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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덤핑과 바가지론 ‘관광 한국’ 미래 없다

요즘 서울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특히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대거 밀려든 유커(중국인 관광객)들로 명동과 강남역 같은 도심과 고궁 등은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면세점들도 이들에게 점령되다시피 했다. 정부가 때맞춰 개최한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유커를 겨냥한 기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황금연휴에 유커 25만명이 몰려와 6000억원을 쓰고 갈 전망이라니 공들일 만도 하다.

‘국경절 즐겁게 보내세요’ 등의 중국어 현수막을 내건 유통업계는 모처럼 활기찬 모습이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위력을 십분 발휘했지만 관광은 이제 우리 경제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장의 견인차인 수출이 지금처럼 죽을 쑬 때에는 외화가득률이 높고 좋은 일자리를 쏟아내는 관광산업의 위상이 새삼 돋보인다. 정부가 올해를 ‘한국 방문의 해’ 원년으로 삼고 내년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돌파를 목표로 내세우는 등 ‘관광 한국’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문제는 덤핑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바가지를 씌워 본전을 뽑는 ‘얌체 상혼’이 덩달아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외국인이 공항으로 입국하자마자 당하는 바가지 택시요금이나 턱없이 비싼 숙박료, 밥값 등이 대한민국에 학을 떼게 만드는 주범이다. 항공료보다도 싼 요금으로 고객들을 유치해 놓고 관광은 뒷전인 채 허접한 물건들의 강매에 열을 올리는 여행사의 횡포도 목불인견이다. 한국이 한때 유커가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 1위였으나 태국과 일본에 역전당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밉상들 탓이다.

우리나라는 유커의 재방문율이 37%에 불과하나 일본은 80%나 되는 것도 그런 결과다. 재방문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않고는 ‘관광 한국’에 미래는 없다는 얘기다. 한국을 ‘꼭 다시 찾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게 관광을 일으키는 지름길이다. 국민은 국민대로 관광객을 정성으로 맞이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규제를 확 풀어 관광인프라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업계도 천편일률을 지양하고 보고 싶고, 사고 싶고, 먹고 싶고, 추억에 남기고 싶은 참신한 관광상품들을 내놔야 한다. 세계에서 한류로 통하는 우리의 음식, 패션, 의료, 첨단기술 등을 관광과 적극 접목시키는 것도 일책이다.

2. 미르재단 의혹 손으로 덮을 수 있을까

국정감사가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되면서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관련성과 정부 차원의 특혜 여부에 대한 추궁이다. 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재단 결성에 참여했다는 전경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경련이 두 재단을 합병하겠다며 서둘러 해산 결정을 내린 자체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5월 박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을 당시 체결된 ‘K타워 프로젝트’ 사업수행 기관으로 미르재단이 선정됐다는 국민의당 소속 윤영일·최경환 의원의 주장이다. 한류교류 증진을 위해 테헤란에 구축되는 문화상업시설인 K타워 프로젝트 양해각서에 미르재단이 사업 주체로 명시됐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 미르재단에 대한 특혜성 조치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을 투명하게 추진하려면 공모 과정을 거쳐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가 생략된 채 활약상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신생단체가 정부 간 양해각서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면 그 배경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형환 산자부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체결된 양해각서였다.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에서부터 답변을 듣고자 한다.

