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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

1. 청와대가 역시 ‘미르 게이트’의 ‘몸통’이었다

미르 재단 설립의 총연출자는 예상대로 청와대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조감독이었고, 대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한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한 대기업의 내부 문건 등을 보면, 재단 설립 과정을 주도한 ‘거역할 수 없는 힘’의 실체가 생생히 드러난다. 기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을’의 처지였다. 돈을 내라면 내고, 서류 작성을 위해 집합하라면 허둥지둥 달려갔다. 기업 위에 군림하는 정권의 모습은 가히 군사정권을 뺨치는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정부(청와대)와 재계(전경련)가 주관하는 법인 설립 추진” “대표 상위 18개 그룹이 참여하고 매출액 기준으로 출연금(500억원) 배정”. 미르 재단에 돈을 낸 한 대기업의 내부 문건에 나오는 대목이다. 삼성(125억), 에스케이(68억), 엘지(48억) 등 기업별 출연 액수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문건에 나온 대로 애초부터 전체 모금액(500억원)을 정해놓고 기업들끼리 사전에 ‘배정’한 결과였다. 청와대가 추진하는 일에 감히 군소리를 낼 수 없는 우리 기업의 현주소가 생생히 전해져 온다.

기업들이 재단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광경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휴일에 갑자기 재단 쪽으로부터 “내일 필요한 서류를 갖고 모이라”는 긴급 소집명령을 받은 뒤, 이튿날 지정된 호텔로 달려가 관련 서류에 법인 인감을 찍어댔다. 그 서류들은 제대로 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모두 가짜로 만든 서류들이었다. 일종의 ‘가짜 서류 도장 찍기 대회’였다. 이런 사실은 재단 쪽도, 전경련도, 기업 쪽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의 연출자가 청와대인데 감히 뉘 앞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미르 재단 쪽은 기업들에 아예 ‘빚쟁이’로 군림했다. 겨우 나흘의 말미를 주면서 출연금을 납부하라고 다그치는 독촉장(2015년 11월23일치 문건)을 보낼 정도였다. 성금을 받는 쪽이 주는 쪽한테 큰소리를 치는 물구나무선 풍경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청와대라는 든든한 배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일에 싸여 있던 ‘미르 게이트’의 실상은 이제 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남은 것은 청와대와 전경련의 진실한 고백과 사과, 책임자 문책 등 후속 조처다. 이제는 막장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됐다.

[이데일리]

2. 해외에서 나라 망신시키는 코이카 봉사단

대한민국의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며 개발도상국에 파견된 코이카(KOICA), 즉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들이 현지에서 각종 일탈 행위로 나라를 망신시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코이카에 따르면 해외봉사단원 및 협력요원에 대한 징계는 2013년 32건에서 2014년 45건, 2015년 86건으로 계속 늘어났다. 올 들어서도 지난 8월까지 64건으로 급증세가 여전하다.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사업·주거비를 횡령하고 폭언·폭행 등에 성희롱까지 저지르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도 코이카 집행부가 봉사단원들의 잘못에 대해 주의, 경고, 자격 박탈 수준의 솜방망이 징계로 일관함으로써 문제를 키웠다는 게 문제다.

이처럼 일탈 사례가 급증하는 것은 봉사단 규모가 대폭 확대된 탓도 있지만 부실 관리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는 분석이다. 1990년 4개국 44명으로 시작한 코이카 봉사단은 올해 38개국, 2400여 명으로 커졌다. 청년 인재 양성과 해외취업 활성화를 겨냥한 역대 정권의 적극 지원 덕분이다. 당연히 정부 예산도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는 1000억원이 넘게 책정됐다.

