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카지노 입지선정 경제논리 따라야
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자 2곳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7차 투자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카지노는 물론 호텔과 쇼핑몰, 컨벤션과 레저스포츠시설 등을 집적시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 견줄 국제관광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큰 만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유치 경쟁이 뜨겁다.
문제는 심사의 공정성 문제로 뒤탈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사업 응모자 6곳 중 자본금 5000만 달러 선납 등 자격 요건을 충족한 곳은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의 ‘임페리얼 퍼시픽’과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지구의 ‘모히건 선·KCC’ 등 2곳 뿐이다. 경남 진해의 ‘BY월드’는 사전납입 기한을 넘긴 지난해 12월 자금을 끌어들여 막판 경쟁에 뛰어들었고 다른 지역 사업자들은 대부분 투자확약서 제출에 그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문체부는 모레로 예정된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천의 2곳과 함께 하자가 있는 4곳도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로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즉, 인천은 이미 영종도에 파라다이스와 리포&시저스가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인천 이외의 다른 지역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을 무시하고 정치논리로 접근할 경우 기대했던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의 성패는 집적화와 대형화, 접근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이미 2곳이 추진 중이어서 집적화에 유리하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있어 외국 관광객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경제성이 떨어지고 자격 요건도 모자란 곳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정해서는 곤란하다.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목적은 외국 관광객, 특히 유커를 보다 많이 끌어들여 내수를 살리고 지역 및 국가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데 있다. 당연히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효율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지와 함께 카지노 운영계획, 투자의 실천 가능성 등 경제논리 위주로 심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논리는 그 다음이다.
2.여야 공천작업에 정치 미래 좌우된다
여야 정당이 4·13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당내 공천작업에 들어갔다. 각 지역구에서 상대 정당의 후보들과 맞붙을 공식 후보를 선출하는 작업이다. 전체 선거과정에서 본다면 예선전에 불과하지만 본선을 통과해 앞으로 4년간 우리 정치무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 결국 이들 가운데서 배출된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각당의 입장에서도 선거에서 이기려면 제대로 된 후보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을 가리지 않고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가려내는 일이다. 단순히 당내 지도부와의 인연이나 사회적 인지도로만 후보를 내세워서는 정치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사에서 벌써 19대 국회까지 이르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도 정치 현실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진흙탕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각당마다 나름대로 특별한 사정이 있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관심을 끄는 것은 친박과 비박 간의 공천 다툼이 격렬해지고 있는 새누리당의 향배다. 전략공천 범위를 둘러싸고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사이의 신경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더민주당도 ‘현역의원 20% 컷오프’ 방침을 확정함에 따라 당내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민의당에서도 호남 물갈이가 관심의 초점이다.
물론 아직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천작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현재 여건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선거가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옴으로써 더 미룰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야가 조만간 선거구 획정을 타결지을 것이라니 지켜보고자 한다. 그러나 초유의 위헌 사태까지 초래하면서 여태껏 선거구 획정작업을 끝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으로 구성되는 20대 국회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당장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가 초미의 해결 과제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타개책 마련에 중지를 모아가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 가슴에 금배지나 달고 거들먹거리려는 사람은 공천에서부터 배제돼야 한다.
[동아일보]
3.강성 노조들 연대투쟁과 특권, 안 먹히는 날 곧 온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9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를 상대로 노조 간부 숙소용인 서울 용산구의 아파트 2채와 회사 소유 자동차 13대를 돌려 달라고 낸 소송에서 회사 손을 들어줬다. 노조는 과거 회사와 합의에 따라 이들 아파트와 자동차를 지원받았다. 이런 관행은 2010년 7월 노조 지원비를 금지한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면서 불법이 됐으나 노조 측은 반환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금속노조가 차량 제조업체 스카니아코리아를 상대로 밀린 노조 지원비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같은 취지로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스카니아코리아 노사는 단체협약에 의해 노조 지원비로 연간 2040만 원, 노조 지회장과 수석부지회장에게 각각 월 60만 원과 50만 원을 활동비로 지급했으나 이 역시 개정 노조법으로 불법이 됐다.
