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비선 국정개입 의혹
■ 고문 선진국, 미국의 인권
■ OECD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 ‘소득불평등’ 지목
■ 제2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누수
■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합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비선 국정개입 의혹
[한국일보 사설-20141211목] 십상시 모임보다 비선 국정개입 규명이 본질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윤회씨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청와대 동향보고 문건에 등장하는 ‘십상시’ 모임이 실제 있었는지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과 접촉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했으나 정씨는 예상대로 강하게 부인했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과 박 경정에게 정보를 제공한 전 지방국세청장 등의 3자 대질신문에서 서로 진술이 엇갈린 터여서 청와대 문건의 진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신빙성 없음’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건에서, 더구나 관련자가 몇 명 되지 않는 경우 사실과 다른 진술이 나오는 것은 다반사다. 단지 반대되는 진술을 하는 이가 많다는 이유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은 채 불러서 해명만 듣는다면 면죄부를 주는 절차에 불과하다.
검찰은 처음부터 의혹의 전제를 ‘십상시’ 회동의 실재 여부로 설정했다. 그런 모임 자체가 없다면 국정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수사를 전개해왔다. 하지만 ‘십상시’ 모임이 없었다고 해서 문건을 허위로 단정하고 국정개입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건의 일부 내용은 실제 정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의 경질과 김덕중 국세청장 교체를 언급한 부분은 공교롭게도 실제로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승마협회 조사를 담당한 국장과 과장의 교체를 직접 지시했고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도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도 주변인을 통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건 내용의 신빙성을 방증하는 발언을 내비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문건 진위와 유출 과정 등 적당한 선에서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런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십상시’ 모임이 없었으니 문건은 엉터리고 일부 경찰관이 문서를 유출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식으로 서둘러 파문을 봉합하려다가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검찰이 욕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정권이 흔들리는 엄청난 역풍이 몰아 닥칠 가능성도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일단 고발된 것을 중심으로 하되, 수사 단서가 있고 범죄의 단초가 되면 수사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수사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건에 ‘청와대 핵심 3인방’으로 소개된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비서관에 대한 조사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청와대와 검찰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어떻게 풀어 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1목] 가이드라인 따라 ‘정윤회 면죄부’ 수사로 끝내려는가
서울중앙지검은 10일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씨를 불러 조사했다. 주변을 조사한 뒤 핵심 인물을 부르는 검찰 수사의 관행대로라면 수사가 정점에 가까워진 모양새이지만, 실제로 검찰 수사가 제기된 의혹들을 풀어헤치면서 납득할 만한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정씨가 이른바 ‘3인방’ 등 청와대 비서들과 비밀회동을 해 인사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정씨에게 확인했다고 한다. 소환에 앞서 검찰은 통화기록 조사 등을 통해 비밀회동이 있었다는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잠정 결론을 이미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 작성자에게 정씨 관련 내용을 전해줬다는 이들에게서 정씨 관련 내용이 시중의 풍문을 전한 것일 뿐이라는 진술도 받아뒀다고 한다. 반면에 고소인인 동시에 피고발인으로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정씨에 대해선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진행된 흔적이 없다. 정씨의 해명만 듣는 통과의례 수사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렇게 검찰 수사가 진행됐으니 결론도 애초의 불신과 우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성싶다.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보고서의 정씨 관련 내용은 ‘찌라시에나 나올 풍문을 확인도 없이 취합한 것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되면 보고서 내용이 “찌라시”나 “루머”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그대로다.
검찰은 이어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앞세워 보고서 내용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옥죄려 들 것이다. 아울러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해둔 문건 유출에 대해서도 구속과 기소로 엄벌하려 들 것이다. 그런 결과는 결국 정씨나 비서 3인방 등에 대한 ‘면죄부’와 상대편 ‘입 틀어막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이 지금껏 제기된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특정 날짜에 특정 장소에서 누가 만났는지 따위가 아니라, 비선 실세와 측근 비서들의 국정 개입과 농단이 사실인지 여부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경질 등 의혹이 사실이라는 정황은 이미 많다. 허위라는 보고서 가운데도 김덕중 전 국세청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갑작스런 경질 등으로 사실로 드러난 내용도 있는 터다. 대통령 말을 따른다고 검찰이 억지 결론을 내놓은들 의혹이 덮어질 상황이 결코 아니다.
■ 고문 선진국, 미국의 인권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1목] ‘고문 선진국’ 미국, 인권 얘기할 자격 있나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현지시각) 공개한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중앙정보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신문’(enhanced interroga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잔혹한 고문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즉각 책임 있는 후속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보고서는 ‘고문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달기, 잠 안 재우기, 독방이나 좁은 공간에 집어넣기 등의 ‘전통적인 고문’은 극한까지 간 형태로 실행됐다. 물고문을 발전시켜 직장으로 물을 주입하는 고문까지 이뤄졌으며, 러시안룰렛과 전동드릴 등도 동원됐다. 중앙정보국은 새로운 고문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군 장교 출신의 고문기술자들이 일하는 외주업체에 거액을 지급했다고 한다. ‘고문 개발의 외주화·산업화’가 이뤄진 셈이다. 중앙정보국은 테러 용의자로부터 정보를 빼내려면 고문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성과는 별로 없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많은 고문이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물론이다.
