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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더민주 ‘컷오프’ 정치권 변혁 기폭제로

더불어민주당이 현역 의원 10명을 4·13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5선의 문희상 의원과 4선의 신계륜 의원, 3선의 유인태 의원과 노영민 의원이 포함됐다. 문 의원과 유 의원은 참여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지냈다. 노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의 측근이다. 역시 ‘컷오프’에 포함된 김현 의원은 춘추관장을 역임했고, 임수경 의원도 대표적 운동권 출신 친노 인사다. 더민주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은 비판받아 왔던 친노패권주의를 불식하는 차원을 넘어 새누리당은 물론 국민의당에도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결코 과장은 아니라고 본다.

더민주는 애초 현역 의원의 20%를 탈락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지역구 의원 21명과 비례대표 4명 등 모두 25명이 대상이 돼야 했다. 하지만 탈당과 불출마 선언이 늘어나면서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의 설명이었다. 한편으로 탈락 의원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내용에서는 애초 관측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물론 공천 배제가 결정된 의원 중에서도 탈당하고 국민의당으로 옮기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을 고민하는 의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사실상의 ‘정치적 사망선고’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몇몇 중진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민주의 결정은 정치 개혁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를 수용했다는 것이 일반 정서다. 그럼에도 공천 개혁에 동참해야 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문제의식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장은 “거기는 무식하게 대놓고 싹둑 잘라 버린다. 우리는 하나하나 솎아 낸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국민의당 김정현 대변인도 “이런 식의 잘라 내기가 정당 정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며 평가절하했다고 한다. 국민이 기대하는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19대 국회는 헌정 사상 최악의 무능 국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대 국회에서는 공천 단계에서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더민주도 아직 끝이 아니다. 3선 이상 중진의 50%와 초·재선 30%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력 평가에서는 더욱 냉정한 ‘컷오프’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공천 주도권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멈추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공천에서부터 개혁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 “국민안전처에 테러정보 수집권” 주장 난센스다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으려는 야권의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어제 사흘째 이어졌다. 그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 동안 발언하는 진기록을 세우는 동안 이를 주도한 이종걸 원내대표는 회의장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이로 인해 테러방지법은 물론 오늘 공직선거법 처리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필리버스터를 합법화한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한 ‘정치쇼’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려다가 자칫 선거구 획정이 지연돼 4월 총선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될 판이다.

야당 의원들이 한국판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우려는 듯 경쟁적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지만, 테러방지법은 박근혜 정부가 원조는 아니다. 2001년 알카에다가 저지른 9·11테러 이후 대다수 국가들이 유사한 내용으로 입법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국가정보원에 대테러센터를 두는 테러방지법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테러방지법을 추진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더민주가 집권 시절과 정반대 논리로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국내 정치 개입과 수사권 남용 등 국정원의 원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여야가 그간 협상에서 대테러센터를 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합의한 것도 그런 우려를 고려한 결과다. 국민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한 대테러 인권보호관 신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테러정보 수집권을 국민안전처에 주자는 더민주 측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신설 부처인 국민안전처에 현행 국정원 수준의 정보 수집 능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어제 더민주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국정원의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감시·감독할 수 있는 일정한 장치가 마련되면 법안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상설 전임위 전환을 요구하면서다. 작금의 야권 필리버스터에 대해 부정적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일종의 ‘출구전략’을 마련한 제안이라면 다행일 게다. 여야가 권한남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제도 도입에는 합심해야겠지만, 정보기관의 전비(前非)를 부풀려 존재 이유 자체를 부인해선 안 될 것이다. 특히 야권은 47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라는 정치게임에 대해 국민 일각에서 잠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두고 마치 총선 승기를 잡은 양 착각해선 큰코다칠 수 있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3. 대북 강경 제재안 비핵화 실현으로 이어져야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 초안에 합의했다. 유엔 안보리는 오늘 회의를 열어 결의안 초안을 논의한 뒤 이달 안에 대북 제재 결의안을 최종 채택할 방침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대북 제재안은 중국의 북한 광물 수입 중단과 중국 은행들의 대북 금융거래 차단 등이 포함된 것으로 북한의 돈줄 차단에 초점이 맞춰졌다. 항공유 공급 중단을 비롯한 원유 공급 제한과 북한 선박의 국제항구 접근 제한 등 해운 제재, 북한 항공의 유엔 회원국 영공통과 금지 등이 망라돼 있다. 그동안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나 대북 금융거래 차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제재안을 포함해 역대 어느 대북 제재보다 강력하고 실효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북 제재 결의안이 발효되면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뻔한 상황이라 안보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달 6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 달 보름 이상 갑론을박을 벌였던 대북 제재안이 최종 합의됨에 따라 이제 국제사회는 실효적인 실천 여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이에 대한 응징으로 채택한 숱한 대북 제재안들이 종국적으로 실패했던 이유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수출 가운데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90%에 이르는 상황에서 중국이 직접 북한을 압박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북 제재 효과를 높이려면 한국과 미국의 단단한 공조를 지렛대로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실천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질서를 좌우하는 미국과 중국이 북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쳤던 외교전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북핵·미사일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대국의 국가 전략에 따라 우리의 국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우리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주한 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등 초강경 대북 전략에 착수했지만 미국은 “비핵화만 되면 사드를 배치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충격을 줬다. 입을 맞춘 듯 미국은 사드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 발표 예정 20분 전에 연기를 통보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안보 주권 차원의 결정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외면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추궈훙 주한 중국 대사 역시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며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 힘이 지배하는 국제 외교의 현주소다.

