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금융노조 성과주의 반대 설득력 없다
금융권이 성과주의 도입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 공기업 9곳에 이어 민간 금융사들도 성과주의 도입을 선언하자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등 34개 금융기관의 사용자단체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최근 현행 호봉제 중심인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의 성과연봉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정부 지침대로 결과를 정해놓고 합의하자는 방식엔 협상하지 않겠다”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갈등 양상이 심상치 않다.
노조의 반발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금융위원회가 ‘성과주의 문화 확산’ 방침을 발표한 지 며칠 만에 민간에서도 도입하겠다고 나선 건 누가 봐도 당국의 압력을 받은 모양새다. 게다가 전체 공공기관은 물론 금융 공기업의 성과주의도 방침만 있을 뿐 아직 발도 떼기 전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이 민간의 임금체계 변화를 밀어붙이려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며 금융권 자율성 확대에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는 건 당연하다. “왜 우리가 먼저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설득력은 없다. 금융권은 공기업,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생산성은 낮은 분야로 인식돼 왔다. 능력과 무관하게 일정 기간만 지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탓이다. 7개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2004년 1.91에서 2014년 0.63으로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1인당 평균 임금은 같은 기간 5620만원에서 7928만원으로 되레 올랐다. 금융 공기업은 더욱 심하다.
이 같은 불합리한 임금구조에서 금융개혁을 말하는 건 공염불이다. 수익성 악화와 인터넷 전문은행 등장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능력에 따른 공정한 임금체계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노조가 ‘밥 그릇 챙기기’에 매달려 비효율을 외면하고 성과주의 도입을 무력화하려는 건 온당치 않다.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은 당국의 압력 여부를 떠나서도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에 금융노조도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
2.이제는 북한 지도부가 답할 차례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F-22 스텔스 전투기 4대가 어제 한반도 상공에 긴급 출동했다. 일본 가데나(嘉手納) 기지에서 발진한 이들 전투기 편대는 우리 공군의 F-15K 4대와 함께 저공비행을 하며 위용을 과시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물론 추가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 양국의 강력한 경고다.
주지하다시피 F-22 전투기는 뛰어난 스텔스 성능 덕분에 레이더망을 뚫고 적진 깊숙이 침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 지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핵심 시설을 타격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여차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집무 공간도 폭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그제는 미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부산항에 입항함으로써 전략무기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사흘 전 열린 유엔 안보리 공개토의 과정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이사국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북한을 경유한 선박에 대해 유엔 회원국들의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과 북한의 외화조달 창구인 해외파견 근로자들을 제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동참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 압박을 위한 충분한 제재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 지도부의 선택이다. 핵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떳떳하게 처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헐벗고 굶주리는 가운데서도 핵개발에 매달리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수용소에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리는 정치범들도 10만명 안팎에 이른다.
더욱이 김정은은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장성택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데 이어 최근 리영길 군참모총장까지 처형했다. 정권 유지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정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주체혁명 위업의 최후승리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토록 하는 수준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체제 붕괴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명백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현명한 선택만이 해결책이다.
