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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3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우려되는 '맞춤형 보육' 집단 움직임

내달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가도록 예정된 ‘맞춤형 보육’ 방안을 놓고 어린이집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일부 어린이집이 오늘부터 이틀 간 집단 휴원에 들어가며 그 사이 정부가 개선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순차적으로 폐업 수순을 밟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동참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단순한 엄포로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영상의 문제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 실시를 전제로 보육료를 6% 올려준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라다는 얘기다. 그동안 5년째 보육료가 동결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이번 맞춤형 보육을 받는 유아들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20% 삭감하겠다는 방침도 그리 마땅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 운영이 어려워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 방안은 지금 우리 상황에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2살 이하의 유아를 대상으로 종일반(12시간)을 운영하되 그렇지 않으면 맞춤반(6시간)으로 돌린다는 것이니, 각 가정의 맞벌이나 홀벌이 사정에 따라 보육 시간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 지원예산이 375억원 줄어든다고 하지만 보육료 인상으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1440억원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에 대한 정부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일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육아선진화 포럼’을 개최했지만 일방적인 홍보로 빈축을 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맞춤형 보육 방안이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는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어렵다. 그러고도 어린이집의 집단 움직임에 대해 ‘법에 따른 엄정 대처’ 방안만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여야 정치권도 가급적 이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이뤄나갈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얘기로 갈라져서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일단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복지부가 어린이집 단체들과 물밑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니 타협점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2. 세계가 영국의 선택을 주목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오늘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다. 그동안 잔류 운동을 벌여 왔던 조 콕스 하원의원이 괴한에게 살해된 지난 16일 이후 잔류론이 상승세라지만 여전히 탈퇴 여론도 만만치 않아 예측불허의 상황이라고 한다. 영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EU 핵심축이라는 점에서 투표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영국민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EU 탈퇴 여부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파운드화 급락은 물론 물가폭등, 일자리 축소 등 영국 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9년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5.5%가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U 경제의 17%,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EU 탈퇴는 다른 회원국의 연쇄 이탈로 이어져 EU 붕괴를 부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몰고 올 엄청난 충격과 혼란이 걱정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혼란을 우려해 잔류를 호소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브렉시트는 매우 부정적인 경제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며 잔류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들과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교수 등 10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탈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독일 BMW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유럽의 미래와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 영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탈퇴로 결론이 나더라도 영국과 EU 수출비중이 10.5%로 낮아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브렉시트 여부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며 경제·금융상황에 계속 경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면밀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브렉시트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서울신문]

3. 北 무수단 미사일 집착 말고 주민 생계 돌보라

북한이 어제 오전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두 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은 먼저 발사된 미사일은 150㎞를 날아가 공중폭발했으며 나중에 발사된 미사일은 각도를 높여 쏘아 400㎞를 날아간 뒤 동해상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한 바 있다. 결국 여섯 번째 만에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고 군 당국은 밝혔다. 일본 전역과 태평양 괌 미군기지까지 사정권에 둔 무수단 미사일의 위협이 차츰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실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지시한 바 있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어제 발사 장면도 직접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무수단 미사일에 병적으로 집착해 왔다.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도 김정은이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중거리 핵무기 운반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유사시 한반도로 전개되는 미군 증원 전력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여 주려는 목적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운용한다면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 행위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니만큼 강력히 규탄하는 동시에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대북 제재 강도를 한층 더 높여야만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은 여러 차례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내 반관반민 성격의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화 제스처가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셈이다. 다소 느슨해지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제재 고삐를 더욱 죄어야만 한다.


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은 한층 피폐해지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엘리트층인 해외 식당 종업원들이 연쇄적으로 집단탈출을 하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도발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수단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는 데 2000만 달러가 투입된다는 추정에 비춰 보면 북한은 최근 두 달간 무려 1억 2000만 달러를 쓸데없이 허공에 날려 보낸 셈이다. 그 돈이면 북한 주민들의 두 달치 식량을 수입하고도 남는다고도 한다. 김정은이 정녕 북한 지도자라면 주민들의 생계부터 돌보는 게 도리다.

