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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저속하고 경박한 야당 전·현직 의원의 박 전 대통령 조롱
한국 정치인이 뱉어내는 말의 저속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저속한 말이 나올 때마다 여론의 비판이 뒤따랐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저속한 말이 마치 재치와 유머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조롱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 중이던 시간에 인터넷TV와 인터뷰에서 “그분은 변기가 바뀌면 볼일을 못 본다. 서울구치소장이 오늘 빨리 변기 교체를 해놔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이다”라고 했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이 인천시장으로 있을 때 국정간담회 참석차 인천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시장실 변기를 청와대가 교체했다는 일화에 빗대 박 전 대통령을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 송 의원도 이 일화를 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변기 공주’라고 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영장 발부 뒤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제일 괴로운 과정은 머리핀을 뽑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안 의원의 조롱에 맞장구를 쳤다. 박 전 대통령이 평소의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를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으로, 대통령에서 수인(囚人)으로의 전락을 고소해하는 듯한 인상을 물씬 풍긴다.
이런 말들은 안 의원의 말이 폭소를 자아낸 것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환영받거나 유머 감각이 있다는 호평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한 국민 통합에 역행하는 저급한 정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개인적 불행을 넘어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의 말은 그 상처를 더 깊이 후벼 판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은 자신의 말들을 재치있는 유머로 여길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그들 심성의 저속`경박`황폐함을 재확인해줄 뿐이다. 비판하고 조롱하되 격과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는 비판과 조롱은 ‘언어 살인’이다.
2. 뚜렷한 수출 회복세 반갑지만 아직 갈 길 먼 경기 회복
올 들어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과 지난해 2년 연속한 수출 감소로 성장에 발목이 잡혔지만 올해는 석 달 연속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일 만큼 수출 증가세가 뚜렷하다. 특히 3월 수출액이 489억달러를 기록해 2년 3개월 만에 최대 실적을 냈다. 오랜 부진을 완전히 털어낸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나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수출이 증가한 것은 반가운 신호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1, 2월 대구경북의 수출도 모두 증가했다. 모처럼의 훈풍이다. 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가 2일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 보고’에 따르면 대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6% 증가한 5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산업용 기계와 공구, 자동차부품, 직물 부문이 수출을 견인했다. 경북 수출액도 21.4% 증가한 34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출 증가세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섣부르다.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완연한 봄을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사드 배치를 겨냥한 중국의 무분별한 경제 보복과 미국의 금리 인상, 보호무역 기조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또 5월 조기 대선과 맞물려 정부의 리더십 약화와 흐트러진 공직사회 기강도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이런 변수들을 완전히 뛰어넘거나 그 파급력을 최소한으로 낮추지 않는 한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말하기가 힘든 이유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말해주듯 2%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다. 10%를 넘나드는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가계 부채, 가계소득 감소, 얼어붙은 소비 심리 등 곳곳에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암초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수출이 유일하게 회복 기미를 보여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입에 올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출뿐 아니라 소비, 기업 투자, 고용, 가계소득 등 경제 전반에 골고루 햇살이 들도록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한다. 정부는 정치 일정과 상관없이 경제 활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정책 발굴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데일리]
3. 치졸한 사드보복, ‘깡패’ 중국의 민낯이다
우리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방침에 반발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갈수록 치졸해지고 있다. 비타민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사탕을 의약품으로 재분류하라며 통관을 거부하고 수출품에 붙은 부산의 영문 표기를 ‘PUSAN’이 아니라 ‘BUSAN’으로 바꾸라며 통관을 지연시키는 등 억지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날짜 표기(10-03-2017)에서 하이픈(-)도 빼라는 등 막무가내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리더국인 ‘G2’라고 부르기 민망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덩치만 큰 ‘깡패국가’의 민낯이다.
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의 75개 지점 영업정지 처분 기한이 속속 끝나 가지만 영업정지를 풀기는커녕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아 재차 연장하고 있다. 게다가 오는 16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는 아예 한국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간 협력을 위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베이징시장 면담계획이 중국 측의 갑작스러운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 한한령(限韓令), 관광중단, 기업 옥죄기 등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제품 불매운동과 반한(反韓)시위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중국 유통업체는 한국 신제품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시위와 불매운동에 동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랴오닝성 선양의 한 호텔에는 태극기를 바닥에 깔아놓고 “한국인을 밟아 죽이자”는 팻말을 세웠다고 한다. 시위가 자유스럽지 않은 중국에서 당국의 묵인 없이는 어려운 과격한 행동들이다. 누가 봐도 당국이 뒤에서 부추긴 사드 보복임에 틀림없다.
문화 교류를 막고 경제적 보복조치를 통해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겠다는 중국의 소아적 발상은 강대국으로서의 품격에 상처만 남기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정부는 중국에 대해 치졸한 보복조치를 즉각 중단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서야 한다. 불법적인 보복행위를 세계무역기구(WTO)의 안건 제기에 그치지 말고 정식 제소해야 한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핵 억제를 위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사드보복 문제도 반드시 거론하도록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4.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기대와 우려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정식 선출됐다. 어제 열린 수도권 순회경선에서 60.4%의 득표율로 누적 과반을 채움으로써 후보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미 탄핵정국이 시작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차이로 앞서 왔다는 점에서 진작부터 예견된 결과다. 이번 후보 지명으로 대권 고지에 한 발 더 성큼 다가선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후보로서 더 가다듬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이제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마지막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검증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미래 청사진이다. 문 후보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지난 대선에도 출마했었다는 점에서 국정에 대한 식견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국정 리더십을 회복하고 정부 기능을 효율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도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세금을 들여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은 어차피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분배 정책도 중요하지만 성장 정책에 근거한 발전 전략의 뒷받침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 후보로서는 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인 인식도 조속히 가라앉혀야만 한다. 특히 사드 배치에 따른 논란과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국방·안보에 있어서만큼은 여야와 정당의 구분 없이 일치된 목소리가 요구된다. 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대선이 본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반문(反文)’ 연대 움직임이 거세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상대 진영의 후보단일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해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바짝 추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 후보가 그동안의 우세를 지켜 선거에 승리하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5. 마침내 문 연 인터넷은행 한국 금융의 진짜 메기 되게 하라
국내 첫 인터넷은행 케이뱅크가 어제 문을 열었다. 카카오뱅크도 곧 뒤따를 것이다. 2015년 11월 예비인가를 받은 후 거의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산고도 컸다. 하지만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사반세기 만에 처음 보는 새 은행이라 기대가 크다.
