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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화물연대 파업 신속 대처가 중요하다

화물연대가 어제 총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육지와 해상 물류 시스템에 비상이 걸렸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야기된 물류대란에 철도파업까지 장기화되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전체 사업용 화물차 43만 7000대 가운데 화물연대 가입 차량은 1만 4000대에 불과하지만 정부 대응에 따라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은 지난 8월 정부가 내놓은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화물차 신규허가 규모를 조절하는 수급조절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지만 결과적으로 신규 공급이 대폭 늘어나게 됨으로써 영업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가뜩이나 기존 지입제로 인해 화물차 운전자들이 저임에 시달리면서 장시간 위험 여건에 노출된 상황에서 극심한 과적·과속 주행에 내몰릴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이 전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 정책과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정부가 언제까지나 화물차 신규진입 허가권을 틀어쥐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선과 부작용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화물업계는 기득권 장벽에 가로막혀 정체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국가 경제가 곤경에 처한 가운데 파업에 들어간 것은 집단 이기주의로밖에 간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으로 수출입 기업들의 컨테이너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는 게 가장 심각하다. 화물연대 소속 차량 중에서 절반 정도가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트레일러 차량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파업을 제때 수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면 상황을 지켜보던 비조합원들이 대거 파업에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8년 화물연대 파업에서 비조합원 차량들이 대거 파업에 동참하면서 불과 나흘 만에 부산항을 마비시켰던 전례를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원활한 대처 능력이다. 군 위탁 컨테이너 차량 등 비상용 차량을 긴급 투입해 물류 차질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얼마나 신속히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돌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파업 조합원들의 폭력 시위와 고의적 화물운송 방해 행위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 파업의 명분을 더 이상 확대시키는 사태는 없어야 할 것이다.

2. 에어백 결함까지 겹친 현대차 사태

국토교통부가 현대자동차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이 자동차관리법위반 혐의로 이원희 현대차 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이다. 현직 장관이 대기업 총수를 고발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는 지난해 6월 생산한 싼타페 2360대의 조수석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함을 드러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국토부 입장이다.

자동차관리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제작자가 결함을 알게 되면 시정조치 계획을 세워 차량 소유자에게 알리고 일간신문에 공고하는 등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 주장처럼 현대차가 에어백 결함을 알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면 이는 현대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안이다. 검찰에 고발 조치된 만큼 이와 관련한 진실이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에어백은 차량 사고 때 탑승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 7월까지 최근 5년간 국토부에 접수된 에어백 결함신고는 모두 26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현대차 에어백 결함이 84건, 기아차가 72건으로 현대·기아차에서만 156건이 접수돼 전체 건수의 58%에 달했다. SNS 등에서 현대·기아차를 ‘흉기차’라고 조롱하는 말까지 등장한 배경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현대차 파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에어백 파문이 불거졌다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불량 에어백에 대한 소비자 불만에도 현대차 노조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한가로운 모습으로 비쳐진다. 세계 최고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에서 자신있게 선보일 스포츠카 하나 만들지 못하는 처지에 최근 한국 자동차 생산량이 세계 6위로 떨어졌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하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이 가격이 싸고 품질 좋은 자동차를 국제무대에 앞다퉈 소개하고 있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 안전은 무시한 채 파업만 일삼는다면 현대차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에 지금 필요한 것은 ‘귀족노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파업이 아닌 품질 완벽주의 선언이다.

[서울신문]

3. ‘자문료 20억’ 받았다는 전 검찰총장 실명 밝혀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모 회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전직 검찰총장에게 수사 무마 대가로 20억원의 자문료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회사는 자문료로 20억원을 지급했다고 신고했지만 전직 검찰총장이 속한 로펌에서는 이를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아 마찰을 빚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의 얘기를 종합하면 전직 검찰총장이 수사를 무마해 준 대가로 20억원을 챙겼고 세금까지 탈루했다는 것이다.

이어 같은 법사위 소속인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국감장에서 한술 더 떠 이와 관련된 추가 의혹을 밝히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도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자문료 20억원이 4개 로펌 또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로 갔다며 박 의원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그러나 발언 내용만 봐서는 20억원이 4개 로펌 또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나눠 지급됐는지 아니면 20억원씩을 지급했는지도 애매모호하다.

