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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진심과 사죄’ 빠진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뇌물수수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의 대국민 사과라기엔 많이 모자란다. 검찰에 나온 피의자들의 전형적인 말이 꼭 이랬다. 박 전 대통령에게선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정성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런 형식적 입장 발표로는 국민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 힘들다. 그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쪽이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특검이 나를) 완전히 엮었다”고 거칠게 반발했다. 극우성향 인터넷 방송에 나와선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짓으로 쌓아 올린 커다란 가공의 산”이라거나 “오래전부터 기획된 음모”라고 비난했다. 대면조사도 온갖 핑계와 트집을 잡아 끝내 거부했다.



그런 그가 이제야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방향을 튼 이유가 달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처럼 검찰과 특검 수사를 전면 부정하고 조사를 회피하다간 구속을 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겠다. 국민 여론을 자극할 필요 없이,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사회 통합에 끼칠 악영향’ 등이 부각되도록 하는 게 낫다는 계산도 했음 직하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쪽의 계산에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필요하면 구속해 수사를 계속하면 될 뿐이다. 원칙대로라면 구속수사가 당연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뇌물수수나 블랙리스트 등 박 전 대통령의 혐의 하나하나에 대해선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물증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한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끝내 부인하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돼 재판까지 받는 마당에선 형평성 때문에라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이 더 무겁게 처벌되는 뇌물죄의 경우,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진작 구속돼 있다. 박 전 대통령만 구속하지 말자는 게 되레 어색하다.

검찰은 이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던져버려야 한다. 다른 사건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이데일리]

2. 이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진 지 열하루 만으로 뇌물수수, 직권남용, 기밀문서 유출 등 13개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자연인 박근혜’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꾸하지 않은 채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말했다.

앞서 청와대에서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내놓은 짤막한 대국민 발표문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다툼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이들이 모인 검찰과 바로 얼마 전까지 최고 권력을 누렸고 여전히 막강한 지지세력을 거느린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법리 공방은 나라를 반년 가까이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순실 사태’의 끝내기 수순인 셈이다.



검찰은 오롯이 실체적 진실 규명에만 매달려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정도면 몰라도 또다시 정치권이나 여론을 기웃거리며 좌고우면하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잇단 법조 비리 등으로 밑바닥까지 실추된 검찰의 체면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로 삼아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할 만큼 깔끔한 조사 결과를 내놔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본인의 억울함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참에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 내포된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는 일이다. 건국 이후 11명의 대통령 중 벌써 4번째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까지 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도중 자살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비리와 부패, 국정농단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그들에게도 이번과 똑같은 기준이 적용됐다면 역시 탄핵을 면치 못했으리란 지적은 국민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이젠 우리도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 그러려면 국민이 제대로 된 대통령감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부터 키워야 한다. 나쁜 짓을 한 대통령이나 잘못 뽑은 유권자나 오십보백보다. 한 달 보름여 앞으로 닥친 다음 대선이 그 첫 시험대다.



3. 유커 빈자리 채우는 동남아 관광객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遊客)의 방문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동남아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요즘 서울 명동 일대에서 중국인들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거의 사라진 반면 말투와 피부가 구분되는 다른 동양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 광경이 그 결과다. 비록 그 규모에 있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도 유커의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

우선 동남아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의 경우 홍콩 관광객은 전년 대비 65% 급증했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관광객도 5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게 한국관광공사의 집계 결과다. 중국 관광객이 56만 5000명으로 전체의 46.3%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남아 국가의 방문객 비율도 25%로 나타났다. 일본 관광객도 1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을 떠나서도 앞으로 정책적으로 동남아 국가들과의 유대를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교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중국에 너무 일방적으로 의존해 무역·관광시장 전략을 마련해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장이 큰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는 얘기다.

