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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새누리당은 집권당 자격이 있는가

새누리당은 과연 집권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옳고 그른 가치판단을 내세워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가기에 스스로 떳떳한가.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마지막까지 질질 끌어온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른 질문이다. 아무리 눈앞의 이익을 좇아 정치적 도의가 헌 신발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세태라지만 이런 정도일 줄이야 차마 짐작조차 못했다. 정치가 어느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꼽을 만하다.

유 의원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누리당 일각에서 그의 정체성에 의문점을 제기하며 ‘미운 오리 새끼’처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는데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한다. 사태가 지금처럼 이르기까지 본인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처리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천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하면 그뿐이었다. 다른 지역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처리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유독 유 의원에 대해서는 본인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일관했다. 이른바 ‘친박’, ‘비박’과의 갈등 관계에서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꼼수였다. 새누리당은 어제 오후 다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으나 유 의원의 공천 여부에 대해서는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설사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이미 집권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마당이다. 

결국은 오늘부터 4·13 총선의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유 의원이 제풀에 꺾여 스스로 탈당하도록 유도하려는 모양새였다. 공천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제 자정까지 탈당하지 않는다면 출마 자격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노린 얍삽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내 투표를 통해 원내대표까지 지낸 인물에 대한 예우로서는 말도 아닌 처사였다. 앞으로 누구라도 집권층에 잘못 보인다면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다.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역할과 임무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정치가 아직도 당파싸움이 횡행하던 왕조시대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고도 한 표를 달라며 유권자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2. 소주 한 잔에도 운전대 못 잡게 해야

현재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0.03%로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다. 경찰청은 내달 중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이런 방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한다.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음주운전의 폐해를 감안할 때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음주운전은 자신은 물론 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내모는 중대한 범죄다. 일순간의 그릇된 호기가 본인과 이웃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를 잠재적 살인기계라고 하는 이유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이 1조원 이상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0.03%는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다른 제품을 먹어도 나올 수 있는 수치이므로, 자칫 측정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등의 반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0.05%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제시된다. 기준을 강화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에도 100명 이상이 음주운전으로 죽거나 다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접근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0~2014년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의 12.3%인 13만 6800여건에 이른다. 사망자 3600여명을 포함해 전체 사상자가 24만 8900여명으로, 하루 평균 136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10.8명)는 OECD 회원국 중 1위다.

음주운전 사고를 막으려면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잘못된 인식부터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2002년 단속기준을 0.05%에서 0.03%로 강화한 이후 음주운전 사망자가 75% 가량 줄어든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만 한다. 아울러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음주운전 사망 사고자 10명 중 7명이 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음주운전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동아일보]

3. 시리아 참전한 北, 테러조직에 핵무기 확산 주시해야

북한군 2개 부대가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미국 등 국제연합군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5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에 북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은 드러나 있지만 ‘철마1(Chalma-1)’ ‘철마7(Chalma-7)’이라는 부대 이름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무고한 민간인에게까지 화학무기 등을 퍼부으며 학살과 인권 유린을 서슴지 않는 아사드 정권을 도우려 북한이 파병까지 했다니 충격적이다. 

연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타격하겠다고 위협해온 북한이 시리아에서 실제로 전쟁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리아 내전에 투입된 탱크도 대부분 북한제로 알려져 있다. 돈줄이 막힌 북한이 시리아 내전에서 무기를 팔고 국가용병을 보내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기와 용병의 대가로 시리아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는 외화를 차단하지 않으면 북한 핵개발을 막기 위해 발동한 유엔과 한미일 3국의 제재를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북한은 2007년과 2010년에도 핵 원자로와 미사일 기술을 시리아, 이란 등에 수출한 전례가 있다. 미국 딕 체니 전 부통령은 회고록에서 “1차 북핵 실험을 한 2007년엔 북한이 시리아 사막에 건설 중인 원자로를 이스라엘이 공격해 폭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핵 일부가 시리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손에 들어가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공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전으로 시리아에서는 25만 명이 죽고 1130만 명이 피란민 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 아사드는 ‘수도 다마스쿠스만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놀림까지 받는다. 시리아와 북한 모두 ‘썩은 동아줄’과 같은 위태로운 동맹관계를 이어가는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생화학무기까지 사용해 자국민을 학살한 아사드와 이를 돕는 김정은은 명백한 학살방조범으로 국제형사법정에 세워 단죄해야 한다.

4. ‘도로 운동권黨’의 김종인, 무슨 낯으로 표 달랄 건가

사퇴의 배수진까지 쳤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당 잔류를 밝혔다. 그는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면서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책임감’ 때문에 대표직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2번은 “당을 끌고 가기 위해 필요해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당은 김 대표를 2번에 배정해 헌정사상 비례5선을 보장한 비례대표 공천안을 확정했다.

