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과연 뒷골목 성매매는 근절됐는가
착취나 강요를 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특별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이 위헌 의견을 냈을 만큼 앞으로도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간통제 폐지 결정에 이어 이번에도 미리부터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헌재의 합헌 결정에는 건전한 성풍속 및 성도덕을 우선시하려는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다. 공익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 판매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성매매 공급이 더욱 확대될 수 있는데다 성 판매자가 불법적 조건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성매매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동시에 우리 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과제를 부여했다. 여성 성판매자들이 절박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건전한 사회 풍토를 위해 성매매를 단속해야 한다면 그들의 생계 대책도 당연히 사회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절실한 기본권이 어디 있겠는가. 성매매를 단속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 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원론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특히 지체장애인이나 독거 남성 등의 경우에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막혀 버리게 되는 셈이다. 당사자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내놓고 처지를 얘기하기가 껄끄러워서 뿐이지 이에 대한 주장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국의 꾸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유흥가 뒷골목에서는 온갖 변태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성매매가 이뤄지는 게 숨김없는 현실이다. 단속의 눈길을 피하려고 주택가나 아파트까지 위장 성매매 업소가 침투해 있으며,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도 노골적인 성매매 유혹이 이뤄진다. 직장인들은 물론 의사, 변호사들도 고객 명단에 오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일 뿐이다.
2. 외제차업계 다시는 '갑질' 못하게 해야
결국 외제차 고객들이 뿔을 내고 말았다. 아우디와 BMW 소유주 3명이 개별소비세 환급을 거부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와 BMW코리아 등을 상대로 부당이익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대행하는 법무법인 바른은 개소세 환급을 거부한 다른 외제차 구매자들도 모아서 집단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올 1월에 외제차를 구입한 1만명 안팎의 고객들이 모두 참여한다면 소송가액은 수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늘 앉아서 당하기만 하던 국내 소비자들이 외제차업계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지난달 내수 진작을 위해 작년 하반기에 한시적으로 5%에서 3.5%로 내렸던 개소세율을 승용차에 한해 올 상반기까지 연장 적용하기로 하고 올 1월에 환원된 세율로 구매한 고객에겐 혜택을 소급해 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 기아, 쌍용 등 국내 회사들은 해당 구매자들에게 개소세 인하분을 진작 반환했으나 외제차업체들은 고객들의 환급 요구를 거부했다.
외제차업계가 정부로부터 반환받은 개소세 인하분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부당이득 편취 행위다. 이달 초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포드코리아, 아우디코리아, 닛산코리아, 랜드로버코리아 등 6개 업체를 사기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 파악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세율 인하를 미리 반영했다는 외제차업계의 변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그런 내용을 사전에 명시하지 않았다면 기존의 판촉 전략에 따른 판매로 봐야 한다.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속으로 켕기는 게 있다는 증거다. 논란이 커지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방침을 바꿔 개소세를 환급하기로 한 것만 봐도 업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을 만만한 ‘호갱’으로 보고 배짱을 부린 것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지난해 BMW와 아우디 등의 연비조작 사건 당시 미국과 유럽에선 손해배상을 해주면서도 국내에서는 어물쩍 넘어간 것이 좋은 사례다. 외제차업계가 다시는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소비자들이 이번에 단단히 혼쭐을 내야 한다.
[동아일보]
3. 北, “핵 포기까지 제재” 한미일 정상의 경고 새겨들으라
4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對北) 제재 결의 2270호의 충실한 이행과 대북 압박 강화에 합의했다. 이어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한미일 정상회의에선 유엔 결의안의 빈틈을 메워줄 3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 조치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됐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미일 정상들은 전화로 대응책을 논의했으나 직접 만나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달 ‘핵탄두 폭발시험’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등 5차 핵실험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연합방위 태세를 재확인한 것을 북한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한미일 3국이 빈틈없이 대처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연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요청한 것을 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 협정 체결을 추진했으나 국무회의에 졸속 상정했다는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 현재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이 체결돼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한일 양국에 과거사 문제의 현안이 있지만 안보협력과 과거사는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경 경비대가 200달러 정도의 뇌물만 받으면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품을 아무 제지 없이 통과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중국이 유엔 제재를 찬성했음에도 북에 뒷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한중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동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도록 한국은 전략적 외교를 해내야 한다.