문제의 두 재단을 통합한다는 명목으로 해산 방침을 발표한 전경련의 전격적인 결정을 두고도 의문점이 이어진다. 재단 직원들은 물론 전경련 내부에서도 실무 담당자조차 해산 방침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는 증언이 제기되고 있다.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 등 수뇌부의 독단적인 결정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씨 등을 고발하자 증거인멸을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미 의혹이 불거질 대로 불거진 이상 간단히 덮고 넘어갈 수 있는 단계는 지나 버렸다. 두 재단의 설립을 위한 출연모금 과정에서부터 의혹투성이다. 전경련이 나서서 추진을 주도할 수 있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야권에서도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자제할 필요가 있지만 여당도 무조건 감싸고도는 행태를 버려야만 한다. 문제가 더 꼬이기 전에 명확한 해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과학분야 노벨상 연거푸 받는 일본을 배워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에게 돌아가자 일본은 또다시 환호했다. 3년 연속 과학 분야에서의 수상이다. 오스미 교수는 세포가 손상됐을 때 불필요한 단백질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오토파지’(자가포식) 현상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5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판 결과다. 특히 1992년 효모를 이용해 자가포식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규명함에 따라 자가포식이 모든 동식물 세포의 기본적인 기능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 성과는 현재 노화나 퇴행성 질환 등과 관련된 치료 및 연구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오스미 교수의 수상은 확실히 일본 과학계의 개가다. 지금껏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25명 가운데 22명이 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이들이다. 심지어 2002년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오이치는 대학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한 우물 파는 데 학력은 수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오스미 교수의 “과학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 닿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만 과학자 17명이 노벨상 14개를 받아 선두 그룹에 당당하게 섰다. 일본 기초과학의 저력과 같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때만 되면 되풀이되지만 올해 역시 우리의 기초과학 현주소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내 과학자 1300여명이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냈다. 청원서에 따르면 정부 연구비 19조원 중 정부의 간섭 없이 연구자 주도로 연구할 수 있는 기초과학 과제가 고작 6%에 불과한 데다 기초연구 지원 사업 중 80%가 5000만원 이하다. 과학자들이 오죽하면 기초연구와 실용화를 위한 연구의 균형을 요구했는가 싶다. 기초과학 육성의 민낯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기초과학은 정권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멀리 보고 투자해야 할 대상이다. 과학자들을 믿고 지켜보는 환경과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게다가 정부의 일방적인 연구 지시나 간섭, 과학계의 상명하복식 경직된 문화도 불식시켜야 함은 당연하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가 최근 ‘토론을 꺼리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한국적 문화가 창의적인 연구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아프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지금은 남의 나라의 노벨상 수상을 부러워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돌아보고 과감하게 바꿔 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노벨상은커녕 기초과학의 발전도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4. 한미약품 정보유출 처벌하고 이익환수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어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주식시장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이들 3개 기관이 동반 조사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금융 당국이 이번 사안을 자본시장의 공정성 수호 차원에서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의혹의 핵심은 한미약품이 악재성 정보 공시를 고의로 늦췄느냐는 것이다. 또 누군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했는지 여부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오후 7시 6분 독일 제약업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항암 신약인 ‘올무티닙’ 기술수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30일 증시 개장 30분 뒤에야 공시했다. 공시 직후 한미약품 주가는 18% 폭락했다. 그 때문에 공시 전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봤다. 게다가 한미약품은 악재 공시 하루 전날 글로벌 제약회사인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항암 신약 기술수출 계약 사실을 공개했다. 그 때문에 이를 호재로 여긴 일반 투자자들은 장이 열리자마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한미약품 주가는 계약 해지 사실 공시 전까지 5% 가까이 급등하다가 공시 후 폭락했다.

조사 당국은 악재성 정보를 미리 안 특정 세력이 공매도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겼는지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도는 시장에서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주가가 내리면 사들여 갚는 매매기법이다. 주식 없이 매도 주문을 내 공매도라고 한다. 한미약품의 경우 일부 세력이 개장 직후 공매도 주문을 내 20% 이상의 차익을 챙겼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날 한미약품 주식의 공매도 수량은 10만주가 넘었다. 이는 해당 주식의 9월 한 달 전체 공매도 수량에 육박한다. 공매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내부자 거래 등을 통해 악재성 정보를 미리 취득했다면 명백한 불법이다.

한미약품은 오랜 기간 신약 개발에 매달려 8조원대 신약 기술수출 역사를 일궜다.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기업이 시장 질서를 해치는 의혹에 휘말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거래의 투명성이 의심받으면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져 자본시장 자체가 큰 손실을 본다. 금융 당국은 자본시장의 공정성 확보는 물론 제약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의혹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5. “북에 쌀 지원” 외친 문재인, 대선 외에 안보위기는 안 보이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일 “수해를 입은 북한에 인도적 차원에서 쌀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우리의 쌀과 북한 지하광물의 교환이 상생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전북의 한 미곡종합처리장을 방문해 쌀값 하락의 대책으로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4일 “섣부른 대북 쌀 지원 주장은 자칫 북핵 위기를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이어 이번엔 쌀 지원을 놓고 남남(南南) 갈등이 증폭될 공산이 커졌다.