인터넷은행은 전통적인 은행들과 유전자부터 다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며, 지점과 창구 인력을 없애 원가를 줄인 만큼 예금 금리는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존 금융회사들이 소홀히 했던 청년, 소상공인, 서민층 대상 중금리 대출로 틈새 시장을 파고들 수도 있다.
이러한 인터넷은행은 한국 금융을 휘저을 메기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은 정보기술과 금융을 접목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젖어 있던 기존 업계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 은행들이 촉발한 새로운 차원의 경쟁이 금융의 판을 흔들고 비효율을 제거해 한국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인터넷은행의 빠른 착근을 위해서는 우선 비대면 실명 확인과 간편한 인증, 24시간 서비스 과정에서 정보 보안 문제나 시스템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핀테크 기업으로서 성장을 가속화하려면 단순히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이 진짜 메기가 되도록 하려면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초기 투자와 튼튼한 자본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은산분리) 완화가 시급하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정보통신 기업들(KT와 카카오)의 의결권 지분을 지금처럼 4%로 묶어두면서 인터넷은행들이 금융의 메기가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국회는 더 이상 인터넷은행의 발목을 잡지 말고 산업자본의 의결권 지분 한도를 34~50%로 늘려주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6. "북핵 우리가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의논 대상도 못되는 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중국에 최후통첩성 경고를 했다.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미·중 양국이 두는 바둑 행마를 지켜만 봐야 하니 딱한 노릇이다.
트럼프 발언은 오는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북핵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카드를 슬쩍 내비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는 트럼프의 대북 상황인식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 단독으로 북한을 상대할 것이냐는 질문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구체적인 옵션까지 마련한 단계로 보여진다. FT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트럼프가 취임 직후 주문한 '대북옵션 리뷰'를 막 완료했다고 한다.
이 리뷰에 담긴 옵션이 어떤 내용일지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 조야에서 줄기차게 거론돼 온 대북 선제타격이 포함됐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협상테이블을 미·북 양자 간 담판 구조로 가져가는 내용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문제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는 이 중차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과연 우리 의견이 반영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누차에 걸쳐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주로 중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일본에 대한 지지를 먼저 언급했다. 지난 2월 북한이 북극성 2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의 첫 반응은 "일본을 100%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최소 형식상으로는 한국을 최우선 당사자로 대우했다. 북한 핵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 의견을 존중해 계획을 접기도 했다. 지금은 의견 반영은 고사하고 미국 쪽 기류가 한국 측에 그때그때 전달되는지도 의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방송에 나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라고 했는데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 수가 없다.
[중앙일보]
7.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족쇄부터 걷어내야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국내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출범했다. K뱅크는 계좌를 개설할 때도 은행에 갈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에 신분증만 찍어 올리면 공인인증서 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어서다. 경조사비를 보낼 때도 좋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퀵송금’ 서비스를 통해 문자메시지만으로 상대방 계좌에 송금할 수 있다.
현금을 찾을 때는 은행보다 더 많은 전국 1만여GS25 편의점에 가면 된다. 체크카드 없이도 계좌번호만 입력해 입출금하는 무카드 서비스도 있다. 인터넷은행은 점포와 창구인력이 없으니 시중은행보다 예·적금 금리가 높고 대출금리는 낮다.
이렇게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잘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은산(銀産)분리 족쇄’에 사로잡혀 있어 자본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K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으로 출범했지만 시스템 구축 등에 이미 상당액을 썼기 때문에 곧 증자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 10%(의결권은 4%)에 묶여 있다. 재벌의 계열 은행 돈 빼먹기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정치권이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금융산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핀테크(금융+기술)가 본격화하면서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인터넷은행이 20개가 넘는다. 일본도 오래전에 인터넷은행이 출범했고, 중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인터넷은행이 잇따라 출범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ICT 기업만이라도 보유지분을 50%까지 허용해 달라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시대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금 확충이 어려우면 운영자금 부족으로 자칫 대형 금융사고가 날 수도 있다. 과도한 금융 규제가 국내 은행 경쟁력을 우간다보다 뒤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이 금융후진국에서 맴돌지 않으려면 인터넷은행만이라도 규제의 족쇄부터 풀어줘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하루라도 일해 보고 싶다는 ‘청년 탈진세대’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20, 30대가 올 2월 1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이래 최대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5.7% 늘었고,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과 비교해도 35%나 많다. 취업난에 빠진 20대는 전체 연령대 중 정서적 탈진이 가장 심하다는 것이 동아일보 ‘2020 행복원정대’ 취재팀의 분석 결과다.