노동법과 정면 배치되는 노사합의나 협약은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아파트와 자동차의 반환을 거부하고 노조 활동 지원비를 내놓으라는 것은 소송에서 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 것이다. 금속노조는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다. 지난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불법 시위의 대부분은 민노총이 주도했다. 민노총이란 조직은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법을 무시하는 게 체질이 돼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민노총의 정치 투쟁이나 불법 파업 강행에 환멸을 느끼는 기업노조가 적지 않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은 그런 기업노조 중 하나다. 대기업 노조에서도 탈퇴까지는 아니더라도 민노총의 지시가 먹히지 않는 조짐이 보인다. 금속노조 산하 금호타이어지회는 어제 금속노조의 임금피크제 거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과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피크제에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 4법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야권은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눈치를 보고 있다. 양대 노총의 태도는 실업난에 시달리는 노동 현장의 요구와 괴리됐다.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제3지대’ 노조가 이미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민노총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양대 노총이 계속 개혁에 반대해 저항만 하고 있으면 언젠가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4.박 대통령 남은 임기 2년… 취임식 때의 초심을 돌아보라
“저는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국민에게 한 다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사태를 미리 예견한 듯하다. 임기 초중반에 세월호 침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도처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어 국가 안보는 바람 앞의 촛불 같다.
25일이면 박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는다. 대망의 꿈을 안고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 3년이 되지만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그 어느 것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는 도전을 낳고, 도전은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는 법이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국정 지지율도 높은 편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려면 아직 1년 이상 시간이 남았다. 박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국민행복 시대의 초석을 놓을 기회는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위에 있는 국가안보 위기의 관리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대북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인센티브를 통한 북한 변화 유도에서 압박을 통한 북의 변화 촉진으로 전환한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가 박근혜 정부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궁지에 몰린 김정은 정권의 예측 불가능한 도발에도 대처해야 하지만 우리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사회 및 주변 강대국들과의 ‘안보외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외교안보팀이 과연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책과 대응방식이 달라졌다면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도 교체해 결기를 보여주고 긴장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정책을 야심 차게 제시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달성이 어렵게 됐다. 물론 세계경제 침체 같은 외부 환경 탓이 컸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적합한 경제정책을 폈는지,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안보와 마찬가지로 경제도 3년 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개혁으로 경제체질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재정 금융 실물 환율 부채 등 어떤 부문에서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총선을 앞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 경선이든 본선이든 선거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지켜주는 것은 국민이지 ‘친박’이 아니다. 취임 3주년을 사흘 남겨둔 오늘,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취임식 때의 초심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5.민간은 주 3.5일 야근, 공무원은 주 3.5일 근무 장려
인사혁신처는 주당 40시간 범위에서 근무일, 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로 주 3.5일만 근무하는 것도 가능한 ‘공무원 근무혁신지침’을 어제 발표했다. 매주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엔 초과근무명령을 금지하고, 월간 초과근무 총량을 정하는 ‘자기주도 근무시간제’, 연가사용계획을 정해 원할 때 쓸 수 있도록 ‘계획연가제’도 도입됐다. 연간 2200시간이 넘는 공무원 1인당 근로시간을 2018년까지 1900시간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다.
비효율적 근무방식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민(對民) 업무의 특성상 공무원이 일을 한꺼번에 몰아 하는 유연근무제가 민원인에게 어떤 불편을 줄 수 있는지도 검토했는지 궁금하다.
지난주 한국개발연구원 이주호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정보처리 능력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민간 분야 인력에 비해 공공인력의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25%나 더 받았다. 민간 대비 공공부문 임금의 수준도 조사 대상 23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최근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야근일수는 주5일 근무 기준으로 평균 3.5일, ‘칼퇴근’은 평균 1.5일에 불과했다. 근무시간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은 주 3.5일제 ‘당근’을 내밀 것이 아니라 ‘저성과자 해고지침’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인사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과 ‘철밥통 수술’을 위한 주무 부처로 출범했다. 삼성 출신 이근면 처장을 발탁한 것도 팔이 안으로 굽는 공직사회 문화에서 탈피해 대담한 혁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들이 ‘더 편하고 더 적은’ 시간 근무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공직사회를 쇄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서울신문]
6.노조 선택권 근로자에게 돌려준 대법 판결
근로자가 원한다면 상급단체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의 기업노조 전환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위원장 등이 낸 소송에서 대법관 8대5 의견으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최종 확정될 경우 그동안 산별 노조 중심으로 진행된 우리의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판결이다.
