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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물가와 실업난에 짓눌리는 서민경제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말 그대로 경제고통지수의 변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경제고통지수는 6.4로, 2012년 1분기(6.8)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한 수치가 경제고통지수라는 점에서, 일반 서민들이 물가 및 일자리 부족으로 생활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아닌 게 아니라, 물가는 최근 가파른 상승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굳이 지난 1분기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2.1% 상승률로 지난해 같은 기간(0.9%)에 비해 1.2%포인트 올랐다니, 서민들의 장바구니에 미치는 여파를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식탁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른 결과다. 계란·맥주·콜라 등 생필품 가격에 지자체별로 상하수도·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도 이어지고 있다.

물가가 임금에 비해서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심각하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물가상승률이 24.6%로 나타나 근로자 평균명목급여 인상률(21%)을 앞질렀다는 게 한국납세자연맹의 조사 결과다. 물가가 그만큼 근로자들의 실질 연봉을 잠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월급이 올라도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면 구매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업난까지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1분기 기준으로 올해 실업률은 4.3%로, 2010년(4.7%)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조선·해운업종을 포함해 각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실업자가 계속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중에서도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선 마당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금방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추세로 미뤄본다면 오히려 더 악화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내달 대선 결과와 함께 곧바로 들어서는 새 정부도 서민들의 이러한 경제적 고통을 풀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어설픈 처방을 내세워 가볍게 달려들다가는 골병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성장전략이 앞세워져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2. 오늘 세계가 주시하는 北, 핵실험은 파멸만 재촉

북한이 오늘 인민군 창건 85주년을 맞아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같은 도발을 할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한반도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인터넷 선전매체 ‘메아리’는 어제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도발 광기로 조선반도(한반도)에서 ‘4월 전쟁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면서 “제2의 한국전쟁이 나면 이길 것”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한반도 해역으로 향하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에 대해 “수장해 버리겠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는 중대한 순간을 맞았다.

북한은 지난해에만 1월과 9월 두 차례의 핵실험과 8차에 걸친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올해도 실패 여부를 떠나 탄도미사일을 포함해 4차례나 미사일을 쐈다. 엊그제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북쪽 갱도에서는 트레일러로 보이는 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북한의 동향을 정밀감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등의 군사적 행동을 벌일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이례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잇따라 통화를 해 북핵에 긴밀히 대응하기로 했다. 북핵 저지를 위한 공동 행보에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일을 넘어 중국의 북한 압박 움직임이 심상찮다. 북한이 90% 이상 의존하고 있는 ‘생명선’인 대북 송유 중단까지 내비치고 있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엊그제 사설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다면 “중국은 원유 공급을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식 타격’을 한다면 외교적 수단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묵인 방침과 다름없다. 칼빈슨호는 일본 호위함들과 함께 서태평양에서 공동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인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북핵 해결에 적극적이다. 중국의 대북 역할론도 미·중 정상회담 이후 달라졌다. 중국은 북핵을 주요 의제로 삼고 북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확실하게 종전과 다른 상황에 부닥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벼랑 끝 전술도 통할 수 없다. 북한은 ‘특단의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긴장 수위를 높이기보다 파멸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3. 세월호 희생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검토를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을 대피시키다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교사를 ‘순직 군경’으로 예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숨진 교사는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군인이나 경찰, 소방 공무원이 담당하는 위험 업무를 하다가 사망했으므로 단순한 ‘순직 공무원’ 이상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이런 판단을 이끌어 내기까지 참사를 당한 교사들의 유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즈음해 사고 현장에서 학생들을 인솔하다 숨진 1년 계약직 기간제인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 여부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최근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국회와 정부에도 관련 입법 처리와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사혁신처는 기간제 교사가 공무원이 아니므로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적극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많다.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는 기간제 교사를 공무원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을 이미 제시하기도 했다. 기간제 교사가 상시적인 공무를 집행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인사혁신처의 논리는 옹색한 측면이 있다. 기간제 교사도 교육공무원법을 근거로 임용돼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급여를 받는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을 뿐 공무원증을 발급받는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정부의 난처한 처지가 이해되기는 한다. 단원고 교사들의 순직을 인정하면 기간제 교사 전체를 공무원으로 적용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공무원연금을 1년마다 가입하거나 탈퇴하는 혼란이 뒤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행정적 불편과 형식 논리에 얽매여 귀를 닫고 있을 일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는 현재 전체 교원의 9.5%인 4만 6000여명에 이른다. 기간제 담임교사 비율도 9%가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들도 모두 담임 신분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교육 현장의 한 축이다. 교육 현장에서 제자들을 구조하느라 희생한 교사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눠 따질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기간제 교사의 차별을 해소하는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당장은 공무수행 중 순직한 이들을 예우할 수 있는 별도의 법률부터 제정해야 한다.