중국의 유커 방문 단속조치로 관광 경기에 타격을 입었던 대만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대만도 동남아 쪽으로 눈길을 돌려 곤경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이른바 ‘신(新)남향정책’이 그것이다. 대만도 중국의 보복조치로 관광 분야 피해가 작지 않았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5월 이래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라며 일련의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동남아 관광객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적용했던 방문 특례규정을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 관광객 유치 노력도 요구된다. 다양한 초청행사와 여행박람회를 개최하고 관광안내 표지판을 다국어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이번 홍역을 값진 경험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4. 대선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 실종, 이래도 되나

대통령 선거가 48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으나 주요 후보자들의 공약은 한마디로 부실, 그 자체다. 그 가운데 지역 공약에 대해서는 부실 수준을 넘어 아예 실종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을 보면 원론적인 수준에서 간간이 언급될 뿐, 구체성이 있거나 실현 가능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 정도의 ‘지역 홀대’나 ‘지역민 무시’는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지역민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잣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후보자들이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있다지만, 이런 기초적인 준비조차 없이 대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양심 불량’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선심성 공약만 줄줄이 내놓고 있을 뿐, 눈에 띄는 지역 관련 공약이 거의 없다. 민주당 후보자들은 균등 분배와 균형 발전을 공약의 기조로 삼고 있다지만, 수도권 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이들의 머릿속에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배려 자체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유한국당의 유력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 김진태 의원은 ‘우파 집권’만 외칠 뿐, 공약이라고 발표한 것이 전무한 상태인 만큼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나마 지역 출신인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대구경북 현안 등 지역 관련 공약을 앞세우고 있어 다행스럽다.



후보자들이 지역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 및 공부 부족 때문이다. 지역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집권 후에 지키지 못할 수 있기에 공약화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핵심사업이 좌초되지나 않을까 불안해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가장 큰 현안인 통합공항 이전사업이 혹시라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서글픈 풍경일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이 당내 경선에 매진하고 있기에 지역 관련 공약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지방분권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빨리, 지역 관련 공약을 제시해 지역민에게 후보자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5. ​박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대립과 갈등의 치유 계기 돼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1일 만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검찰 포토라인에서 “국민에게 송구스럽고,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 진술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탄핵 결정 뒤 사저로 퇴거하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길이자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삼성 특혜에 따른 뇌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등 13개에 이른다. 이 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처럼 “엮은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엮은 것이면 박 전 대통령은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인 것이면 떳떳하게 인정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전직 대통령에 걸맞은 당당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검찰도 오직 진실을 향해 공정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조사했을 것으로 믿는다. 탄핵 과정에서 나라는 둘로 찢어졌고, 그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가 한 점의 흠결도 없어야 한다. 누가 봐도 엄정하고 객관적인 수사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차 구속에 실패했던 특검의 무리수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면 ‘엮으려 한다’는 의심이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수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라 혐의 입증임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도 검찰은 흔들림없이 수사하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6.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평화롭도록 정부도 할 일 해라

경북 성주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또다시 몸살을 앓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성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군용지의 맞교환을 발표하면서 빚어진 배치 갈등 때문이다. 이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모임이 성주에서 연일 열리고 앞으로도 반대 촛불 집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드 집회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반대 집회 참가자와 집회에 대비하는 경찰 병력 등과의 물리적 충돌이다. 그러나 지난 18일 성주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인근에서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평화발걸음대회는 다행히 평화적으로 끝났다. 물론 원불교 평화천막 철거 과정에서 경찰과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따른 일로 큰 사고는 없었다.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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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평화적 시위와 함께 집회 주최 측의 현명한 대처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18일 집회처럼 사드 배치는 전국 시민`사회단체나 정치인이 참여하는 민감한 문제이다. 불순 세력의 개입 여지도 없지는 않다. 자칫 소홀히 대처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충돌과 같은 불상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행사 주최 측이나 당국 모두 긴장해야 할 부분이다.



