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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국민일보]

1. 중국인들의 태극기 훼손은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도를 넘고 있다. 반한 기류가 격화되면서 최근에는 태극기 훼손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톈진 시내의 한 대학 인근 헬스장에서는 이달 중순 태극기가 찢긴 채 벽에 내걸렸다. 톈진 시내 다른 대학가의 헬스장에도 대형 태극기가 찢긴 채 조롱당하듯 샌드백 위에 걸렸다. 선양의 한 호텔에서는 바닥에 태극기를 깔아 놓고 ‘한국인을 밟아 죽이자’라는 과격한 문구가 발견됐다.



크고 작은 반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광저우, 선전의 한국인 거주 지역에서는 교민들이 수시로 불심검문까지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수준의 나라가 대국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교민사회가 술렁이자 한인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교민이 느끼는 공포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급기야 주중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 신변안전 긴급 공지를 띄웠고 태극기 훼손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적절한 대응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존엄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훼손하고 우리 교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중국의 옹졸하고 유치한 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은 때리면 맞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중국의 망동(妄動)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대국의 품격에 맞지 않는 사드 보복을 멈출 때가 됐다. 중국은 다음 달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상영도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드 배치로 비롯된 갈등은 양국 간 여행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즈화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는 “한국은 중국의 가능한 친구다. 일련의 반한 행동은 한국의 여론을 돌아서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당국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서울신문]

2. 10년째 넘지 못한 1인당 소득 3만 달러 벽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7000달러대에 머물며 10년째 3만 달러 진입에 실패한 것은 우리 경제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로 봐야 한다. 한국은행의 ‘2016년 국민계정’에 따르면 2016년 국민소득은 2만 7561달러(원화 기준 3198만 4000원)로 전년보다 1.4% 느는 데 그쳤다. 2만 달러를 처음 넘어선 것은 2006년이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747 성장론’과 ‘474 정책’을 내걸고 4만 달러 달성을 약속한 바 있다.

결국 4만 달러는커녕 3만 달러 시대도 열지 못하게 됐다. 3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국민소득이 제자리걸음한 것은 환율 영향도 적지 않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60.5원(매매기준)으로 전년보다 2.6% 올랐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화 환산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그보다는 성장세가 약화된 것이 근원적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1년 3.7%에서 2012년 2.3%로 뚝 떨어진 뒤 2015년 이후 2년 연속 2%대에 그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통계 이면의 현실은 우리를 더 착잡하게 만든다. 물론 해석상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단순 계산해서 1인당 소득이 3198만원이라면 4인 가족 기준 소득이 1억 2800만원 가까이 돼야 한다. 과연 그런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불평등한 소득 구조가 가져온 결과다. 고소득이 편중된 일부 상위권을 빼고 나면 나머지 국민의 소득은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이 오르려면 경제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도 민간 소비 부진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3만 달러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성장 동력 발굴과 수출 다변화, 경제 체질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소득 불평등 개선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어젠다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민총소득 중 가계 비중이 줄고 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 1632조 6000억원 가운데 국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소득인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56.9%(929조 6000억원)였다. 전년보다 0.3%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국민의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이 그만큼 안 좋아졌다는 뜻이다. 실업률이 높은 데다 실질임금에 변화가 없고 순이자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한국 경제 관건인 내수 회복을 위해서는 가계소득 확대에 공을 들여야 한다. 우리 경제 구조가 서비스업 확대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올리는 구조로 바뀌도록 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왜 신성장 동력 발굴과 소득 불평등 해소가 화급한 과제인지, 왜 가계소득 확대에 진력해야 하는지 지난해 국민계정을 직시하기 바란다.



3. 윤곽 잡히는 대선 후보들 정책 비전 보여 줘야

19대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의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종반부로 접어들면서 각 정당 대선 주자들의 우열도 가려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선 시작 전 혼전을 예상했지만 경선 초반부터 특정 후보들이 압승을 거뒀고, 조만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진영의 후보도 확정되면 급속히 본선 대결로 전환될 전망이다.