고문 실태 공개를 막으려 한 미국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으며, 그사이 중앙정보국과 정부의 방해 시도가 집요하게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고서 공개 직후 중앙정보국의 ‘가혹한 신문 기법’을 비판했지만 그 또한 실태 공개에 소극적이었다. 관련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내용이 보고서에서 아예 빠진 것은 이런 우여곡절의 산물이다. 미국 정부는 이제라도 관련된 중앙정보국 및 정부 관리들에 대한 법적 조처에 나서야 한다. 유엔 성명이 밝혔듯이 이런 잔혹한 고문은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구촌의 인권 수호자로 자처해왔다. 인권 침해를 이유로 다른 나라에 무력을 행사한 것도 한두 차례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 등과 관련된 사안에서 자신을 예외로 놓는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비판은 더 커질 것이다. 당장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논의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은 ‘고문 선진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도력 유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1목] 경악할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해외의 비밀 구금시설에서 테러 용의자들에게 가한 고문 실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 상원 정보위원장이 공개한 500여 쪽의 보고서 요약본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고문이 ‘선진 심문기법’이란 이름으로 반복적으로 가해졌다.
이번에 드러난 CIA의 고문은 유엔 인권헌장을 비롯한 국제인권 규약에 어긋나는 조직적인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고문에 이용된 구금 시설과 심문 프로그램은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인권국가 미국’이란 이미지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백악관·의회·국무부·법무부 등이 진실을 밝히거나 잘못된 행동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고문이란 수단을 정당화하면서 인권이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미 행정부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 및 미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한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놔야 한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미국이 용기 있게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숨김없이 밝혔다는 점이다. 잘못에 대한 고백과 반성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보고서 공개 후 “CIA의 가혹한 심문 기법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한다”며 “이것이 내가 취임한 직후 고문을 금지한 이유이고, 이런 방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의 발언은 CIA의 고문 사례가 드러났다고 해서 유엔이 주도해온 글로벌 인권 드라이브가 힘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고문을 비롯한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는 국가나 집단은 더 이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 말고 이런 고백과 반성의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인권은 국제사회가 지향해야 할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1목] 미 CIA 고문보고서로 드러난 추악한 진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9·11 테러 용의자 감금·고문 실태를 조사한 미 상원 보고서가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보고서는 그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고, 고문 효과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거나 축소·은폐해온 ‘추악한 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인권보다 중요한 안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3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테러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고문을 통해 테러를 막겠다는 생각은 용납할 수 없다.
상원 보고서에서 드러난 CIA의 고문 실태는 상상을 불허하는 수법과 극단을 치닫는 잔혹성으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예컨대 용의자 아부 주바이다는 관처럼 생긴 상자 안에 서있는 상태에서 11시간 이상 잠 안 재우기와 얼굴에 물을 붓는 물고문을 당했다. 테러 배후조종자였던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도 183회의 물고문을 받아 익사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일부는 빗자루로 성고문을 당했으며 견과류와 소시지 등 점심용 음식을 항문을 통해 주입하는 고문을 받았다. 총기를 머리에 대고 ‘모의처형식’을 열거나 가족 살해나 성폭행 위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 등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향상된 심문기법’이란 이름의 고문을 당한 39명 중 7명이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았으며, 일부는 고문을 당하지 않고도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수층을 중심으로 ‘고문 역할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원 보고서는 지난 5년간 작성 과정을 거치면서 중앙정보국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보수층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이겨내고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됐다. 고문을 폭로하는 것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이를 억누르는 행태가 오히려 안보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미국은 이번에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고서 공개는 반인륜에 맞서 싸운 양심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테러 용의자들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을 자행한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수용소를 폐쇄하고 고문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정부 차원에서 테러용의자 고문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기 바란다. 안보를 내세워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이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명심할 양심의 명령이다.
■ OECD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 ‘소득불평등’ 지목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1목] ‘불평등이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경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다. 미국의 ‘월가를 점거하라’ 따위 시위가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의 자본>이 큰 인기를 얻은 것 등이 이를 뭉뚱그려 말해준다. 관련 연구가 진행되면서 무엇보다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불평등이 성장에 크게 해로울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일정 한도를 넘으면 걸림돌이 된다는 이야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이런 주장을 펴고 있으니 설득력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 기구는 금융위기 전까지 또는 얼마 전까지 불평등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사고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그르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9일 낸 보고서에서 소득 불평등 확대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밝혔다. 회원국을 대상으로 성장률과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을 해소하면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1980년대 이래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낙수효과’ 이론을 부정하는 연구결과다. 낙수효과는 부자의 소득이 늘어나면 그들의 소비와 투자가 증가해 성장률이 높아지고 다른 계층의 소득도 늘어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런 이론이 국제통화기금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으니 의미가 가볍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발표된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의 지니계수는 0.3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6번째로 높았다. 그만큼 불평등이 심하다는 증거다. 조사방법의 한계 등으로 지니계수의 수치가 실제보다 낮게 나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불평등도는 이보다 훨씬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순자산의 경우 최상위 20% 가구가 58.9%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 현상을 이대로 방치해서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하면 군소리다. 정부가 신경을 쓰는 성장마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의 권고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분배구조를 개선할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동안 가계소득 증대 방안 등을 입에 올렸지만 말뿐이다. 더 늦기 전에 정책의 대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1목] 성장주의 종언에도 정부는 역주행만 할 셈인가
부자나라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로 소득불평등을 지목하며 적극적 재분배 정책을 권고했다. 성장론에 함몰된 채 분배 얘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켜는 한국 정부가 귀담아들을 내용이지만 오히려 정책 당국자들은 역주행만 거듭하고 있어 답답하다.