4. 김해공항 허브공항으로 거듭나게 힘 모아야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나뉘어 영남권 광역자치단체 간 지역 대결 양상을 띠던 신공항 유치전이 제3의 길로 출로를 찾았다.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측이 경제성·안전성·환경성 등을 망라한 전체 평점에서 가장 앞섰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에 손을 들어 주면서다. 결과적으로 보면 다행스러운 결말이다. 지역 갈등이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서다. 그러나 부산·대구 지역의 여야 정치인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성급하게 대형 국책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전비(前非)를 자성하고 앞으로 이를 자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을 대폭 확장하는 방식으로 낙착되기까지 무려 10여년을 표류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검토 지시를 한 뒤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약속했다가 집권 후에 부산 대 대구·경북·경남·울산으로 민심이 갈리자 백지화했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문재인 두 여야 후보가 경쟁적으로 공약으로 내걸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뛰듯 영남권 단체장과 여야 의원들도 수시로 신공항 약속을 남발했지 않았나. 이로 인해 높아진 지역민들의 기댓값이 야기한 갈등과 국정 혼선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신공항 건설과 같은 가장 전문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을 정치 논리로 접근한 탓이다. 즉 표심에 휘둘려 대국을 보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유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게 옳다. 그런 맥락에서 청와대가 김해공항 대폭 확장이 곧 신공항이라는 논리로 공약 번복 논란에서 벗어나려 하는 건 옹색해 보인다. 외려 공약 불이행을 사과하면서 경제성도 없고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밀양 또는 가덕도 신공항을 포기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게 정공법일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안의 합리성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태도도 가관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총선에서 연거푸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 가덕도 방문 이벤트까지 벌인 터라 자가당착인 까닭이다. 여든 야든 신공항 문제로 더는 지역 정서에 불을 붙이거나 다시 대선 공약화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외국 용역업체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다. 이로써 최대 6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만 어제 황교안 총리가 “영남권 거점 신공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는 활주로를 추가하고 공항 터미널을 신축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김해와 영남권 주요 도시 간 교통망을 확충하고 여객·화물 수요를 김해공항으로 집중시킬 후속 조치가 긴요하다. 김해공항이 동남권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으려면 중앙정부나 부산뿐만 아니라 영남권 자치단체가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영남 지역 단체장들이나 정치인들이 속히 소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승적으로 손을 잡기를 당부한다.

5. 투기 바람 못 잡으면 경제에 치명상 줄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제 분양권 불법거래 실태 점검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 등 수도권 3곳과 부산 1곳의 아파트 모델하우스, 공인중개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다운계약과 불법전매, 시세 차익을 노린 떴다방, 청약통장 거래 등을 집중 단속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친 재건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동산시장이 국지적으로 과열된 가운데 각종 탈·불법까지 판치자 팔짱을 끼고 있던 정부가 뒤늦게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올 1~5월까지 아파트 분양권 거래는 5만 4187건에 17조원을 넘어섰다. 분양권에 붙은 전체 프리미엄, 즉 웃돈은 7923억원으로 건당 평균 1460만원이 얹혀져 거래됐다. 서울에서는 평균 2645만원, 경기에서는 1952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말 그대로 투기다.