요즘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는 코이카 해외봉사가 젊어서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는 ‘버킷 리스트’에 오를 만큼 인기라고 한다. 현지 주거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외국 경험과 봉사 경력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률이 평균 5대 1에 이르며, 일부 인기 직종은 수십대 1까지 치솟는 것도 그래서다. 세계 곳곳에 파견돼 우리의 자랑스러운 발전 성과를 전파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국격을 높이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 활동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라를 망신시키는 ‘망나니’에게도 혈세를 퍼붓는 황당한 상황은 당장 종식돼야 한다. 코이카는 단원들의 비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선발과 교육에서부터 파견지역 배당, 사업실적 점검과 사후 감독에 이르기까지 봉사단 운용 전반에 걸쳐 일대 혁신에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솜방망이 징계가 선발 과정에서부터 특혜를 받은 일부 ‘금수저’들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일탈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금전적 구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데일리]

3. 현대차 파업, 불매운동 경고 들리는가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박성택 회장이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불매운동 가능성을 거론하며 따끔한 경고를 보냈다. “대기업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힘없는 중소·소상공인과 일반 국민들에게 전가된다”는 게 박 회장이 불매운동 카드까지 꺼내든 이유다. 대기업 파업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소비자인 국민과 더불어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평소 대기업과의 하청계약에서 약자의 입장인 중소기업 업계가 이처럼 현대차 노조 파업에 대해 옐로카드를 제시한 자체가 이례적이다. 갑을관계이긴 하지만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현대차 파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그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3500만명으로, 우리 인구의 70% 가까이 이르기 때문에 불매운동에 돌입할 경우 실질적인 효과도 작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비단 중소기업 업계의 시선만이 아니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불매운동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매서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외제 수입차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가급적 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단체행동을 자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자기들 밥그릇을 챙기겠다고 계속 파업을 벌이는 모습에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 자체가 명분이 없음은 물론이다. 평균 임금이 9600만원에 이르러 독일 폭스바겐이나 일본 도요타 근로자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며 더 올려 달라고 물고 늘어지는 ‘귀족 노조’의 행태에 눈꼴이 시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청년 백수로 전전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주변에 수두룩한 상황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 간에 일단 자기들 뱃속을 채우자는 심보다.

현대차 노조는 이러한 경고를 결코 가볍게 들어 넘겨서는 안 된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지금껏 현대차를 ‘국민차’로 아끼면서 키워 온 소비자들의 기대가 한계점에 이른 단계다. 만약 국민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한다면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경고가 다른 대기업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 행위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중앙일보]

4. 20년간 인권 사각에 방치됐던 정신병원 강제입원

보호자 동의와 의사 진단만으로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 정신보건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1995년 제정돼 96년 시행된 지 20년 만이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 일치로 “해당 조항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조항은 정신질환자에 대해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 재판부는 “치료보다 격리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다”며 “입원 필요성 판단에 있어 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할 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간 강제입원이 가족 간 재산 다툼 등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거듭돼 왔다. 가족 등 보호의무자와 의료기관 사이의 이해만 맞으면 얼마든지 장기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입원하게 되면 전화나 면회도 쉽지 않아 퇴원할 길은 막히기 일쑤였다. 한국의 경우 강제입원 비율이 70%로 프랑스(12.5%)의 5배나 되고, 평균 입원 기간은 정신의료기관 176일, 정신요양시설 3655일에 달한다(2013년 기준). 이번 위헌심판 역시 재산 문제로 자녀 2명에 의해 강제입원 당했던 박모(60)씨가 법원에 인신보호청구를 하면서 제기됐다.

문제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가 8만여 명에 달하는데도 인권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다는 데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80년대 이래 ‘자해·타해의 현저한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이 지속되는 기간만 강제입원이 가능하다’고 판결해 왔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5월에야 정신보건법을 전부 개정하면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 서로 다른 기관 등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검증을 받도록 하는 등 절차를 강화했다. 이 법은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

국회는 헌재 결정을 토대로 관련 조항을 추가로 손질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정부는 강제입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몇 년씩 억울하게 정신병원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고통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된다.

[매일경제]

5. 신동빈 구속영장 기각, 검찰의 오기를 경계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검찰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는데 이에 앞서 명백한 혐의 입증에 소홀한 점이 없었는지 반성부터 했어야 했다.

