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내 건설시장도 중국에 넘겨줄 건가
제주도에 새로 들어서는 ‘드림타워 카지노 복합리조트’ 시공이 결국 중국건축에 돌아갔다. 드림타워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롯데관광개발과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그제 상하이에서 중국건축과 최종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 리조트 건물은 현재 38층(169m)으로 계획되고 있어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대형건물 시공을 중국업체가 국내에서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드림타워 시공이 중국업체에 맡겨진 것은 한국 업체들로는 새로운 시련과 도전에 직면했음을 말해준다. 국내 건축·토목 시장만큼은 아직 우리 건설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으나 이제부터 외국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중국건축은 국내에는 그리 소개될 기회가 없었지만 매출 규모로 세계 1위 규모다.
더욱 긴장되는 것은 중국건축이 제시한 ‘책임준공 확약’이라는 조건이다. 설사 발주업체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자체 자금으로 건물을 완공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착공 후 18개월 동안은 아예 외상으로 공사를 진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초 한화건설과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2년 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조달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는 점에서도 위기감이 엄습한다. 중국건축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국내 건설사들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내 건설사들로서는 설상가상이다. 이미 중동,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도 중국업체들이 우리 건설사들을 따돌리고 시장을 싹쓸이하는 양상이다. 올 들어 지난 2월까지 중국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따낸 공사 규모가 133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우리 건설사들의 실적은 8800만달러에 그쳤다는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중국 건설업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막강한 자금조달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다. 이를테면, 발전소를 자체 자금으로 건설·운영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개발형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중국건축의 드림타워 시공도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우리도 긴장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정부와 업계가 조속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 '변호사 복덕방', 소비자 눈길로 본다면
변호사의 부동산중개업은 불법인가, 합법인가. 이른바 ‘변호사 복덕방’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그제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앞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공인중개사가 아닌 이들이 부동산 명칭을 쓰고 거래를 중개했다”며 공 변호사를 공인중개사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검찰은 곧 위법성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변호사 복덕방’ 논란은 사실 밥그릇 싸움이다. 변호사업계가 ‘합리적 수수료’를 내세워 부동산중개 시장에 뛰어들자 위기의식을 느낀 공인중개사들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공 변호사는 지난 1월 “집값이 3억원이든, 10억원이든 최대 99만원의 자문료만 받겠다”며 업계에 뛰어들었다. 매매가 10억원 기준으로 보면 현행 공인중개업체 수수료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반향이 컸다.
거래는 얼어붙고 중개업소는 늘어나는 데다 ‘직방’, ‘다방’ 등 온라인 업체들까지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터에 공인중개업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사회적 강자인 변호사들이 영세 중개사들의 밥그릇을 뺏는 ‘골목상권 침해’라며 들고 일어섰다. “부동산 중개 업무는 공인중개사의 고유 영역”이라는 법 조항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법을 위반했다면 위반한 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부동산 중개업무나 관행이 과연 공정한지 새삼 돌아보게 됐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의 중개시장 진입은 골목상권 침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합리적 수수료’는 소비자에게 환영할 일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업계의 가격거품 조장 및 비싼 수수료 등으로 소비자 불신이 적지 않았다. 변호사들의 진입을 자초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논란은 부동산 중개업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거래 질서가 뿌리를 내리기 위한 하나의 진통 과정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중개수수료가 적정한지, 거래 정보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 등을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법적인 결론과는 별개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부동산중개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서울신문]
3. 120억 차익 얻은 진경준 수사 나서야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 주식 취득으로 120억원이라는 막대한 차익을 거둔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의혹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진씨에게 넥슨의 주식 투자를 권유한 인물이 김정주 NXC 대표와 친분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들의 친분 관계가 주식 거래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씨의 사표로 이번 일을 아무 일 없듯이 덮어서는 안 된다. 검찰은 그가 부당하게 불법 이득을 얻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검찰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첫째, 진씨의 주식 매입과 직무관련성 여부 때문이다. 그가 넥슨의 주식을 산 시점은 2005년으로 당시 그는 금융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 직후였다. 주식 취득 후인 2009~2010년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이런 경력만으로 그의 주식 취득 자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한다면 그의 넥슨의 주식 취득 및 보유는 부적절한 게 사실이다. 직무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수사는 불가피하다.