평균 분양가도 치솟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4500만원 선이지만 일부 평형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주상복합이 아닌 일반 아파트로는 역대 최고 분양가다. 자고 나면 1000만원씩 뛴 말이 빈말이 아니다. 여유 자금이 있는 웬만한 중산층도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물량이 달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서울시의 ‘2016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딴 세상 얘기일 수밖에 없다. 조사에 따르면 30대 서울시민의 88%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10명 중 9명꼴이다. 게다가 전체 시민의 전·월세 평균이 58.9%로 자기 주택보다 높다. 최근 분양 시장은 도무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과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집값을 띄워 경기를 살리겠다며 무차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서다. 전매 제한을 완화한 데다 분양가 상한제도 폐지했다. 빚을 내 집을 사도록 가계대출 규제도 크게 낮췄다. 1%대의 최저금리도 한몫했다.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방치했다가는 부동산시장 자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서둘러 집단대출 규제를 비롯해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떴다방 등 거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당연히 엄단해야 한다. 물론 부동산 전체 경기를 냉각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투기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거품이 꺼질 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아일보]

6. 참으로 부족한 박 대통령의 ‘갈등관리 리더십’

영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어제 오전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라 어려운 문제이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항공 안전과 경제성 등을 종합 판단해 김해공항 확장을 최적의 대안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는 본보 역시 ‘합리적 결정’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켰다”는 청와대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을 영남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손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면피성 궤변이다. 


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신공항 결정 과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전문기관의 의견 존중, 정부의 지원이 잘 조화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갈등 전문가의 논평을 듣는 듯하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엇갈린 공공 갈등의 경우 합리적 토론과 숙고(熟考)를 통한 합의, 그리고 승복으로 풀어내느냐가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촉발시킨 사안이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발언으로 영남권의 들끓는 민심과 정치권의 반발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3월 31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향후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인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까지 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는 신공항 반드시 건설할 것”이라고 외쳤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해 신공항’ 운운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갈등관리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배운 듯 서병수 부산시장은 민자(民資)를 유치해서라도 가덕도에 공항을 짓겠다고 나섰다. 대구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의원은 대구 최고(最古)의 신문이 1면을 백지로 내면서 항변할 만큼 국민이 농락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혈세로 생색내기에 재미 들인 정치인들의 비용 개념을 무시한 포퓰리즘 발상이다. ADPi의 결론을 검증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태도 사회적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지금도 고추 말리는 데나 쓰는 지방 공항이 많은 현실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진작 받아들였더라면 7년간의 국력 낭비와 갈등 비용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신기루 같은 신공항 공약으로 날을 지새우지 않으려면 대통령부터 정치권, 단체장들까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부도가 뻔한 공약의 남발을 방지하고 국책사업의 표류도 막을 수 있다.

7. 기재부가 세금감면 실태 밝힌 뒤 법인세 개편 논의하라

정부가 외국인투자기업에 폭넓은 세금감면 혜택을 줬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적고 국내기업이 받는 역(逆)차별이 컸다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어제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출연할 때 법인세를 깎아주는 제도는 조세 회피나 변칙적 부(富)의 세습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세법 공청회는 기획재정부가 세법 개정안에 담을 주요 내용을 미리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올해는 외투기업과 공익법인에 대한 법인세 감면을 손질하는 세법 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하지만 법인세 개편작업이 부분적인 땜질에만 그친다면 연간 세수 40조 원이 넘는 법인세의 근간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은 과세표준(세금부과 기준금액) 500억 원 초과인 대기업에 대해 현행 22%의 법인세율을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어제 국회 연설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조세부담 조정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세재정연구원은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최대 1.13%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경기 회복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자는 모순”이라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표가 필요할 때마다 선심성 감면제도를 도입하는 바람에 혜택이 어디에 얼마나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받는 세금지원 효과를 분석해야 하지만 현실은 ‘깜깜이’다. 2014년 기준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만 해도 기재부(17.2%), 국회예산정책처(14.2%), 안 대표(순이익 5000억 원 이상 16%, 5000억 원 이하 18%)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촉진, 고용 창출, 기부 유도정책 등 몇몇 감면 항목만 고친다면 자칫 중소기업 R&D가 타격받거나 대기업 고용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모든 정보를 틀어쥔 기재부에서 230개에 이르는 비과세·감면 항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제 세 부담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분석해 공개해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공정하면서도 경쟁력도 살리는 세제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일보]

