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국경제]
1. 중국발 국채 리스크에도 경각심 가져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한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는 소식(한경 3월18일자 A5면)이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중국이 보유한 한국 국채와 통화안정증권 등 상장 채권 규모는 모두 17조5090억원으로 미국(14조3900억원)을 3조원 이상 앞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국채 보유 규모는 2013년 12조5090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428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미국은 올 들어 공격적으로 채권을 매도, 2월 한 달간 3조6580억원어치를 팔며 보유 비중(14.9%)에서 처음으로 중국(18.1%)에 뒤졌다.
중국 경제의 불안상을 고려하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중국이 자국 사정으로 보유 국채를 갑자기 대량 매도하면 그 쇼크가 곧바로 한국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집중적인 채권 매도는 가격 하락과 전반적인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이기도 한 중국은 미국에조차 보유채권을 일시에 대량으로 팔 수 있다는 위협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마침 글로벌 채권 시장이 요동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한 달여간 상승세를 지속해온 글로벌 국채 수익률은 지난주 갑자기 하락세로 반전했다. 당분간 통화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미국 중앙은행(Fed) 발표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Fed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2회로 제안, 글로벌 채권 수익률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지난 주말 연 1.871%까지 떨어졌고,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연 0.839%를 기록하며 3월2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채 수익률도 급락했다. 10년물은 한때 연 -0.09%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 일본의 기준금리(연 -0.10%)보다 더 낮아졌다. 국내 국고채 수익률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중국의 돌발 상황이 한국 채권시장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중국발(發) 채권 리스크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2. 자기 집 찾아간 김종인·강봉균의 경우와…
4·13 총선 후보등록(24~25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선 유독 여야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 많아 눈길을 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핵심이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자신을 더민주의 비례 2번에 ‘셀프 배치’하고 선거대책위원장도 맡을 예정이다. 비례대표로만 5선째다. 이에 새누리당은 강봉균 전 민주당 의원을 선대위원장에 내정하고 비례 순번도 부여해 김 대표에 맞불을 놓을 태세다. 서로 반대진영으로 옮겨 총선을 지휘하게 됐다.
김종인과 강봉균의 사례를 보면 이제야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평가를 줄 수도 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고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영원히 못한다”는 지론을 가졌다. 김 대표가 새누리에 몸담았던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강 전 의원은 야당이면서도 선별적 복지와 성장 정책을 주장해왔다. 오히려 새누리쪽과 코드가 더 잘 맞는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옮겼을 것이다. ‘원조 진박(眞朴)’이라는 진영 의원이 더민주에 입당한 것도 자연스런 귀결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야당 주장대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를 반대했으면서 여태 새누리 당적을 유지한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새누리나 더민주의 공천을 받은 어떤 인물들은 여전히 그 당에 남아 있는 게 미스터리로 느껴진다. 당의 정강정책이나 이념보다 지역구도에 의한 당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대표발의하고, 법인세 인상도 주장하던 유승민 의원은 경제관에선 더민주에 훨씬 가깝다.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주도하며 당론과 반대입장에 섰던 김세연, 이혜훈 등이 새누리 공천을 고집한 것도 의아하다. 더민주의 김진표 전 의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여야 정당들은 수시로 당명을 바꾸고 당색(黨色)까지 정반대로 내걸면서 유권자를 현혹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각자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맞는 정당으로 옮겨가는 게 차라리 다행스럽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빌려 입고 국민을 기만하는 얄팍한 처세는 그만둬야 한다.
