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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3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40년 후 미세먼지 사망 1위 된다는 OECD 경고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보고서가 나왔다. OECD는 최근 발표한 ‘대기오염의 경제적 보고서’에서 2060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10년 기준 300만명에서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 기준 사망자 수가 2010년 359명에서 1109명으로 늘어나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OECD 비회원국인 중국의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의 두 배인 2050명이나 된다고 봤다. 현재 각종 대기 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가 일본(468명)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이들을 제치고 1위가 된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에 앞서 미세먼지가 우리의 목숨까지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미세먼지 농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 농도는 벌써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대기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와 각종 연구기관에서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주범을 중국이나 몽골로부터 유입되는 황사를 비롯한 각종 공해 물질로 꼽고 있다. 전체 오염원의 50%쯤이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국내에서 발생하는데 석탄 화력발전소를 포함한 산업체가 약 55%, 경유차 등 교통수단이 33% 정도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기에서 이산화질소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석탄 화력발전소와 경유차가 미세먼지 오염도를 증가시키는 주범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의 건강’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재탕 삼탕식 정책에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용 증가가 수반되는 경유차 운행 감소나,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및 건설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80기나 있으나 석탄에 비해 발전 단가가 높아 현재 가동률은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비용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 1위라는 굴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 나랏돈으로 로스쿨생 연수까지 보내려하나

교육부가 로스쿨 학생의 해외 연수를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취업역량강화 사업’에 해외 인턴십은 1인당 700만원, 국내 인턴십은 1인당 200만원으로 모두 13억 1400만원을 배정했다. 가뜩이나 ‘현대판 음서제’로 비난받는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의 취업을 돕고자 과연 정부가 혈세를 써야 하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매년 로스쿨 학생 150명을 해외 기업이나 로펌, 국제기구에서 법률 실습 활동을 하게 한다고 한다. 항공료와 생활비 등 10억 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니 과도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연수에도 150명을 선발해 3억원의 예산을 쓰겠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부가 이번 사업은 법률시장의 개방에 대응해 국제 전문 법조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일은 법률 분야 전문인 양성을 위해 설립된 로스쿨에서 해야 할 일이다. 어려운 나라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 사업 계획안을 보고받고 정부 예산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로스쿨의 등록금은 연평균 1500만~2000만원에 이른다. 서민들은 가고 싶어도 엄두를 내기 어렵다. 입시 절차도 불투명해 부유층 자제들의 법조인 통로가 된 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로스쿨 학생에게 해외 연수까지 나랏돈으로 보내겠다는 것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정책 입안자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른 대학원 및 전문대학원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연수생을 뽑는다지만 결국 취약 계층은 일부만 선발될 것이다. 과거 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국비 지원 해외 연수에 선정된 것처럼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들이 연수 선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구나 로스쿨 학생들은 이미 다른 대학원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장학금 수혜를 누리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로스쿨 입시 부정 의혹과 관련해 자기소개서의 부모 직업 기재가 합격과의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며 입학 취소 대신 경고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로스쿨 학생들의 연수 제도는 즉각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부는 이래저래 로스쿨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3. 20대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

20대 국회가 오늘 개원한다. 비록 법정 시한(6월 7일)을 넘겼지만 여야의 전격적인 원 구성 합의로 지난주 정세균 국회의장, 심재철, 박주선 국회 부의장 선출에 이어 18개 상임위원장을 뽑고 본격적인 의정 활동에 돌입한다.


20대 국회가 역대 국회와 비교해 그래도 순탄하게 문을 열게 됐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새누리당은 19대에서 넘어온 노동개혁법안을 재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야당의 반발이 거세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 25% 인상안에는 새누리당이 반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청문회와,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에 대한 공방도 여전하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원대 자금 지원에 대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폭로로 청와대의 ‘서별관회의’가 핵심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원 연설도 관심거리다. 아프리카·프랑스 순방을 마친 박 대통령이 개원 연설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을 재개할 방침이다. 최근 일부 청와대 참모를 교체함으로써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이번 개원 연설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노동개혁 등 집권 4년차 국정과제의 중단 없는 개혁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 개정안(상시 청문회법) 거부권 행사로 야권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박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와 상생을 강조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박 대통령이 각종 현안에 대해 진솔한 설명과 함께 향후 대처 방안을 국민에게 설득한다면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난국 그 자체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발목을 잡은 상황에서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경제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외교·안보 정세도 격랑이 일고 있다.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 출발한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3당 정립구도다. 어느 당이 일방적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구도가 아니다. 식물국회로 지탄받던 19대 국회와 달리 20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국회가 되려면 여야 모두 국민에 약속한 협치 정신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역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입버릇처럼 외쳤던 민생정치를 이번에는 제대로 실천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기억해야 한다.


