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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퇴직자 85%가 대기업·로펌에 간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가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재취업하는 부작용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공피아’(공정위 마피아)란 말이 따로 있겠나. 공정위 고위직의 대기업 재취업이 갈수록 더 공고해지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는데도 퇴직자들의 대기업·로펌행이 기승을 부린다는 조사 결과는 난감할 정도다. 최근 5년간 공정위 4급 이상 고위직 퇴직자 중 재취업자 85%가 대기업이나 로펌에 몸담았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 심사 현황을 파악한 결과다.

재취업자 20명 중 13명은 삼성카드, 기아자동차, 현대건설 등 대기업으로 옮겼다. 4명은 김앤장, 태평양, 광장, 바른 등 국내 최대 로펌에 합류했다. 대기업의 위법 행위를 감시하던 사람들이 퇴직한 뒤 안면을 싹 바꿔 기업의 방패막이로 둔갑한 셈이다. 대기업들이 ‘자문’, ‘고문’, ‘위원’ 같은 한가한 직함을 달아 주고도 그들에게 고액 연봉을 안기는 셈법은 빤하다. 공정위 전관들이 친정에 입김을 발휘해 주면 어마어마한 과징금 감면 혜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뭉칫돈이 걸린 대기업 과징금 소송을 도맡는 로펌 쪽에서도 공정위 전관들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근년 들어 공정위의 과징금 패소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패소해 기업에 되돌려 준 돈은 2012년 111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126억원으로 30배 가까이 뛰었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이런 현상이 공피아와 무관하다고는 누구도 보기 어렵다. 재취업한 전관들이 활약할 여지를 주려고 공정위가 알아서 거품 낀 과징금을 매긴다는 소문이 나돌 판이다.

법조계 전관예우가 고질이지만 공피아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가격 담합, 허위 광고 등 흔한 사례들에서 보듯 대기업 불공정 행위는 민간 소비자들의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면죄부를 챙겨 주는 뒷거래는 두고 볼 수 없는 사회악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구멍 난 제도가 공피아의 극성을 방관한다는 비판이 크다. 공직자윤리법이 고위직 공무원의 퇴직 후 재취업 범위를 제한한다지만 그래 봤자다. 공직자윤리위의 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한 예외 조항이 있는 한 눈 가리고 아웅일 수 있다. 예외 조항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계속 들린다. 행정자치부는 말 많고 탈 많은 예외 조항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왜 없는지 궁금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의심을 더 받아야 하겠나.

2. 대한민국호 복합위기, 민관 하나 돼 헤쳐나가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후폭풍이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양상이다.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반(反)세계화 흐름이 확산된다면 그나마 수출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우리 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거세질 게 분명해 보이는 신고립주의 바람은 북한의 핵·미사일에서 비롯된 우리의 안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는 그렇잖아도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앞에서 터진 초대형 ‘뇌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하나 돼 비상한 각오로 맞서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제 더 머뭇거리고 물러날 곳이 없다”며 현재의 복합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축소하거나 도외시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난주 검은 금요일 하루에만 전 세계 증시에서 시가총액 3000조원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증시에서도 47조원이 증발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도 불가피해졌다. 우리도 올해 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낮춰 잡아야 할 상황이다.

브렉시트는 예전의 금융위기와 달리 그 충격은 실물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브렉시트의 근저에 뻗쳐 있는 반세계화와 신고립주의 기운이 국제 질서의 대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로서는 미국의 관심이 아시아에서 다시 유럽으로 기울어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두 차례나 공동으로 밝힌 것도 신냉전 구도 회귀로 읽혀 꺼림칙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미사일은 물론 수공(水攻)까지 걱정해야 하는 안팎곱사등이 처지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부작용인 극심한 양극화에 분노한 대중들의 반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합과 개방으로 인한 혜택이 일부 엘리트층에게만 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민들이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일자리 상실 등으로 점점 더 분노하다 결국 폭발했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우리의 고민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서민들의 박탈감이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건국 이후 숱한 위기가 닥쳐왔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탁월한 ‘극복 유전자’를 발휘해 슬기롭게 빠져나왔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경제·안보 복합 위기는 과거의 엄청난 격변의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하나 돼 헤쳐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위기의 실체를 가감 없이 설명하고, 정치권은 당략 아닌 국익만 생각하며, 국민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뒷받침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모두 함께 비상한 각오로 이 위기에 맞서야 한다.