8. ‘양극화 해소’ 입 모은 여야, 실천으로 보여라

어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연설을 마지막으로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마무리됐다. 여야 주요 3당 대표 모두 양극화를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대표는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며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공공은 민간에 대한, 재벌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대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 대한 기득권을 각각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더 가진 기업과 근로자가 양보하는 중향(中向) 평준화를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상위 1%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과 재벌들의 불법·편법적인 행위를 규제해 분배의 형평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등)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극화 해결책으로 보수가 분배를, 진보가 성장을 거론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좀먹는 중병이 된 지 오래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세 비정규직 김모군이 열차에 치어 숨졌다.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와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 원청과 하청 간의 양극화가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추세도 뚜렷하다. 헬조선과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국민의 90%가 노력해도 잘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 상징하는 극단주의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보여주는 고립주의가 대한민국에서도 발호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양극화를 국가가 아닌 정파의 시각에서 바라봐 왔다. 새누리당은 귀족 노조를 공격하며 대기업을 감쌌고, 야당은 재벌 비판으로 반사이익을 노렸다. 보수와 진보가 각각 성장과 분배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극화 현상의 단면만을 골라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형성하려 했을 뿐이다. 진영논리의 포로가 된 것이다.


3당 대표의 연설은 이런 정치권이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도 성향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국가적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입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기업을, 야당이 노조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각 정당이 이런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내년 대선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9. 미세먼지 공포 WHO 탓하는 윤성규 장관 사퇴하라

국민은 올 상반기 내내 생활환경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 공포에 시달렸고, 정부가 ‘클린 차’라고 한 경유차는 폴크스바겐 등의 사기극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받았다. 10여 년 만에 실상이 드러난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민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모두 엉성한 정책이 화근이었다.


3대 이슈의 책임자는 환경부 윤성규 장관이다. 그런데 윤 장관은 국민 정서와는 거꾸로 “법령이 미비했다” “기업의 문제다”는 식으로 에두르면서 사과도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다. 엊그제 그의 출입기자 간담회 발언은 “과연 장관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다. 윤 장관은 “유례없는 삼각파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마치 버뮤다 해협인가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정부 최장수(40개월) 장관인 그에게 일련의 현안이 큰 파고였다는 뜻일 것이다.


고충은 이해하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그의 인식엔 아연할 따름이다. 기자들이 “대책에 국민 공감대가 떨어진다”고 묻자 “일부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WHO가 발암물질이라고 너무 주장해서 심각성이 커졌다”며 WHO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러곤 “(미세먼지 증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어쨌든’ 줄여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윤 장관의 발언은 극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 WHO가 2012년과 2014년 디젤차 매연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은 담배 연기나 석면처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물질이라고 판단해서다. 그 후 각국이 미세먼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인데 윤 장관이 엉뚱하게 WHO 탓을 한 셈이다. ‘어쨌든’ ‘일시적’이란 말도 부적절하다. 올 1~5월 서울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당 57㎍으로 환경부 연평균 기준치(50㎍)를 넘어섰다. 일시적이지도, 어물쩍 대처할 일도 아닌 심각한 사태 아닌가. 능력도,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하는 윤 장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경질하든 스스로 물러나든 결단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10. 최운열 의원의 `리디노미네이션` 주장 적극 검토해야

