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9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한국 핵무장' 들먹이는 트럼프 향방 주시해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천방지축인 예비 후보다. 그는 엊그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말버릇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를 차례로 거론하며 “우리는 더이상 돈을 뜯기지 않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면서 이런 외교 정책이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이 고립주의든, 미국 우선주의든 표현은 자유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에 공식 지명될 가능성에 높은 트럼프다. 이런 인물의 발언이 자국민을 다독이는 차원을 넘어 동맹국 안보에 위협을 미친다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관련된 망발에 거침이 없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두 나라가 더 많은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논의해야 할 문제”라며 “미국이 지금처럼 약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두 나라도 핵무장을 원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국제사회의 당면 과제인 상황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럴수록 트럼프의 속셈을 도외시하고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수사에 매몰돼 그를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있다면 국가 안보를 스스로 위협에 몰아넣는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전통적으로 미국 공화당의 배후에 조직화된 무기산업의 로비스트가 밀집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트럼프 발언의 이면에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이 아닌 ‘동북아시아의 분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미군 철수로 자국 국민에게는 가족이 이국땅에서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하면서, 그 결과 자칫 군사적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침체된 자국 국방산업의 부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진짜 의도라면 불행해도 크게 불행한 일이다.
트럼프가 아무 생각 없이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을 거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입만 험한 후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마구잡이로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언사에 오히려 정교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가 본선에 나서 설혹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 해도 캠페인 과정에서 미국민의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의 향방에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갖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2. 헛 공약 남발 말고 바른 정책으로 경쟁하라
선거는 공약(公約)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정당과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임기 동안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유권자들은 그중에서 가장 진실된 정당과 후보자들을 골라 투표함으로써 나라 운영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각종 선거에서 진정성 있는 공약은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표를 얻기 위한 거짓 약속인 공약(空約)만 난무하니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서는 여야가 제발 제대로 된 정책 공약을 내걸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만 할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여전히 기대 이하 수준이다. ‘야당심판’(새누리당), ‘경제심판’(더불어민주당), ‘양당심판’(국민의당) 등 살벌한 이분법적 전투성 구호, 재탕·삼탕의 무성의 공약,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 공약 등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헛 공약들이 한둘이 아니다. 유권자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표 찍어 주는 기계쯤으로 인식하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 공약을 내놓을 리 없다. 여야의 대표 공약들을 살펴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먼저 새누리당이 10대 공약으로 내세운 ‘U턴 경제특구 설치’는 2012년부터 실행되고 있는 정책으로 성과도 거의 없다.
더민주는 소득 하위 70%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30만원 균등지급, 0~5세 무상보육, 공공임대주택 240만 가구 공급 등 눈과 귀가 확 트이는 복지 공약을 또 쏟아 냈다. 조세개혁을 통해 천문학적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에 따른 조세저항 극복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 공약은 충청권 표를 노린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난이 일자 사실상 없던 일로 얼버무렸다. 국민의당의 ‘국회의원 국민 파면제’나 정의당의 ‘평균 월급 300만원’ 공약도 실현 가능성보다는 ‘아니면 말고’ 식 선언형 공약과 다름없다. 집권을 꿈꾸는 공당의 정책 공약과는 거리가 멀다.
개별 후보들의 지역 공약 또한 허무하기 그지없다. 대구 지역의 모 후보는 선거 때마다 단골 헛 공약에 그쳤던 KTX 지하화 공약을 또 내걸었고, 충청 지역의 한 후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서내륙철도를 끌어오겠다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했다. 실현 가능성 없는 헛 공약의 남발은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를 부채질해 결과적으로 제 발등을 찍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선거가 끝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허황된 인기영합 공약 대신 지역의 위기를 타개할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평가받으려는 후보는 눈을 씻고 찾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다. 여야 모두 진흙탕 공천에서 겨우 빠져나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게 총선을 맞고 있다.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 성격도 짙다. 게다가 2%대에 고착된 저성장의 먹구름 속에 온갖 사회적 모순까지 축적되고 있다. 공천 분탕질도 모자라 헛 공약 남발로 유권자들을 욕되게 할 때가 아니다. 그렇잖아도 유권자들은 억지로 선거판에 끌려 들어가는 듯한 고약한 심정이다. 여야는 엄혹한 안팎의 위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진정성 있는 정책 공약으로 경쟁해 유권자의 올바른 심판을 받길 바란다.