취업 무경험자가 늘어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시간 아르바이트나 이른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지원한다면 취업률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하루만이라도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 청년들의 바람이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기성세대의 주문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통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노동시장 개혁과 직업교육 확대,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4월 23일 1차, 5월 7일 결선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공무원을 줄이고 그 예산으로 직업교육을 늘리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무소속 후보가 ‘청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공공부문 확대 공약은 되레 취업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청년에게 당의정 같은 공약이 아닌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비전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9. 주한 일본 대사 85일 만의 복귀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으로 돌아갔던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가 오늘 복귀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3일 "한국 대선 정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 준수를 직접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은 일시 귀국 85일 만이다. 양국 갈등으로 인한 일본 대사 공백으로는 최장 기간이다.
부산 소녀상 설치는 우리 민간단체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는 원천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대사 소환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아베 총리 지지율 제고를 위해 한국 때리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북한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이 높아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으로 양국 관계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두 나라 관계가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
한·일은 지난 4년여간 단절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전적으로 일본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친일 대 반일'의 단선적 접근으로는 일본과의 다층적 관계, 격변하는 동북아 질서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없다. 그런데도 유력 대선 주자들은 그런 한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지금 보수·진보 후보를 막론하고 위안부 합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주장한다. 한번 맺은 국가 간 합의가 정권이 바뀐다고 뒤집힌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일본 대사와 함께 주한 미국 대사가 석 달째 공석인 것도 비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러·일 대사를 이미 지명하고도 한국 대사만 내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10. 늘어나는 정신질환자 범죄 대책 지체 말아야
지난주 인천에서 10대 소녀가 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인 이 소녀는 조현병 환자였다. 우울증이 심해 고교를 자퇴했는데 최근에는 조현병으로 악화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앞서 지난 2월 조현병을 앓는 10대 아들이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존속살해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잔인한 범죄 행위를 보면 도저히 어린 10대들의 범죄행위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 원인이 온전치 못한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하나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조현병이란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분열증이다. 정신질환자 중에는 약물치료 등으로 효과를 보기도 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거부하거나 제때 관리를 받지 못해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거나 심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나 사회의 특단의 선제·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검찰청에 따르면 범죄로 기소된 정신질환자는 2006년 2869명에서 2015년 3244여명으로 10년 사이 13% 증가했다.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정신질환자만도 160명에서 358명으로 123%나 급증했다.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범인도 조현병 환자였음을 온 국민이 기억한다. 지난해 5월 수락산 여성 살인 사건, 10월 서울 오패산 터널 인근 경찰관 살해 사건 등도 조현병 환자의 범죄들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도 보호받을 인권이 있고,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도 없다.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서도 안 된다. 문제는 충돌 조절에 실패한 이들이 공격적·극단적인 행동을 벌여도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 자신도 모를 것이다. 환자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애꿎은 피해자들만 나올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용서 못할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거나 감형되기도 한다.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더구나 다음달부터 정신질환자들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도 어려워진다.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들도 상당수 사회로 복귀할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의 관리 대책을 더 지체할 수 없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러빙'
영화 ‘러빙’은 사랑으로 꽉 들어차 있다. 1958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살았던 한 부부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는 울분과 애틋함, 감동이 뒤섞여 있다.
백인 남성 리차드 러빙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는 당시 위헌이었던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저지른다. 워싱턴 D.C에서 결혼하고 돌아온 둘에게 주 법원은 25년 간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둘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몇 차례 귀향을 시도하지만 금세 체포되기 일쑤다.
이 부부의 삶은 위태롭고 어둡다. 지인은 물론 가족들의 미움까지 받는 이들의 삶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큰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겠다던 러빙의 꿈이 물거품화된 것처럼,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누리고픈 결혼 생활의 로망도 전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빙과 밀드레드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인권 운동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1967년 타 인종 간의 결혼금지법이 위헌으로 폐지된다. 이는 사랑의 승리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당시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종 차별은 존재한다. 여전히 부당한 대우와 그에 따른 심신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러빙’ 속 러빙 부부는 끊임없는 외부 공격들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고, 승리를 이뤄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거푸 등장하는 사랑의 훼방꾼들 때문에 지치기 일쑤였다. 실제 러빙 부부는 어땠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어둠을 겪었기에 승리의 빛을 맛볼 수 있었던 거다.
‘러빙’은 막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름도 낭만적인 러빙이 위헌을 합헌으로 바꾼 힘 역시 사랑에 있다. 사랑은 죄가 아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죄다. 아름답고 위대한 실화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러빙’의 감상 이유는 충분하다. 진한 러브 신(scene) 하나 없이도 충분히 가슴 벅찬 로맨스를 느끼게 만들어준 이 영화, 감격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광화문 멧돼지와 북한산 들개
언제부터인가 개를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장난감이나 소유물의 개념인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 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대접한다는 의미다. 대선 주자들은 반려동물을 위한 공약까지 내걸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이미 동물복지 공약을 했다.
손학규, 이재명, 안희정 등 대부분의 대선 주자도 반려동물의료보험 도입 등 동물복지를 위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동물을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며 애정을 쏟고 있음은 틀림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돼지의 지도로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내쫓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지만 또 다른 독재를 낳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출신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이란 저서에서 “동물들도 아픔을 느끼고, 슬픔과 기쁨 등 인간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낀다”며 동물을 해치는 행위를 비판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가 동물을 사랑하는 행위인지, 학대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시한다.
개와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면? 서울 북한산 인근에는 주인 잃은 반려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등산객과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밤이면 주택가로 접근하는 개들도 있다. 전염병도 우려된다. 들개의 수는 족히 100여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한 자치구는 마취총을 사용, 한 마리를 잡는 데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붙잡힌 들개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2주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 대부분 안락사된다.
