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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朴 前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前)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995년 수뢰, 군사 반란 등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뢰 혐의 수사 도중 자살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영장에 대해 "기업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이 중대하고, 범죄 혐의를 부인해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며, 관련자들이 구속된 점에 비추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했다.



법원은 30일 영장실질심사를 해 구속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있고,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따른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들도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박 전 대통령만 예외로 한다면 당장 형평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구속은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을 때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수개월에 걸친 수사로 관련자들이 다 구속돼 증거 인멸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도주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죄가 있다면 유죄판결 확정 뒤에 형을 집행하면 되는데 굳이 구속 수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포승에 묶여 재판정을 드나드는 걸 봐야 하는 국민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는 영장 전담 판사 손으로 넘어갔다.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랄 뿐이다. 사태가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 사회는 숱한 굴곡을 거치며 논란을 거듭해왔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제도의 틀 안에서 문제를 수습해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모든 국민이 법원 결정을 소중한 법치(法治) 구현으로 받아들이고 승복해야 한다.



2. 김수남 검찰총장도 거취 고민해야 할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은 제 할 일을 다 해왔는가. 검찰은 이런 일을 막을 수 없었는가.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졌다.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과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정부 인사(人事) 등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씨 국정 개입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 출신 전 청와대 행정관은 검찰에서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고 진술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 관련 승마협회 논란으로 박 전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 경질을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증언도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검찰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으면 최순실의 존재는 당시에 드러났을 것이다. 자원 비리, KT비리, 포스코 비리 등 전(前)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하청 수사를 할 때 열성의 절반만 보였어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최씨 국정 농단은 그 시점에 막을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말로가 이토록 비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중대한 진술을 한 청와대 행정관만 구속하고 수사를 끝냈다.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은 얼마 안 있어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을 잘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그 역시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으로 승진했다. 그 김 총장이 최씨 사건 때문에 결국 탄핵까지 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총장은 작년 9월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을 고발하자 일반 고소·고발 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다. 수사 의지가 전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뒤에야 최씨의 텅 빈 사무실들을 압수 수색했다. 그런 김 총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곳 중 하나가 검찰이다. 이래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 단 한 명 없다. 박 전 대통령 신병 처리가 끝났다면 김 총장도 스스로 거취를 고민하는 것이 순리이자 상식일 것이다.



[이데일리]

3. 굳이 구속영장까지 청구해야 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어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피의자가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 남용적 행태를 보였다”며 영장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탄핵결정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첫 파면당한 데 이어 영장 실질심사까지 받아야 하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국민의 투표로 선택받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아 자리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구속되느냐의 기로에 처했다는 자체로 나라의 불행이고, 국민 된 입장에서 부끄러움이다. 제발이지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재연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권을 향해 저마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각 예비후보들마다 지금의 상황을 엄중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가슴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이미 권좌에서 물러나 바깥 거동이 어려운 처지에서 굳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을 한 움큼이라도 옹호하려는 뜻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당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국정농단 과오에 대한 대가를 상당히 치른 셈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들어가며 구속영장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 증거인멸 우려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한 지 엿새가 지나 뒤늦게 영장을 청구하면서 붙인 명목으로는 너무 구차스럽다. ‘보여주기 수사’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법원 판결에 따라 박 대통령이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하는 절차가 바람직하다. 수갑을 채우든, 돌팔매질을 하든 법원이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제는 법원 판단에 맡기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흥분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찢겨진 우리 각자의 상처도 치유가 필요한 단계다. 일단 구속영장이 청구된 만큼 서로 겸허한 자세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매일신문]