4. 미래 논하는 정책 선거여야 유권자 관심 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6차례의 대통령 선거와 달리 14일 앞으로 다가온 5·9 대선은 지역과 이념 대립의 색깔은 옅어지고 선거판을 흔들 빅이슈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송민순 문건’ 파동으로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을 둘러싸고 안보관을 따지는 후보 간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일 뿐 미래를 놓고 다투는 정책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다.

2002년 대선 때는 행정수도 이전, 2007년은 4대 강 사업, 2012년은 경제민주화란 대형 쟁점이 있었다. 격렬한 찬반 토론이 있었고 성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청사의 세종시 이전을, 이명박 대통령은 4대 강 사업을 임기 중에 실행했다. 아쉽게도 이번 대선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거대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 빅이슈의 부재는 유권자의 대선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여론조사에서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의 부동화로 나타나고 있다.

대선을 18일 앞두고 공표된 지난 21일 한국갤럽의 주간 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 후보를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34%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자의 34%,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30%가 그렇게 답했다. 5년 전 한국갤럽이 대선 19일 전에 공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의 17%, 문 후보 지지자의 22%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유권자의 지지 변동 가능성이 3분의1에 이른다는 것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지지자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 이유로는 후보 공약이 차별성을 느끼게 하지 못할 만큼 대동소이하다는 점, 후보를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18대 대선은 2012년 벽두부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시작해 후보 검증 시간이 1년 가까이 됐지만 이번 대선은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검증이 시작돼 판단을 최후까지 미루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지 변동성은 지역으로 볼 때 대구·경북이 40%로 가장 높았다. 연령대로는 20대가 62%나 된 것은 젊은 세대가 미래의 불안을 해소해 줄 후보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의 그제 TV 토론은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약속해 줄지 알 수 없는 깜깜이성 이전투구였다. 불투명성에 갇힌 국민의 후보 선별 능력을 높이기보다는 소모적 네거티브 공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5월 8일까지 후보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구체적인 공약과 정책에 집중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수준 낮은 공격으로 일관하는 후보에겐 매서운 심판을 내려야 한다. 남은 3차례 TV 토론에서 각 후보는 대한민국의 밝은 앞날을 느낄 수 있는 내실을 보여 줬으면 한다.



[조선일보]

5. 국민 부끄럽게 한 '역대 최악급' 대선 토론회

23일 중앙선관위 주관 첫 TV 토론회는 많은 국민에게 '정말 저 사람 중에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라는 회의(懷疑)를 안겨줬던 최악의 대선 토론회였다. 지금 우리는 북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서 군사 조치를 포함한 미·중의 선택이 우리 진로를 어떻게 결정할지 모르는 심각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싫든 좋든 지금 후보 중 한 명에게 이런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23일 토론회는 그에 대한 논의가 주(主)가 돼야 했으나 시작 때 북핵 해법에 대한 공통 질문에 각자 짤막하게 답한 것이 전부였다. 북핵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미국과의 공조,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다자 외교 주도, 미 전술핵 재배치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들뿐이었다.

국민은 누가 안보 적임자인지가 궁금했지만 이후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했다. 한 후보는 자기 가족에 대한 다른 후보 측 검증 공세를 비판하는 데 자기 시간의 상당 부분을 썼다. 국방·안보 정책이라고 해 봐야 병사 월급을 얼마나 올려줘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 거의 유일했다. 인터넷과 SNS에서 '유치함의 극을 달렸다' '이런 사람들을 뽑아야 하는 투표권도 부끄럽다' '결국 국난은 국민의 몫'이란 혹평이 나왔다. 앞으로 대선까지 세 번의 TV 토론이 남았다. 23일과 같은 토론이 계속되면 유권자들이 아예 외면할 것 같다.