박 비대위원장은 “박영선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국세청은 전직 검찰총장의 세무신고 여부만 대답하면 된다”며 박 의원의 폭로를 엄호했다. 국민의당 법사위 간사인 이용주 의원도 “4명의 변호사(4개 로펌)가 일반 변호사가 아니라 과거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라며 수사 무마를 위해 어떤 외압을 행사했는지 추궁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사실 20억원이 4개 로펌에 나눠 지급됐거나 각각 지급됐거나 의혹의 수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폭로 내용만 봐서는 20억원의 불법·탈법성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만약 합법적인 내용이라면 무턱대고 국감장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체적으로 판단한 결과 야당이 입수한 관련 내용의 불법성이 짙다고 판단된다면 실명을 분명히 밝히고 수사를 촉구하는 게 정도일 것이다.

이런 식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권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명을 밝히지 않았는데 어떠냐며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의혹을 부풀려 제기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추적해 보면 전직 검찰총장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의혹이 있다면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검찰과 국세청도 모르쇠로 일관할 게 아니다.

4.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 전화위복 계기 되길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 어제 삼성전자 협력사 관계자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취해진 조치”라며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지난달 초 자발적 리콜 사태를 부른 배터리 결함을 시정한 새 제품에서도 발화 사고가 잇따른 데 따른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의 모종의 단호한 조치가 나오기 전에 선제 대응에 나선 셈이다. 우리는 삼성전자가 눈앞의 판매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단을 내린 사실 자체는 긍정 평가한다. 다만 글로벌 기업으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품질 관리와 마케팅 등 경영 전 과정을 치밀하게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250만대나 팔려 나간 갤럭시노트7의 리콜을 결정할 때만 해도 국제 여론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홍채인식 센서, 방수·방진 등 탁월한 기능으로 인기를 끌던 제품을 자발적으로 회수하면서 브랜드 신뢰성은 외려 높아진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진정한 위기 관리의 시험대에 올랐다.

새 제품에서 생긴 해외 발화 사례가 7건이나 보고되면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전면 리콜 후 충분한 품질 검수 없이 성급하게 새 갤럭시노트7을 출시한 형국이다. 삼성전자 측이 글로벌 고객을 만족하게 하려면 부품 조달이나 조립 공정에서 티끌만 한 불량도 용인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이유다.

이번 사태는 수출과 내수에서 이중고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도 악재다. 통신사인 AT&T와 T모바일이 갤럭시노트7 미국 판매와 교환을 전면 중단했다는 소식과 함께 국내 증시도 출렁거렸지 않나. 그럼에도 신속한 일시 판매 중지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과거 ‘도요타 급발진 리콜’이나 ‘소니 배터리 리콜’처럼 미국 정부의 ‘외국 기업 때리기’라는 시각에 머무르다 더 큰 손실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삼성전자는 이번 불상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저력을 발휘해 주기를 당부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피하려면 글로벌 시장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제품 결함이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신속히 찾아내 고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비 온 뒤의 땅이 그냥 굳어지겠나. 차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답게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술 혁신의 토양을 기초부터 다지고 또 다지기 바란다.

[조선일보]

5. 지금 工大가 10년 뒤 우리 경제, 무슨 미래 있나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정체되는 이유가 공과대학의 인재 양성 시스템이 고장 났기 때문이라는 본지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기획 연재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한국 주요 공대들은 국제화와 예산 증액에 노력하고 있지만 연구·교육·창업 모든 면에서 해외 대학과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한국 공대에선 산업과 세상 돌아가는 현실에 맞춘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고 이론 수업 일색이다. 미국 공대 과목은 산업 현장을 앞서가는데 우리는 뒤따라가지도 않는다. 산업계에선 요즘 1년은 과거 10년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공대 강의 내용은 1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 국내 425개 모든 대학의 2014년 기술이전 수입이 총 576억원인데 미국 프린스턴대 한 학교의 1년 수입이 1582억원이라는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 칭화대는 지난해 1500억원, 베이징대는 800억원 이익을 남겼다. 이 현실이 10년, 20년 뒤 우리 경제의 미래라고 생각하면 암담하기까지 하다.

고장 난 공대 시스템 한가운데에는 교수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있다. 같은 공대 내에서도 전공이 다르면 남처럼 지내고, 학과 벽을 더 높게 쌓는 폐쇄주의가 있다. 이들은 다른 학과와 산업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학과 울타리에 안주한다. 공동·융합연구가 나올 리 없다. 공학 연구비를 줄 때도 학연을 따진다고 한다.