검찰은 영장을 신청하며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첫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 씨 모녀에게 500억원대 부당한 급여를 지급한 횡령 혐의, 둘째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과 서미경 씨가 소유한 회사에 롯데시네마 일감을 몰아줘 770억원대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셋째 롯데피에스넷의 480억원대 유상증자에 계열사를 동원해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등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제기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서씨 모녀에게 급여를 제공한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 때 일로 신 회장이 직접 개입했는지 확실하지 않고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유상증자에 계열사를 동원한 배임 혐의 역시 경영상 판단이 인정되는 등 고의성을 충분히 입증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검찰이 지난 20일 신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곧바로 구속 영장을 청구하지 못하고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정황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에는 수사를 했으면 반드시 총수를 구속해야 한다는 오기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검찰 판단은 법조계의 예상대로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패착이 됐고 지난 6월 롯데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등 17곳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이후 4개월 가까이 수사를 벌였으면서도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만 드러내고 말았다. 검찰은 피의자 소명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총수라도 비리가 있다면 명확하게 밝혀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 조직의 자존심과 오기를 내세워 무리하게 구속수사를 고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6. 면책특권 뒤에 숨는 국회의원의 못된 습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관계자의 증언이라며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서 전경련이 일괄적으로 기업들에 할당해서 (모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수석은 자신의 모금 개입 의혹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기업들의 미르재단 모금 과정에 전혀 개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은 답답하다. 녹취록만으로는 사실 관계를 전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녹취록은 언론에 중요하게 보도됐으며, 어제는 한 시민단체가 안 수석을 검찰에 고발했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증언자의 주장은 되레 의혹을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만 했다. 만약 나중에 그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녹취록을 공개한 노 의원은 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을 수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핵폭탄급 폭로가 될 수도 있는 증언을 기자회견을 통해 떳떳하게 밝히지 않고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까닭도 의문이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주장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단 터트리고 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이는 불체포특권과 더불어 국회의원의 대표적인 특권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폭로나 허위사실 유포로 책임을 져야 할 의원들이 이 특권을 방패로 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대법원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성추행 전력이 있는 인물이 대법원 양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SNS에도 발언 영상을 올렸다가 지웠는데, SNS와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는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대법원은 2013년 안기부X파일 사건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떡값 검사' 발언을 인터넷에 올린 건에 대해 면책특권을 적용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회의원들이 무책임한 폭로 후 면책특권 뒤에 숨는 못된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매일신문]

7. 김영란법, 접대 없고 각자 내는 긍정 효과 돋보였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일부 혼란은 있었지만, 더치페이가 정착되고 접대 문화가 사라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몰래몰래 이뤄졌던 과도한 접대 문화가 바뀌고 뿌리 깊은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음식점`술집 등에서는 미리 신용카드를 맡기거나 먹고 난 뒤에 각자 알아서 계산하는 신풍속도가 선보였다. 공직사회와 교육계, 언론계 등 법 적용 대상자들은 얻어먹는 것보다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는 반응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신세 질 필요가 없어 심적 부담감이 훨씬 줄었다고 했다. 밥자리, 술자리가 크게 줄면 부정청탁을 하거나 받을 여지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 적용 대상자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바람에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부 공무원은 민원인을 아예 만나지 않으려 하고, 대민 접촉을 애써 기피하는 모습도 있었다. 김영란법을 핑계로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자신의 보신에 이용하려는 분위기는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공무원 등이 바깥출입을 피해 구내식당에 몰리는 것도 문제다. 관청 인근의 음식점`술집`커피숍 등은 매출이 크게 떨어져 업주들은 문을 닫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시행 초기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영세 사업자의 경제적 타격이 예상외로 크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 김영란법에 대한 저항이 심해지고, ‘클린 한국’을 만들겠다는 법 취지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3일째이지만, 외형적으로는 접대 문화가 사라지고, 더치페이가 정착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법 적용 대상자는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관행처럼 내려온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다. 시행 초기의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통이라 여기고, 법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8. 시민 불편 아랑곳 않는 공공 노조 파업, 당장 그만둬야