3. 리베이트 의혹 국민의당 사과로 끝낼 일 아니다

선거비용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된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어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박 의원은 4·13 총선 당시 사무총장이자 회계 책임자였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도 있었다. 총선 당시 홍보위원장이던 김수민 의원은 앞서 지난 23일 조사를 받았다. 깨끗한 정치로 기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며 출범한 국민의당이다. 그렇게 약속하고 당선된 국회의원을 비롯해 당 간부들이 줄줄이 검찰 출입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만으로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안철수 대표는 어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세 번째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말로 때울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 국민 정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의혹의 당사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이후 국민의당 대응 태도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서둘러 꾸려진 진상조사단은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국민의당으로 돈이 유입된 흔적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오죽하면 “진상조사단이 솔직히 밝히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면 의혹이 더 커지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불만이 당 내부에서 나왔을까. 애초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던 안 대표는 결국 지난 20일 두 번째 사과에서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있을 시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은 스스로 바로잡는다’는 새 정치의 의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당 선거비용 리베이트 의혹은 총선 공천 과정의 의혹으로 번진 지 오래다. 정치적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호남 지역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당 내부에서 ‘선제적인 정치적 책임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국민의당은 이제라도 검찰의 ‘정치적 판단’에 자신의 명운을 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리베이트 의혹의 실체를 가감 없이 공개하기 바란다.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서른 살의 김 의원을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정한 이유도 밝혀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재발 방지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사과는 그런 다음에 해야 국민이 진정성을 믿어 주지 않겠는가.

[동아일보]

4. 여학생에게 몹쓸 짓한 스쿨폴리스, 강신명 경찰청장은 몰랐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도입된 스쿨폴리스(학교 전담 경찰관) 2명이 자신들이 보호를 맡은 부산의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고, 학교가 이를 경찰에 알리자 사직해 퇴직금까지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것도 한 전직 경찰 간부가 24일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경찰인권센터’에 “부산 사하경찰서와 연제경찰서에 근무하는 젊은 경찰관이 여학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은밀하게 사표를 제출했다”고 올리는 바람에 알려졌다. 부산의 두 경찰서는 이미 일신상의 사유인 것처럼 처리해 두 경찰관의 사표를 수리했다니 페이스북 고발이 없었다면 끝까지 은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감찰에 나선 부산지방경찰청은 두 경찰서가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주요 사안을 경찰서 담당 계장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경찰서장이 보고를 받았다면 당연히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거쳐 강신명 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됐어야 할 민감한 사안이다. 페이스북 고발에는 “성범죄를 묵살하고 은폐한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파면하고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동아일보가 최근 현직 경찰 100명에게 물은 결과 강 청장이 잘한 일은 8월 말로 예정된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뿐이라는 평이 가장 많았다. 강 청장이 자신의 임기 말에 돌출한 민감한 성범죄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은폐하려 한 것은 아닌지 경찰 외부에서 특별 감사에 착수해 진상을 가려야 할 것이다.

경찰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악’을 척결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책에 따라 열심히 뛰고 있다고 홍보해 왔다. 그 이면에서 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하라고 배치한 스쿨폴리스가 오히려 학생들을 성범죄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믿고 자식을 맡긴 경찰관의 인면수심(人面獸心)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사직한 경찰관에게 여죄는 없는지 재조사해 형사 처벌하는 것은 물론 퇴직금도 회수해야 한다. 다른 학교 스쿨폴리스에 유사한 범죄가 있는지도 차제에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5. 외교안보 분야에도 먹구름 몰고온 브렉시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사일방어(MD) 강화를 거론하면서 “이는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안전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렉시트’ 직후 회동한 중-러 정상이 한목소리로 미국을 견제하고 나선 것은 만만치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국제 정세의 일대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도 간단치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25일 사설에서 브렉시트가 “아시아에서 동맹 구축에 집중해온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다시 유럽과의 동맹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합의를 모색하는 길을 찾지 못하면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에 도전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U와의 관계 유지가 발등의 불이 된 만큼 미국이 북핵이나 남중국해 문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현안을 우선순위의 뒷전에 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마 하던 유럽발(發) 경제위기와 EU와의 동맹 균열이라는 복합 위기가 현실화한 만큼 미국으로선 정책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1993년 출범한 EU는 솅겐 조약에 따라 역내 국경을 없애고, 유로화로의 통화동맹으로 회원국 수를 늘려 왔다. 하지만 경제난의 심화로 EU 가입 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대폭 줄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2013년 말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게 되면서 우크라이나가 EU 가입 협정을 해제한 것이 원인이었다. 경제와 민주주의 확산, 안보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에서 경제가 삐걱거리면 외교 안보에도 깊은 주름이 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브렉시트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그로 인해 세계 경제와 외교 안보에 동시 충격파가 밀려와도 당장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미국은 직면해 있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낮은 단계의 경제시장 통합을 거쳐 높은 단계의 정치통합을 이룬 EU를 모델로 삼았다. 브렉시트로 인해 협력은커녕 미국의 관심이 유럽으로 쏠리는 틈을 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을 두둔하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북핵은 우리에겐 국가의 명운이 달린 근본 과제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겐 패권 다툼용 카드 중 하나일 뿐이다. 북의 김정은도 브렉시트로 당혹해하는 미국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브렉시트의 경제적 측면만 주시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박 대통령부터 비상한 각오로 대처해야 한다. 

