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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요 이슈

 

■ 美 대북제재와 남북대화

■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부실·비리 의혹

■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의 과제

■ 가짜 세금계산서

■ 새해 담뱃값 인상과 그 후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美 대북제재와 남북대화

 

[한국일보 사설-20150105월] 美 대북제재가 남북대화 분위기 깨선 안돼

 

연말연시 남북 양측의 적극적 대화의지 표명으로 오랜 만에‘쾌청’ 예보가 나왔던 남북관계 기상도에 미국발(發)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말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과 관련해 강도 높은 대북 제재조치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한 정부와 노동당을 직접 겨냥한다고 명시하고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정찰총국을 포함한 단체 3곳과 관련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뻔하다. 당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어제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압살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릴수록 선군 정치에 의거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는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대화 분위기가 순조롭게 이어지기는 어렵다. 지난 연말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선제적인 대화 제의에 이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의지를 밝혀 한껏 고조되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 해킹과 테러 위협의 배후로 북한 정부를 지목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결과에 근거해 북한에 ‘비례적 대응’을 천명한 것에 비춰 대북 추가제재 행정명령 발동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막으려는 미 정부의 의도된 조치라는 식의 성급한 예단은 근거가 없다고 본다. 미 백악관은 이번 행정명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비례적 대응의 “첫 번째 조치”라고 밝혀 추가적 보복조치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이 소니 해킹의 배후라는 확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 주요 언론들은 소니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내부소행 가능성까지 거론 중이다. 미국 정부가 공개하기 어려운 확실한 근거가 있을 수 있다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서둘러 북한을 경직되게 만들고 남북대화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이미 많은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행정명령의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으며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행정명령을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대한 적절한 대응 조치”라고 평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을 만한 불법적 행동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안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휘둘리지 않도록 용의주도한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도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을 해봐야 득 될 게 없다. 이런 때일수록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정상화의 활로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05월] 미국의 대북 추가제재와 남북관계의 앞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암살 시도를 영화화한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사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대규모 해킹을 당한 데 대한 대응 조처다. 이에 따라 미 재무부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조선단군무역회사 등 세 기관과 이란·시리아·중국 등에 주재하는 북한 관계자 10명에 대해 미국 안의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봉쇄하는 조처를 취했다.

 

앞으로 북-미 간의 대응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북-미 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북 모두 새해에 즈음해 공개적으로 관계개선 의지를 강하게 밝힌 터여서 미국의 갑작스런 대북 추가제재 조처 발동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추가제재를 두고는 강온 양면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소니사가 해킹을 당한 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비례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후속 행동이고, 이번에 제재 대상으로 오른 세 단체가 이미 미사일·핵 문제로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상징성에 무게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이 북한 정부 및 노동당 관련 인물들의 불법행위 적발 시 언제든지 추가제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았다는 점, 인권 문제를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미 기업에 대한 사이버공격과 인권 문제를 처음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도 주목할 요소다.

 

이번 제재는 여러모로 2005년 9월 6자회담 당사국 간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단계적 접근에 합의했던 9·19 공동선언 채택과, 그즈음에 미 재무부가 제기해 6자회담을 2년 가까이 파탄으로 몰고 갔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세탁 사건과 닮은 면이 있다. 미국의 조처에 따라 한반도 문제, 남북 문제가 얼마든지 그들의 입맛대로 제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조처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적절한 대응”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반면,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문답을 통해 소니사 해킹 사실을 부인하며 “미국의 제재는 우리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과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의연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남북 모두 반응을 피할 수는 없는 사안이지만, 발언자의 격이나 내용에서 문제의 확대를 바라지 않는 절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남북이 진정 올해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미국의 대북 추가제재를 뚫고 전진할 수 있는 과감한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남북이 주도적, 창의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강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게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105월] 정부, 미국의 대북 제재 슬기롭게 대처해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북한의 정찰총국 등 단체 3곳과 개인 10명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북 제재를 발동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한 해킹과 테러 위협으로 영화 ‘인터뷰’ 개봉이 취소된 데 따른 조치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연말 휴가를 마치고 새해 업무를 개시한 첫날 대북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사건을 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 간주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북한의 대남·해외 공작 총괄기구인 정찰총국과 노동당 간부들을 제재 대상으로 못박은 건 핵과 미사일은 물론 사이버 공격 등 어떤 형태의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로 북한이 볼 피해는 실질적으론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워낙 고립된 체제인 데다 이미 광범위한 제재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2년 남은 임기 안에 대북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강력히 원해온 북한으로선 갈 길이 더 멀어진 셈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아버지 김정일의 3년 탈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려 하고 있다.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건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제재 해제를 통해 고립과 재정난에서 벗어나려는 승부수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최고 존엄 사수’를 위해서라면 사이버 테러도 불사한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의 꿈이 실현되기란 불가능하다. 북한은 도발과 핵개발 대신 남측과 대화하는 것만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오기 바란다.

 

 정부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한·미 공조를 튼튼히 유지하면서 모처럼 찾아온 북한과의 대화 기회를 살려가는 묘책을 강구해야 한다. 남북대화가 미국의 대북 압박 실효성을 반감시키는 대신 북한의 도발 중단과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이뤄지게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105월] 오바마의 대북 제재와 박근혜 정부의 과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소니픽처스가 해킹당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대북 제재 조치를 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픽처스 해킹이 북한 소행이라는 연방수사국(FBI)의 판단에 따라 북한 정찰총국 등 3개 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새해 첫 업무 개시일에 대북 제재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바마 집권기의 북·미관계가 이렇게 끝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사이버상의 행위를 직접 공격으로 간주, 물리적 대응을 하고 북한은 강력 반발하는 새로운 사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

 

이번 대북 제재 조치가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나타낼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 정찰총국이 이미 제재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북한은 국제적 고립 상태에서 오랜 기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이는 북한이 새로운 제재로 받을 불이익이 그들의 태도를 바꿀 만큼 크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조치의 실질적 효과가 있다면 그건 북·미 간 대화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감하고도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하며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만나고, 미얀마와 관계 정상화를 통해 적대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지난해에는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 합의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29일 “이란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겠다”면서 이란과의 관계 회복 의지를 과시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이 ‘과감하고도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할 때 세계가 주목한 대상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집권 6년을 넘긴 오늘 북한만 외면당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기간이 늦어졌고,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한 북한이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어긋난 북·미관계는 아직도 회복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침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남북 간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에 워싱턴에서 날아온 대북 제재 소식은 결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서로 얽혀 있다. 남북관계 악화가 북·미관계 진전을 막고, 북·미관계 악화가 남북관계 진전을 막는, 나쁜 방향의 얽힘이 가능하다. 반면 남북관계 개선이 악화된 북·미관계를 개선시키고, 북·미관계 개선이 단절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좋은 방향의 얽힘도 가능하다. 이 중 어떤 쪽이 될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사국의 의지, 특히 한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남북관계 단절, 북·미관계 악화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반도가 나쁜 방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이른 시일 내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킴으로써 북·미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하는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105월] 새해 남북관계 초당적 대처로 풀어야

 

광복과 분단 70주년인 올해 남북 당국 간 회담의 결실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까지 신년사에서 적극적 남북 대화 의지를 비치면서다. 문제는 남북 대화가 열매 맺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인사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이례적으로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우리는 남북 관계가 탄탄대로를 달리려면 남남 갈등이란 걸림돌부터 치워야 한다는 견지에서 야권의 대국적 호응을 기대한다.

