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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8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막가파 공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여야 공천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분통과 냉소로 요약된다. 말끝마다 국민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막상 하는 짓거리를 보면 국민이 손톱만큼이라도 안중에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보수 집권당에서 4년마다 벌어지는 ‘공천 학살극’이나 현 정부를 독재로 몰아붙이는 진보 야당에서 자행되는 ‘독재 공천’이나 목불인견(目不忍見)이긴 매한가지다.

정당이 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정한 절차에 따라 추천하는 게 공천이지만 현실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계파 이기주의가 난무할 뿐이다. 여론과 인지도, 의정활동 등의 원칙이나 기준도 작동하지 않고 투명성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권력자나 그 하수인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칼질하고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는 권력의지만 판치니 “누가 누구를 물갈이한단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질 만도 하다.

이처럼 자의적인 막가파식으로 이뤄지는 공천은 후폭풍이 거세기 마련이다. 패자가 결과 승복과 함께 승자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먼 나라 일이고 당을 뛰쳐나가 무소속이나 다른 당 후보로 나서서 여태 몸담았던 당을 공격하는 게 관행화되다시피 됐다. 여기에 대해선 유권자들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2. 한국은 얼마나 행복한 나라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들이 느끼기에 과연 얼마나 살기 좋은 환경일까. 한국이 세계 각국 가운데 행복지수가 58위로 나타났다는 소식에 새삼스럽게 던지는 질문이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나타난 순위다. 행복지수라는 표현대로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만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이 전년 보고서에서 47위에 올랐다가 올해는 더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1년 사이에 행복의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여력과 건강수명, 사회 분위기 등의 지표를 통해 측정한 결과다.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이나 어려운 처지에 닥쳤을 때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 항목을 떠나서도 우리가 날마다 겪는 사회는 짜증나고, 불안하고, 심드렁하다. 밝고, 유쾌하고, 웃음을 주는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불만을 더 많이 느끼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경제불황에 청년실업, 전셋값 폭등, 가정폭력, 보복운전 등 신문 활자로 전달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살기가 팍팍하다고 해서 정치인들에게 하소연할 처지도 못 된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조사된 덴마크나 그 뒤를 잇는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사례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꼭 경제적인 요소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근면하고 검소한 태도로 생활의 여력을 키워가는 노력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남을 위해 배려하고 도우려는 마음가짐이 아쉬울 때도 적지 않다.

우리의 사회 여건도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살기 좋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면서 빈부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데다 능력은 있어도 연줄이 없으면 흙수저를 면치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급속한 노령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는 상황이다. 자식들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줘야 할 것인가. 내년에는 행복지수 순위가 더 떨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동아일보]

3. 새누리 공천 內戰, 김무성은 ‘보여주기 리더십’밖에 없나

새누리당이 어제 김무성 대표의 거부로 정식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못했다. 대신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만이 간담회 형식의 최고위를 열었을 뿐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김 대표와 같이 가기 어렵다’는 막말까지 나온다. 공천관리위 외부 위원들이 전날 김 대표의 ‘공천 비판’ 기자회견을 문제 삼아 회의를 보이콧하는 바람에 공관위도 중단됐다. 친박 지도부가 사과를 요구했으나 김 대표는 단칼에 거부했다. 비박계 의원 일부는 친박계에 맞서기 위해 의원총회를 추진하고 있다. 당이 두 동강 날 듯하다.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는 사태의 1차 책임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있다. 당헌 당규의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할 단수와 우선추천을 원칙이나 되는 것처럼 밀어붙였다. 이 위원장은 친박을 뒤에 업고 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 위주로 탈락시키고, 친박계와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를 대거 공천했다. 과거 2008년과 2012년 총선의 친박과 친이 학살 때도 이 정도로 명분 없이 하진 않았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표라도 독립기구인 공관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의를 요청하려면 정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일방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공개 최고위 회의 내용을 공개하고 공관위 결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분란을 일으키려는 언론 플레이나 다름없다. 최고위를 멋대로 연기한 것도 독단이다.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김 대표가 공관위의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친박계 김태환 의원이 1차 컷오프됐을 때 시작했어야 한다. 서상기 주호영 권은희 홍지만 의원이 2차 컷오프됐을 때도 김 대표는 잠자코 있었다. 이후 친이계와 비박계가 우수수 탈락하자 뒤늦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 와중에도 권성동 김성태 김학용 박민식 등 김 대표 측 의원들은 살아남았다. 김 대표가 비박계 학살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는 ‘쇼’를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김 대표는 2014년 10월 ‘개헌봇물론’ 발언부터 최근 살생부 논란까지 몇 차례 박 대통령과 친박에 맞서다 30시간도 못 돼 물러서곤 했다. ‘30시간 법칙’이란 말이 그 바람에 생겼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까지 자초했다.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듯한 여당 공천에 국민은 크게 실망했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 것이 그 방증이다. 이런 상태라면 선거 뒤 집권당이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심각한 난맥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김 대표는 더는 “정치생명을 걸겠다”라는 말도 못하게 될 것이다.