[중앙일보]

6. 김종인·안철수가 '20대 특권국회'를 막으려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의원 갑질’ ‘뒷돈 요구’ ‘국고 횡령’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입만 열면 약자 보호, 정의 실현에 기득권 혁파를 외치던 이들 제1, 2 야당의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인 행태가 역겹다. 학생회장에 민주화 운동권 출신이라는 더민주의 서영교(중랑갑) 의원은 딸과 친동생, 오빠와 남편을 모조리 의원실이나 지역위원회 자리에 앉혀 국민 혈세를 오순도순 나눠 먹는 가족애를 과시했다. 자신들이 내야 할 광고용역 대금을 하도급 업체로 하여금 대납케 하는가 하면 허위 영수증까지 작성해 선거보전금을 빼먹은 혐의를 받고 있는 국민의당은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출두했다.

양파 껍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자 양당 대표는 뒤늦게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사회 양극화와 청년실업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감정이 불공정 특권이나 우월의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서영교 의원 문제는 당무감사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세 번째 사과를 했다.

김 대표가 지적한 국회의원의 특권과 우월의식은 20대 국회가 초장에 반드시 뿌리 뽑고 가야 할 독초다. 이 독초는 특히 정의와 민주화를 자기의 정치 자산으로 삼는 친노·친문 운동권 정치인들에게서 번성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런 게 없다고 우기고 있으니 세상이 웃을 일이다. 국민의당도 격차사회 해소, 공정경제를 추구한다면서 관행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하도급 업체들한테 갑질 행태를 벌이는 불감증을 도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양당은 서영교·박선숙·김수민 의원에게 최소한 출당, 당적 박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봐주기를 하다 두 야당 전체가 국민 분노에 날아갈 수가 있다. 두 야당의 일벌백계는 집권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 수권정당 이미지를 높여줄 수 있다. 19대 국회 때처럼 또다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김종인·안철수 대표는 이제 첫 장을 연 20대 국회를 특권 의회로 타락시킨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다.

7. 세월호 이후에 공피아가 더 극성부리는 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질적인 ‘전관예우’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2012~2016년 공직자윤리위 취업 심사 통과자 현황’에 따르면 공정위의 4급 이상 퇴직자 중 재취업을 신청한 20명 가운데 17명이 대기업·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이들 대기업과 로펌은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퇴직 후 3년간 취업 제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윤위의 승인을 거치면 취업이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재취업했다.

공정위 전관들의 로펌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6대 로펌에 재직 중인 공정위 출신만 40명이 넘는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7명 중 6명이 로펌에 소속돼 사회의 눈총을 샀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을 다짐했고 국회는 공직자윤리법을 고쳐 취업 제한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재취업한 17명 중 16명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공윤위의 심사를 통과했다. 20명 전원이 퇴직 1년 이내 재취업했으며 1개월 만에 재취업한 사례도 있다. 신속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공피아(공정위+마피아)가 수그러들긴커녕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로펌이 공정위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뻔하다. 대기업 불공정 행위의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것이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각종 담합을 적발하고 거액의 과징금을 물린다. 라면값·4대강 담합 등엔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매겼다. 잘못 걸리면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다. 과징금을 과도하게 물렸다가 소송에 져 되돌려 준 돈이 2011년엔 11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31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를 두고 ‘전관 역할’을 배려해 공정위가 기업 과징금을 부풀린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이런 커넥션을 방치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 현재 비공개인 공윤위의 심사를 공개하고, 전직의 청탁을 받아주는 현직들까지 강도 높게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취업 제한 퇴직공무원 범위를 더 확대하고 예외 조항 적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매일경제]