3. 아동학대 방치하다간 천문학적 비용 치를 것
우리가 아동학대로 연간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최대 7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드는 직접 비용과 피해 아동의 향후 정신적 질환과 노동력 상실 등에 따른 간접 비용을 합한 추정치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연구팀의 분석대로라면 아동학대를 치유 없이 놔둔다면 국내총생산(GDP)의 5%에 가까운 비용을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직접 비용도 그렇지만 학대 아동에게 장기적으로 발생할 사회 비용은 훨씬 더 심각한 규모다. 피해 아동이 겪어야 할 사회 적응이나 실업 및 미취업, 생산성 저하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하면 간접 비용은 직접 비용의 최대 8배까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추산치라지만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잇따라 드러난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던지고 있다. 자녀 학대의 끔찍한 사례들은 정부가 작정하고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덮이고 말았을 일들이다. 사회 각계에서 예방 대책을 강구하려는 움직임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서울가정법원은 5월부터 자녀를 둔 부부가 이혼하려 할 때 반드시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협의·소송 이혼 구분 없이 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혼 절차를 아예 중단하기로 했다. 부부 폭력이 이혼 사유라면 자녀의 학대 여부까지 파악해 이혼 과정에 직권 개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사법 장치는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참극들은 거의 재혼 및 한부모 가정에서 빚어졌다. 실제 재작년 통계에서도 학대 아동 10명 중 4명은 한부모·재혼 가정의 자녀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가정법원의 대책이 전국의 법원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법원이 이혼할 부모를 교육하는 조치는 그야말로 궁여지책일 뿐이다. 자녀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도록 부모들의 양육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려면 정책의 지속적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종합 대책이 눈앞의 급한 불만 끄는 임시처방전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당장 새 정책들을 소화해 낼 현장 인력 자체가 태부족이라는 걱정이 크다. 일과성 예산 늘리기보다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체계적인 작업이 더 급하다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4. '오물 막걸리'까지 뿌린 대학 동아리 모임
대학교의 신입생 환영행사가 갈수록 유치해지는 경향이다. 며칠 전 부산 어느 대학에서 축구 동아리 모임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막걸리를 뿌려 구설수에 오른 것이 하나의 사례다. 그냥 막걸리가 아니라 먹다 남은 두부와 김치 등 음식물 찌꺼기를 넣은 막걸리였다는 것이다. 신입생들을 청테이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막걸리에 담배꽁초와 가래침까지 섞어 뿌렸다는 뒷얘기도 전해진다. 만행이나 다름없는 추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지성인들의 모임인 대학에서 이런 야만적인 작태가 벌어지는 것인가.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동아리 대표가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대학 당국이 관련자를 엄벌하겠다고 발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대학생들의 막가파식 행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어느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게임을 하면서 노골적인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말과 몸동작으로 물의를 빚은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얘기다. 심지어 남학생 무릎에 여학생을 앉힌 채 서로 껴안거나 입에서 입으로 술을 건네는 러브샷은 물론 옷 벗기기 행위도 있었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더 나아가 여학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에 동아리 회원들은 물론 교수도 포함된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 아닌 성범죄 소굴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신입생 환영회가 빗나간 음주와 성추행, 군기잡기 문화의 온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여성을 성(性)의 도구로만 여기는 왜곡된 도덕관념이 대학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방증한다. 고교를 갓 졸업했거나 힘겨운 재수생활을 마친 신입생들을 상대로 술기운을 빙자해 성추행을 일삼고 군기를 잡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갑질’이다. 직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형사처벌감이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인 새내기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신성한 통과의례다. 다양성과 지성을 추구해야 할 대학가가 그릇된 음주문화와 성추행이 난무하는 소굴이 돼서는 곤란하다.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라는 본래의 자리를 하루빨리 되찾기 바란다.