3.북핵 이슈에 경제 묻혀선 안 돼
우리 경제는 중국의 경기 둔화를 비롯한 글로벌 악재의 영향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 증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낙폭을 보인 가운데 한국의 1월 수출 실적은 지난해보다 18.5%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따라 정부는 대응의 우선순위를 한동안 경제보다 안보에 둘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형국이다. 경쟁국에는 없는 ‘안보 리스크’를 추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분단 국가로서는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그럴수록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힘을 합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치권은 딴판으로만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제 국회 연설은 북핵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천명한 대북 정책 기조의 유보를 감수하면서 북한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더불어 개성공단 중단 조치의 배경을 국민에게 설명하면서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직접 이해 당사자인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연설 이후 “손실 발생에 따른 정부 차원의 별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대통령 설명에 크게 기대한다”면서 비상총회를 취소하고 정부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자칫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에 뜻을 같이하지 않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는 국회 연설의 의도는 상당 부분 충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활성화의 불쏘시개가 될 쟁점 법안의 지체 없는 처리를 당부하는 것으로 국회 연설을 마무리한 것은 국정의 무게중심을 다시 경제 살리기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야당의 인식은 여전히 보편적 기대와 거리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하고 사드 배치를 추진하면서 남북 관계를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 빠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조치는 ‘분단 쪽박’을 남기는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취업 절벽 세대’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쟁점 법안 문제에도 “토끼몰이식 ‘입법 사냥’에 응할 수 없다”거나 “‘좋은 법’은 통과시키고 ‘나쁜 법’은 저지하고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다니 수긍하기 어렵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은 지금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제에는 한결같이 동의한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는 해법을 둘러싼 여야의 소모적 갈등은 북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이슈가 가중되며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안보 이슈를 4월 총선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장 버려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지도부는 오늘 만나 담판을 지을 것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총선 선거구 획정에만 합의하고 쟁점 법안 처리에는 진전을 보지 못한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4.인천항도 밀입국자에게 뚫렸다니
인천공항에 이어 인천항도 지난달 외국인 선원에 의해 뚫렸다. 이제는 항만까지 밀입국자들의 통로로 전락하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항만도 공항과 마찬가지로 국경이나 다름없는 국가의 관문이다. 그렇기에 그 어느 곳보다 철통같은 보안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데 선원들이 이웃집 담 넘어가듯 보안 울타리를 넘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항만의 보안관리 강화가 시급하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중국인 선원이 지난달 17일 인천항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보안 울타리를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앞서 6일 베트남 선원도 인천항을 통해 보안 철조망을 자르고 밀입국했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뚫린 과정을 보면 너무나 흡사하다. 공항의 밀입국자처럼 베트남 선원도 선장이 “선원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있기 전까지 우리 당국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 관리를 하는 이들의 기강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보안 철조망이 잘려도 어떤 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안 철조망이 훼손되거나 월담을 할 경우 경고음이 울려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아예 이런 침입감지센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요즘 일반 가정에서도 도둑이 침입하면 소리가 나는 보안 시스템을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국경을 지키는 항만에서 여느 평범한 가정보다 보안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인천항뿐이 아니다. 부산 감천항에서도 지난해 11월 베트남 선원 2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주했다가 경찰에 잡히는 등 지난해만 15명이 이곳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애월항, 성산포항도 밀입국자들의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항만은 바다를 끼고 있고 구역이 너무 넓기에 공항보다 보안 관리가 취약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든 무방비로 밀입국자들이 들이닥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국가 안보에 엄중해야 하는 시기다. 당국은 밀입국 선원들에게서 다행히 대공 용의점을 찾지 못했다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다. 북한이 바다를 통해, 아니면 외국인 선원을 가장해 항만을 뚫고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부는 테러방지법의 국회 처리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주문에 앞서 공항, 항만과 같은 국가 주요 시설의 고장 난 보안 관리 시스템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5.사드에 ‘군사적 대응’ 하겠다는 중국
한국과 미국이 북핵 위기 대응책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중국의 반대와 간섭이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제 서울에서 열린 한·중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장예쑤이(張業遂)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관련 측(한·미)이 신중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공식 의제가 아니었는데도 중국 측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특히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군사적 대응’ 경고까지 내놨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동북 지역 군사력을 증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환구시보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내놓기는 하지만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서 중국 정부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 왔다. 그런 신문이 논평을 통해 “한국은 국가로서의 독립성을 잃고 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둑돌이 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 이후의 시나리오를 들먹이며 우리를 겁박했다. 너무 지나쳤다. 우리가 사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가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접국의 이런 위기는 아랑곳없이 중국은 오히려 군사대응 운운하며 자국 이익만 챙기겠다는 것인가.
한·미 양국이 이미 여러 차례 장담했듯이 사드 배치의 본질은 전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일 뿐 결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은 귀를 막고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과 연결해 자국의 전략적 이익만 앞세우는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 불용,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위권 차원에서 논의하는 사드 배치에 극렬하게 반대하기에 앞서 북핵 저지 국제 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북핵 위협만 사라지면 사드 배치는 필요치도 않다.
한·미 양국도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키워 강력한 대북 공조체제 구축에 장애를 자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제 국회 연설에서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거론하면서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도 중시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제재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우려에 대해 우리 역시 상당한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거나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앞서 다양한 전략적 대화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만 한다.
