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정치가 싫다"는 유권자들의 목소리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아직 찍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과연 투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망설이는 경우다. 정치 불신이 초래한 결과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를 불과 열흘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 부동층이 4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어두운 전망까지 제기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가 국민을 외면했기에 벌어진 자업자득이나 다름없다. 여야 정당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했으며, 선거 공약을 내걸면서도 현실성 없는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 탓이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파벌싸움으로 일관했던 19대 국회의 빗나간 모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정치 혐오증을 불러온 것이다.
그동안 여야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니,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민심의 향배가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천만 하면 당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격도 없는 후보들을 마구잡이로 내세운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중앙당 차원의 내분과 잡음도 정치 불신의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각종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저마다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들의 소득을 높이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나 지금껏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공약으로 기대 수준만 부풀려 오히려 사회적 불만을 야기하기도 한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도 석연치가 않다. 후보를 단일화할 거면 도대체 신당에 왜 합류했으며, 정부 보조금은 무슨 명목으로 받았는지 명확한 해명이 따라야 한다.
선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지만 정치에 등 돌린 민심이 얼마나 투표장에 얼굴을 내밀 것인지가 걱정이다. 정치가 국민들의 현실 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불신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표를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진정성이 요구된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민심을 하늘처럼 떠받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2. 車 부실정비·바가지요금 문 닫게 해야
부실정비에 바가지요금 등 자동차 정비업체들의 횡포가 심각하다.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고친 곳이 다시 고장이 나거나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하는 등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적정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위한 부품가격 공개, 대체부품 사용, 수리비 가이드라인 등의 정부 정책이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악덕업체는 퇴출시키는 등 실효성을 높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소비자원은 그제 자동차 정비관련 소비자 불만이 최근 3년간 매년 5000건 이상 접수됐으며 피해구제 신청은 738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피해구제 신청 가운데는 고장이 재발하는 등 ‘수리 불량’이 65.4%로 가장 많았다. 이른바 바가지요금인 ‘부당 수리비 청구‘도 24.4%나 됐다. 과도한 수리비를 요구하거나 동의 없는 임의수리 및 수리하지 않은 비용 청구 등이다.
부실정비와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폐해는 크다. 특히 수리를 맡긴 고객에 피해가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부실정비는 도로 위에 달리는 흉기를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리불량으로 인해 사고가 나면 정비 고객뿐 아니라 제2, 제3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바가지요금은 자동차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전체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정비업체들의 횡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터무니없는 부품가격과 과잉수리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가격 공개 의무제도나 순정부품과 비슷한 성능의 대체부품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대체부품제 등은 수입차 업체들의 소극적 태도로 별 실효성이 없다. 적정 공임 등의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다고 한다.
횡포를 뿌리 뽑으려면 상습 악덕업체는 끝내 문을 닫도록 처벌을 엄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재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형인 부품가격 미공개 업체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부품의 경우 병행수입 활성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경미한 사고 때엔 부품 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표준화된 수리비 기준을 만드는 것도 긴요하다. 무엇보다 정비업계의 자정노력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동아일보]
3. '한국형 양적완화' 총선공약으로는 부적절하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그제 ‘한국판 양적완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놓았다. 금리를 낮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며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인수해서 산업은행에 기업 구조조정용 실탄을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인 뒤 대출상환 기간을 장기로 바꾸도록 하는 방침도 내놨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돈을 찍어 경기 부양에 나선 것과 비슷한 고육지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의 공약은 존중하지만 통화정책에는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새누리당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담 경감을 위해 마련한 공약이라지만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발권력을 선거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부터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식’으로,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하나로 양적완화를 도입한 것과 ‘한국판 양적완화’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강 위원장은 무차별적인 자금 공급이 아니라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 자금 규모를 늘리되 용도를 정해 두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가 살아난 반면 일본 경제가 돈을 뿌려댄 만큼 살아나지 못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과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 시스템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될 만한 기업으로 돈이 흘러갔지만 일본에선 좀비기업으로 흘러가 구조조정만 지연시키고 있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한없이 미루고 있는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는 일본과 비슷해질 공산이 크다.
