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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나라 망신 해외 성매매 뿌리 뽑아야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외국으로 나가서까지 성매매를 하는 추한 한국인들 얘기다. 한·미 합동단속반은 그제 미국 뉴욕 일대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온 한국인 성매매 업주와 여기에 고용된 여성 등 모두 48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마사지 업소 등을 차려놓고 시간당 200달러(약 22만원)를 받고 불법 성매매를 해온 혐의다. 국격을 떨어뜨리고 나라 이미지를 해치는 해외원정 성매매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뿌리 뽑아야 한다.

해외 성매매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성매매 수출대국’이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달에도 일본 도쿄 유흥가 주변에서 성매매를 한 여성들과 알선책, 업주 등 47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8월에는 마카오의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일당 80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해 호주, 대만, 동남아 등 우리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러 떠나는 나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외국에까지 나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낯 뜨거운 행태도 문제다. 해외 관광을 핑계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황제 관광’이 암암리에 활개를 친다고 한다. 지난해 8월 한국 남성 207명이 필리핀 원정 성매매에 나섰다가 무더기로 경찰에 꼬리를 붙잡힌 게 그런 경우다. 이들은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해외 성매매 카페에서 이 상품을 접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 등 각종 인권보고서는 한국 남성을 동남아 성매매의 주요 고객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성 상품화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비뚤어진 인식이 문제다. 국내 풍토부터가 그렇기 때문이다. 가벼운 처벌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해외 성매매로 적발돼도 현지에서 추방 정도에 그치거나 국내에 들어와서도 대부분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기 마련이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해외 성매매를 근절하기 어렵다. 처벌을 한층 강화해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음성적으로 성매매 관광객을 알선·모집하는 인터넷 카페들의 실태도 철저히 점검할 일이다.

2. 산업구조조정,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정부가 조만간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짓고 조선·해운 분야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취약 업종인 건설·철강·석유화학 분야도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분야도 여건이 다급하지만 한꺼번에 손을 대기보다는 심각한 분야에서부터 메스를 대겠다는 구상이다. 고름을 짜내고 건강 체질을 되살리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말로는 구조조정을 한다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온 탓이다. 구조조정의 부담을 떠안아야 할 은행들의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해당 기업들에 있어서도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어려운 때문이었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한다면서도 부실기업에 자금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깨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지금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조선과 해운업은 상황이 심각하다. 대형 조선소가 집중된 울산이나 거제도의 지역 경기가 가라앉아 주민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처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3사의 경영 여건이 거의 마찬가지다. 한때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중심 산업이 어느새 이처럼 벼랑에 처하게 됐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조조정을 망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자금 지원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고 군살을 빼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폐해만 커지기 마련이다. 2~3년 전에는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가래로도 어려워진 것이 바로 시기를 놓친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경기 흐름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노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없지 않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국면에서도 임금 인상을 고집하는 등 자기 밥그릇만 앞세움으로써 경영 악화를 부채질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각 업체마다 대량 해고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뜩이나 청년실업으로 풀이 죽어 있는 사회 분위기가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단기적으로는 지역 경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 과정을 이겨내야만 한다.

[서울신문]

3. 재계 수사 법의 잣대로 환부만 도려내야

검찰이 그제 한진중공업,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KCC건설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업체들은 내년 개통을 목표로 진행된 원주~강릉 도시고속철도 공사의 구간별 사업자들이다. 검찰은 업체들이 4개 공사 구간을 ‘짬짜미’로 수주하려고 입찰가를 사전 합의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의 신고로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검찰은 통상의 경우처럼 공정위 고발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일각에서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기업 비리에 대한 사정(司正)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공교롭게 그동안 설(說)만 무성했던 부영그룹에 대한 수사 사실도 확인됐다. 국세청이 총자산 20조원 규모로 재계 순위 21위인 부영그룹과 이중근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이 곧 고강도 수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임대주택 건설 사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부영그룹은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외에는 특별하게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기업이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해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국세청 고발 전 이미 수사 착수에 대비해 관련 비리를 검토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4개 건설사와 부영그룹 외에 D사와 L사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그렇잖아도 항간에는 여당의 참패로 끝난 이번 총선 이후 국면 전환을 위해 사정 정국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착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검찰은 명심하길 바란다. 물론 기업비리든 공직부패든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법의 잣대에 따라 추상같은 사정의 칼날이 미쳐야 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성역도 예외도 있을 수 없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또한 배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 검찰은 그렇지 못했다. 멀리까지 돌아볼 필요도 없다. 지난해 특정 정치세력을 표적 삼아 ‘하명’에 따라 시작된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는 무려 8개월에 걸쳐 말단 하청업체까지 저인망식으로 샅샅이 훑어 표적수사 시비를 자초하지 않았는가. 그렇잖아도 올해 초 엘리트 검사 10여명을 모아 ‘부패범죄수사단’을 발족시킨 검찰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가 매섭다. 중앙수사부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하명수사 시비에 휘말린다면 검찰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이번 재계 수사는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법의 잣대에 따라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가 돼야 한다.