이번 사건은 근로자 단결 선택의 자유와 산별노조의 조직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충돌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0년 당시 프랑스 발레오그룹의 한국 제조공장인 발레오전장은 경비 업무를 외주에 맡기는 문제로 금속노조가 파업을 결정해 장기 분규를 겪었다.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면서 조합원 601명 가운데 550명(91.5%)이 참석해 536명(97.5%)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전환을 결의하면서 법정 공방으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끌었던 사건이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사용자 측이 산별 노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섭권이 약한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노조 내부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발레오전장 사태 역시 강경 투쟁을 주도했던 기존 노조의 파괴 공작에 사측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조 조직 형태 선택에서 노동자의 자주적 의사 결정이 산별노조 조직 유지의 필요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노조가 구성원이자 목적인 근로자들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근로자들의 결사와 노조 설립의 자유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장 근로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부 조직의 이해관계가 우선하는 현행 노동운동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 판결이 현행 산별노조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기존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개별노조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크다.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상급노조의 가입과 탈퇴의 권한 역시 현장 근로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판결이 극단적인 정치투쟁을 지양하고 시대 흐름에 부합한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7.성동격서식 北테러, 국지 도발에 대비해야
북한이 그제 백령도 인근 장산곶서 해안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다행히 포탄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주말을 즐기던 국민들은 한때 과거 북측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상기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게다. 어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군의 쌍방기동훈련을 직접 지휘하고, 공군 비행훈련을 참관했다. 이런 북한의 심상찮은 동향은 뭘 말하나. 4차 핵실험에 이은 탄도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아닌가. 김정은 정권이 우리의 의표를 찌르는 모종의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보고 사전에 철저히 대비할 때다.
최근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던 김정은이었다. 그러나 스텔스 전투기 F22 등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 한반도에 속속 전개되면서 꼭꼭 숨었다는 국내외 보도가 잇따르자 어제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외무성이 어제 최근 발효된 미국의 대북 제재 법안에 대해 “가소로운 짓”이라고 했지만, 전례 없이 강력한 국제 제재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역설적 방증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제재 흐름의 물꼬를 돌리려 대남 공작을 펼 징후일 수도 있다. 북 외무성은 국제 제재에 맞서 경제와 핵개발 병진노선을 “더욱 높이 추켜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비대칭 전력인 핵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재래식 전면전을 벌일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도발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북한이 서해 등지에서 국지 도발을 일으키려는 척하면서 후방에서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반대로 나올 개연성에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보 당국은 북한 정찰총국이 북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소식이다. 2010년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2011년에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독침으로 암살하려던 간첩이 검거된 전례에 비춰 볼 때 이를 흘려들어선 안 될 법하다.
더군다나 지난 연말 의문사한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의 뒤를 이은 김영철이 누구인가. 정찰총국장 시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물론 휴전선 목함 지뢰 도발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강경파 대남 공작 전문가다. 북핵 포기를 이끌어 낼 대북 제재나 유사시 북의 대량살상무기에 맞설 방어체계 구축 등 중장기 전략 못잖게 발등의 불일 수 있는, 테러 도발에 미리 대비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을 앞두고 있어 북측이 도발 원점이 드러나는 국지 도발보다 사이버 테러를 자행할 개연성이 크다는 추론도 나온다. 사이버전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누차 강조했듯이 국회가 한시바삐 테러방지법을 처리해 범국가적 대응 시스템을 완비해야 할 이유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월권을 우려해 극력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권한 남용 소지에는 국회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대안을 마련하되 세계 각국의 사례처럼 테러 대응의 중심축 역할은 정보기관이 맡는 게 옳다고 본다.