8. 브렉시트로 글로벌 통화전쟁 격화될 위험 크다

지난 주말 브렉시트 패닉으로 폭락했던 각국 증시는 이번주 들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파운드화 폭락이 각국 통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 절하를 촉발하면서 글로벌 통화전쟁이 다시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가장 다급해진 나라는 일본이다. 브렉시트는 엔저를 핵심 전략으로 삼는 아베노믹스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일본은행에 충분한 자금 공급을 요청했다. 엔화값이 달러당 95엔대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미국의 묵인이 없더라도 엔고 저지를 위한 일방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어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0.9% 떨어트렸다. 작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통화 가치를 절하한 것이다. 파운드화가 떨어질수록 브렉시트로 타격을 받을 유럽 통화 가치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와 엔화 가치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은행은 더욱 공격적인 돈 풀기에 나설 것이다. 연내 한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던 미국 연준은 브렉시트 충격파에 따라 되레 금리를 내리려 할지도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은 시장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공조에 나섰다. 하지만 고립주의 바람이 거센 지금은 보호무역과 통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 절하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가뜩이나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엔저 공습이 멎었다고 결코 안심할 때가 아니다. 

당분간 원화 가치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채 널뛰기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럴수록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일이 긴요하다.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갑자기 발을 빼지 않도록 투자자 신뢰 제고에 힘쓰면서 은행과 기업의 외화유동성 관리를 강화해야 할 때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왑을 확대하고  

9. 해도 너무한 대우조선 회계사기, 경영진 엄벌하라

검찰 조사 결과,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가 재임 중이던 2012년부터 3년간 5조4000억원의 분식회계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밝혀낸 2013~2014년 분식회계 액수 1조5000억원보다 4조원 더 많다. 놀라운 것은 회계 조작이 경영진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성과급을 타내기 위해 예정원가를 줄이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산업은행이 정한 목표 실적에 꿰맞췄다. 목표 실적이 나올 때까지 회계프로그램에 넣어 시뮬레이션까지 해봤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회계 조작을 통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팔았으니 '분식회계'가 아닌 '회계사기'라고 부를 만하다. 

검찰은 어제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을 배임수재 등 개인 비리 혐의로 소환해 조사 중인데 남 전 사장 재임기간까지 조사하면 분식회계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남 전 사장은 친구 회사를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여 일감을 몰아주고 뒷돈을 챙기는 등 회삿돈 120억원을 부당하게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 전 40대 차장급 직원이 8년간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려 외제차, 명품시계 등을 사는 데 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더니 경영진들은 한술 더 뜬 셈이다.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모조리 썩었으니 회사가 거덜나는 게 당연하다. 2000년 이후 대우조선에 7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지만 부채비율 7300%, 영업적자 5조5000억원의 부실기업이 된 것은 경영진, 직원 할 것 없이 회삿돈을 빼먹은 탓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 몰라라 한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회계를 조작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경영진들은 도덕적 해이 수준이 아니라 금융범죄를 저지른 것인 만큼 엄벌해야 한다. 결국 거짓 회계를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만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이들을 구제할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는 2005년 도입됐지만 기업 타격을 우려해 허가 3심, 본안 3심 등 절차를 까다롭게 하다 보니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10. 국민 실망시킨 야당의 일탈, 준엄하게 심판해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7일 나란히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김 대표는 가족 채용 논란을 빚고 있는 서영교 의원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안 대표도 2억원대 리베이트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선숙 의원이 이날 검찰에 출석하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앞장서 주장해왔기에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크다. 더구나 서 의원 의혹은 총선 당시 이미 제기됐음에도 더민주 지도부가 공천을 줬다. 2014년 자신의 딸을 국회의원실에 5개월간 유급 인턴으로 채용하는 등 '가족 채용' 논란을 야기한 서 의원에 대해 당 차원에서 면죄부를 줬던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당도 그에 못지않다. 총선 홍보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의혹으로 박선숙 당시 사무총장, 왕주현 사무부총장, 김수민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됐다. 지난 9일 압수수색과 더불어 수사가 본격화했는데도 "당에 리베이트 자금이 흘러들어오지 않았다"며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 당 차원에서 진상을 조사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그제서야 안 대표가 세 차례 사과를 했다.