화폐 액면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이 야당에서 제기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 팀장은 21일 디플레이션 걱정이 없는 지금이 적기라며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장하고 나섰다. 예를 들면 1만원을 100원 또는 10원으로 화폐단위를 변경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1962년 화폐개혁 이후 54년째 화폐단위가 고정돼 있다. 그사이 국민총소득(GNI)은 4000배 이상 불어났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00배 이상 증가하다보니 여러 가지 부조화가 생겼다. 이제 1달러당 환율이 1000 이상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뿐이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조(兆)를 넘어서 경(京)이라는 숫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국내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이미 2002년 1경원을 넘어섰고 총금융자산, 국민순자산도 1경원을 웃돈다. 화폐단위가 불편해지다 보니 커피점에서 4500원짜리 메뉴를 4.5로 표시하는 자구책이 등장했을 정도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재무·회계·금융업무가 효율화되는 반면 화폐를 재발행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또 1만원권을 10원으로 변경하면 상품가격이 싸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 때문에 물가상승 우려도 있다. 2003년 한국은행이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까닭도 그 당시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상승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로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밑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걸림돌이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리디노미네이션으로 기존 화폐를 새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아직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은 최운열 의원의 개인적 소신일 뿐 더민주가 당론으로 채택한 건 아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중앙은행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고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규모 확대나 물가 안정 등 여건을 감안할 때 이제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무작정 미뤄선 안 된다.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경제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여야와 한은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문화마당] 어른이 되어야 할 시간/최진영 소설가

어린 시절에는 스무 살만 넘으면 어른인 줄 알았다. 스무 살이 지난 후 ‘어른은 스스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다시 정의 내렸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스스로 벌어먹게 된 다음에도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았다. 생년월일로 따지면 분명 성인이지만 성인과 어른은 다른 말 같았고 스스로 어른이라 자부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신부님이나 수녀님, 스님들은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단 말이에요?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청소년처럼 살고 싶었다. 주위 어른들의 엇비슷한 신념은 고루해 보였고 돈과 성공을 강조하는 판에 박힌 조언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직업이나 월급을 잣대로 나의 쓸모를 판단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고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품는 여러 의문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던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과 무책임, 물신주의와 성공지상주의에 매몰된 어른을 부정하고 싶었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선 안 되었다. ‘그런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어야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어른들의 속물적인 가치관을 불평하면서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꿈이라도 가져야 했다.


세월호에는 많은 어른이 있었다. 어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배에 머물렀다. 어떤 어른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어떤 어른은 300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지는 것보다 자신의 밥줄과 지위가 사라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어떤 어른에게 생명은 숫자이고 권력은 자신만의 것.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지겨워하고 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죄책감에 빠졌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생업을 포기하고 수색 작업에 자원해 차가운 바닷속에서 25구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어째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나는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내 직업이, 내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 애국자나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하던 그를 죽음이란 절망에 빠트린 것은 이 사회의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이다. 세월호 탑승객 304명을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그 어른들.


어른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역할과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걱정하고 보호해야 하며 타인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는 것이다. 점점 나빠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좋은 어른이 돼야 한다.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꼴찌에게 희망을

엊그제 시골에 사는 쌍둥이 엄마가 하소연을 해왔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쌍둥이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둘의 평균점수를 합쳐도 60점이 안 된다면서 ‘꼴찌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덧붙인 말은, 원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앉아서 보지 말고 누워서 봐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느슨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중학교의 성적표를 받아 보면 놀라 뒤로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날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나는 즉시 답을 보냈다. ‘○○ 선생님 알지요? 어제 그분 만났는데 중학생 손자가 이번에 꼴찌를 했대요. 그분이 어렸을 때는 꼴찌 하는 친구들의 엄마 아버지는 무슨 낙으로 살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막상 손자가 꼴찌를 하니 어라, 그냥 귀엽기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금세 답이 왔다. ‘맞아요, 귀엽긴 해요. 그런데 제가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죄인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 손자도 꼴찌라니 완전 반전이에요. 크하하하.’


이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는 유쾌하게 끝을 맺었다. 공부는 못해도 꿈은 야무져서 쌍둥이 중 큰애는 프로게이머, 작은애는 KTX 기관사라고 한다기에 “공부 못해도 인성은 좋으니 기다려 봐요”라고 말했다. ○○ 선생도 손자에게 “야 인마, 너 공부는 꼴찌여도 친구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는 있어야지. 운동을 잘하든 악기를 잘하든 노래를 잘하든, 알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자가 꼴찌를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한 것은 대책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에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공부 잘하던 극소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정해지는 자리에 가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예측 불허다. 오히려 공부에 주눅 들었지만 저마다의 숨은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성공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친구가 한둘이 아님을 보게 된다.