8.총선 연기 불상사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20대 총선 연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23일이 지나면 총선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24일부터 재외국민 선거인 명부 작성에 들어가려면 전날에는 선거구 획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여야는 느긋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획정안을 다른 쟁점 법안과 같이 처리하자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17대와 19대 총선 때도 선거를 불과 37일, 44일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이 극적으로 처리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선거법 자체가 이슈였지만 지금은 쟁점 법안 처리와 연계돼 선거구 획정안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 문제와 북한인권법은 큰 틀에서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법안 처리를 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여야 간 견해차가 큰 것은 테러방지법이라 할 수 있다. 야당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권 부여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국내 정치 정보 수집에서 피해 의식이 있는 야당으로서는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보·경제 위기가 엄중한 시기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으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머뭇대는 것을 보면 야당의 수권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선거구 획정안을 먼저 처리하자는 것은 결국 다른 쟁점 법안 처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야당의 ‘먹튀’가 걱정된다고 새누리당 역시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미뤄서는 안 된다. 다른 법안과의 연계 처리 운운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던 야당의 꼼수를 여당이 해서야 되겠는가. 민생 법안만큼이나 20대 국회의원들을 뽑기 위한 첫출발인 선거구 획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유권자들도 자신의 지역구 등 선거구 변화에 관심이 많다.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검증도 받지 않고 후다닥 선거법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마저도 여야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양당 원내지도부는 오늘 회동을 하고 법안 처리 협상을 재개한다고 한다. 벌써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걱정스럽다. 새누리당은 오는 29일 선거구 획정안 등을 일괄 처리한다고 하지만 더민주는 2월에 처리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러니 총선이 한 달 연기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여당이 다소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총선 연기라는 파국은 막아야 한다.
[중앙일보]
9.영국의 EU 탈퇴 가능성, 강 건너 불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 가능성이 가시화돼 비상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일(현지시간) 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6월 23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브렉시트 움직임에 놀란 EU 정상들이 전날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 중단 등 캐머런 총리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지만 국민투표를 막지 못했다. 현재 영국 여론은 찬반 간 우세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전이라 브렉시트의 현실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브렉시트는 머나먼 곳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선 영국이 탈퇴하면 한·영 간 교역이 타격을 입는다. 영국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대상에서 빠지는 탓이다. 지난해 대(對)EU 수출액은 480억 달러로, 이 중 15.2%인 73억 달러어치가 영국에 갔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한국산 제품들이 관세 혜택을 못 받게 돼 타격이 불가피하다.
관세뿐만 아니라 EU 경제의 위축 역시 우리 기업에 큰 짐이 된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EU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이 제기됐던 지난해 한 경제연구소는 그리스가 빠지면 한국의 대EU 수출은 7.3%포인트 줄 걸로 분석했다. 영국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10배 이상이다. 브렉시트의 충격이 그렉시트와는 비할 수 없이 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브렉시트로 세계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간 영국은 EU의 공동외교정책에 발맞춰 힘을 보태 왔다. 영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활약하며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상당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이런 나라가 EU에서 빠지면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EU의 대외정책도 흔들릴 게 틀림없다.
우리에겐 여러모로 영국의 EU 잔류가 유리하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인들을 상대로 EU 잔류를 직접 호소할 계획이라 한다.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우리 역시 영국 잔류를 지지한다는 뜻을 조심스레 알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10.환율 변동성 위험수위 `코리아 리스크` 증폭 경계해야
지난주 말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한때 달러당 1240원에 육박하며 5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4년6개월 만에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값은 한 달 보름여 만에 5.3%나 떨어졌다. 하루 동안 12원이나 널뛰는 등 변동성도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의 대남 테러 위협 등 남북 간 긴장 고조가 외국인들의 불안 심리에 불을 댕겼다. 작년 6월부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고 올 들어서는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매도 우위가 지속되는 등 앞다퉈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는 추세라 걱정스럽다.
