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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7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김영란법’ 앞서 청와대 식단부터 바꿔야

지난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호화 오찬 논란은 진위 여부를 차치하고 국민들에게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 자리에서 마침 서민들의 전기요금 누진세 인하 문제가 논의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기료 폭탄이 겁나서 살인적 폭염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못 켜는 서민들로서는 청와대의 호화 오찬 메뉴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꼈을 게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되자 이틀 뒤 새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당선을 축하하면서 물냉면과 능성어찜을 대접했다. 호남 출신인 이 대표에 대한 배려였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재, 훈제연어, 송로버섯, 캐비어 샐러드, 샥스핀찜, 한우갈비 등이 줄줄이 오른 초호화 식탁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식탁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송로버섯은 크기와 품질에 따라 값이 수백만원에서 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요즘 같은 혹서기에는 왕조 시절의 임금님도 반찬 가짓수를 줄여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했다는 옛 사례도 모르느냐는 힐난이 쏟아질 만도 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송로버섯과 캐비어는 그만두시고 전기료 누진제라도 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청와대는 송로버섯을 주재료가 아닌 향신료로 조금 썼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유명 요리사들도 이에 동의하며 1인당 식사에 포함된 송로버섯 비용이 기껏 몇천원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송로버섯을 제외한 나머지 식단만으로도 핀잔을 듣기에 충분하다.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렇게 산해진미를 즐기며 전기료를 몇천원씩 깎아준다고 생색을 냈으니 서민들의 화가 치솟는 것도 당연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식사비용이 김영란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1인당 식사접대비 상한선 3만원은 훌쩍 뛰어넘었을 게 틀림없다. 청와대나 국회의원들이나 당연히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시행까지는 아직 한달 넘게 남았지만 청와대부터 솔선하지 않고 국민에게만 법 준수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값비싼 수입 식재료가 다수 포함된 것도 거슬린다. 청와대는 차제에 식단을 바꾸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해야 마땅하다.

2. 정책 실패가 초래한 미분양 아파트 사태

아파트 업계에 공급물량 누적에 따른 미분양의 연쇄 파열 우려가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 그동안의 분양 실적이 실수요를 반영하기보다 정부의 경기활성화 정책에 따른 과열 투자였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실제로는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겉으로는 활황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속사정이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모두 6만 가구로 나타났다. 전월(5만 5400가구)보다는 8.2%, 지난해 같은 기간(3만 4000가구)에 비해서는 무려 76.1% 늘어난 수준이다. 또 다른 지표인 민간아파트 초기분양률도 지난해 2분기 92.2%를 기록한 이래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현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수도권이 더욱 심각하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 데는 정부와 업계가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는 건설경기를 살리려고 신도시를 무리하게 확장했고, 업체들은 이에 편승해 분양 물량을 쏟아냈다. 청약자들에게는 주택대출 혜택을 부여하기도 했다. 전세난이 길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투자심리가 표출됐던 것도 분양물량 확대를 부추긴 하나의 요인이다.

미분양이 쌓이면서 실수요자들도 오히려 청약 의사를 거둬들이는 실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주택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그동안 치솟던 전셋값이 현재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특단의 세제 혜택을 제시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주택을 할인가격에 내놓으면서 기존 입주자들과 불화를 빚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아파트 공급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2년 뒤에 부동산 시장이 전체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자칫 건설업체들은 경영난에 처하게 될 것이고, 주택 구입자들도 은행대출 부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해결이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당장 미분양 아파트를 해소하기 어렵다면 신규 공급 물량이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서울신문]

3. 양보하고 대안 찾는 8월 임시국회를 기대한다

8월 임시국회가 오는 31일까지 보름 일정으로 어제 막을 올렸다. 헌정 사상 최악의 무능 국회 평가와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20대 국회의 두 번째 임시국회다. 6월 임시국회를 통해 30년 만에 가장 빠른 개원(開院)을 이끌어 내는 등 ‘협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준 여야 3당은 ‘본게임’의 1라운드라고 할 수도 있는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진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임시국회에는 쟁점 현안들이 즐비한 만큼 국민이 ‘매의 눈’으로 여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정부가 제출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처리하기로 했다. 또한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라고도 불리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청문회도 회기 중 진행한다. 구체적 사항을 원내대표 간 협의로 일임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 문제와 야권이 추경안 처리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대책특위 등도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복병들이다. 모두 여야 간 견해차가 큰 안건들이어서 위태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여야는 협치와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 원만한 결실을 보길 바란다.