둘째, 진씨의 주식 투자 과정이 의혹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 매입 경위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투자했다”고 했다. 하지만 같이 주식을 샀다는 김상헌 네이버 대표는 “넥슨 주식을 같이 산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누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들은 외국계 컨설팅사에 근무하던 박성준씨의 주선으로 주식을 샀다고 한다. 이들 모두 대학 동문이긴 하지만 박씨가 수많은 동문 중 하필 법조인인 그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한 경위도 석연찮다.
검사 신분에 4억원이라는 거액을 한 주식에 몰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확실한 정보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진씨는 당시 주당 10만원을 줘도 매물이 없던 우량주를 4만원에 1만주를 샀다. 일반인들의 거래가 거의 원천 봉쇄됐고, 주식이 거래돼도 김 회장의 재가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넥슨 주식 매입은 그 자체가 특혜다. 진씨의 특수한 신분과 모종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검사 개인의 단순한 주식매매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공직자의 신분으로 수사를 받게 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4. 수험생 침입해 PC조작해도 깜깜했던 청사
서울 세종로에 있는 정부서울청사가 또 뚫렸다.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대거 옮겨 가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부인 정부종합청사였던 곳이다. 현재 국무총리와 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집무실이 몰려 있는 데다 행정자치부·통일부·여성가족부·국민안전처 등이 들어 있는 국가의 핵심 시설이다. 20대 공무원시험 응시생이 훔친 공무원 신분증으로 청사를 한 달 동안 제 집처럼 드나들고, 공무원 개인용컴퓨터(PC)를 자기 PC처럼 사용했다. 청사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공시생이 아니었다면, 생각 자체만으로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공시생 송씨는 무모하리만큼 대담했다. 지난달 5일 치러진 2016년 국가직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선발 시험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을 앞두고 청사 1층 체력단련장에 몰래 들어가 탈의실에서 공무원 신분증 3장을 훔쳤다. 이어 시험지를 훔치려고 인사혁신처가 있는 청사 16층 채용관리과 사무실 침입을 다섯 차례 시도하다 실패했다. 같은 달 24일과 26일 사무실에 잠입해 담당 공무원의 PC를 켜고 자기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성적도 고쳤다. 인사혁신처는 나흘 뒤인 30일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다 1명이 늘어난 사실을 발견하고 1일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까지 수사에서 드러난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청사라는 점이다. 2012년 10월 60대 남성이 가짜 공무원 신분증으로 청사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투신해 사망한 사건과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보안 시스템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사와 사무실을 헤집고 다녔고,PC까지 접속해 조작했다. 그렇기에 체력단련장에 어떻게 출입했는지, 신분증을 분실한 공무원들은 지금껏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PC에 어떻게 접속했는지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정부의 기밀 관리에 대한 허점이 노출된 탓이다. 내부 공모 여부를 수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씨가 청사를 멋대로 드나들 때 정부는 이미 북한의 잇단 도발과 관련해 ‘테러 경비태세와 출입통제 강화’ 지시를 내렸었다. 또 5년 전 사건으로 출입자 제한 원칙도 강화했었다. 하지만 뚫렸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말대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보안관리 시스템의 재검토도 당연한 수순이지만 무엇보다 공무원 스스로 원칙에 충실하고 있는지, 기강 해이는 없는지 묻고 각성해야 한다. 일이 터졌을 때만 호들갑 떠는 대응으로는 재난을 막을 수 없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도 예고 없이 터졌다.
5. 경제·복지 선거공약 공개토론 해보자
20대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수뇌부가 전국을 순회하며 득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 등 각자의 텃밭은 물론 중원, 수도권을 넘나드는 강행군 속에 연설과 악수를 하느라 목이 쉬고 손이 부르틀 정도다. 여당은 ‘야당이 승리하면 나라가 결딴난다’고, 제1야당은 ‘8년간의 배신의 경제를 심판해야 한다’고, 제2야당은 ‘거대 양당 철밥통을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당의 공약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경쟁당의 공약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라며 극단적인 비판에 나서는 것도 수뇌부 유세 현장의 공통된 풍경이다.