그저께에는 서울 인왕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가 서울경찰청, 외교부 청사, 광화문광장 근처를 배회하다 택시에 치여 죽었다. 지난해 10월 종로구 사직터널 인근으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는 사살되고, 다른 한 마리는 도주했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만 1300회가 넘는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지방의 도시들은 더 심하다. 먹이를 찾거나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라고 한다. 멧돼지는 힘이 세고 난폭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데다 농작물 피해도 엄청나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중시하고 반려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럴 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결국은 인간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는 게 답인 것 같다. 멧돼지는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고 들개나 길고양이도 중성화 수술과 입양을 통해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3. [중앙일보][문유석 판사의 일상] 82년생 김지영들이 사는 세상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각종 통계와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보편적인 한국 여성의 생애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편적인 수준 이상으로 운이 좋은 여성이다. 중산층이고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있는 남편과 살고 있으며 평균 이상으로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고 평균 이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했다.
이 소설의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들은 치한, 갑질하는 거래처 부장 등 종종 맞닥뜨리는 평균 이하의 못된 인간들과의 조우가 아니다.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들이다.
김지영씨를 계속 괴롭히는 짝꿍을 따끔하게 혼내준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짝을 바꿔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구는 거라며 웃는다.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넘긴 할아버지 택시기사님은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면접 가는 것 같아 태워 준 거라고 말한다. 여직원들의 화장실 몰카 사진을 성인 사이트에서 발견하고는 자기들끼리 돌려 본 남자 직원들을 경찰에 신고한 여성에게, 평소 감각도 생각도 젊던 대표는 업계에 알려지면 회사는 어쩌라는 거냐, 가정 있는 남자들 인생을 망쳐야 속이 시원하냐고 타박한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한 시댁, 시어머니는 며느리 김지영씨와 함께 종일 정성스레 명절 음식을 만들어 친정 오자마자 뻗어버린 시누이에게 먹인다. 김지영씨가 깎는 배를 먹으며 고생스럽게 음식 만들지 말고 사다 먹자는 시누이에게 시어머니는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하는 게 뭐가 고생이냐고 묻는다.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많고 다정한 남편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김지영씨에게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는 걸 생각해 보라며 말한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가 사회를 규정한다. 덴마크·노르웨이라고 성범죄가 없겠으며 가정폭력이 없겠는가. 그 사회의 평균과 상식이 앞서 있기에 부러워하는 것이다. 악의 없이 준 상처라는 말은 변명이 못된다. 세상의 죄 대부분은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살려면 타인의 입장을 알 의무가 있다. 옛날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는데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들으면 반문하게 된다. 아니 원시시대보다 훨씬 안락한데 토굴에 살지 집은 왜 구하시나.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매순간 현재를 산다. 평등을 넘어 역차별 시대라고 소리 높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모든 것의 시작
봄비가 내렸다. 촉촉하게 젖은 대지는 태초의 향을 남발하며 가는 길마다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봄의 시작. 그 시작과 함께 첫 글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매일 같이 쥐어짜는 고된 작업 속에 결국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 뒤 있을 모교 수업을 위해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도시를 벗어난 버스. 새벽 차에 몸을 싣고 나는 숱한 전쟁을 치른 고된 병사처럼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빗방울이 부딪치는 버스 창. 뿌옇게 서리 낀 창문.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고향의 모습. 버스에 내려 숨을 들이마시자 내 몸을 감싸던 차 안의 온기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갑고 익숙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채워져 갔다. 봄의 향기. 아니, 봄을 품은 고향의 향기였다. 그 향기를 따라 늘어진 발걸음으로 어머니가 계신 미용실을 향해 걸었다. 얼
마 만에 이렇게 걸어봤던가. 가는 길목,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간판들과 골목 풍경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을 안고 미용실 문을 열자 익숙한 (코를 찌르는) 파마약 냄새가 맞아주었다. 익숙함, 변하지 않는 것들의 향수.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계절은 수십 번 바뀌고 세상은 믿지 못할 일들로 시끌벅적하다. IT 시대에 맞춰 시대의 흐름은 초고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려고 우리는 얼마나 뛰었던가. 열정과 순수함으로 도시라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뛰어든 앳된 소녀는 어느새 현실의 고난과 역경이란 전쟁을 치르는 상처투성이 병사로 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그게 이치다.
하지만, 그 이치를 벗어나는 것이 존재했다.
세상이 뒤집혀도 나만을 향해 온 정성으로 온기를 주는 사람. 자기 삶의 중심이 나를 향해 있는 사람.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준 사람. 변화란 이치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위대한 사람.
나의 “어머니”.
미용실 문을 연 병사는 세상 가장 기쁜 목소리로 불러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어느덧 작은 소녀가 되었고 어머니라는 대지의 품에 봄비처럼 스며들었다. 무언가의 시작. 그래. 나의 시작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긴 고민의 끝은 언제나 처음이듯, 나의 시작은 어머니. 이 글의 시작을 ‘어머니’께 드린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길 주저하지 않은 분. 그러기에 가장 고귀한 분. 어머니.
-태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자식은 행복하다- 러시아 속담.