이공대 교수들 사이엔 '연구는 의미 있고, 학생 교육은 덜 중요한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교수 실적을 평가할 때 논문 숫자 등으로 심사하기 때문이다. 10년째 같은 커리큘럼으로 강의하는 교수가 있어도 대학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학원에서 과외 공부를 하는 공대생들이 있다고 한다. 기막힌 얘기다.

이제라도 공대 학과 울타리를 낮춰 학과·전공 간 융합 연구·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교수 임용 울타리도 낮춰 현장을 잘 아는 산업계 출신, 학연과 상관없이 실력 있는 인사가 교수 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연구 성과는 논문 양(量)이 아닌 질(質)로 판단하고, 잘 가르치는 교수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평가 체제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글로벌 첨단 현장과 유리된 교수들에게 강력한 자극을 주고 그래도 안 되면 퇴출시키는 풍토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동아일보]

6. 국회 개헌 논의, 임기 말 대통령이 막을 일인가

김재원 대통령정무수석이 어제 “청와대는 지금은 개헌 이슈를 제기할 때가 아니라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달 교섭단체 연설에서 ‘조건부 개헌론’을 제기하고 3일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 의원이 ‘내년 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공론화에 나서자 청와대가 일종의 ‘쐐기 박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국감 후 개헌특위 구성 검토’를 언급했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입법기관인 의원들이 개헌 논의를 하겠다는데 인위적으로 저지할 이유는 없다”며 ‘협치’를 위해서도 개헌 논의가 불가피함을 재차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년 전 “민생법안과 경제 살리기에 개헌 논의가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북핵 위기까지 겹친 현재, 개헌 논의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면 임기 중 치적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국가 과제도 챙겨야 한다.

올해 20대 국회가 새로 시작된 만큼 개헌 논의를 한다면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국회 개헌 추진 모임 참여 의원이 개헌 정족수인 200명에 육박한다. 개헌안의 발의권은 대통령과 국회가 다 갖고 있다. 국회의 자연스러운 개헌 논의를 임기를 1년여 앞둔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처럼 개헌 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한 경성(硬性)헌법을 가진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24차례나 개헌을 했다. 2000년 우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의회 임기와 맞추는 개헌을 단행해 이원집정부제의 폐단인 좌우 동거정부가 생겨날 가능성을 줄였다. 2008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정부의 긴급 법률 제정권을 제한하는 개헌을 했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하더라도 내년 대선 전에 마무리하려는 조급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간 여유를 갖고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미래 설계를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경총 회장이 밝힌 ‘미르’ 강제모금…안종범 수석은 답하라

포스코가 ‘발목을 비틀려’ 미르재단에 거액을 내야 했다는 지적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작년 11월 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포스코에서 30억 원을 내겠다고 한다. … (정부가) 재단법인 ‘미르’라는 것을 만들어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 450억∼460억 원을 내는 것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고 말한 회의록이 어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에 의해 공개됐다.

미르재단은 지난달 20일 더민주당 조응천 위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대기업들이 800억 원의 거금을 출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 씨가 개입됐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세간에 알려진 곳이다. 지난달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부회장은 “미르와 K스포츠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안종범 청와대 수석에게는 출연 규모나 방법 등이 거의 결정됐을 시점에 알려줬을 뿐 사전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사외이사이자 문예위원인 박 회장이 미르재단 기금 출연에 관해 “(이사회의) 추인만 원하는 것이지 부결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부결도 못 하고 왔다”고 밝힌 사실이 문예위 회의록에서 드러난 것이다.

재정경제부 1차관과 대통령경제수석, 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지낸 비중 있는 인사가 공적인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여당 일각의 주장대로 ‘실체 없는 의혹’으로 치부할 순 없다. 실제로 더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분석해 “포스코가 지난해 11월 6일 이사회 의결만으로 미르재단 30억 원 출연을 결정해 재정 및 운영 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한 이사회 규정을 어겼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문예위는 박 회장의 발언이 실린 부분을 삭제한 채 회의록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은폐 의혹까지 제기됐다. 문예위 관련 국감뿐 아니라 어제 진행된 13개 상임위를 통틀어 최대 쟁점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감에서도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는 의원들의 요구가 줄을 이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까지 “의심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국회에) 나와 해명해야 되는데 원천 차단하니 의혹만 제기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데도 여당이 증인 채택을 한사코 가로막는 것은 무책임하다.