한국가스공사와 국민건강보험 노조 등 2천700여 명이 28일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집회’를 열었다. 평일 대낮에 차량과 인파가 붐비는 반월당에서 집회를 가진 데다 이후 가두 행진까지 이어지면서 대구 도심은 하루 종일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 시위대와 맞닥뜨린 운전자들은 아무런 잘못 없이 두 시간 넘게 차량에 갇혀 넌더리를 냈다.

이날 집회는 금융 노조의 총파업과 철도`지하철 노조의 연대 파업 등 공공 부문 노조 파업의 연장 선상에서 열렸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가 노동개혁 차원에서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가 노조와 충분한 협의 없이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도입 방식도 불합리한 만큼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결국 ‘내 철밥통을 건드릴 생각을 마라’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를 두고 ‘사업주가 단기 성과를 내세워 해고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성과퇴출제’라고 반발하는 데서 그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번 연쇄 파업에 나선 기관 면면을 보면 흔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들이기에 이런 의심은 합리적이다.

정부는 120개 공공기관도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해 공공 부문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호봉제를 깨고 일 잘하는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취지다. 실제로 경쟁력을 갖춘 민간 기업일수록 대부분 성과연봉제를 기본으로 도입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실시되면 내부경쟁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이 도리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제 밥그릇이나 지키자는 도심 파업 집회로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어선 안된다. 자칫 노동개혁의 필요성만 더 부각시킬 뿐이다. 공공 부문 노조는 길거리로 나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정하게 성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 회사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뜩이나 노사 관계는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최대 요인이다. 귀족 노조 소리를 듣는 공공 노조나 대기업 노조가 여기에 앞장설 때가 아니다.

9. 정세균 국회의장, 결자해지 각오로 국감 파행 풀어라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후폭풍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감 파행 나흘째인 어제는 그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국방위, 법제사법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감이 열렸지만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방위와 미방위는 실제 감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여당 의원의 불참으로 ‘반쪽 국감’을 면치 못했고, 법사위는 의사진행 발언만 하고 감사 중지를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9일 이정현 대표의 단식 투쟁에 동참, 릴레이 단식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의 국감 복귀 요청을 거부하고 국감을 계속 거부하기로 했다. 상황 변화가 없는 한 국감 파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지금 상황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은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의 ‘편파 진행’이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과 이 대표의 단식 돌입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표결하기 전에 차수 변경 등의 과정에서 원내대표들과 협의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맨입으로는 안되지’라는 발언은 세월호특별조사위 기간 연장 및 어버이연합 청문회와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철회를 맞바꾸려 한 야당의 편을 든 증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사실들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대로 사퇴해야 할 이유가 되기는 무리라 해도 엄정중립이란 국회의장의 직무를 위반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 의장은 사과 또는 최소한 유감 표명은 해야 한다. 국감 파행을 방치하겠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새누리당도 국감 복귀 명분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정진석,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만나 정 의장이 사과에 가까운 유감 표시를 하고 새누리당은 국감에 복귀한다는 중재안도 마련했다. 현재로선 국감을 정상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하지만 정 의장은 거부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집이다. 정 의장은 국감 파행에 책임 있는 당사자의 한 축이다. 정 의장은 결자해지의 각오로 이를 풀어야 한다.

