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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삼성전자 ‘49조 주식 소각’을 바라보는 착잡함
삼성전자가 어제 이사회를 열어 40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키로 했다. 그동안 사들여 갖고 있던 보통주 1800만 주와 우선주 323만 주다. 전체 발행 주식의 13.3%에 달한다. 이 회사가 추가 매입 중인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역시 소각될 예정이다. 지금의 주가로 치면 총 49조원어치가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자사주를 없앤다고 회사 가치가 쪼그라드는 건 아니다. 없어진 금액만큼 나머지 주식의 가치가 올라간다. 주주들에겐 그만큼 이득이다. 배당과 더불어 자사주 소각이 주주친화 경영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도 2.4% 올랐다.
자본시장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동안 우리 증시에선 기업이 주주들에게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이 일어왔다. 시가에 견줘 배당률이 너무 낮고 ‘박스피’로 불릴 만큼 주가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 심리 개선을 위해서라도 기업이 배당을 확대하고 주가를 부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식 소각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적 관점에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주식 소각은 기업이 성장기를 마무리했다는 불길한 신호다. 주식 소각이 당장의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미래의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 소각보다는 재투자와 연구개발(R&D)에 돈을 쓰는 게 고용과 내수를 살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반도체 특수로 들어오는 막대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회사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기업의 잘못된 행위는 분명히 바로잡되 기업 활동의 족쇄는 풀어주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15%로 내리는 획기적 감세안을 발표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지만 우리 기업들로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
2. 정책 정치 가능성 보여준 심상정의 약진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약진이 연일 돋보인다. 그끄저께 4차 대선 TV 토론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심 후보의 지지율이 8%까지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의 지지율은 한 달 넘게 3% 박스권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아마 자신도 놀랄 수치일 것이다. 정의당과 심 후보에게 지지와 후원 문의가 이어진다고 한다.
심 후보의 지지율 급등은 TV 토론을 통해 역량을 거듭 확인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차 토론 직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그는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단지 언변이 좋아서 유권자들이 새삼 그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심 후보의 토론 자세와 내용에서 ‘정책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었다는 평가가 많다.
TV 토론을 볼 때마다 유권자들은 가슴에 체증이 더 쌓인다. 일자리·안보·저출산 등 기초 현안을 놓고도 원론적 답변으로만 쩔쩔매는 유력 후보들 탓이다. “저 정도로 준비가 덜 된 사람들한테 국정을 어찌 맡기겠나” 하는 답답증 속에서 심 후보가 숨구멍을 터 주는 셈이다. 불리한 문제에는 답변 회피 작전을 일삼는 유력 후보들과 달리 그는 논점을 꿰뚫어 알맹이 있는 답변을 제시했다. 후보들의 선심성 정책들에 재원 대책이 뭐냐고 구체적으로 따지는 내공도 보여 줬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보적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도 호감도를 확장하는 데 주효했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짜증 날지는 아랑곳없이 후보들이 해묵은 대북 송금 공방을 벌일 때도 “앞으로 대통령 되고 뭘 할지를 물어봐야 한다”며 토론의 흐름을 튼 것도 그다. 어찌 보면 크게 대단한 요령도 없다. 그저 상식선의 국민 눈높이에서 대응하니 그의 역량을 다시 살피게 된 것이다.
진영과 정당의 기성 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어느 후보는 무슨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지 빤한 게 현실이다. 지지 후보가 엉뚱한 대답으로 허방이나 짚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다. 그만큼 주요 후보들의 정책 논리는 빈약하며, 정치 철학과 정책 역량은 초라하게 비친다. 이야말로 정치 신인도 아닌 심 후보가 소속 정당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승기류를 타는 배경이기도 하다.
오랜 고민과 정치철학으로 개발한 정책인지 아닌지는 유권자가 먼저 알아본다. 대선일이 고작 열흘 남았다. 이 파장 국면에 왜 지금 ‘심상정 현상’인지 주요 대선 주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아프게 새겨 보기 바란다.
3. 선거판 뒤흔드는 SNS 마타도어 중대 범죄다
대선을 열흘가량 앞둔 가운데 후보 관련 가짜 뉴스가 막판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다음달 3일부터 선거 당일인 9일까지는 온갖 가짜 여론조사가 판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후보와 관련한 가짜 뉴스는 역대 최다인 3만 1000건을 웃돌았다. 2012년 18대 대선 전체 기간에 적발한 건수의 4배를 넘어선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와 불법 여론조사 공표, 후보자 비방이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4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불법 게시글이 77%에 이르렀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관련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가짜 뉴스는 악의적 비방·흑색선전으로 여론을 왜곡·조작한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대 선거범죄다. 이번 대선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사이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SNS를 이용해 너도나도 상대 후보의 불법 낙선운동에 나서는 꼴이다. 후보 간의 네거티브 경쟁이 가짜 뉴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가짜 뉴스로 발생하는 사회적 신뢰 저하, 정치적 극단주의 등의 피해가 연간 30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선관위는 24시간 가짜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사이버 전문가 20여명의 인력으로 매일 많게는 수십억 건이나 되는 SNS 게시글을 걸러 내기 어렵다. 게다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과 같은 폐쇄형 SNS의 가짜 뉴스형 허위사실이나 비방은 내부 제보 없이는 적발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각 후보 진영에 SNS 전략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바꾸길 기대하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포털 사이트는 이제라도 가짜 뉴스를 제공하는 매체와는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현재 포털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언론매체 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그때그때 적발한 가짜 뉴스를 삭제하는 방식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이제 5·9 대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엄격한 법 적용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대선 이후 가짜 뉴스가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범적으로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엄격히 적용하길 바란다.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독일처럼 가짜 뉴스를 비롯해 ‘범죄적 내용’을 발견하고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기업에는 거액의 벌금(독일은 최고 500만 유로)을 물리는 것을 입법화해야 한다.
[매일경제]
4. 65세 이상 버스기사는 적성검사 받는데 택시는 왜 거부하나
정부가 만 65세 이상 택시기사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자격유지 검사(운전적성 정밀검사)'를 도입하려는 데 반발해 전국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다음달 2일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자격유지 검사 도입을 위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3월 마무리하고 현재 규제개혁심사를 앞두고 있다.
65세 이상 택시기사는 3년에 한 번, 70세 이상은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일정 점수 미달로 탈락할 경우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보니 고령 기사들이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택시기사들은 개인택시연합회 차원의 자율검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격유지 검사는 횟수에 상관없이 재응시가 가능하므로 굳이 그렇게 해야 할 명분이 없다.
개인택시 기사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5년 기준 25.9%에 달한다. 고령 택시기사들이 다 운전에 미숙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인지 능력 저하로 돌발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의 사고 건수는 주행거리 100만㎞당 0.988건으로 65세 미만 운전자(0.65건)의 1.5배 수준으로 사고율이 높다.
65세 이상 버스 운전자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자격유지 검사를 시행 중이어서 형평성 차원에서도 택시기사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버스에 먼저 적용하고 택시에 유예해준 것인데 직업권 침해, 차별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승객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발상이다.
