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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일용직 안전사고, 하도급 구조가 문제다

공사장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목숨을 잃는 것은 늘 애꿎은 일용직 근로자들이거나 외주업체 직원이다. 이번 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망자 4명에 부상자까지 합쳐 14명이 모두 하청업체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 최소한의 전문성이 요구될 텐데도 숙련공보다는 일용직 위주로 현장에 투입되면서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공사현장은 포스코건설이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시공을 받아 협력업체에 맡겼고, 협력업체도 현장 작업자를 일용직 형태로 투입한 식이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난 서울메트로의 경우에도 30종이 넘는 기술분야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처럼 먹이사슬처럼 계약이 겹겹이 얽혀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현장 근로자들이 막다른 여건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업계의 오랜 관행이어서 당장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복잡한 계약관계에서 맨 밑에 있는 하청업체로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일용직 형태로 고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일손이 달릴 때는 경험도 없는 사람이 첫날부터 위험이 따르는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작업장이 수시로 바뀌기 마련인 일용직들이 숙련도가 필요한 사고 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도급 건설계약에서 원청업체의 안전관리 책임은 묻지 않도록 돼있다는 사실도 심각한 허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표준하도급계약서에서 하청업체에 대해서만 안전 및 재해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 담당 직원을 두는 것도 하청업체의 부담이다. 원청업체로서는 하청을 줌으로써 공사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데다 사고가 발생해도 직접적인 책임을 면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니만큼 현장에 투입되는 근로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을 도외시하기 쉬운 하도급 관행에 대해 조속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하청·원청업체가 서로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뒤늦게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한다니 지켜보고자 한다.

2. 금배지에겐 국민 혈세가 그리 하찮은가

국회 원(院) 구성을 둘러싼 여야 3당의 기세 싸움이 세비 반납 문제로 번지면서 두 야당이 치고받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국민의당은 원이 구성될 때까지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수를 치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에게 세비로 시비 거는 게 제일 유치하다”며 발끈한 것이다.


제20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30일 시작됐으나 개원 협상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국회의장을 놓고 다투는 데다 주요 상임위원장 인선도 각 당의 셈법이 다른 탓이다. 더민주가 마지못해 국회의장을 주면 법사위원장을 양보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놨으나 새누리당은 요지부동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단은 오는 7일, 상임위원장은 9일까지 뽑아야 한다.

문제는 국회 공전이 장기화할 경우 국회의원 선서도 하지 않은 채 세비를 받아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안 대표는 “한국 어디에도 일하지 않고 버젓이 돈 받는 국민은 없다”며 세비 반납을 압박했다. 우 원내대표는 그러나 ‘전형적 반(反)정치논리’라며 “월급에 연연하는 것도 아닌데 모욕감을 느낀다”고 쏴붙였다.


모름지기 공직자라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서민들도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받는 터에 국회의원이라고 예외를 인정해선 안 된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세비를 놓고 “시비 건다”, “유치하다” 운운하는 자체가 가벼운 처신이다. 국민의 혈세를 우습게 여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동안 말실수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안 대표지만 이번만큼은 모처럼 옳은 소리를 했다는 게 중론이다.


국회의장을 야당에 내주지 않는 한 정상 개원은 어려운 게 뻔한데도 “기간 내에 원을 구성하면 되지 왜 판을 깨느냐”고 강변하는 새누리당도 떳떳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세비 250만원 삭감과 회의수당 엄격 제한을 비롯한 10대 개혁 과제를 추진하겠다던 지난달 결의는 한낱 장난이었는가. 지난 19대 국회 원 구성이 33일 동안 지연되자 세비를 단독 반납한 4년 전보다도 후퇴한 모습이다. 여야는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고 개원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세비를 자진 반납하는 것이 옳다. 이참에 국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신문]

3. 리퍼트 美 대사가 꺼낸 통상압력 전주곡

한·미 간 통상 마찰이 본격화할 조짐인가. 엊그제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세계경제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한국의 법률 시장 개방을 거듭 촉구한 게 그 전주곡처럼 들린다. 그는 특히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 측에 자동차 관련 규제 폐지와 법률 시장 개방을 한목소리로 요구해 온 미 조야의 입김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심 발언’이었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통상 논리를 개발하되 괜한 분쟁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대응할 때라고 본다.


