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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요 이슈

 

■ 원세훈 전 국정언장 대선 개입 항소심 재판 유죄

■ 증세ㆍ복지 갈등

■ 야당 대표의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

■ 증도가자(證道歌字)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원세훈 전 국정언장 대선 개입 항소심 재판 유죄

 

[한국일보 사설-20150210화] 상식ㆍ논리에 부합하는 원세훈 ‘선거법도 유죄’ 판결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정치 관련 댓글과 트위터 활동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불법 정치개입이자 선거개입 행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어제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앞서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정치개입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피고인과 검찰 양측의 상고 여부에 따라 최종심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정통성에 흠집이 불가피하게 됐고, 향후 정국에도 적잖은 파문이 일 전망이다.

 

대선개입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는 국정원 관련 트위터 계정의 활동내역 분석이었다. 1심 재판부는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윗ㆍ리트윗 글 11만여 건을 증거로 채택하고도 그 내용의 선거운동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채 “원 전 원장이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716개 계정의 트윗ㆍ리트윗 글 27만3,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2012년 7월 이후 ‘정치관여’ 글보다 ‘선거개입’ 글이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으며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8월 20일 이후 트윗 글이 급증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이후 트윗 활동에서 정치일정과 연동된 내용이 확인된 만큼 8월 20일 이후 심리전단의 활동은 선거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심리전단 활동과 관련한 일사분란한 지휘체계와 원장 보고체계 등으로 근거로 이를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헌법이 요구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외면한 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개입해 이를 왜곡하고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했다”고 지적하며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정치개입만으로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판단하고도 원 전 원장의 국정원장의 임무를 몰랐을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과 대조된다.

 

최종심까지 지켜봐야겠지만 판결문을 비교해 보면 주요 쟁점에 대한 아예 판단을 유보한 1심보다 꼼꼼한 증거 분석을 통해 선거개입 유죄 판단을 끌어낸 항소심의 판결이 법리와 상식에 부합한다. 이에 비춰보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새누리당의 반응은 미흡하다. 재판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겨왔던 국정원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와대도 “전 정권의 일”이라는 식으로 피해갈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검찰 수뇌부의 석연찮은 행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채동욱 전 총장이 황교안 법무장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가 난데없는 혼외자 논란에 휘말려 퇴진한 뒤 사건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항소심 판결로 대북심리전을 빙자한 국정원 활동의 불법성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좌익효수’를 비롯해 국정원 직원이 연루된 사건들을 하루속히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10화] 박 대통령의 정통성에 의문 던진 ‘원세훈 판결’

2 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후보들을 지지·비방하는 댓글·트위터 활동을 벌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판결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인정됐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의 부정선거로 오염됐다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러난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 실태에 비춰보면 이번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앞선 1심 판결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 기간에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방하는 활동을 벌인 게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선거운동으로 볼 만큼 능동적·계획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기에) 선거개입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문제”라고 핵심을 짚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야당 후보 비방 글이 급증하고 선거 쟁점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들어 능동적·계획적 선거운동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리와 더불어 사실관계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1심은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위트 글 11만여건만 증거로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트위터 계정 716개, 트위트 글 27만4800건으로 늘어났다.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실체가 인정된 것이다. 실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친 정도도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는 약칭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장과 일부 직원들이 정치관여라는 구시대적 일탈행위를 저지른 데 그치지 않고, 선거라는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 훨씬 심각한 범죄행위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지적했듯이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도 의문에 직면하게 됐다.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이 실제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계량하기 힘들겠지만, 선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적 권력 창출의 근본 원리가 흔들린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싼 혼란을 막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의 실체를 더 철저히 밝혀야 한다. 그동안 수사팀은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수뇌부의 방해 속에 혐의를 입증할 최소한도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도 힘겨웠다. 원세훈 전 원장의 범행 동기나 배경, 박근혜 후보 쪽의 인지 여부 등 더 확인돼야 할 대목이 여럿 남아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본다.

 

 

[중앙일보 사설-20150210화] 1, 2심 엇갈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사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어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던 1심 선고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형량에 있어서도 원 전 원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에서 징역 3년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항소심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 및 트위터 등에 댓글을 단 행위가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은 판결문에서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에 활용한 것은 공직선거법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활동은 방어심리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는 원 전 원장의 주장에는 “국정원 본연의 활동 범위를 넘어선 위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는 “댓글 활동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평소 해오던 활동으로 이를 선거 기간 중 선거운동으로 전환한 정황을 찾을 수 없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1심 판단과도 배치된다. 항소심은 그러나 원 전 원장이 사이버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활동에 관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인정했다.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최종 판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사법부를 끌어들여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사건을 놓고 또다시 보수와 진보로 여론이 분열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정원도 과거 스스로 권위를 훼손해 불신을 자초한 점을 인정하고 과감한 개혁 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은 선거와 무관할수록 국민들이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지적처럼 정치적 중립을 실효적으로 이룰 수 있는 입법 작업을 검토해주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210화] 원세훈 대선개입 유죄, 청와대가 답할 때다

 

선거를 일컬어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민주국가에서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중대 범죄로 간주되는 이유다. 더욱이 엄정중립을 요구받는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국기문란이자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러한 범죄행각이 벌어졌다고 사법부가 인정했다. 서울고법은 어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받은 원 전 원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대선의 민주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활동을 두고 ‘정치관여는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고 했다. 관권선거에 면죄부를 준 황당한 판결은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로 불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20일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선거개입으로 보고, 원 전 원장이 이를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2012년 전파한 트위터글 27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8월 이전엔 ‘정치 관련 글’이 많았으나 이후 ‘선거 관련 글’이 압도했다는 것이다. 대선후보 확정 이후 사이버 활동은 선거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시민적 상식과 사법적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로 본다. 사법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짜맞추기’식 정치판결이 바로잡힌 것은 늦게나마 다행이다.

 

최근 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혐의로 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회의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참여정부 청와대의 백종천 전 외교안보실장 등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대선 전은 물론이려니와 집권 이후에도 여권이 거듭해온 무분별한 정치공세의 실체가 법원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차례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 마지막 TV토론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두고 “(댓글 단) 여직원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야당을 공박했다. 경찰은 이 토론이 끝난 직후 ‘심야 중간수사발표’를 통해 ‘해당 직원 컴퓨터에서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거는 박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다. 대선 후 원 전 원장이 기소되자 청와대 측은 “댓글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지 않으냐”며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 박 대통령이 불법 대선개입의 ‘수혜자’임이 드러난 이상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적용을 반대하는 등 수사를 방해했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물러나야 마땅하다.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지했는지 등에 대해 추가 수사에 착수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210화] 상식을 회복시켜 준 국정원 대선개입 항소심

 

항소심 재판부가 어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 개입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원 전 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해 9월 국정원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법 위반만 인정하고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1심 판결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항소심이 바로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남아 있기는 하다.

