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4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총선 50일 전에야 타결된 선거구 획정안
가슴을 태우던 선거구 획정 협상이 드디어 타결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을 불과 50일 앞둔 어제 4·13 총선의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각 253석과 47석으로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지역구는 7석이 늘어나는 대신 비례대표는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합의와 번복이 되풀이됐던 그동안의 협상 과정에 비춰 보면 여전히 마음을 놓기 어렵다. 여야 합의안을 넘겨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미세 조정을 거쳐 내일까지 최종 획정안을 국회로 다시 넘긴 후 26일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특히 자치구·시·군의 일부 분할은 불허하나 일부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는 단서조항이 발목을 잡을 소지가 크다.
이 획정안에 대한 합의는 진작 이뤄졌으나 테러방지법 등의 쟁점 법안과 연계 처리하자는 여당과 그럴 수 없다는 야당의 의견 충돌로 최종 타결이 마냥 늦춰져 왔다. 국회선진화법을 등에 업고 반대만 일삼는 야당도 한심하지만 야당의 법안 연계 전술로 번번이 골탕 먹던 여당이 똑같은 전술을 들고 나와 헌정사상 초유의 ‘선거구 실종’ 사태를 장기화시킨 것은 집권당답지 못했다는 질책을 면키 어렵다. 쟁점 법안이 아무리 중요해도 선거구 획정과 꼭 연계시켜야 했느냐는 의문이다. 그 바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선거연령 인하 등의 정치 개혁은 논의조차 못했다.
이번 선거구 협상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민낯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다.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작년 12월 15일부터 따지면 두 달도 훨씬 넘겼지만 일부 예비후보가 제기한 ‘부작위 위법 확인 및 선거구 획정 청구 소송’으로 국회가 법정에 피고로 서는 망신은 면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야가 선거구 늑장 획정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르는 것이다.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으로 지목된 19대 국회의 재판이 돼선 곤란하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두 눈 부릅뜨고 진짜 민의의 대변자를 골라내는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2.반쪽짜리 ‘문화가 있는 날’ 오명 벗으려나
정부가 ‘문화가 있는 날’의 법제화를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법제화를 통해 관련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미 그 운영 근거가 포함된 문화기본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발의됐다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번 상반기 중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약속에 기대를 건다.
한 달 중에서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시설의 문턱을 낮춰 국민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하자는 뜻에서 2014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이 ‘문화가 있는 날’ 제도다. 이러한 뜻에 따라 전국 영화관·공연장·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이날만큼은 입장료를 할인 또는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표방한 박근혜 정부의 대표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이 제도에 대해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민간이 운영하는 문화시설 중에서는 참여율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당초 내걸었던 의지에 비해 운영 실적이 초라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문화가 있는 날’의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해 올해 안으로 국민 참여율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도 저조한 실적에 대한 반성이라 여겨진다.
국민들이 문화를 쉽게 누릴 수 있도록 생활 여건이 조성된다면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재산이라 할 만하다. 요즘처럼 경제 흐름이 어렵고 사회 분위기가 각박해질수록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접함으로써 내면의 정서가 풍성해지는 한편 그 토양이 계속 확대된다면 평균적인 교양 수준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세계 속에 내세울 수 있는 ‘일류 국민’이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물론 제한된 예산으로는 정책 추진에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올해 배정된 정부 예산도 지난해와 비슷한 130억원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내실을 높일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기업·학교·종교계 등의 적극적인 참여도 요구된다. 이제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 마침 오늘이 2월의 ‘문화가 있는 날’이다.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동아일보]
3.체감경기 바닥인데 ‘경제부처 우수’ 평가 누가 믿겠나
2015년 정부업무평가 결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예산과 주요 경제정책 결정권을 틀어쥔 힘 있는 부처들이 최고 등급인 ‘우수’로 평가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3주년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번 성적표는 정부의 자기평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민간 전문가와 정책 수요자 600여 명을 평가에 참여시켜 객관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재부 등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4대 구조개혁 등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냈고, 국민편익을 증진했을 뿐 아니라 핵심 개혁 과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했다는 평가는 공감하기 어려운 자화자찬(自畵自讚)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한 3.8%에 턱없이 못 미치는 2.6%에 그쳤고, 수출은 전년보다 7.9% 감소했다. 작년 청년실업자 수도 11년 만에 최대치인 39만7000명이나 됐다. 한국갤럽의 16∼18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46%)고 답한 사람들이 첫손에 꼽은 이유도 ‘경제정책’이었다.