6. 반가운 수출 호조, 일자리 안 늘면 무슨 소용인가

올 1~2월 수출이 16% 늘어 세계 10대 수출국 중 증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수출 주도의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용 시장은 전혀 회복 조짐이 없다. 지난달 실업자는 100만명을 웃돌았고, 청년실업률은 11.3%에 달했다. '고용 없는 성장'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출 호황이 몇몇 대기업 잔치일 뿐, 고용 비중이 훨씬 큰 중소기업·서비스업은 여전히 침체이기 때문이다.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석유화학 등 업종은 공정 자동화로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고, 그나마 해외 쪽 고용만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인력은 3년 연속 줄었으나 해외 고용은 3년 새 4만명(약 14%) 늘었다. 21년째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은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 생산량이 해외 생산에 역전당했다. 이들이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지만 강성 노조와 경직된 노동 제도 등 국내 고용 부담이 큰 탓도 있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만이 만들 수 있다. 규제 개혁으로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일본·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이 산 예다. 모든 대선 후보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규제를 풀어 창업과 기업 활동을 돕겠다는 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반(反)개혁 이익집단과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하려는 것이다. 그 피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7. 美 이어 佛 기성 정치세력 교체… 變革물결 세계 휩쓸다

23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중도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국민전선 마린 르펜 후보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5월 7일 1, 2위 간의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1958년 5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좌우파 양대 주류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가 집권을 독점해온 프랑스에서 두 당 후보가 모두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를 유럽연합(EU)에서 떼내는 프렉시트(Frexit)를 추진하겠다는 르펜 후보의 결선 진출은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정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르펜의 당선을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르펜의 지지표는 한계가 있어 2002년 결선투표에 진출했다가 떨어진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르펜의 결선 진출은 보호주의라는 조류가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교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중도적인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균형감을 보여줄 것 같다. 결선에서 원내 의석도 없는 마크롱이 르펜을 이길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사회당 정부 경제장관에 임명된 마크롱은 규제와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마크롱법’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집권당 분열과 의회의 저항에 환멸해 2016년 4월 새정치운동에 나섰다가 넉 달 후 대선 도전을 선언한 친시장주의자다. 마크롱이 당선된다면 기성 정치권이 강한 불신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불신은 이미 미국과 영국을 한 차례 흔들어 놓았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거의 모두의 예상을 깨고 후보가 되더니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당 경선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할 정도의 돌풍을 일으켰다. 영국에서도 브렉시트를 반대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러났다.

나라마다 각기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기존의 정치 구도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점은 비슷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이든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사회당 정권이든 경제를 살리지도 못하고 나라를 테러에서 안전하게 지키지도 못했다고 여기고 두 당을 심판했다.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좌우파 집권기를 막론하고 성장률은 하락 추세에 있고 일자리는 계속 없어졌으며 북핵 문제는 악화됐다. 우리 유권자들도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기존 양대 정당 구도에 경종을 울리고 초유의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를 만든 것도 변화를 갈구하는 표심이었다. 그 표심이 2주 후 어떻게 나타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중앙일보]

8. 미세먼지와 황사에 ‘마스크 공화국’ 되는가

이기영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21일 열린 ‘미세먼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초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쓰라고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대처 방안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초미세먼지가 황사마스크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지 못하고, 입자가 작아 실내로 침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장에서 착용하는 산업용 마스크가 그나마 효과적이라며 권고했다.



