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인식
■ 서울시향(서울시립교향악단) 문제
■ 서금회 논란
■ 동화약품 50억 리베이트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인식
[한국일보 사설-20141108월] '비선실세 의혹' 대통령 인식 너무 안이하다
‘정윤회 문건’ 논란을 바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박 대통령은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 및 소속 예산결산특위 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 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또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서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문서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던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이 언론보도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하고, 일련의 의혹 제기를 사실상 ‘국정 흔들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으로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인사개입 의혹과 ‘비선 실세’ 사이의 권력다툼 의혹을 차단하기 어렵다. 검찰과 여당에 일종의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다는 논란만 부추기기 십상이다.
우리는 애초에 보도된 문건의 내용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사실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나 최종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건 보도 이후의 후속 보도를 통해 언론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문고리 권력’의 비정상적 인사 개입, 나아가 유진룡 전 장관이 직접 증언한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의 비정상적 경질 절차에 대한 의혹은 분명하게 실체를 밝힐 방법이 있다. 특히 유 전 장관의 증언은 박 대통령 자신의 말이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사실 여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박 대통령이다. 따라서 ‘정윤회 문건’뿐만 아니라 그에 뒤따라 제기된 다른 의혹 모두를 ‘터무니없는 얘기’로 돌리려면, 대통령을 포함한 당사자의 설명과 그 진실성을 뒷받침할 관련 정황이나 물증 제시가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문체부 국장과 과장의 실명을 거론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한 사실이 없음을 밝히지 못하고서는 그의 증언이 거짓말임을 국민에 납득시킬 수 없다.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했던 장관이나 참모와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 자체가 ‘나라 망신’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설명을 생략한 채 무조건 ‘터무니 없는 얘기’라거나 사실무근이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리 없다. 청와대 공식조직을 통해 명백한 반대증거를 내놓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일련의 의혹이 ‘국정 흔들기’이고, 현재의 경제상황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심각한 우려라면 더욱 신속하게 의혹들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정부 부처의 국장과 과장을 직접 손보는 게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심각성을 직시, 적극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8월] 여전히 ‘국정 농단’ 모르쇠 하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비선 실세’와 측근 비서들의 ‘국정 농단’ 논란에 대해 한 말은 실망스러울뿐더러 크게 걱정된다. 드러난 사실과 의혹조차 외면한 채 ‘자기 생각’에 빠져 우기기만 하는 듯한 대통령에게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책임지는 자세도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이던 정윤회씨와 이른바 ‘3인방’이라는 측근 비서들의 인사 전횡 및 국정 개입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국정 개입 의혹의 첫 보도 직후 청와대가 ‘찌라시’라고 폄하했던 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모습이다. 국정개입 논란의 검찰 수사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쏟아져나온 폭로와 의혹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듯하다. 드러난 사실 가운데는 대통령이 도저히 부인하기 힘든 일도 있다. 정윤회씨 부부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승마협회 감사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 경질까지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다는 당사자의 생생한 증언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나쁜 사람이라더라”라고 말했다니, 그렇게 하도록 한 사람이 애초 누구였는지 따지고 밝혀야 하는데도 청와대는 사리에 안 맞게 변죽을 울리는 변명만 하다 입을 닫았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조차 ‘찌라시’라며 외면한 꼴이다.
이것 말고도 비서 3인방 등이 정부 부처나 군·국정원·공기업 등을 가리지 않고 온갖 크고 작은 인사에 무리하게 개입해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다는 여러 보도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일축한 모양새가 됐다. 그런 전횡 탓에 국정이 뒤틀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소모적 의혹 제기”라고 아예 문제의 존재조차 부인한다면 국정 정상화는 기대할 수 없다.
비선 개입 논란이 이토록 커진 것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매우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이나 정부 안에서도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이 파다했던 터다. 웬만한 인사는 인사권자인 장관이나 기관장이 아니라 청와대와 비선이 행사한다는 말도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곪아가던 중에 정권 내부의 암투와 분열에 못 이겨 의혹이 물 위로 불거진 것이다. ‘국정 흔들기’나 ‘발목 잡기’라고 남 탓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 바로 옆에서 국정 농단과 전횡이 번연히 벌어지는데도 사실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3인방 등 문제의 근원을 잘라내고 주변을 쇄신해 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대통령의 심기만 맞추려 들 게 아니라 대통령이 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정 붕괴의 피해는 온 국민이 입는 것 아닌가.
[중앙일보 사설-20141208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안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사태에 “찌라시(정보지)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에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대단히 걱정스럽다. 현실과 민심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적어도 대통령의 발언은 “제 주변 인물, 얼마 전까지 거느리던 청와대 내부 인사와 전직 장관들로 인해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로 시작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검찰 수사로 말끔히 정리되거나, 대통령 혼자서 덮으려고 해서 덮여질 사안이 아니다. 유출된 보고서가 정보지의 루머를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건에 지목된 공직자들 가운데 김기춘 비서실장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몇 달간의 시차를 두고 사퇴한 결과가 ‘비선 의혹’의 합리적 의심을 더한다. 또한 문체부 전 장관의 폭로까지 겹쳐 장·차관 갈등, 승마단체 외압, 공기업 인사 개입을 포함해 통치권 전반으로 전선(戰線)이 확대됐다. 오죽하면 친박 3선의 한선교 의원이 “문체부 차관이 설쳐대면서…쿠데타…‘다 말아먹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경고했겠는가.