북핵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외교가 유연하고 전략적이지 못하면 한반도는 냉전 시기 강대국의 대결장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역학 관계가 얽힌 한반도 정세를 풀어 가려면 자제력을 잃지 않고 상황을 주도하는 냉정한 자세가 절실하다.

[동아일보]

4. 더민주 김종인, 햇볕정책과는 다른 대북정책 내놓아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어제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았던 시점의 햇볕정책은 유효한 대북정책이었으나, 핵을 보유한 지금 대북정책은 진일보해야 한다”는 ‘광주선언’을 발표했다. 호남과 중도층을 겨냥해 “낡은 과거와 과감하게 단절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호남에서 제2, 제3의 김대중(DJ)으로 자라날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 ‘호남불가론’이 사라지게 하겠다는 각오는 국민의당에 밀리고 있는 호남에 대한 구애(求愛)다.

더민주당은 4월 총선에서 호남에서는 안철수 의원 등이 이끄는 국민의당과 혈투를 벌여야 한다. 피차 호남 선거에서 실패하면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는 후보 단일화 같은 야권 연대가 안 되면 새누리당 및 국민의당과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중도층, 나아가 개혁적 보수층을 공략하지 않고는 승산이 낮다. 

선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실천이 따라야 한다. 김 대표가 진정 북한 핵에 대한 우려에서 햇볕정책의 종언으로 간주되는 ‘대북정책의 진일보’를 언급했다면 우선 더민주당이 그간 북을 두둔했던 행태부터 반성해야 옳다. 북의 대남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에 분명한 어조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북한인권법 처리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당장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테러방지법 처리에 협조해야 한다. 북핵에 맞서는 햇볕정책의 대안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민주당이 낡은 과거와 단절하고 대안정당이 되려면 당에 깊숙이 뿌리 내린 친노 패권주의와 운동권 체질의 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결과가 민생과 경제, 안보 관련 입법의 발목잡기로 나타났다. 낡은 체질 개선은 구호가 아니라 사람을 바꾸어야 가능하다. 더민주당이 그제 컷오프(공천 배제) 대상 현역 의원 10명을 발표했지만, 정작 정청래 의원처럼 진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을 일삼거나 운동권 체질에 찌든 인사들은 대부분 빠졌다. 

김 대표 체제의 더민주당은 3선 이상 중진 50%, 초·재선 30%를 대상으로 정밀심사를 벌여 추가로 공천 배제자를 가려내겠다는 각오다. 어제 운동권 출신의 범친노(친노무현)로 분류되는 광주 북갑 강기정 의원 지역을 전략공천지역으로 정해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공천혁신’이 아니라 ‘공천쇼’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것이다.