국민이 느끼는 평가와 정부 평가가 이처럼 동떨어진 원인은 평가항목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과제(50점), 규제개혁(20점), 정책홍보(20점), 정상화과제(10점), 기관 공통사항(±10점) 등의 항목과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고 대통령을 의식한 잣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국민의 인식을 바꾼 공을 들어 인사혁신처를 ‘우수’로 평가했다. 하지만 기존 퇴직자나 50대 현직 공무원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맹탕 개정안을 성공적이라고 보는 국민은 드물다. 보도자료 건수로 규제개혁 성과를 평가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장관의 방송 출연이나 신문 기고횟수로 정책 홍보성과를 매기는 것은 정부가 소통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얘기다.
우수 부처 소속 공무원들은 포상금과 상훈을 받겠지만 흔쾌히 박수쳐 줄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정부평가는 대통령과 코드를 잘 맞춘 부처가 아니라 국민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정책을 제대로, 잘 집행한 부처를 가려내는 것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4.총선 D-50 여야 기득권 수호로 끝낸 선거구획정
19대 총선 직전 선거구 획정 때 여야는 세종특별시가 신설됐으니 19대에 한해서만 국회의원 정수를 1명 늘려 300명으로 하기로 정했다. 선거구가 존재하지 않는 무법 상태가 50일을 넘긴 어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300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기준에 합의했다. 지역구는 246개에서 253개로 늘어나고, 그 대신 비례대표 의석이 54개에서 47개로 줄어든다.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는 19대 국회가 정원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299명으로 환원키로 한 당초 약속마저 어긴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0월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3 대 1에서 2 대 1로 줄여 표의 등가성 왜곡을 시정하도록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선거구에 2 대 1 인구편차를 적용하면 농어촌 선거구가 상당수 사라졌을 것이다. ‘농촌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결국 지역구를 7개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게 됐다. 그것도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의 텃밭인 경북과 호남에서 각각 두 석 줄이기로 합의해 양쪽 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2001년 헌재가 인구 편차를 4 대 1에서 3 대 1로 줄이라고 했을 때도 국회는 274석이던 의원 정수를 299석으로 늘려버렸다.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자꾸 국회의원 수만 늘린 꼴이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19대 의원들이 법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역력히 드러났다. 정파적 이해에 휘둘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작년 5월 공직선거법까지 개정하고도 여야는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여야는 헌재가 제시한 선거구 조정 시한을 어겨 기존 선거구를 모두 무효로 만드는 초유의 사태까지 초래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처음엔 야당이 비례대표 인원 축소에 반대하면서 비례대표 선출 방식 변경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나중엔 여당이 쟁점법안들과의 연계 처리를 고집하는 바람에 합의가 어려웠다. 4년 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선거구획정위가 여야 대리전을 펴지 못하도록 위원 구성과 의결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5.현역 의원 물갈이 없는 與 공천개혁 공허하다
여야의 공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도권 공천 후보자 면접 심사를 마친 새누리당은 어제부터 부적격자 선별 작업에 착수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살생부나 다름없는 현역 20% 컷오프(탈락) 명단을 개별 통보했다. 수도권 후보자 면접을 마친 여당은 어제부터 자격 심사에 들어가 도덕성과 개인 신상, 경쟁력에 문제가 있거나 해당 행위를 한 전력의 공천 신청자들을 우선적으로 배제하기로 했다. 여야의 이런 움직임은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연봉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의회 경쟁력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본회의 표결 참여 의원 비율도 64.8%에 그쳤고 ‘의회 효과성’이란 측면에서 27개국 가운데 26위를 기록할 정도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다르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비율이 80%를 넘나든다. 여야 모두 현역 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고되는 만큼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경우 내일 텃밭인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지역 공천 신청자에 대한 면접 심사를 진행한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직결되는 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벌써 물갈이 대상을 둘러싸고 잡음이 커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간에 신경전이 거세지면서 친박과 비박 간의 공천 전쟁으로 비유될 정도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더민주는 컷오프를 통과한 3선 이상 중진의원 50%, 재선 이하 의원 30%를 추가 물갈이 대상자로 삼기로 했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어제 선거대책위를 출범시킨 국민의당 역시 무기득권·무계파·무패권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인물난 때문에 구조적 물갈이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4·13 총선은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안보 정세를 둘러싸고 슬기롭게 국난을 헤쳐 가야 하고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우리의 활로를 찾는 인재를 뽑아야 한다. 권력 실세나 당내 지도부와의 인연, 사회적 인지도로만 후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가슴에 금배지나 달고 갑질에 이골이 난 의원들은 공천에서부터 배제해야 한다.