이미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2.7%가 비선 개입을 믿고 있다. 국민의 평균적 시각으론 청와대 안에서 찌라시 같은 보고서가 생산됐다면 무능한 것이고, 그런 사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만용으로 비칠 뿐이다. 국민은 이번 사태가 불투명한 통치 시스템이 곪아터진 결과이며, 과감한 청와대 수술을 기대하고 있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아무것도 겁날 일도 없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자칫 우리 사회의 상식과 대결할 수도 있다는 의미여서 더욱 두렵게 들린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와 함께 정치적 수습에 나서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김기춘 비서실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 대변인을 앞세우거나 뒷북 해명으론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 김 실장은 이번 사태 전개 과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청와대 비서실 전체를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다. 문제의 문건을 보고받은 뒤 후속 조치와, 왜 유출을 막지 못했는지부터 소상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김 실장은 또 대통령에게 심상치 않은 민심과 청와대 개편 방안도 정확하게 보고해야 한다.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들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개인기와 외치(外治)에 힘입어 국민적 지지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민적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았는데도 레임덕까지 걱정해야 할 분위기다. 현 정부 앞에는 공무원연금 개혁, 경제·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중요한 현안들이 쌓여 있다. 그런 마당에 국정 동력을 상실하면 국가적 비극이다. 김 실장의 어깨에 얹힌 역사적 책무가 무겁다. 문제는 그런 김 실장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08월] “찌라시에 흔들리는 나라 부끄럽다”는 대통령에게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관한 청와대 감찰 보고서의 진위는 아직 객관적으로 규명된 바 없다. 아마 그런 불투명성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검찰에 “루머”라고 수사 지침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은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대통령은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어제 “터무니없는 얘기들”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설사 유출 과정이 밝혀지고 보고서가 허위라 해도 박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피해자를 자처하며 면책될 일이 아니라는 걸 세상이 다 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통치상의 심각한 결함까지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대 박지만 갈등’을 부인했다. 그러나 문고리 권력 3인방 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대통령 대 장관, 장관 대 차관 간의 다층적 갈등을 드러내는 국정 난맥상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못했다.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총리도, 장관도 아니고, 비서실장, 청와대 수석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총리, 장관도 못하는 권력을 행사했다는 박근혜 정부 인사의 증언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부터, 장관, 차관, 국장, 과장, 산하단체, 정윤회씨까지 복마전처럼 뒤엉킨 문화체육관광부 사태조차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이 임명장을 준 장관·수석이 아니라, 청와대 살림이나 대통령 일정·수행을 맡는 실무자에 불과한 3인에게 어떤 법적 권한도 자격도 없이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방치한 결과다. 그건 1인 통치, 비밀주의가 빚은 국정 파행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정상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박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발생할 수 없는 자충수이기도 하다. 그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집권당도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국정, 특히 인사 문제를 정상적인 절차로 다루었으면, 여러 차례 약속한 대로 인사개혁을 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다는 걸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번 계기로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집권당도 마찬가지다. 집권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힘들게 이끌어 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박수 한번 보내자”고 했고 곧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듯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고 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8월] ‘편린’ 내세워 혼란 키우는 비선실세 논란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정윤회씨 동향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秘線) 실세 논란이 전직 장관의 폭로전까지 얹어지면서 점입가경의 혼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이 만든 문건의 진위와 유출 경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으나 아직 무엇 하나 명확하게 진상이 가려진 게 없는 상황에서 추론과 억측, 주장이 난무하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우선 검찰 수사만 놓고 보면 정씨 동향과 관련해 박 전 행정관이 만든 문건, 즉 ‘박관천 문건’은 일단 신빙성이 의심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듯하다. 정씨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비선 실세들과 이른바 ‘십상시 회동’을 가진 장소로 문건에 적시된 서울 강남의 한 중국음식점 사장부터가 회동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그가 정씨나 이 비서관 등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고, 검찰도 이를 염두에 두고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곧 진위가 가려지겠으나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번 파문의 밑바탕이 되는 ‘십상시 회동’ 자체가 가공된 첩보라는 점에서 이번 비선 논란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 불거진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폭로 논란도 따져 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 장관에게 문화부의 국·과장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을 교체하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대충 정확한 얘기”라는 말로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 김종 문체부 차관과 이재만 비서관의 결탁설을 제기했다. 이에 청와대는 체육계 적폐 해소에 보다 속도를 내달라는 박 대통령 지시의 취지를 유 전 장관이 왜곡했다고 반박했고, 김 차관은 이 비서관과의 결탁설을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공방의 이면에는 지난해 한 태권도장 관장의 자살로 불거진 태권도계 비리 논란과, 정윤회씨와 대한승마협회 간 공방으로 불거진 승마 국가대표 선발 비리 논란, 그리고 문체부 안팎의 인사를 둘러싼 내부 알력 등이 뒤엉켜 있다. 하나하나 옳고 그름을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저마다 양면의 얼굴을 지닌 사안들이며, 따라서 어느 시점, 어느 상황만을 떼어내 한쪽의 입장에서 판단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박 대통령이 어제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정씨는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났고, 동생 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 하게 하고 있다”면서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 것도 성급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처럼 비쳐질뿐더러 설령 ‘박관천 문건’ 내용이 허구라 해도 그것이 비선 실세의 존재나 이들의 국정 농단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찌라시만으로도 나라가 흔들리는 이유가 청와대발 인사의 폐쇄성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마땅하다.
‘박관천 문건’으로 비선 논란이 촉발된 뒤로 지난 열흘 우리 사회의 공방을 보노라면 절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비유를 떠올리게 된다. 저마다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편린’(片鱗)만이 진실의 전부인 양 주장하고 있다. 여기엔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다. 이래서는 누구도 진짜 코끼리의 모습을 알 수 없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내세우기보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때다. 처방은 그 뒤에라도 늦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8월] 정치에 중독되고 '찌라시'에 흥분하는 浮薄한 사회
청와대 비서실의 비선개입과 문서유출 의혹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가관이다. 무차별 의혹제기는 홍수처럼 넘친다. 일방적인 주장도 판친다. 주요 국정 현안은 온통 가려지고 말았다. 부박한 한국 정치의 민낯이 또 드러났다. 언론도 루머 사회, 가십 정치를 부채질한다. ‘저질 정치에 중독되고 찌라시에 광분하는 언론’이란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소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찌라시에서 비롯됐다. 정치권의 삼류 참모들과 그 주변인사들의 소모적 공방이 커지더니 전직 문화부 장관까지 폭로전에 나서면서 궁중비사는 금세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직전 장관과 현직 차관의 원색적인 공방은 심야드라마보다 재미있다. 국회에선 희한한 메모쪽지가 날아다닌다. 문체부 공무원들까지 싸구려 정치전문가 흉내를 낸다. 참 희한한 사회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정보 경찰은 비서실 근무 때 메모문건을 가방에 넣어다녔다고 하고, 명색이 민정비서관까지 지낸 전직 검사는 공직기강 책임자 때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에 미친 나라 꼴이다. 신문들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찌라시를 자처할 지경이다. 증언에 따라 언론사들이 대진표를 형성한 꼴이다.
왜 이런 소란이 생겼는지는 며칠 만에 오리무중이 됐다. 하지만 사안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 비서실 문건이 실제로 유출됐는지, 누가 어떤 경로로 빼돌렸는지 밝히면 그만이다. 공직기강 문제이기도 하지만 형사 사건일 뿐이다. 법에 따라 엄중 처벌하면 된다. 문고리 권력 등 측근들의 전횡이나 비선개입 여부는 정무적인 문제다. 대통령이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검찰도 수사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연일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과 주장이 넘친다. 곳곳에 음모론적 시각이 난무하고 익명의 분석들이 춤을 춘다. 정치권은 군불을 때고 언론이 가세한다. 퇴행적 정치중독 증세다. 이런 식이라면 수사결과가 나온들 진영논리에 갇힌 사회가 수긍할지도 의문이다. 저급의 정치중독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선 후기 당쟁의 재연이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지 않았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08월] 결단 늦어질수록 경제회복과 개혁 어려워진다
검찰 수사 차분하게 지켜봐야 하지만
핵심은 靑 인사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
청와대 문건 파문이 확대일로다.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7일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당장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일주일 새 2%포인트 하락했다.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2%까지 떨어졌다. 세월호 참사로 지지율이 바닥이던 지난 7월 말 이후 최저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지지도가 아니라 국정수행의 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블랙홀처럼 각종 담론을 빨아들이는 청와대 문건 파문이 진정되지 않고서는 대통령 스스로 강조한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각종 조치와 입법도 추진력이 약해질 우려가 크다.
