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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고용 없는 투자' 돌파구는 없는가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2.5%에 달하는 등 가뜩이나 고용 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고용 동력마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 늘었는데도 고용이 증가하기는커녕 되레 감소한 것이다. 기업 경영성과 분석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고용인원은 모두 101만 3100명이다. 전년의 101만 7600명에 비해 4500명(0.44%) 줄었다. 30대 그룹의 지난해 투자증가율이 17.9%인 점에 비춰 ‘고용 없는 투자’가 현실화한 셈이다.

대기업의 고용 감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주력 업종의 대표 기업들이 세계 경체침체와 중국을 비롯한 후발 경쟁국의 추격, 공급과잉 등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000명 이상 직원이 줄어든 대기업은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넘긴 삼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철강, 조선업 분야다. 포스코의 경우 1년 사이에 2795명(-8.1%)이나 줄었다. 현대중공업도 1539명(-3.9%)이 감소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열악한 고용이나마 떠받치고 있는 투자가 위축세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고용 사정이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중 기업투자 비중은 29.1%로 1976년(26.4%)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의 경우 올 들어 지난 1월(-6.5%)과 2월(-6.8%) 두 달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다. 투자가 줄어들면 고용 부진은 물론이고 가계소득이나 소비가 연쇄적으로 줄어 경제 전체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투자는 고용을 늘리고 소득 증가와 소비 활성화를 이끌어 경기가 잘 돌아가게 하는 선순환구조의 첫 번째 고리와 같다. 대기업들이 경기 부진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리고 여유 자금을 쌓아두려는 걸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투자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 고용 증가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는 노동개혁, 한계기업 구조조정, 규제 혁파로 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2. 선거의 최후 승리자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냉혹하면서도 위대했다. 어제 전국에서 치러진 제20대 총선 투표를 통해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국민을 등한시하며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던 기존 정치권에 엄정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밤늦도록 쫓고 쫓기는 박빙의 개표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눈앞에 펼쳐진 여야 정당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불만감의 표출이다. 확보 의석이 과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16대 국회 이후 16년 만에 재연되는 여소야대 구도다. 국정을 원활히 이끌어갈 책임이 있으면서도 당내 세력다툼에 몰두한 탓이다. 유례가 드문 공천 파동까지 일으킴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렸고, 끝내 응징이라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더불어민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당이 잃은 표를 끌어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결코 승리한 모양새가 아니다.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았으며 공천과정에서도 자의적인 잣대를 휘둘렀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국민의당의 약진은 기존 양대 정당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으로서 국회 운영의 원활한 지렛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맡겨졌음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걱정스러운 것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본격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선거가 임박해오면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국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번 선거가 여당뿐만 아니라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소통과 화합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임기 마지막까지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진행 중인 정책이나마 차질없이 끌고가겠다는 의지가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의 역할이다. 당선에 따른 개인적인 기쁨과 영광에 앞서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지게 됐다는 사명감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 보겠다며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그대로 진정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짐이 없다면 당선 축하를 받을 자격도 유보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3. 16년 만의 여소야대, 민심 겸허하게 수용해야

4·13 총선은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로 정치권이 재편됐고 20년 만에 양당 체제가 다당 체제로 바뀌는 격변이 일어난 것이다. 패거리 정치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 왔던 기존의 정치권력을 표로써 심판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참패다. 선거 초반 압승을 예상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개표 결과 과반 의석 미달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122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1위 자리를 내줬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유승민 후보 등 무소속의 돌풍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새누리당은 공천 과정에서 여론과 동떨어진 비박계 공천 학살이나 안하무인 격의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으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이나 대통령 존영 반환 소동으로 집권당의 비민주성을 만천하에 공개했고 친박계의 석고대죄 퍼포먼스는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집권 여당의 참패는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 소통과 설득 대신 일방통행식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민심이 담겨 있다.

4·13 총선 결과로 현실화된 다당제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은 공천 과정에서 혼란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총선에서 호남에서 압승을 거두며 양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20년 만에 다당제를 부활시켰다. 양당 체제하에서 기득권 정치세력 간의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돼 온 패거리 정치를 종식시키고 소통과 참여, 개방의 새로운 정치를 펼치라는 민심이 담겨 있다. 시대 흐름에 뒤처진 저효율 고비용의 정치 구조를 개혁하라는 국민의 지상명령이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냉엄하다.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 등이 심각해지고 있고 경제는 날로 침체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외교·안보의 난제도 많다. 다당제에서 대통령 역시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대전환이 요구된다. 일방적으로 국회를 비난하기보다 국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정당 간 연대를 존중해야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소통과 화합은 정당 차원을 넘어 국정의 성공적 운영의 필수 조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선전했지만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참패했다. 친노·운동권당이라는 꼬리표를 여전히 떼어내지 못한 채 야권 후보 단일화에만 목을 매는 모습을 연출했다. 텃밭인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한 것은 수권 야당으로서 일대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4·13 총선은 변화의 희망을 갈구하는 민심이 담겨 있다. 국민이 여야 모두에 과반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독주 대신 ‘균형과 견제’의 정치를 펼치라는 주문이다. ‘무능 국회’, ‘불임 국회’로 막을 내린 19대 국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민생을 살피는 상생의 정치를 요구하는 민의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20대 국회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기는커녕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4. 총선 마친 정치권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라

