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AIIB 부총재 날린 홍기택 파문 책임 엄히 물어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인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직위가 부총재에서 국장급으로 격하됐다. 홍기택 부총재가 돌연 휴직계를 내고 잠적한 지 14일 만이다. AIIB는 대신 국장급이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총재급으로 격상시켜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결국 한국이 4조 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고 어렵게 확보한 자리만 허무하게 날린 셈이 됐다. AIIB는 후임자 자격 요건으로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고 하니 국가적 망신까지 산 꼴이 됐다.
이
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홍 부총재의 부적절한 처신에 있다. 그는 지난 2월까지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을 맡았다.
대우조선의 부실을 키우는 데 누구보다 책임이 크다. 특히 5조 4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조선의 회계 부정을 감독하는 역할을 소홀히
했다. 홍씨가 회계 부정을 알면서도 눈감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홍 부총재는 서별관회의를 폭로하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책임을 정부와 청와대에 돌려 파문을 불렀다. 또 지난달에는 휴직계를 제출하고 AIIB 연차 총회에 불참했고, 결국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 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검찰이든 감사원이든 그를 불러 철저히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무
능하고 무책임한 인물에게 중책을 맡긴 청와대와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홍 부총재는 금융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학자
출신이다. 산은 회장 선임 때부터 뒷말이 적지 않았다. 복잡한 산은 회장 업무를 맡기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까지
불거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그가 소신과 책임의식을 갖고 산업은행을 이끌었다면 대우조선의 부실이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홍씨에 대해 대우조선 부실 문제만으로도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외려 지난 2월 그를 AIIB
부총재로 추천해 사실상 영전을 시켜 줬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소신마저 없는 인물에게 무리하게 중책을 맡긴 셈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정부에 만연한 낙하산 인사가 국제적으로까지 확대돼 망신을 산 경우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고 했다.
무자격자를 아무 데나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국제 망신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2. ‘전쟁 가능한’ 일본과 아베를 경계한다
일
본 아베 신조 총리가 평생의 숙원으로 여겨 온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개헌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 여당을 포함한 개헌 지지 4개당과 무소속이 전체 242석 가운데 165석을 차지해 개헌에
필요한 3분의2석을 넘어섰다. 개헌 세력의 압승이다. 아베 총리는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해 의회의 개헌 발의
요건인 3분의2 의석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로써 전쟁·교전권·군대 보유를 포기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걸림돌은 사실상 제거됐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개헌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의 결과는
아베 총리의 신임이다.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집약되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나 마찬가지다. 자민당은 경기·고용을 최우선 공약으로 앞세운 반면 개헌의 쟁점화를 피했다. 자민당의
전략은 브렉시트를 비롯한 불안한 경제 현실 아래 10~20대 유권자에게까지 먹혀들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등과 아베노믹스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단일 후보까지 내세웠지만 수권 정당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 당일 “국회 헌법심사회가 개헌 논의를 심화시켜 조문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될 것”이라며
개헌의 고삐를 당길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제정된 후 70년 동안 자구 하나도 고쳐지지 않은 까닭에 ‘불마(不磨)의
대전(大典)’으로 불리는 평화 헌법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는 거칠 것이 없다. 참의원, 중의원에서 개헌
발의를 위한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데다 당규를 고쳐 연임을 노려도 대항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표현대로
‘개헌 저지의 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선거’를 보는 한국으로서는 착잡하다. 일본이 시나리오처럼 우경화의 길로 가고 있어서다. 아베
총리가 2014년 7월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토록 결정한 데다 이듬해 4월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고쳐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한국과의 과거사, 위안부,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침략의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밀어붙인다면 동북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 전체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다. 우리가 철저히 경계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3. 中, 북핵 방어 수단인 사드 반대해선 안 돼
우
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동북아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다투는 중국이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한반도 방어 수요를 초월한 것”이라고 비판한 데서 중국의 심기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적 안보수단’이라는 우리 정부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그동안 유엔의 대북 제재에
자신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앞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온적인 대북 제재, 사드에 대응하는 안보체제 구축, 양국 간 교역 제한, 관광 제한 등 경제적인 분야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필요한 조치 운운하기 전에 먼저 한반도 사드 배치에 중국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네 차례의 핵실험과 여섯 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동안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남중국해 군사기지 건설과 관련해 미국의 반대 입장 표명 요구에도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 해결’을 해야 한다며 중국 측 입장을 고려해 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중 수교 당시 한국은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교를
선언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것도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 교류에 비하면 사드 배치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고, 우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에 가입했다. 한·중 인적 교류는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섰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 됐으며 한국은 중국의 제3대
무역국이다. 지난해 한·중 무역 규모는 2274억 달러로 한·미와 한·일 무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사드 배치 문제로 두
나라의 관계에 틈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드는 순수 방어 목적의
조치이며 제3국을 겨냥하거나 제3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불쾌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중국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과 함께 남남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 사드가 배치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정치권도 사드 배치의 문제점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등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4. 공정위 과징금 남발, ‘공피아’ 몸값 올리기 위해선가
공
정거래위원회가 가격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기업에 과징금을 물렸다가 소송에서 지거나 직권 취소해 물어준 환급액이 지난해
3572억 원으로 전년(2518억 원)보다 41.9%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당초 6532억 원의 과징금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절반 정도인 3284억 원을 걷는 데 그쳐 국고 예측에 혼란이 생기는 상황이다. 여기에 소송비용만 29억
원에다 공정위가 뒤늦게 과징금을 돌려주는 바람에 생긴 이자(가산금)까지 373억 원이 더 들어갔다.