물론 사태의 전말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보다 차분하게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관련자들을 소환 수사 중인 검찰은 이번주에 중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펼쳐야 할 사명이 있다. 검찰 중립성의 존엄한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그렇고,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추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시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검찰 입장에서 골치 아픈 점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공정한 수사를 펼쳐도 국민들이 그 결과를 믿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검찰이야 어떤 경우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제 역할을 수행하면 그뿐이다. 정작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줘야 할 책임은 정치권, 보다 정확하게는 청와대에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힌 대로 "문건은 루머이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7일에도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이라고 일축했는지 모르겠지만 논란의 초점은 문건 유출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사안은 두 가지다. 첫째는 법과 국회의 감시를 받지 않는 일반인의 이해관계가 최고 권력자를 거쳐 공직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밝힌 대로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싼 잡음을 제대로 조사한 문체부 국장과 과장이 수첩을 꺼내 든 대통령의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 한마디로 좌천됐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실무급 공무원들까지 정치권 비선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문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청와대의 고위인사 발탁과 운용·해임에 대한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해명에 대해 날을 세운 유 전 장관과 조응천 전 비서관,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발언은 '배신 프레임'을 넘어 국기문란 그 자체다. 민간기업의 퇴직임원이 몸담았던 회사의 비밀을 폭로한 기업일수록 오너와 조직 운영에 문제가 많고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지켜봤다. 청와대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가 이와 뭐가 다른가. 국민들은 개탄한다. 문제는 수없이 많다.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들이 금융권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한 기수에 보통 4~6명을 배출하는 육군 중장 자리에 대통령 동생의 육사 동기들이 8명이나 포진한 현실은 과연 정상일까.
언론들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를 대통령은 살펴야 한다. 단순히 '소모적'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결단이 늦어질수록 의혹은 커지고 리더십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집권 3년차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벌써부터 레임덕 얘기가 나온다면 나라에 백해무익이다. '부끄러운 현실'은 누가 초래했는가. 대응이 늦으면 늦을수록 국가와 국민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는 커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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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설-20141208월] ‘콩가루’ 문화부 어쩌다 이 지경 됐나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총체적 난국이고 진흙탕 속이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승마협회 사건’과 문화부 인사 개입 논란을 계기로 문화부가 청와대와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농단 종합판’이 됐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진룡 전 장관이 자신과 함께 일하던 김종 2차관에 대해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등에 업고 인사 장난을 쳤다’고 주장, 전직 장관과 현직 차관이 공개적으로 치고받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실 현 정부 출범 이후 문화부는 말 그대로 바람 잘 날 없었다. 문화부와 산하 예술의전당, 한국관광공사 등 문화계 수뇌부를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외의 인사와 맹목적인 정권 충성파들이 속속 점령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유 전 장관은 비정상적인 낙하산 인사를 두고 청와대에 맞서다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례없이 ‘면직’됐다.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돌연한 사퇴 배경에도 청와대 실세들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청와대의 이런 비정상적인 인사 행태가 문화부의 기강 해이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유 전 장관은 문화부 내 ‘청와대 비선 인맥설’의 주인공인 김 차관과 자주 충돌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관이 장관을 무시하는 행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 후 정성근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 중에는 문화부 간부들이 ‘충성 맹세 폭탄주’를 돌리는 일탈행위가 일어났다. 현 김종덕 장관 역시 요즘 “문화부 장관이 있기는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고 한다. 여당 친박 인사인 한선교 의원조차 지난 10월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김종 차관이 문화부 조직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건 거의 쿠데타 같은 일”이라고 질타했다. 청와대 이 비서관-문화부 김 차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부 내 한양대 사단도 구설에 올랐다. 엊그제 열린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 김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 가라’는 쪽지를 보내 물의를 일으킨 우상일 체육국장도 김 차관이 발탁한 한양대 인맥이다.
문화부는 나라 예산의 1.7%를 운용하며 문화·예술·영상·광고·출판·간행물·체육·관광·전통문화·국정 홍보 등 국가 소프트파워를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런 문화부가 고약한 무교양·반(反)문화의 권력 암투장으로 막 나가는 것은 문화부 직원은 물론 국민에게 불행이다. 어쨌든 이번 파동으로 문화부는 새 국면을 맞았다. 차제에 특단의 수술 조치가 필요하다. 현 정부가 문화융성을 말하려면 우선 문화행정부터 올곧게 바로 세워야 한다.
■ 서울시향(서울시립교향악단) 문제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8월] 대표의 저질 막말로 진흙탕 된 서울시향
한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에 휘말렸다. 사태의 중심에는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있다. 박 대표의 언행이 추한 시비를 일으키는 데 일차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낸 호소문을 보면 박 대표는 심각한 수준의 폭언과 모욕, 성희롱을 저지르고 인사전횡까지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장기라도 팔아야지.” “미니스커트 입고 네 다리로라도 나가서 음반 팔면 좋겠다.” “니가 보니까 애교가 많아서 늙수그레한 노인네들한테 한번 보내 볼라구.” “내가 재수때기가 없어 이런 ×같은 회사에 들어왔지.” 직원을 종 부리듯 하며 쏟아내는 이런 말에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사무국 직원 27명 중 절반인 13명이 퇴사하고 일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막말과 모욕이 횡행하는 곳에서 사람이 견뎌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5일 막말 논란에 대한 해명은 얼버무리면서 “직원들의 배후에 정명훈 예술감독이 있다”며 정 감독의 잘못과 서울시향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정 감독이 시향을 사조직처럼 운영하거나 전횡을 휘둘렀는지는 그 자체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박 대표의 행동은 직원들이 일상적인 폭언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호소문을 낸 데 대해 성실히 답을 하지 않고 딴 문제를 들이밀어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빚어진 데는 민간기업 출신이 조직을 더 효율적이고 선진적으로 운영하리라는 ‘기업마인드 환상’이 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박 대표는 삼성생명 마케팅전략그룹장을 지낸 사람이다. 방만한 공조직에 효율성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발탁된 사람이다. 그러나 결과는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직운영으로 인한 불화와 분란이다.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려면 온 나라에 퍼진 ‘기업마인드’에 대한 환상부터 털어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서울시의 책임도 있다. 서울시는 이 사태를 지난 10월 알고도 조용히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키우고 말았다. 서울시는 이제라도 사태의 신속한 해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김선우의 빨강/김선우(시인·소설가)-20141208월] 정명훈의 피아노