야권의 심장부이자 민주당 경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호남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60%를 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역시 전북 73%를 포함해 호남 전체에서 64%의 지지를 받아 4·13 총선에서 받은 호남의 기대를 이어 갔다는 평이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진태 의원 간의 싸움으로 압축됐다. 바른정당의 경우 유승민 의원이 어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경선에서 남경필 경기지사를 물리치고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당마다 변수가 적지 않아 최종 후보 선출까지 예단은 금물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는 후보 간의 원색적인 비난과 구호성 짙은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고 네거티브 흑색 공방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수권 정당으로서 현실성 있는 대안과 ‘대한민국 대개조’라는 구호에 맞게 심도 있는 정책 대결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바른정당은 후보자 간의 공약 토론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의 공존 등 대안 제시에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질적인 면에서 다른 당보다 앞섰다는 평이지만 전반적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향하려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자유한국당 경선 주자들의 대선 공약은 신용불량자의 원금 탕감이나 중국에 환경부담금 부과 등 현실성과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후보 간의 정책 논쟁이 실종되며 말꼬리 잡기식 인신공격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시대에 동떨어진 수구 세력을 분리하고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는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리더십을 갈망한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급변하는 정세는 고질적인 북한 문제는 물론 미·중 패권 경쟁까지 겹쳐 혼돈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정신을 실현하고 글로벌 시대의 미래를 개척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만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한국경제]

4. 2.8% 꽤 좋은 성장, 공포 부추긴 자들은 왜 말이 없나

작년 하반기 우리 경제에는 비관론이 압도했다. 수출이 안 되고 소비도 막혀 ‘성장 절벽’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급기야 그해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은 4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아찔한 분석을 발표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을 가장 큰 부진 요인으로 꼽았다. 깜짝 놀란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4분기 마이너스 성장 전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자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 인식이 안이하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곧이어 LG경제연구원 등 다른 연구소들이 4분기 경기급락론을 지지하고 나섰다. 결정적으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가세하자 경기위기론은 사실로 굳어졌다. KDI는 4분기가 다 끝나가는 12월7일에 낸 ‘하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4분기 성장률이 0% 정도로 둔화될 것’이라며 ‘제로성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돈을 더 풀라고 훈수까지 두었다.

언론의 확성기 볼륨도 훨씬 더 커졌다. 외환위기급(級) 경제지표가 속출하고 있다며 비관론을 확산시켰다. 정치권은 유일호 장관을 불러 놓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정부도 ‘2017년 예산’ 편성부터 4분기 제로성장을 전제했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추경예산 검토설이 나왔다.

지난해 경제성적표를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마이너스가 우려된다던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5%로 최종 집계됐다. 서프라이즈였다. 성장률은 꺾이지 않았다. 3분기와 동일했다. 연간 성장률도 2.8%로 나쁘지는 않았다. 3%에 못 미친 점이 아쉽다. 중국(6.7%) 인도(6.6%)에는 못 미치지만 미국(1.6%) 유로존(1.7%) 일본(0.9%) 등 주요국보다 높았다. 또 세계 평균(2.4%, 세계은행 추정치)이나 OECD 34개 회원국 평균(1.7%)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내수 위축, 글로벌 경기부진, 정치혼란 속에서 얻어낸 성과 치고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말이 없다.

올 1분기 동향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기업이익 확대가 이어지고, 주가는 비행 중이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수출증가세는 올 들어 더 뚜렷해졌다. 기업실사지수(BSI)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개선이 감지된다. 그런데 올해 전망 역시 비관론 일색이다. 한국경제연구원 2.1%, LG경제연구원 2.2%, 현대경제연구원 2.3%, KDI 2.4% 등이다. 한국은행과 기재부도 각각 2.5%와 2.6%로 별 차이 없다. ‘헬조선 마케팅’의 반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서울경제]

