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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5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텃밭 공천=당선 등식이 깨지는 이유 직시해야

4·13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초반 판세가 드러나고 있다. 특징은 여야가 고수해 왔던 전통적인 텃밭에서 균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영남과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은 특정 정당의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해 왔다.

지역구 당선만 놓고 보면 19대 총선은 18대 총선에 비해 지역 구도가 오히려 강화된 선거였다. 18대 때는 ‘친박연대’의 돌풍으로 당시 한나라당이 영남 68석 가운데 46석을, 민주통합당은 호남에서 31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했다. 양당 구도로 치러진 19대 총선은 새누리당이 영남 지역 67석 중 63석을 쓸어 담았다. 민주통합당 3석, 친새누리당 성향 무소속에 1석만 내줬다. 민주통합당은 호남 30석 가운데 25석, 정책 연대를 한 통합진보당이 3석, 민주통합당 성향 무소속에 2석을 내줬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들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 후보가 전북 전주을과 전남 순천에서 선전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더민주 후보가 사하갑과 북·강서갑, 경남 김해갑, 김해을에서 의미 있는 선전을 하고 있다. 야권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는 더민주 김부겸 후보가 여전히 우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구에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수혜자인 무소속의 유승민 후보와 다른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해 새누리당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친박연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주고 있어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이러한 지형 변화는 원칙을 무시한 공천 파문과 명분 없는 야권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텃밭 민심을 무시한 오만함에 대한 유권자의 반격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번진 새누리당의 공천 파행은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텃밭과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 이익을 기대했던 것만큼 얻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도 마찬가지다. 호남에서 더민주 후보들은 공천 컷오프를 두려워해 탈당한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밀리고 있다. 여론을 무시한 당내 패권주의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남의 맹주가 더민주냐, 국민의당이냐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후보의 면면과 지명도만 놓고 보면 국민의당이 비교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호남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야권 분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선거 초반이긴 하지만 지역 구도 완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텃밭 유권자나 국민을 무시한 공천 파행과 야권 분열의 원치 않은 결과라는 점이 안타깝다.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했다는 점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2. 가습기 살균제 보고서 조작 의혹 진상 뭔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살균제 제조사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서울대 수의과대학 연구팀 보고서가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그제 드러났다. 연구팀 보고서가 실제와 달리 왜곡된 사실이 밝혀지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연구팀의 조작이든, 제조사의 조작이든 간에 위험에 노출된 생명을 고의성 여부를 떠나 방치한 결과와 다름없는 까닭에서다.

사건은 2006년부터 불거진 의문의 폐질환 논란 속에 2011년 임신부 4명의 급성 폐질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에 맞춰지면서 비롯됐다. 이후 집계된 피해자는 임신부를 포함해 영·유아까지 무려 143명에 이른다. 검찰은 2012년 관련 업체에 대한 고소·고발을 4년 가까이 손놓고 있다가 올해 1월 말에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다. 초점은 제조사나 유통사가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또 흡입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품을 제조했는지 등에 맞춰져 있다.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검증이 핵심이다.

검찰은 지난 2월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서 서울대 연구팀이 회사 측에 회신한 보고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살균제가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보고서가 제조사 측에 유리하게 작성된 정황이 있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현재로선 의혹 수준이다. 최근 서울대 연구진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조사 측도 곧 소환하기로 했다. 옥시 측은 지금까지 연구팀 보고서를 근거로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검찰은 충분한 실험 결과를 담지 못한 채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 옥시 측의 주도 아래 또는 서울대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아니면 합의에 의해 부실한 보고서가 만들어졌는지를 캐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사인을 둘러싼 공방이 첨예한 만큼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적 역량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실체적 진실의 규명만이 피해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는 데다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뒤늦게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건이라며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반성이자 과제다.