한은 이 총재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준금리 자체는 충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했고 어제는 “올해 성장률이 3%를 밑돌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리 인하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고 경제의 기초 체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의미다.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다. 정치적 논리로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미루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한국형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 유 부총리,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비책을 짜내야 한다.
4. 막장 공천에 대구 폭력사태까지, 정치혐오 부추기는 여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번 총선이 끝나면 뒷마무리 잘하고 사퇴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민공천제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100% 지키지 못한 것으로 당에 일대 혼란이 있었다”며 “당 대표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여당 대표가 ‘총선 후 사퇴’를 선언한 것은 막장 공천 후폭풍에 시달리는 한심한 여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김 대표의 임기는 7월 13일까지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려면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을 떠나야 한다는 당헌·당규에 따라 6월 중순까지는 물러나야 한다. 어차피 물러날 대표직인데 ‘당 대표 책임’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의 사의 표명은 친박(친박근혜)계가 어차피 당 대표 사퇴 요구를 할 것이므로 ‘선제적 방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 이어 대구를 찾은 김 대표에게 ‘옥새 보이콧’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 이재만 전 예비후보의 지지자들이 몰려가 위력시위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지자들은 김 대표에게 “대구를 떠나라” “자폭하라”는 구호와 함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김 대표의 차 앞에 드러눕거나 차 위에 올라타 경찰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대구 동갑에 단수 추천을 받은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 후보는 한술 더 떠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했다. “우리가 뽑은 박근혜 대통령이 많은 일을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 좌장인 최경환 대구경북 선거대책위원장도 어제 “나부터 친박이라는 표현을 않겠다”면서도 “대구는 박근혜 정부의 심장이다. 심장에 작은 구멍 하나 나면 결딴난다”고 했다. 새누리당 후보의 전원 당선을 촉구한 말이지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이다.
본보와 시대정신연구소 조사 결과 유권자 10명 중 4명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당 지지층이 많은 60세 이상 부동층 비율(37.2%)이 40대(33.9%)나 50대(33.3%)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막장 공천에 따른 정치혐오 현상으로 분석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어제 “지역에서 (후보자 간) 연대가 이뤄질 경우 당에서 적극적으로 연대 과정을 지원할 것”이라며 국민의당을 압박했다. 지지율이 열세인 국민의당에선 부정적이지만,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단일화 폭풍은 이번 총선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벌써 본선 레이스에 집중하는 야당과 아직도 공천 전쟁의 앙금을 털지 못하는 여당의 승부는 이미 판가름 났는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5.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 철저히 파헤쳐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지난해 말 법무부의 ‘사시 폐지 4년 유예’로 불거진 사시 존치 논란 이후 또다시 위기에 맞닥뜨렸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6주 동안 실시한 전국 25개 로스쿨에 대한 전수조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전수조사는 2009년 개원 이래 처음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그제 전수조사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촉구하고 나선데다 사시 존치를 희망하는 고시생들이 경북대 로스쿨의 입시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응급 처치만으로 감추며 버텨왔던 로스쿨의 상처가 7년 만에 결국 곪아 터지는 형국이다.
로스쿨 전수조사에서 밝혀진 불공정 입학 사례의 단면을 보면 과연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맞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원서의 자기 소개서에 ‘아버지가 재판을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부모의 신분, 직업을 밝히거나 이름까지 적기도 했다. 행정고시를 포함해 주요 시험에서는 부모의 지위를 공개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부정행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소개서를 쓴 지원자가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합격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면접의 기준도 갖추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선발한 곳도 적발됐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다분할 수밖에 없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자신의 저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통해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청탁전화 받은 경험이 많다. 청탁하고 다닌 교수도 아직 현직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로스쿨은 입학에서 취업까지 금수저에 너무나 완벽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인터뷰에서는 “사시였다면 꿈도 못 꿀 아이들이 법조인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로스쿨의 기형적인 민낯을 보여준 것과 같다.