4·13 총선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다시 한번 예상을 뛰어넘는 역동성을 보여 줬다. 유권자 각자의 한 표가 마치 집단지성처럼 거대하게 뭉쳐져 생산성 제로의 기득권 정치를 엄중히 심판한 동시에 뼈를 깎는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와 여야 정치권 전체에 전해진 국민들의 이 같은 경고와 주문은 실로 준엄하다. 불통과 대립의 정치를 걷어치우고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일으켜 민생을 돌보고, 경제살리기에 나서라는 뜻과 다름없다. 여야 정치권은 이 같은 민의를 똑똑히 새겨 지금부터라도 즉각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곧 20대 국회가 출발하게 된다. 또한 내년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누수는 점점 현저해질 것이 확실하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선 국회 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석 반수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는데 이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으로 여소야대가 됐으니 야권의 위세에 눌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야당책임론’만 외칠 텐가. 국정 운영의 잘잘못 책임은 오롯이 집권 세력의 몫일 수밖에 없다.

다당체제,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들은 독선과 오만에 빠지기가 쉽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하면서 비세(非勢)의 여당을 몰아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여소야대 상황을 만든 것은 결코 야당들이 미더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개정이나 일부 쟁점 법안 처리에 호의적인 국민의당 약진에서 알 수 있듯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되 안보·민생·경제살리기 등에 관한 한 초당적으로 협력하라는 주문이다. 국민들이 19대 국회에 ‘역대 최악의 무능 국회’라는 오명을 붙인 이유를 잊어선 안 된다.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여야 3당 간의 기싸움을 비롯해 정당 간 과열 경쟁은 자칫 국회를 마비시킬 수 있다. 안보위기·경제위기가 중첩해 몰아치고 있는 지금 국회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게다가 총선 과정에서 여야는 실천 계획이 불투명한 온갖 경제·복지공약을 쏟아냈고, 국가개혁 청사진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여야는 20대 국회 개원 전이라도 민생법안 처리 등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민들이 표를 통해 던진 메시지의 의미다.

[한국일보]

5. 곳곳서 무너진 지역주의 벽, 희망이 보인다

높고 두꺼웠던 지역주의의 벽이 곳곳에서 무너졌다. 새누리당의 아성 대구에서 31년 만에 정통야당 소속 김부겸 후보가 큰 표차로 낙승했고, 역시 야당 계열인 무소속 홍의락 후보도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다. 대구 못지 않게 새누리당 세가 강한 부산경남에서도 의미 있는 야당 승리가 이어졌다. 반대로 야당의 텃밭인 전남과 전북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정운천 후보가 승리 깃발을 꽂았다. 이제 망국적 고질병이라는 지역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 깨기를 선도한 이는 대구 수성갑의 더민주 김 후보다. 대구의 강남이라는 이곳에서 김 후보는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시종일관 앞섰다. 2012년 내리 국회의원 3선을 했던 경기 군포를 떠나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대구로 내려간 그는 19대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분루를 삼켰다. 이번에는 달랐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내치기, 진박 마케팅 역풍의 반사이익도 컸지만 대구시민들이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후보의 당선은 더민주 비례대표 출신 무소속 홍 후보의 당선과 함께 대구의 지역주의 극복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부산경남(PK)지역에서도 영남 지역주의 균열 조짐이 나타났다. 부산에서 더민주전재수(북강서갑), 김영춘(진구갑), 김해영(연제) 후보 등이 승리한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임을 감안해도 김해 갑ㆍ을(갑 민홍철ㆍ을 김경수)을 더민주가 석권한 것은 지역주의 타파 의미가 크다. 당선에는 못 미쳤지만 다수의 더민주 후보가 30~40%대의 높은 득표를 한 것도 이전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변화다.