1일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는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상황을 오판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다시 한 번 단호한 대북 제재 이행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4. '청년드림'으로 해외 일자리 개척, 한국의 영토 키운다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던 기마민족의 DNA를 지닌 한국인의 핏속에는 유목민의 이주 본능이 흐른다. ‘헬조선’ ‘N포세대’라는 분노의 언어가 들끓는 시대, 눈을 지구촌으로 돌려 세계 곳곳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본능을 깨워 보자. 청년 시절 ‘유목민의 땅’ 몽골에 진출해 사업을 시작한 박민규(36) 권영주(37) 이성민 씨(41)는 “젊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과감하게 개척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첨단 전자기기를 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세상이 활짝 열렸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가 “일자리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는 ‘잡 노마드’가 21세기 인류의 모습”이라고 했던 예견이 들어맞고 있다. 한반도라는 좁은 우물 안을 박차고 나가 자신과 제품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바꾸는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다.
총선에 길 잃은 노동개혁, 청년대책들
일제강점기인 1920년 4월 1일 민족의 표현 기관임을 자임하며 태어난 동아일보가 오늘 창간 96주년을 맞았다. 동아일보가 청년드림센터를 중심으로 3년 반 동안 추진한 청년 일자리창출운동은 1931년 농촌계몽으로 학생들을 사회 중추세력으로 이끈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청년 계몽, 청년 고용으로 국권 상실이나 경제 위기의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은 1920년 4월 1일 이후 96년간 변함없는 동아일보의 창간 정신이자 국가의 핵심 과제였다.
2016년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정부 정책만으로는 넘기 힘든 철벽이다. 12.5% 사상 최고로 치솟은 청년실업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10.8%)을 넘어섰다. ‘잃어버린 20년’을 지낸 일본(5.0%)의 2.5배 수준이다. 더구나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이중구조에 갇혀 있다. 노동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경직 탓에 정규직 기성세대는 일을 못해도 해고할 수 없고, 청년세대는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는 꽉 막힌 상황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청년 대책은 한숨이 나올 정도다. 새누리당 공약은 대기업의 투자 및 고용 여건을 우호적으로 조성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통해 총 70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 구직활동 지원을 위해 6개월간 60만 원의 취업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재원 조달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일자리를 급조해 청년 취업자를 늘리는 임시방편으로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노동시장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획기적 전환만이 돌파구를 열 수 있다.
청년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지난해 해외 취업자 수는 2903명으로 2014년(1679명)보다 72.9% 급증했다. 이종덕 씨(37)는 10여 년 전 ‘I can’t speak English’ 한마디만 외운 채 실리콘밸리에 갔다가 지금은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최윤석 씨(25)는 올 2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 ‘메탈월드’를 창업했다.
모험심 강한 이런 청년들이 해외 취업의 물꼬를 텄다.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에 따라선 해외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낳는 큰 물결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연예기획사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예비 스타들도 바늘구멍 같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동남아로 눈을 돌린다면 블루오션이 열릴 것이다. 정부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비영어권 국가에 진출하는 청년들에게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정착 지원금도 주는 열린 방식이 절실하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가 청년 취업 플랫폼으로 정부 청년일자리 정책의 빈틈을 채울 것이다. 청년드림센터만 오면 원스톱으로 인턴 및 정규직 취업 정보와 구직 노하우, 취업시장의 변화와 새로운 트렌드를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집대성해 놓았다.
기마민족의 DNA로 넓은 세상에 도전을
동아일보는 올해 ‘미국 실리콘밸리 드림캠프’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한다. 현지에서 취업 또는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해외 공관, 해외 교민사회와 연계해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생활 관련 고충을 해결하는 데 최대한 앞장설 계획이다. 이는 ‘코리나(Korea+China) 청년 창업육성’ ‘청년드림 도쿄 취업 네트워크 개발’ ‘찾아가는 미주 청년드림 캠프’ 등 기존 사업과 함께 해외 취업의 유용한 창구가 될 것이다.
청년과 일자리는 한국 경제의 성장이고 복지이며 미래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노동개혁과 일자리 정책을 감시하면서 청년들과 함께 세계 일자리 시장을 열어갈 것을 다짐한다.
