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총선 후보자 40%가 전과자라니

4·13 총선 후보자 10명 가운데 4명이 벌금 100만원 이상인 전과자라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보자 명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3개 지역구 후보 944명 가운데 40.6%인 383명이 전과기록자다. 이는 17대 17.7%, 18대 15.3%, 19대 19.7%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다. 총선 후보자 가운데 병역면제자도 16.9%에 달했다.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물 중 상당수가 전과자요 병역면제자라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도 전과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99명, 새누리당 80명, 국민의당 67명, 민중연합당 32명, 정의당 30명 순이었다.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계파 간 이전투구로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 등 막장 공천을 하느라 후보의 도덕성을 제대로 거르지 않은 탓이다. 어떤 이유로든 전자과를 공천한 것은 유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전과 기록이 있다고 모두 자격미달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처벌 받은 시국 관련 사범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도, 폭행, 뇌물, 음주운전, 음란물 유포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들도 상당수다. 심지어 전과 10범, 9범, 8범 등 상습범도 적지 않다. 

여성후보 100명을 뺀 844명 중 143명, 16.9%가 병역 면제자라는 점도 걸린다. 비례대표 후보는 22.3%에 달했다. 일반 국민의 평균 병역면제율은 6.4%에 불과하다. 민주화운동 등에 따른 수형이나 질병 등을 이유로 면제된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징병검사를 연기 또는 기피하거나 장기 대기하던 중 ‘고령’, ‘행방불명’, ‘생계곤란’ 등 석연치 않은 사유로 면제된 사례도 많았다.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자질과 도덕성이 의심되는 파렴치범이나 상습범, 병역기피자, 부패·막말 전력자 등 함량 미달 후보들은 표로서 걸러내야 한다. 선거 공보를 꼼꼼하게 살펴 후보들의 전과, 병역, 납세 문제 등을 따져서 부적격 후보는 엄격하게 가려내야 한다. 흠결투성이 후보를 뽑아놓고 뒤늦게 국회가 왜 이 모양이냐고 손가락질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2. '국민소득 3만달러'공염불 안되려면

경기침체 여파로 한국경제호(號)가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 잠정치가 달러화 기준으로 2만7340달러라는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만8071달러를 기록한 2014년에 비해 2.6% 줄어든 것이다. 1인당 GNI가 전년보다 감소하기는 금융위기 이후 6년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저성장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1인당 GNI는 국민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지표로 국민이 국내와 외국에서 벌어들인 소득 수준을 나타낸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척도로 여겨왔다. 이에 따라 1인당 GNI는 2014년 2만8000달러대로 3만 달러에 가까이 다가선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감소세를 나타내 2006년 2만 달러대에 진입한 후 9년째 3만 달러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올해를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전세계 교역량이 크게 감소해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지지부진하다. 수출액은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967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가량 주저앉아 충격을 줬다. 설상가상으로 민간 소비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국제유가도 하락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1%대로 잡고 있지만 대다수 민간연구소가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서기가 이래저래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경제가 소득 2만달러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경제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대규모 수술작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과감히 없애고 혁신을 토대로 한 새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경제의 최대의 적(敵)은 정치’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경제 활성화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동아일보]

3. 성장해도 살림은 제자리, 대기업정책 수정할 때다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 현상이 한국에서 유독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적했다. 최근 ‘2016년 경제정책 개혁’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은 1995년 69.6%에서 2014년 64.3%로 5.3%포인트 떨어졌다. OECD 국가 중 30개국 가운데 오스트리아에 이어 2번째로 빠른 하락세다. 정부, 기업, 가계 부문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의 합인 GDP 가운데 가계소득 비율이 급감한 것은 국가 전체의 부를 기업과 정부가 주로 나눠 가졌다는 의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의 가장들로선 박탈감이 크다.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일부에 쏠리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이라고는 하나 한국만큼 가계소득 비중이 줄어든 나라는 드물다. 지난 20년간 미국(79.5%→82.6%)은 물론 일본(74.8%→77.9%) 스웨덴(68.2%→71.1%) 심지어 스페인(75.8%→76.1%)까지 가계소득의 비중이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 빚이 1200조 원을 넘었는데 고용 없는 성장, 임금 인상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 가계의 소비가 줄면서 성장 여력도 감퇴할 수밖에 없다. 