4. 청문회 열자는 식 발상으로 민생 못 챙긴다

오늘부터 한 달간 19대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4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야가 ‘낡은 정치’를 답습하면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할 원유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감투를 쓰려다 망신살을 자초했다. 야권도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보수정권 청문회’를 선창하자 더불어민주당이 화답했다가 역풍이 일자 일단 꼬리를 내렸다. 이러다간 선거전에서 이구동성으로 했던 여야의 경제 살리기 약속도 자칫 공수표가 될 판이다. 여든 야든 차기 대선을 겨냥한 때 이른 권력 게임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라는 총선 민의를 곡해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위기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2%대 저성장 국면이 고착되지 않도록 하려면 구조 개혁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서비스시장을 육성해 청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전자는 국제경쟁력 재확보를 위해, 후자는 내수 진작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본지 회견에서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노동개혁 등 모든 구조 개혁은 단기적으로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 인기를 끌기도 어렵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를 실행할 각론을 합의하기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와중에 정쟁 불사를 외친다면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의 오명을 씻을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고 봐야 할 게다. 천 공동대표가 “청문회, 국정조사 등 모든 의회 권력을 발휘해 구정권 8년 적폐를 단호히 타파하겠다”고 했다니 말이다.

다만 희망적 조짐도 없지 않다. 여당 내 개혁파 의원들이 청와대가 중점 과제로 추진해 온 노동개혁 4법과 관련해 국민의당의 수정안을 일부 수용할 낌새다. 청와대의 뜻을 금과옥조로 여기기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타협과 절충이 의회정치의 본령이란 차원에서 바람직한 변화일 수 있다. 총선 승리 후 야권 내부에서 불거진 청문회·특검 도입 주장에 대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 야권 지도부와 중진들이 선을 긋고 나선 것도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정부·여당발(發) 경제활성화법을 모조리 원점 재검토하겠다”(이종걸 원내대표)는 더민주 측의 기세등등한 자세가 걱정스럽다.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을 19대 국회 4년 내내 반대하다가 이제 여소야대가 됐으니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자가당착일 뿐이다.

어차피 의정을 선진화하긴커녕 입법 활동을 마비시켜 온 국회선진화법에 기대는 한 생산적 국회는 언감생심이다. 여야의 의석 역전으로 공수만 바뀌었을 뿐 식물국회는 고사하고 무생물국회라는 꼬리표가 20대 국회에도 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어느 당도 자력으로만 입법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줬다. 그렇다면 여야가 국익과 민생을 맨 앞자리에 놓고 협치(協治)하는 일 이외에는 답이 없는 셈이다. 여야는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민생을 돌보는 생산적 국회를 다짐하고 있지만, 당장 이번 4월 국회에서 대화와 절충을 통한 협치를 실행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5.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가 파악한 한반도의 안보위기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19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만약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자체 핵무장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한 발언이 아니라 핵 확산 방지와 한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미국이 핵우산을 포기하고 ‘한일 핵무장 용인’을 언급한 데 대한 반박의 의미가 강하다.