4. 인공지능 산업에 1조 투자한다고 ‘숙제 검사’는 말아야

미래창조과학부가 어제 인공지능(AI) 등 지능정보산업 분야에 올해부터 5년 동안 1조 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 등 6개 대기업이 30억 원씩 총 180억 원을 출자해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면 재정에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능정보기술이란 AI 개발 소프트웨어(SW)로 대표되는 ‘지능’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를 결합한 개념을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1조 원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조기에 성과를 내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사족을 단 대목에선 뒷맛이 개운치 않다. 예산을 지원한 뒤 감사를 통해 해마다 일정 성과를 독려하는 방식은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제조업이면 몰라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AI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숙제 검사’다. 경쟁이 기본인 민간기업으로부터 돈을 걷어 공동 연구소를 만드는 방식도 관료주의 냄새가 난다. 

정부가 AI산업의 방향을 미리 정한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래부는 지능정보산업의 핵심 분야를 ‘플래그십(주력 제품) 프로젝트’로 지칭하고 2019년까지 지식 축적 분야의 기술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정부가 깃발을 들며 ‘나를 따르라’고 하는, 1970년대 맨땅에 헤딩하듯 급조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연상시킨다. 정부 주도 개발시대의 추억에 젖은 관료가 AI산업의 밑그림을 성급하게 그리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AI산업은 자동차, 조선처럼 다른 나라 제품을 모방하면서 점차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무(無)에서 무궁무진한 유(有)를 창조하는 분야다. 성패는 오직 추리력, 상상력에 달렸고 일단 선점하면 그걸로 승부는 끝이다. 게임의 열쇠는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다. 캐나다고등연구원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의 말만 듣고 10년 동안 1000만 달러를 기계학습 분야에 투자했고 힌턴 교수는 ‘딥러닝’ 개념으로 AI 시대를 열었다. 

정부 예산으로 전문 인력의 저변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 만들 지능정보기술연구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핵심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연구소장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해 전권(全權)을 주고 관료들은 손을 떼야 한다.

[서울신문]

5. 北 인권문제 국제사회에서 공론화 주도할 때

어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제재 조치들을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기업·은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 포괄적 금지 조항이 포함됐다. 특히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새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려는 시점에 나온 ‘인권 카드’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미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규명과 처벌 문제를 다룰 ‘전문가 그룹’ 설립을 권고하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북 인권 문제를 비핵화를 견인하는 수단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닐 게다. 우리는 이를 북한 주민들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잣대로 다룰 때라고 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어제 최근 북한이 여성 근로자들을 중국에 대거 파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에 해외 근로자 파견 금지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침해를 제재하는 조항을 넣은 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은 이런 빈틈을 메우려는 수순이다. 그러나 이는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죄는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국외로 송출한 노동자들이 ‘노예 노동’으로 간주될 정도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 아닌가. 중동 지역 북한 노동자들이 “월급의 70∼80%를 북한 당국에 상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검열단에 뇌물까지 줘야 한다”는 RFA 보도 내용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북 인권 문제에 대해 제3자인 국제사회에 비해 미온적이었다. 유엔은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다음해인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지만, 우리 국회는 발의한 지 11년 만에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북 주민들이 당하는 인권 유린을 외면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 북 내부에서 벌어진 공개 처형이나 강제 수용소 감금 등을 못 막은 것은 고사하고 배를 곯다 국경을 넘으려던 탈북자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조차 방치해 왔으니 말이다.

