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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3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여·야·정, 역지사지로 민생 살릴 혜안 고민하길

여·야·정 민생현안점검회의가 지난 20일 개최됐다. 회의 결과를 놓고 ‘성과가 없었다’는 회의적인 시각과 ‘첫 술에 배 부르겠느냐’는 기대감 등 두 가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제1차 여·야·정 민생회의가 갖는 상징성이다.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국가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의 생각을 듣기 시작했다는 점은 누가 뭐라 해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날 회의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이 의제에 올랐다. 먼저 정부를 대표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여야 정책위의장들에게 수출 부진과 청년실업률 상승, 일자리 창출의 어려움, 민생 현안 등을 설명할 기회를 가졌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20대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신산업육성을 위한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했다. 이에 여·야·정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추경 외에도 정부에서 요구하는 한국형 양적완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야당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재정지출 확대에 방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야당 입장에서는 양적완화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이해하고 합의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성과연봉제에 대해서는 노사합의로 추진한다는 원칙만 재확인했다. 노사합의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노조의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노사합의 원칙만 확인한 것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야당도 비효율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고 있고, 국민 다수가 원하는 공기업 임직원의 성과연봉제 도입 원칙에는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야당 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도 협치의 중요한 가늠자 중의 하나다. 여야 3당이 한목소리로 중앙정부가 좀 더 재정적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올 예산의 시·도 간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3당이 한목소리를 낸 사안인 만큼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야·정 민생회의가 협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상시청문회법’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상시청문회법은 민생에 비해 중요도가 낮고, 성격도 다르다. 민생은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뿐 여야가 따로일 수가 없다. 민생을 챙기는 일만큼이라도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에는 야당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누리과정 예산편성에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여·야·정 민생회의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자주 만나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민생 문제만큼은 여·야·정이 진영의 늪에서 빠져나와 협치의 정치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2. ‘강남역 여성 살인’ 자발적 추모 함의 읽어야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이 사회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연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7일 경찰은 정신병력이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인식했다. 그런 것이 다음날 한 네티즌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여성 혐오 살인에 경종을 울리자고 제안하면서 삽시간에 공감대를 넓혔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왔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를 여성혐오증으로 몰아가는 시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특정했다는 의심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화장실에 숨어 있던 범인은 6명의 남성이 오간 뒤 처음 나타난 여성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강남역 부근의 추모 열기는 전국의 도시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추모 카페가 만들어지고 오프라인에서는 촛불 문화제 등이 잇따라 계획되고 있다. 특정 단체나 구심체 없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운동을 주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단순히 흘려 넘길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컸는지, 억압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공포는 일상적이며, 이번 사건은 그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이라고 여성들은 울분을 섞어 자조한다.

여성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걱정해야 하는 정황들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만 보더라도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84%를 차지한다. 된장녀, 김치녀 같은 여성 혐오 묘사가 흔한 데다 이런 표현에 공감한다는 남성은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사회 분위기를 무비판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남자 청소년들은 한술 더 떠 67%나 된다니 걱정스럽다.

여성 대상의 폭력과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절실하다. 오죽했으면 여성혐오 범죄는 법을 고쳐서라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얼음판을 걷게 하는 세상은 야만사회다. 내 딸, 내 누이일 수 있는 여성들이 왜 이 무더위에 인터넷 사발통문을 돌려 거리집회에 나서려는지 헤아려야 한다. 며칠 뒤 발표한다는 범정부 여성 안전 종합대책도 졸속 땜질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3. 北 대화 공세 앞서 의미 있는 변화 보이라

7차 당 대회 이후 북한의 대화 공세가 집요하게 펼쳐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 20일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을 통해 군사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21일에는 김기남 당 중앙위 부위원장 명의로 군사 대화 실무접촉을 제안하는 등 대화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전쟁 연습으로 비난하면서 적대행위의 전면 중단을 촉구하면서 남북 간 군사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이틀간 계속된 북한의 대화 공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최우선 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비핵화를 거부한 상태에서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하는 행태는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평가인 것이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분석해 보면 늘 다목적인 노림수가 있다. 유연한 대화 제스처 뒤에는 한반도 긴장의 이유가 자신들에게 있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 가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 대화를 제의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남남 갈등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이후 군사 대화를 하자는 것은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이 7차 당 대회에서 주장했던 ‘세계의 비핵화’ 역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핵무기 소형화와 다양화를 추진하는 북한으로서 시간 벌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스위스까지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하면서 대북제재에 참여할 정도로 북한의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북한은 틈만 나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도발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북한은 국제사회에 적대행위 중지를 요구하기에 앞서 핵실험 중단 선언 등 의미 있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대화 공세에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공화당)나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등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당선 이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는 입장이라 미 대선 이후 국제사회 기류가 급전환될 수도 있다. 당분간은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대북 제재 국면을 유지해야 하지만 향후 상황 변화에 따른 다양한 출구 전략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동아일보]

