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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선심성 정책에 늘어나는 국가 부채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정부 보증으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특수채 발행 잔액이 95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이들 채권의 발행 잔액은 958조 7067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빚을 진 것으로, 앞으로 갚아 나가야 하는 돈이다. 부담을 지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는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꼴이다.
정부가 곳간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 사업을 벌이려면 세금을 늘리거나 빚을 내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는 조세저항이 우려되는 증세보다 국채 발행 등의 손쉬운 방법을 택하곤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2006년 말 366조원이던 이들 채권의 발행 잔액은 두 정부를 거치면서 10년 사이 2.5배로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비 등을 주로 특수채로 마련했다. 임기 5년 동안 국채 발행 잔액이 50.7% 늘어나는 동안 특수채 발행 잔액은 162.8%나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며 추경 등을 통해 국채 발행으로 복지를 확대했다. 탄핵으로 물러나기까지 재임 4년여간 특수채 발행잔액은 5.8%, 국채 발행 잔액은 40.6% 증가했다.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빚만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에 사회안전망 확대, 일자리 창출 등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나랏빚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일자리 추경도 그렇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는 추경’이라고 하지만 세수가 늘어난 덕분에 올해는 특별한 경우다. 내년에도 빚을 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17만 4000명의 공무원 증원 등으로 재정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나랏빚도 덩달아 불어날 것이다. 빚내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업은 어림셈으로도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세금을 더 거두거나 빚을 내지 않고서는 이런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선 공약을 실천 가능한 구조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증세를 말하는 게 옳다.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하면서 뒤로는 빚을 내 국민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은 없어야 한다.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죄악이다.
〔서울신문〕
2. 北 ‘레드라인’ 못 넘게 국제 공조 강화해 中 압박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어제 북 지휘부 타격을 목표로 한 탄도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한 데 이어 조만간 한·미 연합대테러훈련에 나서기로 한 것만 해도 이번 북 미사일 발사 시험이 지닌 파괴력의 일단을 말해 준다 할 것이다.
그제 자행된 북한의 ‘화성14’ 미사일 발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군사적으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능력을 지니게 됐으며,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조만간 그들이 목표로 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시점이 임박했음을 뜻한다. 미국 동부 지역까지 타격할 능력을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런 상황 판단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외교적 측면에선 북한이 스스로 밝혔듯 현시점에서 그 어떤 대화 의지도 지니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한·미 양국 정상 중 누가 대북 협상의 운전대를 잡든 외교적 해결에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임을 거듭 확인케 해줬다는 점이다. 미국에 대한 핵 공격력을 온전하게 구축할 때까지, 즉 판을 통째로 바꾸는 ‘게임 체인지’를 달성할 때까지는 그 어떤 ‘당근’도 마다할 것임을 북한이 재삼 분명히 한 셈이다.
당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상황이다. 북한에게 미사일과 핵은 곧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 볼 때 핵탄두 소형화 달성을 위한 6차 핵실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농후하다. 이는 곧 북한이 한·미 양국이 경고해 온 ‘레드라인’을 넘어선다는 의미이자 우리 정부로서도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카드를 더는 고수할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전인 지난 4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다음 정부(현 정부)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당장 북핵으로 인한 안보 파국을 막을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폭주 기관차와 다름없는 북의 핵 개발을 저지할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의 제1조건이 핵 개발 동결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위한 초강도의 제재와 긴밀한 국제 공조에 나서야 한다. 북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하는 방안까지도 이끌어 내야 하며, 이를 위해 유엔 차원의 다자 협력으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될 G20 정상회의가 출발점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까지 포함한 능동적인 대북 압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바란다. 동북아의 안보위협은 주한 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아니라 북의 핵 개발 야욕임을 분명히 밝히고 중국의 미온적 태도가 북핵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인식토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3. "우리도 성과급 폐지해달라"고 나온 공무원 노조
국내 최대 공무원 노조인 공노총(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5급 이상 공무원이 적용받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해달라는 의견서를 인사혁신처에 제출했다. 공노총은 "팀워크가 붕괴되고 행정서비스 질(質)이 저하된다"며 성과급제 폐지를 국정 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업무 성과에 따른 차등을 두지 말고 연공서열(年功序列)에 따라 똑같이 월급 받는 호봉제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무원의 성과를 계량화하고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무원 성과급제가 도입 18년이 지났는데도 겉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철밥통 공무원 조직에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안 그래도 공직 사회가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제 될 결정은 미루고 책임질 일은 기피하는 풍조가 팽배해 영혼이 없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그런데 성과급마저 없애면 일하지 말고 연차(年次)만 채우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는 성과급제 폐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통령 철학을 고려해 다른 평가방식으로 대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등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공기업·공공기관에 대해선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지키로 했다. '경쟁 원리'에 소극적인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공무원 분야로도 이어진다면 공직 사회의 비효율과 무기력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공무원 성과급제를 더욱 강화하고 대상도 6급 아래로 더 확대해야 할 판에 폐지를 요구하다니 시대 역행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아일보〕
4. 가맹점 두 번 울리는 프랜차이즈 갑질 근절하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에게 ‘갑질’을 한 미스터피자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전 회장은 탈퇴한 가맹점 옆에 직영점을 차려 ‘보복 영업’을 하고,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할 때 동생 회사를 중간업체로 넣어 ‘통행세’를 챙기는 등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다. 올 3월 미스터피자 가맹점을 탈퇴한 점주 이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탈퇴 점주들이 항의하면서 검찰이 뒤늦게 프랜차이즈 본사의 보복 영업 수사에 나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직접 방문해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의 법 위반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는 점주들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거나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 장사 경험이 없는 만큼 본사로부터 매장 인테리어, 홍보 등을 지원받아 안정적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갑을관계로 들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사가 가맹점 매출액의 3∼4%를 세금 떼듯 광고비 명목으로 가져가고, 리모델링을 할 때 드는 감리비까지 가맹점 몫으로 떠넘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 우는 가맹점주들은 그 갑질이 알려지면 매출이 급감하는 2차 피해를 입어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미스터피자의 정 전 회장은 지난해 경비원 폭행 사건을 일으켜 매출 급감으로 점포 60여 곳이 문을 닫게 만들었다. 최근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혐의가 드러난 뒤 불매운동의 여파로 가맹점은 매출이 20∼40% 급감하는 피해를 입었다.
갑질을 예방하는 가맹사업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고질적 병폐가 여전한 것은 법이 유명무실했다는 얘기다. 국회에 발의된 프랜차이즈 불공정행위 규제 관련 법안만 20건이 넘는다. 국회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정부는 기존 법만이라도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
〔중앙일보〕
5. 최후의 결정적인 대북 압박만이 유일한 해법
북한이 지난 4일 기습적으로 쏜 화성-14형이 미국 정부에 의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식 인정됐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비난한다”며 “이는 미국과 동맹국 등 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규탄했다. 사실상 문제의 미사일이 ICBM임을 시인한 것이다. 우리 당국은 “재진입 기술 완성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아 ICBM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시각으론 오래전부터 그어 놨던 ‘레드라인(한계선)’을 북한이 넘어선 셈이다.
종전의 도발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ICBM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북한이 ICBM을 갖게 되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미사일이 ICBM이든 아니든, 분명한 건 지금의 개발 속도라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미사일 제작도 연내에 가능할 거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핵탄두 소형화까지 성공할 경우 한·미가 그토록 우려해 온 핵무기 장착 ICBM을 북한이 보유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우려되는 대목은 북한이 서울을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이 보복에 나서 줄지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뉴욕·LA가 피폭당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북한을 응징하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의 핵 장착 ICBM 보유가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거라고 보는 배경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기 전에 악몽의 시나리오를 막아야 한다. 남아 있는 유일한 해법은 미국 주도하에 전 세계가 나서 북한이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압박 수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대외 거래 차단을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하거나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시험발사하는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것 역시 미국으로서는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우리 정부로서도 지금은 대화와 압박 중 후자에 방점을 찍어야 할 시점임을 명심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움직임에 힘을 실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이야기하던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훈련을 지시하는 등 강경 모드로 전환했다.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누란의 위기여서 발걸음이 무겁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바른 현실 인식이다.
