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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4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20대 국회 '협치와 소통'므로 민생 돌봐야

20대 국회가 어제 개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민생 국회’를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3당 대표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할 것”이라며 소통·협력의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이 협치와 소통으로 민생을 돌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된다. 20대 국회의 순조로운 출발을 보는 듯해 반갑다.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어느 당도 일방적으로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없도록 여소야대의 3당 체제를 선택했다. 갈등과 대립의 구태에서 벗어나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한목소리로 국민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시간을 허송하지 않고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국회상을 정립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걱정이 없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서별관회의, 어버이연합 지원, 정운호 게이트 등의 청문회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과 갈등이 예고돼 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 조선·해운 구조조정, 노동 및 공공개혁 등을 둘러싼 힘겨루기도 심상치 않다. 자칫 협치는 고사하고 국회가 파행할 수도 있다. 내년의 대통령선거도 생산적 국회에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우리 현실은 경제·안보의 동시 위기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이다.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가계부채 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여부 등 대외환경도 불안정하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대북제재로 얽힌 한반도의 외교 및 안보 지형도 불투명하다. 어느 하나 녹록한 과제가 없다.


20대 국회가 난제를 극복하고 민생국회로 거듭나려면 대립과 갈등의 패러다임을 벗어던져야 한다. 국민의 명령인 협치와 상생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정 의장은 “도탄에 빠진 민생경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치유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상황’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2. 혁신은 뒷전이고 감투싸움에만 몰두한 與

새누리당이 혁신의 방향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총선 참패 뒤 혁신이 필요하다고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정치공학적 이해 앞에선 본인과 계파 이익에 매달리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친박계의 보이콧으로 무산된 뒤 새로 출범한 김희옥 혁신비대위는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우려했던 ‘관리형 비대위’ 전락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중진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싸움에 몰두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지난 10일 새누리당 정책 워크숍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뜻을 받들어 혁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출범 2주가 돼 가도록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다. 당면 과제인 계파 청산과 무소속 의원 복당은 실질적인 진전이 없고, 비대위원장으로서 구체적인 쇄신안도 내놓지 못했다. 청년 간담회 등 민생 일정이나 소화하고 있다. 민생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비대위원장이 혁신을 제쳐 놓고 다닐 만한 행사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친박, 비박계 중진 의원들을 만나 계파적 이해를 조정하고, 쇄신을 위한 실천 방안들을 하나씩 내놓아야 할 때라고 본다.


당 혁신은 지지부진한데 중진 의원들은 상임위원장 감투싸움에만 몰두했다. 새누리당은 어제 20대 국회 전반기를 이끌어 갈 상임위원장 후보들을 결정했다. 기획재정위원장에는 4선의 조경태 의원, 안전행정위원장에는 3선의 유재중 의원이 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나머지 상임위원장은 의원들 간 조율을 통해 결정됐다. 선출 과정에서 내홍이 극심했다. 상임위원장 후보군인 3·4선급 의원들이 너나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조율이 안 돼 경선으로 가거나, 임기를 쪼개 맡는 기형적 모양새를 연출했다. 법사위원장은 권성동·여상규 의원이 1년씩 나눠 맡기로 했고, 나머지 2년은 홍일표 의원이 책임지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과 정무위원장, 국방위원장, 정보위원장도 임기가 1년씩 쪼개졌다.


상임위는 행정 부처의 정책과 법안을 심의, 의결하는 국회 핵심 기관이다. 위원장에게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데 지역구 예산 우선 배정 등 각종 특혜만 생각하고 몰려들어 이런 사태를 부른 것이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혹독하게 변신하라’는 민의를 확인했다.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야 하고, 그 후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매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혁신이 지체될수록 지지층만 떨어져 나갈 것이다.

