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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세월호 인양, 진실의 시간이 다가왔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72일 만에 선체 인양작업이 어제 시작됐다. 선체를 1m가량 들어 올리는 시험인양에 이어 완전히 물 위로 끌어올리는 본인양 작업도 진행 중이다. 3년 가까이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며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아온 미수습자 가족의 한풀이가 뒤늦게나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시작한 선체 인양작업인 만큼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양해달라”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낸 미수습자 가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실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점에서도 선체 인양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사 발생 3년이 다 돼가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속 시원히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침몰 과정과 원인 등은 어느 정도 파악됐지만 그렇다고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특검도, 헌법재판소도 7시간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
세월호 참사는 무도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초동대응과 구조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갔더라도 아이들을 살리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대통령이 직접 참모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구조작업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도록 지휘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구조작업 중인 해경이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청와대의 지시로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조롱하고 억압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단식투쟁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을 하도록 극우단체를 사주하고 지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패륜적 행태에 앞장섰다. 이는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 꾸려지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빨리 가동할 필요가 있다. 미수습자 시신 수습도, 선체 조사도 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대선후보들도 세월호 진실 찾기를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2. 문재인 후보의 대입개혁 공약, 더 다듬고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대학 입시를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등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수시모집 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입시가 너무 복잡해 수험생 혼란이 크고 일선 고교에서 진학 지도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지만 입시 제도 변경은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입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입시를 바꾸면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시 비중 축소로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지난 몇 년간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 확대로 거둔 고교교육 정상화 등의 효과는 줄고 재수생 증가나 교육 획일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초·중·고교의 예체능 교육을 강화해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공약도 재고가 필요하다. 사교육 증가와 평가의 공정성 논란으로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내신 반영을 축소·폐지한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입시는 필요악의 성격이 강하다. 인재 선발과 엘리트 양성 차원에서 이른바 명문대학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한 고교 입시는 ‘불필요한 악’이다. 초·중학생들을 선행학습 경쟁으로 내몰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고교 평준화의 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취지와 어긋나게 운영되는 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은 득이 실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입 경쟁이 사라지면 학생들은 학습 부담이 줄고 부모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 수 있다. 평준화의 단점은 수준별 맞춤형 수업 등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입시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고 교육개혁도 이룰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작은 것에도 수백억·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복지 정책과 비교하면 입시 정책에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입시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를 거듭했지만 실제 교육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정부와 공교육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교육시장만 키웠을 뿐이다. 교육에도 돈이 들어가야 한다.
문 후보의 표현대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 소외 계층에 직접적인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한겨레]
3. 3년 만의 세월호 인양, 진실도 인양해야
세월호 인양 작업이 22일부터 시작됐다. 참사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올 세월호는 목포신항으로 옮겨져 10여일 뒤면 선체 조사가 진행된다. 9명의 실종자 수습과 함께 진실 규명 작업도 다시 본격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세월호는 우리의 경박한 망각증에 죽비를 날리며 다시 한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생명들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실종자 수습에 3년이나 지체한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허망하게 허비한 ‘7시간’의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모면하려 당시 대통령과 권력붙이들은 수년간 집요한 은폐공작을 벌여왔다. 참사 당일엔 해경에 브이아이피(VIP) 보고용 영상을 요구하며 사실상 구조를 방해하더니,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도 조직적으로 틀어막고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조차 강제종료시켰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해경을 밟으면 어떡하냐”며 보도통제를 시도했고, 정무수석은 어버이연합에 ‘반세월호 집회’ 공작을 지시했다. 단식 유족 옆에서 패륜적 폭식 투쟁을 벌이던 장면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권 차원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은폐공작을 벌이는 사이 일부 국민은 피로증과 망각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이 ‘미흡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했고 특히 보충의견은 대통령의 책임을 신랄하게 질책했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대통령이 적어도 당일 10시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재난대응을 총괄·지휘·감독했어야 한다”며 “주위에 10대 이상 선박들이 대기해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대통령 박근혜’가 참사 책임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대통령 책임을 질타했다.
선체 인양은 온전한 진실의 인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원혼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는 길이다. 당장 8명으로 선체조사위를 꾸리는 것과 함께 참사특별조사위도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간 조사 결과를 포함해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왜 8시간이나 안 나타났는지, 진상규명을 방해한 책임자와 실행자는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 참사의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4. ‘박근혜 구속’, 망설일 필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22일 귀가했다. 이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관련 기록,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 여부를 포함한 수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오로지 법과 원칙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실과 법률 관계로 보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의 실체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범죄를 충분히 소명할 만큼의 물증과 증언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공범이나 관련자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은 중형이 예상된다. 삼성에서 받았다는 수백억원의 뇌물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범 대부분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혐의가 이렇게 중대하면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구속의 필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증이 확실하고 관련자들의 흔들림 없는 진술이 있는데도 범죄의 고의성을 반복해 부인하는 것 자체가 증거인멸의 우려를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거가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라면 언제든 수사를 방해하리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 등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된 마당에 모든 혐의의 중심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의 어느 기준과 원칙으로도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큰 사건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를 위해, 법 집행의 원칙상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판단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된다. 앞으로 치를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할지, 어느 쪽이 얼마나 반발할지, 어떤 상황이 검찰에 유리한지 따위의 정치적 고려를 하다가는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결정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가뜩이나 국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판단이 섰다면 미뤄서도 안 된다. 결정이 지연되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영장 청구 여부는 이번주 안에 결단하는 게 옳다.