4. '성과급 노사합의'약속한 경제부총리, 공공개혁 포기했나

여야정이 20일 첫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대해 지난해 9월 ‘직무·숙련을 기준으로 해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한 노사정 대타협 원칙을 따르고 노사 합의로 진행키로 했다. 정부가 성과주의를 강제한다는 야당의 지적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불법과 탈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7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개혁을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유 부총리였다. 지난달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 성과로 첫발을 내디딘 ‘여야정 협의체’가 공공개혁을 후퇴시킨 꼴이다.

금융공기업들은 이달 들어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동의서를 받고 이사회에서 성과주의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5곳이 성과급을 도입했고 이번 주에는 나머지 4개 금융공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유 부총리가 느슨해지는 공공개혁의 속성을 감안해 두 야당에 선제적 개혁을 설득하기는커녕 개혁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2014년 기준 공공기관 전체 연봉은 6349만 원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소득 상위 10%에 가깝다. 전체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3240만 원)의 2배나 되고, 산업은행 예탁결제원 같은 9개 금융공기업의 평균 연봉은 무려 8883만 원이다. 더구나 공공부문에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는 기본급은 그대로 둔 채 수당에만 차등을 두는 등 ‘무늬만 성과주의’다. 비정규직은 월 137만 원을 받는 마당에 여야정이 생산성 낮은 공공부문의 기득권 사수를 돕겠다는 것은 다수 국민을 외면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노동개혁의 대상인 공공노조를 협상 테이블에 모셔놓고 일일이 재가를 받는 개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그리스가 위기에 빠진 주요 이유는 개혁에 대한 일부 정치권의 반대 때문”이라고 했다. 공공개혁이 실패한다면 민간개혁을 유도할 명분도 없어질 것이다.

5. 불편 감수해야 초미세먼지 잡는다

최근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5년도 공기 질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80개 국가 중 173위였다. 2014년에 171위였으니 두 계단 더 내려간 셈이다. 그러나 이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공기 질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매번 달라 객관성 유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가중치를 반영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나 국가의 공기 질이 나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지상 관측 자료가 아니라 정확도가 낮은 인공위성으로 추정한 대기오염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정부가 수도권에서 미세먼지(PM10)를 관측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이후, 최근 몇 년간의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낮다. 2000년대 초반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7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최악의 상황이었고,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힘입어 2010년 이후에는 50μg 이하로 낮아졌다. 하루 평균 100μg 이상인 날도 2000년대 초반에는 40일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10∼20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공기 질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는지 반문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미세먼지 농도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보다 두 배 이상이다. 현재 미세먼지 양의 절반으로 줄여야 선진국 수준에 이른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 양이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정부는 중국 내 미세먼지 감축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 중국 미세먼지의 피해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산정한 결과를 하루빨리 발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그간 유지해 온 정부의 정책 방향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초미세먼지이기 때문이다. 지름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인 미세먼지의 4분의 1 크기인 초미세먼지(지름 2.5μm)는 우리 건강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최근 10여 년 동안 미세먼지는 크게 줄었지만, 초미세먼지는 상대적으로 적게 감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에서도 최근에야 초미세먼지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관측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관측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감소했고,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초미세먼지는 자연 상태에서는 발생하지 못할 만큼 크기가 작다. 중국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는 초미세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초미세먼지는 인위적인 요인, 즉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굴뚝을 통해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자동차의 경유 엔진을 통해서 배출되는 양은 휘발유 엔진의 10배 이상으로 많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를 경악하게 한 폴크스바겐과 닛산의 배출가스 조작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렇게 정부가 미처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가 공기 중에 뿜어져 나왔다. 초미세먼지는 앞으로도 적절한 규제책이 나올 때까지 계속 뿜어져 나올 것이다.