일본은 사업용 운전자의 경우 65세 이상은 3년, 75세 이상은 1년 주기로 적성검사를 받고 있고, 영국은 65세 이상은 매년 의료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택시기사의 운전능력을 정기적으로 검증해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것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인 만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이데일리]
5. 훈풍 이어갈 성장전략 있는가
우리 경제에 모처럼 봄바람이 불고 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보다 0.9% 상승했다는 게 한국은행 발표다. 수출 증가세가 5개월째 이어지고 건설·설비투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민간소비도 증가했다. 올 성장률이 한은 전망치 2.6%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아직 겨울이다. 경기 회복세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실업률이 4.3%로 2010년(4.7%) 이후 가장 높고, 청년실업률은 10.8%로 몇년째 두 자릿수다. 물가도 1분기에 2.1%가 올라 가파른 상승세다.
대선 후보들은 이런 현실에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랏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등 눈앞의 표심 좇기에 급급할 뿐, 정작 곳간을 채울 방책은 공허하다. 후보들마다 성장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추상적인 데다 정책의 나열 수준에 그쳐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되레 성장 불씨를 꺼뜨리는 게 아닌가 미심쩍은 공약들이 쏟아진다.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는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데도 우리는 반대 움직임이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재벌개혁론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근본적인 성장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표심에 기댄 반기업 정서의 유혹을 떨쳐내고 기업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과 혁신의 성장 로드맵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기업 발목을 잡으면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복지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6. 협상의 손 내민 美, 北이 답할 차례다
대북 강경노선으로 치닫던 미국이 돌연 협상 여지를 열어 놓았다.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은 그제 합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동맹국 및 역내 파트너들과 외교적 조치를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핵, 탄도미사일, 핵확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성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에 방점이 찍힌 게 특징이다. 성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 두겠다”고 못 박았다.
올 1월 출범 이후 선제타격 등의 강경 발언과 핵항모 칼빈슨호의 한반도 배치 등 무력시위로 역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킨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그렇다고 정책기조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폐기를 거듭 선언함으로써 강온 양면작전을 구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결 유연해진 이 정책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이 뒷받침됐다고 봐야 할 게다. 무엇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잦은 접촉 끝에 얻어낸 공조 약속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무역 보복,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들먹이며 으름장과 호소를 병행한 끝에 ‘6차 핵실험 강행시 대북 송유중단’,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용인’ 등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반응이 중국 관영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공은 평양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른 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다.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내민 협상의 손을 잡는 것만이 남북의 공영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임을 왜 못 보는가. 아울러 대선에 뛰어든 유력 후보들이 어설픈 안보관으로 북한의 오판을 유발하는 것도 극력 경계할 일이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눈에는 美 ‘법인세 파격 인하’ 안 보이나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파격적인 감세 정책에 들어갔다.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내리고, 개인소득세도 과세구간을 7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세율을 실질적으로 낮춘다고 한다. 유례 없는 기업 감세 정책이다. 감세 규모는 레이거노믹스가 한창이던 1986년 세제 개편 때보다 훨씬 크다. 10년간 덜 걷힐 세금은 2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세수 감소를 무릅쓰고 감세를 단행하는 것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를 ‘붐업’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에 관한 한 미국은 후발주자다. 세계 주요국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영국은 2008년 28%에서 재작년 20%, 2020년에는 17%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은 조만간 20%로 낮추고, 독일은 15%까지 내린다고 한다. 인하 바람이 불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법인세율은 지난해 22.5%로 낮아졌다. 세계 경기침체에 맞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불씨를 댕기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정치권은 앞다퉈 법인세 인상을 외친다. 대선후보들이 내건 복지공약에 소요되는 20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대기업 법인세율을 22%에서 25%, 24%로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이에 더해 대기업 감세를 없애 실효세율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빤히 보면서도 ‘부자감세 철폐’만 요란하게 외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성장률은 1.13%포인트 하락하고, 고용은 0.3∼0.5% 줄어든다고 한다. 국내에 투자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9%로 반짝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연간 성장률이 수년째 2%대를 맴돈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성장률 전망치 3.5%보다 크게 낮다. 규제와 강성 노조가 발목을 잡는 판에 법인세까지 올리겠다니 기업에서 어떻게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대선후보들은 세계 각국이 왜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내리고 있는지 깊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8. 무너진 양강구도… 안철수, 뭐가 문제인지 돌아보라
5·9 대선 판세에서 양강 구도가 무너지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문 후보와 자웅을 겨루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어제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지난주보다 5.6%포인트 떨어진 22.8%에 머물렀다. 문 후보(44.4%)와의 격차가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앞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린 결과가 이어졌는데 이번 조사에선 그 격차가 더 커졌다.
후보 5명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TV토론이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네 차례 진행되면서 안 후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크게 늘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 등 안보 분야를 비롯해 국정 전반에서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경쟁 후보와 정책 대결을 하기보다는 네거티브나 감정싸움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내가 갑철수냐”, “MB 아바타냐”는 엉뚱한 질문과 “실망입니다”, “아닙니다”라는 면박성 답변은 패러디와 풍자의 소재로 전락했다. 반면 TV토론에서 호평을 받은 심상정 정의당,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안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의 표를 욕심내다 양쪽에서 모두 잃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사드 입장에서 드러난 ‘양다리 걸치기’식 전략이 대표적이다.
안 후보에게 실망한 보수층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옮겨간 것은 주목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13%를 확보한 홍 후보는 안 후보를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보수층에서 홍 후보(38.5%)는 안(25.1%), 문(18.0%)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보·혁 대결 본격화에 따른 지지층 결집 효과가 TV토론 영향과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보수 표심의 향배가 향후 판세의 막판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그런 만큼 오늘과 다음달 2일의 남은TV토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안 후보의 부진은 1강 문 후보에게도 거울이 돼야 한다. 25일 TV토론에서 보여준 고압적 태도는 유권자들의 표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심은 권력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
[매일신문]
9. 이제 사드 배치 논란 접고 중국 보복 대비에 힘 모으자
주한미군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핵심 장비를 성주기지에 반입한 지 하루 만에 작전 배치를 끝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군이 다음 달 9일 대선 이전에 사드를 시험 가동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를 뒤엎고 시험가동 없이 바로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를 되돌리려면 한미 동맹의 균열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미군이 이렇게 서둘러 사드의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은 그만큼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파견으로 ‘4월 위기설’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6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지금의 안보 현실이다.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얘기다.
사드는 이런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무기다. 북한이 실전 배치한 1천여 기의 미사일 중 800여 기가 남한을 겨냥하고 있는 안보 위협을 타개하기 위한 첫 조치가 바로 사드 배치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사드가 안 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안보 자해는 그만둬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7일 ‘국회 비준 등 공론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 문제를 순리적으로 풀겠다”고도 했다. 사드 배치라는 현상의 변화를 시사한 발언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아직도 안보 현실의 위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전 운용에 들어간 사드를 놓고 다시 배치할 거냐 말 거냐는 공론(空論)이 아니라 중국의 추가 보복 등 추후 발생할 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다. 중국의 보복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대중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산 중간재 없이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완제품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해도 피해를 입는 기업은 분명히 있다. 야당이 할 일은 이런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10. 행정 착오라며 무기계약 근로자 수당 떼먹은 영덕군
영덕군이 무기계약 근로자들의 연차수당은 물론 행정 착오로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53명의 근로자에게 2억1천405만여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덕군이 근로자의 임금 체계를 바꾸며 행정 착오로 빚어졌다. 또한 급식비나 교통비 등을 통상 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은 잘못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근로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행정상 착오와 잘못이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의 정기 감독 과정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감독 결과, 영덕군은 무기계약 근로자 58명의 연차수당 360여만원을 주지 않았다. 재직자 65명의 연차 일수 수당 1천200여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잘못을 지적받을 때까지 고스란히 모른 셈이었다. 고용노동부 지적이 없었으면 그냥 떼일 돈이었다.