 

원 전 원장의 수사와 재판은 현직 대통령이 선출된 선거와 관련이 있어서 이목이 집중됐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외압 논란이 일었고 특별수사팀장이 경질되는 등 파란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포함한 대량의 댓글을 트위터에 단 혐의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선거 때 정치 관여가 당연히 선거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궁색한 논리를 내세워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파문은 확산됐다. 1심 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이라며 공개 비판한 지법 부장판사에게 중징계가 내려졌다. 야당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반면 1심 재판부의 재판장은 최근 법원 인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원 안팎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1심은 이리저리 권력의 눈치를 본 끝에 나온 ‘정치 판결’이라는 비난을 듣기에 모자람이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이 판결과 관련해 “법관들이 정치적인 고려를 해서 재판을 좌우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그에 비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 활동에 활용했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상식을 회복시켜 준 판결이다. 다만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에 지난 대선은 무효라는 주장은 섣부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해서도 안 된다. 이번 판결을 통해 앞으로 어떤 국가기관도 정치나 선거에 개입하거나 권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법부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 증세ㆍ복지 갈등

 

[한국일보 사설-20150210화] 증세ㆍ복지, 원론 갈등 관두고 구체 해법 논하라

 

증세와 복지 구조조정 문제가 당정 간 신경전으로 비화, 혼선을 키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하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주 여당에서 나온 증세론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김무성 대표는 당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렇게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서로 ‘배신’과 ‘속임수’란 말까지 주고받은 셈이니 이보다 더한 인식의 혼선이 없다.

 

새누리당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배신감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대선 당시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대대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야당에 맞서, 복지는 늘리되 경제활성화 등을 통해 국민의 추가부담 없이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걸 잘 아는 우군(友軍)으로부터 ‘국민을 속였다’는 식으로 매도를 당하니 잠자코 있기 어려웠을 만하다. 박 대통령의 강한 반응에 여당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당초 복지 구조조정에 방점을 뒀던 김 대표는 물론이고, 증세 불가피론을 폈던 유승민 원내대표도 “생각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이대로라면 여당 내 증세론이 삭아들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하지만 대통령을 이해한다고 모처럼 물꼬가 트인 증세ㆍ복지조정 논의에서 증세론만 집어내어 내버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최근의 증세론이 대선 공약폐기와 일반 국민의 세부담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증세론은 연말정산 파동 등을 통해 증세는 없다는 말과 달리 중산층과 서민의 실질 세부담이 늘어났음이 확인된 데서 비롯했다. 각종 조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서민의 상대적 세부담이 늘어난 마당이라면, 차라리 법인세와 소득세 증세를 공론화해 부자증세를 준비하라는 요구였다.

 

불황으로 주요기업의 실적이 잇따라 떨어지는데 무턱대고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긴 어렵다. 또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는데도 세부담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득세의 전반적 인상도 불가능하다. 주요 선진국 대비 국내 법인세율이 낮다거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높다는 식의 단순비교는 위험하다.

 

다만 단기 경제여건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나 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지나치게 낮은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복지 구조조정 논의와 함께, 누진성이 약화하는 방향으로 왜곡돼 온 조세체계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일부 법인세 조정과 부자증세는 지속적으로 추진해 마땅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010화] 국민 배신한 정치인은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금 더 걷는 것이 할 소리인가”라며 정치권의 복지·증세 논의에 어깃장을 놨다. 또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정책을 강조하며 증세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미 약속을 저버린 것은 박 대통령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여 동안 담뱃세 인상 등 ‘꼼수 증세’로 국민 부담은 계속 늘고 복지 공약은 흐지부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경제도 살리는 쪽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면 그것이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며 증세론을 펴는 정치권에 불만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신의 ‘심오한 뜻’을 강조하며, 이를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원론적으로 증세는 재정 건전화의 한 수단이다. 또 재정건전성과 복지는 이분법으로 나눠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정 책임자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헌법이 부여한 정부의 의무이며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권 2년 동안 성과는 어떤가. 입으로만 경제 살리기를 외칠 뿐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성장 잠재력은 계속 떨어지고, 엉터리 세수 추계로 재정건전성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복지 수준 역시, 선진국에 견주면 여전히 형평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은 2년 만에 대폭 축소하거나 고교 무상교육처럼 사실상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서민·중산층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지고 양극화 심화로 사회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데 복지 증세를 논의하는 정치권을 언구럭스럽게 훈계하다니,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도대체 대통령의 이런 후안무치한 태도와 발언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중앙일보 사설-20150210화] “증세 안 된다”는 대통령과 “복지 양보 없다”는 야당 대표

 

정치권의 백가쟁명식 복지·증세 논란에 여야 지도자까지 가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경제 활성화를 외면하고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신임 대표의 일성은 “복지 구조조정은 없다”며 “법인세와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재원을 마련하겠다”였다. 여야 최고 지도자가 앞장서 한쪽은 ‘증세’를, 한쪽은 ‘복지’를 양보 불가능한 성역으로 선언한 꼴이다. 이래서야 국민적 대타협이 필요한 복지·증세 논의가 한걸음인들 앞으로 나갈 수 있겠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대통령 발언은 우선 현재 진행 중인 국민적 합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범국민조세개혁특위를, 새누리당은 별도의 ‘세금-복지 논의기구’를 통해 복지·증세 문제를 다루자는 입장이다. 국회 차원에서 복지의 우선순위와 조정 방안, 재원 마련 방안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게 맞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회 논의는 좋지만 국민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여야 합의로도 증세는 안 된다는 의미다. 대통령은 여야 협의에마저 가이드라인을 주고 싶은 것인가.

 

 ‘증세=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 가며 경제 활성화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여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복지 재정 수요와 재원 조달 능력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금대로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20년 뒤 현재의 10.4%에서 18.6%로 두 배로 늘어난다. 2050년에는 2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반면 세수 부족과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커 가고 있다. 지난해에만 11조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 경제 활성화만 넋 놓고 기다리자는 건 목 빼고 비만 기다리자는 천수답 영농과 다를 바 없다. 경제가 안 살아나면 나라 빚만 잔뜩 늘리자는 얘기인가.

 

 문재인 대표의 복지 성역화와 부자 증세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복지는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면서 고소득자 증세는 돼도 서민 증세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는 정치적 언어를 넘어 국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문 대표는 수권 정당이 되기 위해 “경제로 승부하겠다”고 했다. 복지는 부동(不動), 세금은 손쉬운 법인세 증세나 말하는 게 그가 말한 대안 정당, 경제 정당인가. 이래서야 2012년 대선 때의 진영 논리와 뭐가 다른가.