2012년
130억 원이었던 과징금 환급액이 3년 만에 27배로 급증한 것은 대규모 과징금 소송에서 패할 만큼 애초 무리하게 과징금 부과를
남발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행정적 판단과 법률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해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죽하면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5회계연도 결산분석 보고서에서 “과징금 부과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꼬집었겠는가. 공정위가 일단 거액의
과징금을 때리고 보자는 식으로 행정처분을 했다가 법원에 가서 패소해 돌려주는 일이 반복되면 행정의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공
정위 과징금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전관(前官)예우와 무관한지도 의문이다. 지난 5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4급(서기관) 이상 공정위 퇴직자 20명 중 13명이 대기업에, 4명이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관가나 재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공무원들이 무리하게 과징금을 물리면, 로펌이나 대기업에 몸담고 있는 ‘공피아’들이 현직 시절의 경험을 살려 법률적 허점을 찾아내
몸값을 올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4·13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한 야당들이 약진하면서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권한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지금까지 보인 행태나 실력으로는 기업의 경쟁 촉진과 공정거래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 같지가 않다. 자칫 관료들의 힘만 키우고 기업을 옥죄는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5. 헌법정신 비웃고 교육정책 신뢰도 추락시킨 나향욱
‘민
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출석 여부를 놓고 어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중단됐다
속개되는 파행이 벌어졌다. 오전에 불출석했던 나 기획관은 의원들의 거센 요구로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급하게 서울로 돌아와 “영화에
나온 말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과음과 과로 상태였다”는 변명을 붙인 것을 보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고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며 사과하고 엄중한 조치를
다짐했다. 이 정도로 국민적 공분(公憤)이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나 기획관의 발언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도 모르는 망발이다. 여야 의원들도 일제히 나 기획관의 파면과
해임을 포함한 중징계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개돼지 취급받은 국민들의 심정은 어떡하냐”면서 “나 기획관 발언은
반(反)헌법적, 반교육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이장우 의원도 “여야가 엄중하게 고위 공직자 처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기획관은 대학구조개편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핵심 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요직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일수록 교육공무원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을 교육정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교육부
고위 공직자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했다니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들고 공무원의 자질과 인성까지 의심케 한다.
최
근 국가장학금 수조 원을 관리하는 한국장학재단(차관급) 안양옥 이사장이 “빚이 있어야 학생들이 파이팅을 한다”는 발언으로 분노를
샀다. 막대한 교육예산을 쥐고 있는 교육공무원들이 평소 얼마나 교육계와 국민을 깔보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꼬리를 무는 것인가.
현재 인터넷에서는 “나도 개돼지다”라며 나 기획관 파면요구 서명이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은 흙수저 금수저를 들먹이며 가슴을 친다. 이런 시기에 나온 나 기획관의 폭언은 우리 사회의 안정을 뒤흔들 만큼
인화성이 높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고, 교육현장에서 군림하며 갑질을 해온 교육부 공무원들의 자질을 높일 획기적 방안을 내놓을
자신이 없다면 이 부총리도 책임을 져야 한다.