반대로 호남 정서의 아성인 전남ㆍ북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정운천 후보의 승리는 호남지역도 과거 높았던 지역주의 벽이 무너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2014년 7ㆍ30 재보선에서 지역주의 타파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 후보는 전남 순천에서 선거구 조정의 불리한 여건을 딛고 당선됐다. 전북 전주을에서 금배지를 거머쥔 정 후보는 이명박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출신이다. 두 후보가 이 지역에 분 국민의당 바람에 따른 3자 대결 구도의 덕을 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호남에도 여당후보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음이 확인되는 등 지역주의 균열 흐름도 한층 뚜렷해졌다. 대구에서 부산경남벨트를 거쳐 전남북으로 이어진 U자형 띠에서 지역주의 극복의 분명한 희망을 본다.

[동아일보]

6. 여당 참패, 박근혜 대통령 확 바뀌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민심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몰랐다. 어제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120여 석에 그쳐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출범하게 됐다. 집권 3년여 만에 치러져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탄핵풍’이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최악의 참패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시화했다. 경제와 안보 실정(失政) 책임은 야당에 미루고, 안으로는 공천을 놓고 계파 싸움에 몰두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응징이다. 새누리당 안형환 대변인은 어제 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며 패배를 자인했다.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7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져본 적이 없다.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친노(친노무현)·운동권 중심의 야당에 힘을 실어주면 국정운영이 파탄나지 않겠느냐는, 중도·보수 성향 국민의 ‘공포의 균형감’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불패 신화’에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마침내 국민은 회초리를 들었다.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에 훅 간다’는 배경판만 달아놓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기득권에 빠져 국정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염두에 둔 ‘웰빙 새누리당’에 국민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중간평가에서 ‘탄핵풍’보다 더한 공천역풍
 
특히 친박(친박근혜) 충성분자를 꽂아 넣기 위해 ‘총선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역대 최악의 막장 공천은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왔다. 이른바 서울 강남벨트와 텃밭인 부산과 대구의 지지층이 고개를 돌린 것을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은 직시해야 한다. 전체 투표율은 58.0%로 지난 총선보다 3.8%포인트 높아졌지만 전통적 여당 지역인 대구 부산 등이 가장 저조한 것은 아예 투표도 하기 싫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은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새누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분노의 폭풍’이 불면서 야권 분열 구도가 맥을 못 추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에서 새누리당에 근접하면서 선전(善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가 수도권에서 더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결코 이 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집권세력이 미워서다. 특히 정통 야당을 자임하는 더민주당이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과 정당투표에서 참패한 것을 친노패권주의, 운동권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의 지지 여부에 대선 출마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으니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궁금하다.

여야를 통틀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 전 대표가 하차한다면 차기 야권의 대선구도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더민주당은 먼저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믿음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 더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등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그러니 국민의 눈에 안보불안, 경제불안, 신뢰불안 정당으로밖에 더 보이겠는가. 제3당으로 약진한 국민의당에 ‘야권재편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국정 정상화 위해 탕평인사-개각하라
 
총선이 끝나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잠룡들이 꿈틀거리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박근혜 정부 앞에는 경제를 살리고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실업률 상승과 수출 급감,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이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 철회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총선 이후의 과제는 여당의 대선 준비가 아니라 국정의 정상화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도 무너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임기 후반기에 국정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당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은 국민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위기, 안보위기를 헤쳐 나가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향후 정국은 집권 새누리당과 친여 무소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혼존(混存)하는 다여다야(多與多野) 구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통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야당까지 아우르는 탕평인사와 함께 전면 개각으로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국민 앞에 자성하고 새롭게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이 이번 총선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단호하게 던진 메시지다.

7. '국민의당 돌풍' 안철수, 대권 아닌 국민을 보고 가라

4·13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일으킨 ‘녹색 돌풍’이 호남 전체를 거의 휩쓸었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거의 40석에 육박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며 제3당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특히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득표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질렀다는 것은 국민의당의 전국 정당화 가능성을 말해준다. ‘양당 철밥통 체제’를 비판한 안철수 대표에게 호응해 국민이 거대 기득권 양당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선거로 제3의 원내교섭단체가 탄생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 때 50석을 얻은 자유민주연합 이후 20년 만이다. 오랜 양당 구도로 인해 여야 간 ‘적대적 공존관계’가 굳어지면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의정치가 실종된 것이 국회의 실상이었다. 안 대표는 1월 “양당 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므로 3당이 존재하면 원래의 단순 다수결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대 국회에 진입하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안 대표의 정치 초심대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중도개혁 노선을 견지한다면 보수-진보 양 극단의 정치에 신물을 내는 중간층의 지지를 업고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서 국정을 원활하게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을 제치고 ‘호남의 맹주’가 됐다는 것은 야권에는 혁명에 가까운 이변이다. 2004년 17대 총선 이래 친노(친노무현)의 손을 들어준 호남이 친노와 좌파 운동권 세력의 온상으로 변질된 더민주당을 12년 만에 응징했다는 의미가 있다. ‘강철수’의 뚝심을 발휘한 안 대표가 야권의 텃밭이자 심장부인 호남을 장악했으니 이제 야권 재편과 대권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국민의당에는 천정배 공동대표와 정동영 당선자와 같이 더민주당 친노 세력에 못지않게 강성인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두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놓고 여당인 새누리당을 상대로 선명성 경쟁을 벌인다면 20대 국회는 19대 국회 못지않게 극단적 발목잡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안 대표가 사안별로 여야를 넘나들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해야 국회가 생산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돌풍’이 계속되려면 안 대표는 대권이 아닌 국민을 보고 가야 한다. 정치권의 개혁을 선도하면서 정책과 국회 운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민의당이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국경제]