한·미 간 통상 갈등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엔 어느 때보다 불길한 느낌이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미국 내 여론이 보호무역 기조로 급선회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게임 체인저’로 나서면서다. 그는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엄청난 대미 흑자로 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펴 왔다. 한·미 FTA를 재검토하겠다는 위협도 그 일환이다. 엊그제 트럼프 선거캠프 사령탑 격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은 한 술 더 떠 “한·미 FTA로 무역적자가 240% 늘어났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문제는 이런 논리 비약적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조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반대로 돌아섰지 않나. 미 상무부가 지난달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에 대해 최대 47.8%까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왔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 대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가 이기더라도 우리의 제2 수출국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한다. 때마침 한국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던 미 재무부 제이컵 루 장관이 어제 방한했다. 그를 통해 미 조야의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FTA 체결 이후 상품 수지에서는 우리가 흑자를 늘려 가고 있지만, 직접 투자는 미국보다 우리가 더 많이 하고 있다면 적극적 방어 논리로 활용해야 한다. 다만 미국의 요구가 없더라도 우리도 스스로 필요한 규제 완화를 선제적으로 이행해 통상압력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미 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식의 엄포가 지금은 작은 너울성 파도일지 모르나 엄청난 쓰나미를 예고한다고 보고 치밀하게 미리 대응해야 한다.

4. 시진핑, 국제사회 북핵 폐기 노력외면 하는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그제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북·중 우호 관계를 중시하는 발언만 하고 북핵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은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북한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본받아야 주요 2개국(G2)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북핵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 3원칙을 고수해 왔다. 시 주석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3가지 원칙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가 빠져 있다. 이는 북한이 지난달 열린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당 규약에 명시한 ‘핵·경제 병진노선’을 인정한 셈이다.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북핵 문제에 대한 갈등이 양국 관계를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양국은 핵 갈등이 확대되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해 가고 있다”고 밝혀 현재의 갈등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노력에 재를 뿌리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우리 내부 일각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시 주석과 중국, 중국과 북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은 국가 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 스스로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돌수록 북핵 문제 해결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까지 비난할 수는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자금을 쏟아붓는 북한의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제3국이 북한과 차명 계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면 금융거래를 중단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했다. 중국도 북한이 핵 개발에 투입하는 자금줄을 끊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심어 줄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처럼 북·중 우호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북핵 포기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서고 있는 것처럼 실질적인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한·미·일 3국이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 재확인한 것처럼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할 때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5. 특수부가 강력부 비리를 제대로 캐겠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사건’ 핵심 당사자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어제 새벽 구속 수감됐다.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아 온 엘리트 ‘특수통’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의 몰락은 그 자신의 불행을 넘어 검찰 조직 전체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특히 홍 변호사가 정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친 정황까지 드러나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검찰 내부는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전관 비리의 썩은 관행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만 한다.


전관 비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수사하고 있다. 연루 의혹이 제기된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도 예외는 아니다. 2014~2015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와 강력부의 미심쩍은 정 대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수사니 어찌 보면 ‘셀프 수사’라고도 할 수 있다. 수사팀이 ‘제 식구’를 과연 한 점 의혹 없이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검찰 최고위급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설령 이들을 조사한다 해도 과연 주눅 들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부장검사 2명을 소환 조사하고, 한 명은 서면 조사를 했다고 한다. 수사 검사도 소환 조사했지만 부장검사들 윗선으로는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2015년 도박 수사를 받을 때 홍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말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성재 서울고검장, 강력부를 관할했던 3차장은 최윤수 국가정보원 2차장이다. 홍 변호사는 2014년 수사 때도 관여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수남 검찰총장, 형사3부를 관할했던 1차장은 신유철 수원지검장이었다.


검찰은 과거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대형 사건에서 특별감찰본부 등을 구성해 외견상으로는 독립적 수사를 진행하곤 했다. 이용호 게이트와 삼성 비자금 사건이 그랬다. 일선 수사팀이 맡기엔 버겁기도 하고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획득도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건 모두 검찰 수사 이후 특검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독립적 수사를 진행한다 해도 검찰의 제 식구 수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의 ‘셀프 수사’로는 전관과 현관의 ‘짬짜미 사슬’ 비리를 제대로 캐낼 수 없다.

