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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번에는 정치권의 협치 이뤄지려나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발 빠른 협치 행보에 나섰다. 이미 임기 첫날 취임식도 치르기 전에 야4당 대표를 차례로 방문하는 ‘파격’을 감행한 데에 이어 여야 원내대표들을 모레 청와대 오찬에 초대하는 등 협치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섰다. 그제는 전병헌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국·청(國·靑) 관계’란 신조어로 국회와 청와대의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협치는 대선 때부터 새 정부의 최대 화두로 간주돼 왔다. 누가 대권을 잡든 여소야대를 피할 수 없는 정국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에게 협조를 간곡히 부탁한 것도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려면 여야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지금껏 우리의 정치 현실은 협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지난해 4·13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재현됐을 때도 협치는 말뿐이었고 이전투구만 벌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국회’로 전락한 게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반년 가까운 탄핵과 조기대선 정국으로 국정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에서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극한 정쟁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정치권이 맞잡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더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는 “당한 만큼 앙갚음할 것”이란 분위기가 벌써부터 팽배한 느낌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중요한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힌 원한이 커서일 게다. “제1야당답게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고 견제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도 그런 속내는 쉽게 읽힌다.
하지만 상대방의 잘못을 자기도 천연덕스럽게 되풀이하는 소인배 정치로는 정권을 되찾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정부조직법 등 협치의 첫 시험대에서 성숙한 정치를 입증하지 못하면 5년 후도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목청을 높이다 이번에 “야당과도 소통하고 타협도 하면서 국정 동반자로 여기겠다”고 밝힌 문 대통령의 다짐에도 진정성이 요구되기는 매한가지다.
2. 판사들의 집단행동, '사법파동' 걱정된다.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자칫 ‘사법파동’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 개입했고, 이에 반발한 판사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의혹에서 촉발된 움직임이다. 판사들은 ‘블랙리스트’의 존재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이미 한 차례 조사가 진행됐지만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법원 진상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일부 ‘부당 지시’에 관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사 보복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은 이런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의 발표 이후 전국 지방법원 판사들이 연이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문제가 된 설문조사가 대법원 일각의 신경을 자극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해 실시한 조사에 전국 법원에서 500여 명의 판사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느닷없이 “판사들의 연구회 중복 가입을 정리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더구나 연구회에 소속된 판사의 인사가 번복됨으로써 의혹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사표 소동까지 일어난 마당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 걱정이다. 가뜩이나 사법부 판결이 일반 민의와는 동떨어졌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다간 양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가 작지 않다. 건전한 문제 제기는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조직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주목되는 것은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대한 대법원의 후속 움직임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내주 소집돼 이 조사 내용을 심의·검증한다는 것이다. 일선 판사들이 제기한 의혹에 나름대로 판결문을 내놓는 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번 사태가 명쾌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이 시시비비를 가려 소속 법관들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신뢰는 더 논의하나 마나다.
[서울신문]
3. 양정철 등 최측근의 2선 후퇴, 대탕평 밑거름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2선 후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른바 ‘3철’ 가운데 국회의원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호위무사’로 통했던 최재성 전 의원도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인재가 넘치니 원래 있던 한 명쯤은 빈손으로 있는 것도 괜찮다”며 물러서 있을 의사를 내놨다. 개인적으로는 미련도 없지 않겠지만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양 전 비서관도 이날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면서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 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 또 국내에 머물 경우 비선 실세 등 불필요한 논란 탓에 조만간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수석도 “할 일을 다 했다”며 동유럽으로 떠났다. 대통령의 인사 부담을 덜어 주는 데다 근거 없는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백의종군에 나선 것이다.
국민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실세임을 내세운 대통령 최측근들이 종국에는 오욕을 남기고, 실망을 안겨 주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파면의 한 원인을 제공한 비선 실세인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은 헌정 질서 자체를 훼손했다. 이런 판국에 문 대통령 최측근들의 2선 후퇴는 신선하다. 정치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한 초석을 놨다”는 정치권의 해석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최측근들의 2선 후퇴가 잊힐 만하면 다시 돌아오는 정치 쇼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기왕 정권에 짐이 되지 않고 밀알 같은 희생을 각오했다면, 현재의 약속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인사 추천권을 둘러싸고 당대표와의 갈등설이 나돌기도 했다. 청와대 등에 발탁된 인사들이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쪽 인물에 그치고 있어 소탕평이란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측근들의 퇴장으로 짐을 던 만큼 대탕평의 원칙 아래 정파를 떠나 보다 다양한 인재들을 기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4. 미세먼지 해결하려면 국민 동참이 필수
가뜩이나 팍팍한 삶에 숨 쉬는 일조차 께름칙해서야 말이 안 된다. 미세먼지 공포에 그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미세먼지가 두려워 이민을 가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선언은 그래서 일단 반갑다. 문 대통령은 그제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응급 대책을 내놨다. 30년 넘은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다음 한 달간 중단하고 내년부터는 3~6월 넉 달간 이런 조치를 정례화하겠다는 게 요지다. 2025년까지 폐쇄하려던 노후 발전소 10곳은 임기 내 폐쇄하기로 했다.
미세먼지는 국민 생명 안전과 직결된 중대 현안이다. 이 문제를 일자리 대책에 버금가는 정책 의제로 삼은 것은 국민 요구에 정확히 부응한다. 빠른 시일 내 미세먼지 대책 기구도 설치된다니 지지부진했던 정부 대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는 열병합발전소에 비해 약 1800배의 미세먼지를 더 배출한다. 석탄발전소의 미세먼지 오염 비중은 14%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노후 설비는 오염물질 배출 비중이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미세먼지 30% 감축을 약속했다. 미세먼지 유발 물질의 절반 이상이 중국발(發)인 현실에서는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내부적으로 선결할 수 있는 조치부터 당장 속도를 내는 작업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신규 원자력 발전소를 더이상 짓지 않는 것도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런 억제 정책에 가속을 붙이려면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기존의 전력 공급원이 대폭 축소되면 여러 문제들이 뒤따른다. 석탄 발전과 원전이 현재 국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9%, 30%다. 이들을 억제하며 LNG 발전 의존도를 높일 경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후속 대책을 함께 강구하며, 미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 에너지 체계 전반을 손보지 않고 일과성 조치만으로는 실효를 기대할 수 없다.