5. 초등 1, 2학년 영어수업 금지가 옳다는 비현실적 헌재

헌법재판소는 어제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영어 과목 개설을 금지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고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고시는 영어 과목에 대한 사교육의 지나친 과열을 막기 위한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초등학교 3∼6학년에게는 영어 과목을 인정하고 있어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2013년 교육부는 초등교육과정 고시에 1, 2학년 과목 중 영어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1, 2학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하는 서울 영훈초 등에 2014년부터 수업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영훈초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재판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내려진 헌재 결정이지만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 과목 금지가 사교육 과열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판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적잖은 학부모들이 이미 유치원 때부터 자녀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다시 영어를 배운다. 초등학교 1, 2학년에서만 영어 교육을 금지하면 학교 밖에서 영어 교육을 시키게 된다.

초등 1, 2학년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곳은 대부분 사립학교다. 공립초등학교는 수업료를 한 푼도 내지 않지만 사립초등학교는 분기당 85만∼170만 원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공립초등학교보다 영어 교육을 훨씬 잘 받을 수 있고 사교육으로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는 돈이 덜 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공교육 체계하에서 한글을 처음 접하는 시기로 이때 영어를 배우면 한국어 발달에 장애가 올 수 있다는 헌재의 판단도 전제부터 비현실적이다. 오늘날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한글을 처음 접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외국에서 이중언어(bilingual) 초등학교가 많은 걸 보면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운다고 언어 장애가 오는 것 같지도 않다. 학부모의 선택에 맡겨서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데일리]

6.평균 2400만원씩 빚 떠안은 국민들

가계 빚이 마침내 1200조원대를 넘어섰다. 가계신용 잔액이 지난해 말로 1207조원을 기록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발표다. 이를 우리 전체 인구 수인 5000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2400만원씩 빚을 지고 있다는 계산이다. 4인 가구로 따진다면 가구당 평균 1억원에 가까운 빚더미를 깔고 앉아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가 진작에 12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지만 공식 수치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도한 빚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하면서 경제 전반에 부담을 끼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찮게 여기기 쉬운 가계부채가 자칫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뇌관으로 불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물론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고음이 제기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벌써 몇 해 전부터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거듭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빚으로 경기를 떠받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가계부채가 늘어날수록 경제 흐름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계부채가 지난 1년 사이에 지나치게 늘었다는 점이다.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말 1085조 3000억원에서 1년 사이에 사상 최대인 121조원 규모나 증가한 점만 봐도 그렇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율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빚 폭탄’이 팽창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취약한 경기의 숨통을 짓누르게 된다.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의 3% 경제성장 달성 목표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데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와 이에 따른 주택담보 대출규제 완화 탓이 크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의 아파트 소유자 10명 가운데 7명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저신용자들에 대한 위험성 대출을 중점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관리 대상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부동산 정책으로 내수를 부양하기보다는 수출 확대 등 경제활성화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7.급증하는 노인진료비 대책 있는가

노인 진료비가 갈수록 우리 사회에 큰 부담으로 다가서고 있다. 노인 연령층이 급속히 늘어나는 이상으로 노인들의 진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5년도 진료비심사 실적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건강보험 가입자는 모두 622만명으로 인구의 12.3%에 이르지만 이들의 진료비는 21조 4000억원으로 전체의 36.8%나 차지했다.

지난해 노인 가입자는 3.6% 늘었으나 노인 진료비는 10.4%나 뛰어 전체 증가율 6.4%를 크게 웃돌았다. 2010~2015년의 추세에서도 노인 가입자 비중은 2.1%포인트 올랐으나 노인 진료비는 5.2%포인트나 치솟았다. 이에 따라 1인당 노인 진료비는 지난해 344만원으로 전체 평균(115만원)의 3배였고, 특히 70세 이상의 진료비는 392만원이나 됐다. 이쯤 되면 혜택은 별로 못 누리면서 보험료로 매월 수십만원씩 내야 하는 청장년층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노인 가입자와 진료비 증가는 국제적 현상이지만 우리처럼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의 경우에는 얘기가 또 달라진다. 한국은 2000년 노인인구 비중 7.2%로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데 이어 2017년 14.0%로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8%로 초고령사회에 각각 진입할 전망이다. 노인인구 비중이 40%선까지 오르는 2060년에는 노인 진료비가 올해 나라살림 규모(386조원)에 육박하는 337조원까지 불어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추정도 나와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잖아 노인 진료비가 건강보험 재정은 물론 국가 재정에 대재앙으로 떠오르며 세대 충돌을 유발할 게 뻔하다. 국가 차원의 노인건강 증진 대책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미 2009년에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이 펼치는 다양한 노인정책은 우리에게 훌륭한 참고자료다. 노인들 스스로도 노력해야겠지만 정부도 이들이 운동·금연·절주 등을 통해 건강한 노후를 누리도록 유도하고 미국의 메디케어 같은 노인의료지원제도 도입도 적극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앙일보]