[서울신문]
3. 정치불신 키우는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진영(서울 용산) 의원이 어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앞서 더민주에서 컷오프된 정호준(서울 중·성동을) 의원 등은 국민의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야당 소속으로 적진인 부산에서 내리 3선한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올 초 일찌감치 새누리당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 더민주를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대표나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에 내정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각각 원래의 진영을 이탈해 새 꿈을 꾸고 있다. 각 당의 공천 배제 또는 경선 탈락 정치인들이 많아 ‘환승’ 행렬은 총선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의 오락가락 행보야 과거 총선에서도 익히 봐 왔던 터라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런 어지러운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이 국민들의 정치혐오, 정치불신 풍조를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어제까지 붉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하던 인사가 오늘은 갑자기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거나, 탈당파들을 비난하다가 갑자기 패권주의 타도를 외치는데 혼란스럽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한 석이 아쉽더라도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들까지 거두는 여야 3당은 지지자들의 뜻을 묻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원조 친박’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 의원은 더민주 입당변(辯)을 통해 “특정인 지시로 움직이는 파당”이라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정치, 서민을 위한 민생정치, 통합의 정치를 이룩하는 데 마지막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이 추구한 ‘초심의 정치’였다면 새누리당에서 3선을 하고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내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렇게 새누리당과 맞지 않았다면 왜 미리 결심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정당의 정체성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지지자들에 대한 약속이다. 아무리 정치가 최선이 아닌 차악이라고 하더라도 조변석개하며 국민을 우롱해선 안 되는 이유다. 사실상 보수정당 일색인 우리 정치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당적 이동이 무얼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각 당의 정강정책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인 복지정책 각론만 해도 더민주는 복지 확대를, 새누리당은 복지 조정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총선을 전후한 당적 이동은 ‘사욕 채우기’ 의혹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이번 총선은 수십 년 만에 다당 구도가 재현된 데다 각 당 공히 크고 작은 공천파동을 겪었고, 그 결과로 무소속과 당적 이동 후보가 속출하는 등 큰 혼돈 속에서 치러지게 됐다. 유승민 의원 파동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의 책임이 크다. 19대 국회의 무능에 진저리를 친 국민들은 20대 국회만큼은 본연의 자리를 찾길 학수고대했지만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을 지켜보자면 실망과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계파갈등과 권력투쟁에 매몰돼 있는 정치권에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시름이 더욱더 커져만 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4. 면세점 추가 허가 서두를 일인가
정부가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를 추가로 내주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면세점 전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특히 지난 16일 정부가 공청회를 연 이후 관련 업체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논란이 뜨거워졌다. 지난해 5년 특허 기간 만료로 신규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SK네트웍스와 롯데면세점은 신규 허가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면세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반면 신규 사업권을 따낸 SM면세점 등 5개 사업자들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신규 허가를 주장하는 측은 관광산업 활성화와 고용 유발 효과를 내세운다. 공청회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고 있는 만큼 주요 방문지를 중심으로 신규 특허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추가 쪽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만만찮았다. 신규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은 지나친 경쟁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신규 사업자가 사업 기반을 갖추기도 전에 또 다른 신규 특허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다. 특히 탈락한 면세점들이 다시 특허를 받아 영업을 계속하게 되면 신규 진입 사업자들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논란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12년 관세법을 개정하면서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함에 따라 면세점 운영에 대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로 인해 면세점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롯데와 SK도 5년 특허 규정에 걸려 탈락했다. 공청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짚어졌다. 5년 특허 기간이 만료됐을 때 신규 진입을 원하는 다른 업체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다시 입찰과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원칙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사업자에게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입찰 없이 최소 한 차례 이상 특허 갱신을 허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다만 개정된 법에 의해 결정된 신규 사업자들이 한창 개점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추가 허가를 내주는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영업에 들어가면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서두를 경우 자칫 지난해 탈락한 사업자들을 구제해 주려는 것 아니냐는 특혜 의혹에 휘말릴 수도 있다. 꼼꼼한 시장분석을 통해 어떤 방안이 관광산업 발전과 면세업계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지 깊이 따져 보기 바란다.
5. 전수조사와 강력 처벌, 아동학대 예방 해법이다
도대체 아동학대 범죄의 끝은 어디인가 싶다. 계모의 학대로 욕실에 갇혀 숨진 평택 원영이 사건의 충격이 여전한데, 청주에서 또 아동학대 범행이 드러났다. 5년 전 친모의 가혹 행위로 숨진 네 살배기 여아는 계부의 손에 암매장됐다. 지난해 말 부모의 학대를 못 견뎌 집을 탈출한 인천 11세 맨발 소녀가 아니었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인천 소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장기 결석 및 미취학 아동을 전수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새 학기 입학 대상자인데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초등·중학생은 19명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부모들까지도 모두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 더 드러날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이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인터넷에서는 “학대로 숨지고도 실종 처리된 아동이 얼마나 많았을지 모른다”는 개탄이 쏟아지고 있다.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기록이 전무한 취학 전 영유아도 809명이나 된다고 한다. 최소한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사안이다. 당국과 경찰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철저히 학대 정황을 살펴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부는 관련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앞으로는 이틀 이상 학생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도 학교는 곧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학업 부적응을 이유로 취학하지 않는 학생을 따로 관리하는 기구도 각 교육청에 두기로 했다. 당장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경찰과 손잡고 무단결석 학생 전담기구와 신고 핫라인을 만들어 안전망을 짰다.