한반도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은 G20 회의를 대북 압박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6일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압박에 나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 때에도 효과적인 국제 공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이제 국제사회가 손잡고 최후의, 그리고 유례없이 강도 높은 대북 압박을 하는 것만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계일보〕
6. 김상곤표 교육개혁, 무모한 실험 돼선 안 된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어제 취임했다. 논문표절 등 각종 자격 시비 속에 임명된 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교육적폐 청산과 ‘교육사다리’ 복원을 강조했다. “개혁의 핵심은 불평등하고 경쟁만능으로 서열화돼 있는 불행한 교육체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곤표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김 부총리가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부모 경제력에 따라 교육 기회가 달라져 계층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계층이동의 기회를 제공할 교육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방법과 속도다. 균등한 기회를 내세워 하향 평준화를 지향한다면 교육의 질만 나빠질 뿐이다. 1 ·2기 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처럼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곤란하다.
과거 정권마다 밀어붙인 교육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 걸 경험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학력 저하 현상을 초래했고, 노무현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학생들을 내신에 수능, 논술까지 준비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내몰았다.
김 부총리가 인사청문회 등에서 밝힌 교육정책 구상은 하나같이 교육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것들이다. 중학교 3학년생과 학부모들은 벌써 동요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현행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수능 변별력이 거의 사라진다. 최근 3년간 수능 결과에 절대평가를 적용해 봤더니 수험생 5명 중 1명이 수학 1등급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생생활기록부 전형을 강화한다지만 교육현장은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도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학생의 장래는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교육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김 부총리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의견수렴’, ‘공감’ 등을 강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건 다행스런 일이다. 성급한 교육개혁은 자칫 ‘제2의 이해찬 세대’를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매일신문〕
7. 대구에서 자전거 타려면 목숨 걸어야 하나
대구의 자전거 도로는 보여주기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설치돼 있음에도, 제 기능을 못해 무용지물이 돼 있거나, 중간에 뚝뚝 끊기고 통행이 불편한 곳이 너무나 많다. 허술한 도로 환경으로 인한 자전거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인명 손실도 엄청나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도, 자전거 도로로서의 기능은 미미한 상황이다 보니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대구의 자전거 도로 길이는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긴 885㎞다. 그 가운데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764.47㎞이고, 나머지는 자전거 전용도로 110㎞, 자전거전용차로 10㎞다. 무늬만 ‘전국 최장’의 자전거 도로일 뿐, 자전거를 맘놓고 탈 수 있는 도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자전거용 도로와 보행로에 뚜렷한 구분을 해놓지 않아 접촉사고 위험이 아주 높다. 자전거 전용도로`전용차로는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곡예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부산, 창원 등 다른 도시에서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진입을 막기 위해 어른 허리 높이의 안전봉을 설치해 놓았지만, 대구에는 그것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 교통사고가 대구에서만 해마다 1천 건 이상씩 발생한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5천207건의 자전거 교통사고가 일어나 68명이 죽고 5천322명이 다쳤다고 한다. 사고 발생 건수로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대구시는 일부 교통사고 다발 구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했지만, 부분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도로는 너무 위험하기에 인도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용자들은 인도 통행은 불법이지만, 열악한 자전거 도로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한다. 대구시는 자전거 도로를 땜질식으로 정비`운용하기보다는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자전거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간선도로인 대동`대서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대구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자전거 타는 환경을 확 바꿔야 한다. 자동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전거 이용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매일경제〕
8. 학력·외모 안 본다는 블라인드 채용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공공기관에서는 7월부터, 지방공기업에서는 8월부터 신규 직원을 뽑을 때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전면 도입하게 된다. 고용노동부 등 4개 부처가 5일 이런 방침을 합동으로 발표했는데 공정한 기회 부여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방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응시자들은 앞으로 입사지원서에 학력, 용모·키·체중 등 신체조건, 출신지역, 가족관계를 기재할 수 없게 된다.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경비직이나 연구직처럼 그 업무에 꼭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만 예외적으로 신체조건이나 학위·논문을 기재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서류전형뿐 아니라 면접에서도 이런 원칙이 그대로 적용돼 면접위원은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물어볼 수 없다.
그 대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필기시험·심층면접 등을 활용해 인재를 선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채용 방식은 그동안 권고사항이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올해 하반기 1만여 명에 이르는 공공기관 채용에서부터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나아가 정부는 이런 채용 방식을 민간 부문에도 확산시키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 확산 추진단'을 운영하고 가이드북 배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민간기업 입사지원서에 출신지, 가족관계 등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학벌주의를 극복하고 편견 없이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출신학교나 학점은 그 사람이 학창시절 얼마나 성실하게 공부했는지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 자료를 모조리 가린다면 성장과정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너무 단편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뽑게 될 수도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이 최근 400여 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현재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인 기업은 6.1%에 불과했고 앞으로 도입 의사가 있는 기업도 48%에 그쳤다. 응시자에 관한 정보가 줄어들다 보니 직무능력 평가나 심층면접 방식을 보완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복권 추첨하듯 신규 직원을 뽑아야 하는 탓이다. 보다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이런 혼란과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9. 북 ICBM, 강하게 대응하되 ‘주도권’ 잃지 말아야
미국은 4일(현지시각)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식 평가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미국과 동맹국 및 협력국,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말해,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으로 규정했다. 전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평가했던 미국이 하루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북 핵·미사일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우리 군은 ‘아이시비엠급 신형미사일’로 평가해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화성-14형의 사거리는 8천㎞ 이상으로, 미국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긴장감이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핵개발을 해온 북한이 이를 실어 보낼 ‘운반수단’인 아이시비엠 시험발사까지 성공한 것은 동북아 전략균형을 밑둥치부터 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를 군사적 응징까지 내포하는 ‘레드 라인’으로 공식 설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아이시비엠 발사 저지를 일종의 정책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대북 원유 수출 제한을 포함한 중국의 대북 제재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틸러슨 국무장관이 “미국은 평화적 방식만으로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대한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행동 가능성은 제외시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인도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흩뜨리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여지가 다분하다. 문 대통령이 5일 한미연합사 최초로 탄도미사일 사격 등 무력시위를 먼저 제안해 실시한 것도 대북한 경고뿐 아니라, 이런 분위기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에서 대화 복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려던 문 대통령 구상도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유화적 메시지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높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대화 국면으로 끌고 나오려는 힘든 여정을 포기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 대화의 문을 열기 힘들다 하더라도, 눈은 멀리 ’대화 국면’을 향해야 한다. 다만, ‘대화 국면’을 목표로 두되, 그 과정에서 ‘대화를 위한 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주요20개국 회의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도 더욱 분명한 메시지와 방침을 전해야 한다. 우리 외교안보팀이 어느 때보다 치밀한 전략을 세워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한국일보〕
10. G20 정상회의, 문재인 정부의 북핵ㆍ미사일 대응 시험대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로 출국했다. 의장국 독일이 제시한 회담 의제는 건전한 글로벌 경제질서 구축을 위한 ‘활력 구축’,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등을 포함한 ‘지속가능성 향상’, 저개발국을 향한 주요국의 지원을 약속하자는 ‘책임 부담’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후 처음 열리는 주요국 회담이어서 이를 비중 있게 다룰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으로서는 새 정부 출범 후 첫 다자 정상외교 무대이고, 북핵ㆍ미사일 해결을 주도하겠다고 표방한 문 대통령이 얼마나 외교력을 발휘할지 세계가 주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상대로 미국 정부가 공식 확인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로 북핵ㆍ미사일 문제는 더 이상 동북아가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 현안이 됐다. 향후 ICBM에 창착할 핵탄두 소형화까지 성공하면 위협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주요국의 북핵ㆍ미사일 개발 대응은 일사불란하지 않다. 한미일이 제재 위주의 압박을 우선하는 데 비해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와 협상에 비중을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에 앞서 6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사드 문제를 중국에 이해시키는 것도 관건이지만, 북한의 계속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 초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고 기다렸던 트럼프 미 정부가 최근 중국에 대한 인내가 소진된 듯한 인상을 주는 마당이어서 이런 외교 노력이 더욱 긴요하다.