3. 방위산업까지 해킹한 北, 언제까지 당할 텐가

북한이 한진그룹과 SK그룹 계열사들의 전산망을 해킹해 무려 4만 2608건의 자료를 빼내 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10개사와 SK네트워크 등 SK그룹 17개사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대상이 됐다.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이 주력 사업이지만 방위산업을 비롯한 항공우주 분야 사업 규모도 적지 않다. SK그룹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국가 기간산업이나 다름없는 정보통신과 에너지 분야를 대표한다. 유출된 자료 가운데는 군 통신망 자료와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의 날개 설계도도 들어 있다. 개별 기업의 기밀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고 걱정스럽다. 북한은 정보통신 대기업 KT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시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북한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북한은 우리 업체가 개발한 개인용컴퓨터 통합관리망을 사이버 침투에 이용했다고 한다. 관리자가 원격으로 다수의 개인용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어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소프트웨어다. 실제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대기업 등 모두 160곳의 통합관리망이 북한의 공격에 뚫렸다. 이렇게 북한의 통제 아래 들어간 개인용컴퓨터가 모두 14만대에 이른다. “북한이 국가적 규모의 사이버 테러를 계획하면서 장기간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수사 당국의 설명이다. 2013년 9000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킨 ‘3·20 사이버’ 테러 당시 이용된 개인용컴퓨터가 4만 8284대였다. ‘통합관리망 테러’가 현실화됐다면 사회적 혼란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지만 이미 한진과 SK가 입은 사이버 테러의 규모는 작지 않다. 나아가 북한이 탈취한 정보를 활용해 우리에게 어떤 타격을 가할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2009년 정찰총국을 창설해 사이버 테러에 나서고 있다. 정찰총국의 최정예 해커는 3000~4000명에 이르고, 해마다 수백 명씩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 후진국인 북한이지만 사이버 공격 능력만큼은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평가되곤 한다. 반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능력을 자랑하지만 보안에는 취약하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사이버 테러를 당장 멈춰야 한다. 정보통신 능력이 있다면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써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도 사이버 도발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북한이 깨닫도록 보안 능력을 키워야 한다.

4. '한국판 말뫼의 눈물' 막을 협치 요청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20대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국민을 위한 일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국정의 한 축을 든든히 받쳐 달라고 20대 국회에 당부했다. 국민이 바라는 ‘화합’과 ‘협치’를 위해 국회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개원사를 통해 “국민이 내린 준엄한 명령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청산하고 서로 합심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국회가 실질적으로 국정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20대 국회의 이 같은 ‘협치선언’이 군더더기 없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첫 번째 협치 과제로 ‘발등의 불’로 떨어진 구조조정을 꺼내 들었다.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비장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지금 구조조정을 해 내지 못한다면 2000년대 초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단돈 1달러에 핵심 설비인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이제는 우리의 눈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말뫼 주민들은 해체돼 팔려 가는 골리앗 크레인을 지켜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을 중계하던 현지 방송은 장송곡을 함께 내보내 스웨덴 조선산업의 종말을 알렸다. 그 비극이 지금 울산과 거제에서 재연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산업 구조조정은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기업과 채권단이 ‘사즉생’의 각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실직자 재훈련 등 정부의 보완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국회의 도움과 협조를 정중하게 요청했다.


사실 “국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거나 “국회가 혜안을 가지고 뒷받침해 주시길 바란다”는 박 대통령의 표현은 국회, 특히 야당을 윽박지르고 질타하던 19대 국회 때에 비해 확연하게 부드러워졌다. 여소야대, 3당 체제의 국회에서는 야당의 협조가 없이는 그 어떤 국정 과제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했겠지만 국회를 이제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겠다는 대(對)국회 인식 변화의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국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정 운영을 펼치겠다는 다짐을 넘어 실천적 조치들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위기의 진단과 해법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관건은 진정한 소통을 통해 그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한다면 이견을 차츰 좁혀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또다시 구조조정을 미적댄다면 울산과 거제의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려 나가 한국 조선산업의 종말을 고하는 ‘울산의 눈물’ ‘거제의 눈물’이 현실화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맞대 한국판 ‘말뫼의 눈물’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국민이 바라는 정치다.

[동아일보]

5. 이슬람·동성애·총기… 美 뇌관 터뜨린 反인륜 테러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게이클럽에서 12일 새벽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총기난사로 104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범인 오마르 마틴은 범행 직전 한국의 119 격인 911에 전화를 걸어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충성서약을 했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다. IS는 자신들과 연관이 없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범행을 독려하기 위해 911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충성맹세를 공표하기만 하면 IS의 테러로 인정해 준다. 평소 조울증세가 있고 동성애를 혐오했다는 그가 어떤 동기로 범행을 자행했건,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반(反)인륜적 범죄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이번 테러는 동성애자들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테러 행위이자 증오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이슬람권에선 동성애를 도덕적 일탈을 넘어 중대한 범죄로 보는 경향이 있다. 2001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9·11테러 충격이 가시지 않은 미국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다시 불붙고 성적(性的) 소수자와 총기 규제 문제를 놓고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11월 미 대선에도 후폭풍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테러를 막기 위해 무슬림 입국 금지, 미국 내 무슬림 데이터베이스화 등을 공약해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테러 예방에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며 자기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이슬람 관련 언급을 삼간 채 동성애자에 대한 지지를 거듭 밝히며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이번 테러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리더십이 미국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지 세계가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같은 총기 소유가 불가능하지만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터뜨리는 ‘외로운 늑대’에 대한 대비는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미국이 이번 참사에 결코 굴하지 말고 다양한 인종과 종교, 가치 등을 포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충격과 슬픔에 잠긴 미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보낸다.