 

새해 벽두부터 남북 대화 재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누차 실질적 통일 준비를 다짐했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통일준비위 명의로 지난 연말 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다. 더욱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남북이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가는 대도에서 만나려면 숱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당장 동맹국인 미국부터 북한의 대화 의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으로선 김정은의 제안이 북핵과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로 본다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과 관련, 엊그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잖아도 북측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마당에 김정은의 한마디에 매년 2∼3월 실시되는 한·미 키리졸브 연습과 8월의 한·미 연합 프리덤가드 연습 등을 중단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정부로선 한·미 훈련 규모나 시기를 다소 신축적으로 조정해 북측에 성의를 표시하고 이를 위해 미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할 판이다.

 

더군다나 정상회담이나 고위 당국자 회담 등의 전제조건을 둘러싼 남북의 입장차는 현격하다. 남북 당국이 동상이몽 격으로 회담 테이블에 앉으려 하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의 70년 한을 풀어 주는 인도적 사업으로 실마리를 풀어 남북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3대 세습체제 유지가 지상 목표인 북의 속내는 다르다. 체제 동요를 일으키는 개혁·개방은 최소화하는 선에서 남측의 경제 지원을 극대화하려는 낌새다. 내심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관철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란 얘기다. 이런 판에 야권이 5·24 조치 해제나 10·4 공동선언 이행을 주문하는 등 엇박자를 내면 결과는 어떨까. 회담장에서 밀고 당길 사안을 두고 미리 변죽을 울리면 우리의 협상력만 떨어뜨리는 꼴이 아닌가.

 

박 대통령이 신년인사회에서 5·24 조치를 해제하라고만 요구하지 말고 야당도 도와 달라고 요청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게다. 문 위원장도 “남북 문제 푸는 데 여야가 따로 없다”며 적어도 원론적으론 화답했다니 다행스럽다. 민생 경제와 국민의 안전과 복지 문제 등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당연히 언제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으레 그렇듯이 남북 문제와 안보에 관한 한 초당적 대처가 절실함을 거듭 강조한다.

 

 

■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부실·비리 의혹

 

[한국일보 사설-20150105월] 감사원 석유公 고발, 자원개발 비리 철저히 캐내야

 

감사원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명박 정부 때 해외 원유자원을 확보한다며 캐나다 에너지기업 하베스트사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직책에 위배된 결정으로 시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는 바람에 국고에 큰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별도로 정부에 강 전 사장을 상대로 3,000억원 대의 손해배상소송도 청구토록 통보했다. 감사원이 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해 정책사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강력한 민ㆍ형사 처벌을 동시에 요구한 건 처음이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계열사 인수사업은 국회 국정조사가 예정된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외교(자원개발 투자사업) 중에서도 가장 큰 실패로 꼽힌다. 2009년 사업인수 추진 초기만해도 유전개발 계열사만 인수하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협상 막판에 하베스트 측이 정유 계열사인 ‘날(NARL)’도 함께 인수하라며 ‘끼워팔기’에 나섰다. 가격도 당시 평가가치보다 3,133억원이나 비싼 1조3,700억원에 달했다. 그걸 강 전 사장이 주변의 부정적 의견을 무시한 채 인수했고, 이사회에도 허위보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지난해 8월 부진의 늪에 빠진 NARL을 되팔고 석유공사가 손에 쥔 돈은 329억원. 5년 만에 무려 1조3,000여억원을 날려 버렸다.

 

자원개발투자는 열에 한 둘만 성공해도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우리로서는 안정적 자원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사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업이 합리적으로 진행됐다면, 결과만 따져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석유공사의 NARL 인수과정엔 비리 의혹을 살만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불과 나흘 만에 인수를 결정한 배경, 업무영역도 아닌 정유 계열사 인수를 독자적으로 결정ㆍ추진한 과정, 부실설이 나돌았던 NARL의 주당가치를 시가(7.3달러)보다 높은 9.61달러로 잡은 메릴린치의 평가를 그대로 수용한 이유 등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일각에서는 ‘변양호 신드롬’의 확산을 우려한다. 변양호 신드롬은 1997년 외환위기 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부당한 헐값에 매각했다는 감사원의 정책감사 끝에 변양호 전 재경부 금정국장이 구속되자, 관료사회에서 책임질 만한 결정을 아예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난 걸 말한다. 물론 억울한 고초와 피해는 없어야 하지만, 합리성을 당장 따지기 어렵다고 해서 모든 정책결정이 면죄부를 받고 있는 현실은 더 큰 문제다. 그런 면에서 감사원의 이번 조치는 물론 향후 국정조사 등을 통해 해외 자원개발사업부터 정당성을 철저히 따져 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05월] 자원외교 부실·비리 의혹, ‘꼬리 자르기’ 안 된다

 

감사원이 2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 석유공사가 캐나다 석유개발회사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사원이 공기업의 사업 실패와 관련한 민형사상 책임을 전직 경영진에게 추궁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뒷북 감사’인데다 지난 정권의 고위층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는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석유공사는 2009년 하베스트와 지분 인수 계약을 맺으면서 부실 정유사업 계열사인 ‘날’(NARL)까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인 12억2000만달러에 인수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미국의 한 투자은행에 350만달러에 매각해 결국 4년여 만에 1조3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봤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투자 실패는 이미 보도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광물자원공사 등 다른 에너지 공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참여연대 등은 해당 공기업 경영진을 상대로 한 고발장을 이미 지난해 11월에 냈다. 감사원의 이번 조처는 한발 늦었다.

 

공기업 경영진이 고의·중과실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으면 퇴직했더라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국외 자원개발 또는 자원회사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해당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진에게만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이명박 정부 때 자원외교는 정권 차원의 국책사업이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당시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의 장관을 지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에너지산업정책관을 맡았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주역이라고 봐야 한다. 절차상 에너지 공기업들이 주체로 나섰으나 청와대와 정부가 이들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부추기고 독려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벌인 자원외교에는 지금까지 35조~46조원에 이르는 공적 자원이 투입됐다. 그런데 성과는 미미하고 곳곳에서 대규모 손실만 현실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원외교 전반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고 제도적 보완책까지 마련하려면 지난해 12월말 여야 합의로 발족한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더욱 분발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105월] 자원외교 뒷북 대응 감사원은 문제없나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가 성과 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성과는 고사하고 ‘묻지마 투자’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5년 동안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6조원을 투자해 무려 22조원의 손실을 봤다. 민간 자본까지 포함하면 40조원을 투자해 5조원을 건졌을 뿐이다. 의구심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여야가 자원외교의 실상을 밝힐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엊그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산업통산자원부에 석유공사의 손실을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고도 한다. 감사원이 공기업 기관장에게 업무의 민형사상 책임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감사원의 고유 역할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사원이 문제를 제기한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비스트사 인수는 그동안에도 자원외교의 대표적 부실 사례로 지적돼 왔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강 전 사장은 2009년 하비스트사가 계열사인 노스애틀랜틱리파이닝(NARL)사를 끼워 팔려고 하자 부실 자산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수를 밀어붙였다. 급조된 엉터리 현지 실사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여 하비스트사를 주당 7.31달러보다 훨씬 높은 주당 10달러에 인수하게 했다. 그 결과 석유공사는 9억 4100만 달러로 평가된 NARL사를 2억 799만 달러나 웃돈을 주고 사들였다. 이후 NARL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지난해 불과 350만 달러 상당에 매각해 1조 3371억원의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이없는 사건의 배후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 흑막은 검찰이 분명하게 규명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못 본 척하던 감사원이 왜 갑자기 뒷북을 치고 나섰느냐는 것이다.

