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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문화일보]

1. 與小野大 정치권의 노조 편들기, 경제 근간 흔든다

정치권 지형이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된 이후 산업·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 시급한 국정 과제가 흔들리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 정당’을 표방했던 여야가 포퓰리즘 악습을 재연하면서 구조개혁의 발목부터 잡는 양상이다. 노조 편들기 경쟁은 일파(一波)일 뿐이다.

23일 대우조선해양으로 몰려간 여야 수뇌부는 우려했던 대로 노조가 듣기 좋은 얘기만 늘어놓았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노조의 동참과 고통 분담이 필수다. 그러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쏙 빼고 구체적인 실업대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 당이 나설 것이라고 생색을 냈다. 본말과 선후를 바꾼 처신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우조선 노조에 한 말은 야당임을 고려하더라도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는 1만 명 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의 경영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관심을 가져온 노조의 경영 참여는 독일 특유의 노사 문화의 소산으로,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잖아도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해온 대우조선 노조로선 환호작약할 얘기 아닌가.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에 노조를 끼워 넣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김 대표 스스로 ‘경제민주화의 최종 단계’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만큼 더 차분한 연구·토론이 필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김 대표 발언은 시점도 장소도 매우 부적절했다.

이미 노동계는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조선업체 노조들은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면서 내달 초 단체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해고·취업규칙 등 2대 지침을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키로 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선 전만 해도 노동계는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이 얼마간 불가피하다는 분위기였으나 반전되는 양상이다. 노조와 야당이 합세하고, 여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동력을 잃고 있다. 더민주가 성과연봉제 조사단을 꾸리는 등 정부를 압박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불법·탈법이 없게 하겠다”고 물러서고 말았다.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한시가 바쁜 구조조정은 산으로 가는 양상이다. 노동개혁은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절실하지만 여대(與大) 국회에서도 해내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노동개혁을 위해서도 노조 기득권 개혁이 절실하다. 여야 할 것 없이 노조에 러브콜만 보내다간 구조개혁은 물 건너가고 한국경제의 근간도 흔들릴 것이다.

2. 朴정부, 난개발 우려 큰 ‘용산공원’ 全面 재조정해야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부지에 조성될 ‘용산공원’의 난개발(亂開發)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24일 브리핑을 통해 “국토교통부 계획안(案)은 정부 부처들의 사업을 위한 ‘땅 나눠주기’식으로 진행돼 공원 훼손이 우려된다. 최초의 국가공원인 만큼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듣고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 가까운 예다. 국토부가 지난 4월 27일 발표한 ‘용산공원 개발 시설과 프로그램(콘텐츠) 선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적으로 공감할 만하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문화관,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테인먼트센터와 어린이아트센터, 문화재청의 아리랑문화유산센터, 경찰청의 경찰박물관, 여성가족부의 여성사박물관, 국가보훈처의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 산림청의 나무상상놀이터 등 7개 부처에 산하 시설 한두 개씩을 짓게 한다는 식부터 어이없다. 그런 발상으론 시민의 휴식과 문화 활동 공간이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공원을 제대로 만들긴커녕 서울 도심의 소중한 국유지 235만㎡를 난개발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게 할 뿐이다. 2014년 6월 3일 공포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대한민국에 반환되는 용산부지는 최대한 보전하고 용산공원은 민족성·역사성 및 문화성을 갖춘 국민의 여가 휴식 및 자연생태 공간 등으로 조성’하도록 ‘기본이념’으로 명시한 취지부터 거스르는 처사임은 물론이다. 

박근혜정부는 그 취지의 명실상부한 구현을 위해 현재 방안을 전면(全面) 재조정해야 한다. 해당 법률에 따라 장관이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장인 국토부는 6월로 예정했던 계획안 확정을 늦추고 의견을 더 수렴할 방침인 만큼, 국가공원 위상에 걸맞은 방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다시 수립해야 한다.