2014년 7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기업이 투자와 배당, 임금 인상에 나서게 하겠다며 기업소득 환류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등 가계소득 3대 패키지 정책을 내놨다. 임금이 오르지 않고 비정규직은 늘면서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체증은 제대로 짚어냈으나 환자의 소화기능을 살릴 처방이 빠져 효과는 크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율은 1998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드러났다. 고배당이 외국인투자가들에게 돌아가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난해 대기업 임금은 3.9% 오른 반면 중소기업 임금은 3.4% 오르는 데 그쳐 대·중소기업 간 월급 격차는 역대 최고인 191만 원으로 벌어졌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과 가계에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에 근거한 두루뭉술한 지원정책은 재검토할 때가 됐다. 투자를 가로막는 핵심 규제를 풀어 기업이 질 좋은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개혁의 근간이 돼야 한다.

[서울신문]

4. 무능하고 불량한 후보 유권자가 가려내야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별로 주권자인 국민의 한숨 소리가 커질 판이다. 중앙선관위 후보자 등록이 지난 25일 마감됐지만, 온갖 비리 전과로 얼룩진 후보들로 짜인 대진표를 받아들면서다. 총선 후보 가운데 세금체납·전과·병역미필 기록 중 1개 이상을 갖고 있는 후보가 절반이 넘는 509명(53.9%)이라니 말이다. 특히 이들 중 9명은 세금체납·전과·병역미필 등 ‘불명예 3관왕’ 기록까지 갖고 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불량한 정치꾼들이 대거 국회에 등원하면 온 국민이 염원하는 선진 국회도 요원해진다. 우리는 ‘불량 국회’를 막는 최후의 보루는 유권자들의 분별력 있는 주권 행사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간 여야 각 당이 공천 개혁을 입에 달다시피 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선관위에 등록한 후보 10명 중 4명꼴로 각종 전과자라서만이 아니다. 전과자 비율이 18대나 19대 총선 때보다 크게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무인 납세와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후보들이 득실거리니 혀를 찰 노릇이다. 후보 개인별로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6명 중 1명은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고, 7명 중 1명꼴로 세금 한 푼 안 내거나 체납했다니 고개를 젓게 만든다. 특히 전체 출마자의 절반가량이 연간 국민 1인당 세금 납부액보다 적게 냈다니 평균적 시민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인사들이 선량(選良)이 되기를 꿈꾸는 꼴이다.

당장 이런 수준 낮은 후보자들이 펼칠 선거전의 양태를 생각해 보라. 재정 능력이나 교통 수요도 생각지 않고 내 지역구에 다리를 놓자는 식의 온갖 선심성 공약을 내걸 게 뻔하지 않은가. 이들이 선거 관문을 뚫고 등원한 이후의 후유증은 더 심각할 게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보다 온갖 이권에만 눈이 먼 의원들이 늘어난다면 말이다. 일찍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생계형 정치인’이 대거 의석을 점령하면 입법부가 타락할 소지는 그만큼 커질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와는 거리가 먼 의원들이 앞에선 행정부를 질타하면서 뒤로는 정부기관과 공기업을 상대로 알선과 청탁을 일삼는 부조리를 저지를 가능성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잖아도 무한 정쟁과 민생 입법 지연으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런 국회를 개혁하려면 기존의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엄중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선량으로 20대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도 입후보자의 평균적 자질이 더 나아져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19대 총선 때보다 퇴행했다니 걱정이 앞선다.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달리 국회의원은 인사청문회가 없는 까닭에 선거가 곧 불량 의원을 솎아 낼 마지막 관문이나 다름없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포퓰리즘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의 자질부터 꼼꼼하게 검증해야 할 이유다. 생업에 바쁜 유권자들이 일일이 유세장을 쫓아다니기 어렵다면 선거 공보라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무능하고 불량한 입후보자들이 만들지도 모를 저질 국회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백신은 유권자의 현명한 한 표 행사임을 유념할 때다.