깨끗한 물은 사 먹어야 하듯이 깨끗한 공기도 공짜로 얻을 수 없다.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선에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참아야 한다. 초미세먼지를 줄이려면 경유 차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동원해서라도 경유 차 사용을 자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대기 환경을 감안한다면 이젠 화력발전소를 증설해선 안 된다. 질소산화물(NOx)과 황산화물(SOx) 등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고 있는데도 환경부의 오염배출원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는 중소형 공장도 주시해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이 공장들의 대기오염 물질만 제대로 관리해도 대기의 질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6. 1년 맞은 메르스 사태 교훈 벌써 잊었나

우리 사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5월 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50대 한국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된 메르스 쇼크는 보건당국과 의료계의 대처 미흡으로 일상 생활을 공황 상태로 내몰았다. 보건당국이 지난해 12월 23일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217일 동안 감염자 186명 가운데 3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1만6000여명이 격리됐다. 또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여행·모임·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은 자그마치 30조원에 달했다. 

메르스 파문은 단순한 질병으로 그치지 않았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방역체계의 허술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에 맞서는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태를 악화시키는 낭패를 당했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국가 방역체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질병관리본부장을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역학조사관을 늘리며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 전염병이 창궐할 때 신속하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현장에서 지휘를 하기 힘든 구조다. 또한 감염병 전문병원은 설립 계획만 잡혀있을 뿐 구체적인 일정도 없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 방역체계 개편은 실질적 효력을 갖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최근 ‘정부가 다른 감염병 발생에 대응할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는 설문조사에 73.8%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은 우리 방역체계 현주소를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다. 최근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확산되고 있는 지카바이러스는 국내 방역 시스템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험대다. 메르스 사태처럼 정부가 넋 놓고 있다가는 ‘제2의 메르스’ 재앙을 초래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방역당국은 지카바이러스 창궐에 맞서는 시스템 점검과 대응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지대가 강남역 참극을 불렀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20대 여성 피살사건에 대해 경찰은 22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로 규정했다. 여성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이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조사한 결과 김씨의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범죄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는 이미 2003~2007년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으며 2008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모두 6차례에 걸쳐 19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치료를 중단한 채 거리를 방황하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이런 비극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일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정신질환자는 국가와 사회가 치료해주고 관리해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할 대상이다. 치료받는 정신질환자는 결코 위험하지 않으며 범죄율이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낮다는 보건의료 통계는 이 같은 관리체계의 강화가 왜 필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거리를 배회하며 증세가 악화한 사람은 없는지 제대로 관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 224개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 건강증진센터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치료·퇴원할 때 본인 동의서를 받아 실시하고 있는 사례 관리를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건강증진센터에 전담직원을 배치해 업무에 몰입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는 환자에 대해서는 집중 전담제도 등 더욱 촘촘하고 치밀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명령제를 더욱 엄격하고 실효성 있게 적용할 필요도 있다. 물론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위험 행동의 가능성이 크거나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당국이 더욱 과감하게 개입하는 쪽으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백안시하면 치료나 관리 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이럴 경우 증세가 더욱 악화돼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사회가 이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야 더욱 안전한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우범지역 환경을 개선하는 등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 환경 조성도 절실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이런 문제점들을 적극 개선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야말로 억울한 희생자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매일경제]