​머지않아 방독면 얘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먼지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미세먼지로부터 도피할 곳이 없다는 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마스크에 매달리는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경찰청은 신형 황사마스크 제품 4980개를 구입해 교통경찰관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얼마 전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교육청들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엔 야외 수업을 자제하고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러다가 온 국민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마스크 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국민들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국가와 공무원에게 뭘 했는지 묻고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는 석탄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난방 연료, 공장 매연에다 고등어구이까지 다양하다. 중국발 미세먼지도 상당하다. 원인을 안다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풀어 나가야 할 책무가 국가와 공무원에게 있다. 일시적이라지만 서울의 공기 질이 인도 뉴델리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악명 높은 중국 베이징보다 더 나쁘다는 소식은 치욕적이다. 지난 수년간 미세먼지 대책으로 쏟아부은 조(兆) 단위의 돈을 어디다 썼는지 엄중히 따져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는 천부적인 생명권이다.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되살리려 해도 몸이 건강해야 할 것 아닌가. 미세먼지의 이름부터 ‘살인 먼지’로 바꿔야 한다. 국민이 허약하면 국가도 쇠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국민은 애타게 바라고 있다.



9. 시진핑·아베와 통화하며 한국은 빼놓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연속 통화한 것은 긴박한 북핵 문제 논의와 해법 조율을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우리는 이번 통화가 북한 건군기념일인 25일을 앞두고 6차 핵실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한반도 주변으로 미 군사력이 집결 중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일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운 전략적 도발로 ‘레드라인’을 넘으면 미국이 ‘외과수술식 타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대북 군사조치를 하려면 압도적 무력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정치적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중국의 묵인·방조, 미 지도부의 의지·결단, 그리고 우리의 의사결정 참여가 기본이다. 이 가운데 중국의 대북정책은 이미 변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지난 22일 사평(社平·사설)에서 “한·미가 군사분계선 침범과 북한 정권 교체를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중국이 미국의 북핵 시설 타격을 받아들이고 대북 원유 공급을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북핵은 북·중 우호조약상 보호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트럼프 행정부도 대내외적으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외교안보 수뇌부가 26일 상원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새 대북정책을 비공개 브리핑하면서 의회에 이해를 구하고 내부 소통을 강화하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오는 2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장관급 북핵회의를 주재해 북한 도발 시 취할 고강도 압박과 제재를 논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우리다. 트럼프의 이번 통화 대상에 우리 수뇌부가 빠졌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 물론 우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대선을 치르고 있는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아무리 특수한 상황이라도 국가와 공동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 상황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 당장 오늘 도쿄에서 열리는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회의에서부터 우리 의사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매일신문]

10. 국민 생명 위협하는 불법 무허가 총기 

경산 농협 권총 강도 범죄의 용의자가 사건 55시간 만에 붙잡혔다. 용의자가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아 사건이 장기화하거나 미궁에 빠질 수 있었는데 사건을 조기에 해결한 경찰의 수사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사건이라도 범인이 반드시 잡힌다는 사실이 이번에 재차 확인됐다.



그러나 허술한 총기 관리 실태도 함께 드러났다. 경찰서 방범대장으로 활동하기까지 한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45구경 미국산 권총은 경찰 관리 선상에 없었다. 용의자는 2003년 칠곡군의 한 빈집에서 우연히 권총과 실탄을 발견한 뒤 이를 자신의 차 트렁크에 보관하면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



국내에 얼마나 많은 불법 무허가 총기가 돌아다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총기 사용 범죄가 2010년 46건에서 2015년 90건으로 늘었는데 이 중 불법 소지 총기에 의한 범죄 비중이 46%에 이른다. 해외 직구나 밀수입을 통해 국내로 반입하다가 적발되는 총기만 해도 한 해 200정에 가깝고,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제 총기류의 경우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가늠조차 안 된다.



정부는 총기나 화약류 제조 방법을 온라인에 올릴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올해 초에 신설했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총기 제작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상용 총기마저 복제해 낼 수 있다.



경찰 관리하에 있다는 수렵용 총기 역시 범죄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 국내에는 수렵용 총기 소지 허가자가 10만 명인데 이들 중에는 범죄 전력이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소수이지만 있다.