8. 당사자도 모르는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인권침해

당사자에게 통지하지 않고 카카오톡 서버에서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데 대해 위법하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이번 결정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인터넷 메신저 압수수색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김용규 판사는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대학생 용혜인(26)씨가 자신의 카카오톡에 대한 검경의 압수수색을 취소해달라며 낸 준항고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그제 밝혔다. 용씨는 2014년 5월 세월호 피해자 추모집회를 여는 과정에 위법성이 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대상은 이틀간 카카오톡 대화방 57개의 대화 내용이었다. 용씨는 1년 후 재판 과정에서 압수수색 사실을 알게 되자 취소 청구를 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김 판사는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시 ‘급속(急速)을 요할 때’는 피의자에게 알려주는 절차를 생략할 수 있지만 서버에 저장된 대화 내용과 계정 정보는 피의자가 은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급속을 요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카카오톡에는 내밀한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카오톡의 국내 월간 실사용자 수가 지난해 말 40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인터넷 메신저 이용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호흡하듯 메신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바일 시대에 수사기관이 사용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화 내용을 들여다본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A4 용지 88쪽에 달하는 용씨의 카카오톡 대화에는 이름만 올렸던 단체카톡방 대화나 용씨가 동생에게 ‘세탁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범죄 수사에 필요하다 해도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법 원칙이다. 이 원칙을 넘어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까지 넘나든다면 그것은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검찰은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명확한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


9. 미·중 강력 대북제재 합의…사드 전략적 접근을

미국과 중국이 24일(현지시간)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안에 합의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정찰총국·원자력공업성 등 핵·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관련 부서 및 주요 인물 30여 대상이 제재 목록에 추가됐다고 한다.

이는 기존 제재에도 포함됐던 거라 그리 새로울 건 없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투기용 항공유 공급 중단을 비롯, 석탄과 철광석 등 광물 수입 금지 등 전에 없던 강력한 응징수단이 상당수 포함될 거라는 사실이다. 핵·미사일 관련 부품의 선적이 의심되는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 항공기의 유엔 회원국 영공 통과 금지 등 다른 방안도 예사롭지 않다. 얼마나 철저히 지켜질 것인가가 여전히 문제지만 솜방망이 제재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킨 건 틀림없어 우리로서도 크게 반길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즉각적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 등 우리의 강경 대응이 한몫했을 게다. 부정적인 중국 내 대북 여론도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사드 배치와 중국의 강경 대응을 맞바꿨을 거라는 ‘미·중 빅딜설’에도 주목해야 한다.

“사드 배치와 대북제재는 별개 사안”이라는 게 그동안 되풀이돼 온 한·미 양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략적으로 얼마든지 연계해 다룰 수 있는 사안인 까닭이다.

미·중이 두 사안을 놓고 막후 협상 중이란 징조는 곳곳에서 감지돼 왔다. 존 케리 국무장관 발언부터 그랬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입장을 감안해 얼마든지 사드 배치에 유연해질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된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이 돌연 미뤄진 것도 중국 때문이란 관측이 나돈다.

이런 판에 우리만 앞뒤 보지 않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다 없던 일이 되면 그런 낭패가 없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을 쐈음에도 별 대응수단이 없어 결국 사드 배치 카드를 꺼내야 했던 정부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미·중 고공전 끝에 사드 배치가 유야무야된다면 얻는 것 없이 중국 인심만 잃는 꼴이 된다.