 

감사원은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다. 공공기관의 잘못을 찾아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아예 잘못을 방지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자원외교에 실패한 공기업 사장이 배임이라면 감사원도 책임의 일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자원외교를 주도한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당시 실세들의 소환이라는 정치적 변수도 있다. 그런 만큼 감사원의 자원외교 관련 조치는 국정조사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계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사위원회의 추궁에서 비켜 가기 위한 책임 회피성 움직임이라는 의심을 피해 갈 수 없다. 감사원이 바르게 서야 공기업도 바르게 선다.

 

 

 

 

■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의 과제

 

[서울신문 사설-20150105월] 시대착오 국정운영 위험 직시해야 한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에 여전히 인적 쇄신과 소통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취임 이후 지속돼 온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비밀주의 깜깜이 인사 방식은 끝없는 비판의 표적이 돼 왔지만 변화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윤회 문건’ 등의 여파라고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인 30%대로 바닥을 친 것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소통 부족, 폐쇄회로 같은 인사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의 일방적인 잣대가 아니라 평균적인 국민 눈높이에서 국정정상화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감한 인적 쇄신과 경직된 국정운영 방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불충’(不忠) 운운하는 왕조시대적 ‘충성’ 맹세로 비칠 만한 구닥다리 발언을 예사로 하고 청와대는 이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현실이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애국영화 ‘명량’의 대사까지 초들며 쓴웃음을 짓겠는가. 김 실장이 세간의 우려대로 정말 재신임을 받고 인적 쇄신 요구는 허망한 메아리로 끝나고 만다면 국정정상화의 길은 요원하다. 김 실장은 파부침주(破釜沈舟)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지만 지금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자세라고 본다. 이제라도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훤히 드러내야 마땅하다.

 

최근 SBS·TNS(74.5%)와 KBS·미디어리서치(71.1%)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청와대 개편과 개각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문건 파문으로 그렇게 난리를 치고도 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비서관들을 포함한 청와대 개편이 속히 이뤄지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국정 일신을 바라는 국민으로서는 그야말로 맥이 빠지는 노릇이다. ‘비선 국정농단 의혹’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이지만 상당수 국민은 지금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따른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상처 난 민심을 수습하는 차원에서라도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김 실장이 자신의 말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면 그동안 그 많은 크고 작은 ‘인사참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자리를 지킬 수만은 없을 것이다.

 

 

■ 관련 칼럼

 

[서울신문 칼럼-김형준 정치비평/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20150105월] 인식의 대전환 없이 위기 극복 없다

청양(靑羊)의 해가 시작됐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통일 기반 구축, 경제 재도약, 국가 혁신 등 중대한 국정과제에 몰입할 수 ‘골든타임’이라는 게 집권 세력의 대체적 인식이다. 문제는 대통령 어젠다의 과잉으로 말미암은 국민의 혼돈과 피로감, 반복되는 인사 참사, 대통령 핵심 공약의 파기, 대통령 최측근들의 권력 투쟁, 지속적인 경기 침체 등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 초기 70%대에 이르렀던 대통령 지지도가 40% 초반까지 떨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집권한 지 2년이 다가오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무너지고 정부 신뢰는 크게 흔들리면서 국정 운영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은 풍부한 정치 경험, 투철한 국가관, 절제된 언어, 원칙과 신뢰 존중, 흔들림 없는 소신, 약속을 지키는 진정성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런 소중한 장점들이 지난 2년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정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한다. 우리 정부는 사심 없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국민은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 따라서 여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등의 사고가 대통령의 인식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이런 착각과 과신이 결국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불통 리더십’으로 표출돼 대통령의 위기대처 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 것 같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적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 리더십’으로도 이어졌다. 역대 정부의 집권 3년차 때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 있다.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 시작되고, 반대층의 저항과 불만은 고조된다. 집권 초기와 달리 통치 환경의 강점과 기회보다 약점과 위험 요인이 급부상한다.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을 매개로 한 정치 갈등이 증폭된다. 대통령이 민심 이반을 막고 통치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 승부수를 던지는 유혹에 빠진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고 실패한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인식의 대전환과 자신의 장점이 국정 운영에서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집권 3년차의 시작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청와대를 전면 쇄신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힘에만 의존하는 통치 대신 소통 확대를 통한 정치 복원에도 주력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아몬드 교수는 선진국들은 민족 통합→건국→경제성장(산업화)→참여(민주화)→분배라는 5단계를 거쳐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대한민국은 광복 70년 동안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분단 70년에서 보듯이 민족 통합을 이룩하지 못했다. 한편 공정한 분배를 토대로 한 선진 복지 국가를 향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아몬드 교수는 이러한 정치 발전 단계가 성공하려면 ‘역할 분화, 문화적 세속화(의식 변화), 하위체제의 자율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적용하면 대통령은 만기친람 리더십에서 벗어나 총리와 장관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직전의 지지도가 취임 직후보다 높았다. 그는 집무 시간의 70% 이상을 야당과 만났다. 박 대통령도 집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야당과 만나 대화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더불어 집권 여당이 더는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하명만 기다리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자율성을 갖고 야당과 당당히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성찰이다. 박 대통령이 분단 70년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한 집권 3년차를 만들려면 권력의 유한함과 지난 집권 2년간의 행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 가짜 세금계산서

 

[중앙일보 사설-20150105월] 가짜 세금계산서로 세금 빼먹는 악성 바이러스

 

국세청과 검찰이 지난해 적발한 가짜 세금계산서 조작 규모가 무려 5조6000억원어치에 이른다고 한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이용한 탈세 행위는 세무자료상과 실제 사업자 간의 공모로 이뤄지는 사실상의 조직범죄다. 실제 거래 사이에 유령회사가 발급한 가짜 세금계산서를 끼워 넣어 부당하게 매입세액공제를 받고 부가세와 법인세(소득세)를 탈루하는 방식이다. 그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매입세액공제를 통해 다른 국민이 낸 세금까지 빼먹는 가장 악질적인 조세포탈 행위다.