6. 기업부채 2위 중국에 IMF 경고, 3위 한국은 괜찮은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8개 신흥국 중 1위(88.4%), 기업부채 비율은 홍콩(213.7%) 중국(170.8%)에 이어 3위(106%)라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어제 밝혔다. 중국의 가계, 기업, 정부 부문을 합한 부채 비율은 254.8%로 미국(250.6%)을 처음 넘어섰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 정부가 부채 억제에서 실패하면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중국발(發) 부채 리스크가 통계로 확인됐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을 돌파하고 기업부채가 1700조 원에 이르러도 경제 규모가 커진 데 따른 ‘성장통’이라고 뭉뚱그리면 위기감은 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주목할 점은 중국 변수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은행 빚을 무리한 인수합병(M&A)과 설비투자에 퍼부어 성장률을 끌어올려 왔다. 성장이 벽에 부닥치자 부실채권이 쌓이면서 이제 정치권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중국의 부채가 터지면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성장이 멈출 뿐 아니라 지금까지 관리해 왔던 ‘안전한 부채’가 시한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정부가 이를 소비 회복의 기폭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한쪽 면만 보는 단견이다. 돈이 경제 회복에 물꼬를 트는 쪽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분야로만 흐른다면 금리 인하는 경제의 거품만 키우는 임시 진통제일 뿐이다. 한국은 부채 주도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고 고령화로 구조적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모건스탠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가.


정부는 중국발 부채 위기를 주시하면서 국내 부채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국내에서 빚을 진 가계 중 빚을 갚기 힘든 한계 가구가 무려 160만 가구다. 기업 부실채권에 대해 충당금을 충분히 쌓는 한편 부동산 관련 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인기를 끌기 힘든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부채의 질이 양호하다”고 하는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 “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고 했던 보신주의와 다를 게 없다.

7. 20대 국회, '87년 체제' 바꿀 개헌논의 시작해보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어제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 언제까지나 개헌을 외면할 수는 없다”며 개헌론을 공식 제기했다. 정 의장은 개헌의 목표를 국민 통합으로 제시하면서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의장이 개원 일성(一聲)으로 개헌론에 불을 붙인 것은 대통령선거를 1년 반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6개 사회단체 연합체인 국가전략포럼도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의 특강을 열었다.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5년 대통령 단임제를 30년간 시행하며 6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 없다”며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선되고 나면 더는 민심을 살필 필요가 없다는 오만과 5년 안에 치적 쌓기에 급급한 정책, 필연적 레임덕과 퇴임 후를 대비한 대못 박기 등이 대통령들을 불행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개원 연설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에 대해 ‘국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본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32.7%) 또는 차기 정부(41.1%)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4·13총선 민의가 만든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는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바꾸라는 경고등이다. 대통령도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 만큼 이제는 판을 바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나누고, ‘제왕적 국회’의 책임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과거 이명박, 박근혜 후보처럼 강력한 미래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개헌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은 차기 주자가 안 보이는, 사실상 불임(不姙) 상태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끊임없이 ‘반기문 대통령, 친박 실세 총리’를 염두에 둔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나오는 이유다. 개헌론을 제기한 정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개헌을 전제로 한 ‘대선 결선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임기 후반 대통령의 개헌 추진은 ‘권력 연장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만큼 20대 국회 주도로 개헌의 큰 그림을 논의해 볼만하다.

[매일경제]

8.한·미FTA 내세운 美 통상압박 치밀한 대응책 마련해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미국의 보고서에 한·미 FTA 성과에 대한 비판과 시정 요구가 담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이 각국과 체결한 FTA의 영향을 분석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평가보고서로 오는 29일 공개될 예정이다.


미국 대선에서 각 당 후보들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갈수록 커지고, 양자 간 FTA 체결 후 미국의 무역수지가 가장 악화된 대상 국가로 한국을 꼽는 민간 연구소 분석까지 나와 우리를 향한 통상 압박이 커질 조짐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283억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132억6100만달러였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눈에 띄게 적자 폭이 커진 셈이다. 이런 점을 겨냥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한·미 FTA로 적자만 오히려 늘었다며 재개정을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간 교역 내용을 세밀하게 뜯어보면 미국의 주장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수출 증가에서는 한·미 FTA 영향을 받는 품목보다 그러지 않는 품목이 더 많이 차지한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액은 미국 기업의 대한(對韓) 투자액의 두 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미 FTA 이후 서비스수지에서 한국에 압도적인 흑자를 기록해 2015년의 경우 114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기업의 특허권료 수입이나 유학생 송금 덕분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집계로는 미국의 대한 서비스 분야 무역흑자는 2011~2015년 14% 증가한 반면 같은 분야 한국의 대미 흑자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내년부터 미국의 셰일가스가 한국에 수출되기 시작하면 현재의 무역수지 불균형은 곧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이번 보고서를 내세워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등 기존의 무역규제 외에 환율조작에 대한 제재, 지식재산권 보호 관련법 집행 등 고강도 대응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적극 나서 미국 조야와 업계에 양국 교역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협의해 부당한 통상 압박이 더 고조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무분별한 보호무역주의에 감정적으로 맞서지 말고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를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9. 국회-정부 개헌시기와 방향 시각차부터 해소하라