그제 나온 OECD 보고서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34개 회원국을 상대로 1985~2005년의 소득불평등이 1990~2010년의 성장률에 미친 영향을 따져봤더니 불평등이 큰 국가는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반면 크지 않은 국가는 성장률이 높았다. 성장의 가장 큰 변수는 소득불평등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고는 빈곤층 지원에 머물지 않고 중·하위층까지 포함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교육을 통한 기회의 평등 확충, 부유층 증세, 복지비용 확대 같은 재분배 정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30년간 각국을 분석한 결과 부의 편중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장률이 낮았다”며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부자 증세, 간접세보다는 직접세 인상, 저소득층의 교육·건강서비스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두 기관이 보수적이고 성장을 중시했던 곳임을 떠올리면 ‘성장지상주의의 종언’이라도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한때 가계소득 증대를 입에 올렸지만 불평등 해소에는 소극적인 채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최대 과제인 내수활성화 문제를 불평등 개선과 가계소득 증대로 풀기보다는 빚내 집 사라는 쪽으로 흐르면서 가계 빚만 심화시켰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부동산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우리는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 방향 확정에 앞서 성장론에 치중한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장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노동정책은 그만둬야 한다. 땜질 처방으로 끝난 조세제도와 복지정책도 재정비돼야 한다. 정부는 ‘증세하면 경기 망친다’ ‘임금 올리면 기업 망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질서 있는 증세와 임금인상이 경기와 기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논거는 어디에도 없다. OECD나 IMF 역시 재분배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해소 문제는 이미 성장론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상위개념이다.
■ 제2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누수
[한국일보 사설-20141211목] 아쿠아리움 누수 '설마'하고 넘길 일 아니다
개장한지 채 2개월도 안된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물이 새는 사고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한 곳에서 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제 정부합동안전점검 결과 최소 세 곳에서 물이 샜고, 이 중 두 곳에서 계속 물이 흘러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제2롯데월드 지하 1, 2층에 자리한 아쿠아리움은 지난 10월 16일 개장했다. 연면적 1만1,240㎡에 5,220톤의 물이 채워져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족관이다. 그런데 지난 3일 내부 공간 가운데 오션터널(관람수조) 콘크리트벽과 아크릴 사이에 채워 놓은 실리콘에서 길이 7㎝, 너비 2㎜ 정도의 균열이 발생했다. 회사 측은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환경개선 작업 중’이라는 차단막을 쳐 놓고 긴급 보수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국내외 아쿠아리움에서의 미세한 누수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심각한 상황도 아니다”며 나머지 수족관 구역은 일반인의 관람을 계속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무책임하고 안이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정부합동점검에 따르면 애초 문제가 됐던 메인 수조뿐 아니라 인근의 대형 수조 양쪽에서도 물이 새고 있음이 밝혀졌다. “한 곳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누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점검단장인 서울과학기술대 김찬오 교수의 말이다.
더욱이 수족관 바로 밑에는 주변지역 2만여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15만4,000볼트급 석촌 변전소가 들어서 있다. 수족관에서 대규모 누수가 일어나면 바로 아래 지하 3, 4, 5층에 위치한 변전소에 물이 쏟아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수족관과 지하변전소는 차단돼 있어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지만 당치 않다. 5,000여톤의 물이 담긴 수족관의 엄청난 수압을 감안하면 아무리 작은 균열이라도 커다란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제2롯데월드 인근에서는 그 동안 싱크홀(땅 꺼짐) 현상이 빈발하고, 석촌호수의 수위 하강 원인에 대한 조사도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감은 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개장한 제2롯데월드는 바닥과 천장의 균열, 금속 구조물 낙하 등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왔고, 이번 아쿠아리움 누수 사고로 사전에 충분한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개장 후 한달 간 무려 360만명이 찾았다는 다중시설의 안전의식이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아쿠아리움 영업을 중단시키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롯데 측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지 영업에 목맬 때가 아니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1목] 물 새는 롯데 수족관 이대로 방치해서야
국내 최대 규모의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족관 곳곳에서 물이 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족관은 관람객들이 눈앞에서 물고기의 움직임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든 놀이시설이다. 누수 현상은 1주일째 계속됐지만 롯데 측은 이를 숨긴 채 영업행위를 계속해 왔다. 어제 정부의 합동안전점검 결과 당초 문제가 된 1곳 외에 2곳 이상의 수족관에서 누수 현상이 추가로 발견됐다. 제2롯데월드는 그간 공사 도중 화재와 노동자 추락사고, 건축물 균열 같은 각종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았던 곳이라 더 걱정이다.