 

 국세청과 검찰은 세무자료상 합동단속을 통해 377건을 입건하고, 12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한다. 이들이 가짜 세금계산서를 이용해 포탈한 세금은 161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세무자료상을 낀 조직적인 조세포탈 행위는 그 자체로 세수 감소요인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내국세 수입의 3분의 1에 이르는 부가가치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력화하는 악성 바이러스다. 실물거래를 유령화함으로써 상거래 및 징세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마저 훼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세청과 검찰이 그동안 매년 세무자료상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였음에도 여전히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자료상과 이들과 함께 세금을 빼먹으려는 사업자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이용한 조세포탈 행위는 자료상 조직과 조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공모자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단속의 그물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국세청도 “세무자료상들이 갈수록 조직적·지능적으로 세금계산서를 세탁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세무자료상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국세청의 과세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고, 탈세 행위를 적발하는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의심스러운 세금계산서의 대조와 추적작업을 효율화하는 기법의 개발이 시급하다. 또 적발된 세무자료상은 물론 이들과 공모한 사업자들에 대한 처벌과 세금 추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감히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들거나 쓸 엄두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거짓 세금계산서 유통 막을 그물망 더 촘촘히 짜야

검찰과 국세청이 지난해 합동단속을 벌여 5조6,000억원 규모의 거짓 세금계산서 발행·수취 행위를 적발했다. 확인된 조세포탈액만도 1,619억원에 이르고 125명이 구속 기소됐다. 밀수 등을 통해 금괴나 구리를 사들인 제련업자들은 세무자료상 조직과 짜고 6,000억원대의 거짓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아 부가가치세 320억원을 부당하게 환급·공제 받아 나눠 가졌다.

 

거짓 세금계산서를 매개로 한 조세포탈과 횡령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중대 범죄행위다.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무자료상들이 가짜 사장을 내세워 사업자등록을 한 후 단기간에 거짓 세금계산서를 다량 발급한 뒤 폐업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에는 인터넷뱅킹을 통한 금융거래 조작으로 실물거래를 위장하는 등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세무당국은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보완해야 한다. 국세청은 전자세금계산서 의무발급 대상을 2011년 법인, 2012년 연간 공급가액 10억원 이상 개인사업자, 지난해 7월 3억원 이상 개인사업자로 확대해왔다. 기본 인프라가 웬만큼 구축된 만큼 세금계산서의 진위 여부 등을 사전·사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검찰·금융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자료상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고 수취자의 처벌을 강화해 수요를 줄여나가는 게 중요하다.

 

거짓 세금계산서를 매개로 한 탈세를 뿌리 뽑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물론 국가재정도 멍들 수밖에 없다. 연간 10조원 안팎의 세수펑크가 이어지고 있어 더욱 그렇다. 부가가치세 세수는 2013년 56조원으로 내국세의 33%를 차지했다. 거짓 세금계산서는 부가가치세의 근간인 세금계산서 제도를 무력화하는 중대 조세범죄다. 같은 세금계산서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중복대출 등을 받지 못하게 걸러낼 수 있는 정보공유 시스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105월] 안이했던 방역당국... 구제역ㆍAI 상시화 우려

 

지난달 3일 충북 진천에서 시작된 돼지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달 만에 충청과 경북에 이어 경기지역으로 번졌다. 지금까지 구제역이 발생했거나 발생이 의심되는 농장은 30여곳으로 2만5,000여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지난 2010년 11월 구제역이 발생한지 4개월 만에 급속도로 확산돼 3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구제역은 그 동안 실시된 예방접종에 소홀했던 농가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충북 진천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에 걸렸던 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16.7%에 불과했다. 충북의 돼지 평균 항체 형성률이 85%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다. 이런데도 방역당국으로부터 가축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증을 받았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 농장은 모돈(母豚)을 키우면서 새끼돼지를 진천과 경기도 이천ㆍ용인 등 20여 개 농장에 위탁 사육하고 있는 대기업 계열 농장으로 해당 기업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마저 일고 있다. 방역 당국은 백신만 맞으면 구제역을 100% 막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농가가 실제로 예방접종을 했는지 관리 감독하는 데는 태만했다. 정부는 구제역이 확산되자 뒤늦게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은 농가에 대해 과태료 상향 조정, 살처분 보상금 감액 등 불이익을 주도록 관련 제도를 개정하겠다고 나섰으니 안이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구제역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이 연중 발생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제역은 주로 겨울이나 봄에 발생해 여름이 되기 전에 종식되고, AI는 겨울철새가 날아오면서 퍼뜨렸다가 날이 더워지면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구제역은 여름철인 지난해 7월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바 있다. AI도 지난해 1월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뒤 일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한해 동안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1,000만 마리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수도권인 경기 성남 모란시장의 토종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구제역과 AI의 연중 발생으로 정부의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 질병이 국내에 토착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자칫 AI와 구제역의 상시 발생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AI와 구제역의 발생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강도 높은 방역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축산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의 발생을 막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05월] 적자 뻔한데도 손 놓은 평창올림픽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신축되는 경기장 7곳 가운데 6곳에 대해선 아무런 사후활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6000여억원의 건설비에 더해 해마다 수백억원의 유지관리비가 생짜로 들어갈 판이다.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애초 강원도는 사후활용은 걱정할 게 없다고 말해왔다. 대회 1년 전에만 결정되면 되기 때문에 빚 걱정도 없다는 것이었다. 분산개최론도 이런 논리로 반대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확인한 바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신설 경기장 가운데 사후 운영 주체와 비용 분담 계획이 확정된 곳은 한 곳뿐이다. 네 곳은 모두 ‘미정’이고, 나머지 두 곳도 가장 중요한 비용 분담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도 방법이 없는데 1~2년 뒤라고 뾰족한 수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대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면 해당 지자체가 관리운영비를 모두 덤터기 쓰게 된다. 강원도는 그리되면 아예 철거하겠다지만, 며칠 쓰겠다고 짓고 다시 부수는 예산낭비도 크거니와 건축비에 맞먹는 철거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떤 경우든 부채규모가 이미 6000억원에 육박하는 강원도나 재정자립도가 극히 낮은 시·군으로선 ‘파산 선언’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엄청난 부담이다. 더 우물쭈물할 게 아니라 시급히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명분 대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경기장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라지만, 공정률은 대부분 10%에 훨씬 못 미친다. 공사 초기에 방향을 돌려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예컨대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경우 서울 올림픽공원 시설을 고쳐 쓰면 신축 사업비 1079억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6시간 남짓한 개·폐회식을 위해 859억원을 들여 새 건물을 지을 게 아니라, 애초 유치신청서대로 160억원으로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을 고쳐 쓰면 된다. 국내에 재활용할 시설이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찾는 방안도 처음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부 종목의 경기방식 수정도 검토해볼 만하다. 며칠 잔치 때문에 평생 빚더미에 시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앙일보 사설-21050105월] 공무원연금 개혁, 시민성 발휘해야 성공한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이번 주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14명으로 이뤄져 100일(1회에 한해 25일 연장 가능) 동안 활동할 특위는 법률안 심사는 물론 의결권까지 갖는다. 이를 통해 여야는 늦어도 오는 5월 초까지 연금개혁안을 입법화해야 한다.

