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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5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경제 현안에서부터 실마리 풀자

총선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당면 문제가 선거로써 일거에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가장 큰 현안은 역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추경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서도 지금의 경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대외 여건이 더 악화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대외 여건이 나아질 기미가 희박하다는 게 정책 당국의 고민일 것이다. 결국 확장정책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대외 여건만이 아니다. 내부적인 여건은 더욱 심각하다. 수출이 연속 15개월 감소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소비도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 진열대마다 ‘바겐세일’ 쪽지를 붙여놓고 있어도 고객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 분위기다. 창고에 재고품만 쌓여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고용이 늘어날 리 없고 청년 실업자들은 한숨을 삼키고 있다. 이처럼 소득 감소로 인해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9%에서 2.7%로 하향 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정부 의지대로 확장정책을 이끌어갈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부터가 심각하다. 정책 운용이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선거 참패가 정부·여당의 정책 실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측면도 결코 작지 않다. 확장정책을 쓴다고 해서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전임 현오석·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도 추경예산을 편성했으나 결국은 깨진 독에 물붓기로 끝나고 말았다. 건설 경기를 부추긴다며 주택대출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오히려 가계부채만 1200조원 규모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일관성 없는 좌충우돌식 정책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수렁에 빠져 있다. 단기 실적을 올리겠다고 함부로 나섰다간 자꾸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확장정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부터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2.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4·13 총선 성적표를 받아든 정치권의 분위기는 엇갈린다. 과반 의석에 크게 모자란 122석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의 사퇴와 함께 지도부 해체 수순에 들어간 반면 당초 목표를 훨씬 초과한 123석으로 원내1당에 오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교체까지 가자”며 벌써부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38석의 캐스팅보트를 쥔 명실상부한 ‘제3당’의 입지를 굳혔다.

이번 총선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새누리당은 편가르기 식의 공천 분탕질에 분노한 지지층의 이탈로 ‘1여다야’ 구도에서도 참패를 자초했다. 연이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외면하던 끝에 분당 사태까지 빚은데다 절대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잃었으며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에 뒤진 더민주도 마냥 희희낙락할 계제는 아니다.

정치권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벌써부터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19대보다도 못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16년 만의 여소야대로 박근혜정부의 국정동력 추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국 주도권 쟁탈전이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젠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 후보가 마음에 안 들어 박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교차투표가 위력을 떨치고 새누리당이 서울 강남, 대구, 부산 등 텃밭에서조차 많은 의석을 내준 것이 그런 사실을 간과한 오만에서 비롯됐다. 야권 역시 총선 승리에 도취해 국정 발목잡기로 일관하다간 금세 민심을 잃고 내년 대선도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야는 사안에 따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며 국정 운영의 묘를 살리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박 대통령이 확 달라져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선과 불통을 떨치고 여야와 적극 소통하며 대선 공약인 ‘대통합’에 매진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것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청와대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울신문]

3. 살인 가습기 살균제 업체의 반도덕적 '만행'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문제의 업체 옥시레킷벤키저가 법적 책임을 피하려 온갖 계략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제품을 팔았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다. 각성과 사태 수습은커녕 시종일관 ‘면피’할 속셈뿐이었다니 공분의 철퇴를 맞는 것은 당연하다.

한창 막바지 수사 중인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 형태를 바꿨다. 임신부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으로 사망하면서 진상 규명 여론이 뜨겁던 시점이었다. 누가 봐도 옥시 측이 형사 처벌을 피하려고 부린 빤한 꼼수로 읽힌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공소 기각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처벌을 피하겠다고 느닷없이 신분 세탁을 했던 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옥시의 겁없는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고객들의 상품 후기 수백 건을 홈페이지에서 무더기로 삭제했다.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뒤늦게나마 시작된 검찰 수사조차 무력화하려 한 심각한 범죄 행위다.

10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업체의 의도된 결과였을 리는 없다. 예기치 못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더라도 최선을 다해 수습하려는 것이 책임 있는 기업의 자세다. 그렇건만 실험 결과를 짜맞추기한 정황까지 들통났으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제품과 폐 손상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정부 자료에 반박하려고 대학 연구소에 의뢰한 실험 보고서마저 유리하게 조작한 의혹이 짙다.