브룩스 지명자는 트럼프가 거론했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에 대해서도 “지난해 한국은 미군 주둔 인적 비용의 50%가량인 8억800만 달러(약 9130억 원)를 부담했고 매년 물가 상승으로 오르게 돼 있다”고 정확한 수치까지 인용해 트럼프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관해 “북의 위협에 대처하는 다층적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분명한 어조로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보와 관련된 만큼 그의 발언은 우리에게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는 중국의 대북(對北) 억지력에 대해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존속을 위협할 수준의 압력을 가하지는 않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오만하고 충동적이어서 상황을 오판할 위험성이 큰 독재자”라면서도 “김정은이 북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파악돼 정권 붕괴를 암시할 만한 불안정성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육군사령관으로 민감한 질문에도 단호하게 답변하고, 엄중한 현실에 바탕을 둔 논리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시키는 모습이 신뢰감을 준다. 신상털기식 청문회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업무능력 검증에 집중하는 의원들이나 철저한 업무 파악 역량을 보여준 지명자가 부럽기까지 하다.

새 주한미군사령관이 파악한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현실에 비춰 정작 핵과 미사일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북의 5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됨에도 여야 정치인들은 권력 다툼에만 열중하느라 안보 위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브룩스 지명자는 “주한미군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싸울 준비태세를 갖춘다는 각오로 한국과 함께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우리 안보 당국자나 정치인들로부터도 듣고 싶다.

6. 김종인 대표 추대? 더민주당이 문재인의 私黨인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석 달 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하면서 비례대표 2번 보장과 함께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어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확인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김 대표의 ‘차기 대표 합의 추대론’이 공연히 터져 나온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더민주당 사람들조차 그런 묵계를 알지 못했다. 문 전 대표가 당권을 줬다면 김 대표는 무엇을 주기로 했는지, 그것이 ‘대선후보’인지 밝혀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일어난 3월 22일 김 대표의 사퇴를 막기 위해 자택으로 찾아가 “다음 대선까지 역할을 계속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에게 차기 당권을 보장하는 약속임이 명확해졌다. 아무 당직도 없는 전(前) 대표가 무슨 권리로 차기 당권을 약속할 수 있는가. 문 전 대표 스스로 더민주당의 상왕(上王)이거나 더민주당을 사당(私黨)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대표는 4·13총선에서 비례대표에 당선돼 비례대표로만 5선 고지에 올랐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후보에게 패했다. 믿기지 않지만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도 그때의 패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로만 정치를 해온 데다 한번 나섰던 선거에서마저 패한 터라 ‘선거 공포증’ 때문에 대표 경선을 기피한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자에 의해 당 대표가 낙점되는 5공(共)시대가 아니다.

김 대표는 어제 당선자대회에서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종전과 같은 모습을 또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굉장히 냉혹하게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에 대한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는 당부이자 내년 대선도 잘 치르고 싶으면 자신을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행여 김 대표가 더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데 대한 보상 심리에서 합의 추대를 바란다면 그 역시 터무니없는 일이다. 더민주당의 승리는 새누리당의 오만을 유권자들이 심판한 데 따른 반사이익이 더 컸다.

친노(친노무현) 일각에서도 김 대표 추대론이 나오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정청래 의원은 “비리 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 대표 자격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김 대표는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돼 대표직에 뜻을 둔 다선 의원들도 합의 추대는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정당법은 정당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정당의 대표는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돼야 한다.

7. 민심 오판한 靑비서관, 문책은커녕 국민銀 감사로 보내나

 정권의 낙하산 회장과 현 정권의 낙하산 은행장 간 갈등으로 촉발된 ‘KB 사태’ 이후 1년 4개월 동안 비어 있던 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에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그가 그 자리에 앉는다면 총선 후 첫 정피아(정치권+마피아) 낙하산이 된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지만 내정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노동개혁을 외치던 청와대발(發) 낙하산 인사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신 전 비서관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여론조사 전문가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심의 변화를 잘못 짚어 여당이 140석 안팎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총선 전날 그가 사표를 낸 사실이 14일 알려지자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문책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은 문책은커녕 그의 새 직장을 물색해주느라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를 가리지 않고 찔러댔다는 소식이다.