범정부 대책을 바탕으로 교육 당국과 지방자치단체가 뜻을 모은다면 아동학대 예방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걱정인 것은 이런 대응이 보여 주기 반짝 행정으로 끝날까 하는 점이다. 당국의 감독과 독려가 지속돼야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의 관심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아동학대 판정 사례는 전년보다 무려 17%나 늘었다. 울산·칠곡 계모 학대 사건에 온 나라가 경악했으면서도 이런 추세인 것은 솜방망이 처벌 탓도 크다. 굶기고 때려서 아이를 숨지게 해도 번번이 과실치사죄가 적용되는 물렁하기 짝이 없는 판결로는 예방 효과를 낼 수 없다는 비판이 높다. 명백한 우발 사고가 아니라면 처벌 수위를 크게 높여야만 실질적인 경고 장치가 될 수 있다. 아동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을 손봐서 이를 홍보하는 것도 정부 당국이 서둘러야 할 일이다.
[동아일보]
6. 구조조정 앞선 일본, 한국조선업 빅3 무너뜨렸다
세계 조선(造船) 시장 3강이었던 우리 조선 3사가 일본 기업에 3위를 내줬다. 20일 분석기관(영국 클라크슨)에 따르면 2월 말 수주잔량 기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그룹이 각각 1, 2위였지만 3위였던 삼성중공업그룹이 일본 이마바리조선그룹에 밀렸다. 일본은 이미 2015년 1월 월 단위 수주량에서 세계 1위를 탈환한 바 있다. 6년 8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침몰하는 사이 일본이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10%에도 못 미치던 일본 조선의 부활은 엔 약세에 힘입은 바 크지만 착실한 구조조정과 기술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2014년 IHI마린유나이티드와 유니버설조선이 합병해 세계 4위 저팬마린유나이티드(JMC)를 탄생시켰고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LNG 선박 부문만 떼내 LNG 전문 조선소를 세웠다. 일본 내 최대인 이마바리조선이 18년 만에 독 확장 공사를 재개한 까닭이 있다. 일반 상선이면 무엇이든 대응할 수 있는 ‘선박 백화점’ 구축을 목표로 선박용 프로펠러 1위 같은 중소업체와도 손을 잡는 기술개발에 앞장서기 위해서다. 바다 오염물질 배출 규제가 엄격해지는 추세를 반영해 친환경 선박 개발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일본 정부도 통폐합 회사에 선박 가격의 80%까지 단 1% 이자율로 지원하는 파격 지원으로 응답했다.
일본을 앞질렀다고 환호하던 우리 조선업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초유인 영업 손실 5조 원을 넘겼다. 당기 순손실(5조1424억 원)도 외환 위기 때 기아자동차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국민혈세가 4조 원 넘게 투입됐지만 사상 초유의 엄청난 부실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총선 바람까지 불어 구조조정마저 무한정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올 1분기 수주도 사실상 ‘제로(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5, 6년 전만 해도 국내 3사는 전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했으나 30%(중국 40%, 일본 30%)대로 추락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10위권 내 중국 업체가 3곳이나 돼 중국의 조선 빅3 진입도 곧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산업은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한국의 주력 산업이다. 수출 비중도 높지만 고용 창출도 10억 원당 10명으로 자동차(8.8명)와 반도체(3.8명)보다 훨씬 높다. 한국 조선업이 ‘최악의 겨울나기’를 끝내고 봄을 맞으려면 극심한 ‘엔고’ 속에서도 뼈아픈 노력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
[이데일리]
7. SKT-CJ헬로비전 합병 논란 잠재우려면
이동통신업체 SK텔레콤의 케이블 방송회사 CJ헬로비전 인수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SKT와 CJ헬로비전은 최근 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을 승인했지만 관련 업계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양사 합병에 반대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업계의 합병 반대 움직임은 이동통신시장 1위 사업자 SKT가 알뜰폰 및 케이블TV 1위 업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방송시장도 이동통신 시장처럼 SKT의 지배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최근 발표한 ‘2015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도 이같은 우려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 시장에서 SKT와 SK브로드밴드 등의 점유율은 51.1%로 KT,LG유플러스 등 경쟁업체를 합친 것 보다 높다. 쉽게 말하면 SKT와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이동통신, 인터넷TV(IPTV), 초고속 인터넷 등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SKT가 케이블TV까지 결합해 판매한다면 유·무선 시장 지배력이 한 회사에 집중되는 독과점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다 하겠다.