여야 모두 쟁점 사안에 대해 한발씩 물러나는 자세로 소통과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집권당은 ‘국회 심판론’이나 ‘야당 심판론’을 제기하며 야당을 자극하는 대신 낮은 자세로 야당에 협조를 구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20대 국회는 합치의 정신으로 국민 지지를 받는 민의의 전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등은 도입 당시의 취지가 분명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언급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정 의장의 말대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의원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4. 中어선 불법조업 무력응징 검토해야

우리 군과 해경,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요원으로 이뤄진 ‘민정경찰’이 소총 등을 휴대하고 10일부터 한강 하구 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퇴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중립지대인 한강 하구 수역에 민정경찰을 투입한 것은 지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중국 어선의 심각한 불법 조업 횡포에 비춰 당연한 조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무장 퇴거작전을 시작하자 중국 어선들은 북한 연안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단속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단속이 쉽지 않은 연평도 등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이다. 불법 조업 중국 어선 규모는 지난 2013년 꽃게철인 4~6월 1만5500여척에서 2015년에는 2만9600여척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기승을 부려 이달 들어 하루 300척이 넘는 중국 어선이 서해 NLL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올해 우리 어민 꽃게 어획량은 지난해의 30% 수준으로 격감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지난 5일 우리 어민이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했겠는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우리 어족자원이 황폐화하고 어민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포 작전 중에 중국 어선이 NLL 북한 쪽으로 달아나면 군사 충돌 우려로 단속이 어렵다는 해경 설명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해양주권과 어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어떤 이유로든 어민들이 직접 중국 어선을 잡아 당국에 넘긴 일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 정부에 불법조업 방지를 위한 한·중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외교적 노력과는 별개로 과감한 나포와 수십억∼수백억 원 수준의 벌금 폭탄 등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 총격을 가해 격침시키는 등 군사작전 수준의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도 불법조업 등을 단속하는 수산자원감시대 선박에 기관총, 고사총 등을 탑재하고 있다. 우리라고 무력 응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5. '골육상쟁의 민낯'이 부른 롯데 수사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이 1967년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사무실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 수색 대상에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아들 신 회장 자택과 집무실도 포함됐다. 롯데는 역대 정권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아 검찰 수사가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관 200여명을 투입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불거진 그룹 경영권 분쟁이 기폭제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롯데는 지난해 7월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前)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 회장 등 형제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인 ‘형제의 난’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아 왔다. 두 형제간 진흙탕 싸움은 소송과 상호 비방에 그치지 않고 창업자인 아버지까지 정신감정을 받게 하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롯데그룹을 재계 5위로 키운 아버지를 자식들이 정신상태 운운하며 난도질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인 것은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패륜적 태도는 우리 사회로부터 철퇴를 맞기 마련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계열사 간 거래 과정에서 불거진 비자금 조성 혐의에 따른 횡령·배임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에 수백명을 투입한 점은 사건을 롯데그룹 횡령·배임으로 마무리할 것 같지는 않다. 압수수색 결과에 따라 총수 일가 비리와 정·관계 로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와 부산 롯데월드부지 용도 변경, 맥주사업 진출, 면세점 운영사업 수주 등 각종 사업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검찰이 건전한 시장 경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롯데그룹 조사가 자칫 ‘대기업 때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 기업이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마당에 검찰의 사정(司正) 드라이브가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6. 안전사고 빌미로 서울메트로의 덩티 키우려 하다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제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와 관련한 시민토론회에서 서울메트로 안전 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이 경우 메트로 인력은 최소 400명 이상 늘어난다. 지방공기업 인원 채용은 중앙정부와의 협의사항이어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순 없다. 어제 서울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는 등 시 일각에서 다른 목소리가 있는데도 박 시장이 밀어붙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이번 문제를 ‘직영화’ 프레임으로 몰아가 중앙정부 책임으로 몰 생각인 듯하다. 어제 “서울시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매년 1조 원의 적자가 발생하며 무임승차만으로도 적자가 4000억 원인데 중앙정부에서 한 푼 보조도 없다”면서 메트로 부실을 정부 탓으로 돌렸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하청사회가 되고 있다”는 과장된 발언이나 “시민들이 나서 달라”는 선동도 책임 있는 시장이 할 말이 아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를 맡은 은성PSD는 처음부터 메트로 퇴직 직원들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시민 돈으로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의 퇴직 후 일자리를 만들어준 데 이어 박 시장은 낙하산 인사까지 해서 메트로의 경영 부실을 심화시켰다. 그래 놓고도 운임 비용 탓만 하는 것은 박 시장의 책임 회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직영화를 한다고 해도 반쪽에 그칠 공산이 높다. 24개 역의 관리를 맡은 유진메트로컴이 2026년까지 계약을 맺은 상태여서 이 회사가 동의하지 않는 한 전면적인 직영화는 불가능하다. 스크린도어 사고가 없었던 도시철도공사는 직영이라고 서울시가 주장하지만 이곳은 안전 업무를 신호직에게 맡겨 사정이 전혀 다르다. 메트로에는 도시철도공사처럼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도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시스템이 없다. 직영한다고 반드시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 시장은 어제 “즉흥적 피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천문학적 누적 적자를 내면서도 매년 수백억 원대 성과급을 가져가는 메트로의 방만 경영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박 시장은 공석인 메트로 사장에 또 낙하산을 보낼 생각은 접고 용역업체의 관리감독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7. '구조조정 반대 파업' 조선사에는 혈세 지원 못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오늘부터 이틀간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 노조는 5조3000억 원의 자구계획 중 핵심인 특수선 사업 분할 및 인력 2000여 명 감축을 반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구조조정에 반대하기 위해 17일 대의원대회에서 임금단체협상 관련 쟁의 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8일 조선 및 해운업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지 1주일도 안 돼 조선업계 노조가 반대 투쟁에 나서면서 구조조정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의 작년 영업적자는 5조5051억 원, 부채비율은 7308%에 이른다. 2000년 경영난으로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뒤 투입된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만도 7조 원을 넘는다.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부실 규모가 커졌지만 대우조선의 평균 연봉은 2014년 기준 7400만 원으로 민간업체인 삼성중공업(7200만 원)보다 많다. 작년 10월 4조20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받기 직전에도 임금협상에서 1인당 평균 900만 원의 격려금 조항을 집어넣다 질타를 받았다. 현대중 노조 역시 회사가 9개 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일 때도 임금 인상과 해외연수 확대를 요구하며 ‘상경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조선·해운 분야 구조조정을 위해 11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 조성을 발표하면서 조선 3사의 인력 30% 감축, 설비 20% 축소, 자회사 매각을 통한 10조3500억 원 규모 자구계획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조선사 노조의 반발 때문에 인력 및 설비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는다면 자구책은 빈껍데기에 불과해진다. 가뜩이나 정부의 구조조정안은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근본 수술이 아니라 조선 3사를 연명시키는 미봉책이란 비판이 비등한 판이다. 이런 마당에 파업까지 하려는데 국고를 털어 지원할 이유가 없다. 