[동아일보]
5. '국회 세종시 이전'식 선동적 공약 스스로 걸러내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세종시 이전’을 총선정책 공약집에 넣었다가 이틀 만에 백지화했다. 어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현재 상황에서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것은 지난 헌법재판소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인 것 같다”며 일단 분원을 세종시에 만든 뒤 실질적 이전은 장기적 과제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국회 이전 공약을 철회해 다행스럽다. 하지만 법적 타당성과 국론 분열, 지역주의 논란 같은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공약집에 넣은 것은 경솔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민주당은 행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20대 국회 중에 세종시로 국회 이전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면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행정 낭비는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 헌법 아래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어야 하며 대통령이 활동하는 장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세종시는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토대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했고, 두고두고 국가적 논쟁을 일으킨 폭탄 같은 이슈였다. 지역 균형발전을 내걸고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라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장차관부터 국장 과장들이 국회에 불려 다니느라 공무원들의 서울 출장비만 연간 230억 원이나 된다. 부처 간 소통이 미흡해진 데 따른 정책 품질 저하 등 ‘광의의 행정 비효율’까지 합하면 연간 매몰비용이 약 5조 원에 이른다는 추계도 나와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더민주당이 국회 이전을 총선공약집에 넣었다면 충청권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선거구 변화로 충청권 의석이 25석에서 27석으로 늘어나 대구경북(25석)보다 많고 호남권(28석)과 맞먹게 됐으니 충청에서 또 한 번 재미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국회 분원만 만든다고 해도 툭하면 장차관을 불러 호통 치는 ‘국회 갑질’을 버리지 않는 한, 행정 비효율에 입법 비효율까지 더해질 우려가 크다.
더민주당이 국회 이전 공약을 자진 철회하기는 했지만 일부 유권자의 이기적 감정을 자극해 표를 얻겠다는 공약은 아직도 수두룩하다. 새누리당은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의 개인채무 원금 감면 확대, 더민주당은 기초연금의 차등 없는 월 30만 원 지급, 국민의당은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한 컴백홈 법안 같은 국가 재정의 기둥뿌리를 흔들 수 있는 선동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국가와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묻지 마식 선거 공약은 각 당이 스스로 폐기해야 한다.
6. 호남 쟁탈전 벌이는 두 야당, 고질적 지역주의 부추기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총선 지원 첫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찾아 “호남인의 소망이 뭔지 잘 안다. 완벽하게 대변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인의 소망’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계승할 ‘호남 대통령론’으로 이해한다. 김 대표도 지난달 이른바 ‘광주 선언’에서 제2, 제3의 DJ로 자라날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호남은 DJ 이후 여야 어느 쪽이든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데 내심 불만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은 호남인의 심리적 박탈감에 응답 또는 영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대표는 “나도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다녔다. 뿌리가 호남”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인근에서 태어나 서울의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했고 6·25전쟁 때 광주로 피란해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을 1년 반 다녔다. 이후 서울에서 중앙중고를 졸업했다. 김 대표가 전북 순창이 고향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처음 듣는 사람이 많다. 과거 인터뷰에서 호남 연고(緣故)를 부인했던 김 대표가 평소 안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인데 ‘호남 구애’가 급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DJ처럼 호남을 발판으로 ‘킹’을 해보려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대표는 국민의당을 겨냥해 “광주·전남 유권자들을 희롱하고 있다”며 “왜 호남 정치를 분열하는 데 앞장서야 하느냐”고 말했다. 더민주당에서 분당한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더민주당이 그동안 호남에서의 독점적 지지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의당을 향해 분열 운운한 것도 오만하게 들린다.
호남 지역주의에 관해서는 국민의당은 입을 다물어야 할 처지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김 대표가 참배하고 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어제 “‘민족·광주·민주’ 등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정권 교체는 역사적으로 소외받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호남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한 이런 주장은 호남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이 당의 허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양김(兩金) 시대의 종언 이후 정치권에 남겨진 숙제는 지역주의의 극복이다. 인구수로 볼 때 지역주의에 기대서는 호남 정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의 꿈을 꾸기 어렵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을 지역주의의 틀에 가둘수록 사실상 호남을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대학 구조조정는 프라임사업이 빨리빨리 해치울 일인가
교육부가 추진하는 프라임사업(PRIME·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의 지원 마감시한이 다가오면서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 수요에 맞춰 인문사회계와 예술계 정원은 줄이는 대신 의학·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대학 19곳을 선정해 연간 2000억 원을 차등 배분하는 사업이다. 지원 규모가 엄청나 ‘단군 이래 최대’의 지원사업으로 불린다. 2009년 이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당근이다.