3. 제재 후 첫 협상 언급한 北, 국면 전환 바라나

북한 국방위원회는 그제 유엔의 대북 결의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자살적인 망동”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에 사태 수습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대변인 명의의 담화로 “무모한 군사적 압박보다 협상 마련이 근본 해결책이며 부질없는 제도 전복보다 무조건 인정과 협조가 출로”라고 주장하면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 채택 한 달째를 맞아 북한 정권이 빼든 국면 전환 카드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별무효과라고 강변하면서도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이중적 태도였다. 이런 태도가 핵을 포기하려는 신호로 보긴 어려운 만큼 북한의 핵 포기를 견인하기 위한 우리의 중장기 전략을 재점검할 때다.

현시점에서 대북 제재의 성패를 말하기는 시기상조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그리고 우리와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의 독자 제재 효과를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제재의 실효성을 담보할 열쇠를 쥔 중국의 태도가 아직 미심쩍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북한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검색 등 유엔 결의안을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북·중 접경 지대에서 각종 금수 품목들이 매일 북한으로 밀반출되고 있다는 엇갈린 보도도 있지 않나. 다만 북한 국방위가 제재가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라느니, “(우리를) 천하에 둘도 없는 자립·자력·자강의 강국으로 전변시켰다”고 강변하고 있음은 뭘 말하나. 북측도 제재 국면이 장기화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그렇다면 굳이 이 시점에서 제재의 고삐를 늦출 이유는 없을 게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자는 중국의 제안에 힘을 실어 주면서 슬쩍 제재를 피하려는 게 북한의 진짜 속내라면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북측의 ‘협상’ 거론에 “지금은 대화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본 정부의 인식은 적실하다. 핵을 포기하려는 의지가 없는 북측의 협상 제스처에 섣불리 장단을 맞춰 북한의 ‘도발→제재→대화→보상→도발’의 악순환이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재의 효과가 가시화된 후 본격화할 대화 국면에도 미리 대비하기 바란다. 북한 정권의 붕괴가 아닌, 북한의 핵 포기가 일차적 목표라면 이에 따른 중장기 안보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 놓으란 얘기다. 북한이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카드로 우리의 어깨너머로 미·중과 협상을 시도하려 한다면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북한이 제재를 모면하려 협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미·중과의 전략적 대화가 긴요하다.

[동아일보]

4. 노태우 前대통령 장남이 해외 유령회사 세운 이유 뭔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가 조세회피처에 3곳의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어제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사크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홍콩 주소를 썼던 노 씨 외에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헌 씨가 2012년 설립해 주주 겸 이사로 취임한 3개 회사는 재산 도피나 탈세에 악용될 소지가 큰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유령회사)다. 노 씨는 “사업 진행이 안 돼 계좌 개설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2011년 홍콩에서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한 뒤여서 재산을 빼돌리려 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뉴스타파 측은 ‘노태우 비자금’이나 매형SK 최태원 회장과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유령회사를 만든 경위가 뭔지 당국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2013년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를 비롯한 182명도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수천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아 형사처벌 받은 데 이어 두 아들까지 탈세와 재산 도피 혐의로 도마에 오른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국세청은 48명에게 1324억 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의 10배가 넘는 자료가 유출된 만큼 더욱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탈세 혐의가 밝혀지면 검찰 수사를 의뢰해 엄벌해야 한다.

ICIJ와 뉴스타파에서 공개한 1977∼2015년 자료는 1150만 건에 달한다. 사상 최대 조세 회피 문건의 폭로로 일파만파(一波萬波)가 예상된다. ICIJ가 주도한 자료 분석에 뉴욕타임스 인디펜던트 르몽드를 비롯한 전 세계 109개 언론매체가 참여했다. 이 속에는 전현직 국가 정상 12명,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배우 청룽 같은 유명인사의 금융 거래 실태도 들어 있다.