조선 경기가 호황일 때는 임금 상승과 복지 확대를 누리다가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내밀면서 임금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과거 노조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여야 정치권도 개입을 자제해 구조조정의 성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8. 계파청산 선언 이틀 뒤 “친박 해체” 요구… 與혁신 불가능인가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다 ‘친박 쿠데타’로 물러났던 김용태 의원이 어제 “당의 계파는 친박(친박근혜)계 하나뿐”이라며 “새누리당에서 계파를 해체하라고 한다면 친박이 해체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2016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책 워크숍’에서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는 쓰지 않을 것”이라며 ‘계파 청산 선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온 정면 반박은 ‘계파 청산’이 관제(官製) 선언과 다름없는 이벤트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김 의원이 “계파란 사람들 무리에 들어가서 이득을 봐야 하고 대장과 그 아래 서열구조, 운영원리가 있다”며 따라서 비박(비박근혜)은 계파가 아니라고 한 말도 일리가 있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참패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이런 ‘친박 패권주의’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여는 첫 워크숍이면 이 같은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반성과 개혁안을 도출해내고, 그 결과물로 계파 청산 선언을 내놓았어야 옳다. 그런데 친박계에선 총선 참패 책임을 따지는 것이 계파 조장 행위라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니 뒤늦게 친박 해체 요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새누리당 워크숍에선 교육·복지, 주거·환경, 일자리·경제, 청년·소통 같은 정책과제를 놓고 1시간 30분씩 분임토론을 했다고 한다. 계파 청산 선언의 배경이 된 공천 파동과 총선 참패 책임, 탈당 의원 복당 같은 핵심 사안을 아예 토론 주제에서 뺐다는 것은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에게 혁신의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위원장이 된 뒤 “사적인, 정파적인 이익을 위한 파당은 국민 지지를 떠나게 한다”며 획기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다짐은 허언(虛言)이었던 모양이다. 혁신 논의가 실종된 것을 문제 삼아야 할 비박 의원들도 상임위 배정을 받기 위해 친박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니 ‘웰빙 새누리’의 행태는 친박이나 비박이나 마찬가지다.