 

 사실 지금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손가락질하는 문재인 대표도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은 5년간 135조원, 문재인 후보는 197조원의 복지 공약을 내놨다. 문 대표가 집권했다면 복지 논란이 더 심각했을 수도 있다. 복지·증세 논의는 어느 한쪽을 닫으면 답이 안 나오는 연립방정식과 같다. 증세 가능성도, 복지 구조조정 가능성도 함께 열어놓아야 비로소 풀 수 있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부터 아집과 독선을 내려놔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210화] ‘박근혜 복지 공약’ 폐기·축소는 국민 배신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 하면 그것이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소리냐”고 여야 정치권을 공박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노선 고수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의 파산을 선언하고 정책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황에서, 이를 단칼에 거부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만의 도그마에 갇혀 증세 논의 자체를 불온시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박 대통령의 ‘국민 배신’ 언급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박근혜 복지’ 공약들이 줄줄이 폐기되거나 축소되었다. 무엇보다 복지 재원 부족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복지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원을 ‘증세 없이’ 조달할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지킬 수 없다는 게 명확해졌다.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재정을 확보한다는 계획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조원을 비롯해 매년 세수 부족이 급증하고, 재정적자는 만성화되고 있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등 서민증세 형태의 ‘꼼수’가 동원됐으나 세수 확충에는 턱없이 미흡하고 조세형평 논란만 심화시켰다. 이대로는 복지 공약은커녕 자연스러운 복지 재정 증가분마저 감당하기 버거운 지경이다. 어린이집 보육 예산 파동이 단적인 예다. 박 대통령 말마따나 “증세 없는 복지를 외면하는 것이 국민 배신”이라면, 철석같이 약속한 복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 배신 아니고 뭔가.

 

기어코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고수하겠다면, 복지 재정 수요와 재원 조달 능력 간 격차를 해소할 마땅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실현성이 요원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가 파산 지경에 이른 데 대한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애초 실천 불가능한 약속을 내세웠던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여당에서는 뒤늦게나마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현실을 직시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허구의 ‘증세 없는 복지’만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으면, 모처럼 공론화 계기를 마련한 조세와 복지 체계의 개혁은 난망해진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10화] 소득보다 2배 빠른 세 증가… 이런판에 증세라니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요즘 정치권의 '증세론' 제기에 대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할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한 박 대통령은 "과연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했느냐"고 자문했다. 핵심 대선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아무리 세금을 걷어도 경제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이나 '링거 주사를 맞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했다. 다만 "이런 논의(증세)들이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국회의 논의는 국민을 항상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세와 복지 조정에 대한 조건부 논의의 여지는 열어둔 셈이다. 반면 정치권의 기류는 싸늘하다.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공세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새누리당 투톱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조차 공공연히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증세라니,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을 여지라도 있다는 말인가. 때마침 이날 나온 통계청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3.6%인 데 반해 조세 지출액은 5.9%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버는 돈보다 나라에 내는 돈이 2배 가까운 속도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담세(擔稅) 체력도 뚝 떨어져 올해 법인세 비용이 지난해에 비해 15%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 경기부진으로 지난해 기업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판국에 세금을 더 걷는다면 가계의 비명 소리는 높아지고 기업 경영은 더 깊은 나락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결국 재정의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야당 대표의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한국일보 사설-20150210화] 야당 대표의 이승만ㆍ박정희 참배, 통합 전기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어제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국립 현충원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했다. 대선 후보 때 독재권력을 휘두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묘역 참배를 거부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행보다.

 

야당이 터부시했던 두 전직 대통령 참배의 명분은 국민통합이다. 문 대표는 참배 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과(過)를 비판하는 국민도 많지만, 한편으로 공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많다”며 “묘역 참배 여부를 두고 계속 이런 갈등을 겪는 것은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대혁명의 폐해로 격하운동이 거셌던 중국 공산혁명 지도자 마오쩌둥을 두고 피해자였던 덩샤오핑이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정리, 마오 사후 의 혼란을 수습했던 데 비추어 보더라도 문 대표의 인식 변화는 바람직하다.

 

문 대표의 이런 행보가 대권을 염두에 둔 이미지 개선 전략과 어떤 연관이 있든, 우리 정치ㆍ사회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주목하고 싶다. 우선 이념ㆍ노선 갈등의 심화로 조정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못한 채 갈등ㆍ대립 극대화로 치달아 온 정치ㆍ사회의 편 가르기 현상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다만 문 대표 스스로 지적했듯, 역사적 가해자와 보수 세력의 자세 변화가 함께 할 때 진정한 통합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문 대표와의 만남에서 이른 시간 안에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키로 한 것이 그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하지만 문 대표의 역사와의 화해, 국민통합 의지 천명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당장 야당에서 자신의 존재 증명에 급급한 강경파가 문 대표의 이ㆍ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비판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당 정체성과 노선의 변화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문 대표의 강경한 수락연설 분위기와도 딴판이어서 전체적 방향성이 혼란스럽다.

 

정치적 대립의 극대화가 ‘야당다운 야당’을 부각할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당과의 갈등과 대립을 고집해서 야당이 ‘재미’를 본 일이 거의 없다. 대여 관계에서 유연전략을 채택한 문희상 비상대책위 체제가 야당 지지율을 상승 추세로 반전시켰음도 간과하기 어렵다.

 