여야 각 당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민생과 밀접한 경제·복지 공약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어제도 중산층 복원을 위한 자영업 지원 공약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 5탄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삼성의 미래차 사업을 광주에 유치해 호남 지역에 2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의 ‘호남경제 살리기’ 공약을 내놓았다. 여야가 이처럼 경제·복지 공약에 집중하는 것은 대형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진영과 노선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결국 총선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쏟아지는 여야 각 당의 공약을 유권자들이 꼼꼼하고 냉정하게 분석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조차 좋은 공약과 나쁜 공약을 정확하게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문외한인 유권자로서는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돈을 더 풀겠다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에 대해 더민주는 “국제적으로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더민주의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균등지급 공약에 대해 새누리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검증 없는 비판에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약속한 일자리 창출 규모만 해도 새누리당은 545만개, 더민주는 270만개, 국민의당은 85만개, 정의당은 198만개에 이른다. 각자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지만 유권자들이 검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가 실현 가능하고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나랏빚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데 여야가 내놓은 경제·복지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추가로 최근 5년간 증가한 나랏빚과 맞먹는 200조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돼야 할 판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당이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면서 끊어진 경제의 숨통을 되살릴 수 있을지 알 권리가 있다.
유권자가 각 당의 정책공약 장단점을 제대로 판단해 소신 있는 투표를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으로 자기 공약은 최선이고, 남 공약은 최악이라는 일방통행 유세로는 유권자의 알권리를 충족할 수 없다. 최소한 경제·복지 공약만이라도 여야 4당이 모두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통해 상호 검증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때마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어제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이런 게 공급자 아닌 수요자 중심의 진짜 정치다. 여야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동아일보]
6. 테러방지법 통과만 외치더니 정부청사는 왜 뚫렸나
박근혜 대통령은 2월 국회 연설에서 “테러분자들이 잠입해 언제, 어디서든지 국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급히 테러방지법을 제정해 국민 안전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며칠 뒤에는 테러방지법 통과가 야당의 반대로 계속 지연되자 “정말 자다가도 몇 번씩 깰 통탄스러운 일”이라며 책상을 내리쳤다. 3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이 시작되자 박 대통령은 전국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고 국토해양부는 재난·테러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전국이 비상경계에 들어간 올 2월 말∼3월 말 7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한 대학생 송모 씨가 정부서울청사를 6차례나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송 씨는 청사에 몰래 들어온 뒤 시험지 유출과 컴퓨터 조작까지 시도했다.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는 야간 출입금지 구역을 침입당한 보안 사고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송 씨가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데 그쳤기에 망정이지 테러범이었다면 엄청난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로 경계태세를 최고로 강화한 때 어떻게 정부청사가 그렇게 쉽게 뚫릴 수 있는가. 담당 공무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청사 출입자의 신분증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하지 않고 대충 넘겼기 때문에 발생했다. 2012년 60대 남자가 위조 신분증으로 들어와 불을 지르고 투신했을 때 정부가 내놓았던 각종 대책은 허울뿐이었다는 건가. 정부세종청사로 이사 갈 준비를 하느라 인사처 출입문 관리가 허술했다는 변명에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 리눅스 운영체제(OS)가 설치된 휴대용 저장장치를 꽂으면 비밀번호를 몰라도 컴퓨터를 열 수 있다. 이 정도는 대학생만 돼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서울청사의 보안 시스템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인사처 직원은 비밀번호가 해제된 사실을 다음 날 확인했다. 그런데도 보안이 뚫린 사실은 몰랐다고 하니 의문은 꼬리를 문다. 서울청사 출입 시스템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만큼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차제에 다른 주요 시설의 보안 실태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7. 삼성 끌어들여 ‘광주 표심’ 사려는 김종인의 5共식 발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국회에서 광주에 ‘삼성 미래차 산업’을 유치해 일자리 2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양향자 후보와 함께 발표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양 후보가 지난달 29일 “5년간 삼성전자 전장사업에서 3조 원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한 공약을 중앙당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사업은 스마트카에 들어가는 전기·전자·정보기술(IT) 장치를 만드는 삼성의 신산업이다. 양 후보는 “삼성이 얘기를 해 달라고 했다”며 “광주에 이미 현대·기아차가 있어 최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대표가 재벌을 끌어들여 사업을 유치하려는 데 많은 국민은 어리둥절해한다. 글로벌 기업의 미래가 걸린 사업을 공약으로 만든 더민주당의 발상이 참 놀랍기만 하다. 양 후보의 말만 듣고 해당 기업에 확인도 하지 않고 불쑥 발표한 ‘야당 권력’의 밀어붙이기 식 태도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정치가 시키면 무조건 따라간다는 5공(5공화국)식 발상”이라고 공격했을 정도다.