양질의 공기를 되찾는 범국가적 대응에는 국민의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노후 경유차 감축, 차량 부제 등 당장 일상을 제약하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고통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5. 靑·여야 원내대표 회동, 협치 첫 단추 꿰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9일 청와대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물론 비교섭단체인 정의당도 오찬 회동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청와대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協治)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국정 운영은 당장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청와대가 정치권과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협력의 틀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원내대표 회동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야권의 협조를 이끌어 국정을 조기에 정상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청와대가 추진하는 이번 회동은 한마디로 문 대통령이 정치권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야권도 새 정부를 갓 출범시킨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 놓고 대화하는 자리를 갖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미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그제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 문제를 협의했고, 바른정당과도 조율했다고 한다.
전 수석은 오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찾아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구도 청와대 회동의 목적이 정치권의 협력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본다. 이번만큼은 그 목적에 충실한 만남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면 협치는 정치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될 절실한 과제다. 협치를 넘어선 초당적 협력까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인 민주당의 의석은 120석에 그치고, 한국당이 107석, 국민의당이 40석, 바른정당이 20석, 정의당이 6석을 나눠 갖고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까지 건재하니 하나의 교섭단체라도 제동을 걸면 문 대통령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보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여당을 이룬 두 당은 민주당의 반대로 개혁 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해 사장시킨 기억이 있다. 그럴수록 이제는 ‘복수’가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한 합리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과 여야는 이번 회동에서 어떤 ‘파트너십’을 국민에게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이날 보여 줄 모습은 향후 5년 동안 한국 정치의 미래를 가름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정치적 격랑에 떠밀리며 민생은 간데없는 상황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을 더이상 근심시켜서는 안 된다.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더 큰 정치력을 보여 주어야 할 주체는 당연히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야당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고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모두 이번에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슴에 새기고 회동에 임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6. 文 정부 '창업 공신'들 처신 신선하다
문재인 대통령 옆에서 핵심 보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모든 공직을 마다하고 외국으로 장기간 떠난다고 한다. 양 전 비서관은 2011년 문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도운 사람이자 이번 대선에서 인재 영입 등 문 대통령의 복심 역할을 했던 창업 공신이다. 그런 그가 16일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라면서 '퇴장'을 선언했다.
양 전 비서관과 함께 '3철'로 불렸던 이호철 전 비서관은 이미 문 대통령 취임식 날 "정권 교체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을 남기고 출국했다. 민주당 내에서 문 대통령 '호위 무사' 역할을 해 왔던 최재성 전 의원도 16일 "저는 권력을 만들 때 어울리는 사람. 문 대통령 주변에 인재가 넘친다"며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측근과 가신의 발호는 정권을 망치는 제1 요인이었다. 정도 차이만 있었을 뿐 역대 정권이 거의 다 그랬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그 주역들은 저마다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측근의 국정 농단·부정부패가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은 말 잘 알아듣고 알아서 맞춰주는 참모들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불통·독선이 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을 만든 공신들의 자진 퇴장은 정권 성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선 대통령을 잘 알고 능력이 있는 참모들이 소신을 갖고 보좌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2기'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정부가 돼주기를 원하고 있다. 양 전 비서관 같은 최측근은 무엇을 해도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는 뜻이다.
양 전 비서관은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 달라"고 했다. 이 바람이 이뤄져 친노·친문 같은 지긋지긋한 '친'자 용어들이 사라진다면 그 정치적 의미는 누구도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7. 北 도발·美 혼돈 속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달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을 포함한 미 대표단의 예방을 받고 이같이 결정했다. 한·미 두 정상은 7월 초 독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기회가 있는데도 그에 앞서 별도 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북한 문제가 심각하다. 문 대통령의 친서를 지닌 새 정부 방미(訪美) 특사단은 오늘 출국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 중국의 사드 보복 속에서 열리게 된다. 북이 중장거리 미사일에 이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마저 성공할 경우 북핵 위기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에 이번 회담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장 시급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4개월간의 한·미 간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그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폈고 중·일과 먼저 교감했다. 뒤늦게 이 흐름에 참여하려면 정상 간의 이해와 친분이 불가결하다. 더구나 트럼프는 '사드 비용 청구' '끔찍한 한·미 FTA' 등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하고 있다. 미국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경도됐다'는 시선도 퍼져 있다고 한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 정치권의 동향이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탄핵'은 점점 더 심각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 유착 스캔들을 수사 중이던 코미 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뒤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지난주 러시아 외무장관 등을 만나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과 관련된 무리한 일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 그 반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일시적 동결을 조건으로 미·북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안보 논리가 아닌 미 국내 정치적 요인에 의한 대북 정책은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 안보 현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동맹인 미국마저 100% 신뢰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이념과 성향이 맞는 인사들뿐만 아니라 보수 측의 의견도 경청하고 수렴함으로써 먼저 국론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TF에 현재 청와대 안보실을 참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지금은 너, 나를 따질 때가 아니다. 경험과 지식, 지혜를 총동원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기업인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는 경제 논리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 6월 말 한·미 두 정상은 동맹 관계를 재결속시켜 북·중 모두에 분명하고도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만 한다. 중대한 시점이다.
[중앙일보]
8. 눈길 끄는 대통령 측근들의 깔끔한 퇴장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어제 "퇴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새 정부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재성·정청래 전 의원 등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도 같은 날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할 일을 다 했다"며 대통령 취임식 날 해외로 떠난 데 이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뒤로 물러섰다.
전해철 의원과 함께 '3철'로 불린 양정철 전 비서관, 이호철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핵심 요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 파다했다. 하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하거나 뒷선으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측근과 비선 중심의 국정 운영에서 탈출할 단초란 점에서 참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 양 전 비서관은 친노 패권주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사다. 그의 퇴장으로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는 일단 잦아들게 됐다. 코드 인사에서 벗어나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갖는다.
역대 정부의 비선 실세는 제왕적 대통령의 어두운 그림자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폐단의 정점이다. 사인(私人)이 공조직을 압도하며 국정 운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다 각종 이권에도 백화점식으로 개입했다. 과거 정부 실세였던 박철언 전 장관, 김현철씨, 이상득 전 의원 등과 달리 공직이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최씨와 주변 인물이 정부 인사에 개입하고 예산을 주물러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새 정부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 줄 의무가 있다.
대통령 측근들이 스스로 정치무대에서 내려오는 건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 운영, 나아가 국정 운영이 투명하게 바뀌어야 한다. 내 사람 심기에 급급해 밀실과 야합 소리를 듣던 인사시스템도 개선돼 대통합·대탕평 인사가 열려야 한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일주일간 청와대는 달라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새 정부의 초심은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이어져야 한다.
