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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7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벌써 시작된 20대 국회 '막장 드라마'

제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연달아 드러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바라보며 또다시 좌절감을 느낀다. 잘못된 정치를 바꿔보자고 유권자들마다 한 표를 행사한 것이지만 결국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선택한 셈이다. 유권자들이 우롱당한 것이다. 이런 인물들로는 국회의원의 기득권 포기는 애당초 물 건너 간데다 민생국회에 대한 기대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경우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19대 국회 시절 자신의 딸과 남동생, 오빠를 의원실 보좌진으로 줄줄이 채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석사학위 논문 표절시비까지 불거진 데다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여기에 변호사인 남편을 고위 판검사들과의 회식 자리에 합석시키기도 했다니, 그야말로 ‘가족 돌보미’ 종합세트다.


더민주당이 뒤늦게 서 의원에 대해 자체 감찰에 착수했다지만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미리부터 의문이다. “모든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논란이 확산되면서 당쪽으로 쏠리는 화살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더민주당이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도 서 의원을 그냥 공천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공동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총선 홍보물 리베이트 사건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도 마찬가지다. 형사적 혐의 여부를 떠나 이미 청년 대표라는 참신한 이미지를 구겨 버렸다. 이와 관련해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오늘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니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거래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도 업계의 관행이라고 내세우면서 ‘깨끗한 정치’를 들먹이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여야 정당마다 서로 잘해 보겠다며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들이 각 당의 포부를 밝힌 일장 연설도 있었다. 하지만 거창한 국정 담론을 꺼내기에 앞서 자기 눈에 틀어박힌 대들보를 제거하는 게 먼저다. 속셈으로는 자기들 이해관계에 생각이 쏠려 있으면서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행태에 신물이 난다.

2. 유일호 경제팀, 위기 헤쳐갈 수 있을까브

렉시트(Brexit)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 유럽연합(EU) 탈퇴로 결정됨으로써 영국은 물론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친 데다 달러와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우리 시장에도 직격탄이 떨어졌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한 지난 금요일 코스피·코스닥이 급락함으로써 단숨에 47조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말았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9.7원이나 치솟았다. 상승폭이 4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게 된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 우려 등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미칠 브렉시트의 충격은 가늠하기 힘들다. 당장은 요동치고 있는 금융시장 안정이 급선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급격한 자본유출의 우려가 커졌다. 영국, EU와의 교역 비중이 크지 않다지만 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연일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만큼 필요할 경우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가용수단을 모두 동원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금융 변동성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가 하면 실물경제 상황점검반도 가동된다.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견고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며 지나친 불안을 경계했다.


하지만 왠지 미덥지 못하다. 유일호 경제팀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모른다고 할 만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저성장 고착화 우려에도 재정 조기 집행이나 자동차세 인하 연장 같은 미봉책으로 대처했을 뿐 경기부양을 위한 근본 방안은 없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혼란이 가중되면서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뒤늦게 공식 회의체를 신설했을 정도다.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젠 달라져야 한다. 경기 활성화 대책과 일자리 창출,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추경편성 등 브렉시트 충격을 넘어 우리 경제를 되살릴 실효성 있는 종합 처방을 내놔야 한다. 정부가 내일 발표할 예정인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이 그 첫 번째 답안지인 셈이다.

[서울신문]