 

 주호영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미루면 2017년까지 8조원, 다음 대통령 임기인 2018~2022년 33조원의 국고가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공무원연금 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를 미루면 국가재정이 송두리째 흔들릴 뿐 아니라 지금 세대가 맡아야 할 부담을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떠안기는, 세대 간 책임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를 공감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표를 얻기 위한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제다.

 

 특위는 정해진 시한을 공무원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절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여야는 활발한 토론과 함께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타협안을 이끌어내야 할 무한한 책임이 있다. 특히 정부·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어젠다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시 연기한 군인·사학연금 개혁과 함께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 아닌가.

 

 문제는 연금특위를 이루는 의원들의 소극적인 자세다. 대통령이 제시한 시한인 지난해 말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새누리당 몫인 위원장은 공무원과 가족 등 500만 명의 반발로 인한 총선 악영향을 의식한 중진 의원들의 고사로 인선에 애를 먹었다.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타적 공공성을 발휘해 개혁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한심한 자세에 실망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주 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세대의 빚이 다음 세대로 전가돼 공동체가 공멸하게 할 수는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2003년 3월 사회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발표한 ‘아겐다(어젠다의 독일어) 2010’에 따라 복지와 건강보험, 실업 급여과 함께 연금을 조정하고 고용을 유연하게 하는 개혁정책을 폈다. 개혁의 결과 독일은 재정이 탄탄해지고 경제가 활기를 찾았다. 공무원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세상은 강물 흐르듯 변하는데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이 기득권을 외치며 고인 물이 돼선 곤란하다. 이대로 가면 공무원 연금의 누적적자는 40년 뒤 600조원에 이른다.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식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면 공동체에 미래는 없다. 정치권이든 공무원집단이든 ‘나’를 뛰어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운명이 걸린 공무원연금 개혁이 성공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105월] ‘난타’ 한국 공연 최초 1천만 관객 돌파의 의미

 

<난타>가 한국 공연 사상 처음으로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31일을 기준으로 국내외 누적 관객 1008만5010명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1997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이래 17년 만에 세운 금자탑이다. 척박한 국내 공연문화 현실에서 1000만 관객 공연 탄생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크나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난타> 대기록이 시사하는 의미 또한 각별하다. 우선 이런 장기공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성과 ‘재미’를 갖췄다. 관객들은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벌이는 유쾌한 해프닝과 칼·도마·냄비 등을 두드리는 타악기 공연의 신명 나는 리듬에 취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한국 전통의 사물놀이 리듬과 마당놀이 형식을 세계 공통의 문화인 요리에 결합시킨 점도 돋보인다. 제작사 PMC프로덕션 대표이자 기획자인 송승환씨는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가족 쇼’로 ‘글로컬(글로벌+로컬) 문화콘텐츠’를 기획했다고 한다. 비언어극(넌버벌)을 택한 것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전용극장 설립과 벤처기업 등록 등 적극적인 마케팅과 함께 공연을 관광상품과 결합시키는 전략을 썼다. 작품 구성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 상품’으로 다듬은 것도 주효했다. <난타>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이자 세계적인 타악기 공연 중 하나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결정적인 이유다.

<난타>는 그동안 51개국 289개 도시에서 무려 3만1290회나 공연했다.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전회 매진, 아시아 최초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등의 신기록도 세웠다. 현재 1년 내내 상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의 명동·충정로·제주의 난타전용극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태국 방콕과 중국 상하이·마카오에서도 상설 공연 중이다.

<난타>의 성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문화의 기본을 새삼 되새기게 해준다. 이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파는 창조적 소프트 산업의 핵심고리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적 소재를 세계적인 보편문화로 확대한 글로컬 문화콘텐츠인 <난타>는 그 길을 잘 보여준다. <난타>의 1000만 축포가 문화예술 한류의 미래에 또 하나의 특별한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105월] 에볼라 구호 의료진 안전관리에 만전을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구호활동을 하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독일로 긴급 이송된 한국 해외긴급구호대원 1명이 채혈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대원은 현재 발열 등 바이러스 감염 의심 증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는 게 검사를 담당한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병원 측의 설명이다. 1차 검사 결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만큼 일단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에볼라 감염 증상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시기는 바이러스 노출 후 6~12일이며 바이러스가 길게는 3주 정도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의료대원은 이달 20일까지 격리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관찰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병원 측은 이후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즉시 동물 실험을 거친 에볼라 치료제인 지맵 등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30일 국내 의료대원이 환자를 치료하던 중 장갑이 찢어지면서 주삿바늘이 왼손 검지에 닿아 일어난 것이다. 의료대원 선발·준비 단계부터 제기됐던 의료진 안전에 대한 우려가 현지 활동 4일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이나 권고를 어긴 부분은 없다고 하지만 급박하고 혼란한 진료 환경에서 위험한 상황이 얼마든지 돌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고가 보여준 셈이다.

 

국내 의료진이 에볼라 환자 치료와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신종 괴질의 방역과 치료 경험 축적을 위해서, 또 과거 우리가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보건의료 지원을 생각해서라도 전염병 차단을 위한 국제적 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에볼라 환자 치료에 나섰던 각국 의료진 670여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그 가운데 380여명이 숨진 만큼 의료진의 철저한 안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사고를 의료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빈틈없는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투자보다 빚부터 갚겠다는 기업들, 이래서 경제 살겠나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여유 자금이 생기더라도 투자보다는 빚부터 갚을 생각이라고 한다. 한경 마켓인사이트가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 CFO 26명을 대상으로 새해 재무전략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다. 잉여 현금이 발생할 경우 가장 우선할 업무를 묻는 질문에 ‘차입금 상환(또는 차환)’이라는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다. ‘설비투자 확대’는 19%로 차입금 상환의 절반에 그쳤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만큼 재무전략을 매우 보수적으로 짜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기업 여건은 여느 때보다 어렵다.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경기가 침체일로인 데다 내수도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저유가는 반갑지만 러시아 등 산유국 중 일부가 디폴트라도 난다면 글로벌 시장은 또 한 차례 휘청거릴 수 있다. 지속적인 엔저도 부담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들이 방어적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기업이 잔뜩 움츠러든 것이 대내외 경제여건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새해부터 적용되는 사내유보금 과세나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각종 규제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의 운신 폭을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특히 기업 간 인수합병이나 해외투자를 ‘투자’로 보지 않고 유보금 과세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투자 축소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보금 과세로 10대 그룹이 추가로 내야 할 세금만 1조800억원가량이 될 것이라 한다.