3. 법원의 ‘징벌적 위자료’ 논의와 過猶不及 위험성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공분(公憤) 속에서 법원이 악의적 범죄에 대한 민사 책임을 더 엄중히 물어 위자료를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은 23일 적정 방안을 마련키로 하고, 7월 15~16일 ‘전국 민사법관포럼’ 의제로도 삼을 예정이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고의 정도와 범죄 후 정황, 재산까지 고려해 위자료를 징벌 차원으로 올리자는 취지다. 나아가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은 내달 27일 국회 입법조사처와 공동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심포지엄도 개최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의 위자료 액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게 법조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원은 범죄 피해자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산업재해 내지 교통사고 위자료의 상한선을 원용해왔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억 원이 상한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이날 “형사 양형기준처럼 위자료 산정기준도 피해 발생 원인의 유형별로 차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징벌 차원의 위자료를 논의하면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대체 수단이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징벌적 손배 도입은 어디까지나 입법의 영역이다. 법원이 위자료 판례를 통해 징벌적 손배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하겠다면 ‘우회 입법’으로서, 사법부의 월권이다. 현실적으로도 기업의 자유 수준을 초과해 과도한 책임을 물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위험성도 있다.

징벌 차원의 위자료든 징벌적 배상이든, 법리적으로는 사전 규제와 사후 책임의 반비례가 핵심이다. 또 징벌적 손배는 현실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국회와 법원 모두 법리와 현실을 면밀하게 검토한 대안을 모색하기 바란다.

[헤럴드경제]

4.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인권침해 절대 없어야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논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관련 대책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는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본 것이다. 행정입원이란 범행 가능성이 의심되는 정신질환자를 경찰이 발견했을 때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긴급상황시 72시간 이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응급입원 제도도 함께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강 청장의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적지않다. 정신질환자를 경찰이 현장에서 짧은 시간에 ‘범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판단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정신질환에 대한 판단은 까다롭고 인력과 비용도 막대하게 소요되는 전문적인 분야다. 의학계가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칫 오판할 경우 무고한 시민이 극단의 인권침해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도 경찰의 조치가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체크리스트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한 검토를 해야할 문제다. 

강 청장은 또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도 여성들의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혐오범죄로 보려면 ‘경향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 숫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판단으로 보인다. 범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성이나 약자들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된다. 통계와 수치라는 잣대만으로는 잠재적 위험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 

이번 같은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려면, 강제입원이나 이른바 ‘화장실법’같은 ‘1차원적인 대책’보다 안심하고 함께 사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질환자들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번 사건 피의자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였으며 수 개월전부터 약물치료를 끊었다고 한다. 조현병은 국내에 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는 2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각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를 꺼리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들이 가정, 사회, 지역 등에서 위협을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그런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5. 일본 출산율 21년만에 최고, 우린 그동안 뭐했나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46명으로 21년(1994년 1.50명)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후생성 발표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출산율이 올라가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늘어나는 데는 경기회복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는 “2013/2014년간 일본 경제가 좋았던 게 출산율 개선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의 국민총소득은 2013년 2분기 이후 3년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일본의 출산율 회복은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10년 앞선 1995년 저출산 정책을 시작했다. 극도의 경기 침체기인 2005년 한 때 1.26명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꾸준한 정책 추진 덕에 이 만큼이라도 출산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출산율이 적어도 1.8은 돼야 한다며 정책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발표한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이 그 좋은 예다. 보육시설 확보 등의 출산 유인책으로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저출산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은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1억 총활약상’이란 장관급 직제를 만들어 인구문제를 전담케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위기에 빠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본의 저출산 극복 전략은 15년째 초(超)저출산(1.3 이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물론 우리 정부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절감하며 정부 차원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3차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자리와 주거 등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 지원 대책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정책적으로는 일본보다 못할 게 없다. 돈도 10년간 80조원 이상 들이는 등 쓸만큼 썼다. 

그런데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지속성과 실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책을 책임지고 챙기는 데가 없는 것이다. 해당 부처 중간 간부와 직원 몇명이 담당하는 수준이니 장관급이 관장하는 일본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도 전담 조직 신설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정치권의 초당적 대처도 필요하다. 나라 지킬 병사 수급도 어려워지는 등 저출산의 재앙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아시아경제]

6. 은행 수익악화, 수수료 인상이 답인가

은행권 수수료 인상대열에 KB국민은행도 가세했다. 은행들은 다투어 송금과 예금, 자동화기기와 외환 등 주요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새로운 수수료를 도입하고 있다. 은행들은 물가인상 등을 감안한 현실화라고 주장하지만 저금리에 따른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익) 축소 등으로 나빠진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다.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르는 수수료 종류가 많은 데다 폭도 크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은 손쉬운 수수료수입에 의존하기보다는 경영효율화와 고품질 서비스의 개발 등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경영의 정도다. 