5. 北 잇단 불장난 조짐에 단합된 힘으로 맞설 때

북한 중앙통신이 그제 “인민군 전선대연합부대 장거리 포병부대가 자신들의 집중화력 타격권 안에 청와대가 포함돼 있다는 등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이용해 미국의 워싱턴 DC를 공격하는 동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나서 “지상과 공중, 해상, 수중의 임의의 공간에서 핵 공격을 가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등 막가파식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해 “국가원수에 대한 저급한 언동을 중단하라”고 엄중히 경고했고 미국도 성명을 통해 “도발적 언행을 삼가라”고 했다.

북한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발적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우선 5월로 예정된 제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따른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김 위원장이 통 큰 지도자라는 인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 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대북 정책 전환을 유도하는 효과와 함께 총선을 앞두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미국 본토를 공격 목표로 한 동영상을 공개한 것도 미국의 대북 정책 유도책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북한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에 응하는 것을 대미 외교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가해진 강력한 대북 제재와 역대 최고 수준의 한·미 군사훈련에 따른 북한의 자포자기식 반응이라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 아무튼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방사포 등 무력시위, 상륙훈련 등 도발 역량 과시, 북방한계선(NLL) 침범, 비무장지대 등의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일삼아 왔다. 북한은 아직 특이한 동향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새로운 무력 도발을 시도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 군은 어떠한 상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정치권도 총선 과정에서 단합된 힘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 노리는 것 중 하나가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다. 정부 또한 그 어떤 도발에도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충무계획 등 종합대비태세를 상시 점검하는 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6. OECD 2위인 가계소득 하락폭

가계소득 하락 추세가 가파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이 20년간이나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감소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로 기록됐다. OECD가 최근 발간한 구조개혁 중간평가 보고서 내용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은 1995년 69.6%에서 2014년 64.3%로 5.3% 포인트 떨어졌다. 경제 3주체 중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이 크게 줄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OECD에서 자료가 있는 30개 회원국 중 오스트리아에 이어 두 번째였다.

가계소득이 줄어들면 소비 부진을 불러 기업 생산을 위축시키며 결국 경제성장 둔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끝에 지난해 2.6%로 추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득보다 소비가 더 큰 폭으로 위축되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이 사상 최저치(71.9%)를 기록했다. 가계가 아예 지갑을 닫아 버리는 상황이 굳어지면 일본식 장기 불황을 답습할 가능성도 커진다. 일본은 소비 쿠폰 지급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소득분배 시스템은 악화일로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20년 전 80% 수준에서 50%로 떨어졌다. 기업소득 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한 가계소득 증가율도 문제다. 어렵게 경제가 성장해도 근로자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것이 우리의 경제 시스템이다. OECD 보고서도 “대다수 국가에서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한 가운데 자본에서 가계부문으로의 소득 재분배율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 부문의 이익이 가계 부문으로 재분배되지 않고 기업 부문에 유보되는 비중이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의 중추 세력인 중산층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조적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최근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 등 일련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노동개혁을 통한 일자리 확대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방안도 가계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소득계층 간 소득 배분 구조를 보완해 최종적으로 가계소득 비중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계층 간 소득불균형을 합리적으로 보완하는 과감한 소득세제 개편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삼성의 스타트업 방식 혁신에 거는 기대

삼성전자가 최근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하며 스타트업 기업의 DNA를 조직문화에 이식하겠다고 선포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혁신 후 23년 만에 나온 새 경영 혁신 방안이다. 특히 이번 혁신안은 현재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기존 조직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통 큰 변화의 신호탄이다.

삼성은 90년대 신경영 이후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만들며 하드웨어 생산 경쟁력을 최고도로 높였다. 제품 생산에 있어서 기술 개발과 수율 경쟁 등 모든 속도 경쟁에서 승리했고, 일본·대만 등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차례로 탈락시키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20여 년간 지속된 신경영 문화는 권위주의와 관료화를 낳았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바뀌는 세계 산업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대 초반으로 전분기보다 1조원 이상 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올 들어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선 5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지난해 반도체를 제외한 전 삼성 제품 중국 판매는 77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스마트폰은 이미 세계시장 자체가 폭발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더 이상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힘들어졌다. 삼성전자가 변하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인인 것이다.