문 전 대표는 작년 11월 농민단체 대표들을 만났을 때도 “재고가 쌓이는 쌀을 대북 지원으로 돌리거나 북한의 광물 자원과 교환하는 것이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면서 쌀값 폭락을 막고 남북 관계도 개선하는 1석 3조”라고 주장했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80kg에 17만 원대인 쌀값을 21만 원대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는데 해마다 하락해 올해는 14만 원대까지 추락했다”며 대통령 비판까지 곁들였다. 일부 농민단체가 쌀값 하락의 책임을 물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데 맞장구를 친 것이다.

쌀값 하락은 쌀 생산 증가와 국민의 식습관 변화에 따른 것이어서 북에 넘치는 쌀을 준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문 전 대표가 대북정책과 농정의 실패를 비판하는 것은 대선을 겨냥해 지지자들의 표를 결집시키려는 포퓰리즘이다.

그동안 북이 핵 개발에 쓴 돈은 15억3000만 달러(약 1조6900억 원)로 북 주민 2년 치 식량값이라고 정부는 본다. 김정은이 오로지 핵에 집착해 주민들이 굶어죽든 말든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 우리가 쌀을 북에 보내주자는 것은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노무현-김정일의 10·4선언 9주년인 어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야권 인사들은 남북 대화 재개를 주장했으나 남북 관계를 파탄 낸 것은 북의 핵과 미사일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 전 대표는 최근 정책 싱크탱크 창립 준비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출마 태세다. 북의 잇단 핵실험으로 중차대한 안보 위기가 조성된 지금 국민에게 나라를 맡길 만하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도록 국제사회가 총력을 기울이는 국면에서 제재의 초점을 흐리고 국론 분열이 우려되는 발언을 한다면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6. ‘홍기택 사태’ 겪고도 기업은행장에 현기환 내정설이라니

청와대 ‘우(右)병우 좌(左)기환’으로 불릴 만큼 실세로 꼽히던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IBK기업은행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이다.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기환 내정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언론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청와대 들으라는듯 말했다. 하지만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차관급 인사 등을 들러리로 세워 복수의 후보군을 만든 뒤 단수 후보를 청와대에 추천하고 대통령이 현 전 수석을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 전 수석은 주택은행 인사부와 노조위원장, 한국노총 본부장을 거쳐 2004년 부산시장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뒤 18대 의원을 지냈다. 금융권 경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전공이나 이력을 볼 때 금융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는 4·13총선에서 청와대 공천 개입으로 새누리당이 패배한 데 대해 사실상 문책 경질된 인사다. 그런데도 ‘금의환향’할 경우 노조운동하다 정치권을 거치면 은행장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에 충분하다.

임명권자가 ‘청피아’를 서민금융을 책임지는 국책은행장으로 내려보낸다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서민금융 정책까지 청와대 뜻대로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나 다를 바 없다. ‘청와대 낙하산’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재임 시절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천문학적 부실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 뒤다. 최근 한국거래소 정찬우 이사장에 이어 또 낙하산을 금융권에 보낸다는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할 판이다.

청와대가 현 전 수석을 기업은행장에 기어코 임명한다면 금융권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생산성만큼 임금을 책정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근로관계를 정착하자는 정부의 명분과 논리는 낙하산 인사 앞에 모조리 무너지고 만다. 내년 초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 공공기관장 9곳에 대해 이런 식의 인사를 이어간다면 금융 개혁 구호를 금융 개악(改惡)으로 바꾸는 게 낫다.

[중앙일보]

