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30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1. '저출산 극복' 위한 초당적 협력을 환영한다
국회의 초당적 모임인 ‘어젠다 2050’이 29일 창립총회에서 저출산 극복 의지를 다진 것은 고무적이다. 이 모임은 교육·복지·고용·조세·행정 등 각 분야 미래 입법 과제를 연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김종인·나경원·유승민·김성식·김세연 등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참여한 창립총회의 화두는 단연 ‘저출산 극복’이었다.
“인구가 정상적인 구조가 안 되면 현존하는 모든 제도가 자기 기능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지적대로 저출산 극복은 여야가 따로 없는 시대적 과제다. “국회가 할 일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말대로 이제는 저출산 극복에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대 국회가 나서 저출산 극복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장기간 지속돼야 하는 국회와 정부의 초당적 정책으로 선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저출산 극복에서 지도자들의 위기 의식 부족이 문제로 꼽혀온 게 사실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외치지만 정작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챙기는 우선 정책 목록에도 저출산 극복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위기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 받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적극적인 대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인구 1억 유지’를 정책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 아베 총리는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을 위한 정책을 책임질 ‘1억 총활약상’이라는 장관직을 만들고 직접 챙기고 있다.
정부가 뛰지 않으면 국회라도 나서서 다그쳐야 한다. 초당적으로 국회 저출산특위를 가동해 출산과 육아, 일·가정 양립, 보육 등을 근본적으로 지원할 다양한 입법과 예산지원 활동을 벌여야 한다. 매년 국회 차원의 ‘저출산 극복 백서’를 내놓고 국민에게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 정당 차원에서도 매년 예산의 일정 부분 이상을 인구 유지를 위해 쓰는 등의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20대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데일리]
2. 평창올림픽은 ‘돈 먹는 하마’인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사업 예산을 6000억원 더 늘려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정부부처와 공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증액을 건의했고, 박 대통령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책정된 2조 2000억원의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대회를 잘 치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예산이 자꾸 늘어나게 돼서는 후유증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게 우선의 걱정이다. 아무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다 해도 결과적으로 빚더미 잔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겉으로 남는 듯 보여도 속으로 밑지는 장사라면 굳이 애써 매달릴 필요가 없다. 평창올림픽 예산은 고속철 건설 등 기반시설 예산까지 포함하면 이미 14조원 규모로 확대된 상태다.
대회를 꼼꼼하게 준비할수록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예산이 더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더구나 기존 예산은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출했을 당시 규모로서 이후 종목이 새로 추가되는 등 많은 변수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조만간 제4차 재정계획 수립을 앞두고 이러한 변동 요인을 적용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 조직위원회의 설명이다.
그동안 조직위원회와 강원도는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분산 개최 방안을 뿌리치면서까지 성공적인 대회 준비를 호언해 왔다. 그러고도 지금에 와서 슬그머니 손을 내미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다. 일부 경기장 건설 계획이 혼선을 빚으면서 예산이 쓸데없이 추가로 들어간 것도 문제다. 이러다간 자칫 정부 예산이 울며 겨자 먹기로 평창올림픽의 볼모로 잡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불필요한 예산 집행에 대해 반발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감안해야 하는 것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과도하게 비용을 들여가며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국위 선양을 위해 모든 관심을 기울였던 88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와도 다르다. 이제는 ‘코리아’가 세계 속에 우뚝 선 만큼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내실을 갖춰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3. 소비자 깔보는 폭스바겐 퇴출시켜야
폭스바겐이 그제 미국에서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게 147억 달러(약 17조 4000억원)의 보상금을 물기로 했다고 한다. 당초 알려진 102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금액으로, 미국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같은 배출가스 조작 차종을 판매한 한국에서는 보상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다. 보상은 고사하고 리콜계획도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한국 정부와 소비자를 깔보지 않고서야 감히 있을 수 없는 안하무인 행태다.