8. 첫 발 뗀 민생 협치 일자리 창출부터 성과 내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0일 여야 3당 정책위의장들과 함께한 첫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어려운 경제 여건을 설명하며 "일자리 창출 여력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솔직히 드린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둔화로 수출 부문이 직격탄을 맞고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 고용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보다 25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 1년 새 15세 이상 인구가 42만명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더욱이 청년층 실업률(10.9%)은 4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날 회의는 여소야대 정국의 민생 협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의 청와대 회동에서 합의한 대로 여·야·정이 민생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댄 것이다. 예상대로 첫 회의에서 정부와 여야는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부실기업 구조조정 재원, 누리과정 예산 부담 주체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에 제동이 걸리거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65%대에 그치고 있는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내세웠다. 그런데 현 정부 경제정책 사령탑이 '일자리 창출 여력이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용절벽에 대한 우려는 유 부총리가 완곡하게 내비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조선업 '빅3' 구조조정 과정에서만 600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제 "이대로 두면 청년실업자가 조만간 150만~160만명에 이를 것"이라며 20대 국회의 노동개혁 입법 처리를 호소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민생 현안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민생 협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 돼야 한다. 여·야·정은 마냥 시간을 끌지 말고 구조조정 충격을 흡수하면서 신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민생경제 협의체는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9. 반복되는 ELS 손실, 판매 전에 위험성 충분히 알렸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또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매일경제신문과 에프앤가이드가 2011년부터 이달 19일까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5개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공모 ELS 현황을 분석한 결과 5년간 1조2300억원이 발행됐는데 이 중 3200억원가량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1500억원은 아직 상환 전이라 최종 손실액이 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니 큰일이다. 조선과 해운은 전망이 좋지 않아 투자에 신중했어야 했는데 고수익에 현혹되는 바람에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ELS와 기타 파생결합증권(DLS) 투자로 원금 손실이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에는 자동차와 화학, 정유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100억원대 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저유가 충격으로 원유 DLS에서 1000억원이 넘는 원금 손실이 생겼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투자자들이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손실이 잦은데도 돈이 몰리는 이유는 저금리 시대를 맞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탓도 있지만 신중하지 못한 투자자와 수익에만 급급한 금융기관의 책임도 무겁다. 

파생결합증권은 특정 종목을 자산으로 하는 유형은 물론이고 지수 연동같이 상대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낮은 것이라 할지라도 태생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투자 상품이다. 원금 보장형이 있기는 하지만 은행 예금 같은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 발행사인 증권사나 은행이 파산하면 원리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금융기관들은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수익에 목마른 투자자들을 상대로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반복되는 파생결합증권의 투자 손실을 막으려면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하겠지만 금융기관들도 수익에만 너무 욕심내지 말고 판매하기 전에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 고수익만 생각하고 파생결합증권의 원금 손실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에게는 아예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

10. 검찰, 홍만표 전관예우·몰래변론 의혹 확실히 밝혀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전방위 로비의 핵심으로 꼽혀온 브로커 이 모씨가 검찰에 체포되면서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부당 수임료 수수 및 탈세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고교 선후배 사이로 정 대표에게 홍 변호사를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정 대표와 홍 변호사의 연결 고리인 만큼 철저히 수사해 그동안 불거진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홍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정 대표의 마카오 300억원대 원정 도박 혐의에 대한 두 차례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검찰이 지난해 마닐라 100억원대 도박으로 정 대표를 기소했을 때도 회사 돈 횡령 혐의 적용을 막아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홍 변호사는 그동안 "정 대표에게 받은 수임료는 1억5000만원이 전부"라며 전관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검찰은 최근 정 대표로부터 "3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2년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맡아 선임계도 내지 않고 수임료 3억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2014년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참엔지니어링 한 모 회장 횡령·배임 고발 사건 때도 선임계 없이 '몰래 변론'하고 세금을 안 낸 정황이 드러났다. '몰래 변론'은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데 들켜도 과태료만 부과하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검찰이 홍 변호사 소환조사에 뜸을 들이고 있으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홍 변호사의 부동산 관련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탈세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브로커 이씨가 체포된 만큼 그의 입을 통해 홍 변호사의 전관 로비 혐의를 입증해내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 의혹이 핵심인 이 사건을 탈세 의혹만 밝히고 끝낸다면 비난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려면 검찰은 국민 앞에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속속들이 밝혀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경영칼럼]일부러 고객 편가르는 양국화 마케팅이 뜬다

팝스타 마돈나는 “애지중지하는 딸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마마이트’ 샌드위치를 한입만 먹어보라는 부탁은 끝내 들어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마마이트를 먹는 것은 최악의 악몽이라고도 덧붙였다. 마마이트는 갈색의 진득거리는 이스트 추출액. 주로 토스트에 발라먹는 용도로 사용된다. 우중충한 색과 독특한 향, 짠맛 때문에 먹기 어려운 도전적인 음식의 대명사기도 하다. 마돈나처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녀의 딸처럼 열렬히 지지하는 광팬도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마마이트는 ‘Love it or Hate it’이란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팬들에게는 마마이트로 샌드위치를 천국과 같이 만드는 방법을, 혐오 고객들에게는 샌드위치를 망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2010년 ‘마마이트 XO소스’를 출시할 때는 팬 고객 30명을 초대해 마마이트 향 칵테일과 함께 즐기는 이벤트를 벌였다. 당시 홈페이지에는 5만4000명의 방문객이 모였고 페이스북은 30만 이상의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팬들의 기대 속에 출시된 신제품은 매장에 전시되자마자 매진되는 성과를 이뤘다.