더민주당의 무리한 발표는 국민의당에 밀리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의 광주와 전남·북 지지율은 지난달 11일 27.6%에서 이달 4일 42.1%로 급등하면서 더민주당(43.7%→27.2%)을 앞질렀다. 이 분위기가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로까지 번지면 “107석 안 되면 당 떠난다”고 밝힌 김 대표에겐 끔찍한 시나리오다.
경제·안보 복합위기에 글로벌 기업까지 선거에 이용하려는 야당의 행태는 위험천만하다. 청년수당 지급 같은 서민 공약은 식언(食言)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같은 실착은 국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칫 경제에 깊은 주름이라도 남기면 어쩔 심산인가.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전장사업팀’을 신설해 신성장동력을 하나씩 개척해 나갈 계획이었다. 더민주당이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를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면 해외 신용평가기관들이 즉각 검증에 나선다. 반나절 만에 허위로 드러났으니 제1야당으로선 망신살이 뻗쳤다. 그러고도 사과 한마디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야당이 기업 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마침 어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김 대표와 경제공약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여기서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이라도 체결하라. 여야가 규제 프리존 특별법을 차기 국회 개원 직후 통과시키는 것에도 대승적으로 합의했으면 한다.
[중앙일보]
8. 제집 하나도 못 지키고 공시생에게 농락당한 정부
사실상 ‘정부의 심장’으로서 최고 수준의 경비와 보안을 유지해야 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가 20대 공무원 시험 응시생에게 농락당했다. 지난 5일 체포된 이 응시생은 훔친 공무원 신분증으로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청사를 수시로 침입하면서 범법 행위를 기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응시한 지역인재 7급 공무원 필기시험지의 유출을 시도한 것은 물론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들어가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를 열고 자기 성적을 조작하기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마디로 서울 한복판 정부청사의 경비와 공직자의 보안 수준이 국기를 흔들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 정도라면 여염집보다 나을 게 없다. 만일 테러범이나 스파이가 침입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게다가 문제의 응시생이 청사에 침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청와대 타격 위협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에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3월 24일)한 무렵이다. 대통령의 엄중 지시를 일선에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셈이다. 더구나 이 건물에는 정부청사의 관리를 맡은 행정자치부가 입주해 있다. 정부가 제집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소를 잃은’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안 실패’의 반면교사로 여기고 반성과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사건 진상부터 철저히 규명해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는 게 순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경비·보안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해 체계적으로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정부 보안 2.0’을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의 보안의식을 높이고 근무 기강을 재확립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책임자 문책도 당연히 필요하다. 자체적으로 보안을 업그레이드하기 힘들다면 국내외 전문 보안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의 보안 수준을 걱정하게 하는 사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9. 중국의 제재 이행, 북이 핵 포기할 때까지 이어져야
중국의 대북제재가 공식적인 이행 단계로 진입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압박이 탄력을 받게 됐다. 중국 상무부는 5일 홈페이지에 석탄과 항공유 등 대북 수출입을 금지하는 25개 품목을 공시했다. 해관총서(세관본부)와 공동 명의로 발표된 공고문에 따라 중국의 대북 금수(禁輸)는 이날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33일 만이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서 가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엄격하게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집행할 것”이라고 밝힌 지 4일 만이다.
