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신공항 계획
영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결국 김해공항으로 귀결되었다. 공항을 다른 곳에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게 타당성 연구용역을 수행해 온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어제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김해공항의 활주로와 터미널 등 주요 시설을 대폭 신설하고 공항 접근 교통망도 함께 개선하는 방법으로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원활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신공항을 추진한다는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게 따져보고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서 서둘러 계획이 시작된 탓이다. 그동안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나뉘어 신공항 유치를 강력 주장하던 주변지역 주민들이 공연히 헛심을 쓴 꼴이라고 생각하니 허탈하기만 하다. 용역결과 발표를 앞두고 양측의 치열한 마찰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도 결코 작지 않았다.
이처럼 영남권이 서로 갈라져 불필요하게 대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계획이 처음 제시됐을 때부터의 추진 과정을 명확히 공개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없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 건설을 내걸었다고 해도 현실적 판단 없이 무작정 쫓아간 것은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운 우리 정치권과 무책임 행정에 대한 경종이나 다름없다. 김해공항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나눠먹기식의 선심성 계획이 발동했던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다. 신공항 건설에 1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도 보통 일은 아니다. 현재 지방공항 가운데 상당수가 운영적자에 시달리는 것이 주먹구구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번 결과에 승복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들부터 감정적인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무산에 따라 상실감에 빠진 주민들을 공연히 자극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서로 대립했던 주민들끼리도 서로 웃으며 조속히 손을 맞잡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이번 제시된 방안을 토대로 김해공항 확장·보완 작업도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2. 공수부대 '학살부대' 딱지 온당치 않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또다시 야권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그제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6·25 기념행사로 기획된 광주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단을 동원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은 지난달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기념식 제창이 불허되자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광주 향토부대인 31사단 150명과 11공수특전단 50명의 동원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6·25 발발 66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와 군인, 시민, 학생 등이 참여하는 ‘호국보훈 한마음 퍼레이드’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펼쳐지지만 광주에선 군인이 행진 대열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한참 어색해진 모양새다.
야3당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공수부대원들을 광주 거리에 풀어놓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고, 국민의당 소속인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왜 광주시민을 자극하는 행동만 하는지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박 처장 해임과 광주시민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도 공수부대는 ‘학살부대’라며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3년 전에는 아무 탈 없이 치른 행사가 이번에는 왜 문제가 되는지 도대체 영문을 이해하기 힘들다. 당시 공수부대의 특공무술 시범 등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며 행사를 더 확대해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는 보훈처의 설명을 듣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학살부대’라는 것도 가당찮다. 공수부대는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전력이다. 훈련이 강도 높기로 이름난 데다 자부심을 갖고 자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5·18 때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으나 그 책임은 당시 못된 정치군인들에게 돌리는 게 옳다. 우리의 핵심 전력에 ‘학살부대’라는 험악한 딱지를 붙여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수부대원 중에는 광주 출신 젊은이들도 없지 않을 텐데 그들도 학살부대원이란 말인가. 불철주야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공수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꺾는 자충수는 어리석은 국민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서울신문]
3. 정부도 민변도 탈북자 신변 보호에 소홀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에 근무하다 지난 4월 탈북한 여종업원 12명이 자유 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신청한 인신보호구제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해서다.
민변은 국정원이 이들 여성 탈북자를 지나치게 외부와 차단하는 등 수용·관리 방식이 비정상적인 점을 내세워 이들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국정원이 이들의 탈북 사실을 전격 공개해 ‘기획 탈북’이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국정원은 이후 민변의 탈북자 접견 신청과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연구자들의 면담 요청을 모두 불허한 상태다. 또 지금까지 고위급이 아닌 탈북자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조사 뒤 하나원에 보내 남한 정착 교육을 하던 것과 달리 여종업원들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한 것도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익명의 당국자에 의해 “북한의 선전공세 등을 고려해 신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정도다.