7. 위안화 통화 굴기 첫발, 우리는 잘 대비하고 있나

지난 1일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정식 편입됐다. SDRIMF 회원국들이 외화 부족에 대비해 만든 보조적인 국제 준비자산이다. 비중이 클수록 통화의 위세가 세다고 보면 된다. 위안화(10.92%)는 달러(41.73%)와 유로(30.93%)에 이어 세 번째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 이후 유로의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면 위안화가 사실상 세계 2위 통화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의 통화 굴기가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위안화의 힘이 달러와 견줄 수는 없다. 올해 7월 기준 위안화의 국제결제 비중은 1.9%로 달러화(41.3%)의 20분의 1 수준이다. 위안화가 세력을 늘려가기는 하겠지만 속도가 빠를 것 같지는 않다. 모건스탠리 등 국제 투자은행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위안화 외환보유액을 현재 1%에서 5년 후 5%까지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이 2020년까지 위안화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15~20%를 차지할 것으로 자신한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위안화 굴기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위안화 굴기는 우리에겐 ‘양날의 칼’이다. 위안화 결제가 확대되면 무역 거래 비용이 줄고 중국 서비스 수출 증가 등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달러 의존도 낮출 수 있다. 반면 위안화와 원화의 동조가 심화돼 중국 경제가 불안해지면 국내 경제가 직격탄을 맞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길게 보면 국제 금융 질서의 대변혁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낼 경우 필연코 달러 패권과 맞서게 된다. 미·중 간 통화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금융 당국과 기업들은 위안화 굴기의 파급 효과를 면밀히 따져 시나리오별 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계획을 잘 짜는 것 못지않게 실천이 중요하다. 이럴 때를 대비하자며 말만 앞세웠던 위안화 허브 경쟁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크게 뒤처져 있다. 위안화 국제화에 맞춰 원화 국제화를 서두르자는 구호도 귀에 못이 박일 정도다.

[매일경제]

8. 개미 투자자 주식시장 대탈출 심각하게 보라

지난 5년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빼내 간 돈이 60조원에 이른다. 2011년 9월 말부터 지금까지 개인들이 직접 팔아치운 주식이 37조원에 육박하며, 주식형 펀드 환매로 회수해 간 자금이 23조원에 이른다. 개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8년 내리 주식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코스피가 2000선을 오르내리며 게걸음을 하는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주식시장을 빠져나갔다. 5년간 32조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한 외국인들과 대조적이다.

주식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고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유지하도록 하려면 가능한 한 기관투자가 비중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엑소더스가 이어지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들이 주식형 펀드 환매를 늘리면 자산운용회사도 편입 주식을 팔아치워야 하므로 증시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증시 감독 당국과 업계는 개인들이 어떤 연유로 주식시장 탈출 행렬에 가담하고 있는지 분석해보고 이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국내 가계는 전통적으로 실물자산에 편중된 자산 보유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자산은 3억4000만원 남짓한데 이 중 금융자산은 26%에 불과했다. 금융자산 가운데서도 투자 위험과 수익률이 높은 주식 비중은 매우 낮다. 올해 6월 말 가계 부문은 3300조원 가까운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주식과 펀드는 600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5년 새 금융자산 총액은 1000조원 불어났지만 주식과 펀드는 100조원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금융위기 이후 실세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질 때 개인들은 주식 투자를 되레 줄였다. 5년 동안 주식 투자 누적 수익률은 11%에 그친 데 비해 채권시장은 18% 가까운 수익률을 안겨줬다. 부동산시장은 부분적으로 거품 논란을 빚을 만큼 돈이 몰렸다. 기업의 성장성과 배당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치면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이탈은 계속될 것이다. 이 돈이 채권과 부동산시장에 지나치게 쏠리면 임박한 금리 인상 충격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갈수록 부동화하는 시중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릴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9. 백남기 부검 반대하면서 사인 규명하겠다는 이중성

고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과 부검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백씨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는 지난 3일 "사망진단서에 기재한 것처럼 심폐정지로 인한 병사가 맞는다"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대한의사협회 지침과는 다르지만 백씨의 경우 가족들이 고인의 뜻에 따라 적극적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심폐정지'라고 기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결정에) 외압이나 강요는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8일 경찰이 두 차례에 걸쳐 청구한 백씨 부검 영장을 유족과의 협의 등 4가지 조건을 붙여 발부했다. 사망진단서 작성은 의사 개인의 고유 권한이고 사인 규명을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두 시비 걸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백씨의 유족 측은 사망진단서와 부검에 반발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한술 더 떠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을 추진하겠다며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들은 경찰의 물대포로 인한 외상이 명백한 사망 원인인데도 굳이 부검을 하려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어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백씨 사건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서 사인을 포함해 다양한 문제가 논의됐지만 결정적인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특검이 진행되면 진실 규명은커녕 국론 분열과 정치적 분쟁만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야당 의원은 서울대병원을 특검 범위에 넣어 사망진단서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문 영역까지 정쟁에 이용하려는 술수로 보인다.

야당이 정말 원하는 게 진실이라면 부검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열린 최고위원·상임위원장단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진실을 밝히자고 해놓고 정작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 아니냐"고 질타했는데 핵심을 찌른 지적이다.