20대 국회가 개원한 13일 여소야대 정치 지형에 맞춰 '협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와 동시에 '개헌'이라는 거대담론도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내년이면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째가 된다며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세미나도 열렸고 김무성 이주영 김영춘 등 여야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새 국회 출범을 계기로 개헌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정부 분위기와는 또다시 엇박자가 느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20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지금 우리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조정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문제를 거론하며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노동개혁법 처리를 촉구했다.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기 위한 핵심 열쇠는 규제개혁"이라면서 규제개혁특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도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0월 국가 역량을 분산시키는 블랙홀이라고 지칭하며 개헌론에 제동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 이날도 규제를 12차례, 일자리와 구조조정을 각각 11차례 언급하면서도 개헌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정세균 의장과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모두 정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라며 국회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앞에 놓인 소중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도 했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국회 의욕만으로는 힘든 과제다. 19대 국회 때에도 2012년 말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발족됐고 이 모임 소속 의원 수가 한때 155명으로 개헌안 발의 기준을 넘기도 했다. 2013년 5월에는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 직속 '개헌연구회'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각종 사건사고 속에 국민적 관심과 추동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경제 살리기이든 개헌이든 그것을 추진하는 데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차기 대선을 1년6개월가량 남겨둔 지금은 어느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회와 정부가 20대 국회 개원일을 맞아 한목소리로 협치를 강조했는데 그러려면 개헌을 비롯한 국정과제의 우선순위에 대한 시각 차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10. 구조조정 가로막는 대우조선 노조, 공멸하자는 건가대

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특수선 사업 분할 및 인력 2000명 감축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 자구계획안에 반발하며 전체 조합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일방적인 구조조정 저지와 총고용 보장을 위해 찬반 투표에 나섰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오는 17일 파업을 위한 임단협 쟁의 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이들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 납기에 차질이 생겨 조 단위 추가 손실이 불가피하다.


지난 8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11조원 규모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대신 조선 3사에 대해 인력 30% 감축, 설비 20% 축소, 자회사 매각 등 10조3500억원 규모 자구계획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는데 첫발을 떼기도 전부터 노조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부터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실제로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 경영진과 회계법인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뒤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을 합쳐 7조원 넘는 돈이 투입됐음에도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 회사로 전락한 경위가 소상히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년 한 해에만 영업적자 5조5051억원을 기록하고 부채비율은 7300%를 넘어선 데다 추가적으로 국민 혈세 수조 원을 투입받아야 할 회사의 노조가 자구계획 자체를 반대하면서 급기야 파업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행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우조선 노조는 특히 지난해 10월 4조2000억원을 긴급 지원받으면서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채권단에 제출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약속마저 내팽개친다면 국민이 혈세 투입을 용납하겠는가.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경영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평균 7000만원대의 고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며 철밥통을 과시해왔다. 당장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는 하도급업체와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노조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 살리기에 앞장서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현경숙의 시각> 변화의 DNA

태국에 근무했던 공공기관 주재원은 그곳에 사는 재미 중 하나로 옷값이 거의 안 든다는 점을 꼽았다. 반소매 셔츠와 반바지 서너 벌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다. 사계절 무더운 날씨 때문에 화려하고 비싼 옷은 별 소용 없다. 1년 내내 기후 변화가 없으니 국민 성격도 기복이 없다. 느긋하고 놀라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그저 마음 좋게 웃는다. 


한국 조직폭력배는 태국서 힘자랑, 무기 자랑하지 않는 게 좋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여유로운 태국인들은 먼저 화를 내거나 상대를 치지 않지만, 정말 분노했을 때는 무기를 들며, 반드시 이를 사용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무기로 위협하면 자신을 향해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파악한다. 한국 영화 속 '조폭'처럼 "너 맛 좀 볼래"라며 흉기를 흔들어대거나 약을 올리면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간주하고 바로 공격한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위협을 위한 위협을 하다간 큰코다치기 쉽다.


