는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이른바 ‘부모 되기 교육(parenting education)’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교육 과정은 이수자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 부부들은 대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 태아의 건강과 임산 과정에 대한 올바른 지식, 출산에 따른 법적 제도적 지원 절차, 유아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 따른 육아 지식, 아동의 질병과 건강 문제 등을 단계별로 강의한다.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내용에 따라 부모로서의 역할과 그 책무를 익혀 나간다. 그리고 단계별로 과정을 이수하면 일정한 점수를 취득한다.
여기서 얻은 점수를 가지고 유아에게 필요한 기저귀, 우유 등은 물론 각종 유아용품과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미국의 초보 부모들은 임신 초기부터 야간이나 주말에도 진행되는 이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을 키워야 하는 자기 책임을 깊이 깨닫고 사회적 유대감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부모의 책임과 역할을 가정 안에만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부모 되기’ 교육을 사회보육제도와 연계하여 정착시키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 안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혈육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모라는 지위는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준비가 없어도 아이를 갖게 되면 쉽게 얻는다.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그 책임도 알지 못하면서 엄마 아빠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되는 것의 의미와 사회적 책임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자기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모가 어찌 그 자녀를 건전하게 키울 수 있겠는가.
수반은 곤궁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 중기 문신 성이성은 1645년, 청나라 사행(使行)에 서장관으로 참석한다.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길, 사신단은 퍽 힘들었다. ‘새벽 5시에 길을 떠난다. 강가 벌판에서 아침을 먹었다. 병이 있어 며칠째 식사를 못하는 이들이 많다. 조기를 몇 마리 사서 수반을 차린다’는 내용이다.
3. [중앙일보][분수대] 20대를 놓아주자
한 명문 사립대학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다. 공대의 어느 교수 연구실 앞에서 학생과 엄마가 같이 무릎을 꿇고 있더란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싶어 슬쩍 그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단다. 답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문제가 있으니 성적을 고쳐달라”며 찾아온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자마자 엄마가 아들과 함께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무릎까지 꿇는 건 좀 도가 지나치지만 성적 고쳐달라고 찾아오는 ‘헬리콥터 맘’이나 ‘헬리콥터 대디’는 꽤 많다고 다른 교수들도 입을 모은다.
이 사연을 전해준 교수는 “오죽하면”이라며, 엄마가 딱하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이, 아니 ‘엄마주도학습’으로 커왔을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딱했다. 인생 진로를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수업의 성적 관리를 왜 진작에 제대로 안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0대를 훌쩍 넘긴 나이의 자식 대학 성적표를 보고 한걸음에 학교에 달려와 교수 앞에 무릎을 꿇는 엄마라니.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엿한 성인인 20대 자식을 마치 밥까지 떠먹여 주는 듯한 부모들의 과보호야말로 오히려 자기 자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뺏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20대 나이에 스스로 해야 할 최소한의 경험조차 이렇게 박탈하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원래 20대가 이렇게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나이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봤다. 그건 아닌 것 같다. 1968년 건축가 김수근(1931~86) 아래서 서울 여의도 개발을 주도한 팀의 평균연령이 27세였다. 팀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은 당시 25세에 불과했다. 물론 당시는 전후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드물었고, 그 덕분에 젊은 층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기도 했다. 다들 천재 소리 듣던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20대를 어른 대접 해줬고, 20대는 그 시대와 나이에 맞게 주어진 일을 훌륭히 해냈다. 그렇게 쌓은 경험으로 나이를 먹어 더 큰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간다. 취업난이다 뭐다 해서 사회에서 기회를 못 얻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집에서부터 지금이라도 20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부모들이 손을 놓아주는 게 우선이 아닐까.
4. [동아일보][횡설수설/송평인]프랑스 파리의 K북
2014년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정해졌을 때 일이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당시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장관은 카날플뤼스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모디아노의 소설 가운데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펠르랭 장관은 모디아노의 소설을 하나도 읽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장관으로 일한 지난 2년간 너무 바빠 독서를 못했다”고 말했다가 문화장관이란 사람이 책도 안 읽는다고 해서 오랫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에는 동네서점이 아직도 남아있다. 파리 15구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다. 그곳 콩방시옹 거리의 ‘르 디방(LeDivan)’이란 서점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서점 사서들이 신간을 직접 읽고 소감을 짧게 손으로 적은 쪽지를 신간에 꽂아놓는다는 사실이었다. 서양의 서점은 독서클럽으로 시작했다. 우리의 짧은 근대사에는 독서클럽이란 부분이 생략돼 있다. 그래서 서점을 책을 파는 곳으로만 여기지 책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는 곳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16 파리 도서전’이 17일부터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제 막을 내렸다. 공식 개막 전날인 16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전시장을 방문해 3시간 가까이 머물면서 작가, 출판인들과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마뉘엘 발스 총리도 찾았다. 주무장관인 오드레 아줄레 문화장관은 두 번이나 왔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대통령은커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영국 최고의 맨부커상 후보에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한강이 올랐다. 한강은 파리 도서전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한국 작가였다. 우리나라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읽어봤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미국 시사문예지 ‘뉴요커’가 올 1월 “한국인은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고 지적했을 때 정말 뜨끔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읽지 않으면 파리의 K북도 없고 세계의 K북도 없다.
5.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견디는 인간, 아름다운 존재
‘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고요한 존재이다.’ 18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말했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참된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라오콘 군상’을 보라 권했지요.
조각은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되었습니다. 인체를 다룬 미술이 사실성을 더하던 때였습니다. 생생한 표정과 격렬한 동작으로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답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조각은 한 사람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의 합작품이었지요. 이 조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06년이었어요.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되었거든요.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예술성이 뛰어났습니다.
조각 정중앙 인물이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숨은 목마의 트로이 성 진입은 위험하다.” 트로이의 미래를 위해 조언했지요. 이런 행동이 트로이 함락을 원했던 바다 신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너그러운 편은 아닙니다. 특히 신의 위엄에 도전한 인간에게 가혹했지요. 분노한 포세이돈은 라오콘과 두 아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렸습니다.
조각은 신의 저주를 사실적으로 전합니다. 동시에 이에 맞서는 인간의 정신력도 주목하게 합니다. 바다 독뱀의 공격에 라오콘 부자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참담한 순간이지만 절망의 흐느낌은 없습니다. 극한의 상황이지만 투혼은 계속됩니다. 이들이 지닌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 모습이 그리스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 인간을 닮았습니다. 고대인들은 고통을 견디고, 품격을 지키고,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을 으뜸으로 여겼지요. 그리스 미술의 정수로 평가되는 ‘라오콘 군상’이 실감나게 품은 것은 시대의 열망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인간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세기의 바둑 대국 소식에 인공지능과 겨룰 인간의 심적 부담감만 염려되었습니다. 우연히 네 번째 대국이 시작될 무렵 소위 ‘인간 대표’를 보았습니다. 세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을 잡는 침착함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실로 고요했습니다. ‘어쩌면 그리스 미술이 갈망했던 인간의 아름다움, 빙켈만이 말했던 존재의 고요함이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그날 밤 전해 들은 승전보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주인공인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이 현실 세계에도 고요해서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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