법원이 조건까지 붙여 영장을 발부한 만큼 부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면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 있다. 이렇듯 명료한 사안인데도 사망 원인을 규명하겠다며 계속 부검을 반대하고 특검을 추진한다면 정치적 계산이 깔린 야당의 이중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신문]

10. 삼성 라이온즈 최하위권 추락은 구단의 투자 외면 탓

삼성 라이온즈가 최하위권에 머물며 시즌 마감을 앞두고 있다. 삼성은 올해 이상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처절하게 내려앉았다. 지난 5년간 정규 시즌 1위 5회,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세운 것에 비하면 올해 성적은 가히 충격적인 결과다.

지난해 정규 시즌 1위 팀이 다음해 최하위권으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한 것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래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사례다. 삼성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것도 역대 처음이다. 무엇보다 1천666억원을 들여 건설한 새 경기장으로 옮긴 첫해에 이런 성적을 낸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절대 아니다.

삼성의 추락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직전에 불거진 ‘해외 원정 도박 파문’ 때문이라거나 외국인 투수 영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둥 온갖 얘기가 오간다. 지역 출신 박석민과 용병 나바로를 내보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모두 맞는 얘기지만, 가장 중요하고 보이지 않은 핵심 원인은 따로 있다. 과거와 달리, 삼성 구단이 야구단에 투자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올해 초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일찌감치 구단의 변화를 예고했다. 구단 대표의 ‘급’과 위상이 과거에 비해 한 단계 떨어지면서 돈만 아는 ‘구두쇠’처럼 비치기 시작했다. 수당`보너스를 깎거나 없애고 운영비도 줄이니 선수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올 리 없고, 팬 서비스도 예전만 못할 수밖에 없다. 구단 운영을 지켜보면 그렇게 중시해온 ‘삼성 일등주의’를 완전히 내팽개친 듯한 모습이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처럼, 한 해 성적으로 일희일비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구단의 의지가 없다면 내년 시즌도 보나 마나 한 결과를 낼 것이 뻔하다. 운영 주체가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질 수 없고, 팬 서비스 향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 그룹 차원에서 야구장 운영에 대한 비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삼성은 야구단 운영 주체를 바꾸든지, 아니면 새로운 마인드로 운영하든지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면도하는 남자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의 기묘한 상쾌함을 남자들이 짐작하기 어렵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남자가 여자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칸트가 말하는 걸 대학 시절 들은 뒤, 사랑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사랑이 완전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 건 훨씬 뒤의 일이었다.

플레어스커트의 느낌을 고유한 '여성감'이라고 한다면, 턱밑을 오가며 털을 깎아내는 면도의 쾌감은 남성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여성도 면도를 하는 때가 없진 않지만, 내가 말하는 건 코밑과 뺨, 그리고 턱과 목을 오가며 쓸어내리고 밀어올리며 다시 훑어가는 면도를 가리킨다.

거품을 잔뜩 묻혀 날카로운 면도날로 목과 턱뼈 사이의 부드러운 살결 위를 갓자란 수염들을 삼제하는 것에는, 하루의 시간을 되돌리는 섬세한 리프레시가 있고, 파란 면도자국으로 엄격하고 정결한 표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영혼의 기풍이 있다. 면도를 하는 순간의 모든 남성들은 완벽한 나르시스트다. 거울 속의 사내를 향한 질투와 연민이 있다. 대개 연민이 더 많지만, 턱을 끌어올려 길거나 짧은 목을 비쳐보며 하늘벼랑에 선 고독같은 걸 설핏 맛보기도 한다.

전기면도기는 그것대로 접촉의 질감을 선사한다. 충전된 전기의 알맞은 진동이 턱에서 뒷골 쪽으로 올라가 두뇌를 울리게 할 때, 뭐랄까 까닭 없이 생의(生意)를 돋우는 비장한 맛이 있다. 면도기 철망의 서늘한 기운이 턱과 목을 오갈 때 절삭력 좋은 날들이 숨은 0.1센티의 털들을 찾아내 가차없이 베어넘기는 소리는 덧없이 자라나는 시간을 잘라내듯 단호하고 아름답다.