국정원의 탈북자 공개와 이후 관리 방식은 분명히 전과 달라 보인다. 총선 닷새 전 공개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신상을 먼저 공개한 점이 특히 그렇다. 신상이 노출된 뒤 북한은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을 내세워 남측에 의한 ‘납치극’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정원이 오히려 탈북자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협한 셈이 됐다. 한데 이제 와서 가족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접촉을 차단하니 의혹만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필요한 정보는 공개함으로써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민변이나 통일연구원의 접견이나 면담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민변의 법적 대응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 경위나 이후의 관리 상황이 이상해 보인다고 이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무리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종업원들은 법정 진술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민변은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한 탈북자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인신보호구제 심사를 신청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체제하에서 작성된 위임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부 당국과 민변 모두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탈북 관련 의혹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4. 통화 스무 번에 전관예우 없다니, 특검으로 밝혀라
혹시나 했던 검찰의 홍만표 수사가 역시나로 끝날 기미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경찰이 밝힌 수사 결과는 허탈하기 짝이 없다. 검찰 고위층을 상대로 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는 실패했다는 결론이다. 홍 변호사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과 공소사실이 달라진 것도 없다. 탈세액이 고작 5억원 늘어났을 뿐이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홍 변호사에게 전관(前官) 특혜를 챙겨 준 현직 검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값을 앞세워 의뢰인들을 현혹했을 뿐 로비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쓴 입맛이 다셔지는 수사 결과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전관의 입김이 전방위로 통했을 정황은 곳곳에서 여실했다. 정 대표의 도박 혐의에 검찰은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 대표가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빚을 갚느라 회삿돈을 횡령한 부분도 공소사실에서 빠졌다. 정 대표의 보석신청 때도 법원이 적절히 판단하라며 호의적 의견을 제시한 것도 검찰이다. 윗선의 신호를 받지 않고서는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의혹들이다.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듣자면 우리 사법부는 전관예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당시 원정 도박 수사의 책임자이던 최윤수 3차장 검사를 두 번이나 만났고 20여 차례 통화했다. 관련 수사관을 접촉하기까지 했다. 전관 변호사가 수억원의 로비 자금을 받아 백방으로 애썼으나 현관들이 싸늘하게 거절해 실패했다고 설명하지만, 검찰도 속으로는 낯이 부끄러울 것이다. 외형상 검찰 지휘부가 구속 수사를 밀어붙였다고 로비가 먹히지 않았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옹색하다. 300억원대 해외원정 상습 도박자의 형량이 터무니없이 줄었다면 누가 봐도 명백히 ‘성공한 로비’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서는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연루 의혹을 받는 최 차장검사는 서면 조사, 박성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 대상에서조차 제외했다. 검찰은 전관과 현관(現官)의 불법 커넥션을 들춰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대목은 일개 전관 변호사의 일탈이 아니라 고질적인 현관 유착 비리다. 국민 신뢰는 바닥을 기거나 말거나 제 식구 감싸기 수사에 인이 박인 검찰에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 국회가 지체 없이 특검 카드를 뽑아야 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5. 수능 '족집게' 강사 전면 조사할 필요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모평) 문제 유출의 파장이 간단찮다. 경찰이 어제 문제 유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학원 강사 이모(48)씨와 현직 교사들의 검은 커넥션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서다. 수능 ‘족집게’를 내세운 유명 강사의 뒷거래 유혹에 현직 교사들이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시험 문제 사전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이씨는 이른바 ‘일타강사(과목 매출 1등 스타강사)’ 출신이다. 그간 ‘적중률 마케팅’을 통해 인기를 끌었는데 알고 보니 도덕 불감증에 빠진 교사들이 뒤에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특정 작품이 나온다고 콕 집어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모평 검토위원인 송모 교사가 또 다른 박모 교사에게 출제 내용을 알려줬고, 박 교사(구속)가 이를 이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이씨와 교사들의 은밀한 거래도 드러났다. 수년 전부터 교사들이 출제한 국어 문제를 넘겨받아 자신의 강의 교재에 실은 뒤 3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강사들의 문제 사들이기는 학원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이나 모평 출제 참여 가능성이 큰 교사나 EBS 교재 저자에게 문항당 최고 10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출제교사 풀이 적은 데다 EBS·수능 연계율이 70%나 돼 이들의 출제 패턴이 수능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몇 문제만 적중해도 단번에 족집게로 알려져 돈방석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1993년 수능 시행 이후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9월 모평과 교육청의 연합학력평가 , 수능을 치르는 과정에서 족집게들의 몸값만 치솟았다. 그래도 교육부는 의심도 않고 관리·감독에 손을 놓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참에 족집게 강사나 일타강사의 실태를 전면 조사할 필요가 있다. 사전 정보 없이 실력만으로 예상 문제를 콕 짚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번 사건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사들의 윤리의식도 요구된다. 교사가 흔들리면 절대 공교육이 강해질 수 없다.
