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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지구촌 연쇄 지진, 우리는 안전한가

지난해 8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네팔 대지진 1주년을 일주일여 앞두고 지구촌이 지진 공포에 긴장하고 있다. 지난 14일과 16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리히터 규모 6.5 및 7.3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40명 이상이 숨지고 부상자가 1000여명을 넘었다. 어제는 일본과 함께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강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최소 77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주변 해역에 거대 대륙판 등의 경계가 없어 대형지진의 위험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마모토 지진처럼 가까운 일본의 지진대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구마모토 지진 때 부산과 울산, 대구 일대에서까지 건물이 흔들린다는 신고가 대거 접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재앙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 국내의 지진발생 건수는 증가 추세다. 1980년대엔 1년에 평균 16회 정도였지만 2000년대엔 44회, 2010~2014년엔 58회에 달하는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전북 익산에서 규모 3.9의 지진이, 2014년에는 충남 태안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나는 등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위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대비는 허술하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2011년 전국 건축물과 공공시설에 대한 내진보강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10만 5448개소의 내진설계 대상 중 42.4%만 내진 성능을 갖췄을 뿐이다. 송유관은 대상 5개 중 하나의 시설도 내진설비가 돼 있지 않았으며 학교시설(23%), 전기통신설비(36%), 철도(40.1%) 등도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는 지진 대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지진을 미리 막을 수는 없지만 대비를 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지진 다발지역의 지각 조사 등을 통해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내진설계 및 보강 계획의 차질없는 진행도 중요하다. 경보·비상체계 구축, 주민 대피계획 등 유사시 효율적인 대비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2. 선거사범 수사 신속·엄정히 이뤄져야

검찰이 제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선거사범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거운동원은 물론 당선인들도 수사 대상에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1차 수사 대상에 오른 당선인들만 해도 10여명에 이른다니,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에 아직 이른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사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어차피 혐의 여부를 가려야 한다면 정공법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홍일표·김진표·박준영·윤종오·박찬우·이철규 당선인 등 6명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이들은 각각 사전선거운동과 금품살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혐의가 있는지, 설사 혐의가 있더라도 당선이 무효 처리될 정도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억울하게 혐의를 받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 만큼 본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신속하고도 공정한 수사가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사범으로 입건된 당선자가 무려 104명에 이른다. 지난 19대 때의 79명에서 31.6% 증가한 숫자다. 선거 운동원이 입건된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 양당 체제에서 치러진 선거에 비해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3당 경쟁 체제로 치러졌기에 선거운동이 훨씬 혼탁해진 결과다. 선거수사 결과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로서는 정치적 상황에 좌고우면할 게 아니라 확인된 사실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리면 된다. 여당이나 야당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다. 올바르지 않은 수단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난 17~19대 총선에서 당선되고도 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금배지를 떼야 했던 의원이 모두 36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적지 않은 당선무효 사태가 나올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에는 법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처럼 공연히 질질 끄는 듯한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다. 정치적인 오해를 야기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1심과 2심을 각각 2개월 이내에 선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하니, 유심히 지켜보고자 한다. 불법 당선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엄정한 응보가 내려져야 한다.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처리는 정치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한국일보]

3. 보수층이 정권심판에 가세한 이유 뼈아프게 돌아보길

새누리당 참패와 여소야대로 끝난 4ㆍ13 총선 결과에 보수층도 만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5~16일 실시한 유권자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3%가 선거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진보층(86.5%)과 중도층(72.0%)은 그렇다 치고 보수층이 56.5%나 여소야대 결과에 만족을 표시했다는 것은 의외다. 보수층의 이반이 여당 참패의 주된 요인의 하나였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기반인 보수층으로부터도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 지역주의와 무관한 계층적 텃밭인 서울 강남벨트(서초_ 강남_송파_강동)에서 절반(10석 중 5석)을 야당에 내준 것은 보수층의 이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장 공천극으로 드러난 오만과 독선은 물론이고 경제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권의 무능에 상당수 보수층이 분노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보수층 이반은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위기라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신의 정치 응징을 호소했다. 총선 전날까지도 국정 발목을 잡는다며 야당과 국회의 심판을 국민들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야당 탓, 국회 탓에 동의하지 않다는 것을 표로서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유권자인식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새누리당 패배 요인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40.0%)을 새누리당 잘못(38.0%)과 비슷하게 꼽았다. 야당과 국회 이전에 청와대와 새누리당부터 먼저 달라지라는 게 총선 민의인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30.5%로 급락하고,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26.2%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소야대 구도 속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 추락이 겹치면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10개월 동안 국정동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른바 레임덕(권력누수)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안으로는 합리적 보수 노선을 재정립하고, 밖으로는 이번에 약진한 야당들과의 협력 정치를 모색해 나가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권력누수를 막겠다며 어설프게 사정 정국을 기도하거나 친박계 중심으로 새누리당의 재편을 꾀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는 총선 결과로 나타난 엄정한 정권 심판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총선 참패 후 첫 조치가 스스로 내친 무소속 당선자들 입당 허용인 것은 새누리당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뜻이다. 순리에 따라 발상을 전환하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4. 여성 공학인재는 국가경쟁력의 바탕이다

정부가 여성 공학 인재양성을 위한 지원 사업에 나선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교육부는 여학생들의 공대 진학과 이들의 취업에 힘쓰는 10개 대학을 선정해 3년 동안 150억원을 지원한다. 정부가 여성 공학도 육성을 위한 별도의 재정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여성 과학기술자의 육성·지원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 지 오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방침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잘한 일이다.