야당의 협조 없이 어떤 법도 통과시킬 수 없는 국회선진화법 시대에 중산층과 중도세력이 원하는 야당상이 무엇인지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 대표의 어제 참배가 그런 고민의 한 결과이기를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10화] 새정치연합, ‘현충원 참배 논란’의 교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는 9일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서울 동작구 현충원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문 대표는 참배 뒤 기자들에게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결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참배 문제에 대한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고위원 5명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로 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에 동행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반쪽 참배’가 되고 말았다. 새정치연합 신임 지도부의 이런 제각각 행보는 ‘문재인 호’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문 대표의 결정을 놓고는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통합의 메시지를 통해 당의 외연을 확충하는 적극적 행보라는 긍정적 평가도 가능하고, 일부의 지적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역사와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이런 미묘한 사안일수록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당 내부 설득에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야당 대표의 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는 단순히 ‘문재인 개인’의 정치적 행보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표는 그 대목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의 제안에서 비롯된 참배 결정은 다소 즉흥적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최고위원들을 설득하려고 충분히 노력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임 대표 업무 첫날부터 지도부가 따로따로 노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끝났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문 대표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충원 참배를 둘러싼 논란은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새정치연합은 그동안에도 수시로 이념 갈등과 강온 대립이 폭발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내부의 감정적 앙금은 더 깊어졌다.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들에 각 계파가 골고루 포진돼 ‘무지개 진용’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자칫 이런 구조가 사사건건 의견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갖가지 어려움을 뚫고 ‘혁신과 단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국 문 대표의 어깨에 달려 있다. 인사에서부터 당내 소통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당을 살리지도 못하고 문 대표 자신도 살지 못한다. 이번 현충원 참배 논란을 교훈 삼아 앞으로 문 대표가 더욱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210화] 문재인 대표 ‘통합의 정치’ 주문 앞서 실천해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어제 당선 이후 첫걸음으로 국립현충원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이라고 적고,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면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던 대선 후보 때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다. 대표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행보다. 문 대표가 강조한 ‘통합의 정치’가 그저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야권이 대안 없는 선동성 비판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증폭시키려다 외려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좀먹는 구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국민 다수가 문 대표의 이·박 두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긍정 평가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나.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친노 세력의 대표 주자인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에 공이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에 공이 있다”고 참배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평가는 어쩌면 수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새정치연합 측이 반겨야 할 일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독재나 장기 집권으로 굴곡은 많았지만, 온 국민이 함께 땀흘려 선진국 문턱까지 도약한 성취마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노무현 전 대통령)라는 삐뚤어진 인식에 머무는 한 야권의 지지 기반 확대는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문 대표의 현충원 참배에는 신임 최고위원들과 소속 의원 50여명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은 끝내 외면했다. ‘통합의 정치’가 레토릭으로선 쉽지만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 진풍경이다. 문 대표의 현충원 나들이가 한낱 대선용 원맨쇼가 아님을 입증하려면 후속 행보가 중요하다. 우선 당내에서 진정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 대선 패배나 지난해 7·30 재·보궐 선거의 참패 등 야당의 연이은 좌절은 여권과 충분히 각을 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된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 대한 야당의 견제와 비판은 당연하다. 문 대표가 이날 박근혜 정부에 화해와 통합의 길을 가도록 촉구한 것도 원칙적으로 수긍이 간다. 현 정부가 인사편중 등으로 국민통합에 역행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하지만 엄연히 상대가 있는 마당에 여야 어느 한쪽에만 통합의 정치를 주문하는 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만큼 무익하다는 생각이다. 문 대표는 이날 생뚱맞게도 현 정부가 국민통합을 깬 대표적 사례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북한 지도자와 함께한 6·15, 10·4 공동선언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빌미를 준 내용을 포함해 남남 갈등의 도화선이 된 10·4 공동선언을 덜컥 합의해 차기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준 사실을 안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끝없는 정쟁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고질이고, 이제 국민은 이런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는 넌더리를 내고 있다. 부디 여든 야든 통합의 정치를 먼저 실천하는 쪽이 민심을 얻게 될 것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시론/유창선(시사평론가)-20150210화] 문재인의 귀환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리그는 끝났다. 비판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더니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는 영락없이 그 모습이었다. 후보들끼리는 서로 ‘저질’이라며 갈 데까지 가는 모습을 보였건만, 싸움구경 좋아한다는 세상조차도 이 싸움에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민심을 먹고살아야 하는 야당에는 참담한 벽이었다. 그래서 지금 문재인 새 대표에게 축하의 말부터 건네는 것은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행위일 뿐이다. 차라리 터놓고 말하는 것이 그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문 대표는 “대표가 되면 계파의 기역(ㄱ)자도 안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2년에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로도, 아니 경선 룰 변경이 있던 투표 전날까지도 나왔던 계파의 기역자가 문재인 ‘대표’가 되었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을까. 의심에 찬 기우일 뿐인가? 그동안 문 대표가 보여온 결정적 한계는 선제적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택했던 것은 언제나 안전한 행보였다. 의원직을 던지지 않은 대선 후보로 남은 것도,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살길 찾기’로 비쳐졌다. 문 대표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내려놓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정치로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문 대표가 사망 직전의 야당을 살려내려면 자신이 먼저 대표로서의 책임만 남기고 모든 정치적 권리와 기득권을 남김없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야당 내에서 계파의 기역자도 안 나오게 하는 길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길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계파의 수장, 정파의 대표에서 벗어나, 대의를 위해 자신마저도 버릴 수 있는 모습을 보일 때 야당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다. 결국은 ‘문재인 대 문재인’의 싸움이다.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결기를 보이는 것은 야당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전쟁 이전에 정치로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지지 위에 서는 ‘강력한 야당’은 ‘싸우는 야당’ 이상의 훨씬 넓은 친화력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실패한다면 문 대표에게는 2017년이 있을 수 없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남겨두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자.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같은 해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또 지고 말았다. 역사의 죄인들이었다. 그들이 권력욕을 내려놓고 대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는 길을 택했던들, 아마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부실한 야당이 여당에 기사회생의 승리를 선사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진작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빠뜨린 것이 있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2012년의 패배가 5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된다면 그 장면은 차라리 희극이 되고 말 것이다. 새 출발에 초를 치려는 얘기가 아니다. 간절한 호소이다. 망각하고 있지 않기에 지켜볼 것이다. 더는 당신들이 살기 위해 국민을 죽이지 말고, 국민을 살리기 위해 당신들은 기꺼이 죽는 길을 가기 바란다. 문재인 대표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210화] 최악의 집단 무기력에 빠진 한국의 교사들

 

한국 교직사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집단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 중학교 교사 중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한 비율이 20%로 OECD 34개 회원국 중 1위다. ‘다시 직업을 택한다면 교사는 되고 싶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스웨덴(46.6%)과 일본(41.9%)에 이어 3위(36%)다. OECD가 지난해 회원국 10만5000여 중학교 교사를 조사해 발표한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 2013’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여전히 많은 교사가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만 상당수 교사는 냉소주의와 좌절감에 빠져 ‘탈진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교사 자존감도 함께 허물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교직사회의 무력감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교사 자존심 회복 방안을 본격적으로 마련하라는 경고음이다. 교사들의 이런 집단 무기력증은 학생 교육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 당국은 교사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교사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보고서를 분석한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행정 업무(8.2%)와 교실 질서유지(13.6%) 등 잡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교사 근무 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교육 본연의 업무가 아닌 일에 시간을 지나치게 빼앗기고, 윗선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자율적이지 못한 교직 문화가 사기 저하에 한몫했다는 이야기다. 당국은 교사·학부모와 무릎을 맞대고 학교 자율화 수준을 높일 구체적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교사들의 자존감 고취와 사기 진작은 교직사회의 진취적인 문화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2세 교육의 품질 유지·향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죽은 교원의 사회’가 어떻게 미래 세대를 키울 신바람 나는 교육현장을 만들 수 있겠나.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문화 마련은 우리 시대의 과제다.