[매일경제]
6. 한국 배터리·한류 방송 막는 중국의 비관세장벽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생산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인증을 따내지 못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든 '모범규준' 4차 인증 심사에서 31개 업체가 통과했지만 국내 업체들은 몇 개 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해 탈락했다. 미인증 업체에는 2018년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업체들은 그 이전에 인증을 따내야 한다. 중국 측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석연치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초에도 보조금 대상 전기버스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만 허가하고, 한국 기업의 삼원계 배터리는 배제하기로 해 차별 논란이 일었다. BMW, 제너럴모터스 등이 삼원계를 쓰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자국 기업 밀어주기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해외 드라마의 온라인 편성을 제한한 데 이어 위성방송국 황금시간대에 외국 판권을 수입해 리메이크한 프로그램 방영도 규제하기로 했다. 한류 드라마와 한국 방송포맷 수출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다.
또한 화장품 위생감독 조례를 수정해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적용하는가 하면 특정 품목에 강제성 인증제도 마크 부착 요구, 조제분유 관련 규제 강화 등 비관세장벽을 갈수록 높게 쌓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수출 호조가 예상됐지만 국내 기업들의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업들이 이런 첩첩규제를 넘기 위해서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중국의 비관세장벽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비관세장벽을 해소하지 못하면 늪에 빠진 대중 수출은 헤어나오기 힘들다.
7. 김종인의 `포용적 성장` 교각살우의 愚는 피해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제 도입 등 '포용적 성장'을 집권 전략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재벌개혁을 하지 않고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 개혁,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기본소득제 도입, 기초연금 30만원으로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감세 폐지 등을 제시했다.
전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이어 김 대표까지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들고나온 것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뜻이다. 소득·노동·부동산·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위 10%가 부(富)와 양질의 일자리, 교육 기회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해법이다.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자칫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명성 경쟁,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경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재벌을 양극화 주범, 사회의 공적으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곤란하다.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을 하고 글로벌 경제전쟁의 선두에 서는 것은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말하는 재벌개혁이 재벌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 본연의 역동성과 혁신·도전정신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과거 공정, 동반, 상생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경제민주화 조치들이 되레 시장을 죽이고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독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제 성장 없이 기초연금, 최저임금 인상 재원이 나올 리 없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 대통합을 위해서는 재벌개혁 못지않게 귀족노조 설득, 노동개혁도 시급하다. 균형 잡힌 시각, 정교한 정책 설계, 철저한 실용주의만이 포용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동아일보]
8. '김해 확장'으로 되돌아간 영남권 신공항, 합리적 결정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해온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가 지금의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어제 발표했다. ADPi는 “옵션 2개(밀양, 가덕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로’에서 새로 시작했다”며 “가덕도, 밀양을 포함한 영남권 후보지 35곳을 놓고 항공 안전과 경제성, 접근성,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산 가덕도나 경남 밀양 중 한 곳을 택해 영남권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정부 계획은 취소됐다. 하지만 ‘김해공항 리모델링’을 분명한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완전 백지화가 아니다. 국토부도 단순한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김해 신공항’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7일 본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해의 공군기지를 한적한 여수공항으로 옮기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임에도 상식과 이성이 발붙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옳았음이 이번 ADPi 용역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밀양이 고향이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천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전문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는 정치적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이전부터 나왔던 얘기다. 2013년 한국공항공사도 김해공항 확장을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하려는 정부의 물타기 전략이라며 무시됐다. 일반적으로 가덕도는 접근성, 밀양은 안전성과 환경 문제 등이 지적된다. 2011년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에서도 밀양과 가덕도가 모두 기준 평점에 미달해 백지화됐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곁에 두고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10년간 영남권이 둘로 갈려 지역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국력을 낭비한 것이 안타깝다.