20대 첫 국감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최순실 블랙홀’에 빠져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책임 있는 당국자가 재단 설립과 기금 출연 경위를 정직하게 밝히고 블랙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측근 비리’ 의혹이 국감은 물론이고 국정까지 발목 잡게 만들 순 없는 일이다.

[세계일보]

8. “우리도 우주 관측” 믿은 국민 실망시킨 미래부

정부가 과학기술위성 3호의 우주관측 카메라가 6개월 동안 먹통으로 변한 사실을 감쪽같이 숨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성은 2013년 11월 러시아에서 600㎞ 상공에 쏴 올린 국내 최초의 우주 관측 위성이다. 주요 임무는 수소 원자에서 나오는 근적외선을 관측해 별의 생성과 관련한 수소 가설을 검증하는 일이었다. 우리 은하계 지도를 그릴 테이터도 수집했다고 한다.

적외선 우주망원경은 이를 위한 핵심 장비다. 하지만 검출기의 냉각기 수명이 다하면서 망원경은 임무기간 2년에 이르기 6개월 전부터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11월 23일 “2년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발표했다. 먹통이 된 망원경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국민은 “우리 위성이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고 믿어온 것이다. 망원경의 작동이 멈춘 지난해 5월부터 따지면 1년5개월 동안 사실을 숨긴 꼴이다. 사실이 드러난 것은 국회 미방위에 제출된 한국천문연구원의 자료를 통해서다. 이 자료에 “지난해 연구 목표였던 우주관측은 냉각기 수명 완료로 수행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천문연구원은 당초 우주관측 영상을 제공할 민간사업자를 모집했지만 이마저 중단했다고 한다. 작동이 멈춰 제공할 자료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연구와 성과 공유 계획은 모두 엉망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미래부와 개발을 주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필요한 자료를 모두 확보했다”고 했다. 무엇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또 “우주 관측 카메라의 기대수명은 14개월이었다”고 해명했다. 프로젝트는 2년 계획으로 진행됐다. 애초 ‘2년간 연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천문연구원의 연구가 진행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는 우주 개발 경쟁에 나설 수 없다. 우주산업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로 참담한 수준이다. 위성 부품 가운데 우주에서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된 ‘우주급’ 부품은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한국형 발사체를 활용해 달 탐사선을 발사하겠다고 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자못 의문스럽다. 과학의 성과는 속일 수 없다. 아무리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도 소용없는 일이다. 더욱이 성과를 뻥튀기나 하려는 자세로는 우주산업의 부흥은 기대할 수 없다.

[매일경제]

9. 품격 잃은 트럼프의 발언, 한국 정치인 반면교사 삼아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9일 미국 대통령 선거 2차 TV 토론은 그야말로 최악의 추잡한 공방이었다. '여성의 동의 없이 키스하거나 몸을 더듬었다'는 등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도마에 올랐고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도 설전의 대상이 됐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서로 형식적인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거친 공격을 주고받았다. "여성뿐 아니라 이민자, 흑인, 전쟁포로, 무슬림 등을 모욕한 트럼프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는 힐러리에게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메일 스캔들을 이유로) 감옥에 보내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2차 토론에 대해 힐러리가 57%대34%로 승리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 누구도 승리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비전이나 철학을 찾아보기 힘든 암울한 토론이었다.

11월 8일 열리는 미국 대선을 진흙탕 싸움으로 바꾼 주역은 단연 트럼프라 할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여성 비하, 반시장경제, 인종차별적 막말을 쏟아내며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려 왔다. 연방소득세 탈세 의혹에 이어 7일에는 급기야 음담패설 녹음파일까지 공개되자 공화당 내 유력 인사들조차 지지 철회와 함께 후보 사퇴를 요구할 정도에 이르렀다. 트럼프가 숱한 막말과 기행에도 공화당 대선후보로 뽑힌 건 기존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 경제 양극화에 불만과 분노를 느낀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새로운 정치인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막연한 기대는 정반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등 극단적인 생각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며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국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트럼프 리스크'가 회자될 정도다.