[매일신문]
9. '책임총리 구현'이 공론(空論)이 되지 않으려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최대의 관심은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냐이다. 이와 관련 이 후보자는 15일 “새 총리는 의전 또는 방탄 총리가 아니라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총리가 돼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을 통해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책임총리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책임총리제의 구현인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고, 총리와 장관이 하나의 팀으로 공동 책임을 지는 ‘연대책임제’를 구현하겠다고 했지만 요령부득인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이 일상적인 국정 운영이며, 무엇이 ‘연대책임’인지, 그 책임은 어떻게 진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총리는 법적 개념도, 정치적으로 확립된 개념도 아니다”는 이 후보자의 말대로 무엇이 책임총리인지부터 명확한 개념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총리제 논의는 공론(空論)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자가 말한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총리”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으로 제시하는 순환논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하의 ‘책임총리’를 적극적으로 규정한다면 ‘국정 운영 권한을 대통령과 공유하는 총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 및 해임 건의권을 가질 뿐이며, 내각의 통할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총리가 자신의 권한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책임총리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그 의지의 실현 여부는 대통령의 뜻에 달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결국 책임총리제의 구현은 헌법이 규정한 총리의 권한을 법률로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일정 한도의 범위에서나마 총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가능하다.
[노컷뉴스]
10. 韓美 6월말 정상회담 확정…북핵·사드 등 돌파구 될까
한미 양국이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6월 말로 확정지음에 따라 개최 준비에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이 반년동안 '올스톱'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5~16일 한국을 방문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TF단장과 이정규 외교부 차관보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6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앞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나라의 정상외교는 약 반년동안 마비된 상태였다. 그동안 사드 배치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재협상 발언, 북핵·미사일 문제 등 주요 외교안보 사안들이 터져나왔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급적 빨리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망가진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양국 회담에서 주로 다뤄질 의제로는 대북 정책을 위한 공조와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 한미 FTA재협상 문제가 꼽힌다. 특히 이번 6월 말 정상회담에서는 대북정책 공조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 논의를 이어가며 북핵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번 포틴저 보좌관 방한에서도 한미는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한 공동방안을 추가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특히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양국이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방안을 모색한다는 점 등 양국 간 공통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일각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가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미국의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날 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내비침에 따라 적절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도 커졌다.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화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만큼 무난한 조율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문 대통령 취임 후 북한 미사일 등 북한 관련 정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으로서는 상당부분 조율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수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일단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 동맹국인 미국과 한 목소리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정상회담까지,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대화를 위한 '올바른 여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 비용 등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한미FTA 재협상도 두 정상 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내 정치와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응이 까다롭다.
문 대통령은 10억 달러의 배치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 배치에 반대하는 시진핑 주석, 사드 배치를 놓고 찬반을 다투는 국내 여론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앞서 공약했듯 배치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 비준 동의를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최대한 긴장을 완화하고 협상을 이어나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포틴저 보좌관 역시 외교부 당국자와의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사드 문제에 대해) 앞으로 계속 대화해 나가길 기대한다"며 양국 간 이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김 교수는 "'사드철회'를 바로 들고 나오면 한미 동맹의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비용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 차원에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넘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역시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백악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재협상 또는 종료를 주장한 바 있다.
한 외교 분야 당국자는 "한미FTA나 사드 배치 문제 등은 결국 정상외교를 통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예상 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난국에 빠질 수도 있어 문 대통령으로서는 시험대에 선 셈"이라고 말했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경제][로터리] '깨진 유리창의 법칙'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동차 두 대 가운데 한 대는 보닛을 조금 연 상태로,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유리창도 조금 깨진 상태로 일주일간 뒀더니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만 배터리와 타이어를 빼간 사례에서 나온 이론이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사방에 낙서가 되고 돌을 맞아 거의 고철 상태에 이르렀다. 즉 ‘일단 금이 간 상태에서는 전체가 쉽게 망가진다’는 법칙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보행인만 다녀야 하는 인도와 횡단보도 위를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이 법칙이 떠오른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륜차 인도주행이 불법인 줄 모르고 있다는 보도에 ‘우리가 너무 불법행위에 둔감하고 관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불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종국에는 대형사고까지 이르게 된다. 오토바이를 무질서하게 운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무심히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도 문제다. 이대로라면 지금 어린이들이 교통 문화의 주체가 됐을 때 빨간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습관에 빠지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 힌트를 얻은 뉴욕 경찰청장은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5년 동안 노력해 정상화했다. 낙서를 범죄의 심리적 배경으로 파악한 까닭이다. 마음의 기초질서를 위반하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깨진 유리창, 지하철 낙서 하나를 방치해 온 동네가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에 빠진다.
최근 정부가 곳곳에 이륜차 인도주행 단속 플래카드를 부착하고 배달 이륜차의 경우 운행자는 물론 소속된 업소 점주에게까지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듯 단속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도로에서 동시 단속을 할 수는 없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의 경우 교차로·횡단보도마다 단속 경찰관을 배치해 위반 차량을 정지 상태에서 단속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호각 등 음향 효과까지 사용하면 강력한 단속 의지에 대한 파급효과가 이면도로와 주변 지역에까지 미칠 것이다.
우리 교통단속은 단속 카메라에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모르고 지나쳐 죄의식이 없거나 나중에 통지를 받더라도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 자동차를 운행하다 보면 단속경찰을 보기 힘들다. 선진국처럼 교통법규 위반 시 단속경찰이 어디선가 바로 나타나면 단속으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돼 효과가 커진다.
모든 이륜차가 교통법규를 준수해 차량과 함께 정지선에서 대기하며 진행신호에 따라 이동할 때 우리 안전의식도 자연스럽게 증대될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교통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더 이상 후진국형 사고들이 발생하지 않게 되리라 기대한다.
2. [국민일보][영화이야기] 일본영화, 독일영화
일본과 독일의 전쟁영화 두 편을 봤다. 과거 반성에 인색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독일의 태도가 그대로 읽혔다. ‘영원의 제로’(야마자키 다카시, 2013)와 ‘레드 배런’(니콜라이 뮐러쇤, 2008). 비록 시대배경은 각각 2차대전과 1차대전으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전투기 조종사를 통해 전쟁을 다뤘다.