로스쿨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곱지 않다. 입학과정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졸업 뒤 로펌 취업도 연줄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 탓이다. ‘금수저, 그들만의 리그’, ‘현대판 음서제’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이유다. 국회의원의 졸업시험 구제 압력, 취업 청탁 등 불미스러운 사건도 적지않았다. 교육부의 전수조사는 로스쿨 개혁을 위한 단초인 까닭에 결과대로 가감 없이 공개해야 한다.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함도 당연하다. 썩은 환부는 과감하게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이다. 로스쿨이 사는 길이 따로 없다.
6. 천문학적 재원 드는 선심공약 남발한 여야
선거 때마다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당과 후보들은 실현 가능성은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유권자들이 혹할 만한 공약만 골라 내놓고 사실상 표를 사들여왔다. 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니 마무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공약 이행률이 50% 안팎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다음 선거에 생색낼 목적으로 무리하게 공약을 이행하려다 보니 국고가 거덜나든 말든 ‘쪽지예산’이다 뭐다 해서 정부를 몰아붙이는 모습이 예산안 심사 때마다 반복돼왔다. 불요불급한 공약 이행에 돈이 쏠리면서 정작 민생 사업들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수출 부진, 글로벌 악재, 잠재성장률 추락 등 사면초가의 경제상황 속에 맞은 이번 총선이지만 여야가 내놓은 공약을 보고 있자면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살리기 등 겉으로 내건 구호는 그럴듯하다. 문제는 해법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공약만 봇물이 터진다. 여야의 공약대로라면 4년 내에 일자리 1100만개가 창출될 판이다. 매표(買票)용 선심 공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56조원, 더불어민주당은 147조 9000억원, 국민의당은 46조 2500억원이 소요된다는 분석까지 나와 있다.
새누리당은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대규모 재정투자를 약속하고, 이를 위해 금융 당국에 과감한 통화정책을 주문하겠다고 그제 밝혔다. ‘한국판 양적 완화’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한국은행의 영역을 침범하는데다 같은 날 정부가 밝힌 ‘재량지출 예산 10% 절감’ 등과도 상충할 소지가 크다. 재정 건전성 고민 없이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 투입만 약속한 꼴이다.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균등 지급’을 비롯한 더민주의 10대 공약 대부분은 막대한 재원 대책이 부실하다. 법인세 인상, 국민연금 기금 활용 등을 통해 복지공약 재원을 조달한다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중앙당이 이렇듯 선심성 공약 제시에 혈안이니 개별 후보들 또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허황한 개발 공약만 쏟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도로 건설, 국책사업 유치, 산업단지 조성 등 재원은커녕 도시계획조차 없는 식상한 공약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경제성 부족으로 이미 정부 차원에서 지워버린 대규모 SOC 사업을 무슨 수로 되살리겠다는 것인지 해저터널, 고속철도 건설 등 대선급 공약을 내건 후보들도 많다. 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되는 신공항 유치 등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후보들이 당선된다면 건전 재정을 좀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한정된 예산으로 그 질곡을 빠져나올 토대를 만들어야만 한다. 전문가의 올바른 처방전에 따르지 않고 민간요법식으로 예산을 남용하다간 경제 살리기는 고사하고 쇠락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2017년도 예산에서 14조~16조원을 절감하기로 했는데 이 같은 세출 구조조정이 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치권이 협력해야 한다. 여야의 공약도 한정된 재원을 투입해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돼야만 한다. 아무리 총선 국면이라도 무책임하게 선심 공약을 쏟아내선 안 된다.