[서울신문]

10. 세계 꼴찌 수준 못 벗어난 노사협력지수

정부의 성과연봉제 추진을 반대하는 철도·지하철 연대 파업이 어제로 사흘째를 맞았다. 출근길 시민들의 불편은 크지 않지만 화물차 운행률은 이날 현재 30%대로 떨어진 데다 철도 수송 물량도 평소의 3분의1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인한 해운 물류 사태에 이어 지상에서도 물류 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대형 병원 15곳도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어제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총파업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이날 부분 파업까지 올해 22차례 파업을 벌임에 따라 생산차질 규모가 12만 1000여대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때아닌 공공부문을 포함한 추투(秋鬪) 탓에 가뜩이나 힘든 경제가 한층 혼란에 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추투에 나선 대다수 노조들은 상위 10% 임금을 받고 있는 이른바 귀족노조들이다. 연대 파업의 명분인 성과연봉제 거부는 제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심보와 다름없다. 성과연봉제는 직무와 성과를 임금·승진 같은 보상과 연결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반화된 인사 체계다. 노동계가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성과퇴출제’라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평가에 문제가 있다면 파업이 아닌 개선에 나서는 게 옳다. 월 7만원 인상 등의 합의안을 깨고 생산 라인을 멈춘 현대차 노조의 파업 역시 ‘금수저’들의 생떼로 비칠 뿐이다. 국민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그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138개국 가운데 3년째 26위에 머물렀다. 순위를 깎아내리는 주된 요인은 바로 노동 부문의 경쟁력이다. 77위에 그친 노동시장 효율성의 세부 지표 가운데 노사 간 협력은 135위로 사실상 꼴찌다. 거시경제 환경, 인프라, 기업 혁신, 기술수용 적극성 등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노사 간의 대립과 반목이 현실화된 파업 사태로 미뤄 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배부른 파업은 정당성도, 명분도 없다.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자들에게도 부끄러운 행태일 뿐이다. 성과연봉제를 포함한 노동개혁은 기업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불가피하다. 지금은 노조도 국가 경제의 활로와 함께 상생의 길을 찾는 노동개혁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김민구칼럼] 노벨상이 '그들만의 잔치'인 까닭

전 세계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이목이 쏠린다. 115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다음달 3일부터 10일까지 3개 과학 부문과 경제, 평화, 문학 등 모두 6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석학을 뽑아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다. 이처럼 노벨상 시상식은 전세계 학자들을 흥분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축제임에 틀림없다. 또한 과학 등 주요 학문의 발전 성과와 업적을 평가하는 준엄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노벨상도 여느 때처럼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전망한 노벨상 수상자 후보 가운데 한국인 과학자나 학자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한국인 후보가 학계 일각에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설령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올해 한 명도 없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기 바란다.

노벨상은 기초과학의 경연장이다. 기초과학은 당장 큰 돈을 벌어주지는 않지만 첨단 기술제품을 만드는 응용기술의 터전이다.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제4차산업혁명’은 기초과학 발전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이는 기초과학 발전 없이 놀랄만한 기술혁신을 일궈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기술에 주력하고 해외 특허기술에 목을 매는 기업 풍토에서 기초과학의 대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노벨상은 ‘느림의 학문’이다. 독일 맥스 프랭크 연구소는 남미 갈라파고스 섬에 살고 있는 길이 1.8m, 몸무게 400㎏의 대형 거북이에 대한 보고서를 몇 년 전 발표했다. 이들 거북은 계절이 바뀌면 철새처럼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그러나 거대한 몸무게 탓인지 이들이 하루 종일 움직여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200m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몇 달간 이동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노벨상은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영역이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불규칙한 물체 부피를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유레카’(Eureka:알아냈어)를 외친 것처럼 노벨상은 뜻밖의 행운이나 천재성의 발현으로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답답하지만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가 쌓인 결과물이다.

국내 기초과학을 홀대하고 장기 투자에 인색한 채 ‘빨리빨리’ 만을 외치는 한국사회에 최근 ‘이단아’들이 ‘돌’을 던진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과학자 40명이 기초과학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촉구하며 집단으로 청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간 책정되는 정부 연구비가 19조원이 넘지만 이 가운데 고작 6%만 기초과학 연구과제에 제공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첨단기술 최강국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과학자가 연구 주제를 스스로 정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과학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기초과학보다 돈벌이가 되는 응용기술에 주력하고 각 연구소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기초과학을 등한시 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으로는 노벨상 수상의 꿈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과학자들에게 세상을 놀라게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기 보다는 호기심에 토대를 둔 기초과학 연구가 지속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 부처와 재계, 학계가 기초과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올해도 노벨상 시상식에서 처량한 관람객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 [매일신문][소리와 울림] 익숙함을 거부하기