일본제국군의 제로전투기, 정식 명칭 미쓰비시 A6M을 조종하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자원해 산화한 조종사 이야기인 ‘영원의 제로’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조차 전쟁과 가미카제를 미화, 찬양한 영화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군국주의적 시각과 가미카제에 대한 찬양 함의를 품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제로에 대한 애정 표현. 영화 초반 내레이터는 제로가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으며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고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둘째, 영화의 주인공격인 젊은이는 가미카제가 자살폭탄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자살폭탄 테러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가미카제는 항공모함 등 막강한 적을 쳐부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완전히 다르다며 화를 벌컥 낸다. ‘보통국가화’를 내세우며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군사 대국화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영화에 “감동받았다”며 영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레드 배런’은 실제 인물로 1차대전 때 적아(敵我)를 통틀어 ‘에이스 중 에이스’로 추앙받은 독일 전투기 조종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남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그의 전투기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붉은 남작(레드 배런)’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를 영웅시하고 찬양하지만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반감과 비판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니 현재에 대한 함의니 하는 문제를 접어두면 두 영화 모두 코끝을 찡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가 끝날 즈음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애기(愛機)에 올라타거나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이다.
3. [경향신문][여적] 사이버 냉전
2007년 4월 말부터 약 3주간 에스토니아의 주요 정부기관 및 기업의 웹사이트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 동상 이전 발표가 발단이었다. 러시아인의 반발 시위,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간 외교전, 그리고 최악의 사이버 공격 등 파장은 컸다.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부인으로 ‘배후 없는 공격’으로 정리됐다. 이것이 국가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이버전이다. 사이버전은 인터넷을 이용해 타국의 사회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다른 형태의 전쟁이다. 서방·불량국가 누구나 공격받고 공격할 수 있다. 다만 공격 배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이버전 배후국으로 흔히 중국, 러시아, 북한이 지목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이버전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산하의 61398부대를 비롯해 5만~4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사이버부대는 예산 규모로 세계 5위권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사이버부대는 정찰총국 산하 6000명 규모이며, 공격 능력은 세계 5위 수준으로 경찰청은 파악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랜섬웨어 사이버공격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랜섬웨어 사태에서 발견된 악성코드가 2014년 미국의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및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사건의 배후로 지목받는 해킹집단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은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니픽처스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직후 해킹을 당했다. 미국 당국은 북한 소행으로 추정했다. 2009년 미국과 한국 정부기관 등이 동시에 공격받은 ‘7·7 디도스 사건’과 2011년 청와대·국회 등 40여곳이 피해를 입은 ‘3·4 디도스 공격’ 등도 북한 소행으로 지목돼왔다.
북한 배후설은 타당한 걸까. 한국의 경우 악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을 지목해도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북한을 사이버공격의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스턱스넷 사건의 장본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사이버전 국가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제대로 충격적인 영화
충격적인 영화라는 말은 진부하다. 남이 이런 표현을 남발하면 호들갑스러운 과장법처럼 보여 오히려 마음이 닫힌다. 그런데 어떤 영화에 대해서만은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 어렵다. 1999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본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는 오랫동안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며 살아온 내게도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당시 다르덴 형제는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린 감독이 아니었고, 그해 칸의 관심은 온통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에게 쏠려 있었다. 다르덴 형제가 들고 온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 식상했다.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나 작게 등장할 법한 머리 아픈 청년 실업 이야기라니.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제타'는 극장에 앉아 있던 모든 관객을 압도했다. 음악 하나 없이, 그럴싸한 미장센 하나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오롯이 체험한다는 의미를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건 어떤 가상현실(VR)보다 훨씬 생생한 리얼리티였다.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을 보면서 VR 고글을 눌러 쓰고 5D 영상을 체험하던 순간의 아찔함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언노운 걸'은 3D IMAX도 아니고, 촉각과 후각을 파고드는 4DX와도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 뭔가를 채워 넣는 대신 빼는 데 집중한다. '언노운 걸'에는 음악이 없다. 시종일관 건조하게, 한 손에 거머쥔 핸드 헬드 카메라만 가볍게 흔들어대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강렬한 몰입 영상을 체험한 것처럼 몸과 마음에 특별한 근육이 박힌다. 각성제를 몇 병 들이킨 것처럼 정신이 꼿꼿이 일어선다.
달콤한 당의정에 둘러싸인 영화도 나름 의미 있지만, 때론 진짜 세상의 이면을 만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홍상수의 '극장전' 대사처럼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이 들 때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가장 적당한 처방전이다. 제대로 충격적인 영화다.
5. [서울신문][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멍때리기'가 뇌를 자유롭게 하리라
철없던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신부나 수녀, 목사, 승려 같은 성직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철이 한참 든 뒤인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때는 대기업 서너곳 중 하나를 골라서 취업했다는 좋은 시절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돼 버린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시기였다. 타락한 세속적 인간이 거룩한 성직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금세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말이다.
막연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휴가 때면 가끔 산사를 찾기도 했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잡념을 끊는 참선에도 참여했지만 내내 졸거나 끊임없는 잡생각으로 주지 스님의 죽비가 계속 어깨 위로 떨어졌다. 승려가 됐더라면 어깨가 남아나지 않을 뻔했다. 정신 차리라고 죽비로 많이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사를 다녀오면 머릿속이 개운한 느낌이었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이런 참선이나 ‘멍때리기’ ‘명상’으로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도록 ‘디폴트 모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디지털 경제미디어 ‘쿼츠’ 지난 8일자에도 미국 스탠퍼드대 자비·이타심 연구교육센터 에마 세페라 과학분과장이 쓴 ‘창의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지나치게 바쁜 것’이라는 분석 기사가 실렸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창의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뇌가 휴식 없이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뇌과학과 연구진이 ‘심리학 연감’에 발표한 논문이나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실험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쉼 없이 일에 몰두할 때가 아닌 공상에 잠기거나 딴짓을 하는 등 뇌가 여유를 가질 때 나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사에서도 ‘여유’가 놀라운 발명이나 발견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부력의 개념을 발견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 ‘유레카’라고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얘기나 19세기 유기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가 꿈속에서 벤젠 고리 구조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20세기 전자기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니콜라 테슬라도 1881년 연구를 잠시 쉬고 여행을 갔다가 교류 전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인터넷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현대인들은 정보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밥 먹으러 가는 것, 옷 사는 것 같은 일상의 사소한 문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장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지나친 정보 과잉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렇지만 요즘 흔히 얘기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반짝거리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멍때리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번에는 정치권의 협치 이뤄지려나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발 빠른 협치 행보에 나섰다. 이미 임기 첫날 취임식도 치르기 전에 야4당 대표를 차례로 방문하는 ‘파격’을 감행한 데에 이어 여야 원내대표들을 모레 청와대 오찬에 초대하는 등 협치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섰다. 그제는 전병헌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국·청(國·靑) 관계’란 신조어로 국회와 청와대의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협치는 대선 때부터 새 정부의 최대 화두로 간주돼 왔다. 누가 대권을 잡든 여소야대를 피할 수 없는 정국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에게 협조를 간곡히 부탁한 것도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려면 여야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지금껏 우리의 정치 현실은 협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지난해 4·13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재현됐을 때도 협치는 말뿐이었고 이전투구만 벌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국회’로 전락한 게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반년 가까운 탄핵과 조기대선 정국으로 국정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에서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극한 정쟁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정치권이 맞잡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더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는 “당한 만큼 앙갚음할 것”이란 분위기가 벌써부터 팽배한 느낌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중요한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힌 원한이 커서일 게다. “제1야당답게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고 견제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도 그런 속내는 쉽게 읽힌다.