[이데일리]
5. 대선 전략이 비방과 포퓰리즘 뿐인가
‘5·9 대선’의 정당별 후보 경선이 달아오르면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후보 간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닌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선이 이럴진대 각 당 후보가 확정되고 본선에 접어들면 진흙탕 싸움이 더 격화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를 겪고도 과거 행태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벌써부터 이번 대선도 기대할 게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공방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전두환 표창’과 ‘대연정론’을 두고 연일 인신공격성 막말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있다. 서로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네거티브에 빠져드는 꼴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의 “민주당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등의 거친 언사도 듣기에 거북하다. 이밖에 인터넷이나 카톡 대화방을 통해서도 걸러지지 않은 의혹과 소문들이 마구 퍼져가는 양상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문 전 대표는 가계부채 해법의 하나로 22조 6000억원의 개인 부실채권을 정리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공공개혁을 거스르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 약속까지 내놓았다. 안 지사는 10년 동안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재원 마련이 불투명해 실효성은 없으면서 부작용만 키울 내용들이다.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80만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외교·안보 위기에 경제까지 동반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갈라진 내부 갈등을 추스르고 험난한 안팎의 파고를 헤쳐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찾고 있다. 후보들은 이제부터라도 비방과 포퓰리즘 공약이 아닌 대한민국의 앞날을 열어갈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6. 포퓰리즘 우려되는 저소득 청년 300만원 지원
정부가 어제 ‘청년고용대책 보완 방안’을 내놓았다. 대책 아닌 보완이라 했지만 현 정부 들어 열 번째 청년실업 대책이다. 취업을 하지 못한 고졸 이하 저학력·저소득 청년 5000명에게 한 사람당 최대 연 300만원을 생계비로 지원하고 고교 졸업 후 즉시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입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또다시 백화점식 보완 방안을 내놓은 것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대 고용률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청년층(15~29세) 장기실업자와 구직단념자는 지난달 36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1600명이 늘었다.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등 자포자기한 청춘들이 우글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통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겠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와 성남시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정부는 돈을 나눠 주는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했었다. 이번 300만원 지급 정책에 대해서는 “지자체 청년수당과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정한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또 하나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와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에서처럼 연봉 수천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따지고 보면 각종 지원 등 보조수단 성격이 짙다. 정부가 지난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2조 1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고용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가 낮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민간에 있다.
문제는 경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 축소형 성장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도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구조적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처럼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림없다. 청년들에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나눠 줄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일자리 정책을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고기 잡는 법 말이다.
7. 미세먼지 대책, 중국에 따질 근거부터 찾길
그제 오전 한때 서울의 공기 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빴다. 세계 대기오염 실태를 점검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의 조사 결과다. 차량 매연이 가득한 터널 안에서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전국 각지에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80회가 훌쩍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회 정도에 비해 두 배나 뛰었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은 지난해에도 소리만 요란했다. 미세먼지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자 환경부가 고등어 굽는 연기까지 들먹거려 여론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당장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듯하더니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렀다.
환경부는 그제 봄철 미세먼지 대책으로 건설공사장 단속, 경유차 매연 집중 점검 등을 내놓았다. 이제 이런 대책은 해마다 때가 되면 들리는 녹음기 소리가 됐다. 지난달 도입한 비상 저감 조치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공공사업장 조업 단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공기의 품질이 연일 나쁨을 기록한 며칠 새 한번도 비상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유명무실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책을 더 미루지 말고 강구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과 함께 좀더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정부는 봄철 미세먼지의 70~80%가 중국발(發)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며 팔짱 끼고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기 환경은 미래의 중대한 국가 자산이다. 한두 해만 눈감아 줘서 될 일이 아니라 중요한 국익이 지속적으로 훼손될 전망이라면 이제 중국에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자국 이익을 위한 안보외교를 물불 가리지 않고 구사하는 중국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한국의 대기오염 사망자가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거라고 경고했다. 국민 생명 안전으로 따지자면 미세먼지도 위협적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제 중국에 공기오염의 책임이 있는지 입증해 보라는 식의 배짱 논평을 냈다. 노후 경유차 단속 등 국내의 여러 개선책만큼이나 중국에 당당히 따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부는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서라도 중국과의 환경외교에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국일보]
8.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봄철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한 짙은 미세먼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1일 오전 서울의 공기 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 스모그 천국인 중국 베이징이나 청두보다 더 나쁜 수준이다. 올 들어 21일까지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모두 85회로 지난해(41회)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흡연보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돌았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WHO 권고치의 세 배나 된다. 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공기 질이 개선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여섯 차례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도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차량 2부제 실시 등의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이다. 정부는 수명을 다한 노후 설비를 없애겠다면서도 오히려 9기를 새로 지어 현재 39%인 석탄발전 비중을 10년 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경제성에만 집착한 에너지 정책이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공공ㆍ행정기관 대상의 차량 2부제도 별 효과가 없다. 당일은 물론, 다음 날도 ‘매우 나쁨’이 일정시간 예보돼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빨리 진행된 데다 인구 밀도가 높아 단위면적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과다 배출원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느껴질 정도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에 따른 건강 피해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석탄을 결코 값싼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석탄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고,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공사장ㆍ소각장의 오염원을 차단하는 등 범정부적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의 절반은 전 세계 석탄의 절반을 쓰는 중국에서 날아온다. 특히 봄철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이 70% 안팎에 달한다. 중국과의 환경 협력에도 속도를 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9. 美가 걱정하기 시작한 韓 차기 정부 對北 정책
그제 미국 연방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 모두 5·9 대선 이후 들어서는 한국 신(新)정부의 대북 정책 변경 가능성을 거론했다. 브래드 셔먼 민주당 하원의원은 "개성공단에서 힘들게 번 노동자의 돈이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으로 쓰인다"며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했다.
앤 와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백지화하거나, 북한 제재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한한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우리 외교관보다는 대선 출마 정치인이나 그 참모들을 만나는 데 더 주력했다. 특히 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외교·안보 정책 전문가들을 만나서 이들의 대북 정책을 탐색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한 느낌마저 준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려하는 것은 집권 가능성이 큰 민주당 후보들이 급격한 대북 정책 전환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당선되면 2억달러가량이 김정은에게 흘러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핵 방어용인 사드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문 전 대표의 대북 정책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사드까지 철회한다면 양국 공조의 파탄이 현실화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고 한·미 간 정책 차이가 걱정처럼 표면화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김정은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안보 위기에 몰릴 우리 국민과 한·미 동맹이다. 노무현·부시 행정부 사이의 정책 부조화가 북한의 핵실험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도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처럼 기존 정치인들과는 셈법이 전혀 다른 미국 대통령과 다른 문제도 아닌 민감한 안보 문제로 충돌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다음 정부가 그 길을 가겠다면 한·미 동맹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국민을 지킬 것인지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대학생 울리는 대학 기숙사의 ‘갑질’
새 학기에 활기차야 할 대학생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집을 떠난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과 경제적 문제로, 졸업반들은 취업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황당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대학 측이 한 학기에 수백만원 하는 기숙사비를 일시불 현금으로만 받고, 식권도 100장·200장씩 강매하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배려는 내팽개치고 수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12개 대학의 기숙사를 조사해 보니 횡포가 지나쳤다. 12곳 모두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분할납부조차 받지 않았다. 교육부가 2년 전부터 권고한 내용이지만 대학 측이 처벌 조항이 없는 데다 수수료 부담을 내세워 외면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비 지불 방식을 자율에 맡기는 미국 대학들과는 정반대다. 식사의 질도 열악하다. 한 끼에 3900원을 받으면서도 밥과 국, 김치와 계란말이 한두 조각이 전부인 기숙사도 있었다. 밥맛이 없어 사용하지 않은 식권이 쌓여도 환불을 안 해 준다니 이런 갑질이 어디 있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치되는 이유는 기숙사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전국 4년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도권은 15%, 서울은 11%여서 방 구하기가 별 따기인 학생들만 봉이 된다. 게다가 민자기숙사의 경우 업자가 시설을 짓고 운영을 맡아 투자금을 거둬들이려다 보니 1인실이 월 6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일반 원룸보다도 비싼 수준이다.