국민은행은 정부 지분이 없는 순수 민간 금융회사지만 지배주주가 없어 지배구조가 여전히 취약하다. 이 때문에 정권의 후광을 업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직원들은 승진에 목을 매며 실세에게 줄을 대는 풍토에 젖어 있다. 그 와중에 청와대 낙하산 인사까지 이뤄진다면 KB 사태 이후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민간회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현재 316개 공공기관 중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6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26곳에 이른다. 청와대와 정치권 인사들이 이 자리를 메운다면 박 대통령이 18일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 발언이 허언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8. 부산시, 부산영화제 운영 민간에 확 맡겨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영화제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영화계와 행정기관으로서 일정 부분 간여는 불가피하다는 부산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김규옥 경제부시장 등 영화제 관련 부산시 공무원들이 어제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는 10월 개막하는 제21회 행사 전면 불참을 선언한 지난 18일 영화계 9개 단체의 움직임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부산시 측은 “저희가 오해를 받고 있다” “갈등이 표면화돼 안타깝다” “예술영역을 침해하지 않겠다” 등 원론만 되풀이했다.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부산영화제 사태는 2014년 세월호 문제를 다룬 ‘다이빙벨’ 상영을 계기로 불거졌다. 상영 중단을 요구한 부산시의 요청을 영화제가 거부했다. 이후 이용관 전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부산시의 영화제 관계자 검찰 고발 등이 잇따르며 갈등이 고조됐다. 정치적 외압 논란이 일었다. 지난 2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전체를 총괄하는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히며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였으나 정관 개정을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제 측의 이견으로 또다시 미궁으로 빠진 상황이다.

가장 큰 쟁점은 새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이다. 부산시는 집행위원회에서 복수의 후보를 추천받아 임명할 방침이지만 영화제 측은 부산시가 통제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 대신 영화인이 다수 참여하는 총회에서 조직위원장을 뽑아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타협과 양보 없이는 앞으로 6개월도 남지 않은 올 행사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간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이 급락할 게 분명하다. 영화·미술·음악 등 문화행사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영화제 운영을 민간에 확 맡기는 부산시의 대승적 결단이 요청된다. ‘표현의 자유’가 한가하게 들릴 만큼 현재 부산영화제는 중대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9. 교육부 '로스쿨 입시부정'조사 투명하게 공개해야

법조계를 비롯한 사회 고위층 자녀들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조계가 시끄럽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부터 25개 로스쿨 입학과정을 전수조사했는데 대법관 출신 등 법조인 자녀 40여 명이 불공정 입학으로 적발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 스펙을 기재하거나 면접에서 부모 이름을 거론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입시를 치렀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로스쿨협의회는 그제 "입학전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변호사 133명은 의혹이 제기된 대법관과 해당 로스쿨에 대해 밝히라며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나섰다. 

2009년 첫 개원한 로스쿨은 입학과 취업과정에서 불공정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윤후덕 의원(새정치연합) 로스쿨 출신 딸의 대기업 특혜취업 논란에 이어 신기남 의원(새정치연합)이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려 한 의혹이 일면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거셌다. 거기에 신평 경북대 교수가 저서를 통해 특혜 입학 의혹을 폭로하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인 입시요강이다. 법학적성시험(LEET), 학부 성적, 공인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을 거쳐 합격자를 가리는데 자소서에 대한 지침도 따로 없다. 정성평가 비중이 높고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이나 방법, 합격점수 등이 공개되지 않다보니 깜깜이 선발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만약 의혹처럼 자소서에 부모 스펙을 쓰는 것이 부정행위로 간주되지 않고 용인됐다면 '금수저'들이 권력과 부를 세습하는 통로로 로스쿨을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법조인 선발 과정이 이렇게 불투명하고 허술해서야 어떻게 국민이 법조인을 신뢰하겠는가.

신입생 선발 절차를 대학 자율에 맡겨두고 한 번도 감사를 하지 않은 교육부 책임도 크다. 조사 결과 발표를 늦출수록 의혹이 커지는 만큼 신속하고 투명하게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교육부는 개선 방안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땜질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폐쇄적인 입시제도 전반을 개선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라.