중국이 공고한 대북 수입금지 품목은 석탄과 철광석· 금· 희토류 등이며 수출금지 명단엔 항공연료 등이 포함됐다. 안보리 결의안 내용대로다. 중요한 건 중국 정부가 유엔 결의안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를 이번에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민생 목적’ 등일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는 걸 거론하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선 법인 대표 도장이 찍힌 보증서 제출이나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는 물론 유엔 제재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 점 등을 규정해 예외가 쉽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중국이 얼마만큼 성실하게 대북제재를 이행했는지는 90일 내 유엔 제재위에 제출하기로 된 보고서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번 금수 목록에 포함된 석탄과 철광석 등 7개 광물이 북한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9%에 달하며, 이 품목들의 97%가 중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철저한 제재 이행이 북한에 미칠 타격은 엄청나다. 중국 정부가 금수 품목을 공식 발표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더 이상의 무모한 ‘북한 감싸기’는 없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북한은 ‘제재는 공기처럼 익숙하다’며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자기 최면에 걸려 있다. 하루 빨리 꿈에서 깨어나 비핵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중국도 북핵 포기 때까지 제재 이행을 엄격하게 지속해야 한다.
[매일경제]
10. 바이오시밀러로 미국시장 뚫은 셀트리온의 쾌거
셀트리온이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 승인을 획득한 것은 국내 제약사에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다. 관절염 치료제인 램시마는 미국이 최초로 승인한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단백질 의약품인 기존의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분자구조가 복잡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승인을 받은 데 이어 미국 시장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제품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벽을 넘어선 만큼 다른 국가들을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단일 품목으로 관련 시장이 20조원인 미국에서 연간 2조원, 유럽까지 포함하면 3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최대 제약사인 한미약품의 매출이 1조3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잘 키운 한 품목이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램시마가 거둔 쾌거는 남보다 빨리 바이오시밀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밀어붙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뚝심의 결실이다. 그는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14년간 우직하게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가 2014년부터 줄줄이 만료된다는 것을 깨닫고 시장 선점을 노리고 도전한 것이 램시마의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중후장대한 제조업의 성장판이 닫히면서 한국 경제가 내리막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약품이 신약 수출로 잭팟을 터뜨린 데 이어 셀트리온이 미국에 깃발을 꽂으며 돌파구를 만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셀트리온은 향후 5~10년간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이후에는 신약 개발에 뛰어들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는데 지금처럼 '퍼스트무버' 정신으로 도전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제약 시장은 영세하지만 연구개발과 도전정신으로 글로벌 시장을 두드린다면 그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셀트리온이 다시 한번 보여줬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 칼럼>5평 단칸방 '10남매 가족'의 행복
'첫눈 오는 날이 공휴일인 나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바로 히말라야 고산 준봉에 둘러싸인 작은 국가 부탄 얘기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각자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얼마 전 부탄 대표가 출연했다. 그는 부탄 국민이 행복한 이유를 "불교 사상 중에 '현재에 만족하라'는 말이 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로 만족하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는 "첫눈 내리는 날이 공휴일이 맞다"고도 했다. 부탄이 농업국가라 눈이 많이 오면 물이 풍부해져 수확도 잘 될 거라서 하루 쉰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부탄 나라 얘기를 꺼낸 것은 광주(光州)의 '10남매 가족'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10남매를 낳아 어렵게 키우는 40대 부부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첫 소식을 접하고 '교육적 방임'을 의심했다. 하지만 이 가족의 사연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을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워지고 오히려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준다.
지금까지 이 가족을 조사하거나 지원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전해진 사연은 대강 이렇다. 물론 이 가족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 아니라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A(44) 씨 부부는 20대 후반에 충북 청주에서 수천만 원의 사채를 빌려 음식점을 하다 실패했다. 빚은 이자를 합쳐 눈덩이처럼 불었다. A 씨 가족은 사채업자를 피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2006년께 부부 중 한 명의 연고가 있는 광주에 정착했다. 이자까지 합쳐 8천만 원 가까이 불어난 빚을 친인척의 돈까지 끌어모아 겨우 갚은 뒤였다.