선명하고 거침없는 정치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가 막말 드라마로 귀결되는 현실을 남의 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 정치권에도 막말·고함·욕설로 선명성을 과시하고 유권자에게 어필하려는 정치인들이 허다하다. 이들을 신속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면 내년 우리 대통령 선거도 비전 대신 막말과 추태가 난무할 수 있다. 트럼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서울경제]

10.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설파한 성과주의의 필요성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공동 수상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공공 부문 민영화와 주주와 최고경영자(CEO) 또는 노사 간 다양한 계약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분석 틀인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을 개발해 실제 사회에 적용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과 노동자, 기업 간 거래 등 거의 모든 경제 관계는 계약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 간 알고 있는 정보의 내용이 다르다면 불신과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투명한 계약과 상호 합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논지다.

두 교수가 계약에 집중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회적 비효율과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노사의 임금 계약이 대표적이다. 고용주는 근로자들이 성과를 내놓기 전까지는 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알기 힘들다. 능력이 서로 다른데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시간만 지나면 임금이 상승하기에 근로자가 노력을 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CEO와 주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주의를 기업 경영 전반에 도입하지 않는다면 생산력을 향상할 수도, 혁신도 이룰 수도 없다는 게 하트와 홀름스트룀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경제주체의 모든 행위를 계약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들이 설파한 계약이론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적지 않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체계가 정착되지 않는 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이라는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병도, CEO 과대 연봉의 문제도 해소하기 힘들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결국 구성원 전체와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대충 계약하는 것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사회적 불행이 초래될 수 있다”는 하트 교수의 경고야말로 우리 모두가 귀담아듣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경구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

퀴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바로 사람의 목소리이다.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목소리만큼 오묘한 악기는 없다. 변형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시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들으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성악가랑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의 소리를 분석해보곤 한다. 성악은 음역 차이에 따라 흔히들 알다시피 여성은 소프라노, 남성은 테너 등으로 구분된다. 반면에 목소리의 성질에 따라서도 나뉘는데 경쾌하고 우아한 레제로, 서정적인 리리코, 극적인 표현에 적합하고 선이 굵은 드라마티코가 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구분한다면 레제로 소프라노에서 보다 경묘한 소리에 화려한 기교로 노래하면 콜로라투라, 리리코 테너에 중량감이 더해지면 스핀토라 부른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테너들의 노래를 보다 더 관심 있게 듣는 편이다. 레제로 테너는 높은 레(D5)나 넓게는 높은 파(F5)까지 낼 수 있다. 로시니 ‘세빌리아 이발사’의 알마비바 백작,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토니오 등이 레제로 테너라 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핫한 테너인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이에 속한다. 리리코 테너의 경우는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렌스키 등에 적합하다.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베냐미노 질리, 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이 대표적이다.

레온카발로 ‘팔리아치’의 카니오, 푸치니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가 각각 스핀토와 드라마티코에 적합한 역할이다. 대표적인 성악가로 프랑코 코렐리, 주세페 자코미니, 마리오 델 모나코 등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록 보컬리스트를 꿈꾸며 발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프랑코 코렐리, 니콜라이 게다 등 대가들의 고음 발성을 들으면 경이로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특히 성악과 대중음악의 발성을 비교하자면 고음역대로 올라갈수록 파사지오 구간 발성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며 성악은 공명을 통한 바이브레이션, 대중음악은 성대 또는 흉부를 이용한 떨림을 이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라 볼 수 있다.

장르를 떠나 노래는 만국 공통어다. 인종, 언어, 성별을 넘어 모든 곡에서 선율에 따라 성대가 움직이는 목소리는 인류가 신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인 듯하다. 최근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스마일링 한국가곡 경연대회를 보며 나 역시도 아직까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좀 더 잘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새삼 느꼈다. 언젠가는 아마추어 성악가로서 내가 좋아하는 아리아나 가곡을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2.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리타를 위한 걷기

2004년 10월 11일 미국 뉴욕 주 사라토가 카운티의 한 병원 마취전문의 리타 라이턴(Rita Leighton)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졸지에 그를 잃은 친구와 가족들은 애도의 한 형식으로 그가 다녔던 카운티의 길을 걷는 행사를 마련했다. 그들의 걷기는 해를 거듭하면서 주민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처럼 자살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이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행사에 참가한 이들 사이의 대화와 친목은 자연스럽게 자살에 대한 이해와 예방 캠페인의 성격을 띠어갔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모금운동이 시작됐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Out of the Darknes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리타를 위한 걷기Walk for R.I.T.A’연례 행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라이턴의 이름에서 따온 ‘리타’는 “Remembrance, Intervention, Together we can bring Awareness”의 머릿글자, 즉 (죽은 이를) 기억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을 돕고, 다 함께 경각심을 갖자”는 의미. 그들이 벗어나자고 말하는 ‘어둠’은 자살(충동) 자체와 동시에 자살에 대한 사회의 무지와 편견, 낙인으로서의 어둠이기도 하다. 미국 자살방지재단(AFSP, American Foundation for Suicide Prevention)이 힘을 보탰다. 그들은 걷기 캠페인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재단 등과 함께 자살 연구, 예방 교육 및 홍보 활동을 벌인다.