[동아일보]

6. 은행 부실채권 15년 만에 최대치… 중국보다 위험하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3월 말 기준 31조 원으로 15년 만에 최대치라고 금융감독원이 어제 밝혔다. 조선·해운업에서 빚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많아지면서 1분기에 새로 발생한 부실채권 7조5000억 원 중 기업 관련 채권이 6조800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금융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회수가 힘든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87%로 중국은행(1.75%)보다 높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기업의 미래 채무상환능력을 자체 평가해 여신 등급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나눈다. 고정 이하는 빚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실채권이 급증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고, 은행의 수익성도 나빠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에서 밝힌 부실채권 31조 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조선사들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해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았다. ‘부실 공룡’인 대우조선해양 관련 여신도 국민과 신한은행을 뺀 대부분의 은행은 모두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 여신 18조6000억 원을 갚을 수 있다는 평가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없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조차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정상 밑으로 떨어뜨리면 기업에 부정적”이라며 손을 놓은 상태다. 숨어 있는 ‘그림자 부실’의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폭발력 미상의 뇌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않고 증권으로 만들어 돌리다가 뇌관이 터진 사건이었다. 최근 중국에선 은행권 부실채권이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나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민스키 모멘트’가 5년 안에 도래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중국보다 부실채권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부실 가능성 높은 여신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지 않는 것은 완충장치 없는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도록 내버려두는 격이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은 은행 건전성 검사에 착수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7. 군납 비리에 30년 전 침낭에서 떨며 자는 병사들

엊그제 발표한 감사원 감사 결과는 군납 비리가 군 장병들이 사용하고 있는 침낭 품질과 마찬가지로 30년 전에 비해 하나도 나아진 게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1000억원대 군용 침낭 시장을 놓고 전·현직 군 고위 간부들이 업체들과 유착해 진흙탕 싸움을 벌였고,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도 금품을 받고 입맛에 맞게 납품 계약을 맺는 불법을 버젓이 저지른 것이다.


군납 비리는 우리 군 안팎의 고질병이다. 끝 모르고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 전투기에서부터 잠수함, 함정, 방탄복, 전투화, 수통, 고춧가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류 불문이다. 이번엔 침낭으로, 품목 하나 더 보탠 데 불과하지만 업자들의 농간에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들이 놀아났다는 사실이 더욱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다. 자신이 관계된 업체의 제품이 채택되도록 상부에 수차례 허위보고까지 했다고 하니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는 군 기강이 허탈할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에는 값싸고 질 좋은 침낭이 넘쳐나는데도 병영에서는 ‘따뜻하지도 않고 무겁기만 한’ 30년 전 품질의 제품을 더욱 비싼 값에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사리사욕에 눈먼 ‘군피아’가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 있을 때 장병들은 침낭 무게로 비지땀을 흘리고 정작 침낭을 사용하면서는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이다. 2003년부터 10년간 병영생활관 개선 명목으로 6조8000억원을 쓴 국방부가 2조6000억원을 추가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비슷한 이유 탓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침낭 비리가 수조원대 방산 비리에 비해 규모가 작다고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 혈세는 샐 대로 새고 장병들의 고통은 커지는 현실에서 결코 강군(强軍)을 기약할 수 없다. 검찰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군 역시 예비역 전관예우로 인한 유착 비리를 근절하고 비리 업체들이 다시는 군납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엄격히 조치하는 등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매일경제]

8. 영남권 신공항 경제효과·편익만으로 입지 정해야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후보 지역 간 갈등이 커지고 있어 염려된다. 지난해 6월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은 오는 24일 이전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데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놓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구 정치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부산은 평가 방식에 문제를 삼으며 밀양으로 입지가 선정되면 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경남과 대구 지역 정치인들은 부산의 과도한 유치 활동 자제를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느 곳이 선정되든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영남권 신공항은 10여 년 전부터 사업이 추진됐지만 입지를 둘러싸고 지자체가 싸우는 바람에 계속 지연됐다. 2009년 국토연구원이 타당성과 입지 평가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빚다가 2011년 사업 자체가 백지화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에는 반드시 입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지자체와 정치권 협조가 없으면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최악의 경우 다시 좌초할 수도 있다. 


영남권 신공항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는 영남권을 오가는 이용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해공항은 2014년 이용객이 100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20% 증가한 1238만명에 달했다. 저가 항공사들이 생기면서 2023년 이전에 포화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니 신공항 건설을 더 이상 늦추기는 어렵다. 김해공항은 착륙할 때 주변 산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어 이래저래 신공항 조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자체와 정치권은 힘겨루기를 중단하고 좀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공항 건설에만 5조원가량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인 데다 전 국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오직 경제 효과와 편익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역 이기주의를 내세워 정치 논리에 따라 입지가 정해지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게 뻔하다. 이용객들은 불편을 겪고 공항 이용률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지 지자체와 사회단체, 지역구 정치인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대국적 견지에서 신공항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

[세계일보]

9. 당정 엇박자에 '산으로 가는' 미세먼지

새누리당과 정부가 어제 미세먼지 대책에 관한 첫 당정협의에서 경유값 인상 등 주요 방안에 이견을 드러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회의 후 “당은 경유값 인상과 고등어·삼겹살 직화구이집 규제처럼 영세 자영업자 부담을 늘리거나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난 총선 참패 후 여론 눈치를 보는 여당이 서민층 반발이 뻔한 정책은 빼라고 정부를 사실상 압박한 것이다. 여당까지 경유값 인상 등에 반대하고 나서니 미세먼지 대책이 자칫 산으로 갈 판이다.