지금 청년 실업이 심각하지만 공학계열의 인력은 오히려 부족하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기존의 인문·사회 계열 등의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은 늘리도록 각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사업’을 추진한 것도 그래서다. 더구나 산업구조는 사물인터넷, 핀테크, 빅테이터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지만 인력은 더 부족한 실정이다. 이 분야는 창의성, 세밀함을 요구해 여성친화적 공학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프라임 사업과 별개로 여성 공학도 지원에 나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현재 여성 기술인력은 산업기술인력의 11.6%, 공학계열 과학기술인력 중 여성은 10.7%에 불과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늘지만 공학계열의 여학생의 비율은 17%로 여전히 저조하다. 그러니 여학생들도 공학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공학분야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 여성 공대생의 커리어 패스 개발, 여성 공학전문가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공대에 소수의 여학생만 입학하고, 또 이들 중 소수만 취업을 한다. 정부는 단순히 공대 여학생들의 역량 개발뿐만 아니라 이들의 취업 및 창업 등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허울만 좋은 여성 공학도 육성 사업에 그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성 등 소수집단을 일부러 채용한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관점, 통찰력 등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성 공학인재 육성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공학 분야에 여성들을 투입한다는 식으로 일차원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남성과 다른 관점의 수용을 통한 국가의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여성 과학 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5. 총선후 첫 3당 회동, 오직 민생만 생각해야

오늘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13 총선 이후 처음으로 회동을 한다. 19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처리를 위한 자리다. 19대 국회에서 쟁점으로 남은 법안들은 그동안 여야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섰던 상황인데다 총선 결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으로 바뀐 까닭에 협상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양당에서 3당 체제로 바뀐 상황에서 서로 각자의 주장만 하다가 공전과 파행이 거듭하지나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 총선에서 성난 민심은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했다.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절망,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 어두운 경제 현실 등을 애써 눈감고 계파 싸움에 매몰된 정치권을 단죄한 것이다. 20대 국회를 구성할 4·13 총선은 막을 내렸지만 19대 국회의 임기는 다음달 29일까지 40여일이나 남았다. 이 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은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수천만원의 세비를 받는다.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19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엄혹하다. 국내외 권위 있는 기관들이 연이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3년 연속 2% 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출이 매달 두 자릿수로 격감하는데다 최악에 직면한 청년실업률은 2월에 이어 3월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월세난에 직면한 취약계층의 생활고는 갈수록 악화되는 것은 우리의 현주소다.

19대 국회에는 여전히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 채 수북이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과 4대 노동개혁법안이다. 노동개혁 법안을 놓고 여야가 벌써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고 있어 통과 자체가 불투명하다. 서비스법 역시 의료 영리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쟁점법안 모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자는 법안인 만큼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타협의 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우리에게 시급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이념이 아니라 실사구시가 돼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돼 20대 국회에서 또다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생산적 국회를 약속한 만큼 시간 낭비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그동안의 논의를 토대로 반드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힘으로 밀어붙였던 여당은 국회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하며 여소야대를 만든 야당 역시 19대 국회처럼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 수권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당부한다. 민생 문제에 당리당략을 앞세우면 야당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야 3당의 당면한 과제는 총선 민의를 수용해 생기를 잃어 가는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무너지는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과거 강경노선을 그대로 유지해 여권과 무한 대치 정국을 형성할 경우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권력에 도취해 국민을 무시하다가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6. 북, 핵 도발 중단하고 생존의 길로 나오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할 조짐이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최근 차량과 인력·장비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는 게 그런 징후라고 어제 정부가 확인했다. 북측은 지난 15일 실패했다고는 하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핵 도박’을 계속하려는 일련의 동향이다. 우리는 이런 무력시위가 김정은 체제를 지키려는 목적이라면 긴 눈으로 볼 때 과녁을 잘못 겨눈 자해 행위임을 지적해 둔다.

김정은 정권은 요즘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기세다. 어떻게든 장거리미사일 발사 및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확보해 이를 토대로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을 하려는 낌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인 지난 15일 그간 한 번도 시험하지 않은 무수단 미사일을 쏘아 올린 게 그 일환이다. 사거리가 3000∼4000㎞에 이르는 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은 태평양의 괌 미군기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특히 북측은 5차 핵실험 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될 소형화된 핵탄두 폭발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정권의 이런 계산이 실제로 통할 리는 만무하다. 북측으로선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의 핵 군축 및 평화협상을 벌일 지렛대로 삼겠다는 배짱일 게다. 리수용 북 외무상은 오는 22일 파리 기후변화 협약 서명식 참석차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한다. 이에 앞서 북한이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IRBM을 쏘아 올린 것도 미국과의 거래를 염두에 둔 포석일 게다. 하지만 이는 ‘오발탄’일 뿐이다. 이번 무수단 미사일 시험이 실패해서가 아니다. 미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확인돼야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지 않는가.