국민은행은 내달 1일부터 송금, 예금, 자동화기기, 외환 등 주요 수수료를 일제히 인상한다고 밝혔다. 타행송금 수수료가 최대 1500원(60%) 오르고 통장ㆍ증서 재발급 수수료 등은 1000원(50%), 명의변경수수료는 5000원(100%)이 각각 인상된다. 자동화기기 수수료도 내달 20일부터 100~200원 오른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13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 이체 수수료를 100~200원 올렸고 신한은행도 지난달 외화 송금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면서 일부를 인상했다.

은행들이 수수료 인상에 나서는 것은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저금리 장기화로 주수익원인 예대마진이 지난해 1.97%포인트로 떨어졌다. 이를 메우기 위해 비이자 수익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표적이 수수료다. 지난해 이자수익은 33조5000억원으로 정점에 도달한 2011년(33조5000억원)에 비해 14% 이상 줄었다. 계좌이동제와 ISA 경쟁으로 각종 수수료 면제가 늘어난 것도 타격을 가했다. 수수료 인상이 고객들의 큰 저항 없이 쉽게 수익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해 16개 시중은행은 전년보다 8% 늘어난 4조9465억여원의 수수료 순익을 거뒀다. 

은행들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수수료 인상이 아니라 '현실화', '정상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서비스 개발이 거의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옹색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은행권이 1%대의 쥐꼬리 이자를 주면서도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은 소비자를 봉으로 여겨 경영손실을 전가하는 행위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의 수익 악화를 해결하는 정답이 아니다. 직원 5명 중 1명꼴로 억대 연봉자인 고임금 구조, 국내영업에만 치중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경영, 이자수익이 총수익의 90%를 웃도는 기형적 수익구조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수수료 수입에 기대는 후진적 금융을 벗어나기 어렵다. 

[서울신문]

7. 홍만표 비리 현직 유착 박히는게 핵심이다

검찰이 이르면 이번 주 중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를 소환해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씨의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 이모씨에 이어 홍 변호사까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은 이미 홍 변호사가 지난 5년간 맡은 사건의 의뢰인들을 상대로 수임료 규모 등을 샅샅이 확인하고 있다고 하니 그의 소환은 사법 처리를 위한 최종 단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수사 진행 상황으로 봐서는 변호사법 위반이나 세금 탈루 혐의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전관’ 배경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수임료 수입을 올리고, 세금까지 탈루했다면 반드시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할 것이다.

정씨는 검·경 수사 단계에서 홍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해외 원정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특히 검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나중에 기소될 당시에는 뻔하게 드러났던 회사 돈 횡령 혐의 등에 대해 면죄부를 움켜쥐었다. 고교 동문인 브로커 이씨를 통해 사건을 수임한 홍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이용해 검찰 내 현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검찰 안팎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나중에 정씨가 홍 변호사에게 거액을 쥐여 준 것도 영향력을 행사해 준 데 대한 ‘답례’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 수사가 홍 변호사 단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처분이 나오기까지 홍 변호사와 현관들 간의 비밀 거래가 있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만 한다.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법치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현관들과 결탁한 ‘전관 변호사’를 이용해 범법자가 면죄부를 받는 일이 다반사라면 그 누구도 법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수사는 법치사회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도 성역이나 한계를 미리 정해 둬서는 안 된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현직에 대한 수사를 대충 마무리한다면 검찰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전관인 최 변호사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현직들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검찰은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는 각오로 이번 수사를 진행하길 바란다.

8. 대우조선 노조 찾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발언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한 가운데 여야 지도부가 어제 일제히 경남 거제시를 방문했다. 이날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여에 앞서 인근 조선소를 찾음으로써 민생 행보 의지를 보여 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이 우리 경제의 화두인 조선업계 구조조정에 관심을 보인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날 행보는 외려 구조조정 진행을 더디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각각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노동조합, 경영진, 협력업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정 원내대표는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 대책이 구체적으로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신속하게 시행토록 저희 당이 챙기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이라고 했다. 여야가 이처럼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챙기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대규모 구조조정은 대량실업과 지역사회의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 지역에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2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실직자들의 어려움을 최소화할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매우 시급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 같은 행보가 과연 적절했는지는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조선 3사는 지난주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 등을 뼈대로 한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안을 모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 회사가 채권단의 압박에 쫓겨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자구안을 마련한 점이다. 인력 감축 과정에서 노조가 거세게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오늘 임단협을 시작하는 현대중 노조는 사측의 희망퇴직 단행 움직임에 대해 강력 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이미 임단협을 시작한 대우조선 노조도 “구조조정과 관련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총력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구조조정의 핵심은 노조 설득이 될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 정치 지도자들이 노조를 방문해 벌인 달콤한 말의 잔치는 오히려 구조조정에 혼선만 준다고 본다.