이런 데서 볼 수 있는 차이는 기후 등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이 성격 급하다거나 기분이 잘 바뀐다는 것은 뚜렷한 사계절 덕분 아닐까. 가마솥더위, 얼어 죽을 수도 있는 혹한 등 3개월 마다 바뀌는 계절로 인해 한국인에겐 변화에 대한 적응력, 임기응변, 순발력이 유전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서울 한복판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을 기점으로 삼청동, 북촌, 서촌, 부암동, 평창동으로 뻗을 조짐을 보이던 일종의 문화 벨트가 몇 년 만에 완연한 모습을 갖췄다. 윤동주문학관, 청운도서관, 서울미술관, 화랑, 개성 있는 음식점과 찻집, 게스트하우스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곳곳에서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서울이 거의 통째로 아파트촌으로 변한 바람에 단독주택들이 남아있는 이런 동네 말고는 '그림 되는' 장소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게 방송계 인사의 설명이다. 주말이면 연인, 부부,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담벼락에 난, 별것도 아닌 꽃과 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찾는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데서 온 변화다. 


인간사회만 빨리 바뀌는 게 아니다. 그 속의 사람을 닮은 듯 한국은 자연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분지와 계곡에 들어앉은 부암동은 계절이 영화 장면 넘어가듯 한다. 도심보다 기온이 2~3도 낮아 강원도 산골 속 같은 겨울이 끝나면 인왕산 둘레길과 북악스카이웨이를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휘감는가 싶은데, 어느새 아카시아가 산을 꽃으로 하얗게 뒤덮고 아찔한 향기로 진동시킨다. 울긋불긋 꽃 대궐이 스러지는 게 안타까워지려고 하면 꽃보다 어여쁘고 파릇한 신록이 천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인다. 5월에는 '꽃보다 신록'이다. 성하의 문턱 6월 북한산 형제봉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우람하게 무성해진 숲과 당당한 바위들에 둘러싸여 천 년의 반석 위에 앉은 듯하다. 수십 년 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개발 속에서 북한, 인왕, 북악이 서울의 '허파'로 건재함에 안도한다. 


3년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가장 낯선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광화문 세종로를 오가는 인파의 무표정과 그들 사이에 부는 찬바람이다. 서울은 우울하고 기운 없어 보였다. 저성장과 양극화가 현재를 규정하는 새 기준이 되고, 실업은 젊은이들에게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더는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단다. 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같다. 2004년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승리의 감격과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 희망과 활력으로 떠돌고 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10년 만에 딴 나라로 변했다.


부익부 빈익빈, 정규·비정규의 '이중 국민' 구조는 이미 굳어진 걸까. 한국인의 변화 유전자(DNA)에서 답을 찾는다. 우리 국민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봄을 맞기 위해 춥고 긴 겨울을 견디는 것이 체화돼 있다. 역동적일 뿐 아니라 평등의식도 강하다. 사촌이 땅 사면 나도 사야지 가만히 있지는 못한다. 'IMF' 위기 때 시작된 양극화가 더는 악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빈부, 계층 격차가 손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도 변화를 직감하게 한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3명 중 1명이다. 이 추세라면 비정규가 정규가 될 판이다. 자살률, 노인 빈곤율, 저출산, 이혼 증가율,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등 권이다. '묻지 마 범죄'는 분노한 민심의 단면이다. 비정규직, 하도급 근로자들의 자살과 사고로 인한 죽음의 행렬은 이대로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보인다. 여야는 4·13 총선에서 경제, 복지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했고 선거 결과는 내년 대선을 예측불허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나 별로 진전되지 못한 경제민주화는 다음 대선에서도 중심 화두가 될 것이다. 양극화 해소, 고용의 질과 환경 개선은 저성장 탈출과 함께 이제 시대정신이 됐기 때문이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우선이냐의 소모적 논쟁은 중단돼야 한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가 됐다. 우리에겐 70, 80년대 산업화를 위해 흘렸던 피땀, 위기 극복의 '금 모으기' 전설이 있다. 국민은 나라를 위해 움직일 태세가 돼 있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지도자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국민의 성원을 업고 '세계의 리더'가 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대권 도전을 시사해 한국인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대권 의지가 시대정신을 통찰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애국심의 발로이지 항간의 소문대로 하늘을 찌르는 욕심 때문이 아니길 바란다. 