결국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더욱 가혹한 국제 제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의 통치 금고가 마르고 북한 주민들의 민생고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북측이 다음달 7일 열릴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려 한다면 이 또한 오산이다. 최근 탈북한 중국의 북한식당 종업원들도 “대북 제재로 북한 체제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탈북 동기를 토로하지 않았나. 안으론 탈북자가 늘고 밖으로는 전례 없이 촘촘한 대오를 갖춘 국제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북한 정권은 발상의 전환이 긴요하다. 핵 보유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외려 김정은 정권의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매일경제]

7. 일본 구마모토 지진 재앙,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주말 일본 구마모토(熊本)현과 남미 에콰도르에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4, 16일 규모 6.5와 7.3의 강진이 덮친 구마모토현에선 1000여 명의 사상자와 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것 중 가장 강력하다. 더욱이 같은 환태평양 조산대 국가인 에콰도르에서도 16일 1979년 이후 최고로 센 규모 7.8의 강진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초대형 지진 도미노’의 전조가 아닌지 경계하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 태평양 군도, 알래스카, 북·남미 해안으로 이어지는 ‘불의 고리’인 환태평양 조산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강진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서다. 14일 밤 구마모토 지진을 전후로 필리핀과 바누아투공화국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연쇄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한반도는 불의 고리에서 벗어나 있고, 그간의 피해도 경미하다. 하지만 지진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80년대 16건에서 2000년대 44건으로 늘었고, 2013년 한 해에만 91건이 발생했다. 올해도 17건이 감지돼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한반도 주변 지각구조 분석, 내진설계와 시공, 경보체계와 비상시스템 구축 등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진을 남의 나라 일로 여기는 탓에 정부 대책은 겉돌고 있다. 16일의 경우 남부 지방은 물론 충청·수도권까지 흔들림이 감지됐다는 신고가 4000건이나 접수됐는데도 ‘알림 시스템’이 없어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었다. 호우·대설 때처럼 전국적인 알림망을 구축해야 한다. 건축물 내진 성능도 촘촘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88년에 6층 이상, 2005년에 3층 이상으로 내진설계 의무 대상을 확대했지만 기존 민간 건물은 대부분 무방비 상태다. 전국 건축물 10곳 중 7곳이 그렇다니 대형 지진을 맞을 경우 아찔하기만 하다. 1, 2층으로 한정한 민간 건축물의 내진 보강 지방세 감면 혜택을 전층으로 확대하는 등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종합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8. 기업 구조조정 고삐 죄겠다는 유부총리 제대로 챙겨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기업 구조조정을 더 미룰 수 없다며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다.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머문 미국 워싱턴DC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얘기인데 부실기업 정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니 반갑다. 유 부총리는 해운회사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예정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에서 어느 일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현안임에도 4·13 총선과 맞물리며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해운업의 경우 현대상선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가야 하고, 한진해운은 채권단과의 경영개선협약을 통해 회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호황을 누렸을 때 외국 선사들과 맺은 선박 임대료를 깎아 받는 협상을 벌여 성과를 거두면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포함한 지원안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니 절박하다. 

조선업도 빅3 업체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수조 원씩의 적자를 보는 등 나락으로 떨어져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과감한 수술을 해야 하는 판이다. 하지만 조선소가 있는 지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라 정부와 채권단, 기업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고 선거를 겨냥한 정치권은 표심에 올라타려 오히려 구조조정을 막겠다는 사탕발림식 언사를 남발해 훼방을 놓았다.

4·13 총선을 마쳐 국회의원 후보들의 표심 구애가 사라졌지만 내년 말 치를 대통령선거를 감안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감원 회오리를 부를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계속 꺼릴 게 뻔하다. 각당이 내년부터 대선 캠페인에 본격 돌입할 일정을 고려할 때 올해 말까지 남은 8개월여의 시간을 한국 경제를 수렁에서 건질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 

여소야대로 변한 20대 국회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한층 더 적극적인 설득과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새로운 변수다. 우리에게 경제성장률 2%대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아닌 중장기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산업 전반의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에서 생긴 비효율을 걷어내고 새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환골탈태를 위한 수술이어야 한다. 유 부총리는 올해를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제대로 챙기기 바란다.