[서울신문]
5. 고액 체납 재벌 처벌할 법적 근거 만들어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 금지를 풀어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그제 패소했다. 그가 출국 금지당한 이유는 바로 700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아서다. 그런데 국민의 의무는 나 몰라라하고 무슨 염치로 해외에 나갈 권리를 찾겠다며 소송까지 벌이는지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 소송할 돈이 있으면 체납된 세금의 일부라도 갚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재산이 없다는 그는 고급 빌라 두 채를 터서 만든 집에 살고 있다. 출국 금지 전까지 미국 등 56차례에 걸쳐 503일 동안 해외에 머물렀다. 어디 그뿐인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역시 호화생활을 하면서 세금을 안 낸 악성 체납자들이다. 이들의 체납액은 2252억여원과 1073억여원에 이른다. 2013년 서울시가 최씨의 체납된 지방세를 징수하기 위해 가택을 수색했을 때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가 17억원의 호화 저택 금고 속에서 현금 다발과 시가 1억원 상당의 명품 시계 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일반 서민들은 그들이 결코 몰락한 재벌이 아니라는 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딘가에 재산을 빼돌려 놓지 않으면 도저히 그런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조씨의 부인과 아들은 한솔그룹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데 조씨만 없는 것도 다 세금을 안 내려는 꼼수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니 매월 쥐꼬리 월급에서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월급쟁이들로서는 허탈할 뿐이다.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악질 체납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려면 조세범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2010년 선의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빼버린 “정당한 사유 없이 1차 회계연도에 3회 이상 체납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을 부활시켜야 한다. 정말 돈이 없어 세금을 못 내는 이들과 달리 능력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은 이들은 감옥에 보내는 게 조세 정의다.
세무 당국에 체납자 가족들에 대한 금융조회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체납자들이 가족 명의로 재산을 은닉해도 세무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체납자 본인 외에는 과세 자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담뱃값 인상처럼 서민들 주머니만 탈탈 털 게 아니라 악질 체납자들의 수천억 세금부터 받아 내는 게 순서다.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더 정교한 법 정비가 시급하다.
6. '한국판' 양적완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이 공약으로 내건 ‘한국판 통화완화 정책(QE)’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금융·통화 정책을 건드린 핵심 논쟁이라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진흙탕 속에서 멱살잡이 식으로 펼쳐졌던 기존의 여야의 네거티브 선거 전략과 비교해 한층 격이 높아진 정책 대결이란 의미도 없지 않다.
강 위원장이 그동안 밝힌 한국판 통화완화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까지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췄지만 돈이 잘 돌지 않아 투자가 필요한 곳에 제대로 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연간 3% 이상의 잠재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양적완화 같은 더 과감한 재정·금융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통화완화의 구체적 방법으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채권을 인수해 기업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한편 주택담보대출 증권을 직접 인수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분할 상환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이 양적완화 공약을 제시한 것은 침체 국면에 빠져 일본식 장기 불황의 조짐마저 보이는 우리의 경제 상황을 비상사태로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국채나 정부 보증채가 아닌 증권을 한은이 직접 인수하는 것의 적법성 문제는 일단 접어 두더라도 기준금리가 1.5%인 현시점에 금리가 제로 수준인 선진국들처럼 양적완화의 카드를 꺼내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법적 테두리에서 실행할 방법들을 버려 두고 굳이 양적완화라는 초법적 방법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발권력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 문제도 불거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한국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설사 한은이 정치권 압박으로 양적완화를 수용했을 경우 통화가치 안정과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한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당한 구조 개혁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돈이 필요한 기업으로 흘러갔고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일본의 경우 양적완화 정책이 한계를 드러낸 것은 이른바 좀비기업들의 연명을 돕는 부작용을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를 이유로 한계기업 정리 작업을 미루고 있는 우리 경제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구조적인 경쟁력의 문제이지 유동성의 문제는 아니다.