사사건건 대립과 정쟁으로 점철해 임시국회 때마다 ‘빈손’에 그쳤던 19대 국회 당시의 여야와 지금의 여야는 확연히 바뀐 정치 지형만큼이나 인식이나 가치관 등이 자못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각 당 지도부에서 대립보다는 협치, 정쟁보다는 상생을 언급하는 빈도가 높지 않은가. 그런 여야가 국민의 기대감을 저버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여야 각 당이 이번 임시국회를 자신들의 수권(受權) 능력을 국민에게 내보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달라고 제안하는 바다. 이미 각 당 모두 사실상 대선 준비를 시작한 것 아닌가.

혹독한 추경안 심사와 청문회를 벼르고 있는 두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나 ‘호통·망신주기 청문회’가 아닌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잘못된 정책을 시정할 수 있도록 청문회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여당도 무조건적인 정부 옹호가 능사가 아니다. 미진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정책 책임자들을 과감히 질책하고,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여당은 방어하고, 야당은 공격하는 구태로는 국민에게 수권 정당이라는 믿음을 줄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부터 수권 능력 경쟁이 시작돼야만 한다.

4. 소폭 개각이었지만 국정 쇄신 계기로 삼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개 부처 개각을 단행했다. 4·13 총선 참패 이후 집권 후반기의 국정 운영을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개각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소폭 부분 개각에 그쳤다. 공격적인 국정 운영보다는 안정적인 성과 중심의 국정 관리 쪽에 무게를 뒀다. 내용과 규모에서 최소에 그친 탓에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환경부 장관에 조경규 국무조정실 2차장을 내정했다. 4명의 차관급 인사도 함께 실시했다.

그러나 진경준 검사장의 인사 검증 실패를 비롯한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특별감찰까지 받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이런 까닭에 야권이 “국정 쇄신 의지와 거리가 먼 오기, 불통, 찔끔 개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만간 후속 인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임기 말 국정 운영의 원칙과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총선에 따른 민의를 충분히 수용하고 공직 기강을 다잡기 위한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1일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탕평·균형·소수자 배려’, 즉 안배 인사와도 거리가 멀다. 조윤선 후보자는 여성 배려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현 정부에서 이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무수석비서관까지 맡았던 데다 4·13 총선에 나섰다가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측근 중의 측근이다. 김재수 후보자는 경북 영양, 조경규 후보자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전·현직 관료다. 측근 및 관료 출신들의 포진을 통한 친정체제 강화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의중은 인적 개편으로 정국을 돌파하기보다는 현행 내각의 보완을 통해 지금껏 진행해 온 국정 과제의 결실을 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 차단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현 정권 출범 때부터 함께해 온 윤병세 외교부 장관, 창조경제를 이끄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사드 배치 문제를 다루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유임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외교안보, 창조경제 정책을 비롯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함께 가자’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8·16 개각은 끝났다. 비록 소폭이지만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들로 새 진용이 짜였다. 이제 얽히고설킨 국정 현안을 풀어 가는 데 전념해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은 또한 국민이 ‘할 수 있고, 함께 나가도록’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소폭 개각에 대한 의미가 살 수 있다.

