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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문재인 대통령, 국민과 함께 '나라다운 나라' 만들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9일 치러진 대선에서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재인 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줄곧 우세를 보이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교적 큰 표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문 후보의 승리로 9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진보 성향 야당은 다시 권력을 위임받아 국민 다수의 꿈과 바람을 실현할 책임을 안게 됐다.
문 후보의 승리는 무엇보다 국민이 ‘촛불혁명’ 과정에서 드러난 시대적 열망을 구현할 조타수로 ‘문재인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구호는 그런 열망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겨울 촛불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은 단순한 정권 퇴진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대개조를 요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진보·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날로 심화한 양극화로 인해 국민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왔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갈수록 심해지는 불공정과 ‘갑질’ 사회, 부익부 빈익빈을 향한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은 단순히 3기 민주정부를 넘어 총체적인 국가 개조, 격차사회 탈출을 위한 대장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대선 결과는 또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더 나아가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의미를 지닌다. 홍준표 후보가 문 당선인에게 큰 표차로 패배함으로써 전통적인 보수 세력은 눈에 띄게 퇴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보수 정권 9년간 쌓여온 적폐가 곪아터진 것이다.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각 분야의 9년 실정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이번 대선으로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여→야→여→야로 이어지는 두번의 정권교체가 완성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야당으로의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2007년엔 옛 여권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으로 다시 정권이 넘어갔다. 그로부터 9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야당 세력이 다시 정권을 찾아옴으로써 우리나라도 국민 선택에 따라 정권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런 정치문화를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
대세론을 바탕으로 한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문재인 당선인은 마냥 기뻐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너무나 많은 난제가 앞에 놓여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북핵 위기 와중에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의 치명적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경제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서민·중산층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재벌을 개혁하고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바로 세우자는 국민적 요구도 거세다. 이렇게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 있으나 국회는 여소야대고, 대선 와중에 정치권은 서로 적대감만 키웠다.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문재인 당선인이 취임 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건 협치를 통한 개혁과 연대를 통한 청산이다. 개혁도 청산도 ‘협치와 통합, 연대’ 없이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문 당선인이 유세에서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두 가지를 번갈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문 당선인이 대선에서 큰 표차로 승리하긴 했지만, 정치적 세력분포로 보면 여전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 문 당선인은 과반엔 미치지 못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득표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되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문 당선인 스스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밝혔듯이 집권 이후 우선적으로 국민의당·정의당과 연정 또는 협치를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보수 정권 실패에 대한 국민 반발 속에서 진보개혁 정치세력의 폭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후보의 득표율을 모두 합하면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득표율을 두 배 이상 압도한다. 문 당선인은 우선적으로 이들 두 정당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문 당선인은 자신을 찍지 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도 포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말로만 ‘100%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반대파를 탄압했던 ‘배제의 정치’는 이젠 끝내야 한다. 국정 운영에서 원칙과 기준을 잃지 않되 보수 유권자의 마음과 정서를 세심히 살피길 바란다.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과도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한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된다. 자유한국당도 과거 야당 시절 했던 것처럼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사사건건 발목잡기에만 몰두할 경우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 발등의 불은 무엇보다 정부와 청와대 진용을 짜는 일이다. 정부 인선에서부터 ‘협치를 통한 개혁, 연대를 통한 청산’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문 당선인은 유세 때 “집권하면 야당부터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면 약속대로 야당들을 우선 방문해, 정부 구성에서부터 의회 협력방안까지 모든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뒤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것을 참고해도 좋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의 경쟁자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유능한 인재를 골라 쓰겠다는 자세로 내각 인선 구상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매달려야 할 현안 중 최우선 순위는 외교안보 분야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급박하게 움직이면서 북한 핵 위기는 중대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더구나 남북 관계는 이미 파탄 상태다. 자칫 잘못하면 구한말처럼 우리의 운명을 주변 강대국에 내맡기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통령 과업 중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 안위를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문 당선인은 취임하자마자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대북정책에서 한국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 건강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호혜평등 원칙에 따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북한에 단호하면서 유연한 자세로 접근해 남북 관계의 새 국면을 열어젖혀야 한다. 대선 전 실전배치 단계까지 들어간 사드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국·중국 등 관련국과 폭넓게 협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문 당선인은 실망에 빠진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일자리의 질은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내수 부진으로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져드는 추세를 반전시켜야 한다. 단기간에 실현하긴 어려운 일이다. 재벌기업의 투자와 수출 지원에 혜택을 집중하고, 건설경기 부양으로 성장률 수치나 높이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과 혁신이 살아나고 가계 소득이 늘어 민간소비가 살아나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정책을 펴지 않으면 안 된다.
촛불시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으로 이어진 드라마는 ‘시민혁명’이라 일컬을 만큼 역동적이었다. 새 정부는 ‘개혁 정책’으로써 시민의 ‘혁명적 바람’을 담아내야 한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개혁의 열매를 맺는 일은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다시는 한국 정치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권력기관은 물론이고 재벌과 언론 역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개혁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힘을 모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게 바로 지도자의 몫이다. ‘새 대통령 문재인’을 중심으로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촛불 혁명’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나가길 기대한다.
[세계일보]
2. '포옹과 협치' 리더십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자
대한민국을 이끌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탄핵 정국에 따른 국정 공백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5개월 만에 비로소 새 정부 출항의 닻을 올리게 된 것이다. 마땅히 승자에게는 축하를 보내야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조차 없다. 새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막중한 국정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 당선자는 인수위원회 구성과 같은 준비 절차 없이 중앙선관위원회의 당선 발표와 함께 임기가 시작된다.
문 당선자 앞에는 산적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잇단 도발과 주변 강국의 움직임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다름없다. 경제도 장기 저성장과 최악의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쓰나미에 휩쓸릴지 모를 판이다. 이런 국가적 난제는 대통령 혼자 힘으로 헤쳐갈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초당적 협력이 전제돼야 해결이 가능하다.
문 당선자는 취임하자마자 여소야대의 정국에 맞닥뜨리게 된다. 과반수에 턱없이 못 미치는 민주당 의석으로는 국회 선진화법에 걸려 법안 하나조차 처리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내각 인선안이 발표되더라도 인사청문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정부 출범 때마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을 놓고 갈등을 빚는 바람에 정부 기능이 상당기간 작동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야당의 지지와 도움을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이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던 제왕적 리더십의 시대는 지나갔다. 역대 대통령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 방식을 답습하다 실패를 거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유의 헌정중단 사태를 맞은 것도 퇴행적 리더십에 의존한 잘못이 크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협치의 리더십 없이는 국정이 바로 굴러갈 수 없다. 여야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 당선자의 득표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문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국민보다 다른 후보를 선택한 국민이 더 많다는 얘기다. 이들을 포용하는 넓은 가슴이 있어야 한다. 후보의 길과 대통령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 후보 시절에는 자신의 지지세력만 보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전체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100%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 당선자는 어젯밤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는 통합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경쟁했던 분들과 손잡겠다”면서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투표를 마친 뒤에는 “선거가 끝나면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라며 “국민도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나가 돼 국민통합을 꼭 이뤄 주시길 바라 마지않는다”고 했다.
문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집권 후 통합정부 구성과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대탕평과 협치, 권력 내려놓기, 국민 참여를 골자로 한 ‘통합정부’ 구상을 내놓았다. 문 당선자 측은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갈등 속에서 심각한 안보·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는 동시에 적폐를 청산하고 대개혁을 이루려면 국민의 통합된 힘을 모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일점일획 더 보탤 것도 없다. 통합과 화합,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새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길은 지금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시작해야 할 총리 후보 인선과 내각 구성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인사는 만사다. 포용과 협력의 정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첫 단추이자 새 정부의 성패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통합정부를 표방한 만큼 야당 인사가 기용될 수 있다.
총리 후보 지명과 국회 인준, 장관 추천과 임명 과정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와 여야가 원활하게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첫 인사가 논공행상, 코드인사, 수첩인사, 불통인사로 얼룩지는 순간 국민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거둬들일 것이다.
정치 보복 같은 뺄셈의 구태 정치도 통합과 화해의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다. 선거 때 구호로 내건 적폐 청산에는 배제와 차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 국민의 이름으로 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다. 오랜 폐단을 바로잡는 일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자칫 자의적인 잣대로 특정 세력을 거부하고 제외하는 편가르기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쪼개진 민심의 분열과 혼란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보다 반듯한 나라를 건설하는 미래의 과업에 힘을 쏟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제 선거로 우리는 12번째 대통령을 맞았다. 그동안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분열의 정치’에 의존한 탓이 크다. 과거의 적폐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적폐는 증오와 갈등을 양산하는 구태 정치다. 문 당선자가 협치와 포용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를 기대한다. 정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국민이 힘을 보태야 새로운 대한민국이 순항할 수 있다.
3. '대북 빅딜' 트럼프발 안보 리스크에 어찌 대응할 건가
미국의 대북 기류가 심상치 않다. 어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면 만나겠다는 제안을 중국을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지 않고,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남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고, 북한 급변사태 시에도 미군이 휴전선을 넘지 않는다는 ‘4가지 노(NO)’ 방침을 함께 전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빈틈없는 공조를 지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긴박한 움직임을 보면 안심할 계제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어제 첫 미팅을 가졌다. 1·5트랙 대화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미국 측에는 핵 협상 전문가인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이 포함됐고,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위기설’을 넘기고 김정은을 칭찬한 뒤 이뤄진 대화여서 탐색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상황이라면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며 “만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라면 이는 정말로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 대통령에 오른 문재인 당선자는 외교안보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점검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장에 한국이 소외되는 현상부터 해소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반도 문제로 통화하면서도 한국을 제외해 코리아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탄핵에 따른 대통령 부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는 이제 끝내야 한다.