10. 신임 금통위원들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

통화정책 수단인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신임 위원 4명이 오늘 취임식을 하고 4년 임기에 들어간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고승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 등으로 7명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라 다음달부터 정책 향방에 변화가 얼마나 있을지 이목을 집중시킨다. 면면에서 보듯 관료 출신이거나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 몸담아왔다는 점에서 새 위원들은 물가 안정이나 중앙은행 독립에만 연연하지 않고 경기 부침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시장에서는 관측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기준금리는 연 1.5%에서 10개월째 동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수출 부진과 내수 위축으로 우리 경제가 2%대의 저성장을 고착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 일각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요구가 거세다.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이나 경기 부양 측면에서 정부 재정정책과의 원활한 보조가 기본이다. 금융시장을 완전 개방한 우리로서는 자본 유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EU, 일본 등의 움직임을 감안해야 한다. 최근엔 금리 이외에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나라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통화정책 결정을 둘러싼 복잡한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금통위원들과 금융시장 참가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의 즉흥적 판단보다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한 접근이 절실하다.

어제 퇴임한 4명의 전임 금통위원들은 재임 중 한번도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취임 당시 연 3.25%에서 7차례 인하 결정만 내렸다. 내년부터는 기존의 한 해 12차례 금리결정 금통위를 8차례로 줄인다. 명절이나 휴가철 등 월별 경제지표가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점의 금리 결정 어려움을 줄이려는 것이다. 제도를 보완해 경제 상황 변화에 가장 효율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금통위의 결정을 이끌려는 노력이다. 4명의 신임 금통위원들이 고액 연봉만 받으며 제 할 일 못하는 꽃보직 이미지를 떨쳐내고 경제 분야 최고의 현인클럽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권위를 쌓아보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막스 베버가 정치인들에게 던진 것

독일의 정치ㆍ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한다고, “그 어떤 상황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만년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전성우 옮김, 나남출판)에 그렇게 썼다. 

저 책은 1919년 1월 독일 뮌헨대 진보학생단체 ‘자유학생연합’이 주최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에서 베버가 한 강연을 엮은, 정치 철학의 고전이다.(1917년 11월의 강연 저작 <직업으로서의 학문>도 있다.) 

그는 국가를 목표나 기능이 아닌 특수한 수단, 즉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 주체로 규정했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자는 그러므로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135쪽) 그 힘을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해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 그의 ‘열정’은 비창조적인 흥분 즉 개인적 자기 도취와 구분되는 ‘대의에 대한 뜨거운 확신’이다. ‘책임의식’은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을 위험하고 파괴적으로 휘두르지 않게 하는 덕목이다. ‘균형감각’은 일종의 거리감이다.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107쪽)

더불어 그는 정치인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특히 책임 윤리를 강조했다. 신념을 갖되 정치의 결과가 신념(의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난해선 안 되며, 인간이란 어리석고 비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정치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의 강연은 1차 대전 패전 독일의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이뤄졌다. 직업, 나아가 소명(vocation)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저 높다란 기준에 비춰 현실은 그를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택한 학자답게 끝내 냉정과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1864년 오늘(4월 21일) 태어나 저 강연 직후인 1920년 6월 14일 별세했다. 향년 56세.

2.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TV사극의 대부 신봉승

1961년 국방부가 300만 환을 내걸고 시나리오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3억 원 넘는 상금을 거머쥔 당선자는 강원 강릉의 한 초등학교 교사. ‘현대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그가 새 장르에 도전한 것은 시만 써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금을 받고 의기양양해 서울의 유명 양복점에서 친구 20여 명의 옷을 맞춰주며 통 큰 인심을 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원고청탁서에 치여서 죽는가 보다’라며 내심 걱정한 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 어디서도 청탁은 오지 않았고 그는 조용히 강릉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시나리오를 쓴 경험은 훗날 그가 ‘사모곡’ ‘연화’ ‘별당아씨’ 등 대한민국 TV사극의 1인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제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원로극작가 신봉승 씨의 얘기다. 