4.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 법원 결정 존중해야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유는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 ‘구속된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이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와 관련해 김수남 검찰총장은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구속영장 청구는 이런 두 가지 원칙에 따른 결정일 것이다. 그 결정이 정치적 고려와 여론의 향배를 일절 배제한 순수한 법률적 판단일 것으로 믿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 앞에서 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란 점에서 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도 민주주의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증거 수집 단계를 지나 마무리됐는데도 굳이 구속 수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수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라 유죄 입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는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조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 관계를 제외하고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점에 비춰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공범들이 대부분 구속돼 박 전 대통령과 말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증거 인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를 포함해 검찰이 적시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가 정당한 것인지는 오직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검찰의 결정에 대한 섣부른 지지와 반대 모두 자제하고 법원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승복’하고 ‘인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사회가 겪은 진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탄핵 과정에서 탄핵 반대와 찬성으로 헌재를 옥죄는 ‘법치의 위기’가 나타났다. 다시는 이런 퇴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를 온전히 다시 세우는 길이다.



5. 문재인, 대구경북 공약 말뿐 아니라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대구경북 지역 대선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문 전 대표는 대구경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적시하고,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화두를 제시해 공감을 얻었다. 지역 현안과 지역민의 바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공약 설명회가 됐다는 평가다.

 
문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제일 못사는 대구’라는 언급이 가장 눈에 띄었다. 지역민에게는 뼈아픈 지적임이 분명하지만, 지역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K가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왔는데도, 24년 연속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전국 꼴찌이고, 그 규모도 전국 평균의 64%에 불과하다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 전 대표가 시대적 과제인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기치로 제시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는 강력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국정 철학을 가진 정부만이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대구가 지방분권 운동과 국가균형발전론의 발원지라는 점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과도한 중앙집권과 국가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는 대권 주자라면 누구나 앞장서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그는 대구공항 이전 지원과 대구권 광역철도, 의료산업 및 물산업, 서대구역세권,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 등의 세부 공약도 내놓았다. 대구시가 요청한 대선 공약은 대부분 반영됐으나 경북도가 요청한 공약은 일부만 포함돼 있다. 문 전 대표 측의 지역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경북도의 노력 및 성의 부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가 지역의 고질적인 병폐를 개선하고 지역 현안을 챙기겠다고 약속한 것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말의 성찬’보다는 실천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 전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기에 이를 제대로 증명해야만 정권 획득이 가능할 것이다. 지지율 일등 후보답게 지역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서울신문]

6. 명분·정책은 없이 연대만 외치는 反민주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뽑는 각 당의 경선이 이번 주 윤곽을 드러낸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최대의 승부처인 호남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60.2%의 압도적인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는 3차례 남은 지역 경선에서 2위 후보가 대역전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후보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여타 3명의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29, 30일의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31일 후보를 선출한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의원이 사실상의 후보 결정전으로 불렸던 호남의 두 경선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으며, 5차례의 지역 경선을 거쳐 다음달 4일 후보를 결정한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전 의원의 우위 속에 오늘 후보를 확정한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심상정 대표를 후보로 확정해 금주 말, 늦어도 내주가 되면 5당의 후보가 모두 결정된다.

52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 변수로 조기에 치러지는 만큼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겪어 보지 않았던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정당 지지도에서 50% 전후의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나, 민주당 대선 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60%에 육박하는 것이 그러하다. 거대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여타 정파의 연대나 후보 단일화, 빅 텐트, 스몰 텐트 논의가 생겨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약체 후보들과의 뻔한 대선 후 민주당이 보일 오만과 독선을 줄이기 위해서도 민주당에 맞설 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연대나 단일화, 텐트론이 각 정당의 정책이나 정파의 이념, 노선과 맞고 안 맞는지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우선 뭉치고 보자는 약자의 결집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려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생겨난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세 불리를 느끼고 후보 단일화를 앞세우는 것은 코미디 같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의원이나 박지원 대표가 이른바 ‘반문(문재인) 연합’을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대선 기간 요동칠 것으로 보이는 대선 지형의 변화에 따라서는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한 제 정파의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회에서 최소 30석 이상씩 국민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유권자들에게 국정을 이끌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고 평가를 받는 게 우선이다. 단일화, 연대는 그 뒤라도 늦지 않다. 그것은 촛불 민심, 반박근혜 여론에 기대고 있는 민주당에도 해당한다. 새 시대를 갈구하는 유권자의 심판은 매섭다는 점, 잊지 않아야 한다.