3. 김영란법 규제 대상서 농산물 빼기 전 의원 넣길

오는 9월 시행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농축수산물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농축수산 관련 업계에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에서도 “김영란법이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치권도 팔을 걷어붙이는 분위기다. 여야의 농어촌 지역 의원들이 최근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면서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 층인 농어촌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김영란법을 고치려면 차제에 이 법의 규율 대상에서 빠진 국회의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분명히 민간소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과 함께 김영란법을 하반기 경제 불안요인으로 꼽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자칫 이 법이 내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직격탄을 입을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농축수산물을 규제 대상에서 빼자고 나서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화훼농가 등 농축수산업계로서는 생사가 달린 문제인 까닭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취지도 무시하기 어렵다.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마련된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고치는 데 부정적 의견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농축수산업계의 고통은 줄이면서 법의 대의도 살리려면 현재 5만원인 선물의 상한선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굳이 이 시점에 김영란법을 손보겠다면 이참에 이 법의 규율 대상에서 빠진 국회의원들부터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당초 김영란법의 원안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은 부정청탁의 경우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은 예외로 한다는 억지 조항을 만들어 법의 심판대에서 쏙 빠져나갔지 않았나. 특히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아예 넣지도 않은 게 문제다. 최근 가족을 보좌진 등으로 채용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갑질’에서 보았듯이 국회의원들이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툭 하면 불거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외면한 것은 법 제정 취지에 정면 위배된다. 시행에 앞서 김영란법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4. 아이들 볼모로 한 사립 유치원 집단 휴원 안돼

맞춤형 보육 시행을 앞두고 어린이집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사립 유치원이 국공립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요구하며 집단 휴원을 예고해 보육 대란이 우려된다. 정부는 집단 휴원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행정 처분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아이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 대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당부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어제 전국 3500여개 사립유치원이 오는 30일 일제히 휴원하고, 서울광장에서 ‘전국 학부모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상당수 유치원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가정 통신문을 통해 원생 부모들에게 휴원을 통보하고 집회 참석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유치원 수는 4200여개로 사립 유치원이 전체의 83.3%를 차지한다. 이들은 국공립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정부에 추가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 유치원과 국공립 유치원의 형평성 문제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으로 국공립 유치원의 교육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불거졌다. 국공립 유치원 수가 턱없이 부족해 생긴 현상이다. 서울 지역 국공립 유치원의 원생 모집 경쟁률은 10대1은 기본이고 높게는 26대1을 기록하기도 했다. 유치원 추첨일에는 복수지원을 해서라도 국공립 유치원에 아이를 넣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부모들이 부담하는 한 달 유치원비가 국공립은 1만원 안팎이지만 사립 유치원은 월평균 22만원 선이다. 여기에 각종 활동비 등 추가 비용을 감안하면 사립 유치원 이용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립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차별 대우를 받고 있어 유아 교육의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유치원연합회의 주장이 일정 부분 설득력을 얻는 까닭이다. 여기에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 사립 유치원 수입도 민간 어린이집처럼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공립 유치원과 동등한 지원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울러 국공립 유치원 증설을 중단하고 그 비용으로 사립 유치원을 지원해 달라는 것도 명분이 없긴 매한가지다. 휴원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어떤 집단행동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민간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

5. 싸게 산 외제차도, 부당 투자이득도 판사에겐 뇌물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고가의 외제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장판사의 딸은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이 후원하는 미인대회에서 입상했다. 정 전 대표가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기 전 일이다. 하지만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정 전 대표는 이 부장판사에게 항소심 재판부 로비를 부탁한 바 있다. 공사(公私)가 엄정해야 할 법관으로서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이다.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서 정 전 대표가 검찰과 법원 인맥을 통해 로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김모 수사관은 정 전 대표 측 브로커에게서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서울고검 박모 검사는 직접 1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지만 뇌출혈로 입원해 소환이 연기됐다. L 부장판사는 당초 정 전 대표 항소심 사건을 배당받은 줄 모르고 그의 브로커와 저녁식사를 한 뒤 재배당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표를 냈다. 법원 검찰의 낯뜨거운 치부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2008년 한 사채업자에게 주식 투자금 명목으로 9000여만 원을 건넨 뒤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올 2월 사직했다. 이 부장판사는 고교 선배인 사채업자로부터 투자를 권유받고 한 시계 제조업체의 실권주를 4만 주 인수해 2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대법원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맡긴 판사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면서도 “법 위반 사안은 없다”며 징계 없이 옷을 벗겼다. 정 전 대표의 외제 중고차를 헐값에 인수한 부장판사는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수원지방법원 최민호 판사가 명동 사채왕에게서 수억 원을 받아 현직에서 구속된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 지난해다. 이후 대법원은 법관 비위를 감사할 외부위원 중심의 감사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달라진 게 무언지 모르겠다. 법관들이 청렴의무를 소홀히 하고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이익이나 챙기면 사법부의 신뢰, 재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6. 국민의당 비례공천 의혹, 안철수 대표가 밝히라