5.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책에 대한 존경
언제나 아버지는 생일선물로 전집을 사다주셨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2학년 생일에는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받았다. 선물이라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생일 때마다 전집이 생겼지만 당연히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도 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을 집으로 부르셨다.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좀 비싸더라도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 사전’, ‘아메리카나 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도 무슨 책인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매년 거래해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결국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선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벽돌보다도 무거웠다. 아버지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책장 한쪽에 한 권씩 꽂아 넣었다.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내게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 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 집에는 늘 책이 있었고, 매일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날부터 다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내가 어려서 읽을 수 없을 뿐 저 책엔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비싼 전집에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와 욕심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지금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의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이들이 백과사전을 다 읽었을 리 없다. 대신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저속하고 경박한 야당 전·현직 의원의 박 전 대통령 조롱
한국 정치인이 뱉어내는 말의 저속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저속한 말이 나올 때마다 여론의 비판이 뒤따랐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저속한 말이 마치 재치와 유머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조롱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 중이던 시간에 인터넷TV와 인터뷰에서 “그분은 변기가 바뀌면 볼일을 못 본다. 서울구치소장이 오늘 빨리 변기 교체를 해놔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이다”라고 했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이 인천시장으로 있을 때 국정간담회 참석차 인천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시장실 변기를 청와대가 교체했다는 일화에 빗대 박 전 대통령을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 송 의원도 이 일화를 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변기 공주’라고 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영장 발부 뒤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제일 괴로운 과정은 머리핀을 뽑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안 의원의 조롱에 맞장구를 쳤다. 박 전 대통령이 평소의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를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으로, 대통령에서 수인(囚人)으로의 전락을 고소해하는 듯한 인상을 물씬 풍긴다.
이런 말들은 안 의원의 말이 폭소를 자아낸 것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환영받거나 유머 감각이 있다는 호평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한 국민 통합에 역행하는 저급한 정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개인적 불행을 넘어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의 말은 그 상처를 더 깊이 후벼 판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은 자신의 말들을 재치있는 유머로 여길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그들 심성의 저속`경박`황폐함을 재확인해줄 뿐이다. 비판하고 조롱하되 격과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는 비판과 조롱은 ‘언어 살인’이다.
2. 뚜렷한 수출 회복세 반갑지만 아직 갈 길 먼 경기 회복
올 들어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과 지난해 2년 연속한 수출 감소로 성장에 발목이 잡혔지만 올해는 석 달 연속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일 만큼 수출 증가세가 뚜렷하다. 특히 3월 수출액이 489억달러를 기록해 2년 3개월 만에 최대 실적을 냈다. 오랜 부진을 완전히 털어낸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나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수출이 증가한 것은 반가운 신호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1, 2월 대구경북의 수출도 모두 증가했다. 모처럼의 훈풍이다. 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가 2일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 보고’에 따르면 대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6% 증가한 5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산업용 기계와 공구, 자동차부품, 직물 부문이 수출을 견인했다. 경북 수출액도 21.4% 증가한 34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출 증가세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섣부르다.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완연한 봄을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사드 배치를 겨냥한 중국의 무분별한 경제 보복과 미국의 금리 인상, 보호무역 기조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또 5월 조기 대선과 맞물려 정부의 리더십 약화와 흐트러진 공직사회 기강도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이런 변수들을 완전히 뛰어넘거나 그 파급력을 최소한으로 낮추지 않는 한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말하기가 힘든 이유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말해주듯 2%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다. 10%를 넘나드는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가계 부채, 가계소득 감소, 얼어붙은 소비 심리 등 곳곳에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암초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수출이 유일하게 회복 기미를 보여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입에 올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출뿐 아니라 소비, 기업 투자, 고용, 가계소득 등 경제 전반에 골고루 햇살이 들도록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한다. 정부는 정치 일정과 상관없이 경제 활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정책 발굴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데일리]
3. 치졸한 사드보복, ‘깡패’ 중국의 민낯이다
우리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방침에 반발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갈수록 치졸해지고 있다. 비타민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사탕을 의약품으로 재분류하라며 통관을 거부하고 수출품에 붙은 부산의 영문 표기를 ‘PUSAN’이 아니라 ‘BUSAN’으로 바꾸라며 통관을 지연시키는 등 억지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날짜 표기(10-03-2017)에서 하이픈(-)도 빼라는 등 막무가내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리더국인 ‘G2’라고 부르기 민망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덩치만 큰 ‘깡패국가’의 민낯이다.
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의 75개 지점 영업정지 처분 기한이 속속 끝나 가지만 영업정지를 풀기는커녕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아 재차 연장하고 있다. 게다가 오는 16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는 아예 한국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간 협력을 위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베이징시장 면담계획이 중국 측의 갑작스러운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 한한령(限韓令), 관광중단, 기업 옥죄기 등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제품 불매운동과 반한(反韓)시위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중국 유통업체는 한국 신제품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시위와 불매운동에 동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랴오닝성 선양의 한 호텔에는 태극기를 바닥에 깔아놓고 “한국인을 밟아 죽이자”는 팻말을 세웠다고 한다. 시위가 자유스럽지 않은 중국에서 당국의 묵인 없이는 어려운 과격한 행동들이다. 누가 봐도 당국이 뒤에서 부추긴 사드 보복임에 틀림없다.
문화 교류를 막고 경제적 보복조치를 통해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겠다는 중국의 소아적 발상은 강대국으로서의 품격에 상처만 남기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정부는 중국에 대해 치졸한 보복조치를 즉각 중단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서야 한다. 불법적인 보복행위를 세계무역기구(WTO)의 안건 제기에 그치지 말고 정식 제소해야 한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핵 억제를 위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사드보복 문제도 반드시 거론하도록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4.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기대와 우려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정식 선출됐다. 어제 열린 수도권 순회경선에서 60.4%의 득표율로 누적 과반을 채움으로써 후보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미 탄핵정국이 시작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차이로 앞서 왔다는 점에서 진작부터 예견된 결과다. 이번 후보 지명으로 대권 고지에 한 발 더 성큼 다가선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후보로서 더 가다듬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이제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마지막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검증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미래 청사진이다. 문 후보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지난 대선에도 출마했었다는 점에서 국정에 대한 식견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국정 리더십을 회복하고 정부 기능을 효율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도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세금을 들여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은 어차피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분배 정책도 중요하지만 성장 정책에 근거한 발전 전략의 뒷받침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 후보로서는 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인 인식도 조속히 가라앉혀야만 한다. 특히 사드 배치에 따른 논란과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국방·안보에 있어서만큼은 여야와 정당의 구분 없이 일치된 목소리가 요구된다. 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대선이 본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반문(反文)’ 연대 움직임이 거세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상대 진영의 후보단일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해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바짝 추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 후보가 그동안의 우세를 지켜 선거에 승리하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5. 마침내 문 연 인터넷은행 한국 금융의 진짜 메기 되게 하라
국내 첫 인터넷은행 케이뱅크가 어제 문을 열었다. 카카오뱅크도 곧 뒤따를 것이다. 2015년 11월 예비인가를 받은 후 거의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산고도 컸다. 하지만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사반세기 만에 처음 보는 새 은행이라 기대가 크다.