매년 5000만 달러 수준인 유엔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제재 국면에선 늘어나기 어렵다. 북 주민들의 극심한 생활고를 덜려면 김정은 정권이 속히 핵·미사일 개발을 관둬야 할 근거다. 그럼에도 그제 서세평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날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고 인권 침해 사실을 부인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지만, 북 인권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던 북측이 다시 나타난 사실 자체가 이 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임을 말한다. 통독 전 서독이 그랬듯이 인권 문제 제기는 늘 주민의 삶보다 체제 유지가 우선인 전체주의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명분 있는 비대칭 무기다. 지구상 최악이라는 북 인권 문제를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앞장서 공론화해야 한다.

6. 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체계적으로 조사하라

약탈당한 것으로 알았던 지광국사현묘탑의 사자상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다는 어제 서울신문 보도는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어떤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문화재 당국조차 알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현묘탑은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 해린의 승탑이다. 애초 강원 원주 법천사터에 있었지만 일본으로 반출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마당에 자리잡았다. 팔각원당형이 승탑의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화려하게 장식한 사각의 독특한 형태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이렇듯 중요한 문화재마저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문화재 행정의 문제가 크다.

중앙박물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사자상의 존재를 확인해 보존 처리를 거쳤고, 지난해에는 학술지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을 실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자상의 일제강점기 반출설(說)’이 학계에서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던 마당에 그 존재를 확인하고도 공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수장고에 수많은 유물을 쌓아 놓고 있으면서도 기초적인 관리 카드마저 작성하지 않은 일종의 직무 유기를 숨기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이 같은 사실을 중앙박물관으로부터 통보받고도 인터넷 홈페이지의 ‘문화재 검색’ 코너에 슬며시 내용만 고쳐 놓은 문화재청도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6·25 전쟁 때 파괴된 것을 어설프게 복원한 지금의 지광국사현묘탑을 조만간 해체해 정밀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한편으로 지광국사현묘탑의 사자상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었다는 소식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앙박물관이 어떤 박물관인가. 광복 70년이 넘도록 국가 대표 박물관조차 유물 소장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립박물관의 유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품위 있는 선진 문화 국가로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모두 30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유물 조사에는 많은 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도 중앙박물관의 인력 확충에 인색하면 안 된다. 유물 정리는 꼭 정규직이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청년 실업 시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기도 하다.

7. 인문학 지원이 도리어 죽이는 꼴 안 돼야

인문학 발전 계획을 잘 세운 대학들에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한다. 지난해 예고했던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코어 사업)이다. 어제 교육부는 사업 기준에 부합한 프로그램을 제출한 대학 16곳을 우선 선정해 발표했다. 해당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7곳과 지방대 9곳이다. 선정된 대학들에는 앞으로 3년간 해마다 600억원의 예산을 나눠 주기로 했다. 참여 규모와 사업 계획에 따라 매년 12억~37억원의 목돈을 차등 지원한다.

이 사업은 대학 인문 분야 교육 프로그램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최초의 정책이다. 인문학의 위상을 살리되 사회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인문학 교육 모델을 제시한 대학들을 밀어 주겠다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에 맞게 특화된 인문학 교육을 확대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전공 계열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다양한 인문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면 고사 위기의 인문학을 살리는 특단의 처방일 수 있다. 문제는 예산 잿밥에만 관심 있는 대학들과 그럴싸한 사업 계획에 정부가 헛돈을 쓰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을 살리자고 내놓은 정책이 순수 학문의 뿌리를 말리는 꼴이 될까 걱정이 많다.