하지만 사업 기본계획을 작년 12월 공표한 뒤 4월 말 지원 대학을 선정하는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게다가 교육부 취지와 달리 산업 수요 아닌 교수들의 파워게임에 따라 조정해 곳곳에서 마찰음이 터져 나온다. 숭실대는 최고의 특성화 학부로 육성한다며 2010년 출범시킨 금융학부의 정원을 이번에 45%로 감축하는 대상에 올렸다. 건국대는 2013년 신설해 졸업생도 내지 못한 바이오산업공학과의 폐지 간담회를 지난 겨울방학에 열겠다고 알려 반발을 샀다. 중앙대는 작년에 총장이 물러날 정도로 홍역을 치렀다. 교육부는 프라임사업 선정의 전제조건은 ‘구성원 간 합의’라며 구경만 하고 있다.
시대 상황에 비추어 프라임사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속도전을 치르듯 빨리빨리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대학의 기획처장은 “교육부가 20, 30년 전처럼 일방적으로 따라오라 한다”고 꼬집었다. 대학 구조조정은 10, 20년 뒤를 내다봐야 할 사안인데도 정부 사업은 정권만 바뀌면 유명무실해지는 예가 많아 문제다.
교육부가 단기성과에 급급해하기보다는 대학의 발전계획과 연계되도록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수요자인 대학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구조조정을 독려해야 역풍을 줄일 수 있다.
[중앙일보]
8. 법무부 간부의 '주식 대박' 납득되게 해명해야
검사장급인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100억원대 재산 형성 경위를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진 본부장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156억여원의 재산을 신고하며 법조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1995년 검사로 임용돼 공직자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100억원대가 넘는 재산을 공개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2월 검사장급으로 승진해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현재의 보직을 맡고 있으며 올해 처음으로 재산공개 대상이 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진 본부장은 지난해 게임회사인 넥슨 주식 80만1500주를 126억원에 처분했다. 2014년 12월 말과 비교할 때 주가 상승으로 1년 만에 37억9800여만원의 시세차익이 났다. 이로 인해 그의 재산은 공개 대상이 아닐 때 등록된 재산 116억여원에서 40억여원 증가했다. 이는 입법·사법·행정부 등 전체 재산 공개 대상자 2328명 가운데 최고 증가액이다.
진 본부장은 “11년 전인 2005년 지인들과 함께 투자를 한 뒤 이 같은 사실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의 권유로 얼마를 투자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법무부 측은 “진 본부장이 검사장급으로 승진한 뒤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모든 주식을 매각했기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 본부장은 투자를 하기 전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부패방지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돼 근무한 전력이 있다. 2009년부터 1년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재직했었다. 금융거래의 정보 수집 및 분석과 관련된 법률 조언을 해주고 기업 수사를 전담하는 부서의 장을 맡으면서 특정 기업의 주식으로 거액의 돈을 번 것을 미심쩍어 하는 여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 본부장이 계속해 책임 있는 설명을 거부한다면 법무부는 감찰 조사를 벌여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고위 공직자라고 투자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 과정은 적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9. '능력중심 채용' 구호에 그치지 않게 하라
학벌·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에서 벗어나 능력과 직무 중심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능력 중심 채용 실천 선언 대국민 선포식'이 어제 열렸다. 국무총리실,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정부기관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10대 그룹, 중소·중견기업 대표 130여 명이 참여해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을 다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의 불명확한 채용 기준 때문에 불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한 것이 사실이다. 휴학하거나 졸업을 미루면서 토익, 자격증 등 평균 5.2개의 스펙 쌓기에 매달린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 결과 대졸자의 평균 스펙비용은 1인당 4269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또 입사지원서에 직무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하거나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질문을 하는 등 채용 과정의 불합리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날 실천 선언에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활용, 선발 기준 사전 공지, 과도한 스펙 요구 지양, 청년들의 열정 보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채용 문제점을 시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동안 학연·지연을 동원한 취업 청탁이 만연해 있었던 만큼 이 같은 선언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탈스펙 채용이 엉뚱하게도 집안 좋고 백 있는 집 자제들을 뽑기 위한 통로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이번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누구나 능력을 갖추면 학벌·집안과 상관없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헬조선, 흙수저, 열정페이 등이 유행어가 될 만큼 사회에 대한 20대 청년들 불신의 뿌리는 깊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청년들의 고통과 좌절은 더 커질 것이다. '알파고 쇼크'가 보여줬듯 미래는 창의성과 능력이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더 이상 학벌사회의 벽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난해 130개 공공기관에서 NCS 기반의 능력 중심 채용을 도입했는데 그 결과 신입사원 중도 퇴사율 감소, 출신 대학 다양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과잉 스펙과 채용비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것이 기업과 취업 준비생들이 모두 상생하는 길이다.