조세피난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미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 53개국이 참여하는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 체결로 해외 탈세 적발이 한층 쉬워졌다. 재헌 씨 등 196명의 탈세 사실이 밝혀지면 엄하게 처벌해 조세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5. 與 선대위원장 증세 불가피하다면서 왜 공약에선 빼놨나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그제 증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이 증세를 하지 않고 쓰기만 하다가 세계에서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며 “증세를 안 하면 우리도 일본처럼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부가가치세율 3%로 시작한 일본의 경우 선거를 의식해 재정 적자가 나는데도 올리지 못하다가 지금 8%까지 올렸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들이 “부가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얘기냐”고 묻자 강 위원장은 “선거 때는 언급하기에 안 좋다”며 즉답을 피했다. 공약과 무관한 평소 소신이라고 해도 새누리당이 영입한 경제통 선대위원장이 ‘증세 불가피론’을 말하면서 선거공약에선 제외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같은 날 오전 강 위원장은 4년 내 최저임금 시간당 8000∼9000원으로 인상,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비정규직 임금 인상 등을 추가 경제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때도 그는 “법인세 인상, 부자증세를 통한 분배개선은 효과가 제한적이고 산업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된다”고 야당의 증세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증세 없는 복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이번 총선 공약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집에는 바이오·나노 신기술 및 에너지 신산업 육성, U턴 기업 경제특구 설치, 고교 무상교육 등의 공약에 2020년까지 56조 원이 든다고 소개돼 있다. 그러면서도 증세를 포함한 재원 확보 방안은 쏙 빼놓은 것은 무책임하다.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은 저성장과 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로 재정파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세제 및 재정 개혁을 강조한 바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일반 재정지출은 연평균 2.6% 늘어나지만 복지 분야의 법정지출은 6.7% 늘어난다. 전체 복지예산 가운데 정부가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돈의 비중만 무려 70%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한계에 봉착하는 등 새로 돈 나올 곳은 없는데 증세 없이 무슨 수로 복지를 늘린다는 건지 의문이다. 달콤한 공약으로 표를 산 다음 총선 이후 증세를 추진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일과 다름없다. 

유승민 의원(무소속·대구 동을)은 1일 방송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은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인 강봉균 전 장관도 하는데 내가 한 말만 왜 그리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정부 여당은 지금까지 야당의 증세 불가피론을 비판해 왔지만 외부에서 영입한 강 위원장의 증세론까지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 위원장은 증세론을 경제공약의 맨 앞줄로 올리는 게 정정당당하다.

[이데일리]

6. 대전 과학 벨트 '속빈 강정' 안되려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정식 출범도 하기 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해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등 관련기관들이 지난해 7월부터 대전시 유성구 신동·둔곡지구에 조성하고 있는 첨단기업 및 연구소 육성 단지다. 그러나 아직 입주를 확정지은 대상은 중소기업 3곳에 불과하며, 연구기관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조성하는 과학벨트 사업이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업은 국내 과학계에서 외면받고 있는 기초과학을 육성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자는 취지로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시작했다. 과학벨트 연구소에서 나온 성과를 곧바로 비즈니스로 연결한다는 사업 목표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문화·산업이 융합하는 창조경제의 지식생태계로 만든다는 거창한 구상이었다. 정부가 모두 5조 740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한 가운데 지금까지 1조 6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것도 이 같은 의욕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가고도 추진 실적은 제자리 걸음이다. 과학벨트 조성사업이 이처럼 빨간불이 켜진 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떠밀기식 행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부와 특구진흥재단은 직접 이해 관계자인 대전시와 LH가 유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대전시는 주무부처인 미래부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 LH는 토지 보상과 개발사업 문제만 책임질 뿐 기업유치는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는 입장이다.

시작 단계에서부터 책임 한계를 명확히 정하지 않았기에 생겨난 결과다. 세금을 펑펑 쏟아부으면서도 주먹구구로 사업을 계획한 것이다. 이렇게 관련기관들이 서로 네탓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세계 상위 1% 수준 과학자 500명을 유치하겠다는 원래 목표는 그냥 사그러들고 있다.

과학벨트 사업은 기초·응용과학자와 기업인이 손잡고 새로운 스타트업을 만드는 클러스터 조성에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관련기관은 이 사업을 통해 우리의 밝은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세계적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역할 분담과 지원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7. 이젠 정책으로 당당하게 심판받아야

4.13 총선이 여드레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후보 단일화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된 어제 이후에는 후보가 단일화된다 해도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그대로 남게 되므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투표 직전의 후보 단일화는 되레 유권자들의 반감을 유발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정장선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이 “앞으로 당에서 단일화 얘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것도 그래서일 게다.