마마이트의 전략은 열성 고객과 혐오 고객을 정면으로 대립시키는 전형적인 ‘양극화 마케팅’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숨기거나 외면하는 브랜드 혐오 고객을 오히려 주인공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양극화 마케팅은 편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 즉 ‘집단 극화 현상(group polarization)’을 활용한다. 집단 극화란 처음에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선호도에 큰 차이가 없어도 대립구도가 설정되면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또 집단 소속감이 발휘돼 자신의 집단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반감 고객의 공격 덕분에 열성 고객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셈이다.

직접적인 대립은 아니더라도 특정 소비자 집단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핵심 고객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 사이다는 원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맥주 대신 마시는 술, 얼음 없이 마시는 알코올 음료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2006년 여름, 사이다 제조업체 매그너스(Magners)는 ‘얼음과 함께 즐기는 시원한 음료’라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이후 판매가 급증하는 성공을 거뒀다. 전형적인 사이다 고객이 아닌 전문직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낸 덕분이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경쟁 업체 스트롱보우(Strong bow)는 고민에 빠졌지만, 매그너스를 뒤쫓아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수순을 밟지 않기로 했다. 스트롱보우는 시장 확장 기회를 놓치더라도 핵심 고객층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에는 고된 하루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들을 향해 ‘점잖은 은행가들은 꺼져!’라고 외치는 ‘HardEarned’ 광고를 내보냈다. 결과는 성공적. 고소득층이나 젊은이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전통적인 사이다 고객 사이에서는 인기가 급증했다. 브랜드를 지지하는 고객과 꺼리는 고객의 비중이 모두 높아져 양극화는 심해졌지만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2009년 사이다 시장이 6% 성장하는 속에서 스트롱보우는 23%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무조건 팬 고객만을 양성하기보다 제품과 브랜드를 꺼리는 부정적인 고객들의 심리와 행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때로는 양극화를 강조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때도 있다.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지고 개성이 뚜렷해지는 시대에 ‘호불호 고객’을 대립시키는 양극화 마케팅은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다.

2. [매경이코노미][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세상 겉모습 안에 숨은 ‘구조’를 보라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How Not to Be Wrong)’은 수학적 사고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수학 신동으로 자라 교수(위스콘신주립대)가 된 그는 수학이 ‘다른 수단을 동원한 상식의 연장’이며 ‘혼란스러운 세상의 외피 안에 숨은 구조를 보여주는 투시 안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라진 총알구멍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흥미로운 수학의 세계로 이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공군은 전투기에 갑옷을 입히기로 했다. 총알에 맞아도 격추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 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기체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면서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어느 부분을 보강하는 게 최선일까.

공군은 귀환한 전투기에 뚫린 총알구멍의 분포를 살펴본 후 통계연구그룹(SRG)에서 일하던 수학자 아브라함 발드에게 물었다. 구멍이 집중된 곳에 철갑을 둘러야 할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더 둘러야 할지.

발드의 답은 뜻밖이었다.

“갑옷은 구멍이 많이 난 곳에 두르면 안 됩니다. 구멍이 없는 곳, 엔진에 둘러야 합니다.”

발드는 장성들이 보지 못한 걸 봤다. 살아 돌아온 전투기만 보면서 총알구멍 위치와 생존율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엔진에 구멍이 뚫린 전투기는 돌아오지 못한다. 귀환한 전투기들은 전투기 전체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표본이 아니었다. 