인터넷은행은 전통적인 은행들과 유전자부터 다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며, 지점과 창구 인력을 없애 원가를 줄인 만큼 예금 금리는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존 금융회사들이 소홀히 했던 청년, 소상공인, 서민층 대상 중금리 대출로 틈새 시장을 파고들 수도 있다.
이러한 인터넷은행은 한국 금융을 휘저을 메기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은 정보기술과 금융을 접목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젖어 있던 기존 업계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 은행들이 촉발한 새로운 차원의 경쟁이 금융의 판을 흔들고 비효율을 제거해 한국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인터넷은행의 빠른 착근을 위해서는 우선 비대면 실명 확인과 간편한 인증, 24시간 서비스 과정에서 정보 보안 문제나 시스템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핀테크 기업으로서 성장을 가속화하려면 단순히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이 진짜 메기가 되도록 하려면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초기 투자와 튼튼한 자본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은산분리) 완화가 시급하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정보통신 기업들(KT와 카카오)의 의결권 지분을 지금처럼 4%로 묶어두면서 인터넷은행들이 금융의 메기가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국회는 더 이상 인터넷은행의 발목을 잡지 말고 산업자본의 의결권 지분 한도를 34~50%로 늘려주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6. "북핵 우리가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의논 대상도 못되는 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중국에 최후통첩성 경고를 했다.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미·중 양국이 두는 바둑 행마를 지켜만 봐야 하니 딱한 노릇이다.
트럼프 발언은 오는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북핵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카드를 슬쩍 내비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는 트럼프의 대북 상황인식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 단독으로 북한을 상대할 것이냐는 질문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구체적인 옵션까지 마련한 단계로 보여진다. FT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트럼프가 취임 직후 주문한 '대북옵션 리뷰'를 막 완료했다고 한다.
이 리뷰에 담긴 옵션이 어떤 내용일지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 조야에서 줄기차게 거론돼 온 대북 선제타격이 포함됐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협상테이블을 미·북 양자 간 담판 구조로 가져가는 내용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문제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는 이 중차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과연 우리 의견이 반영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누차에 걸쳐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주로 중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일본에 대한 지지를 먼저 언급했다. 지난 2월 북한이 북극성 2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의 첫 반응은 "일본을 100%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최소 형식상으로는 한국을 최우선 당사자로 대우했다. 북한 핵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 의견을 존중해 계획을 접기도 했다. 지금은 의견 반영은 고사하고 미국 쪽 기류가 한국 측에 그때그때 전달되는지도 의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방송에 나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라고 했는데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 수가 없다.
[중앙일보]
7.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족쇄부터 걷어내야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국내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출범했다. K뱅크는 계좌를 개설할 때도 은행에 갈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에 신분증만 찍어 올리면 공인인증서 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어서다. 경조사비를 보낼 때도 좋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퀵송금’ 서비스를 통해 문자메시지만으로 상대방 계좌에 송금할 수 있다.
현금을 찾을 때는 은행보다 더 많은 전국 1만여GS25 편의점에 가면 된다. 체크카드 없이도 계좌번호만 입력해 입출금하는 무카드 서비스도 있다. 인터넷은행은 점포와 창구인력이 없으니 시중은행보다 예·적금 금리가 높고 대출금리는 낮다.
이렇게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잘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은산(銀産)분리 족쇄’에 사로잡혀 있어 자본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K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으로 출범했지만 시스템 구축 등에 이미 상당액을 썼기 때문에 곧 증자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 10%(의결권은 4%)에 묶여 있다. 재벌의 계열 은행 돈 빼먹기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정치권이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금융산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핀테크(금융+기술)가 본격화하면서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인터넷은행이 20개가 넘는다. 일본도 오래전에 인터넷은행이 출범했고, 중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인터넷은행이 잇따라 출범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ICT 기업만이라도 보유지분을 50%까지 허용해 달라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시대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금 확충이 어려우면 운영자금 부족으로 자칫 대형 금융사고가 날 수도 있다. 과도한 금융 규제가 국내 은행 경쟁력을 우간다보다 뒤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이 금융후진국에서 맴돌지 않으려면 인터넷은행만이라도 규제의 족쇄부터 풀어줘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하루라도 일해 보고 싶다는 ‘청년 탈진세대’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20, 30대가 올 2월 1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이래 최대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5.7% 늘었고,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과 비교해도 35%나 많다. 취업난에 빠진 20대는 전체 연령대 중 정서적 탈진이 가장 심하다는 것이 동아일보 ‘2020 행복원정대’ 취재팀의 분석 결과다.