하지만 상대방의 잘못을 자기도 천연덕스럽게 되풀이하는 소인배 정치로는 정권을 되찾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정부조직법 등 협치의 첫 시험대에서 성숙한 정치를 입증하지 못하면 5년 후도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목청을 높이다 이번에 “야당과도 소통하고 타협도 하면서 국정 동반자로 여기겠다”고 밝힌 문 대통령의 다짐에도 진정성이 요구되기는 매한가지다.
2. 판사들의 집단행동, '사법파동' 걱정된다.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자칫 ‘사법파동’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 개입했고, 이에 반발한 판사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의혹에서 촉발된 움직임이다. 판사들은 ‘블랙리스트’의 존재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이미 한 차례 조사가 진행됐지만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법원 진상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일부 ‘부당 지시’에 관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사 보복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은 이런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의 발표 이후 전국 지방법원 판사들이 연이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문제가 된 설문조사가 대법원 일각의 신경을 자극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해 실시한 조사에 전국 법원에서 500여 명의 판사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느닷없이 “판사들의 연구회 중복 가입을 정리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더구나 연구회에 소속된 판사의 인사가 번복됨으로써 의혹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사표 소동까지 일어난 마당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 걱정이다. 가뜩이나 사법부 판결이 일반 민의와는 동떨어졌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다간 양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가 작지 않다. 건전한 문제 제기는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조직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주목되는 것은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대한 대법원의 후속 움직임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내주 소집돼 이 조사 내용을 심의·검증한다는 것이다. 일선 판사들이 제기한 의혹에 나름대로 판결문을 내놓는 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번 사태가 명쾌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이 시시비비를 가려 소속 법관들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신뢰는 더 논의하나 마나다.
[서울신문]
3. 양정철 등 최측근의 2선 후퇴, 대탕평 밑거름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2선 후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른바 ‘3철’ 가운데 국회의원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호위무사’로 통했던 최재성 전 의원도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인재가 넘치니 원래 있던 한 명쯤은 빈손으로 있는 것도 괜찮다”며 물러서 있을 의사를 내놨다. 개인적으로는 미련도 없지 않겠지만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양 전 비서관도 이날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면서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 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 또 국내에 머물 경우 비선 실세 등 불필요한 논란 탓에 조만간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수석도 “할 일을 다 했다”며 동유럽으로 떠났다. 대통령의 인사 부담을 덜어 주는 데다 근거 없는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백의종군에 나선 것이다.
국민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실세임을 내세운 대통령 최측근들이 종국에는 오욕을 남기고, 실망을 안겨 주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파면의 한 원인을 제공한 비선 실세인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은 헌정 질서 자체를 훼손했다. 이런 판국에 문 대통령 최측근들의 2선 후퇴는 신선하다. 정치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한 초석을 놨다”는 정치권의 해석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최측근들의 2선 후퇴가 잊힐 만하면 다시 돌아오는 정치 쇼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기왕 정권에 짐이 되지 않고 밀알 같은 희생을 각오했다면, 현재의 약속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인사 추천권을 둘러싸고 당대표와의 갈등설이 나돌기도 했다. 청와대 등에 발탁된 인사들이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쪽 인물에 그치고 있어 소탕평이란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측근들의 퇴장으로 짐을 던 만큼 대탕평의 원칙 아래 정파를 떠나 보다 다양한 인재들을 기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4. 미세먼지 해결하려면 국민 동참이 필수
가뜩이나 팍팍한 삶에 숨 쉬는 일조차 께름칙해서야 말이 안 된다. 미세먼지 공포에 그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미세먼지가 두려워 이민을 가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선언은 그래서 일단 반갑다. 문 대통령은 그제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응급 대책을 내놨다. 30년 넘은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다음 한 달간 중단하고 내년부터는 3~6월 넉 달간 이런 조치를 정례화하겠다는 게 요지다. 2025년까지 폐쇄하려던 노후 발전소 10곳은 임기 내 폐쇄하기로 했다.
미세먼지는 국민 생명 안전과 직결된 중대 현안이다. 이 문제를 일자리 대책에 버금가는 정책 의제로 삼은 것은 국민 요구에 정확히 부응한다. 빠른 시일 내 미세먼지 대책 기구도 설치된다니 지지부진했던 정부 대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는 열병합발전소에 비해 약 1800배의 미세먼지를 더 배출한다. 석탄발전소의 미세먼지 오염 비중은 14%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노후 설비는 오염물질 배출 비중이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미세먼지 30% 감축을 약속했다. 미세먼지 유발 물질의 절반 이상이 중국발(發)인 현실에서는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내부적으로 선결할 수 있는 조치부터 당장 속도를 내는 작업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신규 원자력 발전소를 더이상 짓지 않는 것도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런 억제 정책에 가속을 붙이려면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기존의 전력 공급원이 대폭 축소되면 여러 문제들이 뒤따른다. 석탄 발전과 원전이 현재 국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9%, 30%다. 이들을 억제하며 LNG 발전 의존도를 높일 경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후속 대책을 함께 강구하며, 미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 에너지 체계 전반을 손보지 않고 일과성 조치만으로는 실효를 기대할 수 없다.