원화가치 하락이 수출과 물가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지난 1월 수출이 -18.5%라는 충격적인 감소세를 보인 데 이어 2월에도 열흘 동안 20.3%나 급감하고 있는 판국에 그나마 원화값 하락으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이 감소하고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개선 효과는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주식·채권투자 자금 이탈→원화가치 하락→주식·채권시장 하락→외국인 자금 추가 이탈→원화가치 추가 하락'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주식·채권·외환시장이 동시다발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외환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섣불리 외환보유액을 풀 수도 없고, 시장 개입도 극도로 조심스럽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에 제재를 가하는 BHC법안의 발효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은행·기업 할 것 없이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실기업 정리, 노동개혁은 하세월이니 외국인들이 원화를 팔아치우는 게 당연하다.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을 하나씩 성사시키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만이 근본 해법이다. 외환당국은 지역통화기금 및 주변국과의 통화 스왑(국가 간의 통화 교환)으로 외환 안전판을 든든히 하면서 외환시장에 대한 밀착 감시를 통해 추세적 흐름뿐만 아니라 변동성 관리에 집중하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동아일보][이영광의 시의 눈]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1963∼ )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시를 읽자니, 안톤 슈나크의 서정적인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중국 작가 주쯔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슈나크는 작고 희미한 것도, 멀고 오래된 것도, 크고 오만한 것도 다 슬프다 했지. 주쯔칭의 글엔, 살기 위해 아버지는 난징으로, 아들은 베이징으로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쓸쓸한 플랫폼이 나온다. 술술 읽어 나가기가 어려웠었다.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이 짧은 시에도, 일상의 무감각한 시간을 날카롭게 정지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다.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화자는 자꾸 한눈을 판다. 그의 걸음을 붙드는 건 작고 보잘것없어서 사는 데는 별 쓸모가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크고 힘센 것들의 뒤편 후미진 곳에, 숨은 듯 버려진 듯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이들의 약함과 아름다움과 처연함에 붙잡혀 멈춰 서고 마는 이 사람은 거의 시인 자신 같다. 그러면서 그는 시를 쓰게 되었고, 그러다가 번듯한 직장 하나 얻지 못했고, 그래서 늙은 어머니의 애잔한 근심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의 눈에는, 씀바귀 꽃과 제비들과 노점 할머니와 고향의 어머니가 전혀 다르지 않다. 한 식구다. 그러므로 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만나면 대책 없이 또 피가 따뜻해지는 이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경쟁에서 뒤처진다 해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멈추게 한 그 힘이, 바로 그를 다시 걷게 하고, 살게 해주는 힘이니까. 허겁지겁 달리던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날 달리게 하는 힘이 과연, 언젠가는 날 멈추게도 살게도 해주는 따뜻한 힘인 걸까. 봄이 오면 소개하려고 아껴두었던 시를 영하의 날씨에 내보인다. 봄날의 온기를 미리 꾸어 와, 이곳저곳 좀 덥혀야 할 것 같으니까.
2.[중앙일보][취재일기]여성 정치, 사람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는 (우선추천) 안 돼요. 남자들이 (공천) 받으려면 성전환수술 하는 게 유리할 겁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입에서 ‘성전환수술’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를 당선시키기 위해선 시·도마다 1~3곳의 우선추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과거의 전략공천과 비슷한 개념인 우선추천 대상자를 놓고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간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다. 우선추천을 확대 적용하는 데 반대하는 김무성 대표 측은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우선추천 규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이 위원장 말처럼 인원을 할당해 인위적으로 내려꽂는 방식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간 갈등이 해소돼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우선추천’에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이 합의한다 해도 진짜 고민이 남아 있다. 제일 중요한 ‘사람’이 없어서다.
새누리당이 16일 마감한 공천 신청자 현황을 보면 여성은 822명 중 78명(9.5%)에 불과하다. 전체 246개 지역구 중 183곳(74.4%)엔 아예 여성 후보가 없다. 강원·전북·전남·제주·울산·세종·광주엔 1명도 없다. 서울(25명)·경기(24명)·부산(11명) 등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에만 몰려 있다. 그만큼 여성이 본선에 출마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우선추천 제도를 통해 여성을 늘리려면 인재 영입이나 다른 지역 후보를 돌려막기 하지 않곤 불가능하다.
사정은 야당이라고 나을 게 없다. ‘남초(男超)’가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공천 신청자는 379명 중 35명(9.2%)이다.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는 국민의당조차 영입 인사 49명 가운데 여성은 2명(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 교수, 강연재 변호사)뿐이다.
