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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법원에도 정치 바람 불기 시작한 건가
지난 3월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사법부 개혁 관련 설문을 진행해 외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 했다. 일부 언론은 이 대회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막으려 했고 여기에 반발한 이모 판사의 행정처 인사 발령이 취소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일로 '고위 관계자'로 지목된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사퇴하고 진상조사위까지 만들어지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진상조사위가 어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사퇴한 임 차장은 이 일과 직접 관련이 없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이규진 상임위원이 "학술대회를 내부 행사로 치르고 비보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임 회장이었던 이 위원은 행정처 회의에서 관련 보고도 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 부담을 느낀 이 판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행정처 발령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평소 일선 판사들에게 위압적으로 대한다는 불만, 고질적인 판사들의 인사 불만 등이 겹쳐져 일이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는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사법부 수뇌부 교체기와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이런 소란이 벌어진 바탕에는 법원 내부의 진보·보수 세력 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진보적 성향 판사 모임이었던 옛 '우리법 연구회' 출신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 설립을 주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판사들 내부도 좌·우로 나뉘어 정권 교체기마다 음해하고 비난하면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 정치 풍토로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2. 복지 경쟁 大選 몇 번 더 하면 나라 거덜나지 않겠나
대선 후보들이 연간 10조원도 더 드는 현금 주는 복지를 하겠다며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월 20만원 주는 기초연금을 내년부터 월 25만원으로, 2021년부터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연평균 4조4000억원이 추가로 들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른 정당들도 비슷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아무도 현실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문 후보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안 후보는 재정지출 합리화와 같은 상투적인 설명을 했다. 복지 부담은 지자체도 분담해야 하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써먹은 복지 공약이다. 월 9만6000원 주던 기초노령연금을 월 20만원으로 올리면서 올해에만 예산이 10조6000억원 들어간다. 이걸 내년부터 25만~30만원으로 올리면 추가로 4조~8조원이 든다.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700만명쯤 되는 65세 이상 인구가 2020년에 813만명, 2033년에는 1400만명으로 불어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월 10만원 증액으로도 기초연금 예산이 2021년에 18조~20조원 들고, 2030년이면 80조원 필요하다. 불과 13년 뒤의 일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초연금이 10만원씩 오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안 후보는 0~11세가 있는 가정 중에 소득 하위 80%까지 10만원씩, 문 후보는 0~5세에 월 10만원씩을 약속했다. 아동수당도 공약 따라 연 2조6000억원에서 6조9000억원이 든다.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이니 우리도 신설하자고 한다. 이미 우리에게도 '아동수당'이라는 이름만 없다 뿐이지, 0~5세 아동에게 보편 복지가 시행되고 있다. 현재 0~5세 아동에게는 보육료, 양육수당, 유아학비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복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 위에 현금 제공을 더하자는 것이다.
올해 예산 400조원 중 3분의 1(130조원)이 복지 예산이다. 65세 이상에겐 기초연금을 포함해 총 12조7700억원, 0~5세에겐 12조4000억원가량의 복지 예산이 지원된다. 합쳐서 25조원 넘게 주는데 10조원가량의 현금성 복지를 무차별로 더 주자는 것이다. 가장 시급하고 효율적인 복지인가를 따진 것이 아니다. 표 많고 표 매수 효과가 큰 곳을 겨냥했을 뿐이다.
우리 복지비 지출은 GDP의 9.7%(2014년)로OECD 국가 평균(21.1%)에 크게 못 미치는 건 맞는다. '저(低)부담-저(低)복지' 국가에서 이제 '중(中)부담-중(中)복지'로 넘어가는 단계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복지 예산 늘어나는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5년간 복지 지출이 연평균 7.4%씩 늘어왔다. OECD 국가들의 2배 가까이 된다. 선진국들이 50년 넘게 걸린 길을 압축해 따라가는데 그 방향과 속도가 잘못되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국민들에게 공짜로 준 돈을 도로 줄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는 집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설계도부터 제대로 그려야 하고 기초공사를 단단히 해야 하며 집 치장은 그 이후 일이다. 형편에 맞지 않게 집을 너무 크게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복지 정책이 선거판에만 올라가면 설계도와 기초공사가 생략되고, 형편에 맞지도 않게 크고 화려한 집을 돈 안 들이고 지을 수 있다는 집장수들만 설친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없는 대선 주자들이 '이 한 판만 먹고보자'는 노름판 심리의 포로가 돼 있다. 누가 '100 준다'고 공약하면 다른 후보는 '나는 100 받고 100 더'라고 나온다. 이른바 '미 투(metoo)' 전략이다. 이런 대선(大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것이고 그 시기는 그리 머지않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3. 한반도 불안감 부추기는 일본, 호들갑 자제하라
최근 일본이 한반도 위기를 틈타 도를 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가상 상황을 전제로 오해를 야기하거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가 한반도 유사시 과도한 대응을 시사한 일본 측 발언에 유감을 표시한 건 마땅한 일이다.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땅에 체류 중인 일본인이 5만7000명을 넘는다니 아베 정권이 대피 대책을 세우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우익 언론은 그렇다 치고 내각의 2인자라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위기 상황을 요란하게 떠드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불안감만을 부추길 뿐이다. 필요한 대책이라면 조용히 세우고 철저히 수행하면 될 일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거듭된 발언은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는다. 그는 지난 12일 한반도 유사시 “북한 납치 일본인 피해자를 구하도록 미국 측의 협력을 요청 중”이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틈타 실속을 챙기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게다가 그는 다음날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해 발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 안 된 사실을 거론하며 군사력 증강을 합리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발언이다.
더 문제는 아베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해 “상륙 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등과 관련, 일본 정부가 보호해야 할 사람인지 스크리닝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한 것이다. 전쟁 발발을 전제로 한국인들이 난민으로 변해 몰려오는 상황을 상상한 것이다. 옆 나라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호들갑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소녀상 갈등으로 돌아갔던 일본 대사가 막 귀국해 한·일 관계가 겨우 봉합되려는 시점이다.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방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형성되지 않도록 적극 도와도 모자랄 판 아닌가. 이제 아베 정권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언행에 신중을 기해 주길 바란다.
[동아일보]
4. 언제까지 ‘미세먼지 동굴’ 지하철 이용해야 하나
전국 6개 도시 지하철 중 작년에 인천의 지하역사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80.9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가장 나빴고 서울이 그 다음이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인천은 측정지점 14곳 중 절반인 7곳이, 서울은 11곳 중 4곳이 연평균 ‘나쁨’(81∼150μg)에 해당됐다. 나머지 광주 대전 대구 부산에서도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좋음’(0∼30μg)을 나타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환경부는 550개가 넘는 전국 지하철 역 중 39개 역에 설치된 47개의 자동측정기로 미세먼지를 측정한다. 2013년 국립암센터 등이 서울 지하역사 100곳의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1∼4호선 모두 평균 90μg을 넘어 이번 수치보다 훨씬 나쁘게 나왔다. 환경부 수치가 더 좋게 나온 것은 제한된 측정 방식 덕분일 수 있다.
열차가 진입하는 승강장 앞쪽은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151μg 이상)일 때가 많다. 철로의 마모 등으로 생기거나, 외부에서 유입된 터널 안 미세먼지가 열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 한꺼번에 몰려든다. 승객들이 알아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객실의 미세먼지는 터널 안 미세먼지 때문에 역사보다 2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현재 객실의 미세먼지를 측정해 알려주는 시스템은 운영되지 않는다.