조선 3사의 자구안을 놓고 노사 충돌이 예고된 가운데 채권단은 자구안이 일부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의 자구안을 ‘느슨하다’고 평가해 보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대우조선의 자구안에 대한 주채권은행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구조조정이 아직도 첩첩산중인 셈이다.

이 같은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고려한다면 정치권은 오히려 기업과 대주주는 물론 노조에까지 고통 분담을 독려하는 쓴소리를 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들에게는 평소 노동 4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친기업적인 발언을 하고, 노조를 방문해선 일자리를 보장하는 듯한 이중적 행보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지체시킬 뿐이다.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경제공학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9. 개발경험 전수 뛰어넘는 대아프리카 외교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1~2015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7개가 아프리카 국가였다. 에티오피아가 8.1%로 선두를 달렸고, 모잠비크가 7.7%, 탄자니아가 7.2%, 콩고와 가나가 각각 7.0%, 잠비아가 6.9%, 나이지리아가 6.8%로 뒤를 이었다. 가파른 경제성장은 당연히 구성원들의 의지에 힘입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경제 원조가 상당한 힘이 됐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중국이 2001년 2억 달러를 들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아프리카연합(AU) 건물을 지어 기증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도로와 건물 등 각종 인프라를 제공했고, 그 과실을 이제 본격 수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난해 교역량은 전체의 34%를 대(對)중국 무역이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부터 동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가 대상국이다.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것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케냐를 방문하는 것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우간다는 우리 대통령이 방문한 기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세 나라 순방에서 그동안 전개한 아프리카 외교에 상생 협력과 문화 교류를 추가한 대(對)아프리카 정책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단기간에 산업국가로 변신한 한국은 아프리카 각국의 중요한 발전 모델이었다.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개발 경험을 전수하면서 교류 협력의 폭을 넓혀 왔다. 하지만 원조 차원에 머물렀을 뿐 자원 부국이자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상품 시장인 아프리카와 본격적인 경제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박 대통령의 동아프리카 순방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는 대기업 14개사를 비롯해 모두 166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적지 않은 수출 기업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지역 국가들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북핵 문제의 공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디스아바바의 AU 본부에서 상생 협력의 정책 비전을 담은 특별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이 기증한 건물에서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역할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데일리]

10. 한국기업 노골적 차별하는 중국 정책

중국이 삼성SDI LG화학 등 중국진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해 불공정한 규칙을 적용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과 신(新)에너지자동차 핵심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에 대한 외국기업 참여지분을 50% 이하로 제한한 것이 그러한 사례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경우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기업 지분을 50% 이하로 낮춰야만 한다. 자국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중국의 꼼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까지 딴지 걸기 식의 불공정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다.

중국의 ‘불공정한 게임’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은 2009년만 해도 중국 검색시장에서 33.2%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인터넷 검열 규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듬해 퇴출되고 말았다. 그 사이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와 동영상 스트리밍사이트 유쿠(優酷) 등이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려 왔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도 구글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3월 ‘중국제조 2025’라는 제조업 혁신계획을 마련해 반도체, 로봇 등과 함께 배터리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기술수준과 가격 경쟁력이 뒤떨어진 중국업체들이 세계 일류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정부 지원’과 ‘규제’라는 두 칼을 휘두르며 자국기업 지원에 나선 것이다.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인 비야디(BYD)와 CATL이 글로벌 주력업체로 성큼 올라선 것이 이에 힘입은 결과다.