[세계일보]
6.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이 초당 협력할 때다
한·미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북한과 중국이 반발하면서 동북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어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포병국
‘중대경고’를 통해 “사드 위치와 장소가 확정되는 그 시각부터 그를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우리의 물리적 대응조치가 실행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 9일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아 올렸다.
중
국의 반발 강도도 세지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방어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며 “그 어떤 변명도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중국의 전략적 안전을 엄중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중국은 분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스스로의 안전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보복을 시사했다. 중국이 실제 보복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대비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중국 보복을 우려해 사드 결정을 반대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박근
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대한민국 미래와 국민의 생존이 걸린 아주 중요한 절체절명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하나로 단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각오를 피력하고 국민 협력을 요청한 것은 사드 배치 결정을 놓고 내부 갈등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드 후보지로
경북 성주와 경남 양산 등이 추가되면서 지역 반발이 거세지는 우려스러운 사태를 맞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내린
결정을 놓고 국내외에서 반발하고 있는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비상 시국이다. 그럼에도 초당적
협력은커녕 여야로 갈려 정쟁을 벌이며 되레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은 한심스럽다. 야당은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데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며 비판적 입장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사드 배치가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쟁점화를 시도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야권조차도 균열 양상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사드 결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거론하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국민투표할 대상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사드 배치는 국익 차원에서 결정한 불가피한 선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권이 논란 확산에 앞장서는 건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책임한 처사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때다.
[이데일리]
7. 풀어지는 공직사회, 임기말 현상인가
윤
병세 외교부장관이 사드 국내 배치가 발표되던 지난 8일 당시의 백화점 출입 질타에 대해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 어제 국회 외통위
의원들로부터 이에 대한 지적을 받고 “오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대국민 사과 의사가 없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공인은 행동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수준의 답변에 그쳤다. 그야말로 외교적인 답변일 뿐이다.
윤
장관의 바쁜 일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번 주 국회 일정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셈정상회의 참석 수행을 앞두고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백화점 출입시간 선택은 잘못됐다. 사드 배치 발표와 동시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외교 상대국들로부터 관련 성명이 쏟아지리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외교수장으로서 쇼핑이나 즐기는 듯한 한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히 문제다.
비단 윤 장관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고위 공직사회의 근무 분위기가 풀어지는 게 아니냐는 데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이 국무회의 석상에서는 박 대통령의
얘기를 일일이 받아 적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소관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소신도 없고 지리멸렬한 상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경제 정책이
혼선을 빚는 가운데 속도를 내지 못하는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등어와 삼겹살에까지 눈총을 돌렸던 환경부의 미세먼지 정책이나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브랜드 사태가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에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맡았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까지 순식간에 날리게 된 것이다.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
가를 움직이는 것은 역시 공직사회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모든 과정이 공직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이 조만간 개각을
추진한다는 전망이니만큼 풀어지는 공직 기강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개각 폭에 제한이 따르겠지만 소신없고
무책임한 사람들만큼은 걸러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중앙일보]
8. 증오 아닌 사랑 필요한 미국의 흑백 갈등
백
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살해에서 비롯된 미국의 흑백 갈등이 심상치 않다. 흑인들이 백인 경찰관을 저격하는 매복형 총격 사건이
잇따르고, 항의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2014년 ‘퍼거슨 사태’ 이후 흑인 시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던 미 경찰도 강경진압으로
돌아서려는 태도다.
자칫 1919년 시카고에서 발생해 미 전역 25개 도시로 번져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숨졌던
미국 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 사건, ‘붉은 여름’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흑백 갈등을 넘어 자유주의 대
보수주의로 미국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방문 일정을 축소하고 서둘러 귀국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양쪽에
자제를 촉구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이번 사태는 모든 사회 갈등은
증오 바이러스를 내포하고 있으며 초기 대응을 잘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증오의 창궐 사태를 맞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당초 흑인에게 우호적이었던 미국 여론은 경찰 저격 사건 등 과격행동에 나뉘었다. 3년 가까이 계속되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
운동에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백인 보수층은 이제 “백인 경찰은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이 문제”라는 주장을 자신
있게 공론화하고 있다. 정당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흑인들은 그들대로 “저격 살해는 잘못이지만 원인 제공은 백인 경찰이 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렇게 갈등의 악순환은 더욱 가팔라지고 미국 사회는 ‘흑백 내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티핑
포인트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회는 “증오를 넘어 사랑을,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보라”는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원더의 말처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사랑이자 희망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 제반의 현안에 대해 툭하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다.