5. 아파트·공공기관 ‘주차장 공유’ 의미 있다

공유경제는 잘 알려진 대로 하나의 제품을 여럿이 나눠 쓰는 생산 및 소비 활동을 뜻하는 개념이다. 굳이 개인이 소유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필요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된다. 주거 공간이나 자동차를 공유해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경제활동 방식은 갈수록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부 공유경제 서비스가 기존 질서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공유경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새로운 개념의 수요·공급 시스템을 창출해야만 공유경제라는 착각이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부천시의 사례는 공유경제가 무슨 엄청난 첨단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이 도시의 상동 복사골 문화센터는 지난 3월 이웃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을 나눠 쓰는 협약을 맺었다. 공공기관 주차장은 이용객이 몰리는 낮시간에 가장 혼잡한 반면 아파트 주차장은 주민들이 돌아온 밤이 피크타임이다. 6월에는 중4동과 상2동·괴안동·성곡동의 행정복지센터와 부천보건소, 원미2동 주민자치센터도 이웃 아파트 단지들과 주차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해당 공공기관의 이용료도 할인받는다니 이익은 두 배로 돌아온다.

부천시는 지난달 3개의 구청을 없애는 행정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기존 시·구·동 3단계의 행정 체계를 2단계로 단순화한 것이다. 부천시는 행정 개혁으로 사라진 원미구의 옛 청사를 경기일자리재단과 가칭 경기벤처창업지원센터에 내놓았다. 경기도가 가장 역점을 두어 설립을 추진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경기도는 도민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자리에 센터를 열게 됐고, 부천시는 중량급 공공기관을 유치한 것은 물론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어느 자치단체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 또한 공유경제의 모범 사례로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부천시의 사례는 공유경제가 지방자치단체에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공직자들이 공유경제적 사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주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부천시는 실증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주차장 공유 같은 아이디어는 따라 해도 주민들에게서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공유경제적 사고를 경쟁적으로 가속화해 부천시를 뛰어넘는 사례를 줄지어 내놓기 바란다.

[중앙일보]

6. 중금리 시장 활성화 불 지핀 어느 핀테크 업체의 실험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 된 가계부채는 양과 질, 양쪽의 질환을 앓고 있다. 올 3월 기준 1223조원이란 엄청난 양이 우선 문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가계부채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증가 추세가 꺾였다”며 반박했지만 그렇다고 양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7월 가계대출은 6조2000억원으로 6월의 6조5000억원보다 증가세가 줄긴 했다. 2월부터 은행권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은행 돈줄이 막힌 가계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으로 내몰렸다. 올해 5월까지 비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15조9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상반기(8조8000억원)보다 7조원 넘게 늘었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가계부채가 비은행권으로 쏠리면 질의 문제가 불거진다. 고금리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우리 대출시장은 은행권의 연 6% 이하 저금리와 비은행권의 연 15% 이상 고금리로 양극화돼 있다. 은행 돈줄이 조여지면 서민 가계의 상환 부담이 급증하는 구조다. 연 7~15%의 중(中)금리 시장 활성화가 시급한 이유다.

마침 핀테크 업체이자 업계 선두 P2P(개인 대 개인 대출) 회사인 8퍼센트가 지난주 금융권 최초로 ‘최저금리 보상제’를 내놓았다. 더 싸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으면 10만원을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P2P 업체들이 늘어나자 일부 저축은행과 캐피털 회사도 중금리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선 “실질적 금리 인하 경쟁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금리 시장은 그간 은행이나 금융 당국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돈 안 되고 관리가 힘들다며 방치했던 분야다. 이걸 핀테크 업체가 뛰어들어 바꾸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그간 P2P 업체를 ‘금융의 변방’쯤으로 취급해 왔다.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라며 방치해 왔다. 그러나 P2P 업계는 스스로 핀테크야말로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할 수단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임을 증명해가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

7. 세계 11위 오른 한국 경제 더 힘든 고비 넘어야 한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조3779억달러로 세계 11위였다. 한 해 전보다 두 계단 올라선 것이다. 반세기 동안 숨 가쁘게 질주한 한국 경제는 2005년 세계 10위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15위까지 되밀렸지만 그 후 조금씩 실지를 회복했다. 인구 대국도 자원 부국도 아닌 나라로서는 이미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작년 한국 경제 순위가 오른 건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 글로벌 저성장 탓에 자원 부국인 러시아 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호주 경제도 뒷걸음질했기 때문이다. 벌써 성장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가 이대로 가면 세계 10위권에 안착하지 못하고 급부상하는 신흥국들에 추월당할 수 있다. 