특정 시점에 살아남은 펀드들만 보면서 수익률을 계산할 때도 이와 같은 생존 편향의 문제가 생긴다. 이미 도태된 펀드의 낮은 수익률은 계산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엘렌버그는 정치 논쟁에서 횡행하는 선형적 사고의 맹점도 보여준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개혁법을 놓고 논쟁이 한창일 때 한 보수 논객이 이렇게 썼다.

‘스웨덴 사람들이 스스로 실수에서 배운 바가 있어 이제는 정부 크기를 줄이려 애쓰는 마당에 왜 미국 정치인들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는가.’

정부 크기와 국가 번영도 간에 선형적 관계가 있으며 큰 정부는 무조건 나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작거나 너무 클 때는 국가 번영도가 낮아도 그 중간의 적당한 지점에서는 번영도가 매우 높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좀 더 스웨덴 쪽으로, 스웨덴은 좀 더 미국 쪽으로 다가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념 지형에서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현재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살아남은 펀드 수익률만 보는 생존 편향 문제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선형적 사고 버려야

잘못된 과학적 추론에 관한 지적도 날카롭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간 뇌기능매핑협회에서 한 신경과학자가 죽은 물고기의 독심술을 보여줬다. 죽은 연어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기기로 찍으면서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 물고기가 사람의 감정을 놀랍도록 정확히 알아맞히더라는 것.

하지만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농담이었다. fMRI 영상은 복셀이라는 수만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뉘는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사람의 표정과 잘 부합하는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연구자는 그에 흥분해 나머지 복셀들은 무시한 채 물고기가 사람 마음을 읽는다고 결론짓는다. 발생 확률이 낮은 사건도 실제로는 늘 벌어진다는 진리를 무시한 것이다.

수학의 교훈은 단순하다. 세상에는 수학적 사고로 꿰뚫어 볼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일부나마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어지러운 세상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좋은 것이 더 많다고 해서 항상 더 좋아지진 않음을 이해할 때,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도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면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우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3. [동아일보][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엄마 수학능력 평가

5년 전 방영된 EBS의 다큐멘터리 ‘마더 쇼크’를 보면 한국과 미국의 엄마를 비교하는 실험이 나온다. 실험실에서 어린아이에게 뒤죽박죽된 낱글자를 조합해 단어를 완성하도록 하고, 엄마는 옆에서 지켜보게 한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자 옆에서 단어를 말해주거나 순서를 어떻게 바꾸라고 알려주는 등 수시로 개입한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엉뚱한 단어를 만들어도 그저 지켜볼 뿐, 끝까지 문제 풀이를 도와주지 않는다.

실험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한국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빨리 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가르쳐주고 아이가 맞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늘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둔다”, “매번 방법을 알려주면 혼자 하는 방법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엄마들이 성취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지난주 일선 초중고교에 ‘과제형 수행평가를 지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을 보며 문득 이 실험이 떠올랐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부가 지난달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수행평가 비중을 확대하도록 하자 당장 현장에서는 학부모 부담이 커진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교사가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이를 집에서 해결해 제출하도록 하는 ‘과제형’ 수행평가의 경우 사실상 ‘엄마 평가’라는 비판을 샀다.

과제형 수행평가로 인한 엄마들의 대표적인 골칫거리는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 수행평가를 위해 악기는 물론이고 줄넘기까지 과외를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지인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미술 수행평가 결과를 보고 당장 미술학원에 보냈다고 전했다. 아이는 ‘우주에서 하고 싶은 것을 그려 오라’는 수행평가에 검은 공간을 둥둥 떠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우주인을 그려 제출했다. 그러나 학교 인근 미술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미국 스페이스X사가 최근 개발한 우주 로켓을 그리거나, 태양계의 행성과 궤도를 자세히 그려놓고 이를 연구하는 우주인의 모습을 그려 제출했다. 교실 뒤에 전시된 아이들의 그림은 실력 차이가 아니라 사교육 격차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현실적 지표인 셈이다.