10. 외국 두뇌 못 끌어들이는 인력정책 과감한 수술을
우리나라에서 취업자격을 얻어 일하는 외국인은 2월 말 현재 61만5000명으로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185만6000명)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취업자격 외국인 중 전문인력은 8%(4만9000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단순기능인력이다. 전문인력 중에서도 외국어 회화 지도(34%)와 예술 흥행 지원(9%) 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연구와 기술 지도, 전문직 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월 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외국인 취업자는 네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고속성장 산업의 외국인 활용도는 떨어진다. 우리나라 외국인력 정책은 아직도 힘들고 어설프고 위험한 3D 업종 인력 수요를 메워줄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데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혁신을 주도할 고급 두뇌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더욱이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는 지구촌 어디에서든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를 유치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외국의 첨단 기술 인력에 사증 발급과 체류 허가 편의를 제공하는 '골드카드'나 '과학카드' 제도를 도입하고KOTRA 조직을 통해 우수 두뇌 발굴부터 추천까지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 이런저런 인재 유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국내 고급 두뇌는 자꾸만 해외로 빠져나가는 반면 국내로 수입되는 인력은 거의 모두 단순 저임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글로벌 두뇌를 한국으로 끌어들일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고용 관련 규제 체계를 수술하고 교육과 의료, 문화생활 전반에 걸쳐 누구나 일하고 싶어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 허가, 외국인 정책, 사회 통합, 유학생 관련 정책에서 고용노동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교육부가 따로 놀지 않고 체계적인 두뇌 유치 전략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이민청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프랑스, 미국, 독일, 호주 같은 나라들처럼 우리가 국비유학제도로 키운 외국 인재의 취업과 정착을 도울 맞춤식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할슈타인 원칙
미국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을 소개하며 언급했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는 동독이 미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용 쓰는 이야기가 작은 에피소드로 끼여 있다. 도노번이 활약했던 1957년은 서독의 ‘할슈타인 독트린’ 즉 동독 불승인 원칙이 확고하던 때였다. 서독 외무차관과 유럽공동시장(EEC) 초대 위원장을 지낸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이 1982년 3월 29일 별세했다. 할슈타인 원칙의 그 할슈타인이다.
1955년 9월 서독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는 의회 연설에서 “서독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제3국이 동독과 공식적 외교관계를 맺을 경우 비우호적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해 12월 본에서 열린 대사회의에서 서독 외교부는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제3국에 대한 제제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대사를 소환하고 외교사절단 규모 등 교류 범위를 축소한 뒤 변화가 없을 경우 단교도 불사한다는 거였다. 물론 회의도, 내용도 비공개였다.
57년 10월 유고슬라비아가 동독을 승인했고, 서독은 유고슬라비아와 단교했다. 언론은 ‘동독 불승인’을 ‘동독 승인=서독 단교’로 판단,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 없는 그 정책에 ‘할슈타인-그레베 독트린’이란 용어를 붙였다. 당시 서독 외교부는 장관 없이 수상- 차관 체제로 운영됐고, 그레베는 외교부 정치국장이었다.