문 대통령은 출국 직전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며 북한의 ICBM 실험에 맞서 한미 연합 미사일 무력 시위를 지시했다. 한국군의 현무-Ⅱ와 미8군ATACMS 지대지미사일이 목표물을 초탄 명중시켜 적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힘 없는 평화란 공허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추가 핵ㆍ미사일 도발중단’을 전제로 한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곧바로 내침으로써 핵ㆍ미사일 고도화가 한미동맹의 균열과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차단을 겨냥한 것임이 상당 부분 드러난 마당이다. 어떤 군사위협에도 틈새 없는 동맹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그만큼 중요하다.
다만 한반도에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부를 군사충돌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그동안의 대북 압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대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다.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북의 핵ㆍ미사일 고도화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당국자 간의 대화는 절실하다.
G20 회의를 통해 문 대통령이 북의 핵ㆍ미사일 도발을 견제할 구체적 대응책과 함께 북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어떤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한국일보〕
1.위르겐 힌츠페터
1980년 광주항쟁을 기록한 시민들의 역사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항쟁을 구성한 세 주체로 광주 시민과 계엄군, 그리고 외신을 꼽았다. 왕래는 물론이고 언로마저 차단된 격절의 섬 광주 시민들에게, 곁에서 지켜보고 본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언론, 외신의 존재가 그렇게 컸다. 물론 그 시기 그 일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 독일(당시 서독) 제1공영방송 ARD 동아시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1937~2016)가 있었다.
그는 녹음을 담당하는 동료기자와 함께 공수부대가 투입된 다음날인 19일 서울을 거쳐 계엄령 하의 광주에 잠입했다. 외국회사 주재원이라며 신분을 속이고 군 검문을 통과한 그는 계엄군의 곤봉과 대검 학살, 21일 전남도청과 전남대 발포 현장을 취재한 뒤 필름을 허리띠에 감춘 채 광주를 빠져 나와 그 필름을 도쿄를 거쳐 독일 방송국 본사로 전송했다. 광주항쟁의 현장 영상이 세계 최초로 22일 저녁 서독 전역에 방영됐다.
힌츠페터는 23일 다시 광주로 잠입, 코뮨을 방불케 한 시민 자치 하의 광주의 이야기를 사실상 유일하게 영상에 담았고, 그 영상이 9일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ㆍ방영됐다. 다큐멘터리는 유학생 등을 통해 은밀히 국내에 반입돼 80년대 초 대학가와 재야 진영에서 역시 은밀히 상영됐다. ‘시대를 넘어…’는 그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광주 시민의 억울한 희생과 장렬한 투쟁은 ‘존재하지조차 않은 사건’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당시 국내 언론은 신문ㆍ방송 할 것 없이 “용공분자들의 무장 폭동”으로 80년 광주 소식을 전했다.
63년 방송사에 입사해 67~89년의 17년 간 동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한 그는 베트남전쟁을 포함, 냉전기 주요 대치지역 중 한 곳인 동아시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취재했고, 광주항쟁 취재를 생애 최악(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86년 11월 광화문 시위 취재 도중 사복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목과 척추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95년 은퇴했다.그는 1937년 7월 6일 태어나 2016년 1월 25일 별세했다. 그의 모발과 손톱, 유품 일부는 그 해 5ㆍ18 기념식에 망월동 구묘역(옛 5ㆍ18묘지)에 묻혔다.
〔머니투데이〕
2. 생활을 바꾸는 생활정치의 힘
작지만 지속 되는 소소한 변화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서울의 생활 정책과 생활 정치가 가져온 변화다. “이건 많이 불편한데…”라고 무심코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조치 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최근 발생한 소소한 변화는 ‘다람쥐 버스’다. 오전 7~9시 출근시간대에 서울의 가장 혼잡한 버스 구간만 오가는 버스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가장 혼잡한 일정 구간을 반복해서 오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에 올라타 출근길부터 파김치가 됐던 시민들에겐 고단함을 덜어주는 단비 같은 존재다.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은 시간대(오후 11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3시 30분까지)에 운행하는 ‘올빼미 버스’도 서울에 사는 서민들의 고단함을 덜어준 작품이란 평가다. 올빼미 버스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매일 일하면서도 택시를 탈 형편이 못 되는 서민들의 발이 돼 주면서 가장 우수한 교통 복지란 찬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키에프시 등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이 올빼미 버스를 도입하기 위한 벤치마킹에 나섰을 정도다.
또 예전엔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 버스가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면 요즘은 정류장 마다 설치된 단말기가 차량 번호별로 대기 시간을 알려준다. 도착할 버스가 승객들로 가득 들어차 혼잡한지 아니면 여유가 있는지 귀띔해주는 것은 덤이다.뿐만 아니다. 길을 걷다 어두침침하고 음침해 불편하게 느껴졌던 공터나 공지에 어느새 나무가 심어진 예쁜 정원이 조성되고 있다. 길을 걸으면서 “이 정도면 횡단 보도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던 도로엔 어김없이 새로운 횡단 보도가 들어선다.
어르신들을 괴롭히던 육교나 지하도가 있던 자리에 깔린 횡단 보도를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까지 하다. 또 곳곳에서 차선이 줄어들고 보도가 넓어지는 도로 다이어트가 이뤄지면서 차량에 점령당했던 보행 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서울로7017’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요즘 서울시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생활 속 불편을 해소하는, 그야말로 작고 소소한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알고 나면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 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소소한 변화가 수년간 쌓이고 쌓여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있다.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바가 바로 이런 것이라 느낀다.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하면서도 생활 속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가져올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생활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서울신문〕
3.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우정은 사랑보다 어렵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20세기 예술사를 바꾼 두 천재가 만나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은행가의 아들로 화가를 꿈꾸는 폴 세잔(1839~1906)과 가난한 토목기사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에밀 졸라(1840~1902). 어린 시절부터 꿈과 사랑, 좌절까지 모든 것을 함께한 두 사람은 친구지만 예술에서는 둘도 없는 경쟁자였다. 둘은 서로를 동경하고 아끼는 친구이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평가를 서슴지 않는 비판적 동지이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은 파리로 올라와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가와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20세기 예술계를 풍미한 두 사람의 애증을 그리고 있다.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던 에밀(기욤 카네 분)과 부유한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던 세잔(기욤 갈리엔 분)은 완연히 다른 처지만큼 꿈도 달랐다. 세잔은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화가로 자리잡는 것이 꿈이고 에밀은 궁핍한 파리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밀은 파리에서 소설가로 성공한 반면 세잔은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늘 변방을 떠돌았다.
영화는 화가, 소설가로서 창작의 고통보다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세잔은 과거 에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명 화가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친구의 성공을 마냥 축하할 수 없었다.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파리로 전학 온 에밀은 세잔의 도움과 보호가 없었다면 ‘왕따’가 되고도 남았다. 물론 세잔이 화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것은 에밀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다. 엇갈린 운명은 둘 사이를 갈라 놓는다.
세상이 몰라 주는 화가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물감을 대 주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탕기(1825∼1894) 영감이 세잔의 그림 중 사과가 있는 부분만 잘라 팔았다면서 동전 몇 닢을 건네주는 장면은 당시 세잔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혁명론자를 자처했지만 그림을 통해 상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세잔은 살롱전에 번번이 낙선하고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도 배척당한다.