8. 20대는 국회독재 아닌 일하는 국회 돼야

20대 총선이 끝났다. 5월30일부터 4년 동안 봉사할 ‘선량(選良)’ 300명도 가려졌다. 여야의 승패도 갈렸다.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내야 마땅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안보와 경제의 두 축이 비정상 궤도를 맴도는 국가적 긴장 상태에서 4개월 가까이를 총선 정국으로 날려 보낸 탓이다. 정치권은 총선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한 것은 한마디로 정치를 정상적으로 하는 ‘정치의 정상화’다.

정치 외교 국방 등 국가적 아젠다를 처리하는 데서 19대 국회는 내내 의사무능력자처럼 행동했다. 국회는 토론도 합리적 의결도 이뤄내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노조 등 이해집단의 불법행위를 방조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이 정부가 추진한 소위 4대 개혁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었다.

운동권 정치의 종식도 이번에 확인된 민심이다. 투쟁 일변도의 운동권 정치는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며 국민을 질리게 했다. 정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반대하고, 나라가 망해도 현 정부가 실패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한 행동들이 찰거머리같이 정치를 지배해온 19대였다. 아니 일부 정치인들은 길거리 갈등이나 분쟁을 민주주의인 것처럼 인식하는 반(反)제도적 행태도 보였다.

특히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선 여야 할 것 없이 계파 간 갈등이 노골화됐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 비박에 진박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친노와 비노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계파는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돼야지, 이번처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그런 계파 정치는 파벌정치로 타락할 뿐이지만 선거과정에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앞으로의 정치개혁을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요소다.

20대 국회가 19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정치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우선 ‘불임국회’를 초래한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해야 한다. 또 개인 비리까지 막아주는 것으로 악용되는 불체포특권과 아무런 말이나 제멋대로 유포하는 소위 ‘막말특권’, 즉 면책특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100여개가 넘는다는 특권은 스스로 폐지해야 하고, 보수도 근로자 평균소득의 2배가 넘지 않도록 대폭 삭감해야 옳다. 이밖에 국민의 4분의 1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과잉범죄화 입법, 관련 없는 기업인들까지 불러다 호통치는 ‘원님재판’식 청문회도 금지돼야 마땅하다. 또 예산 고려 없이 마구 찍어내는 의원입법, 국가예산에 지역 민원을 끼워넣는 예산야합 등도 잘라 없애야 할 관행이다. 이런 조치들이 곧바로, 그것도 눈에 띄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치는 정상화하기 어렵다. 그만큼 지난 19대는 ‘의회 독재’로 불릴 정도로 최악이었다.

선거에 재미를 붙인 듯 정국을 곧바로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이어간다거나, 정계개편 운운하며 다시 파워게임식 ‘새 판 짜기’ 충동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행태야말로 정당정치의 파멸을 불러오는 악수가 될 것이다. ‘정치인만을 위한 정치’는 더 이상 용납받을 수 없다. 이번 총선 막바지에 여당과 야당은 무릎꿇기, 절하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경제를 살리겠다’가 아니라 ‘잘못했습니다’가 선거 구호가 된 듯한 민망한 풍경이었다. 그런 쇼는 이제 모두 끝났다. 당장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상화된 정치를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에 희망이 생긴다.

[중앙일보]

9. 빗나간 선거 여론조사, 유권자 혼란 막게 정비하라

4·13 총선은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현역 의원 평가와 컷오프, 총선 후보 선출에 제시된 근거는 늘 여론조사였다.

그렇다면 판단 기준이 되는 여론조사는 정확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동일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를 넘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의뢰자의 의도에 맞게 여론조사를 해주는 기획 여론조사 기관도 있었다고 한다. 선관위가 적발해 처벌한 여론조사만 100건이 넘는다.