[매일경제]
9. 광복절 특사 국민 통합과 경제위기 극복 계기 돼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광복절 특별사면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뜻을 밝혔는데 특별사면이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번 정부 들어 사면은 2014년 설 직전과 지난해 광복 70주년에 이어 세 번째다. 박 대통령은 사면이 사회 정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발하지 않겠다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때문에 수시로 사면을 단행했던 역대 정권에 비해
횟수가 적었고, 대상도 엄격하게 제한했다. 두 차례에 걸친 사면에서도 생계형 사범 위주였고, 정치인과 공직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인도 형기를 대부분 채우거나 죄질 등을 따져 대상을 선정했는데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도 이런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와 환율 전쟁,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과 최악의 청년 실업,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적으로도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었고, 북핵을 둘러싼 외교·안보 분야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가 올 수 있다. 그런 만큼 국민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가 역량을
결집한다는 취지에서 특별사면은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 삶의
무게가 무거워 희망의 전기가 필요한 시기"라며 사면을 결정한 배경을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사면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비리와 불법을 저지른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국민 화합은커녕 국론
분열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해 정부도 지난 사면 때와 마찬가지로 민생에 초점을 맞춰 서민과 영세사업자, 중소기업인
등 생계형 사범 위주로 대상을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시기다. 국난을 극복하고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면 좀 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정부는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범위 안에서 사면 대상을
선정하되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취지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 금융 CEO 공모 큰 장, 무능한 낙하산 철저히 걸러라
다음달부터 내년 초까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공모가 줄을 잇는다. 신용보증기금과 한국거래소(9월), 예탁결제원과 자산관리공사(11월),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12월), 기술보증기금(내년 1월), 수출입은행(내년 3월) 수장들 임기가 끝나면서 대폭적인 CEO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정부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금융공기업 영역에 있다. 그래서 정권 말기에 금융권에 또다시 낙하산 인사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마지막이 될 CEO 공모의 큰 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사들은 벌써 관계 요로와 정치권 실세에 열심히 줄을 대고 있다고 한다.
낙
하산 인사는 한국 금융의 고질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선 캠프나 권력 주변 인물들이 금융권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눈을 씻고
봐도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총선 낙천·낙선 인사들까지 요직을 꿰차는 일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여기에 퇴직 관료들까지
뒤엉켜 자리다툼을 벌이니 정작 금융 전문가들은 설 자리가 없다.
'홍기택 사태'는 낙하산 인사가 얼마나 큰 참사를 부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국책은행 수장으로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실패했고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핵심 요직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다
른 금융공기업의 비효율과 전략적 실패 사례도 부지기수다. 보이지 않는 손이 무능한 낙하산 인사를 계속해서 내려보내는 한 한국
금융은 제때 기업 부실을 도려낼 수도,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보일 수도 없을 것이다. 낙하산을 매개로 한 권치와 관치의 폐해는
한국 금융을 고사시킬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그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우선 다음달부터 시작될 금융공기업 CEO 공모 때부터 무능한 낙하산 인사를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 무늬만 공모가 아니라 가장 투명한 절차와 치밀한 검증을 거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
거수기가 아닌 독립적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그 첫걸음이다. 출신보다 전문성과 개혁적 리더십을 중요하게 봐야 하며 성과가 좋으면 연임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죽음의 레이디 파블리첸코
2
차대전 소련 붉은 군대의 약 8%(100만 명)는 여군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다른 연합군과 달리 후방 지원병과가 아닌 보병 등
전투병으로 전선에 투입됐다. 여군 저격수만 2,000여 명에 달했고, 나치 병사 1만1,280명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Lyudmila Pavlichenko)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키
에프대학 역사학도 파블리첸코는 1941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보병으로 자원 입대, 소련군 25사단에 배속돼 저격 훈련을
받았다. 입대 전 그는 키에프 사격클럽 회원으로 총을 다룬 이력이 있었다. 그는 3.5배율 조준경을 장착한 토카레브 SVT-40 반자동 소총으로 오데사 전투에 투입돼 약 두 달 반 동안 무려 187명을 사살한 뒤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 전투에 가담했다.