영덕군의 문제는 또 있다. 통상 임금에 급식비와 교통비 등을 넣지 않았다. 이런 명목은 퇴직금이나 상여금 등을 줄 때 기준이 되는 통상 임금에 포함돼 근로자들의 임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영덕군이 최근 3년간 이런 식으로 53명에게 미지급한 돈은 2억1천405만여원에 이르렀다. 1인당 400만원이 넘는 적잖은 금액이다.
고용노동부가 비록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이번 일은 영덕군의 허술한 행정의 단면을 드러낸 사례이자,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청의 정규직 공무원들이 받을 돈이었으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3년이나 그냥 두었겠는가. 허술한 업무 처리와 함께 주먹구구식 예산 운용도 짚어볼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근로자 미지급금을 주려고 해도 마땅한 예산이 없는 탓이다.
이번 일은 일자리 창출 과정에 따른 일로 치부하고 단순 행정 착오라는 군의 해명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한정된 군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되새겨봐야 할 사안이다. 행정 착오를 3년이나 모른 점은 그냥 덮어둘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군이 자초한 문제인 만큼 예산 타령에 앞서 임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룰 일이 아니다. 일자리 행정도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41] 달빛장터에서
해가 지자, 한강공원에 장이 섰습니다. 두리번대며, 기웃거리며 두어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름부터 재미있습니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반포 낭만 달빛 마켓'. 푸드 트럭 수십 대가 광장의 울타리를 이루고, 가운데엔 갖가지 노점들이 빙 둘러앉았습니다. 저마다 직접 만든 물건을 들고 나와 파는데, 대개 수공예품들입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지개 분수, 황홀한 야경에 살랑거리는 봄바람. 또 하나의 강물로 넘실대는 젊음의 물결. 눈과 귀만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굽고, 찌고, 볶고, 삶고, 끓이고! 갖가지 냄새가 코를 간질입니다. 넓은 마당이 거대한 부엌입니다. 레스토랑입니다.
코너마다 장사진(長蛇陣)입니다. 음식 하나 사먹자면 인내력 테스트를 받아야 할 지경입니다. 참을성이 없으면 구경꾼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당연히 점포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만두, 핫도그, 스테이크, 감자튀김 …. 어느 줄이 더 긴가 시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교적 짧은 줄을 선택했습니다. 떡을 파는 곳입니다. 인절미 예닐곱 개를 노릇하게 구워서 일일이 조청을 바르고 콩고물을 묻혀 줍니다. 연인들인지 신혼부부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주인 남녀는 지금 숨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찰진 솜씨로 한 사람은 굽고, 찰진 말씨로 한 사람은 팝니다.
아무려나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흥겨운 '청춘의 굿판'을 마련해준 사람들이 고맙고,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젊은이들이 고맙습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작품들을 자랑스레 선보이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고맙습니다. 땀을 흘리며 '불'과 '연기'와 씨름하는, 저마다의 '신념'을 파는 젊은 그들이 고맙습니다.
동시에, 미안한 생각도 고개를 드는군요. '저렇게 행복한 얼굴로 능력과 열정을 팔 수 있는 청춘들인데. 터가 없고 판이 없어서 젊음의 시간과 에너지를 놀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과 슬기는 넘치는데 쓸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딱한 일인가.'
'연부역강(年富力强)'. 시간 부자, 힘의 강자(强者)면 무엇 하겠습니까. 의자가 없고 멍석이 없는데, 시장이 없고 광장이 없는데, 극장이 없고 무대가 없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데, 눈높이를 맞춰줄 사람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목이 타는지, 슬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관심 두는 이가 없는데.
청년실업은 통계전문가나 정치가들의 회의실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20세기 작도법(作圖法)으로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세상의 지도를 만들기 어렵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그들이 계속 우리처럼 살기를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M1소총 교본으로 미래 전쟁의 전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낮에 본 연극이 떠오릅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9년에 초연된 작품인데, 감동의 공감대는 여전합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주인공 '윌리 로먼'은 이땅에도 있을 법한 어떤 아버지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 없음'에 절망하며 자살로 삶을 마치는 가장이지요.
그러나 죽음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입이 생길 때마다, 현관 계단을 만들고 지하실을 만들고, 욕실 하나 더 만드는 게 기쁨과 보람이었던 아버지. '시멘트 한 포대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아버지. 그렇게 가정적이었던 사람답게, 누가 물으면 '아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허풍을 치던 아버지.
아버지는 두 아들이 번듯하게,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의 기준은 너무 오래된 것이었지요. 그가 지켜온 삶의 문법은 모범적일 뿐, 새로운 시대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부자간의 갈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모든 가치의 소멸이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가 자신의 보험금으로 희망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도 아내 린다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 비프의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좌절의 순간에 쏟아낸 말이지요. "왜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버지 친구 찰리가 장례식장에서 하는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중략) 이 사람(윌리 로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청년이야말로 꿈꾸는 세일즈맨입니다. 물론 아무 거나 팔진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팝니다.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 거나 만들진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만듭니다. 원료와 재료, 노하우와 레시피, 아이디어도 충분합니다.
부족한 것은 달빛장터. 그리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미소' 지을 때, '미소에 답'해줄 사람들.
2.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눈 먼 시계공
척수와 혈관이 목을 지난다. 중요한 기관이다. 기요틴이 작동해서 두 기관을 절단하면 곧바로 죽음이다. 나의 대학선배인 소설가 신상성(74)은 젊을 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정글에서 백병전을 했는데, "목을 베어 머리가 달아나려는 것을 간신히 붙들어 꾹 눌렀더니 고대로 붙더라. 죽을 것을 살았다"고 침을 튀겼다. 오르한 파묵(65) 못잖은 입심이지만 그 거짓말을 누가 믿으랴.
신경과 혈관의 중요성이야 모를 바 아니다. 허나 생명유지를 위한 노동은 사실 식도와 기도가 한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부지한다. 식도와 기도가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 가끔 헷갈려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약하게 나면 사레가 들리고 심하게 나면 기도가 막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최재천(63)은 2012년에 낸 '다윈지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 옛날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는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했다. 물고기가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숨을 쉬기 위해 생긴 콧구멍은 배보다 등에 있어야 유리했다. 우리는 이때 엇갈린 두 관의 위치를 바꾸지 못하고 대대로 물려받았다. 그래서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목 앞쪽에 있는 기도를, 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기도 뒤에 있는 식도를 통과하는 교차 구조가 되었다.
이런 교차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음식물을 삼킬 때 기도를 막아주고 숨을 들이마실 때 열어주는 '후두개'가 생겼다. 급히 음식물을 삼킬 때 등 실수로 후두개가 기도를 막아주지 못하면 말썽이 생긴다. 이러한 불완전성을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TheBlind Watchmaker)에 비유했다.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에서 복잡한 물건은 반드시 설계자가 있게 마련이라며 시계공을 예로 들었다.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 신부로서 공리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자연신학'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 논쟁을 해설했다. 도킨스는 페일리의 예를 꼬투리 잡아 '진화 과정에 설계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눈이 먼 시계공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킨스가 보기에 자연선택의 결과로 태어난 오늘날의 생명체들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하고 수리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계공이 나름대로 고쳐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가끔 요행으로 재깍거리며 작동할 뿐이다. '예수쟁이'인 나로서는 아주 집중을 해서 읽어야 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세상이 복잡한 데 비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든가 태양계와 은하계의 구조가 핵의 주위를 전자가 회전하는 구조와 다름없음을 보면서 "아, 신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그다지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구나. 역시 신이야"라고 생각해왔다.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대부분 일치한다는 신비는 사실 구더기와도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허풍을 치랴. 고개 숙여 세상을 만나고 섭리를 섬겨 차분히 살아갈 뿐. 인간은 섭리를 이해하고 겸손을 실천할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3. [서울신문][In&Out] 좋은 농산물이 나오기 위한 세가지 조건
“어떻게 하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나요?”