7. 서울교육청, 전교조 전임 허용 재고하라

서울시교육청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2명의 노동조합 전임을 허용했다고 한다. 법외노조인 전교조의 전임을 신청한 교사들에게 휴직을 허가했다는 것이다. 법외노조란 글자 그대로 노조 관련 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조를 말한다.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고, 단체협약 교섭권이나 노조전임자 파견권처럼 노조로서의 법적 권리도 행사할 수도 없다. 합법노조 조합원이라면 교육 당국의 허가를 받아 휴직하고 노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지만, 법외노조 조합원은 노조 전임을 이유로 휴직할 수 없다. 법외노조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수용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교육청에 앞서 강원도교육청도 지난달 교사 1명의 전교조 전임 휴직을 허가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서울과 강원 교육청에 전임 휴직 조치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두 교육청은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이달 초 전남도교육청이 교사 2명의 노조 전임 휴직을 허가했다가 교육부의 취소 명령을 따른 일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 전임 휴직을 인정한 이유는 궁색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서울시교육감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에 우리 사회가 전향적인 인식 전환과 근본적 해결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책보좌관은 한술 더 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정치적 법적 판단을 할 텐데 해고자가 나오면 궁극적인 피해가 학교 현장에 돌아간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을 운운하는 것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실정법쯤은 얼마든지 어겨도 좋다는 사고방식이 더욱 놀랍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분류된 것은 해직 교사 9명의 조합원 자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직 교사들을 껴안고 가는 것이 조직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따른 법적 불이익도 감수하면 된다. 법이 규정할 정도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조 활동으로 해직된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해 쇠락의 길로 가지 않은 사례가 어디 있는지 되묻고 싶다.



법외노조 문제는 전교조가 스스로 조금만 변하면 해결될 일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른 곳도 아닌 교육계가 앞장서서 정치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서울시교육청부터 전교조 교사 전임 허가 조치를 거두기 바란다.



8. “법 앞에 만인은 평등” 일깨워준 박 전 대통령 영장

검찰이 어제 소환 조사한 지 6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일찍이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며 박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 기준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서 시작된 사태가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구속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영장이 발부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구속이다. 개인의 불명예를 떠나 국격의 실추가 아닐 수 없다.

되풀이되는 전직 대통령의 영장 청구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그러나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즉 법치주의 원칙에 비춰 볼 때 검찰의 선택은 옳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를 포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무려 13가지에 이른다. 더욱이 국정 농단의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진과 장·차관 등 15명이 이미 구속기소된 데다 15명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한마디로 뇌물을 준 상대방뿐만 아니라 지시를 받은 종범들까지 구속된 상황이다.



만약 검찰이 주범 격인 박 전 대통령만 구속영장 청구를 통한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면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국정 농단 수사 초기와 같은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영장 청구와 관련해 밝힌 대로 법과 원칙에 따랐다. 일각에서 제기해 왔던 ‘탄핵당한 대통령의 처지’를 고려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사법처리된 관련자들과의 형평성과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의 우려 등을 철저하게 따졌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조차 혐의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 범죄의 고의성을 전면 부인했던 터다. 불구속할 경우 국정 농단의 관련자들과 짜고 증거를 감추고 없애거나 혐의를 왜곡할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구속이 불가피한 사유’라는 결론을 내린 이유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사법부의 몫이다. 사법부 역시 박 전 대통령이 30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든 안 하든 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혐의에 대해 법의 잣대로 보고 결정하면 된다. 좌고우면할 필요 없다. 다만 우려스러운 일은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해 온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반발이다. 영장 청구에 대해 “기각해야 한다”라는 등의 압박은 온당치 않다.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승복해야 한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워 국정 농단에 따른 혼란과 분열을 마무리 짓는 길이 따로 없다.