집회 보장과 함께 경찰이나 행정 당국의 정당한 공무집행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행사 주최 측의 적극적인 협조와 함께 공무집행 당국의 당당한 대처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 역시 반대 주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 집회에는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한 데 따른 불만도 녹아 있다. 반대 목소리를 낮추고 평화시위로 이어지도록 대책 마련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드 배치 갈등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는 사드 이후에도 다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나라를 걱정해야 할 국민이어서다.



[서울신문]

7. 주 52시간 근로, 일자리 증가로 이어져야

국회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그제 합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소위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16시간 단축하되 한시적으로 사업주에 대한 처벌 면제 규정을 두기로 했다. 정치권은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는 합의하고서도 몇 년째 시행 시기와 방법을 놓고 여야가 각을 세워 왔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자는 여당의 주장에 야당은 곧바로 전면 시행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대선을 앞둔 여당이 야당안에 동의함으로써 관련 법이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넓게 자리 잡은 시대 현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500시간이나 많은 근로시간을 기록한다. 저출산율, 자살률과 함께 세계 최고를 다투는 부정적인 사회문제로 꼽힌 지 오래다. ‘저녁이 없는 삶’에 찌든 과로 국가여서는 노동생산성을 기약할 수도 없을뿐더러 실업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번 합의안은 현행 휴일 근로 16시간을 단순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일자리 확대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고민이 반영됐다.

문제는 기업 부담과 저항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로서는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고용을 늘리든지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하락분도 보전해 줘야 하는데,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이 편법·불법 운영, 무리한 자동화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휴일 근로에 연장근로 가산금을 소급 적용하는 문제도 기업들로서는 충격이다. 중소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릴 우려도 있다.

그렇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더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대의보다 앞에 놓일 수 있는 사안은 없다. 국회는 기업의 충격을 덜어 주기 위해 처벌 면제 규정도 두기로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년, 미만 사업장은 4년간 법 적용을 유예한다는 방침이다. 실업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노사 합의를 통해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 대책을 입으로만 외치며 고작 알바 일자리나 늘리는 눈속임은 그만둬야 한다. 한발씩 양보하지 않고서는 당장 일자리 창출의 묘수는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절벽과 청년 실업을 구제하는 기폭제가 돼야 한다.



8. 말꼬리 잡는 ‘文 전두환 표창장’ 비난 그만두라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인신공격과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 후보가 지난 19일 TV합동토론회에서 한 ‘전두환 표창장’ 발언도 논란을 불렀다. 다른 정당과 같은 당 후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솔한 발언에 대해 광주와 호남 민중에게 사과하라”,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을 폐기하라”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국민의당은 문 후보 캠프 측이 “왜곡하지 말라”고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라고 공격했다.

문 후보의 발언은 이렇다. “저는 특전사 공수부대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이었다.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을 막다가 총을 맞아서 참군인의 초상이 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중에 제1공수여단 여단장인 전두환 장군,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문 후보의 발언이 결코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군 복무를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하다 나온 것으로 본다. 문 후보가 복무할 당시는 전두환씨가 반란을 통해 전면으로 나서기 전이었다. 문 후보는 전 여단장에게 충성하기 위해 열심히 복무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해 표창장을 받았는데 그때 여단장이 전두환 장군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5·18 관련으로 투옥됐고 군부독재와 싸워 온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아서 상대를 흠집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것은 네거티브 전략도 아닌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각 진영이 뒤늦게 과도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고 이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그만두자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는 “군 복무를 성실히 했다는 애국심 강조 끝에 나온 발언”이라며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고자 했던 발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대선 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전두환 개인’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특공여단장’에게 받은 표창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인신공격이 벌써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경선 후보들은 변변한 정책이나 공약하나 내놓지 못한 채 연일 막말에 가까운 직설적인 화법으로 서로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차기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 도발을 둘러싼 안보 위기는 물론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심각한 경제위기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여길 수 없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 미래를 열어 가는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구체적 공약과 정책을 통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후보만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매일경제]

9.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늘리지 않으면 오히려 해악이다

여야 4당이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 이내로 축소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66시간에 비해 훨씬 길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때 일자리를 나누고 근로자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지향해야 할 과제다.