요리사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재료를 찾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외국의 요리학교에서 공부할 때 요리사들이 지역에서 공급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연구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재료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오너 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연 이후에는 한국의 제철 채소와 해산물, 육류, 장류 등을 전공인 프랑스 요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농산물들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7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영농조합원으로서 작게나마 농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됐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좋은 품질에 비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산 농산물이 식재료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농가와 셰프 간 직거래 교류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셰프들이 ‘이런 사이즈와 모양으로 만들어 주면 쓰기 편하다’고 전달하면 농가는 해당하는 식재료 사양에 맞게 맞춤형 생산을 해주는 것이다.
고려닭과 청리닭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토종닭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우리만의 특색 있는 닭고기다. 직거래를 통해 이런 소규모 고품질 식재료들이 더 많이 공급된다면 셰프들의 다양한 프리미엄 요리를 보다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판매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나 과일도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못생긴 채소와 과일의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대형 레스토랑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몇년 전 양파 파동 때처럼 갑자기 공급량이 늘어나면 식자재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형 레스토랑에서 양파 메뉴를 개발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원상태 그대로의 채소가 아니라 볶은 양파, 볶은 당근 등 한 차례 가공을 거쳐 파는 것도 많은 식당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못생긴 무나 당근은 상품성이 없어 대부분 수확한 밭에서 버려진다. 그러나 깍두기를 담그고 볶음밥에 넣는 재료로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약을 쳐서 키운 것들이 겉모양은 예쁘지만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대부분이 소고기는 등심과 안심만,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 부위만 찾는다. 외국에서는 육류의 부위별 가격이 적정한 차이를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정 부위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뚜렷해 어떤 부위는 지나치게 비싼 편이다.
거꾸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특정 부위는 가격이 너무 낮아지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돼지 목살을 주문하니 어깨살 부분까지 함께 파는 것을 봤다. 특정 부위의 쏠림 현상 때문에 도축 단계부터 붙여서 거래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국내에서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연구해 보면 좋겠다.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때다. 농산물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우리 땅에서 좋은 품질의 다양한 농산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노력뿐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변화 그리고 합리적인 유통과 판매 시스템이 필요하다. 좋은 농산물의 생산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작이자 활기찬 농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믿는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사이버 청소부
2011년부터 디지틀조선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주 업무는 조선닷컴 100자평과 토론마당 모니터링. 댓글 창에 '관리자가 (비속어·비하·기타) 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라는 빨간 문구가 뜨면 내가 다녀간 것이다. 그러니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슨 기준으로 내 글을 삭제하느냐"는 불평. 볼멘소리에 이골이 날 만도 하건만, 막상 항의를 받으면 또 뜨끔해진다.
대통령 탄핵 이후 이런 항의가 급증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보수신문이 변절했다"며 분개했고, 그 반대 진영에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대변한다며" 못마땅해한다. 몇몇 독자는 내 정치성향을 캐묻는다. '종북'과 '수구'라는 단어를 번갈아 들을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올 지경.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 댓글난으로 넘어가 보자. 거긴 말 그대로 가관이다. 욕설은 기본이요, 확인되지 않은 소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는 감정의 토로가 넘친다. 얼마 전 시조를 같이 공부했던 60대 문우(文友)를 만났다. "예전엔 기사 댓글이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소통의 장벽 같다"고 했다. 현 세태에 목소리를 높이던 문우는 "소명의식을 가진 사이버 청소부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 "회색분자처럼 보일지라도 좌우에 치우치지 않아야 해요. 목소리 크다고 지면 안 되는 겁니다." 문우의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좋아요'의 시대, 댓글은 영향력 있는 글이다. 그리고 변질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짜가 진짜인 양 활개 치기도 하고, 괴담이 진실로 포장되기도 한다. 예의와 상식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까다로운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항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나 '청소부'로서 코 푼 휴지를 고귀한 보석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
5. [세계일보][세계에세이] 일력트릭 기타 도전기
어린 시절 양희은과 송창식의 노래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즐거웠다. 그룹사운드도 좋아했다. 송골매, 휘버스, 블랙 테트라처럼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그룹은 물론 레드 제플린, 이글스, 퀸과 같은 이국의 그룹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최고였다. 끊기듯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에 가슴이 다 졸아들었다. 나도 저렇게 기타를 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은 늘 바빴다. 결국 기타를 배울 마음조차 먹어보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노래 후반부에서 기타리스트는 어김없이 솔로 파트를 연주했다. 그래, 저거였어.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과 오랜 상담 끝에 초보자용 기타를 장만했다. 수소문해서 기타 선생님도 구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들뻘 선생님은 레슨 첫날 “통기타를 좀 치셨다니 금방 배우실 거예요”라고 격려해 줬다. 그런데 실력이 금방 늘리는 만무했다. 우선 연습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 한두 시간은 연습해야 한다고 과제를 내주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에 두 시간 하기도 어려웠다. 3개월이 지나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매번 혼났다. “이 정도면 중고등학교 애들은 일주일이면 마스터한다고요.”
다음에는 손가락이 문제였다. 왼손의 네 손가락으로 기타 지판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야 했으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피크를 잡고 맞는 줄을 튕겨야 했다. 템포는 왜 그렇게 빠른지. 리듬에 맞추려고 허둥지둥 따로따로 노는 손가락으로 악보를 쫓다 보면 그 어설픔에 헛웃음이 나왔다. 손놀림이 둔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그러게 좀 젊었을 때 시작할 걸 하는 자책이 앞섰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이해해 줬다. 진도도 천천히 나가는 걸로 은연중에 합의를 보았다. “기타를 잘 치려면 기타와 친해지는 게 중요해요. 친해지려면 같이 놀아줘야 해요”라면서 가능하면 매일 펜타토닉 스케일을 연습하는 게 좋다며 악보를 건넸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5음계 스케일인데 기타 지판의 전반을 거의 사용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러니 이 스케일을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왼손과 오른손이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기타를 다루고 있다는 실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기법도 하나씩 배워 나갔다. 생소한 기법을 배워 나가는 것은 고통이자 즐거움이었다. 레퍼토리도 하나씩 늘어났다.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Heaven)의 솔로 파트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1년이 돼 간다.