냉정히 따져 코어 사업은 태생적 한계를 안은 정책이다. 지난해 정부는 대학 이공계 강화를 목표로 ‘프라임 사업’을 추진했다. 이공계 학과 위주로 입학 정원을 조정하게 유도하는 대학 구조조정 사업이다. 안 그래도 위축된 인문계 학과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는 비판에 보완책으로 서둘러 나온 것이 코어 사업이다. 그러니 웬만한 대학들은 덩치가 큰 프라임 사업에 사활을 걸어왔다. 산업 수요를 고려해 구조조정을 잘하면 최대 300억원의 뭉칫돈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대학이 있을 리 없다. 교육부의 눈에 드는 사업 계획서를 만들겠다고 대학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컨설팅 업체에만 매달렸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런 마당이니 더 걱정이다. 정부가 제시한 코어 사업의 핵심 모델은 기존의 인문학과 프로그램을 사회 수요가 많은 학과와 융복합하는 것이다. 무게중심이 인문학에서 취업에 유리한 학과 쪽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돈 되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짜라”는 또 다른 신호로 읽힐 우려가 작지 않다. 신호를 따라오는 순서대로 상금을 나눠 주는 얕은 정책이어서는 인문학을 돌볼 수 없다. 계획과 달리 부실 운영을 하지는 않는지 앞으로 현장의 만족도까지 두루 챙겨 평가해야 한다. 실질적인 감독 의지가 뒤따라야 정책의 취지를 꾸준히 살려 나갈 수 있다.

[매일경제]

8. 규제프리존 성공하려면 부처 칸막이 먼저 없애라

정부와 새누리당은 어제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을 위한 당정 협의회를 열어 이달 중에 입법화하고 5월부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규제프리존은 전국 14개 시도에 총 27개 지역전략사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업을 추진할 때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모두 철폐하고, 관련 법안이 없는 신산업에 대해서는 '그레이존'을 설정해 30일 안에 확인되지 않으면 규제가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전략사업에는 드론과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 등 신성장 산업이 포함돼 있어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묘안이라는 점에서 조속한 도입이 절실하다. 새누리당은 "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만큼 야당과 함께 공동 발의하도록 하겠다"며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다. 

정부와 여당이 규제프리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사업 협의 과정에서 카지노 허가 확대와 연구용 난자 기증 등 수십 개 사업에 대해 해당 부처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도입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부처 장벽에 가로막히면 규제프리존 도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을 설득해 여야 공동 발의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공표했지만 일부 사업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입법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야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의 일부 내용이 의료와 관광 분야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할 수 있고 골목상권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의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규제프리존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전략사업을 주도하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규제프리존 성패를 좌우한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해당 지자체는 철폐돼야 할 규제를 발굴하고 신산업 육성을 위해 중앙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규제프리존 도입은 각종 규제로 발전하지 못하는 신성장 사업을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정책이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비상시국이니만큼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살리기에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9. 與 공천 자중지란이 국정 최대 걸림돌이 된 현실

새누리당의 친박·비박계 간 공천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17일 비박계 대거 탈락 공천안 추인을 거부하며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자 친박(親朴)계 최고위원들이 따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는 등 지도부가 아예 두 쪽으로 쪼개진 양상이다. 어제는 외부 공천관리위원들이 김 대표 사과를 요구하며 공관위 회의를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상향식 공천만 외치다 현역 물갈이, 인재 영입, 국민 경선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한 김 대표도 문제지만 기준도, 원칙도 없이 오로지 계파와 충성도만 따져 막무가내식 공천을 강행한 이한구 공관위원장과 친박계의 막가파식 행보도 끝을 모를 지경이다. 당 대표를 향해 "죽여버려" "바보 같은 소리" 등 막말이 난무하고 최고위원들끼리도 하극상이 횡행한다. 공천 탈락 의원들은 저마다 탈당, 무소속 출마를 공언하고 있으니 명색이 집권여당이 사분오열, 모래알 분위기다. 김 대표는 최종 공천 명단에 대표 도장을 찍지 않는 옥새 투쟁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하고 청와대와 친박 주류들 역시 "김 대표와 같이 갈 수 없다" 며 일전불사 태세라고 하니 나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어제 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53.2%로 치솟고, 새누리당 지지율은 40.7%까지 떨어지는 등 당·정·청이 동반 추락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새누리당의 70% 이상을 자기 사람들로 채우겠다는 친박계의 패권주의는 비례대표 선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들은 물론 전·현직 관료, 공기관 수장들까지 직(職)을 내던지고 배지 앞에 달려드는 형국이다. 막말 파문으로 공천 배제된 윤상현 의원 지역구의 재공모를 미루는 것 역시 꼼수 중의 꼼수다. 새누리당 친박계 내에서는 악화되는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어중간한 170석보다는 친박으로 똘똘 뭉친 150석이 낫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도 150석을 자신하니 이 또한 오만의 극치다. 망국법으로 지탄받아온 국회선진화법은 고칠 생각도 없고 당권·대권만 챙기겠다는 의미다. 북한 핵 도발, 사상 최고 청년실업률 등 국가 안보·경제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집권여당이 패권 싸움에 여념이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