 

정부가 투자의욕을 북돋아도 모자랄 판에 이런저런 규제로 발목을 잡고 있으니 돈이 있어도 투자보다는 빚부터 갚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대통령과 부총리가 경기를 살리겠다, 혹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경기를 살리는 주체는 정치인도 관료도 아닌, 기업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만 하면 된다. 올해 경제민주화법들이 풀가동되는 것은 분명 장애요인이지만 규제 법을 운용하는 것도 정부 하기 나름이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슈퍼달러 시대, 거시경제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때다

 

새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초강세다. 그저께 개장한 유럽 시장에서 달러는 유로당 1.20달러로 2010년 중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동안 상승국면이던 일본 엔화도 달러당 120엔을 넘어 다시 하락세다. 주요 1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균가치지수인 WSJ 달러지수가 83.65로 2003년 9월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연 0.25%의 초저금리 상태인 데다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로 풀려나간 돈만 4조달러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달러 가치는 나홀로 강세다. 유가 급락과 미 제조업의 회복, 일본·유럽의 장기 침체 등 이유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자신감이 만든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당장 신흥국과 산유국들은 비상이다. 멕시코와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미 대거 시장에 개입해 환율 하락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도 곧바로 시장에 개입할 태세다. 강한 달러는 종종 신흥국들의 금융 위기를 초래해왔다. 1997년 아시아 위기도 달러 강세가 만들어낸 비극적 결말의 하나였다. 달러가 미국으로 역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지는 셈이다. 지금은 디플레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유럽이나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중국도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투자자들은 위험이 높아질수록 자산 안전을 선호한다. 시장은 각국의 펀더멘털이 얼마만큼 강하고 구조개혁의 성과가 가시적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 투자처를 선별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조개혁을 이루고 건전하고 견실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결국 경제 발전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학회, 한미경제학회가 미국에서 개최한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이 1997년과 같은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경고의 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도 절대 안전지대는 아니다. 구조개혁을 게을리하거나 투자 여건을 맞춰내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외국 자본이 돌아설 수 있다. 거시경제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때다. 자본 유출입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언제라도 ‘플랜 B’를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조금 올라갔지만 여전히 44.5점 불과한 경제행복 지수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경제적 행복지수’에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여전히 100점 만점에 44.5점에 그쳤다는 것은 실망스럽다. ‘행복’은 정의부터가 쉽지 않다. 폴 새뮤얼슨은 행복을 ‘소유÷욕망’으로 정의하기도 했고, 각종 생활환경과 사회적 유대감 등을 기반으로 한 국민총행복(GNH) 같은 지수도 개발돼 있다.

 

한경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상정한 경제적 행복지수는 경제적 안정(소득 안정성), 경제적 우위(상대적 경제 상황), 발전(생활수준 향상 가능성), 평등(경제적 평등도), 불안(물가 실업률 등 외부요인) 등 5개 항목과 전반적인 경제적 행복감을 물어 지수화한 것이다. 경제적 안정의 경우 ‘내 노후의 경제상황은 안정적일 것 같다’는 질문에 ‘그렇다’면 100점, ‘반반’이면 50점, ‘아니다’면 0점을 주어 가중평균을 낸다. 행복지수 44.5점이면 중간점수에 못 미치지만 2007년 조사 이래 최고 점수이고, 2013년 하반기 이후 세 반기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간점수도 안 된다고 실망할 일도, 개선되고 있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지금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것 같다. 행복지수가 크게 개선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평등’과 ‘경제적 불안’ 항목 때문이다. 평등은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다’에 답하는 것인데 27.6점에 그쳤다. 불안은 ‘물가, 실업률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는 질문인데 불안하지 않다를 100점이라고 할 때 31.1점밖에 안 된다. 경제적 평등은 심리적인 면이 큰 데다 정치적 이슈여서 쉽게 해결하기 어렵지만 불안은 일자리 창출 등으로 개선할 여지도 없지는 않다.

 

이번 조사에선 고졸자들(45.0)의 경제적 행복지수가 처음으로 대졸자(43.8%)를 제쳤고, 60대 이상의 행복도(44.9)가 높아졌다는 의미있는 결과도 있었다. 이 설문조사는 8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7년 하반기 첫 설문조사가 이뤄졌던 당시는 39.9점에 불과했다. 미세하지만 줄곧 개선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국민소득 장밋빛 전망보다 '불편한 진실'에 눈돌려라

연초부터 국민소득(GN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제주평 '국민소득 5만달러 국가의 조건'을 통해 우리나라가 6~15년 후에는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선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밝혔었다. 국민소득이 화두로 떠오르는 현상은 실로 오랜만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5년에 1만달러선을 넘어 2007년 2만달러선도 돌파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 급등락으로 다시 1만달러대로 주저앉고 2011년에야 안정적으로 2만달러에 재진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대놓고 자랑하지 못한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대통령이 국민소득을 거론하는 현상은 이런 점에서 반갑다. 자신감 회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1인당 3만달러의 원년의 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 이후 국민소득 전망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깊다.

 

그러나 국민소득 전망을 제시하려면 전제가 따라붙는다. 불편한 진실 두 가지부터 직시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게 순서다. 첫째, 외국에 비해 이미 성장속도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20년간 1만~2만달러에 묶인 반면 선진국 대부분은 10~15년 만에 1만달러에서 3만달러대로 뛰었다. 일본은 1만달러에서 4만달러선에 도달하는 데 14년이 걸렸을 뿐이다.

 

두번째 불편한 진실은 실질소득인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NI)은 더 낮아 선진국은커녕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갈수록 기업의 몫만 커진 탓이다. '2년 전만 해도 부채가 없었던 가구의 30%가 새로운 빚이 생겨나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책은 원인과 동일한 지점에 있다. 떨어진 성장속도를 솔직하게 밝힌다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을 설득하기가 수월해진다. 실질적인 가계소득을 올리자는 소득 증대대책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강조한 가계소득 증대방안과 맞닿아 있다. 신년 장밋빛 전망도 좋지만 냉철한 분석과 반성, 실질적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105월] 전통시장 나아갈 길 보여준 인천 신기시장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12월12일에 내린 대형마트 의무휴업 위법 판결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전통시장이 고사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삼은 인천 신기시장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요즘 주말이면 신기시장에는 2만명이 넘는 내·외국인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특히 시장 입구에 외국인 관광객 전용버스의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는 소식이다. 이곳에 가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길거리 음식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덕분에 신기시장의 매출은 지난해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손님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는 대부분의 전통시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적대던 신기시장은 2000년 들어 주변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환경개선 공사를 하고 이벤트·할인행사로 명성을 되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힘들었던 신기시장에 고객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외부 환경만 핑계 대지 않고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은 것이다.

 

상인들은 대형마트를 무작정 따라 하는 대신 전통시장의 고루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를 본뜬 전통시장 상품권인 '신기통보'를 유통시키고 이것저것 끼워주는 '덤' 문화를 관광상품화한 것이 그 결과물이다.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보려는 외국인들의 취향을 고려해 만두 한 개, 전 반 접시 등 맞춤형 먹거리 상품까지 개발했다. 이렇게 노력했으니 인천공항의 환승투어 코스에 포함되고 외국인 관광객의 단골 여행지로 탈바꿈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만하다. 전통시장만의 장점을 살리면서 스토리·콘텐츠를 더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시장이 주는 교훈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새해 담뱃값 인상과 그 후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105월] 한 개비 담배

 

훈련병 시절 “10분간 휴식, 담배 일 발 장전!”만큼 달콤한 소리가 없었다. 군대와 담배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입영전야’(최백호)는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로 가득했고, “한 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우는” 사이가 ‘전우’였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선 “담배가 배급될 때 그것은 곧 공격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고 썼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군대 관련 노랫말이 달라졌다.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이등병의 편지’(김광석) 등에선 담배가 사라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피우던 담배는 16세기 초 스페인에 처음 전해졌다. 아시아엔 1571년 필리핀에 먼저 들어왔고, 1600년 중국에도 유입됐다. 조선에는 광해군 때인 1610년 전후에 전해졌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년)에 “근세에 왜국에서 들어왔다”고 기록했다. 광해군은 담배를 혐오했지만 정조 고종 순종 등은 애연가였다고 한다.