이번에 드러난 갑질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의 기숙사 실태를 점검해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학생들 잠자리와 밥을 갖고 장난치는 기숙사만 방치하는 까닭이 뭔가. 기숙사 확충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에 저금리로 건축비를 빌려줘 기숙사비를 낮게 매기는 공공기숙사,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 연합기숙사, 자치단체가 공급하는 향토학사 등이 많아져야 한다.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는 대학가 주민들과의 상생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닌가.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오버 더 펜스'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도 저마다의 비밀을 한 두 개쯤 갖고 있을 거다. 우리는 이렇게 감쪽같이 침묵하면서 때로는(어쩌면 항상) 위로 받기를 원한다. 이는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표현에 과감한 이들이 덜 이기적인 건 아닐까. ‘오버 더 펜스’ 속 사토시처럼 말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 같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 일쑤고, 곧잘 운다. 새 흉내를 낸다며 이리저리 날뛰기까지 한다. 이런 그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이다. 괴짜 같은 행동으로 미루어보자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하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뒤늦게 직업훈련학교를 다니는 요시오. 그는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도시락과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물건뿐 아니라 온기조차 없는 텅 빈 그의 집은 요시오 그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맥주 두 캔과 집 앞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만이 그를 위로해준다. 알고 보니 요시오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사토시와 요시오는 길거리에서 이 우연한 만남 이후로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가까워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토시와 사랑을 잃은 상태인 요시오는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들 두 사람은 평범한 우리들을 대변한다.
말 못할 사연들로 심신이 지쳐버린 남녀를 일으켜 세워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는 현실과 내면의 벽에 부딪힌 남녀가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요시오가 뱉었던 말처럼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다. 분노와 자괴감으로 휩싸인 사토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결핍으로 가득 찬 둘도 사랑을 하고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간다.
사토시가 등장하자 요시오의 타구가 하늘 높이 치솟는 장면은 ‘오버 더 펜스’의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야구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요시오의 타구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꿈을 쫓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버 더 펜스’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따라서 해야만 한다고.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사랑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고 말이다.
2. [경향신문][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행복하다는 것
행복의 날이란 게 있는 줄 몰랐다. 지난 20일이 바로,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란다. 제헌절이나 한글날, 삼일절 같은 날들처럼 역사적으로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날은 역사적으로 아주 행복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일 터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 기억과 함께 흐뭇해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국제연합에서 제정’한 날이라고 되어 있고, 관련 정보로는 세계 행복 보고서가 보인다.
행복의 조건을 수치화해서 순위를 매겼을 때, 우리나라의 순위가 아주 한참 아래이다 못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 청년실업률, 노인빈곤율, 출산율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 새삼스럽지 않은 뉴스들이다. 간신히 청년실업을 면했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혹시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그런 사람을 구할 돈이 없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럴수록 그들이 어깨에 메고 살아가야 할 노년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가난해지는 식이다.
야근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친구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회사에서 집엘 보내줘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요”라는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출산율을 따지기 전에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다. 행복수치를 따지기 전에, 행복한지를 묻기 전에, 행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역시, 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은 이제 아주 유명한 말인 듯하다. 심리학자가 한 말이기도 하고,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의 연구결과라고도 한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웃음 근육을 마비시키는 보톡스를 주사하고 뇌반응을 측정해보기도 했단다. ‘웃음의 숨겨진 힘’에 대한 TED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이 강연 중, 자궁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보인다.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미소짓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행복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일 터이다. 같은 TED 강연으로 아주 유명한 에이미 쿠디(Amy Cuddy)는 보디랭귀지의 힘을 말하면서, 마음이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주눅든 자세로 있으면 약해지고, 센 척하면 세진다는 것이다. 대개의 생각과는 반대다. 약하니까 주눅이 들고, 가진 게 없으니까 센 척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심리학과 과학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과 자기 세뇌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그에 작용하는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관계에 대해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를 포괄한다. 나의 이야기가 단지 나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나이면서 동시에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센 척하는 자세를 해서 개인의 지배 호르몬 혹은 행복 호르몬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혹은 관계 속에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예컨대 내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고민하는 아주 건강한 20대 여성이라면, 출산은, 단지 건강한 호르몬을 바탕으로 하여 아이를 낳는 문제인 것이 아니라, 월수입, 노동시간, 직장의 구조와 상사의 성격, 사회적인 보육시설의 안전도와 신뢰도, 부모님의 경제력과 건강, 심지어는, 아랫집 주민의 층간소음 반응까지도 미리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훨씬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문학이다.
탄핵이 인용된 후 광화문 촛불집회는 특별했다. 나로서도 그 집회는 매우 각별한 경험이었는데, 행복한 집회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의 하나로서 내가 생각하는 시위나 집회의 정의는, 다치고, 죽고, 검거되고, 투옥되는 일들의 총합쯤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정말로 피를 흘리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 된 1987년 6월항쟁만 하더라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전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도 다치고 검거되지 않고 투옥도 되지 않았는데, 그날 촛불집회의 구호는 ‘승리’였다. 실은 ‘행복’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참가자들은 일부러 센 척할 필요도 없이 이미 셌다. 그 호르몬은 우리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세포로 전이되어 개인의 역사가 되고, 사회의 역사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촛불집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나는 그 자긍심이 좋다. 역사는 피를 흘려야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뜻을 모으면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런 자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것, 그 소박함의 엄청난 힘이 좋다. 시위가 축제가 될 수 있고, 축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소불위인 줄 알았던 자리에서 밀어낸 것보다 더 큰 승리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촛불을 완성하는 정권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미대선’이라는 말이 참 좋게 들린다. 덩굴장미처럼 행복을 마구 피워내는 그런 정권이 들어서야겠다. 그러려면 잘 지켜봐야 할 일이다. 4년 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 될 터이니. 대선까지 모두들 어깨를 활짝 펴 긍정 호르몬을 마구 발산시키시기를 바란다.