그러니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는 응답이 믿는다는 의견보다 많은 게 우리 현실이다. 고작 1~2% 응답률로 판세를 예측하니 높은 정확도가 오히려 기적이다. 게다가 주로 집전화에 의존하는 조사 방식 자체의 한계도 있다. 현실에서 집전화 가입자는 줄고 휴대전화는 표본 수집이 어렵다. 대표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 수치가 정치판에선 금과옥조다. 정확성이 의심되고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된 여론조사가 정당의 공천 결과를 좌우하고 유권자의 표심을 출렁이게 만든다.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이번 총선을 놓고 주요 여론조사 기관은 새누리당 157~175석, 더불어민주당 83~100석, 국민의당 25~31석을 전망했다. 실제 결과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야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여론조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엇보다 100개 이상 난립한 업체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또 이번에 도입된 무선전화 안심번호제를 잘 다듬어 정당뿐 아니라 여론조사 회사에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경향신문]

10. 설탕과의 전쟁, 재벌 압력에 굴복하면 안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선포한 ‘설탕과의 전쟁’이 업계와 경제부처의 반발로 순탄치 않은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식약처는 ‘제1차(2016~2020년)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세웠으나 지난 7일 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거치며 대폭 후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식약처는 당초 내년 7월부터 시리얼과 즉석식품의 영양표시 의무화를 도입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영양표시 확대 추진으로 변경됐다. 2018년부터 당류 함량이 높은 식품에 ‘고열량·저영양식품’ 표시를 의무화하겠다는 방안도 ‘추진 검토’로 완화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들이 지나치게 규제를 가하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는 것이다. 시민 건강증진을 앞세운 식약처가 기업 논리를 대변한 경제부처에 밀렸다는 얘기다. 식품가공업과 제당업에 진출한 재벌의 반발이 심상치 않고 대정부 로비와 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설탕과의 전쟁은 매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악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류 섭취 규제란 세계적 추세와 시민 건강 증진이란 대의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당류 섭취는 갈수록 늘고 있으며 비만 관련 의료비는 연간 4조원이 넘고 당뇨병 관련 의료비는 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들이 당류 섭취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앞으로 대체 감미료와 당류 저감제품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생존이 가능할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은 2018년부터 설탕세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캐나다도 탄산, 과실음료와 같은 가당 음료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설탕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번에 국내에서 설탕세 도입은 논의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도입 시 제품가격 상승으로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업계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설탕과의 전쟁에서 기업을 넘지 못하면 부담은 시민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연극3편]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헨리4세·햄릿아비·보도지침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연극계에서 바로 그 '왕관'의 중독성, 연민, 그리고 치졸함을 다룬 연극 세 편이 주목 받고 있다. 

◇헨리 4세 파트1 & 파트2-왕자와 폴스타프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인 서울시극단이 2002년 국내 초연한 뒤 14년 만에 다시 선보이고 있다. 객원으로 초연을 지휘한 데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의 미니멀리즘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4륜 구동차에 태운 듯 멋스러움과 함께 속도감까지 선사한다. 

원작대로 하면 러닝타임이 5시간이 훌쩍 넘는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약 2시간40분으로 압축했다. 덕분에 밀도감이 높아졌다. 리처드 2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영국 왕 헨리 4세가 왕관에 극도로 집착하는 심리적 변화가 다이내믹해졌다. 

권력을 향한 헨리 4세의 아들 헨리 왕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허풍쟁이 궤변가 '폴스타프'와 어울려 밑바닥 삶을 체험하면서 온갖 기행과 방탕을 일삼는다. 하지만 반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는 그가 부친이 잠시 쓰러진 틈을 타 왕관을 제 머리에 얹을 때, 그 무거움은 기꺼이 감당하고픈 것이 된다. 

그 무거운 정도를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이는 폴스타프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햄릿이 있고, 희극에는 샤일록이 있으며, 사극에는 폴스타프'가 있다. 헨리 왕자가 즉위한 뒤 버림받는 드라마틱한 면도 갖춘 그는 뚱뚱하고 늙은 술고래에 난봉꾼이지만 권력의 위선을 통렬히 조롱한다. 서울시극단 단원 이창직의 능수능란함은 폴스타프를 펄떡이게 만든다. 