[동아일보]
6.공천룰 놓고 계파전쟁 與, 안보위기 남의 나라 일인가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그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시도별로 최대 3곳을 4·13총선의 우선추천지역으로 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발단이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 룰을 벗어났다며 즉각 발표 자체를 무효로 돌린 데 이어 어제는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어도, 선거를 안 하는 한이 있어도 이한구 안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김 대표가 “국민에게 수백 번 약속한 국민공천제는 절대 흔들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며 의원총회에서 막을 태세를 보이자 이 위원장은 “대표가 공천 개입을 하려면 공천관리위 해산하라”며 맞섰다.
이 위원장 주장대로라면 전국 17∼51개 지역구에서 사실상 전략공천이 이뤄진다. 우선추천제가 필요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지역이나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배려자에게만 하면 될 일이다. 공천관리위 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위원장이 불쑥 발표하니까 ‘친박 대리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친박이 대통령 눈 밖에 난 현역 의원들을 ‘저성과자’로 찍어 탈락시키려고 우선추천제를 강조한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여당 내부의 충돌을 지켜보는 국민은 어이없고 답답하다. 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북한 김정은에게 ‘핵 포기냐, 체제 붕괴냐’의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한 날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맞서 미군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함의 동해 훈련 참가와 최첨단 F-22A 스텔스 전투기 도착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마치 안보는 대통령과 정부, 미군에 맡겼으니 나는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모습이다.
야당이 둘로 갈라져 총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오만함이 아니라면 여당이 계파 싸움에 골몰할 수 없을 것이다. 집권 여당 내부부터 분열돼 있는데 박 대통령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말을 국민이 귀담아듣겠는가.
7.대통령 주재 ‘무투회의’ 열고도 무역·투자 줄어드는 이유
정부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서울 양재·우면 일대를 ‘기업 R&D 집적단지’로 조성하는 등의 투자활성화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하반기부터 일반인이 숙박료를 받고 최대 120일간 자기 집을 관광객에게 에어비앤비(Airbnb)처럼 빌려줄 수 있도록 숙박업법을 제정키로 했다. ‘공유경제’ 모델을 근간으로 한 서비스업을 육성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기존 산업구조를 재편하려는 취지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신산업과 관련해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릴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 되는 것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회의 때마다 규제완화를 한 보따리씩 쏟아내고도 정작 성과가 미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업계에서 ‘무투회의’라고 줄여 부르는 이 회의는 2013년 5월 1일 첫 회의 이후 이번이 9번째다. 이 속에서 나온 투자활성화대책을 포함해 기획재정부가 최근 3년 동안 내놓은 굵직한 투자대책만 40개가 넘는다. 경제정책방향, 대통령 업무보고, 각종 이슈별 대응방안, 규제개혁방안 등이 백화점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지난해 교역액은 2013년보다 1000억 달러 이상 줄었고, 국내 기계 수주액은 2014년에 다소 늘다 작년 다시 감소했다. 작년까지 8차례 무투회의에서 프로젝트성 규제 31개를 풀어 54조 원어치의 투자를 유도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이 무색할 지경이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9.5%로 1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근본적인 청년고용대책은 기업에 활기가 돌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설비투자를 동시에 촉진하려면 수도권 공장 신·증설도 허용하는 본질적 규제 혁파를 해야 한다. 한국식 에어비앤비도 서울 홍익대 앞은 외국인 상대 에어비앤비 천지인데 부산 강원 제주 지역에만 시범 실시한다는 것은 변죽만 울리는 일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있고, 수도권에 기업 투자 수요가 가장 많은 점을 감안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같은 정공법을 외면한 무투회의는 1970년대식 ‘대통령 앞 보고 행사’일 뿐이다.
[중앙일보]
8.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포기 이후의 전략이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을 강력 압박하는 봉쇄 정책으로 대북 전략을 전면 수정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한 전환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규탄에 맞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강행한 북한의 책임이다.