경찰은 무허가 총기 제조 판매 소지 행위의 형량을 ‘현행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상 30년 이하 징역’으로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입법은 감감무소식이다. 불법 총기류의 반입을 더 철저하게 단속해야 하고 인터넷에 사제 총기 제작 정보가 마구 유통되는 것을 차단할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총기 청정국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고진하의 시골살이] 구부러진 길이 좋아

낡고 오래된 한옥에서 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흙과 돌과 나무로 지어진 한옥은 틈틈이 수리해 주어야 제 모양을 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넝마살림이지만 집수리는 크게 걱정이 없다. 흙과 돌과 나무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노동은 내 몸으로 때우면 되기 때문이다. 식구들의 거처인 본채는 솔가하고 나서 꾸준히 수리를 해 제법 새뜻해졌다.



이제 대문과 이어진 사랑채가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사랑채 바깥벽이 화방벽(火防壁)으로 돼 있는데 여기저기 손상된 곳이 많아 수리를 미룰 수 없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도 화방벽이 있는 집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화방벽을 무슨 문화재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여긴다. 화방벽은 건물 안에 불이 났을 때 그 불길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잘 견디는 재료로 만든 벽을 말한다. 그러니까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던 시절에 화재를 막기 위해 벽 바깥에 돌과 흙을 이용해 쌓은 벽이다.



며칠 전 나는 진흙을 모래와 짚과 섞어 개어 놓고, 돌과 돌 사이의 흙이 허물어져 손상된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작업은 더뎠다. 시절은 봄인데 거의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라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데, 경로당 회장이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다 흙범벅이 된 나를 보고 말했다. “고 선상, 그렇게 사서 고생하지 말고 이젠 시멘트를 개어 발라 버리시구려!”

내가 대꾸했다. “회장님, 저는 이 화방벽이 좋아 잘 보존해 보려고요.” 얼굴 생김이 초강초강한 경로당 회장은 내 대꾸가 맘에 안 들었던지 그냥 혀를 끌끌 차더니 부르릉 스쿠터를 몰고 가버리신다.

시골 노인들도 옛것에 대한 애착이 없다. 편리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의 힘에 굴복한 탓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온 구부러진 삶의 방식을 견디지 못한다. 구부러진 길은 직선으로 펴야 하고, 집도 반듯하고 빠른 시간에 뚝딱뚝딱 지어야 한다.

속도전이 몸에 배어 이제 시골 사람들도 곡선보다는 직선을 선호한다. 10여 년 가까이 한옥 살이를 하면서 터득한 건축 철학이 있다면, 서둘러 짓는 집은 결코 좋은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세나 지세를 존중해 자연스레 닦인 길을 좋아하는 나는 ‘구부러진 길’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구부러진 길이 좋아/캄캄한 밤에는/뿔 달린/도깨비들도 더러 나타나니까./구부러진 길이 좋아/후미진 길 모롱이에 숨어/돈을 빼앗고/시를 선물하는/예쁜 도둑들도 더러 출몰하니까/구부러진 길이 좋아/저, 저승길은/되도록/천천히 천천히 가야 하니까.”

한나절 동안 진흙으로 화방벽을 수리했지만 절반밖에 하지 못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수리된 화방벽을 바라보니 흐뭇하다.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마무리를 해야지. 성질 급한 아내가 보았으면 오늘 끝마치지 또 내일로 미루느냐고 퉁아리를 하겠지만, 딱히 서두를 생각이 없다. 겨우내 육체노동을 안 하다가 몸을 쓰니 몹시 피곤했기 때문이다. 집수리도 그렇고 농사일도 무리하면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 나름 터득한 지혜다.

나는 수돗가에서 대충 몸을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풍물시장 다녀온다고 출타한 아내는 오늘도 늦을 모양이다. 나는 대문 앞의 텃밭으로 향한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점심 때 해먹을 국거리 풀을 뜯는다.

명아주로 끓인 된장국이 먹고 싶은데, 명아주는 아직 너무 어리다. 나는 냉이와 꽃다지, 개망초, 민들레, 달래 등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인다. 나는 잡초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생각한다.

내가 씨 뿌려 기르지 않은, 하늘이 기르는 잡초는 때가 있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 이 첨단 문명의 미덕으로 사람들은 ‘느림’을 운위하지만, 느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철에 따라 나는 식물을 먹기만 해도 느림의 미덕을 배울 수 있다.

구부러진 길을 좋아하는 내가 명아주가 자랄 때를 느긋한 맘으로 기다리듯이.