저녁의 면도는 여유롭고 세심하다. 오로지 저 면도기의 절삭음을 듣기 위해 무심코 그것을 들어 턱에 갖다대는 때도 있다. 대개 면도기의 뒷쪽은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사내의 손바닥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어서 그것을 쥐기만 해도 어떤 의욕이 생겨난다. 아침의 면도는 마치 신체를 깨워 시간을 기입하는 성사(聖事)처럼 단정하고 비장한 맛이 있다. 세상의 정원사는 신(神)이지만, 한 남자의 정원사는 대개 자기 자신이다. 그가 가꾸는 건 초목만이 아니라, 그 정원이 이루는 공기를 가꾸는 것이다.

면도를 하면서, 왜 하필 코밑과 뺨, 그리고 턱에만 털이 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이 털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 한복판에 있는 입일 것이다. 눈도 중요하고 코도 중요하고 귀도 중요할텐데 조물주는 왜 하필 입을 이토록 중시한 것일까.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통로라 칙사대접을 한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통해 말이 나오고, 울음이 나오고, 음악이 나오기에 귀하게 여긴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입구인 키스가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인가. 신이 이토록 귀하게 여긴 것을, 인간은 또 왜 이리 극성스럽게 매일 깎아대고 있는 것일까. 입이 가벼워지고 어지러워지고 간사해지면서, 털의 보호를 받을 여유도 없이 돌격하기 위해서인가.

휴가 때면 가끔 면도기를 멀리 하고, 고삐 풀린 말처럼 갈기를 날리는 자유로움을 꿈꾼다. 일주일쯤 면도를 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이대로 덥수룩한 자유남이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휴가 끝날 무렵쯤 마음 어디선가 영혼의 오너가 튀어나와 면도기를 들고 길어진 턱수염을 훑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면도에 대한 모든 쾌감이, 나를 세상에 길들이려는 누군가의 계략이었구나를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세상이 원하는 말끔한 얼굴로 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푸른 턱을 가진 남자로.

2. [뉴시스][정문재의 크로스로드]링컨의 실수

에이브러햄 링컨은 1842년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순간의 잘못으로 무려 23년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다. 메리 토드와의 결혼은 링컨을 불행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친구들이 링컨의 가장 큰 비극은 암살이 아니라 결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링컨이 메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메리가 링컨을 원했다. 메리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과 결혼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메리는 권력 지향적 여성이었다. 언니 엘리자베스는 "메리는 으스대기를 좋아했고, 권력을 추구했다"고 전했다.

링컨은 1837년 일리노이 뉴세일럼에서 스프링필드로 이주했다. 보다 큰 도시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스프링필드는 일리노이의 주도(州都)다.

그 당시 스프링필드에는 1860년 미국 대통령선거 선거에 출마할 두 명의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링컨은 공화당, 스티븐 더글러스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링컨은 1858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더글러스와 맞붙었지만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신랑감으로서는 더글러스가 링컨을 압도했다. 더글러스는 주 하원의원, 일리노이 국무장관을 거쳐 불과 27세 때 일리노이 최고법원 판사로 발탁됐다.

메리가 링컨보다는 더글러스에 눈길을 준 것은 당연했다. 메리와 더글러스 사이에 혼담이 오갔지만 메리가 구혼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메리의 자존심 때문에 그런 얘기를 만들어냈다는 반론도 있다.

링컨과 메리는 1840년 6월말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식은 그 다음해 1월1일로 잡았다. 링컨은 약혼하자마자 메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끊임없는 잔소리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맞지 않았다. 집안 배경, 교육, 사고방식이 전혀 달랐다. 메리는 링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메리를 프랑스 학교에 보낼 만큼 여유가 있었다.

링컨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파혼하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메리의 언니 부부도 파혼을 권유했지만 메리는 거부했다. 링컨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메리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링컨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감싸 안고 입을 맞췄다. 파혼을 통보하려다가 약혼 의사를 다시 확인한 꼴이었다.

링컨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1841년1월1일 결혼식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하객은 밤 늦도록 기다리다가 흩어졌고, 신부는 수치심에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들이 그 다음날 아침 변호사 사무실에서 링컨을 발견했다. 링컨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의사는 링컨이 자살하지 않도록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

시간이 흐르자 링컨은 평정을 되찾았다. 메리가 자연스레 자신을 잊어주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메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요구한 끝에 1842년 11월 4일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링컨의 마음이 바뀔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메리는 늘 남편을 못살게 굴었다. 그렇게 링컨에게 복수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끼얹고, 걸핏하면 빗자루를 들고 링컨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자세가 우아하지 않고, 돈도 못 번다고 남편을 욕했다.