신세대와 소통 비책은 ‘온고지신’

새 기술 받아들여 필요한 혁신 구현

아이폰은 연결된 앱마켓 비전 제시

얼리어답터 등에 업고 프레임 뒤집어

언제부터 ‘먹방’이 이렇게 유행한 걸까. 맛집 탐방이 대세고 멋진 셰프는 만인의 로망이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의 변화는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그리움으로 추억하는 나의 유년기는 색다른 장면으로 가득하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먹기도 힘든 쌀로 술을 만드는 건 큰일 날 일이어서 동네에서도 가끔 밀주를 만들다가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세기 전반부의 미국 대공황 때 금주령이 선포된 후 알 카포네 같은 갱단이 밀주 유통으로 부를 축적했던 걸 연상시킨다.

학교급식이 없던 시절이라서 아이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갔는데, 학교에서 도시락에 보리가 충분히 섞였는지 ‘도시락 검사’를 받았다.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윤기나는 쌀밥을 먹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여겼으니까. 창이 있으면 방패가 나오는 법이다. 도시락 상층부에 보리를 얇게 도포하여 검사를 통과하는 기술은 족보가 되어 전수됐다.

요즘 어디 가서 이런 보리 혼식 얘기를 끄집어내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좋다.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공포심에 눌린 아재와 아지매는 그래서 이런 ‘부족했던’ 시절 얘기를 피한다. 가르치려는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소리까지 들으면 큰일이다. 세상에는 시류니 유행이니 하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세대에게 이런 예전 얘기는 진부하기만 하려니 생각하던 차라서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은 사뭇 놀라웠다. 영화평론가들도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궁상맞은 얘기는 진부하다’는 주류 프레임에 정면충돌했다. 지금 신세대에게 이런 시절을 살던 청춘의 궁핍함이 소통된다는 게 놀랍다. 그들에게도 예전 것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신세대에게만 기성세대를 이해하라는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질적 요소를 가진 두 그룹 간의 이해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변화의 한가운데서 몸으로 변화를 맞는 세대와 오랜 세월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지닌 채 생경한 변화를 관찰하는 세대의 상호 이해가 쉬울 리 없다. 이래저래 구세대도 꼰대 탈출의 비결을 고민하는 지경이 됐다. 꼰대라는 말은 꼬장꼬장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불통의 아이콘이 됐으니까.

이럴 때 떠오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효함이 증명된 비책이다. 옛것을 지킨다는 온고는 알겠는데 새것을 아는 지신은 쉽지 않다. 눈을 바짝 뜨고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지만, 이걸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군자선가어물(君子善假於物). ‘순자’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물건을 잘 다룬다는 의미다. 요샛말로 하면 군자는 기크(geek)에 가깝다는 말이려나. 무릇 군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게으르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 얼리어답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얼리어답터는 흔히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전위적으로 채택하고 실험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은 새로 나오는 장치들에서 이전에 없었던 아이디어를 보고,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필요했을 혁신을 통찰한다.

예전에는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근검절약만으로는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혁신도 그로부터 탄생한 상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사그라지니까.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정말로 혁신을 만들어낸 건 손에 찰지게 잡히는 예쁜 기계가 아니었다. 변화의 요체는 아이툰즈와 앱마켓이 보여준 연결된 세계의 비전이었다. CD 한 장의 열 몇 곡을 다 사지 않아도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아무 때나 구매해서 들을 수 있게 된 변화는 개인의 선택과 개성의 존중이라는 가치의 구현이었다. 애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얼리어답터들을 등에 업고 낡은 주류 프레임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새로운 것을 써보고 그 신기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세상 변화의 실마리를 보며 혁신을 소비하고 지원한다. 익숙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얼리어답터들을 응원하는 이유다.