노·사·정이 2015년 9월 대타협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늘리기'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방식인지 의문이다. 여야는 기업 규모에 따라 2019년 또는 2021년부터 강제 시행할 계획이라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줄이면 기업 부담이 연간 12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중 8조원 이상은 중소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런 충격을 갑작스럽게 안기면 경쟁력 약화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노·사·정은 2015년 대타협 때 2024년까지 충격 완충기간을 뒀다.



기업 규모에 따라 2020년까지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그 후 4년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주당 8시간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량이 급증한 업종,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납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중소기업 등이 노사 합의를 거쳐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조항이 이번 여야 합의에서 사라졌으니 걱정이다. 

이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다가는 노사갈등을 확대시킬 우려도 있다. 그동안 근로자들은 특근수당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아 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수당이 줄어들면 대기업·공공기업에선 강력한 노조를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만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은 휴일근로에 대한 임금 할증률을 아직 결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연장·야간·휴일근로에는 임금을 50% 할증해 왔는데 노동계는 앞으로 휴일근로 할증률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권은 눈치를 보고 있다. 50% 할증률도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여기에 더 할증률을 높이자고 하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라는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저 제몫 챙기기일 뿐이다.



프랑스는 1999년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려 했으나 임금 삭감을 병행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는 늘리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부추기는 실패를 맛봤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면 기업에는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고 근로자들에게는 고통 분담을 설득해야 한다.



10. 고교중퇴 흙수저 방준혁이 보여준 불굴의 기업가정신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업체 넷마블게임즈가 오는 5월 최대 13조원의 상장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임 대장주로 등극하게 될 뿐 아니라 올해 공모주 시장의 최대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주식가치는 3조원을 넘어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제치고 국내 6위 부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글로벌 업체에 크게 밀리던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넷마블의 질주는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상장 잭팟을 터뜨린 방 의장이 고교를 중퇴한 소위 '흙수저'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넷마블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그가 두 번의 창업 실패 후 2000년 설립한 회사다. 창업 4년 만에 CJ에 800억원을 받고 기업을 팔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가 떠난 후 기업이 흔들리자 다시 지분을 사들이고 한물간 PC 온라인 게임 대신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면서 기업을 살려냈다. 대단한 학벌도, 엔지니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난에도, 사업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게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방 의장은 지난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진품 흙수저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학원비가 없어 신문 배달을 하며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그런 그였기에 스펙보다는 역량을, 학연과 지연보다는 고난의 경험을 중시해 인력을 뽑았고 이들과 같이 혁신과 도전에 나섰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등 불굴의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꿈을 향해 돌진했던 1세대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1970~19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기업가정신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빽빽한 규제가 기업인을 주저앉게 하고 헬조선, 흙수저 등 자학적 문화가 젊은 세대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지독한 일 중독자이자 승부사인 방 의장의 성공은 도전보다는 포기, 희망보다는 좌절에 익숙한 청년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 의장은 이제 공모자금을 인수·합병(M&A)에 활용해 글로벌 제패의 꿈을 꾸고 있다. '2020년 세계 게임시장 톱5'라는 목표를 달성하며 다시 한번 잭팟을 터뜨리기를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소곤소곤 그림 이야기] 노년, 그 아름다움의 빛깔

아름다운 노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둠속에 빛나는 촛불과 같다 .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여 공간 전체를 빛으로 물들일 수 있고 부드러운 따스함에 차가움을 녹일 수 있으며 다가가면 갈수록 세기가 강해져 환한 빛을 느끼게 하는 존재, 노년만이 가지는 고귀함이다. 

노마식도(老馬識途)라 하여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으로 연륜이 깊은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 사는 올바른 이치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야 더욱 빛을 발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개인가? 예부터 어수선한 현실을 바로 잡아줄 혜안은 삶의 경험이 쌓인 연장자를 통해 얻었다.