여당의 양적완화 공약은 그 한계와 부작용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급조된 느낌이 있다. 기업과 가계의 부실을 해결하려고 발권력을 동원하는 문제는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원칙이 훼손된 경제 정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허물고 정책의 비효율이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양적완화 정책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일보]
7. 갈팡질팡 면세점 정책, 차라리 전면 개방이 낫겠다
면세점 제도가 2년 만에 도돌이표가 됐다. 기획재정부는 어제 ‘보세판매장(면세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년 전 5년으로 줄였던 특허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고 갱신도 허용하기로 했다. 논란이 컸던 신규 특허 여부 결정은 4월 말로 늦췄다. 지난해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이 기존 사업자의 재진입만은 절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른바 ‘홍종학법’으로 불리는 5년 시한부 면세점 특허 제도는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 불안을 불렀으며 투자 위축까지 폐해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산업계에서는 현 정부의 최대 실패 정책이란 얘기마저 나왔다. 오죽했으면 대통령까지 비난행렬에 가세했겠나. 정부가 잘못된 제도를 인정하고 신속하게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보완책이 여전히 미봉책에 그치고 있어 문제다. 면세점은 더 이상 내수 산업이 아니다. 외국인을 겨냥한 수출 산업이다. 글로벌 경쟁도 치열해졌다. 중국은 19곳에 입국 면세점을 새로 짓고 있다. 일본도 사후면세점환급제도를 크게 늘려 나가고 있다. 면세점의 성패가 글로벌 경쟁에서 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특허 기간이나 업체 수 제한 같은 ‘우물안 경쟁’에만 머물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번 면세점 파동은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 줬다. 정치권과 정부가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규제의 잣대만 들이댄 결과 세계 1위를 자랑하던 면세 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다.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사회적 비용도 크게 치렀다. 역설적으로 국회의원 한 사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됐다. 산업계의 비명에는 귀를 틀어막은 채 국회 권력에 기대 자기 규제 파워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던 정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대오각성해야 한다. 규제를 과감히 풀고 면세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근본적 대책을 내놓는 것이 속죄의 시작이어야 한다.
8. 더민주-정의당 연합후보가 어떻게 야권 단일후보인가
야권후보 단일화는 이번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야권후보로서는 단일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득표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이 호칭의 사용은 매우 엄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가 불공정한 결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의석수 기준으로 야권에서는 제1 더민주, 제2 국민의당, 제3 정의당, 제4 민주당이 후보를 내고 있다. 인천 13곳 지역구에서 제1 야당 더민주와 제3 야당 정의당이 단일화를 완료했다. 11곳은 더민주, 2곳은 정의당 출신이 단일후보가 됐다. 제2 야당 국민의당은 단일화에 불참했다.
이에 더민주 측은 선관위에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질의했다. 선관위는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잘못된 결정이다.
엄연히 20석을 지닌 제2 야당 국민의당의 후보가 있는데 1당-3당 연합후보가 어떻게 ‘야권단일후보’가 될 수 있는가. 선관위는 2012년 선례를 들었다. 제2 야당 자유선진당을 빼고 제1 야당 민주당과 제3 야당 통합진보당이 단일화 연대를 했을 때에도 ‘야권단일후보’ 명칭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다르다. 단일화에 불참한 제2 야당 자유선진당은 여당과 가까운 보수정당이었고 나머지 2당은 진보였다. 형식적으로는 제2 야당이 빠졌지만 내용적으론 야권단일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언론도 야권연대요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썼다.
이번에는 내용적으로 야권에 그런 색깔의 구별이 없다. 제2 야당 국민의당은 제1 야당에서 분파된 것이다. 두 당 사이에 야권연대가 설왕설래할 정도로 실질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 1당-3당 연합후보가 야권단일후보를 표방하면 국민의당 후보는 야권지지자들의 투표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야권단일후보가 아니라 더민주-정의당 연합(또는 단일)후보라고 하는 게 공정하다. 선관위는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은 정치적 수사여서 유권자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까지 달고 있다. 이는 ‘야권단일후보’의 현실적 영향력을 모르는 자의적인 판단이다.