박 대통령은 그제 특별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한편으론 수긍이 가면서도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미·일 3국 간 협력도 강화하고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도 중시해 나갈 것”이라는 대통령 발언이 원론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5자 간의 확고한 공감대”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각론과 우선순위에서는 각국이 현저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행동으로 이끌어낼지의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나오고, 한·미·일 3국이 독자제재를 더한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국을 설득하는 대신 동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압박만 거듭하고 있다. 중국 또한 대북 제재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무엇보다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사회 질서가 그런 것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감성적 접근이다. 중국이 소극적이라 해서 서운한 감정만 드러내고 막무가내로 성의 표현만 요구해서는 애써 쌓아놓은 신뢰 자산만 잃을 뿐이다. 이슈에 따라 협력할 것은 협력을 강화하고 설득할 것은 끊임없이 설득해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위험천만한 여당 지도부의 핵무장론에 대해 대통령이 연설에서 이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여당 원내대표가 핵무장을 거론해 미국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오히려 미 행정부와 의회의 합리적 의심만 사서 한·미 동맹에 균열만 초래할 뿐이다.
이렇게 원칙 없는 접근 태도를 바탕에 깔고 한·미 공조, 한·중 연대를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 외교안보팀이 그러한 논리에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촉발한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비 전용 논란에서 보듯 확고한 비전과 실천능력 없이 상황논리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외교안보팀의 모습도 자격미달이다.
지금은 대북 정책이 180도 바뀐,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차대한 시점이다. 특히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 언급한 만큼 새로운 도발까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외교·통일부 등 외교안보팀은 빈틈없는 소통과 공조로 확고한 안보태세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상황을 우리 목표대로 이끌어가도록 주변국을 설득하는 외교 노력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매일경제]
9.국민연금 CIO 인사잡음 실적만이 해소책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에 강면욱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임명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인선을 4개월 가까이 끌었으면서도 결국 정권 실세의 낙하산 인사가 낙점됐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민연금 CIO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507조원에 달하는 기금 운용을 책임질 사람이다. 기금을 불려 국민 노후생활을 풍요롭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할 임무도 있으니 엄정한 선발은 필수다.
강 본부장은 국민투자신탁에 입사해 국제 업무를 맡았고 외국계 자산운용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운용사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으니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볼 수 있다. 문형표 공단 이사장과의 의사소통도 무난할 것으로 보여 최광 전 이사장과 홍완선 전 본부장이 갈등으로 동반 사퇴한 것과 같은 불상사가 재발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 운용 경험이 없었던 데다 대표를 맡았던 운용사들이 국민연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운용사 대표 시절 수익률도 저조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그가 대표로 있었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메리츠자산운용 누적 수익률은 -1.45%였다. 운용사 전체 평균 수익률 10.22%에 비해 11%포인트나 낮았다. 국민연금 순수 기금운용 수익률은 지난해 연초 대비 10월까지 4.24%로 떨어졌는데 그가 이를 개선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 본부장은 대구·경북 출신으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대구 계성고, 성균관대 1년 후배다. 이런 인연 때문에 국민연금 CIO 후보로 거론됐을 때부터 '정권 실세'가 밀고 있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다른 후보들은 능력이 뛰어나도 들러리에 불과할 것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전임 본부장도 정권과 가깝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강 본부장 역시 똑같은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CIO는 수익률을 높여 기금의 고갈 속도를 늦추고 운용본부체제 개편 등 수많은 난제를 풀어야 한다. 강 본부장이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운용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10.공유경제 키우겠다는 정부, 더욱 속도 내라
정부가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유 민박업'을 신설하고 거주 중인 주택을 숙박서비스에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먼저 부산, 강원, 제주에 도입하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차량공유 서비스도 차량공유 업체가 실시간으로 면허정보를 조회해 운전 부적격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규제 대상이었던 공유경제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육성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은 반길 일이다.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는 숙박업 등록을 안 했다는 이유로 불법 판결을 받았고, 차량예약 서비스인 '우버'도 택시업자들의 반발로 중단되는 등 공유경제는 한국에서 단속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창업한 지 5년 된 우버의 기업 가치는 680억달러(포브스 분석)로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넘어섰다. 에어비앤비도 255억달러로 최대 호텔체인 힐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의 성장판은 닫히고, 새로운 산업은 싹트지 못해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는 한국도 공유경제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 때문에 새로운 성장엔진인 공유경제를 규제로 억누른다면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조사 결과 경제전문가 94%가 공유경제의 확산이 사회에 이득이 된다고 예측한 만큼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속도를 더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전통 산업과 혁신 산업이 충돌할 때 성장통은 따르게 마련이다. 정부는 기존 사업자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공유경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또한 공유경제 확대가 비정규직 형태의 계약관계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돌씨를 불리며
집에서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길러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돌씨’를 알게 되었다. 살림의 고수인 시댁 형님은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물에 붇지 않는 콩이 있는데 시골 사람들은 그것을 똘씨(돌씨)라고 부른다”며 돌처럼 단단한 콩을 기어이 싹트게 만든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 형님이 숙주나물을 기르려고 녹두를 꺼내보니 반은 돌씨더라는 것. 반이나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래, 혹시 오래 놓아두면 언젠간 붇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돌씨까지 몽땅 물에 넣었다고 한다. 역시 정상적인 녹두 씨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붇기 시작했다. 이때 붇지 않는 것은 골라내 버려야 한다. 불은 것과 같이 두면 썩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다른 그릇에 옮겨 계속 불리니 나흘 후 그중 반 정도가 불었다는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면 돌씨도 결국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고집스럽게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도 기다려주면 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까 나흘이 지나도 끄떡없는 돌씨가 안쓰럽더라고. 얼마나 굳었으면 풀리지 못하고 저렇게 있는 걸까.”