중국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맞서 우리도 정부와 기업들이 손잡고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NCM 배터리 보조금 지급 중단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등 제3의 유망시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중국 외 다른 시장으로 투자를 분산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우공이산/강동형 논설위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중국의 ‘열자’라는 책 탕문편(하나라 탕왕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에 이 이야기가 있다. 중국 허베이성 지저우와 허난성 허양 사이에 태행산과 북산이라는 큰 산이 있었다. 산 아래 나이가 아흔인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산이 가로막아 멀리 돌아다니는 게 불편해 어느 날 두 산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반대하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 못한 식구들이 돌과 흙을 발해에 버리기로 하고 일을 시작하자 이웃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은 더뎠고 단 한번도 발해에 흙을 버리지 못했다. 이때 지수라는 사람이 “풀 한 포기 뽑지 못할 늙은이가 산을 옮기다니 참으로 어리석도다”라고 한탄했다. 그러자 우공은 “당신이 답답하다. 내 대에는 안 되겠지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대답하자 지수가 말문이 막혔다고 하다. 이에 천신(天神)이 감복해 두 아들을 내려보내 산을 메어다 옮겨 놓게 했다는 이야기다. 산을 옮겨 바다에 이른다는 ‘이산도해’(移山倒海)도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일흔셋의 나이에 변호사에서 물리학자가 된 강봉수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우공이산’이 생각났다. 남이 보기엔 우둔해 보이지만 한 가지 일에 매진해 꿈을 이룬 강 변호사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우공이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판사 시절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을 펼치고 아내와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고 한다. 7년 전 유학길에 올랐다. 애초 계획했던 5년보다는 2년이 길어졌지만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논문 제목이다. ‘초전화된 전자파와 이를 응용한 입자 가속기’라고 한다. 인문학도로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제목이다. 그의 포부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뜨거운 분야인 양자중력 연구라고 하니 분명히 우공이 시작한 아흔 살 이전에 뭔가를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강 변호사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난 또 한 사람은 어제 7주기를 맞은,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별명이 바보인 것은 지역감정을 없애 보겠다며 야당의 불모지에서 무모한 도전을 거듭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그곳에 모인 정치인 중에 ‘바보 노무현’을 진심으로 추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어떤 이에게는 극복의 대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공이산의 정신만은 모두에게 계승됐으면 한다.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인 중에서도 이정현 의원이나 김부겸 당선자처럼 더 많은 ‘바보’가 나올 날을 기다려 본다.


2. [동아일보][챈들러의 한국 블로그]파티 같은 한국 야구

뜨거운 여름이 되면 고소한 땅콩 냄새,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잔디구장, 배트에 공이 맞는 타격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나는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야구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또 가족과 함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응원하러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야구장에 갔다. 성인이 되어 야구장에서 즐겨 마셨던 맥주와 핫도그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한국 생활 초반엔 미국 야구를 가장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한 이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도착한 지 몇 달 후, 친구의 초대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러 가게 됐다. 잠실구장에 들어가는 순간 파티장에 온 것 같았다. 목이 쉴 정도로 쉼 없이 응원하는 치어리더부터, 나오는 선수마다 다양하게 부르는 응원가까지 이렇게 역동적인 응원 문화는 처음 접해 봤다. 몇 시간 동안 함께 응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관중과 오래된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한국의 야구 문화는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 문화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직장 동료끼리 퇴근 후 야구장에서 치맥을 먹기도 하고 커플마다 셀카를 찍으며 야구장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한국 야구 경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중간에 진행하는 이벤트도 볼거리 중 하나이기에 이닝 사이에 화장실을 가는 것보다 오히려 경기 도중에 빨리 갔다 와야 한다. 경기 중엔 관중 앞에 서 있는 응원단장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마치 지휘자처럼 수많은 관중을 지휘하고 이끌어 다 같이 한마음, 한목소리가 되게 만들어 준다. 

여러 경기를 관람하며 살펴본 결과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응원 문화는 정말 독특하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응원봉 대신 신문지를 찢어 흔들고 머리에 주황색 봉투를 쓰면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그 충격과 감동은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한화 이글스 팬들의 상징은 ‘인내’라고 들었다. 크게 져도 항상 웃으면서 끝까지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인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어서 그 의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경기를 몇 년간 보면서 그 의미를 서서히 깨달았다. 