10. 美 북한 외화벌이 차단, 中·러 협력 끌어내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발동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은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조치여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완하는 이번 행정명령에는 북한의 국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또한 광물 거래, 인권침해, 사이버 안보, 검열, 대북 수출·투자에 대한 포괄적 금지 조항과 함께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이나 기업, 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조항도 들어 있다.

이는 미국 정부가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한 거듭된 도발에 대해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40여 개국에 10만명 가까운 노동자를 파견해 외화를 벌어온 김정은 정권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는 당초 유엔 안보리 제재안 작성 때 거론됐으나 중·러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빠졌는데 미국 정부가 이번에 빈틈을 메운 것이다. 

미국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발동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면 더욱 치밀하고 효과적인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도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어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조치를 하나둘 취해 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중국 기업이 여전히 북한산 철광석을 반입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북한 광물 거래 제한에 대해 중국은 민생 목적이거나 대량살상무기와 무관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관철시켰다. 러시아는 나진항을 통해 수출되는 러시아산 광물은 제재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이는 자칫 북한 돈줄 차단에 큰 구멍이 될 수도 있다. 추가 핵실험을 공언하는 북한을 강력히 응징하려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의 대북 제재에 적극 협력하면서 자국의 제재 조치에 어떤 빈틈도 없도록 보완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홍광호, 귀를 호강시키는 위로의 목소리…뮤지컬 '빨래'

홍광호(33)의 달콤한 목소리가 삶의 묵은 때를 빨래하듯 씻겨냈다. 16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 뮤지컬 '빨래'에서 벌어진 마법 같은 순간이다. 풍성하고 고급스런 홍광호의 목소리는 '꿀성대'로 통한다. 꿈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귀가 호강하는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홍광호는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데스노트' 등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뉴 프로덕션의 베트남장교 '투이' 역을 맡아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 조연 남자배우상,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최고조연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빨래'는 250석짜리 소극장 창작뮤지컬이다. 홍광호는 앞서 2009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오른 '빨래'에서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으로 호평 받았다. 당시 홍광호가 부른 솔롱고 넘버 '참 예뻐요'도 인기를 누렸다. 이후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이 곡을 자주 불렀다. '빨래'에 애정을 놓지 않던 그는 바쁜 스케줄과 높은 몸값에도 7년 만에 돌아왔다. 

4월 공연 티켓 13회차가 오픈 동시에 2분, 3월 공연 티켓 12회차가 3분 만에 매진됐다. 평일 낮 공연임에도 이날 역시 객석은 가득 찼다. 

대극장에서 공연 전체를 서서히 덮어가며 웅장하게 녹아냈던 홍광호의 목소리는 소극장에서 서서히 번져갔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솔롱고와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영' 등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는 관객들에게 저릿저릿 다가온다. 

홍광호의 스타성을 확인하는 순간들로 공연장은 터질 듯했다. 초반 솔롱고의 솔로곡 '안녕'을 부르고 2층 무대에서 씨익 웃는 장면은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잔잔한 하모니카 연주는객석을 위한 보너스였다. 나영이를 지켜보며 부르는 '참 예뻐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의 동작은 멈춰 있고 솔롱고만 홀로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시간도 멈춘 듯했다. 