문제의 불법조작 차량은 국내에서도 12만 5000대가 팔렸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미국은 1990년대부터 임의설정(배출가스 조작) 금지규정이 있었지만 한국은 2012년 1월에야 시행됐고 해당 차종은 그 이전에 정부 인증을 받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위법 사실이 없으니 보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부의 리콜 요구도 7개월째 깔아뭉개고 있다. 미국에서는 잘못을 시인하고 거액의 보상금을 물기로 하는 등 굽실거리면서 한국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꼴이다.
허술하게 대응해 온 정부 탓이 크다. 환경부는 2011년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적발하고도 당시 규제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늑장 대처했다. 리콜이 일정 시한 내에 이뤄지지 않는데도 제재하지 않고 있는 점도 그렇다. 소비자들도 문제다. 지난해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판매량이 줄어들게 되자 폭스바겐이 꺼내든 것은 리콜이나 보상이 아닌 60개월 무이자 할부 및 현금할인 카드였다. 그러자 판매량이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한국 소비자를 만만하게 볼 만하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폭스바겐은 최근 디젤차에 이어 휘발유차인 골프 1.4TSI도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임원 한 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독일 본사가 배출가스 조작을 직접 지시하고 한국법인은 이를 은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우롱한 파렴치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다시는 한국 시장을 얕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철저한 수사로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한편 미국과 같은 규모로 피해 보상을 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집단 불매운동으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본때를 보이는 방법이다.
[서울신문]
4. ‘경찰관 여고생 성관계’ 경찰청장 책임 못 면해
뒤늦게 드러난 부산 학교전담경찰관들의 여고생 성관계 사건에 부모들은 식은땀이 난다.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대문 밖으로 아이를 내보내는 일 자체가 모험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라고 학교에 투입된 경찰관이 몹쓸 짓을 한 것도 기가 막힌데, 이를 덮으려 쉬쉬한 경찰 조직의 후안무치에 분노가 치솟는다. 늦었지만 대충 넘어가지 못할 일이다. 문제 경찰관이 근무한 연제경찰서의 서장 대기 발령 정도로 꼬리 자를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주 전직 경찰 간부가 페이스북에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덮였을 수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부산지방경찰청은 몰랐던 일이라면서 조사에 나섰다. 이미 지난달 초 아동보호기관에서 사실을 전달받았으면서 시치미를 뗀 것이다. 경찰청도 일찌거니 알고도 뭉갠 정황이 역력하다.
경찰이 본연의 임무를 팽개쳤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경찰관은 음주운전으로 걸려도 윗선까지 즉각 보고되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이런 위중한 사건이 보고 계통을 밟지 않고 문제 경찰관들의 사표만 받고 조용히 마무리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은 그제 때늦은 사과를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스럽다. 뒷북 수습에 나섰으면서 “(본인의) 사퇴를 염두에 둘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니 할 말이 없다. 입에 담기 어려운 사건이 관할 지역에서 두 건이나 동시에 터졌는데, 치안 책임자가 책임 회피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 간부의 인식 수준이 이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어제 국회 업무보고에서 등 떠밀린 대책을 내놓았다.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의원면직 발령을 취소해 퇴직금을 환수하고 책임자들을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악화 여론에 몰리자 어쩔 수 없이 수습에 나서는 것이 경찰청장의 역할인지 딱할 뿐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임기를 두 달 남긴 강 청장이 사건을 묵인했다는 설왕설래가 나도는 판이다. 경찰관들의 처벌만으로 털고 넘어가겠다면 오산이다. 철저한 조사로 책임 소재부터 명백히 가려야 한다. 조직적 은폐 의혹을 벗지 못한다면 부산경찰청장, 강 청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폭력전담관 제도가 제대로 이름값을 하고 있는지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도 하루가 급하다.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보완 대책을 내놓지 않고서는 불신 덩어리의 천덕꾸러기 제도가 될 뿐이다.