혁신비대위는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면 복당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로 했으나 김 위원장은 손도 못 댈 만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민의를 담아 내달 중순 발간 예정인 ‘국민 백서’를 놓고도 분란만 커질 우려가 있으니 내놓지 말자는 주장이 나온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당시 민주통합당이 한상진 서울대 교수에게 의뢰해 친노 패권주의 문제 등을 지적한 대선 평가 보고서를 만들고도 친노(친노무현)계 반발로 덮는 바람에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국민 지지도 잃은 길로 가려는 듯하다. 이런 식이면 혁신비대위를 조기 해체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친박 대표나 뽑으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 위원장은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9. 외교장관의 방러, 적극적 다원외교 계기되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어제 러시아로 떠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논의한다. 놀라운 점은 2013년 장관 취임 이후 첫 러시아 방문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이에 따른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100일이 넘은 시점의 방러는 만시지탄이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하나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6자회담 참가국이다. 이번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이 합의했던 안이 통과되기 직전에 개입해 채택을 하루 늦춘 것은 물론 내용도 완화시켰다. 북핵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미·중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 러시아에 한국 고위급 인사의 ‘외교적 스킨십’이 이토록 소홀했던 것은 국익 차원의 문제다. 실제로 양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공조 방안을 전화로만 협의했다. 지난 2월 안보회의가 열렸던 독일 뮌헨과 지난 4월 아시아 교류·신뢰구축회의(CICA)가 개최됐던 중국 베이징에서 양자 회담을 열었을 뿐 서로 상대 국가를 방문하는 적극 외교는 없었다. 자칫 러시아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최근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와 관련해 반대와 우려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극동 개발과 양국 물류 연결 등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할 사안이 적지 않다. 북핵 사태로 중단된 남·북·러 3각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윤 장관의 이번 방러가 한국 외교가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G2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동북아 정세, 핵심 주변국들의 외교정책이 급변하는 상황이 아닌가.

[매일경제]

10. 네이버 라인 해외상장, 기업 글로벌 영토 확장 큰 의미

네이버 자회사인 메신저 서비스기업 라인이 다음달 일본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한다. 라인은 2000년 네이버재팬으로 출발한 네이버 100% 자회사로 모바일 메신저를 출시한 지 5년 만에, 해외 상장을 추진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국내 기업의 인수·투자 방식이 아닌 해외 자회사를 설립한 후 성장시켜 글로벌 증시 2곳에 동시 상장하게 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쾌거라 할 만하다. 라인은 본사와 별개로 독자적인 서비스 플랫폼과 비즈니스모델을 갖춰나갔고 기업공개로까지 연결시켰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6000억엔(약 6조5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올 들어 일본 내에서 이뤄진 기업공개(IPO) 중 최대 규모로 예상된다.


라인이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것은 네이버가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철저한 일본 현지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일본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태국, 대만 등에서도 현지인 취향을 공략한 마케팅으로 1위에 올랐다. 현재 글로벌 인터넷서비스 시장은 미국 중국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고 유럽 기업조차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상황인데 한국에 뿌리를 둔 기업이 독자적인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라인은 상장을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확보하는 만큼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네이버 측도 "일본 및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M&A)에 전략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인터넷 기업으로 해외에서 성공신화를 만들 기회다. 페이스북이 보유한 와츠앱, 중국 텐센트의 위챗 등과도 힘겨루기를 해볼 만하다. 물론 라인 월간 실질 사용자 수가 2억1840만명으로 와츠앱(10억명), 위챗(6억5000만명)에 밀리고 일본 태국 대만 등 아시아권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이용자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는 점도 악재지만 상장으로 마련한 실탄으로 동남아 국가를 발판 삼아 북미 유럽 등으로 영토확장을 꾀해야 한다. 다만 미국은 메신저 시장이 포화상태인 만큼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고전 중인 다른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라인의 현지화를 통한 해외 상장을 벤치마킹할 만하다.

주요 신문칼럼

1. [프레시안]사패사 살인, 정말 1만5천원 때문일까?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에서 6월 7일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모양이다. 최근 흉흉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착잡한 마음일 텐데, 그나마 사건 발생 3일 만에 유력한 피의자가 잡혀 다행이다.


피의자 정모 씨(45)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동기에 성폭행이 포함되는지 안 되는지가 뉴스의 주요 관심거리로 보도되고 있다. 나에겐 단위가 다른 비슷한 두 개의 숫자가 뇌리에 남아서 떠나지 않는다.


먼저 1만5000원.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지갑에서 빼앗아간 돈이다. 사람 목숨 값이 1만5000원이고,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식의 설명은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하여도 무척 불편하다. 결과로서 피해자가 우연찮게 강탈당한 돈이 1만5000원인 것이지, 범인이 그 돈을 노리고 범행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이다. 피해자의 지갑 안에 1만5000원밖에 없었음을 사전에 알았다면 범인이 범행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일단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설명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강탈할 금액이 1억5000만 원이거나 15억 원이면 살인의 동기로 납득할 만한 금액일까. 영화 <몽타주>(2012년 개봉)에서 아동 유괴범이 제시한 금액이 5000만 원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범행과정에서 유괴한 아동을 죽게 만들어 범인은 결과적으로 살인의 대가로 5000만 원을 수중에 넣는다. 