김 대표가 말한 ‘정체성’이란 뿌리 깊은 친노 운동권 체질을 의미한다. 그는 “미래의 정권을 지향한다면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체성에 당이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 당의 방향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도록 결심했다”고 말했으나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마치 총선과 대선 패배를 미리 내다보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일부 세력이 정체성을 고집해 어쩔 수 없었다”는 ‘알리바이용’으로 짐짓 내세운 건 아닌지 의문이다. 

어떤 이유든 김 대표가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결정을 수용한 것은 백기투항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어제 울산에서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중앙위가 결정한 것은 정당 민주주의 혁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1월 “친노 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다.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되치기당한 셈이다. 일각에선 ‘친노의 벽은 못 넘고 노욕(老慾)만 채웠다’고 비난한다. “내 말대로 안 하면 떠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맥없이 주저앉았으니 이제 그의 으름장을 겁낼 사람도 당내엔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더민주당의 실제 주인은 친노 운동권이고, 문 전 대표는 상왕(上王) 같은 존재임을 국민이 알게 됐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한 당의 확장성’에 의기투합했다. 문 전 대표가 총선 이후 대선까지 내다보고 김 대표를 당의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대권 가도를 닦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로 운동권당’의 얼굴마담이라는 본색이 드러난 마당에 김 대표가 앞으로 어떤 선거 공약을 내놓든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서울신문]

5. 집권당의 한계 보여준 유승민 탈당

공천이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냐를 놓고 왈가왈부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사태가 마무리됐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는 어젯밤 늦게까지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로 나뉘어 고성이 오갈 정도로 막판까지 논란을 벌였다. 공천 과정 내내 떠들썩했던 유승민 파문이 총선 후보자 등록일 직전까지 이어진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의 합작품 성격이 짙다.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계가 주도하는 공관위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힌 유 의원을 내부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후폭풍이 무서워 차일피일 시간 끌기에 나섰다. 유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과 수도권 등지의 총선 악영향을 우려해 후보 등록 전날까지 최대한 결정을 미루면서 유 의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편 셈이다.

그동안 공천 여부를 미뤄 놓고 유 의원에게 거취를 정리하도록 압박한 것은 일종의 고사(枯死) 작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 의원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어 자진 탈당하게 하거나 공천을 주더라도 최대한 힘을 빼놓자는 계산법을 쓴 것이다. 집권 여당의 꼼수에 지나지 않은 이런 공천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적잖다.

정당의 노선과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을 보일 때 더 많은 국민이 지지하고 외연 확장의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찍어 내기 위해 이렇게 집요하게 ‘작업’을 한 것은 여야를 통틀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비박계 인사들을 대거 낙천시킨 것은 집권당의 편협성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공관위가 마지막까지 유 의원 스스로 탈당하라며 결정을 늦춘 조치는 어떤 이유로든 기회주의적인 데다 떳떳하지 못하다. 국민을 우롱하고 유권자의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 위원장의 말대로 유 의원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면 처음부터 결단을 내리고 공당으로서 책임을 지면 될 일이었다. 어물쩍 책임을 회피해 비난을 모면하려는 처신은 집권당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오늘부터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4·13총선의 막이 올랐다. 이제 새누리당은 하루빨리 계파 싸움을 종식하고 공천 과정에서 실망한 민심을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집권당의 위상에 맞도록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아 국민의 심판을 받는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정당으로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 바란다.

6. 천인공노할 브뤼셀 폭탄 테러

그제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탄 테러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34명의 시민이 희생된 이번 테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집단 학살 행위다. 게다가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역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노린 ‘소프트 타깃’ 테러라는 점에서 그 악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IS는 이날 밤 인터넷을 통해 “우리 형제들이 자살폭탄 벨트와 폭탄을 품고 최대한의 죽음을 가져오려 했다”고 범행을 자인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이번 테러는 범행 나흘 전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이 체포된 데 대한 보복 공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압데슬람이 수사 당국에 협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른 테러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BBC 방송에 따르면 얀 얌본 벨기에 내무장관은 “압데슬람 체포 후 실제로 보복 공격 위협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 조직이 멈추면 또 다른 조직이 테러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며 이 같은 테러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천인공노할 테러리즘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그제 공동성명을 통해 “브뤼셀 테러는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단결해 증오와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EU 정상들이 반테러리즘 공동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앞으로 테러를 막기 위해선 전 세계가 연대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연대 강화 움직임은 연이은 테러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테러 방지 노력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선 IS 근거지 일부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을 뿐 강력한 연대에 의한 색출작전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 지난 13일 터키에서 27명이 차량 테러로 숨지는 등 최근 8개월간 여섯 번의 자살폭탄 테러에 의해 2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테러 세력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질 수밖에 없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브뤼셀 테러를 계기로 모든 나라가 힘을 모아 테러분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강력한 방안을 짜내야 할 것이다.