이런 시점에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하향식 지시가 아닌 상향식 의사전달 문화를 만들고, 근무환경도 유연화하는 등 스타트업 방식의 혁신을 선언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시의적절한 변신 노력은 ‘젊은 삼성’의 탄생을 알리는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성패는 ‘창의성과 생태계의 활성화’에 달렸다. 무한경쟁·승자독식 문화의 삼성이 기존에 승리했던 방식을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삼성의 신경영이 국내 대기업의 혁신을 선도했듯이 이번 혁신도 성공해 국내 기업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기 바란다.

8. 트럼프의 핵무장 용인 발언은 위험한 단견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뉴욕타임스가 26일 공개한 외교안보 정책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한·일이 주둔 비용 부담을 상당히 늘리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긴 했지만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은 충격적이다. 동맹의 근간인 신뢰를 흔드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는 “(한·일의) 핵무장에 반대하는가”라는 물음에 “언젠가는 우리가 더는 (방어 역할을) 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우리는 부유했고 강한 군대와 대단한 능력을 갖췄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고 답해 핵무장 용인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언은 동맹과 안보 질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단견일 뿐이다. 비용 문제로 핵우산 제공을 포기하고 독자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이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핵무장은 군사대국화로 이어지며 이럴 경우 지역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북아 안보 질서가 요동치게 된다. 결국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핵 대결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긴장 고조에 따른 안보비용 증가와 분단 고착화가 우려된다. 한·일 핵무장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 핵 비확산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안보 불안을 유발하고 미국의 국익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력 대선 경선주자가 주한미군과 핵 문제를 비용 차원으로만 접근해 주판알을 튀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불신과 불만만 키울 수 있 다. 트럼프는 소탐대실의 마구잡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우리 입장에서 본 트럼프 발언의 위험성을 의회 등 미 지도층에 설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9. 타인이 올린 글 삭제 안 되면 '잊힐 권리' 보장되겠나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는 자신의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곧 법제화된다.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늦었지만 인터넷 시대 화두가 되고 있는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바람직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흔적을 인터넷에서 지울 수 없어 괴로웠던 이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5일 공개한 가이드라인 초안은 삭제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을 본인이 직접 올린 글·사진·동영상 등 게시물로 한정하고 있다. 제3자가 올린 게시물로 인해 정신적·사회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구제 방안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쉽다. 유럽연합은 2012년 구글 등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에서 작성자와 관계없이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프랑스 국가정보위원회는 최근 구글이 잊힐 권리를 전 세계 구글 도메인에 적용하지 않았다며 벌금 10만유로를 부과하기도 했다.

잊힐 권리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할 경우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다. 인터넷 기록은 역사의 한 부분인 만큼 '기억할 권리'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정치인, 범죄자들이 과거 행적을 지우는 데 악용할 수 있고 정보 접근을 차단해 여론 형성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공개할 권리가 있듯이 스스로 삭제·차단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

신상 털기 피해자나 '디지털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이들은 구제돼야 한다. 유럽연합은 언론, 공공보건, 역사, 통계, 과학연구 목적 등에 필요한 경우에만 잊힐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방통위가 다음달 내놓을 최종 가이드라인은 프라이버시 보호와 알 권리 간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매일신문]

10. 문제 많고 불편한 경북도청 신도시, 활성화 대책 세워라

경북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이전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도청 신도시에는 비싼 땅값 및 임대료로 인해 상점과 사무실에 들어오려는 개인·회사가 거의 없다. 거주하고 일하기에 너무나 불편한 환경이다. 도시 기능이 전혀 없는 신도시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크다. 