언론보도에서는 죽음의 값어치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흔히 관련된 금액이 특정된다. 그 금액이 영화 <몽타주>처럼 계획되었을 수도 있고 사패산 사건처럼 아닐 수도 있다. 또 사패산 살인사건처럼 1만5000원일 수도 있고, 영화처럼 5000만 원일 수도 있다. 사전에 어떤 금액이 계획되었든, 모르는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금액이 결정되었든, 또한 그 금액이 크든 작든, 돈을 목적으로 한 살인사건에서 유일한 사건은 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간단하게 사람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실체적 진실로 생활에 밀착한 상황은 소름끼친다. 


나아가 비록 사후적으로 확정되었지만 1만5000원이란 푼돈이 상징하는 살인범죄의 '생활밀착' 극치는 사회병리가 일반적인 생활인에게 보편적 위험으로 전가된 악몽으로 규정될 수 있다. 1만5000원은 인간 목숨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위험으로의 입장료이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나쁜 짓 혹은 '죽을 짓'을 하지 않아도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고, 등산하다가 죽을 수 있고, 게다가 숨 쉬다가도 미세먼지로 죽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숫자는 1시간 반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사건발생 3일째인 10일 밤 10시 55분쯤 의정부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현재 검거 상태인 정씨가 자신이 사패산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때까지 경찰은 살인현장으로 이어지는 사패산 샛길 폐쇄회로(CC)TV 분석과 DNA 대조에서 딱히 명확한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도를 근거로 체포과정을 정리하면, 전화를 받은 의정부경찰은 장난 전화가 아니라 피의자의 자수임을 직감하였다. 정 씨는 술을 마신 상태로, 범행을 고백한 데 이어 자신이 현재 강원도 원주시내에 있다고 밝혔다. 소재를 밝히는 순간 형사들이 원주시로 급파되었고, 그 사이에 고참 형사가 정 씨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기사에는 "그 사이 정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도주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곧바로 기지가 발휘됐다. 형사들이 (원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통화를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의정부 경찰서에서 정 씨가 있는 곳까지는 빨리 가도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의정부 경찰은 중간중간 끊었다가 통화하기를 반복하며 정 씨를 안정시켰고, 용의자의 심리를 아우르고 달래주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긴박하기 그지없는 범죄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 체포 작전은 급파된 의정부 경찰이 11일 오전 0시 33분에 그때까지 통화를 하며 바람을 쏘이고 있던 정 씨를 살인 혐의로 검거하면서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무용담을 연상케 하는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정 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의정부 경찰은 지근의 원주지역 경찰에게 연락하는 대신 1시간반 이상 떨어진 거리임을 알면서 왜 자기네 형사들을 보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화 <몽타주>를 보면 범인 체포과정에서 두 형사가 순차적으로 용의자를 덮친다. 먼저 용의자를 넘어뜨린 주인공 형사(김상경) 대신에 나중에 숟가락을 얹은 격인 조연 형사(조희봉)가 수갑을 채운다. 이후에 조희봉은 자신이 범인을 체포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극중에 나온다. 


"민첩하게 대응하였다"고 보도된 의정부 경찰이 굳이 자기네 형사를 보낸 이유가 설마 영화와 같은 이유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주일을 힘들게 일하다가 하루 시간을 내 산행을 통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려다 불귀의 객이 된 피해자를 생각하면 영화 같은 발상은 현실에서 나타나선 안 된다. 그렇다면 원주지역에는 용의자를 잡으러 출동할 만한 믿을 만한 경찰이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1시간 반 통화하는 동안 정 씨는 아무 때고 전화를 끊고 다른 곳으로 잠적할 수 있었다. 1분 초가 중요한 시점에 굳이 자기네 인력 말고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조직이 무능하기에, 혹은 공조나 긴급한 업무협조가 안 되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을까.


안 했어도 문제, 못 했어도 문제이다. 만약에 영화와 같은 이유로 정 씨를 검거하는 데 1시간 반을 허비하였다면, 의정부 경찰은 문책을 받아야 한다. 아직 피의자 신분이지만 정황상 범인인 정 씨가 또 만약에 통화 중 도주하였다면 국민은 또 한 명의 살인범과 함께 생활하는 가중된 보편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1분 1초를 아끼지 않고 기꺼이 1시간 반을 받아들이는 경찰의 태도가 1만5000원을 보편적 위험의 입장료로 기능케 하고 있다.

2.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혈액형은 우열이 없다

의학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구한 위대한 발견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ABO식 혈액형의 발견이다. 이전에는 부상이나 수술·출산 중에 과다 출혈로 숨지는 일이 많았으나 수혈이 가능해지면서 위험성이 크게 줄었다. 