2. [국민일보][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무기력과 의지

얼마 전 한 부모님이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찾아오셨다. “얘만 보면 속이 터져요. 의욕이나 열정이 없어요. 선생님이 뭐든지 좀 하고 싶게 만들어주세요.” 아이의 ‘무기력’한 상태를 참다못해 전문가를 찾아와 ‘하고 싶은 의지’를 주입해달라는 것이다. 상담실 소파에 기대어 사색에 잠긴 듯 한곳을 응시하는 아이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아무 것도요. 그냥 멍 때리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이 잘 쓰는 말이다. 바람의 대상이 ‘아무 것도 안하는 상태’이고 이런 수동적 상태에 ‘적극적으로’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역설적이다. 결국 아이들의 무기력은 불가항력적임과 동시에 다분히 자기가 결정하는 ‘의지적 무기력’이기도 하다. 가장 활기차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야 할 청소년기에 이들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걸까.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스스로 지향할 때 의지가 발동되기 마련이다. 무기력은 그 지향의 대상이 결여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무기력은 주어진 과제(학업)나 일상(학교 가정)이 자기 스스로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예를 들어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것’은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당위적 목표이지만 아이에게는 부모의 욕망을 투사해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당연히 ‘적극적 거부’의 표현인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의지를 발동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인간의 의식이 항상 무언가를 지향하는 특성이 있듯이 모든 아이들의 내면은 분명 어떤 형태의 지향점에는 열려있기 마련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당위적 공부, 당위적 성공’ 이전에 자기 스스로의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어떤 것도 미리 결정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데에는 부모의 여유와 기다림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아이들이 일상을 멈추고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여행이나 휴식도 매우 효과적이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는 작품과 함께 죽어야 한다’고 썼다. 그래야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만 남는 기호와 이미지일 뿐이다. 새로운 세대에는 늘 새로운 포도주가 주어진다. 새 부대를 만들고 그것을 담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며 그 방법을 찾는 순간 그들은 주체적으로 의지를 발현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아이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의지의 씨앗이 있다. 그것은 기다림과 지지의 환경에서만 싹을 틔운다. 아이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욕구와 의지를 찾아 발견하기 전에 섣불리 방향을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해서는 결코 튼실한 싹을 틔울 수 없다. 무기력은 바로 그러한 기다림과 지지를 갈구하는 아이들의 적극적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3.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판정에 흥분하는 한국인 vs 자책하는 서양인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테니스광이다. 공 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배웠다. 첫 라켓을 들게 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시작해 ‘테니스 바이러스’에 일찍 걸렸다. 학창 시절 내내 규칙적으로 쳤고, 특히 사춘기 몇 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테니스클럽에서 열심히 훈련받았다. ‘플레이 테니스’란 전문 월간지를 구독하기도 했다. 매달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잡지가 우편으로 도착하자마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 자리에서 읽곤 했다. 봄, 여름 대회에도 몇 번 나갔는데 벨기에는 테니스가 워낙 인기 스포츠라 경쟁이 심했다. 괜찮은 랭킹에 이른 적은 없지만, 늘 즐겁게 쳤다. 


젊은 테니스광으로서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1989년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이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던 어린 아웃사이더 마이클 창 선수가 천재적으로 우승한 해였다. 그리고 1년 뒤 1990년 6월에 벨기에 학교 선생들이 총파업을 해서 롤랑가로스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파업이 며칠밖에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결국 거의 한 달간을 학교에 못 갔고, 그해 기말고사조차 취소됐다. 한국인에겐 상상도 안 되겠지만, 당시 프랑스어권 벨기에 초중고교 학생들이 모두 한 달 동안 집에서 빈둥거렸다. 나는 프랑스오픈 경기를 2주 동안에 걸쳐 하루 종일 TV로 봤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볼 수 있는 게임은 빠짐없이 다 본 것 같다. 밤엔 하이라이트도 다시 보고. 


그러다 대학생 때는 열심히 노느라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테니스를 무시하게 됐다. 한국에 올 때도 테니스 라켓을 갖고 왔지만, 3년간 한두 번밖에 만지지 않았다. 한국 직장생활에 휩쓸려 테니스 친구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2008년 운이 좋게 다시 규칙적으로 주말에 공을 치게 되며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졌던 내 안의 ‘테니스 바이러스’가 갑자기 깨어나게 됐다. 그동안 테니스를 그리워했던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다시 시작해 보니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듯 행복함을 느꼈다. 게다가 한국인과 함께 치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 사람은 서양인과 다른 방식으로 테니스 게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우선 유럽에선 단식이 기본이지만, 한국은 거의 복식으로만 친다. ‘서울에 테니스장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한국인의 사교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복식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한국 사람은 운동할 때도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코트 옆에 기다리는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는 것도 흔한 일이다. 테니스장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착하게, 젠틀하게 치는 편이라면 서양인은 기본적으로 경쟁심이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경기를 할 때 상대방이 쉬운 공을 실수로 ‘낭비’하게 되면 ‘생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세서 질 줄 모르는 유럽인에겐 기분 나쁜, 도발적인 발언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서로 그런 말은 아예 삼간다. 