홍광호의 연기력은 한층 탄탄해져있었다. 특히 서점에서 불법해고를 당한 선배를 위해 사장인 '빵'에게 대든 뒤 술을 먹고 취한 나영이 솔롱고의 집주인과 싸움이 붙었을 때가 정점이다. 나영이를 보호하면서 대신 맞는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능수능란함도 늘었다. 2막 초반 일종의 보너스 장면으로 홍광호가 베스트셀러 소설 '빨래하는 남자'의 작가로 변해, 나영이가 일하는 서점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건들거리며 사인해주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망가진 모습에서도 홍광호는 품위를 잃지 않는 태연함을 보였다.

홍광호는 이처럼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튀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빨래'는 앙상블의 뮤지컬이다. 솔롱고와 나영 외에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에서 여자 옷을 파는 과부 등 서민들이 어우러지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빨래'를 함께 하며 쌓인 때와 그 속의 아픔까지 씻어버린다. 

솔로 넘버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지만 앙상블에서는 다른 7명의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홍광호는 이처럼 능수능란하게 힘을 조절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를 통해 새삼 '빨래'가 좋은 작품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가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다. 홍광호가 '홍롱고'인 이유다. 

지난해 6월 10주년 특별공연을 선보인 '빨래'는 11년차에 들어서도 이 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감성과 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스타배우와 작은 소극장 뮤지컬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범사례가 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첼로 등 라이브 밴드가 함께 한다. 18차 프로덕션으로 지난 10일 개막했다. 내년 2월26일까지 동양예술극장 1관. 홍광호는 4월24일이 마지막 출연 회차다. 

2. [프레시안]환경운동가의 카페? 변절하든가 망하든가!

최근 나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겨나기도 하고, 가장 많이 망하기도 한다는 카페 사업에 뛰어들었다. 10년을 환경, 기후 변화, 에너지만 고민하던 활동가이자 연구원인 내가, 커피를 사기만 했지 팔아본 적도 없던 내가, 장사의 영역으로 넘어오니 에너지 문제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 느끼는 것이 장사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는 주차장이 넓어서 차를 가지고 오기 편해야하고, 낮은 건물이라도 엘리베이터가 있어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어줘야 한다. 상점 안은 인버터 냉난방기가 설치되어 있어 비효율적이지만 냉난방기를 시야에서 가려준다. 마지막으로 설치는 되어 있지만 잘 쓰이지는 않는 비데가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어야 손님들이 기본적으로 괜찮은 곳이라고 인지한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처음 배운 장사의 영역에서 에너지를 대하는 자세다.

적정 온도를 이야기하고, 인버터 냉난방기의 비효율성을 이야기해왔던 내가 이런 첫 경험을 통해 내면의 갈등이 시작될 즈음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됐다. 왜냐하면 상업용 전기제품의 전력 소비는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스무디나 주스를 만드는 블렌더는 상업용이 1.3킬로와트 정도는 넘어줘야 쓸 만하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업용 커피머신은 4킬로와트가 상시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일반 가정의 계약 전력이 3킬로와트인 것을 감안하면 커피 머신 하나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업용 제품에는 에너지 효율 등급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가정용처럼 눈으로 바로 확인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마음먹고 한 걸음 한 걸음 장사의 영역으로 들어설수록 나는 에너지나 기후 변화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는 걸까? 의식 없는 사업자의 문제인걸까? 그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문제인걸까? 아니면 이것을 방치한 제도의 문제인 걸까?

아직은 먼 이야기, 탈핵과 에너지 전환

암묵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쓰도록 강요받고 강요하는 것은 한국의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맹점일 것이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시스템, 그래서 내가 장사를 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수입과 지출로 나가는 에너지 비용으로만 대변되는 시스템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수익만 나면 그만인 것이 된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여름철 문을 열고 냉방을 하는 것으로 에너지의 과소비를 막고 있다. 매년 전국적으로 에너지 컨설턴트들이 육성되고 이들은 전반적인 에너지 컨설팅뿐 아니라 여름철 문을 열고 냉방을 하는 영업점을 단속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아쉽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벌금이나 불이익을 주는 네거티브한 방식밖에 없는 것일까?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사고 5주기다. 근 5년 동안 탈핵과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에 대해 많이 떠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신, 재생 에너지를 통한 산업의 육성과 일자리 창출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일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떠들던 그곳에 시민들은 얼마나 있었는 고민해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편지의 힘