5. 망신 자초한 홍기택 휴직, 후속대처 잘하길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지난 27일부터 돌연 6개월 휴직에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홍 부총재는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AIIB 이사회에 구두로 휴직을 알린 데다 지난 25일 AIIB 첫 총회에도 불참했다. 개인 사정으로 휴직할 수는 있지만 홍 부총재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 홍 부총재를 둘러싼 현 상황에 비춰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총회에 참석했다가 진리췬 AIIB 총재에게서 들었다니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AIIB는 올 1월 중국 주도 아래 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국제금융기구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큰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된 탓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사리 참여했다. 우리나라의 분담금은 37억 달러로 57개 회원국 중 중국·인도·러시아·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그런데 홍 부총재는AIIB의 최고위험관리자(CRO)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고도 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휴직해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홍 부총재는 박근혜 정권 인수위원 출신으로 정부 출범과 함께 산은 회장에 오른 ‘낙하산’ 인사다. 회장을 맡는 동안 조선·해운업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미루다 결국 위기를 맞았다는 책임론의 휩싸여 있다. 대우조선의 1조 5000억원 분식회계를 묵인해 주고 4조 2000억원을 신규 지원했다. 대우조선 임직원에게 877억원의 부당 격려금 지급을 허락하는 등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게 감사원의 감사 결과다. 홍 부총재는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들러리 신세”라며 대우조선 지원의 결정을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에 떠넘겼다. 무책임의 전형이다.
홍 부총재의 부적절한 처신은 인사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는 산은 회장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 2월 AIIB 부총재로 영전했다. 당시 감사원의 봐주기 감사에다 정권 실세들의 밀어주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적임자가 아니었던 만큼 추천한 사람들의 책임도 만만찮다. 정부는 후임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막대한 부담금을 내면서 다른 나라에 부총재 자리를 뺏긴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AIIB 부총재에 정치적 고려가 아닌 전문성 있는 인사를 엄선해 더이상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20대 국회 자체 예산부터 다이어트해야 한다
4·13 총선 결과에 따라 3당 체제로 출발한 20대 국회가 초반부터 구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어제 동반 사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의 ‘일가족 채용’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총선에서 참패해 의정 주도권을 잃은 터라 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국회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판국에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비상설특별위원회 신설을 무더기로 남발하면서다. 특권은 내려놓고 민생을 받드는 협치를 하겠다더니 정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여야는 이제부터라도 새 정치를 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벌써 싹수가 노란 정도를 넘어섰다. 초반부터 독과(毒果)를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야권이 연루된 두 가지 비리 의혹은 이를 여하히 처리하느냐가 20대 국회의 개혁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만일 두 야당이 이를 적당히 눙치고 가려 한다면 신악이 구악을 뺨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에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당 안·천 두 대표가 사퇴하고, 서 의원 파문에 대해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중징계를 벼르고 있다니 결자해지 여부를 지켜보려고 한다.
문제는 20대 국회의 퇴행이 더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국회라던 19대 국회의 악폐 중 하나로 ‘묻지마 특위 구성’이 꼽혔었다. 그런데도 그끄저께 여야는 무려 7개의 비상설 국회 특위를 신설하는 데 합의했다. 즉 민생경제·미래일자리·정치발전·지방분권·규제개혁·평창동계올림픽·남북관계 특위 등이다. 백번 양보해 국가 대사를 다루는 평창특위와 정치발전특위는 필요하다고 치더라도 나머지는 기존 상임위나 소위를 통해 얼마든지 현안을 다룰 수 있어 옥상옥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처럼 여야가 ‘셀프 일자리 창출’에 야합한 배경이 뭐겠나. 상임위원장직을 배정받지 못한 다선 의원들에게 막대한 특수활동비를 받는 특위 위원장 감투를 씌워 주고 특위 위원들은 회의 수당을 챙길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기라고 여겼을 법하다.
이러니 총 33개의 비상설 특위가 대부분 헛바퀴를 돌렸던 19대 국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강화도에 휴가철에나 쓰는 연수원이 있는 국회가 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강원도 고성에 제2 연수원을 짓고 있단다. 국민이 명령한 정치 개혁은 않고 특권 챙기기에 몰입하는 꼴이다. 입법부가 이렇게 집단 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으니 세비 880만원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초선 의원까지 나왔지 않겠나. 가뜩이나 조선·해운·철강 등 주력 산업이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선 데다 브렉시트로 인한 국제경제의 불확실성까지 추가되면서 민생 경제는 그야말로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여야가 합작해 견제 장치 부재를 틈타 입법부 예산을 마구 탕진한다면 상처 난 민심에 소금을 뿌리는 일임을 깨닫기 바란다.