그를 알아본 또 다른 인물이 ‘인상파의 장로’라고 불리는 피사로(1830~1903)였다. 그는 세잔에게 그림의 본질은 물론 인상파의 원리와 기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세잔은 어렵게 생활했지만 그의 자화상에서 드러나듯 자기 확신을 가지고 플랑드르화풍에 집중하면서 무미건조한 소재의 그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단단하고 오래가는 그림’을 추구했다. 변하지 않는 그림의 본질, 자연의 본질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모든 자연은 “구와 원통, 원뿔로 환원된다”는 새로운 발견으로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그림을 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식의 행위로, 생각의 영역으로 확장한 세잔은 후대에 영향을 끼쳐 피카소(1881~1973), 브라크(1882~1963) 등 입체파(Cubism)로 이어졌다. 세잔을 계승하고 뛰어넘은 후대 화가들에 의해 본격 현대미술의 막이 올랐다.
세잔이 화가로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에밀은 이미 26세에 전업작가로 데뷔했다. 자연주의적인 작품 ‘테레즈 라캥’(1867), ‘마들렌 페라’(1868)를 발표했다. 1868년 ‘루공 마카르’ 총서를 구상해 집필에 들어가 1869년 ‘루공가의 운명’을 시작으로 1893년 ‘파스칼 박사’까지 총 20권을 완성한다. 총서에 포함된 대표작 ‘목로주점’(1877), ‘나나’(1880), ‘제르미날’(1885) 등으로 문단에서 자리를 굳혔다. 에밀을 보며 세잔은 말한다. “나도 자네 글처럼 그리고 싶어.”
1886년 세잔과 에밀의 우정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에밀이 출간한 소설 ‘작품’은 실패한 젊은 화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클로드는 밤낮으로 매달렸던 작품 앞에서 목을 매 죽고 만다. 그의 아들은 병에 걸려 죽고, 아내 또한 아들과 남편을 잃고 정신병을 얻고 만다. 자신을 비극적 주인공의 모델로 이용했다고 생각한 세잔은 에밀에게 “이렇게 훌륭히 추억을 담아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 결별을 선언한다.
당시 세상이 홀대했던 인상주의 화가를 옹호하는 비평을 쓰기도 했던 에밀은 당대 화가들의 경제적, 예술적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세잔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세잔의 상대적 열등감이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물론 에밀도 세잔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도입부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보면 세잔은 에밀을 업신여기고 젠체하는 부잣집 아들 특유의 거들먹거림을 보인다. 또 세잔은 에밀이 성공한 후 그의 집을 방문해 세간을 보며 케케묵은 중세스타일이라고 흉보거나 자신의 애인이자 모델이었던 가브리엘 미레이와 결혼한 사실을 가지고 빈정거려 에밀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세잔에게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파리를 떠나 고향에 돌아와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오랫동안 동거해 온 11세 연하의 오르탕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엔 이미 16세의 아들까지 있었다. 자산가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많은 유산을 남겨준 덕택에 그는 가족들을 파리에 둔 채 고향에서 그림에 빠져들 수 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그림만 그렸던 그는 1895년 앙브루아즈 볼라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대중들은 냉담했지만, 전문가들은 열광했다. 그는 감정이 배제된 절대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쉰이 넘어 단순히 대상의 모사가 아니라 ‘아는 사물’과 ‘보이는 사물’을 절충해 질감이 살아 있는 견고한 화면을 완성했다. 그는 실패한 천재가 아니라 늦깎이 천재였던 것이다. 영화는 아쉽게 세잔의 성공 이전에 막을 내린다.
금의환향한 에밀은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인터뷰를 한다. 기자가 묻는다. 당신의 친구 세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 그 친구는 천재입니다. 실패한 천재.” 친구의 귀향 소식에 한달음에 뛰어갔던 세잔은 문밖에서 그 말을 듣고 만다. 제아무리 성공한 위대한 예술가라도 평범한 속 좁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조선일보〕
4. [만물상] 베를린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은 북의 해외 공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다. 김일성 일가는 1990년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베를린을 유럽 진출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2000년대 미·북 회담은 이곳 양국 대사관에서 번갈아가며 열릴 때가 많았다. 북 외무성은 대사관에 '시티호스텔 베를린'이라는 숙박업소를 만들어 한국인 관광객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에겐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단 채 마라톤 우승한 것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1960년대 일부 독일 유학생이 북한과 연계됐다고 발표된 '동백림 사건'은 개운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이 도시는 우리에게 통일의 꿈을 일깨우는 성소(聖所)처럼 됐다. 2014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원코리아(OneKorea)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단은 통일 기원 1만5000㎞ 대장정을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시작했다.
▶냉전의 최전선과 분단이라는 베를린의 상징성을 극적으로 각인한 것은 두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케네디는 1963년 동독 상공을 날아 서베를린에 내린 후 "오늘날 자유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일 겁니다"라고 했다. 전 세계는 공산주의에 맞서 굳건한 연대(連帶) 의식을 표현한 이 말에 환호했다. 1987년 레이건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화를 원한다면 이 문으로 오시오.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했다. 이듬해 동구권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대통령들이 케네디와 레이건의 뒤를 따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이곳에서 '베를린 선언'을 했다. 남북 협력을 위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고 특사를 파견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석 달 뒤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드레스덴에서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선언을 한 바 있다.
▶베를린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대북(對北) 독트린을 발표한다. '신(新)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김정은이 ICBM을 발사한 직후이기에 관심이 크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낭만적 대북 정책이 나올 경우 이젠 우방으로부터도 "천진난만하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대북 구상을 밝히는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가 속히 오기를 바라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동아일보〕
5. [광화문에서/양종구]한국육상 지도자들의 착각
2009년 2월 자메이카 킹스턴에 취재를 갔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한국 남녀 단거리 대표팀이 ‘단거리의 나라’ 자메이카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당시 남자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영웅 우사인 볼트가 자국 대회 400m에 출전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종목을 전향하지 않고 100m와 200m 선수들이 400m에 출전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볼트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비시즌에는 몸을 만들기 위해 400m 훈련을 하고 대회도 출전한다”란 답이 돌아왔다. 볼트는 그해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100m(9초58)와 200m(19초19)에서 경이로운 세계기록을 세웠다.
볼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100m(9초69)와 200m(19초30)에서 동시에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만 해도 그 원동력이 196cm의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통 키가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볼트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신체 조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를린 이후 신기록 행진은 멈췄지만 볼트가 100m와 200m에서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잘 달린 배경에는 400m 훈련이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27일 남자 100m에서 10초07의 한국신기록을 세운 ‘한국 단거리의 희망’ 김국영(광주광역시청)도 400m 훈련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줬다. 김국영은 지난 겨울훈련 때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달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은 “국영이가 스타트는 좋은데 중반 이후 급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는 약점을 보여 400m까지 전력 질주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한국기록 경신의 힘은 400m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트레이닝 방법론에 과부하의 원리가 있다.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면 100m와 200m는 더 쉽게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 훈련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2004년 3월 한국 단거리 유망주를 지도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의 단거리 대부 미야카와 지아키 도카이대 교수도 볼트 훈련법과 비슷하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300m 전력 질주를 20회씩 시켰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미야카와 교수는 당시 아시아기록(10초 F) 보유자 이토 고지와 10초10을 기록한 스에쓰쿠 신고를 키운 명지도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34의 한국기록을 깨기 위해 미야카와 교수를 특별 초빙했다. 기존 훈련법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미야카와 교수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도자들도 그의 지도법을 무시했다.
국내에서는 ‘100m 선수가 달릴 수 있는 최장거리는 100m’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0m만 잘 달리면 되지 왜 더 달려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직도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 방송 해설가는 “한국 육상 지도자들은 30년 전 지도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며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2010년 10초23으로 서말구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5년 뒤 10초16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이번엔 2년 만에 한국기록을 갈아 치웠다. 김국영이 400m 훈련을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김국영과 심재용 감독은 지도자들이 공부해야 기록도 단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한국 육상은 강세를 보이던 마라톤에서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육상이 후진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선심성 정책에 늘어나는 국가 부채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정부 보증으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특수채 발행 잔액이 95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이들 채권의 발행 잔액은 958조 7067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빚을 진 것으로, 앞으로 갚아 나가야 하는 돈이다. 부담을 지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는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꼴이다.