5년 전 일본 미야기(宮城) 현의 한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오이카와 리나 양(당시 12세)은 선생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 겉면에는 ‘엄마가 리나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에게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다오. … 네가 숙녀가 되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가족 모두 너를 도와가며 함께 힘을 모을게. … 리나의 웃는 얼굴과 말에 언제나 힘을 얻는단다. 고마워.’ 하지만 힘이 되어주겠다던 엄마는 곁에 있지 않았다. 20일 전 동일본 대지진이 일으킨 지진해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나라에서 보낸 듯한 이 편지는 학교 측이 학부모들에게 졸업하는 자녀에게 써달라고 2월 말에 부탁해 동일본 대지진이 나기 전에 받아놓았다. 교사들은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교무실을 일주일간 필사적으로 뒤져 편지 보관함을 찾아냈다. 진흙으로 엉망이 된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는 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교생이 되었을 리나 양에게 이 편지는 세상을 뜬 엄마 대신 늘 곁에 있을 것이다. 

▷일본 이와테(巖手) 현의 한 언덕에는 ‘표류 포스트 3·11’이라는 우체통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진해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생존자들이 보낸 편지들이 이 우체통으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카가와 우지 씨는 재작년 빨간 우체통을 설치했다. 카페를 찾는 이들이 사연을 읽고 눈가를 훔친다. 편지는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서로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희망이 싹트고 생활의 버팀목으로 기능한다. 전남 진도의 팽목항에도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다.

▷‘언제나 경기에 함께할 테니 정진하라. 내가 가르쳐준 것을 잊지 말라.’ 봅슬레이 세계 최강자가 된 원윤종-서영우가 이 구절에 눈물을 쏟았다. 그제 한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두 사람은 암으로 숨진 맬컴 데니스 로이드 코치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같은 당신 덕분이었다며 ‘존경하고 사랑한다’로 편지를 끝냈다. 좌절하지 않겠다, 평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은 살아남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4. [동아일보][@뉴스룸/노지현]“방금 그 손님, 제 점수는요”

요즘 개인택시 회사택시 할 것 없이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쓰는 택시가 부쩍 늘었다. 스마트폰 덕분에 이용객과 택시기사 간에 편리한 점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큰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지만 이제는 손님이 서 있는 곳까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찾아 들어온다. 몸이 불편한 노인도 바깥출입이 수월해졌다. 콜 호출 전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입력하기 때문에 택시기사들도 이용객을 선택할 수 있다. 택시를 잡고 “○○ 가요?”라고 물어야 하는 이용객의 수고로움도 덜고 기사 역시 “거기 지금 못 가요”라고 말해야 되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그런데 한 택시기사는 “몇 번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써보니 20, 30대 여자 손님은 피하고 싶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자들은 호출하기를 누르고 화장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보통 근처에 있는 기사가 배정을 받아 오기 때문에 호출하기 버튼을 누른 후 2, 3분이면 손님 집 앞에 도착한다. 하도 사람이 안 나와 전화를 걸었을 때 “지금 나가요” 하면 그로부터 5분 정도 걸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면 10분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화 너머로 머리 말리는 드라이어 소리가 들리는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면 기사들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나온 손님에게 “왜 이리 늦었느냐”고 기사가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이용객은 방금 탄 택시의 기사를 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 성희롱은 단번에 퇴출. 불친절도 누적이 되면 택시기사에게 불이익이 간다. 별점이 낮은 기사일수록 콜을 적게 보내거나 늦게 보낸다. 지금까지는 택시를 잡은 후 차내가 담배냄새로 가득 차 있어도 참고 목적지까지 가야 했지만 이제는 “냄새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의견도 보낼 수 있다. 일종의 점수 매기기다.