5. 우린 '노동시간'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현행 주당 최대 68시간인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국회는 27일 환경노동위원회를 열어 주당 52시간에 합의했으나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휴일근로 중복할증, 임금 보전 등 세부 쟁점을 두고 각 당의 입장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비교적 낙관적이다. 국회 일정상 대통령선거 이후로 넘겨졌다지만 ‘52시간’이라는 전체적 줄거리에는 4당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나머지 세부적 견해차는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각 당 간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52시간은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만약 이런 전제 자체가 왜곡돼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국인은 노동시간 개념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인가. 통계상으로는 그렇다. 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6시간을 크게 웃돈다. 정치권에서 ‘저녁 있는 삶’이라는 달콤한 말로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긴 월급쟁이들로서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겠다는 약속만큼 즐거운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인의 노동시간을 세분해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한마디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연성 있는 노동 패턴이 발견되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제일 과제인 ‘노동시장 유연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노동시간 유연성’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우리네 노동자들, 특히 화이트칼라 중에 제대로 노동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무시간에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즐기고 오후에는 짬을 내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기도 한다. 책상에 앉아서도 잠시 틈만 나면 주식 사이트를 열거나 모바일게임에 빠져들기도 한다. 회사 전화로 사적 업무를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무시간에 병원 치료를 받거나 이발소에도 다녀온다.

따라서 한국인 노동현장에서 허용되는 이런저런 여유를 감안한다면 주당 평균 노동시간 중 적어도 4 내지 5분의1은 회사 일이 아닌 사적 영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최근 짬짜미가 많이 줄긴 했어도 이런 소소한 여유까지 감시하고 체크하려 들면 회사 간부나 경영자는 ‘정(情)의 나라’ 한국에서 각박한 인간으로 찍힐 수밖에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만일 이런 주장을 수긍하지 못하겠다면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면서도 생산성은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반박할 셈인가. OECD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구조개혁 평가보고서가 이를 압축 표현하고 있다. “근로시간은 회원국 중 가장 길고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는 2009~2015년 한국의 노동생산성 연평균 증가율이 1.9%로 직전 7년 평균(2.8%)보다 0.7% 포인트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29.9달러로 최고 수준인 룩셈부르크(69달러)나 노르웨이(63.8달러)의 절반 미만이다. OECD가 아니라 현대차의 생산성 비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차량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hours pervehicle)을 보면 현대차는 2014년 6월 말 기준 국내 공장의 HPV가 26.8시간으로 미국(14.7), 중국(17.7), 체코(15.3), 인도(20.7) 등 해외 공장과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이런 수치를 한국인의 자질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단지 노동시간이 길면서도 제대로 일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 표현해 ‘여유롭고 유연성 있게’ 일하다 보니 단위노동시간당 생산능력을 평가하는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현장은 특이하다. 유연하고 느슨한 노동시간을 즐기는 대신 보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벌충해준다는 데 노동자와 고용주가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것일 뿐이다.

국민소득을 높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생산성을 룩셈부르크나 노르웨이만큼만 올려보라. 그럼 국회의원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지금 남 말할 때가 아니다.



[조선일보]

6.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헤쳐 나가야 할 길

바른정당이 28일 유승민 의원을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유 의원은 62.9%를 얻어 37.1%에 그친 남경필 경기지사를 앞섰다. 남 지사는 결과가 나온 뒤 "제가 부족했다"며 "열심히 돕겠다"고 승복했다. 바른정당 경선은 정당의 후보 선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네 차례 정책토론에서 두 후보는 보수 후보 단일화 문제 같은 정치 이슈뿐만 아니라 모병제, 복지와 증세, 일자리, 대학입시 등 국정 전반에 대해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상투적이지 않았고 원고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인신공격과 네거티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켰고 그만큼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 있었다. 다른 당 경선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른정당이 집권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쟁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경선을 보면 그 정당의 수준을 안다. 작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몰락한 것도 공천 과정에서 국민들을 질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른정당은 당내 이견과 경쟁자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유 의원이 경쟁에서 이겼지만 남 지사도 패배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정당의 지지율이 최하위다. 유 후보 지지율도 3% 안팎이다. 바른정당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경제·사회 정책은 약자와 소외 계층도 안고 가려 한다. 이런 정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바른정당과 그 구성원들의 역부족 탓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두 극단 세력을 선호하는 한국적 현상도 한 원인이다. 두 극단 세력의 죽기 살기식 싸움 와중에 합리적 중도의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온건·합리·중도를 내세워 온 유 후보가 그런 양극단 적대 정치의 대표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약하나마 변화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 총선 때 국민의당이 예상을 뒤엎고 선전한 것은 이런 양극단의 적대 정치를 끝내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표출된 결과였다 할 수 있다. 70%가 넘는 국민들이 분권형 개헌을 지지하게 된 것도 상대를 적(敵)과 악(惡)으로 보는 정치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 후보와 바른정당의 앞엔 가시밭길뿐이지만 멀리 보고 헤쳐 나갔으면 한다.