드디어 ‘호텔 캘리포니아’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도 좀 붙겠지. 그렇게 되면 밴드를 하고 싶다. 열정만 있고 실력은 형편없는 머리 하얀 기타리스트를 끼워 줄 밴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은 홍대 클럽을 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공연도 하고 싶다. 맥주를 들이켜며 그 옛날 추억의 레퍼토리로 신나는 밤을 보내야지. 한바탕 다 함께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좀 평소 하고 싶었던 일,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놓았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충분히 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삼성전자 ‘49조 주식 소각’을 바라보는 착잡함
삼성전자가 어제 이사회를 열어 40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키로 했다. 그동안 사들여 갖고 있던 보통주 1800만 주와 우선주 323만 주다. 전체 발행 주식의 13.3%에 달한다. 이 회사가 추가 매입 중인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역시 소각될 예정이다. 지금의 주가로 치면 총 49조원어치가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자사주를 없앤다고 회사 가치가 쪼그라드는 건 아니다. 없어진 금액만큼 나머지 주식의 가치가 올라간다. 주주들에겐 그만큼 이득이다. 배당과 더불어 자사주 소각이 주주친화 경영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도 2.4% 올랐다.
자본시장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동안 우리 증시에선 기업이 주주들에게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이 일어왔다. 시가에 견줘 배당률이 너무 낮고 ‘박스피’로 불릴 만큼 주가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 심리 개선을 위해서라도 기업이 배당을 확대하고 주가를 부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식 소각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적 관점에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주식 소각은 기업이 성장기를 마무리했다는 불길한 신호다. 주식 소각이 당장의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미래의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 소각보다는 재투자와 연구개발(R&D)에 돈을 쓰는 게 고용과 내수를 살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반도체 특수로 들어오는 막대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회사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기업의 잘못된 행위는 분명히 바로잡되 기업 활동의 족쇄는 풀어주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15%로 내리는 획기적 감세안을 발표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지만 우리 기업들로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
2. 정책 정치 가능성 보여준 심상정의 약진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약진이 연일 돋보인다. 그끄저께 4차 대선 TV 토론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심 후보의 지지율이 8%까지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의 지지율은 한 달 넘게 3% 박스권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아마 자신도 놀랄 수치일 것이다. 정의당과 심 후보에게 지지와 후원 문의가 이어진다고 한다.
심 후보의 지지율 급등은 TV 토론을 통해 역량을 거듭 확인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차 토론 직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그는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단지 언변이 좋아서 유권자들이 새삼 그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심 후보의 토론 자세와 내용에서 ‘정책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었다는 평가가 많다.
TV 토론을 볼 때마다 유권자들은 가슴에 체증이 더 쌓인다. 일자리·안보·저출산 등 기초 현안을 놓고도 원론적 답변으로만 쩔쩔매는 유력 후보들 탓이다. “저 정도로 준비가 덜 된 사람들한테 국정을 어찌 맡기겠나” 하는 답답증 속에서 심 후보가 숨구멍을 터 주는 셈이다. 불리한 문제에는 답변 회피 작전을 일삼는 유력 후보들과 달리 그는 논점을 꿰뚫어 알맹이 있는 답변을 제시했다. 후보들의 선심성 정책들에 재원 대책이 뭐냐고 구체적으로 따지는 내공도 보여 줬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보적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도 호감도를 확장하는 데 주효했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짜증 날지는 아랑곳없이 후보들이 해묵은 대북 송금 공방을 벌일 때도 “앞으로 대통령 되고 뭘 할지를 물어봐야 한다”며 토론의 흐름을 튼 것도 그다. 어찌 보면 크게 대단한 요령도 없다. 그저 상식선의 국민 눈높이에서 대응하니 그의 역량을 다시 살피게 된 것이다.
진영과 정당의 기성 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어느 후보는 무슨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지 빤한 게 현실이다. 지지 후보가 엉뚱한 대답으로 허방이나 짚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다. 그만큼 주요 후보들의 정책 논리는 빈약하며, 정치 철학과 정책 역량은 초라하게 비친다. 이야말로 정치 신인도 아닌 심 후보가 소속 정당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승기류를 타는 배경이기도 하다.
오랜 고민과 정치철학으로 개발한 정책인지 아닌지는 유권자가 먼저 알아본다. 대선일이 고작 열흘 남았다. 이 파장 국면에 왜 지금 ‘심상정 현상’인지 주요 대선 주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아프게 새겨 보기 바란다.
3. 선거판 뒤흔드는 SNS 마타도어 중대 범죄다
대선을 열흘가량 앞둔 가운데 후보 관련 가짜 뉴스가 막판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다음달 3일부터 선거 당일인 9일까지는 온갖 가짜 여론조사가 판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후보와 관련한 가짜 뉴스는 역대 최다인 3만 1000건을 웃돌았다. 2012년 18대 대선 전체 기간에 적발한 건수의 4배를 넘어선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와 불법 여론조사 공표, 후보자 비방이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4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불법 게시글이 77%에 이르렀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관련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가짜 뉴스는 악의적 비방·흑색선전으로 여론을 왜곡·조작한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대 선거범죄다. 이번 대선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사이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SNS를 이용해 너도나도 상대 후보의 불법 낙선운동에 나서는 꼴이다. 후보 간의 네거티브 경쟁이 가짜 뉴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가짜 뉴스로 발생하는 사회적 신뢰 저하, 정치적 극단주의 등의 피해가 연간 30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선관위는 24시간 가짜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사이버 전문가 20여명의 인력으로 매일 많게는 수십억 건이나 되는 SNS 게시글을 걸러 내기 어렵다. 게다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과 같은 폐쇄형 SNS의 가짜 뉴스형 허위사실이나 비방은 내부 제보 없이는 적발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각 후보 진영에 SNS 전략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바꾸길 기대하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포털 사이트는 이제라도 가짜 뉴스를 제공하는 매체와는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현재 포털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언론매체 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그때그때 적발한 가짜 뉴스를 삭제하는 방식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이제 5·9 대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엄격한 법 적용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대선 이후 가짜 뉴스가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범적으로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엄격히 적용하길 바란다.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독일처럼 가짜 뉴스를 비롯해 ‘범죄적 내용’을 발견하고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기업에는 거액의 벌금(독일은 최고 500만 유로)을 물리는 것을 입법화해야 한다.
[매일경제]
4. 65세 이상 버스기사는 적성검사 받는데 택시는 왜 거부하나
정부가 만 65세 이상 택시기사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자격유지 검사(운전적성 정밀검사)'를 도입하려는 데 반발해 전국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다음달 2일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자격유지 검사 도입을 위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3월 마무리하고 현재 규제개혁심사를 앞두고 있다.
65세 이상 택시기사는 3년에 한 번, 70세 이상은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일정 점수 미달로 탈락할 경우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보니 고령 기사들이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택시기사들은 개인택시연합회 차원의 자율검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격유지 검사는 횟수에 상관없이 재응시가 가능하므로 굳이 그렇게 해야 할 명분이 없다.
개인택시 기사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5년 기준 25.9%에 달한다. 고령 택시기사들이 다 운전에 미숙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인지 능력 저하로 돌발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의 사고 건수는 주행거리 100만㎞당 0.988건으로 65세 미만 운전자(0.65건)의 1.5배 수준으로 사고율이 높다.
65세 이상 버스 운전자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자격유지 검사를 시행 중이어서 형평성 차원에서도 택시기사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버스에 먼저 적용하고 택시에 유예해준 것인데 직업권 침해, 차별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승객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발상이다.