양질의 공기를 되찾는 범국가적 대응에는 국민의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노후 경유차 감축, 차량 부제 등 당장 일상을 제약하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고통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5. 靑·여야 원내대표 회동, 협치 첫 단추 꿰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9일 청와대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물론 비교섭단체인 정의당도 오찬 회동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청와대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協治)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국정 운영은 당장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청와대가 정치권과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협력의 틀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원내대표 회동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야권의 협조를 이끌어 국정을 조기에 정상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청와대가 추진하는 이번 회동은 한마디로 문 대통령이 정치권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야권도 새 정부를 갓 출범시킨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 놓고 대화하는 자리를 갖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미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그제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 문제를 협의했고, 바른정당과도 조율했다고 한다.
전 수석은 오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찾아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구도 청와대 회동의 목적이 정치권의 협력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본다. 이번만큼은 그 목적에 충실한 만남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면 협치는 정치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될 절실한 과제다. 협치를 넘어선 초당적 협력까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인 민주당의 의석은 120석에 그치고, 한국당이 107석, 국민의당이 40석, 바른정당이 20석, 정의당이 6석을 나눠 갖고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까지 건재하니 하나의 교섭단체라도 제동을 걸면 문 대통령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보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여당을 이룬 두 당은 민주당의 반대로 개혁 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해 사장시킨 기억이 있다. 그럴수록 이제는 ‘복수’가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한 합리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과 여야는 이번 회동에서 어떤 ‘파트너십’을 국민에게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이날 보여 줄 모습은 향후 5년 동안 한국 정치의 미래를 가름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정치적 격랑에 떠밀리며 민생은 간데없는 상황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을 더이상 근심시켜서는 안 된다.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더 큰 정치력을 보여 주어야 할 주체는 당연히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야당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고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모두 이번에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슴에 새기고 회동에 임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6. 文 정부 '창업 공신'들 처신 신선하다
문재인 대통령 옆에서 핵심 보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모든 공직을 마다하고 외국으로 장기간 떠난다고 한다. 양 전 비서관은 2011년 문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도운 사람이자 이번 대선에서 인재 영입 등 문 대통령의 복심 역할을 했던 창업 공신이다. 그런 그가 16일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라면서 '퇴장'을 선언했다.
양 전 비서관과 함께 '3철'로 불렸던 이호철 전 비서관은 이미 문 대통령 취임식 날 "정권 교체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을 남기고 출국했다. 민주당 내에서 문 대통령 '호위 무사' 역할을 해 왔던 최재성 전 의원도 16일 "저는 권력을 만들 때 어울리는 사람. 문 대통령 주변에 인재가 넘친다"며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측근과 가신의 발호는 정권을 망치는 제1 요인이었다. 정도 차이만 있었을 뿐 역대 정권이 거의 다 그랬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그 주역들은 저마다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측근의 국정 농단·부정부패가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은 말 잘 알아듣고 알아서 맞춰주는 참모들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불통·독선이 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을 만든 공신들의 자진 퇴장은 정권 성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선 대통령을 잘 알고 능력이 있는 참모들이 소신을 갖고 보좌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2기'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정부가 돼주기를 원하고 있다. 양 전 비서관 같은 최측근은 무엇을 해도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는 뜻이다.
양 전 비서관은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 달라"고 했다. 이 바람이 이뤄져 친노·친문 같은 지긋지긋한 '친'자 용어들이 사라진다면 그 정치적 의미는 누구도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7. 北 도발·美 혼돈 속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달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을 포함한 미 대표단의 예방을 받고 이같이 결정했다. 한·미 두 정상은 7월 초 독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기회가 있는데도 그에 앞서 별도 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북한 문제가 심각하다. 문 대통령의 친서를 지닌 새 정부 방미(訪美) 특사단은 오늘 출국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 중국의 사드 보복 속에서 열리게 된다. 북이 중장거리 미사일에 이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마저 성공할 경우 북핵 위기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에 이번 회담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장 시급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4개월간의 한·미 간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그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폈고 중·일과 먼저 교감했다. 뒤늦게 이 흐름에 참여하려면 정상 간의 이해와 친분이 불가결하다. 더구나 트럼프는 '사드 비용 청구' '끔찍한 한·미 FTA' 등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하고 있다. 미국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경도됐다'는 시선도 퍼져 있다고 한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 정치권의 동향이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탄핵'은 점점 더 심각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 유착 스캔들을 수사 중이던 코미 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뒤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지난주 러시아 외무장관 등을 만나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과 관련된 무리한 일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 그 반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일시적 동결을 조건으로 미·북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안보 논리가 아닌 미 국내 정치적 요인에 의한 대북 정책은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 안보 현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동맹인 미국마저 100% 신뢰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이념과 성향이 맞는 인사들뿐만 아니라 보수 측의 의견도 경청하고 수렴함으로써 먼저 국론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TF에 현재 청와대 안보실을 참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지금은 너, 나를 따질 때가 아니다. 경험과 지식, 지혜를 총동원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기업인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는 경제 논리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 6월 말 한·미 두 정상은 동맹 관계를 재결속시켜 북·중 모두에 분명하고도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만 한다. 중대한 시점이다.
[중앙일보]
8. 눈길 끄는 대통령 측근들의 깔끔한 퇴장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어제 "퇴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새 정부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재성·정청래 전 의원 등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도 같은 날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할 일을 다 했다"며 대통령 취임식 날 해외로 떠난 데 이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뒤로 물러섰다.
전해철 의원과 함께 '3철'로 불린 양정철 전 비서관, 이호철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핵심 요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 파다했다. 하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하거나 뒷선으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측근과 비선 중심의 국정 운영에서 탈출할 단초란 점에서 참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 양 전 비서관은 친노 패권주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사다. 그의 퇴장으로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는 일단 잦아들게 됐다. 코드 인사에서 벗어나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갖는다.
역대 정부의 비선 실세는 제왕적 대통령의 어두운 그림자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폐단의 정점이다. 사인(私人)이 공조직을 압도하며 국정 운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다 각종 이권에도 백화점식으로 개입했다. 과거 정부 실세였던 박철언 전 장관, 김현철씨, 이상득 전 의원 등과 달리 공직이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최씨와 주변 인물이 정부 인사에 개입하고 예산을 주물러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새 정부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 줄 의무가 있다.
대통령 측근들이 스스로 정치무대에서 내려오는 건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 운영, 나아가 국정 운영이 투명하게 바뀌어야 한다. 내 사람 심기에 급급해 밀실과 야합 소리를 듣던 인사시스템도 개선돼 대통합·대탕평 인사가 열려야 한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일주일간 청와대는 달라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새 정부의 초심은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이어져야 한다.