지구촌의 경제력 순위는 각국의 인구 증감과 혁신 능력에 따라 금세 뒤바뀐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3위에 머물렀던 인구 대국 인도는 그동안 한국을 제치고 7위로 뛰어올랐으며, 25위에서 16위로 도약한 인도네시아는 21세기 초 어느 시점에 우리를 제칠지 알 수 없다. 반면 경제 위기를 겪은 스페인은 10년 새 9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한국 정부는 한때 세계 7위 경제강국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우리가 곧 인도에 밀려 7위로 내려앉을 프랑스 경제(작년 GDP 2조4216억달러)를 10년 안에 따라잡으려면 프랑스보다 해마다 6%포인트 가까이 빨리 성장해야 한다. 잠재성장률이 이미 3% 안팎으로 떨어졌고 2030년대에는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경제로서는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우리가 무섭게 추격해오는 신흥국들을 따돌리면서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20세기 후반 빠른 추격자의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혁신적인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인구,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낡은 규제와 공장식 교육 체제로는 한국 경제의 퀀텀점프를 이룰 수 없다. 21세기 경제 전쟁에서 이길 새로운 국부론을 쓰지 못하면 어렵게 되찾은 세계 11위 자리조차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8.  일본의 내수진작 노력 한국도 적극 벤치마킹해야

일본이 극심한 침체에 빠진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요일 조기 퇴근과 외국인 관광객 사전입국심사제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소비 절벽이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사전심사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출발지에서 입국심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로 내년에 한국과 대만에서 실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제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서 시행됐고 2005년부터 대만으로 확대했다가 2009년 중단됐는데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며 일본 내 공항이 혼잡해지자 다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까지만 해도 900만명 미만이었으나 지난해 1947만명으로 급증했다. 사전심사제가 시행되면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내수 진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재계가 함께 추진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도 내수 살리기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앞당겨 여행과 외식·쇼핑 시간을 늘리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오는 10월 민간 기업부터 도입한 뒤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는데 벌써부터 관련 업체들은 2박3일 주말 여행 상품을 구상하는 등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면 2020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 4000만명에 달하고, 현재 300조엔의 개인소비가 360조엔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내수를 살리기 위한 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와 임시공휴일 지정,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다양한 내수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 소매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등 내수 관련 지표도 대부분 부진하다. 이런 소비 절벽을 극복하려면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져 개인들의 소득이 늘어야 하겠지만 소비 환경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이 시도하는 다양한 소비 진작 노력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9.  대구 폭염, 또 다른 기회로 삼을 방법을 찾자

대구기상지청이 올 8월 15일까지 날씨를 관측한 결과, 대구에서 밤~아침 사이 최저기온 25℃가 넘는 열대야가 나타난 날이 9일이다. 낮 최고기온도 달성 현풍의 39.5도를 비롯해 대구지역 대부분이 35~39도를 넘나들었다. 낮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폭염 날씨만 13일이다. ‘대구 아프리카’ 즉 ‘대프리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날씨다. 

무더운 대구의 여름 날씨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아열대화 현상의 영향이다. 아울러 분지인 대구의 지형지리적인 요인도 있다. 생태 환경을 무시한 무계획적 도시개발에 따른 바람길 봉쇄와 같은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말하자면 중층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대구의 폭염은 수치로도 분명하다. 폭염 일수를 보면 2015년 7~8월 두 달 동안 17일(1년 전체는 21일)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는 7월 한 달간 10일과 8월 15일까지만도 13일로 모두 23일이다. 지난해 17일을 이미 넘어섰다. 무더위가 이어지면 올해 폭염 일수 기록 경신 행진은 자명하다.