올 3월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작년보다 25%나 더 높았고 작년에 한 번도 없었던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3차례나 발령됐다. 지하역사 공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됐을 것이다. 환경부는 어머니들이 분노하자 이달 초에야 수도권 공공차량 2부제를 강화하는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환경부가 올해 말 지하역사 미세먼지를 보통(31∼80μg) 범위인 m³당 70μg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달성할지 미덥지 않다. 강력한 지하철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5. 북핵 억제 대가로 한미FTA 청구서 들이민 트럼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어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검토해 개선(review and reform)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한미 FTA 발효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라며 “미국 산업이 진출하기엔 너무 많은 진입장벽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최고위 인사가 한국 방문에서 직접 FTA 개정을 언급함으로써 한미 FTA 재협상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바로 전날 “미국은 100% 한국 편에 설 것”이라고 말한 펜스 부통령이 하루 만에 한미 FTA 개정을 피력한 데 대해 귀를 의심하는 건 어쩌면 한국적 정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이 북핵 위협을 막는 대가로 무역 역조를 해소하는 것은 당연한 ‘기브 앤드 테이크’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며 대중(對中) 무역역조를 비판했던 트럼프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북한 압박 대가로 환율조작국 지정을 면제해주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국으로선 트럼프가 선거 유세에서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킬러”라고 비난했을 때부터 FTA 재협상이 예고된 것으로 보고 대비했어야 옳다. 최근 5년 동안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교역은 연평균 2% 감소했지만 한미 간 교역은 오히려 1.7% 증가했다는 무역협회의 3월 발표도 미국에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3월 한미 FTA를 포함한 기존 협상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자료를 내놨을 때도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번에도 산업부와 외교부는 재협상이 아닌 ‘미세조정’이라는 안이한 인식이다.
‘미국 우선주의’ 공약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트럼프 행정부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0만 개 일자리 창출과 7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라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워싱턴에 날아갔고, 그 대가로 미일방위조약 강화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는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한미FTA가 한미 양국에 ‘윈윈’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한미 FTA가 한국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많다며 재협상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타결한 한미FTA를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입장을 뒤집었다. 문 후보는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한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밝히길 바란다.
[매일신문]
6. 뜀박질하는 소득세`건보료에 국민 허리가 휜다
장기 불황으로 소득 증가가 거북이걸음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소득세 및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뜀박질하고 있다. 소득 증가 속도를 훨씬 웃도는 세금`건보료 인상은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다시 경기 침체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18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근로자의 평균급여가 지난 10년간 21% 오르는 동안 소득세는 75%나 올랐다. 2006년 4천47만원이던 근로자 평균연봉이 2015년 4천904만원으로 857만원(21%)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근로소득결정액은 175만원에서 306만원으로 131만원(75%) 늘어난 것이다. 세금 증가율이 근로소득 증가율보다 3.57배 높은 셈이다.
정부 곳간을 채우는 데 돈을 더 부담한 쪽은 기업이 아니라 가계였다. 지난해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14.6%(1조8천억원)를 초과하는 세금을 소득세로 거둬갔다. 민간 부문에서는 돈 가뭄 아우성인데 정부 곳간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계 돈줄을 죄는 데에는 사회보험료도 한몫 거들고 있다.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징수액은 2001년 5조2천408억원에서 2015년 38조9천659억원으로 7.4배 늘어났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징수액도 같은 기간 3조6천154억원에서 8조1천177억원으로 2.2배 증가했다.
이처럼 가계에서 비명이 나오는 데도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선심성 공약 발표에만 관심을 둘 뿐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공정한 부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돈을 쓰겠다”는 공약은 난무하지만 “과세 체계를 합리화해 가계 고통을 경감하겠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거시경제적인 안목에서도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브레이크 없는 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세금 물가 연동제’ 같은 방안의 도입을 이제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연간 50조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회계도 중앙정부 기금 예산에 귀속시켜 국회 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경향신문]
7. 유승민, 당 안팎 수구세력에 맞서 새로운 보수로 승부하라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그제는 이종구 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오는 29일 이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대선 전략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사퇴론에 불을 댕겼다. 대선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9일까지 당이 원하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면 사퇴나 후보단일화 등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 몇몇 의원들도 사퇴를 거론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심심하면 유 후보의 사퇴론을 제기하며 자기 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유 후보와 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당과 후보 모두 지지율이 2~5%에 묶여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해한다. 득표율이 10% 미만에 그치면 100억원이 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의 사퇴는 명분이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 1·2위 후보를 남기고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다른 당과의 후보단일화는 사실상 하나의 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창당대회를 연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의 당으로 뭉치겠다는 발상은 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친박근혜 새누리당’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유 후보는 지난주 원내 5개 정당 후보들 간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더불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유 후보 개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바른정당이 내세운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면서 바르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건강한 보수, 따뜻한 보수의 기치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지금 바른정당이 진정한 보수의 대표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당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후보를 스스로 흔든다면 그것처럼 낡은 행태는 없다. 바른정당이 선거자금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리어카를 끌며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재집권도 천막당사에서 시작됐다. 지금 바른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유 후보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바른정당과 유 후보가 진보적 시민들까지 맘껏 지지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기 바란다.
8. 중국발 미세먼지와 국제법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있을 것이므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도 중국발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중국 정부가 중국발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발생하게 한다면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먼저 참고할 만한 국제분쟁의 사례로 1941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트레일 제련소(TrailSmelter) 사건’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중재재판소는 캐나다 트레일 지역의 제련소에서 넘어온 아황산가스로 인해 미국 워싱턴주의 과수농장 등이 입은 피해를 배상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국제법상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적용하였다. 이 원칙에 따르면 어느 국가도 자신의 관할권 내에서의 활동으로 다른 국가 또는 자국 관할권 바깥 지역에 환경피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트레일 제련소 사건 판결 이후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채택된 ‘인간환경에 관한 유엔회의 선언’(스톡홀름 선언)의 제21원칙과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의 제2원칙이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이 국제관습법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국제법상의 의무가 있다.
또한,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모두 당사국인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194조 2항에도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은 “각국은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주지 않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고, 또한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사고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이 협약에 따라 자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확산되지 아니하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기본적으로 해양환경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제194조 2항은 각국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손해를 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환경에 대한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환경, 즉 해양환경이나 대기환경 등에 손해를 주고 있고, 중국 정부가 미세먼지의 역외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가 유엔해양법협약 제194조 2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중국이 제194조 2항 등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협약 위반사항에 대해 어떤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까? 유엔해양법협약은 분쟁 당사국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의견교환, 조정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이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등을 통한 분쟁 해결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 즉, 중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요청하면 중재재판소를 설립하여 이 문제를 다룰 가능성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이 중국과의 남중국해 관련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상의 중재재판에 회부하여 유리한 중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입증하여야 하는 과제가 있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예상할 수 있다.
2007년 우리 환경부의 한 연구보고서도 황사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해 국제법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며 환경협약 체결 등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도 황사뿐만 아니라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볼 때, 중국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 등의 위반을 이유로 국제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 발해만의 해양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환경협약을 새로 체결하는 방안을 계속하여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현재 적용될 수 있는 국제협약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여야 한다.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매일경제]
9. 잇단 성장률 상향,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내수침체
한국은행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모처럼 우리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 KDI는 어제 발표한 '2017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해 12월 발표했을 때보다 0.2%포인트 높인 2.6%로 조정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도 3년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 올린 바 있다.