4·13총선 당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자 회계 책임자이던 박선숙 의원이 오늘 오전 선거비용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는다. 24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도 열린다. 선거 당시 홍보위원장으로 비례대표 7번을 받아 금배지를 단 김수민 의원은 23일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창당선언문에서 “부패에 단호한 정당을 만들겠다”며 ‘클린당’을 표방했던 이 당이 ‘더티당’으로 변질된 모양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8일 국민의당 비례대표 공보 인쇄업체 등에 2억3820만 원의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허위 보전청구 및 회계보고를 한 혐의로 박, 김 의원과 왕 부총장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튿날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고 했으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김 의원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왕 부총장이 인쇄업체 등과 허위계약을 하고 돈을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왕 부총장은 인쇄업체가 리베이트로 준 돈까지 선거비용인 것처럼 꾸며 선관위에 3억 원의 허위 보전청구를 하고 1억 원을 돌려받은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심각한 범죄행위다.


안 대표는 그동안 의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여론에 밀려 10일과 20일 두 차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출당(黜黨) 등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스스로 납득하고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관련자들을 감쌌다. 최측근인 박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고 총선 회계실무를 총괄한 사무부총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만큼 보다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전에 어느 선까지 보고받았는지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 당이 제3당이 된 것은 유권자가 ‘새 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을 기득권 구태(舊態) 정당의 대안세력으로 봐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비용을 갖고 장난치고도 이를 뭉개는 것은 기존의 정당을 찜 쪄 먹는 구태다. 안 대표는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서른 살의 김 의원을 면접도 않고 당선 안정권에 배정한 데 대해서도 “전체 다 조사하고 투명하게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으나 아직 말뿐이다. 오늘 소환되는 실세 박 의원은 비례대표 선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안 대표가 3당으로 키워준 국민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비례대표 공천 의혹’부터 약속대로 규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7. ‘비리 종합판’ 서영교, 의원직 사퇴가 답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갑질 비리의 종합판’ 의혹을 받아 온 서영교 의원에 대해 뒤늦게 감사에 착수했다. 서 의원의 비리 의혹은 친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며 처음 불거졌다.


이어 친동생과 친오빠를 각각 5급 비서관과 후원회 회계책임자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감사를 받는 법조 간부들과의 회식자리에 변호사 남편을 합석시킨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해 4급 보좌관에게서 매월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받고, 표절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는 의혹도 더해졌다. 딸의 로스쿨 입학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까지 꼬리를 물었다. ‘을(乙)지로 위원회’ 소속으로 여당·대기업의 비리·갑질을 누구보다 강하게 규탄해 온 서 의원이라 국민의 배신감은 더욱 깊었다.


더 한심한 건 서 의원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온 더민주 지도부다. 누구 하나 서 의원을 꾸짖거나 국민에게 사과한 사람이 없다. 버티던 서 의원이 비난여론에 밀려 사과성명을 내고 법사위원 직을 사퇴하자 마지못해 감사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동안 더민주가 비리 의혹에 휩싸인 소속 의원들을 감사한 결과를 보면 “시효가 지났다”며 넘어가거나 솜방망이 징계에 그친 게 대부분이다. 더민주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서 의원에게 “그냥 무시, 무대응하세요”란 메시지를 보낸 것만 봐도 이 당의 ‘제 식구 감싸기’ 병이 얼마나 중증인지 알 수 있다.