이쯤 되면 더이상 나쁠 수가 없는 악덕 기업의 전범이다. 소비자 무서운 줄 모르는 악질 기업으로 손가락질을 당해도 억울할 게 없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합병한 회사다. 전체 사망자 146명 중 103명이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한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의문의 사망자가 숱하게 나왔는데도 4년 넘게 방치하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관련 업체의 은폐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반도덕적 의도를 묵인하거나 동조한 관계자도 먼지 한 톨의 의혹이 남지 않게 수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4. 국민의당, 민생국회 선도하는 큰 역할 기대한다

총선 민심이 만들어 낸 새로운 정치 구도의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 38석을 차지해 단숨에 원내교섭단체를 이룬 ‘녹색 바람’의 발원지가 호남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지율 26.74%는 제1당으로 도약한 더민주 지지율 25.54%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역구에서 25석에 그친 정당이 비례대표에서 13석을 차지한 것도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건강한 제3당’의 출현을 바라는 유권자의 기대가 특정 지역의 지지에 머물지 않는 전국적인 교차투표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당이 ‘호남당’에 그치지 않고 ‘전국정당’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작지 않다.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에 굳건한 제3당의 지위를 부여한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의당이 그렇게 외쳤던 글자 그대로의 ‘새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다. 뒤바뀐 제1당과 제2당이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무엇보다 민생은 안중에 없고 정쟁에만 매몰된 국회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주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그동안 새 정치를 말하면서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유권자들에 의해 국민의당이 앞으로 국회에서 감당해야 할 새 정치의 실체가 제시된 꼴이다.

국민의당은 20년 만에 등장한 제3 원내교섭단체다. 1996년 총선 당시 자유민주연합은 충청권을 중심으로 52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주역을 자임하는 대신 권력을 추구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른바 DJP 연합의 공동정부에서 작은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2000년 총선에서 17석을 얻는 데 그쳐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이 4석에 불과했고, 지지율은 2.8%로 추락해 비례대표 1번이었던 김종필 총재마저 낙선하면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국민의당은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대권이 아니라 퇴색한 의회주의의 복원이며 생기를 잃은 민생 활력의 회복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언한 대로 제20대 국회에서는 우선 양극화된 이념정치를 극복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의 무능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다시 보듬는 이미지를 국민의 뇌리에 축적해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건전한 제3당이 다수 의석의 제1당과 제2당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세상 민심이 저절로 따르지 않겠는가.

5. 박근혜 정부, 준엄한 심판에 쇄신으로 답해야

20대 국회를 구성할 4·13 총선에서 여권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의 152석에서 30석이나 줄어든 122석을 얻었다.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의석은 고사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에 원내 1당까지 내줬다.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발동 차원을 넘어 청와대·정부를 포함한 범여권 전체에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린 형국이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재현됨에 따라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정·청은 그저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국정 쇄신으로 여권에 등을 돌린 민심에 답하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총선 참패에 따라 대표직 사의를 밝혔다. 여당 내 공천 갈등 과정에서 ‘옥새 파동’으로 여권의 내분을 희화화한 그의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친여 무소속 당선자 복당을 놓고 당내 친박과 비박이 여전히 딴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여권이 패인을 제대로 직시하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표로 심판해 달라”고 했지만,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나온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고 수도권의 친박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사실은 뭘 말하나. 청와대와 친박계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친박 마케팅’과 ‘진박(진실한 친박) 코스프레’가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리게 한 주요인임을 뼈아프게 인식해야 한다. 유권자를 주머니 속 공깃돌인 양 여기는 오만한 여권에 누가 표를 주겠는가.