당정이 발표한 대책은 중국 정부와의 협력 강화, 미세먼지 배출 공장에 대한 방진 시설 확대였다. 새누리당이 회의에서 정부에 요청한 디젤엔진 대책, 석탄화력발전소 연료의 친환경 연료 전환, 노후 화력발전소 점진적 폐쇄는 정부가 이미 장기 과제로 추진하는 것들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기존에 추진하던 ‘재탕 정책’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꼴이다.


미세먼지 대책이 갈피를 못 잡는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는 경유차, 석탄화력발전소 정책은 처음부터 오락가락했다. 2009년 경유차를 친환경차에 포함시키고 환경개선부담금까지 깎아주며 경유차 활성화 정책을 펴더니 이제는 경유값이나 환경개선부담금을 올려 운행을 막겠다고 한다. 화력발전소에 대한 규제 추진은 2029년까지 화력발전소 34곳을 신설하겠다는 전력수급계획과 상충한다. 미세먼지 문제가 ‘발등의 불’인 지금이라도 정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진척이 없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질수록 환경 규제는 탄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서민에 부담이 될 만한 정책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할 공산이 크다. 연일 미세먼지 공해로 국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엇박자가 스트레스를 키우는 형국이다.


어제도 경기도 11곳에서 대기오염 등으로 오존주의보가 발령됐다. 미세먼지 저감은 국민 건강과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한시가 급한 일이다. 오염물질을 뿜어대는 경유차, 화력발전소 등에 대한 방책 없이는 깨끗한 공기는 기대할 수 없다. 정치권이 일부 국민의 반발과 표만 의식한다면 전체 국민의 건강은 더 나빠지게 된다. 미세먼지 대책이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청와대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10. 일본 미쓰비시, 피해국 가려가며 사과하는가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머티리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과 관련해 중국인 피해자 3765명에게 ‘사죄금’을 지급하기로 피해자 측과 그제 합의했다. 피해자 1인당 10만위안(1800여만원)을 주고 기념비 건립과 실종 피해자 조사에 총 3억엔을 내놓기로 했다고 한다. 강제 노동을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의 뜻도 밝혔다. 과거 어느 때보다 사죄 수위가 높다. 미쓰비시가 일본 정부의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합의에 나선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쓰비시의 결정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미쓰비시가 유독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만은 시종일관 눈을 감은 탓이다. 미쓰비시는 지난해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시 강제 노동으로 피해를 본 미군 포로와 유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출신 전쟁포로들에게도 사죄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정작 식민 지배로 더 큰 고통을 받은 한국인 피해자만 쏙 빼놓고 사과를 하고 있는 꼴이다. 미쓰비시는 일제시대에 1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을 탄광과 조선소로 끌고 가 인간 이하로 대우하며 노동력을 착취했다.


미쓰비시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핑계로 내세운다. 양국 간에 이미 해결된 사안이므로 개인에게는 청구권이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2012년 5월 판결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따른 강제 동원 자체가 불법이므로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법원도 강제 노역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미쓰비시 측에 자발적 해결을 권고한 적이 있다. 자국 법원의 충고마저 무시하며 한국인 피해자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의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한·일 양국 간에는 해묵은 갈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갈등을 푸는 열쇠는 가해자 일본이 중국에 했던 것처럼 ‘통절한 반성’으로 손을 내미는 데 있다. 지난해 말 양국이 위안부 협상을 어렵게 타결해 놓고서도 최종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최근 서로 총부리를 겨눈 베르? 전투 발발 100주년 기념식에서 손을 맞잡고 화해와 협력을 다짐했다. 일본이 먼저 사죄의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면 한·일 간에도 그런 화해의 시대가 오지 않겠는가.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 마보의 날

호주 전 총리 토니 애버트의 2013년 총선 공약 중 하나는 매년 1주일간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거였다. 원주민 지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2014년에는 북부 오지 안헴랜드 원주민 주거지에서 텐트 생활을 했고, 지난해에는 퀸즈랜드 북부 토레스해협의 머리(murray)섬을 방문, 호주 총리로는 최초로 원주민 운동가 에디 코이키 마보(Eddie Koiki Mabo, 1936~1992)의 묘소에 헌화했다. 그는 “마보는 오랜 시간 정의를 위해 싸웠고,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정의는 실현됐다”며 “그로 하여 호주인이 함께 전진할 수 있게 됐고, 이제 우리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고, 당시 언론은 전했다. 