[중앙일보]
7. 여직원이 결혼하면 사표 받는 금복주의 시대착오
한국은 15년째 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국가다. 지난해 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하다.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경제활동 여성을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는 탓도 크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말 혼인 장려를 포함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내놓았다.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 2020년까지 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무려 200조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그런데 이런 정부 대책에 역행하는 기업의 시대착오적 행태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구의 향토 주류업체인 '금복주'가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의 퇴직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분노한 여성들은 제품 불매운동 전단·스티커를 지하철역 등에 배포하고, 63개 시민단체는 불매운동본부까지 발족했다. 여성단체에 따르면 2011년 입사한 30대 사무직 여직원은 지난해 10월 "두 달 뒤 결혼한다”며 상사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축하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회사 측의 퇴사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 해 12월 결혼한 뒤로는 회사 눈치를 보는 동료들의 따돌림까지 받았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이 여성은 올 1월 회사 대표 등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구고용노동청에 고소했고, 결국 이달 10일 사표를 냈다.
여성단체들은 "금복주가 지난 58년간 여직원이 결혼하면 모두 퇴사시켰고, 지금도 10명의 사무직 여직원은 다 미혼자”라며 부당한 인사를 폭로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홈페이지에 달랑 '피해 직원에 사죄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는 여직원들이 결혼하면 모두 알아서 나갔지 해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교묘한 회사의 압박과 만행에 그동안 선후배 여직원들이 겪은 고초가 얼마나 심했겠는가.
현행 남녀고용평등(일·가정 양립)법과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대구노동청이 조사에 착수한 만큼 조속히 사태의 진위를 밝히기 바란다. 여직원을 홀대하는 기업이 있는 한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해소는 꿈도 꿀 수 없다.
8. 관광입국 컨트롤타워, 그랜드 플랜을 제시하라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큰 관광산업의 컨트롤타워가 신설된다. 정부는 그제 국무회의를 열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산하에 2개 국을 둔 관광정책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간 한국은 싸구려·바가지 관광이 판을 쳐도 방치될 만큼 관광정책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관광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의 총아로 떠오르는데도 유·무형의 관광 인프라가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는 얘기다.
13억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을 놓고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은 달랐다. 관광이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제조업까지 견인하는 차세대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정부 차원에서 2003년 관광입국(立國) 전략을 수립해 2008년 관광청을 설립하면서 관광산업에서 치고 나갔다. 지난해 일본이 1974만 명을 유치하면서 1323만 명 유치에 그친 한국을 크게 따돌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엔저(低)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같은 변명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관광입국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산업의 영역이다. 따라서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뒤늦게 신설하는 것은 무너진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른 시일 내 선진 외국 사례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관광 진흥을 위한 그랜드 플랜부터 짜야 한다. 한국은 일본에 뒤진 것은 물론이고 싱가포르·마카오 같은 경쟁 도시에도 크게 뒤져 있다.
중국은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를 반환받은 뒤 카지노 도시에서 복합리조트 도시로 탈바꿈시켜 왔다. 마카오 앞바다의 갯벌을 메워 만든 코타이 스트립 지역의 복합리조트가 대표적이다. 코타이 스트립에는 현재 세계 6대 복합그룹 업체가 들어와 신천지를 만들어 놨다. 카지노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도 복합리조트를 찾는 기업 고객과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돌파했다. 코타이 같은 곳이 중국에 더 늘어나면 한국은 유커를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영종도에서 이제 삽을 뜨고 있다. 그나마 3개 사업자 가운데 인도네시아계 중국 자본인 리포그룹이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사업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어 장밋빛 전망을 뒤집어 놓고 있다. 중국 화장품 업체 아오란(傲瀾) 직원 6000명이 인천 월미도에서 치맥 파티를 열고 5월에는 건강제품 업체 난징중마이(南京中脈) 사원 8000명이 서울을, 중국 무술협회 5000명이 청주를 찾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한류 드라마에 취한 유커의 방문이 계속될 거란 기대는 금물이다.