[동아일보]

9. 자동차사고 줄어도 요지부동인 車보험료

주요 10개 손해보험사의 지난달 자동차보험 평균 손해율이 1년 전보다 8.3%포인트 떨어진 80%로 나타났다.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인 손해율이 떨어지면서 손보사의 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동부화재 KB손보 한화손보 악사손보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의 손해율은 적정 수준(77∼78%)을 밑돈다. 그런데도 보험료를 내린 회사가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 일부에 불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손보사들은 손해율이 악화되면 기다렸다는 듯 보험료를 올려 왔다. 이달만 해도 사망 사고 시 지급하는 위자료를 인상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이 시행되자 손보사 10곳 중 9곳이 보험료를 0.7% 올렸다. 실제 손해로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미래의 손해까지 예상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했다. 손해율이 개선될 경우엔 더 지켜봐야 된다거나, 마일리지 특약 확대 등으로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물론 상품 가격인 보험료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고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2015년 정부의 가격 개입을 금지하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이 나오면서 손보사들의 수익성도 개선됐다. 손보사들이 이익의 일부나마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보험사들의 가격 결정에 담합 정황은 없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10. 안보위기 상황에 미·일 대사 장기공백 우려스럽다

주한 미국·일본 대사의 동시 공백 상태가 두 달을 넘어섰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차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양국 대사 공백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1월20일 마크 리퍼트 전 대사를 귀국시킨 이후 후임 대사 지명은 물론이고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는다. 조만간 후임 대사를 인선하더라도 상원 인준 등의 절차를 마치려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나 부임할 전망이다.



한반도 문제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내달 초 미·중 정상회담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일본·러시아 대사 인선을 완료함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만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1월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지 70일이 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학교부지 특혜분양 의혹에 휩싸여 나가미네 대사를 복귀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도 악재다. 대사 복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한·일 간 갈등 해소를 위한 외교가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반도 안보 상황은 날로 엄중해지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한·미 정부 관리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작업을 마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군 총참모부는 그제 “우리 식의 선제적인 특수작전, 우리 식의 선제타격전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에서 미국·일본 대사의 부재는 여간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미·일이 긴밀한 대북 공조를 해야 하지만 지금의 대사대리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리퍼트 전 대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과의 ‘핫 라인’ 역할을 맡곤 했다.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방한 당시 한·미 외교장관 만찬 불발을 놓고 뒷얘기가 무성한 것도 양국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우리는 대통령 궐위 상태여서 정상외교가 실종됐고 과도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도 힘을 받기 어렵다. 정부가 분발해야 한다.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 한·미·일 간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특단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무비클릭] 미녀와 야수

‘미녀와 야수’가 실사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알려져 있다시피 디즈니는 디즈니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을 실사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신데렐라’ ‘정글북’이 그 작업의 성과들이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어려움은, 만화니까 가능한 과장과 상상을 어떻게 실사로 재현하느냐다. 가령 모글리와 대화를 나누는 늑대 같은 장면들이다. 