당이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서 의원의 비리를 알았음에도 넘어갔다는 의혹마저 나온다. 더민주의 감사만으로 서 의원이 죄과에 합당한 처분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 의원 본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입으로는 정의와 서민을 외치면서 뒤로는 식구들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면 의원 자격이 없다. 잘못을 진실로 인정한다면 “사려 깊지 못했다”는 어정쩡한 한마디로 넘어갈 게 아니라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정답이다. 여야 지도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속 의원 전원의 주변을 철저히 조사해 친인척 채용이나 보좌진 갑질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8. 에어컨 기사 죽음 부른 위험의 외주화

빌라 3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던 40대 기사가 추락해 숨졌다. 안전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지난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김모(19)군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기사인 진모(42)씨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월계동의 한 빌라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 8m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진씨는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헬멧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진씨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여건에 있었다. 진씨가 속한 하청업체 수리 기사는 한 달 동안 60건 이상을 수리하면 받는 기본급 130만원에 추가 수리 1건당 수당을 받아왔다. 많이 수리할수록 많이 버는 데다 ‘빠른 시간에 소비자 수리 요청을 처리하라’는 독촉도 심하다고 한다.


이름과 나이, 사고 현장, 업무 내용 등을 지우면 월급 144만원을 받으며 쉴 새 없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 사건과 그대로 겹쳐진다. 에어컨 기사 진씨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볼 겨를도 없이 하루 14시간씩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에도 계속해서 ‘외근 미결이 위험 수위’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절대적으로 처리’ 등 신속한 작업을 압박하는 문자가 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등에서 일할 경우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위험 업무의 외주화가 또다시 죽음을 부른 것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과 속도를 우선시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지하철이든 빌라든 안전한 산업현장은 없다. 에어컨 기사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는 지난해 7월 경기도 안산시에서도 있었다. 위험한 업무들이 외주업체에 무책임하게 맡겨지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국회는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외주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입법 작업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9. 잿밥 타령 지방의원들, ‘미 주의회 박봉’ 똑똑히 보라

미국 메인주의 지사 부인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엊그제 해산물 레스토랑에 첫 출근을 했다. 앤 르페이지 여사는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털어놓았다. 메인주지사의 연봉은 7만달러에 불과하다. 지난해 평균 환율로 계산할 때 약 7900만원이다. 미 주지사의 평균 연봉은 13만달러에 이르지만 1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가 태반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출신지인 아칸소주는 8만7759달러, 콜로라도주는 9만달러다.


주지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주 의원은 그야말로 박봉이다. 연봉이 4만~7만달러인 주가 수두룩하다. 뉴저지 주의회 의원의 평균 연봉은 4만9000달러다. 뉴저지주의 중산층 평균 소득 7만1919달러의 68%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에 앉아 돈벌 생각을 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 공직사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잿밥에만 눈이 어둡다.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세비와 의정비 인상을 외친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엊그제 의정활동비를 2배 이상 인상해 달라는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광역의원은 150만원에서 380만원으로, 기초의원은 110만원에서 285만원으로 인상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의정활동비 외에 연간 수천만원의 월정 수당을 따로 받는다. 이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면 월정 수당을 합한 의정비는 광역의원의 경우 억대에 육박하게 된다. 경기도 의원은 9081만원, 서울시는 9010만원, 인천시는 8711만원으로 불어난다. 그런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17개 광역시·도의원이 지난 3년간 발의한 조례는 연 평균 1건에 불과했다. 할 일은 하지 않고 미 주의원을 압도하는 억대 연봉을 챙기겠다니 될 법한 소리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과 구조조정 한파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 최소한의 정치 감각조차 없다면 차라리 정치를 접는 게 낫다.


박봉에도 부지런한 의정활동으로 민주정치를 떠받치는 미 주의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이 연봉 타령이나 했다면 미국 민주정치는 꽃을 피우지 못했을 터다. 지방의원들은 잿밥 타령을 하기 전에 지금 받는 의정비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깊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10. 경찰관·여고생 성관계 알고도 감추기 급급한 경찰