선관위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단일화를 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다른 야당후보들이 반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선관위의 실책은 사전에 명확한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지급이나 비례대표 배분에는 의석수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야권단일후보’ 문제도 미리 의석수 같은 기준을 정해두었다면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관위는 최근 젊은이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동영상에 성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는 바람에 “섹스 독려 동영상이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동영상을 삭제했다. 예산만 버린 것이다. 선관위는 선거라는 중요한 제도의 심판이자 주관자다. 보다 치밀한 문제의식과 전문적인 지식으로 선거의 선진화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산업생산 등 경기지표 회복 경제 불씨 살릴 계기로
광공업 생산이 2009년 9월 이후 6년5개월 만에 최대 폭인 3.3% 뛰는 등 산업생산이 2월 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산업생산은 지난해 12월 반등했다가 올 1월 감소세로 바뀐 후 한 달 만에 다시 0.8% 증가했다. 스마트폰 신제품이 출시되고 반도체 수출 물량이 늘어난 데다 금속가공 생산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결과다. 생산 호조에 힘입어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1.2%포인트 상승한 73.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전월 대비 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5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된 것이다.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찾았고, 그동안 부진했던 석유화학과 철강 등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동시에 회복세를 보인 것이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단가 및 물량 추세로 살펴본 수출경기 방향성 판단' 보고서를 통해 수출 경기가 올 상반기 중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는 회복기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소비와 투자가 여전히 부진하기 때문이다. 2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8% 떨어졌고 설비투자도 6.8% 하락하며 두 달 연속 뒷걸음질 쳤다. 수출 감소 폭은 1월 18.9%, 2월 12.2%, 3월 8.1%로 점차 줄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면 성장세로 돌아서기 쉽지 않다. 제조업 가동률이 상승했다고 하지만 재고율은 128%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BSI 역시 68로 제조업 업황 장기 평균치 85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하고 내수와 수출 부진 등 아직 걸림돌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본격적 회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와 기업은 산업생산과 체감경기 회복등 오랜만에 청신호를 보낸 경기지표를 꺼져가는 경제의 불씨를 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업은 스마트폰 신제품을 이을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꾸준하게 내놓고, 정부는 개별소비세 인하 등 부양정책의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적절한 후속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과잉 공급 업종의 비중을 줄이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경제 체질 개선과 한계기업 정리 등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10. 시민의식 실종 보여주는 얌체 지하철 부정승차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최근 2주간 부정승차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961명을 적발했다. 표 없이 개찰구 밑으로 기어 가거나 위로 타 넘어가는 무표 승차가 절반을 넘었고, 65세 이상 노인이나 장애인용 우대권을 부정하게 사용한 사례도 299건에 달했다고 한다. 어른이 어린이 교통카드를 쓰거나, 손자가 할머니 우대권을 사용하는 등 부정승차 유형도 갖가지였다. 부정승차를 하면 요금 30배를 벌금으로 물리는데 격렬히 저항하다가 증거를 보여주면 한번 봐 달라며 꼬리를 내리는 등 단속 현장에서는 부끄러운 장면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메트로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2014년 1만4538건에서 지난해 2만1431건으로 30%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요금은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저렴한 편인데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사회질서를 흩트리고 있는 것이다. 겨우 1350원에 양심을 파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특히 사회에서 본보기를 보여야 할 50·60대 어른들이 부정승차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안타깝다. 경제는 성장해도 시민의식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최근 5년간(2010년~2015년 8월 말) 철도 부정승차 적발 건수도 132만건에 달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부정승차가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얌체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강하게 물려야 한다.
부정승차뿐 아니라 고령화로 인한 무임승차 급증도 문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공짜로 탄 사람은 1억5000만명을 넘어서 전체 승차 인원 중 13.3%나 됐다. 노인 무임승차 인원을 운임으로 환산하면 1365억원에 달해 서울메트로 지난해 순손실(1587억원) 중 86%에 달했다. 대한노인회가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제안을 했으나 선거와 맞물려 흐지부지되는 모양새인데 무인승차 노인 연령도 올리고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차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광화문에서/김민경]아저씨, 아재, 개저씨
“새우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대하 드라마! 새우가 대하니까. 왜 안 웃어? 대하 먹어본 적 없어?”
안 웃기는요. 쓰러지며 웃었다. ‘아재씨’라는 TV 개그 코너였다. 답이 썰렁한 만큼, ‘난닝구’와 발가락 양말 차림의 ‘아재 악령’이 ‘아재 개그’로 세상을 얼리지 못하게 젊은 퇴마사들이 나선다는 설정은 따끈했다. 최근의 ‘아재 현상’을 풍자한 개그였다.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아재’가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희화화하는 말로 쓰이면서 약해 보이는 이에게 던지는 무례한 반말투를 ‘아재체’, 유치한 동음이의어식 말장난은 ‘아재 개그’라 한다. ‘전화기로 세운 건물은 콜로세움’ ‘고양이를 미워하는 고양이는 미어캣’ ‘과자가 자기소개를 하면 전과자’라는 식이다. 셰프 오세득 씨는 ‘한 손으로 넣으면 염(소금)이고 양손으로 넣으면 양념’류의 아재 멘트로 먼저 유명해졌다.
아재 개그는 흔히 ‘주목!’이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개그가 나와야 하는 바로 그 순간, 기억력을 탓하는 말과 프롬프터 역할의 휴대전화가 나오고, 웃어야 하는 이유까지 들어야 하는 ‘훈시’에 가깝다. 박장대소냐 싸늘한 조소냐에 의해 부하 직원 중 아재의 ‘진실한 사람’이 즉시 감별된다.