그런 점에서 ‘미녀와 야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실사화가 가장 우려된 작품 중 하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야수’ 부분이다. 야수로 바뀐 인간의 모습이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화됐을 때 과연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안의 여러 사물들로 변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인격을 가진 사물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특권 아니었던가? 컵이 말을 하고 시계가 걸어다닌다, 그것도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말이다.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물건들은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우려보다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 그대로 명품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시각적인 어색함보다 서사적 공감에 훨씬 더 빠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촛대 르미에는 이완 맥그리거, 협탁용 시계 콕스워스는 이안 맥켈런 그리고 따뜻하고 품이 넓은 티팟은 엠마 톰슨이 맡아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렇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연기 톤을 완성해낸다. 아마도 성안의 격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듯싶지만 유독 영국 배우들이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거의 고스란히 살린 음악이다. 벨의 노래, 가스통의 노래 등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거의 ‘오마주’했다고 할 만큼 익숙했던 즐거움을 준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진취적이면서도 잘 짜여진 세계관을 보여줬던 이야기 구조도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푸른 수염’을 쓴 동화 작가 샤를 페로에 의해 정리된 ‘미녀와 야수’는 생각보다 다층적이고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디즈니는 아버지와의 분리를 망설이며 사랑하는 남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소녀 벨을 훨씬 더 개성적인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녀는 평범한 주변 여성들처럼 작은 세계에 안주하고자 하지 않고, 책과 상상력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꿈꾼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새 현명한 페미니스트 배우로 성장한 엠마 왓슨은 ‘벨’ 캐릭터의 실사판에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단순 조역에 불과했던 르푸의 활약이다. ‘겨울왕국’의 올라프 목소리를 맡았던 배우 조시 게드는 이번에도 역시 웃음을 담당해 제 역할 이상을 해낸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극복해야 할 상처가 있다는 메시지로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건네고자 하는 감독 빌 콘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기도 하다. 

가족 모두가 함께 본다 해도 각자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대왕 카스테라’의 눈물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노란 간판의 작은 길거리 빵집을 한 번쯤 봤을 법하다. 상권이 웬만큼 형성된 곳에서는 몇 달 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왕 카스테라’ 매장이다.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 이들 가게의 공통점. 골목 귀퉁이나 상가의 자투리 공간에 놓인 오븐이 설비 시설의 거의 전부다. 길가로 뚫린 쪽문으로 테이크아웃 방식으로 판매하는 초소형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대만 단수이 거리의 명물인 대왕 카스테라가 국내 진입한 지 몇 달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어느 종편 방송의 먹거리 고발 프로에서 식용유 함량 문제가 언급된 뒤 불과 보름여 만에 빚어진 사태다. 방송은 이 카스테라에 식용유와 액상 달걀이 과다하게 들었다고 꼬집었다.

밀가루 대비 식용유 비율이 최대 70%까지 들었으며, 식용유가 8% 이상 들어간 빵은 애초에 ‘시폰 케이크’라고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문전성시였던 매장들은 방송 이후 거짓말처럼 파리를 날리거나 폐업 선언을 했다. 가게 앞에 달걀 판을 쌓고는 “식용유 빵이 아니라 계란 빵”이라며 읍소하는 점주도 있다.

그렇다면 의문.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애초에 ‘대만 시폰 케이크’라는 이름을 썼더라면 시비가 없었을까. 먹거리에 예민해 고발 프로에 쉽게 동조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번만큼은 사뭇 다르다. “폐식용유도 아닌데 문 닫을 죄냐”, “설탕이 거의 들지 않은 웰빙 빵”, “자영업자 폐업률 높이는 못된 방송” 등등. 심지어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 음모론까지 가세한다. “기업형 빵집들이 신생 업체를 싹부터 자르려는 술책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런 해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연일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셀수스는 “모든 물질은 독이며, 중요한 것은 양”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생존에 필수인 물마저도 너무 많이 마시면 해롭다. 뇌가 부어올라 죽음에 이르는 이른바 ‘물 중독’.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우려가 현실에서 치명타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왕 카스테라에 중독된 소비자들이 속출하기 전에는. 이쯤에서 떠오르는 마크 트웨인의 싱거운 한마디. “적당히 마신 물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대왕 카스테라 감싸기 여론은 어쩌면 현실의 거울이다. 어쩔 수 없이 나 홀로 사장이 된 자영업자가 14년 만에 최대 증가치를 기록했다. 어제 통계청의 발표다. 취업하기가 어려워 종업원도 하나 없는 1인 사업장을 여는 세태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왕 카스테라의 수난에 왠지 짠해지는 이유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다

몇 년 전 대형 서점이 리모델링을 하며 서점 내에 큰 테이블을 들였다. 새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니 독자들에겐 이만한 편의가 없다. 그러나 읽은 책을 다 사가는 건 아니어서 예민한 문제가 생긴다. 오래 읽고 간 책엔 흔적이 남고 파손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한 출판사 대표가 얼마 전 이 문제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점이 책 반품 비용 부담을 출판사에 전가하는 관행을 질타했지만, 댓글 중엔 독자의 소양을 거론하는 내용도 여럿이었다.