SKT는 CJ헬로비전을 인수해 통신과 미디어를 융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성장전략을 밝혔다. SKT는 또 미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동영상 실시간 전송)업체 넷플릭스가 지난 1월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등 글로벌 업체의 한국 공략이 본격화된 데 따른 대응책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규모의 경제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합병 논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SKT가 CJ헬로비전 인수로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공정한 경쟁이 훼손되고 가격 인상과 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져 피해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공은 공정거래위원회로 넘어갔다. 합병을 심사중인 공정위는 SKT가 2001년 신세기이동통신과 2008년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며 내세운 글로벌 경쟁력이 제대로 확보됐는 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중앙일보]
8. 김정은, 오바마의 쿠바 방문에서 교훈 찾기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역사적인 쿠바 방문에 나섰다. 이번 방문은 1972년 ‘죽의 장막’을 걷어냈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버금갈 정도의 뜻깊은 일이다. 오바마의 쿠바행은 진작 조종이 울린 공산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종말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중국의 도약은 닉슨 방문 이후 이뤄진 미·중 국교 정상화에 힘입은 바 컸다.
44년 전에 그랬듯 이번 방문 역시 쿠바의 개방화와 경제 발전에 불을 붙일 게 틀림없다. 실제로 하루 10편 남짓했던 미국~쿠바 간 여객기가 조만간 110편 이상으로 늘고 아바나를 찾는 미 여행객도 지난해 15만 명에서 연간 15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제재 이후 50년 넘게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쿠바로서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오바마로서도 이번 방문은 더없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선 운동 때 “북한·이란·쿠바 등 불량국가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며 이들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했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을 통해 북한을 뺀 나머지 두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이뤄냈다는 치적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쿠바식 화해 모델에서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북한과 쿠바는 옛소련을 중심으로 한 형제국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그간의 행보는 판이했다. 북한이 핵무장의 길을 걸은 것과는 달리 카스트로 정권은 심각한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원전마저 짓지 않는 철저한 비핵화 노선을 택했다. 미국 코앞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다간 정권이 남아나지 않을 거란 현실 인식이 작용한 거다. 북한은 쿠바 역사가 증명하듯 핵 없이도 얼마든지 체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이란과 쿠바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여유가 생긴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력을 북한 문제 해결에 돌리도록 애써야 한다. 자칫하면 미국 대선판에 휩쓸려 올해 말까지 한반도 문제가 잊혀질 수도 있다. 우리가 주도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결코 성취할 수 없음을 잊어선 안 된다.
[매일경제]
9. 포용력·절제 잃은 정치 국민에 부끄럽지 않나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여야가 극도의 계파 갈등 속에 무원칙·무절제한 행태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킨 결과 이들이 연이어 탈당·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데 이어 친박계에 대한 여론 역풍까지 감지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추진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진영 의원은 17일 탈당한 데 이어 2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진 의원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원조 친박'이다. 그가 박 대통령 임기 중에 야당으로 옮긴 건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타협·포용·절제가 사라진 새누리당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권은희 의원도 대구 북구갑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20일 탈당했다.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는 다른 한편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예비후보 간 경선에서 탈락했다. 친박계 인물에 대한 여론의 역풍 아니냐는 해석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총선 이후 국정 추진력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극심한 계파 갈등 속에 부산에서 3선을 해온 조경태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옮겼다. 위기 수습을 위해 영입된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20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전략공천'하는 강수를 뒀다. 그동안 여당을 향한 투쟁과 대치에 무게를 둬온 야당에 김종인·진영 등이 합류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더민주당 기존 핵심들과 정책·체질 변화에 채찍질을 가하려는 영입세력이 충돌한다면 총선 이후에도 정치권 혼란은 피하기 힘들다. 조속한 국정 안정보다 자신의 생존과 계파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 정치판이다.