 

 

[경향신문 사설-20150210화] 국립대 총장까지 ‘친박’ 정치인이라니

23개월째 공석이던 한국체육대 총장에 결국 ‘친박 인사’가 임용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체대 총장임용추천위원회가 1순위로 추천한 김성조 후보자의 교육부 임용 제청을 받아들여 지난 5일 그를 제6대 총장에 임명했다. 김 총장은 체육과 관련한 전문성이나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대신 경북 구미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적인 친박 정치인으로 꼽힌다. 놀라운 일이다. 2013년 김종욱 전 총장이 물러난 후 대학이 추천한 후보를 교육부가 네 차례나 퇴짜 놓았던 이유를 실토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그동안 한국체대 외에도 국립대 총장 임용 제청을 줄줄이 거부하면서 가타부타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공주대는 12개월째, 한국방송통신대는 5개월째, 경북대는 6개월째 총장 공석 사태를 빚고 있다. 교육부는 공주대 김현규, 방송통신대 류수노 총장 후보자가 각각 낸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처분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이 행정절차 위반이라는 법원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법원의 결론을 따르겠다”며 끝까지 법적 대응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학이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교육부 장관이 그 가운데 한 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교육부가 이례적으로 해당 대학 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한 배경에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뒷말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인사에 대한 거부 의사라는 것이다. 청와대 직원이 총장 후보자에게 직접 전화까지 해서 시국선언에 참여했는지 물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온 마당이다.

 

한국체대 총장에 친박 인사를 앉힌 것은 결국 현재 임용 거부 사태로 총장이 장기 공석 중인 국립대도 알아서 친정부 인사로 추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로서, 결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210화] 北, 남북 화해 골든타임 이대로 날릴 텐가

 

남북 대화의 시계가 뒤로 가는 듯하다. 5·24조치부터 해제하라며 우리의 대화 제의에 귀를 막은 북한은 지난 6일과 8일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저들의 무력 시위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겠으나 이것 말고도 북녘에서 전개되는 이런저런 움직임들을 종합하면 당분간 남북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일은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어 가는 형국이다.

 

합참에 따르면 엊그제 북이 발사한 미사일은 모두 러시아제를 본떠 만든 KN 계열의 신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특히 6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관한 가운데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서 발사한 함대함 미사일은 최대사거리가 130㎞에 이르는 데다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15m의 초저고도 비행이 가능해 우리 함정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음달에 있을 한·미 키리졸브 합동군사연습에 맞불을 놓는 의미도 있겠으나, 화해의 손짓 뒤로 끊임없이 군비 증강에 몰두하는 저들의 실상을 거듭 확인시켜 주는 증거물임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런 북의 움직임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다. 지난해 11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모스크바 방문이 말해 주듯 북은 소원해진 중국의 대안으로 러시아를 택하고는 다각도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일각에선 머지않아 북한과 러시아가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사상 첫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지난달 30일 국방장관과 각군 참모총장이 참여한 고위급 군사회의에서 사상 첫 북·러 합동 군사훈련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는 5월 9일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이를 계기로 북·러 군사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시나리오를 통해 러시아를 미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게 북의 계산일 것이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무력시위를 반복하고 러시아와 거리를 좁힌들 그것으로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러 관계를 감안할 때 러시아와의 협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북은 깨달아야 한다. 출구는 오직 한국뿐이다. 분단 70년인 올해 남북 간 안정적인 대화 틀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황차 급속한 체제 위기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북 지도부는 가져야 한다. 남북 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10화] "KT 유료방송 손봐달라"는 또 하나의 청부입법

 

규제개혁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마당에 국회는 또 거꾸로 가고 있다.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공급자의 시장점유율을 33%로 규제하는 법안이 바로 그렇다. 이른바 ‘유료방송 합산규제’다. 합산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해당 사업자는 가입자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사전적으로 막겠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더구나 특정 사업자를 표적으로 한 규제다. 한마디로 소비자 선택권은 물론 기업의 영업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크다. 이런 법안이 국회에서 버젓이 발의되고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해외 유료방송 시장을 봐도 점유율을 규제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위성방송, IPTV를 합쳐 시장점유율이 약 28%인 KT는 시장을 더 확대하고 싶어도 점유율 규제에 직면하게 된다. KT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는 기존 가입자가 탈퇴하기 전까지는 구매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오로지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의 탄생인 것이다. 더구나 KT만을 목표로 하는 규제다. 일종의 인종차별적 규제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케이블TV 업계는 합산규제를 찬성하는 근거로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이 맞다고 해도 시장점유율을 규제하자는 식이라면 이는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사업자도 기존 서비스와 경쟁하는 차별적 서비스 개발에 나설 유인이 없어진다. 일체의 서비스 혁신을 아예 포기하자는 얘기다.

 

케이블 TV 업계는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점유율 규제를 거론하지만 케이블은 사실상 전국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업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여서 문제가 안 됐을 뿐이다. 케이블TV도 정상적 시장으로 가려면 이런 규제를 없애자고 해야 맞다. 하지만 케이블TV 업계는 오히려 이를 무기 삼아 IPTV 시장에 점유율 규제를 밀어붙인 데 이어 이제는 이 허망한 규제를 통합 방송시장에까지 적용하자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규제를 못 만들어 안달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10화] 법인세 인상 주장은 세율과 세수를 혼동한 결과다

 

증세냐 복지축소냐의 딜레마에 빠진 정치권이 법인세 인상 카드를 자꾸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특히 여당 일각에서는 야당이 주장해 온 법인세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복지 구조조정을 추진하자는 ‘빅딜설’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야권은 “지난 정부에서의 법인세 인하는 ‘부자감세’인 데다 세수까지 줄게 해 복지재원을 더 부족하게 한다”는 입장이다. 여권에서조차 이런 논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우선 이명박 정부에서 감세 대상이 ‘부자’였는지부터 의문이다. 당시 법인세율은 대·중소기업 모두 일률적으로 3%포인트 인하됐다. 따라서 모든 중소기업을 부자로 간주하지 않는 이상 이를 부자감세로 몰아가는 건 무리다. 더구나 기업을 부자라고 칭하는 허구의 관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기업은 개인에게 환원될 계약의 집합일 뿐이다.