이번 총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가 초반 판세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작 선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난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이 거셌다. 선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가 25% 안팎에 이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30%를 넘고 있다. 정치철학은 없고 정치공학에만 몰두하는 후진적인 우리 정치 행태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여야는 이미 공천 과정에서부터 많은 실망을 안겼다. 새누리당은 현직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놓고 ‘악랄한 사천(私薦)’이라고 개탄할 정도의 뻔뻔한 계파 이익 챙기기로, 더민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셀프 공천’으로 골수 지지자들의 대거 이탈을 자초했다. 그나마 공천 파동을 덜 겪은 국민의당은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한 권은희(광주 광산을) 후보의 막말 선거포스터 파문으로 발목이 잡혔다. 두 거대 정당에 실망해 ‘제3당’을 기웃하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선거 때마다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그러나 정치는 계속 뒷걸음질쳐 왔다. 국민들의 판단이 꼭 올바르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번에는 ‘공약 전쟁’이 시들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럴수록 결국 믿을 건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뿐이다. 선거 때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느라 온갖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쏟아내지만 막상 당선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자 눈치나 보는 후보에겐 절대 표를 줘선 안 된다. 야권 단일화를 놓고 오락가락하다 체면을 구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공정선거를 이룩하려면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8. [키워드로 보는 사설]비례대표제도

비례대표제도는 각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국회의원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보통 단독적으로 채택되기보다 선거구 단위로 후보들이 경쟁해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과 병행 실시되는 제도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에 대별되는 전국구 개념으로 각 선거구에 입후보한 각 정당 후보들의 득표를 전국적으로 합계해 그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 단위의 선거구에 입후보한 후보들에 대한 투표와 별도로 정당 지지 투표를 실시해 그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시행하고 있다. 즉, 자력으로는 국회 진입이 힘든 소외계층이나 약자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을 진출시켜 국민에게 필요한 입법활동을 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비례대표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보면 여전히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내 계파 간 나눠먹기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영입한 인사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수단 등으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향후 대한민국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매일경제]

9. 법무부·공직자윤리의 부실 대응 땐 제2진경준 낳는다

재산공개에서 불투명한 주식매매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둬 논란을 빚자 사의를 밝힌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한 관련 당국의 뒤처리 여부가 계속 관심을 끌 것 같다. 검사장급인 진 본부장은 2005년 비상장기업 넥슨 주식을 샀다가 지난해 126억여 원에 처분해 한 해 동안 38억여 원의 차익을 거뒀다고 신고했다. 논란이 커지자 해명을 뒤늦게 했으나 되레 더 의혹을 키우고 말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 1일 뒤늦게 해당 주식 보유 적절성이나 고의 누락 또는 오류 등 진 검사장 신고 내역에 대한 재검증에 들어갔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의 심사 결과 거짓이 있거나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나면 경고에서부터 징계나 파면까지 제재를 요청할 수 있다. 특히 위법 혐의를 찾으면 법무부 장관에게 조사를 의뢰할 수 있고, 장관은 내부 감찰이나 검찰에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진 검사장은 윤리위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꼴이니 법무부는 윤리위의 심사 마무리 전에 그의 사직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 퇴직자에게는 자료 제출이나 소명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시민단체 등의 고발 없이는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 검사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가 금융거래 정보를 분석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근무를 마친 직후 해당 주식을 매입했고 이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다. 아무리 부인해도 업무 연관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일반인은 취득하기 어려운 비상장 주식을 진 검사장이 어떤 경위로 얼마에 누구로부터 샀는지 밝혀내야 한다. 친구로 알려진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았는지, 넥슨의 일본 상장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불투명한 재산 형성 흠결을 가진 검사장급 간부에 대해 인사 전 얼마나 철저한 자체 검증을 했는지도 묻고 싶다. 공직자윤리위와 법무부가 이번에 대충 넘어가면 고위 공직자 재산 문제에 '제2의 진경준' 사태가 또 생길 수 있음을 알기 바란다.