신도시 일대에 준공했거나 준공을 앞둔 아파트 단지 상가와 빌딩 등에는 문을 연 상점이 거의 없다. 신도시 반경 10㎞ 주변에 문을 연 상점은 편의점 1곳뿐이다. 입점을 준비하는 곳도 거의 없다. 상가가 텅텅 빈 이유는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아파트 상가 임대료가 월 170만~200만원 선이고, 노른자위 상가는 월 300만~400만원에 이른다. 대구 혁신도시의 상가보다 훨씬 비싼 수준이다.

임대료가 엄청나게 높은 원인은 비싼 땅값 때문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난해 12월 일반상업용지를 분양한 결과 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3.3㎡당 평균 98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가 감정가의 2배를 넘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분양가 상승과 임대료 폭등의 후유증을 남겼지만, 경북개발공사는 큰 이익을 챙겼다. 경북개발공사는 경북도 산하 공기업인 만큼, 결국 경북도가 투자자들에게 땅을 팔아 도청 이전 비용을 충당한 셈이다. 

도심의 빈 점포만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들이 입주한 임대아파트는 비싼 보증금과 부실시공으로 말썽이다. 도청 직원 및 민원인이 이용하는 안동시내 음식점과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게 높다. 신도시와 연결하는 시내·시외버스의 접근성도 아직 엉망이다. 신도시 형성 과정의 초기에 일어난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어려움이다.

경북도는 이전 초기의 문제점을 사전에 예견했음에도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이전을 강행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는 경북도의 안이한 자세도 한몫했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은 도청 직원과 민원인뿐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신도시는 앞으로도 불 꺼진 적막한 도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도시 기능이 제대로 갖춰질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서평]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 개방·관용으로 부강해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살짝 미친 것이 미덕입니다.”

2001년부터 10년 동안 암스테르담 시장을 지낸 요프 코헌의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도시에는 5000~ 7500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다. 성매매는 합법이다. 그저 법적 통제의 대상이다. 커피숍에서는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주문할 수 있다. 이는 네덜란드 특유의 ‘헤도헌(gedogen)’에 따른 것이다. 헤도헌은 엄밀히는 불법이지만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것을 말한다.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그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원래 뼛속 깊이 보수적이다. 그런데도 관용의 전통을 꽤나 자랑스러워한다. 이런 태도에는 악덕으로 치부될 일이라도 어차피 일어날 거라면 차라리 합법화해서 통제하는 게 낫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개인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 부여하면서 

바닷물과 함께 싸우는 협동정신 중시해


인구 80만명의 암스테르담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도시 역사는 1100년경에 비로소 시작됐다. 바닷물이 해마다 해안선을 바꾸는 게 지겨워진 농부 수백 명이 질퍽한 늪지를 집터로 삼고 가장자리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자연과의 끝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침수 위험에 함께 맞서는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다.

암스테르담은 가톨릭교회와 봉건제도가 맞물려 돌아가는 중세와 맞지 않았다. 권력을 잡은 건 봉건 영주가 아니었다. 청어상이나 직물상, 비누 제조업자나 목재 야적장 소유자, 조선소 운영자들, 마을마다 있는 물관리위원회가 공동체를 이끌었다.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땅은 교회나 귀족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활발한 무역도시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 개방성과 독립적 사고를 강조하는 신학이 더해져 관용의 문화가 자랄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도시에서 싹튼 자유주의(liberalism)를 통해서다.

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에서 정반대의 뜻으로 쓰인다.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이 제한되기를 바랐던 상인들이 주창한 사상이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의 더 큰 개입을 지지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결국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유럽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꽃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도시는 투자 위험을 나누는 놀라운 제도적 혁신을 이뤘다. 주식을 발행하는 벤처기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의 다국적기업인 연합동인도회사(VOC)는 100만명이 넘는 유럽인을 아시아로 보냈고 영국 동인도회사보다 네 배 많은 생산품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도 만들었다. VOC 선단의 보유 재산에 관한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됐다. 굳이 위험천만한 항해에 나서지 않고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950~1990년대에 제2의 황금기를 맞은 암스테르담은 20세기 자유주의 수도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이곳은 동성애자 결혼이나 자유연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시험해볼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이 책은 한 도시에 관한 책이면서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개념에 관한 책이다. 자유와 관용이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소소한 재밋거리도 버무려져 있다. 이 도시에 흔한 청어에 관한 이야기 하나. 암스테르담은 청어잡이의 혁신 덕분에 큰 부를 거머쥐었다. 청어 내장을 완전히 제거하는 대신 유문수라는 작은 주머니와 췌장을 남겨둔 채 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며 맛도 더 좋다.