이번 결정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텃밭인 영남권이 분열되는 것을 우려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일각의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신공항 문제를 놓고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울산에서 과열 경쟁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지역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공항 10년 논란’과 함께 앞으로는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이 국책사업을 지역 이기주의에 이용하는 포퓰리즘 관행도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 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논란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지역과 정서가 찢어지는 후유증을 겪을 만큼 겪었다. 내년 대선주자들은 국책사업을 절대 선거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부터 해야 할 것이다.
9. “전관예우 없이 年100억” 검찰발표 특검으로 검증하라
검찰이 어제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홍 변호사의 ‘현관(現官) 로비’는 실패였다고 결론 내렸다. 홍 변호사의 혐의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을 맡아 검찰에 구명 로비 명목 등으로 5억 원을 받고, 선임계 없이 62건의 형사사건을 ‘몰래 변론’해 세금 15억여 원을 탈루했다는 것 정도다.
홍 변호사가 접촉한 정운호 사건 수사 책임자 중에는 최윤수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현 국가정보원 2차장)도 있다. 지난해 두 차례 만나고 20여 차례 시도한 끝에 6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홍 변호사가 ‘선처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엄정 수사’ 방침만 전해 들은 것으로 검찰은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사책임자와 피의자 변호의 이런 접촉 자체가 특권이고 전관예우(前官禮遇)다.
현직 검사들과의 ‘관계’ 없이 홍 변호사가 한 해 100억 원 가까운 수임을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정운호 사건만 해도 검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고, 기소 때 횡령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의 구형량이 1심보다 6개월 줄고, 보석을 재판부 의지에 일임한 ‘적의(適宜)처리’ 같은 상식에 반하는 처분이 꼬리를 물었다. 현직 검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서면으로 또는 ‘적절한 방법’으로 확인됐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제 식구 감싸기요, 면죄부 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판에 ‘실패한 로비’라는 검찰 결론에 누가 수긍할지 모르겠다.
검찰은 당초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에게 수사를 맡길 것을 검토했으나 어차피 국회에서 특별검사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해 포기했다고 한다. 특검이 다시 수사해야 그나마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10. 改憲특위, 국회만이 아닌 汎국민적 기구로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1일 국회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행 헌법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승자 독식 권력 구조' 등을 들었다. 그는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며 상법 등 법 개정에도 당장 착수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제안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사(開院辭)에서 개헌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한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들을 향해 헌법 개정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이 제안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당도 아직 입장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편이다. 현행 헌법을 만든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될 가능성이 조금씩이나마 커지는 상황이다. 만약 특위를 구성해 개헌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경우 내년 대선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이 구시대적 대결 정치에 질릴 만큼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중임제냐,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냐 같은 권력 구조 문제에만 관심이 국한되어 있을 뿐 바로 이 시점에 개헌이 왜 필요한지, 개헌을 한다면 얼마나 광범위한 내용이 되어야 할지 같은 '개헌의 본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개헌 논의에 들어간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 아래의 29년을 총결산하는 작업이 앞서야 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민족사적 작업이라는 생각도 있어야 한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기본권이나 복지·환경, 경제 양극화 등에 대한 전 사회적 논의도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민 다수가 환영하는 가운데 개헌을 끝내고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에너지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다양한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범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히 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진행되면 정작 개헌에 이르지도 못하고 아까운 기회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다음 대선에서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의 흥정과 거래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유레카]로봇의 얼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에게 사람 몸과 눈코입의 쓸모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고대 서양인들은 신의 모습을 사람처럼 생각했다. <성서> 창세기와 그리스 신화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인간 정신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신학자들이 신의 모습을 고민했다면 로봇설계자들은 로봇에 어떠한 생김새를 줄지 고민 중이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섬뜩함의 계곡’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로봇의 모습이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친밀도 증가를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친밀도가 추락하는 골짜기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판에 들어간 감정인식 인간형 로봇 ‘페퍼’는 커다란 눈과 귀가 있지만, 사람과는 다르게 디자인됐다. 사람이 유사성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귀엽고 친근한 표정을 짓는다. 미국 나이트스코프가 만든 케이5(K5)는 달걀처럼 생긴 경비용 로봇이다. 이 로봇이 쇼핑센터 등에 배치돼 사람들을 접촉하자, 신기하고 귀엽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손길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겼다.