이 문제는 우리 책방도 심각하다. 우리는 책을 구입한 분들이 여유롭게 읽고 가시라고 크고 편안한 의자를 책방에 두었다. 커피며 음악이며 공간 배치도 그런 뜻으로 했다. 그런데 이 의도는 자주 왜곡된다. 손님들은 구입하지 않은 책을 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읽는다. 그렇게 읽다 간 책은 다시 진열대에 진열되지만 한눈에 티가 난다. 이런 책은 누구도 사려 하지 않으며 새 책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여러 권을 집어다 쌓아놓고 읽기도 한다. 책방을 도서관으로 여기는 걸까. 심지어 구입하지도 않은 책을 말아쥐고 읽거나 십여 페이지에 걸쳐 줄을 쳐놓고 간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런 책은 팔 수 없고 부담은 고스란히 책방이 떠안는다. 동네 책방은 출판사에 떠넘길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책방을 찾아주는 분들은 고맙다. 책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분들이니까. 그래서 조심스레 부탁의 말을 꺼내 본다. 자리에 앉아 오래 읽은 책은 구입해 주십사, 오래도록 읽을 작정이라면 먼저 구입을 하십사 하는.



강남에 책방을 열어주어 고맙다, 망하지 말고 오래 하라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이런 인사가 비단 우리 책방에만 하는 말은 아닐 거다. 어려워도 꿋꿋하게 책방을 해나가는 세상의 모든 책방 주인에게 건네는 응원일 테다. 이런 마음을 아는 우리는 오늘도 좋은 책을 고르고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 풍성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애쓴다. 책방을 찾는 당신도 애써주시라.



4. [경향신문][청춘직설] 낭만적 사랑과 결혼시장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되풀이되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누구나 현실의 누추함에서 나를 구원해줄 멋진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과 인종,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것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열정적 사랑이 결혼의 합당한 관습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 사랑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다.



과거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경제와 신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거래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계급과 부의 결속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바탕한 ‘자유연애’가 결혼의 조건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들어서이며 우리의 경우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뒤로도 지난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최초의 근대인들이 환호작약했던 것처럼 사랑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종 자료를 보면 서양은 90% 이상, 우리의 경우 70% 이상의 청년이 ‘부모가 반대해도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 결혼 당사자들이 순수한 사랑만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부모를 대신해서 스스로 결혼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시장’, 즉 결혼을 교환과 경제관계의 산물로 보고 있는 연구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에 의하면, 미국의 현재 결혼시장은 19세기 이전의 신분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낭만적 방식이 아닌, 계급 장벽을 높이는 현실적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책 <결혼시장>(시대의 창, 2016)에 의하면 결혼시장의 현재적 동향은 미국의 불평등과 계급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율은 낮아지며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 일반적인 통계가 모든 계급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상층, 즉 소득분위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집단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이혼율, 혼외출산율이 낮아졌으며 결혼과 가정을 중시하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의 경우,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으며 혼외출산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전체 출산의 70%, 고등학교 중퇴자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가족 재구성이 철저히 미국 경제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고소득층이 더 결혼에 충실하고 계급 장벽을 높이게 된 것, 그리고 극빈층에 거의 결혼이 사라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고 있다.