[동아일보]
7. 150억 원 쓰고 고작 1건 조사 마친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년 반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한다며 150억 원의 예산을 쓰고도 231개 조사 채택 항목 중 겨우 1건의 보고서를 올렸다. 오늘로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활동 종료 시한을 맞는데도 특조위는 법을 무시하고 활동을 계속하겠다며 하반기 예산으로 104억 원을 청구했다.
이탈리아 콩코르디아호 사고와 미국 9·11테러 조사 등 국내에서 충분히 자료를 구할 수 있어 굳이 해외에 갈 필요가 없는 내용을 알아보겠다고 해외출장 계획을 짰다. 그리고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에게 부여되는 비즈니스 항공권의 요금을 출장자 전원의 수만큼 청구했다. 이런 조직에 시간과 예산을 더 준들 무슨 조사를 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는가.
세월호 특별법 부칙에 나온 특조위의 활동 개시일은 2015년 1월 1일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 원칙이고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연장까지 계산해도 6월 말이 시한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조위는 조직 구성을 마친 날이 지난해 8월 4일이므로 이날부터 1년 반을 계산해 내년 2월 3일 활동이 종료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조위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의 월급을 아예 수령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수령해 놓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야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을 고쳐 특조위 활동 기간을 6개월 연장하려고 한다. 필요한 조치인지는 의문이지만 법을 고쳐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정부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도 세월호 인양이 남은 만큼 7월 이후에도 그 전에 할 수 없었던 선체조사 활동, 종합보고서 작성은 보장할 방침이다. 그런데도 특조위는 막무가내로 비용을 부풀린 예산안을 올렸다. 특조위가 초법적인 기구나 된다는 말인가.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어른들의 구조를 철석같이 믿고 서로를 격려하던 어린 학생들을 떠올리면 2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진정으로 숙연한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식으로 특조위를 운영해선 안 된다. 이런 특조위라면 당장 오늘부로 접는 게 낫다.
[중앙일보]
8. 안철수 사퇴, 정치권 자정의 계기 삼아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가 29일 리베이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하기로 했다. 원내 3당이자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창당 다섯 달 만에 선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가 됐다. 거대 여야의 독과점 정치에 식상한 표심을 파고들어 4·13 총선에서 원내 2위(26.7%)의 지지율과 38석의 의석을 확보한 성과에 비춰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 뒤 두 달도 못 돼 터진 리베이트 사건은 국민의당이 새 정치는커녕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보다 오히려 심하게 구태정치의 관행에 찌들어 있음을 드러냈다. 안 대표는 올 초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부패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하면 해당 정당은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할 수 없도록 하고, 비례대표는 승계를 금지해야 한다”는 등 강도 높은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공감한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준 덕에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약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대표는 막상 자신의 측근들이 비리의혹에 연루되자 침묵으로 일관하고, 당 차원의 진상조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넘어갔다. 리베이트 파문 당사자인 박선숙·김수민 의원에 대해 ‘기소될 경우 당원권 정지’ 결정을 한 게 전부다. 3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당 핵심 간부인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이 구속된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너무나 안이한 대응이다. 사태의 책임이 박선숙·김수민·왕주현 3인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없다. 온정주의에 빠져 이들의 일탈을 막지 않고 오히려 감싼 안 대표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만큼 안 대표의 자진사퇴는 불가피했다. 안 대표가 물러난 만큼 박·김 의원도 사법 조치와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 ‘새 정치’를 내세워 재미를 본 당이라면 가혹하다고 할 정도의 자정(自淨)을 통해 진짜 새 정치가 뭔지 보여줄 의무가 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도 안 대표의 사퇴를 반면교사 삼아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서야 한다. 