섬뜩함과 두려움을 피해 로봇을 온순하게 디자인한 결과의 부산물이다. 2014년 일본 오사카의 쇼핑몰에 로봇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로봇을 때리고 발로 차는 로봇 학대 현상이 보고됐다. 2015년 차량을 얻어 탈 수 있도록 운전자와 소통기능을 갖춘 히치하이크 로봇 히치봇은 캐나다 횡단에 성공한 뒤 미국 횡단에 나섰다가 금세 머리와 팔이 잘린 채 발견됐다. 로봇과의 공생이 가시화하면서, 어떤 생김새와 기능을 부여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가 과제가 됐다.
2. [서울신문][공희정 컬쳐 살롱]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되면 저절로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렇지 않았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도 삶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왔다. 그 낯섦 앞에서 뻘쭘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이 시대 청춘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퇴장 시기에 다가선 어른들을 꼰대라 부르며 쉰 떡 취급을 한다. 하기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엉덩이에 뿔 난 존재가 청춘들이었으니 그들의 말장난은 뽑히지 않은 뿔 때문인 듯도 하지만, 하여간 우린 어쩌다 어른이 됐을까.
사전적 의미의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다 자랐다는 것의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면 비로소 어른이 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른의 범주에 끼워 주지 않았다. 그건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녀는 딸이면서 며느리이고, 엄마이면서 딸이 된다. 아이를 품에 안고 보니 자신에게 엄격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되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다 보니 바쁘고 힘들다며 전화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친정엄마 생각에 시부모님에게 향하는 마음이 더 애뜻해지기도 한다. 역지사지의 힘은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를 솟아나게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혜만 쌓아 가는 줄 알았더니 고집도 함께 쌓아 갔다. 자꾸만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의 삶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유일한 기준인 양 주장을 앞세운다.
쉽사리 타협점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턴 “내가 살아 봐서 안다”는 이유로 빗장 풀린 간섭이 시작된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이 어른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부모 자식 간 생각의 차이를 짚어 보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생겼나 보다.
금쪽같은 내 자식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한탄하는 부모와 한없이 커 보이던 부모님이 왜 이렇게 시시해 보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십대들이 주인공이다.
웃으며 등장해 사연을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집이었다면 이미 여러 번 고성이 오갔을 것이다. 집안을 촬영하는 관찰 카메라를 보면서도 처음엔 내 자신보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행동만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들의 조언이 오가며 서서히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자 슬슬 상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걸어가야 할 자기의 길을 둘러보게 됐다.
사실 어른들도 처음 살아 보는 삶의 순간순간이 벅차다.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해야 하는 일들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빠뜨리고 잊어버리고, 실수 연발이라 창피하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안 풀릴 때는 아이처럼 두 다리 버둥거리며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지혜로움은 놓친 버스처럼 꼭 한 템포 늦게 찾아와 자신의 미련함을 탓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삶,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이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가 보다. 아름답지 않은 인생의 민낯을 보듬고 살아가야 하니까.
3. [머니투데이][우보세] 1토막에 1만6000원 '제주도 갈치'
세계자연유산이 모여있는 제주도는 내국인에게도 설레는 외국 휴양지 같은 자랑스러운 우리 땅이다. 지난주 취재차 다시 방문했다. 음식점을 찾기 위해 블로그 등을 뒤졌더니 여러 군데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 자료만 보면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중 A음식점을 찾아 방문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갈치구이 가격이 1만 6000원. “(좀 비싸긴 하지만 관광지니까) 한 마리 시켜보지”하고 주문하려던 순간, 그 가격은 한 마리가 아닌 한 토막이었다.