9. 남은 한달 임시국회 열어 경제관련법 꼭 처리해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성과 내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17일 국회 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국민의당은 다음달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하기 전에 세월호특별법 개정안과 민생 경제 법안을 처리하자며 임시국회 개최도 제안했는데 바람직한 태도다. 향후 국회 운영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0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18일 마주 앉을 예정이라고 한다. 4·13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이 준엄했던 만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지금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끝없이 대치할 게 아니라 이제는 협력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국회에는 법안 1만74개가 계류돼 있는데 이들 법안은 다음달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정부가 69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데 이어 19대 국회에서 또다시 그런 운명에 직면해 있다. 국회 상황도 여의치 않다. 새누리당은 지도부가 와해된 가운데 불출마 또는 낙선한 의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동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을 반대해온 더민주는 이들 쟁점 법안에 관한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이렇게 대치하며 시간을 허비해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2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7%로 낮췄고 금융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 등도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11.8%로 3월 기준 역대 최고다. 총선에서 무서운 민심을 확인했다면 정치권은 20대 국회 개원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당장 임시국회를 열어 달라진 국회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양당 구도 개혁을 주장해온 국민의당은 이 과정에서 역할도 중요하고 책임도 크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 민생 법안을 놓고 국민의당이 기존 야당과 똑같은 태도로 여당과 대치하기만 한다면 3당 체제를 만들어준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할 것이다. 국민의당은 타협·조정의 정치력을 발휘해 새누리당과 더민주 대치 속에서도 민생 법률안 통과라는 성과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매일신문]

10.대구·경북 국회의원 당선자, 신공항 유치에 함께 힘 모아야

4`13 총선 이후 대구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잇따라 영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대구`경북 정치권은 부산 정치권과는 달리, 신공항 유치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정부의 조치만 바라보고 있거나,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에게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한 것이 사실이다. 뒤늦게나마 지역 정치권이 신공항 유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김부겸 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14일 “신공항을 놓치면 대구의 운명이 어두워지는데도 절박감이 없다”라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게으른 자세를 꼬집었다. 이어 김 당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신공항을 무산시켰을 때 부산 의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고 있지 않으냐. 대구에서는 삭발로 항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안일하게 대응했다”라며 이런 풍토를 바꿔놓겠다고도 했다.

정종섭 새누리당 대구 동갑 당선자는 15일 “영남권 신공항은 반드시 밀양에 유치해야 한다”며 “대구 국회의원이라면 여야 구분없이 모두 신공항 유치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두 당선자가 치열한 선거 과정을 통해 지역 민심을 제대로 알게 됐기에 이런 발언을 한 것임이 분명하다.

총선 기간에 대구`경북 정치권은 신공항과 관련해 별다른 공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부산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공약, 유세, 서약서 작성 등의 과도한 유치운동을 벌이는 추태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5개 시`도지사 간에 합의한 ‘유치운동 자제’ 약속을 위반한 것이어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부산 정치권처럼 약속을 어기는 비신사적 행위를 주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는 6월 영남권 신공항 예정지 발표를 기다리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부산 정치권보다 열정과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하겠는가. 경북지역 국회의원도 예전처럼 뒷전에 물러앉아 ‘대구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는 방관적인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지역 정치권 모두가 힘을 모으고 노력해야만, 모두 만족할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백작부인을 사랑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미국 다큐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조사했다. 과연 미국 여성에게 가장 매혹적인 성적 판타지 대상은 누구였을까? 한편으로 당혹스럽고, 한편으로 솔직하고, 한편으로 그럴듯했다. 

3등은 UPS 맨(페덱스와 유사한 우편택배회사로, 직원이 갈색 제복을 입은 젊고 근육질의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2등은 소방대원, 그리고 1등은? 여자다. 성적 판타지를 느끼는 대상이 동성이었던 것이다. 물론 성적 판타지의 대상과 사랑의 대상이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이 영과 육의 결합이라면…. 무언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조사 결과다. 

남자들은 여자끼리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끼리의 우정과 사랑, 거기에는 남자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남자들이여! 긴장하시길….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혹 자기로 인해 사랑하는 이가 처형될까봐 크게 두려움에 떨며 몹시 슬퍼했다. ‘페어웰, 마이 퀸(2012년)’이라는 최근 영화에서 앙투아네트는 책을 읽어주는 시종에게 말한다.

“혹시 한 여성에게 매료돼본 적이 없느냐? 그녀가 없으면 끔찍하게 괴로워서 눈을 감고, 그녀의 갸름한 얼굴과 보드라운 살결, 빛나는 눈을 상상하곤 하지.”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으로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상황 속에서도 그녀만을 생각하는 자기가 한심스럽다는 듯 푸념 어린 고백을 한다. 앙투아네트가 그토록 사랑한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브리엘 폴리냑(1749~1793년) 백작부인이다. 폴리냑 백작부인의 어떤 점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매료시켰던 것일까? 

앙투아네트는 폴리냑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자길 흥분시켰다고 고백한다. 6살 연상의 백작부인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데다 무례하기조차 한 그녀의 행동이 앙투아네트는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궁전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누구나 다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앙투아네트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는다는 점 또한 높이 샀다. 