7. 여야 최악 공천 유권자가 제대로 심판해야

4·13 총선의 공천이 마무리됨에 따라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온갖 파행 속에서 이뤄진 컷오프와 경선에서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오늘부터 이틀 동안 등록을 마치는 대로 선거판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1차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당의 공천 과정은 밀실·보복·전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데다 당권 장악에만 매몰된 계파 갈등으로 진흙탕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새누리당은 친박·비박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친노·비노로 나뉘어 개혁 공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내팽개친 채 죽기 살기로 패거리 정치에 매달렸다. 최악의 공천이었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가 가장 형편없는 19대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사치스럽다.

새누리당의 공천 행태는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당인지 의심케 했다. 전략 공천을 막고 상향식 공천을 지키겠다던 김무성 대표의 공언은 헛말로 끝났다. 대신 친박 주도의 공천이 이뤄졌다. 경선 지역은 전체 250개 지역구 가운데 140곳에 그쳤다. 단수·우선 추천 중 50곳 가까이 전략 공천이었다. 현역 의원의 낙천도 43명인 27.2%에 불과했다. 당헌·당규에 상향식 공천을 못박아 놓고도 내리꽂기 공천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비박계 공천 배제는 ‘3·15 비박 학살’이라는 표현을 낳았다. 경선에서는 역풍으로 작용해 진박(진짜 친박)들에게 패배를 안겼다. 밉보인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고사 작전이 펼쳐졌다. 원칙 자체가 흔들린 탓에 감동은 없었다.

더민주도 김종인 대표를 중심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후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친노의 핵심인 이해찬·정청래 의원 등을 쳐내는 것으로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역 의원의 탈락은 전체의 33.3%인 36명으로 19대 총선 때 더민주의 전신인 통합민주당 현역 교체 비율 34.8%보다 낮다. 더욱이 물갈이 과정에서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 기준을 “정무적 판단”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제시해 당의 시스템 공천을 무색하게 했다.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김 대표의 사퇴 파동은 어제 당무 복귀로 일단락됐지만 친노·운동권 출신들의 힘과 함께 속내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합리적인 대안 정당으로의 탈바꿈이 여간 쉽지 않음을 보여 준 것이다. 국민의당도 심한 경선·공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천이나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를 공천하는 ‘돌려 막기 공천’ 역시 정치 불신을 한층 부추겼다. 더민주는 전북 익산에서 경선에 떨어진 한병도 전 의원을 익산을에, 새누리당은 황우여 의원을 자기 텃밭인 인천 연수 대신 인천 서을로 전략 공천했다. 컷오프당했던 더민주 문희상·백군기·윤후덕 의원의 구제 공천도 마찬가지다. 인재 재활용이라는 측면일 수도 있지만 해당 지역의 예비후보나 유권자들에게는 모욕적인 처사다. 게다가 여야 정치권은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도 않고 선심성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엉망으로 공천 결과를 내놓고도 막무가내로 표를 달라는 격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바꾸지 못한 정치를 바꾸는 심판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19대 최악의 국회를 20대 국회에서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8. 갈 길이 먼 제1야당의 정체성 개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어제 잔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비례대표 문제로 촉발된 ‘김종인 사퇴 파동’은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제1 야당에서 진보 패권주의와 낡은 진보를 청산하는 데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저항이 버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보 패권 세력은 그동안 김 대표의 중도·실용 공천 개혁에 반격하지 않았다. 당장 공천과 총선준비가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천이 마무리되자 이번에 대거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운용됐던 혁신위, 친노 성향의 당내 을지로위원회, 외곽에서 당을 지원하는 원로 원탁회의의 주요 인사들이 김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정봉주 전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 같은 외곽 그룹도 가세했다. 특히 강씨는 김 대표에게 끌려가는 당에 “미치려면 곱게 미치라”는 극단적인 매도를 퍼부었다.

이들이 막판에 공세를 멈춘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운동권 출신 수명이 비례대표에 들어가는 실리가 확보됐고, 당장 김종인 대표의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총선 후 새 지도부 선출과 대선후보 경쟁국면이 시작되면 이런 위장된 수습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의 공천 과정에서 이해찬·전병헌·정청래·강기정·신기남·노영민 등 진보 패권주의 핵심 다수가 탈락했다. 하지만 친문재인 세력은 대부분 재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약 500명의 중앙위원회, 대의원·핵심당원 그룹은 여전히 진보 패권주의의 공고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이들이 총선 후 세를 다시 가동하면 김종인의 개혁은 변방으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개혁은 힘든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김 대표도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비례대표 순번은 중앙위에서 정한다는 당헌을 중시했어야 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비례 순번을 비대위에 맡겼더라면 그의 개혁은 더욱 힘을 받았을 것이다.