10. 전기차 대중화로 산업 판도 바꾼 테슬라의 혁신

미국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가 3일 만에 27만6000대나 예약 판매된 것은 혁신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다. 모델3는 한 번 충전으로 약 350㎞를 달릴 수 있을 만큼 다른 전기차에 비해 경쟁력이 있고, 다양한 편의 장치와 고급 디자인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3만5000달러에 불과하다. 이전 모델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값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한국에서도 모델3를 판매한다고 밝혔는데 전기차에 붙는 보조금을 감안하면 200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모델3에 대한 열광은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를 연상시킨다.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을 스마트폰으로 재편한 것과 같이 '모델3'가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면서 산업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혁신 기업 중에는 테슬라처럼 기존 시장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적지 않다. 지난달 이세돌 9단과 다섯 번의 바둑 대국에서 4승을 거둔 구글 알파고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마존은 드론 배송으로 물류·택배 분야에서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 회사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는 발사체 회수가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며 우주관광시대를 열고 있다. 15억명의 가입자를 둔 페이스북도 광고·마케팅 등 많은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정보통신기술(ICI)과 바이오 의약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쓰고 있지만 산업 자체를 바꿀 기술이나 제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서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혁신 기업을 키울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벤처가 독창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적기에 투자를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실리콘밸리처럼 혁신 기술의 가치를 알아주고 평가하는 시스템도 미진하다. 테슬라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면 '모델3' 같은 제품이 나왔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게임 체인저'가 나올 수 있도록 벤처 생태계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한효주와 한복패션은 좋다, 영화 '해어화'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에 태동했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최초의 대중가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시대가 열렸다. 기존의 판소리와 잡가 등 전통음악들을 제치고 재즈와 만요, 신민요, 유행가(트로트)와 같은 새로운 장르들이 인기를 모았다. 1936년을 전후로 광복 이전까지 황금기를 누린다.

이때 권번 기생들이 가요를 부르며 대중가요계에 활력을 더했다. 권번은 기생학교로 요즘으로 치면 연예기획사에 해당된다. 1940년대 전후 ‘대정권번’과 ‘한성권번’, ‘한남권번’, ‘조선권번’이 조선을 대표하는 4대 권번으로 이름을 떨쳤다. 

권번에 소속된 기생은 예의범절, 서화, 기조, 창, 가야금, 유행가, 일본 노래 등 가무와 풍류는 물론이고 예능과 교양을 겸비한 교양인으로 대우 받았다. 권번의 기생이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수업 과정을 거쳐 시험에 통과해야 했는데, 실력에 따라 일패(一牌)와 이패(二牌), 삼패(三牌) 기생으로 나뉘었다.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는 1943년, 가수를 꿈꾸는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다. 뮤지컬 가수 차지연이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당대 인기가수 이난영을 연기했고 한효주와 천우희가 이난영을 동경하는 경성 제일의 대성권번 소속 일패 기생으로 나온다.

권번의 선생 산월(장영남)의 딸인 소율(한효주)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권번에서 자란 연희(천우희)와 둘도 없는 친구다. 둘 간의 비극은 소율이 어려서부터 사모하던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역시 기생의 아들인 윤우(유연석)가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로 연희를 점찍으면서 시작된다. 

소율을 사랑한 윤우는 처음에는 연희를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로 생각하나 어느 순간 마음을 뺏긴 자신을 발견한다. 우정과 사랑을 모두 잃은 소율은 이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들에게 상처 입히고 자신 역시 변해간다. 

한효주와 천우희가 부르는 노래는 시대 분위기와 겹쳐지며 마음을 울린다. 한효주는 우리나라 전통가곡인 정가를 실제로 불렀다. 청아하면서도 섬세한 목소리가 제법 예인처럼 보인다. 천우희도 민중들의 마음을 울렸던 ‘사의 찬미’와 ‘조선의 마음’을 열창한다. 계속 듣고 싶어지는 노래다. 민족의 한이 느껴지는 ‘아리랑’ 등 유연석의 유려한 피아노 연주도 눈길을 끈다. 스스로도 모르게 대역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되는데, 유연석이 실제로 연주했다.