링컨이 결혼을 결심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배려 때문이었다. 링컨은 메리의 구박을 묵묵히 참아냈다. 메리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달래는 것도 링컨의 몫이었다.

관용과 배려는 링컨의 삶을 관류하는 키워드다. 그는 노예제에 반대했지만 남부 사람들을 이해했다. 그래서 노예 소유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예제를 점진적으로 철폐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링컨은 각료들에게도 배려를 잊지 않았다. 장관들이 자신에게 거세게 반발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면 흔쾌히 받아들였다. 스탠튼 육군장관은 한때 링컨을 '불쌍한 바보'라고 조롱했지만 링컨이 암살당하자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지도자가 쓰러졌다"고 한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르재단 등에 대한 의혹을 비방과 폭로성 발언으로 규정하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 not stand)"는 링컨의 발언을 인용했다. 맞는 말이다. 집이 갈라지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분쟁은 예방이 중요하다.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합리적 의심을 적극 해소하고,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시민은 사라지고 신민(臣民)만 남는다. 신민은 수동적 존재다. 자발적 지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국정의 추동력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들의 존경과 존중도 얻지 못한다.(If once you forfeit the confidence of your fellow-citizens, you can never their respect and esteem.)" 이 또한 링컨의 말이다.


3.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

항상 어처구니없고 허무맹랑한 계획을 내놓는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가 이번엔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했다. 2060년까지 100만명의 인간이 화성에 정착할 거란다. 전기자동차 테슬라로 자신이 사기꾼이 아님을 이미 입증한 일론 머스크 얘기다. 테슬라 전에 창업했던 우주개발회사인 스페이스 엑스는 이미 재사용 로켓을 발사하고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네바다 사막엔 단일 건물로 세계 최대 면적이라는 기가팩토리 건설이 한창인데, 전기 배터리를 대량생산해 전기자동차 세상을 만들 참이다.

머스크의 화성 계획을 듣다가 영화 아바타가 떠올랐다. 지구의 고갈된 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인류가 발견한 행성 판도라가 배경이다. 재미로만 봤던 영화인데 누군가는 이걸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착착 준비를 진행했다니. 외계에서 온 듯한 이 사람을 어찌 막으랴.

입체 영화 아바타는 2010년에 세계적인 신드롬을 만들어 내며 우리나라에서 개봉됐다. 인터넷 게임 팬들은 ‘가상세계 속에서 자신의 분신’이라는 뜻의 이 단어를 사용하며 아바타를 꾸며 주기 위한 아이템을 구매하고 있었지만, 웬만한 사람은 아바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영화가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3D 영상기술이 새로운 화두가 되자 아바타 충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불과 얼마 전에 아이폰 충격을 겪었는데 또 충격이라니.

한국이 이런 분야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기술이 미래를 바꿀 주요 관심 대상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던, 상상력의 부족이 정말 뼈아픈 것이다. 여전히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기를 만들어 내는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와 창의적 개념의 경쟁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에만 몰입하다가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시행착오와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폰 충격을 만들어 낸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어 보자. 애플사를 창업한 그는 1980년대 초에 방문했던 제록스사의 연구소에서 그림(GUI)을 사용하는 컴퓨터 시제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영감으로 매킨토시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경영 스타일에 반기를 든 이사회에 의해 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

좌절에 빠져 있던 잡스는 우연히 팔로알토 이웃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폴 버그 교수와 대화를 하던 중에 미래의 과학에서 가상실험이 중요할 것임을 깨닫게 됐다. 과학의 진보에 기여하는 걸 새로운 미션으로 설정하고는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가상실험이 가능한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실험 결과를 시각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자 컴퓨터 영상화 업체를 인수해 픽사라고 개명했다.