[중앙일보]

7. 베이징영화제의 한국 영화 금지는 소탐대실

중국 당국이 다음달 16~23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초청해놓고도 상영하지 않기로 한 것은 심히 무례한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이민호·김우빈 등 한류 스타가 대거 참석하는 등 양국 영화인이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올해는 최근 발표된 1차 상영작 명단에서 한국 영화를 완전히 배제했다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이런 갑작스럽고 몰상식적인 조치는 누가 봐도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감정적인 보복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관광에 이어 영화 분야에서도 한국에 빗장을 걸려는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발견돼 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부터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부산행’은 지난해 배급 판권이 중국에 팔렸음에도 여태 개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배우 하정우와 중국 배우 장쯔이가 출연할 예정이던 중국 영화 ‘가면’을 비롯한 한·중 합작작품들의 제작 논의도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특히 유감스러운 일은 자유와 창조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영화 분야에서 이 같은 압박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문화교류를 막아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간 한·중 교류에서 영화는 양국 간 문화소통의 대표 역할을 해 왔다. 중국 당국의 무리한 문화 보복은 그동안 쌓아 온 귀중한 민간교류 자산을 한꺼번에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만 낳을 뿐이다. 

한·중 간 군사 갈등을 대화로 푸는 대신 경제보복이나 문화 빗장 걸기 같은 어깃장 대응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한국에서 중국 당국에 실망하는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이런 식의 감정적인 조치는 한국인의 가슴에 분노만 일으킬 뿐 사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애써 쌓아올린 양국 국민 간의 신뢰와 중국의 국가 이미지만 깎아내릴 뿐이다. 중국 당국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문화적인 발상부터 멈춰야 한다.



[세계일보]

8. 日은 ‘美 소녀상 판결’ 유감 표명 말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제 미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일본계 극우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철거 요구를 기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연방대법원에 보낸 의견서에서 ‘소녀상은 미·일 동맹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고, 유엔과 미 의회·지방자치단체 등에 소녀상 철거 로비활동을 벌였으나 무위에 그쳤다. 미 의회 내 친한파 인사인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혹독한 인권유린을 경험한 위안부 여성들을 포함해 과거를 잊지 않아야 이 같은 잔학행위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측 반응은 실망스럽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어제 “위안부상(소녀상) 설치 움직임은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상충되는 만큼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제 집권 자민당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한국·미국 등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 “(한국이) 일본(의 주장)에 이해를 못한 면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는 1월 “(한·일 위안부 합의 대가로) 한국에 10억엔의 돈을 냈다”며 “한국 측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 격이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외국에선 여성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중국에 이어 이달 초 독일 비젠트에 소녀상이 들어선 이유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소녀상 설립을 방해하고 철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경색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소녀상 문제가 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언제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우리의 사과 요구에 “언제까지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푸념을 한다. 물론 일본이 그간 여러 번 사과를 하긴 했다.



그러나 진솔한 사죄의 뜻이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에서 소녀상 철거 로비를 벌이는 것이 생생한 증좌다. 북핵 등 동북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 악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계 정상화를 하기 위해선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호도하려는 일본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깊은 반성이 전제돼야 양국 관계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경향신문]

9. 희망의 끈 놓지 않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뼛조각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뼛조각은 미수습자의 유해가 아닌 동물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은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끝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정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을 종료한 뒤 절망 속에 살던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류품이 선체 밖에서 발견돼 유실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2014년 4월16일 단원고의 한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첫 신고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데도 ‘기다리라’는 말을 따르다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일각에서는 ‘에어포켓’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배가 침몰한 뒤 시신이 발견되자 서로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를 바랐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비명이 귀를 갈랐다. 피붙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들은 비명과 함께 혼절했다. 잠수사들은 숨진 아이들을 인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은 “왜 이제 왔냐”고 원망하듯 움직이질 않았다. 잠수사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움직였다.