일본은 사업용 운전자의 경우 65세 이상은 3년, 75세 이상은 1년 주기로 적성검사를 받고 있고, 영국은 65세 이상은 매년 의료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택시기사의 운전능력을 정기적으로 검증해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것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인 만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이데일리]
5. 훈풍 이어갈 성장전략 있는가
우리 경제에 모처럼 봄바람이 불고 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보다 0.9% 상승했다는 게 한국은행 발표다. 수출 증가세가 5개월째 이어지고 건설·설비투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민간소비도 증가했다. 올 성장률이 한은 전망치 2.6%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아직 겨울이다. 경기 회복세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실업률이 4.3%로 2010년(4.7%) 이후 가장 높고, 청년실업률은 10.8%로 몇년째 두 자릿수다. 물가도 1분기에 2.1%가 올라 가파른 상승세다.
대선 후보들은 이런 현실에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랏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등 눈앞의 표심 좇기에 급급할 뿐, 정작 곳간을 채울 방책은 공허하다. 후보들마다 성장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추상적인 데다 정책의 나열 수준에 그쳐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되레 성장 불씨를 꺼뜨리는 게 아닌가 미심쩍은 공약들이 쏟아진다.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는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데도 우리는 반대 움직임이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재벌개혁론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근본적인 성장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표심에 기댄 반기업 정서의 유혹을 떨쳐내고 기업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과 혁신의 성장 로드맵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기업 발목을 잡으면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복지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6. 협상의 손 내민 美, 北이 답할 차례다
대북 강경노선으로 치닫던 미국이 돌연 협상 여지를 열어 놓았다.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은 그제 합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동맹국 및 역내 파트너들과 외교적 조치를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핵, 탄도미사일, 핵확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성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에 방점이 찍힌 게 특징이다. 성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 두겠다”고 못 박았다.
올 1월 출범 이후 선제타격 등의 강경 발언과 핵항모 칼빈슨호의 한반도 배치 등 무력시위로 역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킨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그렇다고 정책기조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폐기를 거듭 선언함으로써 강온 양면작전을 구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결 유연해진 이 정책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이 뒷받침됐다고 봐야 할 게다. 무엇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잦은 접촉 끝에 얻어낸 공조 약속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무역 보복,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들먹이며 으름장과 호소를 병행한 끝에 ‘6차 핵실험 강행시 대북 송유중단’,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용인’ 등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반응이 중국 관영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공은 평양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른 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다.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내민 협상의 손을 잡는 것만이 남북의 공영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임을 왜 못 보는가. 아울러 대선에 뛰어든 유력 후보들이 어설픈 안보관으로 북한의 오판을 유발하는 것도 극력 경계할 일이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눈에는 美 ‘법인세 파격 인하’ 안 보이나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파격적인 감세 정책에 들어갔다.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내리고, 개인소득세도 과세구간을 7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세율을 실질적으로 낮춘다고 한다. 유례 없는 기업 감세 정책이다. 감세 규모는 레이거노믹스가 한창이던 1986년 세제 개편 때보다 훨씬 크다. 10년간 덜 걷힐 세금은 2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세수 감소를 무릅쓰고 감세를 단행하는 것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를 ‘붐업’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에 관한 한 미국은 후발주자다. 세계 주요국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영국은 2008년 28%에서 재작년 20%, 2020년에는 17%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은 조만간 20%로 낮추고, 독일은 15%까지 내린다고 한다. 인하 바람이 불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법인세율은 지난해 22.5%로 낮아졌다. 세계 경기침체에 맞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불씨를 댕기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정치권은 앞다퉈 법인세 인상을 외친다. 대선후보들이 내건 복지공약에 소요되는 20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대기업 법인세율을 22%에서 25%, 24%로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이에 더해 대기업 감세를 없애 실효세율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빤히 보면서도 ‘부자감세 철폐’만 요란하게 외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성장률은 1.13%포인트 하락하고, 고용은 0.3∼0.5% 줄어든다고 한다. 국내에 투자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9%로 반짝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연간 성장률이 수년째 2%대를 맴돈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성장률 전망치 3.5%보다 크게 낮다. 규제와 강성 노조가 발목을 잡는 판에 법인세까지 올리겠다니 기업에서 어떻게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대선후보들은 세계 각국이 왜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내리고 있는지 깊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8. 무너진 양강구도… 안철수, 뭐가 문제인지 돌아보라
5·9 대선 판세에서 양강 구도가 무너지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문 후보와 자웅을 겨루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어제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지난주보다 5.6%포인트 떨어진 22.8%에 머물렀다. 문 후보(44.4%)와의 격차가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앞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린 결과가 이어졌는데 이번 조사에선 그 격차가 더 커졌다.
후보 5명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TV토론이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네 차례 진행되면서 안 후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크게 늘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 등 안보 분야를 비롯해 국정 전반에서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경쟁 후보와 정책 대결을 하기보다는 네거티브나 감정싸움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내가 갑철수냐”, “MB 아바타냐”는 엉뚱한 질문과 “실망입니다”, “아닙니다”라는 면박성 답변은 패러디와 풍자의 소재로 전락했다. 반면 TV토론에서 호평을 받은 심상정 정의당,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안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의 표를 욕심내다 양쪽에서 모두 잃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사드 입장에서 드러난 ‘양다리 걸치기’식 전략이 대표적이다.
안 후보에게 실망한 보수층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옮겨간 것은 주목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13%를 확보한 홍 후보는 안 후보를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보수층에서 홍 후보(38.5%)는 안(25.1%), 문(18.0%)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보·혁 대결 본격화에 따른 지지층 결집 효과가 TV토론 영향과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보수 표심의 향배가 향후 판세의 막판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그런 만큼 오늘과 다음달 2일의 남은TV토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안 후보의 부진은 1강 문 후보에게도 거울이 돼야 한다. 25일 TV토론에서 보여준 고압적 태도는 유권자들의 표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심은 권력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
[매일신문]
9. 이제 사드 배치 논란 접고 중국 보복 대비에 힘 모으자
주한미군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핵심 장비를 성주기지에 반입한 지 하루 만에 작전 배치를 끝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군이 다음 달 9일 대선 이전에 사드를 시험 가동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를 뒤엎고 시험가동 없이 바로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를 되돌리려면 한미 동맹의 균열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미군이 이렇게 서둘러 사드의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은 그만큼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파견으로 ‘4월 위기설’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6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지금의 안보 현실이다.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얘기다.
사드는 이런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무기다. 북한이 실전 배치한 1천여 기의 미사일 중 800여 기가 남한을 겨냥하고 있는 안보 위협을 타개하기 위한 첫 조치가 바로 사드 배치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사드가 안 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안보 자해는 그만둬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7일 ‘국회 비준 등 공론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 문제를 순리적으로 풀겠다”고도 했다. 사드 배치라는 현상의 변화를 시사한 발언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아직도 안보 현실의 위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전 운용에 들어간 사드를 놓고 다시 배치할 거냐 말 거냐는 공론(空論)이 아니라 중국의 추가 보복 등 추후 발생할 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다. 중국의 보복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대중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산 중간재 없이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완제품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해도 피해를 입는 기업은 분명히 있다. 야당이 할 일은 이런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10. 행정 착오라며 무기계약 근로자 수당 떼먹은 영덕군
영덕군이 무기계약 근로자들의 연차수당은 물론 행정 착오로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53명의 근로자에게 2억1천405만여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덕군이 근로자의 임금 체계를 바꾸며 행정 착오로 빚어졌다. 또한 급식비나 교통비 등을 통상 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은 잘못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근로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행정상 착오와 잘못이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의 정기 감독 과정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감독 결과, 영덕군은 무기계약 근로자 58명의 연차수당 360여만원을 주지 않았다. 재직자 65명의 연차 일수 수당 1천200여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잘못을 지적받을 때까지 고스란히 모른 셈이었다. 고용노동부 지적이 없었으면 그냥 떼일 돈이었다.