10. 빚에 짓눌린 한계가구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지난해 전체 가구 중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웃도는 한계가구는 14.8%(158만3000가구)에 이르렀다. 한계가구는 3년 새 25만8000가구나 늘어났다. 이들 가구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는 돈은 평균적으로 가처분소득의 104%에 달한다. 빚을 더 내지 않으면 원리금을 갚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포함한 가계 부문 금융부채는 작년 말 이미 14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 부문 순처분가능소득의 1.7배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통계 확보가 가능한 23개국 가계의 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3배 수준이므로 우리나라 가계는 지나치게 무거운 빚에 짓눌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가구는 소비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계가구 중 73%는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가계빚의 뇌관을 제거하는 일은 치밀하고 신속해야 한다. 정부는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고정금리와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로 유도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년 전 정부가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높이려 도입한 안심전환대출은 실행분 31조원 중 79%가 신용등급 1~3등급에 돌아갔다. 정작 부채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계층에는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한계가구 중 소득하위 계층, 자영업자, 60대 이상 고령자 가구, 자기 집을 가진 '하우스 푸어'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정밀타격식 채무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주택 수요와 공급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주택연금의 문호를 대폭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빚에 대한 근원대책은 소득을 늘려 부채상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재정·통화·주택·고용·복지정책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입체적인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영국에서 생겨난 커리 ‘치킨티카마살라’…인도와 영국의 음식문화가 합쳐져 탄생
카레를 생각하면 어릴 적 어머니의 주방에서 들려오던 맛있는 소리들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기분 좋은 콧노래 소리와 함께 탁탁탁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던 행복한 도맛소리! 어린 필자는 주방으로 달려가 감자와 사과, 당근을 볶다 카레가루를 개어 붓던 어머니 모습을 지켜보며 군침을 삼키곤 했다.
어린 시절 돈가스와 함께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카레였는데 사춘기가 지나면서 지루해졌다고 할까. 카레와 차츰 멀어져갔다. 한참 뒤 일본에 유학을 갔을 때 카레가 다시 좋아졌다. 평범한 우리 카레와는 다른 맛, 치킨티카마살라(chicken tikka masala) 덕분이었다.
일본 도쿄의 작고 예쁜 마을, 마치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우연히 인도 사람과 일본 사람이 함께하는 카레전문점을 발견하고 (사실 그다지 당기지는 않았지만) 공부 삼아 전통 인도 카레를 맛보러 갔다. 메뉴판을 읽는데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 인기 만점인 치킨티카마살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 주문했다. 한입 먹는 순간 ‘오홋’, 동서양이 오묘하게 섞인 퓨전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뒤 영국으로 짧은 유학을 떠났다.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의 음식이 궁금해서 찾아간 터였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영국인이 대중적으로 즐기는 음식은 피시앤드칩스, 매시트 포테이토에 피시파이, 미트파이 같은 것들에 불과했다. 얼마나 단순하고 맛이 없던지. 음식 값이 대체적으로 굉장히 비싼 데 비해 질이 형편없어 실망감이 컸다.
그때 지인을 통해 유명한 카레전문점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카레집 메뉴판에서 읽었던, 영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는 치킨티카마살라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곳을 찾아가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 곧바로 치킨티카마살라를 주문했다. 눈으로 보는 비주얼은 별로였지만 풍기는 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맛을 보니 ‘정말 대박’. 일본에서 먹던 치킨티카마살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카레 특유의 향신료 맛과 산미, 풍미 등 3박자를 완벽하게 갖췄다고 할까.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이 음식을 그렇게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릇을 싹 비웠다.
일본에 ‘나메로’라는 음식이 있다. 전갱이와 대파, 생강, 미소 등을 함께 다져서 먹는 음식인데 그 음식이 너무 맛있기에 접시까지 핥아 먹는다고 해서, 일본어로 핥는다는 뜻의 이름 ‘나메로’가 붙었다고 한다. 필자가 그날 먹은 치킨티카마살라도 옆에 손님만 없었더라면 접시까지 싹싹 핥아 먹지 않았을까 싶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까지 달라 보이게 한다. 이전까지 필자는 영국 하면 절대강국 또는 딱딱한 영국식 영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치킨티카마살라를 먹는 순간만큼은, 영국이 부드럽고 여유 있는 나라로 느껴졌다.