의회 권력이 야당 수중에 떨어진 선거 결과는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가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가뜩이나 입법을 마비시키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민생법안 하나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던 여당이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등 야 3당 의석이 167석으로 무소속 의원들까지 포섭할 경우 재적 3분의2 의석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자칫 노동개혁 등 4대 구조 개혁 과제의 마무리는커녕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에 회초리를 든 국민도 그런 국정 차질을 원치는 않을 게다. 야권 또한 오만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을 명심해 국정 발목 잡기를 자제해야 할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국정의 무한 책임은 현 여권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경제는 성장 지체와 일자리난 등 복합 위기를 맞고 있고, 안보도 북한의 핵무장과 주민들의 집단 탈북으로 긴박한 국면이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차원에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단계적으로 일신해 나가야 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국회 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은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야당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성찰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당 등 야권과의 사안별 정책 연대에도 열린 자세로 임할 필요도 있을 듯싶다. 우리는 1년 10개월 남은 박 대통령의 임기 중 국정 운영 기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매일경제]

6. 朴대통령·새누리당 국정운영방식 큰틀 바꿔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 제2당 추락, 국민의당의 돌풍과 3당 체제 출현으로 요약되는 4·13 총선의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 모두에 혁명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민의(民意)의 분출이다. 

집권 초부터 이어진 인사 난맥상에 더해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으로 일관한 박 대통령, 무능하기 짝이 없는 행정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공천 다툼, 편 가르기, 호가호위를 일삼은 새누리당에 대한 총체적 심판인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지적했듯이 이번 총선은 지난 3년간 박근혜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중간평가다. 처음부터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박근혜정부는 대기업들을 앞세워 전국에 창조경제센터를 짓는 등 전시 행정에만 치중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과감한 규제개혁과 산업 재편을 통해 무인차·전기차·가상현실·로봇·인공지능·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에 매진할 때 한국은 절체절명의 구조조정도 미뤘다. 그저 중국 탓, 유가 탓, 국회 탓만 했을 뿐이다. 규제개혁과 공공·노동·금융·교육의 4대 개혁은 실체도, 성과도 없이 허망한 구호에 그쳤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대기업 편중,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탕평 인사는커녕 낙하산 인사만 더 판쳤다.

박근혜정부의 실패는 능력과 실력보다는 충성심과 논공행상을 앞세운 TK(대구·경북) 일색 인사 때부터 일찌감치 예고됐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는 물론 장관·수석들과도 대면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불통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남북관계조차 사상 최악으로 얼어붙은 가운데 대통령과 청와대가 '배신자 찍어내기'에 몰두하고 공천 개입, 선거 개입 의혹을 자초한 것 역시 지지층 이탈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난 3년간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경제성장률은 3%대조차 요원하고 청년 실업률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민은 치솟는 주거비와 사교육비 부담, 구조조정 불안, 노후 걱정에 희망을 잃어버렸다. 

노동소득 분배율과 가계소득 증가율이 악화되면서 노동자와 가계는 갈수록 쪼그라든 반면 대기업 사내유보액은 700조원을 넘어섰다. 양극화·계층화로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는데 재벌 2·3세들과 기득권층의 '갑질' 행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와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기 레임덕을 차단하려 '국회심판론'과 진박(眞朴)마케팅을 앞세웠지만 총선 결과는 이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청와대는 물론 총리·부총리까지 포함하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는 과거의 독단적·일방적 행태로는 국정 수행이 불가능하다. 낮은 자세로 야당과 소통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정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 자신이 환골탈태의 각오로 변해야 한다.

7. 20대 국회 원활한 운영 선진화법 개정이 필수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국민의당 협조 없이는 국정을 주도하기 힘들게 됐다. 국민의당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쟁점 법안 등의 처리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복병이 있다. 지금의 국회선진화법이 존속되는 한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연대해도 160석에 불과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과 협력해도 170석이 겨우 넘는다. 국회선진화법에 명시된 법안 개정 의결 요건인 180석(재적 의원 5분의 3)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민의당이 선진화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으니 이를 당론으로 확정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18대 국회 말에 통과된 선진화법은 폭력 사태를 방지하고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19대 국회를 무력화하고 시급한 민생 법안 처리를 지연하는 데 악용됐다. 여야가 중요한 법안을 주고받기식 졸속 협상으로 처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선진화법이 망국법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도 많았다. 20대 국회가 제대로 입법 활동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선진화법을 바꿔야 한다. 선진화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도 다수당을 견제할 제3당이 탄생한 만큼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했으니 선진화법이 더불어민주당에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19대 국회 폐막 전에 여야 합의로 선진화법을 개정해주길 바란다.