‘곱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는 각양각색 한복부터 소율의 방에 품격을 더하는 소품 등 화려한 미술과 의상이 볼거리다. 적어도 여자 관객이라면 밑단을 레이스로 처리한 저고리며 파격적 색상을 적용한 치마 등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둘도 없는 친구에서 연적이 되는 한효주와 천우희의 연기호홉도 돋보인다. 특히 한효주는 연기력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20대 연기자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이번 영화로 100억원에 육박하는 시대극도 이끌수 있는 주역임을 증명해낸다. 새삼 한효주를 다시 보게 된다.

‘해어화’는 큰 범주에서 보면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여자의 사랑과 질투를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감정으로 끌어올린다. 그 중심에 한효주가 있다. 유연석의 대사처럼, 복사꽃처럼 순수하고 어여쁘던 소녀부터 춤과 노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의 마음을 훔치는 예인, 그리고 친구와 애인의 배신에 180도 달라지는 상처 입은 여인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장면도 사랑스럽게 풀어내는 한효주는 세 남녀 사이에서 빚어진 비극 이면의 복잡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후반부 노인 분장은 다소 허를 찌르나, 마지막 소율을 위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그녀의 뜨거웠던 열망과 깊은 회한이 느껴진다. 

물론 위태로운 점도 있다. 세 남녀가 빚어내는 비극의 드라마가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구태의연한 전개로 스토리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진다. 호흡도 느린 편이라 속도에 길들여진 젊은 관객들이 고비를 잘 참아낼지 우려된다. 

‘조선의 마음’을 만들어 민중을 위로하고자 한 작곡가 윤우의 야심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품어내지 못한 것도 아쉽다. 15세관람가, 13일 개봉.

2. [머니투데이][기자수첩]이건 고쳐야 할 말입니다.

요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큰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말투도 유행한다. 바로 ‘~ 말입니다’다. 
군대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다나까’ 말투다. ‘~다’와 ‘~까’로 문장을 끝내야 하는 것인데 의문형 문장의 경우 이중 ‘까’밖에 쓸 수 없을 때도 있고 문장의 제약, 무리한 사용으로 인해 일종의 변형인 ‘~말입니다’가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다나까’ 말투는 왜 쓰는 것일까. 군기를 세우기 위해, 특히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말투 자체로도 정중하고 명확함을 담기 위해 사용토록 한 게 ‘다나까’ 말투의 시작이라고 한다. 즉, 말투부터 기강을 잡는다는 것이다. 

최근 국방부는 ‘다나까’로 말을 맺도록 하는 경직된 병영 언어문화를 개선하고자 ‘새 병영언어 생활지침’을 일선 부대에 내려보냈다. 기계적 말투인 ‘다나까’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고 어법에 맞지 않는 언어 사용을 초래했다는 게 국방부의 판단이다. 국방부는 ‘다나까’ 원칙을 접고 상황과 어법에 맞게 바꿔 사용하도록 교육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훈련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선 ‘~다’ ‘~까’ 등 정중한 높임말을 쓰되 생활관에서 편하게 대화하거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선 ‘~요’로 말을 맺어도 된다. “말씀하시지 말입니다”와 같이 어색한 말투 대신 “말씀하세요”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군대에선 강압적인 상하관계 분위기 개선과 사병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바꾸려는 말투가 드라마의 인기로 일반인들 사이에선 유행처럼 퍼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국방부는 서열을 강조하는 군대식 높임말인 ‘압존법’ 관행도 바꿔나가기로 했다. ‘압존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제3자에 관해 말할 때 제3자가 윗사람보다 지위가 낮으면 윗사람 기준에 맞춰 그를 낮춰 부르는 용법이다. 이를테면 군대에선 김 일병이 박 병장에게 이 상병을 이야기할 때 “이 상병님은 안 계십니다”가 아니라 “이 상병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압존법을 경직되게 사용하다보니 신병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서열’ 외우기에 바쁘다. 

국립국어원은 압존법이 사적 관계에선 써도 좋지만 직장과 사회에선 언어예절에 맞지 않다고 지적해왔다. 국방부도 여론을 의식한 듯 “압존법이 언어예절에 맞지 않다는 것을 장병들에게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군인들의 말투가 한결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질 것 같으나 드라마의 인기로 일반인들은 한동안 어색한 말투를 쓸 것 같다.