테니스장에서 소리 내 고함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인은 플레이가 잘 안 되면 자기한테 스스로 화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흔하다. 반면 한국인은 보통 다른 선수랑 논의할 때 제일 시끄럽다. 공이 라인에 닿았는지 아웃인지를 판단할 때 흥분한다. 선수 네 명, 그리고 옆에 있던 선수들까지 흥분해선 강하게 논쟁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하는 편이며 쾌활하다.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또 재밌게 치는 편이다. 


테니스 동호회 덕분에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되찾게 됐다. 이제 테니스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여전히 가끔 유튜브에서 테니스 동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테니스광이다. 지지난주 서울시청 앞 ‘롤랑가로스 인 더 시티’에 두 번이나 갔다. 거기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야외 생방송을 즐겼다. 테니스는 직접 치든 관람을 하든 멋있고 흥미로운 스포츠다. 몸 관리만 잘하면 60, 70대까지 계속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우리 아버지는 현재 67세인데, 아직도 매주 테니스를 치신다. 나도 그러고 싶다.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게 행복하게 나이 먹는 방법인 것 같다.

4. [중앙일보][삶의 향기] 매력 <魅力>

매력은 종잡을 수가 없다. 따듯한 사람도 냉철한 사람도 매력이 있을 수 있다. 우아해서 좋은 음악도 있고 애절함으로 마음에 파고드는 음악도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가고 싶은 거리도 있고 복닥복닥 사는 모습이 발걸음을 잡아당기는 장터도 있다. 후더분한, 뾰로통한, 고색창연한, 구성진, 유머러스한 등이 모두 매력이란 말 앞에 올 수 있으니 매력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인가?


매력은 압도해 오는 무엇이 아니다. 끌어당기는 무엇이다. 더 보고 싶고 더 잘 듣고 싶어서 다가가게 하는 힘이다. 굳이 크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크기로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능가할 수 없고 완벽하기로야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이들에게는 ‘매력 있다’는 말보다 다른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그에 비하면 담양의 명옥헌이나 쇼팽의 녹턴은 작고 소박한 정자요 음악이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끌어당긴다.


작고 소박해도 매력에는 대책이 없다(매(魅)자에는 귀신이란 뜻이 들어 있다). 애써 피하려고 해도 자꾸 눈길이 간다. 게다가 느닷없이 마음에 들어온다. 설명도 예고도 없이. 그냥 꽂힌다.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저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하루 종일 그 선율이 흘러나오는 그런 것이다.


매력은 쉬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불암의 터프한 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음악도들은 저도 모르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흉내 낸다. 어린 시절 나는 슈베르트의 곡을 빼다 박은 곡을 쓰곤 했다. 그러나 스승들은 ‘나다운’ 것을 발견하라고 권하셨다. ‘나다움’이 없으면 그 음악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채 형성되지 않았으니 내가 누군지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슈베르트를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버렸어도 내가 좋아했던 음악가들의 자취는 두고두고 남았다. 그 남아서 버릴 수 없는 것이 지금 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체취 같은 것이다. 체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만일 그 체취가 페로몬같이 다른 곤충을 끄는 힘을 가졌다면 그것이 매력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매력은 향수나 명품과는 다르다. 아무리 골라도 그것들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냄새와 치장으로 나를 꾸미기 때문이다.


‘나답다’는 것은 ‘자연(自然)’스럽다는 말이다. 매력은 자연스럽다. 따듯한 사람은 저절로 따듯한 것이고 터프한 사람은 저절로 터프한 것이지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꾸밈은 매력이 될 수 없다. 중국의 산시(山西)성에 여행했을 때의 얘기다. 한 도시에 갔더니 멋진 ‘옛 중국다운’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새로 지은 관광용 거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망하는 나에게 동행한 사람의 얘기가 재미있었다. “이 거리가 지금은 사이비 전통거리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진짜 역사거리라고 우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까? 오래 가꾼 ‘나다움’이 아니라 새로 꾸민 ‘나다움’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것이 되는 것일까?