더민주는 ‘갑질 비리 종합판’이란 비난을 받아온 서영교 의원에 대해 엄정한 감사를 통해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상응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 서 의원 본인이 자진 사퇴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의원직 정지’ 수준의 솜방망이 징계로 넘어가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도 5촌 조카·동서를 의원실에 취직시킨 박인숙 의원을 비롯해 친인척 채용·보좌진 갑질 사례를 샅샅이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안 대표의 사퇴는 20대 국회에서는 과거 ‘관행’이라며 넘어갔던 정치권의 비리와 구태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국회 들어 의원 특권 포기 법률안이 앞다퉈 발의되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불체포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한 건 의원들 스스로도 그런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여야는 국민의당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의 뿌리 깊은 비리관행을 척결하고, 국회가 높아진 민도에 걸맞게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내수진작 위한 `공휴일 특정 요일 지정` 추진해볼 만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현재 날짜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휴일 체계를 요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공휴일 제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하반기 중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휴일제도는 내수와 직결되는 만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다. 현행 날짜 위주의 공휴일은 주중에 휴일이 낄 때가 많아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주말과 겹칠 경우 국민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일부 공휴일을 특정 월요일로 옮겨 사흘 연휴를 만드는 '해피 먼데이' 제도 등이 검토 대상이라고 한다.
미국은 독립기념일(7월 4일), 크리스마스(12월 25일) 등 일부 공휴일을 제외하고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부터 나흘간) 등은 특정 요일로 지정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이때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벌여 소비를 활성화한다. 일본도 내수 촉진을 위해 2000년대 이후 성년의 날, 바다의 날 등 4개 공휴일을 특정 월요일로 변경했다.
물론 우리나라 공휴일은 3·1절, 광복절처럼 날짜에 의미를 두고 지정한 경우가 많아 특정 요일로 변경하면 기념일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날, 현충일, 한글날, 개천절 등은 '○째 ○요일'로 조정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샌드위치 근무일'의 비효율을 줄이고,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풍토를 조성해 기업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토~월요일, 금~일요일 등 사흘 연휴가 생기면 여행, 소비 등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어린이날과 주말인 7~8일 사이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결과 백화점 매출은 16%, 고궁 입장객은 70% 증가해 내수 진작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내수 침체를 고려하면 휴일제 개선뿐 아니라 여름휴가 일정 분산 등도 시도해볼 만하다.
또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면 하루를 더 쉬게 하는 대체휴일제도도 함께 보완해야 한다. 2014년 도입된 대체휴일제는 공무원의 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일반 근로자에게는 강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설날, 추석, 어린이날로 한정해 한계가 있다. 다만 공휴일 합리화 정책이 내수 진작은커녕 해외여행객만 늘리는 역효과를 거두지 않으려면 국내 관광 활성화 등 철저한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세계일보]
10. 의원 특권 내려놓기, ‘서영교 방지법’부터 처리하라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쓴 의원들이 속출하면서 이번에야말로 갑질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가족채용’ 물의를 일으킨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실 5급 비서관에 5촌 조카를 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자신의 당원협의회 사무실에서 회계를 맡던 동서를 인턴 직원으로 채용했다. 박 의원은 어제 공식 사과하며 두 사람을 면직 처리했다. 안호영 더민주 의원도 6촌 동생을 비서관으로 기용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끼리끼리 누려온 특권 관행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혁신비대위 회의를 통해 소속 의원의 8촌 이내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파렴치한 행위’로 기소된 당원에 대해선 입건 즉시 당 윤리위에 회부하도록 윤리규정을 강화했다. 보좌진 급여의 용도 외 사용도 불허된다. 김희옥 비대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 전원에게 공문을 보내 비대위 결정의 조속한 이행을 당부했다. “비정상적 관행이 드러나면 당 차원의 강력한 징계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새누리당이 그동안 더민주 비난에 열을 올린 건 누워서 침 뱉은 꼴이 됐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같은 잣대로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이나 박인숙 의원의 문제를 처리해 달라”고 압박했다. 이 의원은 보좌진 월급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의원 갑질에 대한 공분과 불만이 고조되는 만큼 야당도 여당을 따라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문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은 17대 국회 때부터 빠지지 않고 제출됐다. 17대 노현송 열린우리당, 18대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19대에는 박남춘·배재정 더민주,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 세 건이 제출됐다. 그러나 19대까지 모두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채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20대에는 백혜련 더민주 의원이 친인척 보좌진 채용 시 국회에 신고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19대에서 요란만 떨다 공수표로 끝난 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20대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서영교 방지법’ 처리가 그 첫걸음이다. 여야가 입으로만 하는 국회 개혁엔 신물이 난다.