누수 현상이 발견된 곳은 지하 2층 아쿠아리움이다. 벽 콘크리트와 수족관의 아크릴이 맞닿은 부분에 균열이 생겨 그 틈새로 물이 샜다고 한다. 롯데 관계자는 “미세한 누수 현상은 아쿠아리움 개관 초기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누수는 언제 어디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 의식이다. 아쿠아리움은 어린이 관람객이 주로 찾는 놀이시설이다. 미세 균열은 제2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경고신호다. 고객들에게 사전에 알린 뒤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누수 부위를 판자로 막아놓고 고객들에게 쉬쉬하는 것은 대기업의 자세가 아니다.
아쿠아리움 바로 밑 지하 3~5층엔 한전의 변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변전소 안전 문제는 아쿠아리움 개관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사안이다. 혹 아쿠아리움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15만4000Ⅴ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변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민안전처와 국토교통부의 민관 합동 안전점검에서도 수족관에서 대규모 누수 발생 시 변전소의 침수 대책이 집중 거론됐다. 이런데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만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시민 안전을 볼모로 한 무리한 영업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의 값비싼 교훈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다. 제2롯데월드의 안전사고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아쿠아리움 누수 현상도 파면 팔수록 가관이다. 민관 합동조사반의 안전점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영업을 중단하는 게 옳다. 롯데의 안전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되풀이했지만 달라진 게 뭔가. 오죽했으면 오너인 신동빈 회장이 이곳에서 직접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며 “글로벌 톱 기업에 맞는 사회적 위상과 기업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겠는가.
■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합의
[한국일보 사설-20141211목] 여야 '반쪽의 빅딜', 공무원연금 더 합의해야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와 국회 특별위원회를 연내에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는 어제 ‘2+2 회담’에서 이와 함께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에 합의하고, 방산비리 국정조사도 조건부로 실시하기로 했다. ‘부동산 3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법안은 29일 본회의에서 최대한 처리하기로 했다. 또 미처 합의하지 못한 정치개혁 특위와 개헌특위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2+2 회담’ 틀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여야의 합의는 그제 막을 내린 제329회 정기국회의 ‘잔무(殘務) 처리’를 위해 15일부터열리는 임시국회의 전망을 밝게 한다. 경제활성화 법안 및 공무원 연금 개혁, 이른바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등의 쟁점을 함께 협상테이블에 올려 놓고 일괄 타결을 시도하는 방식을 정착시킨 듯한 모습도 눈에 띈다.
다만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공무원연금 개혁의 구체적 내용을 최종적으로 국회 특위와 국민대타협기구에 맡기기로 한 것은 즉각적 문제 해결보다는 연기, 또는 논란의 지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평가를 하기 어렵다. 국회 특위에서의 여야 논란도 불을 보는 듯하지만,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을 포함한 국민대타협기구의 구성은 한결 그런 우려를 크게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가재정구조 악화를 막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어느 정권에서든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미 국민연금과의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혜택과 그를 위한 재정부담의 실상이 확연해져 국민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이다. 더욱이 2016년 총선 때까지는 당분간 대통령 선거나 총선, 지방선거 등 전국적 선거가 없어 공무원과 그 가족, 관련자 등 잠재적 개혁 피해자들의 정치적 반발에 여야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당분간 공무원연금 개혁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를 낳는다. 실제 국회 특위와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과정에서 이런 우려를 씻어줄 만한 논의 절차와 활동 시한에 대한 명백한 제한이 이뤄져야만 한다.
올 정기국회에서 끝내 처리하지 못한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대한 합의가 불발한 것도 여야의 의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전체 법체계화의 최소한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선에서 조속히 합의,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의 현격한 시각 차이에 비추어 ‘최대한 처리’에 합의한 ‘부동산 3법’등 경제활성화 법안의 처리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부동산경기 활성화냐, 투기 조장이냐’의 논란은 모든 경기부양 대책에서 동전의 양면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여야가 조속히 이견 조정을 매듭짓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1목] 뒤늦은 여야 대타협 … 민생·개혁 입법에 속도 내야
어제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 대타협기구’와 자원외교 실태를 조사하는 ‘해외자원 개발 국정조사 특위’를 연내에 구성키로 합의했다. 방위산업 비리는 검찰 조사를 지켜본 뒤 국정조사 여부를 판단하고, 부동산 관련법 등 민생경제 법안도 29일 본회의에서 최대한 처리키로 했다.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진전이다. 크게 보면 여야가 핵심 사안인 공무원연금 개혁과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조사의 일부를 주고받는 ‘빅딜’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입법권이 막중하다. 어떤 좋은 정책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여야의 정쟁과 국회선진화법에 발목 잡혀 대한민국호가 제자리걸음을 해 온 게 불편한 진실이다. 지난 9일 폐회된 정기국회도 마찬가지였다. 12년 만에 새해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것 외에는 전혀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국회는 세월호특별법 대치로 두 달간 공전하다 폐회 직전 벼락치기로 130여 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핵심 법안들은 그 무더기에조차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과 부동산 3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 의료법 개정안 등이 그것이다.