대학로에서 다방면의 작업에 참여하는 오세혁 작가가 각색했는데 그는 청년 문제에 관심이 크다. '헨리 4세'에서 세대 갈등도 도드라지는 이유다. 왕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면 충분히 왕이 될 만한 능력과 재주가 많은 젊은이인 홋스퍼는 권력의 무게감을 지난하게 지키려는 이들로 인해 사라져갔다. 14일까지 세종M시어터. 2만~5만원. 세종문화티켓. 02-399-1000

◇햄릿아비 

이성열 연출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가 창단 20주년 기념 첫번째 공연으로 선보인 새 공동창작극 '햄릿 아비'에서 왕관의 주인은 셰익스피어 '햄릿' 속 햄릿의 아버지다. 자신의 동생에게 억울하게 시해된 원혼이다. 따라서 그의 왕관은 연민이다. 원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햄릿아비'는 이 시대의 햄릿아비, 즉 원혼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백수광부 단원들은 공동창작극의 특징을 살려 여러 시선으로 시대의 아픔들을 빠짐없이 무대 위에 기록한다.


햄릿이 어느 날 밤 열차를 타고 알 수 없는 곳들을 떠돌며 만나는 상황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질곡의 역사다. 권력을 잡은 이의 사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고, 고등학생은 빨갱이를 잡겠다며 도시락 폭탄을 만든다. 그 고등학생은 정치, 연예뿐 아니라 연극계 가릴 것 없이 진보인사들의 실명을 거듭하며 거침 없이 욕을 내뱉는다. 

2년 전 죽은 딸을 위해 생일잔치를 벌이는 부모의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만든다. 극 속에서 잠시 빠져 나온 배우들은 지난해 연극계에 분 검열 광풍 등의 논란에 대해 거침 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진짜 왕관(王冠)을 쓴 이들로 인해 햄릿아비들의 왕관은 관(棺)밖에 될 수 없다. '제37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중 하나다. 17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 3만원. 극단 백수광부. 02-813-1674


 ◇보도지침

5공화국 시절 매일 아침 언론사에 은밀히 전달된 보도지침을 다룬 '보도지침'에서 왕관을 쓴 이들은 지침을 내리는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눈, 귀,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치졸함으로 점철된 왕관을 움켜잡고자 했다.


연극은 당시 보도지침을 수용하지 않은 몇몇 언론인이 뜻을 같이 해 월간 '말'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화가 바탕이다. 이 재판 과정을 다룬 법정드라마다. 내용은 상당히 각색됐다. 재판에 연루된 실제인물들 간의 관계와 설정을 연극적으로 꾸몄다. 

실존 인물인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기자 '주혁', '말'지를 연상케하는 '독백'의 발행인 '정배', 변호사 '승욱', 검사 '돈결'은 모두 대학시절 연극반을 같이 한 절친한 친구다. 가장 진보적이던 돈결은 보도지침을 폭로한 주혁과 정배를 기소하려 든다. 승욱은 두 사람을 변호한다. 판사 '원달'은 이들의 대학 스승이자 연극반 선배였다. 법정은 결국 이들 관계의 역사적 집결지다. 

블랙코미디와 엄숙함이 깃든 법정 신과 유쾌함과 문제 의식을 갖게 되는 대학 동아리 신을 오가며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 끊임없이 대사를 쏟아내는 주혁 역의 송용진, 승욱 역의 이명행 등 배우들의 열연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신이 수감된 상황에서 동료들이 대신 차린 돌상을 받은 딸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는 주혁의 바람은 심장을 파고든다. 

변정주 연출의 풍자적이면서 고루하지 않고, 재기발랄하면서 가볍지 않은 터치는 세련됐다. 특히 사건의 본질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부분은 현재를 투영케 한다. 

다만 '보도지침'은 제작사 대표가 대학로의 주관객층인 20, 30대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고 일부 관객은 보이콧 중이다. '보도지침'에서는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된다. 일부 소비패턴의 흐름을 뭉뚱그린 제작사 대표는 시대의 정신을 잘못 읽는 오류를 범했지만, 이로 인해 연극 자체가 추구하는 정신까지 퇴색시키기에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고가 아깝다. 1986년 문성근·강신일을 내세워 400여회 공연하는 동안 서울에서만 5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칠수와 만수'처럼, 연극을 통해 졸렬한 권력에 통렬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동아일보][내 생각은/최시영]공공도서 깨끗하게 읽자

올해로 전국 공공도서관이 1000곳을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31일 ‘제2차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도서관 기반 확충과 운영 내실화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할 만한 조치다. 올바른 독서 문화를 위해 하드웨어는 발전하는데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후진적인 건 우려스럽다. 

우선 도서 관리상태에 문제가 있다. 연필로 밑줄이 그어진 것은 물론 지우기 어려운 펜으로 낙서돼 있거나 형광펜으로 표시된 책이 부지기수다. 페이지 일부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이물질이 침착된 경우도 있다. 인기 도서나 필독 도서 그리고 간혹 있는 수험서는 대출자의 상식을 의문케 할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이용자의 무책임한 행태를 감독해야 하는 이유다. 