파리·뉴욕·홍콩처럼 한 번 방문하면 반복해 찾게 되는 매력을 가져야 관광이 산업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관광정책 컨트롤타워는 대형 국제회의·기업 인센티브 여행이 가능한 마이스(MICE) 산업이 지속 가능하도록 관광 인프라를 총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관광정책실 신설을 계기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통령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주길 촉구한다
[매일경제]
9. 경유차 규제 등 미세먼지 줄일 자구책 필요하다
짙은 미세먼지가 며칠째 하늘을 뒤덮고 있다. 서울은 이달에만 8일간 일평균 미세먼지(PM 10)농도가 '나쁨(81~150㎍/㎥)'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어제 시간당 평균 농도가 157㎍/㎥를 기록하자 김포·고양 등 6개 시·군에 미세먼지주의보를 발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상에 안정된 고기압이 머물고 있어 향후 2~3일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하니 답답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을 정도로 미세먼지는 건강에 치명적이다. 특히 입자가 작은 초미세먼지(PM2.5)는 자동차,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로 폐나 심장에 침투해 호흡기·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미세먼지는 중국 산업지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서풍을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3년 환경부는 대기오염 물질 중 30~50%는 국외에서 유입됐다고 발표해 나머지 50~70%는 국내에서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찾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의 대응은 마스크 쓰기, 실외활동 자제 등 한가하기만 하다.
환경부는 지난 24일 3대 주요 배출 원인인 자동차, 사업장, 생활오염원에 대한 미세먼지 감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친환경 자동차, 천연가스버스 보급 확산 등 방안이 담겼지만 미세먼지의 위험에 비해 강도가 느슨하기 짝이 없다. 미세먼지가 심각하면 차량 2부제 등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24시간 이상 주의보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로 기준을 높여 잡아 실시된 적이 없다.
대기질 악화는 경유차 증가와 연관이 깊다. 경유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화학반응을 거쳐 미세먼지가 된다. 국산차 중 경유차 비중은 2012년 27%에서 지난해 44.7% 증가해 가솔린차를 추월했다. 높은 연비와 고출력, 친환경 이미지 때문에 디젤차가 늘었지만 폭스바겐 사태로 '클린 디젤'의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클린디젤에 대한 환경개선 부담금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축소해야 할 뿐 아니라 대기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영국은 런던 시내에 노후 디젤차 운행 제한 구역을 설정하고 있고 프랑스는 경유 세제 혜택을 5년 내 종료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인도는 뉴델리시에 고급 경유차 등록을 잠정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조치를 명령한 바 있다. 환경부는 경유차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10. 가파른 노인 비중 증가 미리 대비해야 재앙 안돼
인구 구성에서 노인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니 걱정스럽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가 펴낸 '늙어가는 세계: 2015'라는 보고서를 보면 세계 총인구 중 현재는 8.5%인 65세 이상 인구가 2050년 17%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은 세계 평균보다 훨씬 심해 2050년 노인 비중이 35.9%로 일본 40.1%에 이어 두 번째 상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이 최근 낸 '한국의 사회지표' 보고서에서도 2060년 인구 구성을 보면 14세 이하 유소년은 전체 중 10.2%에 불과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은 40.1%로 4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인구를 나이별로 한 줄로 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중위 연령이 58세이고,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인 늙은 나라가 된다니 어둡기만 하다.
현재는 30~50대가 많은 항아리형인데 2060년엔 60세 이상에 더 많이 몰려 있는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급격하게 낮아진 출산율에다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수명 연장 때문이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빠르게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것이어서 곤혹스럽다.