부산에서 학교전담 경찰관 두 명이 상담 대상인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은 충격적인 사실이 터졌다. 한 경찰서의 김모 경장은 지난 4일 자신이 관리하던 고교 1학년 여학생과 방과 후에 차 안에서 성관계를 했다. 그는 이 학생이 자주 결석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자 여러 차례 상담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또 다른 경찰서의 정모 경장은 지난달 말 청소년 상담 관련 기관에서 여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더 놀라운 일은 해당 경찰서들이 이들 비위 경찰관을 사표만 받고 은폐했다는 점이다. 경찰서는 여고생이 김 경장과의 성관계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소문이 퍼지자 아무런 징계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정 경장에 대해서도 사표만 수리한 채 진상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두 경찰관의 비위는 전직 경찰 간부가 SNS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전파하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온라인에선 상급기관인 부산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학교전담 경찰관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2012년 전국적으로 도입됐다. 학교폭력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강연을 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상담해 적응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한다. 교육부가 학교전담 경찰관 제도가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확대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적도 있다. 그러나 허점이 많다. 경찰관 한 명이 평균적으로 초·중·고 12∼16개 학교를 담당하고 남·녀 구분 없이 상담한다. 상담소가 없는 학교가 많다 보니 문구점이나 차량에서 상담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도 경찰관의 차 안에서 이뤄졌다. 


학교전담 경찰관이 여고생들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성착취를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찰관과 학생 간에 음성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어느 단계에서 보고되지 않고 은폐 시도가 이뤄졌는지 진상을 가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전직 경찰관은 “여학생들과의 문제는 부산경찰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대로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점검하고 근무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뒷짐만 지고 있을 게 아니라 폭력예방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 인권 침해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경남도청 이전도 외국인이 결정했다

얼마 전 신공항을 어디다 두느냐로 큰 분란이 있었지만, 90여 년 전에는 도청을 어디에 두느냐로 영남에서 큰 갈등을 빚은 일이 있다. 그때는 부산이냐, 진주냐로 충돌했다. 부산이 경남의 한 도시이던 시절 얘기다.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일로 진주 사람들은 극력으로 당국에 반대 운동을 하는 중이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1일자)


도청의 이전 결정이 조만간 발표되리라는 보도가 처음 나온 4월 8일 이후 들끓는 진주의 민심을 전하는 기사다. 경남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자부심에 더해 생활의 편의와 경제적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라 인화성이 매우 강했다. 1920년대 전반 5년을 휩쓸게 되는 갈등의 서막이었다.


‘도청 이전이 부산으로 내정되었다는 소문에 진주 시민들은 크게 놀라 인심이 소란한 가운데 상점 문을 굳게 닫고 시민대회를 열고 여론이 격렬하다. 대회를 언제까지든 계속하여 도청 이전을 중단시키려 운동 중이다.’(4월 13일자)


경남도지사는 기자의 확인 요청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도청이 진주에 있든 부산에 있든 이해는 상반되기 마련이니까, 내 자신의 희망은 말하지 않겠소. 도청이 진주에 있으면 경남의 중심 지점이어서 행정상 가장 편리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으나, 기찻길에서 3백 리나 떨어진 불편한 곳에 도청을 두는 것은 도의 행정 처리상 심히 불편하오.’(4월 21일자)


마산∼진주 철도가 아직 연결되기 전이었다. 일본인 도지사는 덧붙여 말하기를, ‘진주는 조선인이 많이 살고 부산은 일본인이 많이 사니까 일본 사람 편의만 위하여 이전한다고 진주 시민들은 말하나 이는 감정으로 나오는 말이요, 사실상 도의 사무 처리상 그러한 것’이라 했다.


진주 시민들은 ‘도청 이전 방지 동맹’을 결성했다. 시민 대표 8명이 총독부로 올라가 상경 투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평안북도 도청은 의주에서 신의주로 이전이 결정되어 청사 신축에 들어갔다. 함경북도 도청은 새로이 떠오른 요충지 나남으로 이전이 완료되었다. 동아일보의 매일 고정 칼럼 ‘횡설수설’은 이렇게 물었다. ‘경의선상에 있는 사리원에서는 도로공사가 한창인데, 황해도청을 해주로부터 사리원으로 옮길 준비라 한다. 이번에는 해주 시민이 반대 운동을 개시할 순서인가.’(1921년 6월 6일자) 


이후 경남도청 이전 논란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1924년 연말 도청 이전이 전격 발표되었다. 이전 설이 처음 보도된 지 4년 8개월 만에 확정 발표가 나온 것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인근 군에서는 찬성하는 여론이고,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에서는 크게 분개하여 연일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호외까지 발행한 신문기사의 제목이 그 분위기를 전해준다. ‘도청 이전 문제로 전장처럼 변한 진주 일대의 살기’ ‘운동단체 결사시위, 공직자 연대 사직’….