[매일신문]
9. '책임총리 구현'이 공론(空論)이 되지 않으려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최대의 관심은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냐이다. 이와 관련 이 후보자는 15일 “새 총리는 의전 또는 방탄 총리가 아니라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총리가 돼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을 통해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책임총리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책임총리제의 구현인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고, 총리와 장관이 하나의 팀으로 공동 책임을 지는 ‘연대책임제’를 구현하겠다고 했지만 요령부득인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이 일상적인 국정 운영이며, 무엇이 ‘연대책임’인지, 그 책임은 어떻게 진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총리는 법적 개념도, 정치적으로 확립된 개념도 아니다”는 이 후보자의 말대로 무엇이 책임총리인지부터 명확한 개념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총리제 논의는 공론(空論)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자가 말한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총리”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으로 제시하는 순환논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하의 ‘책임총리’를 적극적으로 규정한다면 ‘국정 운영 권한을 대통령과 공유하는 총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 및 해임 건의권을 가질 뿐이며, 내각의 통할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총리가 자신의 권한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책임총리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그 의지의 실현 여부는 대통령의 뜻에 달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결국 책임총리제의 구현은 헌법이 규정한 총리의 권한을 법률로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일정 한도의 범위에서나마 총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가능하다.
[노컷뉴스]
10. 韓美 6월말 정상회담 확정…북핵·사드 등 돌파구 될까
한미 양국이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6월 말로 확정지음에 따라 개최 준비에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이 반년동안 '올스톱'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5~16일 한국을 방문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TF단장과 이정규 외교부 차관보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6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앞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나라의 정상외교는 약 반년동안 마비된 상태였다. 그동안 사드 배치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재협상 발언, 북핵·미사일 문제 등 주요 외교안보 사안들이 터져나왔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급적 빨리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망가진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양국 회담에서 주로 다뤄질 의제로는 대북 정책을 위한 공조와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 한미 FTA재협상 문제가 꼽힌다. 특히 이번 6월 말 정상회담에서는 대북정책 공조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 논의를 이어가며 북핵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번 포틴저 보좌관 방한에서도 한미는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한 공동방안을 추가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특히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양국이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방안을 모색한다는 점 등 양국 간 공통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일각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가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미국의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날 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내비침에 따라 적절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도 커졌다.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화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만큼 무난한 조율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문 대통령 취임 후 북한 미사일 등 북한 관련 정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으로서는 상당부분 조율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수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일단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 동맹국인 미국과 한 목소리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정상회담까지,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대화를 위한 '올바른 여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 비용 등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한미FTA 재협상도 두 정상 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내 정치와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응이 까다롭다.
문 대통령은 10억 달러의 배치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 배치에 반대하는 시진핑 주석, 사드 배치를 놓고 찬반을 다투는 국내 여론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앞서 공약했듯 배치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 비준 동의를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최대한 긴장을 완화하고 협상을 이어나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포틴저 보좌관 역시 외교부 당국자와의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사드 문제에 대해) 앞으로 계속 대화해 나가길 기대한다"며 양국 간 이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김 교수는 "'사드철회'를 바로 들고 나오면 한미 동맹의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비용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 차원에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넘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역시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백악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재협상 또는 종료를 주장한 바 있다.
한 외교 분야 당국자는 "한미FTA나 사드 배치 문제 등은 결국 정상외교를 통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예상 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난국에 빠질 수도 있어 문 대통령으로서는 시험대에 선 셈"이라고 말했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경제][로터리] '깨진 유리창의 법칙'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동차 두 대 가운데 한 대는 보닛을 조금 연 상태로,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유리창도 조금 깨진 상태로 일주일간 뒀더니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만 배터리와 타이어를 빼간 사례에서 나온 이론이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사방에 낙서가 되고 돌을 맞아 거의 고철 상태에 이르렀다. 즉 ‘일단 금이 간 상태에서는 전체가 쉽게 망가진다’는 법칙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보행인만 다녀야 하는 인도와 횡단보도 위를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이 법칙이 떠오른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륜차 인도주행이 불법인 줄 모르고 있다는 보도에 ‘우리가 너무 불법행위에 둔감하고 관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불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종국에는 대형사고까지 이르게 된다. 오토바이를 무질서하게 운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무심히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도 문제다. 이대로라면 지금 어린이들이 교통 문화의 주체가 됐을 때 빨간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습관에 빠지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 힌트를 얻은 뉴욕 경찰청장은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5년 동안 노력해 정상화했다. 낙서를 범죄의 심리적 배경으로 파악한 까닭이다. 마음의 기초질서를 위반하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깨진 유리창, 지하철 낙서 하나를 방치해 온 동네가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에 빠진다.
최근 정부가 곳곳에 이륜차 인도주행 단속 플래카드를 부착하고 배달 이륜차의 경우 운행자는 물론 소속된 업소 점주에게까지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듯 단속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도로에서 동시 단속을 할 수는 없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의 경우 교차로·횡단보도마다 단속 경찰관을 배치해 위반 차량을 정지 상태에서 단속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호각 등 음향 효과까지 사용하면 강력한 단속 의지에 대한 파급효과가 이면도로와 주변 지역에까지 미칠 것이다.
우리 교통단속은 단속 카메라에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모르고 지나쳐 죄의식이 없거나 나중에 통지를 받더라도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 자동차를 운행하다 보면 단속경찰을 보기 힘들다. 선진국처럼 교통법규 위반 시 단속경찰이 어디선가 바로 나타나면 단속으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돼 효과가 커진다.
모든 이륜차가 교통법규를 준수해 차량과 함께 정지선에서 대기하며 진행신호에 따라 이동할 때 우리 안전의식도 자연스럽게 증대될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교통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더 이상 후진국형 사고들이 발생하지 않게 되리라 기대한다.
2. [국민일보][영화이야기] 일본영화, 독일영화
일본과 독일의 전쟁영화 두 편을 봤다. 과거 반성에 인색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독일의 태도가 그대로 읽혔다. ‘영원의 제로’(야마자키 다카시, 2013)와 ‘레드 배런’(니콜라이 뮐러쇤, 2008). 비록 시대배경은 각각 2차대전과 1차대전으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전투기 조종사를 통해 전쟁을 다뤘다.