성장률의 잇단 상향 조정은 미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업황이 개선되며 수출은 5개월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이에 따른 투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복병이 많다. 특히 내수불황이 깊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걱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은 2.0%로 지난해 2.5%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KDI도 올해 총소비 증가율이 2.3%에서 2.2%로 하락할 것으로 보았다. 내수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수경기를 살릴 호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민간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데다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으면서 고용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조선을 비롯한 주력 업종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실업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내수를 활성화할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KDI는 성장률 상향 조정이 경기가 치고 올라갈 모멘텀은 아니라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했고,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실질구매력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아 빠른 경기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많다"고 지적했는데 옳은 말이다.
견고한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려면 내수경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여행과 소비를 유도하는 단기 처방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해소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소비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10. 통합 외치는 한편으로 지역감정 부추기는 선거운동
19대 대선은 보수 대 진보 공식이 깨지면서 과거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던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유세장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지역주의 망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각당 후보들이 통합과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캠프 일각에서는 지역주의에 기대 표심을 자극하려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7일 전북 전주를 찾아 "안철수가 대통령이 돼야 전북 출신 인사가 차별을 안 받는다"며 '호남 차별론'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또 "문재인이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내버렸다"고 주장하며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민이 이깁니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걸고 통합과 미래, 새 정치를 얘기하고 있지만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대표는 구시대적인 지역주의 전략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경북대 유세에 앞서 지원 유세에 나온 조응천 의원도 경북 출신임을 강조하며 "왜 민주당이 전라도 당이냐, 국민의당이 전라도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문 후보가 "전 지역의 환영받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했으니 엇박자가 난 꼴이다.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도 대구·경북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물밑 합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지원 당과 연대·연합하는 순간 보수지역인 대구·경북이 다 죽는다"며 지역주의를 꺼내들었는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보수=영남, 진보=호남'으로 편을 가르고 정책보다는 지역색으로 표를 구걸해왔다. 하지만 특정 정당 깃발만 꽂으면 표를 몰아주는 후진적인 지역주의는 청산해야 할 구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으로 치러지는 만큼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절호의 기회다. 대선 후보들이 앞장서 지역주의 극복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이 생기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매일춘추] 피그말리온 효과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이야기이다. 뒤주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영조. 이 부자의 이야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영조는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재위 기간이 길었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할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평가받는다. 또 채식을 즐기고, 상에 반찬을 많이 두지 않았으며, 청렴한 삶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사도세자는 첫째 아들을 잃은 후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그만큼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2세 때 세자로 책봉하고 3세 때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사도세자는 기대에 걸맞은 자질을 보이며 영조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영조는 사도세자를 엄하게 대했으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무섭게 사도세자를 대했다.
이런 교육관은 세자에게 큰 부담이 됐고, 점점 학문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엇갈린 이들의 운명은 훗날 많은 사건과 서로에 대한 오해를 거치며 아비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기대만큼 자식을 엄하게 대했고, 기대에 이르지 못한 자식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를 이끌 왕을 교육시키는 것은 평범한 교육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교육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영조에게는 조금 다른 교육관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시대 부모들에게 필요한 교육관은 무엇일까. 많은 교육적 이론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성취를 중시하기보다는 자신과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긍정의 힘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피그말리온효과는 이를 가장 잘 입증해주는 이론이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IQ가 높다는 칭찬으로 긍정의 마인드를 상기시켜 줬더니 실제로 성적이 올랐다는 실험결과를 보면 긍정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긍정의 마인드는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넘어진 아픔을 보듬어주는 것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칭찬해 준다면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조선일보][만물상] 0교시 체육
미국 시카고 근처 네이퍼빌 센트럴고교에서는 매년 9월 독특한 신입생 신고식이 열린다. 오전 7시 졸음 덜 깬 눈으로 등교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소리친다. "지금부터 운동장에 나가 트랙(400m) 네 바퀴를 달린다. 마지막 한 바퀴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전력 질주!" 이 학교의 전통인 '0교시 체육' 수업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학생들 뇌를 깨운 후 교실로 보낸다. 이 수업을 받은 학생은 읽기 능력과 문장 이해력이 17% 향상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나면 공부 잘됐던 기억이 있다. 과학자들은 "당연한 현상"이라 말한다. 1995년 UC 어바인 연구팀은 운동하면 뇌에서 학습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뇌세포가 자극받는다고 발표했다. 2007년 독일 학자들은 운동 후 어휘 습득 속도가 20% 빨라진다고 했다. 매일 40분 신체 활동을 하면 뇌가 자극을 받아 학습 능력이 오르고 집중력·창의력이 향상된다는 하버드대 연구도 있다.
꼭 공부 때문에 스포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영국 사립학교에선 폭력·음주 문제가 심각했다.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년들이 기숙사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과 주먹으로 풀었다. 고민하던 학교는 학생들을 럭비 구장으로 불러냈다. 땀 흘리고 뛰면서 소년들은 패기와 협동과 배려심을 익혔다. 웰링턴 장군은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스쿨 운동장에서 쟁취했다"고 했다. 한 사회 인재들의 책임감과 정의감은 운동장에서 길러진다.
한국의 학교에선 체육이 천덕꾸러기 신세 된 지 오래다. 고교에서 체육 수업을 하면 학부모들이 "왜 아이들 뺑뺑이 돌리느냐"고 항의한다. 입시 설명회에선 "아이들 운동시키지 마세요. 피곤해서 잠만 자요" 하는 요구가 쏟아진다. 지난해 한 조사에선 고교생 절반이 "1주일에 땀 흘리는 운동 시간이 1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5년 전 서울대가 신입생 체력 검사를 했더니 남학생 체지방률이 55~64세 수준이었다. 근력은 55~59세, 유연성은 40~49세와 맞먹었다. 청년이 아니라 장년이 지난 몸으로 대학에 들어온다.
10여 년 전 네이퍼빌에서 시작된 학교 스포츠 혁신은 미국 내 6만여 학교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펼치는 존 레이티 하버드 의대 교수는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 앉아 지내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능력과 창의력을 끌어내린다"고 말했다. 입시 만능 교육에 대한 뼈아픈 경고다. 마라톤같이 긴 인생을 살 아이들이다. 문제 한둘 푸는 것보다 삶을 완주해 낼 생각의 힘과 정신력, 체력을 키워줘야 한다.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다.
3. [한국일보][편집국에서] '진격'의 넷플릭스, 뒤로 가는 국내 방송
2010년 개봉한 영화 ‘하녀’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와 방송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청률 연금술사’였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서였다. 김 작가는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여의도 대표 작가와 충무로 유명 감독의 만남이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호기심을 불러 모았다.