수십 년을 교육현장에 있었던 형님인지라 그 말이 남다르게 들려왔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하여 내쳐졌을 돌씨들. 그들도 참고 기다려주면 위대한 싹을 틔울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부드럽게 품어주지 못하고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은 아닐까. 내면에 상처가 똘똘 뭉쳐 쉽게 말랑말랑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련만.
끝까지 꼼짝 않고 남아 있는 돌씨를 며칠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는 형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돌씨들이 더이상 고집부리지 말기를, 아무리 기다려주어도 발아하지 못하여 이름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씨앗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일이면 눈이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다. 이제부터는 ‘우수 뒤 얼음같이’ 슬슬 녹고 풀려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우는 봄이 올 것이다. 아니, 절기상 봄은 와 있다. 음력에서는 정월을 봄의 절기에 넣는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왔지만 아직 웅크리고 있는 겨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있는 중일 것이다. 올봄에는 부디 늦된 것들까지 모두 싹을 틔운다면 얼마나 세상이 환해질까. 그런 찬란한 봄을 기다려본다.
2.[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한국의 호킹들
“셀러브리티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딜 가든 나를 알아본다는 점이다. 선글라스와 가발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이돌이 아니라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유머 섞인 푸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숨겨도 휠체어까지 감출 방법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2004년 BBC 드라마 ‘호킹’에 이어 재작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란 할리우드 영화도 나왔다.
서울대 이상묵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2006년 미국에서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참담한 절망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점에서 호킹과 닮았다. 그제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그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가 화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다운 삶이란 좋은 집에서 잘 태어나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던지는 시련과 고난을 맞으며 꿋꿋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애를 통해 이 같은 삶의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는 데 만족합니다.”
이날 주인공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장애를 이겨내고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 5명과 졸업생 4명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장애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만 꿈과 희망마저 구속하지는 못한다”며 “불편하지만 장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들려주었다. 실제로 그는 휠체어에 묶인 몸이 되면서 의미 있는 삶,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긍정 마인드를 보면서 친구들은 “사고 날 때 머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을 다친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호킹은 말했다. “인간의 노력엔 어떤 한계도 없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뭔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생후 8개월 혹은 4세 때 찾아온 시련과 고통에도 ‘자기 앞의 생’에서 전력투구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호킹들이 바로 산 증거이다. 그들 앞에선 신체 건강한 청춘의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타령이 공허하게만 들릴 것 같다.
3.[동아일보][@뉴스룸/조종엽]'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전혀 꽃처럼 아름답지 않은’ 대학생활이 등장하는 화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tvN)의 한 장면. 수업 중 손민수(윤지원)가 과제 발표를 하자 같은 과 홍설(김고은)은 “본인이 작성한 것 맞나. 내가 오타도 수정 안 하고 보고서 판매 사이트에 올린 것과 같다”며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아동판 ‘레미제라블’에서 읽은 장발장과 은촛대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기자는 ‘홍설이 수업이 끝난 뒤 민수를 찾아가 자복할 기회를 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름다운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표절을 장려하자는 뜻이 아니다. 청년들 사이의 관계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공부 안 한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합심해 시험 때 ‘커닝’을 돕는 1980년대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드라마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지 말라고? 15일 ‘사회적 웰빙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학술대회(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주최)에서 나온 ‘한국 사회정신건강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한국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경제, 정서, 가사 지원을 누구에게 요청하느냐는 물음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답이 2004년보다 대체로 늘었는데 특히 20대에서 급증했다. 가족보다 친구, 동료, 이웃의 지원이 더 약화됐다는 결과도 나왔다.