6월 3일은 토레스해협 일대 섬 주민들이 기리는 ‘마보의 날’이다. 1992년 그날 호주연방최고법원이 원주민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고, 그 소송을 이끈 게 마보였다. 마보는 판결 5개월여 전 암으로 별세했고, 호주 정부는 그해 말 ‘올해의 호주인’으로 그를 선정했다. 


마보는 머리 섬에서 태어나 외삼촌 손에 자랐다. 그의 부족에게 땅은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거였고, 경계는 나무와 돌, 바위로 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 백인 개척자들의 법은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은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라는 거였고, 원주민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토레스해협 섬의 땅들도 그렇게 백인들에게 빼앗겼다.


퀸즈랜드 제임스쿡 대학의 조경사로 일하며 독학한 마보는 74년 말이 통할 것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들에게 부족의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이런저런 토지권 관련 토론회에 나가 발언도 하게 된다. 그가 법률가들의 도움으로 백인 정부의 ‘테라 눌리우스’원칙에 도전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81년이었다. 


10여 년간 공방을 벌이면서도 마보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외대출판부가 펴낸 책 ‘호주ㆍ뉴질랜드’ 등은 92년 법원이 “원주민 주권은 엄연히 존재하며, 그들도 토지 소유권의 주체일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법원의 기각 결정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고 전한다. 


마보의 무덤은 백인 총리의 헌화 전에도 후에도, 스프레이 낙서로 무덤을 더럽히거나 비석을 훼손하는 이들도 잦은 수난을 겪었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포스트잇 메시지 현상 / 박홍기 논설 위원

​작은 종이 한 장의 힘은 엄청났다. 노랗거나 파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붙은 게시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 속에 적힌 짧은 글, ‘손편지’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호나 선동적인 연설과는 또 다른 큰 울림이 있다. 꾸밈이 없고 진솔한 까닭에 읽는 이가 누구든 가슴에 닿았다. 말 그대로 감정의 공유, 공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출구에 세워진 게시판에 작은 종이들이 빼곡했다. 역내 9-4 승강장의 스크린도어(안전문)에도 촘촘히 붙어 있다. 지난달 28일 19세의 정비 용역업체 직원이 작업을 하다 지하철에 변을 당한 곳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나은 세상을 만들게요’, ‘그곳에서는 부디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챙겨 드세요’라는 등의 글귀들이다. 추모의 글이자 분노의 글이다. 집단행동이나 말이 아닌 글을 통한 묵언의 시위다. 앞서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때 처음 나타난 사회 현상이다.


작은 종이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Post-it)’이다. 접착식 쪽지다. 포스트잇은 다국적 기업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가 1968년 만든 제품이다. 실패의 산물이다. 실버는 애초 강력 접착제를 개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접착력이 떨어지고 끈적거리지 않은 ‘이상한’ 접착제를 만들었다. 포스트잇과 반대로 게시판에 접착제를 뿌린 뒤 종이를 붙이고 떼는 식으로 사용했다. 상품성이 떨어졌다. 5년이 지난 1974년 동료인 아서 프라이가 발상을 전환했다. 쪽지 뒤편 일부에다 접착제를 바른 뒤 다른 종이에 붙였다 뗐다. 그 결과 다른 종이는 찢어지지도, 자국도 남지 않았다. 3M은 1980년 책갈피와 메모용 ‘포스트잇 노트’라는 상표로 출시해 사무용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포스트잇 ‘손편지’는 디지털 세상 밖으로 나온 댓글이나 다름없다. 한두 줄 문장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담았다. 애도, 슬픔, 아픔, 분노, 저항 등의 감정을 ‘그대가 곧 나’라는 전제 아래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자발적인 집단 메시지다. 대학가의 소통 수단인 대자보와는 기능이 다르다. 대자보는 보고 읽었지만 스스로 의견을 밝히는 데 한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쪽지 한 장 한 장은 곧 참여다.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서다. 특히 위험하고 불안한 사회를 향한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자 연대와 같다.