정책에도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입법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일본은 1990년 이후 허둥지둥대는 정치권이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70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 지원을 놓고 미 정치권이 장기간 대치하는 바람에 초동 진압의 안타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여야가 특위를 만들기로 한 공무원연금 개혁은 지속가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수술이다. 부동산 관련법 등도 제때 입법화돼야 내수를 살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여야는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김영란법이나 각종 규제 개혁·공기업 개혁 법안 심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이제 여야의 대타협 없이 지속가능한 나라는 기대할 수 없다. 정치 공방을 접고 대담한 타협을 통해 선진화된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금융위는 '지배구조 모범규준' 깨끗하게 접어라
금융위원회가 주주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안의 시행을 일단 연기하겠다고 한다. 어제까지의 입법예고 기간 중 전경련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거센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수렴하겠다며 전체회의 개최를 이달 24일로 애초 예정보다 2주 늦춘 것이다. 금융위는 문제가 되는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예외조항을 두는 방식으로 원안을 부분 손질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독소조항이 한둘이 아닌 모범규준이다. 특히 압권은 ‘충분한 수’의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CEO 및 임원을 추천하도록 한 조항(14조)이다. 상법상의 주주권을 침해하는 위법적 가이드라인이라는 지적이 당연히 나온다. 기관투자가, 금융소비자, 공익단체 등이 참여할 임추위가 어떻게 유능한 CEO 후보를 평가해 뽑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연히 주주가 있는 민간 금융회사인데 정부가 지배구조에 간섭해 주주 권한을 무력화하고 사외이사들의 권한만 잔뜩 키워놓으려 한다.
과반수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하라는 조항(9조)도 그렇다. 사외이사 보고 사외이사를 뽑으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이런 모범규준은 주인 없는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증권 보험 카드 등 전 금융권에 걸쳐 자산 2조원 이상인 118개사에 전면 적용될 예정이다. 이대로 규준이 시행되면 사외이사의 무한권력 시대가 열리고, 금융회사마다 사외이사에게 줄을 서는 희한한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KB금융 사태는 주인 없는 은행에서 사외이사들이 책임은 없이 절대권한을 행사해왔던 데서 벌어졌다. 금융위는 KB금융 사태를 막겠다면서 되레 사외이사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제2, 제3의 KB금융 사태를 부르려는 모양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문제가 된 이유는 바로 관치금융에 있다. 주인 없는 금융회사를 만든 게 문제였다. 우리금융지주를 민영화하겠다는 정부가 멀쩡한 민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헝클어뜨려 주인 없는 회사로 만들려고 든다.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일 뿐이다. 깨끗하게 접어라.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행정지도 따르다 경영 위기에 몰리는 이런 현실
정부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해 으레 행정지도라는 이름으로 가격 결정에 개입한다. 정부가 명시적이건 암시적이건 가이드라인을 주면, 관련업체들이 이를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를 다른 정부 부처가 ‘가격 담합’이라고 문제삼고, 막대한 과징금까지 물리는 일이 번번이 벌어지는 게 한국이다.
라면 사례는 대표적이다. 업체들이 물가당국의 행정지도를 받아가며 ‘라면 거래질서 정상화협의회’를 만들어 가격인상률을 협의해 결정했던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이라고 판정했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 등 4개 업체가 2001년부터 10년간 6차례에 걸쳐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가격인상을 담합했다며 과징금 1354억원을 부과했던 것이다. 법원마저 행정지도가 있었다는 업체들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1월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내년 초로 예정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정위의 승소 여파로 미국에서도 라면업체들에 대한 집단소송이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법은 플라자컴퍼니 등 현지 대형마트들이 한국 라면업체의 미국 법인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요건을 지난달 초 승인했다. 이 집단소송에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식품마트 300여곳이 참여의사를 밝혔고 과징금 규모가 약 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해졌다. 라면업체들이 국내외에서 최악의 경우 1조원 내외의 과징금을 물어야 할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 행정지도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 것이 엄벌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라면 사례는 어제 전경련이 주최한 경영판례연구회 세미나에서 공개됐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배임죄로 처벌받은 CEO, 정부 가이드라인대로 하청근로자에게 모범사원 표창을 줬더니 그것을 ‘실질적 직원이라는 증거’라고 본 판결도 소개됐다. 부처 간 조율 없는 행정부와 경영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가 기업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참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아일랜드냐 이탈리아냐, 구조개혁이 명운 가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통제 안 된 공공부채는 나라경제의 발목을 잡았고, 극심한 저성장은 최악의 실업률로 이어졌다. 일자리 감축은 곧 사회적 불안이 됐다. 경제난이 국가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구조조정에 내몰리고서야 국가부도를 면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때 우리도 경험했던 바다.
금융위기 발생 6년, 지금 PIIGS 국가들의 명운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힘겨운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아일랜드와 부실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이탈리아가 그렇다. 아일랜드는 93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난해 말 졸업했다. 재작년 초 15.1%였던 실업률도 지난달 10.7%로 떨어졌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도 내년엔 4.8%로 낮춰 유로존 목표치(3%)에 근접하겠다며 허리띠를 더 죄고 있다. 최근 S&P가 이 나라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올린 배경이다. 2008년 이후 재정지출을 280억유로 줄였고 유럽 최저의 법인세로 구글 등 다국적기업 투자를 확대시킨 성과가 반영됐다. 이탈리아는 그 반대다. 2009년 GDP의 106%이던 공공부채는 올해 133%로 확대일로다. 내년 성장률은 겨우 0.2%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의 자산건전성 평가에서 은행들은 대거 낙제판정을 받았다. S&P는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BBB-로 낮췄다.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투기등급이다.