서울시향이 시끄럽다. 대기업 임원 출신 대표의 몰상식한 언행에 대해선 지면을 아끼자. 이 글은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정명훈 예술감독의 피아노 독주회 소식을 접하고 내심 혀를 찼다. 그의 행보를 두둔하는 이들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비교하기도 하던데, 바렌보임은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꾸준히 두 활동을 병행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정명훈씨는 피아노콩쿠르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데뷔가 피아노였을 뿐 지휘자로 40년을 살았다. 자신의 독주회보단 재능 있으나 무대는 부족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지원하고 공연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힘써주기에 좋을 위치와 연륜 아닌가. 자신의 음악인생 출발점인 피아노에 대한 ‘순수한 향수’ 때문이라면 음악소외지역을 찾아가 여는 무료콘서트면 아름답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정 모르는 글쟁이의 이런 기대완 전혀 달리 그의 피아노 순회연주회는 둘째아들이 근무하는 독일 음반사(ECM)에서 낸 자신의 첫 피아노음반 판촉을 겸하는 공연이자, 그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개인재단의 기금 마련용이라 한다. 어쩐지 씁쓸한 예술가의 길이다. 예산 감축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그의 급여를 매년 5%씩 올렸고 급여 외 1회 지휘에 4200만원 이상 받는 그가 서울시향에서 그동안 지급받은 돈은 140억원가량이라 한다. 그 돈은 평생 한 번도 클래식연주회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의 주머닛돈, 서울시민의 세금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41208월] 교향악단 경영인
수많은 악기의 하모니를 생명으로 하는 교향악단에서 최악의 불협화음이 연주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를 둘러싼 파문이 그런 모습이다. 직원들이 주장하는 박 대표의 언행은 상식 밖이다. ‘니들 월급으로는 못 갚으니 장기라도 팔아라’ ‘(술집) 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 등 인신공격성 폭언은 물론 성희롱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파문이 커지자 그는 서울시향의 방만한 운영과 정명훈 예술감독의 전횡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 감독은 박 대표도 말하듯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다. 박 대표 또한 명문가 출신에다 하버드대 석·박사, 삼성생명 전무 등을 지낸, 말하자면 ‘누구나 부러워할 최고 스펙의 소유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2월 박 대표를 임명한 것은 서울시향이 예술에서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된 것 같다. ‘최고 스펙’은 경영 능력은 고사하고 자질조차 의심받는 지경에 처했다. ‘세계적 지휘자’는 동호회 같은 조직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며 재계약을 위해 뒤에서 정치나 하는 인물로 격하될 판이다.
사람을 믿는다면, 명성과 스펙까지 감안한다면, 정 감독은 물론 박 대표도 ‘그럴 분’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문제는 소통이 아닐까. 예술과 경영의 소통 방식 차이는 개와 고양이의 관계에 비유되기 한다. 개와 고양이는 행동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꼬리를 흔드는 행동이 개는 우호적, 고양이는 적대적 신호에 해당한다. ‘그르렁’ 소리를 내는 것도 개는 경고음이지만 고양이는 반갑다는 뜻이다.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불통 관계 말이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면 사사건건 충돌할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학자들은 놀랍게도 개와 고양이가 상대의 엇갈리는 몸짓 언어를 서로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울시향 사태의 해법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서울시향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성이지 경영 성과가 아니다. 화려한 스펙의 성공한 경영인보다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화음을 맞추는 데 능한 ‘필하모닉 경영인’이 필요할 것 같다.
■ 서금회 논란
[한국일보 사설-20141208월] 금융권에 드리워지는 '新관치' 검은 그림자
청와대 ‘십상시’ 파문 못지않게 금융권의 신관치(新官治), 정실인사 논란도 심상치 않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지난주 말 차기 행장 후보로 결국 내정설 논란의 당사자였던 이광구 부행장을 선정했다. 이 후보는 1979년 상업은행에서 출발한 정통 은행맨이다. 우리은행에서도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등을 역임해 결격자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시중에선 행추위 전부터 이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이 나온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금회’ 멤버로서 정권의 줄을 타고 차기 행장에 내정됐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져 인선의 권위와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7년 결성된 서금회에 대해 당사자들은 친목모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문직군별 대학 동문모임이 수없이 많은 걸 감안할 때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금회가 정권 차원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의구심은 멤버들의 두드러진 약진 때문이다. 서금회 핵심 멤버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금융권에선 이미 은퇴 원로급인 인사가 올 들어 재차 수출입은행장으로 복귀한 것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이어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내정자 등 다수 금융사에서 서금회 멤버들이 잇달아 부상해 의구심을 키워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 후보 내정설과 관련해 “우리(금융당국)가 먼저 우리은행 행장 후보자를 정하고 그런 경우는 없다”며 “(서금회 논란도)시장에서 만들어진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의혹 정황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강력하게 연임 의지를 밝혀왔던 이순우 전 행장이 갑자기 연임 포기를 선언하면서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외압을 시사했다. 행추위 주변에서도 “이번엔 ‘윗선’에서 내정이 된 채로 행추위에 일방적으로 통보가 내려왔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정권의 금융권 인사 개입이나, 학맥ㆍ인맥 중심의 금융권 사조직이 인사를 독식한다는 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이헌재 사단’부터 이명박 정부 때의 고려대 인맥에 이르기까지, 정실인사가 난무하며 금융권에선 “정권과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없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관피아’와 ‘낙하산’ 척결을 국가개조의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현 정부에서 오히려 심화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현실이다. KB금융 사태와 은행연합회장 인사, 그리고 이번 내정설 파문에 이르기까지 금융권 인사를 둘러싼 최근의 잇단 잡음은 금융산업을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해악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악습의 뿌리를 뽑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내정설의 실체를 확실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41208월] 서금회 논란을 ‘소설’로 치부한 금융위원장
차기 우리은행장에 이광구 부행장이 내정됐다. 당초 예상됐던 결과다. 그는 금융권 실세 모임인 서금회(서강대 금융인회) 멤버다. 경쟁자인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하면서 일찌감치 1순위 후보로 꼽혔다. “설마 이번에도…”라는 시장의 기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너졌다. 금융권 전체에 특정 학맥을 중심으로 한 저급한 신(新)관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이런데도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5일 국회 정무위 답변을 통해 “금융위가 (인사에) 개입한 바 없다”며 “시장에서 만들어진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도 굉장히 이상한 표현”이라며 청와대 개입설을 부인했다.