문제는 노령화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경제적 변화다. 총인구 자체가 2030년쯤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든다. 15~64세인 생산가능인구가 전체 중 절반도 안 될 뿐 아니라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이 2060년 80.6명으로 불어난다. 일하는 인구 1.2명당 노인 1명씩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2024년부터 모자라기 시작해 2060년엔 900만명이나 부족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으니 심각하다. 노령화는 연금 노동 은퇴 등 많은 부문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니 정부는 물론 개인 차원에서도 미리 대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구 구성 변화를 막연하거나 느슨하게 추정하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설정해 빈틈없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데스크칼럼]노는 者의 승리..이경규에게 배우다
‘노는 중’. 한 친구의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의 제목이다. 11세 딸의 방문에 붙인 표시라면 보통 ‘공부 중’ 적어도 ‘휴식 중’이다. 신기하게도 친구의 딸은 놀고 있으니 건들이지 말라고 적어놨다. 페이스북 친구의 댓글도 넘쳐났다. ‘노는 것보다 공부가 쉬웠어요’ ‘아이의 센스가 좋네요’ 등등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댓글은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 분별과 절제를 아는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주말 한 명의 걸출한 방송인이 화제에 올랐다. 개그맨 출신 MC 이경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노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경규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을 선보여 1위를 하더니 이번엔 ‘낚방’(낚시방송)으로 1위를 따냈다. ‘마리텔’은 연예인이나 셀럽이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마리텔’의 대표적 아이템이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춤을 추기도 가면을 만들기도 작곡을 하기도 한다. 이경규는 별다른 재주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편안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경규의 이날 승리 비법은 배워볼만하다. 먼저 어떤 판이 깔리더라도 그 판에 휩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 유리한 분야로 판을 다시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에서 ‘나이 들면 누워서 하는 방송을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힘에 부칠 때마다 바닥에 드러누우며 ‘눕방’을 보이더니 평소 낚시광답게 스튜디오가 아닌 낚시터로 나갔다. “지금 스튜디오는 난리가 났을 거다. 내가 밖에서 뭘 하는지 모르지 않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낚시 베테랑답게 한 번에 두 마리의 붕어를 잡는가 하면 직접 라면을 끓이며 한때 하얀 국물 라면 ‘꼬꼬면’으로 히트를 친 ‘쿡방’ 원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또 다른 비법은 ‘노는’ 게 뭔지 안다는 데 있다. 이경규는 지난 1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예능계를 이끌어 온 대부로 소개됐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도 10년 만이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그가 오래 살아남은 비결은 ‘노는’ 맛을 아는 덕분이다. 많은 스타와 예능인들이 줄줄이 실패를 맛본 ‘마리텔’에서, 그는 그저 놀았을 뿐이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며 무리수를 두려고 하기 보다는 평소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잘해내야 한다는, 실패하면 추락한다는 두려움으로 요즘 현대인은 불행하다. 나이 60이 넘은 선배를 만나면 가끔 필자에게 아쉬운 게 많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놀지 못한 아쉬움이다. 논다는 게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는 말은 아니다. 놀다의 첫번째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는 뜻이다. 20대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30대는 젖먹이 아이 키우느라, 40대에는 그 아이 학원비 대느라, 그리고 50대에는 부모 봉양과 자신의 노후 걱정 하느라 바삐 살았다.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일과 삶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고 성공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일을 벗어나 재미있는 일에 잠시 빠지는 게 일, 나아가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이 곧 놀이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 일과 놀이는 병행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강박이었다. 시위 떠난 화살마냥 후회도 소용없다. 놀멘 놀멘 살지 못한 삶을 아쉬워해도 쓸모없다. 11세 소녀처럼 용기 있게 재미난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나는, 당신은 재미난 일을 한 적이 언제인가?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는,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을 어른이 되고 나면 잊고 만다. 이경규처럼 재미에서 일까지 뽑아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2. [한국일보][기자의 눈] 세월호 의혹 이대로 눈 감을 건가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채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남을까 겁이 납니다.”