문제는 이 같은 대구 폭염의 일상화다. 인적 물적 피해도 피할 수 없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대구가 처한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요소가 결합된 결과물이어서다.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폭염 피해 감소와 활용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폭염 위기의 자원화 이야기다. 방안으로는 태양열과 복사열의 흡수 장치 마련으로, 나무 등 식물자원과 물(수)자원의 이용이 있다. 건물 벽면 등 옥상의 녹화(綠化) 및 방수재 변화로 방출 온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도로 포장재료의 변화로 온도를 낮추는 기술도 있는데, 현재 상당한 기술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대구는 폭염 극복의 성공적 경험도 있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들안길에서 열린 대구폭염축제나 올해로 4년째인 치맥축제가 그렇다. 폭염의 관광자원화 사례다. 이와 다른 차원이지만 폭염의 산업화 시도는 분명 가치가 있다. 19일의 ‘시민과 함께하는 대구 국제폭염대응포럼’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대구의 폭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꿈은 물론 폭염의 자원화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셈이다. 모두의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10. 비정상적인 대구 시내버스, 놀림감 된 이유 알고 있나

늦은 밤 시간대 불합리한 대구 시내버스 운행 방식에 대해 시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오후 11시 30분이면 운행을 종료해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서민의 부담이 큰데다 종료 시점을 이유로 승객을 중도에 내리게 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서다. 혈세로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고도 시민 편의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 같은 운행 방식에 버스 준공영제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통상 시내버스는 시간에 관계없이 시점에서 종점까지 운행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대구에서 막차 시내버스를 타는 시민은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쫓기듯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기사 근무 종료시간에 맞춰 중도에 차고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1990년대 한 노선을 여러 버스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공동배차제 당시의 ‘중간 기점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져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막차 운행 시간이 단축되면 업체 운영은 수월하겠지만 정작 시민 불편은 거꾸로 가중되는 이상한 구조가 된 것이다. 

타 도시와 비교해봐도 대구 시내버스는 시민 편의가 아니라 버스업계의 입맛에 맞춘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시-종점 방식인 창원 시내버스의 경우 막차가 종점에 도착하는 0시 30분까지 하루 최대 19.5시간 운행한다. 반면 대구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18시간에 그친다. 이 때문에 대구 시내버스를 두고 타 지역민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모자라 놀림감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구시는 심야시간 이용 시민이 많지 않고, 막차 시간을 연장하면 노선당 2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버스 노사 단체협약 개정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공익성을 강조한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시는 2006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9년 동안 모두 7천억원을 업계에 지원했다.


지금도 전체 1천521대의 시내버스 운영에 연간 1천30억원이 들어간다. 막대한 예산 지원에도 시민 불편은 그대로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제주시의 사례처럼 공영버스 심야 운행 등 보다 합리적인 방식을 검토하고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현실동화-미녀와 야수

“아니야!!!!!”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가 침대 위에서 울부짖고 있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그녀를 밀어내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거울!” “쉬… 진정해요.” 그는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한달음에 옆방으로 달려갔다. 그가 방문을 열자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내려진 커튼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햇빛의 공간 사이로 뿌옇게 떠올랐다.


그녀가 그를 뒤쫓아 들어갔을 때 그는 장막으로 가려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장막을 열어젖히자 순간 거울 위로 반사된 햇빛이 두 사람의 눈 위를 고통스럽게 훑고 지나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에는 한 마리의 야수와 마른 빗자루가 서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내려쳤다. 마치 그 야수를 죽이고 싶은 사람처럼.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무너지는 그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자 그는 익숙한 듯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건 악몽이야. 깨지 않는 꿈.” “진정해요.” “마녀가 사랑을 찾으라 했지만 난 사랑이 뭔지도 몰라… 이런 내가 불쌍하지 않아?” 그녀는 말없이 땀으로 젖은 그의 털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조용한 아침의 햇살로도 녹일 수 없는 차가운 겨울의 서리가 유리창 위에 눈꽃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공간 속에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이 될 수 없었다. 장미가 시들고 나면 그는 사랑을 모르는 채 영원히 괴물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었다. 그건 자신에게도 내려진 저주였으나 그녀는 자신이 이 저주가 풀리길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녀는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천천히 그의 등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집사인 촛대 뤼미에르가 성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두 사람은 일어나 서리가 내려앉은 창을 문질러 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말을 탄 사람이 성 앞의 정원에 도착해 있었다. 말에서 내려 머리 위에 쓴 긴 망토의 모자를 벗자 아름다운 아가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굳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반짝이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마른 그녀의 나무 손가락이 퍼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그 도둑놈의 딸이겠지. 겁만 주고 쫓아내야겠어. 저런 인간들은 딱 질색이니까.”