야당이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며 승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누리당 공천 갈등에 따른 어부지리 성격이 강했다. 상대방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난을 퍼붓다가도 제 식구는 감싸기로 일관한다면 민심은 곧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보좌진 채용 기준 등에 대해 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미 19대 국회에서도 그런 대책은 여야 구분 없이 수차례 발표됐다. 국회의원이 배우자나 4촌 이내 친인척을 보좌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도 여러 번 제출됐지만 통과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또다시 사탕발림으로 곤경을 모면하려 하다간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민심 이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앞장서서 해당 의원들을 징계한 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동아광장/권영민]헌책의 향기

지금은 서울 시내에 예스러운 헌책방이 대부분 사라졌다. 전통의 인사동 거리에도 통문관(通文館) 하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초까지도 청계천변에 헌책방들이 성업 중이었다. 종로5가를 가로지르던 대학천변에서부터 동대문 평화상가로 이어지는 청계천변의 헌책방들은 도심의 작은 도서관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동대문시장 일대가 패션을 중심으로 하는 옷가게로 바뀌면서 그 많던 헌책방들이 모두 밀려나 버렸다. 신촌로터리에서 마포 쪽으로 빠지는 길가에도 헌책방이 많았고, 돈암동 일대에도 헌책방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확인할 수 없다. 동네의 작은 신간서점도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요즘 형편이니 이런 헌책방이 여태 살아남아 있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헌책방과 헌책이어야 제격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가슴에 느껴지는 서늘함은 늘 기분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기쁨은 헌책방에서 구한 낡은 책 한 권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귀한 책을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값싸게 구했을 때 그 기쁨은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다. 헌책은 누군가가 사용한 뒤에 내버린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의 내음이 거기서 묻어난다. 나는 이 독특한 헌책의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그 내음 속에는 책을 처음 샀던 사람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겨 있기 마련이다. 

책의 속표지에는 대개 책을 산 사람이 써넣은 이름이 적혀 있다. 어떤 책에는 날짜와 책방 이름까지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라든지, ‘나의 청춘을 위해!’라고 적어 넣은 짧은 문구가 그 책을 샀을 때의 결심도 드러내어 준다. ‘사랑하는 ○○에게’라는 서툰 펜글씨는 아련한 연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책장의 행간에 수없이 그어진 밑줄로 보아 이 책의 소유자가 얼마나 열독(熱讀)을 했었는지를 헤아릴 수도 있다. 이런 자잘한 내용들이 말하자면 책의 향취를 더해주고 ‘책의 문화’까지도 가르친다.

내가 청계천변 헌책방 거리를 처음 찾았던 것은 대학생 시절이다. 벌써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든 학생들이 늘 넘쳤다. 나는 학교 강의가 일찍 끝난 날이면 이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녔다. 반드시 내가 찾아야 하는 책을 처음부터 정해 놓을 필요는 없었다. 어쩌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귀한 책을 엉뚱한 책방의 책무더기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헌책방 순례는 언제나 하릴없이 이루어지는 도심의 한가로운 산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 이 가벼운 나들이가 사실상 끝이 났다. 학교와 멀어지면서 나다니기가 어려워진 것도 이유였지만 그 무렵부터 청계천변의 헌책방에는 광복 이전에 출판된 책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수집가들이 등장하면서 가격도 엄청나게 뛰었다. 

내 서가에는 옛날 청계천 헌책방에서 샀던 책들이 몇 권 꽂혀 있다. 이광수의 ‘무정’이 그중의 하나다. 비록 초판본은 아니지만 회동서관에서 나온 이 책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표지까지 온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염상섭이 고려공사에서 펴낸 소설 ‘만세전’의 초판본(1924년)도 있다. 우연하게 얻은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 초판본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근래 고서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린 시집들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곤 한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나 백석의 시집 ‘사슴’은 그 당시 헌책방에서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책들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최근에 복각본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놀랍다. 