달콤한 결과로 이어지리라 여겨지던 두 사람의 조우는 쓴맛만 남기고 끝났다. 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임 감독이 수정한 것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김 작가가 하차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가 위주의 방송계 문화와 감독 중심의 영화계 관행이 충돌하면서 파국을 불렀다고 해석했다. 김 작가와 임 감독의 악연은 영상언어를 토대로 한 방송과 영화가 업계 생리 때문에 국내에선 융합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얼마 전 흔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의기투합이었다. 지난해 두 사람은 각각의 행보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김 작가는 드라마 '시그널'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 감독은 영화 '터널'로 700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그 동안 일해왔던 사람들과 차기 작을 궁리해도 아쉬울 것 없을 두 사람은 내년 방송 예정인 사극 ‘킹덤’으로 만난다. 조선을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키는 이색 소재다. 8부작이 될 이 드라마는 제작비로 수백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김 작가와 김 감독의 협업을 주선한 쪽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다.
190여 개국에서 가입자가 9,400만 명이나 되는 미국 공룡기업이다. 가입자당 적어도 월 9.9 달러(약 1만1,200원)를 받으니 매달 1조 원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거대한 전달망이 국내 방송과 영화의 합작이라는 흔치 않은 사례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행보는 ‘킹덤’에 그치지 않는다. 만화가 천계영의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넷플릭스의 야심과 스케일은 최근 공개한 다국적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잘 반영돼 있다.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 브라질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12명의 대결을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앞의 6개국 방송인들이 각기 자신의 나라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따로따로 진행을 한다.
한국에선 박경림 서경석이 진행자인데, 넷플릭스는 각 나라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6개 편집본을 따로 만들어 나라별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적을 따지면 미국이지만 한국 등 다른 5개국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글로벌 하다. 올해만도 자체 콘텐츠 확보에 60억 달러를 쓰겠다는 기업다운 면모다.
전통적인 TV시장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를 만들어가는 넷플릭스의 모습은 두렵고도 두렵다. 방송법에 따라 해외 자본의 국내 방송사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제 이런 보호막은 국내 방송산업에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방송지형을 뒤바꿀 대지진이 일어날 조짐인데, 태풍이나 수해 대비만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까.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아직 10만 명 이내로 추산되나 과연 5년 뒤에도 이 정도 수치에 머물까.
방송업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위기 불감증이 뚜렷하다. 여전히 지상파TV와 케이블채널, IPTV 등 구별 짓기에 여념이 없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이끌 강력한 정책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상파TV,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의 운영 행태나 전략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최근 대법원은 원래 직종과 무관한 부서로 부당 전보된 MBC PD와 기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에서 PD와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도 업무를 담당해온 중견 직원들에게 5년 가량 스케이트장 관리나 협찬 영업을 시킨 게 잘못됐다는 취지다. 국내 방송의 콘텐츠 강화 운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국내 방송계에 묻고 싶어진다. 한국 방송, 정말 살아남을 생각은 하고 있나요?
4.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배은망덕의 세 가지 원인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은혜를 흔쾌히 받고 그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아름다운 일이다. 공개적으로 은혜를 입는 일이 부끄럽다면 그 은혜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게 낫다. 이는 은혜 입은 것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공개적으로 존경을 표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평판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 4년?~AD 65년)는 ‘베풂의 즐거움’에서 은혜를 기꺼이 베풀고 흔쾌히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희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은혜를 주고받은 이들의 아름다운 사연보다 배은과 갈등의 사례를 더 많이 보여 준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특히 경계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이를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빚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은혜를 망각한 이들에게 은혜를 기억하게 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자만심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외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며 불평하고 배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후한 사람들이 자주 겪는 오류다.
두 번째는 탐욕이 배은망덕으로 이끈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뻗어나가려 하므로 은혜로 얻은 어떠한 재물과 권력, 명예도 잠시 감사할 뿐 더 많은 것을 욕구하면서 배은에 빠진다. 호민관이 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고 치안관의 자리에 더 빨리 오르지 못한 것을 불평하고, 정작 치안관이 되면 집정관이 되지 못한 것을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나친 탐욕은 대중의 기대와 은혜를 가벼이 여기고 자신만의 성공을 추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이끄는 가장 난폭하고 심각한 악덕은 질투다. 자신이 받은 은혜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졌다며 시샘하면서 배은망덕의 길로 빠진다. 다른 이들의 상황과 매력을 세심하게 살피고 관대하게 평가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기에 생기는 일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다른 이들에 비추어 보잘것없다는 질투는 은혜 베푼 이를 원망하게 만든다. “질투의 시선이 갈기갈기 찢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은혜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숱한 배은망덕의 사례들은 어느 경우에 속할까. 어떤 은혜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불평할 소지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상황과 운명에 맞게 누군가의 배려와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는 품성을 갖출 때만 배은망덕의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사만물에 깊이 감사하자.
5.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천재들의 브로맨스
얼마 전 런던에서 만개를 앞둔 봄꽃을 보며 잠시 망중한을 누린 런던대학 근처의 공원 이름은 러셀 광장이었다. 이 공원 옆 드모르간 하우스는 수학적 귀납법을 체계화한 영국 수학자의 이름을 땄다. 이 건물의 주인은 런던수학회이고 건물 안에서 가장 큰 회의실은 하디 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셀과 하디라는 두 이름을 한 골목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하디는 최근 개봉됐던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인도 수학 천재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로 나와 국내에 알려졌다. 인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며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라마누잔을 케임브리지대학에 초청해 천재성을 꽃피게 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하디 자신도 수학적 엄격함을 영국에 도입한 훌륭한 수학자였지만, 자기 평생의 가장 큰 성취는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천재와 교수의 브로맨스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실화 버전에 가깝다.
버트런드 러셀은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논문을 쓴 수학자였고, 칸토르 집합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러셀 패러독스를 창안한 논리학자였으며, 화이트헤드와 함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를 저술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1950년 노벨상은 정력적인 저술 작업에 대한 문학상이었다.
러셀과 하디와 라마누잔은 5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 여러 갈래로 얽힌다. 라마누잔이 인도를 떠나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건 1914년이었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건 1916년, 영국왕립학회의 역사상 최연소 펠로로 선출된 건 1918년인데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가 됐다. 교수가 된 것이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평화운동을 벌이다 1916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직에서 해임됐다. 하디는 러셀 구명 운동에 나서지만, 결국 라마누잔이 1919년에 인도로 돌아가자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긴다. 하디가 트리니티를 떠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러셀이 없는 곳, 라마누잔도 떠난 곳에 더 머무르기 싫어서였을까. 하지만 1931년에 하디는 케임브리지 교수로 되돌아간다.
런던수학회는 왜 학회 건물에서 가장 큰 방을 하디 룸이라고 했을까. 대개 학문 분야에서는 학자들의 결사체가 있어서 학문적 진전의 확인과 기록, 그리고 난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교환 매체 역할을 한다. 수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논문지를 발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리하고 드러낸다. 보통은 각 나라 수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성격 때문에 미국수학회나 대한수학회처럼 국가 이름이 앞에 붙는다.