정치나 권력은 그 속성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를 감시하는 힘은 국민들에게 있어 보인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바람과 함께 타오르는 힘이다.
3. [경향신문][경제와 세상]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일 것이다. 해외의 옥스퍼드 연구소, 다보스 포럼과 한국의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 등 각종 기관들이 앞다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숱한 주장이 반복되어 왔으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인 사례는 전혀 없다. 1차 산업혁명 시기인 19세기 초 벌어진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과 3차 산업혁명 태동기인 1961년 타임지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 예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되었다.
80%의 농업인구가 2%가 되었으나, 78%는 실업자가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다. 즉 지금까지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로 근무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총량이 일정할 경우 새로운 기술혁신은 노동총량을 축소하여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수요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에 주당 80시간의 노동시간이 이제는 40시간 이하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노동총량은 불변이 아니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증가되어 잉여가 발생하면 새로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가 등장해 왔다.
혁신이란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사라지는 일자리가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은 사라지는 일자리는 말하고 있으나, 창출되는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이 오류임을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 역사를 통하여 입증했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기술로 인간의 안정의 욕구, 즉 편리함의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서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편리한 제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욕구인 연결을 만족시켜준 결과, ‘혼밥’과 ‘혼술’ 같은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산업혁명이 충족시켜 온 인간의 욕망은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 욕구 5단계의 1·2·3단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충족시킬 인간의 욕망은 바로 매슬로의 욕구 4단계인 자기 표현 욕구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해 본다. 매슬로는 이 4단계를 다시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로 세분화한 7단계설로 확장한 바 있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개인화된 자기 표현 욕망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화된 욕망을 인간과 인공지능 및 로봇이 협업하여 충족하는 사회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생산성 증가로 노동 총량 감소의 일자리와 자기 표현의 욕망을 충족하는 노동 총량 증가의 일자리로 나누어질 것이다. 생산성 증가 일자리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자기 표현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은 각각 창조적인 일과 반복되는 일로 나뉘어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소위 ‘딥러닝(DeepLearning)’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은 반복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반복되는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자기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인재상은 ‘협력하는 괴짜’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교육은 바로 협력하는 창조적 인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하는 괴짜는 산업과 교육이 융합하는 프로젝트 기반 교육(PBL)으로 구현된다. 세계 선도 대학들은 이미 팀 프로젝트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학과 교육들은 온라인 교육(MOOC)으로 전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새롭게 형태를 바꿀 뿐이다.
4. [여성신문][서민의 페미니즘 혁명] 임신부에게 X표를 긋는 나라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 있던 자리가 노약자 지정석 앞이었는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스티커의 임신부에게 X자가 그어져 있다. 신기해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바로 여혐의 증거야."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나이든 분과 임신부 중 누가 더 약자인지 묻는 코너가 있었는데, 연구결과는 내 예상과 달리 임신부가 10배쯤 더 힘들단다. 나이든 분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임신부도 다 다를 테니 이것만 가지고 결론을 내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임신부가 노인에 필적할 만큼 힘들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가 아주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만삭이 아닌 바에야 그냥 배가 나온 것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서울지하철에선 산모수첩을 내면 임신부고리라고, 분홍색으로 된 큰 고리를 나눠주는데, 이걸 꺼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14주차 임신부는 인터넷에 “임신부 고리를 봐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역시 큰 도움은 안되는 듯”이라고 수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노약자석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왜일까. 노약자석은 그 이름 때문인지 나이든 분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미담이 만들어진다. “경찰이 과천역 인근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가던 임신부 A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폭행한 70대 노인 B씨를 검거했다.” 참고로 A씨는 임신 27주였으니 임신한 걸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 B씨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에 따르면, B씨는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고 A씨의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고 곧이어 임신부 A씨의 부른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A씨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여혐 세력은 임신부들이 임신을 빌미로 노약자석을 점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를 보면 그 자리에 앉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고육지책으로 서울시가 만든 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가끔 지하철을 보면 좌석 맨 끝자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좌석이 눈에 띄는데, 그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색깔도 그렇지만 좌석 앞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자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한량에 두 개뿐이긴 해도,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임신부들에겐 ‘가뭄에 단비’다. 이제 임신부들의 고생은 끝난 것일까? 기뻐하기 이르다. 지하철을 꽤 탔지만, 그 자리에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걸 본 경험은 드물다. 오히려 건장한 남자일수록 그 자리를 좋아했다. 혹시 분홍색에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거기 앉아 있는 승객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비워놓는 건 비효율적이니, 일단 앉아 있다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니냐?”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듯하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임신부가 자리를 양보받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앞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자리 양보를 부탁해도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임신을 하면 개인으로 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도 힘든데다 직장에서 눈치 보이지, 몸매 망가지지, 좋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임신을 하는 건 사랑하는 부부의 결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부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우리 남성들은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훨씬 더 심각해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갈 거라는 걸.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탄핵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11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들 중 임기를 온전히 채운 이는 6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고 나머지는 하야(이승만), 사임(윤보선, 최규하), 피살(박정희), 탄핵(박근혜)으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6명 중 둘(전두환 노태우)은 임기 후 내란ㆍ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은 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고 위험한(?) 자리인 듯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이력도 있다.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21년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한반도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탄핵 당했다.
대통령 선출 전, 총리제 하의 임시정부 총리로서 외교무대에서 자신을 ‘대통령(president)’으로 소개하며 말썽을 빚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로 미국에 머물며 독자 외교노선을 걷던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나머지 21년의 청원을 대통령 자격으로 행했고, 의정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신채호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지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수습과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은 물론…”으로 시작된다. 그는 60년 4월의 하야로 두 차례 대통령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각각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위세에 밀려 사실상 강압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놓았다.
우연이지만 1962년 윤보선의 하야도 이승만이 탄핵된 날과 같은 3월 23일이었다. 윤보선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5월 19일 방송을 통해 하야 선언을 했다가 국제법상 새 정부 승인 문제 등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군부의 사임 재고 요청(사실상의 압박)으로 다음 날 하야를 번복하기도 했다.