작은 쪽지의 전파력은 대단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소통력에 견줄 만하다. 쪽지에 적힌 문구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이나 SNS를 타고 돌고 돌아서다. 포스트잇 추모 물결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개개인의 의견 표출이 집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순 때의 촛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의 노란 리본과도 같은 추모 도구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메시지의 전달이 분명해서다. 포스트잇에 담긴 소망들을 이뤄나가야 한다, 우리의 과제다.

3. [서울신문][금요 포커스] 한류, 다시 길 위에 서다 / 송성각 한국콘텐츠 진흥원장

길은 어디로 이끌지 모르는 여행이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으로 길을 나선 사람이든, 혹은 우연히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이든 길 위에서만큼은 다 같이 평등하다. 어찌 보면 결정은 길이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든, 그 사람의 마음만이 길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이 출범한 지 어느새 7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2000년을 전후해 중국과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첫걸음은 신선한 스토리를 찾는 것부터였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좋은 스토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인 김원석 작가의 ‘국경 없는 의사회’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몇 년 후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거듭나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심히 창대한 나중을 기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스토리가 지닌 잠재력이다.


‘신(新)한류’의 중심에는 K포맷도 있다. 중국판 ‘런닝맨’은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고, 한콘진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을 받은 ‘꽃보다 할배’는 미국 NBC에 수출돼 올여름부터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지난 4월에는 대한민국의 대표 방송 포맷들이 프랑스 칸에서 열린 ‘K포맷 쇼케이스’에 참가해 미주·유럽 등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들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게임 분야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인기 아이돌 그룹 ‘EXO’를 캐릭터화해 제작 중인 모바일 러닝게임 ‘엑소런’은 한콘진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 입주한 한 게임회사가 만들었다.


콘텐츠가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가 새로운 한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LA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3년 창의인재동반사업 멘토링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국내에서 개봉돼 500만 관객을 모은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도 창의 인재 프로젝트의 멘티 출신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말 영화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기존의 성공 사례 외에 장차 ‘신한류’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도 줄지어 대기 중이다. 중국·일본·인도네시아 등 6개국 이상에 역대 최고가로 선(先) 판매된 배우 이영애의 드라마 복귀작 ‘사임당 허스토리’는 ‘대장금’ 열풍을 재현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지난해 한콘진의 방송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았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인 장용민 작가의 ‘궁극의 아이’는 현재 할리우드 진출을 타진 중이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조만간 블록버스터 영화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콘진이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쏟은 노력은 지난 10년간 국내 콘텐츠 수출액이 약 4배 증가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뉴노멀 시대의 개막에 따라 한류 역시 저성장이라는 해자(垓子)를 만나면서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한콘진이 중국 충칭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서역 한류’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300만의 중국 최대 인구 도시 충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급성장 중이다. 한콘진은 최근 2년간 이곳을 한국과 중국이 함께 손잡고 더 큰 글로벌 콘텐츠 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적 거점으로 삼기 위해 애써 왔다. 충칭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토대로 이제 곧 그 계획을 실현하려고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2억 5000만명)으로 구매 능력을 갖춘 중산층이 200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나라다. 이미 젊은층에 한류 마니아가 존재하고 한국 콘텐츠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이곳을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 등 다른 무슬림 문화권과 협력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가을 자카르타에서 우리 콘텐츠 기업들과 함께 한국 콘텐츠를 소개하는 로드쇼를 개최하고 현지에 사무소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제 새로운 한류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는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의 마음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땀 냄새 배어 있는 사유만이 삶이라는 다리를 건널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라고 말한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명언처럼 콘텐츠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신한류’라는 새로운 길 위에 선 한국콘텐츠진흥원 구성원 모두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4. [동아일보][헌채방 톡톡]세월 쌓인 책갈피, 기억과 대화를 되살린다

사라져가는 헌책방


“1980, 90년대 전성기 땐 청계천 헌책방이 120군데는 됐었죠. 2000년도부터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21군데뿐입니다. 대형 서점, 중고 서점이 생겨나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요. 남아 있는 헌책방들은 가겟세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를 내놓은 지 오래됐는데도 경기가 안 좋아 팔리지 않는 집들도 많고요.” ―현만수 씨(69·평화시장 서점연합회장)


“운영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3년 전부터 헌책방은 중단하고 내부를 카페로 개조했어요. 서촌이 유명해지면서 방문객은 많아졌지만 장사는 안 돼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진촬영 및 공연 장소로 제공하고 있어요.” ―조희진 씨(56·대오서점 관계자)