8. 메르스 악몽 생생한데 방역망 또 뚫렸다니

그저께 새벽 서울시내 한 병원을 찾아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환자가 병원을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최근 입국한 아랍에미리트(UAE) 국적의 한 여성이 메르스 의심 증상으로 강북삼성병원을 찾아오자 의료진은 격리 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격리 환자용 텐트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호텔로 돌아가버렸다.

보건당국과 경찰은 4시간 만에 그를 찾아냈고 UAE 대사관 관계자까지 대동해 설득한 끝에 겨우 국립중앙의료원 격리 병상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행히 1차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양성으로 나왔다면 이 여성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 수백 명을 격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작년 12월 메르스 사태 공식 종료를 선언한 지 넉 달 만에 또다시 온 국민이 감염 공포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 5월 20일 첫 환자가 나온 후 218일 동안 이어진 메르스 사태 때 38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만6000여 명이 격리됐다. 식당과 대형마트, 관광지에 발걸음이 끊기며 엄청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을 고치고 질병관리본부를 쇄신하며 방역망을 보완했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구멍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탈출 소동에서 보듯이 병원 측이 감염 의심환자를 격리하려 해도 본인이 완강히 거부할 때 당장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외교 문제 소지까지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렵다. 올해 들어 메르스 의심환자 77명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시민들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껏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방역망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매일신문]

9. 여야, 무소속 힘 모아 대구 발전 위한 어젠다 만들자

20대 총선에서 대구는 새누리당 후보 8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1명, 무소속 후보 3명이 당선됐다. 대구 정치판에 여와 야, 무소속이 골고루 포진한 것은 전례가 없는 변화다. 지역 유권자가 이런 구도를 만든 의미는 명백하다. 단순하게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진박(眞朴) 마케팅, 유승민 의원 사태 때문이라고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일색의 정치 지형으로는 더 이상 대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보고, 후진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에게 표를 나눠준 것이다. 12명의 당선자는 당과 이념을 초월해 대구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 일하라는 것이 지역 유권자들의 본뜻이다.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전략적 사고 필요

지금까지 대구의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안일하고 나태한 행태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과 득표력에 기대고 있으면 당선이 무난했기에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노력할 필요성도 없는 듯했다. 의원들은 그저 계파 보스에 대한 줄서기에 매달리면서 안락한 생활을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역 의원 간 소통이나 단결력도 부산, 광주 의원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지역 의원들은 모래알처럼 각기 행동하면서 자신이 편하고 유리한 것만 좇으려는 풍토가 강했다. 타지역 의원과의 가장 큰 차이는 상임위원회 배정 때 명확하게 드러났다. 부산과 광주 의원들은 지역과 관련한 현안을 챙기기 위해 사전에 소관 상임위에 배정되도록 협의하고 역할 분담을 한다. 그렇지만 지역 의원들은 아무런 협의 없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 혹은 지도부의 배정에 따라 상임위를 선택했다. 대구시가 지역 현안 해결이나 국책사업 유치에 나섰다가 해당 상임위에 지역 의원이 없어 곤란을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대구지역 당선자들은 여야, 무소속을 떠나 상임위 배정부터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제 팔 제 흔들기’나 헛약속은 더 이상 안 돼 

대구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20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꼴찌이고,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 활력을 잃어가는 도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힘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당선자들에게 부여한 가장 큰 임무는 여야, 무소속을 떠나 힘을 합쳐 지역 발전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제 팔 제 흔들기’식으로 각개약진을 하거나 사탕발림의 헛약속 따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당선자들이 함께 모여 대구 발전을 위한 장기 어젠다나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구에 약속한 ‘10대 대기업 유치’ 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경향신문]

10. '돈 풀기'의 속내

새누리당 양적완화의 진짜 목표는 부동산시장 부양과 재벌기업의 지원을 통한 내년도 대선 승리에 있다. 지난해 명목GDP의 0.9% 규모의 재정을 1분기에 조기집행했음에도 1분기 성장률은 0%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예상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4%였던 성장률은 반복적인 부양책에도 박근혜 정권에서 2.6%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재정의 조기집행으로 추경을 편성하지 않는 한 하반기 경기 후퇴는 불가피하게 됐다. 