 

‘감세’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인세율 인하 다음해인 2009년에는 반짝 세부담이 줄었지만 이후 각종 공제와 감면 축소, 최저한세율 인상 등으로 기업 세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전경련에 따르면 기업이 부담할 세금은 2009년 대비 지난해 3조3200억원 늘었고, 올해 5조400억원 증가한다. 이는 정부 발표와도 일맥상통한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대기업 세부담은 줄기는커녕 10조9000억원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인세 실효세율이 2012년 16%, 지난해 17.5%에서 올해 18.2%로 예상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세수가 줄었다는 주장도 허구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법인세수는 2009년에는 29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조원가량 줄었지만 2010년, 2011년에는 각각 38조원, 40조3000억원으로 세율 인하 이전보다 크게 높아졌다. 이는 법인세율과 세수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결국 ‘부자감세’도 없었고 ‘세수 감소’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연말정산에 이어 또다시 국민을 바보로 만들 작정인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10화] 연천군의 몰락…도시도 지역도 모두 죽이는 수도권 규제

 

서울보다 넓은 연천군이 극장도 마트도 없는 낙후지역으로 몰락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군사보호구역 규제에 60여년 시달린 데다 수도권 규제까지 30여년 추가로 받는 사이 지역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것이다. 서울의 1.1배 면적 (676㎢)에 100명 이상 종업원이 있는 사업장이라야 농협에서 운영하는 김치회사 하나뿐이고, 10인 이상 사업장도 71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노인 인구 비중은 21%에 달하고 도로포장률(69.1%)은 전국 최하다. 젊은이들이 남을 리 없고 외지인들이 들어 올 이유도 없다.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 당시 6만8000명이던 연천군 인구는 작년 4만5000명으로 34%가 줄었다. 발전이 멈춘 유령도시에 가깝다. 연천군은 수도권 규제라는 망령이 한 지역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살아있는 증거다. 지역균형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엉뚱하게도 경기북부 지역에 날아가 폭탄을 터뜨리기에 이른 것이다. 비극은 연천뿐만이 아니다. 인근의 가평군, 그리고 인천의 강화군과 옹진군 등지도 인구가 줄고 경제가 피폐해지고 있다. 사정이 이곳들보다는 낫다지만 수도권의 다른 지역도 발전할 기회를 놓친 채 서서히 낙후지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모두가 성공을 처벌하는 수도권 규제의 독소적 성격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의 도시와 지역을 모두 파괴하고 있다. 도시는 도시대로 정상적인 발전을 차단당하고 지역은 별 소득도 없이 해외 경쟁도시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다. 세계는 오히려 수도권 키우기 경쟁 중이다. 런던 파리 도쿄 등 주요국 수도가 이미 규제를 폐지하며 메가시티 건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는 ‘거대한 파리’라는 깃발을 든 채 미국 뉴욕을 넘어서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마침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에 선출된 원유철 의원이 수도권 규제 철폐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를 올해 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소위 균형발전론과 수도권 규제라는 관념의 유령을 이제는 제거할 때다. 도시는 고도화된 분업을 창출하는 그릇이어서 현대문명과 산업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필수적 조직이다. 그 점을 잊지 말라.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010화] 여당 복지 구조조정 12조 절감 뜬구름 잡기 아닌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9일 국회 차원의 '복지평가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복지지출의 중복과 비효율을 없애는 구조조정을 한 뒤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면 증세에 대한 결론을 내자는 취지다. 복지 구조조정이 법령과 예산의 변화, 야당과의 타협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이다.

 

때마침 새누리당에서 7가지 복지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2조원 이상의 재정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구상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너무 부실해 실망스럽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고소득자 등의 건강보험·국민연금 보험료 악성·장기체납액 2조5,000억원 징수의 경우 실현 가능성도 의심스럽지만 징수하더라도 정부 재정과 아예 주머니가 다른 '건보·국민연금 재정'일 뿐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한 정부의 총 재정부담(보험료+적자보전금+퇴직수당) 절감액도 대상 기간을 박근혜 정부 잔여 임기인 2년(2016~2017년)보다 늘려 잡아 연평균 4,000억원가량 부풀렸다. 지방자치단체 등에 대한 국고보조금과 지방교육재정에서 수조원을 절감하겠다는 구상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당장 지자체·교육청과 정부 간, 그리고 여야정 간에 올 하반기 기초연금·무상급식·무상보육 재원을 둘러싼 돈 싸움이 예고돼 있다. 정치권과 정부의 무상복지 드라이브로 최근 8년 새 지자체의 총지출이 연평균 4.4% 늘어나는 사이 사회복지 지출이 15조여원에서 37조여원으로 연평균 13.8% 불어난 탓이 크다.

 

여당 공약인 무상보육은 성역으로 둔 채 야당이 먼저 불을 지핀 무상급식만 구조조정하겠다는 것도 정쟁을 키울 뿐이다. 어린이집에 반나절만 맡겨도 종일 보육료를 지원하는 혈세 낭비는 또 어떤가. 복지 구조조정에는 성역도, 재정절감액 부풀리기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공(空)수표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 공약가계부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10화] 100년 만에 보험보다 돈 못 번 은행, 자업자득이다

 

지난해 은행권의 순이익이 보험사보다 적을 게 확실시된다는 소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지방·특수은행 등 국내 18개 은행은 지난해 6조2,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반면 생명·손해보험을 합친 56개 보험사들은 지난해 3·4분기까지 5조1,000억원, 4·4분기 추정치까지 포함하면 최소 6조6,000억원을 거뜬히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보험사가 은행보다 돈을 더 번 것은 국내에 은행·보험사가 생긴 뒤 처음이다. 1897년 한성은행 설립 이후 100여년간 은행이 자산·이익 모든 면에서 금융업의 맏형 역할을 해왔던 걸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불과 10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2005년 13조6,000억원이던 은행 순이익은 지난해 반토막이 났지만 같은 기간 보험사 순익은 3조3,000억원에서 두 배나 늘어났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불가피한 현실이어서 은행들의 이자마진이 줄어 수익성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은행의 책임이 크다. 은행 스스로 위기를 불렀다는 얘기다. 수년 전부터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는 잇따른 경고에도 변신은커녕 손쉬운 담보대출 위주의 이자 장사에만 매달렸다. 그러니 지난해 이자이익이 총이익의 90%가 넘은 데 비해 비이자이익은 10%에도 미치지 못한 게 당연하다.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충고에도 시늉만 내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은행들은 순이익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0~50%에 달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미미한 수준이다. 가장 성과가 좋은 신한은행이 8.3%에 그칠 정도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국내 은행이 고쳐야 할 낡은 틀로 담보 위주의 여신 관행, 이자수익에 대한 과도한 의존, 국내에서의 우물 안 영업 등을 꼽았겠는가. 금융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오지 않는 원인과 처방전은 이미 나와 있다. 체계적인 전략을 다듬어 실천하는 것이 시급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증도가자(證道歌字)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210화] 증도가자(證道歌字)

“남이야 비방을 하건 비난을 하건 상관하지 마라. 그것은 불을 가지고 하늘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비방하고 비난하는 사람만 스스로 피곤할 뿐이다.” 중국 당나라 승려 현각(666~714년)이 지은 <증도가>의 한 구절이다. 증도가는 예로부터 선불교의 대표적인 지침서로 많은 선승들이 해설하고 독송해왔다. 성철 스님은 증도가를 읽고 출가를 결심했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명강사(강백) 무비 스님의 <증도가 강의>는 불교계 베스트셀러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이 쓴 증도가 해설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최씨 무신정권 때 강화도에서 찍은 목판본(보물 758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에 그런 기록이 나온다. 이 책에는 애초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을 1239년 목판에 옮겨 새겼다는 사실도 적혀 있다. 금속활자본의 존재를 밝힌 것이다. 2010년 한 서지학자가 이 책을 찍을 때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이라며 이른바 ‘증도가자’를 공개한 뒤 진위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다.