옛것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변화야말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서울의 대학가 어디에서도 변변한 헌책방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도쿄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가 여전히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2. [동아일보][이라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몸살과 스트레스를 느끼기까지

한국 사람들은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흘리면서도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이걸 알아듣는 데 2, 3년쯤 걸렸다. 이보다 더 어려웠던 말은 ‘몸살’이었다. 한국에 와서 1년쯤 지나 이사를 하면서 들은 얘기다. 이삿짐센터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입주청소는 직접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며칠 몸살이 난다고 하면서. 

“몸살? 몸살이 뭐예요?”

“아, 모르시나? 몸에 무리가 가서 며칠 쑤시고 아픈 거지.”

“너무 피곤하면 하루 이틀 쉬면 되지, 왜 몸이 쑤시고 아파요?” 

몸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남편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열심히 설명하는데, 여전히 피곤한 것과 몸살의 차이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살던 나라 몽골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병명이다. 게다가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 쉬운 증상도 물론 아니었다. 옛날에 몽골 어르신들이 몸이 불편하다고 하시던 게 이런 증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살보다 더 어려웠던 말은 외래어 ‘스트레스(stress)’였다. 한국에선 주변 사람들한테서, 그리고 병원에서 의사한테서도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심심할 때도, 또 때로는 슬플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에선 인생이란 이름의 여행에서 당연히 겪는 조금의 힘듦, 피할 수 없는 작은 슬픔, 개인차가 있지만 각자가 느끼는 작고 큰 노여움 같은 감정들을 요즘은 ‘스트레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는가 보다 싶었다. 몽골에서 온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이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들 한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거의 전 국민이 완전 고용된 상태였고, 삶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정부가 존재하는 한 굶어 죽을 위험도 거의 없었고,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 간의 생활수준 차이 또한 그리 크지 않았다. 어쩌면 빈부의 차이가 꽤 있었지만, 인터넷도 없고 민영 신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그걸 느끼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면 다들 복도에 모여 “정직하게 살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나라에 애국하고, 이웃을 도와주고” 등의 구호를 다 같이 외운 다음에야 수업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곳의 몽골 여름방학 숙제라는 것은 흔히 ‘서거르(풀) 씨 2kg, 땅다람쥐 가죽 10장, 가축용 건초 두 묶음’을 모아오라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에 흔하던 그 서거르풀 씨를 다 모아선 어디에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다람쥐 가죽은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다람쥐를 잡으러 가면 일단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가서 땅에 난 다람쥐 굴 입구에 물을 부어선 다람쥐가 튀어나오게 하거나, 소똥을 모아 태워선 그 연기를 굴에 불어 넣곤 했다. 이런 학교생활을 하면 한국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형성될 수 없다. 

이 얘기를 하면, 남편은 옆에서 자기네들도 ‘국민교육헌장’이란 걸 아침마다 외워야 조례가 끝나고 수업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웃는다. 요즘의 한국 중고교 학생들이 옛 국민교육헌장을 모르듯이 지금의 몽골 학생들에게 ‘땅다람쥐 숙제’는 칭기즈칸 때의 옛날 얘기쯤으로 들릴 것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해본 자원봉사, 지방의회 활동, 사회단체 활동, 그리고 고3 학부모 생활을 거치면서 이제 스트레스가 뭔지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몸살, 이것도 마흔 줄에 접어들며 체감했다. 학교 과제인 연구보고서를 쓰느라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들이 방에 들어가면서 주스 한 컵을 슬며시 놓고 간다. 땅다람쥐 숙제를 하려고 온 들판을 쏘다니던 때도 즐거운 시절이고, 사회주의 시절은 요즘의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바쁜 생활과 스트레스, 그리고 가끔씩 겪는 몸살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해볼 만한 생활이 아닐까. 아들의 주스 한 컵에 너무 감동을 받은 것일까.


3.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올레길,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강릉 ‘바우길’, 제천 ‘자드락길’. 둔덕길에 선 나무와 오솔길에 핀 야생초가 걷는 이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산책길들이다. 이름도 대부분 고유어와 사투리다. 그래서 신선하다.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고,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이다. 둘 다 고유어다. 그런가 하면 ‘올레’는 ‘골목’의 제주 사투리고,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사투리다. 이 중 둘레길과 올레길은 많은 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표제어로 삼는 문제를 검토할 때도 됐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도로의 가장자리에 고장 난 차를 세워 두거나 경찰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있다. ‘갓길’이다. 오랫동안 써오던 ‘노견(路肩)’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다. 휴게소를 쉼터로 쓰는 것도 마찬가지.