주요 신문칼럼
1. [우리를 신문][문화마당]살인하지 말라/김재원 KBS 아나운서
죽음은 무척 불편한 단어다. 인류 모두가 결국은 맞이하는 삶의 마무리라는 당연성에 비하면 그 불편함은 너무 크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수용이냐, 명심이냐, 억압이냐에 따라 그 수위는 달라진다. 그래도 언제인지 모르고, 어떻게 올지 모르고, 그 이후를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언컨대 없는 이는 없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할머니는 그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물론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내가 열세 살 때 돌아가셨다. 아파트 8층에서 곤돌라에 매달려 내려오던 어머니의 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세 살 때 돌아가셨다. 그때 비로소 형제 없는 나는 고아가 됐다. 물론 아내와 아들은 있다. ‘가족’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상관없는 듯 보여도 서로 어우러지면 묘한 슬픔을 가져온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나는 철이 일찍 들었을 수도, 인생을 먼저 알았을 수도 있다.
지난달 ‘가족의 죽음’을 다룬 영화와 책을 같은 날 봤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다. 그날 나는 참 불편했다. 영화는 귀신 들린 딸을 살리려는 부성애를, 책은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애가 바탕이다. 영화는 딸이 귀신의 힘으로 식구를 죽이고, 책은 아들이 포식자란 유전자의 힘으로 가족을 죽인다. 영화는 악마의 존재를 빌미로 혼란에 빠뜨리고 책은 유전자의 비밀을 핑계로 의문에 빠뜨린다. 두 작품은 “왜 하필 내 아이가?”란 대사를 공유한다. 작가가 악을 편든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여러 논란을 차치하고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영화나 책 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로 스며들어 뉴스에서도 펼쳐진다는 것이다. 어떤 시사 프로그램은 매주 살인의 방정식을 자세히 풀어낸다. 물론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숱한 살인을 저질러 왔다. 하지만 살인은 신도, 법도, 도덕조차도 인간에게 부여한 적이 없는 권리다. 오로지 작가들만 자신이 신으로 있는 영화, 드라마, 책에서 주인공에게 살인의 권리를 부여한다. 물론 고전에서도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 자기 아이를 살해하는 엄마가 등장하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 현대의 작가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나쁜 친구와 놀지 말라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나쁜 행동이 자연스럽게 여겨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살인은 절대로 안 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르의 예술에서 개연성과 핍진성을 높이다 보니 현실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는 그 공포에 둔감해졌다. 오히려 독자와 관객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곡성’에서 느끼는 강한 흥분도, 혹은 심각한 불편함도 관객의 무의식에서는 살인이 원인이다.
여전히 적잖은 독자가 정유정 작가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궁금해하고, 많은 관객이 나홍진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해한다. 예방주사로 여겨 달라는 작가의 말도, 영화는 영화로 봐 달라는 감독의 말도 미덥지만은 않다. 만 명에게 예방주사가 됐다 해도 한 명에게 교과서가 됐다면 그 주사는 의미 없다. 백만 명이 재밌는 영화로 봤다 해도 현실에 반영하는 우매한 관객 한 명이 있다면 그 재미는 끔찍해진다. 작가들이여, 제발 살인하지 말라. 적어도 가족은 죽이지 말자.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이 없어진 지 오랜데, 왜 살인 장면은 사라지지 않을까? 흡연은 따라할까 걱정하면서 살인은 절대 따라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즐거운 동행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리던 음식점에 갔더니 주인이 반색을 한다. 6월 28일에 문을 닫게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사동의 한옥에서 14년 동안 ‘해인’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한 그녀는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며 “다만 더이상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주인이 교양 있고 음식도 정갈하여 수시로 들락거린 터라 내 마음도 허전했다.