3.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신성모독의 날

회의주의(Skepticism)는 인류의 이성이 광신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붙들어준 인식론의 하나다. 회의주의는 회의주의 자체를 포함, 어떠한 관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구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아무도 선과 진실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 계몽주의와 이성적 과학주의, 더 앞서 르네상스의 인문학이 소크라테스의 저 회의주의-“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만 알 뿐이다”-에 뿌리를 두고 성장해왔다.

회의주의의 건너편에 종교가 있다. 종교인은 우선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신의 말씀과 지침을 따라야 한다. 믿음의 완성은 의심의 극복이 아니라 무조건적 수용이며, 회의와 의심은 악마의 유혹일 뿐이다. 의심이 낳는 최악의 범죄가 ‘신성모독(Blasphemy)’이다.

고대-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저 종교의 단죄에 희생돼왔고, 심지어 21세기의 오늘날까지 이슬람근본주의 국가뿐 아니라 문명의 선두국가군들이 모여 있다는 유럽연합 국가들과 미국의 주들 상당수가 실정법으로 신성모독을 범죄시한다. 영국의 한 출판인은 1977년 예수를 동성애자로 묘사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 와이오밍 등 일부 주들도, 수정헌법과 연방 대법원이 있어 실효성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안을 유지하고 있다.

탐구센터(CFICenter for Inquiry)는 회의주의와 세속적 휴머니즘의 철학자 폴 커츠(Paul Kurtz)가 1991년 설립한 국제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CFI는 과학과 이성, 지식 추구의 자유와 의학ㆍ보건 등을 포함한 인본주의적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9년 CFI는 9월 30일을 ‘신성모독의 날(Blasphemy Day)’로 제정ㆍ선포했다. 개인과 단체가 종교와 세속의 신성모독 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 비판의 행위를 격려하자는 취지의 날이다. 거기엔 종교의 도그마를 극복하자는 것뿐 아니라 종교가 억압해 온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려는 의미도 있다. 그들은 종교적 터부를 건드리는 전시회와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매년 펼쳐왔다.

“우리는 불쾌감을 주려는 게 아니다. 대화와 논쟁 과정에 누군가 불쾌감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불쾌해지지 않을 권리가 인권은 아니지 않은가.”그 해 토론토 대회를 주도했던 SFI의 인사가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4. [서울신문][기고] 잊어버린 역사는 반복된다/김수인 스포츠 칼럼니스트

무려 150만명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 박물관 벽면에 적힌 글귀는 참례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울린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리우올림픽이 끝나고 아깝게 입상하지 못한 배드민턴, 유도, 레슬링 선수들은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전적을 보면 울분만 토할 뿐 피나는 노력으로 4년 뒤 진정한 승자로 재기하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와신상담’을 하는 선수는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 그중 마라톤 선수가 포함됐으면 한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마라톤은 참으로 씻기 어려운 치욕을 겪었기 때문이다.

2시간42분42초로, 완주 선수 중 뒤에서 세 번째인 138위에 그친 심종섭은 80년 전 베를린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2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손기정(작고·1912~2002)보다 무려 6분37초2나 뒤졌다. 80년 동안 기록을 단축하기는커녕 뒷걸음질을 한참이나 친 것이다.

게다가 두 명의 대표 선수는 부상 부위에 어이없게 파스를 붙이고 햇반을 먹으며 컨디션 조절에 실패, 관계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대표 선수이니만치 육상연맹이나 올림픽 선수단의 관리 부실을 탓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컨디션 조절의 최종 책임은 선수 스스로에게 있다.

80년 전의 손기정을 되돌아보자. 그는 도쿄에서 출발해 서울→만주→시베리아→모스크바를 열차로 이동하며 자리에 쭈그린 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2주일 만에 베를린에 도착했다. 이런 악조건은 시대상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손기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철저한 준비로 그 누구도 깨지 못한 2시간 30분의 벽을 무너뜨렸다.