문제는 내수와 수출 부진이 구조화된 상황이기에 내년에도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동산시장의 여건 악화가 추가될 것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주택담보대출 소득심사 강화와 분할상환 등으로 한국은행, KDI 등이 내년 주택시장 침체 가능성을 경고해왔기 때문이다. 장기불황의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는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에 최대 장애물이다.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목표로 고안된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발상이 단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을 부양하는 대신 위험한 불장난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지난해 4월 금융위원회와 주택금융공사가 도입한 안심전환대출을 기억할 것이다. 안심전환대출의 도입은 변동금리로 이자만 갚고 있는 대출을 최장 30년까지 연 2%대의 고정금리로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을 주택금융공사에 양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으로 공사는 은행에 양도대금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당시 1금융권 대출자를 중심으로 112만가구가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실제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탄 가구는 32만가구에 불과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분할상환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20년 상환으로 전환하겠다는 여당의 방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미국 대공황 당시 도입한 장기 분할상환 제도가 장기근속 제도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OECD 국가 중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짧을 정도로 고용이 불안한 우리 상황에서 장기 분할상환 제도는 부적합하다. 게다가 안심전환대출에서 배제되었던 제2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가계의 경우 분할상환 능력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국은 서민금융기관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복잡성을 핑계로 2금융권의 대출을 배제했지만 진짜 이유는 이들 대출로 만든MBS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위의 방식은 가계부채를 완화시키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를 해결하고 부동산시장의 부양 효과까지 노린 것이 새누리당의 양적완화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을 금융회사들이 20년 분할상환으로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발행한 MBS를 한은이 매입하게 할 경우 금융권은 거부할 이유가 없다. 손실 가능성을 한은에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이 손실을 입을 경우 정부가 메꿀 수밖에 없고, 이는 납세자 국민이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여당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부동산시장 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은의 MBS 매입으로 금융기관에 흘러들어간 돈이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과 부자들에게 집중된 부동산자산의 가치를 상승시켜줄 것이고,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시장에 묶여 있는 중산층의 지지도 끌어냄으로써 정권을 재창출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돈을 찍어 키운 부동산시장의 붐은 가계부채 해결책이 될 수도 없고 거품 붕괴 시 폭락 폭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기업 지원을 위한 산업은행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매입해주라는 것도 관치의 폐해뿐만 아니라 기업 지원이 실패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시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실기업의 연명은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출혈경쟁을 통해 산업계 전반에 부실을 전염시킴으로써 장기불황의 요인이 된다. 재벌과 부동산 자산가에 대한 특혜 제공을 위해 발권력까지 사용하려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국가경제를 놓고 도박을 하려는 위험한 불장난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냉면에 스민 어머니의 미소

“고기 먹을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안창살 사줄게.”

일요일 이른 저녁, 모처럼 형님 부부가 집에 들렀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온 겁니다.

형의 제안에 어머니께서 그늘진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고기 많이 먹으면 안 좋아.”

“그럼 냉면 어때요? 평양냉면!”

내 제안에 형수님이 빙긋 웃으며 물으십니다.

“서방님, 어제 술 드셨죠?” “네... 빙고...”

‘평가옥’ 물냉면, 속이 풀립니다.

어젠 왜 또 그리 들이부었는지.@_@;;

차게 만든 해장음식은 아마 냉면뿐일 겁니다.

언제부턴가 평양냉면이 인기입니다.

우래옥부터 을밀대·필동면옥·서북면옥까지, 지역별 냉면식당을 열거한 곳들은 항상 방문객들로 북적댑니다.