결국 사드를 들여오더라도 중국과의 문제는 미국이 맡아 풀게 하는 게 낫다. 사드 포대는 미국이 유사시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들여온다. 그러니 그 혜택을 직접 볼 미국이 중국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사드 배치를 처음으로 주장한 것 역시 주한미군 측이었다. 우리는 동유럽 내 미사일방어(MD) 배치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MD 계획에 반대했던 러시아를 다룬 건 배치국 폴란드·체코가 아닌 미국이었다.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미국이 사드 카드를 신중하게 다룰 분위기라면 우리 역시 이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옳다. 바람이 바뀐 줄도 모르면서 불로 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10. 갈등 봉합하고 세계 최고의 제주민군복합항 되길

‘21세기 청해진’이라 불리는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 해군기지) 준공식이 오늘 열린다. 1993년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23년, 2007년 강정해안으로 부지가 선정된 지 9년 만의 결실이다. 지난해까지 1조765억원이 투입돼 49만㎡(14.9만 평)의 면적에 잠수함 3척을 포함, 군함 20여 척과 15만t급 초대형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규모다.

제주해군기지는 물동 교역량의 99%가 해상교통로를 이용하는 한국의 남방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해양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한국 해군의 모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와 함께 아시아 최고의 크루즈 거점항인 중국 상하이에서 20시간 내에 도착 가능한 유일한 항구라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한·중·일 크루즈 항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 경우 2025년까지 1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크루즈 관광객 수용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준공에 이르기까지 제주해군기지는 평화와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과 일부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지금까지 찬반으로 입장이 갈린 친척들이 제사까지 따로 지낼 정도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강정마을에 남아 있는 소수의 활동가들이 여전히 반대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우리가 치른 비용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은 제주해군기지의 완벽한 성공밖에 없다. 미국 하와이, 호주 시드니, 프랑스 툴롱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자 휴양지인 항구들은 모두 대규모 군항이 함께 있는 민군복합항이다. 평화란 안보라는 반석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해군도 부산 제3함대 기지 건설에서 얻은 노하우를 적극 발전시켜 ‘오염 제로’를 위해 노력해 환경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많은 세계인이 새로 제주 민군복합항의 탄생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군과 지역주민, 국민 모두 합심해 세계 최고의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향해 힘차게 닻을 올려야 할 때다.


주요 신문칼럼


1.[이데일리][목멱칼럼]소셜미디어는 소셜한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해왔던데.”백화점 과장 영수(김인권 분)는 회사에서 상사 눈치, 집에서 가족들 눈치를 보며 격무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을(乙)이다. 백화점 옥상 플래카드를 손 보려고 올라갔다 실족해 죽게 된 그는 지옥행 티켓을 받게 된다. 하루 두 끼 인스턴트, 수면부족으로 ‘명백한 학대 행위’를 한 데다 뇌경색, 심근경색, 간경화 등 15가지 지병을 갖고도 건강을 방치한 ‘자발적 자살자’라는 게 이유였다. 24일 시작된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극본 노혜영, 연출 신윤섭) 이야기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 살았네”라는 영수의 말처럼 어쩌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학대’할 지도 모른다. 지난 1주일간 어떤 음식을 먹고, 몇 시간 수면을 취하였는지 모르는 채로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해 나가느라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더구나 스스로의 마음 상태까지는 꾹 눌러둔 채로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우리 주변 일상은 영수와는 정반대다. 화사하고 아름답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 화보에 나올 법한 풍경, 프로페셔널한 글까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산뜻해진다. 거래처 앞에 무릎을 꿇는 굴욕도, 상사에게 “잘 하는게 뭐냐”고 무시당하는 일도, 결혼기념일에 남편 상사의 상가에서 심부름을 해야 하는 아내 마음도 없다. 소셜미디어는 소셜(social), 즉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이용하는 소통 창구이기 때문일까. 소셜미디어를 자신의 약점 보다는 장점을 드러내는 장치로 여기는 것만 같다. 

소셜미디어의 ‘소셜’은 전통적 의미의 ‘사회적’이라는 뜻과 차원이 다르다. 소셜미디어 이전 ‘사회적인 사람’은 보통 양질의 사람들과 호의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는 사람을 뜻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전화를 걸어 친구와 시간 약속을 잡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 디폴트, 코드 등 기술적 요인은 친구 소식을 나에게 끊임없이 전달해준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알 수도 있는 친구’를 지속적으로 추천하고 ‘친구’가 봤던 콘텐츠를 이용자 타임라인에 보이게 하는 알고리즘으로 날마다 친구를 만나게 한다. 친구의 글과 말을 확인하라는 빨간 알림이 스마트폰에 실시간으로 반짝거린다. 