취업 무경험자가 늘어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시간 아르바이트나 이른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지원한다면 취업률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하루만이라도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 청년들의 바람이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기성세대의 주문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통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노동시장 개혁과 직업교육 확대,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4월 23일 1차, 5월 7일 결선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공무원을 줄이고 그 예산으로 직업교육을 늘리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무소속 후보가 ‘청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공공부문 확대 공약은 되레 취업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청년에게 당의정 같은 공약이 아닌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비전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9. 주한 일본 대사 85일 만의 복귀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으로 돌아갔던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가 오늘 복귀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3일 "한국 대선 정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 준수를 직접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은 일시 귀국 85일 만이다. 양국 갈등으로 인한 일본 대사 공백으로는 최장 기간이다.
부산 소녀상 설치는 우리 민간단체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는 원천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대사 소환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아베 총리 지지율 제고를 위해 한국 때리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북한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이 높아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으로 양국 관계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두 나라 관계가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
한·일은 지난 4년여간 단절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전적으로 일본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친일 대 반일'의 단선적 접근으로는 일본과의 다층적 관계, 격변하는 동북아 질서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없다. 그런데도 유력 대선 주자들은 그런 한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지금 보수·진보 후보를 막론하고 위안부 합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주장한다. 한번 맺은 국가 간 합의가 정권이 바뀐다고 뒤집힌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일본 대사와 함께 주한 미국 대사가 석 달째 공석인 것도 비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러·일 대사를 이미 지명하고도 한국 대사만 내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10. 늘어나는 정신질환자 범죄 대책 지체 말아야
지난주 인천에서 10대 소녀가 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인 이 소녀는 조현병 환자였다. 우울증이 심해 고교를 자퇴했는데 최근에는 조현병으로 악화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앞서 지난 2월 조현병을 앓는 10대 아들이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존속살해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잔인한 범죄 행위를 보면 도저히 어린 10대들의 범죄행위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 원인이 온전치 못한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하나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조현병이란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분열증이다. 정신질환자 중에는 약물치료 등으로 효과를 보기도 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거부하거나 제때 관리를 받지 못해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거나 심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나 사회의 특단의 선제·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검찰청에 따르면 범죄로 기소된 정신질환자는 2006년 2869명에서 2015년 3244여명으로 10년 사이 13% 증가했다.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정신질환자만도 160명에서 358명으로 123%나 급증했다.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범인도 조현병 환자였음을 온 국민이 기억한다. 지난해 5월 수락산 여성 살인 사건, 10월 서울 오패산 터널 인근 경찰관 살해 사건 등도 조현병 환자의 범죄들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도 보호받을 인권이 있고,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도 없다.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서도 안 된다. 문제는 충돌 조절에 실패한 이들이 공격적·극단적인 행동을 벌여도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 자신도 모를 것이다. 환자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애꿎은 피해자들만 나올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용서 못할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거나 감형되기도 한다.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더구나 다음달부터 정신질환자들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도 어려워진다.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들도 상당수 사회로 복귀할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의 관리 대책을 더 지체할 수 없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러빙'
영화 ‘러빙’은 사랑으로 꽉 들어차 있다. 1958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살았던 한 부부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는 울분과 애틋함, 감동이 뒤섞여 있다.
백인 남성 리차드 러빙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는 당시 위헌이었던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저지른다. 워싱턴 D.C에서 결혼하고 돌아온 둘에게 주 법원은 25년 간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둘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몇 차례 귀향을 시도하지만 금세 체포되기 일쑤다.
이 부부의 삶은 위태롭고 어둡다. 지인은 물론 가족들의 미움까지 받는 이들의 삶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큰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겠다던 러빙의 꿈이 물거품화된 것처럼,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누리고픈 결혼 생활의 로망도 전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빙과 밀드레드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인권 운동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1967년 타 인종 간의 결혼금지법이 위헌으로 폐지된다. 이는 사랑의 승리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당시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종 차별은 존재한다. 여전히 부당한 대우와 그에 따른 심신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러빙’ 속 러빙 부부는 끊임없는 외부 공격들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고, 승리를 이뤄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거푸 등장하는 사랑의 훼방꾼들 때문에 지치기 일쑤였다. 실제 러빙 부부는 어땠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어둠을 겪었기에 승리의 빛을 맛볼 수 있었던 거다.
‘러빙’은 막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름도 낭만적인 러빙이 위헌을 합헌으로 바꾼 힘 역시 사랑에 있다. 사랑은 죄가 아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죄다. 아름답고 위대한 실화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러빙’의 감상 이유는 충분하다. 진한 러브 신(scene) 하나 없이도 충분히 가슴 벅찬 로맨스를 느끼게 만들어준 이 영화, 감격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광화문 멧돼지와 북한산 들개
언제부터인가 개를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장난감이나 소유물의 개념인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 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대접한다는 의미다. 대선 주자들은 반려동물을 위한 공약까지 내걸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이미 동물복지 공약을 했다.
손학규, 이재명, 안희정 등 대부분의 대선 주자도 반려동물의료보험 도입 등 동물복지를 위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동물을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며 애정을 쏟고 있음은 틀림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돼지의 지도로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내쫓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지만 또 다른 독재를 낳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출신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이란 저서에서 “동물들도 아픔을 느끼고, 슬픔과 기쁨 등 인간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낀다”며 동물을 해치는 행위를 비판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가 동물을 사랑하는 행위인지, 학대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시한다.
개와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면? 서울 북한산 인근에는 주인 잃은 반려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등산객과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밤이면 주택가로 접근하는 개들도 있다. 전염병도 우려된다. 들개의 수는 족히 100여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한 자치구는 마취총을 사용, 한 마리를 잡는 데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붙잡힌 들개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2주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 대부분 안락사된다.