28일부터 이틀간 열린 4ㆍ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지켜 본 한 유가족의 소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이 진상 규명의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보다 정치권과 여론의 무관심 속에 이대로 진실이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날 선 공방만 오갔던 1차 청문회와 달리 2차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과 의혹은 새로운 것이었다. 세월호 여객부 직원 강혜성씨는 승객들의 탈출을 막은 ‘선내 대기’ 방송이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지시였다고 폭로했다. 숨진 여객부 동료직원에게 누가 될까 검찰에서도 말하지 않은 ‘팩트’라며 유가족에게 사죄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기록에는 없던 내용이다. 선사와 국가정보원, 해경 등의 유착 관계도 재확인됐다.
조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사고 책임소재를 가릴 결정적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라며 만든 특조위는 힘이 없다. 예산이 정한 특조위 활동시한은 6월30일까지.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조사를 강제할 권한은 더더욱 없다. 강씨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청문회에 부른 청해진해운 전 대표가 끝내 출석하지 않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정신이 팔린 정치권은 세월호 문제에 도통 관심이 없는 눈치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해경 지휘부의 구조구난 작업이 적정했는지 확인해 달라’며 특조위가 제출한 특별검사 요청안을 지금껏 거부하고 있다. 야당 역시 손을 놓고 있긴 매한가지다.
이는 분명한 약속 위반이다. 여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당시 특조위에 수사ㆍ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 특검 요청이 가능하도록 합의했다. 게다가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도한 당사자의 양심선언까지 나왔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뒤바뀐 증언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특조위와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는 월권이나 과도한 떼쓰기가 아니다. 참사 2년이 지나도록 사고 원인 하나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볼 수밖에 없다. 한 여당 의원은 30일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만큼 특검 요청이 다시 들어오면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마침 특조위도 2차 특검요청안을 준비 중이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진실을 건져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시한부 상사병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이다. 단옷날 광한루에서 이몽룡은 성춘향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과거 준비에 촌음이 아까웠건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춘향도 원님의 자제 몽룡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한다. 오붓하게 만난 두 사람, 건넛방 월매도 아랑곳 않은 채 세상없을 사랑놀이에 빠져든다. 지금 선남선녀들은 봄바람만 불어도 ‘심쿵’하는 세대. 단옷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다가오지 … 잔 들어 그대 얼굴 보다 한숨짓네.’ 문호 윌리엄 예이츠의 시(‘A DrinkingSong’)처럼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술을 부르고 상심(傷心)하게 한다. 정보기술(IT) 덕분에 지구 반대편의 연인이 바로 곁에 있는 듯한 요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을 잊지 못해 한숨과 눈물의 무기력을 넘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일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제 이집트 여객기를 납치한 ‘자칭’ 자살폭탄 테러범은 헤어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일을 벌인 듯하다. 테러범은 아이를 5명이나 두었다니 아내와 금실이 무척 좋았나 보다. 왜 갈라섰는지 몰라도 얼마나 속이 타고 답답했기에 여객기를 통째로 가로채 아내에게 날아갔을까.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영국인 인질이 가짜 폭탄조끼 두른 테러범과 찍은 기념사진은 상사병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희비극이다.
4·13총선을 향해 뛰는 국회의원 후보 942명은 잠자리에 누워도 유권자들 얼굴만 아른거린다. “(표만 주시면) 하늘에서 별을 따 드리겠다”는 달콤한 말을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천 번 만 번 약속하며 다닐 때다. 사랑이 얼마나 넘치면 일자리를 1100만 개나 만들겠다고 할까. 전에 없던 청년사랑이 듬뿍 생겨나 그러려니 여기는 건 착각이다. 유권자를 무서워하는 체하며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은 속으로 투표일만 지나가길 바란다. 모두 총선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애정이 홀연 사라질 ‘시한부 상사병’ 환자들이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반장선거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의 반장선거는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1, 2학년 때 반장을 했던 터라 나는 강력한 후보였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반장선거를 시작하겠다면서 갑자기 모두 눈을 감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호명하면 손을 들라고 했다.
“윤세영 지지하는 사람 손들어.”