평양냉면은 보통 30대 중반 이후, 청년기가 시들 무렵부터 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맛’이란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얼굴에 새겨진 삶의 나이테만큼 슴슴하고 담백한 맛을 즐겨찾게 되는 듯합니다.

가격은 비쌉니다. 한 그릇 1만1,000원, 갈비탕보다도 고가입니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를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평양식 물냉면의 육수는 고기와 사골을 푹 고아 만듭니다.

쉽게 말해, 곰탕이나 설렁탕을 시원하게 식혀 밥 대신 메밀국수를 담아 내오는 셈입니다.

국수가 아니라 육수에 참맛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로 뚝뚝 끊어먹을 수 있어, 치아가 시원찮은 중장년층이 반깁니다.

그런 논리로, 국물 없는 비빔냉면은 왜 가격이 똑같은지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주전자에 주는 육수로 너그럽게 퉁치시죠. 

냉면을 처음 먹었던 때는 중학생이던 1989년 5월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점심 무렵 아버지를 따라 읍내 냉면집으로 향했고, 공산당 삐라처럼 붉은 빛 비빔냉면은 질기고 매웠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빨갱이의 맛’이었습니다.

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에, 평소 음식을 남기면 심하게 꾸짖으시던 아버지가 웬일인지 그만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은 아렸지만, 허기가 더 강렬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400원과 바꾼 너구리 두 마리를 몰고 왔습니다. 

‘농이’와 ‘심이’를 끓는 물에 부숴 넣으며 다짐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냉면 따위 먹나 봐라!”

이후 세월이 흐른 군바리 시절, 병장으로 진급한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중대 막내와 함께 4박5일 휴가를 나왔습니다. 이 녀석 집이 부산이라 밥이라도 먹이고 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돼지 목살과 삼겹살, 그리고 설렁탕에 소주를 부었습니다.

십 원짜리 동전도 씹어 삼킬 듯한 소화력에, 주인 아주머니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군인 오빠, 잘 드시네. 이거 서비스야. 그냥 들어요.”

물냉면이었습니다. ‘금냉 8년’의 다짐은 그렇게 깨졌습니다.

어느새 어머니가 수저를 내려놓으십니다.

만두전골보다 냉면이 더 맛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난 비빔냉면만 먹었는데...”

“엄마, 평양냉면 처음 드세요?”

어머니가 멋쩍게 대답하십니다.

“응. 처음인데 맛있네. 국물이 담백한 게 계속 찾게 된다.”

순간 가슴 속에 뭔가 뜨거운 게 일렁였습니다.

죄책감이었습니다. 

‘평양냉면 한 그릇도 안 사드리고 지금껏 뭐했냐...’

그렇게 식당을 나섭니다.

어머니의 흐뭇해하시는 표정을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앞으로는 고집을 피워서라도 어머니를 자주 모시고 다녀야겠습니다.

이제 건강한 몸으로 맛있게 음식을 드실 날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2. [뉴시스][신진아 이주이영화]4등이 체벌보다 더 무서운 나라… '4등'

4등. 스포츠에서 최소 3등은 해야 메달권인데 4등은 정말 ‘희망고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순위진입이 가능할 것 같은데 계속 내 아이가 4등만 한다면? 

대다수의 부모가 유능한 과외교사를 붙여볼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영화 ‘4등’ 속 준호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수영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아무리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수영업계 돼지엄마’를 통해 유능한 과외교사를 소개받는다.

비운의 수영천재 광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가게 해주겠다며 호언장담한다. 단, 교육방식에는 토를 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정작 수업이 시작되자 광수는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나태한 태도로 기겁하게 만든다. 준호가 수업하지 않느냐고 닦달하자 마지못해 수영장을 향하나 막상 준호의 재능을 간파하고 눈빛이 달라진다. 

준호는 생애 첫 은메달을 목에 건다. 준호의 엄마는 거의 실신할 듯 기뻐한다. 반면 광수는 1등을 놓쳤다고 혼을 낸다. 이때부터 기록을 단축시키려고 아이 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때리면서 강압적으로 훈련한다. 우연히 체벌사실을 알게 된 준호 아빠가 문제를 제기하자 준호 엄마는 “애가 맞는 거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한다. 