촛불 앞에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노파한테서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주름투성이인 얼굴과 투박한 손, 남루한 옷차림의 노파지만 겸손과 절제를 품고 소망을 기원한다. 노파에게선 어떠한 과욕도, 과장도 찾을 수 없다. 생을 관조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쌓인 노년의 온화함이아름답게 빛날 뿐이다. 

세상 누구도 노인의 주름을 보고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내보이는 아집, 불친절함, 괴팍함 등 정신의 주름살을 보며 늙음을 비난하는 거다. 아름다운 노년은 모두에게 존경받고 미숙한 젊음을 순화시키고 교화시킨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시대의 요구를 듣지 않고, 세대와 교감하지 않는 일그러진 노년들로 어지럽다. 젊은 세대는 연장자의 가르침을 지표 삼아 세상을 살아야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도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화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 물든 단풍이 화사한 봄꽃보다 예쁘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단풍은 낙엽 진 후에 책갈피에 꽂히지만 떨어진 꽃은 그대로 버려지는 거란다. 
세월을 인내한 단풍의 고운 빛깔처럼 잘 늙은 노파의 주름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불가능을 좇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다. 그림속의 노파는 젊음을 돌이키는 데 혼신을 다하는 듯하다. 쭈글쭈글한 가슴을 드러낸 채 정성 들여 머리를 빗고 비싼 깃털을 꽂고 제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을 해 보지만 주름을 감출 수가 없다. 장미꽃을 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듯 거울을 응시하는 모습 어디에도 젊음의 싱그러움은 없다. 심지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듯한 노파의 나르시스에 슬쩍 웃음마저 난다.



반면 노파의 시중을 드는 하녀는 남루한 옷차림에 빗질조차 하지 않은 더벅머리의 여인이지만젊고 싱싱하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한 노파의 늙은 가슴이 터질 듯 탱탱한 하녀의 젊음과 비교되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작가는 또한 한 손에는 젊음을 상징하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금송화(장례식꽃)를 들고 있는 노파를 그려 생과 사의 아이러니를 극명히 보여준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허무하고 허무한 육체의 젊음이다. 인간은 태어난 그 시간부터 매 순간을 늙어간다. 늘 함께 할 것 같던 젊음의 찬란함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빛을 잃는다. 젊음을 돌이킬 순 없다. 그게 인생이다. 

언제부터 인가 한국은 성형왕국이 돼 버렸다. 보톡스니 필러니, 젊음을 모방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지름길이고 노화로 인한 얼굴 주름이 가난과 게으름의 상징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수백 명의 아까운 목숨이 바다에 수장될 때 대통령이 그 시간에 성형을 했느냐의 여부가 나라의 큰 이슈가 되었었다. 



 웃을 수도 없는 이 슬픈 현실을 옹호하려 일부 노년은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성형이 뭐 잘못이냐며 주름진 눈을 치켜 뜬 채 세상을 향해 삿대질 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가 악다구니에 묻히고, 소통하지 않는 고집이 세상에 지천인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늙어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엘레노어 루스벨트가 말했다. 최고의 미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성숙미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무르익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해야 한다. 설익은 그 무엇은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노파는 삶을 인내하고 생을 관조한 오래된 연륜에서 우러나는 원숙미가 있다. 그 노년의 아름다움이 렘브란트의 빛의 효과와 함께 우아하게 발현된다.

잡지 못할 젊음에 얽매여 현재를 손에 넣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믿는 만큼, 자신감을 갖는 만큼, 희망하는 만큼 젊어질 수 있단다. 100세 시대를 살며 노년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고 있다. 노년이 바로 서야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2.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수학

내가 자란 소도시에서 아직 TV가 생소하고 귀했던 때, 라디오를 통해 샹송과 칸초네를 처음 접했다. 여행자의 입담으로 듣는 세상 얘기는 신기했고, 동경하던 과학자의 삶에 대한 실마리도 이런저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얻었다.