“난 그녀의 자유분방함이 너무 좋았어.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어. 난 그녀의 포로가 됐어.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녀 때문에 상심한 적이 많았던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의 살생부 명단에서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에게 빨리 베르사유를 떠나라고 말한다. 그렇게 앙투아네트는 자신보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폴리냑 부인은 후작 가문에서 태어나 1767년에 폴리냑 백작(후에 공작)과 결혼했다. 폴리냑 가문은 대대로 부르봉 왕가를 섬겼고,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시대의 대표적인 외교관 집안이었다. 한때 추기경을 배출하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쿠데타 등 여러 사건에 연루돼 당시엔 가운이 쇠퇴하고 있었다. 폴리냑 백작 부부는 궁정에서 영향력이 미미했던 왕세손빈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접근해 가깝게 지내면서 신뢰를 쌓았다. 루이 15세가 죽고 앙투아네트의 남편인 루이 16세가 즉위하면서 폴리냑 부부는 일약 궁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렇게 권세를 휘두르던 폴리냑 백작부인은,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국왕 부부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비록 앙투아네트가 폴리냑 백작부인의 아첨과 유혹에 놀아났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남녀 간 사랑 이상의 아름답고 기묘한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궁정화가인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1755~1842년)과도 우정을 나눴다. (물론 우정이라기보다는 총애에 가까운 것이지만) 둘 사이가 그저 왕비와 신하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현존하는 앙투아네트의 주요 초상화는 거의 엘리자베스 비제의 작품이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해준 조력자가 바로 앙투아네트였던 셈이다. 

명성이 자자한 남성 화가들이 판을 치는 궁정에서 앙투아네트가 여성이면서 나이도 젊은 엘리자베스 비제를 선택한 것은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과 내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앙투아네트가 동성애를 했다 한들 무슨 대수랴. 게다가 엘리자베스의 미모와 패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마도 그녀는 왕비가 홀딱 반할 만한 패션으로 왕비를 매혹시켰던 것은 아니었을지. 

엘리자베스 비제 역시 자신을 최고로 우대해주는 왕비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그린 왕비 그림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림에는 여왕의 우아한 기품뿐 아니라 인간적인 내면까지 드러나 있다. 사실 왕실화가의 사명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인물이자 무한한 권력과 부의 소유자인 왕과 왕족을 그림을 통해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그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아이들’은 기존 왕실 초상화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왕비의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펼쳐진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왕비는 요람을 곁에 둔 채 아기를 보살피고 있다. 왕비는 아기를 무릎에 안고 있고, 그 옆에는 딸아이가 평범한 엄마에게 그렇게 하듯 살포시 기대어 있다. 엘리자베스는 왕비의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세 아이의 자상한 어머니’였음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두 사람이 서로 깊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이 동갑내기이기도 했거니와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자식을 잃은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듯, 오랜 대화 속에서 서로를 깊이 알아나갔던 그들은 틀림없이 어머니로서의 걱정과 기쁨도 함께 나눴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한때는 여왕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궁정화가들은 그릴 수 없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매력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손꼽힌다. 

엘리자베스 비제가 그린 그림에는 앙투아네트의 동성 연인인 폴리냑 부인 초상화도 몇 점 있다. 아마 연인의 모습을 담고 싶어 특별히 엘리자베스에게 요청했으리라. 왕실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여왕의 동성 연인 초상화라니! 그림은 백작부인에 대한 앙투아네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폴리냑 부인의 매력이 무엇인지 또한 얼마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명민하고 아름다운 모습 뒤에 감춰진 암고양이 같은 무심함과 태연함이 얼마나 연인의 애를 태웠을까….

앙투아네트의 동성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는 모든 여자들의 첫사랑 상대가 엄마, 즉 여자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여자가 훨씬 더 양성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프리다 칼로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일단 사랑을 하게 되면,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서 더욱 완벽해진다고 믿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녀 역시도 말년에 병든 자신을 극진히 간호해주던 여자와 다시 한 번 깊은 사랑에 빠졌다.

2.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사라져가는 독서세대

잡지 하나가 세대를 대표하는 드문 경우로 ‘학원’(1952∼1979년)이 있다.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1938년생)는 “많은 청소년들이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학원’에서 얻었다”고 회고한다. 시인 정호승(1950년생)은 중학생 때 학원문학상 우수상을 받았고 고교 1학년과 3학년 때도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탔다.

‘학원’에 글을 발표하거나 학원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학원’을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과 교양을 키운 작가들은 이루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1954년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자 이제하, 황동규, 마종기를 필두로 이청준, 조세희, 황석영, 최인호, 김원일, 문정희, 김병익, 김주영, 전상국, 김승옥, 황지우 등등. 1954년 8월호는 8만 부를 발행했는데, 당시 대표적 일간지의 발행부수를 상회하는 정도였다.