A 씨 부부는 빚에 쪼들려 한동안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형편이 어려웠지만 1990년생인 첫째를 시작으로 2009년생 막내까지 1∼3살 터울로 5남 5녀를 낳아 길렀다.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는 "어린 시절 외롭게 자라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10명의 자녀 중 큰딸(26)과 현재 초등학생인 막내 2명을 제외한 둘째(24)부터 여덟째(12)까지 7남매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대신 중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큰딸이 동생을 가르쳤다. 이런 식으로 동생들은 오빠, 언니, 형, 누나에게서 한글과 셈법을 배웠다. 옛날에는 A씨 가족처럼 가정 형편 때문에 맏이만 정식교육을 받고 동생들은 대신 오빠나 언니들한테 배웠던 집들이 적잖았다.
그 사이 성년이 된 큰딸은 기술을 배워 독립했고, '홈 스쿨링'을 한 둘째와 셋째도 맏이의 길을 따라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이들은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치고 있다고 한다. 남은 7남매와 부부는 미닫이문으로 부엌과 나뉘는 5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지낸다. 밤이 되면 부부가 막내를 품고 부엌에서 잤고, 스무 살 넷째가 남은 동생들을 데리고 방에서 잔다고 한다. 그동안 가계 수입은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혼자 벌어오는 일당 8만 원과 기초생활수급비 월 98만 원이 전부였다.
부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 사랑은 남달랐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형제자매의 우애 속에 자랐다. 이들 가족 사연이 알려진 후 그간 학교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을 면담한 학교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학습능력에 문제가 없고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특히 인성교육이 잘된 것 같다고 전했다. 예의가 발랐고 한마디로 버릇없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A 씨 가족의 사정을 살펴본 구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풍요롭지는 않아도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A 씨 가족 이야기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자는 "이들 가족을 쭉 취재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 생각이 났다"면서 "여러 가지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가족 간에 사랑이 있었던 전통적인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는듯했다"고 말했다. 10남매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된 후 각계에서 도움이 손길이 오자 아버지 A 씨는 생활고 해결을 위한 후원금이나 생필품 지원은 원하지 않고 미취학 자녀 교육과 기초생활수급만 받아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주위에서 관심을 그만 가져달라고 거듭 말했다고 한다.
이 가족의 사연은 부부가 지난 2월 동 주민센터에 자녀의 교육급여 지원을 신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부와 단절한 채 가족끼리 사랑으로 어려움을 견뎌낸 이들이 비로소 세상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할 때다. 10남매 중 일곱째와 여덟째는 관계기관의 도움으로 이달 5일 처음으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부족한 것은 이웃들이 메워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사회다.
2. [한국일보]레고 창업자 올레 크리스티얀센 탄생
조립 블록 완구기업 ‘레고 LEGO’의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1891년 오늘(4월 7일) 덴마크 빌룬트(Billund) 북부 필스코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의 열 번째 아들.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친 뒤 목수 일을 배워 처음 연 목공소는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불탔고, 다시 취업해 번 돈에 빚까지 얻어 목공소를 새로 열었을 땐 대공황이 터졌다. 그는 파산 직전에 몰렸고, 아내와도 사별했다. 1932년, 41세의 그에게 남은 건 전기요금 대기도 버거운 작업장과 은행 빚, 그리고 네 아이뿐이었다.
목수인 그가 주로 만들던 건 생활 소품과 가구였고, 당시엔 당연히 주문 제작이었다. 일도 돈도 없던 그는 어느 날 작업장 자투리 나무들로 아이들에게 줄 오리를 깎기 시작했다. 그 나무 오리에 동네 아이들이 반색했고, 그는 널린 나무토막과 널린 시간으로 온갖 장난감을 만든다. 동물, 미니어처 집, 가구…. 1934년 그가 작업장에 새로 내건 간판이, 덴마크어 ‘Leg Godt(영어론 play well)’의 첫 두 글자를 따 만든 ‘LEGO’였다. 그는 완구제작업자가 됐다.