그는 어느새 거울 앞에 서서 잠시 털들을 쓸어 넘기더니 어느새 성큼성큼 회랑으로 통하는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2.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땀의 의미

염천(炎天)에 무엇을 한들 제정신이겠는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온몸을 적시고, 나무 그늘에라도 의지해 흐른 땀 식히다 보면 옷 위로 소금꽃이 피어오른다. 에어컨이든 선풍기든 켰다 껐다 하는 것도 지쳐 차라리 시원한 커피숍으로 피서나 가야겠다는 마음에 집을 나섰다.


달아오른 지열로 발바닥이 뜨거워질 즈음 어른거리는 태양의 열기 사이로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줄지어 선 커다란 트럭들과 연예인들이나 타고 다닐 듯한 자동차도 몇 대 보였다. 문 열린 트럭에서 내려지는 기계들을 보아하니 촬영 장비였다. 무엇을 찍나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더위에 여러 사람 고생이구나 싶었다.

하기야 “낮 기온이 연일 35도를 넘어 제작진들이 더위 먹고 쓰러질까봐 당분간 쉬겠습니다”라며 TV를 끄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더위라도 방송은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카메라의 자리를 잡고, 출연진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행인들 통제할 준비까지 마쳤다. 감독의 사인에 조명이 켜졌다. 일순간 모두의 숨소리는 잦아들었다. 현장 제작진들의 온몸엔 땀만 비 오듯 흘러내렸다.

구경도 계절 좋을 때 하는 것, 거리의 더위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아 서둘러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에 행복한 베짱이가 돼 유유자적 놀다 집에 오니 여기도 올림픽, 저기도 올림픽. TV가 분주했다. 어린 시절만큼 올림픽 경기에 넋을 빼앗기진 않지만, 그래도 선수들의 선전은 언제나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메달을 목에 건 선수를 보면 뿌듯하고, 예상치 못한 실수로 아쉬운 눈물 흘리는 선수를 보면 안타깝다.

어느 나라 선수든 올림픽이란 무대 위에 오른 선수 모두는 최선을 다한다. 경기장 곳곳은 이들이 흘린 땀으로 젖고, 그 땀은 관중석의 뜨거운 응원으로 씻겨진다.

금은동 메달을 획득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수없이 많은 관문을 통과하며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이었기에 메달은 좀더 화려한 영광의 상징일 뿐이다. 올림픽이 처음 시작된 아테네 파나티나이고 경기장에 섰던 선수들부터 서른한 번째 세계인의 축제가 열린 리우 마라카낭 경기장에 오른 선수들까지 근대올림픽 120년 역사 속 모든 선수들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습장을 흥건히 적실 만큼 땀을 흘렸다.

모든 프로그램이 시청률 대박의 기록을 가질 순 없다. 시청률은 시청자의 주관적 선호도를 측정한 결과일 뿐 그 차이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나 제작진의 노력을 논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어지러울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제작진들이 현장의 카메라를 끄지 않은 것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운동 경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경기라는 것이 앞서는 사람이 있으면 뒤지는 사람도 있다. 성적은 참가자들의 기록일 뿐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겨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선수들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과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는 대중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말복이 지났다. 이 더위도 곧 시들해지겠지만, 염천에 흘린 땀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이기에 쉬이 식지 않을 것이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팩션과 왜곡/손성진 논설실장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를 말한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고 2003년 3월 출간된 ‘다빈치 코드’의 성공은 팩션의 확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설의 한 기법이었던 팩션은 영화와 드라마, 게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광해군을 닮은 천한 인물이 잠시 광해군의 대역을 했다는 줄거리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표적인 팩션 영화이며 ‘바람의 화원’, ‘대장금’, ‘주몽’ 같은 드라마도 팩션이다.