미국은 주한 미대사를 아직 지명조차 하지 않은 채 비워두고 있다. 양국 간 의사소통 채널이 틀어져 있다는 상징이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새 대통령과 건설적이며 깊은 협력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해 나가길 고대한다”고 했다.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된 안보 문제가 미국과 주변국에 의해 좌자우지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문 당선자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서울신문]
4. 혁신과 통합으로 새 시대를 열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정 농단을 규탄하며 언 손으로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9년 만에 정권 교체를 실현한 것이다. 13명의 후보가 나선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한 문 당선인에게 축하의 박수를,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친 다른 후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인수 과정도 없이 정권을 이어받은 문 당선인에게는 기쁨을 즐길 여유가 없다. 어느 하나도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당선인 앞에 놓인 국내외의 상황은 엄혹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당선인은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 난국을 헤쳐 나갈 길을 모색하고 공약을 차근차근 챙겨서 실행에 옮겨 나가야 할 것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열정적으로 뛰는 것만이 투표로 선택해 준 국민의 열망에 보답하는 길이다.
전임 대통령 탄핵 과정에 이어 선거에서도 세대, 계층, 이념 간 갈등은 노출됐다. 당선인은 누누이 강조해 온 국민 통합의 의지를 스스로 꺾지 말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 이끄는 기수(旗手)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루가 급한 새 정부의 조각에서부터 특정 당파와 이념에 매달리지 않는 대탕평 인사를 보여 줘야 한다.
당선인은 이미 국무총리를 비영남권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무위원 또한 똑같은 원칙에 따라 다양한 정파에서 골고루 중용함으로써 협치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정권이 전리품이 아님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전임 대통령들이 누구나 ‘통합’을 일성(一聲)으로 내고도 불과 몇 달도 안 돼 식언하고 만 것은 논공행상의 유혹과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나쁜 관행과 이별해야만 진정한 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당선인이 누차 밝혀 온 적폐청산의 신념은 대다수 국민의 요청이자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서 적폐 청산은 안보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정경유착, 재벌독점, 공직비리, 비대한 권력 등 압축성장 과정에서 쌓여 온 나쁜 폐단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청산하려면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국가의 발전에는 공정한 경쟁이 필수적인 요소이고 공정을 위해 적폐를 뿌리 뽑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적폐청산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뒷받침, 즉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 당선인의 지휘로 뚫어야 할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파 일각에서는 강성 노조와 종북 세력을 적폐라고 부르듯 자칫 이념에 휘둘리면 혁신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조장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혁신의 시도가 실패에 이르고 만 것은 이런 반발 때문이다. 그래서 공론화를 통한 여론 수렴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핵의 위협과 혼돈에 빠진 동북아 정세 속에서 외교적 돌파구 찾기는 화급한 숙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은 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비용 부담을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어 사이에 낀 우리는 샌드위치 신세다. 나라 안에서도 분열된 사드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해도 찬반 양측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안보와 국익을 우선시해 당선인이 단호한 의지를 천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향후 한?미 관계의 균열에 대한 걱정이 많다.
중국과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도 유지, 발전시켜야 하지만 대북 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득 될 게 없다. 대북 강경노선을 추구하는 미 트럼프 대통령과 ‘햇볕정책 2.0’으로 남북 화해를 시도하겠다는 당선인 정책의 간극을 줄이려면 다양한 경로를 통한 대화가 필수적이다.
경제와 민생 회생이야말로 가장 큰 국민의 갈망이다. 최근에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있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전 정권의 좋은 정책은 계승하면서 현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을 수립, 10위권 경제 한국의 위상을 되찾는 것은 국민적 요구다. 이번 대통령 임기 중에 2~3%대 저성장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일본식 장기 불황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최악의 실업난에 빠진 청년 세대와 임금과 신분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서 당선인에 대한 큰 기대를 느낄 수 있다. 공직으로 81만명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고용 포퓰리즘’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성을 재점검하고 다른 유용한 고용 확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백약이 무효인 저출산 문제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져 더 근원적인 처방이 요구된다. 역대 정권이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빈부격차 해소도 새 정부의 역점 과제다.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사회 안전망 확충도 중요하다. 당선인은 노인수당 증액과 아동수당 도입 등 복지공약 실현에 35조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적정한 재원 규모와 조달 방안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법인세 인상은 확보할 재원의 규모도 크지 않거니와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선인은 서민들과 시장 바닥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민심을 챙기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기 바란다. 국민과의 소통은 소통의 첫걸음이다. 당선인의 득표율은 40%대로 과반수에 크게 못 미쳤다. 60%에 가까운 비(非)지지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국정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소통과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 오로지 국민만을 섬기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기대한다.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조건이다.
5. 보수측, 새 정부에 힘 실어주는 게 도리다
유례없는 5자 구도 속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후보들의 이념적 스펙트럼 또한 과거의 어느 대선보다 고른 분포를 보였다. 흔히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를 조화롭게 펼쳐야 제대로 날 수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이념과 정책의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가는 민주주의 선진국들을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다르지 않은 양상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었다. 진보 진영의 2대 집권과 보수 진영의 2대 집권에 이은 진보 진영의 재집권은 어느 틈엔가 본격적인 선순환 구조에 편입됐다는 증거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각 후보 진영이 어떤 기대를 가졌든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은 선거의 숙명이다, 이번 선거운동에서도 각 후보는 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최선을 다해 유권자를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거친 언사 역시 적지 않았음을 유권자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상대에게 날 선 비판을 가했더라도 개표 결과는 흔쾌히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조차 승자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지 않는 패자는 따돌림을 당할 만큼 우리 사회는 크게 성숙했다.
문제는 안팎의 상황이 그저 승리를 즐기고, 패배를 인정하는 데 머물러도 좋을 만큼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안보와 외교 위기 극복은 물론 청년 일자리를 비롯한 서민 경제의 활력 회복은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새 내각을 출범시키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커녕 기초적인 국정 운영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럴수록 패배의 아픔을 협력으로 극복하는 보수 진영의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의 비협조로 민생법안의 재·개정이 원천 봉쇄됐던 고통을 되갚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법안 통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더불어민주당도 겸허한 자세로 협력을 구해야 한다.
새 정부에는 정책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마땅하다. 최소한의 ‘밀월’ 기간마저 허용치 않겠다는 정치적 각박함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집권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보수 진영이 대선 패배의 아픔을 아량과 관용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길 원한다. 그 상생의 정신은 5년 뒤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데일리]
6. 문 대통령의 지혜와 용기를 기원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이끌어갈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쌓인 결과다. 국가 안보는 물론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은 자리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면서도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고뇌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에게 축하와 아울러 더 많은 지혜와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국민들의 선거 열기도 뜨거웠다. 이번 최종 투표율이 77.2%(잠정)로, 1997년의 15대 대선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대선에는 이번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에서 26.06%의 투표율을 나타냈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오늘 새벽까지 진행된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득표가 합산될 때마다 환호와 아쉬움이 교차했던 분위기도 충분히 짐작된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듯 새 대통령 앞에는 국방·외교·경제 등 당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 위기 상황부터 풀어야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 발언으로 국면을 자꾸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운데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여전히 완강하다. 일본도 자국 입장을 내세워 위기 상황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들 주변국 지도자들과 담판을 통해 국익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임무가 새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내부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려야 하는 임무도 시급하다.
이번 대선이 전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파면에 따른 후속 절차로 이뤄졌다는 사실부터가 현재 우리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일깨워준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탄핵정국이 시작되면서 촛불·태극기 시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국정공백과 함께 심각한 사회 혼란이 빚어졌다. 문 당선자가 잠시 쉴 틈도 없이 오늘 곧바로 취임식을 갖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사정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을 통해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과연 어떤 식으로 실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세계 정세가 급속히 변해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시대 조류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뜯어고쳐야 하되 지켜야 할 덕목이나 제도까지 손보려 해서는 곤란하다.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도 명백한 기준과 절차가 요구된다. 국가 정책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추진돼야 함은 물론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분열될 대로 분열된 국민 감정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이념·지역·빈부로 갈라졌던 진영 논리가 이번 대선을 통해 더욱 갈라지고 찢겨졌다. 선거 막판까지 검증되지 않은 온갖 흑색선전이 나돈 데다 정체불명의 가짜뉴스까지 판침으로써 유권자들을 더욱 격앙시킨 측면이 다분하다. 각 선거캠프 진영 간의 고소·고발 사태도 조속히 풀어야 할 과제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당선자가 나름대로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득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화합을 내세웠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도 정치적 화합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지금으로써는 다른 누가 당선됐더라도 어차피 여소야대 국면이 불가피하고, 따라서 원활한 국정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소통과 화합이 따라야만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열쇠다.
투표를 통해 국민 총의가 확인된 만큼 각 상대방 진영에서도 승복의 정신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거진 마찰과 불화는 이제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이번에는 비록 패배했을망정 다음 5년 뒤의 대선을 내다보려 한다면 더욱 흔쾌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후보자를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서운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 대통령, 새 정부가 성공해야만 국민 각자의 복리 증진도 보장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선거 국면은 모두 끝났다. 탄핵정국에서부터 비롯된 국정공백 및 혼란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출발선상에 섰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지만 경쟁국들에 비해 이미 한참 뒤처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대열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의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다. 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거듭 축하한다.
[중앙일보]
7. 패배한 보수, 뼈 깎는 자성으로 거듭나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로써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집권당으로 군림해 온 보수당은 9년 권력을 빼앗기고 야당으로 전락했다.
한국당과 홍 후보의 패배는 그들의 행적을 보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당을 주도해 온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주에 편승해 권력을 탐닉해 왔고, 4·13 총선에서 ‘막장공천’으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다가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분노한 민심에 밀린 한국당 지도부는 마지못해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진박’들에게 당원권 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지만 이마저 대선 이틀 전 철회했다. ‘도로 친박당’이란 비아냥 속에 다시 한번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영남 지역의 지지를 업고 대선 막판 상승세를 보여온 홍 후보가 그 흐름을 이어 가지 못하고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교만과 독선으로 보수진영이 궤멸의 위기에 몰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보수는 원래 안보와 질서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한 책임과 헌신, 그리고 약자와 서민에 대한 배려를 핵심 가치로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런 가치들은 실종되고 부정과 부패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보수정치에 덧씌워졌다.