실업이 하층민 가족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들의 분석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다. 청년실업자 수 100만9000명(2017), 비혼 여성 35.5%(2010), 출산율 1.17(2016), 그리고 지난해 혼인율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최근 통계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한국 청춘들을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의 비혼을 고스펙 탓으로 돌리고 하향 결혼을 권장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는 국책연구기관의 백색 음모론, 행정자치부의 ‘가임기여성분포지도’ 등은 아직도 결혼과 가족을 개인의 문제와 문화현상으로, 또는 생물학적 세포로 보고 있는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또한 고스펙이라 하면 다 골드미스일 거라는 생각도 착오다.

사람들은 준과 나오미의 분석이나 각종 통계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여전히 신데렐라 드라마를 즐기고 있을지라도 내게 주어진 현실적 선택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선택지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여성이라면, ‘낭만적 사랑’에 눈이 멀어 경제와 육아를, 게다가 성인 한 명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혼 현상은 ‘그럭저럭’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남자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괜찮은 여성 일자리가 없는 탓이지, 여성의 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럭저럭’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붕괴, 격변하는 한국의 결혼시장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5. [서울신문][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시대도 변하고 음악감상법도 변하고

음악이 업이 된 후 음악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클래식 애호가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마음으로 ‘나중에 제 연주회에 초대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지곤 하는데, 가끔 내 제안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좀 곤란할 거 같네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런 음악회는 저랑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클래식 음악회 가기가 어색하고 고전음악과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떠올리는 문제는 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운명’, ‘사계’, ‘비창’ 등 익숙한 제목의 작품도 있지만, 복잡한 전문용어와 여러 종류의 숫자, 알파벳 등으로 채워진 제목들이 딱딱하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만만치 않은 작품들의 길이다. 저녁 8시쯤 식곤증이 몰려오기 가장 쉬운 시간대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소리는커녕 동작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두 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가벼운 ‘고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두 가지 문제 모두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해결 단계에 와 있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어지간한 대중음악은 스마트폰에 그 음악을 들려주면 불과 몇 초 만에 정확한 곡명을 알려주는 앱이 생겼다. 또 초저녁 시간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집에서 고음질과 화질의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들도 넘친다. 정보에 민감하다면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 공연을 실시간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즐기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고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하는 일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늘 시간에 쫓기는 21세기인들에게 고전음악 감상이란 바쁜 일과를 쪼개야 가능한 일이고, 그 가능성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나 역시 음악감상을 위한 입문서 등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 3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꼼꼼히 읽고 실천하는 것이 어지간히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입문자들을 위한 특강 등에서 많이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어떤 음악이든, 어디서 들었든 상관없이 호기심을 갖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멜로디나 작곡가의 이름, 혹은 작품의 제목을 붙잡고 거기서 지식과 경험의 가지를 뻗으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영화 속 음악이나 등장인물들을 통해 고전음악과의 거리감을 없애고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게리 올드만 주연의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했던 편지 속 연인이 누구였는지 찾아가는 내용이다. 제자였던 신들러가 주인공을 찾는 과정이 요즘 유행하는 추적 프로그램들과 유사하다고 느끼며 베토벤의 인생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바이올린의 명인 파가니니의 이야기를 다룬 동명의 영화에서는 아주 잘 생긴 배우가 파가니니를 연기하는데, 그는 실제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비드 가렛이란 인물이다. 수려한 미모에 반한 여성 팬들이 바이올린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한 셈이다.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등이 주연을 맡은 ‘디 아워스’에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영화음악이 함께 한다. 단순한 화성,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니멀리즘’ 기법에 익숙해진다면, 어느새 현대 음악의 정복도 멀지 않은 일이 된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카핑 베토벤’에서 나이 든 베토벤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설국열차’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에드 해리스라고 설명하면, 옛날 영화나 음악에 시큰둥하던 20대들도 부쩍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모습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의 발달로 한 걸음 다가온 것도 사실이지만, 친근한 영화와 TV 등 다양한 매체 속 클래식 음악은 늘 우리를 기다려 왔다. 이제 손가락 움직임 몇 번만으로 여러분 주위의 음악들을 품 안에 간직해 보시길 권한다. 단,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때는 주변을 꼭 살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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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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