청년들이 취업에 전념하느라 친구 관계도 소홀해지고, 고시원 옥탑 반지하에서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고립이 심화됐다는 뜻이다. ‘연결돼야 건강하다’(구혜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등)는 제목의 이 발표문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사람은 풍부한 사람에 비해 긍정적인 정서, 고통에서 회복하는 탄력성 등 정신건강이 나빴다고 밝혔다.
다음 발표문 ‘비교할수록 괴롭다’(양준용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를 보면 더 우울해진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과 주변의 처지를 많이 비교했다. 그렇다고 꼭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구소득이 적으면 비교 스트레스가 컸다.
취업 못한 서민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혼자 알바와 공부만 하며 지내자니 정신건강에 나쁘고, 동창회 등에 나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8개 국가 중 47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건강수명이 낮은 남미 국가들보다도 지수가 낮았던 것은 ‘사회적 지지’가 이처럼 취약한 탓이 컸다. 고독은 원할 때 즐겨야 달콤한 것. 불가항력적 고독은 처절할 뿐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정당, 시민단체, 취미 문화 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일은 비교 스트레스를 늘리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이 ‘청년당’이라도 만들어 여의도에 진출하면 뭔가 달라질까.
4.[중앙일보][이정재의 시시각각]왕이 ·차오량·쑹훙빙의 중국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홍문연(鴻門宴)의 칼춤을 말했을 때 내 머릿속엔 한 사람이 떠올랐다. 차오량(喬良) 준장. 중국 국방대학 교수이자 내로라하는 군사전략가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열 살에 『손자병법』을 탐독했다는 그는 ‘군사학의 천재’로 불린다. 그가 1999년 왕샹쑤이(王湘穗)와 쓴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군사이론’이란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이 전쟁의 수단이 되며 모든 영역이 전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테러, 첩보·외교, 금융이나 미디어도 유력한 싸움 수단이란 것이다. 일본은 2010년 센카쿠 열도의 중국 어선 충돌 사건을 이런 초한전의 전략에 따라 치밀하게 전개된 도발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 차오량의 지난해 강연 하나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이 얼마 전 소개했다. 골자는 이렇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은 군사적인 게 아니라 금융이다. 미국은 달러 강약 조절을 통해 타국의 부를 송두리째 뺏어왔다. 미국의 달러 패권으로부터 중국의 경제를 지키는 게 중국 군의 사활적 과제다. 중국 주변에서 (군사·분쟁) 위기가 일어나 국제 자본이 중국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10년쯤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그때 중국엔 쑹훙빙(宋鴻兵)의 『화폐전쟁』이 떴다. 수백만 부가 팔렸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됐다. 서방 자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낱낱이 파헤쳤다. 중국이 진짜 대비해야 할 것은 미국 자본의 공습이라는 게 골자였다. 사실과 음모론을 적절히 배합해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때문일까.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꽤 읽혔다.
그걸로 그만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후 쑹훙빙류가 수십·수백 권 쏟아졌다. 내 책꽂이에도 어림잡아 20여 권이 있다. 『기축통화 전쟁의 시작』 『자본전쟁』 『화폐전쟁, 진실과 미래』 『G2전쟁』… . 제목과 저자, 시기만 다를 뿐 대동소이다. 관변학자들은 물론 국영방송 편집부까지 동원됐다. 이때 중국은 굴기의 나라였다. G2란 말이 등장했고,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생산·소비·수출 같은 실물은 시간 문제다. 걸림돌은 금융이다. 금융만 되면 미국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인맥·네트워크가 실력인 금융은 폐쇄·단절의 대륙 중국이 결코 일거에 흉내 내거나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 바로 공포이기도 했다. ‘언제든 미국의 경제 핵무기 금융에 당해 나라 경제가 쑥대밭이 될 수 있다’. 이런 공포가 중국 지도부에 스멀스멀 퍼졌다. 어느 틈에 중국에서 정치·경제·안보는 이음동의어가 됐다. 그것이 미국에 대한 것이라면 특히.