‘얼마나 크길래’하며 오기 반으로 주문하자, 이번엔 공기 밥은 가격에서 제외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하소연했다. 제주도 갈치가 요즘 어획량이 지난해에 비해 반으로 줄어 가격이 치솟은 데다, 1인당 제공되는 갈치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만큼 희귀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래도, 1토막에…” 했더니, 그는 “그건 좀 비싸다”며 “보통 (같은 크기) 5토막에 5만 원 정도가 관광 음식점에서 받는 금액”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순간 머릿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말한 “김밥 한 줄에 1만 원”이 스치며 갈치도 그런 종류의 바가지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김밥은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는데, 갈치는 구이일 뿐인데도 가격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갈치는 마리 당이 아닌, kg당으로 팔린다. 외지인이 싸게 갈치를 먹겠다고 수산시장에서 무게를 잰 뒤 정당한 가격을 치러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사례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한 관광객은 “2kg어치 갈치를 샀는데, 알고 보니 무게를 잴 때 바구니 밑에 600g짜리 납이 있었다”며 “항의를 해도 ‘원래 그런 것’이라는 그쪽 분위기에 되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관광객이 SNS에 올라간 ‘맛집’만 따라가다 보니, 다른 음식점들이 다들 고사 직전”이라며 “극과 극의 가격이 낳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고 혀를 찼다.
문제는 갈치 가격이 아니다. 관광지라는 ‘특수’에 기대어 가격 편차가 심해지는 극심한 환경이 또 다른 갈등 구조의 사회를 잉태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관광객이 적어 ‘폐허’로 평가받던 제주도가 관광지로 인기를 끌자, 외지인의 돈이 물밀 듯이 밀려들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는 것이다.
서귀포시에서 만난 한 제주도 도민은 “한 달에 이주민이 1000명 정도 내려오는데, 옆 사람 보지 않고 건물 올리는 데만 열중하면서 콩가루 도시가 된 기분”이라며 “관광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인정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씁쓸해했다.
관광지는 돈을 벌겠다는 공급자와 돈을 쓰겠다는 수요자의 대칭성이 중요하다. ‘버는 것’이 목표의 전부가 되는 관광지는 추한 관광의 상징으로 남을 뿐이다.
4.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조언에 사로잡힌 육아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윤재와 아빠는 각각 한 손에 장난감 로봇을 들고 놀고 있다. 아빠의 로봇은 악당, 윤재의 로봇은 지구특공대. 윤재의 로봇이 아빠의 로봇을 공격하는 것 같더니, 아빠의 로봇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빠는 “각오해라”라며 윤재의 로봇을 온몸으로 부딪쳐 박살내버렸다. 화가 난 윤재는 아빠를 닥치는 대로 발로 찼다. 아빠는 잠시 생각했다. ‘친구 같은 아빠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참아야 하는 거야? 같이 때려야 하는 거야?’
영주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가계부를 쓰고 있다. 이번 달 교육비가 무려 3배나 초과했다. 전집을 안 샀으면…, 특별학습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논술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잠시 후회가 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가 이 돈 아까워하면 안 되지. 무릇 부모는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하는 거니까.’
민철이가 동생을 때렸다. 엄마가 왜 때렸는지를 물었다. 아끼는 조립식 장난감을 동생이 망가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민철이가 그 장난감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에, 동생을 때린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차마 민철이를 혼내지 못했다. “그래, 그랬구나. 민철이가 많이 속상했구나”만 되뇌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제 TV에서 본 전문가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아는 너무 많은 명제에 사로잡혀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혹은 아이를 잘 키워낸 유명인들이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라는 명제를 쏟아놓는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들이 육아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아 명제는 너무나 짧다. 중요한 내용이 압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 구절만 보아서는 아무리 좋은 명제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명제의 ‘단어’에만 집착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친구 같은 아빠’는 아빠들이 워낙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친구처럼 친밀한 시간을 되도록 많이 보내라는 뜻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에 대한 깊은 믿음과 단단한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친구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명제도 무조건 빨리 많이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능력, 수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이나 인성과 관련이 깊다. ‘아이 마음 읽어주기’는 아이의 생각, 마음, 감정 등을 수긍해주고 존중해주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수긍은 하되, 잘못된 행동은 안 되는 거라고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은 아니다. 아이가 위험할 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줄 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할 때는 훈육이 먼저고, 마음 읽기가 나중이다. 마음 읽기는 아이의 역성을 들어주기가 아니다.