근래 금융권 인사는 누가 봐도 낯 뜨거울 정도다. 이 내정자 외에 최근 대우증권 사장이 된 홍성국씨도 서금회 출신이다.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도 서강대 출신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다. 은행·증권·카드·보험·자산운용사 할 것 없이 주요 자리는 서금회 출신이 차지했다. 은행 부행장 인사에서도 정치권 줄대기가 성행할 정도니 벌써 다음 대선이 걱정이다. 금융권 요직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관치의 부활이라고 치부하기엔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금융권의 자율적인 결정”이라는 신 위원장 말을 듣고 있자면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근래 인사 난맥상은 당국만 탓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윤회 파문에서 드러난 청와대 비선 라인의 인사 전횡에서 보듯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의 중심엔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신 위원장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권의 적폐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수장에 ‘정피아’(정치권+마피아)를 앉혀놓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의 난맥상은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시중의 루머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신 위원장이 직을 걸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자리를 내주는 게 공직자의 마땅한 도리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8월] ‘관피아’보다 더한 ‘정피아’의 금융 점령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차기 우리은행장 단독 후보가 된 것은 ‘관피아’(관료+마피아)보다 더한 ‘정치 금융’ 인사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 부행장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행장 후보로 거론조차 안 됐다. 그러나 청와대가 민다고 소문이 나면서 후보추천위원회를 열기도 전에 갑자기 내정설이 불거졌다. 유력했던 현직 행장은 외부 압력이 있었다며 후보에서 스스로 사퇴했다. 이로 인해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했지만 이 부행장은 만장일치로 여유 있게 행장 단독 후보로 추대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내정설과 관련해 “시장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행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한 사람도 없다”고 했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권과 닿은 이런저런 줄을 타고 낙하산으로 내려와 금융권의 알짜 요직을 꿰찬 사람들만 50명에 육박한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감사와 이사 자리까지 포함한 숫자다. 관피아가 떠난 자리를 ‘정피아’가 발 빠르게 챙기고 있다. 과거 ‘관치’(官治)의 폐해가 무색할 만큼 심각해진 정치 금융의 횡포다. 관피아는 그나마 전문성이라도 있었지만, 금융권에 집중되는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은 그것마저도 없다는 비난도 크다.
청와대 등 정치권을 ‘백’으로 하는 이들은 새누리당, 대선 캠프 출신이거나 박 대통령과 동문인 서강대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회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을 비롯해 캠프에서 일했던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정수경 우리은행 감사 등이다. 최근엔 이광구 부행장 같은 서금회 멤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정치권에서 미는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은 절차조차 투명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내정설이 돌고, 나중에 설(說)은 사실로 확인된다. 후보추천위원회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요식행위를 반복한다.
이처럼 금융기관 수장을 정치권에서 ‘찍어서’ 보내기 때문에 인사철만 되면 자리를 탐내는 은행원들이 만사 제쳐 놓고 청와대와 국회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상황이 이런데도 창조경제의 핵심 고리는 금융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 봤자 누가 제대로 귀담아 듣겠는가.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직접적으로는 해당 기관에 돌아가지만 궁극적으로는 금융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된다. 관치보다 더 나쁜 ‘정치금융’ 인사가 되풀이되면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없다.
■ 동화약품 50억 리베이트
[한국일보 사설-20141208월] 의약계 질긴 뒷거래, 동화약품 50억 리베이트
국내 최고(最古) 제약업체인 동화약품이 자사 의약품 처방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건넸다가 적발됐다. 동화약품이 전국 923개 병ㆍ의원 의사들을 대상으로 2010~2012년 3년간 건넨 뒷돈은 총 50억7,000만원으로, 전문의약품 연평균 매출액의 5%에 달했다. 2008년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처벌 법규가 시행된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정부합동수사단은 어제 동화약품과 이 회사 영업본부장, 대행사 대표 2명을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게서 각각 300만∼3,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의사 155명을 기소하고 해외로 출국한 의사 3명을 기소중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동화약품은 광고대행업체를 통해 의약품 시장조사를 빙자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사례비를 지급하는 수법을 주로 썼다. 정부의 리베이트 단속이 강화한 뒤 등장한 대표적인 편법이다. 설문조사는 허울일 뿐 실제로는 의사들과 사전계약을 통해 자사 의약품 처방규모를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거래를 해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대가로는 현금과 상품권 외에도 명품지갑을 주거나 원룸월세를 대납하는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불법 리베이트는 의약품 시장의 공정경쟁을 해치는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약값을 높여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정부는 제약사와 함께 돈을 받은 의사도 처벌하는 쌍벌제 도입 등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왔으나 뒷돈 관행이 여전하자 지난 7월 보다 강력한 조치인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시행했다. 리베이트 수수가 드러난 의약품에 대해 1개월에서 1년까지 건강보험 급여를 정지하고 두 차례 적발되면 보험급여에서 퇴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약업계에서는 이 제도 시행 이후 리베이트 거래가 상당 부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투아웃제’ 시행 이전에 발생한 것이지만, 대행업체 동원이나 월세 대납 등 각종 편법을 써 단속의 눈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쌍벌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뒷돈을 요구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정부합동수사단이 관련 부처에 동화약품과 병ㆍ의원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하면서 현행법상 ‘2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인 법정형을 높이도록 건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합동수사단의 전방위 수사가 진행되면서 조만간 대형 제약사 가운데 ‘투아웃제’ 적용 첫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속과 처벌 강화만으로는 질긴 관행을 뿌리 뽑는 데 한계가 있다. 제약업체들 스스로 손쉬운 편법에의 유혹을 끊고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08월] 리베이트는 의료 시스템 망치는 탐욕의 '마약'
자사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전국 923개 병·의원 의사들에게 50억7000만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동화약품 관계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의사 155명은 이 제약사로부터 300만~3000만원씩 금품을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8년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처벌 법규가 시행된 이래 최대 규모의 리베이트 적발이다.
눈여겨볼 점은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이 제약사로부터 한 달간의 의약품 처방 횟수에 따라 매출의 일정 비율을 사후에 받는 것은 물론 심지어 한 달간 얼마나 이 회사 제품을 처방할지 계약까지 한 뒤 미리 금품을 받기도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행위는 공정한 경제질서를 해치는 것은 물론 의약품을 처방받은 환자들에게 그 비용을 고스란히 전가한다는 점에서 국민보건경제에 해악을 끼친다. 의사들이 의약품을 처방하는 과정에서 자칫 의학적으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의약품이 아니라 가장 리베이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제품을 고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 건강권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수사당국은 리베이트 수수 문제는 물론 이들이 과연 필요한 약을 제대로 처방했는지까지 수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보건당국은 검찰이 의뢰한 대로 약사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제약사에 대한 판매업무정지와 해당 병·의원에 대한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을 엄중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제약사들이 약효나 품질로 경쟁하지 않고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앞세운 불공정한 영업으로 실적을 올려보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 차원에서도 리베이트 근절과 의료윤리 확립을 위한 자율정화가 필요하다. 의사협회·병원협회 등이 중심이 돼 리베이트란 국민이 낸 국민건강보험료에서 새나온 검은돈이란 인식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리베이트는 건전한 의약품 시장과 의료 시스템을 탐욕의 노예로 만드는 마약이기 때문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8월] 남북관계 개선, 일관된 의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5·24 조처 해제 등 남북 사이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남북관계를 풀려는 의지가 담긴 점에서 긍정적이다.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일관된 목표 아래 실효성 있는 실천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5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부분에서 북한에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남쪽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배타적으로 내세우던 이제까지 정부 태도에서 다소 유연해진 모습이다. 그가 ‘남북 대화가 이뤄지면 우리가 원하는 사안과 북한이 원하는 사안이 모두 협의돼야 한다’고 한 것도 전향적이다. 북쪽이 제기하는 사안들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5·24 조처 등을 그대로 둔 채 남북관계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를 계속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때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가 박근혜 정부 3년차인 내년에도 이어진다면 이후 관계 개선 분위기를 조성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통일대박론 등도 모두 유명무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 남북관계를 풀지 않으면 갈수록 나빠지는 북한 핵 문제를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하기도 어렵다. 여러 면에서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전체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이제까지 대북 압박을 앞세우며 남북관계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율해온 국가안보회의와 국가안보실 등이 바뀌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이제까지 대북 정책에서 보여준 혼선과 즉흥성도 빨리 청산돼야 한다. 기존 남북관계는 이미 모순을 드러낸 상태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5·24 조처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참여한 것이 그 보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태도다. 박 대통령이 일관되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기존 관성이 이어지기 쉽다. 정부는 새 모습으로 남북관계의 새 틀을 짜나가기 바란다. 군자표변이라는 말이 있듯이 허물은 빨리 고치는 게 좋다.