3. [동아일보][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거리엔 담배꽁초가 너무 많아요"

한국에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 등 자주 인용되는 속담이나 표어가 있듯 일본에서도 사람 행동을 재촉하는 마법의 문구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 자리에)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 (하고 떠나라!)’라는 표어는 수십 년 동안 일본인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 돼 있다. 나도 남의 집 화장실에 가면 휴지로 더러운 곳을 닦기도 하고 전봇대, 버스정류장에서 여기저기 광고 전단 등으로 인해 지저분하게 남아 있는 초록색 테이프를 발견하면 열심히 떼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하다 보면 계속 하게 된다. 머릿속에는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라는 말이 반복해 들린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싶을 때도 있지만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한 번도 자랑한 적이 없는 나만의 비밀이지만, 일본인이라면 아마 누구나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주문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나는 학교 주변을 청소하는 학부모 단체 ‘깔끔이 봉사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청소하고 있는 내 앞에서 담뱃갑 비닐 껍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길가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등굣길이나 운동장에도 담배꽁초가 수없이 버려져 있었고 골목길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깨끗하게 치워도 다음에 청소할 때는 똑같은 상태였다. 중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일본어를 가르친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더니 가게 앞이나 길가에 비닐 껍질을 아무 생각 없이 버렸다.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왜 길가에 버리느냐”며 소리쳤다. 중학교 계단에도 과자 껍질이 떨어져 있었고 왜 이렇듯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가 생각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당시 장면들이 떠올랐다. 

식당에서 한국인 남편 친구들이랑 식사를 했는데, 그때 주변 테이블에서 수저를 싼 종이를 식당 바닥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버리는 것을 봤다. “왜 바닥에 버리느냐”고 물었더니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길거리에도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버려도 되는 건가?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한국에선 각 개인의 집은 대체로 깨끗하다. 공간을 넓게 보여주는 깔끔한 구조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쾌적한 공간을 확보한다. 일본의 집은 여러 가지 물건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좁은 공간을 메우고 활용하기 위한 ‘수키마(틈) 가구’라는 것이 등장할 정도로 수납공간이 눈에 보이게 돼 있어 한국처럼 넓고 깔끔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는 쓰레기 하나 볼 수 없다. 우선 아무도 길에다 쓰레기를 안 버린다. 

일본은 흡연하는 여성도 많고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흡연석이 있을 정도지만 흡연자는 뚜껑이 있는 휴대용 재떨이를 이용해 담뱃재도, 꽁초도 다 본인이 갖고 다닌다. 그래서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찾는 게 어렵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많은 사람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어떤 나라에선 많은 사람이 모이면 차 위에 올라타거나 옷을 벗거나 강에 뛰어 들어가거나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달랐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빨간색 티를 입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이웃들과 즐겁게 TV를 시청하고, 질서 있게 각자의 쓰레기와 주변 정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집 밖이 아닌 커다란 거실에 이웃사촌들이 사이좋게 앉아 TV를 함께 보면서 조국애를 나누고, 거리를 자신의 집과 마당처럼 애착을 갖고 기꺼이 청소하고 간 것이다.

이제 해외봉사자 배출 수가 일본을 넘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가 된 대한민국. 부지런하고 정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 나라.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 길거리도 자신의 집처럼 애착을 갖고 치운다면 ‘깨끗한 화장실 운동’처럼 주변이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보고 싶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열린사회와 퀴어 축제/박홍환 논설 위원

뮤지컬과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레드 앤드 블랙’은 후렴부의 색깔 규정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빨강-분노한 이들의 피, 검정-지나간 암흑시대/ 빨강-여명을 맞는 세상, 검정-결국 막 내리는 어두운 밤.” 우리 선조들은 청·백·적·흑·황을 이른바 오방(五方)색이라 하여 천지사방과 세상의 중심을 표현했다. 인류는 색깔에 의미를 부여해 희로애락, 만사를 담았다.