사교육이 고착화된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별개로 엄마의 과도한 개입이 수행평가에서 부작용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한 기자는 초등 4학년 자녀가 ‘신선한 과일을 골라보고 기록하라’는 과제를 받아 오자 마트에 가서 사과와 배를 고르고 사진을 찍어 제출했다. 하지만 일부 엄마들이 당도(Brix) 측정기를 사서 시장과 마트 과일의 당도 비교, 수입 국가별 신선도 비교, 제철과일과 하우스과일의 차이 등을 프레젠테이션(PPT) 파일로 만들어 제출했다는 후문을 듣고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수행평가는 ‘창의성을 높이고 실생활 문제 해결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을 하자는 뜻에서 올해부터 확대됐다. 취지는 참으로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는 엄마가 다니는 학교”, “초등 성적표는 엄마 성적표”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엄마와 사교육의 손길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 그리고 부작용을 더욱 키우는 일부 엄마의 과도한 개입이 수행평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단기적인 해법은 학교에서 해결하는 ‘수업 과정형’ 수행평가를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과제 부담을 집으로 돌리지 말고,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과제형을 지양하라’는 정도로 약하게 얘기해서야 과제형 수행평가가 확 줄어들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엄마들 스스로 자녀의 수행평가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 ‘잘된 결과물’에 집착하지 말고 자녀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당장의 결과물이 초라해 보여 엄마의 조바심이 커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잘 알게 될 테고 그래서 자신이 진로를 설계해 잘 찾아갈 테고, 어느 조직에서든 좀 더 나은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엄마 손을 빌리지 않은 덕분에 기발한 그림이 나왔을지 모른다. 혹은 모든 과일을 맛보겠다는 도전 정신이 커졌거나 과일 소믈리에 혹은 과일 감별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엄마들이여, 혹시나 나의 적극성이 아이의 잠재력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같이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여기에 누가 봐도 엄마의 손을 탄 ‘우수작’은 교실 뒤에 전시하지 않는 문화를 교사가 만들어 주면 금상첨화일 테고. 

4.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신문 연재와 본격 소설의 탄생

한국 소설이 번역되어 외국에서 상을 받고, 다른 언어권의 독자를 활발하게 만나는 세상이 차츰 열리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한국의 소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용이었다. 더욱 거슬러 현대 한국 문학의 기원에 해당하는 한 세기 전으로 올라가면 근대 한국의 소설은 외래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효시 격으로 이광수가 ‘무정’을 내놓은 것이 99년 전의 일이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그 장편소설은 그의 출세작이자 한국 근대소설의 본격적인 막을 여는 작품이 되었다. 1920년 봄부터 한국인이 주인 되어 운영하는 신문들이 생겨나면서 문인들의 발표 창구와 활동 폭은 비약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열악한 출판 여건과 부침 심한 잡지 풍토에서 신문 연재는 장편소설의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작가와 신문과 독자는 소설이라는 연결고리 속에 함께 성장했다. 1920년대와 30년대 문화 풍토의 핵심이라 할 만한 것이 신문 연재 장편소설이었다.

동아일보의 첫 연재소설은 1920년 창간호부터 실린 민태원의 ‘부평초’였다. “나는 아홉 살이 되도록 어머니가 계신 줄로 알았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소설 ‘집 없는 아이’를 번안한 것이었다. 아직 문인의 층은 얇고 창작의 기반은 부실한 때여서 민태원 같은 일단의 ‘문인기자’들이 1인 2역을 수행하는 시절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하듯 시인 겸 기자인 김형원은 문학을 보는 세간의 오래된 시선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문학은 고린내 나는 학문이요 문학자는 실생활에서 제외된 인생이다. 문학은 사회를 문약(文弱)에 빠지게만 할 뿐 활기를 주지 못한다. 꾀죄죄한 선비의 소일거리이지 적극적 건설적인 학문은 아니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0일자)

1922년도의 연재작인 나도향의 ‘환희’에서부터 비로소 창작소설이었다. 이광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이후 4년의 공백을 깨는 본격 장편의 출현이었다. 초기작이라 다소 미숙한 구석은 있었지만 모던한 안석주의 삽화까지 처음으로 곁들여져 독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린 도향의 내면적 변화는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미숙한 과일과 같이 나날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내놓기가 부끄러울 만치 푸른 기운이 들고 풋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완숙한 것으로 만족한 웃음을 웃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작품인 것을 안다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위로하려 합니다.”(동아일보 1922년 11월 21일자)

스무 살에 이 장편 연재로 일약 신인에서 문단의 기수로 떠오른 나도향은 연재 첫 회에 붙인 작가의 변에서 그러한 심경을 밝혔다.