그동안 정치권은 총선 때마다 ‘공천학살’이나 ‘보복공천’을 통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인물 위주로 당을 꾸려 온 측면도 적지 않다. 이런 의원들은 당선 후 당 지도부 방침에 따라 거수기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년간 의정 활동을 꼼꼼히 평가해 국민의 눈높이에 미달하는 의원들부터 퇴출해야 한다.
현역 의원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을 토대로 옥석을 제대로 가려 공천을 해야 한다. 공천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면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갑질로 지탄을 받아 온 함량 미달의 국회의원들은 반드시 이번 기회에 솎아 내라는 것이 국민의 지상명령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6.콜버스 운행 지역 확대하라
정부가 심야 콜버스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택시 공급이 크게 줄어드는 시간대 13인승 승합택시를 기존 전세버스 공유 서비스인 심야 콜버스처럼 운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콜버스와 운영 방식은 다르지 않다. 심야 콜버스는 지난해 12월 1일 시범 운행에 들어간 이후 승차 거부를 일삼는 택시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택시보다 낮은 요금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가 콜버스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공유경제’로 대표되는 서비스 부문 신산업 육성이 국가적 당면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당연하다.
콜버스는 심야시간대 부족한 교통수단 공급을 늘려 소비자의 편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이미 효용성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은 상황이었다. 서울 택시는 전체 7만대 가운데 5만대가 개인 사업자다. 문제는 개인택시 사업자의 평균 연령이 60대를 넘어섬에 따라 심야시간대 운행률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콜버스 도입을 주저한 것은 택시와 버스 사업자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국토부가 이들에게도 운행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바람직스러운 해법이다.
사실 콜버스 형태의 교통수단은 전라북도가 지난해 6월 정읍시와 완주군에 처음 도입했다. 승객과 노선 수요에 탄력 대응하는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로 주민 호응을 이끌어 냈다. 충청남도 당진시도 ‘해나루 행복버스’라는 이름의 DRT 사업을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다. 11인승 승합차를 이용하는 일종의 콜버스 사업이다. 농어촌 지역 대중교통 이용자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고령화하는 데 따른 맞춤형 교통수단이다. 콜버스 허용 여부를 두고 유독 서울에서만 찬반 논란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제 혁파를 강조한다. 지난주에도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 내야 할 규제만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심야 콜버스 규제는 더욱 풀어야 할 것이다. 콜버스 도입의 실마리를 제공한 기존 사업자를 배제하는 것은 새로운 규제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콜버스 운행을 서울 지역에 국한하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수도권은 이미 행정구역 경계가 무의미한 공동생활권이다. 콜버스 공급이 수도권으로 확대된다면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난다.
[한겨레]
7.개성공단 상품 없는 ‘개성 패션 바자회’
롯데백화점이 개성공단에 입주한 파트너사들을 위한 ‘개성공단 패션 대바자회’를 19일부터 열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로 큰 피해를 본 기업들을 도와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응해 연 행사다. 황교안 총리가 21일 행사장을 찾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의 모범사례”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실제 파는 제품은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게 얼마 되지 않고, 개성공단 공동 브랜드는 아예 행사에 초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행사였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롯데백화점은 25일까지 본점과 영등포점에서 여는 이번 행사에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파트너사 34곳 가운데 14곳에서 30여개 브랜드가 참가한다고 밝혔다. 80억여원어치의 물품을 준비했고, 고액 구매자에게는 상품권을 주는 사은행사도 한다고 홍보했다. 행사 이름이 ‘개성공단 패션 바자회’인 만큼 개성공단 제품을 파는 것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그러나 매대에 진열한 상품 가운데 원산지가 개성인 제품은 열에 서넛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원청업체들도 개성공단보다 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더 많이 팔았다고 한다.