이제 야당이 된 한국당은 뼈를 깎는 자성 속에서 보수의 가치부터 재확립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책임정치다. 국정 농단 사태에 책임이 큰 친박계와 과감히 결별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개혁 어젠다를 채택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새 정부에 협력해야 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초기 인사청문회부터 정책 위주의 큰 틀을 따져야지 예전처럼 오래전 사소한 흠집을 캐내 꼬투리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보수 야당이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와 함께 ‘개혁 보수’를 외치며 이번 대선에서 선전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존재도 눈에 띈다.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 10여 명이 한국당으로 이탈하는 위기 속에서도 레이스를 완주했다. 또 TV토론에서 보여준 소신과 정책 콘텐트는 ‘새 정치’ 가능성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합리적·개혁적 보수의 가치 구현에 힘쓴다면 보수의 재건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의 양 날개다. 건강한 보수의 존재는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의 균형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조선일보]
8. 文 대통령, '노무현 2期' 아닌 統合·協治 불가피하다
탄핵으로 인한 헌정(憲政) 사상 초유의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39.5% (밤 12시 30분까지 개표 결과)를 얻어 당선을 확정 지었다. 탄핵 사태의 반사 이익이지만, 정권 교체 열망을 자신에게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압도적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39.5%에 그쳤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87년 대선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이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느냐에 문 대통령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많은 국민은 앞으로 '노무현 2기(期)'가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거의 매일 갈등과 분열로 지고 샜던 당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문 대통령이 그 시대를 넘어서서 통합하고 협치하는 새로운 대통령상(像)을 보여준다면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들도 곧 성공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당장 문 대통령에게는 정권 인수 준비 기간도 없다. 총리 후보 지명과 청와대 인선, 조각(組閣)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해 7개월 이상 공백 상태였던 국정을 최단 시일 내에 정상화시켜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이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 되지 않으려면 총리 후보자는 야당도 동의할 수 있는 통합형 인사가 발탁될 필요가 있다. 여소야대의 국회 구조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협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당선되면 바로 야당 당사부터 찾겠다"고 한 바 있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대북(對北)· 안보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를 예고해 왔고 이는 선거 기간 내내 주요 이슈가 됐다. 많은 국민과 우방국들은 이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했다. 유엔 대북 제재 위반이란 지적이 나오고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이란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게중심은 '재개' 쪽에 있다. 국민 동의 없는 독단적 결정은 큰 문제를 낳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국회 비준 표결에 넘기겠다고 했다. 군 장비 도입을 국회 비준에 넘긴 전례가 없다. 북핵·미사일을 막는 사드가 이토록 문제가 된 것은 오직 중국 반대 때문이다. 앞으로도 중국이 반대하면 군사 조치를 국회 비준에 넘길 것인가. 하나하나가 국내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문제로 야당과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북 핵실험이 5차에 이르면서 핵무기는 실전배치 직전 단계에 있다. 이복형을 암살한 김정은 정권의 폭력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 대통령은 교류와 당근으로 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자세다. 이를 알고 있는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원을 얻어 핵무장을 완비할 시간을 벌며, 한·미를 이간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국내 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얽힌 실타래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풀어야 한다. 미국의 새 정부와 대북 정책을 조율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 과정을 통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문제, 사드 문제, 대중(對中) 문제 등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자체가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손익을 넘어선 가치 동맹'이라는 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한국 사드 비용 부담 요구도 꺼진 불이 아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새로운 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아도 문 대통령 지지 세력 일부는 반미(反美)적 성향이다. 문 대통령도 선거 초반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인구 절벽과 고령화에 직면해 있다. 일하는 소수가 일하지 않는 다수를 책임져야 하는 체제로 진입했다. 문 대통령은 아동수당과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 65세 이상도 실업급여 적용,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수당 인상 등 연령대별로 현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쏟아냈다.
한번 돈을 주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공공 일자리 81만 개를 창출한다는 공약도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한번 채용하면 수십 년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새 정부의 복지·일자리 공약은 과연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준인가. 문 대통령은 연평균 35조6000억원, 5년간 178조원이 든다고 추산했지만 전문가들은 모자란다고 한다. 이 역시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모으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을 부를 것이다.
복지와 분배라는 한쪽 바퀴만으로 우리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경제 분야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장에 대한 실천적 계획을 내놓는 것이다. 성장률 2%대에 허덕이는 저성장으로는 일자리도 만들 수 없고, 복지에 필요한 재원도 조달할 수 없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과 경기 활성화를 말하긴 했으나 추상적인 언급에 그쳤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는 역시 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다. 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관건은 정치의 대전환이다. 과거의 '군림하는 대통령'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분권(分權)은 대통령 선의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 유일한 길이 개헌(改憲)이다.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시행해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정부 내 개헌특별위원회, 국민 참여 개헌 논의 기구도 즉시 가시화돼야 한다. 지금 개헌은 문 대통령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지지자보다 더 많은 반대자가 존재한다.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대통령상(像)을 세우는 것이다. 턱도 없는 권위주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또 식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면 힘은 줄지 않고 배가될 것이다.
9. 保守의 대선 패배 이번으로 끝날 것인가
어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얻은 표는 진보 진영이 받은 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이 이렇게까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보수 진영이 이 정도 득표를 한 것도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새 출발은 이런 국민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보수 정치는 지지해주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믿고 10년 가까이 너무나 방만한 행동을 해왔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때마다 심각한 고민 없는 공천으로 지금의 이 무력·무능한 정당을 만들었다. 집권 세력의 오만·아집으로 벌인 작년 총선 진박(眞朴) 소동은 최악이었다. 그 결과가 탄핵이고, 지금 존재도 희미한 자유한국당의 초·재선 의원들이다.
문제는 이 보수 정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친박당'이라고 자처한다. 각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수십 년 내려온 보수 정치의 뿌리들이 새로운 길로 나서기를 거부한다고 거기에 그냥 안주하고 있다. 떠받드는 가치는 겉으로만 '보수' '안보'일 뿐, 속으로는 특정인 맹종이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도 집권의 희망 없이 국회의원 몇 석만 보장되는 지역당 외에 아무런 다른 길이 없다.
분열된 보수 정치가 통합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도로 친박당'이 아니라 '더 친박당'으로 갈 가능성마저 있다. 통합의 명분이 만들어질 여지가 없는 셈이다. 30%대로 쪼그라든 보수가 그나마 분열되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홍준표 후보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그 나름대로 분투했으나 이 한국당을 바꾸지 못하면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바른정당은 어찌 보면 미약하고 달리 보면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바른정당을 통해 보수에도 합리적인 생각, 고민을 담은 정책, 약자에 대한 배려, 품위 있는 경쟁이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재발견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낡고 퇴행적인 보수의 이미지를 일신하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는 간단하게 말해 '공동체를 위한 책임과 헌신'이다. 그러려면 자신부터 책임지고 헌신해야 한다. 지금 보수의 누가 희생하고 헌신하나. 그토록 국민의 지탄을 받고서도 책임지는 사람조차 없다. 이들이 얼마나마 얻은 표를 들고 마치 면죄부나 얻은 양 또 나선다면 대선 패배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10. 그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봄을 맞아 푸르게 피어나는 산과 들을 보노라면 무작정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친구들을 연신 불러대며 녹초가 될 때까지 뛰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이날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한다. ‘북포국교’라고 적힌 졸업장 덕분에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채변봉투에 ‘물건’을 담아 담임선생님께 제출했고, 월요일이면 무거운 폐지 한 봉지를 들고 가 증표를 받아야 했으며, 손버릇이 나쁜 친구가 자수할 때까지 모두 눈감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삐라를 주워 볼펜과 바꿔 쓰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강당에 모여 방공영화를 보기도 했다. 기억났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연휴를 맞아 가족 모두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경기 연천이 좋다는 지인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왜 좋은지는 물어보지 않았던 듯했다. 연천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나에게 연천은 국사 시간에 나오는 석기의 출토지거나 전방부대의 이미지가 있을 뿐이었다.
군부대와 작은 읍내가 있는 흔한 전방 도시겠거니 하고 도착한 연천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서울의 북쪽은 산악지대라는 선입견이 있던 나에게 연천의 넓은 평지는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산과 들의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여 외국에 와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후에 들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연천 일대는 화산으로부터 흘러내려 온 용암이 굳어 이루어진 땅이며 그 땅 위를 흐르는 물줄기가 지금의 독특한 풍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산이 있는 지역이라면 그 동네의 유명한 폭포나 계곡이 있기 마련이다. 연천에는 재인폭포라는 유명한 폭포가 있었다. 용암지대에 형성된 폭포답게 주상절리가 낙수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풍경이 멋지고 높이도 높아 웅장한 폭포였다. 마치 거대한 돔의 꼭대기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모양새였다. 폭포를 동그랗게 감싼 돌들은 주상절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둥처럼 솟아 폭포를 떠받들고 있었다. 탄성이 나올 만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폭포는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기둥 모양의 바위들이 줄 맞춰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그건 그랜드캐니언을 가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는 면박만이 돌아오긴 했다.
물가에는 폭포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 안전 통제와 간략한 폭포 설명을 쉴 새 없이 하고 계셨다. 용암이 빨리 굳어 생긴 지대는 다소 무른 특징이 있어 폭포에 쉽게 깎인다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폭포의 경계는 계속 깎여 위치가 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낙석에 주의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앞으로 한참 동안은 무른 땅이 이어지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이 폭포를 볼 수 없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얹혀 있었다. 재인폭포는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금씩 북으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얘기다. 잊고 있던 우리의 소원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다. 대학입시, 첫사랑, 전역, 취업 등의 세속적인 소원들이 앞선 20대였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TV에서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뤘고 실제로 주변에 실향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까맣게 잊고 살았다. 수차례 좌절되어 온 희망이 쌓여 우리를 지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망이 거듭되니 외면으로 내 마음을 지켜냈나 보다. 그렇지만 수십만 년째 흐르고 있는 내 눈앞의 물줄기가 남북으로 잘려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붙어있는 강산을 이렇게 갈라두고 왕래를 막는 일이 말은 되는 상황인지 갸우뚱하다.