3월 10일의 헌재 판결로 직에서 파면 당한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중도하차한 대통령이 됐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세월호 인양, 진실의 시간이 다가왔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72일 만에 선체 인양작업이 어제 시작됐다. 선체를 1m가량 들어 올리는 시험인양에 이어 완전히 물 위로 끌어올리는 본인양 작업도 진행 중이다. 3년 가까이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며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아온 미수습자 가족의 한풀이가 뒤늦게나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시작한 선체 인양작업인 만큼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양해달라”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낸 미수습자 가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실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점에서도 선체 인양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사 발생 3년이 다 돼가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속 시원히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침몰 과정과 원인 등은 어느 정도 파악됐지만 그렇다고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특검도, 헌법재판소도 7시간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
세월호 참사는 무도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초동대응과 구조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갔더라도 아이들을 살리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대통령이 직접 참모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구조작업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도록 지휘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구조작업 중인 해경이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청와대의 지시로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조롱하고 억압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단식투쟁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을 하도록 극우단체를 사주하고 지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패륜적 행태에 앞장섰다. 이는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 꾸려지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빨리 가동할 필요가 있다. 미수습자 시신 수습도, 선체 조사도 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대선후보들도 세월호 진실 찾기를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2. 문재인 후보의 대입개혁 공약, 더 다듬고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대학 입시를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등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수시모집 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입시가 너무 복잡해 수험생 혼란이 크고 일선 고교에서 진학 지도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지만 입시 제도 변경은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입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입시를 바꾸면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시 비중 축소로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지난 몇 년간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 확대로 거둔 고교교육 정상화 등의 효과는 줄고 재수생 증가나 교육 획일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초·중·고교의 예체능 교육을 강화해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공약도 재고가 필요하다. 사교육 증가와 평가의 공정성 논란으로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내신 반영을 축소·폐지한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입시는 필요악의 성격이 강하다. 인재 선발과 엘리트 양성 차원에서 이른바 명문대학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한 고교 입시는 ‘불필요한 악’이다. 초·중학생들을 선행학습 경쟁으로 내몰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고교 평준화의 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취지와 어긋나게 운영되는 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은 득이 실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입 경쟁이 사라지면 학생들은 학습 부담이 줄고 부모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 수 있다. 평준화의 단점은 수준별 맞춤형 수업 등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입시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고 교육개혁도 이룰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작은 것에도 수백억·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복지 정책과 비교하면 입시 정책에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입시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를 거듭했지만 실제 교육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정부와 공교육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교육시장만 키웠을 뿐이다. 교육에도 돈이 들어가야 한다.
문 후보의 표현대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 소외 계층에 직접적인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한겨레]
3. 3년 만의 세월호 인양, 진실도 인양해야
세월호 인양 작업이 22일부터 시작됐다. 참사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올 세월호는 목포신항으로 옮겨져 10여일 뒤면 선체 조사가 진행된다. 9명의 실종자 수습과 함께 진실 규명 작업도 다시 본격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세월호는 우리의 경박한 망각증에 죽비를 날리며 다시 한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생명들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실종자 수습에 3년이나 지체한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허망하게 허비한 ‘7시간’의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모면하려 당시 대통령과 권력붙이들은 수년간 집요한 은폐공작을 벌여왔다. 참사 당일엔 해경에 브이아이피(VIP) 보고용 영상을 요구하며 사실상 구조를 방해하더니,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도 조직적으로 틀어막고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조차 강제종료시켰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해경을 밟으면 어떡하냐”며 보도통제를 시도했고, 정무수석은 어버이연합에 ‘반세월호 집회’ 공작을 지시했다. 단식 유족 옆에서 패륜적 폭식 투쟁을 벌이던 장면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권 차원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은폐공작을 벌이는 사이 일부 국민은 피로증과 망각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이 ‘미흡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했고 특히 보충의견은 대통령의 책임을 신랄하게 질책했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대통령이 적어도 당일 10시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재난대응을 총괄·지휘·감독했어야 한다”며 “주위에 10대 이상 선박들이 대기해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대통령 박근혜’가 참사 책임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대통령 책임을 질타했다.
선체 인양은 온전한 진실의 인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원혼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는 길이다. 당장 8명으로 선체조사위를 꾸리는 것과 함께 참사특별조사위도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간 조사 결과를 포함해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왜 8시간이나 안 나타났는지, 진상규명을 방해한 책임자와 실행자는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 참사의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4. ‘박근혜 구속’, 망설일 필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22일 귀가했다. 이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관련 기록,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 여부를 포함한 수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오로지 법과 원칙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실과 법률 관계로 보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의 실체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범죄를 충분히 소명할 만큼의 물증과 증언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공범이나 관련자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은 중형이 예상된다. 삼성에서 받았다는 수백억원의 뇌물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범 대부분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혐의가 이렇게 중대하면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구속의 필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증이 확실하고 관련자들의 흔들림 없는 진술이 있는데도 범죄의 고의성을 반복해 부인하는 것 자체가 증거인멸의 우려를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거가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라면 언제든 수사를 방해하리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 등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된 마당에 모든 혐의의 중심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의 어느 기준과 원칙으로도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큰 사건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를 위해, 법 집행의 원칙상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판단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된다. 앞으로 치를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할지, 어느 쪽이 얼마나 반발할지, 어떤 상황이 검찰에 유리한지 따위의 정치적 고려를 하다가는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결정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가뜩이나 국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판단이 섰다면 미뤄서도 안 된다. 결정이 지연되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영장 청구 여부는 이번주 안에 결단하는 게 옳다.