왜 매력을 찾는가? 끄는 힘이 곤충들에게는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멀리 있는 짝을 유혹해서 짝짓기를 해야 종의 번식이라는 절체절명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물론 인간에게도 성적 매력은 중요하지만 ‘삶의 향기’에서 말하는 향기가 그런 페로몬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돈도 사람을 끈다. 그러나 매력을 추구하는 것은 부유해지자는 것과 다르다. 또 부유해진다고 매력 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따금 마을 입구의 큰 돌이 타이르듯 “바르게 살자”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으로 살고 건전한 거리 문화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캠페인은 자칫하면 그냥 꽂히는 소소함이나 사람마다 다른 체취나 오랜 숙성이 필요한 ‘나다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매력이 없어지는 빠른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보니 매력은 결국 ‘나다운’ 삶에서 나온다.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이 나에게 모인다. 하나의 작가가 되는 과정과 다름없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완성해 가는 작가이다.

5. [중앙일보][권석천의 시시각각] "날 강간한 범인은 술이 아니다"

“‘강간 피해자(Rape Victim)’라고 적힌 서류에 사인을 하고 검사를 받았어. 몇 시간 후 샤워를 했어. 흐르는 물줄기 속에서 내 몸을 보았어. ‘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야.’ 무서웠어. 내 몸을 재킷처럼 벗어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병원에 놔두고 오고 싶었어.”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남성인 나는 성폭행 당한 여성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단지 짐작할 뿐이다. 그 인식의 한계를 알면서도 ‘에밀리 도우’란 가명으로 불리는 23세 미국 여성의 용기에 몇 자 적고자 한다.


“모든 걸 잊어 보려고 했어. 말을 할 수 없었고, 먹지 못했고, 잠들지 못했어. 퇴근 후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을 찾아가곤 했어.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봤어. ‘그는 여성이 성관계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원했다고?”


지난해 1월 17일 동생을 따라 파티에 갔던 에밀리는 다음날 새벽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다. 범인은 대학 수영선수 브록 터너(20). 에밀리는 법정에서 터너를 향해 7244 단어의 진술서를 읽는다. 판사는 지난 2일 징역 6월, 보호관찰 3년의 가벼운 처벌을 한다. 뒤이어 터너의 아버지가 ‘20년 인생에서 20분간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 가혹하다’는 탄원서를 낸 사실이 드러난다.


“성폭행은 사고가 아니야. 너는 ‘술에 취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없었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지. 술은 변명이 될 수 없어. 내 옷을 벗기고, 나를 만지고, 내 머리를 땅에 질질 끌었던 건 술이 아니야.”


이제 교사 성폭행 사건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남성 세 명에겐 중형이 선고될 것이다. 만약 ‘교사, 학부모, 섬마을’이란 키워드를 뺀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달 대전고법은 또래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중학생 10명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깼다. “나이가 매우 어리다”며 3명의 형량을 깎고 나머지 7명은 가정법원 소년부로 보낸 것이다. 지난 1월 인천에선 술에 취해 잠든 10대 여성을 성폭행한 20대 4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에는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 후배를 성폭행한 대학생 3명이 항소심에서 징역 4~6년에서 징역 3~5년으로 감형됐다.


“너는 내게서 삶의 가치, 사생활, 열정, 시간, 안전함, 친밀감, 자신감, 나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았어. 네가 평판을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매일 밤 숟가락을 냉장고에 넣어둬.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눈물로 눈이 부어 있거든….”


판사들은 “죄질이 나쁘다” “피해가 심각하다”면서도 초범, 반성, 학생이란 이유로 정의를 선언하지 않는다. 조두순 사건 이후 음주 감경을 할 수 없게 되자 음주 성범죄에 ‘우발적’이란 딱지를 붙인다. 법전을 펼치면 강간은 ‘3년 이상 유기징역’, 강간 등 상해·치상과 2명 이상 강간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다. 판사들은 양형(형량 결정)기준 뒤에 숨지 말고 국회가 만든 법대로 선고해야 한다. 1심에서 고심하며 선고한 형량을 항소심에서 줄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저는 매일 당신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니 절대 싸움을 멈추지 말아 주세요. 작가 앤 라모트가 말했듯 등대는 배를 구하기 위해 배가 가는 길을 늘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서서 빛을 비출 뿐이죠. 저는 희망합니다. 당신이 한 줌의 빛을 품은 사람이기를. 당신이 침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를.”


글은 힘이 세다. 에밀리가 쓴 편지의 힘으로 한국의 남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강간범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함께 숨 쉬고, 웃고, 떠들며, 분노하던 친구, 동료·선후배다.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그림자다. ‘순간의 실수’ ‘충동을 못 이긴 사고’라고 안타까워하고 “여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수군대는 마음에서, 성폭력을 욕하면서 즐기는 그 마음에서 성범죄는 자란다. 남성들에게도 한 줌 빛이 있다면 그것은 한때의 분노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반성,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에 등을 돌리는 연습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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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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