이런 공포심이 과민 반응하다 보니 터져 나온 게 지난해 주가 폭락 때 주식거래 정지며 무차별 외환 개입 같은 초(超)시장적 정책이다. 조지 소로스의 위안화 공격에 “가만두지 않겠다”며 환구시보가 원색 비난한 것, 중앙은행 총재가 “투기 세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대륙에선 통화전쟁이 시작됐다. 하루 1000억 달러의 공방이 매일 벌어진다. 3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도 감당 못할 수 있다. 문을 닫아 걸어도 소용없다. 홍콩 증시를 통해 연결돼 있는 데다 13억이 1인당 5만 달러씩 들고나갈 수 있다. 이렇게 유출된 돈이 지난해에만 약 1조 달러다.
그러고 보니 왕이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에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을 이해는 하겠다. 그렇다고 홍문연의 칼춤에 빗대 한국마저 미국의 졸개 취급한 건 큰 잘못이다. 대국답지 못하다. 그런 중국이 밉고 서운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속 좁은 중국이 화풀이할 수 있다. 유커가 줄어들 수 있으며 이유 없이 반도체나 배터리 수출이 막힐 수 있다. 이래저래 중국으로 먹고사는 일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용의 등에 올라타지 않으면 어차피 한국의 미래는 없다. 건드리면 주인도 물어 죽인다는 역린(逆鱗)은 놔두고 용을 다루는 지혜를 익혀야 할 때다. 중국이란 용의 눈에는 정치·경제·안보가 이음동의어다.
5.[중앙일보][취재일기]근로자 현실 이해 못한 경총 회장
기자도 근로자다. 종종 야근을 하고, 때로 휴일 근무도 한다. 연차휴가를 다 쓰지 못해 수당으로 받는 해도 있다. ‘근로자’인 기자는 지난 15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의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박 회장은 연장 근무와 연차휴가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근로자들이 50% 더 주는 임금을 받으려고 연장 근로를 선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차휴가도 다 쓰지 않고 수당으로 받길 원하고요.”
그는 “연장 근로 수당 할증률을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수준인 25%로 낮춰야 한다. 또 쓰지 않은 연차휴가는 금전 보상을 금지하는 등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단의 질문이 쏟아졌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야근할 일이 생긴다. 연차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게 우리나라 근로 현실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박 회장은 “장시간 근로는 사용자가 강요한 게 아니라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라며 “연차휴가를 다 쓰면 직장에서 눈치 보인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노조가 투쟁해야 할 대상”이라고 답했다. 이어 “초과근무를 없애고 연차휴가를 다 쓰면 청년 고용률이 2% 늘어난다”며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한 푼 더 뜯어내려 할 게 아니라 아들·조카의 취업 기회를 뺏으면서 누리는 것을 50%만 양보하려는 고민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회장의 발언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이 들끓었다. 관련 기사엔 “이런저런 이유로 연장 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많다. 자발적으로 야근하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 “한국 경영자들의 입장이 박 회장과 같은지 되묻고 싶다. 오후 6시 칼퇴근하고 연차휴가 3주 다 쓰면 저성과자로 몰려서 회사에서 잘린다”와 같은 댓글도 많았다.
근로자가 뿔난 건 박 회장의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74명을 설문한 결과(중복응답) 응답자는 야근 이유로 ‘과도한 업무량’(5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업무 특성’(29%) ‘야근을 조장하는 회사 분위기’(22%) 순이었다. 2012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설문 에서 근로자는 연차휴가를 다 못 쓰는 이유로 ‘눈치 주는 회사 분위기’(42%)를 가장 많이 꼽았고, ‘과도한 업무’(18%)가 뒤를 이었다. ‘연차 보상비’는 12%였다.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박 회장으로선 노동개혁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란 점을 설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근로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하고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다. “근로자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통행’ 식 노동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오점만 남았다.
[출처] 2016년 2월 18일 속기·칼럼 자료|작성자 넷스쿨영등포속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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