반대 측은 다시 상경 투쟁에 나섰다. 조선인 5명과 일본인 6명 등 지역 유지들로 이루어진 대표단은 총독부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진정했다. ‘대다수가 조선 사람인 진주 및 인근 14군의 130만 도민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 사람이 다수인 부산 및 인근 5군의 50만 명을 위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식민정책 철저 실행 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다.’


부산 인근의 5개 군은 동래 울산 양산 김해 밀양이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부산 유치를 환영했다. 1924년은 그렇게 가고 그 다음 해 3월에 도청 이전 작업이 벌어졌다. 도청 직원 391명, 가족까지 1400여 명에 달하는 일본인 조선인의 집단 이주였다. 진주로서는 도청을 빼앗김으로 해서 도시의 세가 기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도청도 주민의 뜻과 무관하게 외국인의 판단에 따라 이전이 결정됐다.


2.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와 등산

중국 청나라의 기효람(紀曉嵐·1724∼1805)은 독서의 즐거움을 이렇게 읊었다. ‘책 읽는 것, 마치 산에서 노니는 듯, 눈길 닿는 곳 즐겁지 않은 것 없어라. 바위와 골짜기 거니는 것, 어찌 힘들다 하리오. 안개와 노을이 씻어주며 또한 깨우쳐주니 이내 가슴 시원해라. 사립문 종일 닫고 나직이 소리 내어 책 읽는 뜻이 여기 있다네.’


목은 이색이 말한다. ‘글 읽기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깊고 얕음이 모두 스스로 깨쳐 얻음에 달려 있다.’ 퇴계 이황이 비유한다.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낮은 데서부터 공력을 다할 것이며 깊이를 얻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어라.’ 한강 정구(1543∼1620)가 거든다. ‘독서는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서 두루 돌아다녀도 그 뜻을 모르는 이가 있으니, 산수(山水)의 정취를 알아야 유람했다 할 수 있으리.’


이상은 모두 제목이나 구절에 ‘독서는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뜻의 독서여유산(讀書如游山)이라는 표현이 있는 한시(漢詩)들이다. 조운도(1718∼1796)의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도 독서를 말한다. ‘산을 언뜻 보고 놀다 지나가기를 욕심내거나 힘들여 오르다 지치면 빼어난 경치를 구경할 수 없거늘, 내가 예전 읽었던 책은 이 산을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였으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독서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을 오르며 깨치듯 책 읽으며 스스로 깨치라는 이색의 조언. 낮은 데서 차근차근 정성껏 밟아 오르는 착실한 독서로 높고 깊은 지혜에 스스로 도달하라는 이황의 격려. 이것저것 섭렵하는 데 치중하기보단 책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주력하라는 정구의 권고. 책 읽을 때 건성으로 지나가지도 진을 빼며 힘들이지도 말라는 조운도의 안내. 선인(先人)들이 책 읽으며 산 오르며 깨달은 독서의 지혜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 책 한 권 이상을 읽은 사람의 비율, 즉 연평균 독서율은 성인의 경우 65.3%로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1인당 독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권이며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60위권이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등산 인구는 200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옛 선비들의 ‘독서여유산’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취미란에 가장 흔하게 적어 넣곤 하는 것이 독서와 등산 아니던가.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독서 인구 2000여만 명’에 이르러 요산요서(樂山樂書)하는 미래를 꿈꿔 본다.


3. [동아일보][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퇴보하는 수학능력 평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처음 도입됐다. 기존의 학력고사가 암기식, 주입식, 단답형 교육을 만든다는 지적에 따라 통합교과적 소재로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도입된 것이 바로 수능이다. 교과서를 얼마나 달달 외웠느냐가 아니라, 대학 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학력(學力)이 아닌 수학능력(修學能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3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국립교육평가원(당시 수능 주관 기관)이 설명한 수능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료의 해석, 원리의 응용,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판단 등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한다.’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게 출제하되, 문항의 소재나 지문 등에 교과서 이외의 것을 활용할 수도 있다.’