아재보다 비하와 조롱의 정도가 심한 말로 ‘개저씨’가 있다.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이란 해석과 멍멍이와 아저씨를 더한 신조어란 설이 있다. 최근 ‘개저씨’를 소재로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전형적 인물로 ‘미생’의 마 부장을 등장시켰다. 극 중 마 부장은 48세. 부하 직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며, 문제는 ‘요즘 애들’에게 있을 뿐이며 성희롱이 ‘딸 같아서’란 말로 양해된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대개 아저씨’다.
문화이론지 ‘문화과학’ 봄호에는 ‘개저씨 문학’이 등장한다.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한국 문학계의 주류 권력과 비평 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비판론자 양 진영을 똑같은 문화패권주의라 규정하고, 21세기 독자들이 이 같은 ‘개저씨 문학’에 냉담하리라 예언한다.
개그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참을 수 없는 개저씨의 진지함’이 이렇게 조롱을 받는 건, 시대적 맥락과 공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한다. 수첩 속 개그는 더 이상 개그가 아니고, 제단 위의 문학은 삶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사실 ‘아재’는 예전에 ‘부장님’이었고 꼰대 개그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부장님=아재 개그’의 원조는 중년 남성이지만 요즘은 성과 무관한 경우를 많이 본다. 즉, 부장님 개그란 권력을 남용하는 갑질 개그로서 종종 사회적 약자를 비웃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내용으로 파국에 이른다. 관객의 웃음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조건반사적 두려움이다. 반면 아재 개그는 부장님, 꼰대, 개저씨에 대한 조소, 권력자의 자기 연민과 불안에 대한 풍자다. 21세기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아저씨, 아재. 그의 자리는 남성 주류 권력자의 반대편, 여성, 신입사원, 실직자 옆이다. 부장님 개그와 달리 아재 개그가 젊은층에서 싸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그 덕분에 좋은 소식도 있다. 오랫동안 회식 자리에 찬물을 끼얹어 왔던 부장님 개그가 요즘 최첨단 아재 개그로 진짜 환영받는다는 것이다. 내용이 썰렁할수록 반응은 폭발적이다. 아재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단, 이 정도 개그는 다 외워서 ‘쳐’ 주시길 부탁드린다.
2. [동아일보][박성연의 트렌드 읽기]'집밥'를 넘어 '집활'로
야외 활동 시즌에 집 안에 있으면 갑갑하지 않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야외 활동 증가에 따른 폭발적인 소비를 기대했던 곳에서는 판매 전략을 바꿔야 할 판이다. 4인 가구 중심의 소비 진작 대책도 맥을 잘못 잡았다. 시대가 바뀌어 1인 가구 주인들이 ‘방콕’(방 안에 콕 박혀 있음)을 고집하니까.
주5일 근무제 정착과 소득 증가가 오히려 ‘집으로!’ 추세를 굳혀주는 형국이다. 이젠 ‘불금’(불타는 금요일) 경기도 사라졌다. 목요일 저녁 이후 집으로 들어가는 인파 때문이다. 실제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도 술 한잔, 커피 한잔 즐기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다.
이런 추세에서 소비가 확 줄어들지는 않았다. 어딘가 야외 소비 감소를 상쇄한 요인이 있다는 얘기다. 요즘 한 인터넷 마켓에서 팔던 팝콘 제조기 매출이 전년에 비해 710%나 증가했다. 뜻밖의 제품에서 소비가 불붙은 것이다. ‘집밥’에 대한 인기가 유지되는 한 누룽지 참기름 제조기 등에 대한 꾸준한 소비도 기대할 수 있다. 안심할 수 없는 원산지와 재료 속이기 행태가 사라질 때까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졌다. 성인 남녀 4명 중 3명은 셀프 인테리어를 여가 생활로 인식하고 있다. 반제품 조립가구가 이 분야의 최대 수혜 종목이다.
야외 활동을 집 안에서 즐기는 인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대세다. 사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집으로 옮겨 놓는가 하면 트램펄린을 닮은 운동 기구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한 공간을 헬스장처럼 꾸며 놓은 홈짐(home gym)도 흔한 풍경이 됐다. 집 밖에서만 보던 식물을 집 안으로 옮기기도 한다. 집 안을 꾸며놓은 뒤 서로 안방까지 공개하는 집스타그램은 ‘집활(집 안 활동)’을 보여주는 신세대 교감 미디어로 떠올랐다. 이 트렌드는 트램펄린이나 홈짐에서 일으키는 층간 소음, 거침없는 사생활 공개를 걱정할 단계까지 치달았다.