자유교양추진회와 동아일보사 공동 주최로 1968년 11월 23일 제1회 전국자유교양대회가 열렸다. 대회 목적은 ‘고전을 통한 교양의 함양’이었다. 고등부 지정도서는 ‘삼국유사’ 일부와 ‘택리지’, 대학부 지정도서는 ‘논어’, ‘맹자’,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이었다. 저술가 황광우(1958년생)는 “자유교양대회를 위하여 ‘삼국유사’, ‘신곡’,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등을 읽었는데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고전을 읽은 기억이 참 좋았다”고 말한다.

작가 장정일(1962년생)의 중학생 때 독학 문학수업은 삼중당문고 200여 권 독파였다. 문화평론가 정윤수(1966년생)는 고교 시절 “헌책방에 일동 기립하고 있는 삼중당문고 한 권을 왕복 버스비로 살 수 있었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잡지 ‘학원’(1952년)과 자유교양대회(1968년), 삼중당문고(1975년)는 독서 세대론을 가능케 하는 계기들이다.

그 이후로는 어떤 독서 세대론이 가능할까? 공통의 독서 경험으로 한 세대가 누릴 수 있었던 교양의 폭과 깊이를 감안하면 ‘인간시장 세대’나 ‘해리 포터 세대’를 거론하긴 힘들다. 독서 세대론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책과 지식교양의 다변화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변화라는 것이 파편화와 같은 뜻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통 수단이나 지불 수단이 되는 화폐를 통화(通貨)라 한다. 독서세대가 끊어진 시대와 사회는 공론 형성의 수단이 되는 지식통화가 증발한 시대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지식 기반이 허약해진 사회라는 말이다. 지식정보사회는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같은 뜻이 결코 아니다.

3. [중앙일보][서소문 포럼] 영혼 없는 대학은 망하게 놔둬라

빌 게이츠에게 응용수학을 가르쳤던 미국 하버드대 해리 루이스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하버드가 잃어버린 교육, 대학 교육의 미래는』의 저자인 그는 “대학은 학생의 장래성을 키워주는 곳이다. 학교와 교수가 그걸 못해 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게이츠는 왜 하버드대를 중퇴했을까. 루이스 교수에게 물었더니 “명석하고 독창적인 학생이었는데 (우리가) 잠재력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떠났다”며 자성했다. 그리고 하버드가 잃어버린 것은 영혼, 바로 학생 교육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세계 최고의 하버드대도 고민을 안고 산다. 특히 공학 분야에서 스탠퍼드대에 밀리자 교육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등 비상이다. 하버드대뿐만이 아니다. 세계 고등교육계에 ‘파괴적 혁신’ 바람이 거세다. 아이비리그 수준의 강의를 반값에 공부할 수 있는 미국 온라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이 하버드대보다 더 입학하기 어렵고, 세계 명문대 강좌를 무료로 수강하는 무크(MOOC)의 확산으로 강의실 국경도 무너지고 있다.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아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것이다.

세계의 대학들은 천리마처럼 달리는데 우리는 어떨까. 한마디로 우보(牛步)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절벽’ 앞에서도 셀프 혁신에 굼뜨다. 올해 59만 명인 고교 입학생이 내년엔 52만 명, 내후년엔 46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건 뭘 의미하는가. 현재 대입 정원이 53만 명인데 5년 뒤 46만 명 중 80%(37만 명)가 대학에 가더라도 80곳(정원 2000명 기준)은 문을 닫아야 할 판 아닌가.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 교육부가 재정을 미끼로 구조조정을 압박하니까 억지로 시늉만 낸다. 이달 말 지원 대상 19곳을 뽑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이 그 하이라이트다. 대학 한 곳에 연간 최대 300억원 등 3년간 6000억원을 대주는 초대형 사업이다. 대학들은 자존심도 팽개치고 군침을 흘린다. 신청 대학 70곳 중엔 교명까지 바꾼 곳도 있고, 공대를 강화한다며 정체불명의 전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곤 점수를 잘 받으려 줄 대기에 혈안이다. 교육부의 위세가 어떻겠는가.

사실 경마 레이스 같은 재정사업은 교육부엔 꽃놀이패, 대학엔 연명 수단도 된다. 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부실 대학 53곳 중 19곳이 특성화 사업 등에 뽑힌 게 그렇다. 숨통을 끊어야 할 곳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명 수단이 안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 교육부의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대학은 집단 지성의 집합소다. 자율성과 다양성, 자존감이 작동돼야 인위적 간섭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데 ‘샤워실의 바보’가 돼 버렸다. 교육부가 ‘차가운 물(대학 설립 준칙주의)’을 틀자 우후죽순 설립하더니, ‘뜨거운 물(정원 감축)’로 급변침해도 말을 못한다. 학생 추계를 엉터리로 한 교육부에 근본 책임이 있지만, 대학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결국 교육부와 대학이 공진화(coevolution)하지 않으면 절대 고등교육 생태계는 바뀌지 않는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대학이 망하든 말든 그대로 놔두자. 스스로 학생 절벽을 넘으면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교육부가 수도꼭지를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얘기다. 다만 국립대에 한해 원 포인트 개입을 허(許)하자. 전국 41개 대학을 단계적으로 통합해 ‘1도(道) 1국립대’로 만드는 일이다. 교육대를 거점대에 통합하고, 캠퍼스별로 전공을 특화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 둘째, 대학별 정원·전공 자율조정 시스템을 가동하자. 기준은 인문사회 25명, 공학 20명 등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다. 학생 확보를 못하면 지체 없이 폐과·폐교하라. 학생이 없는데 무슨 수로 교수 월급을 주려는가. 셋째, 선택과 집중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7%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수도권·비수도권·권역별로 나눠줄 작정인가. 세금만 축낼 뿐 결코 글로벌 대학을 키울 수 없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교육부와 대학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이다. 누구 때문에, 왜 존재하는가.