행사는 연중,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주최한다. 참가자들은 사연에 따라 색이 다른 구슬 목걸이를 목에 거는데, 흰색은 아이를 잃은 이들, 붉은 색은 배우자나 파트너를 잃은 이들이다. 부모를 잃은 이는 금색, 형제를 잃은 이는 오렌지색, 친구나 친척을 잃은 이들은 보라색 목걸이를 걸고, 행사 취지에 공감해 그냥 참가하는 이들은 푸른색을 건다. ‘리타를 위한 걷기’는 이제 카운티와 뉴욕 주를 넘어 미국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재단에 따르면 미국의 자살자는 2014년 4만2,773명으로 12.3분마다 한 명씩, 하루 평균 117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 중 약 90%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 경험자라고 알려져 있다.


3. [서울신문][길섶에서] 밤 따기/임창용 논설위원

집 앞에 나지막한 산이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이 섞여 제법 우거져 있다. 요즘 산책을 할 때 눈길을 끄는 것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밤나무들이다. 돌쟁이 주먹만 한 밤송이들이 벌어질 듯하다. 막대기로 몇 번 치니 툭 떨어진다. 반쯤 여문 알밤을 까서 깨물어 본다. 풋풋한 단내와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내게 이맘때의 밤 따기는 빼먹을 수 없는 놀이였다. 매년 한두 번은 꼭 친구들과 어울려 ‘밤골’로 몰려갔다. 준비물은 긴 장대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가 전부. 막대기는 밤송이를 깔 때 쓴다.

가시에 찔리는 것도 모르고 놀며 따며 먹으며 한나절을 보내다 보면 두어 됫박 분량의 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린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밤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간혹 아내가 밤을 사다가 쪄서 내놓는다. 어릴 적 생각을 하며 먹어 보지만 왠지 맛이 심심하다. 밤 맛이 원래 이랬던가? 생각해 보니 그 시절 먹던 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던 듯싶다. 노동과 놀이의 결과물이었으니 맛도 각별할 수밖에. 내년엔 시골 친구들과 작당해 밤 따기에 나서 봐야겠다.


4. [서울신문][이상열의 메디컬 IT] 전자 차트 유감

현대 병원에서 전산은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다. 전산은 물류관리, 수납, 보험청구 등 진료 보조 영역을 벗어나 실제 환자의 진료, 처방, 검사 등 각종 의료행위, 각종 정보를 기록·보관하는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의무기록과 처방에 대한 전산 시스템 보급률은 이미 2000년대 중반 거의 100%에 도달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을 포함, 국내외 주요 병원에서 전자 처방 관리 시스템이 도입된 지는 1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다.

꽤 오래전에 보급됐음에도 이런 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은 최근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빅데이터’ 때문이다. 대용량 데이터의 분석 기법이 향상되고 대중화되면서 병원에 저장·보관된 각종 임상정보가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원으로 주목받게 됐다. 이전에는 기획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연구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일개 병원을 넘어 다기관 또는 다국가 차원의 데이터 연계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분명 긍정적인 것이며, 앞으로 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연구 활동에도 이미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가끔 전산이 진료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진료의 대상인 사람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수기 차트 시절, 내과 병동의 회진에서는 교수와 전공의가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광경이 일상적이었다. 환자의 상태와 중요한 검사는 종이 차트에 정리했고 그 기록을 두고 얼굴을 맞대며 토의했다. 외래 역시 마찬가지여서 진료 교수들은 환자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며 진료했고, 그 결과가 차트에 기록됐다. 필자는 각 의사 특유의 필체, 특히 노 교수의 멋스러운 만년필 필체를 무척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부 악필인 교수의 기록을 이해하지 못해 여러 의료진과 함께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병원 전산이 발전하면서 병동이나 외래에서 사람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환자나 의료진이나 서로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전자 의무기록 사용 후 의사가 환자에 집중하는 시간은 유의미하게 감소했고, 이에 따라 진료에 대한 환자와 의사의 만족도가 수기 차트 시절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사실 전자 의무기록의 유용성은 이전 종이 차트에 비해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탁월하다. 전산화를 통해 방대한 의무기록을 이전에 비해 손쉽게 유지, 보관할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으로 재열람이 가능하다.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전 종이 차트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다만, 사용자 관점에서 현재의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은 분명 과도기적인 것으로 개선의 여지가 상당하다. 앞으로 현재의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한 좀 더 만족스러운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가끔 병원에서 전산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매우 드물고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조치돼 진료상 문제는 거의 없지만 수기로 처방을 내 본 적 없는 신참 의사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행히 수기 처방 경험이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라 이런 사고에도 썩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전자 차트가 환자와 의사 간 의료 행위의 본질적 요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전산에 다소 장애가 있더라도 오히려 사람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해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좀 더 인간적이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5. [동아일보][이종훈의 오늘과 내일]소통 사회와 그 적들