정재도 선생(전 한글학회 명예이사)은 생전에 노견을 ‘길섶’과 ‘길턱’ 같은, 기존에 있던 우리말로 고쳤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노견은 ‘길의 가’이고, 갓길은 ‘가의 길’이니 노견을 대신할 말로는 ‘길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길섶이 더 적합하다는 것. 선생은 무엇보다 갓길 때문에 길섶과 길턱이라는 우리말이 입길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길의 세계에도 정겹고 재미난 낱말이 많다. ‘빨리빨리’와 ‘느림의 미학’을 연상시키는 지름길과 에움길이 있다. 질러가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에 별명이 많다. 에움길은 우회로인데 돌길, 돌림길, 두름길 등도 같은 뜻이다. ‘고샅’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말한다.

크고 넓은 길보다 좁고 어려운 길에 관한 표현이 더 많은 것도 흥미롭다. 고생길 뒤안길 가시밭길 등이 그렇다. 아마도 인생살이가 힘들어서일 듯싶다. ‘뚝방길’은 입길에는 오르내리지만 사전에는 없다. 신문에서 본 ‘뚝방길에서의 밀어(密語)’를 표준어인 ‘둑길에서의 밀어’로 고친다면? 말맛과 정겨움이 뚝 떨어진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했다.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의 갈림길에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세계는 지금,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서 있다. 영국의 선택이 공동체를 향해 달려온 인류 역사의 내리막길이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4. [중앙일보][삶의 향기] 어느 키다리 아줌마의 반성문

‘미스터(Mr.) 신예리,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일곱 살이고요. 장차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에요….’ 10년 전 꼬마 소녀 시마오가 내게 보낸 첫 편지다. 구호단체가 후원 아동으로 맺어준 지 몇 달 만에야 드디어 소식을 전해 온 거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답장을 썼다. ‘안녕, 시마오. 앞으로 네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잘하는지 시시콜콜 내게 알려 주렴. 근데 참, 난 여자란다. 미스터가 아니라 미즈(Ms.)로 불러 줄래?’

여성의 절반 이상이 문맹인 나라 모잠비크, 거기다 인터넷도 전화도 없는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로선 ‘키다리 아저씨’는 몰라도 ‘키다리 아줌마’는 상상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매달 월급 통장에서 꼬박꼬박 이체되는 3만원. 얼마 안 되는 그 돈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꿈을 이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2년 전 시마오의 마지막 편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미즈 신예리,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어요. 사정이 좀 생겨서요….”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학을 잘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그래서 장차 좋은 선생님이 될 게 분명한 꿈나무가 아쉽게도 꿈을 지레 접어버린 거다.

얼마 후 국제 구호 전문가 한비야씨를 만난 김에 그때 내가 느낀 크나큰 실망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마 초경이 시작됐기 때문일 거예요. 아프리카에선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워 학교를 많이들 그만둬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시마오가 끝내 말 못한 속사정이 그런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명색이 남자도 아닌 여자라면서, 8년이나 인연을 이어 온 아이한테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조차 못돼 준 게 한없이 부끄러웠다. 알고 보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만 수백만 명의 소녀가 생리 때문에 학교를 자주 빠지거나 아예 다니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곳 아이들에게 이른 결혼과 임신, 그로 인한 가난이 두고두고 대물림되는 이유였다.

생리대 고민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충격적인 ‘깔창 생리대’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후 지자체와 정부, 국회까지 앞다퉈 저소득층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지원에 나선 걸 보면 다들 같은 심정인 모양이다. 평소 이들이 청년수당이니 무상보육이니 다른 복지 이슈를 놓고 밑도 끝도 없이 싸우는 걸 생각하면 퍽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아프리카도 아닌 한국 땅에서 적어도 생리대 정도의 복지는 꼭 필요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나 보다.

생리대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불평등은 요즘 지구촌 최대의 화두다. 국가 간 불평등이 전염병과 난민, 테러를 일으키고 국가 내 불평등은 갈등과 범죄를 양산하는 게 우리가 처한 불편한 진실이다.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해외 원조나 자선이 더 이상 고결한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다(『나와 세계』). “부유한 국가와 부유한 집단이 지금까지 살던 대로 편히 살고 싶어 행하는 이기적 행위”라는 거다. 중요한 건 이기심을 발휘하는 방법이다.