 

군가 ‘전우’에서 담배 한 가치는 본래 성냥개비처럼 ‘한 개비’가 맞다. 담배를 낱개로 파는 ‘가치담배’는 ‘개비담배’가 옳은 표기지만 자주 사용돼 표준어에 포함됐다. ‘까치담배’, ‘개피담배’는 잘못된 표기다. 북한에서는 종이로 만 담배(궐련·卷煙)는 개비 수를 따지지 않고 총칭해서 가치담배라고 한다. 보루(담배 10갑)는 종이상자를 뜻하는 일본말 ‘보루바꾸’에서 왔다. 보루를 ‘포, 줄’로 순화토록 권장하지만 아직 어색하다. 북한에선 30갑을 한 보루로 친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대폭 인상되면서 ‘가치담배’가 부활했다고 한다. 80년대 담뱃값이 500원이던 시절 100원에 3개비를 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1개비에 300원이다. 한 갑이면 6000원이니 25% 비싼 셈이다. 그래도 가난한 애연가들에겐 감지덕지다. 하지만 가치담배는 담배사업법상 불법이다. 정해진 포장과 가격을 어겨 팔면 2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묵인해 왔을 뿐이다.

 

미국에도 속칭 ‘루시즈(loosies)’라는 가치담배가 있다. 한 갑에 12달러가 넘는 뉴욕에선 개비당 1달러에 판다. 최근 경찰 단속과정에서 목졸려 숨진 흑인남성도 가치담배를 팔던 불법 행상이었다.

 

새해부터 금연을 결심한 이들이 많다. 금연클리닉이 북적인다. 담뱃값 4500원 중 73.7%(3318원)가 세금·부담금이어서 흡연자들이 ‘정부의 봉’이냐는 볼멘소리가 많다. 기왕 끊을 바엔 돈보다는 건강을 생각해 끊는 게 당당하지 않을까.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105월] 담배 대체재

 

새해의 시작과 함께 담뱃값이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듯이 금연 시도로 해마다 1월이 되면 담배 판매량이 급감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올해는 특히 지난 연말의 '사재기' 영향까지 겹치면서 담배 소매점을 찾는 발길이 뚝 끊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올 1월의 금연 결심이 종전과 다른 것은 바로 담배의 대체재인 전자담배(e담배).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애연가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많이 팔릴수록 유해성 논란도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다.

 

미 식품의약청(FDA)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전자담배 규제는 일반 담배의 규제 못지않다. 전자담배를 '담배(tobaco product)'로 규정하고 공공과 실내 장소, 직장에서의 전자담배 흡연을 금지하고 미성년자에게 판매와 광고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담배는 청소년과 태아의 건강에 상당한 위협을 초래하는 것으로는 전해져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그러나 전자담배 규제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 유해성을 증명할 구체적 증거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커피나 설탕 같은 제품을 버젓이 두고 중독 자극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현실 문제가 모두 그러하겠지만 전자담배 역시 어느 것을 얻으려면 어느 것을 잃어야 하는 전형적 '트레이드 오프(상충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FDA가 실제 전자담배의 성분과 안전성 표준을 만드는 데 최소 4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규제 실행까지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70여가지 발암 물질이 들어 있는 담배 흡연으로 전세계적으로 연간 500만명이 폐암 등으로 사망한다고 하니 아직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전자담배의 소비쯤이야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설마 담배만큼이야 해로울까. 새해 들어 금연을 소망하는 흡연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 그 밖의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세계의 창/이영채(논설위원)-20150105월] 한일관계 개선의 골든타임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로 새로운 한-일 관계의 진전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본 내각조사부가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지난해 12월20일)에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한 여론이 66.4%에 이르렀다. 전년보다 8.4%포인트나 증가한 것이고, 조사가 시작된 1978년 이래 최악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전인 2010년 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 친밀도가 68%로 전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5년 만에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어진 셈이다.

 

전후 한-일 관계는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먼저 1945년 8월15일 이후 35년 동안의 식민지체제가 끝났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공체제 구축을 위해 한·일 양국의 상호협력이 ‘강요’되었고, 15년이 지난 1965년에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됐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가속화된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속에서 한·일 양국은 역사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한 채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하였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었음에도 일본은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만을 추진함으로써 이른바 ‘65년 체제’를 탄생시켰다.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전환된 것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정권의 ‘21세기 파트너십 선언’ 이후다. 1997년 경제위기로 일본의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역사 문제보다 문화 및 경제 교류를 우선시하였다. 그 결과 일본에서 한류, 한국에서 일류의 붐이 일어났고 한·일 양국 사이에선 약 15년간 연간 300만 이상의 활발한 시민 교류가 이뤄졌다. 이른바 ‘98년 한류체제’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약 15년간의 문화 교류의 결과, 일본 내에서 한국 문화 및 한국인를 배격하고 추방하려는 ‘헤이트스피치’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한-일 관계는 1965년의 경제협력체제와 1998년의 문화협력체제를 통해서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의 토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또한 애매하게 처리해왔던 한-일 간의 역사인식 문제는 향후 한-일 관계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해서 더는 피해갈 수 없는 중요 과제인 것도 명백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을 한-일 관계 개선의 ‘입구’로 한정하는 것은 현명한 외교전략이 아니다. 북한의 경우,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 북-일 관계 개선은 없다’는 논리로 지난 15년간 대북압박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일본 아시아외교의 고립 및 리더십 상실로 이어졌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관계의 최대 시급한 과제로 설정한다면, 지난 2년간의 대일외교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 중요한 인권 문제임에도 그 규모가 방대하고 양국의 복잡한 국내외 사정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대일외교의 ‘입구론’이 아닌 ‘과정론’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부가 제3의 위원회를 공동으로 설치하고 전문가들이 역사 검증을 포함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까지 담은 정책 제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전술적인 전환도 하나의 유용한 방안이 될 것이다.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은 이 지역의 불안정한 국제 질서를 안정화하고 지역 내의 복잡한 현안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현재 아베 정권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들은 거의 없다. 결국 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개정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1년 이내에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나 자민당 내의 리버럴 세력과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한계적인 만큼,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아베 총리의 인기가 지속되는 동안에 한-일 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은 현실은 열악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놓쳐선 안 되는 골든타임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20150105월] 미워도 다시 한 번

아파트 지하와 1층에 복덕방이 3개다. 주말마다 승강기 하나는 이삿짐 전용이다. 옮기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학군 영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능 만점자가 여러 명 나온 학교 근처 아파트가 싼값에 나올 리 만무하다.