며칠이 지나 희망의 끈이었던 에어포켓도 사라졌다. 세월호 생존의 희망도 사라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젠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만을 바랐다.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들도 하나둘 떠났다. 세월호 침몰 102일 만에 295명째 희생자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됐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황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황양의 친구들은 빈소의 조화에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은 종료됐다. 배에 탔으나 아직도 내리지 못한 9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지난 23일 진도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인양됐다. 완전히 드러난 세월호를 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곳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에 내 아이가 있다며 탄식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딸이 저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주저앉았다.



세월호에서 추가로 유류품이라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지상으로 올린 선체와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도 샅샅이 수색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는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 일이다.



[매일경제]

10. 밑도 끝도 없는 세월호 음모론 도대체 언제까지

세월호가 침몰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음모론과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체 인양·수습방법을 놓고 새로운 의혹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참사 한 달 뒤 침몰 원인을 발표했다. 무리한 선박 증축과 화물 과적 때문에 복원성이 나빠진 상태에서 조타수의 미숙한 운항으로 배가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식 수사결과 발표 후에도 의혹이 끊이지 않자 숱한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선체를 인양했는데 기존의 의혹이 해소되면 새로운 의혹을 내세우는 식이니 이들이 원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월호를 둘러싼 음모론은 지난해 12월 자로라는 네티즌이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며 주목을 끌었다. 약 9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세월호 좌현 밑바닥 쪽이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네티즌은 세월호가 인양되던 지난 22일부터 24일 사이 '세월호 좌현을 보고 싶다. 진실이 떠오르기를' 등의 글을 매일 온라인에 올리며 의기양양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선체가 수면 위로 완전히 올라온 25일부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외부 충돌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반증이 나오면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자 그는 28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인양 과정에서 좌현 램프(화물 출입구)가 절단됐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램프를 잘라내지 않으면 인양 자체가 불가능해져 어쩔 수 없이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인양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기술적인 문제나 한계는 도외시한 채 '증거인멸 행위'라며 또 다른 음모론을 제기하기에 바쁘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퍼뜨린 어느 인터넷방송 진행자는 선체 인양으로 그의 주장에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말장난만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뒤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판단 오류와 잘못을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독선만 가득할 뿐이다. 국회와 희생자 가족이 선출한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가 28일 출범했으니 침몰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음모론들을 잠재워주기 바란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늦봄의 새 출발

나라마다 다르되 한국은 3월이 새 학기, 새 학년의 시작이다. 새 출발에 따른 긴장과 스트레스도 높다. 스트레스는 앞서 치르는 입시가 더하다. 요즘 대입수학능력시험은 11월, 예전 대입학력고사는 대개 12월이었다. ‘입시한파’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추위를 견뎌낸 뒤 새 잎을 틔우듯 입시·졸업·입학은 춥고 황량한 계절에 이어져 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수필에는 뜻밖의 경험이 나온다. 그는 4월에 입시를 치러 6월 초 대학생이 됐다. 고교과정을 합해 6년제였던 당시 그의 중학교 졸업은 5월이었다. “모든 것이 궁핍한 시대였건만 내가 나의 졸업식을 가장 화려한 졸업식으로 기억하는 건(중략) 그 계절의 화려함 때문이기도 했다. 5월은 라일락의 계절이요, 마거리트의 계절이었다. 지금처럼 요란한 꽃다발이 졸업생을 축하해 주는 대신 무르익은 천지의 봄이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수필집『노란집』중에서)

그의 기억에 따르면 해방 이듬해부터 9월로 학기초가 바뀌었다가 다시 봄에 졸업·진급하는 제도로 환원하며 5월 학기말, 6월 학기초를 시행한 과도기가 있었다. 바로 그가 대학에 들어간 해다. “입시나 졸업 하면 동상 걸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혹한부터 생각나는 버릇이 있는지라 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화창한 날에 그런 일들을 치를 수 있다는 건 50년도 졸업생에 한한 일회적인 특별한 혜택만 같아서 이게 웬 떡이냐, 그저 황홀할밖에 없었다.”

‘50년도’에서 짐작하듯 신입생의 기쁨은 짧았다. 한 달도 못 돼 전쟁의 포성이 시작됐다. 이후의 기억과 함께 작가는 담담히 썼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입시를 치르고 눈부신 6월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우리 교육 사상 단 한 번뿐인 행운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50년을 특별한 해라고 말한 건 아니다.”