▷그가 등장하면서 야사 중심의 사극은 방대한 독서와 고증을 통한 정통 역사물로 물꼬를 트게 됐다. 만 쉰 살 때부터 8년간 방영된 대표작 ‘조선왕조 500년’의 모태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되기 전이라 혼자서 떠듬떠듬, 때론 한학자의 도움을 빌려 2, 3회 원전을 완독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모두 413권. 하루 100쪽씩 읽어도 꼬박 4년이 걸린다. 웬만해선 진력이 빠져 그거 다 못 읽는다. 나는 40년 세월을 그걸 붙들고 살았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역사 고증과는 담쌓은 사극이 주목받는 시대다. 역사적 사실과 인문적 상상력의 만남으로 정사(正史)의 대중화에 기여한 그의 상실이 아쉽다. 사팔뜨기 간신으로 폄하된 한명회나 부인에게까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고 알려진 신숙주는 신봉승 사극을 통해 재조명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는 식민사학에 짓눌린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점에 자부심을 표시했다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그가 남긴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제 맘대로 한 적이 없다. 선비들은 임금에게 직언하고 배운 대로 행했다. 신하들이 임금을 무턱대고 따라 한 적이 없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수덕여관

예산 수덕사에 종종 간다. 수덕사의 매력은 단연 대웅전(국보 49호, 고려 1308년)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맞배지붕의 간결함과 우직함. 선(禪)의 사찰에 걸맞은 모습이다. 요즘 수덕사에 가면 대웅전 못지않게 일주문 왼편에 있는 수덕여관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수덕여관을 둘러볼 때마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 “어떻게 절 앞에 여관이 있어요?” “예전엔 출가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잠도 자고 그랬단다.” “여기가 바로 고암 이응노 화백이 살았던 곳이야. 저기 저게 문자추상 석각(石刻)이고….”

수덕여관 하면 흔히 고암 이응노를 떠올린다. 이응노가 1945년 이 여관을 매입했고,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이곳에서 요양을 했으며 그때 문자추상 석각을 남겼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응노보다 더 절절한 사연으로 얽혀 있는 사람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이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7년 말 수덕사로 일엽 스님을 찾아가면서. 당시는 나혜석이 ‘이혼고백서’ 발표 등으로 인해 가부장적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신이 피폐해질 때였다. 나혜석과 동갑내기 일엽은 신여성의 선두에서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외쳤으나 1933년 출가해 수덕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나혜석은 수덕사에서 출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4년까지 수덕여관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림도 그렸다. 자식이 보고 싶을 때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도회로 나갔으나 전남편 김우영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만 했다. 간혹 서울의 오빠 집에 들렀으나 돌아온 건 오빠의 냉대였다. 나혜석은 비극의 바닥으로 빠져들었다. 동공은 풀어지고, 손은 떨렸다. 뇌졸중이 심해 잘 걷지도 못했다. 수덕여관을 떠나 이곳저곳 전전하다 1948년 서울시립남부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최근 나혜석 평전을 읽었다. 선구적이었기에 오히려 비극과 파탄에 이른 나혜석의 삶. 책장을 넘길수록 애처로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평론가 이구열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조선사회의 도덕적 형벌은 이토록 가혹하였다. 이 땅의 근대 문화와 새로운 사상에 그토록 많은 공헌을 남긴 선각의 여성이 단지 한때의 과오로 인해 그처럼 가혹한 비극의 심연에 처넣어져 모진 종말의 길을 가게 될 때, 지난날 그녀가 항시 사랑했던 조국 조선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독립이 이루어졌다. 3·1운동에도 가담했고 만주에선 압록강을 넘나들던 항일 독립투사들의 내왕을 도왔던 나혜석이 그 감격을 어디서 혼자라도 외치기나 했을까.”

지난해 말 나혜석의 막내며느리가 나혜석의 ‘자화상’과 ‘김우영 초상’을 고향인 수원시(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기증했다. 막내아들인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의 유지(遺志)에 따른 것이다. 생전에 나혜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막내아들이었다. 그 기증은 어쩌면 나혜석과 막내아들, 나혜석과 세상의 화해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나혜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에게 드리운 편견을 걷어내려는 움직임도 많다.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를 조성했고 집터도 단장해 놓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수덕여관이다. 이곳은 나혜석의 비극적인 흔적 가운데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수덕여관엔 나혜석에 관한 기록이나 기념물 하나 없다. 28일은 나혜석 탄생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혜석의 관점에서 수덕여관에 좀 더 주목해야 할 때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우렁각시

퇴근하여 집에 오면 종종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식탁 위에는 몇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오늘도 다녀갔구나.” 가슴 저 밑바닥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마움이 치솟지만 그렇다고 얼른 전화하여 “고마워요!” “힘든데 뭐 하러 자꾸 그래요”라는 말로 넘기는 것이 싫어서 꿀꺽 말을 삼켜버리고 만다. 벌써 5년째다.