인도의 커리가 영국으로 전해진 것은 1772년 무렵,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기였단다. 당시 초대 인도 벵골 총독이었던 워런 헤이스팅스가 인도의 혼합 향신료(mixture of spices)인 마살라와 쌀을 영국으로 갖고 간 것이 시초였다. 인도에서 먹던 커리 맛을 잊지 못한 영국인들이 귀국 후에도 커리를 즐기면서 인도의 커리는 영국 사람들 식탁에 자주 오르게 됐다. 처음에는 일부 상류층만 커리를 즐겼지만 일정한 비율로 조합해 만든 커리파우더가 생산되면서 일반 가정에도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커리파우더만 있으면 매번 가루로 갈 필요가 없어 누구나 편하고 손쉽게 커리 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먹는 영국의 커리는 오랜 시간 조리법의 변형을 거쳐 영국인 입맛에 맞게 변화된 것이다. 춥고 어두운 영국으로 건너온 커리는 인도의 것보다 좀 더 기름지고 녹진해졌다. 인도의 가벼운 코코넛밀크 대신 버터와 크림을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치킨티카마살라도 인도의 커리 요리기는 하지만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영국 사람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치킨티카마살라는 1960년대 영국의 인도 요리점에서 태어났다. 인도 음식 ‘치킨티카(chicken tikka)’가 영국인이 먹기에 퍼석해 따로 커리소스를 주문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드러운 커리소스에 인도식 케밥 치킨티카를 넣은 치킨티카마살라는 별로 맵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덜 매운 노란 커리’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마크니(makhani)나 코르마(korma)보다는 좀 더 맵고 색이 진한 편이다.
영국인은 요리에 토마토를 즐겨 쓴다. 그래서 커리를 만들 때도 토마토퓌레를 넣어 달착지근한 맛을 냈다. 향이 강한 커리를 잘 먹지 못하는 영국인들은 설탕과 요구르트를 넣어 매운맛을 순화시켰다. 여기에 인도의 전통 화덕인 탄두르에서 구워 불맛을 제대로 입혀낸 닭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넣고 보글보글 한 번 더 끓여낸 것이 바로 치킨티카마살라다. 이렇게 인도와 영국의 문화가 더해져 하나의 훌륭한 요리가 완성됐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베르디 ‘팔스타프’…“세상 만사는 희극” 해피엔딩 오페라
‘오페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마디로 콕 정리해서 얘기해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그럴 때 하는 대답은 기실 별게 없다. ‘사람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놓은 것’이란 답변을 가장 많이 하는 편이다.
주세페 베르디. 이탈리아 오페라를 꽃피운 주역인 그는 평생을 오페라 작곡에 매진했다.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리골레토’ ‘나부코’ ‘오텔로’ ‘일 트로바토레’ 등. 오늘날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의 오페라들이다. 베르디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평생 2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가 80세 나이에 또 새로운 오페라 작곡에 매달린 것을 보면.
바로 1893년 작 ‘팔스타프(Falstaff)’다. 베르디는 이미 6년 전 그가 존경하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오페라화한 ‘오텔로’를 마지막으로 모든 작곡에서 손을 떼고 노년의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텔로’의 대본을 쓰며 작업을 같이한 아리고 보이토(A. Boito)가 내민 것이 셰익스피어 ‘헨리 4세’ 1, 2부와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을 대본화한 ‘팔스타프’였다.
전 3막의 오페라 ‘팔스타프’는 한때 고지식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지만, 나이 들면서 술고래에 호색한으로 변모한 팔스타프의 이야기다. 제자이자 친구기도 한 왕자가 왕으로 즉위한 뒤 옛 친구이자 스승인 자신을 불러주리라 기대하지만 왕자가 찾지 않자 낙심한 팔스타프. 돈까지 궁해지자 부유한 유부녀를 유혹해 궁지를 벗어나려는 계획을 세운다. 마을의 부유한 알리체와 메그 페이지에게 똑같은 내용의 연애편지를 보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자신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기만 하면 그 어떤 여자도 넘어오게 되리라는 팔스타프의 망상. 결국 마을의 여인들을 화나게 한 연애편지 공략은 팔스타프가 큰 망신을 당하면서 끝이 난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1막의 9중창을 포함해 아카펠라, 푸가 등 섬세한 음악적 어법으로 펼쳐 보인다. 그에 더해 섬세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위트가 결합하면서 베르디 사상 최초에 가까운 해피엔딩 오페라가 만들어졌다.
팔스타프를 통해 베르디는 그가 평생 그려온 비극 오페라에서 벗어난다. 또 ‘인생은 곧 희극’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전혀 베르디답지 않지만 또 베르디기에 가능한, 깊은 통찰이다. 오페라 속에서 그는 주인공 팔스타프의 입을 통해 ‘명예가 밥 먹여주나(L'Onore!)’라고 신랄히 외치는가 하면 피날레 부분에서 전 출연진이 함께 모여 ‘세상 모든 일은 희극이야(Tutto nelmondo e burla)’라며 유쾌하게 입을 모은다. 전 인생을 통해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해피엔딩의 오페라를 베르디는 그렇게 완성했다.