과연 우리는 그 친구들과 얼마나 사회적이며 얼마나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있을까. 암스테르담대 교수 반 다이크는 ‘연결성 문화: 소셜미디어의 비판적 역사’에서 소셜미디어의 사회성은 질(質)이 아닌 양(量)으로 전환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서 감정 표현은 오직 ‘좋아요’ 하나의 키로만 표시한다. ‘나빠요’를 표현할 수 없는 작동방식에서 ‘좋아요’는 결국 수(數)를 뜻한다. 이용자와 친밀한 관계이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든, ‘친구’로 동일한 가치가 주어져 연결된다. 친구 수가 많으면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산업적인 필요와 맞닿게 된다. 

물론 소셜미디어는 분명 일반인 목소리를 담을 그릇을 마련해주고 갑(甲)의 목소리가 아닌 을의 목소리를 모아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줄 공간이 있다. 그러나 연결성의 작동 방식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성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피로도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에서도 질적으로 풍부한 관계를 원하는 요구 덕분에 어라운드와 같은 익명 소셜미디어가 단기간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익명 소셜미디어에는 과거 소셜미디어에서 보기 어렵던 내용이 채워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새로운 사회성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럼에도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대화하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몇 해 동안 페이스북에서 날마다 소식만 봤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2.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어리석은 자는 묻지 않는다

의심나면 어찌하여 묻지 않을 수 있나.
묻는 것을 어찌하여 정밀히 하지 않을 수 있나.

의호부질(疑胡不質)
질호부정(質胡不精)
김낙행 질의잠(質疑箴) ‘구사당집’(九思堂集)

‘질의잠’은 ‘의심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김낙행은 의문이 나도 물을 생각을 안 하는 게 배우는 자의 병폐라 하고, 묻더라도 정밀하게 묻지 않는다면 제대로 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생기고 자세히 물으면 분명히 알게 되지만, 모르는 것을 쌓아 두거나 그냥 넘어가면 학문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천하의 의리와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음을 ‘어리석고 나약한 일’이라 하며, 어른뿐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모르는 것은 묻겠노라 스스로 다짐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을 곳이 있다면 참 다행한 일입니다.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나이나 신분은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묻기를 좋아해 누구에게라도 묻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지혜로워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묻는 것을 부끄러워해 모르면서도 아는 척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어리석어집니다.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지혜로워지는 일입니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70세 현역 임지순의 상상력

‘노벨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한국 물리학자’ 임지순 서울대 석좌교수(65)는 세미나에서 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졸면서 언제 발표를 들었을까 싶은데 질문 시간에는 가장 먼저 손을 드는 ‘기인(奇人)’이다. 임 석좌교수는 강연자에게 미안하다면서도 “내내 조는 건 아니다. 발표의 핵심 내용은 대체로 뒷부분에 나오고 앞부분은 재미가 없어서…”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임 석좌교수는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렸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경기고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학예비고사 전국 수석이었으며 본고사를 치르던 시절인 1970년 서울대에 수석 입학하는 실력을 뽐냈다. 그런 그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유학 가서는 기가 죽었다. 외우고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데는 앞섰지만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많은 미국 학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박사과정 때 ‘전산고체물리학’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했다. 1998년에는 탄소나노튜브를 여러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 특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후 수소를 고체 상태로 저장할 수 있는 물질구조를 발견하는 괄목할 성과를 냈다. 2011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학술단체인 미국과학학술원(NAS) 종신회원이 된 국내 첫 물리학자가 됐다. 주 6일 연구실을 지키면서도 시간이 아까워 욕을 먹을지언정 대학 보직을 맡지 않았다. 그는 가장 중요한 연구 덕목으로 창의성을 꼽는다.

경력으로 보면 공부벌레 같지만 경기고 시절 3선 개헌 반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다 정학을 맞았다. 대학 때는 계엄령과 위수령이 번갈아 내려져 전공 공부보다는 소설과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었다. 그는 폭넓은 독서가 깊은 생각을 이끌고 이는 상상력 발휘로 이어진다고 후학들을 안내한다. 어릴 때부터 현실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그의 연구는 실용적이다. 그는 3월부터 70세 정년이 보장되는 포스텍 석학교수로 옮겨 신소재 분야의 산학협력연구를 진행한다. 70세 현역을 꿈꾸는 그의 상상력이 활짝 필 날을 기대한다.