“어머님이 생전에 간곡하게 부탁하셨어요. 나 없으면 상심하여 몸 상할까 걱정이다. 네가 자주 들락거리며 네 시누이 좀 살펴줘라.” 

5년 전 봄날, 엄마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새언니가 전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머님이 그러셨다고 한들 서로 바쁘게 사는 마당에 그 말씀 받들지 않으면 누가 뭐랄까. 그런데 고지식한 새언니는 그 이후 꼬박꼬박 한 주에 한 번꼴로 식구가 모두 외출하여 비어 있기 일쑤인 우리 집에 우렁각시처럼 다녀간다. 

실은 새언니도 처음 결혼했을 때는 나처럼 살림이라곤 전혀 모르는 왕초보여서 우렁각시가 필요했다. 나의 엄마는 그런 며느리를 못마땅해하기는커녕 계속 김치와 밑반찬을 실어 나르며 기꺼이 딸처럼 품어주셨다. 엄마가 연로하여 병석에 눕기 전까지 그렇게 며느리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이 결국 딸에게 우렁각시를 남겨주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귀가하여 아침과 달라진 깔끔한 집을 보면 마치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살짝 다녀가신 듯해 눈물겹고 시어머니에 대한 새언니의 지극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소리 없이 나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누군가를 꿈꾼다. 그러나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을 태워 재로 남는 뜨거운 헌신이 없이는 결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의 물음은 뜨끔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렁각시가 다녀간 날, 시인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까지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면 한 장의 연탄보다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엄마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나셨지만 한평생 뜨겁게 정성을 다했으므로 그 온기가 지금까지 남아 나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한다. 

5. [중앙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다이어트 집착하는 나, 정말로 비정상인가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하는 ‘셀카’나 다이어트용 샐러드·닭가슴살·콩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이어트는 여성들과 대화할 때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학벌·직장 경쟁처럼 이젠 다이어트나 몸으로도 경쟁하게 된 것 같다. 다이어트는 원래 ‘식습관’이란 뜻인데, 요즘엔 살을 빼고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가꾸기 위한 극단적인 식생활을 의미하게 된 듯하다.

나도 요즘 몸 관리에 많이 집착하는 것 같다. 과거 스페인에서 잠시 살 때도 더 좋은 몸, 더 운동을 잘하는 몸을 만들겠다며 1년 동안 채식만 하기도 했다. 채식을 하면서도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은 방법, 복근이 더 빨리 생기는 식생활을 하루 종일 연구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다이어트는 생활의 전부가 됐다. 심지어 피자를 주문할 때 치즈를 빼 달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살이 찔까 봐 걱정이 돼서다. 주변의 놀림을 당해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결국 친구들을 만날 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더 많이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태권도나 합기도를 수련할 때도 어떤 동작을 하면 더 멋진 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무도 정신을 잠시 잊은 셈이다.

그러다 어느 날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주제를 다룬 글을 읽다 반성하게 됐다.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바람에 친구·가족에 집중할 시간이 줄면서 인간관계가 나빠졌으며, 내 매력만 생각하다 우울해졌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결국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머리는 다이어트 관련 고민으로 복잡해졌고 마음은 우울해졌다. 그럼에도 더 멋진 몸매를 만들면 사람들이 나를 다시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게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숨은 동기였다. 나는 자신감이 떨어졌고, 남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었으며, 늙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몸을 관리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며 운동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만 자연이 준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각자 좋아하고 열정을 느끼는 운동을 골라서 꾸준히 해야 몸이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질 것이다. 식사 때마다 칼로리를 따지고 몸매 만들기에 집착하는 건 건강한 행동이 아니다. 몸매보다 성격이,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제발 먹는 재미는 잊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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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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