입시나 졸업·입학처럼 겨울에 거듭된 현대사도 있다. 80년대 이후의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이다. 간선제였던 81년의 취임식이 3월 초, 이후 직선제 취임식은 12월 선거를 거쳐 줄곧 2월 25일 열렸다. 전에도 7~9월이나 12월이었을 뿐 이번 같은 5월은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엔 곧바로 임기가 시작한다.

계절로는 축복이되 지금에 이른 과정을 전부 축복이라긴 어렵다. 추위 속에 촛불을 들고 전임 대통령을 탄핵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대통령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크다. 경제상황도 미세먼지로 뿌연 시야와 비슷하다. 봄날의 취임식이 진정 축복이 될지는 취임 이후에 달렸다.

박완서는 다른 수필에 “올라갈 때 힘을 다 써버리면 결코 의젓하게 내려오지 못한다”고 썼다. “오르막길에 기운을 다 써버리면 내려올 때 다리가 휘청거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 힘으로 당당하게 내려오려면 올라갈 때 힘을 다 써버리지 말고 남겨놓아야 한다.” 그의 말마따나 등산만 아니라 “권력이나 명예, 인기”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2. [중앙일보][분수대] 삶은 직선이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꿈꿨으나 사이버 게토(고립된 빈민가)에 갇혀버린 미국 젊은이들에 관한 얘기를 최근 한 블로그에서 읽었다. 돌이켜보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모바일 세상이 오면 자유롭게 이동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모바일 세상은 왔는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의 주소지 변경 비율은 1990년대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크게 낮아졌다.



이동의 주된 계기가 결혼인데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혼과 비혼이 늘면서 점점 이동을 안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사는 곳을 옮겨다니는 과정 속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 다양한 생각과 정보를 접했지만 지금은 고립된 환경에 살며 사이버상에서 주로 교류하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만 주위에 넘쳐난다. 갇힌 생각이 점점 더 좁아지며 편견이 머릿속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한국은 온 국민이 사이버 게토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서로 편을 갈라 온갖 소셜미디어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 교환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공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니 모두가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가진 게 있든 없든 이상하게 모두가 불행하다. 한쪽에선 “부모 잘못 만나 아무 가진 게 없는 흙수저”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다른 한편에선 “내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이 땅이 싫다”며 노후 이민을 고민한다.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원망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은 똑같다.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론』에서 “언제든 좌절감을 주는 현실이 닥칠 수 있다”며 “마음먹은 대로 현실을 자유로이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과 변화 불가능한 현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게 지혜”라고 했다. 맞다. 살면서 나쁜 일은 어차피 계속 겪을 수밖에 없다. 삶은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니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분노하는 대신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변화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처칠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3. [경향신문][여적] 도선사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신문기자였던 아버지의 정치적 망명으로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갱의 젊은 시절 꿈은 배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견습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며 상선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와 북극의 바다를 떠돌았다. 모친의 부고를 듣고 파리로 돌아와 35세 때 늦깎이 전업화가가 된 고갱은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등으로 옮겨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고갱이 화가가 된 이후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견습 도선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문직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종이다. 수년 전 한 해군 장교가 114 안내원에게 도선사협회를 연결해달라고 했더니 서울 우이동에 있는 사찰인 도선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7일 공개한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도선사가 판사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도선사는 선박이나 항구의 ‘눈’과 같은 존재다. 낯선 항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선박들은 도선사의 도움 없이 입·출항을 할 수 없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산타마리아호에는 지안 데 라 코사라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가 1588년 영국 함대에 패한 것은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바닷속 지형과 뱃길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하는 도선사 면허 취득 조건은 까다롭다. 면허시험에 응시하려면 6000t급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승선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내 250여명의 도선사들은 대부분 항해사로 10년, 선장으로 10년간 오대양을 누빈 경력을 갖고 있다.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가량이며, 경력에 따라 5억원이 넘기도 한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싣고 이르면 30일 목포신항으로 출발하는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에도 도선사가 탑승한다. 암초를 피하고, 시속 6~12㎞의 물살을 헤쳐 가려면 베테랑 도선사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도선사의 인도로 화이트말린호가 목포신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4. [국민일보][영화이야기] 고딕 호러의 계보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크림슨 피크’(2015)를 보고 느낀 감상은 ‘아, 참으로 고딕적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고딕’이 무엇인가. 원래는 중세 유럽의 건축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지만 문예사조로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융성했던 문학 장르로 일반적으로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된 작품들을 말한다. 보통 1764년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출간한 ‘오트란토의 성(The Castleof Otranto)’을 효시로 꼽는데 ‘고딕 소설’이라는 명칭도 이 소설의 부제 ‘고딕 이야기(A GothicStory)’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딕 영화는 고딕 문학에서 출발한 영화의 한 장르다. 대개 젊고 순수한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성적 억압이나 질투가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며, 실제나 환상의 유령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배경이 되는 장소다.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혹은 호화스러웠지만 퇴락한 고딕풍 대저택이나 장원, 성이 거의 필수적이다. 항용 공포영화로 분류되나 내면적으로는 로맨스영화다.