수능 2년 차인 나로서는 당시 이런 설명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사회탐구 영역에서는 암기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문제에 제시된 도표나 지도를 해석하면 풀 수 있는 신유형이 등장했다. 언어 영역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지문이 많이 출제돼 평소 문제집 대신 문학전집이나 시집을 끼고 살던 친구들이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물론 교과서를 성실히 외워도 시험을 준비하기 어렵다는 불만과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국립교육평가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암기 위주 학습 방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시험의 기대효과다.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능을 들여다보면 과연 당시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를 감수하고 새로운 대입시험을 도입한 취지가 살아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 사이 수능은 평가 영역과 방식 등이 많이 바뀌었다. 도입 첫해에는 1년에 두 번 실시했으나 두 시험 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이듬해부터는 1년에 한 번만 실시하게 됐다. 1997학년도에는 만점이 200점에서 400점으로 배가 됐고, 1999학년도에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선택과목제로 바꾸면서 표준점수제도가 도입됐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실행 결과를 반영해 오류를 바로잡고 더 나은 체계를 만드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앞서 언급한 변화들도 생소한 제도를 더 잘 만들어보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EBS 연계 정책만큼은 후퇴한 정책이다. 수능이라는 제도 자체를 잘 만들어보겠다는 본질적인 목표가 아니라,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부수적인 목표가 우선 작용한 탓에 부작용이 생겼다. 이명박 정부는 수능에 EBS를 연계한 이후 대형 인터넷 강의 업체들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고 기뻐했다. 2011학년도부터는 수능과 EBS의 연계율을 무려 70%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이제 학생들은 ‘수능 공부=EBS 교재 암기’라고 생각한다. 고3은 물론이고 1, 2학년 교실에서조차 교과서는 EBS 교재에 떠밀려 쫓겨났다. 


수능 난이도를 따질 때도 문항의 질은 중요치 않다. EBS 교재의 흔적이 얼마나 나왔느냐가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가른다.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도 보듯 학생들은 EBS 교재 밖에서 지문이 많이 나오면 일단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EBS 연계율이 70%에 달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문제 풀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있다. 출제진 입장에서는 나머지 30%에서 변별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 문항을 지나치게 꼬고 비튼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올해 복직한 한 고교 국어 교사는 “예전에는 수능 문제지를 슥 훑어보면 대부분 답이 바로 나오고 난이도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6월 모의평가 문항을 보니 풀기가 쉽지 않더라”면서 “EBS 교재 외의 지문들을 보면 고교생 수준에서는 너무 어렵거나 쓸데없이 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제은행 방식인 미국 수능(SAT)과 달리 우리나라 수능은 매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새로 출제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 당국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입시열을 감안하면 문제은행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수험생들이 기출 문제를 몽땅 외워 버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한다. 그러나 EBS 연계가 누적되면서 사실상 EBS 자체가 거대한 문제은행이 돼 버렸다.


이쯤에서 다시 1993년 국립교육평가원의 설명으로 되돌아가 보자.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먼저 ‘문항의 소재나 지문 등에서 교과서 이외의 것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맞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교과서 이외의 것’이라는 것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소재가 아닌 EBS로 획일화됐을 뿐이다. ‘암기 위주의 학습 방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은 틀렸다. 오히려 교과서만 못한 EBS 교재 암기에 매달리게 됐을 뿐이다.


4. [중앙일보]​[분수대] 아닌 건 아닌 거다

“엄마, 이 문제 좀 풀어봐.” 기말고사를 앞둔 아들이 학교 영어 기출문제를 하나 던진다. 보기 좋게 틀렸다. 이번엔 국어 기출문제. 또 틀렸다. 아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 틀린 거, 다 틀렸네.”