47년 올레는 덴마크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사들여 합성수지 완구를 출시했고, 레고는 금세 200여 종의 나무ㆍ플라스틱 완구를 생산하는 완구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 같은 조립식 블록은 셋째 아들 고트프리드(Godtfred, 1920~1995)의 아이디어였다. 42년 무렵부터 아버지 일을 거들던 그는 50년 나무쌓기에서 응용한 플라스틱 블록 시제품을 제작했고, 1958년 조립 안정성을 고심하던 끝에 똑딱단추 원리의 블록을 만들어냈다. 그 해 66세의 올레 크리스티얀센은 심장 마비로 별세했다.
레고는 변신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유아를 위한 듀플로 시리즈(67년), 회전축과 모터까지 달린 테크닉 시리즈(77) 마인드스톰 로봇 시리즈(98년)…. 스타워즈, 해적선, 캐슬 등 주제별 다양한 시리즈와 테마파크 레고월드, 놀이교재 연구 등 사업 다각화.
달라지지 않은 건 고트프리드가 정한 레고 철학, 즉 ‘안전하고 완전하고 평화로운 완구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한다. 자식을 위해 나무오리를 깎던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3. [서울신문][세종로의 아침] 예술이 순수함을 잃었을 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지난달 24~26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2016 아트바젤 홍콩’에는 세계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유명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35개국 239개의 프리미어급 갤러리들이 참여한 이번 페어에서는 특히 세계 굴지의 갤러리 부스에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정창섭 등 한국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이 내걸려 한국 현대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우환의 1970년대 후반 작품인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시리즈를 보는 심경은 무척 복잡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거장의 작품 앞에서 감동을 받아야 마땅할 텐데 “이 그림 혹시 가짜 아닌가?”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상당수의 위작이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경찰이 지난해부터 수사를 벌이고 있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위작인 듯한 그림이 판매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 터라 몇 군데 화랑이 내건 이우환의 작품 앞에서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한 외국 갤러리에서 판매 중인 1979년 작 ‘선으로부터’를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출처를 물었다. 작품의 이력서에 해당하는 프로브넌스에는 일본의 컬렉터에서 도쿄의 갤러리를 거쳐 유럽의 개인 컬렉터에게 팔린 작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위스 복원 전문가의 컨디션 리포트까지 첨부돼 있어 서류상으로는 완벽했다. 이런 서류를 보니 신뢰가 가기보다는 위작을 국제시장에서 ‘세탁’한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만 같았다.
취재 결과 이 작품 뒷면에 적힌 일련번호 ‘7****2’는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1979년 작품 ‘점으로부터’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12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가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다른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져 문제가 됐었다. 또다시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작품이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나온 것은 왜일까.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나란히 내건 도쿄의 한 갤러리 주인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자 “작가가 본 것 중에 가짜가 하나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럼에도 경찰의 압수품 감정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이번 아트페어에 나온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살펴본 뒤 “그림 그린 방식이나 색깔, 사인이 위작으로 판명된 것들과 너무 흡사한 것이 있다”고 했다.
미술관이나 슈퍼 컬렉터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세계 굴지의 갤러리들이 ‘위작’을 판매하고 있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생존 작가의 위작 스캔들이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 망신에 더해 겨우 불붙기 시작한 K아트의 부흥은 찬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작가의 단호함이 결과적으로 위작범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작가는 강 건너 불 바라보듯이 가끔 화랑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역정을 내고 말 일이 아니다. 위기 의식을 갖고 지금이라도 지혜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 자신도 살고, 한국 미술도 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4.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우리 동네 오래된 빵집
서울 돈암동에 사는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집 앞에 나폴레옹 빵집이 있어 정말 좋겠습니다.” 그 빵집은 장사가 잘된다. 역사도 오래됐다. 1968년에 생겼으니 이제 50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가본 빵집 중 제일 붐비는 곳은 단연 군산의 이성당 빵집이다. 종종 군산에 가면 그 빵집에 들른다. 그때마다 손님들이 빵집 앞 도로변 멀리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손님이 하도 많다 보니 직원들은 늘 바쁘다. 카운터에서 빵을 봉지에 담아주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군산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이성당 빵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성당 빵집은 1945년에 생겼다.