냉전기 할슈타인 원칙은 동독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1969년 취임한 사민당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으로 효력을 다했다. 브란트는 그해 10월 시정연설에서 ‘1민족 2국가’원칙을 표방하며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
할슈타인 원칙의 동양 버전이 중국의 ‘하나의 중국’노선이다. 중국 대륙의 합법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하므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당시 중화민국 대사 진수지(金樹基)는 서울 중구 명동의 중화민국 대사관(현 중국 대사관)의 청천백일기를 하강한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대만 국기를 내리지만 이 국기는 우리 마음 속에 건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한국서 활동해온 대만출신 가수 쯔위가 최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태극기와 청천백일기를 함께 흔들어 대륙의 심사를 틀어지게 하고, 이어 나온 미숙한 수습책이 대만ㆍ한국인의 묵은 소회까지 들쑤신 일이 있었다. 적의 친구는 적이라는 할슈타인 원칙은, 일국의 국제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보다 앞서고 보다 오래 가는 감정의 서슬로 사사화(私事化)하고 내면화한다.
2.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 이제는 '불목' 시대
미국 가수 대니얼 분의 ‘뷰티풀 선데이’는 7080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추억의 팝송이다. 아름다운 일요일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순진한 내용이다. 신나는 기타 반주에 ‘하∼하∼하∼ 뷰티풀 선데이’같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로 엄격한 학교생활에 짓눌린 까까머리 남고생과 단발머리 여고생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라디오 DJ들이 주말이 다가오면 분위기를 띄우려고 자주 틀었다. ‘안녕하세요’의 가수 장미화가 1974년 발매한 앨범에 이 노래를 수록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2000년대 들어 주5일 근무가 활성화됐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토요일에 주말 분위기를 즐겼다. 1987년 가수 김종찬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란 가요가 히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때는 토요일이면 나이트클럽에 모여든 청춘남녀가 ‘아쉬움을 두고 떠나가지 말아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고 목청껏 질렀다. 여름철 해변의 흥겨운 분위기를 내는 데도 일등공신이었다.
주말 시작이 주5일제 정착을 계기로 금요일 저녁으로 굳어졌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등장한 것이다. 금요일 저녁과 밤을 음주가무로 신나게 즐기는 불금 문화가 홍익대 앞과 이태원에서 활짝 꽃피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생활패턴의 변화를 따라 ‘불금’이 ‘불목(불타는 목요일)’에 점차 밀린다는 소식이다. 신세계 롯데 현대 등 국내 백화점이 31일 정기 세일을 시작한다. 금요일부터 세일을 시작하던 관행이 반세기 만에 무너졌다. 유통업계만 아니라 영화 개봉과 여행 패키지 상품도 ‘불목 마케팅’을 거든다.
젊은 직장인들은 회식 날짜를 정할 때 금요일보다 목요일 저녁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주말을 숙취 후유증에 시달리며 허송하기보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힐링 시간으로 온전히 보내려는 마음에서다. 덩달아 식당과 술집도 목요일에 북적인다, ‘불금’ 탓에 생긴 택시 승차난이 좀 나아지려나. 청년실업률이 12%를 돌파하면서 불금이든 불목이든 ‘불타는 밤’이 남의 나라 얘기만 같은 고단한 청춘이 너무도 많다니 왠지 마음이 짠할 뿐이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자유와 위로의 상징, 서커스
미술의 역사에는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조르주 쇠라(1859∼1891)도 그중 한 명입니다. 서른두 살에 요절한 화가는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공공 벽화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화면에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를 기념비적으로 표현했지요. 특히 물감을 팔레트에 직접 섞지 않고 나란히 두어 색채 혼합을 꾀한 기법은 혁신적이었어요.
화가는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확산된 여가 문화를 즐겨 그렸지요. 그림 속 인물들은 공원과 유원지에서 물놀이와 뱃놀이로 휴일을 보냅니다. 카페와 공연장에서 캉캉과 서커스를 관람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닙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붓으로 도시의 일상을 포착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화가의 미술은 결이 다릅니다.
기하학적 화면 구성 때문일까요. 휴식과 놀이의 순간조차 질서정연합니다. 고대 벽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정적인 분위기의 인물들 때문일까요. 행락객의 모습에 긴장감이 넘칩니다. 마냥 여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절제된 분위기는 ‘서커스’에서도 반복됩니다.