2. [중앙일보][삶의 향기] 밥상머리 예절과 '오이 혐오'

1년에 한두 차례 한국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몇 주간 있다가 온다. 외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문제가 되는구나 싶은 것 중 하나가 아이의 식성이다. 아이는 영국 기준으로는 식생활 습관이 꽤나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일을 좋아하고,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자기 몫으로 접시에 담긴 음식은 남기지 않고, 남의 접시에 있는 음식을 탐내지 않는다.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고 과자나 단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영국인들의 ‘길티 플레저(guiltypleasure)’, 그러니까 너무나들 좋아하는 한편 먹으며 죄책감을 느끼는 음식인 초콜릿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 입장에서는 상당히 마음이 놓인다. 먹지 말라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 좋아하는 걸 못하게 막는 거, 이거 참 큰일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식성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분류된다. 아이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고 매운 것도 먹지 못한다. 그러니 김치나 한국식으로 마늘을 듬뿍 넣고 조리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찬이 주르르 늘어서 있는 한국식 밥상의 경우 아이가 좋아하거나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늘 듣는 소리는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지낼 때 아이는 좋아하는 몇 가지 음식을 돌려 가며 먹는다. 영국에서는 이래도 타박을 듣는 일이 없다. 2015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직장인 중 32%는 매일 똑같은 것을 점심으로 먹는다고 한다.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치즈샌드위치다. 같은 음식을 매일 먹는 것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음식을 싫어해 먹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음식에 관한 한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하며 각자의 취향을 건드리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편식을 내버려 두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들 덜 건강하거나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사실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과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양하게 골고루 먹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그 전날 먹은 것을 다시 먹는 일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일할 때 소위 밥총무였다. 일주일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인데 가장 유의할 점은 식단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어떤 메뉴를 빼 달라는 얘기를 내놓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고로 음식을 가려 먹어선 안 되는 거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은 한 젓가락씩은 먹어야 하고. 그게 한국의 밥상머리 예절 아니던가.

한국 사회에서의 골고루 먹기에 대한 강조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된다. 그건 물론 본인을 위한 것일 테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태도다. 최근 ‘오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생겨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으며 순식간에 세를 확장했다. 그냥 모른 척 슬쩍 안 먹으면 되지 오이를 ‘혐오’씩이나 한다고 외쳐야 한단 말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임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오이 혐오자’들은 오이를 안 먹는다는 이유로 꽤나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싫으냐는 추궁 내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가벼운 정도고 먹으라는 강요를 당한 적도 많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안 먹겠다는 사람을 위한 건지 강요하는 사람의 만족을 위한 건지 살짝 헷갈리기 시작한다. 먹으라는 강요나 모욕 등 나쁜 기억까지 겹쳐 정말로 그 음식을 혐오하게 됐다면, 게다가 그런 강요나 모욕을 가한 사람까지 싫어하게 됐다면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서로에게 말이다.

나 역시 아이가 좀 더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을 좋아하게 된다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늘어나는 것이니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나 모욕으로 되는 게 아니다.

더구나 자기 자식도 아닌 바에야 남이 어떤 음식을 싫어하든 말든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 않나. 차라리 메뉴를 정할 때 싫어하거나 못 먹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편이 낫다. 그게 더 예절에 맞는 태도다. 게다가 훨씬 즐거운 식사를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3.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슬로우 트래블

봄이 되면 내가 속한 스키동호회는 버스를 대절해 연례 식도락 나들이 여행을 떠난다. 꼭두새벽 서울에서 출발하는 왕복여행으로 당일치기로 진행한다. 작년 전라남도 순천과 여수 여행에 이어 올해는 4월 중순 토요일에 보성과 해남을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야심 찼다. 먼저 보성에서 녹차밭에 들렀다가 벌교에서 점심을 먹고 해남에서 대흥사를 둘러 본 후 땅끝마을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상경하는 것. 누가 봐도 알찬 일정이었다. 애초 몇몇 운영진과 세부적인 일정을 짜면서 내심 뿌듯했다. 일년에 딱 한번 단체로 가는 장거리 봄 여행인데 가능한 많은 명소에 들르고 되도록 많이 먹어야 하지 않나, 하는 논리였다. 