[중앙일보 사설-20141208월] 신기술 사업 가로막는 규제, 국회가 걷어내라
그동안 각종 규제에 묶여 기술개발과 상용화가 어려웠던 새로운 기술사업에 대해 특별법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이 마련된다고 한다. 기존의 법규가 상정하는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기술 유망산업에 한해 개별법이 정한 규제의 족쇄를 확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국회 창조경제활성화 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대표발의한 ‘창조경제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안’이 그것이다.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아무리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상용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규제의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이 무인자동차 시스템이다. 세계 각국이 미래의 운송수단이자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기술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도로교통법에 가로막혀 일반도로에선 시험주행조차 불가능한 형편이다. 도로교통법이 상정하고 있는 운송수단에는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무인자동차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최첨단 무인자동차 기술을 개발해도 상용화하거나 산업화할 길이 없다.
특별법안은 이처럼 미래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고, 기술개발의 타당성이 큰 사업을 시범사업으로 선정해 개별법이 정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개별법의 규제 때문에 기술개발 자체가 어려운 사업은 특히 신기술의 성격이 여러 분야에 걸친 융복합기술사업이 많다. 정보기술(IT)과 로봇, 자동차 기술이 합쳐진 무인자동차가 그렇고, IT와 통신, 의료기술이 결합한 스마트폰 의료서비스나 원격의료사업이 그렇다. 개별법규만으론 규제하기도 어렵고, 일일이 개별법규의 규제에 예외를 두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경우 특별법으로 관련 규제를 일괄해서 풀어주지 않고는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회가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처럼 입법을 통해 신산업 개발의 걸림돌을 치워주는 것이다. 국회는 이번 특별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신기술 시범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차후에 산업화 단계에서 직면할 수 있는 규제까지 푸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8월] 개성공단 파행 부를 北의 일방적 임금인상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률 상한을 없애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했다고 한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이라며 이 소식을 알렸다는 것이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는 지난달 20일 ‘해마다 임금을 정하는 문제’를 포함한 10여개의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을 개정했다. 개성공단의 최저임금 규정은 남측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와 북측 중앙특구개발총국이 합의해 명문화한 것이다. 북측의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제25조에도 ‘종업원 월 최저노임은 전년도 종업원 월 최저노임의 5%를 초과해 높일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측과의 협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규정을 사문화했다는 뜻이니 어이없는 일이다. 빈사 상태에서 간신히 벗어나고 있는 개성공단을 또다시 위기로 몰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개성공단 근로자의 최저임금은 2007년부터 해마다 5%씩 올라 2014년 현재 70.35달러(약 7만 8440원)다. 각종 수당과 장려금 등을 합치면 근로자 한 사람 앞에 책정된 임금은 월평균 130달러(약 14만 5000원) 안팎이다. 북한 당국은 여기서 사회보장금 및 사회문화시책금 명목으로 40% 정도를 뗀다. 그것도 일부는 현금으로 주지만, 대부분은 물품교환권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개성공단의 임금은 일반적인 북한 근로자의 1.5배를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근로자는 좋은 대우를 받고, 투자자는 질 좋은 인력을 상대적으로 값싸게 쓸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익이다. 남북이 애초 최저임금의 인상률 상한을 두는 데 합의한 것은 개성공단이 가진 장점을 이어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장치라는 상호인식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약속을 깨고 임금 인상 압박을 강화해 나간다면 개성공단의 경쟁력은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은 지난해에도 가동이 중단되는 불행을 겪었다. 당시에도 핵 문제와 같은 정치·군사적 필요에 따라 남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개성공단을 이용했음을 북측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개성공단에는 5만 3000명의 북측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은 6만명에 이르는 남측 입주기업 및 협력업체 직원의 직간접적인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가 개정했다는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을 하루빨리 원상태로 되돌려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을 아무리 정치적 볼모로 삼으려 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8월] OPEC 회의 이후 10일…석유시장 大혼란 속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합의 실패 이후 10일이 지났다. 유가는 그동안 11.9%(WTI 기준)나 더 추락했다. 배럴당 60달러까지 떨어질 태세다. 유가 급락의 쓰나미는 가공할 만하다. 산업계는 물론 금융 재정 정치 외교 안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쓰나미는 육지로 다가올수록 커진다.
우선 공급자 시장의 대격변이 눈에 띈다. 산유국과 석유 메이저들이 직접 타격을 받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당장 석유 메이저들 간 M&A 풍문이 들려온다. 시장에서는 로열더치셸이 영국의 BP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벌써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BP는 지난 6월 이후 주가가 20%가량 떨어진 상황에서 M&A 풍문을 타고 있다. 로열더치셸 역시 업황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원유와 가스 생산규모는 10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른 메이저들도 마찬가지다. 대형 유전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때 메이저라고 불렸던 강자들의 위신이 추풍낙엽이다. 물론 중소 정유업계나 미국 셰일업계도 M&A 소식은 요란하다. 주가가 반토막 난 에너지 중소기업들이 매물화하고 있다.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은 벌써부터 대거 사망명단에 포함됐다. 공급이 폭발하면서 시장을 지배하려는 혈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산유국들도 마찬가지다. OPEC 합의 실패 이후 러시아는 물론이고 베네수엘라나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등 모든 산유국들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가 튼튼한 노르웨이마저 크로네 가치가 최근 3개월 만에 10%가량 떨어졌다. 물론 이들 산유국의 재정은 쑥대밭이다. 말레이시아는 재정수익의 20%가 줄어들었다. 이란은 종교재단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극약처방을 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내년 1월분 자국산 아라비안 라이트의 가격을 2달러 할인하겠다며 불을 지르고 있다.