‘좋은 부모’라는 말도 그렇다. 도대체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너무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좋은’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육아의 모든 것에 ‘좋은’을 적용하려고 들면 과잉 육아를 하기 쉽다. 당연히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진다. 쉽게 화나고 자주 불안해진다.
육아 명제를 따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명제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내 육아에 적용하기에 앞서 ‘내 육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기간은 최소 20년이다. 그 긴 여정 동안 아이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도와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는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될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나의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 기준, 개념들이 정리된다. 그것이 쌓이면 가치관이나 철학도 생길 것이다. 명제는 그 이후에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도 육아 명제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광고 카피처럼 바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자극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 육아의 철학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자. 없다면 그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육아 명제는 ‘어떻게’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육아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런 명제가 왜 나왔을까. 나의 육아에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뭘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하면, 명제의 좋은 점만 나의 가치관에 녹아들어 나의 가치관이 확장될 것이다. 더불어 어떤 육아 명제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어느 연극 제작자의 죽음
뜻밖이었다. 지난달 말 극단 ‘적도’의 홍기유(46)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이다. 딴 사람이라면 ‘이 바닥 워낙 힘드니깐…’이라며 솔직히 한 귀로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인은 꽤 잘나가는 프로듀서였다. 한때 ‘연극열전’을 기획해 대학로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웃음의 대학’ 등 히트작도 몇 개 갖고 있었다. 연극인이라면 다들 오태석(연출가)이나 윤석화(배우)만을 떠올릴 때 엄연히 제작자도 있으며 “연극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자살하다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죽기 나흘 전에도 같이 술 마셨어요. 평소처럼 껄껄댔는데 내 참….” 눈치 못 챈 지인들은 죄책감마저 든 듯싶었다. 손상원 정동극장장은 “힘들어도 티 낼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이 세다”고 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을지 몰라도 물려받은 땅을 대부분 저당잡히고, 빚마저 계속 쌓이면서 속으론 새까맣게 탄 모양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어떡하든 자기 돈으로 꾸려가던 그도 막판엔 “투자 좀 해 달라”고 몇 명에게 애원했다는 후문이다. 그마저 거절당하면서 무력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연극이 가난하다는 걸 누가 모르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까. 기획자 S는 “‘옥탑방 고양이’ 같은 롱런 레퍼토리를 내놓지 못하면 무조건 쪽박”이라고 일갈했다. 제작자 H는 “어쩌다 하나 터져봤자 1, 2억 번다. 나머지는 다 적자니 결국 작품을 할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했다. “아니 쇼 비즈니스 하면서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누군 100억원 채무 있어도 잘만 버티던데. 아니면 나 몰라라 하면서 파산을 하든지. 홍기유는 너무 깔끔해.” 애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로 제작자가 헉헉대는 것과 달리 연극계의 전반적 풍경은 의외로 평온하다. 아니 상차림만 보면 더 풍성하다. 국·공립단체가 연극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국립극단)을 필두로 남산예술센터가 뒤를 잇더니 최근엔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까지 적극적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공공기관이 일일이 수익성까지 따지진 않을 터. 상대적으로 넉넉한 예산 덕에 좋은 연출가와 배우도 모이게 마련이다. 넓은 의미의 연극 지원이다. 그런데 그 지원이 오히려 민간 제작자를 옥죄고 있으니 ‘지원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공에 비해 규모·자본력이 떨어진 민간 극단은 자연히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게 된다. 대학로에 1만원 이하 저가 연극이 범람하는 이유다. 공공은 고급으로 가는데, 민간은 덤핑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하여 홍기유의 죽음은 연극의 양극화가 잉태한 불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 상업 연극의 종언을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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