비 예보까지 빗나간 화창한 당일, 보성으로 향한 버스 안 분위기는 무척이나 밝았다. 여기에 일정을 더욱 알차게 할만한 누군가의 즉흥적인 발상이 이미 들뜬 마음을 자극했다. 남도에 가는 참에 해남 명소 한 곳을 생략하고 담양에 있는 죽녹원을 일정에 포함하면 어떨까. 그럴 듯했다. 보성과 해남에 담양까지 추가하면 남도 소도시 세 곳을 다녀오는, 참으로 보람찬 여행이 될 터. 일단 가능성을 열어 놓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녹차밭에 도착하니 상황은 달라졌다. 예상보다 멋지고 규모도 컸다. 대충 훑어보긴 아까운 풍경이었다. 짧은 코스부터 긴 코스가 있었지만, 단체여행 특성상 여기저기서 셀카는 기본, 이 사람 저 사람, 또 단체로 사진도 찍고, 앞서가는 사람도 있고 더 천천히 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 박진감 넘치는 가위바위보 내기로 녹차 아이스크림 쏘기까지 하면서 스케줄은 더욱 느슨해졌다. 푸른 하늘 아래 녹색 자연은 마냥 좋았다.

벌교에서 푸짐한 꼬막정식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해남 땅끝마을로 향했다. 길이 막혀 3시가 훌쩍 넘어서야 도착한 땅끝마을 해변가 역시 대충보고 갈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버스기사님 왈 "서둘러봤자 담양 죽녹원 문 닫기 전에 도착 못해요"라고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니 4시, 전망 좋은 커피숍에서 단체로 커피 주문 하고 기다리면서 잡담하고 마시고 나와서 사진 찍은 후 다시 모노레일 타고 내려오니 5시 반이었다.

해남 시내에 있는 유명 떡갈비 식당에 도착한 건 약 한 시간 후. 신선하고 다양한 반찬으로 빼곡하게 차려진 상이 나오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정말 정신없이 먹었다. 어느새 깜깜해진 밖으로 나온 회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때 문득, 이 기분 좋은 포만감은 비단 맛난 저녁상에서만 오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포만감은 그날 하루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가능한 많은 명소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서둘러 둘러 본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보성녹차밭과 해남땅끝마을 전망대 구석구석을 푸짐하게 차려진 상 위의 반찬처럼 하나씩 제대로 맛보고 음미한 느낌이랄까. 

목적지 세 곳이 두 곳으로 줄어든 게 오히려 덕이 됐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마침 회원 중 친한 형은 아내와 함께할 5월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10일로 세웠다고 했다. 일정은 대충 잡고 어떤 한 곳이 좋으면 그곳에서 더 머무를 거라고.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더 깊이 더 자세히 보고 즐기겠다는 취지란다.

이 원고를 쓰면서도 입에 맴도는 떡갈비 맛처럼 그날 하루의 여운이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보고 찍고 느끼고 맛 본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른바 슬로우 시대라고 한다. 슬로우 푸드처럼 슬로우 트래블도 힐링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쫓기는 듯한 여행이 아닌, 느슨하게 잡은 일정 안에서 특히 끌리는 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는, 그런 여유 있는 여행.



4. [세계일보][우찬제의 책읽기, 세상읽기] 철쭉 속의 무한 우주

“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신비로운 체험을 시로 형상화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 부분이다. 정말 그렇게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한순간에서 영원을 보고,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그 무한의 우주를 체험하고 터득할 수 있다면 참으로 황홀하겠다. 그렇지만 그런 황홀경이 실제 삶에서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기에, 일련의 실망이나 절망 속에서도 다시 도전하는 게 아닐까.

흔히 ‘대지의 청지기’로 불리는 미국의 농부이자 시인, 문명비평가인 웬델 베리는 과학 기술에 근거한 현대 문명을 심각하게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 기술은 객관적 앎의 척도를 제공하기보다 존재하는 생명을 제대로 못 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모래를 알기 위해 미분화해 분석, 종합하지만 정작 모래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거룩함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다.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들꽃의 신비도, 손바닥 안의 무한도 터득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피조물 자체의 생명성보다 과학적 환원주의로 치닫기 때문이다. 