아무리 10년 넘게 주인과 손님 이상의 교감을 나누었어도 앞으로 따로 만날 일이 없으니 ‘정말 모든 것에는 끝이 있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쓸쓸했다. 그런데 그녀가 선물이라며 된장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 항아리를 내밀었다. 유난히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맛있게 끓이는 비법까지 일러주었다. 그러나 식당의 맛을 내기는 어려울 테고 아마 오래도록 그 맛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누구와 어떤 형태로든 이별은 항상 섭섭하다. 그렇지만 세상일에 끝이 없다면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고달픔을 감내해야 하니 한편으로 마지막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오늘로써 3년 6개월, 181회에 이른 ‘따뜻한 동행’이 독자들과 작별한다. 이 또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무사히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이 겪은 따뜻한 이야기를 아주 쉽게 쓰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그런데 쓰다 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만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즐겁고 훈훈한 이야기만 내놓기가 미안할 정도로 현실은 너무 각박하고 황폐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주는 것보다 그 비를 흠뻑 같이 맞아주는 게 더 위로가 된다는 것, 손쉽게 말하는 희망이 자칫 절망에 빠진 사람을 오히려 더 절망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인사로 ‘희망’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절망을 헤치고 나올 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목요일마다 즐겁게 동행해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박노해 시인의 시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3. [중앙일보][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버스킹에서 느끼는 삶의 여유와 행복
여름이 오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 곳곳에는 파라솔이 등장한다. 서울 한강공원은 텐트와 자전거로 가득 찬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버스커들의 재등장이다. 아직 주목도, 인정도 받지 못하는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곡을 연주한다. 따뜻한 여름밤의 공기에 아름다움과 감성의 색을 입혀 주는 일이다. 한국에선 아직 흔하지 않다. 하지만 청계천이나 홍익대·대학로 같은 대학 주변,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멋진 곳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젊음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아 준다.
아마추어 음악가의 야외 공연인 ‘버스킹’은 여러 도시에 존재하지만 세계적 중심지는 미국 뉴욕이다. 센트럴파크, 워싱턴 스퀘어파크, 유니언 스퀘어 같은 광장이나 공원에선 버스커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이들은 보도나 길모퉁이에서 연주한다. 지하철역과 전동차 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사실 지하철 공연을 원하는 버스커는 아주 많다. 매년 시 교통 당국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뽑힌 사람들만 공연할 수 있다.버스커는 뉴욕시민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도 서울만큼 바쁜 도시다. 정식 음악 공연을 볼 여유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서류가방을 꼭 붙든 채 바쁘게 움직이는 변호사라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역에서 공연하는 버스커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버스커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주변에는 관광객이 춤을 추고, 어느 젊은 커플과 학생들은 손뼉을 치고 있을 것이다. 정장 차림의 몇몇 회사원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어떤 노인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버스킹을 즐긴다.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버스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한다.
얼마 전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정장 차림으로 일터에서 집으로 바쁘게 돌아오다 안국동 풍문여고 뒤편 나무들이 늘어선 곳에서 기타를 치는 버스커 앞을 지나가게 됐다. 빠듯한 일정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여러 일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오랜만에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을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분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버스커들을 더 많이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거리를 지나는 더 많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버스커들의 음악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제충만]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나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고 인권의식이 투철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동권리나 인권을 배운 적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아이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영국 어학연수 때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자주 보았는데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태어나는 비율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 싶어 검색까지 해봤다. 나중에야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잘되어서 그렇다는 걸 알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이쪽 업계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라는 걸 알게 돼서 면접 전날 벼락치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앉아 있으니 매일매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신입 직원일 때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서도 조목조목 따지려고 달려들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얼굴을 꽁꽁 싸매고 싶다. 나 스스로도 수긍이 가야 일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성격 탓에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씨름했던 문제가 바로 체벌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체벌을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보고 근절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나부터가 당시에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인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은 확 바뀌었다.