피가 온몸을 순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613년이다. 그때부터 모자라는 피를 보충하거나 노쇠한 몸의 피를 건강한 피로 바꿔보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다. 처음에는 동물의 피를 주입했다가 나중에는 사람의 피를 넣었다. 그러나 모든 수혈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듯 보이는 사례도 있었으나 다음 시도에서는 실패가 반복됐기 때문에 안심하고 수혈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의문이 풀렸지만, 혈액형이 다른 피가 섞이면 적혈구가 엉기는 응집 현상이 일어나 모세혈관을 막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이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1868∼1943)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법령이 유대인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해 대학 때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대 병리해부학연구소에서 자신과 연구원들의 피를 뽑아 여러 가지 조합으로 실험해본 결과 피를 엉기게 하는 응집소가 두 가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기 다른 응집소를 보유한 혈액형을 각각 A형과 B형으로 구분하고, 두 응집소와 섞여도 엉기지 않는 혈액형은 C형이라고 명명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내용을 담은 논문 '정상인 혈액의 응집 현상'을 1901년 11월 14일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그의 제자들이 두 응집소와 모두 반응하는 AB형을 찾아냈다.


1923년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로 옮긴 란트슈타이너는 그때까지 1, 2, 3, 4 혹은 A, B, C, AB로 나라마다 다르게 불리던 혈액형을 A, B, O, AB로 통일하자고 제창했다. C형은 응집원이 모두 없다는 의미로 숫자 '0형'으로 불렀다가 나중에 알파벳 'O형'으로 굳어졌다. 란트슈타이너는 ABO식 혈액형 말고도 1926년 MN식 혈액형과 P 혈액형을 더 발견했고 1940년 Rh 혈액형도 발견했다. 이밖에도 여러 학자의 추가 발견으로 혈액형은 모두 15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국제수혈학회가 주요 혈액형 분류법으로 고지하는 것은 30여 가지이며, 수혈 때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혈액형은 ABO와 Rh뿐이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공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액형의 존재가 알려지자 지역별·인종별 혈액형 분포를 집계해 그 차이를 알아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폴란드 출신의 루트비히 히르슈펠트는 8천500여 명의 혈액형을 분류해 인종계수를 산출한 뒤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1919년 발표했다. 인종계수는 A형 인구를 B형 인구로 나눈 값으로, 서유럽인들은 모두 2.0을 넘었고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은 그 이하였다. 유대인이나 러시아인도 1.3에 그쳤으며 흑인은 0.8이었다. 인도인이나 베트남인은 0.5에 불과했다. 


이를 본격적인 민족우월주의로 연결해 식민지 지배나 전체주의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등장했다. 1922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 신이치(桐原眞一) 교수와 제자 백인제는 조선 거주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인 데 비해 조선인은 평균 1.07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기리하라 교수는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서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내세워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논리를 두둔하는 동시에 경기(1.00)나 평북(0.83)보다 전남(1.41)은 일본과 유사성을 보인다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당위성을 시사했다. 독일의 인류학자 오토 레헤도 히르슈펠트의 연구 결과를 인종차별의 근거로 사용하려 했다. 심지어 독일 나치 정권은 우생학을 내세워 유대인의 말살을 꾀하는 단종법(斷種法)을 제정하기도 했다. 유대인이던 란트슈타이너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혈액형뿐 아니라 피부 빛깔이나 모발의 형태 등 그 어떤 신체적 차이도 종족 간의 우열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통설이다. 미국의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명저 '총, 균, 쇠'에서 "미국의 수많은 심리학자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음을 입증하려고 수십 년 동안이나 노력했지만 허사였다"고 지적했다.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밝혀내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혈액형 성격설이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만 유행한다는 사실은 일제의 식민지배 논리를 떠올릴 때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4일은 '세계헌혈자의 날'이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 국제적십자사연맹,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가 란트슈타이너의 탄생일에 맞춰 헌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헌혈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적십자사 주관으로 해마다 기념식과 축하 공연을 열고 있다. 이날을 맞아 허황한 혈액형 성격설에 호기심을 품기보다는 혹시라도 우리 안에 인종차별주의나 에스노센트리즘(자민족 우월주의) 성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이웃을 위해 헌혈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3. [동아일보][데스크 진단]왜 사람들은 '순백의 만찬'에 모였을까

11일 저녁 수십 명의 남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옷으로 차려입고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나와 잠수교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자, 한복을 입고 레이스 양산을 쓴 여자, 중절모를 쓰고 트렁크를 끄는 남자…. 의상과 소품까지 온통 흰색이었다.


역시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커다란 흰 꽃 장식을 한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물었다.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요?” 


“네, 오늘 세빛둥둥섬 앞에 사람들이 흰색 옷 입고 모여 저녁 먹어요.”


이날 열린 행사는 제1회 ‘디네앙블랑 서울’이다. 1988년 프랑스인 프랑수아 파스키에 씨가 친구들과 연 디너파티 ‘디네앙블랑(Le D^iner en Blanc·흰색 차림으로 저녁 먹기)’에서 비롯됐다. 파스키에 씨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해 드넓은 불로뉴 숲에서 파티를 열면서 서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흰색 옷을 입도록 했다. 손님들은 이 색다른 경험에 흡족해했고, 이후에도 이런 파티가 열리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콘셉트가 탄생한 디네앙블랑은 프랑스 궁정문화를 재현한다는 취지로 음식, 패션, 공연을 즐기는 야외 복합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그동안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앞 등 파리 주요 명소 주변에서 열려 왔다. 매번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 8일(현지 시간)엔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이 행사가 파리 방돔 광장에서 열렸다.