4. [서울신문][씨줄날줄] 일본 대지진/강동형 논설위원

환태평양 지진대를 형성하고 있는 ‘불의 고리’가 요동치고 있다. 일본 규슈지방의 구마모토 인근에서 연이어 발생한 지진은 불의 고리대에 있는 타이완과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발생했다. 17일 에콰도르에서는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 현재 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인 16일에는 대만에서 규모 4.4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웃 나라 일본은 연이은 지진에다 아소산이 화산 활동을 재개해 공황상태에 빠졌다.

일본은 2000여개의 단층대가 있는데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있어 크고 작은 지진이 끊일 날이 없다.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 영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리히터 규모 9.0으로 일본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을 기록했다. 이는 1960년 발생했던 규모 9.5의 칠레 대지진, 1964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규모 9.2 지진,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발생한 규모 9.1에 이어 지진 규모를 측정한 이후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다. 사망자 1만 5200여명, 실종자 8400여명이라는 인명피해를 냈다. 이에 앞서 1995년 1월17일에는 고베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나 63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일 것이다. 우리나라와도 사연이 깊다.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8.5의 간토대지진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 수가 약 16만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자경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한 조선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 6000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본인 교수는 2500여명, 일본 정부는 233명이라고 발표하는 등 숫자는 크게 다르지만 있을 수 없는 만행이 발생했다. 간토대지진은 일본이 우경화와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 도쿄는 에도 시대인 1855년 10월 2일에도 대지진이 발생해 도시가 파괴되는 등 재난을 당했다.

지난 14일 규모 6.5, 16일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규슈지방의 구마모토 대지진은 사망자 수만 40여명에 이르고 24만여명이 피난했다고 한다. 아소산이 화산 활동을 시작해 공포감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은 이번에도 돋보이는 풍경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지진은 예측하기 어렵고, 천재(天災)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한밤의 지진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남의 나랏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난을 예측할 수 없다면 이를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물론 에콰도르에서도 지진 피해자들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벚꽃 필 때 가장 맛있는 ‘섬진강 벚굴’…벚굴에 장아찌·신 김치 올려 ‘벚굴 삼합’

봄바람에 벚꽃 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계절, 이맘때쯤 가장 맛있는 것 중에 섬진강 벚굴을 빼놓을 수 없다. 

강굴이라고도 불리는 벚굴은 말 그대로 강에서 나는 굴이다. 강 속의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수많은 벚굴이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면 속살이 하얗게 보이는데, 그 모양새가 벚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벚꽃 필 무렵이 가장 맛있다고 해서 벚굴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벚굴은 매년 2월이 되면 알이 차기 시작해 3~4월에 맛의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지난해에 가뭄이 심해 요즘 캔 굴은 속이 꽉 차 있지 않다. 그래서 올해는 5월까지 섬진강 벚굴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크고 거친 껍데기 속에 뽀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들어차 있는 벚굴은 오로지 섬진강에서만 서식한다. 그중에서도 1급 수질을 자랑하는 하구의 망덕포구에서 주로 잡힌다. 망덕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곳이다. 때문에 벚굴은 바닷물의 짠맛과 민물의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은 플랑크톤이 풍부해 물고기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 굴도 일반 바다 굴보다 3~10배가량 크다. 작은 것은 20~30㎝, 큰 것은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큰 40㎝에 이른다. 수심 3~4m 깊이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벚굴은 머구리라는 잠수부가 강 속에 들어가 직접 채취한다. 양식은 하지 않는다. 

카사노바가 날마다 굴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만큼 굴은 남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성의 피부에도 매우 좋은 식품이다. 굴 중에서도 벚굴은 크기가 큰 만큼 영양가가 훨씬 많다. 벚굴에는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같은 영양분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마을 주민들이 ‘강 속에 있는, 살아 있는 보약’이라 부른 게 다 이유가 있다.

섬진강 굴은 벚꽃에만 비유되고 있지만 매화꽃과도 연관이 깊다. 매년 광양에서 매화꽃 축제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찾아오는데 덩달아 벚굴도 이때 많은 사랑을 받는다. 광양 매화꽃 축제는 얼마나 사람이 많던지 매화꽃 반, 사람 반인 광경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복잡하기도 하지만 매년 짧은 한철이라, 때맞춰 그곳에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섬진강 벚굴까지 맛볼 수 있으니 일부러 찾아가볼 만하다. 