저
격병은 전투에서 적의 핵심 화력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아군을 적 저격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42년 6월 박격포에 부상을
당해 전선을 떠날 때까지 그는 소련군 공식 집계로 309명을 저격했고, 그 중 36명이 적의 저격병이었다. 그는 ‘죽음의 숙녀 Lady Death’라 불렸지만, 뭇 아군의 생명을 지킨 구원의 천사이기도 했다.
전
시 연합군은 전쟁 영웅들을 대중 앞에 세워 사기를 돋우고 참전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기곤 했다. 국제적 영웅이던 파블리첸코는
캐나다와 미국 영국 등지에 초대받아 대중 강연 등을 했고, 백악관에 초대받아 루스벨트와 그의 부인을 예방하기도 했다.
워싱턴D,C에서 한 기자가 그의 스커트 길이를 문제 삼으며 “미국 여성들은 더 짧은 스커트를 입는데 당신 스커트는 너무 길어
뚱뚱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카고 연설에서 그는 저 ‘희롱’에 반박하듯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25살인 저는
지금까지 309명의 파시스트 군인을 사살했습니다. 당신들은 저의 등 뒤에 너무 오래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파
블리첸코는 43년 소련 영웅금성훈장을 탔고 소령 예편 전까지 저격 교관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 학위를 받은 뒤로는 사학자로
일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세르게이 모크리츠키 감독의 영화 ‘1941: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이 지난해 개봉됐다. 1916년 7월
12일 태어나 74년 10월 10일 별세했다. 향년 58세.
2. [머니투데이][광화문]'밥 안먹는' 대한민국
"야 이 눔아, 한국사람은 밥 먹어야 힘쓰는 거여""누가 그래요? 시간도 없고 밥 맛도 없어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얼른 한 숟가락 들고 나가. 밥 먹어야 힘도나고, 머리도 좋아지는 거여. 어여"
학
생을 둔 가정이라면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은 다반사일 듯 싶다. 쌀 소비가 줄어든 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 그 추세는
속도를 더 하는 것 같다. 집집마다 쌀 씻는 소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대신 빵이나 과일 또는 즉석식품이 메뉴를 대신해 버렸다.
모
두가 식생활 습관이 바뀌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실제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족'이 증가하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 등 간편식의 성장세는 두드러 진다. 반대로 쌀소비는 몇 년째 곤두박질 치고 있다.
쌀소비가 30년전과 비교할 때 '반토막' 난 지 오래고, 하루에 밥 2공기도 먹지않는 대한민국 가정이 허다하다.
이같은 추세는 넘쳐나는 쌀을 저장하는 정부 양곡창고 안을 들여다보면 더 두드러진다. 지난 5월말 기준으로 쌀 재고량은 174만4000톤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 133만7000톤보다 더 늘어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 수준이 80만톤이니 이미 정상수치를 벗어난 지는 한참이 지났다. 그동안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기로 한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도 계속 증가세다.
이
에 반해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 해 국민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g이다. 밥 한 공기에 쌀이
100~120g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하루 소비량이 공기밥 두 그릇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1985년 무렵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28.1kg 이었지만, 지난 해에는 62.9kg을 기록하면서 쌀 소비량은 30여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문
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넘쳐나는 쌀 재고량을 소비할 만한 출구가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몇 년째 이어진 풍년으로 물량은 시장에
넘쳐나고 있지만 쌀 재고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농부가 흘린 '땀의 결실'이 되어야 할 쌀가격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들어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80kg기준 14만3892원으로 작년 같은기간 15만8472원보다 1만4580원 떨어졌다.
정말 이런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쌀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농업의 뿌리는 내부로부터 위협받게될 지도 모른다.
정
부도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작년 말 '쌀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장반응은 그리 탐탁치 않은 것 같다. 농식품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은 보이지만 생산조정제 등 정부대책이 수년 째 반복되는 '재탕''삼탕' 정책들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 농가에서는 정부대책중 하나였던 '묵은 쌀 배합사료 원료용
판매'와 관련, "쌀을 이용해 만든 배합사료를 사용했더니 오히려 산란률이 떨어졌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 농민은 "오리, 닭의
경우 주로 옥수수 등을 섞어 사료로 제공해 왔는 데 갑자기 쌀을 섞다보니 사료성분 변화에 민감한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요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탈
퇴 결정)로 인한 국제 금융시장 불안도 심각한 문제지만, 쌀 소비량이 줄면서 우리 농업은 이제 생존위기까지 걱정하는 급박한 처지가
됐다. 위기상황은 농업·농촌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마찬가지다. 경영난으로 자립기반을 상실한 농업인들이 속출하게 된다면
농식품부의 존재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정말 식량문제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이슈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밥먹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려는 결사항전의 각오를 보고 싶다.