반면에 영국은 런던수학회나 에든버러수학회같이 도시명이 붙은 수학회가 몇 개 있다. 오랜 영연방 역사의 산물인데, 통상적으론 런던수학회가 영국수학회 역할을 한다. 하디는 70세의 나이로 1947년 사망할 때까지 독신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런던수학회에 기부했다. 덕분에 수학자들이 내는 연회비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림을 꾸려 나가던 런던수학회는 건물을 샀고 건물 내 일부 공간을 타 학회에 대여해 안정된 재정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학술지 발간 등의 활동에서 세계적으로 드문 규모와 수준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런던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본 학자들의 선의와 지적 우정의 흔적은 러셀 광장의 봄꽃만큼이나 여운이 남았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법원에도 정치 바람 불기 시작한 건가
지난 3월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사법부 개혁 관련 설문을 진행해 외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 했다. 일부 언론은 이 대회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막으려 했고 여기에 반발한 이모 판사의 행정처 인사 발령이 취소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일로 '고위 관계자'로 지목된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사퇴하고 진상조사위까지 만들어지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진상조사위가 어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사퇴한 임 차장은 이 일과 직접 관련이 없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이규진 상임위원이 "학술대회를 내부 행사로 치르고 비보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임 회장이었던 이 위원은 행정처 회의에서 관련 보고도 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 부담을 느낀 이 판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행정처 발령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평소 일선 판사들에게 위압적으로 대한다는 불만, 고질적인 판사들의 인사 불만 등이 겹쳐져 일이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는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사법부 수뇌부 교체기와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이런 소란이 벌어진 바탕에는 법원 내부의 진보·보수 세력 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진보적 성향 판사 모임이었던 옛 '우리법 연구회' 출신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 설립을 주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판사들 내부도 좌·우로 나뉘어 정권 교체기마다 음해하고 비난하면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 정치 풍토로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2. 복지 경쟁 大選 몇 번 더 하면 나라 거덜나지 않겠나
대선 후보들이 연간 10조원도 더 드는 현금 주는 복지를 하겠다며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월 20만원 주는 기초연금을 내년부터 월 25만원으로, 2021년부터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연평균 4조4000억원이 추가로 들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른 정당들도 비슷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아무도 현실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문 후보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안 후보는 재정지출 합리화와 같은 상투적인 설명을 했다. 복지 부담은 지자체도 분담해야 하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써먹은 복지 공약이다. 월 9만6000원 주던 기초노령연금을 월 20만원으로 올리면서 올해에만 예산이 10조6000억원 들어간다. 이걸 내년부터 25만~30만원으로 올리면 추가로 4조~8조원이 든다.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700만명쯤 되는 65세 이상 인구가 2020년에 813만명, 2033년에는 1400만명으로 불어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월 10만원 증액으로도 기초연금 예산이 2021년에 18조~20조원 들고, 2030년이면 80조원 필요하다. 불과 13년 뒤의 일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초연금이 10만원씩 오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안 후보는 0~11세가 있는 가정 중에 소득 하위 80%까지 10만원씩, 문 후보는 0~5세에 월 10만원씩을 약속했다. 아동수당도 공약 따라 연 2조6000억원에서 6조9000억원이 든다.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이니 우리도 신설하자고 한다. 이미 우리에게도 '아동수당'이라는 이름만 없다 뿐이지, 0~5세 아동에게 보편 복지가 시행되고 있다. 현재 0~5세 아동에게는 보육료, 양육수당, 유아학비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복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 위에 현금 제공을 더하자는 것이다.
올해 예산 400조원 중 3분의 1(130조원)이 복지 예산이다. 65세 이상에겐 기초연금을 포함해 총 12조7700억원, 0~5세에겐 12조4000억원가량의 복지 예산이 지원된다. 합쳐서 25조원 넘게 주는데 10조원가량의 현금성 복지를 무차별로 더 주자는 것이다. 가장 시급하고 효율적인 복지인가를 따진 것이 아니다. 표 많고 표 매수 효과가 큰 곳을 겨냥했을 뿐이다.
우리 복지비 지출은 GDP의 9.7%(2014년)로OECD 국가 평균(21.1%)에 크게 못 미치는 건 맞는다. '저(低)부담-저(低)복지' 국가에서 이제 '중(中)부담-중(中)복지'로 넘어가는 단계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복지 예산 늘어나는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5년간 복지 지출이 연평균 7.4%씩 늘어왔다. OECD 국가들의 2배 가까이 된다. 선진국들이 50년 넘게 걸린 길을 압축해 따라가는데 그 방향과 속도가 잘못되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국민들에게 공짜로 준 돈을 도로 줄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는 집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설계도부터 제대로 그려야 하고 기초공사를 단단히 해야 하며 집 치장은 그 이후 일이다. 형편에 맞지 않게 집을 너무 크게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복지 정책이 선거판에만 올라가면 설계도와 기초공사가 생략되고, 형편에 맞지도 않게 크고 화려한 집을 돈 안 들이고 지을 수 있다는 집장수들만 설친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없는 대선 주자들이 '이 한 판만 먹고보자'는 노름판 심리의 포로가 돼 있다. 누가 '100 준다'고 공약하면 다른 후보는 '나는 100 받고 100 더'라고 나온다. 이른바 '미 투(metoo)' 전략이다. 이런 대선(大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것이고 그 시기는 그리 머지않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3. 한반도 불안감 부추기는 일본, 호들갑 자제하라
최근 일본이 한반도 위기를 틈타 도를 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가상 상황을 전제로 오해를 야기하거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가 한반도 유사시 과도한 대응을 시사한 일본 측 발언에 유감을 표시한 건 마땅한 일이다.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땅에 체류 중인 일본인이 5만7000명을 넘는다니 아베 정권이 대피 대책을 세우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우익 언론은 그렇다 치고 내각의 2인자라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위기 상황을 요란하게 떠드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불안감만을 부추길 뿐이다. 필요한 대책이라면 조용히 세우고 철저히 수행하면 될 일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거듭된 발언은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는다. 그는 지난 12일 한반도 유사시 “북한 납치 일본인 피해자를 구하도록 미국 측의 협력을 요청 중”이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틈타 실속을 챙기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게다가 그는 다음날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해 발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 안 된 사실을 거론하며 군사력 증강을 합리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발언이다.
더 문제는 아베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해 “상륙 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등과 관련, 일본 정부가 보호해야 할 사람인지 스크리닝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한 것이다. 전쟁 발발을 전제로 한국인들이 난민으로 변해 몰려오는 상황을 상상한 것이다. 옆 나라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호들갑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소녀상 갈등으로 돌아갔던 일본 대사가 막 귀국해 한·일 관계가 겨우 봉합되려는 시점이다.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방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형성되지 않도록 적극 도와도 모자랄 판 아닌가. 이제 아베 정권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언행에 신중을 기해 주길 바란다.
[동아일보]
4. 언제까지 ‘미세먼지 동굴’ 지하철 이용해야 하나
전국 6개 도시 지하철 중 작년에 인천의 지하역사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80.9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가장 나빴고 서울이 그 다음이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인천은 측정지점 14곳 중 절반인 7곳이, 서울은 11곳 중 4곳이 연평균 ‘나쁨’(81∼150μg)에 해당됐다. 나머지 광주 대전 대구 부산에서도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좋음’(0∼30μg)을 나타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환경부는 550개가 넘는 전국 지하철 역 중 39개 역에 설치된 47개의 자동측정기로 미세먼지를 측정한다. 2013년 국립암센터 등이 서울 지하역사 100곳의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1∼4호선 모두 평균 90μg을 넘어 이번 수치보다 훨씬 나쁘게 나왔다. 환경부 수치가 더 좋게 나온 것은 제한된 측정 방식 덕분일 수 있다.
열차가 진입하는 승강장 앞쪽은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151μg 이상)일 때가 많다. 철로의 마모 등으로 생기거나, 외부에서 유입된 터널 안 미세먼지가 열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 한꺼번에 몰려든다. 승객들이 알아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객실의 미세먼지는 터널 안 미세먼지 때문에 역사보다 2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현재 객실의 미세먼지를 측정해 알려주는 시스템은 운영되지 않는다.