‘소통(疏通)’이란 단어는 내 학창 시절 기억 속에 없다. 소통이 어떤 함의를 지닌 특별한 일상으로 다가온 건 2000년대 초중반이다. 3김의 시대가 저물고 고루한 지역주의에 세대와 진영의 논리가 파도처럼 밀려들던 때였다. 그 저편에선 인터넷과 모바일이 어떤 괴물을 데리고 올지 모른 채, 경이로운 네트워크의 세계만 손꼽아 기다렸다. 

소통은 권력의 대척점에서 존재한다. 1990년대 청와대에 있었던 한 중진 의원의 회고.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 본관으로 가면 위압적인 빨간색 카펫이 집무실까지 이어졌다. 집무실 문 옆에는 거울이 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라는 거다. 그쯤 되면 ‘오늘은 꼭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결기는 온데간데없다. 문을 열면 대통령이 한없이 높게만 보였다.”

권력(권력자)에게 소통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아줌마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예순 되던 해에 결심한 게 있다. 이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하고만 일하리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사치스럽게 나의 커리어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누구나 원하지만 힘을 가진 자만 가능한 꿈이다.

우리는 한 줌의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출한 ‘소통 거부 코미디’를 목도했다. 6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이후 금융위원회 간부 공무원이 “보도자료 외에 새로운 정보를 특정 매체에 제공하면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취재를 거부했다고 한다. 가끔씩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을 못 해 환장한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이런 분들은 소통을 위한 보통 사람들의 노력이 어떤 감동과 기적을 만들어 내는지 잘 보시라. 최근 한 이동통신사의 캠페인 광고를 보고 가슴이 찡했다. 소치 겨울 패럴림픽에서 4위를 한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 양재림 씨(27·여)와 그의 가이드러너 고운소리 선수의 이야기였다. 왼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고 오른쪽 눈도 시력이 거의 없는 양 선수가 슬로프를 내려올 때 바로 그의 앞에서 같이 스키를 타며 코스를 인도하는 이가 고 선수다. 양 선수는 캄캄한 설원을 오로지 블루투스로 들려오는 고 선수의 목소리에만 의지해 시속 100km로 활강한다. 자신보다 타인을 더 믿고 의지해야만 가능한 소통과 신뢰의 완전한 경지다.

이 나라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소통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다. 영화 ‘국가대표2’의 주인공 리지원(수애 분) 역의 실존 인물인 북한 출신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황보영 씨(37)는 어린 시절 친언니처럼 지냈던 넷째 이모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생을 그리워하는 엄마 때문에 내색도 못 한다고 했다. 남한의 이산가족 생존자 6만3670명 중 70대 이상 고령자가 5만3708명(84.4%)이다.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당 태종 이세민은 소통 리더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군주다. 태자였던 형을 죽이고 피비린내 나는 형제의 난을 거쳐 제위에 오른 이세민은 태평성대를 간절히 원했다.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반대파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제도화했다. 다름을 인정하면 신뢰가 형성되고 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게 정관의 치세가 던지는 메시지다.

그런 점에서 52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것은 200점짜리다. 노벨위원회가 투표에서 부결된 미완의 평화협정안에 상을 줘 그 소통의 불씨를 꼭 살려내겠다는 간절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소통은 간절해야만 시작된다. 그 간절함이 기회의 문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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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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