이제 30대들 중엔 통일이 남 일인 듯 느끼는 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소리 높여 부르던 멜로디가 생생하다. 내 안에도 흐르고 있을 우리 민족의 혼이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통일이 소원이라고, 속세의 모든 소원을 걷어내면 어렸던 내가 목청껏 부르던 그 소원이 여전히 있다고.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필동정담] 불가능한 직업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사진과 유품, 중요 문서 등을 모아놓은 상설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명칭은 '미국 대통령:영광의 짐(a gloriousburden)'. 엄청난 영광과 절대책임의 무거운 짐을 동시에 떠안아야 하는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표현은 1797년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한 말의 변주로 보인다. 제퍼슨은 대통령직을 '찬란한 고통(splendidmisery)'에 비유했다.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 길이 고행의 길이라는 걸 제퍼슨은 알았던 것이다.
두 명의 전임자가 있었던 제퍼슨과 달리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이라는 제도를 지구상에서 처음 실천해 보인 사람이다. 그런데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두려움을 워싱턴만큼 많이 표현한 사람도 없다.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후일 전쟁성 장관이 될 헨리 녹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꼭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같네. 이 세상에 존재할 개인적 행복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했다네"라고 썼다.
워싱턴 이후 많은 후임자들이 비슷한 언급을 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대통령직보다 성가시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직업은 없다"고 했고,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위엄 있는 노예(dignified slavery)'라고 했다.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그건 지옥이다.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2000년 역대 대통령 전시관을 열면서 "대통령은 아버지, 형, 장군, 외교관, 중재자, 경제학자, 장사꾼, 홍보맨, 치어리더, 그 밖에 십 수 가지 역할을 요구받는다"며 '불가능한 직업(impossible job)'이라고 정의했다.
고통에 비례해 영광도 늘어난다면 해볼 만한 일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로 임기 말이 뒤숭숭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오늘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 앞에도 고통과 고뇌가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영광의 시간도 길기를 바란다.
2. [서울경제][시각] 디지털 디바이드 시대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대선의 승자는 국민이었다.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과거와 크게 달랐다. 국민과 정당, 후보 간 소통이 역대 최고였다. 국민들은 선거 기간 내내 각 후보의 유세 동반자이자 감시자 역할을 했다. 국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후보들의 유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피드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열심히 외부로 표출했다. 어설픈 네거티브 전략이 전 국민의 검증 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일도 허다했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토록 높았던 것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 직후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개인이 지닌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뜻과 열망을 가장 많이 품어낼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으로 세웠다. 디지털의 힘이 어느새 이토록 강력해진 것이다. 어
쩌면 우리는 이번 선거로 ‘4차 산업혁명’ 같은 모호한 단어로 대변되는 미래의 한 단면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정치의 영역이든 경제나 개인 일상의 영역이든 간에 더 이상 아날로그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정보 전달의 시간 차를 이용해 우위를 점하는 구태가 설 자리를 잃은 미래 말이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존재하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디지털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지털이 과거의 아날로그적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수평적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이 자라나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로 불리는 이 같은 디지털 격차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평생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열차 역에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노인은 모바일 실시간 예매 앱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연휴나 명절에 표를 구하지 못하기 일쑤다. 어떤 이는 집에 앉아서도 은행 금리를 0.1%포인트 더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시골의 노인은 간단한 송금조차도 완행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은행이 있는 곳까지 나와 수수료를 내고 처리한다.
이런 일들을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디지털이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지털 디바이드는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디지털 격차는 세대 갈등, 빈부 갈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많다.
새 정부는 곧바로 그간 쏟아낸 공약들을 정책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많은 공약이 미래와 연결돼 있고 대부분 디지털을 핵심으로든 보조적 수단으로든 포함하고 있다. 분명 디지털은 정책적인 면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부스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새로운 소외자와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인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공중전화를 걸던 사내
늦은 밤 귀갓길. 전철역에서 그를 보았다. 허름한 차림의 키 작은 사내가 공중전화기에 매달리듯 서 있었다. 언뜻 봐도 노숙을 한 지 꽤 오래된 모습이었다. 5월인데도 여전히 두꺼운 옷을 첩첩 껴입고 있었다.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저이는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통화는 길게 이어졌다. 빈 전화기를 붙잡고 스스로와 통화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을 들어 줄 사람 하나 없는 세상, 전화기에라도 하소연하지 않으면 배운 말들을 몽땅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초조감마저 읽혔다.
오랫동안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공중전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 없으면 저 사내는 어디에 속을 털어놓을까. 요즘은 찾아보려고 해도 보기 쉽지 않은 게 공중전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절실한 소통 수단이라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그 가치가 무겁게 다가왔다.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지만 예전에는 공중전화가 무척 귀한 존재였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이전 세대라면 공중전화에 얽힌 사연 한둘쯤 갖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동전을 손에 들고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순간들. 다이얼을 돌릴 때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설렘. 끝나지 않을 듯 길게 이어지던 발신음. 동전이 떨어지는 “´딸각”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던 순간의 떨림. 그 목소리가 마침 보고 싶은 사람이었을 때, 심장은 왜 그리 덜컥덜컥 내려앉던지.
군 복무를 할 때 외박이나 휴가를 나오면 맨 먼저 달려가던 곳도 공중전화였다. 청춘남녀들은 날이 궂으면 궂다고 좋으면 좋다고 공중전화를 찾았다. 첫눈이라도 오는 날은 줄이 끝없이 길어지기도 했다. 물론 행복한 추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연락할 일은 발등의 불인데 먼저 차지한 사람이 옆집 강아지 낳았다는 잡담으로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을 때, 인상을 쓰다가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 유리문을 두드리게 되고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도 있었다.
도시에는 공중전화기가 곳곳에 있었지만 시골에는 무척 귀한 편이었다. 어느 땐 급한 전화 한 통 걸기 위해 먼 길을 걷기도 했다. 읍내에 가면 구멍가게 벽에 매달아 놓은 나무상자 안에 공중전화가 모셔져 있었다. 주인은 늦은 밤에는 열쇠를 채우거나 아예 떼서 집 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가끔 공중전화의 동전을 털거나 통째로 떼어 가는 악당들도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는 1926년 처음 전화국·우체국 구내에 설치돼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공중전화가 하나 둘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물론 휴대전화의 등장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니 공중전화가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지사. 군부대 등에는 영상공중전화까지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화려했던 시절이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영원한 이별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절실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공중전화를 찾아 그 안에 담아 둔 추억들을 되새겨 볼 일이다. 첫사랑 연인의 전화번호를 애써 기억해 내며 “그냥… 동전이 남아 있길래 걸어 봤어” 혼잣말이라도 해 볼 일이다. 어찌 알겠는가.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단비라도 내릴지.
시간이 가도 지하철역에서 공중전화를 걸던 사내가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누구에겐가 꽃소식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올해도 지상에는 여전히 꽃이 피고 진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4. [서울경제[로터리] 스마트폰 과다 사용의 위험성
스마트폰의 보급은 우리 조직·사회·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생산성을 높이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이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 이를 무시할 수 없다.
휴대폰의 주기능인 통화목적 외에도 우리는 다른 이유로 수시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인터넷서핑·방송보기·게임·음악듣기, 메신저 대화, 급격히 확산된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거나 확인하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사무실·공장 등 근무 현장에서는 생산성 저하를 걱정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운전하거나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안전을 걱정하게 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만 3세부터 59세까지 스마트폰·인터넷 사용자 1만8,5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의존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64%는 출퇴근 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4시간을 초과하는 275분으로 나타났으며 2.4%의 고위험군을 포함 16.2%에 해당하는 사용자가 잠재적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는 전반적으로 과의존 위험성이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업무 집중도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기관사가 카카오톡 사용 등 휴대폰을 사용하다 관제센터의 정지 신호를 듣지 못해 발생한 지난 2014년 태백선 열차사고는 인명피해와 함께 막대한 재산 피해를 냈다.
지난해 2월에는 독일에서 철도 신호 제어 담당자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다 주의가 분산돼 양방향 열차의 정면충돌을 야기했다. 이 사고로 인해 11명의 사망자를 포함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일 최악의 열차 사고의 하나로 기록됐다.
이러한 경우는 아니라도 가끔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 고민하는 곳은 공항·항구다. 국가 기간 산업을 운영하는 기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조직의 경우 근무 시간만큼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전방 초병의 경우 근무 전 소지품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는 한시라도 감시의 눈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인 최전선은 아니지만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기관과 조직은 무수히 많이 있기에 우리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5. [국민일보][엉화이야기] 새 보안관이 왔다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했을 때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보여주었다”고 선언하더니 곧 이어 북한을 겨냥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임 보안관’ 버락 오바마 때와는 아주 달라질 것임을, 완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듣자니 옛날 서부영화 명보안관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프레드 진네만의 걸작 ‘하이눈(High Noon, 1953)’의 윌 케인(게리 쿠퍼)이다. 겁먹은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 혼자 외롭게 흉악한 무법자들과 대결하는 케인의 모습은 당시 2차대전으로 인해 전쟁피로증이 만연한 국민정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정치적 입장과 겹쳐져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그래선가 아이젠하워,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다. 특히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17회나 이 영화를 틀게 하는 등 ‘고독하게 여론을 거스르는 결정을 할 때마다 이 영화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게다가 케인 보안관은 1980년대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운동이 한참일 때 민주화 투사들에게도 힘을 주었다. 권총 대신 투표함을 들고, 또 보안관 배지 대신 자유노조 로고가 박힌 휘장을 두른 케인 보안관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 적힌 문구는 이랬다. ‘1989년 6월 4일은 하이눈의 날’. ‘하이눈’이야말로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결투를 그린 것이라는 은유였다.
그러나 보안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편, 훌륭한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을 유지나 악당의 돈과 권력, 무력에 눌려 허수아비나 방패막이가 되곤 하는 보안관, 또는 스스로 법인 양 권력을 남용하는 보안관도 있다. ‘마을의 새 보안관’이라는 트럼프가 혹시라도 이런 보안관이 돼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든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문재인 대통령, 국민과 함께 '나라다운 나라' 만들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9일 치러진 대선에서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재인 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줄곧 우세를 보이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교적 큰 표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문 후보의 승리로 9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진보 성향 야당은 다시 권력을 위임받아 국민 다수의 꿈과 바람을 실현할 책임을 안게 됐다.