팩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건조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들이 흥미로운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과 픽션을 혼합하기 때문에 팩션은 늘 역사 왜곡의 도마에 오른다. 문제는 극적인 줄거리 전개를 위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한다는 점이다. 마치 팩션은 아니지만 영화 ‘내부자들’이 언론의 어두운 모습을 지나치게 과장해 관객의 눈길을 잡으려 한 것과 비슷하다. 그 목적은 물론 흥행이다.

4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덕혜옹주’도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을 여러 곳에서 왜곡했다. 덕혜옹주를 다룬 서적은 10종이 넘게 나와 있다. 그중에서 일본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옹주’는 발로 뛰고 근거 자료를 찾아 구성한 인물 평전이다.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는 100만권이 넘게 팔렸는데 사실에 픽션을 더한 팩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권씨의 소설은 혼마의 평전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영화 ‘덕혜옹주’는 권씨의 소설이나 혼마의 평전을 원작으로 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내용도 다르다. 내용 중에서 옹주가 어머니 한씨의 장례는 물론 영구 귀국 때까지 조선 땅을 한번도 밟지 못했다는 부분은 진실과 다르다. 옹주가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표현한 부분도 사실이 아니며 정신병이 발병한 시점도 평전의 내용과는 같지 않다. 한글학교를 세운 적도 없다. 왕족들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으며 감시를 받았지만 풍족한 생활을 했다. 덕혜옹주가 원치 않게 일본으로 가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이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현병에 걸려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는 건 맞지만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작가의 상상력은 자유이고 한계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 팩션에서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부분과 명백한 진실 사이의 경계다. 무수리 출신인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다룬 드라마 ‘동이’를 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씨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작가의 상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진과 기록으로 남아 있는 덕혜옹주의 조선 방문을 없었던 것으로 그리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이 주는 감동은 의미가 없다. 진실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수첩

한 주 동안 ‘굴드의 피아노’라는 책에 빠져 지냈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사망한 후 캐나다 국립도서관에 그의 유품들이 도착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유품 중에는 그 유명한 ‘난쟁이 의자’도 있었다. 1953년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굴드가 ‘평생 애착(愛着)을 지녔던 물건’이며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가지고 다녔던 의자다. 

애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랑하고 아껴서 단념할 수가 없음’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물들이 꽤 있다. 그저 사랑하고 아끼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중에 하나가 수첩이다. 럭셔리한 다이어리 말고, 크기는 손바닥을 넘지 않는 정도에 적당히 얇고 커버가 두껍지 않고 나긋나긋하여 가방이나 주머니 어디에라도 쏙 들어갈 수 있는, 문방구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첩.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데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적어두지 않으면 불안해져버리는 사람이라 가방마다 제각각 다른 수첩들을 갖고 다니고 침대 옆, 식탁, 책상에 수첩을 올려두고 있다. 재능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종종 있다. 딱 부러지는 대답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생각해본다. ‘오래전부터 내가 메모하는 습관을 갖지 않았고 저 쓸모없어 보이는 수첩들을 박스를 채울 정도로 갖고 있지 않았어도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며칠 전에 저녁 모임에 나갔다가 이비인후과 의사와 젊은 목수가 나누는 직업적 이야기들이 재미있어 조용히 수첩을 꺼내 들고 메모를 했다. 옆에 있던 목수가 내 수첩을 보더니 “작은 것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작아 보이지만 그게 언제 어디에 쓰일지 모를 이야기의 씨앗을 품고 있는, 그렇게 적어두는 것만으로 휘발돼 버리지 않는 단편적인 것들로 빼곡한 얇고 큰 것을.

신문에서 이번 양궁 개인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의 수첩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그 선수의 수첩에는 심플하게 활을 쏠 것과 자신의 자세 기술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루틴만’이라고 쓰여 있었다. 경기 전 일종의 자기주문 같은 것이겠지. 수첩에 적힌 기보배 선수의 동글동글한 글씨를 보는데 그만 마음이 울컥해져버렸다.

‘문구의 모험’이란 책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생각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뭔가를 적어두어야 하고 생각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시장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헌책방도 가지만 도시 어딜 가나 문방구에 들른다. 아끼고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단념할 수 없는 사물들로 가득 찬 곳으로. 갖가지 개인적 애착이 그곳에 있다.