올 3월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작년보다 25%나 더 높았고 작년에 한 번도 없었던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3차례나 발령됐다. 지하역사 공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됐을 것이다. 환경부는 어머니들이 분노하자 이달 초에야 수도권 공공차량 2부제를 강화하는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환경부가 올해 말 지하역사 미세먼지를 보통(31∼80μg) 범위인 m³당 70μg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달성할지 미덥지 않다. 강력한 지하철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5. 북핵 억제 대가로 한미FTA 청구서 들이민 트럼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어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검토해 개선(review and reform)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한미 FTA 발효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라며 “미국 산업이 진출하기엔 너무 많은 진입장벽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최고위 인사가 한국 방문에서 직접 FTA 개정을 언급함으로써 한미 FTA 재협상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바로 전날 “미국은 100% 한국 편에 설 것”이라고 말한 펜스 부통령이 하루 만에 한미 FTA 개정을 피력한 데 대해 귀를 의심하는 건 어쩌면 한국적 정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이 북핵 위협을 막는 대가로 무역 역조를 해소하는 것은 당연한 ‘기브 앤드 테이크’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며 대중(對中) 무역역조를 비판했던 트럼프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북한 압박 대가로 환율조작국 지정을 면제해주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국으로선 트럼프가 선거 유세에서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킬러”라고 비난했을 때부터 FTA 재협상이 예고된 것으로 보고 대비했어야 옳다. 최근 5년 동안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교역은 연평균 2% 감소했지만 한미 간 교역은 오히려 1.7% 증가했다는 무역협회의 3월 발표도 미국에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3월 한미 FTA를 포함한 기존 협상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자료를 내놨을 때도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번에도 산업부와 외교부는 재협상이 아닌 ‘미세조정’이라는 안이한 인식이다.
‘미국 우선주의’ 공약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트럼프 행정부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0만 개 일자리 창출과 7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라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워싱턴에 날아갔고, 그 대가로 미일방위조약 강화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는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한미FTA가 한미 양국에 ‘윈윈’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한미 FTA가 한국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많다며 재협상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타결한 한미FTA를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입장을 뒤집었다. 문 후보는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한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밝히길 바란다.
[매일신문]
6. 뜀박질하는 소득세`건보료에 국민 허리가 휜다
장기 불황으로 소득 증가가 거북이걸음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소득세 및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뜀박질하고 있다. 소득 증가 속도를 훨씬 웃도는 세금`건보료 인상은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다시 경기 침체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18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근로자의 평균급여가 지난 10년간 21% 오르는 동안 소득세는 75%나 올랐다. 2006년 4천47만원이던 근로자 평균연봉이 2015년 4천904만원으로 857만원(21%)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근로소득결정액은 175만원에서 306만원으로 131만원(75%) 늘어난 것이다. 세금 증가율이 근로소득 증가율보다 3.57배 높은 셈이다.
정부 곳간을 채우는 데 돈을 더 부담한 쪽은 기업이 아니라 가계였다. 지난해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14.6%(1조8천억원)를 초과하는 세금을 소득세로 거둬갔다. 민간 부문에서는 돈 가뭄 아우성인데 정부 곳간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계 돈줄을 죄는 데에는 사회보험료도 한몫 거들고 있다.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징수액은 2001년 5조2천408억원에서 2015년 38조9천659억원으로 7.4배 늘어났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징수액도 같은 기간 3조6천154억원에서 8조1천177억원으로 2.2배 증가했다.
이처럼 가계에서 비명이 나오는 데도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선심성 공약 발표에만 관심을 둘 뿐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공정한 부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돈을 쓰겠다”는 공약은 난무하지만 “과세 체계를 합리화해 가계 고통을 경감하겠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거시경제적인 안목에서도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브레이크 없는 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세금 물가 연동제’ 같은 방안의 도입을 이제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연간 50조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회계도 중앙정부 기금 예산에 귀속시켜 국회 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경향신문]
7. 유승민, 당 안팎 수구세력에 맞서 새로운 보수로 승부하라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그제는 이종구 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오는 29일 이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대선 전략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사퇴론에 불을 댕겼다. 대선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9일까지 당이 원하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면 사퇴나 후보단일화 등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 몇몇 의원들도 사퇴를 거론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심심하면 유 후보의 사퇴론을 제기하며 자기 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유 후보와 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당과 후보 모두 지지율이 2~5%에 묶여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해한다. 득표율이 10% 미만에 그치면 100억원이 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의 사퇴는 명분이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 1·2위 후보를 남기고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다른 당과의 후보단일화는 사실상 하나의 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창당대회를 연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의 당으로 뭉치겠다는 발상은 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친박근혜 새누리당’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유 후보는 지난주 원내 5개 정당 후보들 간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더불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유 후보 개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바른정당이 내세운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면서 바르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건강한 보수, 따뜻한 보수의 기치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지금 바른정당이 진정한 보수의 대표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당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후보를 스스로 흔든다면 그것처럼 낡은 행태는 없다. 바른정당이 선거자금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리어카를 끌며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재집권도 천막당사에서 시작됐다. 지금 바른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유 후보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바른정당과 유 후보가 진보적 시민들까지 맘껏 지지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기 바란다.
8. 중국발 미세먼지와 국제법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있을 것이므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도 중국발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중국 정부가 중국발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발생하게 한다면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먼저 참고할 만한 국제분쟁의 사례로 1941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트레일 제련소(TrailSmelter) 사건’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중재재판소는 캐나다 트레일 지역의 제련소에서 넘어온 아황산가스로 인해 미국 워싱턴주의 과수농장 등이 입은 피해를 배상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국제법상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적용하였다. 이 원칙에 따르면 어느 국가도 자신의 관할권 내에서의 활동으로 다른 국가 또는 자국 관할권 바깥 지역에 환경피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트레일 제련소 사건 판결 이후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채택된 ‘인간환경에 관한 유엔회의 선언’(스톡홀름 선언)의 제21원칙과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의 제2원칙이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이 국제관습법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국제법상의 의무가 있다.
또한,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모두 당사국인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194조 2항에도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은 “각국은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주지 않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고, 또한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사고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이 협약에 따라 자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확산되지 아니하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기본적으로 해양환경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제194조 2항은 각국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손해를 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환경에 대한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환경, 즉 해양환경이나 대기환경 등에 손해를 주고 있고, 중국 정부가 미세먼지의 역외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가 유엔해양법협약 제194조 2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중국이 제194조 2항 등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협약 위반사항에 대해 어떤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까? 유엔해양법협약은 분쟁 당사국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의견교환, 조정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이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등을 통한 분쟁 해결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 즉, 중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요청하면 중재재판소를 설립하여 이 문제를 다룰 가능성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이 중국과의 남중국해 관련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상의 중재재판에 회부하여 유리한 중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입증하여야 하는 과제가 있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예상할 수 있다.
2007년 우리 환경부의 한 연구보고서도 황사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해 국제법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며 환경협약 체결 등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도 황사뿐만 아니라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볼 때, 중국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 등의 위반을 이유로 국제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 발해만의 해양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환경협약을 새로 체결하는 방안을 계속하여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현재 적용될 수 있는 국제협약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여야 한다.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매일경제]
9. 잇단 성장률 상향,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내수침체
한국은행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모처럼 우리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 KDI는 어제 발표한 '2017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해 12월 발표했을 때보다 0.2%포인트 높인 2.6%로 조정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도 3년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 올린 바 있다.