 

그 증도가자가 마침내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학술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먹 성분 탄소연대 분석, 목판본과의 서체 비교, 활자의 금속성분 X선 분석 등 과학적·서지학적 검증을 거친 결과 대부분의 활자가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1377년)보다 최소 138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5년)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기록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검증결과를 토대로 국가 문화재 지정 여부 심사에 착수했다.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공인될 경우 세계 인쇄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인류사적 대사건이다. 직지나 구텐베르크의 경우에는 활자 자체가 없는 상태여서 더욱 귀하다. 세계문화유산급 보물이 될 게 틀림없다.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팔만대장경 목판본(1236~1251년), 직지와 더불어 세계 최강 인쇄강국, 지식강국의 역사적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제는 정부가 증도가자의 국제적 평가와 인정을 받는 일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때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서동철(논설위원)-20150210화] 증도가자(證道歌字)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당나라 승려 현각이 남종선(南宗禪)의 개창자인 육조 혜능으로부터 깨우친 도(道)의 경지를 설파한 ‘증도가’의 구절을 송나라의 남명 법천 선사가 해설한 책이다. 여말선초의 문인 최이는 이 책의 말미에 ‘참선을 배우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으로 입문하고 높은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도 전래가 끊겼으니 각공(刻工)을 모아 주자본(鑄字本)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하여 길이 전하게 한다. 때는 기해년(1239) 9월 상순’이라고 적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만든 책은 ‘직지심체요절’이다. 고려의 승려 경한이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이다. 경한이 입적하고 3년이 지난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목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 냈다. 당시 간행된 상하 2권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하권이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2010년 ‘직지심체요절’에 앞서 인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2점이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최이가 언급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목판본의 원본인 주자본을 찍은 금속활자라는 주장에 따라 학계는 한순간 진위 논쟁에 휩싸였다.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 논란이다.

 

이때 공개된 ‘증도가자’가 ‘직지심체요절’에 앞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인쇄하는 데 썼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는 적지 않았다. 목판본 ‘증도가’에 나타난 서체와 공개된 금속활자의 서체는 대부분 일치했고, 조선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밝을 명(明) 자의 닮은꼴 고체(古體)가 쓰인 것도 신빙성을 높이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증도가자’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한문학자인 이상주 중원대 연구교수는 12점의 이른바 ‘중도가자’와 ‘증도가’는 서법적으로 한 글자도 같지 않다고 주장하며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금속활자의 가치가 치솟으며 중국산 가짜가 횡행하는 당시 상황에서 ‘증도가자’의 소장자가 여러 차례 문화재 도굴이나 모조품 논란에 휩싸였던 당사자라는 것도 부정적 기류를 형성한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제출됐다고 한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은 활자에 묻은 먹의 탄소연대 측정치다. 국립지질자원연구원의 측정 결과 1033년에서 1155년 사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증도가자’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도 좋고, 아니라도 나쁠 것 없다. 우리나라는 ‘직지심체요절’은 물론 계미자(1403)와 갑인자(1434)조차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34~1444)보다 앞서거나 비슷한 금속활자 왕국이기 때문이다.

 

 

■ 그 밖의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시론/유창선(시사평론가)-20150210화] 문재인의 귀환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리그는 끝났다. 비판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더니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는 영락없이 그 모습이었다. 후보들끼리는 서로 ‘저질’이라며 갈 데까지 가는 모습을 보였건만, 싸움구경 좋아한다는 세상조차도 이 싸움에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민심을 먹고살아야 하는 야당에는 참담한 벽이었다. 그래서 지금 문재인 새 대표에게 축하의 말부터 건네는 것은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행위일 뿐이다. 차라리 터놓고 말하는 것이 그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문 대표는 “대표가 되면 계파의 기역(ㄱ)자도 안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2년에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로도, 아니 경선 룰 변경이 있던 투표 전날까지도 나왔던 계파의 기역자가 문재인 ‘대표’가 되었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을까. 의심에 찬 기우일 뿐인가? 그동안 문 대표가 보여온 결정적 한계는 선제적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택했던 것은 언제나 안전한 행보였다. 의원직을 던지지 않은 대선 후보로 남은 것도,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살길 찾기’로 비쳐졌다. 문 대표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내려놓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정치로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문 대표가 사망 직전의 야당을 살려내려면 자신이 먼저 대표로서의 책임만 남기고 모든 정치적 권리와 기득권을 남김없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야당 내에서 계파의 기역자도 안 나오게 하는 길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길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계파의 수장, 정파의 대표에서 벗어나, 대의를 위해 자신마저도 버릴 수 있는 모습을 보일 때 야당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다. 결국은 ‘문재인 대 문재인’의 싸움이다.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결기를 보이는 것은 야당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전쟁 이전에 정치로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지지 위에 서는 ‘강력한 야당’은 ‘싸우는 야당’ 이상의 훨씬 넓은 친화력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실패한다면 문 대표에게는 2017년이 있을 수 없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남겨두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자.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같은 해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또 지고 말았다. 역사의 죄인들이었다. 그들이 권력욕을 내려놓고 대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는 길을 택했던들, 아마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부실한 야당이 여당에 기사회생의 승리를 선사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진작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빠뜨린 것이 있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2012년의 패배가 5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된다면 그 장면은 차라리 희극이 되고 말 것이다. 새 출발에 초를 치려는 얘기가 아니다. 간절한 호소이다. 망각하고 있지 않기에 지켜볼 것이다. 더는 당신들이 살기 위해 국민을 죽이지 말고, 국민을 살리기 위해 당신들은 기꺼이 죽는 길을 가기 바란다. 문재인 대표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중앙일보 칼럼-비즈 칼럼/권상형(신우회계법인 공인회계사)-20150210화] 4500원 담배 세금이 74% … 1000만 흡연자도 국민

 

요즘 흡연자들이 껑충 뛰어오른 담뱃값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4500원 담배 한 갑의 경우 판매가 74%인 3320원이 제세부담금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 결과 담배가 바야흐로 가장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상품으로 등극했다. 세금부담률이 약 56%인 휘발유는 물론 72%의 세율로 최고 수준을 유지했던 소주·맥주를 가뿐히 재꼈다.