개성공단에서 재고품을 많이 갖고 오지 못한 기업들이 다른 곳에서 만든 재고라도 많이 팔아 자금을 확보하게 도와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은 개성공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성복 5개 브랜드도 이번 행사에 참여시켰다. 그러면서도 공단 입주 기업들이 개성에서 생산하는 공동 브랜드 ‘시스브로’나, 개성공단 제품을 한데 모아 파는 개성공단상회 쪽에는 행사 참여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피해가 크고, 판로가 없어 막막한 곳은 외면한 꼴이다.
갑작스러운 공단 철수로 입주 기업들은 지금 앞날이 아득하다.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기업은 존립을 걱정할 정도다. 물론 롯데백화점이 상품 대금을 평소보다 20일 앞당겨 지급하기로 하고, 행사 마진을 최대 20%포인트 인하한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하지만 피해 기업들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다면, 그에 걸맞게 행사를 잘 준비해야 했다. 파트너사가 아니라고 외면당한 기업에 상처를 남겼고, 피해 기업을 돕자는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에게도 혼란을 주었다.
[중앙일보]
8.대북 문제에 유연성 잃지 말아야 한다
23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에서는 북핵 문제 해법이 깊숙이 논의될 게 틀림없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이달 중 나올 전망이어서 이에 대한 양국 간 교감도 이뤄질 것이다. 그간 중국 역시 북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온 터라 양국이 제재 착수에 뜻을 모아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위와 폭이다. 누차 강조했듯 북한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 없이는 대북 경제제재는 무용지물이다. 중국은 북한이 완충지대가 아닌 감당 못할 짐이 됐음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노력에 발맞춰 물샐틈없는 대북 제재에 동참하기 바란다.
왕 부장의 방미와 관련,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그가 거론했던 평화협정 문제다. 그는 지난 17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병행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기에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평화협정 논의란 있을 수 없다는 게 한·미 양국의 일관된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북·미 간 비공식 접촉의 전말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인식과 접근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1일 “4차 북핵 실험 며칠 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비핵화 전제 원칙을 접고 북한과 평화협정 논의에 은밀히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회담 의제에 비핵화 문제가 포함돼야 한다는 미국 측 요구를 북한이 거부해 무산됐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도 “논의를 먼저 제안한 건 북한”이라고 토를 달았을 뿐 접촉 사실은 시인했다.
비록 북·미 협상이 불발에 그쳤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없다”고 외쳐온 오바마 행정부가 뒤로는 북한에도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란 사태를 해결한 오바마 행정부가 이제 북한 문제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북한이 거부해서 그렇지 만약 비핵화 논의 카드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뉴욕이든, 동남아 모처에서든 북한과 미국 관계자들이 만나 북핵과 평화협정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머리를 맞댔을 게다. 우리를 빼고 말이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채 밀실에서 이뤄지는 북·미 간 한반도 논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위험이 있는 까닭이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 철벽을 치고 ‘비핵화 없는 협상 불가’만 외칠 일이 아니다.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란 이름 아래 비핵화 없는 대화 거부를 고수하던 미국마저 필요하면 언제든 전략을 바꿀 수 있음이 이번에 재확인됐다. 정의와 명분보다는 실리와 국익이 우선시되는 곳이 국제사회다. 대북 문제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도 초라한 들러리 신세로 추락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9.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이래 첫 직권상정 케이스가 발생했다.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 없는 안건의 처리를 극도로 어렵게 하고 있어 19대 국회를 무능·무력한 식물국회로 만든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
정 의장은 “IS(이슬람국가)는 이미 우리나라를 십자군 동맹국, 악마의 연합국으로 지목하며 테러 대상국임을 공언해 왔고 최근 북한은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테러, 사이버 테러 등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며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을 국가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국가 비상사태로 본 것이다.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제출한 이래 15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와 폐기, 상정을 반복해 왔다. 유엔은 9·11사건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공조를 결의하고 이를 위한 법령 제정을 각국에 권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 상태다.