3.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갱단과 찍은 결혼식 기념 사진
웨딩촬영 중 갱단을 만났다면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씀해 보세요. 그 전에 비행기를 타고 11시간 20분을 날아 뉴질랜드에 가는 것은 잊지 마시고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함께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문신이 새겨진 오른 팔뚝을 치켜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또 다른 남성이 ‘블랙파워(Black Power)’라는 글자가 새겨진 검은색 깃발을 들고 섰지요. 블랙파워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뉴질랜드의 유명한 갱단입니다.
3일 동안 이 사진은 730번이 넘게 공유가 됐고 ‘좋아요’ 등도 6000개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됐냐’는 문의가 이어지자 사진을 올린 사진작가 레베카 인스 씨(31)는 댓글로 촬영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루시스 걸리에서 신랑 신부 들러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비가 막 그친 뒤라 화창한 날씨의 웨딩촬영은 즐거웠지요.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더니 수많은 차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에서 하는 히코이 행렬의 일부로 죽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곳에 왔더군요. 웨딩 사진을 함께 찍어도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협조적이었습니다. 이게 그 결과입니다.’
4. [서울신문][열린세상]사랑과 지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최근에 사랑니 하나를 잃었다. 그런데 그저 그런 사랑니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맨 뒤의 큰 어금니를 잃었는데, 기묘하게도 바로 그 공간에 자리를 잡은 긴요한 사랑니였다. 얼추 계산해 봐도 반세기 넘게 어금니 역할을 톡톡히 해 온 사랑니였다.
그러니 그 사랑니가 뽑혀 나간 자리는 무척 허전했다. 씹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본질적인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며칠 전 바로 그 자리에 임플란트를 했다. 씹는 데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으로 씹게 될 걸 생각하니 인위적으로라도 씹는 균형을 잡는 게 좋겠다 싶어 그렇게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시술 과정을 겪으면서 뜻밖에도 만감이 교차했다.
한국어에서는 ‘사랑’니라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지혜’의 이(wisdom tooth)라고 한다. 실제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괜히 사람에게 고통을 안기는 이빨을 두고 사랑이니 지혜니 하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사랑을 알고 지혜를 접할 10대 후반 곧 성인이 된 자라야 그런 이빨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 같다.
그 이빨을 어떤 문명권에서는 이성 간의 사랑에 눈뜰 나이가 됐다는 일종의 ‘자격증’으로 인식했고, 어떤 문명권에서는 지혜를 알고 실천할 만한 나이가 됐다는 하나의 ‘인증’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런데 사랑니가 갖는 바로 이런 상징성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대인은 살면서 이를 꽤 뽑는다. 사랑니도 그렇다. 심지어 사람(주인)에게 아무런 고통도 불편도 주지 않는데도, 그 주인은 치과의 현대의술을 동원해 사랑니를 아예 발본색원(拔本塞源)해 버린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인류 문명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른답게 더욱 빛을 발해야 할 두 가지 덕목, 곧 사랑과 지혜의 뿌리를 아예 미리 제거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사랑니를 뽑으면서 크나큰 아쉬움이 온몸을 감싼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임플란트를 하면서 느낀 자괴감은 사랑과 지혜를 제거해 생긴 그 공간에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인공 조형물을 기계적으로 박아 넣었다는 사실에 닿아 있다.
나도 이제 50대 중반인데, 내 생각과 언행에는 과연 사랑과 지혜가 묻어나는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닌, 삶의 지혜를 그들과 진정으로 나누는가? 사랑과 지혜는 인간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키워드이자 양대 축인데, 그것을 상징하는 근원(사랑니)을 상실한 내게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혹시라도 마치 임플란트 철심처럼 나의 마음과 삶도 그렇게 경화(硬化)될 것이라는 징조는 아닐까? 사랑과 지혜의 뿌리를 네 개나 갖고 태어났는데, 이제 어느덧 두 개를 잃었으니, 그만큼 내 삶과 생각도 경직되지는 않을까? 사랑니가 있던 공간을 대신한 임플란트 철심처럼 내 마음도 고집불통으로 강퍅해지지는 않을까? 주위 사람들을 사랑과 지혜로 포용하는 나무그늘 같은 ‘어른’으로 나이를 먹어 가지 못하고, 혹시라도 자기만 항상 옳고 남들은 죄다 그르다면서 어떤 소통도 거부하는 한갓 고집쟁이 ‘노인’으로 늙으면 어떡하나? 내심 두렵다.