라디오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이었고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무선으로 멀리 전달한다는 건 경이로웠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서울에서 대전까지 전달될 리 없다. 소리라는 게 음파여서 매초 몇 번 진동하는지(주파수)가 제각각인데, 저음은 천천히, 소프라노 소리는 빨리 진동한다. 더 빨리 진동하면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된다. 빨리 진동할수록 멀리 전달된다.

결국 멀리 가는 고주파에 소리를 실어 보낼 생각을 하게 됐다. 도착 후에 고주파 부분을 제거하면 드디어 귀에 들린다. 두 파동을 더하는 방법에 따라 진폭 조정(AM)과 주파수 조정(FM)으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두 파동의 합이라서 삼각함수의 덧셈을 연상하면 된다. 조금 더 수학을 공부해서 시간 공간과 주파수 공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법을 터득하면 이 모든 것은 투명하고 깔끔해진다.

아쉽게도 라디오의 전성기는 갔다. TV는 정보 전달의 매개로, 텍스트와 영상을 결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쌍방향 소통의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예전 사진 전문가의 장비보다 더 우수한 화질의 카메라가 스마트폰에 달려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실천하는 SNS 전사들은 매일 온갖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다.

사진은 어떻게 저장하고 전송하는 걸까. 여권 사진 한 장에 가로줄 2000개와 세로줄 1000개를 균일하게 자로 그리면 사진은 아주 작은 네모 200만개로 갈라진다. 각각의 네모 하나를 가리켜서 화소라고 한다. 각 화소는 워낙 작으니 균일한 색깔이라고 간주하면 200만 화소 사진을 얻는다. 귀찮아서 가로줄 200개와 세로줄 100개의 2만 화소로 나누고 각 화소에 균일한 색을 칠한다면 모자이크처럼 엉성한 사진이 된다.

각 화소는 하나의 색깔이니 빨강(R), 녹색(G), 파랑(B)을 적당히 섞어서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화소는 다음(23, 16, 250)과 같이 숫자 세 개의 3차원 벡터로 표현된다. 첫 가로줄 각 화소의 숫자를 기록하고, 다음에 두 번째 줄로, 이렇게 2000줄의 화소들을 모두 숫자로 기록한다.



​그래서 사진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총합이다. 이 숫자들을 전송한다. 받은 사람은 처음 숫자 세 개를 합해서 하나의 색깔을 만든 뒤에 작은 네모에 그 색깔을 채운다. 다음 숫자 세 개는 두 번째 네모에 채우는 색깔이다. 결국 200만개의 네모는 모두 색깔로 가득 차고, 원래 보낸 사진이 된다.

이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학 문제가 출현한다. 숫자를 이진법으로 바꾸어 0과 1만 사용하면 전기신호 유무로 표현할 수 있으니 기록과 전송이 쉽다. 디지털 통신이다. 잡음 때문에 중간에 0이 1로 바뀌면 어쩌지? 신호 0110을 보냈는데 중간에 잡음이 생겨서 0111로 바뀌어 도착해도 이 오류를 탐지하고 교정할 수 있는 수학 이론인 코딩 이론이 등장한다.

8비트 컬러의 200만 화소 사진을 전송하려면 4800만개의 0과 1이 필요하다. 이걸 전송하려면 날이 샌다. 화질에 영향을 많이 안 주면서도 화소 수를 줄이는 압축이 필요하다. 결과물인 압축 알고리즘 JPEG와 MPEG는 이젠 표준어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 현대 수학이 성공적으로 해결한 문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 많다. 흥미진진하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어머니와 놋그릇

놋그릇을 보았다. 인사동을 지나면서다. 놋그릇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방짜유기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들 한다.



놋그릇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관혼상제가 엄격하던 집안, 제삿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놋그릇을 꺼냈다. 놋그릇이 담긴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가는 어머니 손에는 짚단과 잘게 부순 기와 가루가 들려 있다. 어머니는 짚에다 기와 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닦는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일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난한지를.