담당자가 대출과 반납을 승인할 때 도서 상태를 점검해 문제 있는 이용자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 문체부가 통일된 지침을 마련해 도서관에 이행할 것을 주문해야 추진력과 구속력이 생긴다. 개선되면 각 도서관이 재량으로 관리하면 된다. 정숙을 해치는 것보다 도서를 막 다루는 것이 더 나쁘다. 더럽혀진 책 때문에 이용자 전체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3. [동아일보][윤세영 따뜻한 동행]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활짝 핀 꽃들로 세상이 온통 화사한 봄날에 문득 ‘자연과 인간 사이에선 누가 갑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것은 연일 들려오는 ‘갑질 시리즈’ 탓일 게다. 그런 고약한 뉴스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접게 하지만 지난주에 내가 만난 이삿짐 아저씨는 사람에 대한 실망을 다시 희망으로 바꿔주었다.

지난주에 이사를 두 번 했다. 그런데 사무실의 책을 집으로 옮기는 초벌이사에서 이삿짐 아저씨가 얼마나 웃는 낯으로 능숙하게 일을 잘하는지 감탄을 했다. 짐을 실어 나르는 도중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그곳에 갇히고도 “이사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있다”며 느긋하고 태연했다. 기술자가 달려와 비상수단으로 문은 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정상화되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아저씨는 오후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니 급할 것이 없다며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다. 이사를 하다 보면 항상 변수가 많다는 것. 한 번은 이삿짐을 싣고 갔는데 아직 도배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8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칠 후 본격적인 이사도 그 아저씨에게 맡긴 것은 당연지사. 도움이 될까 하여 아들을 불렀더니 이번에는 아저씨의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난 모양이다. 약정한 이사비용에서 20%를 덜 받겠다고 했다. 아들이 도와주어 일이 수월하게 끝났으니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갑도 없고 을도 없는 정말 기분 좋은 거래였다.

그날 밤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이삿짐 아저씨가 지금 예순 둘인데 일흔다섯까지 건강을 잘 지켜서 일하시는 게 목표래요. 젊은 저도 힘들던데 그렇게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어요.”

어쩌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덕에 호강하고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는커녕 ‘갑질’을 일삼는 사람과 힘든 노동을 하며 살지라도 경우가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삶을 보며 사람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았다.

지금 도처에 봄꽃들이 피고 진다. 매화와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지는 속에 벚꽃이 흩날리고 목련이 하얗게 웃는 봄날, 하마터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뻔했다. 그러나 지는 꽃이 있는 반면 피어나는 꽃이 있듯 악취를 풍기는 한편에서 또한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직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4. [중앙일보][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을 사랑하게 된 아주 특별한 이유

요즘 날씨가 풀리면서 곳곳에 꽃들이 활짝 피고 있다. 그 숱한 꽃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벚꽃이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주한 브라질대사관에 계셨던 에지문두 후지타 대사님이다. 벚꽃 하면 그분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2014년, 날이 풀리면서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던 어느 포근한 봄날이었다. 그날따라 막 출근한 대사님이 아주 피곤해 보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대사님은 허허 웃으며 “이른 새벽부터 벚꽃을 보러 하동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사님이 꺼내 보여준 휴대전화 속에는 아름다운 하동의 풍경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 봤던 벚꽃 중 가장 아름다운 벚꽃이 거기에 있었다. 연방 감탄을 하는 내게 대사님은 “언젠가 꼭 다녀오라”고 추천을 했다.

후지타 대사님은 그런 분이었다. 통상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좋은 점에 대해 물으면 ‘발전한 기술’ ‘치안과 편리한 생활방식’ ‘매력적인 문화 콘텐트’ 등을 말하지만 후지타 대사님은 늘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능력 있는 외교관으로서 전 세계의 많은 곳을 다녀본 분이었지만 한국을 특히 아끼고 사랑했다. 회의 참석차 이동할 때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국의 풍경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좋아했다. 틈만 나면 사모님과 기르던 강아지, 이렇게 셋이서 함께 한국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후지타 대사님은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 한국의 자연을 통해 받은 영감을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나는 그런 대사님을 통해 새삼스럽게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외교 공관에서 대사라고 하면 보통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높은 분이란 인식이 많다. 하지만 후지타 대사님은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모든 직원을 배려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나 역시 대사님께 많은 것을 배웠고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