문 후보의 승리는 무엇보다 국민이 ‘촛불혁명’ 과정에서 드러난 시대적 열망을 구현할 조타수로 ‘문재인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구호는 그런 열망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겨울 촛불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은 단순한 정권 퇴진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대개조를 요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진보·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날로 심화한 양극화로 인해 국민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왔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갈수록 심해지는 불공정과 ‘갑질’ 사회, 부익부 빈익빈을 향한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은 단순히 3기 민주정부를 넘어 총체적인 국가 개조, 격차사회 탈출을 위한 대장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대선 결과는 또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더 나아가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의미를 지닌다. 홍준표 후보가 문 당선인에게 큰 표차로 패배함으로써 전통적인 보수 세력은 눈에 띄게 퇴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보수 정권 9년간 쌓여온 적폐가 곪아터진 것이다.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각 분야의 9년 실정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이번 대선으로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여→야→여→야로 이어지는 두번의 정권교체가 완성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야당으로의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2007년엔 옛 여권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으로 다시 정권이 넘어갔다. 그로부터 9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야당 세력이 다시 정권을 찾아옴으로써 우리나라도 국민 선택에 따라 정권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런 정치문화를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
대세론을 바탕으로 한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문재인 당선인은 마냥 기뻐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너무나 많은 난제가 앞에 놓여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북핵 위기 와중에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의 치명적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경제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서민·중산층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재벌을 개혁하고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바로 세우자는 국민적 요구도 거세다. 이렇게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 있으나 국회는 여소야대고, 대선 와중에 정치권은 서로 적대감만 키웠다.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문재인 당선인이 취임 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건 협치를 통한 개혁과 연대를 통한 청산이다. 개혁도 청산도 ‘협치와 통합, 연대’ 없이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문 당선인이 유세에서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두 가지를 번갈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문 당선인이 대선에서 큰 표차로 승리하긴 했지만, 정치적 세력분포로 보면 여전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 문 당선인은 과반엔 미치지 못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득표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되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문 당선인 스스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밝혔듯이 집권 이후 우선적으로 국민의당·정의당과 연정 또는 협치를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보수 정권 실패에 대한 국민 반발 속에서 진보개혁 정치세력의 폭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후보의 득표율을 모두 합하면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득표율을 두 배 이상 압도한다. 문 당선인은 우선적으로 이들 두 정당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문 당선인은 자신을 찍지 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도 포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말로만 ‘100%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반대파를 탄압했던 ‘배제의 정치’는 이젠 끝내야 한다. 국정 운영에서 원칙과 기준을 잃지 않되 보수 유권자의 마음과 정서를 세심히 살피길 바란다.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과도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한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된다. 자유한국당도 과거 야당 시절 했던 것처럼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사사건건 발목잡기에만 몰두할 경우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 발등의 불은 무엇보다 정부와 청와대 진용을 짜는 일이다. 정부 인선에서부터 ‘협치를 통한 개혁, 연대를 통한 청산’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문 당선인은 유세 때 “집권하면 야당부터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면 약속대로 야당들을 우선 방문해, 정부 구성에서부터 의회 협력방안까지 모든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뒤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것을 참고해도 좋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의 경쟁자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유능한 인재를 골라 쓰겠다는 자세로 내각 인선 구상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매달려야 할 현안 중 최우선 순위는 외교안보 분야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급박하게 움직이면서 북한 핵 위기는 중대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더구나 남북 관계는 이미 파탄 상태다. 자칫 잘못하면 구한말처럼 우리의 운명을 주변 강대국에 내맡기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통령 과업 중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 안위를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문 당선인은 취임하자마자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대북정책에서 한국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 건강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호혜평등 원칙에 따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북한에 단호하면서 유연한 자세로 접근해 남북 관계의 새 국면을 열어젖혀야 한다. 대선 전 실전배치 단계까지 들어간 사드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국·중국 등 관련국과 폭넓게 협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문 당선인은 실망에 빠진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일자리의 질은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내수 부진으로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져드는 추세를 반전시켜야 한다. 단기간에 실현하긴 어려운 일이다. 재벌기업의 투자와 수출 지원에 혜택을 집중하고, 건설경기 부양으로 성장률 수치나 높이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과 혁신이 살아나고 가계 소득이 늘어 민간소비가 살아나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정책을 펴지 않으면 안 된다.
촛불시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으로 이어진 드라마는 ‘시민혁명’이라 일컬을 만큼 역동적이었다. 새 정부는 ‘개혁 정책’으로써 시민의 ‘혁명적 바람’을 담아내야 한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개혁의 열매를 맺는 일은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다시는 한국 정치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권력기관은 물론이고 재벌과 언론 역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개혁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힘을 모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게 바로 지도자의 몫이다. ‘새 대통령 문재인’을 중심으로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촛불 혁명’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나가길 기대한다.
[세계일보]
2. '포옹과 협치' 리더십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자
대한민국을 이끌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탄핵 정국에 따른 국정 공백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5개월 만에 비로소 새 정부 출항의 닻을 올리게 된 것이다. 마땅히 승자에게는 축하를 보내야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조차 없다. 새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막중한 국정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 당선자는 인수위원회 구성과 같은 준비 절차 없이 중앙선관위원회의 당선 발표와 함께 임기가 시작된다.
문 당선자 앞에는 산적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잇단 도발과 주변 강국의 움직임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다름없다. 경제도 장기 저성장과 최악의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쓰나미에 휩쓸릴지 모를 판이다. 이런 국가적 난제는 대통령 혼자 힘으로 헤쳐갈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초당적 협력이 전제돼야 해결이 가능하다.
문 당선자는 취임하자마자 여소야대의 정국에 맞닥뜨리게 된다. 과반수에 턱없이 못 미치는 민주당 의석으로는 국회 선진화법에 걸려 법안 하나조차 처리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내각 인선안이 발표되더라도 인사청문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정부 출범 때마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을 놓고 갈등을 빚는 바람에 정부 기능이 상당기간 작동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야당의 지지와 도움을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이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던 제왕적 리더십의 시대는 지나갔다. 역대 대통령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 방식을 답습하다 실패를 거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유의 헌정중단 사태를 맞은 것도 퇴행적 리더십에 의존한 잘못이 크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협치의 리더십 없이는 국정이 바로 굴러갈 수 없다. 여야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 당선자의 득표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문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국민보다 다른 후보를 선택한 국민이 더 많다는 얘기다. 이들을 포용하는 넓은 가슴이 있어야 한다. 후보의 길과 대통령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 후보 시절에는 자신의 지지세력만 보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전체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100%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 당선자는 어젯밤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는 통합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경쟁했던 분들과 손잡겠다”면서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투표를 마친 뒤에는 “선거가 끝나면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라며 “국민도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나가 돼 국민통합을 꼭 이뤄 주시길 바라 마지않는다”고 했다.
문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집권 후 통합정부 구성과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대탕평과 협치, 권력 내려놓기, 국민 참여를 골자로 한 ‘통합정부’ 구상을 내놓았다. 문 당선자 측은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갈등 속에서 심각한 안보·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는 동시에 적폐를 청산하고 대개혁을 이루려면 국민의 통합된 힘을 모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일점일획 더 보탤 것도 없다. 통합과 화합,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새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길은 지금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시작해야 할 총리 후보 인선과 내각 구성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인사는 만사다. 포용과 협력의 정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첫 단추이자 새 정부의 성패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통합정부를 표방한 만큼 야당 인사가 기용될 수 있다.
총리 후보 지명과 국회 인준, 장관 추천과 임명 과정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와 여야가 원활하게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첫 인사가 논공행상, 코드인사, 수첩인사, 불통인사로 얼룩지는 순간 국민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거둬들일 것이다.
정치 보복 같은 뺄셈의 구태 정치도 통합과 화해의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다. 선거 때 구호로 내건 적폐 청산에는 배제와 차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 국민의 이름으로 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다. 오랜 폐단을 바로잡는 일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자칫 자의적인 잣대로 특정 세력을 거부하고 제외하는 편가르기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쪼개진 민심의 분열과 혼란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보다 반듯한 나라를 건설하는 미래의 과업에 힘을 쏟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제 선거로 우리는 12번째 대통령을 맞았다. 그동안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분열의 정치’에 의존한 탓이 크다. 과거의 적폐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적폐는 증오와 갈등을 양산하는 구태 정치다. 문 당선자가 협치와 포용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를 기대한다. 정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국민이 힘을 보태야 새로운 대한민국이 순항할 수 있다.
3. '대북 빅딜' 트럼프발 안보 리스크에 어찌 대응할 건가
미국의 대북 기류가 심상치 않다. 어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면 만나겠다는 제안을 중국을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지 않고,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남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고, 북한 급변사태 시에도 미군이 휴전선을 넘지 않는다는 ‘4가지 노(NO)’ 방침을 함께 전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빈틈없는 공조를 지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긴박한 움직임을 보면 안심할 계제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어제 첫 미팅을 가졌다. 1·5트랙 대화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미국 측에는 핵 협상 전문가인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이 포함됐고,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위기설’을 넘기고 김정은을 칭찬한 뒤 이뤄진 대화여서 탐색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상황이라면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며 “만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라면 이는 정말로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 대통령에 오른 문재인 당선자는 외교안보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점검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장에 한국이 소외되는 현상부터 해소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반도 문제로 통화하면서도 한국을 제외해 코리아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탄핵에 따른 대통령 부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는 이제 끝내야 한다.