그동안 국가정보기관의 권한 확대가 인권 훼손, 시민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야당이 반대해 온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파리 테러에서 보듯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기술적으로 첨단화하며 잔혹성이 더해가는 사악한 집단의 조직적 테러를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용의자에 대한 정보수집권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것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두는 등의 제동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국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감시는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권력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기에 자기들이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야당은 오히려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국정원의 정보 능력 향상이라는 관점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하면 현실적으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의장 책임으로 직권상정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본다.
10.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과학수사의 전범 돼야
임신부와 영·유아 등 143명이 폐 손상으로 숨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사망 원인을 놓고 공방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2006년부터 불거진 의문의 폐질환 논란은 2011년 산모들이 급성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가습기 살균제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살균제를 폐 손상 원인으로 추정한 데 이어 2014년 3월에는 의심사례로 접수된 361건 중 168건에 대해 살균제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의료비 지원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된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대표 8명을 경찰에서 송치받은 뒤 지난달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압수수색 등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수사에 대해 검찰은 “비리 척결도 중요하지만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건은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100명 넘는 사람이 숨진 상황에서 피해자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관련 업체 처벌도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과징금 5000여만원이 전부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셈이다. 사법 처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를 떠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수사의 핵심은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업체들이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위험성을 알고도 제조·판매했는지다. 인과관계 성립 여부를 놓고 업체들은 “극히 낮은 농도의 독성을 흡입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고, 쥐를 이용한 질병관리본부 실험 결과를 사람과 연결시키는 건 곤란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검찰은 기존 실험 결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검찰은 유무죄나 살인죄 적용 등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인과관계와 사전 인지 등 실체적 진실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검찰의 과학수사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데일리안]21세기 청춘들이 '식민지' 윤동주에 열광하는 이유
최근에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백석의 ‘사슴’ 그리고 윤동주의 시집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몇백부 나가기도 힘든 시집이 몇만부씩 나가는 현상은 기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런 시집들이 많이 나가게 된 이유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시가 다시 부활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디카시라든지 SNS 시 등이 크게 눈길을 끌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들은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환경에서 크게 화제가 된 시들이다. 주로 재미와 기발함 그리고 위트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짧고 일상적인 내용이 사소하기까지 해서 이것을 시 작품이라고 할수 있느냐는 문제제기까지 있었다.
그런 점에 비해 ‘진달래꽃’이나 ‘사슴’,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작품들은 좀 더 고졸한 시의 맛이 더 한 작품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시집은 복각본이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복각본은 말그대로 예전 시집과 똑같이 발행하는 방식이다. 대개 고전을 다시 출판할 경우에는 표지나 안의 편집을 현대의 기호에 맞게 바꾸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세련되고, 시대를 앞서가는 면도 있다.
복각본은 이러한 트렌드를 정면으로 전복시켰다. 복각본은 원래 초판본의 표지 이미지나 글자체도 같다. 본문에는 심지어 한글과 한자가 그래도 혼용되거나 오늘날과 다른 그당시의 한글표기법을 그대로 발행한다. 대개 다른 책들은 읽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본문의 내용들을 현대의 표기법으로 바꾸는 것이 통례인 것과 달랐던 것이다. 독자들에게 더 궁금증을 일으키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본래의 모습은 기존의 책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원본의 아우라를 복제본으로라도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의 심리를 복각본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거꾸로 말하면, 그 복제본 자체를 소장하고 싶거나 그것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희소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20대들이 많이 구매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왜 20대들은 이런 복각본 책들을 구매하는 것일까.
그 가운데 주목해야할 시인이 바로 윤동주이다. 최근에 시집만이 아니라 영화 ‘동주’, 그리고 공연 ‘윤동주, 달을 쏘다’도 큰 성원을 받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윤동주가 오롯하게 20대의 감수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대만이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공감대를 더 얻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한다. 단지 부끄러움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더 울림을 낳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살았던 엄혹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윤동주는 식민지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시대적 상황 속에 처해 있었다. 맑고 순수한 20대의 감수성은 물론 그가 살아낸 세월의 모슴들이 지금의 20대가 살고 상황과 멀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상황이 어렵고 그 상황에서 고민하는 20대의 삶이 불투명할 수록 그것을 투영될 수 있는 것이 윤동주의 시집이고, 그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시 작품들과 삶을 분리 시키지 않고, 윤동주의 시와 삶 전체를 같이 대할 때 20대가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점들이 많다. 디지털 시대에 잘 볼 수 없는 아날로그 정서가 그를 다룬 영화나 공연 작품에도 충분히 담겨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과 가치를 온전히 지키고 싶은 청춘들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점은 윤동주에 대한 선호를 영원히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결국 시 작품이라는 것이 시인의 삶과 분리되어 존재할 때, 덜 공감대를 갖게 만든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복각본이 화제를 모은 것은 시안의 내용이 아니라 시집 자체가 갖고 있는 아우라의 흔적이었다.