[이데일리]
5. 대선 전략이 비방과 포퓰리즘 뿐인가
‘5·9 대선’의 정당별 후보 경선이 달아오르면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후보 간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닌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선이 이럴진대 각 당 후보가 확정되고 본선에 접어들면 진흙탕 싸움이 더 격화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를 겪고도 과거 행태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벌써부터 이번 대선도 기대할 게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공방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전두환 표창’과 ‘대연정론’을 두고 연일 인신공격성 막말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있다. 서로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네거티브에 빠져드는 꼴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의 “민주당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등의 거친 언사도 듣기에 거북하다. 이밖에 인터넷이나 카톡 대화방을 통해서도 걸러지지 않은 의혹과 소문들이 마구 퍼져가는 양상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문 전 대표는 가계부채 해법의 하나로 22조 6000억원의 개인 부실채권을 정리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공공개혁을 거스르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 약속까지 내놓았다. 안 지사는 10년 동안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재원 마련이 불투명해 실효성은 없으면서 부작용만 키울 내용들이다.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80만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외교·안보 위기에 경제까지 동반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갈라진 내부 갈등을 추스르고 험난한 안팎의 파고를 헤쳐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찾고 있다. 후보들은 이제부터라도 비방과 포퓰리즘 공약이 아닌 대한민국의 앞날을 열어갈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6. 포퓰리즘 우려되는 저소득 청년 300만원 지원
정부가 어제 ‘청년고용대책 보완 방안’을 내놓았다. 대책 아닌 보완이라 했지만 현 정부 들어 열 번째 청년실업 대책이다. 취업을 하지 못한 고졸 이하 저학력·저소득 청년 5000명에게 한 사람당 최대 연 300만원을 생계비로 지원하고 고교 졸업 후 즉시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입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또다시 백화점식 보완 방안을 내놓은 것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대 고용률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청년층(15~29세) 장기실업자와 구직단념자는 지난달 36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1600명이 늘었다.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등 자포자기한 청춘들이 우글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통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겠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와 성남시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정부는 돈을 나눠 주는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했었다. 이번 300만원 지급 정책에 대해서는 “지자체 청년수당과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정한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또 하나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와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에서처럼 연봉 수천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따지고 보면 각종 지원 등 보조수단 성격이 짙다. 정부가 지난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2조 1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고용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가 낮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민간에 있다.
문제는 경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 축소형 성장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도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구조적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처럼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림없다. 청년들에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나눠 줄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일자리 정책을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고기 잡는 법 말이다.
7. 미세먼지 대책, 중국에 따질 근거부터 찾길
그제 오전 한때 서울의 공기 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빴다. 세계 대기오염 실태를 점검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의 조사 결과다. 차량 매연이 가득한 터널 안에서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전국 각지에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80회가 훌쩍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회 정도에 비해 두 배나 뛰었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은 지난해에도 소리만 요란했다. 미세먼지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자 환경부가 고등어 굽는 연기까지 들먹거려 여론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당장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듯하더니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렀다.
환경부는 그제 봄철 미세먼지 대책으로 건설공사장 단속, 경유차 매연 집중 점검 등을 내놓았다. 이제 이런 대책은 해마다 때가 되면 들리는 녹음기 소리가 됐다. 지난달 도입한 비상 저감 조치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공공사업장 조업 단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공기의 품질이 연일 나쁨을 기록한 며칠 새 한번도 비상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유명무실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책을 더 미루지 말고 강구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과 함께 좀더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정부는 봄철 미세먼지의 70~80%가 중국발(發)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며 팔짱 끼고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기 환경은 미래의 중대한 국가 자산이다. 한두 해만 눈감아 줘서 될 일이 아니라 중요한 국익이 지속적으로 훼손될 전망이라면 이제 중국에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자국 이익을 위한 안보외교를 물불 가리지 않고 구사하는 중국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한국의 대기오염 사망자가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거라고 경고했다. 국민 생명 안전으로 따지자면 미세먼지도 위협적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제 중국에 공기오염의 책임이 있는지 입증해 보라는 식의 배짱 논평을 냈다. 노후 경유차 단속 등 국내의 여러 개선책만큼이나 중국에 당당히 따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부는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서라도 중국과의 환경외교에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국일보]
8.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봄철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한 짙은 미세먼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1일 오전 서울의 공기 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 스모그 천국인 중국 베이징이나 청두보다 더 나쁜 수준이다. 올 들어 21일까지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모두 85회로 지난해(41회)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흡연보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돌았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WHO 권고치의 세 배나 된다. 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공기 질이 개선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여섯 차례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도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차량 2부제 실시 등의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이다. 정부는 수명을 다한 노후 설비를 없애겠다면서도 오히려 9기를 새로 지어 현재 39%인 석탄발전 비중을 10년 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경제성에만 집착한 에너지 정책이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공공ㆍ행정기관 대상의 차량 2부제도 별 효과가 없다. 당일은 물론, 다음 날도 ‘매우 나쁨’이 일정시간 예보돼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빨리 진행된 데다 인구 밀도가 높아 단위면적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과다 배출원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느껴질 정도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에 따른 건강 피해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석탄을 결코 값싼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석탄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고,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공사장ㆍ소각장의 오염원을 차단하는 등 범정부적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의 절반은 전 세계 석탄의 절반을 쓰는 중국에서 날아온다. 특히 봄철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이 70% 안팎에 달한다. 중국과의 환경 협력에도 속도를 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9. 美가 걱정하기 시작한 韓 차기 정부 對北 정책
그제 미국 연방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 모두 5·9 대선 이후 들어서는 한국 신(新)정부의 대북 정책 변경 가능성을 거론했다. 브래드 셔먼 민주당 하원의원은 "개성공단에서 힘들게 번 노동자의 돈이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으로 쓰인다"며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했다.
앤 와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백지화하거나, 북한 제재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한한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우리 외교관보다는 대선 출마 정치인이나 그 참모들을 만나는 데 더 주력했다. 특히 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외교·안보 정책 전문가들을 만나서 이들의 대북 정책을 탐색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한 느낌마저 준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려하는 것은 집권 가능성이 큰 민주당 후보들이 급격한 대북 정책 전환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당선되면 2억달러가량이 김정은에게 흘러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핵 방어용인 사드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문 전 대표의 대북 정책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사드까지 철회한다면 양국 공조의 파탄이 현실화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고 한·미 간 정책 차이가 걱정처럼 표면화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김정은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안보 위기에 몰릴 우리 국민과 한·미 동맹이다. 노무현·부시 행정부 사이의 정책 부조화가 북한의 핵실험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도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처럼 기존 정치인들과는 셈법이 전혀 다른 미국 대통령과 다른 문제도 아닌 민감한 안보 문제로 충돌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다음 정부가 그 길을 가겠다면 한·미 동맹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국민을 지킬 것인지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대학생 울리는 대학 기숙사의 ‘갑질’
새 학기에 활기차야 할 대학생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집을 떠난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과 경제적 문제로, 졸업반들은 취업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황당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대학 측이 한 학기에 수백만원 하는 기숙사비를 일시불 현금으로만 받고, 식권도 100장·200장씩 강매하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배려는 내팽개치고 수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12개 대학의 기숙사를 조사해 보니 횡포가 지나쳤다. 12곳 모두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분할납부조차 받지 않았다. 교육부가 2년 전부터 권고한 내용이지만 대학 측이 처벌 조항이 없는 데다 수수료 부담을 내세워 외면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비 지불 방식을 자율에 맡기는 미국 대학들과는 정반대다. 식사의 질도 열악하다. 한 끼에 3900원을 받으면서도 밥과 국, 김치와 계란말이 한두 조각이 전부인 기숙사도 있었다. 밥맛이 없어 사용하지 않은 식권이 쌓여도 환불을 안 해 준다니 이런 갑질이 어디 있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치되는 이유는 기숙사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전국 4년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도권은 15%, 서울은 11%여서 방 구하기가 별 따기인 학생들만 봉이 된다. 게다가 민자기숙사의 경우 업자가 시설을 짓고 운영을 맡아 투자금을 거둬들이려다 보니 1인실이 월 6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일반 원룸보다도 비싼 수준이다.