제1 야당의 노선 개혁이 중요한 것은 낡은 운동권식 투쟁의 폐해가 국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리(私利)를 버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직시해야 한다.

9. 법원 개입까지 불러들인 새누리당 무법 공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을 지역구에서 배제한 새누리당 공천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어제 받아들였다. 집권당의 공천관리위(위원장 이한구)가 주 의원을 탈락시킨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장이며 대구 수성을에서 내리 3선을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다. 공천위는 그의 지역구를 한순간에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변경해 주 의원을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컷오프)시켰다. 대신 그곳엔 당내 친박세력이 미는 이인선 전 경북부지사를 공천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대표 김무성)는 공천위에 주 의원을 구제하라는 취지로 재의(再議)를 요구했으나 이한구 위원장이 공천위원 3분의 2의 재의결을 거쳐 원안대로 관철했다. 법원이 문제 삼은 부분은 공천위원은 총 11명으로 3분의 2 재의결 정족수는 8명인데 실제 원안에 찬성한 사람은 7명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위원장이 의결 정족수가 몇 명인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졸속·날림으로 의사를 결정했다는 게 드러났다.

정당의 공천은 고도의 헌법적 자율성을 누리는 사안으로 그 결정에 대해 사법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왔다. 사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능동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엔 새누리당 공천위의 독단적·비민주적 행태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공분이 깔려 있을 것이다. 입법부의 구성원을 선발하는 집권당의 움직임이 얼마나 한심하고 초법적이었길래 법원이 이렇게 제동을 걸겠는가. 현재 남부지원에 들어와 있는 정당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새누리당 8건, 더불어민주당 1건 등 9건이라고 한다. 개별 사안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이번처럼 ‘가처분 인용’이 속출할 경우 4·13 총선 뒤 선거불복 소송이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주호영 의원은 새누리당이 23일 자정까지 그를 재공천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결국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됐다. 이 문제는 주 의원의 당적과 관계없이 초라해진 한국의 정당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한구 위원장은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10. 대한민국 미래 50년 혁신으로 大도약 이루자

'우리의 앞길은 밝다.'

1966년 3월 24일 세상에 나온 매일경제신문의 첫마디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창간호 1면을 채운 건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오는 열차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달려 있었다.

'태곳적부터 어둠처럼 누적되었던 빈곤을 헤치고 이제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희망에 부푼 산업열차가 어두운 굴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로부터 꼭 반세기가 지났다. 오늘 창간 50돌을 맞은 매일경제는 1만5581번째 신문으로 새 아침을 연다.

매일경제는 이제 21세기 지식혁명을 이끌어가는 최정상급 미디어그룹으로 우뚝 섰다. 매일경제 가족은 새삼 벅찬 감동과 자부심을 느끼며 오늘의 매일경제를 만들어준 독자의 사랑과 성원에 깊이 감사한다.

창간 50돌 매경 최정상 지식미디어로

신문은 역사의 초고다. 매일경제는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도전과 성취와 위기 극복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50년 새 한국의 1인당 소득은 218배로 불어났다. 매일경제 독자는 피와 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들이다. 이들은 환란의 아픔도 겪었다. 남북 분단의 질곡과 민주화의 산고도 견뎌야 했다.

매일경제는 역사의 기록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25차례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와 16차례 세계지식포럼은 매일경제의 고뇌와 땀의 결정들이다.

매일경제는 1997년 한국 경제위기를 내다보고 창조적 지식강국을 주창했다. 고비마다 새로운 국가 어젠더로 변화를 선도하는 언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워싱턴에서 테헤란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서 23차례 열린 매경글로벌포럼은 우리의 지평을 지구촌 전체로 넓혔다. 무재해 운동과 기업 사랑,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은 선진 사회를 향한 열망을 담았다.

매일경제는 한국 경제와 기업이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다시 뛰자'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일관되게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었다.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온갖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늘 앞장섰다.

매일경제는 세계 최고의 지식미디어를 지향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을 아우른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그룹으로서 창조적 지식사회를 선도하고 자유시장경제 창달의 선봉에 선다는 사명을 늘 잊지 않을 것이다. 독립성과 품격을 갖춘 지식 공동체로서 언론 자유와 독자의 신뢰를 생명으로 여길 것이다.