이쯤 되면 여야 여성 의원들이 부르짖는 ‘지역구 30%를 여성으로 공천하라’는 주장도 공허하다. 당 지도부뿐 아니라 당 안팎의 여성계조차 후보 발굴에 손 놓고 있어서다. 새누리당은 여성·청년·신인 후보에 각 10%(여성 신인 20%), 더민주는 최대 25% 가산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후보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이러다 보니 여성계에선 “현역 의원이 없는 분구 지역에 여야가 여성 후보를 공천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 서울 강남 분구 예정 지역엔 전·현직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이 몰리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 비율은 17대 13%, 18대 13.7%, 19대 15.7%로 답보상태다. 그나마 지역구 당선자는 10명, 14명, 19명으로 10%도 안됐다. 20대 총선은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깨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3.[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개성공단의 퇴로는 열어 놨으면 개
성공단이 죽었다. 경협을 넘어 평화를 생산하려던 곳이다. 다시 살리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 1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에서 “개성공단의 파탄이 우리의 핵무력 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리석은 일”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지난 16일 국회에서 한 국정연설에 “개성공단의 중단은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남북한의 ‘강 대 강’ 대결로 개성공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그렇게 되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과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으로 추억이 돼 버린다.
한국의 개성공단 중단에 이어 미국과 일본도 독자적인 대북제재법을 각각 발표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능력 향상, 북한 지도층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달러를 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울러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도 제재한다. 일본은 북한 국적자·선박의 일본 입국 금지, 대북 송금 원칙적 금지 등을 채택했다.
그런데 일본의 대북제재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대북 송금의 경우 인도적 목적이면 10만 엔(약 109만원) 이하, 북한으로 현금을 반입할 경우도 10만 엔 이하는 가능하다고 했다. 적은 액수지만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또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 부장관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계속 협상할 용의가 있으며 문은 닫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 납치문제 담당상도 “일본은 (납치 문제 재조사와 제재 일부 완화에 합의한) 스톡홀름 합의를 파기할 생각이 없다.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은 한·미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대화의 끈을 단절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의 공약인 ‘납치문제 완전 해결’이 비록 장기화될지언정 기다리겠다는 의지다. 일본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작금의 위기 국면이 진정되면 한·미·일 가운데 북한과 가장 먼저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남북관계에 큰 위기가 올 때마다 10여 년 전에 통일부 차관을 역임한 분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북한을 몰아치더라도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 그것은 북한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미·중이 한국을 무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자병법』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말을 한반도에 적용한 말이다. 위사필궐(圍師必闕) 궁구물박(窮寇勿迫). 적군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퇴로를 열어줘야 궁지에 몰린 적군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지 않는다. 일본이 『손자병법』의 지혜를 활용하고 있다. 대북 정책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친 즉흥적인 결정보다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매경이코노미][성제환의 ‘르네상스 예술 여행’] (25)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성구실’ 영묘 주인을 밝히지 않은 까닭은…
“미켈란젤로, 드디어 내가 주문한 예배당 건축을 끝냈구려! 어떻게 지어졌는지 보고 싶네. 최소한 상상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주게.”
사생아로 메디치 가문에서 두 번째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클레멘스 7세’가 선조들의 시신을 안장할 예배당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에게 보낸 감사 편지다.
‘위대한 로렌초’가 사망하고 얼마 안 돼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급작스럽게 추방당하는 바람에 메디치가 자손들은 로렌초의 영묘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한때 ‘조국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던 위대한 로렌초가 사후에는 이렇게 천대받을 줄 누가 알았으랴. 교황은 임시로 모셔진 위대한 로렌초와 자신의 아버지 시신을 한 예배당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어 예기치 못하게 피렌체를 다스리던 형과 조카가 사망하자 이들의 시신 또한 함께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계획은 불가피하게 여러 번 수정됐고 심지어 미켈란젤로가 “교황님, 나는 당신의 종이 아닙니다”라고 불평할 정도로 메디치 가문과 미켈란젤로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미켈란젤로는 이 예배당을 메디치 선조들의 영묘 조각상으로 장식했고 그렇게 오늘날 ‘(신)성구실’이라 불리는 걸작이 탄생한다.