3. [중앙일보][삶의 향기] 여름의 추억
이
제는 완연한 더위의 터널로 진입한다. 다른 길은 없다. 들어간 이상 터널의 출구를 향해 끝까지 나가야 한다. 추운 겨울이면 더운
계절의 가벼운 옷차림이 그립고, 막상 뜨거운 여름이 되니 목까지 감싸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을 때의 싸늘한 대기가 그립다.
직
장이 정해지면서 아파트 생활에 접어든 지 4년차다. 유학생활 9년을 빼고 30년간을 나는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흙을 밟고 살았던
셈이다. 도심의 소음으로 신경쇠약에 걸리신 아버지 탓에 우리 가족은 일찍 전원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한 시간에 버스 한
대가 다니는 서울 인근의 그린벨트 생활에 주변 분들은 많이 염려했지만, 초등학생인 나에게 전원생활은 보물섬과 같이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차산 기슭, 개울 앞에 자리한 그 집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꽁꽁 숨겨온 탐험 소질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계절이 여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개울로 나가 놀기에 급하다. 기르던 개와 동생까지
덩달아 뛰어나왔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스승 삼아 노는 우리에게 여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
여름방학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널찍한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저녁상을
물리면 이웃들도 하나둘 건너왔다.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여름밤의 높고 검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 밑의 가로등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의 그림 같았다. 그 깊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선명한 노란 가로등 아래서 우리 또래들은 ‘다방구’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다. 그 재미나고 흥분되는 몰입의 순간은 누군가 넘어지거나 큰 울음이 터져야 비로소 흥이 깨졌다. 평상
위에서 어른들이 나누던 대화는 어린 우리에게는 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그 시절 우린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구미호’와 ‘거꾸로 떨어져 죽은 여중생’ ‘홍콩할매 귀신’ 같은 으스스한 괴담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다. 그런 날이면 두려움에 떨며 학교 화장실도 함께 모여 가야 했고, 깊은 밤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오싹함이 여름밤을 더욱 절정으로 몰아갔다.
여름의 보물은 숲에 숨어 있었다. 숲속의 짐승들과
곤충들의 몸짓 소리,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온몸으로 울어대는 소리가 나무들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매미는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라는 데 7년의 긴 시간이 걸린다는데, 단 7일 만에 막을 내리는 매미의 세레나데는 그래서 더 절절하다. 아무리 도시
매미가 시끄럽다지만 그리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가 없는 여름은 지루하고 싱거울 것 같다.
오래전 동네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에어컨과 선풍기에 둘러싸여 지내며 카디건을 두르거나 냉방병을 걱정한다. 더위에 아랑곳 않고 생기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은 세월의 먼지에 쌓여 빛바래져 버렸다.
얼
마 전 막내 아들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릴 적 우리는 지루한 오후를 기다린 끝에야 간신히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말괄량이 삐삐’는 방송사 측의 사정인지 몇 번의 재방송을 거듭하고도 결말을 보여주지 않아 무척
상심했었다. 이에 비해 요즘은 여러 채널에서 아예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금은 인터넷만
간단히 검색해도 프로그램의 결말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무작정 목을 빼고 텔레비전 방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 그 간절한 궁금증은 지금의 편리함과 바꾸기 싫을 만큼 아련한 기다림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나의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맞이했던 축제 같은 여름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까.
뻘뻘 땀을 흘리면서도 더위를 즐겼던 그 시절 그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욱 씁쓸할 뿐이다.
4. [동아일보][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개, 돼지’를 인간으로 만든 과학
진
부하고 경박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티무르? 나폴레옹? 철학자
볼테르는 망설임 없이 ‘아이작 뉴턴’이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숭배해야 할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볼테르가 활동하던 18세기 유럽에서 뉴턴은 분명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뉴턴이 확립한 물리학은 천상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해 주었다.