대전역엔 성심당 빵집의 매장이 있다. 대전역 매장은 항상 붐빈다. 사람들은 성심당의 빵을 사들고 열차를 탄다. 성심당 빵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사람들은 그 빵에 대해, 그 빵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1956년에 생겼다는 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간식으로 제공됐다는 얘기…. 동대구역에도 삼송빵집의 매장이 생겼다. 대구 삼송빵집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요즘 빵집 얘기를 참 많이 한다. 전국의 유서 깊은 빵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빵을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빵 맛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역사와 스토리다.
몇 달 전 서울 장충동 태극당 빵집 앞을 지나다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았다. 1946년에 생긴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 태극당이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외관은 예전 모습을 유지했고, 내부는 과거의 흔적을 많이 살렸다. 홍보 간판과 카운터 안내판은 옛날식 그대로였다. 카운터 안내판에는 여전히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라고 쓰여 있다. 1960, 70년대 분위기다. 곳곳에 오래된 타일, 찌그러진 전기 스위치, 고장 난 두꺼비집(누전 차단기)도 살려놓았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래된 빵집들은 점점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건물은 건물대로, 빵의 맛과 스토리는 또 그들대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미래의 유산인 셈이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훼손되거나 사라질지 모를 근현대 유산을 미리 보존하자는 취지다. 여기엔 청진옥(1937년), 한일관(1939년) 같은 음식점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두 음식점은 서울 청진동 재개발의 와중에 원래 장소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옮기다 보니 외관도 바뀌고 내부도 바뀌었다. 당연히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엔 청진동의 청진옥, 피맛골의 한일관으로 남아 있는데, 무분별한 재개발이 두 음식점의 장소성(場所性)을 망가뜨린 것이다.
일본 가가와(香川) 현의 고토히라(琴平)가 생각났다. 작지만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이곳엔 고토히라를 대표하는 긴료(金陵) 양조장이 있다. 그 역사가 무려 200여 년에 이른다. 지금도 술을 제조해 팔면서 공간 일부를 술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긴료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둘러보면 우리의 지역마다 오래된 빵집들이 있다. 빵을 먹으며 우리는 그 빵집의 역사를 주고받는다. 빵집의 역사는 소중한 생활사이다. 우리 동네 빵집들이 오래 살아남아 100년을 넘기고, 빵집 어딘가에 빵 박물관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5. [동아일][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우선순위
사무실 이사를 앞두고 열흘 동안 온통 ‘버리는 일’에 몰두했다. 우선 1000권이 넘는 책을 반으로 줄이는 일이 큰 과제였다. 더러 같은 책이 두 권 있거나 별로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이 섞여 있는 바람에 어느 정도까지는 골라내기가 수월했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10년 이상 간직해온 책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아 책꽂이에서 뺐다 꽂았다 하니 작업 속도는 점점 늦어졌다.
온종일 아쉬운 마음으로 책과 씨름하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많이 가졌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일은 아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언젠가 다시 꺼내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워서 쌓아둔 것도 결국 나의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소득도 있었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분명하게 확인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좋은 책의 기준이 확실해졌다. 어떤 책은 버리고 어떤 책은 남기는 작업을 직접 하다 보니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가 간단명료하게 와 닿았다.
선별의 우선순위는 진정성이었다. 아무리 장정이 화려하고 비싼 책이어도 작가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으면 버리는 데 별반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오랜 정성이 들어간 책은 그럴 수 없었다. 많은 책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살펴보면서 큰 공부를 한 기분이 든다. 살아가면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선거운동이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후보자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어디로 가고 모 후보의 딸이 미모라는 둥, 조카가 연예인이라는 둥 곁가지가 더 무성하다. 마침 우리 집의 아래층에 사는 분이 출마했기에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그 후보의 딸에게 “요즘 딸들이 열심이던데 아빠 선거운동 하느라 힘들겠네요”라고 했더니 “전 예쁘지 않아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도 며칠 밤새워 만든 동영상을 갖고 가는 길이에요”라며 급히 뛰어갔다.
국회의원을 뽑는데 웬 가족들의 미모 타령일까. 다 읽고 난 책을 선별하여 버리기도 쉽지 않아 몇 번이나 망설이는데 이제라도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신중하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택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볍게 선택하면 가볍게 취급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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