이번에 드러난 갑질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의 기숙사 실태를 점검해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학생들 잠자리와 밥을 갖고 장난치는 기숙사만 방치하는 까닭이 뭔가. 기숙사 확충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에 저금리로 건축비를 빌려줘 기숙사비를 낮게 매기는 공공기숙사,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 연합기숙사, 자치단체가 공급하는 향토학사 등이 많아져야 한다.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는 대학가 주민들과의 상생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닌가.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오버 더 펜스'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도 저마다의 비밀을 한 두 개쯤 갖고 있을 거다. 우리는 이렇게 감쪽같이 침묵하면서 때로는(어쩌면 항상) 위로 받기를 원한다. 이는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표현에 과감한 이들이 덜 이기적인 건 아닐까. ‘오버 더 펜스’ 속 사토시처럼 말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 같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 일쑤고, 곧잘 운다. 새 흉내를 낸다며 이리저리 날뛰기까지 한다. 이런 그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이다. 괴짜 같은 행동으로 미루어보자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하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뒤늦게 직업훈련학교를 다니는 요시오. 그는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도시락과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물건뿐 아니라 온기조차 없는 텅 빈 그의 집은 요시오 그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맥주 두 캔과 집 앞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만이 그를 위로해준다. 알고 보니 요시오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사토시와 요시오는 길거리에서 이 우연한 만남 이후로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가까워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토시와 사랑을 잃은 상태인 요시오는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들 두 사람은 평범한 우리들을 대변한다.
말 못할 사연들로 심신이 지쳐버린 남녀를 일으켜 세워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는 현실과 내면의 벽에 부딪힌 남녀가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요시오가 뱉었던 말처럼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다. 분노와 자괴감으로 휩싸인 사토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결핍으로 가득 찬 둘도 사랑을 하고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간다.
사토시가 등장하자 요시오의 타구가 하늘 높이 치솟는 장면은 ‘오버 더 펜스’의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야구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요시오의 타구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꿈을 쫓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버 더 펜스’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따라서 해야만 한다고.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사랑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고 말이다.
2. [경향신문][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행복하다는 것
행복의 날이란 게 있는 줄 몰랐다. 지난 20일이 바로,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란다. 제헌절이나 한글날, 삼일절 같은 날들처럼 역사적으로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날은 역사적으로 아주 행복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일 터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 기억과 함께 흐뭇해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국제연합에서 제정’한 날이라고 되어 있고, 관련 정보로는 세계 행복 보고서가 보인다.
행복의 조건을 수치화해서 순위를 매겼을 때, 우리나라의 순위가 아주 한참 아래이다 못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 청년실업률, 노인빈곤율, 출산율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 새삼스럽지 않은 뉴스들이다. 간신히 청년실업을 면했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혹시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그런 사람을 구할 돈이 없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럴수록 그들이 어깨에 메고 살아가야 할 노년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가난해지는 식이다.
야근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친구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회사에서 집엘 보내줘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요”라는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출산율을 따지기 전에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다. 행복수치를 따지기 전에, 행복한지를 묻기 전에, 행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역시, 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은 이제 아주 유명한 말인 듯하다. 심리학자가 한 말이기도 하고,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의 연구결과라고도 한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웃음 근육을 마비시키는 보톡스를 주사하고 뇌반응을 측정해보기도 했단다. ‘웃음의 숨겨진 힘’에 대한 TED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이 강연 중, 자궁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보인다.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미소짓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행복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일 터이다. 같은 TED 강연으로 아주 유명한 에이미 쿠디(Amy Cuddy)는 보디랭귀지의 힘을 말하면서, 마음이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주눅든 자세로 있으면 약해지고, 센 척하면 세진다는 것이다. 대개의 생각과는 반대다. 약하니까 주눅이 들고, 가진 게 없으니까 센 척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심리학과 과학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과 자기 세뇌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그에 작용하는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관계에 대해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를 포괄한다. 나의 이야기가 단지 나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나이면서 동시에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센 척하는 자세를 해서 개인의 지배 호르몬 혹은 행복 호르몬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혹은 관계 속에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예컨대 내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고민하는 아주 건강한 20대 여성이라면, 출산은, 단지 건강한 호르몬을 바탕으로 하여 아이를 낳는 문제인 것이 아니라, 월수입, 노동시간, 직장의 구조와 상사의 성격, 사회적인 보육시설의 안전도와 신뢰도, 부모님의 경제력과 건강, 심지어는, 아랫집 주민의 층간소음 반응까지도 미리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훨씬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문학이다.
탄핵이 인용된 후 광화문 촛불집회는 특별했다. 나로서도 그 집회는 매우 각별한 경험이었는데, 행복한 집회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의 하나로서 내가 생각하는 시위나 집회의 정의는, 다치고, 죽고, 검거되고, 투옥되는 일들의 총합쯤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정말로 피를 흘리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 된 1987년 6월항쟁만 하더라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전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도 다치고 검거되지 않고 투옥도 되지 않았는데, 그날 촛불집회의 구호는 ‘승리’였다. 실은 ‘행복’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참가자들은 일부러 센 척할 필요도 없이 이미 셌다. 그 호르몬은 우리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세포로 전이되어 개인의 역사가 되고, 사회의 역사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촛불집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나는 그 자긍심이 좋다. 역사는 피를 흘려야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뜻을 모으면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런 자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것, 그 소박함의 엄청난 힘이 좋다. 시위가 축제가 될 수 있고, 축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소불위인 줄 알았던 자리에서 밀어낸 것보다 더 큰 승리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촛불을 완성하는 정권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미대선’이라는 말이 참 좋게 들린다. 덩굴장미처럼 행복을 마구 피워내는 그런 정권이 들어서야겠다. 그러려면 잘 지켜봐야 할 일이다. 4년 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 될 터이니. 대선까지 모두들 어깨를 활짝 펴 긍정 호르몬을 마구 발산시키시기를 바란다.