‘크림슨 피크’는 고전 ‘제인 에어’(1943, 1996, 2011)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레베카’(알프레드 히치콕, 1940)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거니와 고딕 영화는 연원이 오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과 함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원작의 영화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비교적 나중 것들로는 ‘슬리피 할로우’(1999) ‘스위니 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들이 있고, 실제 일어났던 ‘잭 더 리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프롬 헬’(2001)도 잘된 고딕 호러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판의 미로’(2006) 등 고딕 호러 영화로 이름을 날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지만 요즘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의 눈에 들어 로봇영화 등 엉뚱한 데로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심을 잃지 않고 현대 고딕 호러의 명장으로 남기를.



5. [조선일보][특파원 리포트] 영국인의 세계지도

중동 바레인 미나살만항(港)은 요즘 영국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2015년 시작된 공사가 마무리되면 올해 중 영국 해군 300여명이 주둔하게 된다. 1971년 이후 만 46년 만에 중동 군사기지를 갖게 된 영국은 들뜬 모습이다. 작년 말 바레인을 방문한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이 수에즈 동쪽에 돌아왔다"고 했다. 영국은 오만과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에도 군 기지 설립과 군사훈련 지원단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영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건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이다. 만재 톤수 7만2000t으로 첨단 F-35 스텔스 전투기를 최대 36대 탑재할 수 있는 영국의 자존심이다. 한 소식통은 "퀸엘리자베스함은 올해 초여름, 2번 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오는 2019년 군에 인도될 것"이라고 했다. 건조 중인 퀸엘리자베스함을 지난해 르포 하러 갔다가 영국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퀸엘리자베스함이 실전 배치되면 태평양 지역에서도 영국 항모 전단을 보게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당시 주미 영국 대사는 "(중국과 미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도 보내겠다"고 했다. 영국의 한 국제 문제 전문가는 "우리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국제적(global)"이라고 했다. 영국인 머릿속엔 세계지도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국제 정치와 군사적 측면에서만 그럴까. '시티 오브 런던', 짧게 '시티(city)'로 불리는 런던 금융시장은 미국 뉴욕과 함께 세계 2대 국제금융시장으로 꼽힌다. 뉴욕이 국내 금융을 중심으로 컸다면, '시티'는 외환 거래와 대규모 국제 자본거래 등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영국은 파운드화(貨)를 쓰지만, 유럽 19개국이 쓰는 유로화 거래 청산소가 이곳에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면 시티가 글로벌 금융 중심지 위상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시티에선 "우린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영어 사용이라는 이점 이외에 회계와 법률 서비스, 전문 인력 등 '금융 생태계' 경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는 신작 '1900년 이후 영국, 성공 스토리'에서 "대영제국은 무너졌지만 (세계를 호령했던) 유산은 아직도 영국 지도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며 "외교와 국방, 경제, 문화가 모두 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영국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병(病)'에 빠져 잠시 흔들렸지만 경제 활력을 되찾고 강대국 위상을 회복한 저력, 그것은 한마디로 '글로벌'이었다.



영국 인구는 6500만명, 우리는 5000만명(남북을 합치면 7500만명)이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와 작은 땅을 지닌 영국이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안목으로 세계를 본다. 반면 우리는 바깥 돌아가는 사정에 눈감고 안에서의 싸움에만 열 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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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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