단지 엄마 곁에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동짓달 제삿날은 엄청 추웠다. 두 귀가 빨갛게 얼어갈 때쯤이면 그릇 닦기는 끝났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놋그릇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길, 길가 사시나무는 윙윙 바람 소리를 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다.



기억은 꼬리를 문다. 오랫동안 한옥에 살았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방문들을 물가로 가져갔다. 겨울을 나며 누렇게 변색된 문종이를 물에 불려 벗겨 낸 뒤 새 창호지를 발랐다. 무거운 다듬잇돌 밑에 곱게 말려 놓은 은행잎들은 문 중앙에 장식용으로 붙여졌다. 햇살이 비치면 유난히 노랗던 은행잎들이 어제같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저녁밥이 떠오른다. 겨울날, 어머니는 밥을 담은 놋그릇을 면수건으로 겹겹이 싼 뒤 아랫목이나 장롱 이불 속에 깊숙이 묻어 두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가 있는 식구들의 밥을 따뜻하게 묻어둬야 밖에서도 굶지 않게 된다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처로 통근하시던 아버지는 늦었다. 하루 서너 번 버스가 다니던 시절, 아버지를 기다리며 불러주던 어머니의 노래가 희미해질 때쯤이면 아랫목 놋그릇의 온기를 발가락으로 느끼며 어린 생명들은 잠이 들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우물가에서 칭얼대던 아이는 이제 중년이다. 어쩌다가 거리에서 놋그릇을 보게 되면 걸음이 멈춰진다. 창 너머 놋그릇에 뽀얀 얼굴의 어린 내가 보인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진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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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향신문][구정은의 세계] 망령의 시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오토바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뿌리 뽑힌 채 질주본능으로만 존재하는 오토바이는 거대 도시를 꽉꽉 메운 인간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다. “뒈져라, 형법 불소급의 원칙.” 문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저급함,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가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인간들, 늙고 병들고 타락한 나라를 향한 이단아의 처절한 외침이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언술이 곳곳에서 판을 친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연방 하원의원이 백인들의 문명, 백인들의 문화를 거론했다. 미국이 스페인에서 필리핀을 빼앗던 시절에 나오던 케케묵은 말들이 21세기에 소셜미디어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인종주의의 망령은 미국과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쌓아 올린 이상과 삶의 기준을 흔들고 있다.


‘나치’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목소리를 높일 적에 이미 미국의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파시즘의 그림자를 느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예술가가 트럼프에 나치 표식을 합성한 광고판을 설치했다가 논란을 샀다. 서구인들에게 여전히 상처인 스와스티카 문양이 대로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국들에 나치 딱지를 붙였다. 그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유럽은 우리가 자기네를 나치라 부르면 불편해하지만 바로 네가 나치 수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보며 나치를 연상하거나, 나치에 비유하거나 하는 일이 어느 틈엔가 금기에서 풀려나버렸다.


프랑스에선 트럼프보다 극우 색채가 더 짙으면서도 약간 점잖은 척하는 마린 르펜이 대선후보다. 르펜은 나치를 대놓고 옹호해 온 자기 아버지를 당에서 내쫓으면서까지 중도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려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낡고 오래된 인종주의의 그림자는 좀체 옅어지지 않는다. 유엔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한 보고서가 나왔다가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져 시끄러웠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종교차별 속내를 감추지도 않은 채 ‘뉴인디아’를 외친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하면 좀 호들갑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톤을 좀 낮춰 독재 향수 혹은 ‘권위주의의 재생’이라면 어떨까. 트럼프가 불러낸 로널드 레이건, 프랑스에서 우파 대선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들고나온 드골 향수는 양반이다. 필리핀에선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가 ‘영웅’으로 복권됐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석방될 예정이다. 얼마전 페이스북에는 제주에서 서북청년단을 자처하는 우익집단이 간판을 내걸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망령의 시대다. 과거의 이야기만 난무하고 미래의 이야기는 없다. 사회의 모든 목소리가 과거로 흘러간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과거를 불러낸다. 그럴 때 불러내는 과거는 상상과 조작된 기억으로 이뤄진 과거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했던 미국. 박근혜가 그리도 갖다 붙이고 싶어했던 한강의 기적. 모더니티로 이동해가는 데 실패한 이슬람 전투조직들의 극단주의도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조작된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제도와 국가가 모른 체하고 덮어두고 편들 때 사회는 과거를 놓고 싸운다. 과거를 불러 현재와 싸울 때 미래는 사라진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시대에 삼성동 친박 시위대 입에서 나왔다는 ‘마마’는 대체 웬 말인가. 중국 무협사극을 보던 내게 딸이 물었다. 옛날 시종들은 모두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충성을 바쳤느냐고.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렇게 계속 교육을 받으면 주인을 위해 목숨도 내놓게 될지 모르지”라고 답해줬다. 망령의 시대는 복종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적 노예의 시대이기도 하다.