이곳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 벽면에 얼굴만으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장군 형상으로 조각된 두 개의 대리석 입상(立像)이 있고 바로 아래 나체로 조각된 여자와 근육질의 남자가 비스듬히 누운 포즈로 조각돼 있다. 완성품이라기보다는, 미완성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칠게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후대 미술사가들은 비스듬히 누운 형상으로 제작된 조각상을 ‘밤과 낮, 그리고 황혼과 새벽’으로 이름 짓고,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미켈란젤로는 왜 누구를 기리는 영묘인지 알 수 없도록 영묘를 제작했을까? 르네상스 시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의 영묘를 제작할 땐 형상을 생전의 모습과 유사하게 묘사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우리나라도 비석을 세울 때 후손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이름을 반드시 새겨 넣는다.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의 영묘를 조각하면서 특정인을 위한 영묘를 상징하는 표식을 명확히 남기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당대 최고 조각가로 교황의 영묘(말썽 많던 교황 율리우스 2세)까지 제작한 경험이 있었던 미켈란젤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다듬은 대리석에만 열중하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더욱 미궁에 빠지고 만다. 필자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복귀해 다시 권력을 잡아가던 당시 상황을 곁들여 작품 감상을 해보려 한다. 의외로 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은 추방당한 지 18년이 지난 1512년, 추기경이었던 위대한 로렌초의 둘째 아들(후에 교황 레오 10세) 덕분에 피렌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지만 마키아벨리와 같은 공화주의자 때문에 피렌체 민심은 메디치 가문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을 더욱 난처하게 한 것은 메디치 은행이 파산해 빈털터리가 됐다는 점이다. 한때 막대한 부와 유럽 군주와의 친분 등으로 피렌체를 보호해주던, 과거의 메디치 가문이 아니었다. 단지 피렌체 시민들은 교황의 후원이 있으면 다른 국가가 피렌체 영토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메디치 가문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다시 피렌체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조심스럽게 특정 지도자를 우상화하기보다 시민 공동체를 우선시하던 마키아벨리 시대의 공화정 전통을 그대로 따랐다(적어도 초창기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메디치 가문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교황 레오 10세는 동생을 교황군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철부지 조카는 스스로 피렌체 시민군 사령관이라 칭했다. 또 교황은 이들을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의 군주(공작이란 칭호)로 임명했다. 이렇게 종교 권력의 힘으로 교황은 물론이고 친지들까지 모두 귀족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의 영묘를 제작할 때 메디치 가문은 상인 가문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됐지만, 피렌체에서는 공화정을 염원하는 시민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피렌체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메디치 가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민들의 상반된 입장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메디치 가문의 주문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상인에서 귀족으로 격상한 메디치 가문의 위상과 특정 개인의 우상화를 자제하는 상반된 분위기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귀족 가문은 영묘를 제작할 때 얼굴 형상이 드러나는 조각상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부자라 해도 상인들은 얼굴의 형상이 들어간 거대한 조각상을 영묘로 제작할 수 없었다. ‘국부’로 추앙받던 ‘코시모’도 조각상 없이 교회 바닥에 ‘국부’라고 새겨진 평판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교황의 권력으로 귀족 반열에 오른 메디치 후손들은 얼굴 형상을 묘사한 거대한 조각상 영묘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 후손들의 영묘를 대리석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정 개인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 공화정 체제 전통을 따라 영묘에 조각된 얼굴은 영묘의 주인과 전혀 관련이 없는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조각상에 묘사된 상징물을 보고 영묘 주인을 분간해내는 수밖에 없다(사진ⓛ).
먼저 장군 복장을 하고 모자를 쓰지 않은 형상으로 조각된 영묘는 교황의 동생으로 당시 교황청 군대 사령관을 지냈던 ‘줄리아노’다. 미켈란젤로는 공식적으로 군대 사령관을 지낸 인물임을 상징하기 위해 장군의 손에 지휘관을 상징하는 바통을 살며시 쥐어줬다. 그러나 교황 승인 없이 스스로 피렌체 시민군 사령관이 된 조카 로렌초의 영묘에는 장군 모자만 씌워놓고 바통은 살짝 빼놨다. 피렌체 시민이 이 철부지를 지휘관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섬세한 상징물을 조각해놓는 방식으로 영묘의 주인을 드러내는 조심스러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럼 위대한 로렌초는 어디에 있을까.