일본제국군의 제로전투기, 정식 명칭 미쓰비시 A6M을 조종하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자원해 산화한 조종사 이야기인 ‘영원의 제로’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조차 전쟁과 가미카제를 미화, 찬양한 영화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군국주의적 시각과 가미카제에 대한 찬양 함의를 품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제로에 대한 애정 표현. 영화 초반 내레이터는 제로가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으며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고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둘째, 영화의 주인공격인 젊은이는 가미카제가 자살폭탄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자살폭탄 테러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가미카제는 항공모함 등 막강한 적을 쳐부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완전히 다르다며 화를 벌컥 낸다. ‘보통국가화’를 내세우며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군사 대국화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영화에 “감동받았다”며 영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레드 배런’은 실제 인물로 1차대전 때 적아(敵我)를 통틀어 ‘에이스 중 에이스’로 추앙받은 독일 전투기 조종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남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그의 전투기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붉은 남작(레드 배런)’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를 영웅시하고 찬양하지만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반감과 비판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니 현재에 대한 함의니 하는 문제를 접어두면 두 영화 모두 코끝을 찡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가 끝날 즈음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애기(愛機)에 올라타거나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이다.
3. [경향신문][여적] 사이버 냉전
2007년 4월 말부터 약 3주간 에스토니아의 주요 정부기관 및 기업의 웹사이트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 동상 이전 발표가 발단이었다. 러시아인의 반발 시위,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간 외교전, 그리고 최악의 사이버 공격 등 파장은 컸다.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부인으로 ‘배후 없는 공격’으로 정리됐다. 이것이 국가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이버전이다. 사이버전은 인터넷을 이용해 타국의 사회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다른 형태의 전쟁이다. 서방·불량국가 누구나 공격받고 공격할 수 있다. 다만 공격 배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이버전 배후국으로 흔히 중국, 러시아, 북한이 지목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이버전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산하의 61398부대를 비롯해 5만~4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사이버부대는 예산 규모로 세계 5위권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사이버부대는 정찰총국 산하 6000명 규모이며, 공격 능력은 세계 5위 수준으로 경찰청은 파악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랜섬웨어 사이버공격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랜섬웨어 사태에서 발견된 악성코드가 2014년 미국의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및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사건의 배후로 지목받는 해킹집단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은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니픽처스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직후 해킹을 당했다. 미국 당국은 북한 소행으로 추정했다. 2009년 미국과 한국 정부기관 등이 동시에 공격받은 ‘7·7 디도스 사건’과 2011년 청와대·국회 등 40여곳이 피해를 입은 ‘3·4 디도스 공격’ 등도 북한 소행으로 지목돼왔다.
북한 배후설은 타당한 걸까. 한국의 경우 악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을 지목해도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북한을 사이버공격의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스턱스넷 사건의 장본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사이버전 국가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제대로 충격적인 영화
충격적인 영화라는 말은 진부하다. 남이 이런 표현을 남발하면 호들갑스러운 과장법처럼 보여 오히려 마음이 닫힌다. 그런데 어떤 영화에 대해서만은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 어렵다. 1999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본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는 오랫동안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며 살아온 내게도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당시 다르덴 형제는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린 감독이 아니었고, 그해 칸의 관심은 온통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에게 쏠려 있었다. 다르덴 형제가 들고 온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 식상했다.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나 작게 등장할 법한 머리 아픈 청년 실업 이야기라니.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제타'는 극장에 앉아 있던 모든 관객을 압도했다. 음악 하나 없이, 그럴싸한 미장센 하나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오롯이 체험한다는 의미를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건 어떤 가상현실(VR)보다 훨씬 생생한 리얼리티였다.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을 보면서 VR 고글을 눌러 쓰고 5D 영상을 체험하던 순간의 아찔함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언노운 걸'은 3D IMAX도 아니고, 촉각과 후각을 파고드는 4DX와도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 뭔가를 채워 넣는 대신 빼는 데 집중한다. '언노운 걸'에는 음악이 없다. 시종일관 건조하게, 한 손에 거머쥔 핸드 헬드 카메라만 가볍게 흔들어대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강렬한 몰입 영상을 체험한 것처럼 몸과 마음에 특별한 근육이 박힌다. 각성제를 몇 병 들이킨 것처럼 정신이 꼿꼿이 일어선다.
달콤한 당의정에 둘러싸인 영화도 나름 의미 있지만, 때론 진짜 세상의 이면을 만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홍상수의 '극장전' 대사처럼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이 들 때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가장 적당한 처방전이다. 제대로 충격적인 영화다.
5. [서울신문][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멍때리기'가 뇌를 자유롭게 하리라
철없던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신부나 수녀, 목사, 승려 같은 성직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철이 한참 든 뒤인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때는 대기업 서너곳 중 하나를 골라서 취업했다는 좋은 시절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돼 버린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시기였다. 타락한 세속적 인간이 거룩한 성직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금세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말이다.
막연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휴가 때면 가끔 산사를 찾기도 했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잡념을 끊는 참선에도 참여했지만 내내 졸거나 끊임없는 잡생각으로 주지 스님의 죽비가 계속 어깨 위로 떨어졌다. 승려가 됐더라면 어깨가 남아나지 않을 뻔했다. 정신 차리라고 죽비로 많이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사를 다녀오면 머릿속이 개운한 느낌이었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이런 참선이나 ‘멍때리기’ ‘명상’으로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도록 ‘디폴트 모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디지털 경제미디어 ‘쿼츠’ 지난 8일자에도 미국 스탠퍼드대 자비·이타심 연구교육센터 에마 세페라 과학분과장이 쓴 ‘창의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지나치게 바쁜 것’이라는 분석 기사가 실렸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창의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뇌가 휴식 없이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뇌과학과 연구진이 ‘심리학 연감’에 발표한 논문이나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실험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쉼 없이 일에 몰두할 때가 아닌 공상에 잠기거나 딴짓을 하는 등 뇌가 여유를 가질 때 나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사에서도 ‘여유’가 놀라운 발명이나 발견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부력의 개념을 발견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 ‘유레카’라고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얘기나 19세기 유기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가 꿈속에서 벤젠 고리 구조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20세기 전자기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니콜라 테슬라도 1881년 연구를 잠시 쉬고 여행을 갔다가 교류 전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인터넷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현대인들은 정보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밥 먹으러 가는 것, 옷 사는 것 같은 일상의 사소한 문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장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지나친 정보 과잉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렇지만 요즘 흔히 얘기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반짝거리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멍때리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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