알파고의 바둑 실력을 보면서 충격적이기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인공지능에 의해 무엇이 얼마나 파괴될 것인가. 음악은 또 어찌 될까 하는 걱정도. 그러나 베르디가 전하는 오페라 속 합창은 그렇게 쉽게 망가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믿음도 들게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분발한다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의 그 복잡다단한 영역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3. [매경이코노미][HEALTH] 구취 대명사, 잇몸 내려앉는 ‘치주염’…잘못된 양치 습관·흡연·음주가 主敵
치아 건강은 ‘오복(五福)’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치아를 타고났다고 해도 잘못된 양치 습관을 지속하면 치주질환의 발병을 막을 수 없다.
입속 세균을 제대로 청소하지 못해 생기는 치주염은 치아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만성 치주질환이다. 잇몸 염증이 심해져 뼈 부위로 옮겨가면서 뼈가 녹아내리고 주변 잇몸이 함께 주저앉는다.
치주염의 대표 증상은 잇몸 부위 출혈, 욱신욱신한 통증과 함께 구취가 나는 것이다. 흔히 ‘우리하다(몹시 아리거나 또는 욱신욱신하다)’고 표현하는데 점차 악화되면서 고름이 나오고 더 심해지면 치아가 흔들리게 된다.
치주염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입속 세균이다. 구강 내에는 2억여마리의 세균이 산다. 플라크라고 하는 이 세균 덩어리는 음식 찌꺼기와 함께 치아 구석구석 끼이게 되며, 침과 함께 섞여 치석을 형성한다.
차재국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석은 마치 세균의 집과 같다. 치석이 없는 치아는 매끄러워서 세균이 잘 번식하지 못하지만 치석이 있으면 세균이 잘 붙는다.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세균이 활성화되면서 잇몸의 염증을 일으키고 뼈까지 파고들어가면 치주염으로 발전한다. 치주염은 우리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급격히 악화되는 계단식 증상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치주염 치료는 염증의 깊은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치석을 제거해주는 스케일링이 1단계다. 스케일링만으로 안 될 때는 잇몸 치료를 한다. 잇몸 안에도 치석이 생기기 때문에 잇몸과 치아 사이에 뾰족한 기구를 넣어 긁어낸다. 더 증상이 심할 때는 잇몸을 열어젖혀 안쪽을 청소한 후 꿰매는 잇몸 수술에 들어간다. 이마저 안 되면 결국 치아를 뽑아야 한다.
치주염은 특히 당뇨나 류머티즘 질환, 심혈관질환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등 타 질환과 상관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치주염 예방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차 교수는 “구강 세균에 감염돼 잇몸 조직과 잇몸 뼈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치주염을 앓게 되면 몸 전체가 세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뚜렷한 근거나 기전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입은 우리 몸의 기관 중 바깥과 직접 연결되는 뻥 뚫린 통로다 보니 세균 번식 가능성도 높고, 우리 몸 곳곳으로 연결되기도 쉽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치주염 예방의 시작은 올바른 양치 습관이다. 치간칫솔이나 치실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 가글링까지 해주면 가장 좋다. 치주염 환자의 경우 치간칫솔 사용이 꼭 필요하다. 올바른 양치법은 가로가 아닌 세로 방향으로 3분 이상 이를 닦는 것. 치주염 환자는 특별히 변형바스법이란 양치 방법이 권장된다. 이와 잇몸 사이에 45도 각도로 칫솔을 대고 칫솔모의 일부가 이와 잇몸 사이로 들어가게 해서 닦아주는 방식이다. 주기적인 스케일링도 필요하다. 이상적인 주기는 6개월에 한 번. 치주염이 생겼다면 1년에 3~4회가 권장된다. 스케일링을 받은 후 이가 시린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치아에서 치석이 제거된 부분이 외부 자극에 적응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해서다.
차 교수는 “치주염은 완치의 개념이 없다. 당뇨병처럼 꾸준히 계속해서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면서 “특히 치주염 환자에게 음주와 흡연은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4. [머니투데이][박종면 칼럼]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모든 사람은 죽는다. 혼자서 죽는다. 예외가 없다. 그래서 라틴어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는 진리다. 직역하면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가 여기 공동묘지에 죽어 누워 있지만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의미다.
이 명쾌한 명제를 수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로 진실과 직면하는 걸 꺼린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나오는 인물처럼 우리는 죽음을 직시하는 게 너무 두려워 자신이 죽을 운명이란 사실을 잊고 살려고 애쓴다. 이건 잘못이다.