정부가 곳간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 사업을 벌이려면 세금을 늘리거나 빚을 내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는 조세저항이 우려되는 증세보다 국채 발행 등의 손쉬운 방법을 택하곤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2006년 말 366조원이던 이들 채권의 발행 잔액은 두 정부를 거치면서 10년 사이 2.5배로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비 등을 주로 특수채로 마련했다. 임기 5년 동안 국채 발행 잔액이 50.7% 늘어나는 동안 특수채 발행 잔액은 162.8%나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며 추경 등을 통해 국채 발행으로 복지를 확대했다. 탄핵으로 물러나기까지 재임 4년여간 특수채 발행잔액은 5.8%, 국채 발행 잔액은 40.6% 증가했다.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빚만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에 사회안전망 확대, 일자리 창출 등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나랏빚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일자리 추경도 그렇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는 추경’이라고 하지만 세수가 늘어난 덕분에 올해는 특별한 경우다. 내년에도 빚을 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17만 4000명의 공무원 증원 등으로 재정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나랏빚도 덩달아 불어날 것이다. 빚내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업은 어림셈으로도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세금을 더 거두거나 빚을 내지 않고서는 이런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선 공약을 실천 가능한 구조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증세를 말하는 게 옳다.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하면서 뒤로는 빚을 내 국민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은 없어야 한다.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죄악이다.
〔서울신문〕
2. 北 ‘레드라인’ 못 넘게 국제 공조 강화해 中 압박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어제 북 지휘부 타격을 목표로 한 탄도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한 데 이어 조만간 한·미 연합대테러훈련에 나서기로 한 것만 해도 이번 북 미사일 발사 시험이 지닌 파괴력의 일단을 말해 준다 할 것이다.
그제 자행된 북한의 ‘화성14’ 미사일 발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군사적으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능력을 지니게 됐으며,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조만간 그들이 목표로 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시점이 임박했음을 뜻한다. 미국 동부 지역까지 타격할 능력을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런 상황 판단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외교적 측면에선 북한이 스스로 밝혔듯 현시점에서 그 어떤 대화 의지도 지니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한·미 양국 정상 중 누가 대북 협상의 운전대를 잡든 외교적 해결에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임을 거듭 확인케 해줬다는 점이다. 미국에 대한 핵 공격력을 온전하게 구축할 때까지, 즉 판을 통째로 바꾸는 ‘게임 체인지’를 달성할 때까지는 그 어떤 ‘당근’도 마다할 것임을 북한이 재삼 분명히 한 셈이다.
당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상황이다. 북한에게 미사일과 핵은 곧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 볼 때 핵탄두 소형화 달성을 위한 6차 핵실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농후하다. 이는 곧 북한이 한·미 양국이 경고해 온 ‘레드라인’을 넘어선다는 의미이자 우리 정부로서도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카드를 더는 고수할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전인 지난 4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다음 정부(현 정부)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당장 북핵으로 인한 안보 파국을 막을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폭주 기관차와 다름없는 북의 핵 개발을 저지할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의 제1조건이 핵 개발 동결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위한 초강도의 제재와 긴밀한 국제 공조에 나서야 한다. 북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하는 방안까지도 이끌어 내야 하며, 이를 위해 유엔 차원의 다자 협력으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될 G20 정상회의가 출발점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까지 포함한 능동적인 대북 압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바란다. 동북아의 안보위협은 주한 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아니라 북의 핵 개발 야욕임을 분명히 밝히고 중국의 미온적 태도가 북핵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인식토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3. "우리도 성과급 폐지해달라"고 나온 공무원 노조
국내 최대 공무원 노조인 공노총(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5급 이상 공무원이 적용받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해달라는 의견서를 인사혁신처에 제출했다. 공노총은 "팀워크가 붕괴되고 행정서비스 질(質)이 저하된다"며 성과급제 폐지를 국정 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업무 성과에 따른 차등을 두지 말고 연공서열(年功序列)에 따라 똑같이 월급 받는 호봉제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무원의 성과를 계량화하고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무원 성과급제가 도입 18년이 지났는데도 겉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철밥통 공무원 조직에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안 그래도 공직 사회가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제 될 결정은 미루고 책임질 일은 기피하는 풍조가 팽배해 영혼이 없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그런데 성과급마저 없애면 일하지 말고 연차(年次)만 채우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는 성과급제 폐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통령 철학을 고려해 다른 평가방식으로 대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등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공기업·공공기관에 대해선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지키로 했다. '경쟁 원리'에 소극적인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공무원 분야로도 이어진다면 공직 사회의 비효율과 무기력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공무원 성과급제를 더욱 강화하고 대상도 6급 아래로 더 확대해야 할 판에 폐지를 요구하다니 시대 역행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아일보〕
4. 가맹점 두 번 울리는 프랜차이즈 갑질 근절하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에게 ‘갑질’을 한 미스터피자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전 회장은 탈퇴한 가맹점 옆에 직영점을 차려 ‘보복 영업’을 하고,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할 때 동생 회사를 중간업체로 넣어 ‘통행세’를 챙기는 등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다. 올 3월 미스터피자 가맹점을 탈퇴한 점주 이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탈퇴 점주들이 항의하면서 검찰이 뒤늦게 프랜차이즈 본사의 보복 영업 수사에 나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직접 방문해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의 법 위반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는 점주들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거나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 장사 경험이 없는 만큼 본사로부터 매장 인테리어, 홍보 등을 지원받아 안정적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갑을관계로 들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사가 가맹점 매출액의 3∼4%를 세금 떼듯 광고비 명목으로 가져가고, 리모델링을 할 때 드는 감리비까지 가맹점 몫으로 떠넘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 우는 가맹점주들은 그 갑질이 알려지면 매출이 급감하는 2차 피해를 입어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미스터피자의 정 전 회장은 지난해 경비원 폭행 사건을 일으켜 매출 급감으로 점포 60여 곳이 문을 닫게 만들었다. 최근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혐의가 드러난 뒤 불매운동의 여파로 가맹점은 매출이 20∼40% 급감하는 피해를 입었다.
갑질을 예방하는 가맹사업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고질적 병폐가 여전한 것은 법이 유명무실했다는 얘기다. 국회에 발의된 프랜차이즈 불공정행위 규제 관련 법안만 20건이 넘는다. 국회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정부는 기존 법만이라도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
〔중앙일보〕
5. 최후의 결정적인 대북 압박만이 유일한 해법
북한이 지난 4일 기습적으로 쏜 화성-14형이 미국 정부에 의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식 인정됐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비난한다”며 “이는 미국과 동맹국 등 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규탄했다. 사실상 문제의 미사일이 ICBM임을 시인한 것이다. 우리 당국은 “재진입 기술 완성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아 ICBM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시각으론 오래전부터 그어 놨던 ‘레드라인(한계선)’을 북한이 넘어선 셈이다.
종전의 도발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ICBM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북한이 ICBM을 갖게 되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미사일이 ICBM이든 아니든, 분명한 건 지금의 개발 속도라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미사일 제작도 연내에 가능할 거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핵탄두 소형화까지 성공할 경우 한·미가 그토록 우려해 온 핵무기 장착 ICBM을 북한이 보유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우려되는 대목은 북한이 서울을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이 보복에 나서 줄지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뉴욕·LA가 피폭당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북한을 응징하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의 핵 장착 ICBM 보유가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거라고 보는 배경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기 전에 악몽의 시나리오를 막아야 한다. 남아 있는 유일한 해법은 미국 주도하에 전 세계가 나서 북한이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압박 수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대외 거래 차단을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하거나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시험발사하는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것 역시 미국으로서는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우리 정부로서도 지금은 대화와 압박 중 후자에 방점을 찍어야 할 시점임을 명심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움직임에 힘을 실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이야기하던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훈련을 지시하는 등 강경 모드로 전환했다.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누란의 위기여서 발걸음이 무겁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바른 현실 인식이다.