‘4등’은 준호와 준호의 부모 그리고 준호의 코치인 광수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의 현주소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자식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이 열성 엄마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보이는지, 우리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할지 찬찬히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 영화는 어린 준호의 이야기면서 준호와 같은 꿈을 꿨던 실패한 어른 광수의 이야기다. 광수의 과거는 어린 준호의 현재와 연결돼있다.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로 영화가 시작돼 준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수는 성적만 좋으면 뭐든 다 용인해주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불량품과 같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명문대생 이야기가 간혹 사회면을 장식하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머리도 좋고 수영도 잘해 오만해진 광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다른 선수들과 다른 특별대접이 아니었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따끔히 충고해주는 진짜 어른이었다. 불행히도 준호 주변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젊은시절 광수와 인연이 있었던, 준호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수에게는 권위의 매를 드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젊음의 치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잃고 초라한 현재를 살고 있는 광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수영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린 준호에게 가장 현명한 충고를 하는 이는 다름아닌, 절망의 나락을 뼈저리게 경험한 어른 광수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준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어떤 성취도 이룬다. 그런데 그 빛이 밝을수록 광수의 초라한 현재가 안타깝다. 

‘해피엔드’부터 ‘사랑니’ ‘은교’ 등 세상의 금기에 도전해온 정지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이야기에 유려한 영상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영화로 내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어른들이라면 꼭 봐야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했다. 

3. [동아일보][박성연의 트렌드 읽기]집단주의를 뒤흔드는 1인 가구

1인 가구가 집단주의에 젖어 있는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서울시는 2030년에야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해 이미 이 비율을 훌쩍 넘어섰다. 벌써 세 집에 한 집꼴이다. 직장인이 많은 중구 을지로 등 6곳은 70%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증가 추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전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지난해 세계 6위였지만 앞으로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서울시내 어느 골목에서나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혼밥’, ‘혼술’족, 이들이 이용하는 식당과 반찬가게, 그들을 고객으로 모시는 세탁소를 흔히 볼 수 있다.

1인 가구의 빠른 증가로 사회가 바뀔까. 그 추세와 단서를 소비 패턴에서 찾아봤다. 새로운 소비주체인 1인 가구는 지난해 한 달 씀씀이가 96만 원으로 조사됐다. 머지않아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할 것이다.

이들의 소비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다른 가족을 부양하지 않다 보니 자기계발을 위한 외국어 학습, 몸매와 건강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1인 가구의 학습비는 2인 가구의 두 배에 이른다. 성인 학습 시장과 뷰티 산업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그렇지만 베이비붐 세대처럼 집단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혼공’(혼자 공부)이다. 익스트림 스포츠 등에서 보다 세부화된 전문 취미를 배운다.

이들에게서 4인 가구 시절처럼 단일 품목 대량 소비는 좀처럼 볼 수 없다. ‘작지만 특별한 가치’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외국산 소형차 수입 증가에서 나타났듯이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작은 게 아니라, 작아도 가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다인 가족의 집단성 대신 가치다원화를 이끌 주역으로도 꼽힌다. 이들을 무시하고 많은 생산품을 시장에 대량으로 내놓는 생산자는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이들이 현재 획일화된 시류에 쏠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면 집단주의에 익숙해진 사회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단, 극단적 개인주의에 따른 공동체 책임의식 실종과 같은 부작용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4.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소맥’이 신사답지 못하다고? 

유튜브에 올라온 지 사흘 만에 60만 명 넘는 누리꾼이 재생한 인기 영상이 있습니다. 아이디 ‘영국남자’가 올린 ‘소맥을 처음 마셔 본 영국인들의 반응’이라는 동영상입니다.

‘영국남자’의 실명은 조시 캐럿(27).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으로 알려져 방송에 출연하고, 유튜브에서도 120만 구독자를 얻은 인기인입니다. 그동안 불닭볶음면, 인삼주, 홍어 등 한국의 독특한 먹거리와 목욕탕, 지하철도 유튜브에 소개했습니다. 