또 세계적으로 상표등록을 한 ‘디네앙블랑’은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등 25개국 60여 개 도시에서도 열리는 국제적 행사가 됐다. 그제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열린 첫 서울 행사에는 12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참석한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는 “디네앙블랑이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모습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순백의 만찬’에 모였을까. 세 가지로 이유를 정리해 봤다.


① 자발적 참여의 즐거움


이 행사는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참가비(두 명에 90달러)를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참가자는 ‘우아한 흰색 옷차림’을 하고 테이블과 그릇, 음식을 직접 준비한다. 서울시내 네 군데 집결지를 미리 공지하고 만찬 장소는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집결지에서 알려줬다. 고속터미널역은 그 집결지 중 하나였다. 


간호사라는 한 30대 여성은 친구들과 순백의 테이블을 꾸몄다. 화이트와인과 테이블 꽃 장식도 트렁크에 챙겨 왔다.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내 인생에 이런 드라마틱한 경험을 언제 또 해 보겠느냐”고 말했다. 스스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옆 테이블의 모르는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②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축제


야외 행사장에 어둠이 내려앉자 재즈 공연 등이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사회자도, 진행자도 없지만 다들 무대 앞에 나가 음악과 춤을 즐겼다. 행사에서 만난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을 즐길 줄 안다. 판을 벌여주면 언제든 놀 준비가 돼 있다. 기성세대처럼 쭈뼛거리지 않는다. 갑갑한 미래를 괴로워하는 대신 이렇게 욕구를 분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간 지인은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 즉 ‘축제하는 인간’의 시대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③ 나만의 SNS 콘텐츠를 찾아서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디네앙블랑 서울’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게시물이 주렁주렁 올라왔다. 해시태그는 SNS에서 검색이 편리하도록 만든 일종의 메타데이터로, 누구나 SNS에서 ‘#’ 뒤에 단어를 넣으면 원하는 정보를 모아 볼 수 있다.


1200명이 흰색 옷을 입고 만찬을 즐기는 모습은 반포 한강공원을 지나는 시민들에게도 흥밋거리였다. 흰 백합과 화이트와인, 흰 풍선과 화사한 미소들….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한 참가자는 “오래 추억에 남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리게 돼 기쁘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전날인 10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낮추면서 사상 최저 금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온 나라가 가계 소비를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소비는 합리적 계산 말고도 감성적 요인의 영향을 꽤 받는다. 요즘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하고 싶은 인간에게 어떻게 즐거운 소비의 장(場)을 펼칠 것인가. 소비자의 감성 취향을 저격할 ‘무기’가 있는가. ‘순백의 만찬’에 모인 인파를 보면서 정부와 기업들이 작은 실마리라도 얻었으면 한다.

4. [중앙일보][김호정의 왜 음악인가]바이엘·체르니, 그 다음엔?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한국 사람들의 기질을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카를 체르니(1791~1857)는 유독 한국에서 빅 히트를 쳤다. 체르니는 좋은 피아니스트였다. 무엇보다 베토벤 작품의 해석을 잘 해서 유명했다. 베토벤의 제자기도 했고 나중에는 좋은 피아노 선생이 됐다. 프란츠 리스트라는 명 피아니스트를 길러냈고 그 밖에도 크게 된 제자가 많았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100ㆍ30ㆍ40’ 같은 숫자와 늘 함께 불리는 작곡가다. 우리에게 체르니는 하나의 문화 코드다. 체르니의 노하우가 들어있는 연습곡 100곡을 묶은 연습곡집 100권을 떼고 30권으로, 40권으로 가기 위해 무던히 애 썼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또 체르니 덕분에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40이라는 고지에 올라본 이라면 30에서 좌절했던 이보다 우수한 게 당연하다.

그러느라 못 보고 지나친 게 많다. 나는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앙코르로 체르니 30권 중 한 곡을 듣고 소스라친 적이 있다. 공들인 음색, 풍부한 페달, 적당한 강약 조절이 들어간 그 곡은 아름다웠다. 30권을 얼른 떼고 40권으로 가기 위해 숨가쁘게 연습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었다. 한때는 30-40-50이라는 피라미드형 설계야말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당장 해결할 과제도 선명했다. 약간의 경쟁심, 동년배와 비교 같은 것도 야릇한 쾌감을 불렀다. 하지만 음악을 어떻게 듣고 표현해야 하는지 여유있게 배우기는 힘들었다.

(잘 연주하면 아름다운 체르니의 연습곡. 30권 중 4번이다. 한 피아니스트가 앙코르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공들인 연주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못 본 채 지나간다.)