응원 방법도 다르고 팬의 특징도 팀마다 다르지만 그 열정은 다 똑같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리 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열정적으로 끝까지 “최-강-한-화”라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야구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용병 선수들을 늘리고 있고 연봉 제한선도 폐지했다. 지속적으로 그 수를 늘린다면 미국처럼 반 이상의 선수들이 외국인 용병들로 채워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응원 문화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야구장은 외부 음식, 음료 반입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1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만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안전과 위생 때문에 한국도 소주와 캔 맥주 반입에서부터 최근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를 잠시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와 제약이 많아지면 한국 야구만의 경기력, 열정적이고 독특한 야구 문화에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 야구는 선수들의 실력과 경기력도 훌륭하지만 응원하는 팬들과 그 문화 또한 대단한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한국만의 경기력과 독특한 문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여름을 생각하면 땅콩과 핫도그 대신 마른 오징어와 치맥이 먼저 떠오른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0>피고 지는 꽃의 나날들

얀 브뤼헐(1568∼1625)은 꽃 정물화의 대가입니다. 하나의 정물화에 100여 종의 꽃을 그렸지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생김과 자태가 빛나지 않는 꽃이 없습니다. 당대인들은 이런 화가를 ‘꽃 브뤼헐’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에서 식물은 의학적 효용의 관점에서 주목되었습니다. 16세기 식물학이 의학에서 분리되면서 식물 자체로 관심 대상이 바뀌었지요. 이 무렵 꽃이 독자적인 미술 소재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는 초기 꽃 정물화의 전형을 만든 선구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도자기 화병에 담긴 꽃다발’은 작은 식물원을 방불케 합니다. 그림에는 백합과 아이리스를 비롯해 튤립 작약 수레국화 장미 붓꽃 물망초 수선화 백합 카네이션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등장합니다. 다채로운 것은 꽃의 크기와 빛깔만이 아닙니다. 만개 시기도 제각각입니다. 꽃에 무지해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화가는 꽃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지요. 직접 정원을 돌보고, 관찰을 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없는 꽃을 상상으로 그리기를 경계하며 사실에 바탕을 둔 꽃 정물화를 고수했습니다. 

그림 속 개화 시기가 다른 꽃들은 의미가 특별합니다. 피고 지는 꽃은 덧없는 삶을 상징합니다. 사계절 꽃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삶의 상징이라니 화병도 각별한 뜻이 있겠군요. 꽃병은 순환하는 삶이 펼쳐지는 물과 땅, 불과 해가 어우러진 우주를 은유했습니다. 그림 속 도자기 화병 앞면 좌우에 바다의 신과 풍작의 신을 그려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마 화병 뒷면은 불의 신과 태양의 신이 차지하고 있겠지요. 절정의 순간 꽃이 가득한 화가의 그림은 소멸의 사건을 호출합니다.

성년의 날이었던 지난주 월요일은 애도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학기 중 급작스레 타계한 교수님의 추도식이 학교에서 이른 아침 거행되었지요. 추모식이 끝나자 교내에 설치된 분향소로 향하는 국화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루 종일 갓 스무 살이 된 젊음들에게 장미 축하도 계속되었습니다. 여기에 휴일이어서 하루 늦게 도착한 스승의 날 카네이션 바구니까지 손에 들려 있던 때문일까요. 하얀 꽃송이와 붉은 꽃다발이 한데 뒤섞여 물결치는 세상이 거대한 꽃 정물화 같았습니다. 지금 나는 무슨 빛깔, 어떤 삶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을까. 추모객들 손에 조심스레 들린 작별의 꽃과 청춘들 가슴에 벅차게 안긴 설렘의 꽃 사이에서 문득 궁금했습니다. 

4.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진영]敵의 아이를 가진 소녀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웃 마을 언니 집에 가는 길에 납치된 이후의 생활은 입에 담기도 싫었다. 그저 무사히 집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납치범들 손에서 풀려나 집에 왔을 때 소녀는 싸늘한 시선들과 마주쳤다. 그제야 달거리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한 나이지리아 루카이야 양(13)의 이야기다. 이 나라에선 극단주의 무장반군 보코하람(Boko Haram)과 정부군의 대립이 8년째 계속되면서 여성들의 인권 유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코하람은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다. 인구의 절반은 기독교도, 절반은 이슬람교도인 이 나라에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마구잡이 테러를 자행해왔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을 끌고 가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하거나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성폭행했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2012년 이래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성은 약 2000명. 최근엔 정부군의 소탕 작전이 성공해 납치됐던 소녀들의 기적 같은 생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쁨의 귀향은 절망의 시작이다. 전쟁 피해자들은 아군과 또 다른 무언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적군과 함께 살다 온 여성은 적군만큼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부모들은 “딸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정부는 “평생 여자애들을 가둬놓으라”는 압력을,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개들 속의 하이에나’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보코하람의 여자’라는 낙인은 조선시대 전쟁 피해자들인 환향녀(還鄕女)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학자들은 속환녀(贖還女)라고 부른다. 병자호란을 기록한 인조실록엔 “오랑캐에게 정조를 잃은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시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반대로 딸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는데도 사위가 새 장가를 들려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친정아버지의 사연도 있다. 당시 좌의정 최명길은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린 자”로 역사에 기록됐다(인조실록 36권). 인조는 마을마다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해 몸을 씻는 여인들은 받아주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잖은 속환녀들은 그 이후로도 이혼당하고 버림받았다. 