영덕군의 문제는 또 있다. 통상 임금에 급식비와 교통비 등을 넣지 않았다. 이런 명목은 퇴직금이나 상여금 등을 줄 때 기준이 되는 통상 임금에 포함돼 근로자들의 임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영덕군이 최근 3년간 이런 식으로 53명에게 미지급한 돈은 2억1천405만여원에 이르렀다. 1인당 400만원이 넘는 적잖은 금액이다.
고용노동부가 비록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이번 일은 영덕군의 허술한 행정의 단면을 드러낸 사례이자,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청의 정규직 공무원들이 받을 돈이었으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3년이나 그냥 두었겠는가. 허술한 업무 처리와 함께 주먹구구식 예산 운용도 짚어볼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근로자 미지급금을 주려고 해도 마땅한 예산이 없는 탓이다.
이번 일은 일자리 창출 과정에 따른 일로 치부하고 단순 행정 착오라는 군의 해명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한정된 군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되새겨봐야 할 사안이다. 행정 착오를 3년이나 모른 점은 그냥 덮어둘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군이 자초한 문제인 만큼 예산 타령에 앞서 임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룰 일이 아니다. 일자리 행정도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41] 달빛장터에서
해가 지자, 한강공원에 장이 섰습니다. 두리번대며, 기웃거리며 두어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름부터 재미있습니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반포 낭만 달빛 마켓'. 푸드 트럭 수십 대가 광장의 울타리를 이루고, 가운데엔 갖가지 노점들이 빙 둘러앉았습니다. 저마다 직접 만든 물건을 들고 나와 파는데, 대개 수공예품들입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지개 분수, 황홀한 야경에 살랑거리는 봄바람. 또 하나의 강물로 넘실대는 젊음의 물결. 눈과 귀만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굽고, 찌고, 볶고, 삶고, 끓이고! 갖가지 냄새가 코를 간질입니다. 넓은 마당이 거대한 부엌입니다. 레스토랑입니다.
코너마다 장사진(長蛇陣)입니다. 음식 하나 사먹자면 인내력 테스트를 받아야 할 지경입니다. 참을성이 없으면 구경꾼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당연히 점포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만두, 핫도그, 스테이크, 감자튀김 …. 어느 줄이 더 긴가 시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교적 짧은 줄을 선택했습니다. 떡을 파는 곳입니다. 인절미 예닐곱 개를 노릇하게 구워서 일일이 조청을 바르고 콩고물을 묻혀 줍니다. 연인들인지 신혼부부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주인 남녀는 지금 숨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찰진 솜씨로 한 사람은 굽고, 찰진 말씨로 한 사람은 팝니다.
아무려나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흥겨운 '청춘의 굿판'을 마련해준 사람들이 고맙고,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젊은이들이 고맙습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작품들을 자랑스레 선보이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고맙습니다. 땀을 흘리며 '불'과 '연기'와 씨름하는, 저마다의 '신념'을 파는 젊은 그들이 고맙습니다.
동시에, 미안한 생각도 고개를 드는군요. '저렇게 행복한 얼굴로 능력과 열정을 팔 수 있는 청춘들인데. 터가 없고 판이 없어서 젊음의 시간과 에너지를 놀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과 슬기는 넘치는데 쓸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딱한 일인가.'
'연부역강(年富力强)'. 시간 부자, 힘의 강자(强者)면 무엇 하겠습니까. 의자가 없고 멍석이 없는데, 시장이 없고 광장이 없는데, 극장이 없고 무대가 없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데, 눈높이를 맞춰줄 사람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목이 타는지, 슬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관심 두는 이가 없는데.
청년실업은 통계전문가나 정치가들의 회의실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20세기 작도법(作圖法)으로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세상의 지도를 만들기 어렵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그들이 계속 우리처럼 살기를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M1소총 교본으로 미래 전쟁의 전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낮에 본 연극이 떠오릅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9년에 초연된 작품인데, 감동의 공감대는 여전합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주인공 '윌리 로먼'은 이땅에도 있을 법한 어떤 아버지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 없음'에 절망하며 자살로 삶을 마치는 가장이지요.
그러나 죽음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입이 생길 때마다, 현관 계단을 만들고 지하실을 만들고, 욕실 하나 더 만드는 게 기쁨과 보람이었던 아버지. '시멘트 한 포대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아버지. 그렇게 가정적이었던 사람답게, 누가 물으면 '아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허풍을 치던 아버지.
아버지는 두 아들이 번듯하게,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의 기준은 너무 오래된 것이었지요. 그가 지켜온 삶의 문법은 모범적일 뿐, 새로운 시대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부자간의 갈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모든 가치의 소멸이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가 자신의 보험금으로 희망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도 아내 린다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 비프의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좌절의 순간에 쏟아낸 말이지요. "왜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버지 친구 찰리가 장례식장에서 하는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중략) 이 사람(윌리 로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청년이야말로 꿈꾸는 세일즈맨입니다. 물론 아무 거나 팔진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팝니다.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 거나 만들진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만듭니다. 원료와 재료, 노하우와 레시피, 아이디어도 충분합니다.
부족한 것은 달빛장터. 그리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미소' 지을 때, '미소에 답'해줄 사람들.
2.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눈 먼 시계공
척수와 혈관이 목을 지난다. 중요한 기관이다. 기요틴이 작동해서 두 기관을 절단하면 곧바로 죽음이다. 나의 대학선배인 소설가 신상성(74)은 젊을 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정글에서 백병전을 했는데, "목을 베어 머리가 달아나려는 것을 간신히 붙들어 꾹 눌렀더니 고대로 붙더라. 죽을 것을 살았다"고 침을 튀겼다. 오르한 파묵(65) 못잖은 입심이지만 그 거짓말을 누가 믿으랴.
신경과 혈관의 중요성이야 모를 바 아니다. 허나 생명유지를 위한 노동은 사실 식도와 기도가 한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부지한다. 식도와 기도가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 가끔 헷갈려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약하게 나면 사레가 들리고 심하게 나면 기도가 막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최재천(63)은 2012년에 낸 '다윈지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 옛날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는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했다. 물고기가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숨을 쉬기 위해 생긴 콧구멍은 배보다 등에 있어야 유리했다. 우리는 이때 엇갈린 두 관의 위치를 바꾸지 못하고 대대로 물려받았다. 그래서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목 앞쪽에 있는 기도를, 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기도 뒤에 있는 식도를 통과하는 교차 구조가 되었다.
이런 교차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음식물을 삼킬 때 기도를 막아주고 숨을 들이마실 때 열어주는 '후두개'가 생겼다. 급히 음식물을 삼킬 때 등 실수로 후두개가 기도를 막아주지 못하면 말썽이 생긴다. 이러한 불완전성을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TheBlind Watchmaker)에 비유했다.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에서 복잡한 물건은 반드시 설계자가 있게 마련이라며 시계공을 예로 들었다.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 신부로서 공리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자연신학'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 논쟁을 해설했다. 도킨스는 페일리의 예를 꼬투리 잡아 '진화 과정에 설계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눈이 먼 시계공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킨스가 보기에 자연선택의 결과로 태어난 오늘날의 생명체들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하고 수리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계공이 나름대로 고쳐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가끔 요행으로 재깍거리며 작동할 뿐이다. '예수쟁이'인 나로서는 아주 집중을 해서 읽어야 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세상이 복잡한 데 비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든가 태양계와 은하계의 구조가 핵의 주위를 전자가 회전하는 구조와 다름없음을 보면서 "아, 신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그다지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구나. 역시 신이야"라고 생각해왔다.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대부분 일치한다는 신비는 사실 구더기와도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허풍을 치랴. 고개 숙여 세상을 만나고 섭리를 섬겨 차분히 살아갈 뿐. 인간은 섭리를 이해하고 겸손을 실천할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3. [서울신문][In&Out] 좋은 농산물이 나오기 위한 세가지 조건
“어떻게 하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나요?”