그렇게 독점적 대중 매체인 신문을 타고 본격 소설의 시대가 열렸다. 다음 해 1923년 여름에 연재된 염상섭의 ‘해바라기’는 신여성 예술가 나혜석을 모델로 한 작품이어서 여러모로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이례적으로 1면에 배치되었다. 이어 그해부터 춘원 이광수가 오랜 침묵을 깨고 동아일보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그는 13편의 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문학적 전성기를 구가했다.

어느덧 신춘문예도 생겨났고 그렇게 문학의 시대는 힘을 받으며 상승 가도를 이어갔다. 앞에서 언급한 문인기자 김형원은 같은 글에서 세인의 통념과 다른 자신의 문학관을 이렇게 덧붙였다.

“문학은 사회를 향해 위안을 주고 경종과 각성을 준다. 하지만 문학이 어떠한 무엇을 제공함이 아니라, 사회 곧 독자가 스스로 문학에서 자기의 구하고 싶은 바를 구하는 것이다. 문학은 태양이다. 금강석이다. 우리는 그 불을, 그 빛을 각자의 욕구대로 역량대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 스스로 우리에게 갖다 바치지는 않는다. 문학의 특질이 그러하다.”

환란과 궁핍의 시대에도 그렇게 뚜렷하던 소설의 존재감은 이제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사회 속에 집 없는 아이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 문학이 불필요할 만큼 완숙하고 풍요한 사회로 올라선 것일까. 아니면 문학을 떠올릴 여지조차 없이 미숙하고 황폐한 정신세계로 퇴행한 것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서율 꼴찌라는 나라에서 세계적 문학상의 수상작이 나오는 소설 같은 현실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생사 걸린 화장실 혁명

이달 초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을 여행하던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 서니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변기) 앞으로 작은 한 걸음 다가서면 문명사회의 큰 걸음을 내디딘다(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는 내용이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상임대표 표혜령)가 국내 화장실에 보급해온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10여 년 전 네이멍구(內蒙古)를 여행할 때 변소 수준의 화장실 때문에 ‘대략난감’ 했는데 최근 중국에 ‘화장실 혁명’이 진행 중이라 인상적이었다.

한국 화장실 혁명의 대표적 주역은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다. 그는 1999년 10월 한국화장실협회를 설립하고 수원의 공공화장실을 세계적 모범 사례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살던 집을 허물고 양변기처럼 생긴 해우재(解憂齋)를 지었다. 2009년 전립샘암으로 별세하자 유족이 해우재를 기부했고 수원시가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개방해 명소가 됐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WTA 3대 회장을 맡아 아시아·아프리카에 화장실을 지어주고 있다.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국내 화장실 혁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호텔급 화장실과 후진적 남녀공용 화장실이 뒤섞여 있어 ‘화장실 양극화’가 심각하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서초구 관할) 10번 출구 쪽 노래방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을 봐도 그렇다. 경찰은 22일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했지만 남녀 공용화장실이 범죄의 무대를 제공한 사실은 분명하다. 남녀 공용화장실의 폐쇄가 시급한 이유다.

현행 공중화장실 관련법은 2006년 11월 9일 이후 신축된 연면적 2000㎡ 이상 상가, 3000㎡ 이상 업무시설에만 남녀 화장실 구분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현행법이 화장실을 범죄 사각지대로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공간이 부족하면 우선 1, 2층을 남녀로 구분해 사용하자. 근본적 대책도 필요하다. 유동인구가 몰리는 지역에 공용주차장을 많이 짓듯 자치단체들이 남녀 분리 공중화장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휘발성 강한 문제는 또 있다. 3월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성전환자(트랜스젠더)는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성별에 따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도록 법안을 제정하면서 ‘화장실 성소수자 차별’ 논란이 불붙었다. 그 불이 한반도에도 상륙할 기세다. 사회적 갈등으로 폭발하기 전에 대책을 궁리해야 할 문제다.

‘미스터 토일릿(Mr. Toilet)’으로 불렸던 심재덕 전 시장은 생전에 “26억 명이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연간 2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화장실은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성소(聖所)”라고 역설했다. 원초적 근심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모두의 근심을 풀어주고 생명을 살리는 해우소(解憂所)가 될 때까지 화장실 혁명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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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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