‘삶은 기적이다’에서 베리는 그 위험성을 논한다. 피조물을 대하는 태도가 경의에서 인식으로 바뀐 것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청지기에서 절대적 소유자, 관리자, 기술자로 바뀐 것, 그리고 생명의 ‘거룩함’을 ‘전체성’으로 바꾼 것도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소박한 듯 심원한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생명은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지만, 우리 너머에 있다. 어떻게 해서, 왜 우리가 생명을 누리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생명에,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만들 수는 없다. 생명은 통제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통제는 환원주의와 함께 엄청난 파괴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는 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은 현대의 미신이라고 말한다. ‘알지 못함’의 심연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앎’으로 포장되는 사례가 많은 까닭이다. 그가 보기에 삶은 온갖 ‘알지 못함’으로 넘쳐나는 신비로운 것이고, 과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것 이상으로 훨씬 기적적인 것이다.



그런 성격을 회복하는 일이 긴요하다. 신비롭고 기적적인 삶의 심연으로 내려가기 위해 기준과 목적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피조물과 애정으로 가득 찬 세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기쁨과 슬픔의 세계로, 모든 과정들에 앞서면서 동시에 그 뒤에도 살아남는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적 능력보다는 지역과 공동체의 성격에 근거해 행동해야 하며, 생산성보다는 지역에 대한 적응성, 기술혁신보다는 친밀성, 힘보다는 우아함, 소비보다는 검소함 같은 건강하고 타당한 생태 윤리의 지평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음을 그는 강조한다. 그래야 다시 절망에 도전할 수 있단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기적적인 삶의 신비, 그 ‘알지 못함’의 심연이 그 어두운 그림자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침 벚꽃이 지고 철쭉이 신비롭게 피어나는 계절 아닌가.



5. [국민일보][한마당] 테임즈 신드롬

“한국에 가지 않고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치즈버거를 팔아야 할 것이라는 각오로 다시 시작했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읽고 마음의 평화를 공부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에릭 앨린 테임즈(31·밀워키 브루어스)의 고백이다. 올 시즌 초반 그가 써내려가고 있는 메이저리그 귀환기는 경이롭다. 18경기를 뛰었을 뿐인데 벌써 홈런 8개로 24일 현재 메이저리그 이 부문 전체 단독 1위다. 이 중에는 팀 역사상 타이기록인 5경기 연속 홈런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장타율 2위(0.828), 출루율 3위(0.461), 타율 7위(0.359)에 올라있다. 2014∼2016년 NC다이노스 소속으로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를 주름잡았던 ‘마산 로보캅’이 야구 본고장까지 접수할 태세다. 미국 팬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났느냐’고 열광할 정도다. ‘테임즈 신드롬’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2008년 전체 219번째로 토론토에 입단했지만 3년 뒤에야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좋은 타자였지만 빅리그에선 그저 그런 선수였다. ‘눈물 젖은 빵’을 수없이 먹어야 했다. 2013년 방황하던 그에게 바다 건너 저 멀리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신생팀 NC였다.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조차 출전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언제나 주전, 그리고 4번 붙박이 타자로 매 경기를 뛸 수 있었다. 운명의 땅에서 그는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운동장에 제일 먼저 나왔고 그날 경기에 만족하지 못하면 스스로 훈련에 매진했다. 3년 내내 그랬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2015년 한국 최초 40홈런-40도루를 달성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2016시즌이 끝난 뒤에는 미국으로 유턴하는 데 성공했다. 몸값도 달라졌다. 한국으로 오기 직전 마이너리그에서 연봉 49만 달러(약 5억7000만원)에 불과했던 그는 3년 1600만 달러(약 187억원)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밀워키 유니폼을 입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덤이었다.

테임즈는 팔 및 정강이 보호대에 ‘테임즈’라는 한글을 새겨 한국에서 뛰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인을 향한 나의 애정을 보여주고 싶다(I’m showing my love for Korean people)”고 했다. 노력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향할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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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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