석유시장 독점은 무너졌다. 유가는 이제 시장의 결정에 맡겨진 상황이다. 생산자 간 효율성을 놓고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는 위험이요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졸면 죽는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8월] 관세청의 수입품 가격 공개 옳지 않다
관세청이 15개 주요 수입품목의 수입가와 국내 판매가를 조사했더니 디지털카메라(2.1배)와 맥주(2.7배)를 제외한 13개 품목의 국내 판매가가 수입가의 평균 3배를 넘었다고 한다. 여성수영복은 평균 8.4배, 향수는 8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관세청은 이들 품목이 독점적 유통구조로 수입되면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책정됐다고 분석했다.
수입가격 공개는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가격정보를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수입가격 인하를 유도하려는 의도 역시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얼핏 보면 정부가 국내 소비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처럼 수입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건 타당하지 않다. 수입업자에게 수입가격은 제조업으로 치면 일종의 제조원가다. 제조원가가 중요한 영업비밀이듯이 수입원가도 엄연한 영업비밀이다. 아무리 정부라지만 이런 비밀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 수입업자가 관련법을 위반했거나 공정경쟁질서를 어지럽혔다면 관련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사유가 없는데도 단지 수입가와 국내 판매가가 큰 차이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수입가를 제멋대로 공개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관세청만도 아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국내 가격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케아가 국내에서만 고가 정책을 쓰고 있다며 국내외 가격을 비교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담합도 덤핑도 아닌 기업의 가격정책이 공정위 업무가 됐는지 궁금하다. 관세청과 공정위가 이런 일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이들이 공개하는 자료는 국가권력으로 취득한 정보다. 권력으로 취득한 자료를 다른 목적에 제멋대로 가져다 쓰는 일은 곤란하지 않은가.
정부가 어버이처럼 시시콜콜 소비지침을 내릴 일이 아니다. 관세청이 밝혔듯이 수입가격 공개는 가격인하 효과도 없다. 더구나 이번 관세청 자료는 ‘직구 가이드’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정부는 엉뚱한 일에 나서지 말고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08월] 임대인도 임차인도 불만인 '월세 시대'
주택 임대차 시장에 '월세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41.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곧 발표할 '2014년 주거실태 조사'에서는 월세 가구 수가 전세를 처음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월세도 상당 수준이라고 한다. 주택 임차라면 으레 전세를 떠올렸던 때가 오래지 않은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급속한 변화다.
그러나 집주인(임대인)도, 세입자(임차인)도 월세 시대가 불만이다. 임대인들은 월세 수익률의 급격한 저하에 세금 부담까지 가중돼 도리질을 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월세 임대인의 80~90%가 미등록 상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반면 임차인들은 월세 비용 증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온라인 리서치 서비스 '엠브레인 서베이24'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20세 이상 기혼자 1,000명 가운데 89%는 주거비가 월 10만원 이상 늘어나면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을 정도다.
월세 시대를 맞는 정부는 허둥지둥 세월만 보내고 있다. 임대사업 양성화 정책은 돌연한 월세 소득 감소 전망 탓에 임대인의 반응이 싸늘하다. 더 큰 문제는 월세 시대가 임차인에게는 두 배 이상의 주거비용 증가라는 공포로 다가오는데 정부가 변변한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금리의 고착화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면 월세 시대 또한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다. 그렇다면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시기다.
임대인의 불만 해소를 위해 월세 주택에 대한 상속·증여세 감면과 보수비용 저리 융자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임차인의 고통 완화다. 특히 현재의 월세 임대료가 기준금리에 견줘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유념해 서민의 주거비 경감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가 불만인 지금의 상황을 계속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월세 시대의 연착륙을 위한 치밀하고 신속한 대책이 절실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서울시향 문제
[한겨레신문 칼럼-김선우의 빨강/김선우(시인·소설가)-20141208월] 정명훈의 피아노
서울시향이 시끄럽다. 대기업 임원 출신 대표의 몰상식한 언행에 대해선 지면을 아끼자. 이 글은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정명훈 예술감독의 피아노 독주회 소식을 접하고 내심 혀를 찼다. 그의 행보를 두둔하는 이들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비교하기도 하던데, 바렌보임은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꾸준히 두 활동을 병행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정명훈씨는 피아노콩쿠르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데뷔가 피아노였을 뿐 지휘자로 40년을 살았다. 자신의 독주회보단 재능 있으나 무대는 부족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지원하고 공연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힘써주기에 좋을 위치와 연륜 아닌가. 자신의 음악인생 출발점인 피아노에 대한 ‘순수한 향수’ 때문이라면 음악소외지역을 찾아가 여는 무료콘서트면 아름답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정 모르는 글쟁이의 이런 기대완 전혀 달리 그의 피아노 순회연주회는 둘째아들이 근무하는 독일 음반사(ECM)에서 낸 자신의 첫 피아노음반 판촉을 겸하는 공연이자, 그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개인재단의 기금 마련용이라 한다. 어쩐지 씁쓸한 예술가의 길이다. 예산 감축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그의 급여를 매년 5%씩 올렸고 급여 외 1회 지휘에 4200만원 이상 받는 그가 서울시향에서 그동안 지급받은 돈은 140억원가량이라 한다. 그 돈은 평생 한 번도 클래식연주회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의 주머닛돈, 서울시민의 세금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41208월] 교향악단 경영인
수많은 악기의 하모니를 생명으로 하는 교향악단에서 최악의 불협화음이 연주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를 둘러싼 파문이 그런 모습이다. 직원들이 주장하는 박 대표의 언행은 상식 밖이다. ‘니들 월급으로는 못 갚으니 장기라도 팔아라’ ‘(술집) 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 등 인신공격성 폭언은 물론 성희롱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파문이 커지자 그는 서울시향의 방만한 운영과 정명훈 예술감독의 전횡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 감독은 박 대표도 말하듯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다. 박 대표 또한 명문가 출신에다 하버드대 석·박사, 삼성생명 전무 등을 지낸, 말하자면 ‘누구나 부러워할 최고 스펙의 소유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2월 박 대표를 임명한 것은 서울시향이 예술에서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된 것 같다. ‘최고 스펙’은 경영 능력은 고사하고 자질조차 의심받는 지경에 처했다. ‘세계적 지휘자’는 동호회 같은 조직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며 재계약을 위해 뒤에서 정치나 하는 인물로 격하될 판이다.
사람을 믿는다면, 명성과 스펙까지 감안한다면, 정 감독은 물론 박 대표도 ‘그럴 분’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문제는 소통이 아닐까. 예술과 경영의 소통 방식 차이는 개와 고양이의 관계에 비유되기 한다. 개와 고양이는 행동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꼬리를 흔드는 행동이 개는 우호적, 고양이는 적대적 신호에 해당한다. ‘그르렁’ 소리를 내는 것도 개는 경고음이지만 고양이는 반갑다는 뜻이다.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불통 관계 말이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면 사사건건 충돌할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학자들은 놀랍게도 개와 고양이가 상대의 엇갈리는 몸짓 언어를 서로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울시향 사태의 해법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서울시향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성이지 경영 성과가 아니다. 화려한 스펙의 성공한 경영인보다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화음을 맞추는 데 능한 ‘필하모닉 경영인’이 필요할 것 같다.