이제는 환향녀도, 속환녀도 입에 올릴 일이 없다. 그렇다고 부당한 낙인찍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착공식을 마치고도 마포구 성미산 자락으로 쫓겨나 건립된 이유는 일본이 반대해서가 아니다. 일부 단체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보코하람에 납치된 소녀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우리 딸을 돌려 달라’(#BringBackOur Girls)는 해시태그 캠페인에 동참했던 이들은 이제 소녀들의 ‘슬픈 귀향’에 분노하고 있다. 2012년 5월 문을 연 후 4주년을 맞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문제를 넘어 이름 그대로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면 어떨까. 전쟁의 만행뿐 아니라 전쟁에서 소녀를, 국민을 지켜내지 못한 이들이 오히려 적군과 함께 그 희생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을 일깨우는 곳 말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놓듯 지은 건물은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여전히 횡행하는 피해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 관행을 역설적으로 선명히 드러내줄 것이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막창과 곱창

양구이나 양곱창구이를 양(羊)고기를 구워 먹는 것으로 안 적은 없는지. 한자어 양(羊)에 이끌려서인데 그렇지 않다. 여기서 ‘양’은 소의 위(胃)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어서 위가 4개다. 첫 번째 위는 ‘혹위’ ‘반추위’, 두 번째는 ‘벌집위’, 세 번째는 ‘천엽(千葉)’ ‘처녑’ ‘겹주름위’ ‘중판위’, 네 번째 위는 ‘추위’ ‘주름위’라고 한다. 보통 익히지 않고 날로 기름장에 찍어 먹는 처녑, 천엽 등 익숙한 낱말도 있지만 대부분 생소하다. 그런데 가만, 정작 입길에 자주 오르는 ‘막창’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가 막창을 ‘마지막 창자’라고 생각해 ‘소의 대장’으로 알지만 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다. ‘홍창’이라고도 한다. 

또 있다. 사전은 ‘양’을 ‘소의 위(胃)를 고기로 이르는 말’이라고 뭉뚱그려 놓았지만 언중은 첫 번째 위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처녑과 천엽의 언어세력을 인정해 복수표준어로 삼은 것처럼 막창과 홍창도 표준어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아 참, 대구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돼지 막창’은 엄밀히 말하면 ‘돼지 밥통’으로 불러야 한다. 돼지는 위가 하나뿐이니.

곱창은 소의 작은창자(小腸)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곱밸’ ‘곱창’ 둘 다 쓴다. 곱창의 ‘창’이 중국어 ‘장(腸)’에서 왔고 곱밸의 ‘밸’은 창자를 뜻하므로 둘의 의미는 같다. 비위에 거슬려 아니꼬울 때 흔히들 쓰는 ‘밸(배알)이 꼴리다’의 밸이 바로 그것. 밸은 속어로 남아 있는 고유어다.

소의 작은창자가 꼬불꼬불하다 보니 곱창을 ‘굽은 창자’ ‘곱은창자’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곱은창자가 줄어들어 곱창이 된 것으로 본 것. 과연 그럴까. 소의 큰창자(大腸) 역시 꼬불꼬불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사전은 ‘곱은창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곱창의 ‘곱’은 뭘까. ‘부스럼에 끼는 고름 모양의 이물질’이나 ‘지방 또는 그것이 엉겨 굳어진 것’이다. 눈곱 발곱 손곱이나 곱창전골 등에서 ‘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양껏 드세요’ ‘양에 차다’라고 할 때의 양은 어떻게 표기할까. 위가 꽉 차도록 많이 먹으라는 뜻이므로 ‘위(胃)’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자어 양(量)에 밀려났다. 사람의 배를 채우면서 소 위인 양을 쓴다는 게 마뜩잖아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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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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