5. [동아일보][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배트맨과 슈퍼맨, 문재인과 김종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란 근사한 제목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나를 세 번 죽였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으며, 심지어 길기까지(상영시간 2시간 30분)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건곤일척 대결을 벌이는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공히 인류를 구하는 슈퍼히어로인 둘이 도대체 (여자 문제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맞붙겠는가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렀다. 둘이 싸우는 이유는 단지 힘이 남아돌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영 아니꼽다. 인간도 아닌 외계인 주제에 구원자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사실, 슈퍼맨은 지구를 지키기보단 파괴하는 존재다. 같은 외계인인 조드 장군에 맞서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며 싸우는 과정에서 빌딩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간이 희생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슈퍼맨은 외계인이라는 초월적 존재이기에 어떤 도덕적 비난도 받지 않은 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배트맨은 박사 수료 이상인 자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지하게 어려운 말로 슈퍼맨의 존재적 문제점을 정의한다. “슈퍼맨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데 있다. 슈퍼맨 앞에서 인간은 한낱 우주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해지니까….” 자신에게 의지함이 없이는 인간 스스로는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하게끔 만듦으로써 인간의 존재 가치와 자유 의지를 추락시키는 암적 존재가 슈퍼맨이란 주장이다.

반면 슈퍼맨은 법 위에 서서 자경단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배트맨이 불만이다. 범죄자들의 몸에 섬뜩한 박쥐 모양 낙인을 푹푹 찍어대고, 악당들을 혼내준다며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배트맨이야말로 악당보다 더한 공포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슈퍼맨은 말한다. “배트맨이야말로 인류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영원히 착한 존재는 있을 수 없으니까. 배트맨 때문에 수천 명이 희생됐지. 고담시를 봐. 배트맨이 활약했다고 하지만, 지금 착한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지?”

어떤가. 배트맨과 슈퍼맨, 누구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는지?

양자택일하기에 앞서 일단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 속에서 갈등하고 다투고 대결하는 슈퍼맨과 배트맨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를 각각 쏙 빼닮아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구인도 아닌 외계인이 영웅 행세를 한다’는 배트맨의 불만은 홀연히 더민주당으로 들어와 대표 자리에 앉아 난세의 해결사로 떠오른 김종인을 바라보는 문재인의 복잡한 심경은 아닐까? 굴러온 돌(슈퍼맨 혹은 김종인)이 박힌 돌(배트맨 혹은 문재인)을 빼내려 한다는 의심의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반대로 배트맨을 흘겨보는 슈퍼맨의 마음은 문재인을 향한 김종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사심도 없고 깨끗한 외부인인 내가 마른하늘에 빛처럼 나타나 침몰해 가는 당을 구원해 주려 하거늘, 어두운 패권주의로 얼룩진 친노 세력이 도대체 무슨 도덕성과 정당성을 기반으로 나를 ‘바지사장’ 취급하느냐는 불만이 아닐까.

오, 게다가 배트‘맨’과 슈퍼‘맨’처럼 문재‘인’과 김종‘인’도 이름의 끝 글자가 똑같지 않은가! 이런 무시무시한 평행이론이? 배트맨과 슈퍼맨이 처음에는 서로 나쁘지 않은 사이였지만 점차 ‘친구’인지 ‘적’인지 헷갈려한다는 점도 문재인과 김종인의 관계를 절묘하게 포개 놓은 것만 같다. ‘서로 적인 듯하지만 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중 ‘대(對)’를 뜻하는 영어를 ‘vs’가 아닌 ‘v’로 어중간하게 표기해 놓은 것이리라.

영화 말미에 이르면 공공의 적인 악당 렉스 루터가 만들어낸 무지막지한 괴물 둠스데이에 맞서기 위해 배트맨과 슈퍼맨이 힘을 모으면서 둘의 갈등은 봉합되지만, 이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는 악당 렉스 루터의 다음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힘 자체는 순수한 거라고? 그 말은 거짓이야.”


그렇다. 정의를 표방하든 평화를 외치든, 세상 모든 힘의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힘은 그 자체로도 결코 순수하지 않다. 나 같은 힘을 가진 또 다른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힘의 태생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태양도 오직 하나, 영웅도 오직 하나, 구원자도 오직 하나, 아내도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다. 아, 지구나 지키면 될 일인 배트맨과 슈퍼맨이 쓸데없고 소모적인 싸움질을 벌인 게 고작 존재증명 때문이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슈퍼영웅들아! 

지난주 수요일 후지타 대사님께서 본국에서 별세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09년 4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한국에 계시던 6년 동안 정말 한국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분이다. 그분을 기억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돌아가신 대사님의 뜻대로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게 됐으면 한다. 깊은 애도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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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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