시집이 나왔을 때 그 처음의 모습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아우라가 갖는 관점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복제본이라도 그 아우라의 흔적을 찾으려는 대중심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복각본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있다는 지적들도 이런 면에서 맞으면서도 틀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시 작품 자체가 아니라 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소망이자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고 이는 시를 버렸기 때문에 시를 얻은 것이 된다. 시 자체의 형식이나 본질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다.
2.[주간경향][편집실에서]거짓말 정부
‘정부는 거짓말한다.’ 미국 언론인 I F 스톤이 한 말이다. 언론인의 사명을 함축하고 있어 늘 가슴에 새겨 왔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에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새삼 이 말이 떠올랐다. 정부의 대응논리가 거짓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불법행위를 옹호하려다 보니 또 다른 거짓말을 하거나 억측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곤궁한 처지. 박근혜 정부가 그렇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 임금 70% 핵개발 전용’ 발언을 보자. 홍 장관은 지난 12일 핵무기 개발 전용 의혹과 관련해 “여러 관련 자료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은 그게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2094호 위반(허위 보고)이라고 지적했다. 대북결의안 2094호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도움이 되는 금융거래와 현금 제공을 금지하고 관련국에 제재 이행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홍 장관은 그 후 “(자료) 공개는 어렵다”(14일), “확증은 없다” “와전된 게 있다”(15일)며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18일 “여러 경로를 파악한 바”라며 앞의 해명을 뒤집고 애초 발언을 재강조했다. “학자적 양심” 운운하면서 오히려 당당했다. 무엇이 홍 장관의 말을 바꾸게 했을까. 그의 속을 알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홍 장관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밝힌 근거는 남북교류협력법 4항과 5항이다. 4항은 ‘통일부 장관은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협력사업의 정지를 명하거나 그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5항은 ‘정지를 명하거나 승인을 취소하려면 청문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홍 장관은 4항에 따라 조치를 취했지만 5항의 청문 절차는 밟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행위다.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의 통치행위’ 발언도 마찬가지다. 황 총리는 18일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위법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헌법 76조 1항은 대통령이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한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제가 있다.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76조 1항), 그리고 ‘처분과 명령을 한 때에는 국회에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야 한다’(76조 3항). 정부가 이 조치를 취했을 때 국회는 개회 중이었고, 정부는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은 불법행위인 셈이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낳은 비극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 안위와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려면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야 한다. 정부의 거짓논리로 되돌릴 수 없는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의 비극일 뿐이다.
3.[한국일보]캐나다의 영웅 토미 더글러스 별세
캐나다 병원에는 의료비 수납창구가 없다. 의료보험증만 들고 가면 누구든 ‘공짜’로, CT든 MRI든 수술이든 진료 받고 입원도 한다. 물론 ‘공짜’라는 건 오해다. 캐나다 시민들은 형편에 따라 의료보험료를 낸다. 중산층 이상 건강한 이들이 더 내고 덜 쓴 의료서비스를 저소득층과 장애인들이 덜 내고 더 쓰는 구조다. 부족분은 연방과 주 정부가 예산으로 충당한다. 비싼 진료를 했다고 해서 병원 수입이 느는 게 아닌 만큼, 의사의 판단 착오가 없는 한 과잉 진료도 없다. 대신 공중의료다 보니 큰 비용 드는 검사에 인색해서 부실 진료로 말썽을 빚는 예가 없지는 않다.