요리사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재료를 찾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외국의 요리학교에서 공부할 때 요리사들이 지역에서 공급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연구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재료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오너 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연 이후에는 한국의 제철 채소와 해산물, 육류, 장류 등을 전공인 프랑스 요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농산물들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7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영농조합원으로서 작게나마 농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됐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좋은 품질에 비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산 농산물이 식재료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농가와 셰프 간 직거래 교류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셰프들이 ‘이런 사이즈와 모양으로 만들어 주면 쓰기 편하다’고 전달하면 농가는 해당하는 식재료 사양에 맞게 맞춤형 생산을 해주는 것이다.
고려닭과 청리닭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토종닭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우리만의 특색 있는 닭고기다. 직거래를 통해 이런 소규모 고품질 식재료들이 더 많이 공급된다면 셰프들의 다양한 프리미엄 요리를 보다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판매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나 과일도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못생긴 채소와 과일의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대형 레스토랑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몇년 전 양파 파동 때처럼 갑자기 공급량이 늘어나면 식자재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형 레스토랑에서 양파 메뉴를 개발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원상태 그대로의 채소가 아니라 볶은 양파, 볶은 당근 등 한 차례 가공을 거쳐 파는 것도 많은 식당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못생긴 무나 당근은 상품성이 없어 대부분 수확한 밭에서 버려진다. 그러나 깍두기를 담그고 볶음밥에 넣는 재료로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약을 쳐서 키운 것들이 겉모양은 예쁘지만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대부분이 소고기는 등심과 안심만,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 부위만 찾는다. 외국에서는 육류의 부위별 가격이 적정한 차이를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정 부위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뚜렷해 어떤 부위는 지나치게 비싼 편이다.
거꾸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특정 부위는 가격이 너무 낮아지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돼지 목살을 주문하니 어깨살 부분까지 함께 파는 것을 봤다. 특정 부위의 쏠림 현상 때문에 도축 단계부터 붙여서 거래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국내에서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연구해 보면 좋겠다.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때다. 농산물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우리 땅에서 좋은 품질의 다양한 농산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노력뿐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변화 그리고 합리적인 유통과 판매 시스템이 필요하다. 좋은 농산물의 생산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작이자 활기찬 농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믿는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사이버 청소부
2011년부터 디지틀조선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주 업무는 조선닷컴 100자평과 토론마당 모니터링. 댓글 창에 '관리자가 (비속어·비하·기타) 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라는 빨간 문구가 뜨면 내가 다녀간 것이다. 그러니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슨 기준으로 내 글을 삭제하느냐"는 불평. 볼멘소리에 이골이 날 만도 하건만, 막상 항의를 받으면 또 뜨끔해진다.
대통령 탄핵 이후 이런 항의가 급증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보수신문이 변절했다"며 분개했고, 그 반대 진영에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대변한다며" 못마땅해한다. 몇몇 독자는 내 정치성향을 캐묻는다. '종북'과 '수구'라는 단어를 번갈아 들을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올 지경.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 댓글난으로 넘어가 보자. 거긴 말 그대로 가관이다. 욕설은 기본이요, 확인되지 않은 소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는 감정의 토로가 넘친다. 얼마 전 시조를 같이 공부했던 60대 문우(文友)를 만났다. "예전엔 기사 댓글이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소통의 장벽 같다"고 했다. 현 세태에 목소리를 높이던 문우는 "소명의식을 가진 사이버 청소부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 "회색분자처럼 보일지라도 좌우에 치우치지 않아야 해요. 목소리 크다고 지면 안 되는 겁니다." 문우의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좋아요'의 시대, 댓글은 영향력 있는 글이다. 그리고 변질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짜가 진짜인 양 활개 치기도 하고, 괴담이 진실로 포장되기도 한다. 예의와 상식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까다로운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항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나 '청소부'로서 코 푼 휴지를 고귀한 보석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
5. [세계일보][세계에세이] 일력트릭 기타 도전기
어린 시절 양희은과 송창식의 노래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즐거웠다. 그룹사운드도 좋아했다. 송골매, 휘버스, 블랙 테트라처럼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그룹은 물론 레드 제플린, 이글스, 퀸과 같은 이국의 그룹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최고였다. 끊기듯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에 가슴이 다 졸아들었다. 나도 저렇게 기타를 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은 늘 바빴다. 결국 기타를 배울 마음조차 먹어보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노래 후반부에서 기타리스트는 어김없이 솔로 파트를 연주했다. 그래, 저거였어.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과 오랜 상담 끝에 초보자용 기타를 장만했다. 수소문해서 기타 선생님도 구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들뻘 선생님은 레슨 첫날 “통기타를 좀 치셨다니 금방 배우실 거예요”라고 격려해 줬다. 그런데 실력이 금방 늘리는 만무했다. 우선 연습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 한두 시간은 연습해야 한다고 과제를 내주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에 두 시간 하기도 어려웠다. 3개월이 지나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매번 혼났다. “이 정도면 중고등학교 애들은 일주일이면 마스터한다고요.”
다음에는 손가락이 문제였다. 왼손의 네 손가락으로 기타 지판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야 했으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피크를 잡고 맞는 줄을 튕겨야 했다. 템포는 왜 그렇게 빠른지. 리듬에 맞추려고 허둥지둥 따로따로 노는 손가락으로 악보를 쫓다 보면 그 어설픔에 헛웃음이 나왔다. 손놀림이 둔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그러게 좀 젊었을 때 시작할 걸 하는 자책이 앞섰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이해해 줬다. 진도도 천천히 나가는 걸로 은연중에 합의를 보았다. “기타를 잘 치려면 기타와 친해지는 게 중요해요. 친해지려면 같이 놀아줘야 해요”라면서 가능하면 매일 펜타토닉 스케일을 연습하는 게 좋다며 악보를 건넸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5음계 스케일인데 기타 지판의 전반을 거의 사용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러니 이 스케일을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왼손과 오른손이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기타를 다루고 있다는 실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기법도 하나씩 배워 나갔다. 생소한 기법을 배워 나가는 것은 고통이자 즐거움이었다. 레퍼토리도 하나씩 늘어났다.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Heaven)의 솔로 파트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1년이 돼 간다.
드디어 ‘호텔 캘리포니아’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도 좀 붙겠지. 그렇게 되면 밴드를 하고 싶다. 열정만 있고 실력은 형편없는 머리 하얀 기타리스트를 끼워 줄 밴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은 홍대 클럽을 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공연도 하고 싶다. 맥주를 들이켜며 그 옛날 추억의 레퍼토리로 신나는 밤을 보내야지. 한바탕 다 함께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좀 평소 하고 싶었던 일,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놓았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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