성장률의 잇단 상향 조정은 미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업황이 개선되며 수출은 5개월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이에 따른 투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복병이 많다. 특히 내수불황이 깊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걱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은 2.0%로 지난해 2.5%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KDI도 올해 총소비 증가율이 2.3%에서 2.2%로 하락할 것으로 보았다. 내수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수경기를 살릴 호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민간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데다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으면서 고용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조선을 비롯한 주력 업종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실업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내수를 활성화할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KDI는 성장률 상향 조정이 경기가 치고 올라갈 모멘텀은 아니라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했고,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실질구매력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아 빠른 경기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많다"고 지적했는데 옳은 말이다.
견고한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려면 내수경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여행과 소비를 유도하는 단기 처방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해소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소비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10. 통합 외치는 한편으로 지역감정 부추기는 선거운동
19대 대선은 보수 대 진보 공식이 깨지면서 과거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던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유세장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지역주의 망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각당 후보들이 통합과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캠프 일각에서는 지역주의에 기대 표심을 자극하려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7일 전북 전주를 찾아 "안철수가 대통령이 돼야 전북 출신 인사가 차별을 안 받는다"며 '호남 차별론'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또 "문재인이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내버렸다"고 주장하며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민이 이깁니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걸고 통합과 미래, 새 정치를 얘기하고 있지만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대표는 구시대적인 지역주의 전략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경북대 유세에 앞서 지원 유세에 나온 조응천 의원도 경북 출신임을 강조하며 "왜 민주당이 전라도 당이냐, 국민의당이 전라도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문 후보가 "전 지역의 환영받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했으니 엇박자가 난 꼴이다.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도 대구·경북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물밑 합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지원 당과 연대·연합하는 순간 보수지역인 대구·경북이 다 죽는다"며 지역주의를 꺼내들었는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보수=영남, 진보=호남'으로 편을 가르고 정책보다는 지역색으로 표를 구걸해왔다. 하지만 특정 정당 깃발만 꽂으면 표를 몰아주는 후진적인 지역주의는 청산해야 할 구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으로 치러지는 만큼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절호의 기회다. 대선 후보들이 앞장서 지역주의 극복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이 생기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매일춘추] 피그말리온 효과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이야기이다. 뒤주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영조. 이 부자의 이야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영조는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재위 기간이 길었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할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평가받는다. 또 채식을 즐기고, 상에 반찬을 많이 두지 않았으며, 청렴한 삶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사도세자는 첫째 아들을 잃은 후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그만큼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2세 때 세자로 책봉하고 3세 때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사도세자는 기대에 걸맞은 자질을 보이며 영조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영조는 사도세자를 엄하게 대했으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무섭게 사도세자를 대했다.
이런 교육관은 세자에게 큰 부담이 됐고, 점점 학문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엇갈린 이들의 운명은 훗날 많은 사건과 서로에 대한 오해를 거치며 아비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기대만큼 자식을 엄하게 대했고, 기대에 이르지 못한 자식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를 이끌 왕을 교육시키는 것은 평범한 교육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교육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영조에게는 조금 다른 교육관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시대 부모들에게 필요한 교육관은 무엇일까. 많은 교육적 이론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성취를 중시하기보다는 자신과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긍정의 힘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피그말리온효과는 이를 가장 잘 입증해주는 이론이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IQ가 높다는 칭찬으로 긍정의 마인드를 상기시켜 줬더니 실제로 성적이 올랐다는 실험결과를 보면 긍정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긍정의 마인드는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넘어진 아픔을 보듬어주는 것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칭찬해 준다면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조선일보][만물상] 0교시 체육
미국 시카고 근처 네이퍼빌 센트럴고교에서는 매년 9월 독특한 신입생 신고식이 열린다. 오전 7시 졸음 덜 깬 눈으로 등교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소리친다. "지금부터 운동장에 나가 트랙(400m) 네 바퀴를 달린다. 마지막 한 바퀴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전력 질주!" 이 학교의 전통인 '0교시 체육' 수업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학생들 뇌를 깨운 후 교실로 보낸다. 이 수업을 받은 학생은 읽기 능력과 문장 이해력이 17% 향상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나면 공부 잘됐던 기억이 있다. 과학자들은 "당연한 현상"이라 말한다. 1995년 UC 어바인 연구팀은 운동하면 뇌에서 학습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뇌세포가 자극받는다고 발표했다. 2007년 독일 학자들은 운동 후 어휘 습득 속도가 20% 빨라진다고 했다. 매일 40분 신체 활동을 하면 뇌가 자극을 받아 학습 능력이 오르고 집중력·창의력이 향상된다는 하버드대 연구도 있다.
꼭 공부 때문에 스포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영국 사립학교에선 폭력·음주 문제가 심각했다.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년들이 기숙사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과 주먹으로 풀었다. 고민하던 학교는 학생들을 럭비 구장으로 불러냈다. 땀 흘리고 뛰면서 소년들은 패기와 협동과 배려심을 익혔다. 웰링턴 장군은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스쿨 운동장에서 쟁취했다"고 했다. 한 사회 인재들의 책임감과 정의감은 운동장에서 길러진다.
한국의 학교에선 체육이 천덕꾸러기 신세 된 지 오래다. 고교에서 체육 수업을 하면 학부모들이 "왜 아이들 뺑뺑이 돌리느냐"고 항의한다. 입시 설명회에선 "아이들 운동시키지 마세요. 피곤해서 잠만 자요" 하는 요구가 쏟아진다. 지난해 한 조사에선 고교생 절반이 "1주일에 땀 흘리는 운동 시간이 1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5년 전 서울대가 신입생 체력 검사를 했더니 남학생 체지방률이 55~64세 수준이었다. 근력은 55~59세, 유연성은 40~49세와 맞먹었다. 청년이 아니라 장년이 지난 몸으로 대학에 들어온다.
10여 년 전 네이퍼빌에서 시작된 학교 스포츠 혁신은 미국 내 6만여 학교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펼치는 존 레이티 하버드 의대 교수는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 앉아 지내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능력과 창의력을 끌어내린다"고 말했다. 입시 만능 교육에 대한 뼈아픈 경고다. 마라톤같이 긴 인생을 살 아이들이다. 문제 한둘 푸는 것보다 삶을 완주해 낼 생각의 힘과 정신력, 체력을 키워줘야 한다.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다.
3. [한국일보][편집국에서] '진격'의 넷플릭스, 뒤로 가는 국내 방송
2010년 개봉한 영화 ‘하녀’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와 방송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청률 연금술사’였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서였다. 김 작가는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여의도 대표 작가와 충무로 유명 감독의 만남이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호기심을 불러 모았다.