한반도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은 G20 회의를 대북 압박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6일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압박에 나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 때에도 효과적인 국제 공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이제 국제사회가 손잡고 최후의, 그리고 유례없이 강도 높은 대북 압박을 하는 것만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계일보〕
6. 김상곤표 교육개혁, 무모한 실험 돼선 안 된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어제 취임했다. 논문표절 등 각종 자격 시비 속에 임명된 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교육적폐 청산과 ‘교육사다리’ 복원을 강조했다. “개혁의 핵심은 불평등하고 경쟁만능으로 서열화돼 있는 불행한 교육체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곤표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김 부총리가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부모 경제력에 따라 교육 기회가 달라져 계층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계층이동의 기회를 제공할 교육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방법과 속도다. 균등한 기회를 내세워 하향 평준화를 지향한다면 교육의 질만 나빠질 뿐이다. 1 ·2기 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처럼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곤란하다.
과거 정권마다 밀어붙인 교육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 걸 경험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학력 저하 현상을 초래했고, 노무현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학생들을 내신에 수능, 논술까지 준비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내몰았다.
김 부총리가 인사청문회 등에서 밝힌 교육정책 구상은 하나같이 교육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것들이다. 중학교 3학년생과 학부모들은 벌써 동요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현행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수능 변별력이 거의 사라진다. 최근 3년간 수능 결과에 절대평가를 적용해 봤더니 수험생 5명 중 1명이 수학 1등급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생생활기록부 전형을 강화한다지만 교육현장은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도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학생의 장래는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교육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김 부총리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의견수렴’, ‘공감’ 등을 강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건 다행스런 일이다. 성급한 교육개혁은 자칫 ‘제2의 이해찬 세대’를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매일신문〕
7. 대구에서 자전거 타려면 목숨 걸어야 하나
대구의 자전거 도로는 보여주기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설치돼 있음에도, 제 기능을 못해 무용지물이 돼 있거나, 중간에 뚝뚝 끊기고 통행이 불편한 곳이 너무나 많다. 허술한 도로 환경으로 인한 자전거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인명 손실도 엄청나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도, 자전거 도로로서의 기능은 미미한 상황이다 보니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대구의 자전거 도로 길이는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긴 885㎞다. 그 가운데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764.47㎞이고, 나머지는 자전거 전용도로 110㎞, 자전거전용차로 10㎞다. 무늬만 ‘전국 최장’의 자전거 도로일 뿐, 자전거를 맘놓고 탈 수 있는 도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자전거용 도로와 보행로에 뚜렷한 구분을 해놓지 않아 접촉사고 위험이 아주 높다. 자전거 전용도로`전용차로는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곡예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부산, 창원 등 다른 도시에서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진입을 막기 위해 어른 허리 높이의 안전봉을 설치해 놓았지만, 대구에는 그것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 교통사고가 대구에서만 해마다 1천 건 이상씩 발생한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5천207건의 자전거 교통사고가 일어나 68명이 죽고 5천322명이 다쳤다고 한다. 사고 발생 건수로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대구시는 일부 교통사고 다발 구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했지만, 부분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도로는 너무 위험하기에 인도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용자들은 인도 통행은 불법이지만, 열악한 자전거 도로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한다. 대구시는 자전거 도로를 땜질식으로 정비`운용하기보다는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자전거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간선도로인 대동`대서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대구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자전거 타는 환경을 확 바꿔야 한다. 자동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전거 이용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매일경제〕
8. 학력·외모 안 본다는 블라인드 채용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공공기관에서는 7월부터, 지방공기업에서는 8월부터 신규 직원을 뽑을 때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전면 도입하게 된다. 고용노동부 등 4개 부처가 5일 이런 방침을 합동으로 발표했는데 공정한 기회 부여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방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응시자들은 앞으로 입사지원서에 학력, 용모·키·체중 등 신체조건, 출신지역, 가족관계를 기재할 수 없게 된다.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경비직이나 연구직처럼 그 업무에 꼭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만 예외적으로 신체조건이나 학위·논문을 기재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서류전형뿐 아니라 면접에서도 이런 원칙이 그대로 적용돼 면접위원은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물어볼 수 없다.
그 대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필기시험·심층면접 등을 활용해 인재를 선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채용 방식은 그동안 권고사항이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올해 하반기 1만여 명에 이르는 공공기관 채용에서부터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나아가 정부는 이런 채용 방식을 민간 부문에도 확산시키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 확산 추진단'을 운영하고 가이드북 배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민간기업 입사지원서에 출신지, 가족관계 등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학벌주의를 극복하고 편견 없이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출신학교나 학점은 그 사람이 학창시절 얼마나 성실하게 공부했는지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 자료를 모조리 가린다면 성장과정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너무 단편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뽑게 될 수도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이 최근 400여 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현재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인 기업은 6.1%에 불과했고 앞으로 도입 의사가 있는 기업도 48%에 그쳤다. 응시자에 관한 정보가 줄어들다 보니 직무능력 평가나 심층면접 방식을 보완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복권 추첨하듯 신규 직원을 뽑아야 하는 탓이다. 보다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이런 혼란과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9. 북 ICBM, 강하게 대응하되 ‘주도권’ 잃지 말아야
미국은 4일(현지시각)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식 평가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미국과 동맹국 및 협력국,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말해,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으로 규정했다. 전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평가했던 미국이 하루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북 핵·미사일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우리 군은 ‘아이시비엠급 신형미사일’로 평가해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화성-14형의 사거리는 8천㎞ 이상으로, 미국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긴장감이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핵개발을 해온 북한이 이를 실어 보낼 ‘운반수단’인 아이시비엠 시험발사까지 성공한 것은 동북아 전략균형을 밑둥치부터 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를 군사적 응징까지 내포하는 ‘레드 라인’으로 공식 설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아이시비엠 발사 저지를 일종의 정책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대북 원유 수출 제한을 포함한 중국의 대북 제재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틸러슨 국무장관이 “미국은 평화적 방식만으로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대한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행동 가능성은 제외시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인도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흩뜨리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여지가 다분하다. 문 대통령이 5일 한미연합사 최초로 탄도미사일 사격 등 무력시위를 먼저 제안해 실시한 것도 대북한 경고뿐 아니라, 이런 분위기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에서 대화 복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려던 문 대통령 구상도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유화적 메시지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높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대화 국면으로 끌고 나오려는 힘든 여정을 포기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 대화의 문을 열기 힘들다 하더라도, 눈은 멀리 ’대화 국면’을 향해야 한다. 다만, ‘대화 국면’을 목표로 두되, 그 과정에서 ‘대화를 위한 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주요20개국 회의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도 더욱 분명한 메시지와 방침을 전해야 한다. 우리 외교안보팀이 어느 때보다 치밀한 전략을 세워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한국일보〕
10. G20 정상회의, 문재인 정부의 북핵ㆍ미사일 대응 시험대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로 출국했다. 의장국 독일이 제시한 회담 의제는 건전한 글로벌 경제질서 구축을 위한 ‘활력 구축’,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등을 포함한 ‘지속가능성 향상’, 저개발국을 향한 주요국의 지원을 약속하자는 ‘책임 부담’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후 처음 열리는 주요국 회담이어서 이를 비중 있게 다룰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으로서는 새 정부 출범 후 첫 다자 정상외교 무대이고, 북핵ㆍ미사일 해결을 주도하겠다고 표방한 문 대통령이 얼마나 외교력을 발휘할지 세계가 주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상대로 미국 정부가 공식 확인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로 북핵ㆍ미사일 문제는 더 이상 동북아가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 현안이 됐다. 향후 ICBM에 창착할 핵탄두 소형화까지 성공하면 위협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주요국의 북핵ㆍ미사일 개발 대응은 일사불란하지 않다. 한미일이 제재 위주의 압박을 우선하는 데 비해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와 협상에 비중을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에 앞서 6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사드 문제를 중국에 이해시키는 것도 관건이지만, 북한의 계속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 초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고 기다렸던 트럼프 미 정부가 최근 중국에 대한 인내가 소진된 듯한 인상을 주는 마당이어서 이런 외교 노력이 더욱 긴요하다.