■ 그 밖의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41208월] 진실과 구라
사설이야, 소설이야? 신문에서 은유적 문구 하나가 시야에 잡힌다. “진실은 아직 안개 속에 있다.”(중앙일보 12월 6일자) 마침 TV에선 ‘불후의 명곡’ 예고편이 나오는데 이번 주 테마는 작곡가 이봉조 선생이다. 기막힌 타이밍. 그의 대표곡이 바로 정훈희의 ‘안개’와 현미의 ‘밤안개’ 아닌가. ‘안개’의 가사는 지금 새겨도 예술이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과연 바람은 안개를 걷어낼 수 있을까.
정국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1리(里)가 약 400m니 2㎞ 전방이 뿌옇다는 얘기다. 하지만 살다 보면 5리 정도는 약과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유정천리’ 중에서) 7년 전 내 앞에 펼쳐졌던 인생의 굽이(고비?)가 재방송처럼 펼쳐진다.
학교를 떠나 신생 방송사(OBS) 대표로 가긴 갔는데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곧 해가 보이겠지’. 그러나 시계(視界)는 좀체 트이지 않았다. 존재감을 나타내려면 ‘센 것’(킬러 콘텐트)이 필요했다. 궁하면 통한다 했나. 안개 속에서 찾은 진실. “그래, 진실이다.” 참고로 여기서 ‘진실’은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최진실이다. 고심 끝에 찾아낸 창의적(?) 융합의 산물은 다름 아닌 ‘진실과 구라’였다. 제목부터 강렬하지 않은가. 정상의 여배우와 아웃사이더 개그맨의 결합. 두 MC가 붙어 앉아 있는 그림만으로도 명도 대비가 확실할 것 같았다.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단계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구라는 ‘쉽게’ 잡았는데 과연 진실은? 친분이 있어도 출연은 별개 문제다. 20년 우정도 섭외의 문고리로 연결되진 않는다. 감동의 3요소를 가동할 때가 왔다. 진실하게, 간절하게, 꾸준하게. ‘의리’의 최진실이 개국 축하쇼에 모습을 드러낸 날 계약이 성사됐고 마침내 ‘진실과 구라’는 방송사 건물 외경을 도배했다.(그녀가 비운의 삶을 마감했을 때 나는 ‘제망매가’로 애도를 표했다. “온 놈이 온 말을 나불거려도 세상에 진실은 하나뿐인데 (중략) 네가 앉은 그 자리엔 벽이 없더니 네가 누운 그 자리엔 벽이 있구나.”)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진실과 구라가 혼재한다. 연예계와 정치계가 좀 두드러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면서 구라인 건 없다. 어느 하나는 진실이고 어느 하나는 구라다. 진실의 힘이 센가, 현실의 힘이 센가. 어쩌면 진실과 구라를 합한 게 현실 아닐까. 오늘의 자문자답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41208월] 메모(memo)
메모는 영어 메모랜덤(memorandum)의 약자인데 어원은 라틴어 메모로(memoro)다. ‘반드시 기억돼야 하는 것’이란 뜻이다. 어떤 사건이나 협상 내용 등을 기억하기 위해 남긴 문서나 서류를 말한다. 메모랜덤은 각서(覺書)나 비망록(備忘錄)으로 번역된다. 이쯤 되면 자못 거창해진다.
각서로 번역되는 건 대부분 공식 문서다. 양해각서(MOU)는 계약 체결에 앞서 양측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합의각서(MOA)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조항이나 이행사항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 미국에는 대통령 메모(Presidential memorandum)라는 단어가 있다. 행정명령보다는 낮은 단계로 대통령 확인, 불승인 메모, 권고메모 등 세 종류가 있다.
대통령 확인은 경제제재 등 특정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통령이 이를 확인하는 문서다. 공개적으로 거부할 때는 불승인 메모를, 광범위한 정책성명을 낼 때는 권고메모를 대통령이 작성한다.
‘비망록’은 사적인 메모다. 시인 문정희는 ‘비망록’이란 시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중략)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고 고백했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이택림은 ‘스물한 살의 비망록’이란 노래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유혹하기보다는/내 커다란 소리로 노래하리”라고 다짐했다.
메모는 이렇게 사용하는 범위가 넓다. 쓰는 사람은 그저 끄적였을지 몰라도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파문을 일으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모는 ‘김·오히라 메모’다. 1962년 11월12일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맺은 대일청구권 관련 비밀합의각서다. 나중에 이 메모가 폭로되자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요즘은 비밀스런 메모도 온 세상에 바로 공개된다. 지난 10월 초에는 국감장에서 여당의원들이 야당의원을 비꼰 ‘쟤들은 원래 빼딱’ 메모를 서로 건네다 들켰다. 엊그제는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 답변을 하는 김종 문체부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가야’라는 메모를 건네다 의원들에게 혼쭐이 난 체육국장 사건도 있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은 “비망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엔 자신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들켜서 ‘피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설화(舌禍) 필화(筆禍)를 이을 가위 메모화(禍)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41208월] 님비vs핌피
주왕산과 주산지의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한 청송 출신들은 '청송교도소'라는 말만 나오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물 맑고 산 좋은 아름다운 고향 마을에 대한 자부심에 먹칠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세웠던 청송보호감호소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호감호소는 2005년까지 존치됐으며 여기에 지금의 교도소가 생겼으니 청송사람들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 청송 주민들이 요즘 다른 쪽으로 변하고 있다. 청송 진보면 주민들이 현재 있는 경북 북부 제 1·2·3 교도소와 경북직업훈련교도소 등 4개 교도소 외에 추가로 더 지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는 소식이다. 아예 주민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청송교정시설 유치위원회'까지 발족시키고 법무부에 유치신청서까지 내겠다고 한다. 혐오시설로만 여겼던 교도소와 1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정서적 거부감이 사라졌으며 오히려 고장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교도소, 화장장 등 혐오시설이 지역 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해 온 님비(NIMBY) 현상이 바뀌고 있다. 청송과 인접한 울진도 최근 한국수력원자력과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협상을 타결했다. 총리까지 나서 지역민을 설득한 노력도 주효했겠지만 무엇보다 2,800억원 규모의 지원이 협상타결의 촉매가 됐다. 주민들은 금전적 지원보다 새로운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젊은 사람들이 북적일 것을 더 기대하는 듯하다.
혐오시설은 거부하지만 수익시설은 유치하겠다고 서로 나서는 또 다른 지역이기주의가 핌피(PIMFY)다. 주로 고속철도나 도로 등이 자기 지역을 지나가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한때 혐오시설로 인식되던 교도소와 원전이 수익시설로 바뀌고 있으니 이를 '신 핌피'라고 해야 할지 '역 님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 부르든 나날이 인구가 줄어가던 고향 마을로 사람들이 돌아온다니 환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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