(이 또한 체르니의 작품이다. 기분 좋은 악상을 고전적으로 표현하는 작곡가다. 이런 작품들 역시 ‘연습곡’의 그늘에 가려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쇼팽의 연습곡 10-1.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연습곡을 작곡한 건 쇼팽이지만, ‘연습곡’이라는 아이디어를 시작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체르니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취재를 위해 많은 국적의 피아니스트들을 만났지만 피아노 공부를 이렇게 시작하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일제 시대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일본보다 한국에서 훨씬 고착화된 코스인 듯하다. 얼마 전 피아노를 시작한 여덟살 조카마저 ‘바이엘-체르니’의 코스에 발을 올렸다. 30년 전 나와 달라진 게 없다.


다른 걸로 시작하면 안될까. 피아노 치면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을 거고, 화음이나 리듬 쪽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공부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이유도 모르는 목표에 우르르 올라타 안도감을 느끼는 건 음악 교육 뿐 아니다. 한국의 ‘체르니 코스’는 뭐든 잘 하기 위해 맹렬히 정진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털어내는 사회를 보여준다. 교향곡ㆍ미사곡 같은 거대한 작품을 포함해 1000곡 넘게 음악을 남기고도 30ㆍ40 같은 숫자하고만 짝 지워지는 체르니에게 미안한 일이다.

5. [중앙일보][시론]오감을 버려라

요즘 경제가 어려워 서민 생활이 더욱 힘들다. 그래도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인생은 즐겁다. 활짝 핀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삶의 맛을 오감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은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도 있다. 우리는 일터나 생활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오감으로 만난다. 일터에는 눈에 보이는 먼지가 있고, 화학약품 냄새가 나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감을 통해 위험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이는 위험은 미리 대비해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일터의 위험은 항상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인지역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 근로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다. 신혼의 단꿈을 꾸던 이 여성 근로자는 파견직이었는데,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무색의 투명한 공업용 알코올인 메탄올을 마시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에 금주법을 제정해 술을 제조하거나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밀주가 유통됐고 이를 마신 사람에게 실명이 발생했다. 밀주에는 에탄올(술)과 비슷한 정제되지 않은 메탄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밀주를 마시다 메탄올에 의해 실명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메탄올에 의한 실명은 위장관으로 흡수될 때 나타난다. 공기 중의 메탄올을 폐로 호흡해 실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메탄올 중독에 의한 시력 손상이 발생했다고 알려졌을 때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사업장의 공기 중 메탄올 농도는 정부가 제시한 관리기준값의 5~10배에 달했다. 관리기준값은 근로자가 수십 년간 일을 할 때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의 농도를 말한다.

이러한 위험성이 있음에도 기준값보다 메탄올 농도가 훨씬 높은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은 왜 그냥 일을 했을까?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모든 용기마다 메탄올의 위험성을 표기하고 취급 요령 및 유해성에 대해 교육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불행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해성을 알았어도 그냥 일했을 것이다. 공기 중 메탄올 농도가 높아져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탄올의 공기 중 관리기준값은 200ppm이다.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농도(냄새역치)는 이의 열 배인 2000ppm 이상이다. 즉 건강장해를 크게 일으킬 수준에 노출되기 전에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자신이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얼마만큼 노출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과 현상을 오감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는 이처럼 오감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노트북 부품 공장에서 태국인 근로자들이 화학물질(노멀헥산)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집단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노멀헥산의 관리기준은 50ppm이지만 냄새역치는 200ppm이 넘는다. 건강에 해가 되는 관리기준값의 4~5배에 노출됐는데도 근로자들은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화학물질은 독성을 알아도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 그래서 직업병은 자신이 왜 질병에 걸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냄새역치가 관리기준값보다 낮은 경우에는 사실상 건강에 영향이 없지만 근로자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불안에 떤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스티렌이란 물질은 관리기준이 20ppm이지만 1ppm 내외에서 냄새가 난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주변에 냄새가 진동한다. 혹시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장해가 있을까 염려하지만 관리기준값 이내면 별다른 이상은 없다. 그러니 냄새를 맡았다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럼 화학물질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감을 버려야 한다. 유해성은 오감과 일치하지 않는다.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하다곤 할 수 없다. 반대로 먼지가 보인다고, 냄새가 난다고 높은 농도에 노출되거나 건강장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은 사람의 오감으로는 독성의 정도를 알 수 없다. 독성이 있는 물질을 사용한다는 사실만 안다는 것으로 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고, 냄새가 난다고 유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는 법에 정해진 대로 공기 중의 농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작업 방법이나 사용물질이 바뀌거나 작업량이 많아지면 작업환경을 측정해야 한다. 특히 냄새역치가 높은 화학물질은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근로자의 오감에 의존하지 말고 실제 노출되는 농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하는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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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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