문 대통령은 출국 직전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며 북한의 ICBM 실험에 맞서 한미 연합 미사일 무력 시위를 지시했다. 한국군의 현무-Ⅱ와 미8군ATACMS 지대지미사일이 목표물을 초탄 명중시켜 적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힘 없는 평화란 공허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추가 핵ㆍ미사일 도발중단’을 전제로 한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곧바로 내침으로써 핵ㆍ미사일 고도화가 한미동맹의 균열과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차단을 겨냥한 것임이 상당 부분 드러난 마당이다. 어떤 군사위협에도 틈새 없는 동맹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그만큼 중요하다.
다만 한반도에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부를 군사충돌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그동안의 대북 압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대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다.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북의 핵ㆍ미사일 고도화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당국자 간의 대화는 절실하다.
G20 회의를 통해 문 대통령이 북의 핵ㆍ미사일 도발을 견제할 구체적 대응책과 함께 북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어떤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한국일보〕
1.위르겐 힌츠페터
1980년 광주항쟁을 기록한 시민들의 역사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항쟁을 구성한 세 주체로 광주 시민과 계엄군, 그리고 외신을 꼽았다. 왕래는 물론이고 언로마저 차단된 격절의 섬 광주 시민들에게, 곁에서 지켜보고 본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언론, 외신의 존재가 그렇게 컸다. 물론 그 시기 그 일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 독일(당시 서독) 제1공영방송 ARD 동아시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1937~2016)가 있었다.
그는 녹음을 담당하는 동료기자와 함께 공수부대가 투입된 다음날인 19일 서울을 거쳐 계엄령 하의 광주에 잠입했다. 외국회사 주재원이라며 신분을 속이고 군 검문을 통과한 그는 계엄군의 곤봉과 대검 학살, 21일 전남도청과 전남대 발포 현장을 취재한 뒤 필름을 허리띠에 감춘 채 광주를 빠져 나와 그 필름을 도쿄를 거쳐 독일 방송국 본사로 전송했다. 광주항쟁의 현장 영상이 세계 최초로 22일 저녁 서독 전역에 방영됐다.
힌츠페터는 23일 다시 광주로 잠입, 코뮨을 방불케 한 시민 자치 하의 광주의 이야기를 사실상 유일하게 영상에 담았고, 그 영상이 9일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ㆍ방영됐다. 다큐멘터리는 유학생 등을 통해 은밀히 국내에 반입돼 80년대 초 대학가와 재야 진영에서 역시 은밀히 상영됐다. ‘시대를 넘어…’는 그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광주 시민의 억울한 희생과 장렬한 투쟁은 ‘존재하지조차 않은 사건’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당시 국내 언론은 신문ㆍ방송 할 것 없이 “용공분자들의 무장 폭동”으로 80년 광주 소식을 전했다.
63년 방송사에 입사해 67~89년의 17년 간 동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한 그는 베트남전쟁을 포함, 냉전기 주요 대치지역 중 한 곳인 동아시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취재했고, 광주항쟁 취재를 생애 최악(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86년 11월 광화문 시위 취재 도중 사복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목과 척추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95년 은퇴했다.그는 1937년 7월 6일 태어나 2016년 1월 25일 별세했다. 그의 모발과 손톱, 유품 일부는 그 해 5ㆍ18 기념식에 망월동 구묘역(옛 5ㆍ18묘지)에 묻혔다.
〔머니투데이〕
2. 생활을 바꾸는 생활정치의 힘
작지만 지속 되는 소소한 변화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서울의 생활 정책과 생활 정치가 가져온 변화다. “이건 많이 불편한데…”라고 무심코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조치 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최근 발생한 소소한 변화는 ‘다람쥐 버스’다. 오전 7~9시 출근시간대에 서울의 가장 혼잡한 버스 구간만 오가는 버스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가장 혼잡한 일정 구간을 반복해서 오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에 올라타 출근길부터 파김치가 됐던 시민들에겐 고단함을 덜어주는 단비 같은 존재다.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은 시간대(오후 11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3시 30분까지)에 운행하는 ‘올빼미 버스’도 서울에 사는 서민들의 고단함을 덜어준 작품이란 평가다. 올빼미 버스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매일 일하면서도 택시를 탈 형편이 못 되는 서민들의 발이 돼 주면서 가장 우수한 교통 복지란 찬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키에프시 등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이 올빼미 버스를 도입하기 위한 벤치마킹에 나섰을 정도다.
또 예전엔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 버스가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면 요즘은 정류장 마다 설치된 단말기가 차량 번호별로 대기 시간을 알려준다. 도착할 버스가 승객들로 가득 들어차 혼잡한지 아니면 여유가 있는지 귀띔해주는 것은 덤이다.뿐만 아니다. 길을 걷다 어두침침하고 음침해 불편하게 느껴졌던 공터나 공지에 어느새 나무가 심어진 예쁜 정원이 조성되고 있다. 길을 걸으면서 “이 정도면 횡단 보도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던 도로엔 어김없이 새로운 횡단 보도가 들어선다.
어르신들을 괴롭히던 육교나 지하도가 있던 자리에 깔린 횡단 보도를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까지 하다. 또 곳곳에서 차선이 줄어들고 보도가 넓어지는 도로 다이어트가 이뤄지면서 차량에 점령당했던 보행 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서울로7017’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요즘 서울시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생활 속 불편을 해소하는, 그야말로 작고 소소한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알고 나면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 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소소한 변화가 수년간 쌓이고 쌓여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있다.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바가 바로 이런 것이라 느낀다.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하면서도 생활 속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가져올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생활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서울신문〕
3.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우정은 사랑보다 어렵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20세기 예술사를 바꾼 두 천재가 만나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은행가의 아들로 화가를 꿈꾸는 폴 세잔(1839~1906)과 가난한 토목기사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에밀 졸라(1840~1902). 어린 시절부터 꿈과 사랑, 좌절까지 모든 것을 함께한 두 사람은 친구지만 예술에서는 둘도 없는 경쟁자였다. 둘은 서로를 동경하고 아끼는 친구이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평가를 서슴지 않는 비판적 동지이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은 파리로 올라와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가와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20세기 예술계를 풍미한 두 사람의 애증을 그리고 있다.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던 에밀(기욤 카네 분)과 부유한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던 세잔(기욤 갈리엔 분)은 완연히 다른 처지만큼 꿈도 달랐다. 세잔은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화가로 자리잡는 것이 꿈이고 에밀은 궁핍한 파리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밀은 파리에서 소설가로 성공한 반면 세잔은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늘 변방을 떠돌았다.
영화는 화가, 소설가로서 창작의 고통보다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세잔은 과거 에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명 화가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친구의 성공을 마냥 축하할 수 없었다.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파리로 전학 온 에밀은 세잔의 도움과 보호가 없었다면 ‘왕따’가 되고도 남았다. 물론 세잔이 화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것은 에밀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다. 엇갈린 운명은 둘 사이를 갈라 놓는다.
세상이 몰라 주는 화가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물감을 대 주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탕기(1825∼1894) 영감이 세잔의 그림 중 사과가 있는 부분만 잘라 팔았다면서 동전 몇 닢을 건네주는 장면은 당시 세잔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혁명론자를 자처했지만 그림을 통해 상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세잔은 살롱전에 번번이 낙선하고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도 배척당한다.