늦은 밤 관객들이 특별한 구경을 하러 왔군요. 서커스는 새로운 볼거리였지요. 전통적인 발레나 오페라 공연처럼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람 분위기도 자유로웠어요. 숨죽인 채 무대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공연 도중 자리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잡담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 객석 뒤쪽에 모자를 쓴 채 앉아 있는 두 명의 관객처럼요. 게다가 무대와 객석 거리에 따른 입장료 차별도 없었지요. 상업적 유흥 공간에서 모든 계층은 잠시나마 하나 됨을 느꼈어요. 아슬아슬한 마상 쇼가 펼쳐지는 순간만큼은 자유였습니다. 일상의 시름과 속도 경쟁에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와 해방의 꿈이 위로와 공감으로 바뀐 것일까요. 관계의 소원함이 깊어지는 시대, 익명성에 기반을 둔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부담 없이 현실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답니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답니다. 100여 년 전 늦은 밤 서커스 공연장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관객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훗날 뉴미디어 시대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주목하리라는 것을요. 그것도 나의 고단함을 달래 주고, 걱정거리를 토닥여 줄 적임자로 말입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사슴 꼬리(鹿尾)
짐작하지 못할 식재료는 아니다. 짐작은 하지만, ‘글쎄? 그게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은 든다. 사슴꼬리, 녹미(鹿尾) 이야기다.
연산군 10년(1504년) 10월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사슴꼬리 때문에 애꿎은 관찰사의 목이 떨어질 판이다. 연산군, 누구나 알듯이 해괴한 짓 많이 했다. 그중 하나다. 연산군이 사옹원에 명한다. “녹미는 모름지기 꼬리가 있는 것으로 올리라. 관찰사도 부엌의 반찬을 보고 좋고 나쁨을 따진다. 하물며 궁중에 올리는 물건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앞으로 사옹원에서는 관찰사가 올리는 녹미의 색깔과 맛을 살펴보고, 나쁜 것이 있으면 조사하라. 이조에서는 장부에 기록하라. 6개월에 3번 이상 질 나쁜 녹미를 올리는 관찰사가 있으면 비록 근무성적이 최고라 하더라도 파면하라.”
입이 짧기로 소문난 영조도 녹미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남겼다. 영조 40년(1764년) 4월 “사슴꼬리나 메추라기고기도 내가 전에 즐겼던 것들이나 올리지 말라고 했다. 역시 민폐가 될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사슴꼬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5년 후인 영조 45년 8월의 기사에는 “사슴꼬리가 60조(條)면 사슴 또한 60필이다. (제주도에서) 1년에 두 번 올리면 사슴이 자그마치 120필이다. 예전엔 그렇게 올렸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진공(進貢)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사슴꼬리가 또 등장했다.
영조 48년 11월에도 “오늘 젓가락을 댄 것은 오직 녹미뿐이다. 맛있다고 해서 어찌 어질지 못한 짓을 계속하겠는가. 앞으로는 녹미를 봉진하지 말라”고 했다. 영조 51년 8월에 또 ‘사슴꼬리 봉진 금지’가 등장한다. “내가 일찍이 녹미를 즐겼으므로 어영청에서 먼저 구해서 바쳤다. 다른 영문에서도 장차 이와 같이 할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녹미를) 구하지 말라. 하여, 내가 녹미를 구하는 뜻이 없음을 보여주라.” 어영청은 5영문 중 하나다. 어영청에서 시작하면 훈련도감 등 다른 영문들도 따라할 것은 뻔하다.
영조는 10여 년간 계속 ‘녹미 봉진 금지’를 이야기한다. 뒤집어 보면 영조는 사슴꼬리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고 역설적으로 계속 녹미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집권 말기, 여든 살 무렵 영조의 변덕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사슴꼬리 음식’을 쉽게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맛있는 고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산군이나 영조 외에도 녹미를 좋아하는 이들은 많았다. 일반인도 녹미를 좋아했고 그 때문에 녹미를 둘러싼 잡음도 많았다.
중종 3년 4월의 기록에는 ‘중신 채윤문이 경상도 수사로 있을 때 녹미, 녹설(鹿舌)을 많이 거두어 장사를 해서 이익을 취했으니, 이렇게 더러운 사람으로 장수를 삼을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 내용도 있다. 1712년 베이징(北京)에 사신으로 갔던 조선 후기 문인 김창업(1658∼1721)은 베이징에서 “주방에서 사슴꼬리를 들여보냈는데 구웠더니 별로 맛이 없었다. 오래되어 변한 듯하다”고 했다. 귀하지만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녹미의 봉진을 둘러싼 다른 잡음들도 있었다. 진상용 녹미를 구하지 못한 지방에서는 엉뚱하게도 한양으로 녹미를 구하러 보낸다. 지방관리가 면포를 가지고 한양에서 녹미를 구하여 진상하는 일도 있었다. 중종 12년(1517년) 8월의 기록에는 ‘한양에서 녹미를 구하다니 도대체 한양 어디에서 녹미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사옹원 등에서 퇴짜 맞은 물건들이 떠돌아다니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참찬관 조방언의 진언도 남아 있다.