독립군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방법으로 훈련했고, 신발 바닥을 칼로 깎아 가벼운 마라톤 슈즈로 만들었다. 또 러닝셔츠와 속옷을 가위로 잘라 옷 무게를 줄이는 ‘첨단 스포츠과학’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손기정이 ‘흙수저’였다면 지금 선수들은 ‘다이아몬드 수저’로, 엄청난 호조건에서 뛰고 있다. 손기정의 훈련법과 투혼을 10분의1이라도 본받았다면 아마추어 정상급 수준인 2시간 40분대 기록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손기정의 후배들이 너무나 부끄러워 올림픽 폐막 후 서울 만리동에 있는 ‘손기정공원’을 찾았다. 거기에 전시된 유물과 기념품, 역사적인 사진과 동영상, 가슴 뭉클한 어록은 리우올림픽 결과에 대해 피를 토하듯 꾸짖는 것 같았다.

마라톤 선수라면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국가대표라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출정 전 꼭 손기정공원을 방문해 그분의 위대한 도전 정신을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성지순례의 ‘메카’처럼-.

항일정신을 마라톤 우승으로 승화시킨 손기정은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고 했다. 4년 후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일장기 말소’의 어두운 역사를 씻고 당당히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려면 젊은 마라토너뿐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마라톤 기록은 하루아침에 단축되지 않기 때문이다.

9월 29일은 손기정의 104번째 탄생일이었다. 더욱 그분의 투혼이 그리워진다.


5.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악인들의 세상 ‘아수라’

사회가 혼탁하고 비리가 만연할수록 사회고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 영화 ‘부당거래’, ‘내부자들’, ‘베테랑’이 그렇다. 28일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는 한발 더 나아가 폭력이라는 충격요법으로 사회를 고발한다.

재개발을 앞두고 이권과 성공을 위해 혈안이 된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와 그의 뒤를 봐주면서 돈을 받고 야망을 키워가는 형사 한도경(정우성) 그리고 정의보다 출세를 위해 온갖 불법을 동원해 시장의 비리를 캐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영화는 국민을 대신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치 동물처럼 탐욕스럽고 악랄하게 싸우는 지옥 같은 세상 아수라를 그리고 있다.

장르의 예상을 빗나간 영화는 새롭게 보인다. 기존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아닌 악과 악의 대결을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누가 더 나쁜 놈인지, 경쟁하듯 악인열전을 펼친다. 이들에게는 불법과 합법, 정의와 불의의 구분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이 최고의 선이 된다.

악인들의 세상, 이들은 세상이라는 정글 속에서 동물적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이들의 싸움은 정글 속 맹수들이 살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것과 같다. 박성배와 한도경, 김차인은 그저 각자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맞춰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다만 그 방식이 정의롭지 못하고 불법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파국으로 치닫는 인생이 허망할 뿐이다.

영화는 묘한 설득력과 흡인력을 가진다. 132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악해질 대로 악해지는 인간들, 자멸하고 마는 악인들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악인들의 폭주하는 광기는 끝을 모르고 질주하지만 왜 이토록 극한으로 폭주하는지 설명도 없다. 다만,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이 이를 대신한다.

설명과 개연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익히 봐왔던 정치인, 검사, 경찰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공감할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폭력을 접하는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잠재된 사회적 분노에 대한 보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난폭한 폭력 장면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거친 욕설과 수위 높은 폭력 장면이 난무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잔인한 폭력 장면은, 현실에서는 권력자가 이보다 더 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정치인과 검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을 가진 자들을 악으로 규정짓고 있는 영화 ‘아수라’는 악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 그곳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전투구를 일삼으며 돈과 권력의 단맛을 맛보면 그렇게 될까. 한도경의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스폰서 검사, 비리정치인, 부패경찰 등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이들의 모습에서 피로감마저 몰려온다. 우리는 과연 악인들의 세상, 아수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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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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