미국은 주한 미대사를 아직 지명조차 하지 않은 채 비워두고 있다. 양국 간 의사소통 채널이 틀어져 있다는 상징이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새 대통령과 건설적이며 깊은 협력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해 나가길 고대한다”고 했다.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된 안보 문제가 미국과 주변국에 의해 좌자우지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문 당선자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서울신문]
4. 혁신과 통합으로 새 시대를 열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정 농단을 규탄하며 언 손으로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9년 만에 정권 교체를 실현한 것이다. 13명의 후보가 나선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한 문 당선인에게 축하의 박수를,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친 다른 후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인수 과정도 없이 정권을 이어받은 문 당선인에게는 기쁨을 즐길 여유가 없다. 어느 하나도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당선인 앞에 놓인 국내외의 상황은 엄혹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당선인은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 난국을 헤쳐 나갈 길을 모색하고 공약을 차근차근 챙겨서 실행에 옮겨 나가야 할 것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열정적으로 뛰는 것만이 투표로 선택해 준 국민의 열망에 보답하는 길이다.
전임 대통령 탄핵 과정에 이어 선거에서도 세대, 계층, 이념 간 갈등은 노출됐다. 당선인은 누누이 강조해 온 국민 통합의 의지를 스스로 꺾지 말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 이끄는 기수(旗手)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루가 급한 새 정부의 조각에서부터 특정 당파와 이념에 매달리지 않는 대탕평 인사를 보여 줘야 한다.
당선인은 이미 국무총리를 비영남권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무위원 또한 똑같은 원칙에 따라 다양한 정파에서 골고루 중용함으로써 협치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정권이 전리품이 아님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전임 대통령들이 누구나 ‘통합’을 일성(一聲)으로 내고도 불과 몇 달도 안 돼 식언하고 만 것은 논공행상의 유혹과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나쁜 관행과 이별해야만 진정한 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당선인이 누차 밝혀 온 적폐청산의 신념은 대다수 국민의 요청이자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서 적폐 청산은 안보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정경유착, 재벌독점, 공직비리, 비대한 권력 등 압축성장 과정에서 쌓여 온 나쁜 폐단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청산하려면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국가의 발전에는 공정한 경쟁이 필수적인 요소이고 공정을 위해 적폐를 뿌리 뽑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적폐청산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뒷받침, 즉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 당선인의 지휘로 뚫어야 할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파 일각에서는 강성 노조와 종북 세력을 적폐라고 부르듯 자칫 이념에 휘둘리면 혁신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조장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혁신의 시도가 실패에 이르고 만 것은 이런 반발 때문이다. 그래서 공론화를 통한 여론 수렴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핵의 위협과 혼돈에 빠진 동북아 정세 속에서 외교적 돌파구 찾기는 화급한 숙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은 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비용 부담을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어 사이에 낀 우리는 샌드위치 신세다. 나라 안에서도 분열된 사드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해도 찬반 양측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안보와 국익을 우선시해 당선인이 단호한 의지를 천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향후 한?미 관계의 균열에 대한 걱정이 많다.
중국과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도 유지, 발전시켜야 하지만 대북 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득 될 게 없다. 대북 강경노선을 추구하는 미 트럼프 대통령과 ‘햇볕정책 2.0’으로 남북 화해를 시도하겠다는 당선인 정책의 간극을 줄이려면 다양한 경로를 통한 대화가 필수적이다.
경제와 민생 회생이야말로 가장 큰 국민의 갈망이다. 최근에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있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전 정권의 좋은 정책은 계승하면서 현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을 수립, 10위권 경제 한국의 위상을 되찾는 것은 국민적 요구다. 이번 대통령 임기 중에 2~3%대 저성장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일본식 장기 불황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최악의 실업난에 빠진 청년 세대와 임금과 신분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서 당선인에 대한 큰 기대를 느낄 수 있다. 공직으로 81만명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고용 포퓰리즘’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성을 재점검하고 다른 유용한 고용 확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백약이 무효인 저출산 문제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져 더 근원적인 처방이 요구된다. 역대 정권이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빈부격차 해소도 새 정부의 역점 과제다.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사회 안전망 확충도 중요하다. 당선인은 노인수당 증액과 아동수당 도입 등 복지공약 실현에 35조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적정한 재원 규모와 조달 방안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법인세 인상은 확보할 재원의 규모도 크지 않거니와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선인은 서민들과 시장 바닥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민심을 챙기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기 바란다. 국민과의 소통은 소통의 첫걸음이다. 당선인의 득표율은 40%대로 과반수에 크게 못 미쳤다. 60%에 가까운 비(非)지지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국정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소통과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 오로지 국민만을 섬기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기대한다.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조건이다.
5. 보수측, 새 정부에 힘 실어주는 게 도리다
유례없는 5자 구도 속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후보들의 이념적 스펙트럼 또한 과거의 어느 대선보다 고른 분포를 보였다. 흔히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를 조화롭게 펼쳐야 제대로 날 수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이념과 정책의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가는 민주주의 선진국들을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다르지 않은 양상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었다. 진보 진영의 2대 집권과 보수 진영의 2대 집권에 이은 진보 진영의 재집권은 어느 틈엔가 본격적인 선순환 구조에 편입됐다는 증거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각 후보 진영이 어떤 기대를 가졌든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은 선거의 숙명이다, 이번 선거운동에서도 각 후보는 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최선을 다해 유권자를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거친 언사 역시 적지 않았음을 유권자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상대에게 날 선 비판을 가했더라도 개표 결과는 흔쾌히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조차 승자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지 않는 패자는 따돌림을 당할 만큼 우리 사회는 크게 성숙했다.
문제는 안팎의 상황이 그저 승리를 즐기고, 패배를 인정하는 데 머물러도 좋을 만큼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안보와 외교 위기 극복은 물론 청년 일자리를 비롯한 서민 경제의 활력 회복은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새 내각을 출범시키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커녕 기초적인 국정 운영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럴수록 패배의 아픔을 협력으로 극복하는 보수 진영의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의 비협조로 민생법안의 재·개정이 원천 봉쇄됐던 고통을 되갚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법안 통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더불어민주당도 겸허한 자세로 협력을 구해야 한다.
새 정부에는 정책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마땅하다. 최소한의 ‘밀월’ 기간마저 허용치 않겠다는 정치적 각박함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집권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보수 진영이 대선 패배의 아픔을 아량과 관용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길 원한다. 그 상생의 정신은 5년 뒤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데일리]
6. 문 대통령의 지혜와 용기를 기원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이끌어갈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쌓인 결과다. 국가 안보는 물론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은 자리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면서도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고뇌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에게 축하와 아울러 더 많은 지혜와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국민들의 선거 열기도 뜨거웠다. 이번 최종 투표율이 77.2%(잠정)로, 1997년의 15대 대선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대선에는 이번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에서 26.06%의 투표율을 나타냈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오늘 새벽까지 진행된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득표가 합산될 때마다 환호와 아쉬움이 교차했던 분위기도 충분히 짐작된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듯 새 대통령 앞에는 국방·외교·경제 등 당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 위기 상황부터 풀어야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 발언으로 국면을 자꾸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운데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여전히 완강하다. 일본도 자국 입장을 내세워 위기 상황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들 주변국 지도자들과 담판을 통해 국익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임무가 새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내부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려야 하는 임무도 시급하다.
이번 대선이 전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파면에 따른 후속 절차로 이뤄졌다는 사실부터가 현재 우리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일깨워준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탄핵정국이 시작되면서 촛불·태극기 시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국정공백과 함께 심각한 사회 혼란이 빚어졌다. 문 당선자가 잠시 쉴 틈도 없이 오늘 곧바로 취임식을 갖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사정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을 통해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과연 어떤 식으로 실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세계 정세가 급속히 변해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시대 조류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뜯어고쳐야 하되 지켜야 할 덕목이나 제도까지 손보려 해서는 곤란하다.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도 명백한 기준과 절차가 요구된다. 국가 정책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추진돼야 함은 물론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분열될 대로 분열된 국민 감정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이념·지역·빈부로 갈라졌던 진영 논리가 이번 대선을 통해 더욱 갈라지고 찢겨졌다. 선거 막판까지 검증되지 않은 온갖 흑색선전이 나돈 데다 정체불명의 가짜뉴스까지 판침으로써 유권자들을 더욱 격앙시킨 측면이 다분하다. 각 선거캠프 진영 간의 고소·고발 사태도 조속히 풀어야 할 과제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당선자가 나름대로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득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화합을 내세웠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도 정치적 화합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지금으로써는 다른 누가 당선됐더라도 어차피 여소야대 국면이 불가피하고, 따라서 원활한 국정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소통과 화합이 따라야만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열쇠다.
투표를 통해 국민 총의가 확인된 만큼 각 상대방 진영에서도 승복의 정신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거진 마찰과 불화는 이제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이번에는 비록 패배했을망정 다음 5년 뒤의 대선을 내다보려 한다면 더욱 흔쾌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후보자를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서운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 대통령, 새 정부가 성공해야만 국민 각자의 복리 증진도 보장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선거 국면은 모두 끝났다. 탄핵정국에서부터 비롯된 국정공백 및 혼란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출발선상에 섰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지만 경쟁국들에 비해 이미 한참 뒤처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대열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의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다. 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거듭 축하한다.
[중앙일보]
7. 패배한 보수, 뼈 깎는 자성으로 거듭나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로써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집권당으로 군림해 온 보수당은 9년 권력을 빼앗기고 야당으로 전락했다.
한국당과 홍 후보의 패배는 그들의 행적을 보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당을 주도해 온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주에 편승해 권력을 탐닉해 왔고, 4·13 총선에서 ‘막장공천’으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다가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분노한 민심에 밀린 한국당 지도부는 마지못해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진박’들에게 당원권 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지만 이마저 대선 이틀 전 철회했다. ‘도로 친박당’이란 비아냥 속에 다시 한번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영남 지역의 지지를 업고 대선 막판 상승세를 보여온 홍 후보가 그 흐름을 이어 가지 못하고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교만과 독선으로 보수진영이 궤멸의 위기에 몰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보수는 원래 안보와 질서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한 책임과 헌신, 그리고 약자와 서민에 대한 배려를 핵심 가치로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런 가치들은 실종되고 부정과 부패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보수정치에 덧씌워졌다.