“인천 배다리에서 올해로 43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한때 이 일대엔 헌책방이 40여 군데가 있었죠. 그러다 1974년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전철이 개통되면서 손님이 점점 줄었고 지금은 저희까지 포함해 5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책방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지식의 통로예요. 지키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지금은 서점 옆 건물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매달 시낭송회를 열고 각종 전시도 열고 있어요.” ―곽현숙 씨(67·아벨서점 대표)


“대형 온라인 서점에선 새 책과 다름없는 책을 30∼40% 싸게 팔죠. 신간을 싸게 사들여 약간의 마진을 붙여 되파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들었어요. 소비자 입장에선 더 싼 중고 서적에 끌릴 수밖에요. 그러면 중고 서점이 새 책의 할인 매장처럼 되는 거죠. 출판 시장이 잔뜩 불황인데 이런 움직임은 출판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어요. 도서 할인 판매율을 10%로 묶은 도서정가제를 교란할 수도 있고요.” ―오모 씨(43·출판사 대표) 


헌책방 살리기 운동


“지난해 6월부터 헌책방 주인들이 추천하는 책 세 권을 무작위로 골라 상자에 담아 판매하는 ‘설레어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한 달에 100여 권 팔려요. 청계천 헌책방 4곳이 참여 중이고 올여름 두 곳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김수경 씨(24·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부산시가 헌책방 거리에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을 개관해 카페, 쉼터 같은 공간이 생겼어요. 헌책방들 자체적으로도 인터넷 홈페이지로 전화 주문을 받는 등 변화에 발맞추고 있답니다.” ―양수성 씨(43·부산보수동책방골목연합회장)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 산책로에서 ‘헌책다방 행사’를 2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헌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벤트죠. 서울광장에서도 매년 ‘한 평 시민 책시장’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학계 및 현장 관계자 10여 명으로 이루어진 ‘서점활성화 자문위원회’에서도 헌책방을 살리기 위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죠.” ―김홍기 씨(59·서울도서관 행정지원과장) 


이런 손님들, 기억에 남아요


“딸과 함께 책방을 찾은 한 손님이 자기 동생 이름이 쓰인 백설공주 동화책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25년 전 그 손님의 남동생이 학교에서 책 한 권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름을 써서 가져갔던 책이었던 거죠. ‘동생과 함께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나요.” ―조희진 씨(56·대오서점 관계자)


“부산의 한 손님이 1960년대에 출판된 한 절판본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몇 개월 걸려 겨우 찾아내 ‘입금해 주시면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다’고 연락했죠. 그랬더니 그 손님은 ‘내게 첫사랑 같은 책인데 어떻게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느냐’며 책값보다 비싼 KTX 티켓을 끊어 직접 서울까지 오셨답니다.” ―윤성근 씨(41·‘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주말에 관광객들이 많이 들러요. 그래서 가족 단위 손님들을 자주 봐요. 아버지 세대는 ‘추억의 팝송’이나 시집 등 옛날 책들을 기념으로 사 가요. 자녀들을 위해 세계명작 시리즈나 한국 전래동화 책들도 사 갑니다.” ―박기봉 씨(67·부산 남해서점 주인) 


해외 헌책방 현황


“책을 좋아해 많이 사는 편이에요. 그런데 호주는 책값이 비싸 헌책방에 자주 갑니다. 희귀한 책이 많아 애용하는 편이죠. 책을 팔 때도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헌책방 쿠폰으로 받으면 판매가의 20% 정도를 더 보상해 주니 이익이에요. 한국과는 다르게 교과서를 팔 땐 학생증을 보여주고 이름을 적어야 하죠.” ―최소영 씨(23·멜버른대 3학년)


“미국 뉴욕엔 고서적이나 희귀본을 취급하는 곳부터 신간의 중고 서적을 파는 서점에 이르기까지 헌책방 종류가 다양해요. 그래서 헌책방에 가면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졌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 책들의 초판본이나 사인본도발견할 수 있죠. 이런 책을 직접 만져 보고 읽어 볼 수 있답니다. 그 밖에 헌책을 기증받아 판매한 돈으로 에이즈 환자나 노숙인을 지원하는 헌책방, 서가 길이만 18마일(약 29km)에 이르는 헌책방, 뉴욕 갤러리의 도록이나 소더비 경매 출품작 카탈로그 등을 구해 파는 헌책방 등 제각기 특색이 있답니다.” ―최한샘 씨(36·‘뉴욕의 책방’ 저자) 