최근 더욱 다양해진 직업군 중에서 성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더구나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희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꼴찌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을 테니 말이다.

3.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21세기의 소작농들

‘보증금 3억 원, 월세 3000만 원.’


회사 근처 빈 점포의 외벽에 이런 문구가 나붙었다. 커피집이 있던 자리였다. 단순 계산해 커피 한 잔에 5000원으로 치면 하루 200잔을 팔아야 임대료가 빠진다. 인건비 등을 건지고 이윤까지 남기려면 대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하는 걸까. 임대료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곱셈과 덧셈을 하자니 머릿속이 새삼 아득해졌다.


대도시의 웬만한 지역에선 ‘임대료 리스크’가 일상화됐다. 저금리 시대에 믿을 만한 건 역시 임대료인 걸까. 한 지인은 맥줏집을 하면서 월 170만 원을 내던 임차료를 월 25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달 기준금리 인하로 건물주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는데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이런 흐름과 거꾸로 간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세입자인 자영업자가 다시 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 생활용품 판매업자인 A 씨는 서울 강북에서 월 500만 원의 임차료를 낸다. 그는 이 돈을 바로 옆 옷 가게 주인에게 준다. 옷가게 주인이 불황으로 장사가 안 되자 자신의 가게를 쪼개 A 씨를 세입자로 받아들였다. 목돈이 부족한 A 씨는 보증금을 내지 않는 대신 월세를 시가의 2배가량 낸다. 임대료를 깔고 들어온다 해서 ‘깔세’로 불리는 전대차(轉貸借) 계약이다. 그는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다”며 “목청 터져라 물건 팔아 남는 돈의 대부분을 임차료로 바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영업자는 지주에게 땅을 빌려 사용료를 내는 소작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대(地代·rent)는 공급 제한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과점적 이익이다. 땅과 건물이 한정되어 있으니 지주는 노동이나 자본을 추가 투입하지 않아도 비교적 쉽게 이윤을 얻는다. 돈이 넉넉하다면 힘들게 일하기보단 건물주가 되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월급쟁이 상당수가 ‘잠재적인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점, 그래서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과도한 임대료와 갑작스러운 임대료 인상 리스크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강남에서 우동집을 운영하는 신상목 씨는 “근로 계약에서 낮은 임금을 막기 위한 최저임금제가 필요한 것처럼 임대차 계약에서 지나친 소득 이전을 막기 위한 규범이 필요하다”며 “임차인이 영업의 지속을 보장받기 위해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영업 대책에 대한 논의는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그간 동네 사장님들의 사정이 딱히 나아졌다는 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 노후 보장이 미비한 사회안전망 탓일까. 좋은 일자리를 못 낳는 불임(不姙)형 산업구조 탓일까. 생산성이 낮은 데다 판박이형 창업을 되풀이하는 문화 탓일까. 어디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다만 자영업에서 임대료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빈곤한 사장님’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어느새 회사 인근 점포에 또 다른 커피점이 들어섰다.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가게에서, 달뜬 표정의 새 사장님이 월 3000만 원의 임차료를 감당하려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할까. 다시 셈해본다.

4. [중앙일보][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브렉시트 여부 결정 결혼처럼 타협 필요

영국 국민은 오늘 국민투표장에서 유럽연합(EU) 잔류냐, 탈퇴냐를 결정한다. 국경을 넘어 글로벌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결정이다. 이번 투표는 EU가 그간 사회·경제 통합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번영과 행복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최종 평가 성격이다. 탈퇴를 결정하면 EU의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영국은 정말 탈퇴할까.