 

 이에 따라 하루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가 1년간 부담하는 세금은 지난해 56만원에서 올해부터는 121만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이는 9억원의 주택 소유자가 내는 재산세와 비슷한 수준이며, 연봉 4745만원의 근로소득자가 내는 소득세와 맞먹는다.

 

 정부는 표정 관리에 바쁜 모양새다. 담뱃세 인상으로 예상 세수가 연간 2조8000억원에서 5조원 정도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고액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흡연자들의 처지는 딱하기만 하다. 올해부터 대중음식점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실내공간에서 흡연이 금지돼 담배 한 대 마음 놓고 피울 공간이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금연구역 위반에 대해 단속할 행정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양심있는 흡연자들은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길거리 어느 후미진 장소를 찾아 마치 이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죄인인양 ‘국가가 정한 합법적인 상품’을 소비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흡연자는 금연구역을 무시하면서 계속 흡연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제안은 바로 이들에게 흡연공간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흡연자들도 합법적인 상품을 소비하는 건전하고 정상적인 소비자인 만큼 쾌적한 환경에서 흡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하고, 그리고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은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

 

 소비자기본법에도 ‘소비자는 안전하고 쾌적한 소비생활 환경에서 소비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돼 있지 않은가. 이는 비단 흡연자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원치 않게 담배연기를 맞닥뜨리게 되는 비흡연자를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의 한 자치구가 흡연부스를 설치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호응을 얻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본 적이 있다. 해외사례 역시 일본이나 싱가포르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실내 흡연실 설치를 지원하거나 길거리 곳곳에 흡연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정부가 추가로 추진하려는 담뱃갑 경고그림 역시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스럽다. 혐오스런 그림을 일상에 노출시키는 것은 삶에 대한 부정적 의식과 폭력성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실제 이를 감안해 방송에서는 병원 수술이나 자동차 사고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는가.

 

  필자는 정부의 금연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수단의 적합성과 우선순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흡연자들도 정부와 정치권이 보듬어줘야 할 엄연한 국민들이고 유권자들이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서민들이 기댈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 1000만 명에 달하는 흡연자들을 막다른 골목까지 마냥 몰아붙이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인지 묻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210화] 모토로라 아세요?

 

1983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커다란 기계를 들고 통화를 시도한다. 상대는 라이벌인 벨연구소의 조엘 엥겔 소장이다. “여보게, 난 지금 셀룰러폰(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다네!” 전화를 건 남자는 휴대폰을 발명한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 이사였다.

 

당시 쿠퍼가 들고 있던 전화기는 최초의 상용 휴대폰인 ‘다이나택 8000X’였다. 무게가 1㎏이 넘고 가격은 4000달러나 됐다. ‘벽돌폰(Brick Phone)’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 카폰 장치가 40㎏이었으니 다이나택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2007년 USA투데이가 꼽은 ‘지난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변화시킨 발명품 25개’ 중 단연 1위에 오른 휴대폰의 탄생 장면이다.

 

무선통신은 곧 모토로라(Motorola)의 역사였다. 모토로라는 폴 갤빈이 1928년 시카고에서 설립한 갤빈제작소로 출발했다. 초기엔 차량용 라디오를 만들었는데 이때 브랜드가 모토로라였고, 1947년엔 아예 회사명이 됐다. 모토로라는 ‘자동차(motor)+축음기(victrola)’를 합친 뜻이다. 2차대전 때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워키토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때 닐 암스트롱이 지구와 교신한 우주통신기기 역시 모토로라의 작품이었다.

 

모토로라는 한때 혁신의 심벌처럼 여겨졌다. 1996년 최초 폴더폰 ‘스타택’은 무전기 크기의 휴대폰을 와이셔츠 호주머니 크기로 줄여 선풍을 일으켰다. 세계시장의 30~40%를 점유할 정도였다. 2003년 얇은 ‘레이저V3’로 또 한번 인기를 모았다. GE 소니 삼성 등이 앞다퉈 도입했던 ‘식스 시그마’도 원조는 모토로라였다.

 

이런 모토로라였지만 몇 차례 판단미스로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말았다. 1991년 77개 저궤도 위성을 띄워 지구를 단일 통신망으로 묶겠다는 ‘이리듐 프로젝트’가 그 전조였다. 1998년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비싼 단말기, 통화품질 등의 문제로 2년 만에 접었다. 본업인 휴대폰도 2007년 아이폰 등장에 치명상을 입었다.

 

87년 모토로라 제국이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2011년 몸통인 휴대폰 사업부문(모토로라 모빌리티)이 구글에 팔리고, 마지막 남은 통신장비 부문(모토로라 솔루션스)마저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지난해 중국 레노버로 넘어가 10만원대 저가폰을 만드는 회사로 전락했다. 통신장비 부문마저 팔리면 모토로라는 사실상 공중분해된다. 세계를 주름잡던 거인은 몰락도 극적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210화] 'ZYNY' 신드롬

 

제로(0)에서 마이너스까지 금리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ZYNY(zero-yield to negative-yield)'는 금융 신조어다. 주요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로 낮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률에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면서 각국 국채 금리가 연쇄적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JP모건이 지난달 기준으로 자사 세계채권지수(GBI) 편입 국채 중 16%에 해당하는 3조6,000억달러가 마이너스 금리라고 밝히면서 이 상황을 'ZYNY'라고 새로 명명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24개 주요 선진국의 국채 발행 잔액 33조달러 가운데 4조달러(12%)가 마이너스 금리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10개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였으며 5개국도 0%나 마이너스 금리였다가 최근 회복했기 때문에 절반 가까운 나라들이 'ZYNY'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독일 2년물 국채는 -0.2%까지 떨어졌으며 스위스 국채는 10년물까지 모두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자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고 △보유기간 중 차익 실현 가능성이 있고 △회사채·주식 등 대체 자산의 매력이 없어 '이상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양상은 특히 최근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신흥국 국채와 회사채 시장으로까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상품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 '폭탄 돌리기'라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리가 올라 시장이 정상화되면 마이너스 금리 국채에 투자한 투자자는 시장 손실까지 이중의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8년 터진 '폰지 사기'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금리 국채가 빚만 끊임없이 키우는 구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손실은 결국 국채에 투자한 각국 국부펀드와 연기금 등이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당신의 국민연금과 개인연금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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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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