캐나다 병원에는, 다른 데선 생경한 ‘트리아지(triage)’라는 직분의 의료진이 있다. 내원한 환자의 증상과 병세를 살펴 응급과 대기를 분류하는 이들이다. 매달 많은 보험료를 내는 이라도 경미한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면 3,4시간씩 예사로 대기해야 하고, 월 10만원 미만을 내더라도 트리아지가 판단해 응급 환자라면 즉각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늦게 온 환자를 왜 먼저 진료하는지, 누가 항의해도 그들은 사정을 설명하는 법이 없다. 환자의 비밀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돈 많은 이들은 캐나다의 공중의료 대신 사비를 들여 이웃 미국으로 가서 비싼 양질의 진료를 받기도 한다.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도 장단점이 있고,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의료 복지가 세계 최고로 평가 받는 까닭은, 적어도 가난 때문에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못 받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포괄적 공중의료체제의 기틀을 닦은 이는 전 서스캐처원 주 수상(1944~61년 재임) 토머스 더글러스(ThomasDouglas, 1904~1986)다. 영국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1910년 캐나다로 이민 온 그는 어려서 골수염을 앓았다. 난치병의 가장 경제적인 치료법은 다리 절단이었는데 당시 한 의사가 의대생들에게 치료ㆍ수술 과정을 견학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무료로 진료, 다리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사민주의 정치인으로서 공중의료정책을 설명하며 그는 저 체험을 언급했다. “어떤 아이도 부모의 경제력에 자신의 다리 혹은 생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수입 감소를 염려한 의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스캐처원 주는 포괄적 공중의료정책을 도입했고, 그 정책은 66년 캐나다 전역으로 확대 시행됐다.
2월 24일은 캐나다 국민이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꼽는 토미 더글러스의 기일이다.
4.[동아일보][송평인 칼럼]박근혜는 속고, 시진핑은 웃은 3년
박근혜 대통령은 내일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일 뒤 취임 3주년을 맞는다.
북한은 3년 전 두 정상이 취임하기 직전 3차 핵실험을 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결연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통과에 찬성했다. 올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핵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유엔안보리 제재가 논의되고 있다. 중국은 뒷문을 열어놓고 결국 찬성할 것이다. 완벽한 기시감(旣視感)이 3년이란 시간차를 잊게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변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중국이 변했다고 주장한 이들은 중국의 본심을 드러낸 작지만 중요한 해프닝 하나를 간과했다. 중국 공산당교 기관지 ‘쉐시(學習)시보’의 덩위원(鄧聿文) 부편집장이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했다가 직위에서 해제됐다. 이번에는 덩위원같이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시진핑 집권 3년 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다면 이것이 변화다.
한중 수교와 북핵의 역사는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했고 북한은 이듬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한국은 한중 수교 이후 굴곡이 있었지만 대체로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길을 걸어왔다. 지난해 중국 전승 70주년에 서방 지도자들의 불참 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선 것은 한중 관계의 정점이었다. 한국의 보수 정권마저 한미 관계의 균열을 감수하더라도 중국과 협력하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핵이 아니라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가 걱정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중국만큼이나 한국도 바라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이 북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는 발상은, 그것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중국에도 한국에도 유익한 것이다. 시진핑은 이미 손안에 쥔 확실한 것(북한)을 놓으면서까지 새 것(미국에도 중국에도 치우치지 않은 통일 한국)을 추구할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은 잔인했지만 ‘사기’와 ‘자치통감’을 끼고 살 만큼 역사적 안목이 깊었다. 프랑스 파리 유학파인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의 통찰력으로 공산주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갔다. 시진핑에게는 그런 역사적 안목이나 통찰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이다. 자기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후광으로 칭화대에 들어갔다. 관료로서 승승장구한 것도 태자당의 인맥 덕분이다.
시진핑은 안보에 관해서는 아주 보수적이다. 칭화대 졸업 이후 국방장관 부관으로 3년 일한 이후 군 관련 일을 계속 해왔다. 중국의 ‘핵심 이익’, 즉 주권과 영토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센카쿠 열도, 스프래틀리 군도, 파라셀 군도에서 강도를 높여온 도발을 상기해 보라. 한반도의 군사적 완충지대 북한을 쉽게 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북한을 6·25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린 혈맹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장쩌민 이래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이다. 시 주석은 2022년까지 집권한다. 그를 앞으로도 7년을 더 상대해야 한다. 7년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난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 미몽(迷夢)에 잃어버린 20년’이란 칼럼을 통해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 줄 것이라는 미몽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중국 지도자들의 노회한 페인트 모션에 속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처럼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그 결과 너무나 중요한 3년을 허비했다.