어떤 마을에서 누군가 죽으면 교회의 종이 울리곤 했다. 오늘도 종이 울려 누가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심부름하는 아이를 보내려다 문득 깨닫는다. 종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란 사실을. 인간이 발전하는 것은 아무리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그것을 나와 연관짓는 각성 내지 깨달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올 1월 열린 다보스포럼은 주요 국가에서 앞으로 5년 동안 500만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의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의례적으로 하는 얘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 바둑고수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과 바둑시합을 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이세돌 9단도 그렇게 말했지만 대부분 당연히 사람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고,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인공지능이 먼 미래 일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바둑고수는 그 앞에서 투혼을 보여줬고 처절하게 싸웠지만 그게 끝이었다. 인공지능에 오늘은 이세돌이 패배했지만 내일은 내가 패할 것이다. 교회의 종소리는 이세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울리는 것임을 각성해야 한다. 세상은 상상을 초월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음의 가능성이 욕망을 자극하고 죽음이 있어 삶이 소중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혁명의 신호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던진 화두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급변하는 환경에 맞게 근본적으로 판을 다시 짜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요즘 재계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나 시내면세점 사업권 확대문제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시장독점으로 인한 요금인상이나 콘텐츠시장 황폐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거대기업의 국내 진출이 임박했음을 감안하면 합병에 따른 이런 부작용들은 오히려 지엽적일 수 있다.
시내면세점 사업권 확대도 정책의 일관성 상실이나 신라 신세계 한화 두산 등 5개사의 피해와 같은 여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 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 넘고 관광산업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규제일변도의 면세점 정책은 더 이상 곤란하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 받아들여야 한다.
5. [한국일보]미군 최초의 흑인 지휘관 플리퍼
헨리 오시언 플리퍼(Henry Ossian Flipper, 1856~1940)는 미국 최초의 흑인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이다. 1877년 소위로 임관한 뒤 소대를 이끈 첫 흑인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의 복무 기간은 5년에 그쳤다. 부대장 등이 그에게 누명을 씌워 불명예 제대시켰기 때문이다. 그가 오명은 벗은 것은 100년 뒤였고, 1999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그 일에 대해 미국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플리퍼는 조지아주 토머스빌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주인은 폰더(Ponder)라는 부유한 노예상인이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났고, 그 해 12월 수정헌법 13조(노예제와 형벌 외 강제노역 금지)가 발효됐으니 태어날 무렵에는 그도 노예였다.
헌법의 기운이 남부의 혈관으로 스미는 데는 물론 꽤 긴 시일이 걸렸지만, 플리퍼는 용케 애틀란타 대학에 입학했고, 1학년 때 주 하원의원 추천으로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흑인 전투 공적을 기려 웨스트포인트는 종전 이듬해부터 흑인 생도의 입교를 허용했지만 졸업한 이는 없었다. 흑인 장교가 백인 병사를 지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차별이 당시 교관과 생도들 사이에 있었다. 그의 졸업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임관과 동시에 제10기병대에 배속된 그는 서부 텍사스 인디언 전투에 투입돼 적잖은 전과를 올렸고, 그 해 10월 소대장이 됐다. ‘버팔로 솔저(흑인 곱슬머리를 버팔로 털에 빗댄 말)’라 불리던 흑인 소대였지만, 그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흑인 지휘관이었다.
부대장이던 니콜라스 놀런 대위는 그를 차별 없이 대했다고 한다. 부대 내 차별 역시 심각했다. 놀런의 딸과 친구처럼 지낸 점을 ‘부적절한 행실’로 투서, 모욕적인 조사를 받게 하기도 했다. 부대장이 바뀐 뒤 병참 부서로 전출된 플리퍼는 1881년 7월 부대 운영자금 2,000달러가 빈다는 사실을 안 뒤 즉각 보고하지 않은 죄목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동료 장교들이 그를 내쫓기 위해 조작한 일이었고 돈은 나흘 뒤 회수됐지만, 재판부는 82년 6월 그를 불명예 전역시켰다. 전역 후 그는 기술자로, 정치인 보좌관으로 일했다.
1976년 그의 후손들과 지지자들이 재조사를 청원, 신원(伸寃) 작업이 시작됐다. 클린턴이 사과하기까지 그로부터 23년이 걸렸다. 99년 웨스트포인트에는 플리퍼의 흉상이 섰고, 이후 매년 “난관을 딛고 기율과 리더십을 발휘한” 졸업생에게 ‘헨리 플리퍼’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는 1856년 3월 21일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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