우주에는 법칙이 분명 존재했고, 이것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다. 적어도 신이 자연 현상에 기적과 같은 형태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스피노자와 존 톨런드는 성서를 무시하고 자연 그 자체를 신으로 보는 ‘범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학은 종교
개혁의 혼란을 겪던 타락한 중세 교회에 타격을 주고, 이성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로써 계몽주의라 불리는 서양의 근대 사상이
17, 18세기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계몽주의는 인간 삶의 목적이 내세(來世)가 아닌 현세의 행복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세의 행복은 과학적 지식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아는 것이 힘’ 아닌가. 계몽은 무지와 미신과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계몽을 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덕적으로 변하고, 세계는 진보한다. 물론 지금 우리는
계몽주의의 한계를 알고 있다. 계몽의 주체는 이성이며, 이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당시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던 특권주의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계몽주의는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믿는 자유, 평등, 이성 등은
과학 혁명에서 비롯된 계몽주의에 그 근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보편적 가치가 아주 최근에야
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때로 평민은 ‘개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신분제는 난센스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런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보여준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었다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과 같지 않았다. 백인들이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흑인은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끝내고 100년이 지나서야 노예해방전쟁을 치르게 된다. 백인 남성들이
평등을 위해 싸우는 동안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백인 여성보다 흑인 남성이 먼저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한
예다.
인류의 근현대사는 인간 평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투쟁의 역사다. 그런데 인간은 왜 평등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오히려 용감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거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이유는 생물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각
개인이 가진 문화적 사회적 겉모습을 벗고 벌거벗은 호모 사피엔스로 섰을 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지하철 정비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유
전자 수준으로 가서 보면 차이를 구분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모든 인간의 유전자는 다른 사람과 평균적으로 99.5% 정도 같다고
한다. 유전자만 봐 가지고는 두 사람을 차별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유전자까지 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평등도 문제가
된다. 침팬지의 유전자는 인간과 99%가 같다. 참고로 남자와 여자도 유전자의 99%가 같다. 인간의 평등이 생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제 평등의 범위를 다른 생물종(種)으로 넓혀야 할 시점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한 말이다. 과학 혁명에 이은 계몽주의,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 인류는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서양 사회가 18세기에
치른 계몽주의의 혼란을 우리는 이제 겪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이런 전근대적 발언을 두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동성애자 차별,
성 차별, 여성 혐오, 병역 거부자 차별, 외국인 혐오 등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5.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외교부 장관은 패셔니스타?
1887
년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된 박정양(1841∼1904) 일행이 미국 워싱턴에 부임했을 때 일이다. 기이한 모자에 괴상한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난리법석이었다. 하루는 길을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돌을 던졌다. 경찰이 ‘외교 결례’를 범한
아이들을 붙잡아가자 이들은 서장을 만나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며 석방을 당부했다. 신문에 ‘한국에서 온 신사’란 미담
기사가 실리면서 구한말 외교사절의 관용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화제가 됐다.
외교 의전에서 복장 규정이 빠질 리 없다.
초청장에 ‘화이트 타이’라고 적혀 있으면 최고 격식의 연미복과 흰색 나비넥타이를 매야 한다. ‘블랙 타이’(약식 야회복)는
검은색 턱시도에 검은 나비넥타이 차림을 뜻한다. 이 밖에 짙은 색 정장을 갖춰 입는 ‘라운지 슈트’(평복), 재킷은 필수지만
넥타이는 선택인 ‘비즈니스 캐주얼’ 같은 드레스코드가 있다.
옷차림으로 외교상 껄끄러운 논란이 빚어질 때도 있다.
1998년 일본을 방문한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은 일왕 주최 만찬에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해 일본 측이 반발했다. 최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외교 문제가 아닌 옷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할 당시 백화점에서 옷 수선을 하고 새 양복까지
쇼핑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화급한 외교안보 사안이 발표되는 시점에, 그것도 평일 오전에 대한민국의 외교 수장은 꼭
백화점에 있어야 했을까.
외교부 해명인즉, 장관이 며칠 전 청사에서 넘어져 바지가 찢어졌는데 평소 아끼던 바지라서
수선차 들렀다는 것이다. 야당은 “굳이 장관이 직접 들고 백화점에 갈 만큼 한가한 상황이었는지, 열 번을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꼬집었다.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 장관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장관으로서 ‘옷을 못 입는다’는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패셔니스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낫겠지만 업무의 경중을
따지는 사리분별력은 옷 잘 입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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