이제 야당이 된 한국당은 뼈를 깎는 자성 속에서 보수의 가치부터 재확립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책임정치다. 국정 농단 사태에 책임이 큰 친박계와 과감히 결별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개혁 어젠다를 채택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새 정부에 협력해야 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초기 인사청문회부터 정책 위주의 큰 틀을 따져야지 예전처럼 오래전 사소한 흠집을 캐내 꼬투리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보수 야당이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와 함께 ‘개혁 보수’를 외치며 이번 대선에서 선전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존재도 눈에 띈다.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 10여 명이 한국당으로 이탈하는 위기 속에서도 레이스를 완주했다. 또 TV토론에서 보여준 소신과 정책 콘텐트는 ‘새 정치’ 가능성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합리적·개혁적 보수의 가치 구현에 힘쓴다면 보수의 재건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의 양 날개다. 건강한 보수의 존재는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의 균형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조선일보]
8. 文 대통령, '노무현 2期' 아닌 統合·協治 불가피하다
탄핵으로 인한 헌정(憲政) 사상 초유의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39.5% (밤 12시 30분까지 개표 결과)를 얻어 당선을 확정 지었다. 탄핵 사태의 반사 이익이지만, 정권 교체 열망을 자신에게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압도적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39.5%에 그쳤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87년 대선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이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느냐에 문 대통령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많은 국민은 앞으로 '노무현 2기(期)'가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거의 매일 갈등과 분열로 지고 샜던 당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문 대통령이 그 시대를 넘어서서 통합하고 협치하는 새로운 대통령상(像)을 보여준다면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들도 곧 성공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당장 문 대통령에게는 정권 인수 준비 기간도 없다. 총리 후보 지명과 청와대 인선, 조각(組閣)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해 7개월 이상 공백 상태였던 국정을 최단 시일 내에 정상화시켜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이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 되지 않으려면 총리 후보자는 야당도 동의할 수 있는 통합형 인사가 발탁될 필요가 있다. 여소야대의 국회 구조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협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당선되면 바로 야당 당사부터 찾겠다"고 한 바 있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대북(對北)· 안보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를 예고해 왔고 이는 선거 기간 내내 주요 이슈가 됐다. 많은 국민과 우방국들은 이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했다. 유엔 대북 제재 위반이란 지적이 나오고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이란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게중심은 '재개' 쪽에 있다. 국민 동의 없는 독단적 결정은 큰 문제를 낳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국회 비준 표결에 넘기겠다고 했다. 군 장비 도입을 국회 비준에 넘긴 전례가 없다. 북핵·미사일을 막는 사드가 이토록 문제가 된 것은 오직 중국 반대 때문이다. 앞으로도 중국이 반대하면 군사 조치를 국회 비준에 넘길 것인가. 하나하나가 국내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문제로 야당과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북 핵실험이 5차에 이르면서 핵무기는 실전배치 직전 단계에 있다. 이복형을 암살한 김정은 정권의 폭력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 대통령은 교류와 당근으로 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자세다. 이를 알고 있는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원을 얻어 핵무장을 완비할 시간을 벌며, 한·미를 이간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국내 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얽힌 실타래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풀어야 한다. 미국의 새 정부와 대북 정책을 조율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 과정을 통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문제, 사드 문제, 대중(對中) 문제 등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자체가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손익을 넘어선 가치 동맹'이라는 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한국 사드 비용 부담 요구도 꺼진 불이 아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새로운 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아도 문 대통령 지지 세력 일부는 반미(反美)적 성향이다. 문 대통령도 선거 초반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인구 절벽과 고령화에 직면해 있다. 일하는 소수가 일하지 않는 다수를 책임져야 하는 체제로 진입했다. 문 대통령은 아동수당과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 65세 이상도 실업급여 적용,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수당 인상 등 연령대별로 현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쏟아냈다.
한번 돈을 주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공공 일자리 81만 개를 창출한다는 공약도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한번 채용하면 수십 년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새 정부의 복지·일자리 공약은 과연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준인가. 문 대통령은 연평균 35조6000억원, 5년간 178조원이 든다고 추산했지만 전문가들은 모자란다고 한다. 이 역시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모으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을 부를 것이다.
복지와 분배라는 한쪽 바퀴만으로 우리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경제 분야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장에 대한 실천적 계획을 내놓는 것이다. 성장률 2%대에 허덕이는 저성장으로는 일자리도 만들 수 없고, 복지에 필요한 재원도 조달할 수 없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과 경기 활성화를 말하긴 했으나 추상적인 언급에 그쳤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는 역시 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다. 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관건은 정치의 대전환이다. 과거의 '군림하는 대통령'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분권(分權)은 대통령 선의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 유일한 길이 개헌(改憲)이다.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시행해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정부 내 개헌특별위원회, 국민 참여 개헌 논의 기구도 즉시 가시화돼야 한다. 지금 개헌은 문 대통령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지지자보다 더 많은 반대자가 존재한다.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대통령상(像)을 세우는 것이다. 턱도 없는 권위주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또 식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면 힘은 줄지 않고 배가될 것이다.
9. 保守의 대선 패배 이번으로 끝날 것인가
어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얻은 표는 진보 진영이 받은 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이 이렇게까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보수 진영이 이 정도 득표를 한 것도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새 출발은 이런 국민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보수 정치는 지지해주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믿고 10년 가까이 너무나 방만한 행동을 해왔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때마다 심각한 고민 없는 공천으로 지금의 이 무력·무능한 정당을 만들었다. 집권 세력의 오만·아집으로 벌인 작년 총선 진박(眞朴) 소동은 최악이었다. 그 결과가 탄핵이고, 지금 존재도 희미한 자유한국당의 초·재선 의원들이다.
문제는 이 보수 정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친박당'이라고 자처한다. 각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수십 년 내려온 보수 정치의 뿌리들이 새로운 길로 나서기를 거부한다고 거기에 그냥 안주하고 있다. 떠받드는 가치는 겉으로만 '보수' '안보'일 뿐, 속으로는 특정인 맹종이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도 집권의 희망 없이 국회의원 몇 석만 보장되는 지역당 외에 아무런 다른 길이 없다.
분열된 보수 정치가 통합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도로 친박당'이 아니라 '더 친박당'으로 갈 가능성마저 있다. 통합의 명분이 만들어질 여지가 없는 셈이다. 30%대로 쪼그라든 보수가 그나마 분열되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홍준표 후보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그 나름대로 분투했으나 이 한국당을 바꾸지 못하면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바른정당은 어찌 보면 미약하고 달리 보면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바른정당을 통해 보수에도 합리적인 생각, 고민을 담은 정책, 약자에 대한 배려, 품위 있는 경쟁이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재발견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낡고 퇴행적인 보수의 이미지를 일신하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는 간단하게 말해 '공동체를 위한 책임과 헌신'이다. 그러려면 자신부터 책임지고 헌신해야 한다. 지금 보수의 누가 희생하고 헌신하나. 그토록 국민의 지탄을 받고서도 책임지는 사람조차 없다. 이들이 얼마나마 얻은 표를 들고 마치 면죄부나 얻은 양 또 나선다면 대선 패배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10. 그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봄을 맞아 푸르게 피어나는 산과 들을 보노라면 무작정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친구들을 연신 불러대며 녹초가 될 때까지 뛰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이날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한다. ‘북포국교’라고 적힌 졸업장 덕분에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채변봉투에 ‘물건’을 담아 담임선생님께 제출했고, 월요일이면 무거운 폐지 한 봉지를 들고 가 증표를 받아야 했으며, 손버릇이 나쁜 친구가 자수할 때까지 모두 눈감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삐라를 주워 볼펜과 바꿔 쓰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강당에 모여 방공영화를 보기도 했다. 기억났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연휴를 맞아 가족 모두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경기 연천이 좋다는 지인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왜 좋은지는 물어보지 않았던 듯했다. 연천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나에게 연천은 국사 시간에 나오는 석기의 출토지거나 전방부대의 이미지가 있을 뿐이었다.
군부대와 작은 읍내가 있는 흔한 전방 도시겠거니 하고 도착한 연천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서울의 북쪽은 산악지대라는 선입견이 있던 나에게 연천의 넓은 평지는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산과 들의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여 외국에 와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후에 들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연천 일대는 화산으로부터 흘러내려 온 용암이 굳어 이루어진 땅이며 그 땅 위를 흐르는 물줄기가 지금의 독특한 풍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산이 있는 지역이라면 그 동네의 유명한 폭포나 계곡이 있기 마련이다. 연천에는 재인폭포라는 유명한 폭포가 있었다. 용암지대에 형성된 폭포답게 주상절리가 낙수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풍경이 멋지고 높이도 높아 웅장한 폭포였다. 마치 거대한 돔의 꼭대기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모양새였다. 폭포를 동그랗게 감싼 돌들은 주상절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둥처럼 솟아 폭포를 떠받들고 있었다. 탄성이 나올 만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폭포는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기둥 모양의 바위들이 줄 맞춰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그건 그랜드캐니언을 가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는 면박만이 돌아오긴 했다.
물가에는 폭포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 안전 통제와 간략한 폭포 설명을 쉴 새 없이 하고 계셨다. 용암이 빨리 굳어 생긴 지대는 다소 무른 특징이 있어 폭포에 쉽게 깎인다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폭포의 경계는 계속 깎여 위치가 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낙석에 주의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앞으로 한참 동안은 무른 땅이 이어지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이 폭포를 볼 수 없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얹혀 있었다. 재인폭포는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금씩 북으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얘기다. 잊고 있던 우리의 소원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다. 대학입시, 첫사랑, 전역, 취업 등의 세속적인 소원들이 앞선 20대였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TV에서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뤘고 실제로 주변에 실향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까맣게 잊고 살았다. 수차례 좌절되어 온 희망이 쌓여 우리를 지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망이 거듭되니 외면으로 내 마음을 지켜냈나 보다. 그렇지만 수십만 년째 흐르고 있는 내 눈앞의 물줄기가 남북으로 잘려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붙어있는 강산을 이렇게 갈라두고 왕래를 막는 일이 말은 되는 상황인지 갸우뚱하다.