가슴 설레게 하는 분홍색과 무지개색에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핑크 트라이앵글과 레인보 깃발은 모두 동성애 인권운동의 상징이다. 분홍색 역삼각형인 핑크 트라이앵글은 원래 나치 독일이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식별하기 위한 코드로 사용했다. ‘저열인간’을 탄압하는 일종의 주홍글씨였던 셈이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로 표현하지만 동성애 사회의 무지개 깃발에는 남색이 빠져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고안된 상징 깃발에는 분홍과 남색이 있었지만 당시 분홍은 상업용 도료가 시판되지 않아 제외했고, 남색은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시의원이 저격당한 것을 계기로 사라졌다. 사라진 남색은 조화(調和)를 상징한다. 동성애를 벽안시하는 사회에 대한 항거로 볼 수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맨해튼의 게이바 스톤월에서 역사적인 동성애 인권운동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동성애 사회에서는 스톤월 항쟁이라고 말한다. 이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단속이 있었지만 동성애자들과 주변 군중들까지 똘똘 뭉쳐 저항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뉴욕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그 물결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뉴욕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또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퍼레이드’, 호주 시드니의 ‘마디그라 퍼레이드’,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라다 게이’…. 명칭과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떳떳이 세상에 나서는, 그래서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축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부터 ‘퀴어(성소수자)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성 정체성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탓에 국내에서는 매년 퀴어축제 때마다 큰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행사가 진행되자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망사 스타킹 등 참여자들의 복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올해도 퀴어 문화축제 조직위는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도 수용 의견을 밝혔다. 거리 퍼레이드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을 마귀에 비유하는 반대 함성 또한 거셀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성소수자 불용은 또 다른 색깔론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방증이다.


5. [중앙일보][분수대]'할미넴'

금요일 밤,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 할머니와 힙합가수가 떼로 등장하는 기묘한 장면과 마주쳤다. 이름하여 ‘힙합의 민족’(JTBC). 나이 여든의 배우 김영옥을 비롯해 평균 나이 65세 할머니들의 힙합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란다. 아무리 힙합이 대세라지만 허세와 디스(상대를 말로 깎아내리는 것)·욕설 탓에 40대인 나도 때론 거부감이 드는데 이걸 할머니들한테 시킨다고?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채널을 고정했다. 힙합의 ‘힙’자도 모르면서 젊은애들 가르치려 드는 막무가내 할매들 상대하느라 땀 좀 빼는 힙합가수들, 이런 걸로 좀 웃겨 보려는 얄팍한 예능이려니 했다.

그런데 웬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할머니와 힙합가수 둘 다 진지했다. 어느 누구도 예능이라는 방패막 뒤에 숨어 “(어린)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고 꼰대질하거나 “(늙은) 니들이 힙합을 알아?”라고 디스하지 않았다. 또 적당히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도전하고 그런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과정뿐 아니라 결과도 훌륭했다. 민망한 헛웃음을 기대했다가 기분 좋은 일격을 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방송이 끝난 후 악플 일색이던 포털과 SNS에 “할미넴(‘할머니’와 미국의 유명 힙합가수 ‘에미넴’을 결합한 말), 멋있다”거나 “저렇게 늙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진 걸 보면 나처럼 느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도전뿐 아니라 같이 출연한 힙합가수에게도 냉소적이었던 젊은 힙합 팬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이를 벼슬처럼 앞세우는 대신 나이와 무관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할머니들의 열린 자세였을 것이다. 힙합 특유의 스웨그(자아도취)는 유지하면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힙합가수 역시 한몫했을 테고.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개봉해 "세대 간 화합 영화”라는 평을 받은 ‘인턴’도 그랬다. 간부로 퇴직하고 인턴으로 새 인생을 출발한 늙은 인턴 벤이 나이를 앞세우지 않고 경륜으로 젊은 CEO 줄스와 호흡을 맞추는 걸 보면서 많은 젊은이가 “저런 어른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땐 다들 영화 속 얘기일 뿐이라고 했지만, 할미넴의 도전을 보니 우리에게도 이런 어른이 없으리란 법이 없겠다.

할머니가 랩을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 갈등의 해법을 어렴풋이나마 봤다. 힙합과 할머니. 대척점에 선 이 조합이 이토록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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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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