그러나 택시들도 최근 대등한 무기를 받았다. 고객 점수 매기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실컷 손님이 서 있다는 장소까지 갔더니 손님은 사라졌다. 택시가 오는 사이 손님이 근처의 눈에 띄는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리는 경우가 기사들이 갖는 가장 큰 불만이었다. 신뢰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술 먹고 토한 뒤 수고비도 없이 내려버린다든지, 장시간 기사를 대기시키는 이용객 역시 낮은 별점을 받을 것이다. 서로서로 점수를 매기고 있는 셈이다. 

‘다시는 이 손님 받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계속 쌓이면 그 이용객은 다음에 아무리 호출하기를 눌러도 택시가 잘 오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택시들도 공유해서 기피하기 때문. 요즘 이상하게 택시가 배정이 안 됐다면 스스로 한 번 고민해봄 직하다.

이쯤에서 엉뚱한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 판단해 ‘좋은 사람’부터 ‘나쁜 사람’까지 다섯 개짜리 별표로 구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진상’ 손님이나 ‘진상’ 주인을 쉽게 피할 수 있지 않을까.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박중현]비혼시대의 축의금

책상 한 귀퉁이에 청첩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 시즌이 왔다는 뜻이다. 한 장 한 장이 청구서다. 5만 원권이 처음 나온 2009년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7년 새 축의금 최저 금액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5만 원짜리를 두고 굳이 1만 원짜리 3장을 봉투에 넣는 건 “당신과 안 친해”라고 대놓고 내색하는 일 같아 마음이 켕겨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들이 5만 원권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조금 용도였다.

지출 증가가 걱정되긴 하지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면서 결혼에 골인하는 청년들이 기특하단 생각도 든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부모 세대부터 투자해온 결혼 축의금을 회수하는 것조차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비혼 선언’을 하고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돌려받으려는 젊은이들까지 나온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그동안 낸 축의금을 내놓으란 요구다.

경조금은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상호부조 시스템이다. 이탈이 적고 이웃의 숟가락 수까지 꿰고 사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쌀, 포목 등 현물로 낸 축의금은 시간이 지나도 손실 없이 고스란히 돌아올 공산이 컸다. 하지만 6·25전쟁, 급격한 도시화로 이동성이 커지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이런 틀이 깨졌다.

화폐로 내는 축의금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생긴다. 시대가 변해도 축의금은 면피성, 보통, 적극적 축의금의 3개 등급이 유지된다. ‘1-2-3’ ‘2-3-5’ ‘3-5-10’ ‘5-10-20’ 비율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1990년대 초반 1만, 2만, 3만 원,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2만, 3만, 5만 원, 2000년대 중반 이후 3만, 5만, 10만 원이던 축의금은 현재 5만, 10만, 20만 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10여 년 만에 최저 등급의 면피성 축의금이 66.7%나 올랐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대에 보기 힘든 인상률이다. 호텔 결혼식 등으로 일반 물가보다 가파르게 오른 결혼 비용이 반영된 탓이다.

대상이 한정된 부의와 달리 축의금은 계산이 어렵다. 집집마다 자녀 수가 달라서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 어른들은 다른 집 ‘개혼(開婚)’, 즉 형제 중 첫 번째 결혼 때 축의금을 제일 많이 냈다. 두 번째에는 개혼의 70∼80%, 세 번째에는 50% 정도로 금액을 낮추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혼, 재혼이 빠르게 늘면서 셈법이 난해해졌다. 다른 집 자녀가 재혼할 때 초혼 때와 같은 축의금을 내야 할지, 줄인다면 얼마나 적게 내야 할지 마땅한 기준이 없다. 

반대로 자녀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들은 축의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 장기간 축의금 손익을 맞추려면 알파고의 계산 능력이 필요할 지경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몇몇 선진국들처럼 동성결혼까지 허용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최근 외신에는 일본IBM이 동성 파트너가 있다고 신고한 사원에게 회사 차원의 결혼 축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년들의 비혼 선언을 두고 “결혼이 장난이냐”며 눈살 찌푸릴 어르신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높아진 결혼의 허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의 선택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불평 없이 축의금을 낼 생각이다. 결혼조차 힘겨운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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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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