이제 30대들 중엔 통일이 남 일인 듯 느끼는 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소리 높여 부르던 멜로디가 생생하다. 내 안에도 흐르고 있을 우리 민족의 혼이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통일이 소원이라고, 속세의 모든 소원을 걷어내면 어렸던 내가 목청껏 부르던 그 소원이 여전히 있다고.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필동정담] 불가능한 직업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사진과 유품, 중요 문서 등을 모아놓은 상설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명칭은 '미국 대통령:영광의 짐(a gloriousburden)'. 엄청난 영광과 절대책임의 무거운 짐을 동시에 떠안아야 하는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표현은 1797년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한 말의 변주로 보인다. 제퍼슨은 대통령직을 '찬란한 고통(splendidmisery)'에 비유했다.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 길이 고행의 길이라는 걸 제퍼슨은 알았던 것이다.
두 명의 전임자가 있었던 제퍼슨과 달리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이라는 제도를 지구상에서 처음 실천해 보인 사람이다. 그런데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두려움을 워싱턴만큼 많이 표현한 사람도 없다.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후일 전쟁성 장관이 될 헨리 녹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꼭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같네. 이 세상에 존재할 개인적 행복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했다네"라고 썼다.
워싱턴 이후 많은 후임자들이 비슷한 언급을 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대통령직보다 성가시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직업은 없다"고 했고,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위엄 있는 노예(dignified slavery)'라고 했다.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그건 지옥이다.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2000년 역대 대통령 전시관을 열면서 "대통령은 아버지, 형, 장군, 외교관, 중재자, 경제학자, 장사꾼, 홍보맨, 치어리더, 그 밖에 십 수 가지 역할을 요구받는다"며 '불가능한 직업(impossible job)'이라고 정의했다.
고통에 비례해 영광도 늘어난다면 해볼 만한 일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로 임기 말이 뒤숭숭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오늘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 앞에도 고통과 고뇌가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영광의 시간도 길기를 바란다.
2. [서울경제][시각] 디지털 디바이드 시대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대선의 승자는 국민이었다.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과거와 크게 달랐다. 국민과 정당, 후보 간 소통이 역대 최고였다. 국민들은 선거 기간 내내 각 후보의 유세 동반자이자 감시자 역할을 했다. 국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후보들의 유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피드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열심히 외부로 표출했다. 어설픈 네거티브 전략이 전 국민의 검증 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일도 허다했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토록 높았던 것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 직후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개인이 지닌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뜻과 열망을 가장 많이 품어낼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으로 세웠다. 디지털의 힘이 어느새 이토록 강력해진 것이다. 어
쩌면 우리는 이번 선거로 ‘4차 산업혁명’ 같은 모호한 단어로 대변되는 미래의 한 단면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정치의 영역이든 경제나 개인 일상의 영역이든 간에 더 이상 아날로그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정보 전달의 시간 차를 이용해 우위를 점하는 구태가 설 자리를 잃은 미래 말이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존재하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디지털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지털이 과거의 아날로그적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수평적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이 자라나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로 불리는 이 같은 디지털 격차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평생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열차 역에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노인은 모바일 실시간 예매 앱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연휴나 명절에 표를 구하지 못하기 일쑤다. 어떤 이는 집에 앉아서도 은행 금리를 0.1%포인트 더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시골의 노인은 간단한 송금조차도 완행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은행이 있는 곳까지 나와 수수료를 내고 처리한다.
이런 일들을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디지털이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지털 디바이드는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디지털 격차는 세대 갈등, 빈부 갈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많다.
새 정부는 곧바로 그간 쏟아낸 공약들을 정책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많은 공약이 미래와 연결돼 있고 대부분 디지털을 핵심으로든 보조적 수단으로든 포함하고 있다. 분명 디지털은 정책적인 면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부스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새로운 소외자와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인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공중전화를 걸던 사내
늦은 밤 귀갓길. 전철역에서 그를 보았다. 허름한 차림의 키 작은 사내가 공중전화기에 매달리듯 서 있었다. 언뜻 봐도 노숙을 한 지 꽤 오래된 모습이었다. 5월인데도 여전히 두꺼운 옷을 첩첩 껴입고 있었다.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저이는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통화는 길게 이어졌다. 빈 전화기를 붙잡고 스스로와 통화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을 들어 줄 사람 하나 없는 세상, 전화기에라도 하소연하지 않으면 배운 말들을 몽땅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초조감마저 읽혔다.
오랫동안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공중전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 없으면 저 사내는 어디에 속을 털어놓을까. 요즘은 찾아보려고 해도 보기 쉽지 않은 게 공중전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절실한 소통 수단이라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그 가치가 무겁게 다가왔다.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지만 예전에는 공중전화가 무척 귀한 존재였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이전 세대라면 공중전화에 얽힌 사연 한둘쯤 갖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동전을 손에 들고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순간들. 다이얼을 돌릴 때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설렘. 끝나지 않을 듯 길게 이어지던 발신음. 동전이 떨어지는 “´딸각”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던 순간의 떨림. 그 목소리가 마침 보고 싶은 사람이었을 때, 심장은 왜 그리 덜컥덜컥 내려앉던지.
군 복무를 할 때 외박이나 휴가를 나오면 맨 먼저 달려가던 곳도 공중전화였다. 청춘남녀들은 날이 궂으면 궂다고 좋으면 좋다고 공중전화를 찾았다. 첫눈이라도 오는 날은 줄이 끝없이 길어지기도 했다. 물론 행복한 추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연락할 일은 발등의 불인데 먼저 차지한 사람이 옆집 강아지 낳았다는 잡담으로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을 때, 인상을 쓰다가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 유리문을 두드리게 되고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도 있었다.
도시에는 공중전화기가 곳곳에 있었지만 시골에는 무척 귀한 편이었다. 어느 땐 급한 전화 한 통 걸기 위해 먼 길을 걷기도 했다. 읍내에 가면 구멍가게 벽에 매달아 놓은 나무상자 안에 공중전화가 모셔져 있었다. 주인은 늦은 밤에는 열쇠를 채우거나 아예 떼서 집 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가끔 공중전화의 동전을 털거나 통째로 떼어 가는 악당들도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는 1926년 처음 전화국·우체국 구내에 설치돼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공중전화가 하나 둘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물론 휴대전화의 등장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니 공중전화가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지사. 군부대 등에는 영상공중전화까지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화려했던 시절이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영원한 이별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절실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공중전화를 찾아 그 안에 담아 둔 추억들을 되새겨 볼 일이다. 첫사랑 연인의 전화번호를 애써 기억해 내며 “그냥… 동전이 남아 있길래 걸어 봤어” 혼잣말이라도 해 볼 일이다. 어찌 알겠는가.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단비라도 내릴지.
시간이 가도 지하철역에서 공중전화를 걸던 사내가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누구에겐가 꽃소식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올해도 지상에는 여전히 꽃이 피고 진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4. [서울경제[로터리] 스마트폰 과다 사용의 위험성
스마트폰의 보급은 우리 조직·사회·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생산성을 높이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이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 이를 무시할 수 없다.
휴대폰의 주기능인 통화목적 외에도 우리는 다른 이유로 수시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인터넷서핑·방송보기·게임·음악듣기, 메신저 대화, 급격히 확산된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거나 확인하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사무실·공장 등 근무 현장에서는 생산성 저하를 걱정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운전하거나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안전을 걱정하게 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만 3세부터 59세까지 스마트폰·인터넷 사용자 1만8,5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의존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64%는 출퇴근 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4시간을 초과하는 275분으로 나타났으며 2.4%의 고위험군을 포함 16.2%에 해당하는 사용자가 잠재적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는 전반적으로 과의존 위험성이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업무 집중도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기관사가 카카오톡 사용 등 휴대폰을 사용하다 관제센터의 정지 신호를 듣지 못해 발생한 지난 2014년 태백선 열차사고는 인명피해와 함께 막대한 재산 피해를 냈다.
지난해 2월에는 독일에서 철도 신호 제어 담당자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다 주의가 분산돼 양방향 열차의 정면충돌을 야기했다. 이 사고로 인해 11명의 사망자를 포함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일 최악의 열차 사고의 하나로 기록됐다.
이러한 경우는 아니라도 가끔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 고민하는 곳은 공항·항구다. 국가 기간 산업을 운영하는 기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조직의 경우 근무 시간만큼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전방 초병의 경우 근무 전 소지품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는 한시라도 감시의 눈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인 최전선은 아니지만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기관과 조직은 무수히 많이 있기에 우리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5. [국민일보][엉화이야기] 새 보안관이 왔다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했을 때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보여주었다”고 선언하더니 곧 이어 북한을 겨냥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임 보안관’ 버락 오바마 때와는 아주 달라질 것임을, 완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듣자니 옛날 서부영화 명보안관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프레드 진네만의 걸작 ‘하이눈(High Noon, 1953)’의 윌 케인(게리 쿠퍼)이다. 겁먹은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 혼자 외롭게 흉악한 무법자들과 대결하는 케인의 모습은 당시 2차대전으로 인해 전쟁피로증이 만연한 국민정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정치적 입장과 겹쳐져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그래선가 아이젠하워,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다. 특히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17회나 이 영화를 틀게 하는 등 ‘고독하게 여론을 거스르는 결정을 할 때마다 이 영화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게다가 케인 보안관은 1980년대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운동이 한참일 때 민주화 투사들에게도 힘을 주었다. 권총 대신 투표함을 들고, 또 보안관 배지 대신 자유노조 로고가 박힌 휘장을 두른 케인 보안관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 적힌 문구는 이랬다. ‘1989년 6월 4일은 하이눈의 날’. ‘하이눈’이야말로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결투를 그린 것이라는 은유였다.
그러나 보안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편, 훌륭한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을 유지나 악당의 돈과 권력, 무력에 눌려 허수아비나 방패막이가 되곤 하는 보안관, 또는 스스로 법인 양 권력을 남용하는 보안관도 있다. ‘마을의 새 보안관’이라는 트럼프가 혹시라도 이런 보안관이 돼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든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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