먼저 혁신해야 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매일경제는 이제 미래 50년을 본다. 앞으로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바꾸고 개인의 삶을 뒤흔들 변화가 쓰나미처럼 닥쳐올 것이다. 지난 50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충격이 우리의 지식과 제도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변화의 큰 흐름은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로 압축할 수 있다. 21세기 산업혁명의 폭발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기술, 기업, 금융, 정치, 도시에 미칠 파괴력도 그만큼 클 것이다. 

수출제조업에 의존하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한국은 인공지능의 진격이 가장 거센 나라가 될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쟁에 따른 실업 사태와 고령화 충격이 겹치면 극단적인 불평등과 복지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 유전자 편집과 블록체인 기술은 전통 사회와 금융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지구촌에서는 자본과 인재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와 저성장 시대 각자도생을 위한 역세계화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화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지구촌이 단절과 고립으로 회귀할수록 우리의 경제 영토는 좁아진다. 창조적 개인이나 기업이 국가보다 큰 영향력을 미칠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다.

매일경제는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 아시아'를 주창했다. 하지만 아시아는 21세기의 화약고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대륙과 해양세력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핵 위협을 계속하는 북한을 상대하며 통일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미래 50년은 새로운 비정상과 불확실성의 시대다. 낡은 지도와 나침반은 쓸모가 없다. 국가와 기업, 개인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글로벌 경쟁은 한마디로 누가 먼저 혁신하고 개혁할 수 있느냐를 가리는 혈투다. 나라의 운명은 혁신 역량과 개혁 의지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이 냉혹한 전쟁에서 지면 첫 세계화시대의 식민지 국가처럼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다.

미래 50년의 변화를 주도하려면 먼저 스스로 변해야 한다. 한국이 새로운 글로벌 경쟁의 승자가 되려면 미래형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미래형 국가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필요로 한다. 매일경제는 그 시대정신의 핵심은 혁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미래 50년 한국 재창조를 위한 국가 전략으로 '노바투스 코리아(Novatus Korea)'를 제안한다. 

노바투스는 혁신과 변혁을 뜻한다. 지금은 개인과 기업, 도시와 국가가 끊임없는 혁신으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때다. 

변혁 주도할 '노바투스 코리아'로 가자

무엇보다 절실한 건 다음 세 가지 혁신이다.

첫째, 창조적 리더십이다. 개발연대에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통했다. 창조시대에는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면서 온 국민의 무한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매일경제는 국가 거버넌스 개혁으로 미래 50년을 내다보는 비전과 실천력을 갖춘 새로운 리더십을 확립할 것을 주문한다.

둘째, 창업국가의 역동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대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1%로 34개 회원국 중 꼴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역성장 시대가 올 것이다. 대기업들은 창업세대의 도전정신과 헝그리 투혼을 잃어버렸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의 모험정신에서 나온다.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한껏 북돋울 수 있게 금융과 산업 생태계, 규제 체계의 전면적 혁신을 촉구한다.

셋째, 파괴적 신기술이다. 우리가 빠른 추격자에서 혁신의 선도자로 거듭나려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비롯해 게임의 판을 바꿔놓을 핵심 기술에서 앞서가야 한다. 지금처럼 설거지 연구만 해서는 끝내 선진국을 넘을 수 없다. 공장식 교육제도를 뜯어고쳐 글로벌시대 지적 노마드를 키울 평생학습 체제로 가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우리 앞길은 밝다

매일경제는 오늘 새로운 50년의 항해를 시작한다. 파고는 높다. 하지만 우리는 50년 전 창간사에서 그랬듯이 다시 한 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인류 진보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고자 한다. 어떤 결정론이나 숙명론도 거부하되 근거 없는 낙관론도 경계할 것이다. 모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와 용기를 갖고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한 앞길은 밝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이 말했듯이 신문은 미래를 덮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는 지식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매일경제는 세계 최고의 지식미디어로서 대한민국호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믿음직한 길잡이가 될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미디어 빅뱅시대 혁신을 주도하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을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인간 배트맨·구세주 슈퍼맨,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아시아 7개국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때 슈퍼맨을 연기한 헨리 카빌에게 던져진 질문이 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 무비가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서부극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빌은 스필버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부극의 캐릭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반면 슈퍼히어로는 그 자체로 신화의 주인공이라 슈퍼히어로 무비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화면을 꽉꽉 채운 밀도 높은 영상과 묵직한 액션으로 장대하게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다. 영웅의 대서사시는 진지하고 엄숙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 영화는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누가’ 이 둘을 싸우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진다. 