체벌 근절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크게 싸우고 난 뒤 홧김에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해야 교육이 되겠지’라는 심정이었지만 그 이후로 딸과의 대화가 사라져 며칠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딸에게 “진심으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때린 일을 사과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후 딸의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거다. 나는 딸을 바꾼 것은 손찌검이 아니라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것을 대화 가운데 느낄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 경험도 매를 통해 배운 것은 없고, 부모님의 애달픈 마음과 눈물이 날 바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적에는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단한 여성운동의 결과 지금은 맞는 여성이 많이 줄었다며 “아이들이 잘못하면 어른에게 맞는 모습이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먼 훗날에는 무척 낯선 풍경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날이 오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지 못하던 나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지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람과 동물 사이에 위치하는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대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육아예능을 보며 아이들을 강아지 보듯 귀여워만 한다거나, 카페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부모가 때려서라도 좀 조용히 시켜야 한다거나, 다 내쫓아 버리자는 이야기가 어딘가 무척 불편하다. 아이가 어른보다 분명 몸집이 작고 연약하지만 아이도 온전한 사람으로 누려야 할 권리까지 작은 것은 아닐 텐데, 아이의 작은 몸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난 아직 멀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방향은 좀 바뀐 거 같다. 바뀐 방향으로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딘가 도달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방향을 바꾸게 된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 [중앙보일][분수대] 일송정 푸른 솔
“와, 여기는 바람부터 다르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지난 28일 오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산정(山頂)에 오른 대학생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가 한 아름에 들어오는 일송정(一松亭)에서다. 정자 아래로 초록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가곡 ‘선구자’의 첫 대목을 불러젖혔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혜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일송정은 옌볜(延邊)을 찾은 한국인들의 필답 코스 중 하나다. 조국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간도(間島)로 건너온 조상들의 땀이 서려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애국지사들의 피가 맺힌 곳이다. 그 한스러운 세월을 품어 온 혜란강 줄기가 푸른 들판을 굽이굽이 적시고 있었다. 그 역사의 한복판을 대학생 40명과 함께 올랐다. 독립기념관이 주최한 ‘2016 대학생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코스의 일부였다.
비금산 정상 일송정에서 내려다본 룽징시는 고즈넉했다. 100여 년 전의 설움과 고통은 먼 옛날의 일처럼 보였다. 거리의 간판에는 한글이 쓰여 있고, 지나가는 많은 이가 우리말을 쓰고 있었다. 현재 룽징시 인구 26만 명 가운데 60%가 조선족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아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룽징 주변 옌지(延吉)와 허룽(和龍) 일대에선 일본군을 섬멸한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빛난 승리도 있었지만 이후 불어닥친 일제의 보복과 학살로 수많은 조선인이 쓰러져 간 비극의 현장이었다.
만감이 뒤섞였다. 그럼에도 룽징은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혜란강과 이웃한 드넓은 평야가 그걸 입증했다. 중국 청나라 수립 후 200여 년간 방치됐던 지역을 기름진 논으로 뒤바꾼 주인공이 바로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처음 알았다. 우리 아버지·어머니들은 강가 습지의 나무 뿌리를 일일이 캐 가며 옥토를 일궈냈다. 시인 윤동주가 공부한 명동학교 등 많은 학교를 세우며 미래도 기약했다.
일송정 푸른 솔이 묻는 듯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답사에 참여했던 대학생 하나가 입을 열었다. “헬조선, 헬조선 했는데 진짜 헬조선이 이곳에 있었네요. 우리의 숙제는 결국 통일이겠죠. 그게 독립투사들에 대한 응답일 테고요.” 1908년 명동학교를 설립한 김약연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고. 한 세기 전만큼이나 여전히 앞이 캄캄한 시대, 그럴 때일수록 선구자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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