그를 알아본 또 다른 인물이 ‘인상파의 장로’라고 불리는 피사로(1830~1903)였다. 그는 세잔에게 그림의 본질은 물론 인상파의 원리와 기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세잔은 어렵게 생활했지만 그의 자화상에서 드러나듯 자기 확신을 가지고 플랑드르화풍에 집중하면서 무미건조한 소재의 그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단단하고 오래가는 그림’을 추구했다. 변하지 않는 그림의 본질, 자연의 본질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모든 자연은 “구와 원통, 원뿔로 환원된다”는 새로운 발견으로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그림을 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식의 행위로, 생각의 영역으로 확장한 세잔은 후대에 영향을 끼쳐 피카소(1881~1973), 브라크(1882~1963) 등 입체파(Cubism)로 이어졌다. 세잔을 계승하고 뛰어넘은 후대 화가들에 의해 본격 현대미술의 막이 올랐다.
세잔이 화가로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에밀은 이미 26세에 전업작가로 데뷔했다. 자연주의적인 작품 ‘테레즈 라캥’(1867), ‘마들렌 페라’(1868)를 발표했다. 1868년 ‘루공 마카르’ 총서를 구상해 집필에 들어가 1869년 ‘루공가의 운명’을 시작으로 1893년 ‘파스칼 박사’까지 총 20권을 완성한다. 총서에 포함된 대표작 ‘목로주점’(1877), ‘나나’(1880), ‘제르미날’(1885) 등으로 문단에서 자리를 굳혔다. 에밀을 보며 세잔은 말한다. “나도 자네 글처럼 그리고 싶어.”
1886년 세잔과 에밀의 우정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에밀이 출간한 소설 ‘작품’은 실패한 젊은 화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클로드는 밤낮으로 매달렸던 작품 앞에서 목을 매 죽고 만다. 그의 아들은 병에 걸려 죽고, 아내 또한 아들과 남편을 잃고 정신병을 얻고 만다. 자신을 비극적 주인공의 모델로 이용했다고 생각한 세잔은 에밀에게 “이렇게 훌륭히 추억을 담아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 결별을 선언한다.
당시 세상이 홀대했던 인상주의 화가를 옹호하는 비평을 쓰기도 했던 에밀은 당대 화가들의 경제적, 예술적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세잔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세잔의 상대적 열등감이 자격지심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물론 에밀도 세잔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도입부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보면 세잔은 에밀을 업신여기고 젠체하는 부잣집 아들 특유의 거들먹거림을 보인다. 또 세잔은 에밀이 성공한 후 그의 집을 방문해 세간을 보며 케케묵은 중세스타일이라고 흉보거나 자신의 애인이자 모델이었던 가브리엘 미레이와 결혼한 사실을 가지고 빈정거려 에밀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세잔에게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파리를 떠나 고향에 돌아와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오랫동안 동거해 온 11세 연하의 오르탕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엔 이미 16세의 아들까지 있었다. 자산가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많은 유산을 남겨준 덕택에 그는 가족들을 파리에 둔 채 고향에서 그림에 빠져들 수 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그림만 그렸던 그는 1895년 앙브루아즈 볼라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대중들은 냉담했지만, 전문가들은 열광했다. 그는 감정이 배제된 절대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쉰이 넘어 단순히 대상의 모사가 아니라 ‘아는 사물’과 ‘보이는 사물’을 절충해 질감이 살아 있는 견고한 화면을 완성했다. 그는 실패한 천재가 아니라 늦깎이 천재였던 것이다. 영화는 아쉽게 세잔의 성공 이전에 막을 내린다.
금의환향한 에밀은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인터뷰를 한다. 기자가 묻는다. 당신의 친구 세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 그 친구는 천재입니다. 실패한 천재.” 친구의 귀향 소식에 한달음에 뛰어갔던 세잔은 문밖에서 그 말을 듣고 만다. 제아무리 성공한 위대한 예술가라도 평범한 속 좁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조선일보〕
4. [만물상] 베를린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은 북의 해외 공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다. 김일성 일가는 1990년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베를린을 유럽 진출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2000년대 미·북 회담은 이곳 양국 대사관에서 번갈아가며 열릴 때가 많았다. 북 외무성은 대사관에 '시티호스텔 베를린'이라는 숙박업소를 만들어 한국인 관광객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에겐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단 채 마라톤 우승한 것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1960년대 일부 독일 유학생이 북한과 연계됐다고 발표된 '동백림 사건'은 개운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이 도시는 우리에게 통일의 꿈을 일깨우는 성소(聖所)처럼 됐다. 2014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원코리아(OneKorea)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단은 통일 기원 1만5000㎞ 대장정을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시작했다.
▶냉전의 최전선과 분단이라는 베를린의 상징성을 극적으로 각인한 것은 두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케네디는 1963년 동독 상공을 날아 서베를린에 내린 후 "오늘날 자유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일 겁니다"라고 했다. 전 세계는 공산주의에 맞서 굳건한 연대(連帶) 의식을 표현한 이 말에 환호했다. 1987년 레이건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화를 원한다면 이 문으로 오시오.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했다. 이듬해 동구권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대통령들이 케네디와 레이건의 뒤를 따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이곳에서 '베를린 선언'을 했다. 남북 협력을 위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고 특사를 파견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석 달 뒤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드레스덴에서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선언을 한 바 있다.
▶베를린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대북(對北) 독트린을 발표한다. '신(新)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김정은이 ICBM을 발사한 직후이기에 관심이 크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낭만적 대북 정책이 나올 경우 이젠 우방으로부터도 "천진난만하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대북 구상을 밝히는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가 속히 오기를 바라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동아일보〕
5. [광화문에서/양종구]한국육상 지도자들의 착각
2009년 2월 자메이카 킹스턴에 취재를 갔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한국 남녀 단거리 대표팀이 ‘단거리의 나라’ 자메이카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당시 남자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영웅 우사인 볼트가 자국 대회 400m에 출전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종목을 전향하지 않고 100m와 200m 선수들이 400m에 출전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볼트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비시즌에는 몸을 만들기 위해 400m 훈련을 하고 대회도 출전한다”란 답이 돌아왔다. 볼트는 그해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100m(9초58)와 200m(19초19)에서 경이로운 세계기록을 세웠다.
볼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100m(9초69)와 200m(19초30)에서 동시에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만 해도 그 원동력이 196cm의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통 키가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볼트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신체 조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를린 이후 신기록 행진은 멈췄지만 볼트가 100m와 200m에서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잘 달린 배경에는 400m 훈련이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27일 남자 100m에서 10초07의 한국신기록을 세운 ‘한국 단거리의 희망’ 김국영(광주광역시청)도 400m 훈련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줬다. 김국영은 지난 겨울훈련 때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달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은 “국영이가 스타트는 좋은데 중반 이후 급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는 약점을 보여 400m까지 전력 질주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한국기록 경신의 힘은 400m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트레이닝 방법론에 과부하의 원리가 있다.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면 100m와 200m는 더 쉽게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 훈련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2004년 3월 한국 단거리 유망주를 지도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의 단거리 대부 미야카와 지아키 도카이대 교수도 볼트 훈련법과 비슷하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300m 전력 질주를 20회씩 시켰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미야카와 교수는 당시 아시아기록(10초 F) 보유자 이토 고지와 10초10을 기록한 스에쓰쿠 신고를 키운 명지도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34의 한국기록을 깨기 위해 미야카와 교수를 특별 초빙했다. 기존 훈련법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미야카와 교수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도자들도 그의 지도법을 무시했다.
국내에서는 ‘100m 선수가 달릴 수 있는 최장거리는 100m’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0m만 잘 달리면 되지 왜 더 달려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직도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 방송 해설가는 “한국 육상 지도자들은 30년 전 지도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며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2010년 10초23으로 서말구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5년 뒤 10초16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이번엔 2년 만에 한국기록을 갈아 치웠다. 김국영이 400m 훈련을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김국영과 심재용 감독은 지도자들이 공부해야 기록도 단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한국 육상은 강세를 보이던 마라톤에서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육상이 후진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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