정치나 권력은 그 속성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를 감시하는 힘은 국민들에게 있어 보인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바람과 함께 타오르는 힘이다.
3. [경향신문][경제와 세상]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일 것이다. 해외의 옥스퍼드 연구소, 다보스 포럼과 한국의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 등 각종 기관들이 앞다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숱한 주장이 반복되어 왔으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인 사례는 전혀 없다. 1차 산업혁명 시기인 19세기 초 벌어진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과 3차 산업혁명 태동기인 1961년 타임지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 예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되었다.
80%의 농업인구가 2%가 되었으나, 78%는 실업자가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다. 즉 지금까지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로 근무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총량이 일정할 경우 새로운 기술혁신은 노동총량을 축소하여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수요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에 주당 80시간의 노동시간이 이제는 40시간 이하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노동총량은 불변이 아니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증가되어 잉여가 발생하면 새로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가 등장해 왔다.
혁신이란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사라지는 일자리가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은 사라지는 일자리는 말하고 있으나, 창출되는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이 오류임을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 역사를 통하여 입증했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기술로 인간의 안정의 욕구, 즉 편리함의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서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편리한 제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욕구인 연결을 만족시켜준 결과, ‘혼밥’과 ‘혼술’ 같은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산업혁명이 충족시켜 온 인간의 욕망은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 욕구 5단계의 1·2·3단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충족시킬 인간의 욕망은 바로 매슬로의 욕구 4단계인 자기 표현 욕구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해 본다. 매슬로는 이 4단계를 다시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로 세분화한 7단계설로 확장한 바 있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개인화된 자기 표현 욕망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화된 욕망을 인간과 인공지능 및 로봇이 협업하여 충족하는 사회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생산성 증가로 노동 총량 감소의 일자리와 자기 표현의 욕망을 충족하는 노동 총량 증가의 일자리로 나누어질 것이다. 생산성 증가 일자리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자기 표현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은 각각 창조적인 일과 반복되는 일로 나뉘어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소위 ‘딥러닝(DeepLearning)’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은 반복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반복되는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자기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인재상은 ‘협력하는 괴짜’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교육은 바로 협력하는 창조적 인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하는 괴짜는 산업과 교육이 융합하는 프로젝트 기반 교육(PBL)으로 구현된다. 세계 선도 대학들은 이미 팀 프로젝트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학과 교육들은 온라인 교육(MOOC)으로 전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새롭게 형태를 바꿀 뿐이다.
4. [여성신문][서민의 페미니즘 혁명] 임신부에게 X표를 긋는 나라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 있던 자리가 노약자 지정석 앞이었는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스티커의 임신부에게 X자가 그어져 있다. 신기해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바로 여혐의 증거야."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나이든 분과 임신부 중 누가 더 약자인지 묻는 코너가 있었는데, 연구결과는 내 예상과 달리 임신부가 10배쯤 더 힘들단다. 나이든 분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임신부도 다 다를 테니 이것만 가지고 결론을 내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임신부가 노인에 필적할 만큼 힘들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가 아주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만삭이 아닌 바에야 그냥 배가 나온 것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서울지하철에선 산모수첩을 내면 임신부고리라고, 분홍색으로 된 큰 고리를 나눠주는데, 이걸 꺼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14주차 임신부는 인터넷에 “임신부 고리를 봐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역시 큰 도움은 안되는 듯”이라고 수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노약자석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왜일까. 노약자석은 그 이름 때문인지 나이든 분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미담이 만들어진다. “경찰이 과천역 인근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가던 임신부 A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폭행한 70대 노인 B씨를 검거했다.” 참고로 A씨는 임신 27주였으니 임신한 걸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 B씨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에 따르면, B씨는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고 A씨의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고 곧이어 임신부 A씨의 부른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A씨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여혐 세력은 임신부들이 임신을 빌미로 노약자석을 점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를 보면 그 자리에 앉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고육지책으로 서울시가 만든 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가끔 지하철을 보면 좌석 맨 끝자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좌석이 눈에 띄는데, 그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색깔도 그렇지만 좌석 앞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자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한량에 두 개뿐이긴 해도,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임신부들에겐 ‘가뭄에 단비’다. 이제 임신부들의 고생은 끝난 것일까? 기뻐하기 이르다. 지하철을 꽤 탔지만, 그 자리에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걸 본 경험은 드물다. 오히려 건장한 남자일수록 그 자리를 좋아했다. 혹시 분홍색에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거기 앉아 있는 승객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비워놓는 건 비효율적이니, 일단 앉아 있다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니냐?”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듯하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임신부가 자리를 양보받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앞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자리 양보를 부탁해도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임신을 하면 개인으로 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도 힘든데다 직장에서 눈치 보이지, 몸매 망가지지, 좋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임신을 하는 건 사랑하는 부부의 결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부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우리 남성들은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훨씬 더 심각해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갈 거라는 걸.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탄핵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11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들 중 임기를 온전히 채운 이는 6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고 나머지는 하야(이승만), 사임(윤보선, 최규하), 피살(박정희), 탄핵(박근혜)으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6명 중 둘(전두환 노태우)은 임기 후 내란ㆍ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은 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고 위험한(?) 자리인 듯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이력도 있다.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21년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한반도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탄핵 당했다.
대통령 선출 전, 총리제 하의 임시정부 총리로서 외교무대에서 자신을 ‘대통령(president)’으로 소개하며 말썽을 빚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로 미국에 머물며 독자 외교노선을 걷던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나머지 21년의 청원을 대통령 자격으로 행했고, 의정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신채호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지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수습과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은 물론…”으로 시작된다. 그는 60년 4월의 하야로 두 차례 대통령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각각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위세에 밀려 사실상 강압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놓았다.
우연이지만 1962년 윤보선의 하야도 이승만이 탄핵된 날과 같은 3월 23일이었다. 윤보선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5월 19일 방송을 통해 하야 선언을 했다가 국제법상 새 정부 승인 문제 등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군부의 사임 재고 요청(사실상의 압박)으로 다음 날 하야를 번복하기도 했다.
3월 10일의 헌재 판결로 직에서 파면 당한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중도하차한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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