위대한 로렌초의 영묘가 장군 형상을 한 후손 영묘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제작됐을 법한데, 어디를 둘러봐도 찾기가 쉽지 않다(현재 위대한 로렌초 영묘라고 새겨져 있는 문구는 후에 추가됐다). 위대한 로렌초의 시신은 사제들이 미사를 행하는 제대의 맞은편 벽면에 위치한 직사각형 대리석 석관에 안치돼 있다(사진②). 후손들은 교황의 권력으로 장군이 되고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됐기 때문에 전통에 따라 얼굴이 조각된 영묘로 추앙받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위대한 로렌초라도 평민이었기 때문에 얼굴의 형상이 조각된 영묘를 가질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두 벽면에 조각된 후손들 조각상이 위대한 로렌초의 시신이 안장된 석관을 바라보는 구도로 조각함으로써 이 예배당 주인이 위대한 로렌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메디치 가문의 위상은 예전만큼 견고하지 못했다. 공화주의자로부터 시기도 많이 받았다.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하던 미켈란젤로는 피살 위협 때문에 수도원 지하에 6개월간 숨어 지낸 적도 있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신중한 성품 때문에,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에도 메디치 가문의 영묘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이 대리석 조각품만은 훼손당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재능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 아닐까.
5.[머니투데이]지상에서 천국처럼, '산위의 마을'의 반소비 오프 운동
산위의 마을은 자연과 어울려 생태 농업을 하는 무소유 신앙공동체다. 박 신부는 1998년부터 준비해 2004년 마을을 만들고 2006년 입촌했다. 입촌할 때는 서울에서 단양까지 한발 한발 걸어서 갔다. '걸어서 천국까지' 길 위의 피정을 한 셈이다. 내 이웃 중에도 비슷한 분이 있다. 화천 토고미마을에 터를 잡고 서울에서 먼 길을 걸어와 손수 집을 짓는다. 나는 이 분에게서 박 신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박 신부에게 산위의 마을은 무분별한 소비와 소유로부터 탈출하려는 '노아의 방주'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 위한 영혼의 보금자리다. 그는 "우리의 영혼은 소비문화의 악령에 사로잡혀 묘지 주변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소비문화가 우리의 삶을 가장 완전하게 지배하고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기술문명의 아바타로 살아가는 듯하다"고 한다. 공감!
산위의 마을은 돈이 아예 필요 없는 생활 시스템을 만들어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하는 反소비 운동 중의 하나가 '오프(off) 운동'이다. 예컨대 '쇼핑 오프'는 쇼핑을 안 하고 사는 것이다. 이런 오프가 여럿이다. TV 오프, 액세서리 오프, 메이크업 오프, 신용카드 오프, 승용차 오프, 휴대폰 오프…….
"'오프 운동'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애버리는 100퍼센트 오프의 멤버도 있고, 다섯 개의 신용카드를 하나로 줄이거나 아예 안 쓰거나,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소형차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자유로운 동조다. 하지만 최소 한두 가지는 실천하는 것이 예수살이 운동의 기본 조건이다. 가장 잘되는 운동은 텔레비전과 쇼핑 오프이고, 가장 안 되는 것이 휴대폰 오프이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도 많은 '오프'가 필요하다. 나 또한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더더더를 외치는 욕망의 화신 아니던가. 밤낮 없이 사고 쟁이고 버리는 소비중독자 아니던가.
박 신부는 박 노해 시인의 형이다. 둘을 본 적은 없지만 형제는 닮았다. 둘 다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세상을 바꾸려 한다. 둘 다 혁명가다. 운동가다. 형은 영성으로, 동생은 감성으로 말하지만 결코 말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고 맞선다. 부딪치고 부순다. 실행하고 실현한다. 머리와 몸과 발이 따로 놀지 않는다. 형은 '작은 것'을, 동생은 '큰 것'을 외치지만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 간다.
작은 나를 넘어 여럿이 함께 가는 것, 그것이 공동체다. 형제는 이런 공동체에 헌신한다. 우리를 통해 더 큰 것을 이루고 더 큰 나를 만나는 일에 자신을 던진다. 형제는 공동체주의자다.
나는 어떤가? 나는 아니다. 형제와 반대다. 나는 혼자 한다. 혼자 간다. 혼자 논다. 혼자 누린다. 내 마음에는 공동체가 없다. 나는 여럿을 힘들어 한다. 함께 하는 걸 어려워한다. 좀처럼 뜻을 합치지 않는다. 힘을 보태지 않는다.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다. 결실을 공유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 챙기는 개인주의자다. 나만 위하는 이기주의자다. 내 편만 우기는 분리주의자다. 나는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고, 우리가 모두가 하나라는 진실을 모른다.
[출처] 2016년 2월 22일 속기·칼럼 자료|작성자 넷스쿨영등포속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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