2.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9) 사랑의 와인 ‘라파주’-금슬좋은 부부사랑 담긴 루시옹 와인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고 들판에는 유채꽃 망울이 올망졸망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은 결혼의 계절이라 했던가. 여기저기서 청첩장이 날아든다. 사랑의 결실을 맺는 신혼부부들을 보노라면 ‘사랑의 와인’으로 유명한 ‘도멘 라파주(Domaine Lafage·도멘은 프랑스어로 포도원이란 뜻)’가 생각난다.

라파주는 지중해 연안 남프랑스 루시옹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다. 최근 유럽에서 유기농 와인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루시옹 지역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 천혜의 테루아를 자랑한다. 그간 자본력과 양조기술 부족 등으로 테루아를 십분 살리지 못해 저평가를 받아왔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특히 라파주 와이너리는 보르도나 부르고뉴는 물론, 신대륙 못잖은 최첨단 대형 와인 양조시설을 도입,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세계적인 와인 생산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라파주가 ‘사랑의 와인’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 마크 라파주(Jean-Marc Lafage)는 남프랑스 루시옹 지역에서 6대째 포도 재배업을 하던 가족들 영향을 받아 13세부터 와인 양조에 몰두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몽펠리에대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할 때 같은 학과에 다니던 엘리아나 라파주(Eliane Lafage)와 사랑에 빠진다. 금슬이 지극히 좋았던 부부는 함께 세계를 돌며 와인 공부에 매진한다. 프랑스의 보르도, 샹파뉴 등에선 전통적인 양조법을 공부하고 미국, 호주, 칠레 등에선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와인 양조기법을 배우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 1995년 루시옹에 라파주 와이너리를 설립해 현재 21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 마크의 선조들은 와인을 병입하지 않고 벌크로만 팔았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에서 와이너리의 역사는 1995년부터라 할 수 있다. 현재 라파주는 ‘루시옹의 테루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인’으로 각광받는다. 

도멘 라파주는 전체 포도밭이 약 160㏊에 달한다. 그르나슈(Grenache), 무스카트(Muscat) 등 16종의 포도 품종을 재배하고, 수령이 5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직접 손수확해 20여종 와인을 생산하며, 생산량의 70%를 해외에 수출한다. 최근 수년간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파리농업박람회 콩쿠르(Concours General Agricole)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아주 우수하다.

화이트 와인은 꼬떼 플로랄 2015(Cote Floral 2015)를 추천한다. 무스카트 85%, 비오니에 15%로 블렌딩했다. 지중해 바다가 근접한 돌 많은 포도밭에서 수령이 50년 된 무스카트를 8월 말, 수령이 10년 된 비오니에를 10월 초에 수확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발효한 게 특징이다. 

특히 5%의 비오니에는 새 오크통을 사용, 숙성 후 블렌딩해 독특한 와인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맑고 밝은 연초록빛을 띠며 라임류, 복숭아, 시트러스, 꿀, 열대과일, 달콤한 흰꽃향이 난다. 기분 좋은 산미와 신선한 과실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메우며, 목넘김 후 미네랄향의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이 인상적이다. 2012년 빈티지는 파리농업박람회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울리는 음식은 샌드위치, 샐러드, 생선회 등이며 욕심을 내면 디저트, 생크림 케이크 등에도 좋다. 가격은 1만8000~2만원.

레드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미국의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94점을 준 ‘테세라에 올드 빈스 2013(Tessellae OldVines 2013)’이 좋다. 그르나슈 누아 40%, 시라 40%, 무르베르 15%, 그르나슈 그리 5%를 블렌딩했다. 풍부한 과일향, 알코올, 산도, 타닌이 적절하게 배합돼 입안에서 오랫동안 매력을 발산한다. 음식과의 조화는 불고기, 쇠고기 스테이크, 양념 돼지고기 등이 좋다.