실력 없는 사람이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문제 탓한다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한국 학교 시험은 실력 가늠용보다 오답 유도 기능이 더 크다”는 주변 엄마들의 불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문제였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틀리라고 낸 문제임이 분명했다. 숱하게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푼 공부 열심히 한 아이들만 맞힐 수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대체 왜 이런 문제의 정답을 맞히자고 아이들이 밤잠 안 자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검색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끄집어 쓸 수 있는 ‘구글 노잉’의 시대가 열리면서 단순 지식보다 사고력이 훨씬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럼에도 단순무식한 암기나 출제자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풀이 요령 습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기본 소양을 쌓고 공부하는 자세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틀리라고 덫을 쳐놓은 문제의 정답 맞히기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이건 교육이 아니라 그저 괴롭히기라고 말이다. 상대평가인 내신등급 조절을 해야 하는 중·고교 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교육을 왜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면 답은 나온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데도 부모는 어쩔 수 없다며 장단을 맞추고, 그 바람에 아이들만 죽어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교육을 하면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말대로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도록 강요받은 만큼 과거보다 여건이 나빠지면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국가 시스템에만 요구하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에 열광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현실화한, 일자리를 위협받는 성난 저소득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멀리 미국·영국까지 갈 것도 없다.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 탓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핑계를 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5. [중앙일보][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제비꽃의 ‘자식 사랑’

아파트 화단의 나무 그늘 아래 풀잎이 무성하다. 자세히 보니 꽃이 없어서 그렇지 제비꽃이 분명하다. 가냘프게만 보였던 봄의 제비꽃보다 훨씬 크고 무성한 짙은 녹색의 잎을 피우고 있었다. 이른 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생활사(life cycle)가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름에도 계속 자랄 줄이야. 씨앗을 맺은 뒤에도 계속 성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단을 지날 때마다 궁금해져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였다.


답은 폐쇄화(閉鎖花)였다. 꽃받침이나 꽃잎이 열리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꽃가루받이와 수정을 해서 씨앗을 만드는 게 폐쇄화란다. 건강한 후손을 보려면 다른 개체로부터 꽃가루를 받아들여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혼자서 끙끙거리며 씨앗을 만들어내는 데는 속사정이 있을 법도 하다.


폐쇄화는 제비꽃·괭이밥 같은 종류 외에도 다양한 식물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보통 건조하거나 온도가 낮을 때, 빛이 부족할 때 폐쇄화로 씨앗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쇄화는 식물이 악조건 속에서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고안한 방법인 셈이다.


봄에 곤충을 불러들이는 개화수정(開花受精)으로 한 차례 씨앗을 만들어 퍼뜨렸는데도 제비꽃이 다시 폐화수정(閉花受精)에 나서는 걸 보면 여름·가을을 흘려보내기 아쉬운 모양이다. 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웠을 땐 곤충을 불러들이기 쉽지만 다들 화려한 꽃을 피우는 한여름에는 작은 제비꽃이 경쟁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해결책이 폐쇄화일 수도 있겠다.


제비꽃이 번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또 있다. 씨앗을 싸고 있는 꼬투리가 익으면 세 조각으로 벌어지고, 씨앗은 멀리 튕겨 나간다. 씨앗에는 ‘엘라이오솜’이란 게 붙어 있다.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다. 개미가 제비꽃 씨앗을 물어다가 개미 유충에게 주면, 유충은 엘라이오솜만 먹고 씨앗을 남긴다. 개미가 남은 씨앗을 개미집 밖에 내다버리면 씨앗은 멀리 퍼진다. 개미와 제비꽃은 이렇게 공생한다.


2011년 브라질에서는 제 스스로 씨앗을 땅에 심는 식물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스피겔리아 제누플렉사란 이름의 이 식물은 키가 2.5㎝에 불과한데, 씨앗이 맺히면 가지를 조심스럽게 땅 위로 내려 부드러운 이끼 속에 씨앗을 묻어둔다.


이 같은 식물의 노력은 저출산과 아동학대로 고민하는 우리 사회와 묘하게 대비된다. 제비꽃의 다른 이름은 ‘오랑캐꽃’이지만 애틋한 자식 사랑만큼은 오랑캐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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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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