헌책방, 이래서 좋아요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소통’이에요. 깊은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사장님, 단골손님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죠. 서로 아끼는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죠. 지난번엔 한강 작가에 대해 한 시간가량을 얘기했어요. 서로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도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아요.” ―김수경 씨(24·연세대 영어영문학과)


“학창 시절 헌책방을 뒤져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 기본영어를 사서 달달 외우고 공부했어요. 먹고살기 바쁜 시대였던 만큼 집에 책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헌책방에 오면 책이 차고 넘쳤죠. 그런 제게 헌책방은 삶의 자양분이나 다름없었답니다. 헌책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요.” ―김경식 씨(48·교사)


“헌책들 하나하나엔 다 사연이 있어요. 열에 한둘엔 꼭 쪽지나 메모가 발견되죠. 얼마 전엔 신경숙 씨 소설책 앞 장에 ‘○○아, 고맙고 미안해’라고 쓰인 문구를 봤어요. 이 책엔 대체 무슨 사연이 얽혀 있는지 궁금해요.” ―백승연 씨(35·회사원) 


“인터넷서점이 운영하는 중고 서점을 애용해요. 유행을 많이 타는 자기계발서나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소설, 여행 가이드북 등 일회성으로 읽는 책을 주로 중고로 구매하죠. 읽고 나서 다시 팔기도 해요. 인터넷서점에서 새 책을 사려다가도 새 책 바로 밑에 가격이 30% 정도는 더 싼 중고 서적이 뜨면 새 책보다는 헌책에 관심이 가요.” ―최윤미 씨(38·회사원)


“경주 한옥 저희 집에 사랑방과 같은 헌책방을 열었어요. 처음엔 환자들에게 제가 읽은 책을 1000원씩에 팔다가 반응이 좋아 제 서재를 개방한 거죠. 10년이 지나도 안 읽을 책이라면 그 책이 더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헌책 판매 수익금은 기부할 예정이랍니다.” ―이상우 씨(38·한의사)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마을벽화 유감

최근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일부 주민이 골목길 계단의 벽화를 지우는 일이 발생했다. 마을벽화를 지운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우리가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벽화를 다시는 복구하지 말라”고 그동안의 불편함과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지역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벽화를 훼손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벽화마을 관광지의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로구 등 자치단체들은 정숙 관람을 권장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정숙 관람이 잘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원주민을 배려하지 않는 탐방객들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요사이 벽화마을이 부쩍 늘어났다. 이화동, 통영의 동피랑마을. 부산의 감천마을, 서울 강풀만화거리는 물론이고 전주 청주 여수 등 전국 어딜 가도 곳곳에 벽화 골목이 있다. 


마을벽화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노후한 마을이나 건물을 재생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주민들의 수익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취지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의 관점은 대부분 관광객 중심이었다. 주민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 보니 원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벽화마을 관광지들은 소음 공해에 여기저기 쓰레기가 늘어나고, 원주민들의 바깥나들이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자고 나면 카페만 늘어났다. 자연스레 건물 임차료가 올라갔고, 세탁소나 과일가게 같은 생계형 가게를 운영하던 원주민들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원주민이 사는 주택가인지 카페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벽화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대목이다. 골목 중간중간 한두 곳에서 벽화를 마주친다면 멋진 풍경일 텐데, 골목골목 꽉 차 있는 벽화를 보노라면 번잡하고 부담스럽다. 지나치게 원색이 많고 아마추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마을벽화를 보고 별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이어서 외려 더 좋다” “프로 작가들만의 미술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견 그럴 수 있지만, 공동 참여라는 과정이 서툰 결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요즘 곳곳에 들어서는 조각공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작품성과 관계없이 조각물을 채워 넣기에 급급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는 원주민을 배제한, 관광객 중심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반대한 원주민보다 찬성한 원주민이 많았고 또 원주민이 참여했지만, 중요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인근 도로는 자동차로 꽉 차고, 늘어나는 건 카페와 음식점이다. 서울 서촌, 가회동, 삼청동도 그렇고 부산 감천마을도 그렇다.


이번 이화동 마을벽화 훼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민과 함께하는 것도 좋고 관광 활성화, 소비 진작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마을벽화 자체의 품격을 고민해야 한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마을벽화는 지나친 감이 있다. 관광을 위해 과도하게 유행에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네 마을벽화에 절제와 여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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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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