중국은 이번엔 평화협정을 들고 나왔다. 슬슬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할 태세다. 우리로서는 평화협정을 지금 논할 아무런 실익이 없는데도 평화협정에 호응하는 이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평화협정은 한미일 동맹으로 북한과 중국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본 뒤에도 북핵 저지에 실패하면 그때 가서 검토하되,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상반된 옵션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검토할 일이다.
5.[중앙일보][양선희의 시시각각] 혼자 살 준비가 됐나요?
그들 노부부가 사는 집은 현관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아내, 왼쪽은 남편의 구역이다. 그들이 함께 식사하는 건 기념일에 자녀들과 함께하는 외식 정도다. 서로 생활에 간섭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부부는 40년쯤 살아도 타인이다. 간섭하고 기대할수록 갈등만 깊어진다는 걸 깨닫고 환갑 때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타인으로 살자고 남편과 합의했다. 그 이후 인생이 훨씬 쿨하고 평화로워졌다”고 했다. 서로 부대낀 세월만큼 닮아가는 이상적인 부부도 많지만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부부도 많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훌쩍 앞서는 건 그래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미 대세다. 네 가구 중 한 가구(27.1%)가 1인 가구라는 통계뿐 아니라 이들처럼 한집에 살아도 따로 사는 정서적 싱글족도 많다. ‘혼자 잘 사는 법’을 찾는 건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혼자 사는 지인은 “요즘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은 1인 가구를 처량하고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려는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를 대변한다”고 했다. 정말 혼자 살면 외롭고 불행할까? 서울연구원의 1인 가구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힘들다(51.2%) 등의 어려움을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절반 가까이 혼자의 삶에 만족(48.2%)한다고 답했다. 불만족은 6.2%였다.
그는 또 “우리 사회 시스템은 1인 가구에 비우호적”이라고 했다. “싱글족이 세금도 더 많이 내는데 사회 시스템은 시대착오적이다. 한 예로 관공서들은 왜 그렇게 등기우편을 부치는지 모르겠다. 평일 낮시간에 집에서 어떻게 우편물을 받나. 아직도 사회 시스템은 엄마가 낮에 집을 지키는 시대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1인 가구 정책은 거의 없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부터 1인 가구 지원조례를 만든다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 감도 못 잡는 실정이다. 1인 가구의 45% 이상이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빈곤과 주거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만 있을 뿐이다. 가족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사회적으론 준비가 안 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은 1인 가구를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1인 가구는 연령대, 수입 규모, 혼자 사는 이유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대응방법도 다양해야 한다. 비슷한 이해관계의 소규모 집단을 상대로 한 민간 차원의 접근은 그래서 유용하다. 프랑스에서 2003년 폭염으로 1만7000명의 독거노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등장한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사는 ‘코아비타시옹’도 민간단체 활동으로 시작됐다.
최근 1인 가구 대상 사회운동은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이 주류다. 싼 주거공간 확보를 위한 공동주택운동도 1인 가구들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뒷받침하는 형태로 발전 중이다. 실제로 1인 가구는 이웃과 연대한 기초적 돌봄이 없으면 고독사 등 각종 사회문제로 연결될 우려가 크다. 한데 활동가들은 "인내와 사랑, 간섭과 기대감 같은 가족주의적 관계에 익숙한 우리 문화가 타인과 함께 사는 생활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대상 공동주택을 운영하는 민간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임경지 대표는 “타인과 살 때는 자신의 불편과 이해관계를 드러내 놓고 토론하는 민주적 과정이 중요하고, 감정이 배제된 느슨한 공동체로 부대끼는 장면을 줄여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1인 가구 연합에는 갈등을 조정하는 외부의 조정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타인과의 삶은 가족과의 삶과는 다른 규칙과 태도, 가족주의와 충돌되는 가치의 습득을 요구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부터 관계를 지탱하는 인프라까지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한다는 거다. 1인 가구가 중심인 사회에서 살려면 ‘타인과 잘 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가족 중심에서 타인과의 삶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변곡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더 연구하고 대책을 찾고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출처] 2016년 2월 24일 속기·칼럼 자료|작성자 넷스쿨영등포속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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