눈을 돌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둘러본다. 정치 무대 위의 군상들은 다들 선남선녀인 양 미소 지으며 입을 열어 한 표를 구하지만, 혹시라도 사랑과 지혜의 근원을 이미 오래전에 제거해 버린 입안에는 딱딱하고 감정 없는 임플란트가 박혀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선거만 끝나면 다시금 어깨에 힘주며 안하무인 식의 옹고집으로 똘똘 뭉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의 생명인 합리적이고도 상식적인 대화와 절충 소식은 여간해서는 들어 보기 어렵고,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이전투구 뉴스만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자주 접하는 현실이니 하는 말이다. 차라리 그저 사랑과 지혜의 이빨만 잃었다면 그 공간을 새롭고 건설적인 유연성 좋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기대라도 하겠건만, 요즘 인왕산 자락과 여의도로 출근하는 이들의 입안에는 죄다 쇠처럼 딱딱한 ‘임플란트’뿐인 것 같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못내 무겁다.
히코이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말로 ‘가두 행진’으로 보통은 몇 주씩 걸리는 긴 여행을 뜻합니다. 블랙파워는 백인 갱단 등에 맞서 조직된 단체이기도 하지요. 이런 배경 탓인지 몇몇은 인종 간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이라며 열광했습니다. 한 남성은 ‘올해의 사진이다. NZH(뉴질랜드 현지신문인 뉴질랜드헤럴드)의 1면에 실려야 할 파괴력 있는 이미지로 인종 간 장벽을 해소하는 데 있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고 적었습니다. 뉴질랜드 고유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이런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안 됩니다. 블랙파워는 마약 제조 및 판매에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스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두 그룹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자신들만의 특별한 이유를 갖고 모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놀라운 특별한 사진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습니다.
인스 씨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제 모습을 보며 어느새 ‘낭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전 웨딩촬영 때 갱단을 만나게 돼도 절대 함께 사진을 찍자는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헤라클레스는 흙수저였다
서양인들에게 최고의 영웅을 꼽으라면 단연 헤라클레스다. 그는 그리스 청춘의 불굴의 투지와 용맹, 그리고 괴력의 상징이자 모델이다. 헤라클레스가 그리스의 영웅을 넘어 서구의 불멸의 영웅으로 숭배받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출발은 흙수저였다.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아폴로도로스가 지은 그리스 신화집 ‘비블리오테케’에는 헤라클레스의 탄생과 행적이 자세히 나온다. 헤라클레스는 페르세우스의 손자인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로 태어났다. 명목상 족보는 화려하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나간 사이 평소 알크메네에게 눈독을 들이던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모습을 하고는 하룻밤을 세 배로 늘리며 알크메네와 동침을 했다. 뒤늦게 테베로 돌아온 암피트리온은 예언자로부터 아내가 제우스와 교합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엄밀히 따져 헤라클레스는 불명예스러운 사생아였다. 하지만 암피트리온은 자신의 부재 중에 잉태된 자식을 신성한 신의 핏줄로 승화시킨다. 헤라클레스를 제우스의 아들로 규정하는 순간 그는 숙명적으로 인간을 넘어선 탁월한 역량을 요구받게 된다. 게다가 외간 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을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정실 헤라는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는 흙수저가 겪는 시련의 은유일 테다.
헤라클레스는 주변의 질시와 견제를 딛고 당대 최고의 고수에게 궁술과 무술을 배우고 강철 같은 체력을 갖춘다. 그러던 중 헤라의 질투로 헤라클레스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제 자식과 동생 자식들을 불 속에 던져 죽인다. 이로 인해 테베에서 추방된 헤라클레스는 간신히 죄를 정화받고 델포이의 신탁에 의해 12년 동안 페르세우스의 적통(嫡統) 손자 에우리스테우스가 부과한 12가지 고역을 수행해야 했다. 잔인한 시험이다.
그 과업을 완수하면 불멸의 존재가 되리라는 신탁을 믿고 헤라클레스는 세계 오지로 죽음의 도전을 떠났다. 사자와 괴물 히드라의 처치, 난폭한 황소 끌고 오기, 황금사과 가져오기, 저승의 개 잡아 오기 등등 하나같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난제들을 모두 해결하고서야 헤라클레스는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의 흙수저 탈출기는 목숨을 건 처절한 사투였다. 오늘날 청년들이 안은 과제도 험난하다. 하지만 진정 자신의 전부를 걸고 도전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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