최근 몇 년 간 만화를 찢고 나온 슈퍼히어로의 활약은 대단했다. ‘어벤저스’시리즈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으면서 미국산 슈퍼히어로는 한결 친숙해졌다. 흥행성적에 힘입어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헐크가 더 대중적이 됐지만 자고로 슈퍼히어로의 대명사는 슈퍼맨과 배트맨이다. 이들 슈퍼히어로는 출신성분에 따라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파로 나뉜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DC코믹스파라면 ‘어벤저스’에 나온 슈퍼히어로들은 마블코믹스 출신이다. 아이언맨과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맨이 대표적이다. ‘마블스튜디오’는 마블코믹스 히어로를 속속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명명하며 각각의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와 이들을 한 데 모은 대작을 매년 선보이고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코믹스도 마블코믹스에 이어 ‘DC유니버스’를 시작한다는 신호탄이다. 마블코믹스 무비가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라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 반대다. 어둡고 진지하며 사실적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나 ‘슈퍼맨’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간 팬티를 벗기고 새롭게 리부트한 ‘맨 오브 스틸’(2013)을 떠올리면 된다. 메가폰을 잡은 잭 스나이더는 ‘300’(2006)과 ‘왓치맨’(2009)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한 감독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은 영화 속 허구의 영웅이 아니라 관객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다. 영화의 세트부터 스토리, 액션신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두 영웅이 실제로 존재하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 능력과 행동의 결과로 어떤 복잡한 결과가 야기될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릇 블록버스터는 팝콘 보며 즐기는 영화라지만 이 영화는 곳곳에 숨겨놓은 상징과 은유로 철학하기를 유도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주요 갈등 중 하나는 슈퍼맨에게 영웅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부분이다. 슈퍼맨은 외계인 조드 장군의 지구 침공, 일명 ‘블랙 제로 사건’ 당시 온 힘을 다해 인류를 구했다. 도시 곳곳에 슈퍼맨 석상이 세워지고, 현대판 메시아로 추앙받는다. ‘슈퍼맨교’의 탄생이다. 동시에 슈퍼맨의 절대적 힘을 무서워하고 우려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슈퍼맨은 지구인이 키웠지만 원래 크립톤 행성의 외계인이다. 만약 슈퍼맨이 인류의 편에 서지 않으면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것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비딱한 시선으로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슈퍼맨을 둘러싸고 격론이 펼쳐진다. 설상가상 연인이자 기자인 로이스 레인(에이미 애덤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 비난이 쏟아진다. 급기야 슈퍼맨은 쫄쫄이 복장을 한 채 미국의회에 출두한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배트맨의 관점에서 본 슈퍼맨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어린 시절 그 비극적 사고로 문을 연다. 배트맨은 알려진대로 어릴 적 트라우마로 히어로가 된 책임감 과다형 인물이다. 눈앞에서 부모가 노상강도에게 죽는 걸 목도한 그는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범죄소탕에 바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아픔을 겪는다.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대결로 회사 건물이 무너져 유사가족인 직원들을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이러한 상처는 ‘다크 나이트’시리즈로 친숙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배트맨과 새로운 배트맨의 가장 큰 차이다. 배트맨은 나이도 들어 좀 지쳐있다. 분노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흐려진 부분도 있다. 애플렉은 베일의 배트맨을 잊게 만들며 자신만의 배트맨을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193㎝의 장신(배트맨 부츠를 신으면 198㎝)인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슈퍼맨을 위협하는 존재로서 어떤 위엄이 느껴진다. 묵직한 갑옷 타입의 배트맨 슈트는 애플렉의 선 굵은 외모와 잘 어울린다. 

젊고 캐주얼한 이미지의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신선하다. ‘슈퍼맨’ 시리즈에서 슈퍼맨의 적수인 악당 루터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위험한 적수다. 그는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억만장자에 고아다. 차이라면 절대 권력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악랄한 말장난과 농담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똑똑한 인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요즘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망나니 재벌3세’가 인기 악역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에서 루터가 바로 그런 존재다.

갈등의 중심축인 세 캐릭터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힘과 정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린 시절 자신들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삼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슈퍼맨이 얼마나 행복한 히어로인지 알게 된다.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의 손에 길러졌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다. 사랑하는 엄마와 연인도 곁에 있다. 지켜야할 사람이 있는 슈퍼맨은 셋 중 가장 약한듯 강하다. 반면 학대받고 자란 외로운 루터는 강한듯 약하다. 배트맨 곁을 지키는 유사 아버지 ‘앨프리드’같은 존재도 없다. 

렉터가 만들어낸 괴물과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맞붙는 후반부 액션신은 마치 신들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영화가 어느덧 미국의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특히 슈퍼맨은 부활이 예고된 메시아로 다가온다. 현실에 발붙인 배트맨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적 모델이다. 