양국 상황이 달라진 것은 구조조정 때문이라는 평가다. 아일랜드는 부채를 줄이고, 노동시장도 개선해왔다. 은행개혁이 끝나면 경제가 더 활기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낙관한다. 선순환 구조에 들어섰다. 반면 이탈리아는 노동계와 정치권 반대로 공공자산 매각과 민영화 계획이 지지부진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저성장은 고착화하고, 연금·노동·금융 개혁은 진척이 없다. 구조개혁은 당장은 힘들지만 진통제 같은 금융완화에만 매달리면 더 위험해진다. 구조개혁과 생산성 혁신 외에 마법은 없다는 점을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입증하고 있다. 한국의 행로는 아일랜드인가, 이탈리아인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서울 양대 지하철공사 통합, 경영효율 높이는 계기돼야
서울시가 지난 20년간 딴살림을 해온 산하 지하철 운영기관 2곳을 2016년까지 통합하겠다고 10일 발표했다. 김영삼 정부와 관선 서울시장이 경쟁을 통한 효율 향상 등을 내세워 1994년 운영주체를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로 쪼갰는데 갈수록 낭비·비효율 요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운영기관을 둘로 쪼갠 데는 강성인 서울메트로 노조가 파업을 벌일 경우 '시민의 발'이 완전히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판단보다는 시너지 극대화를 통한 적자축소와 안전·서비스 향상이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양 공사의 부채는 이미 4조6,000억원이나 되고 건설된 지 최장 40년이 지남에 따라 예정된 노후 시설물 재투자 비용은 1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양대 공사 통합은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서울시의 자구 노력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시는 노조의 동의를 얻기 위해 중복 인력을 안전·서비스·신사업 부문으로 전환배치,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인력감축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래서야 통합의 실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직무가 상당히 달라 교육을 통한 재배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 컨설팅을 해준 맥킨지도 통합을 통해 4년간 거둘 수 있는 비용절감액 1,411억원 가운데 1,220억원을 인력감축 몫으로 잡았지 않은가.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를 경영에 참여시키고 경영 관련 사안을 경영협의회를 통해 노조와 협의하겠다는 내용이 과연 경영효율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시민 안전과 지하철 경영합리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양대 지하철공사의 통합은 애초의 의미를 상실할 뿐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아세안을 신성장동력의 파트너로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가 11일부터 이틀간 부산에서 열린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내에서 처음 주최하는 다자간 회의인데다 아세안 10개국 정상들도 2009년 회의 후 5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경제 분야와 함께 정치·외교에서도 나날이 우리에게 중요성이 커지는 아세안 국가 정상들과 다자 및 단독 정상회의를 치를 수 있어 대(對)아세안 외교의 완결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경제 외교에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세안은 최근 5년 동안 중국에 이은 제2의 교역 상대국이자 제2의 건설수주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 이은 제3의 해외투자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3년 한 해에만도 우리 국민 460만명이 이 지역을 찾았으며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최대 출신 지역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중요성에 비해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 아세안 외교와 우리 국민들의 아세안 지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지극히 소홀한 편이다.
아세안 지역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역동성이다. 갈수록 미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일본·유럽연합(EU)과 비슷했던 9% 정도의 교역비중이 지난해에는 13%까지 늘어난데다 우리가 거둬들이는 무역흑자의 65%가 아세안으로부터 나올 정도다. 특히 내년 말로 예정된 아세안공동체가 출범할 경우 더욱 비약적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6억4,000만명 이상, 국내총생산(GDP) 3조달러에 육박하는 거대 단일시장 출범은 중국의 성장둔화와 미국·EU 등 주요 지역에서의 시장포화와 경쟁격화로 힘겨워하는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아세안 단일시장의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 외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경쟁상대인 중국과 일본이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도 필요하다. 아세안과 체결한 상품·용역·투자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 분야를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개별국과의 양자 FTA도 조속히 마무리해 교류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성장 동력의 파트너로 의미가 커지고 있는 아세안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노력이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1목] "내년도 성장률 둔화"… 경제 역동성 되살릴 길 없나
한국 경제의 성장둔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미래전략포럼에서 "경제 회복세가 미약하고 대외여건을 볼 때 내년 경제성장률에 하방 리스크가 생기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달 말 발표할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기존의 4.0%에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4%와 3.5%로 낮춰잡았다.
미약한 경제회복세의 원인은 무엇보다 소비부진이다. 최 경제부총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 초중반에 그치는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2000년대 초반 7%를 웃돌았던 경제성장률이 최근 3~4%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KDI의 진단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민간소비가 여전히 미미한 증가에 그쳤으며 투자 회복세도 미약해 내수시장 부진으로 이어진 점이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유로존 경제의 장기침체와 중국 시장의 성장세 둔화 등 해외변수도 성장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체력이 이렇게 허약한 만큼 상당기간 확장적 재정·금융정책 기조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공기업 부채와 공적연금 등의 개혁과 더불어 세원확대가 뒤따르지 않으면 재정부실과 가계부채 급증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 등 외부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이다.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의료·관광·교육·물류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박용현(논설위원)-20141211목] 성소수자 논란 한·미 비교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가운데 성소수자 문제가 심각한 정치·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곳은 우리나라와 미국뿐이 아닐까 한다. 모두 보수 기독교계가 논란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기독교 전통이 강한 나라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고 연설할 때도 하나님을 자주 호명한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78%가 기독교인이며, 33%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믿는다. 퓨리서치센터는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를 29%로 집계하고, 세계적으로 종교적 다양성이 가장 높은 국가군으로 분류했다.