5.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비빔밥

비빔밥? 혼란스럽다. 비빔밥의 다른 이름은 ‘혼돈반(混沌飯)’이다. ‘혼돈스러운 밥’이다.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혼돈반’과 같이 만들어 내놓으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다.’

조선 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이 쓴 ‘기재잡기’의 내용이다. 엄청난 양의 ‘밥=혼돈반’을 먹어 치운 주인공은 조선 전기의 무관 전임(?∼1509)이다. 그가 먹은 것은 밥에 생선과 채소를 넣은 것이다. ‘혼돈반=비빔밥’이다. ‘혼돈’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다. 혼란, ‘골동(骨董)’과도 비슷하다. ‘혼돈반’이란 표현은 ‘기재잡기’의 시대인 17세기 초반에 사용했다. 비빔밥은 그 이전인 전임의 시대, 15세기에도 있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성호전집’에서 “골동은 내가 싫어하지 않지만, 배를 불리기는 국밥이 최고”라고 했다. 이 시의 제목이 ‘국밥’인 걸 보면 내용 중 ‘골동’은 골동반(骨董飯), 즉 비빔밥이다. 비빔밥을 ‘혼돈반’이 아니라 ‘골동(반)’이라고 표현했다.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비빔밥은 ‘혼돈반’에서 ‘골동반’으로 바뀐다. 

비빔밥을 두고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은 ‘골동’ 혹은 ‘골동반’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나타나는 비빔밥의 공식적인 이름은 ‘골동반’이다. 19세기 말 기록물로 추정하는 ‘시의전서’에서 ‘골동반=부Z밥’이라고 표기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기록에 골동반만 나타난다. 

“골동반은 중국 음식이고 우리 비빔밥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그릇에 미리 쌀 등 곡물과 채소, 어육 등을 넣고 밥을 짓는다. 비빔밥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밥을 지은 다음 밥 위에 조리한 채소, 고기, 해물 등을 얹고 비벼 먹는다. 비빔밥은 먹기 전, 각종 고명을 마음대로 빼거나 더할 수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일본식 솥밥인 ‘가마메시(釜飯· 부반)’ 혹은 우리의 무밥, 콩나물밥과 닮았다. 다만 일본식 솥밥을 우리 콩나물밥처럼 비벼 먹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골동’ ‘골동반’이란 표현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명나라 초기인 1414년에 완성된 ‘성리대전’에 이미 ‘골동반’이 나타난다. ‘골동(汨董)은 골동(骨董)과 같은 말로, 잡되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 사람들이 물고기, 채소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즉, 골동갱(骨董羹)이다.’

중국 명청시대 속어사전인 ‘이언해’에서는 ‘물고기, 고기 등을 밥에 넣고 만든 것이 곧 골동반’이라고 했다. 뒤섞어 혼란스럽다는 뜻인 ‘골동’은 그 뿌리가 깊다.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도 이미 ‘골동’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실학자 이규경(1788∼?)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어떤 사람은 (골동이란 단어가) 소동파의 골동갱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소동파의 골동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소동파는 문집 ‘구지필기’에서 ‘라부돈의 노인이 음식을 여러 가지 모아서 함께 끓였다. 곧 골동갱이다’라고 했다. ‘골동’의 시작이다. 

조선 초기에도 민간의 자연발생적인 비빔밥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 안에서, 제사 후에, 혹은 일터인 들판에서 밥과 나물을 비벼 먹었을 터이다. 조선 후기부터 중국에서 받아들인 ‘골동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비빔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비빔밥, 혼돈반, 골동반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조선 후기에도 ‘골동’이란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정조 7년(1783년) 7월, 공조판서 정민시의 상소문에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워져 허위가 판을 치는 골동(骨董)과 같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조선왕조실록). 골동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는 ‘시의전서’의 표현대로 ‘골동반=부Z밥=비빔밥’이 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오늘날 우리도 쉽게 만나기 힘든 여러 가지 비빔밥(골동반)이 나타난다. ‘비빔밥, 채소비빔밥,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새끼 전어를 넣은 비빔밥, 큰 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호과 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 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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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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