황해도 감사였던 율곡 이이도 “녹미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황해도 내에서 사슴이 많이 나지 않으므로 결국 베와 재화를 가지고 한양에서 바꾼다. 그 값도 (원래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다”며 제도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녹미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교산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녹미는 전북 부안에서 그늘에 말린 것이 가장 좋고 제주도 것이 그 다음’이라고 밝혔다. 오주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녹미 절임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칼로 사슴꼬리의 뿌리 부분 털을 잘 깎아낸다. 뼈를 발라내고 소금 1전(錢)과 무이(蕪荑) 5푼(반전)을 꼬리 속에 넣는다. 긴 막대에 끼워서 바람 부는 곳에서 말린다.’ 무이는 왕느릅나무(열매)로 추정한다.
5.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나를 '1인 기업'으로 대접해주는 조직“
기업이 신문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나는 살짝 눈썹이 올라갔다.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 기업으로 이직하여 주요 요직을 거친 한 대기업 팀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썹은 내려왔고, 점차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때 대화가 그 후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몇 기자를 상대로 ‘취재’도 해보았다. 기업이 신문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말에 지친 나날을 보내는 기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몇몇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에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 몇 가지를 들어보자.
최근 삼성이 대대적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수평적 조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수년 전부터 다른 기업에서도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직책을 없애고 “○○님”이라고 부르는 시도를 해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외부와 일을 할 때, 명함의 직책이 사라짐으로 해서 불편함을 겪는다는 불만이 더 많이 들렸다.
신문사 안으로 들어가 보자. 직책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신참 기자들도 ‘감히’ “김 국장” “박 부장”이라고 부른다. 얼핏 이해 못 하겠지만, 이는 언론사 기자들이 신참이라 하더라도 취재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을 만났을 때 당당하게 대하라는 뜻에서 내려온 전통이다. 상상을 해 본다. 기업에서 직책을 없애고 서로 ‘○○님’으로 부르기보다 직책은 그대로 두고 ‘님’자를 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수평적인 조직이 될까.
‘신문사는 수평적 조직일까’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 신문사의 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자.
기자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고분고분한 사람의 이미지와는 반대일 것이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비판의식이 있으며 할 말은 하는 타입인 경우가 많다.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사회인 우리는 이런 ‘모난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도 위계질서가 있지만 기업과 신문사의 회의문화는 다르다. 신문사에서는 적어도 기업보다는 참석자들이 할 말은 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리더 혼자서 ‘주욱’ 이야기한 후 마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자의 개인성(individuality)을 살려내는 것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 상사와 선배 앞에서 우리는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조화와 순종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처음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팀장은 오너 회장에게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팀원들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도록 장려하고, 형식적인 회의는 거부한다.
신문사에서 기자 한 사람은 일종의 1인 기업이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지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신참 기자라 하더라도 특종을 ‘물어오면’, 그 기사는 1면에 그 기자의 이름으로 실릴 수 있다. 기업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고 단계를 거치면서 신참 직원의 이름은 보고서 어느 한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을까? 아직도 주말 행사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개인 생활을 무시한 채 동원하고 때로는 과로사하는 사회에서 상사나 조직이 직장인을 1인 기업처럼 대해 주리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도 직장인은 조직 내에서, 또 자신의 삶에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밝힐 방법을 연대하며 찾아가야 한다.
신문사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 결과물을 내고 평가받는 지친 삶을 살아가는 기자도 적지 않다. 기업이 신문사처럼 되자는 말이 아니라 신문사의 독특한 문화로부터 새롭게 생각해 볼 점들이 있으며, 이를 기업과 개인의 실정에 맞게 변형 발전시켜보자는 것이다. 물론 신문사도 기업의 경영으로부터 배울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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