망령은 멋대로 떠도는데, 지나온 길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건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프랑스 유력 대권주자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난달 “알제리 식민통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우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왕의 목을 자른’ 혁명의 나라라고 칭송받지만 프랑스에서 유력 정치인이 제국주의의 과거를 놓고 마크롱처럼 공개적으로 사과를 주장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해왔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며 궤변을 늘어놓는 피용 같은 정치인들만 있었을 뿐이다.


역사와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아직도 4·3과, 베트남전과, 미군 기지의 군 위안부 같은 문제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마루야마의 일갈은 단죄를 보지 못한 피해자들의 무익무해한 투덜거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입 밖에 내 함께 말하게 될 때 역사가 새로 쓰인다. 뒈져라, 거짓으로 가득한 과거의 망령 따위.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르셸 마르소

프랑스 리모주(Limoges)에서 코셔(kosher) 정육점을 운영하던 유대인 아버지는 1944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됐다. 21세 청년 마르셸 멩겔(Marcel Mangel)이 아버지의 성 대신 프랑스혁명 영웅 프랑수아 세비앙 마르소-드그라비에(Francois Severin Marceau-Desgraviers)의 성으로 개명, 마르셸 마르소(MarcelMarceau)가 된 게 그 무렵이었다.

그는 레지스탕스였다. 나치와 비시정부 치하에 숨어 살던 유대인들, 특히 어린이들을 스위스와 연합국 진영으로 도피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자동차로, 때로는 어둠을 틈타 걸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무리 지어 인솔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침묵의 손짓 발짓 몸짓이 더 유효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두려움과 슬픔을 눅이고 용기를 북돋우기도 해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먼저 부모와 떨어져야 했을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을 것이다.


그건 말보다는 표정, 몸짓으로 전해지는 진솔한 기운 같은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18세기의 마르소가 쥐었던 총과 지휘봉 대신 청년 마르소는 그렇게, 마임(mime, 무언극)을 선택했다. 

그는 생사를 건 저 레지스탕스 활동기부터 이미 마임의 거장이었을 것이다. 5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본 뒤부터 마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에도 능통했다. 전후에는 프랑스 육군에 입대, 패튼 부대의 연락장교로 일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45년 해방된 파리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극장 샤를 뒬렝(CharlesDuyllin) 드라마학교에 등록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시작했고, 47년 그의 평생 아바타가 된 ‘어릿광대 빕(Bip the Clown)’으로서 첫 무대에 섰다. 

긴 마임의 역사에서 마르소는 현대 마임을 대중화하고 새로운 문법을 정립한 배우로 불린다. 그는 감정과 행위, 공간과 시간을 드러내 보여주는, 함축적이고도 상징적인 몸짓들로, 때로는 말이나 글보다 더 섬세하고 웅장하게 인간과 세계를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수다한 말이 침묵으로 끝난 뒤에, 그 침묵과 더불어 시작되는 게 마임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마임은 말과 말 사이, 소통의 처음서부터 시작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의 마임은 시작되곤 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1923년 3월 22일 태어나 2007년 9월 22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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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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