미국은 최근까지도 동성애 행위를 형사처벌했던 나라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저항도 있었다. 2003년 연방대법원이 ‘로런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위헌 판결을 내릴 때까지 14개 주에 동성애 처벌법이 남아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문화적 핍박은 강했을지언정 동성애를 처벌하지는 않았다. 동성애를 불법화한 적이 없으니, ‘동성애 합법화’라는 표현은 틀렸다.
논란의 수준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동성 간 결혼(33개 주에서 인정) △성소수자의 입양(독신 성소수자에게는 허용, 성소수자 커플의 경우 주마다 다름) △성소수자의 군복무(동성애자는 2011년부터 허용, 트랜스젠더는 계속 불허) 등 성소수자 권리의 제도적 확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진행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처럼 겨우 선언적인 차원의 차별금지 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오랜 기독교 전통과 성소수자 탄압 극복의 역사를 배경으로 차원을 높여가며 논란이 지속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들어 저급한 수준의 논란이 불쑥 출현한 양상이다. 그런데도 일부 기독교계의 주장에 과도하게 휩쓸리는 정치권의 모습이 딱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9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역사적인 성소수자 차별금지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중앙SUNDAY 차장)-20141211목] '닥치고 의대' 그리고 20년 뒤
대구 경신고에서 수능 만점자 네 명이 나왔다. 재학생 기준으로 전국 최다 기록이다. 이 학교 만점 입시생 네 명은 모두 의대로 진학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가 수능 수석들의 진로를 추적해보니 2000학년도 이후 이과 수석 16명 중 13명이 의대·치대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서울대 이공계를 선택했지만, 수능을 다시 치르고 결국 서울대 의대로 갔다(12월 3일자).
요즘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대개 이과에서는 의대, 문과에서는 경영대로 간다. 의대의 압도적 인기는 1990년대 말 경제 위기 이후 확고해졌다. 경영대는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법대가 사라지면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의대 쏠림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전국 의대 총 정원이 1600여 명에서 2300여 명으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입시학원에서 내놓은 예상 정시모집 커트라인을 보니 지방 의대 대부분이 서울대 이공계 학과들보다 점수가 높다. 고득점자들이 서울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로 가던 시절의 얘기는 어느덧 전설이 됐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나라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는 선망의 직종이지만 최우등생들이 의대로 몰리지는 않는다. 미국 대학의 학부에는 의대가 없으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국에서는 학부에 의대가 있고 인기도 높지만 우리처럼 우수 학생이 집중되지는 않는다. 전교 1, 2등이 물리학과·수학과·화학과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
경영대 사정은 더 특이하다. 미국 아이비리그 8개 학교 중 학부에 경영학과가 있는 곳은 펜실베이니아대뿐이다. 영국에서 경영학과는 경제학과나 역사학과에 비해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점수가 낮다. 영·미권 명문대에서 최우수 문과생의 증표는 ‘철학·정치·경제 통합(PPE)’ 전공이다.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경영대로 가는 나라의 20년 뒤 미래는 어떨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잇따라 나오고 평균 수명 100세의 시대를 활짝 열까. 경영 기법의 획기적 발전으로 부국(富國)의 꿈을 이뤄낼까. 안타깝게도 이런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성적이 좋은 의대생들은 앞다퉈 성형외과·피부과·안과로 몰려간다. 그 사이에 기초의학 전공은 외면당하고 있다. 상당수 경영대생에게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준비가 ‘주전공’이 된 지 오래다. 외부 세계와는 동떨어진 이 ‘갈라파고스’적 고등교육의 진화, 매우 불길해 보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41211목] 땅콩
땅콩은 그 맛이 고소해서 자꾸자꾸 손이 가는 대표적인 간식 거리다. 맥주집의 마른안주에는 오징어나 노가리와 함께 볶은 땅콩이 빠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공짜로 땅콩 한 움큼씩 갖다주는 생맥주집도 많았다. 오징어 맛과 땅콩을 하나로 묶은 ‘오징어 땅콩’이란 과자도 있다. 키가 작은 사람을 흔히 ‘땅콩’이라고 한다. 골프선수 김미현의 별명은 ‘슈퍼 땅콩’이었다. 요즘은 한 필지에 독립된 두 가구를 건축하는 ‘땅콩집’이 인기다.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 찐 계란 있어요.” 과거 기차 안이나 야구장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심심풀이 땅콩’은 시간 때우기라는 뜻의 관용어가 됐다. 애인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내가 무슨 심심풀이 땅콩이냐”라는 핀잔을 듣는다. 땅콩의 영어인 피넛(Peanut)은 ‘푼돈’ ‘시시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미국 남부에서 주로 가축 사료로 쓰고 배고픈 흑인 노예들이나 먹었기 때문이다. 땅콩은 남북전쟁 이후에야 음식 대접을 받게 됐다.