섬진강 벚굴은 다른 바다 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기가 굉장히 크다. 어떻게 한입에 넣을까 고민될 정도의 풍성함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곤 한다. 

몇 년 전, 손님들께 양질의 벚굴을 대접하기 위해 구입처를 알아볼 겸 섬진강을 찾았다. 좋은 벚굴을 직접 구하기 위해 섬진강으로 내려가던 길에 활짝 피어 살랑거리던 벚꽃 터널이 얼마나 예뻤던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긴 했지만 직접 현장에서 맛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있길래 바로 차를 세우고 지켜봤다. 한 작은 차량에서 벚굴을 내려놓는데 굴이 얼마나 크고 좋던지. 그곳까지 내려가면서 고생스러웠던 생각이 확~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섬진강 유역 중에서도 하동군 고전면 신방촌과 재첩특화마을 일대에서는 벚굴을 직접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벚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꽤 있다. 그곳에서 생굴은 물론 구이, 전, 튀김, 죽 등 다양한 벚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벚굴은 보통 개수가 아니라 ㎏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몇 ㎏씩 주문해 먹는다. ㎏이라고 하면 아주 많은 양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섬진강 벚굴은 워낙 커서 양이 아주 많지는 않고 그냥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정도다. 가격은 채취량과 요리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2~3명이 먹을 수 있는 5㎏ 기준으로 4만~5만원 선이다.

굴 사이즈가 엄청 커서 한입으로 먹기 힘들 때는 반을 잘라서 먹기도 한다. 한입 베어 물면 굴 즙이 입안에 가득 차오르는데 그 맛이 매우 신선하면서 특유의 풍미가 아주 일품이다. 벚굴은 바다 굴처럼 짠맛이 없고 달착지근하면서 담백한 맛이 특히 좋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일반 바다 굴과 비교한다면 굴 향이 조금 덜 나고 비린 맛이 살짝 더 난다. 비린 맛에 예민하다면 굴 구이나 전 등으로 익혀 먹는 것이 낫다. 

굴 구이는 푹 익히는 것이 아니라 굴 뚜껑이 살짝 벌어질 정도로만 익혀야 굴 특유의 맛과 풍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달걀 반숙처럼 살짝만 익히면 뭉글뭉글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뿐더러 향도 좋다. 많이 익히면 촉촉함이 사라지고 쪼그라들어 질겨지며 벚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구이를 먹을 때는 껍질에 살짝 고이는 국물이랑 같이 먹으면 아주 맛있다. 강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벚굴을 구워 먹으면 맛이 더 담백하고 상큼해서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캠핑 갈 때 벚굴을 사다가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구이를 덜 익혀 먹어야 맛있는 것처럼, 굴전도 살짝 덜 익혀야 맛있다. 벚굴을 살짝 쪄낸 것 역시 촉촉하면서도 탱탱한 살이 아주 부드럽다. 재첩특화마을 일대 식당에서는 굴 구이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한다. 

오로지 섬진강에서만 서식, 올해는 5월까지 맛볼 수 있어

한 식당 주인장이 굴을 맛있게 먹는 법이라며 ‘벚굴에 매실 장아찌와 신 김치를 얹은 벚굴삼합’을 알려줬다. 매실 장아찌의 짠맛과 매실 향, 그리고 김치의 신맛이 더해져 굴을 그냥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훨씬 별미였다. 그런데 신 김치 대신 매실 장아찌에 레몬만 살짝 뿌려 벚굴에 곁들여 먹으면 더 깔끔하고 굴 맛도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레스토랑에서는 섬진강 벚굴이 들어오면 껍질의 이물질을 세척한 후 굴 전용 칼로 입을 벌리고 속살을 먼저 뺀다. 그리고 80도 정도 되는 소금물에서 약 10초가량 데치고 얼음물에 식힌 후 물기를 제거한다. 꽤 크기 때문에 반으로 자르고 굴 속에 있던 굴 즙과 데친 굴을 굴 껍질에 함께 담은 다음 폰즈소스나 새콤한 유자셔벗을 올려서 손님에게 제공한다. 굴을 살짝 데치면 굴의 헐렁한 살에 탄력이 생겨 식감이 더욱 좋아지고 굴 특유의 비린내를 깔끔하게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벚굴을 주문해 집에서 요리할 때도 이렇게 살짝 데쳐주면 간편하게 맛있는 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매년 섬진강에서 잘 자란 벚굴이 올라오면 고생해서 따온 벚굴을 보여주며 주름진 미소로 반겨주시던 그곳의 여러 분들이 생각난다. 굴을 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 알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굴을 요리하게 된다. 

또 하나. 봄에 섬진강에 간다면 벚굴과 함께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재첩국이다. 재첩은 4월부터 5월이 가장 맛이 좋을 때다. 제철의 재첩으로 끓인 국은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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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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