 

 맹자 가족이 세 번 이사했다는 건 아이들도 안다. 주소지 이동내역까지 빠삭하다. 묘지에서 시장을 거쳐 학교 근처로. 부동산 경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교육을 위해서였다는데 엄밀하게 보면 결과론이다. 맹모의 자필수기가 아니라 맹자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다 보니 모친의 교육열도 덩달아 주목받은 거다. 맹자가 세계적 인물이 안 됐다면 엄마의 결단이 과연 빛을 발했을까.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시장에서 자랐다. 돈암시장 126호가 내 ‘이야기 상자’다. 허름한 가게라 봉지나 포장지가 따로 없었다. 시효가 지난 신문, 즉 신문지만 수북했다. 소년에겐 유용한 문화 콘텐트였다. 당시 신문 하단은 영화광고가 태반이었다. 가위로 오려 스크랩한 제목들이 기억 속에 견고하다. ‘아낌없이 주련다’ ‘떠날 때는 말없이’ ‘미워도 다시 한 번’. 나는 이 21자가 인생수업에도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멜로의 3대 요소, 즉 사랑과 이별, 그리고 용서(때로는 복수)를 대표하는 제목들이라 그럴 것이다.

 

 다시 맹자네로 건너가자. 맹모는 ‘이사의 여왕’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성질이 불같은 분이다. 아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자 화를 내며 베틀의 실을 확 잘라버렸다(斷機之戒). 고약한 아들 같았으면 “엄마 미쳤어?”라고 대들 텐데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달랐다. 맹자는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학문에 정진했다.

 

 뉴스 보기 싫다는 사람이 주위에 늘어간다. “애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을 보며 엄마들이 걱정한다. 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교육하기 참 좋을 때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되었을까?” “저렇게 말하는 게 최선일까?” 차분하게 문답놀이 하는 게 산교육이다. 바쁘다고 대화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면 나중에 아이가 사건의 당사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올해의 슬로건을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제안한다. 지금 세상은 시비지심, 수오지심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편이 갈리고 미움은 넘치고 그것이 지속된다. 추를 약간 반대 방향으로 밀어보는 건 어떨까. 맹자가 강조한 나머지 두 마음, 바로 측은지심, 사양지심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아보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40105월] ‘토토가’와 추억여행

 

S.E.S의 ‘막내 요정’ 슈(본명 유수영)가 공연을 마친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감춰두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한 그의 소감은 소박했다. “엄마인 저에게도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슈뿐이 아니었다.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에 참여한 1990년대 가수들은 모처럼의 추억여행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시청률도 예능프로그램에서 마의 시청률이라는 20%를 훌쩍 넘겼다(22.2%)고 한다.

 

실제 ‘토토가’의 주시청층인 30~40대 가운데는 가수들의 공연에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가수의 ‘리즈’ 시절, 즉 황금기의 음악을 통해 그들 자신의 ‘젊은날의 초상’을 추억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기였다. 발라드와 힙합, 댄스, 록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다. 서태지가 출현했고, 김건모·신승훈이 밀리언셀러의 힘을 보여줬으며, H.O.T 등의 아이돌그룹이 등장했다.

 

당시 10~20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 사이에서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X세대로 일컬어졌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기존의 획일적인 질서를 거부한다는 이른바 ‘X세대’는 파격적이고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 소통했다.

 

그랬던 그들이 20년이 지나 스스로 지갑을 열 수 있는 30~40대의 소비층으로 화려한 귀환을 시작한 것이다. ‘토토가’ 이전에도 영화(<건축학개론>)와 드라마(‘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1990년대’를 겨냥한 ‘향수(노스텔지어) 마케팅’을 자극한 바 있다. 그러고보면 ‘1990년대’는 쉬이 가라앉을 트렌드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추억여행이란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면 더더욱 과거만 떠올리는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요즘엔 누구나 스마트폰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토토가’의 공연은 모처럼 가슴 시원한 소통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토토가’가 끝난 뒤 어느 참가자가 일말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것이 좀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꿈이 될까 두려워요.”

 

[서울신문 칼럼-김형준 정치비평/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20150105월] 인식의 대전환 없이 위기 극복 없다

청양(靑羊)의 해가 시작됐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통일 기반 구축, 경제 재도약, 국가 혁신 등 중대한 국정과제에 몰입할 수 ‘골든타임’이라는 게 집권 세력의 대체적 인식이다. 문제는 대통령 어젠다의 과잉으로 말미암은 국민의 혼돈과 피로감, 반복되는 인사 참사, 대통령 핵심 공약의 파기, 대통령 최측근들의 권력 투쟁, 지속적인 경기 침체 등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 초기 70%대에 이르렀던 대통령 지지도가 40% 초반까지 떨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집권한 지 2년이 다가오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무너지고 정부 신뢰는 크게 흔들리면서 국정 운영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은 풍부한 정치 경험, 투철한 국가관, 절제된 언어, 원칙과 신뢰 존중, 흔들림 없는 소신, 약속을 지키는 진정성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런 소중한 장점들이 지난 2년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정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한다. 우리 정부는 사심 없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국민은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 따라서 여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등의 사고가 대통령의 인식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이런 착각과 과신이 결국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불통 리더십’으로 표출돼 대통령의 위기대처 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 것 같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적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 리더십’으로도 이어졌다. 역대 정부의 집권 3년차 때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 있다.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 시작되고, 반대층의 저항과 불만은 고조된다. 집권 초기와 달리 통치 환경의 강점과 기회보다 약점과 위험 요인이 급부상한다.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을 매개로 한 정치 갈등이 증폭된다. 대통령이 민심 이반을 막고 통치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 승부수를 던지는 유혹에 빠진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고 실패한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인식의 대전환과 자신의 장점이 국정 운영에서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집권 3년차의 시작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청와대를 전면 쇄신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힘에만 의존하는 통치 대신 소통 확대를 통한 정치 복원에도 주력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아몬드 교수는 선진국들은 민족 통합→건국→경제성장(산업화)→참여(민주화)→분배라는 5단계를 거쳐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대한민국은 광복 70년 동안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분단 70년에서 보듯이 민족 통합을 이룩하지 못했다. 한편 공정한 분배를 토대로 한 선진 복지 국가를 향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아몬드 교수는 이러한 정치 발전 단계가 성공하려면 ‘역할 분화, 문화적 세속화(의식 변화), 하위체제의 자율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적용하면 대통령은 만기친람 리더십에서 벗어나 총리와 장관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직전의 지지도가 취임 직후보다 높았다. 그는 집무 시간의 70% 이상을 야당과 만났다. 박 대통령도 집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야당과 만나 대화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더불어 집권 여당이 더는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하명만 기다리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자율성을 갖고 야당과 당당히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성찰이다. 박 대통령이 분단 70년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한 집권 3년차를 만들려면 권력의 유한함과 지난 집권 2년간의 행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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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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