반면 지금 세간에서는 ‘황제 땅콩’이라는 ‘마카다미아’가 화제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조현아 ‘공주님’에게 이 ‘황제 견과류’를 뜯어서 주지 않고 봉지째 건넸다가 사무장이 비행기 밖으로 쫓겨나는 사달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마카다미아는 향이 고소하고, 값 비싸고, 몸에도 좋은 최고급 견과류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적어 구하기도 어렵단다. 대한항공에서도 프레스티지 이상 좌석에서만 맛볼 수 있다. 물론 이코노미석은 일반 땅콩을 준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너츠 사건(Nuts Incident)’으로 보도했다. 너츠(nuts)에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뜻도 있다. ‘긴 말은 않겠다. 그 땅콩(사실은 마카다미아).’ 벌써 이런 기발한 문구로 마카다미아 홍보에 나선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 “나에게 미개봉 까까를 준 사람은 40년 인생에 승무원, 당신뿐이에요”라는 애니메이션도 인기다. 여성이 들고 있는 봉지에는 ‘empty nut(속 빈 견과)’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조 부사장이 땅콩의 다른 말인 ‘낙화생(落花生)’이 된 꼴이다. 그럼에도 그의 평소 행태 때문에 대부분 ‘땅콩맛처럼 고소하다’는 반응이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심심풀이 땅콩은 맛만 고소하면 최고인데.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김선태(논설위원)-20141211목] 프렌치 프라이 원조 논쟁
패스트푸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다. 두 가지는 대부분 함께 먹다보니 햄버거만으론 왠지 허전하고 중간중간에 케첩을 듬뿍 찍은 프라이를 곁들여야 뭔가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맥도날드(120여개국, 3만5000여개)와 버거킹(70여개국, 1만2000여개) 두 업체의 체인점 수만 따져도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는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 프렌치 프라이를 두고 난데없는 원조 논쟁이 한창이다. 이름대로면 프랑스식(French) 감자 튀김(fries)이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저 프랑스에서 유래했거니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벨기에가 자신이 원조라며 감자튀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벨기에에서 감자튀김은 ‘프리트’(frites)라 불리는 서민음식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서 파는데 주로 마요네즈를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프렌치 프라이라는 이름은 미군의 오해 때문에 붙여졌다는 게 벨기에의 주장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벨기에 왈로니아 지역에서 감자튀김을 처음 본 미군이 프랑스어를 쓰는 이 지역을 프랑스로 착각해 미국에 프렌치 프라이로 잘못 소개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프렌치 프라이라는 말이 191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얘기다. 미국으로 이민 온 벨기에인들이 자주 해먹던 감자튀김을 미국인들이 프렌치 프라이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인들을 프랑스인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는 “대혁명 때 처음 등장했다는 견해도 있다”며 다소 불편한 심기다. 일각에서는 프렌치가 ‘잘게 썬다’는 뜻도 있다며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식으로 원조를 따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재밌는 건 프랑스가 이 음식의 원조가 벨기에임을 인정했던 적도 있다는 점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전후해 프랑스는 계속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다. 미 하원은 이에 대한 화풀이로 구내식당 메뉴 중 프렌치 프라이의 이름을 ‘프리덤 프라이’로 바꿨다. 그러자 주미 프랑스 대사관은 “프렌치 프라이는 벨기에 음식”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3년 뒤 이름은 다시 원위치됐지만 이번에 벨기에 뜻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당시 프랑스로서는 결정적 실수를 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프렌치 프라이를 ‘벨지언(Belgian)’ 프라이로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41211목] 비밀 가명(假名)
지난해 4월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작가가 쓴 추리소설 '쿠쿠스 콜링'이 출간되자 영미 출판계가 작품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이 신예 작가에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 다양한 소문이 돌고 돌다 석 달 뒤 작가의 정체가 밝혀진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너무나 유명한 작가 조앤 롤링의 가명(假名)이었던 것이다.
롤링이 가짜 이름으로 책을 낸 이유를 들어보면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명성이 아닌 오로지 글로 평가받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처럼 가명을 가진 유명 작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포 스릴러 소설의 거장인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먼, 존 스위든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고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사 크리스티 역시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가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기도 했다.
소설가 못지않게 가명을 애용하는 곳이 연예계로 알려져 있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가명 사랑'이 최근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해커들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다. 외신에 따르면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평화의 수호자들(GOP)'이 톰 행크스 등 할리우드 배우 12명이 비밀리에 쓰던 가명을 공개했다. 할리우드 소식에 정통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에게도 생소한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톰 행크스는 스코틀랜드의 유명 코미디언 해리 로더와 1960년대 웨스턴 시리즈에 등장하는 조니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차용해 쓰고 있었다. '007시리즈'의 새 주인공인 대니얼 크레이그는 올언 윌리엄스, 영화 '레옹'에서 주인공 소녀역을 맡은 내털리 포트먼은 로런 브라운, 셜록 홈스로 우리에게 친숙한 주드 로는 미스터 페리, 제시카 알바는 캐시 머니를 애용했다.
이들은 소니영화사와 거래할 때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다고 하니 대중들의 과잉 호기심 앞에 오죽했으면 하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도 때도 없는 해킹으로 가명조차 까발려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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