눈을 감고 반장을 뽑겠다는 것이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였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께 건의해볼 틈도 없이 선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나는 얼떨결에 눈을 감은 채 다른 친구가 반장으로 당선되었다는, 나로서는 검증할 길 없는 선생님의 결과 발표를 들어야 했다.
그 일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선생님은 왜 관례대로 친구들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왜 무기명 투표를 한 뒤 개표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우리 모두 눈을 감게 한 뒤 선생님 혼자 일방적으로 선거를 진행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학년에 올라올 때까지 한 번도 학교를 찾아온 적이 없는 엄마. 그럴 여유가 없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더 속상하고 가슴 아파할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엄마 앞에서 울먹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로 하여금 눈을 똑바로 뜨고 민주적인 선거의 과정과 절차를 지켜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쳤어야 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까닭은 반장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그 과정과 결과에 승복이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의 반장을 뽑는데 왜 선생님이 개입하여 우리를 모두 눈감은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그걸 납득할 수 없어서였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채 애써 잊고 지낸 이 일이 최근 불쑥 다시 떠오른 것은 선거철이 다가와서일까. 어른이 되었는데도 선거란 것이 여전히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눈을 감지 말았으면 한다. 풀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그때의 일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내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물음표로 남아 있는 것은 그때 내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이번 봄, 우리 모두 어떤 이유로든 눈을 감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학교에서 반장을 뽑는 선거도 아니고 나라를 움직이는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 아닌가.
5. [동아일보][2030세상]아이의 고통을 외면하는 어른들
얼마 전 동료가 한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 단체가 요즘 진행하는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의 아빠였는데 “아무래도 내 딸이 의욕이 너무 넘친다”는 거였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직접 정당 대표들에게 물어보는 기회가 있다. 이 아빠는 딸이 너무 많은 질문거리를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어린이는 정치 하면 안 돼요?”라는 질문도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며칠 뒤, 이런 당돌한 질문을 품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요즘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학원 8개를 다니는데 시간이 없어요. 생일파티 때도 2시간밖에 못 놀았어요. 학원 가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까요?” “아빠는 서울에서 일해 주말에만 보고, 엄마도 일하는데 9시 넘어 오고,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기숙사 생활하니깐… 혼자 있는 게 좀 힘들어요.” “시골은 문구점이나 마트가 너무 멀고, 놀 곳이나 문화시설이 없어서 심심해요.”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들이 감옥에 갔다가 금방 나와서 다시 우리를 괴롭힐까 봐 무서워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일 하느라 바빠서 우리 이야기에 관심 없어요. 공부나 하래요.” 다시 “학교에서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해 선생님께 건의해보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학급회의? 그거 1년에 한 번 하는데 그냥 장난 같아요.”
어린이들의 열띤 토론을 듣다 보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서 직접 그들의 의견을 듣는 일에 어른들이 얼마나 소홀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만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은 투표를 먹고 사는 동물이에요.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당연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의 예산과 정책을 뜯어보면 그의 이야기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아동가족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3%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부의 아동복지예산 또한 전체 사회복지예산 중 0.25%에 불과하다. 이 중 대부분은 영유아 보육에 집중돼 있다. 그럼 정책은 어떨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정당 공약을 살펴보니 부모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교육과 보육이 아닌 아동 관련 공약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서 들어간 듯한 학대예방 관련 공약이 없었다면 아동공약 페이지는 아예 빼는 게 나을 뻔했다.
또 다른 정치인을 만났을 때는 “미래세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말이지만 혹시 ‘미래세대’라는 말 뒤에 숨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2002년에 열린 아동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 선언문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당신들은 우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 또한 현재랍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너희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미래에서 사는 게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다.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현재’ 고통받고 있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행복과 어린이가 원하는 행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저희가 원하는 행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항상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단체가 매년 진행하는 아이들의 삶의 만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축사를 해준 어린이대표가 한 말이다.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 달라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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