3.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서울 사람 6할이 셋집살이

‘도시의 주택난 문제는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 부산 대구 인천 개성 함흥 등 각 도시의 중요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통일 한국의 미래를 그리는 공상 소설이 아니다. 언제 해방될지 모르는 채 일상을 꾸려 가던 78년 전 신문의 한 구절이다. ‘심각한 주택난 문제’라는 제목의 1면 사설이다. 

‘도시 생활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차가인(借家人)들은 그 생계비 중에 가임(家賃)이 가장 큰 부담인 까닭에 사회문제로서도 중요성을 띠는 것이니, 물가의 억제는 가임의 억제에까지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동아일보 1938년 9월 18일자)

차가인은 요즘 말로 세입자이며 가임은 집세라는 뜻이다. 집을 임차한다는 뜻에서 차가이며, 집을 빌리는 대가가 가임이다. 요약하자면 주택난 문제는 세입자의 생계비 부담으로, 물가 안정과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경제 문제이자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주거비 압박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감소와 내수 경기 침체 등 오늘날 주택 임대차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다. 지금과 시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과거의 주택 환경은 어떠했던 것일까. 

‘경성부 내의 가구 수는 14만4000여인데 가옥 수는 8만2000여밖에 안 된다. 6만2000여 가구가 차가인이라는 말이다. 즉 43%가 셋집살이를 한다는 뜻이다.’

사설은 이렇게 단순 계산을 해 본 뒤에 다시 ‘가옥세를 납입한 자가 5만8000여 명’이라는 당국의 통계치를 적용해, 실제 가옥을 소유하지 못한 가구는 이보다 더 많은 8만5000여 곳이 된다고 계산한다. 앞의 수치는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 계산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체 14만4000가구 중 60%가 집 없는 가구인 셈이 된다. 당시 서울 인구 70만 명의 6할이 ‘차가 계급’, 즉 셋집살이라는 결론이 이렇게 해서 나왔다. 

이보다 6년 전에는 ‘도시 생활과 주택난’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나왔다. 

‘서울에 가옥은 7만여 호 있는데 그중 셋집은 2만 호이다.’(동아일보 1932년 7월 14일자)

이에 따른다면 셋집 비율은 30% 미만인데, 이후 6년간 대폭 상승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주택이 1만2000여 호, 즉 17%가량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1932년의 사설이 제시하는 문제점과 원인 분석을 풀어 쓰면 다음과 같은 요지가 된다. 

‘파리나 도쿄 같은 도시에 비하면 서울은 오히려 자가(自家) 호수가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주택난에 헤매고 있다. 주택 문제는 세계 공통이지만 조선의 도시는 기형적 주택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옛날 서울의 살림살이를 보면 크건 작건 주택을 갖지 못한 사람은 드물었다. 최저급의 생활을 하는 일부만이 차가 생활을 했다. 조선의 차가 제도가 유독 가혹했던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던 것이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가속화됨에 따라 가옥의 매수보다 세를 얻는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들은 종래의 관례를 고치지 않고 여전히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집주인은 언제든 세입자를 축출할 수 있고 세입자는 수시로 이사에 분주하다.’

사설은 다음과 같이 개선 대책을 제시한다. 높은 집세를 요구하는 집주인을 제재할 제도적 방책 △집주인이 언제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관행은 ‘차가법’ 제정으로 막을 것 목돈이 없어서 집을 사기 힘든 사람을 위해 ‘주택조합령’을 만들어 수년 내지 10년 안에 꿈을 이루도록 할 것.

다시 6년 후로 돌아와 1938년의 사설을 보면, ‘공영주택’의 도입을 비롯한 당국의 대책이 다각도로 시도되었지만 근본적 개선은 거두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특이한 것은 세입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집세가 폭등하는 대도시마다 ‘차가인 조합’이 1930년을 전후해 활발히 조직되어 과도한 집세 인상 등 집주인의 횡포를 고발하고 당국에 압박을 가했다.