달콤한 결과로 이어지리라 여겨지던 두 사람의 조우는 쓴맛만 남기고 끝났다. 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임 감독이 수정한 것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김 작가가 하차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가 위주의 방송계 문화와 감독 중심의 영화계 관행이 충돌하면서 파국을 불렀다고 해석했다. 김 작가와 임 감독의 악연은 영상언어를 토대로 한 방송과 영화가 업계 생리 때문에 국내에선 융합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얼마 전 흔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의기투합이었다. 지난해 두 사람은 각각의 행보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김 작가는 드라마 '시그널'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 감독은 영화 '터널'로 700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그 동안 일해왔던 사람들과 차기 작을 궁리해도 아쉬울 것 없을 두 사람은 내년 방송 예정인 사극 ‘킹덤’으로 만난다. 조선을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키는 이색 소재다. 8부작이 될 이 드라마는 제작비로 수백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김 작가와 김 감독의 협업을 주선한 쪽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다.
190여 개국에서 가입자가 9,400만 명이나 되는 미국 공룡기업이다. 가입자당 적어도 월 9.9 달러(약 1만1,200원)를 받으니 매달 1조 원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거대한 전달망이 국내 방송과 영화의 합작이라는 흔치 않은 사례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행보는 ‘킹덤’에 그치지 않는다. 만화가 천계영의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넷플릭스의 야심과 스케일은 최근 공개한 다국적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잘 반영돼 있다.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 브라질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12명의 대결을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앞의 6개국 방송인들이 각기 자신의 나라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따로따로 진행을 한다.
한국에선 박경림 서경석이 진행자인데, 넷플릭스는 각 나라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6개 편집본을 따로 만들어 나라별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적을 따지면 미국이지만 한국 등 다른 5개국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글로벌 하다. 올해만도 자체 콘텐츠 확보에 60억 달러를 쓰겠다는 기업다운 면모다.
전통적인 TV시장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를 만들어가는 넷플릭스의 모습은 두렵고도 두렵다. 방송법에 따라 해외 자본의 국내 방송사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제 이런 보호막은 국내 방송산업에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방송지형을 뒤바꿀 대지진이 일어날 조짐인데, 태풍이나 수해 대비만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까.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아직 10만 명 이내로 추산되나 과연 5년 뒤에도 이 정도 수치에 머물까.
방송업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위기 불감증이 뚜렷하다. 여전히 지상파TV와 케이블채널, IPTV 등 구별 짓기에 여념이 없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이끌 강력한 정책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상파TV,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의 운영 행태나 전략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최근 대법원은 원래 직종과 무관한 부서로 부당 전보된 MBC PD와 기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에서 PD와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도 업무를 담당해온 중견 직원들에게 5년 가량 스케이트장 관리나 협찬 영업을 시킨 게 잘못됐다는 취지다. 국내 방송의 콘텐츠 강화 운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국내 방송계에 묻고 싶어진다. 한국 방송, 정말 살아남을 생각은 하고 있나요?
4.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배은망덕의 세 가지 원인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은혜를 흔쾌히 받고 그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아름다운 일이다. 공개적으로 은혜를 입는 일이 부끄럽다면 그 은혜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게 낫다. 이는 은혜 입은 것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공개적으로 존경을 표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평판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 4년?~AD 65년)는 ‘베풂의 즐거움’에서 은혜를 기꺼이 베풀고 흔쾌히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희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은혜를 주고받은 이들의 아름다운 사연보다 배은과 갈등의 사례를 더 많이 보여 준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특히 경계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이를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빚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은혜를 망각한 이들에게 은혜를 기억하게 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자만심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외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며 불평하고 배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후한 사람들이 자주 겪는 오류다.
두 번째는 탐욕이 배은망덕으로 이끈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뻗어나가려 하므로 은혜로 얻은 어떠한 재물과 권력, 명예도 잠시 감사할 뿐 더 많은 것을 욕구하면서 배은에 빠진다. 호민관이 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고 치안관의 자리에 더 빨리 오르지 못한 것을 불평하고, 정작 치안관이 되면 집정관이 되지 못한 것을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나친 탐욕은 대중의 기대와 은혜를 가벼이 여기고 자신만의 성공을 추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이끄는 가장 난폭하고 심각한 악덕은 질투다. 자신이 받은 은혜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졌다며 시샘하면서 배은망덕의 길로 빠진다. 다른 이들의 상황과 매력을 세심하게 살피고 관대하게 평가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기에 생기는 일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다른 이들에 비추어 보잘것없다는 질투는 은혜 베푼 이를 원망하게 만든다. “질투의 시선이 갈기갈기 찢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은혜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숱한 배은망덕의 사례들은 어느 경우에 속할까. 어떤 은혜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불평할 소지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상황과 운명에 맞게 누군가의 배려와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는 품성을 갖출 때만 배은망덕의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사만물에 깊이 감사하자.
5.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천재들의 브로맨스
얼마 전 런던에서 만개를 앞둔 봄꽃을 보며 잠시 망중한을 누린 런던대학 근처의 공원 이름은 러셀 광장이었다. 이 공원 옆 드모르간 하우스는 수학적 귀납법을 체계화한 영국 수학자의 이름을 땄다. 이 건물의 주인은 런던수학회이고 건물 안에서 가장 큰 회의실은 하디 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셀과 하디라는 두 이름을 한 골목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하디는 최근 개봉됐던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인도 수학 천재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로 나와 국내에 알려졌다. 인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며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라마누잔을 케임브리지대학에 초청해 천재성을 꽃피게 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하디 자신도 수학적 엄격함을 영국에 도입한 훌륭한 수학자였지만, 자기 평생의 가장 큰 성취는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천재와 교수의 브로맨스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실화 버전에 가깝다.
버트런드 러셀은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논문을 쓴 수학자였고, 칸토르 집합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러셀 패러독스를 창안한 논리학자였으며, 화이트헤드와 함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를 저술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1950년 노벨상은 정력적인 저술 작업에 대한 문학상이었다.
러셀과 하디와 라마누잔은 5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 여러 갈래로 얽힌다. 라마누잔이 인도를 떠나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건 1914년이었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건 1916년, 영국왕립학회의 역사상 최연소 펠로로 선출된 건 1918년인데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가 됐다. 교수가 된 것이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평화운동을 벌이다 1916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직에서 해임됐다. 하디는 러셀 구명 운동에 나서지만, 결국 라마누잔이 1919년에 인도로 돌아가자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긴다. 하디가 트리니티를 떠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러셀이 없는 곳, 라마누잔도 떠난 곳에 더 머무르기 싫어서였을까. 하지만 1931년에 하디는 케임브리지 교수로 되돌아간다.
런던수학회는 왜 학회 건물에서 가장 큰 방을 하디 룸이라고 했을까. 대개 학문 분야에서는 학자들의 결사체가 있어서 학문적 진전의 확인과 기록, 그리고 난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교환 매체 역할을 한다. 수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논문지를 발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리하고 드러낸다. 보통은 각 나라 수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성격 때문에 미국수학회나 대한수학회처럼 국가 이름이 앞에 붙는다.
반면에 영국은 런던수학회나 에든버러수학회같이 도시명이 붙은 수학회가 몇 개 있다. 오랜 영연방 역사의 산물인데, 통상적으론 런던수학회가 영국수학회 역할을 한다. 하디는 70세의 나이로 1947년 사망할 때까지 독신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런던수학회에 기부했다. 덕분에 수학자들이 내는 연회비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림을 꾸려 나가던 런던수학회는 건물을 샀고 건물 내 일부 공간을 타 학회에 대여해 안정된 재정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학술지 발간 등의 활동에서 세계적으로 드문 규모와 수준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런던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본 학자들의 선의와 지적 우정의 흔적은 러셀 광장의 봄꽃만큼이나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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