EU는 마치 혼인 관계와도 같다. 제 운명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꿈과 이상을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지지해줌으로써 얻는 보상이 막대하다. 수입 증가와 경제적 안정, 신변 안전, 구매력 증가, 업무 분담, 재난 상황에서 서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많은 이점이 생긴다. 서로 다른 문화·종족·생각들이 한데 섞이면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고 창의력이 샘솟는다. 결혼도 부부가 조화를 이루면 각자에게 사랑과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EU 탄생 때 꿈꾸던 이상향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결혼이든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혼이든 EU든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노력과 타협이 있어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머릿속 상상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관계가 늘 공평하지도 않다. 한쪽이 병을 앓아 회복 시간이 필요하거나 투자나 후원이 더 필요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만큼 헌신하고 서로 지지하겠다는 서약 아래 모두를 위해 나은 미래를 조금씩 일궈가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한쪽이 이기적으로 굴며 힘을 남용하고 조종하며 비협조적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EU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통합 방향이나 정책·규정·재정 등에 대한 회원국 간 의견 충돌 정도야 전 세계 모든 결혼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필요한 것은 타협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지 이혼 요구가 아니다.


오늘 영국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영국은 물론 EU의 미래가 이 ‘결혼 생활’이 구원될지에 달렸다. 화살 하나를 부러뜨리기는 쉽지만 여러 개는 한번에 꺾을 수 없다. 연합의 힘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나는 EU 안에서 계속 지지고 볶는 데 한 표를 던진다.

5. [중앙일보][분수대] 해우소와 화장실

며칠 전 집에 있는 변기가 막혔다. 아내가 계란 껍데기를 잘못 넣은 탓이다. 퇴근 직후 아파트 관리실에 달려가 ‘뚫어뻥’을 구해 문제를 해결했다. 속이 시원해졌다. 무엇이든 인간은 막히면 곤란하다. 몸이 아프고 심할 경우 병이 난다. 배설의 문제는 특히 그렇다. 자연스러운 순환이 핵심이다. 어디 신체뿐이랴.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소통, 소통”을 외치는 이유다.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근심을 푸는 곳, 절간의 화장실을 가리킨다. 지금이야 여느 사찰을 가도 쉽게 만나는, 마치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단어 같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한국 불교의 고승이었던 경봉(1892~1982) 스님이 6·25전쟁 직후 만든 말로 전해진다. 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의 소변 보는 곳에 휴급소(休急所), 큰일 보는 데에 해우소라는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지금 돌아봐도 빼어난 언어감각이다.


그 해우소가 요즘 ‘적우소(績憂所)’가 된 모양새다. 한류스타 박유천의 잇따른 성폭행 논란 때문이다. 사건이 모두 화장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박씨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맞고소를 하고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릴 만큼 파문이 커졌다. 스타라는 이름값과 화장실이라는 묘한 공간이 겹치며 온갖 억측과 루머가 쏟아졌다.


사실 화장실도 20세기 후반의 산물이다. 뒷간·측간·잿간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변소를 거쳐 1970~80년대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정착된 말이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에는 으리으리한 욕조, 번쩍이는 변기 등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격상되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달 초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중화장실에 황금변기 ‘아메리카’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남과 다른 나를 보여주려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에 대한 일침이었다.


‘박유천 사태’도 그런 휘청거리는 시대의 한 단면이다. 돈과 폭력, 성과 뒷거래의 연결고리가 볼썽사납다. 거기에 춤을 추는 대중의 선망과 질시도 구린내 난다. 해우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보태는 수좌·신도들에게 경봉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 다급한 마음 쉬어 가고, 근심 걱정 버리라고 한 말이야. 그게 자신을 찾고 도를 닦는 거야.” 우리들 중생이야 도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더는 출렁대지 않았으면 한다. 수사 결과를 차분히 기다려보자. 그게 우리의 속을 뚫어주는 화장실의 진면목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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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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