오늘날 렉터는 점점 늘고 배트맨은 찾아볼 길 없다. 그 반대가 된다면 살만한 세상이 될 텐데 말이다. 인간의 선을 믿는 배트맨의 독백에 희망을 걸고 싶어진다. 기대를 모은 원더우먼은 맛보기로 등장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매력은 내년 6월 개봉하는 ‘원더우먼’에서 확인하자. 만화에서는 슈퍼맨과 사귀나 스크린에서는 배트맨과 원더우먼의 로맨스를 기대해본다.

2.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필기 수재’를 키우는 학교

최근 해외 석학이 강연하는 자리에 갔다. 강연장은 학구열로 넘쳐났다. 참석자들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찰칵 소리를 내며 파워포인트 파일을 찍는 민폐를 불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강연 후. 그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던 사람들은 “질문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강연은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보다 끝났다. 

우리에겐 익숙한 한국적인 풍경일 것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 교수들은 굳이 강의실이 아니어도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받아 적기에만 바쁘다면 대체 교육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한다. 

기자가 미국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럴 법도 하다. 수업을 이해하려면 학생들은 최소 30∼40쪽 분량의 교재를 읽어 가야 했다. 교수가 학생을 갑자기 지명해서 질문하는 ‘콜드 콜(cold call)’도 부담이었다. 

교수는 자신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촉진자)’로 칭했다. 학생들의 생각을 이끌어내 어떤 결론에 이르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토론 뒤엔 ‘테이크어웨이(take-away)’를 내라는 교수도 있었다. 직역하면 수업 시간에 자신이 얻은 것을 적는 것. 정답은 없었다. 자신이 깨닫고 생각한 걸 내면 그만이었다. 

10년 넘게 정답이 있는 교육을 받았던 기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이미 누군가가 낸 결론을 외우는 데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실제로 학부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기자는 중세시대 영시에 고어(古語) 전치사를 끼워 넣는 시험이 고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전치사, 굳이 외워야 했나 싶다. 정 필요하면 검색하면 되고, 오히려 영시에 나온 삶과 의미를 읽어내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말한다. 현재 대학교육 모델은 평균 수명이 60세였던 산업 사회 초기에 개발된 것으로, 전공지식을 주입해 산업현장에서 30년 동안 써먹기 위한 대량 교육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시험 문제용 정답을 찾으려면 인터넷 등 지천에 널려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자신에게 필요한 걸 골라내고 생각하는 힘, 사고를 구조화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기르는 교육일 것이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은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 가서 숙제하는 기존 교육과 달리 집에서 지식과 정보를 먼저 습득하고 학교에서 실험, 토론, 문제 해결 프로젝트 등을 하는 일명 거꾸로 교육(flip-learning)이다. KAIST 등 일부 대학이 실시하지만 여전히 제한돼 있다. 

고성장 시대에는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성적 받으면 좋은 직장에 갔고 그걸로 좋은 삶이 제법 보장됐다.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게다가 100세 인생을 논하는 시대다. 좋은 학교 나온들, 좋은 성적 받은들, 좋은 직장에 간들 불안감에 떠는 게 현실이다. 고로, 틀리면 끝장인 시절을 견딘 우리에게 알파고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매년 수업료를 1000만 원이나 내는 대학에서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만 배우기엔 아깝지 않나요?”

3.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돌아온 이발소

‘청와대 3인방’ 중 핵심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쓰는 방은 박근혜 대통령의 집무실과 붙어 있다. 과거 남성 대통령들의 이발실로 쓰였던 공간을 개조한 것이다. 남성 대통령들은 바로 옆에 있는 이발실에서 머리를 다듬으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말 그대로 권력과 ‘지근(至近)거리’에 자리한 방이다.

미장원이 아줌마의 사교장이라면 동네 이발소는 남성의 사랑방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무반주 남성 4중창을 뜻하는 ‘바버숍 콰르텟’은 19세기 말 흑인 이발소에서 탄생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면서 손님들이 화음에 맞춰 흑인영가 포크송을 부른 것이 그 시발점이다. 1938년 바버숍하모니협회가 결성된 뒤 지금은 매년 아카펠라로 부르는 국제대회가 열릴 만큼 인종과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음악 장르가 됐다.

남녀 공히 미용실을 드나들면서부터 주변에서 이발소 간판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럴수록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도 커지는 법. 인천시가 2013년부터 ‘친근한 우리 동네 이발소 살리기’ 사업을 추진한 결과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참여한 15곳의 인테리어 개선, 기술 교육 등을 지원하면서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발소라고 하면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풍경이 떠오르겠으나 요즘은 고급화 추세로 주목받고 있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 많은 그루밍(grooming)족을 겨냥해 고급 이발소가 등장한 것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작년 패션매장과 결합된 세련된 복고풍 이발소를, 현대백화점 판교점도 이발 서비스 공간을 마련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한 서울 포시즌스호텔의 경우 최근 위스키를 마시면서 영국식 습식 면도와 이발 서비스를 받는 공간을 열었다. 면도 6만6000원, 면도와 커트를 합치면 13만2000원 등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발소는 서구식 ‘바버숍’임을 강조한다. ‘추억의 이발소’가 서서히 되살아나고 고품격 바버숍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걸 보니 ‘남성 화장품 소비 세계 1위 국가’란 사실이 새삼 실감난다.