그저께에는 서울 인왕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가 서울경찰청, 외교부 청사, 광화문광장 근처를 배회하다 택시에 치여 죽었다. 지난해 10월 종로구 사직터널 인근으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는 사살되고, 다른 한 마리는 도주했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만 1300회가 넘는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지방의 도시들은 더 심하다. 먹이를 찾거나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라고 한다. 멧돼지는 힘이 세고 난폭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데다 농작물 피해도 엄청나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중시하고 반려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럴 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결국은 인간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는 게 답인 것 같다. 멧돼지는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고 들개나 길고양이도 중성화 수술과 입양을 통해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3. [중앙일보][문유석 판사의 일상] 82년생 김지영들이 사는 세상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각종 통계와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보편적인 한국 여성의 생애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편적인 수준 이상으로 운이 좋은 여성이다. 중산층이고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있는 남편과 살고 있으며 평균 이상으로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고 평균 이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했다.
이 소설의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들은 치한, 갑질하는 거래처 부장 등 종종 맞닥뜨리는 평균 이하의 못된 인간들과의 조우가 아니다.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들이다.
김지영씨를 계속 괴롭히는 짝꿍을 따끔하게 혼내준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짝을 바꿔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구는 거라며 웃는다.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넘긴 할아버지 택시기사님은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면접 가는 것 같아 태워 준 거라고 말한다. 여직원들의 화장실 몰카 사진을 성인 사이트에서 발견하고는 자기들끼리 돌려 본 남자 직원들을 경찰에 신고한 여성에게, 평소 감각도 생각도 젊던 대표는 업계에 알려지면 회사는 어쩌라는 거냐, 가정 있는 남자들 인생을 망쳐야 속이 시원하냐고 타박한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한 시댁, 시어머니는 며느리 김지영씨와 함께 종일 정성스레 명절 음식을 만들어 친정 오자마자 뻗어버린 시누이에게 먹인다. 김지영씨가 깎는 배를 먹으며 고생스럽게 음식 만들지 말고 사다 먹자는 시누이에게 시어머니는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하는 게 뭐가 고생이냐고 묻는다.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많고 다정한 남편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김지영씨에게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는 걸 생각해 보라며 말한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가 사회를 규정한다. 덴마크·노르웨이라고 성범죄가 없겠으며 가정폭력이 없겠는가. 그 사회의 평균과 상식이 앞서 있기에 부러워하는 것이다. 악의 없이 준 상처라는 말은 변명이 못된다. 세상의 죄 대부분은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살려면 타인의 입장을 알 의무가 있다. 옛날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는데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들으면 반문하게 된다. 아니 원시시대보다 훨씬 안락한데 토굴에 살지 집은 왜 구하시나.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매순간 현재를 산다. 평등을 넘어 역차별 시대라고 소리 높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모든 것의 시작
봄비가 내렸다. 촉촉하게 젖은 대지는 태초의 향을 남발하며 가는 길마다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봄의 시작. 그 시작과 함께 첫 글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매일 같이 쥐어짜는 고된 작업 속에 결국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 뒤 있을 모교 수업을 위해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도시를 벗어난 버스. 새벽 차에 몸을 싣고 나는 숱한 전쟁을 치른 고된 병사처럼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빗방울이 부딪치는 버스 창. 뿌옇게 서리 낀 창문.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고향의 모습. 버스에 내려 숨을 들이마시자 내 몸을 감싸던 차 안의 온기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갑고 익숙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채워져 갔다. 봄의 향기. 아니, 봄을 품은 고향의 향기였다. 그 향기를 따라 늘어진 발걸음으로 어머니가 계신 미용실을 향해 걸었다. 얼
마 만에 이렇게 걸어봤던가. 가는 길목,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간판들과 골목 풍경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을 안고 미용실 문을 열자 익숙한 (코를 찌르는) 파마약 냄새가 맞아주었다. 익숙함, 변하지 않는 것들의 향수.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계절은 수십 번 바뀌고 세상은 믿지 못할 일들로 시끌벅적하다. IT 시대에 맞춰 시대의 흐름은 초고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려고 우리는 얼마나 뛰었던가. 열정과 순수함으로 도시라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뛰어든 앳된 소녀는 어느새 현실의 고난과 역경이란 전쟁을 치르는 상처투성이 병사로 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그게 이치다.
하지만, 그 이치를 벗어나는 것이 존재했다.
세상이 뒤집혀도 나만을 향해 온 정성으로 온기를 주는 사람. 자기 삶의 중심이 나를 향해 있는 사람.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준 사람. 변화란 이치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위대한 사람.
나의 “어머니”.
미용실 문을 연 병사는 세상 가장 기쁜 목소리로 불러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어느덧 작은 소녀가 되었고 어머니라는 대지의 품에 봄비처럼 스며들었다. 무언가의 시작. 그래. 나의 시작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긴 고민의 끝은 언제나 처음이듯, 나의 시작은 어머니. 이 글의 시작을 ‘어머니’께 드린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길 주저하지 않은 분. 그러기에 가장 고귀한 분. 어머니.
-태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자식은 행복하다- 러시아 속담.
5.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책에 대한 존경
언제나 아버지는 생일선물로 전집을 사다주셨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2학년 생일에는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받았다. 선물이라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생일 때마다 전집이 생겼지만 당연히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도 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을 집으로 부르셨다.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좀 비싸더라도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 사전’, ‘아메리카나 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도 무슨 책인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매년 거래해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결국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선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벽돌보다도 무거웠다. 아버지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책장 한쪽에 한 권씩 꽂아 넣었다.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내게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 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 집에는 늘 책이 있었고, 매일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날부터 다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내가 어려서 읽을 수 없을 뿐 저 책엔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비싼 전집에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와 욕심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지금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의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이들이 백과사전을 다 읽었을 리 없다. 대신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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