4.[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가상현실과 유령집회

‘젠장(Damn), 괴기스럽네요(it‘s kind of creepy).’ 22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진에 달린 댓글입니다. 당시 저커버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그는 이날 삼성전자 신제품 공개 현장에 연사로 깜짝 등장한 직후 현장 사진 3장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중 유독 한 사진에만 관심이 쏠렸습니다. 25일 낮 12시 현재 이 사진에 달린 댓글은 1만4626건. 나머지 사진 2장에 달린 댓글이 모두 합쳐도 400건이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입니다. 

화제의 사진 속 저커버그는 미소를 머금고 연단을 향해 청중 사이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들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상태였거든요. 

이 사진을 본 해외 누리꾼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VR에 빠져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도 몰랐다는 사실에 섬뜩함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한 누리꾼은 VR에 빠진 청중을 ‘좀비’로 비유했습니다. ‘미래는 망했다(The future looks fucked up)’라는 댓글도 있었죠. 이처럼 VR시대가 암울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댓글은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사진을 보자마자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미국 마블코믹스의 ‘엑스맨’ 캐릭터 ‘사이클롭스’가 떠올라 우스꽝스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누리꾼들이 괜히 호들갑을 떤다고 여겼죠. 하지만 찬찬히 댓글을 읽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마침 제가 그 사진을 본 날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령집회’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유령집회는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제한받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홀로그램 영상을 활용한 가상 집회입니다. 경찰이 유령집회에 대해 법률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나서자 누리꾼들은 “경찰도 홀로그램 물대포 쏘고 홀로그램으로 강경 진압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비꼬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이제 집회는 홀로그램으로 하면 되겠네”라며 유령집회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유령집회를 새로운 평화 집회 유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칼럼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런 평가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앰네스티 관계자는 “오히려 유령집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우려한 반응이었다”며 “유령집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커버그가 올린 사진 한 장과 유령집회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최근 각광받는 VR와 홀로그램 영상은 분명 다른 기술이고요. 하지만 그런 시대를 그려 보기에는 꽤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고민하다 문득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본 영화 ‘데몰리션 맨’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2032년, 남녀 주인공이 VR기기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저와 제 친구들은 매우 허탈해했죠.

20여 년 전 영화 속 장면은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VR를 활용한 성인 콘텐츠가 이미 시판 중이거든요. 한 페이스북 지인은 VR를 컬러 모니터에 비유했습니다. 컬러 시대에서 흑백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VR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는 얘기입니다.

다만 VR시대가 디스토피아일지 풍요로운 신세계일지는 결국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VR로 즐기는 영화나 게임은 무척 기대되지만 VR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집회나 시위를 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기스럽네요.


5.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길

길 ―김기림(1908∼?)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시인 김기림은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무곡원’이라는 이름의 과수원집에는 여섯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 유일한 아들이자 막둥이가 김기림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1910년대 함경북도 학성군, 지금 지명으로는 김책시의 한 집안에서 김기림이 얼마나 사랑받고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가 이 시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시에 잘 나와 있다.

어린 시절, 김기림은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다. 어머니의 상여는 언덕길을 돌아 사라졌는데 처음에 어린 아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몰랐기 때문에 기다렸다. 하지만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고 대신 다른 것들만 돌아왔다. 노을에 젖은 빈 마음이 돌아왔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만 열심히 돌아왔다. 어린 아들은 언젠가 어머니가 갔던 길로 내려와 제 뺨을 쓰다듬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결국 이 아들은 자라서 어떻게 했을까. 그가 언덕에서 만난 모든 의미들은 결코 답안지를 채워주지 못했는데 말이다. 길을 따라 떠날 수 있을 나이가 되자마자 떠났을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스스로 어떤 답을 찾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떠나는 그의 가슴에는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라는 보퉁이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이 보퉁이가, 기억이, 어머니가 어린 과수원집 아들을 시인 김기림으로 만들었다. 

이 시가 반짝거리는 이유는 한 시인의 탄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탄생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아픔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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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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