말라리아 해법만 해도 그렇다. 해마다 아프리카 어린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데도 백신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스타들이 나섰다. 2005년 다보스포럼에서 여배우 샤론 스톤, 가수 보노 등이 앞장서 살충 처리된 모기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원조 분야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모기장을 너나없이 공짜로 나눠주자 엉뚱하게도 고기 잡는 그물로, 신부 결혼식 베일로 암시장에 나오더라나. 이후 한 구호단체가 고심 끝에 푼돈을 받고 팔았더니 오히려 제 돈 주고 산 모기장은 모기 막는 본래 용도로 쓰더란다. 원조도, 복지도 선의(善意) 못지 않게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단 얘기다.

무지 탓에 시마오를 떠나보낸 뒤 내가 새롭게 후원의 연을 맺은 아이는 인도네시아 소녀 에바리스티. 올해 여덟 살이다. 몇 년 후 이 아이에겐 절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적은 돈 달랑 보내준 걸로 내 몫의 이기적 노력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지진 않을 게다. 생리대와 테러는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에.


5. [이데일리][목멱칼럼] SNS의 틈새, 우리 사회 희망인가 취향공동체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자녀 둘. 거적을 깔고 덮고 자는 듯 누워있는 그들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피붙이를 넷이나 죽게 만든 건 아이들의 엄마다. 흉년이 계속되어 굶어 죽게 되자 버려진 생선 내장을 주워서 가족들에게 먹였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복어 내장이 있었던 거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은 통에 혼자만 살아남았다. 

최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의 한 장면이다. 백성은 먹을 게 없지만 임금 외삼촌의 첩 정난정(박주미 분)의 생일 잔치는 열흘 동안 계속된다. 전옥서(감옥) 다모인 옥녀(진세연 분)는 “아주 작은 거라도 싸울 수 있는 건 싸워볼거예요”라며 정난정의 쌀을 빼돌릴 대범한 계획을 세워 성공한다. 

작은 싸움, 작은 틈이 커다란 둑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우리는 잘안다. 하지만 옥녀가 살던 조선시대에는 작은 틈이 거의 없었다.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옥녀는 감옥에서 툭 하면 사기를 치는 전우치나 괴짜처럼 보이는 이지함, 소매치기나 하는 천둥 등을 만나면서 틈새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굳건한 사회 규범의 틈새는 온라인 네트워크,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로 만들어내는 듯 보인다. 오프라인에서는 만나기 힘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며 미디어에서 접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활발히 소통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달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기로 발표한 뒤 생리대 가격이 비싸 온갖 방법으로 버텨야 했던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SNS에 사연을 올렸다.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사연들이 네트워크 공간을 타고 확산되자 유한킴벌리는 인상안을 철회하고 서울시, 인천시 등 생리대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저소득층의 식량 주거 문제에 생리가 기본적인 인권으로 새롭게 공론화됐다. 만약 SNS가 없었다면 아마 여성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오른 가격의 생리대를 구매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SNS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약자를 보호하는 이상향은 아니다. SNS를 운영하는 기업들 역시 이윤추구가 중요한 덕목일 수 밖에 없다. SNS회사들은 끊임없이 이용자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개발해 이용자 개인의 취향에 꼭 맞는 ‘맞춤옷’을 선사한다. 예컨대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상에서 다양한 논조의 언론사와 친구를 맺더라도 자주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언론사가 주로 타임라인에 보여진다. 페이스북이 이용자 취향을 철저히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취향에 따른 개인화(personalization)의 특징은 SNS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이용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소 성향을 강화해주게 한다.

SNS가 다양한 정보 교류의 장(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와 비슷한 책이나 정보만을 찾아 자신의 취향 안에 갇혀 버리고 마는 이른바 ‘반향실 효과’(echo-chamber effect)가 나타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반향실이란 벽을 만들어 소리가 퍼지지 않고 되돌아오도록 만든 방이다. 에코(메아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반향실 내 음향처럼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같은 정보와 아이디어가 돌고 돌며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제 SNS는 더 이상 여행 다녀온 사진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사진만 올리는 곳이 아니다. SNS를 통해 보다 폭넓은 세상을 만날지, 다른 의견에 귀를 닫고 나의 취향만 감상할 지는 이용자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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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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