12일 그가 올린 영상의 주제는 ‘소맥’. 그는 우선 영상에 등장한 친구들에게 한국 맥주를 맛보게 합니다. 그런데 반응이 실망스럽습니다. “글쎄?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맥주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긴 어려운데?” “맥주라기보다는 맥주 맛 나는 탄산수 같다” 등의 평가가 쏟아졌죠. 

그 다음에는 ‘소주’가 등장합니다. 영국인들은 “20도짜리 술”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합니다. 소주를 병째 들고 마신 한 영국인은 “이 술을 마시는 목적은 딱 하나네요. 엄청 취하려고…”라고 말합니다. 

이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이라는 술을 소개하자 영국인들은 당황합니다. 술과 술을 섞는 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야(That’s not very gentlemanly)”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그런데 ‘소맥’을 한번 맛본 영국인들이 돌변합니다. 별의별 찬사를 다 쏟아내면서 말이죠. “이걸 왜 수출하지 않고 있죠? 삼성보다 대단한 거예요!” “예상 밖으로 진짜 맛있네요.”

이 영상은 단지 ‘독한 술’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술을 따를 때 두 손으로 술병을 잡는 장면도 나옵니다. 건배할 때는 “치어스(cheers)”라는 말 대신에 “짠”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나옵니다. 한 영국인은 “이걸 먹고 가라오케(노래방)에 가는 거지”라고 합니다.

이 동영상은 14일 ‘인기 급상승 동영상’ 코너에서도 1위를 달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소맥을 하셨으니 다음엔 ‘양폭’(양주 맥주 혼합 술)을 소개해 달라”며 후속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그 나라의 문화를 보여줍니다. 캐럿의 동영상에는 ‘술’에서 한국의 문화를 읽고, 그것을 유머 있게 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조만간 과일향 소주와 막걸리를 소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가 다른 술에서 어떤 문화코드를 읽어낼지 기대됩니다.

5. [중앙일보][시선 2035]노오력의 배신

“너처럼 노력하면 서울대에도 갈 거야.”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성실한 A를 격려했다. A는 좀처럼 노는 법이 없이 책상을 지켰다. 엉덩이에 커피색 굳은살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울대는 가지 못했다. 대학생이 된 A는 더 성실해졌다. “너처럼 노력하면 취업도 골라서 할 거야.” 공부 말고도 봉사활동에 인턴까지 챙길 게 많았다. 그래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나마 노력했으니 여기까지 온 거야.” A는 그렇게 ‘노력의 신봉자’가 됐다.

내 얘기를 굳이 A라고 쓴 건 이런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 만난 30대 취재원도 그랬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는 워킹맘, 유별나거나 극성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공부를 꽤 잘한다고 했다. 요즘엔 특목고 입시를 위한 교내 과학탐구대회 준비로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다고. 그 모습을 보면 짠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어떻게 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요. 김 기자님도 열심히 했으니까 지금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정말 그런가. 사실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노력의 결과가 생각과 다르다. 서울대에 가려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게 아니었다. 보이는 목표는 그랬지만,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거라고 믿 었다. 대학교에 가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기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대에 입학한 것도 모자라 박사까지 마친 친구,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나보다 몇 배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친구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노력이란 건 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력은 노오력을, 노오력은 노오오력을 부른다. 노오오오력을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총선 당일 선거 캠프에서 만난 한 후보. 그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잠을 못 잔 탓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캠프 관계자는 “모두 승리를 위해 200% 노력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00% 노력했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노력해 봤자 다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운보다 노력의 힘을 믿고 노력하는 삶을 사랑한다. 다만 노력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며 노력의 방향과 정도를 잘 살피자는 거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 만화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출연해 가장 공감을 얻은 대사로 이것을 꼽았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 이렇게 느껴지는 노력이라면 안 해도 그만이다. 좋은 노력의 방향과 정도는? 그건 자기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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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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