그 역시 궁극적 해답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단순히 법만으로, 경제 논리만으로 풀기 힘든, 한국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일까.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해 임대주택 보급 등 각종 법적 원칙과 제도적 장치 및 시장원리가 활발히 작동하는 오늘날에도 그 난제는 여전하니 말이다.

4.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중드의 매력에 빠지고야 말았네

요즘 스스로 놀라고 있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10회까지 몰아보고도 유 대위님(송중기)의 신묘한 매력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나 따져 보자면 이 역대급 완벽 남주(남자 주인공)로부터 온전한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때마침 새로운 ‘덕질’의 대상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다름 아닌 벼락처럼 찾아온 중드(중국 드라마) ‘랑야방-권력의 기록’(이하 랑야방·중화TV 사진 참조)이다.

“개작두를 대령하라”가 귓가에 울리는 ‘판관 포청천’ 이후 중드라고는 본 적이 없다. 어느 밤 “요즘 나의 화두는 ‘랑야방’이니 만나기 전 준비토록 하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인터넷TV로 1화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가상국가인 양 나라를 배경으로 황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54부작 정치 사극. 장국영과 유덕화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주인공 매장소(호가)가 등장하는데, 그는 원래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걸로 알려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 얼굴을 감쪽같이 바꾸고 강호를 뒤흔드는 지략가가 돼 나타난다. 가족의 원수를 갚고 옛 친구 정왕(왕개)을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소재만 보면 한국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합쳐놓은 셈인데 ‘랑야방’은 호방하고도 우아하다. 주인공은 강호의 고수답게 막후에서 고요하게 움직인다. 이야기의 플롯은 단단하고, 무술 장면은 아름다우며 적절한 유머도 있다. 화려한 세트와 의상은 ‘중드’ 하면 떠오르던 ‘왠지 촌스럽네’란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시대물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은 남자 못지않은 기개를 지녔고, 남녀 관계보다 남·남 관계에 집중해 ‘BL(Boys love)물’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건 또 얼마나 트렌디한지. 지난해 중국 방영 당시 50개 도시에서 시청률 1위였고 온라인 드라마 사이트에선 3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대륙을 휩쓸었다.

‘랑야방’이 증언하는 중드의 놀라운 약진에 한국 드라마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엔 경찰서에서도, 병원에서도, 재난 현장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놀라운 신공이 있지 않은가.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랑야방’ 54부를 몇 주에 걸쳐 끝낸 지금은 드라마 속 복식을 분석한 블로그를 탐독 중이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많은 일이 곧 인공지능(AI)에 맡겨지고 말 터이니, AI가 절대 도전하지 않을 ‘잉여력 발휘’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닌가 하며.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지팡이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지팡이는 무척 미더운 존재입니다. 지팡이를 길동무 삼아 들로 산으로 꽃 구경 단풍 구경도 가고, 말벗을 찾아 길을 나설 수도 있으니, 지팡이 덕분에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닙니다. 또 지팡이 덕에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지팡이를 보다가 성현의 생각은 혼란한 나라를 지탱해 줄 지팡이로 옮겨 갑니다. 답답한 백성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피곤에 지친 몸을 활기차게 하며,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사회를 안정시킬 지팡이가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나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화분에 물을 주는 것도,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것도, 우울해하는 친구를 크게 한 번 웃기는 것도, 소신을 지키다 불이익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 주는 것도, 관심 있는 시민 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줄 아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것도 모두 내가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어 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짐을 나누어 지고 누군가의 버팀목이 돼 준다면 ‘큰 바위 얼굴’은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현(成俔·1439∼1504)

조선 초기의 학자·문신.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齋)·부휴자(浮休子)·허백당(虛白堂), 본관은 창녕.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청백리에 뽑힐 만큼 소박한 삶을 누렸다. ‘허백당집’, ‘용재총화’, ‘부휴자담론’ 등을 남겼다. 시호는 문재(文載)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