4. [동아일보]2030 세상]내 아이가 살게 될 세상

연초에 배 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주변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부부가 워낙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기다림 없이 아이가 찾아왔다. 입덧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태아를 보며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아이를 좋아했던 나는 결혼하면 되도록 여러 명의 자녀를 낳겠다고 다짐했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결혼을 앞두고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아는 것이 병이다. 먼저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친구들을 보니 육아라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안아 주지 않으면 아예 잠을 안 자는 아기들도 있고, 젖병을 거부한 채 엄마 젖만 찾는 고집쟁이도 있었다. 조금 자라면 언제 어디서 말썽을 부릴지 몰라 늘 긴장 상태로 지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 때문에 출산 자체를 고민한 것은 아니다. 나와 남편, 넓게는 가족의 헌신으로 어떻게든 이겨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과거에 내가 인생의 중심이었다면, 당분간은 아이 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내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이 나라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 찾아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고, 재주를 살려 작지만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느끼긴 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어른들을 만나 빠르게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와 같은 ‘운’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0년 전 무렵에도 취업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는 소가 통과할 바늘구멍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 구멍이 더 작아지거나 아예 막혀 버린 것 같다. 어린 친척 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주변인들도 회사 사정이 나빠져 고용에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떨까. 제 앞가림은 하고 있지만, 금수저 아닌 부모를 만났으니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으로 던져질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어린이집 입소부터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기 적성이 있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부터 배워야 할 수도 있다. 더 자라 어른이 된 후에는 직업을 얻지 못해 고생할 수도 있고, 사회 격차가 심해져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눈물 흘릴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인 나의 인생도 문제다. 잠시 회사를 쉬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던 중 아이가 생겼다. 임신한 몸으로는 재취업이 쉽지 않은 데다 출산 후 사회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괜한 걱정은 넣어두라고 하신다. 하지만 부모라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세상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늘 다짐했던 대로 가정에서는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하고 싶다. 더불어 아이에게 “개인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선거에서 나를 위한 공약을 살폈다면, 이제부터는 내 아이를 위한 나라를 만들려고 애쓰는 곳이 어디인지 더 꼼꼼히 신경 쓸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작은 일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이 있다면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

5.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마음 읽기

친구와 함께 서울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회기역까지 가야 하니 꽤 먼 거리였다. 나는 앉고 친구는 내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니 옆자리 청년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작게 이야기해도 들릴 수밖에 없으니. 빈자리가 날 때마다 내심 옆자리 청년이 자리를 옮겨주길 바랐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이십 분쯤 흘렀을까. 그 청년 옆에 앉았던 아줌마가 다른 자리로 옮아가면서 청년에게 말했다.

“이리 앉아요. 두 분이 같이 앉아서 가게.” 

그 덕분에 친구는 내 옆에 앉았고 우린 그 아줌마를 향해 감사의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지하철에서 내린 후 우리가 그 청년의 장래를 걱정(?)해 준 것은 물론이다. 웬만하면 친구들끼리 나란히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해줄 법하련만 그렇게 눈치 없고 배려에 무딘 청년의 사회생활이 진심으로 걱정스럽기도 했다.

딸이 다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다. 소위 일류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 영 눈치가 없어서 서로 자기 부서로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소속된 부서로 발령을 받은 그 신입사원, 어느 날 조금 지각한 대리가 상사의 눈을 피하여 마치 화장실에 다녀오는 양 살며시 들어오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배꼽인사를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모두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어 무사히 넘어갈 뻔했는데 그 신입사원의 우렁찬 인사에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살금살금 들어오던 대리는 민망해 얼굴이 붉어졌지만 전혀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그 신입사원은 배운 대로 인사를 했을 뿐이니 태연했다. 그 이야기에 한바탕 웃고는 그 이후 종종 딸에게 그 눈치 없는 신입사원이 궁금해서 근황을 묻곤 했는데, 몇 년간 이리저리 부서 이동만 하다가 화려한 스펙을 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고 한다.

눈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즉, 남의 마음을 읽는 센스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익힐 기회가 없다. 남과 어울리는 경험이 적으니 눈치라는 걸 알 턱이 없다. 옆을 둘러볼 줄도, 나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그저 ‘공부 바보’로만 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었을 직장 새내기들,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읽어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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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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