불행하게도 넥스트 컴퓨터는 잘 팔리지 않았고, 그는 빈털터리가 될 처지가 돼서야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진짜 본질인 운영체제(OS)를 파는 일에 집중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은 이렇게 힘들다. 결국 넥스트 OS는 맥의 운영체제인 OS X가 됐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픽사는 100% 컴퓨터그래픽스로 만든 역사상 첫 번째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잡스는 다시 백만장자가 됐다. 특히 ‘토이스토리2’에서는 계산기하학을 애니메이션에 적용해 해상도를 자유자재로 하는 기법을 개발하는 등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수학자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자 할리우드는 많은 수학자가 진출해 활약하는 곳이 됐다. 잡스는 디즈니사에 픽사를 팔았는데, 그가 사망할 때 그는 디즈니의 제1주주였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우리가 지금 북성로를 걸어야 할 이유

걷는 리듬은 생각의 리듬과 같다고 한다. 사실 생각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저절로 나는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으며, 무수히 많은 예술작품이 길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걷기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걷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 준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우리의 생활 터전이 도시화될수록 개인은, 몸은 소외된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보라. 끊임없이 밀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온갖 통제할 수 없는 소음들. 보통의 경우,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안락함이라는 무거운 옷 속 갇힌 우리의 몸은 걷기의 감각을 잃어버린 걸까? 이 도시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걷기란 불가능해져 버린 것일까?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또는 초고속 인터넷과 같은 ‘속도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걷기의 리듬은 너무나 느리고 때론 낯설기까지 하다. 북성로라는 공간도 오늘날 그런 기준에서는 불편하게 생각되기 쉽다. 건물도 낡았고, 사람도 늙었고, 산업공구도 한물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함정이다. 북성로에 들어서자마자 예기치 않은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북성로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던 대구읍성의 공북문터,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지나갔다는 길,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였을 당시 지어진 건축물, 광복 후 화가, 문인, 정치인들이 활동했다는 공간들, 공구상가들의 조화로운 디스플레이까지, 잠깐 동안에도 수많은 시간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차로는 5분이면 지나갈 수 있지만, 걷는 이에겐 30분도 걸릴 수 있고 1시간도 걸릴 수 있는 깊이와 폭을 지니고 있다.

이제 이곳에서 그 시간의 리듬을 포착하는 것은 각자 걷는 이들의 몫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는 만큼 각자의 걷기 리듬이 생겨난다. 이러한 걷기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걷기를 통해 낯선 것들과 조우하며 자신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며 비로소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인간다운 삶,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5.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손수건

강의실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왜 손수건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거냐고 물었다. 출석부, 커피 텀블러, 물병, 손수건 두 개가 놓여 있는 교탁을 가리키면서.

동네 술집 창가 자리에서 에디터와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소식이 끊겼다고 생각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반갑게 연락처를 주고받자마자 친구가 진짜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너 아직도 손수건 갖고 다니냐?”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한국 문학이 위기라고 해도 막상 소설 창작 강의실에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하다 못해 안쓰럽게까지 느껴질 때가 많다. 수업시간에 가끔 글쓰기를 시키고 낭독을 하게 하는 날이 있다. 이제 스무 살 혹은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은 부모에 관해,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에 관해 소리 내 읽다가 그만 울음을 삼킨다. 경청하고 있던 학생들도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선생이라고는 해도 그럴 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저 슬그머니 다가가 손수건을 건네주는 일밖에는.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나는 손수건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사람이 돼 버렸다.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품 중에 ‘손수건’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교수의 집으로 한 부인이 방문을 온다. 그 교수에게 신세를 많이 진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부인은 아들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한다. 교수는 그런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는커녕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있는 듯 보이는 부인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손에 들고 있던 부채가 떨어져 교수가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을 때 맞은편 의자에 앉은 부인의 무릎을 보게 된다. 떨리는 양손으로 무릎 위의 손수건을 “찢어질 듯이 꽉 쥐고 있는”. 그제야 교수는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실은 그 부인이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

다림질 후 잔열로 손수건을 다린다. 다림질을 싫어하는 어머니가 아무렇게나 접어둔 아버지 손수건이 보이기에 그것도 다린다. 아버지 손수건은 낡아서 거의 해질 지경이다. 지난여름에도 동생이 손수건 몇 장 사드리는 걸 봤는데. 부모는 왜 새것들을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고는 이토록 낡은 것을 계속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얇고 납작한 손수건 두 개 중 한 개는 나를 위해 쓴다. 손도 닦고 밥 먹고 입가도 문지르고. 예외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는 더욱 쓸모가 있어진다. 며칠 전처럼 간암으로 아버지가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제자가 소식을 전해왔을 때도, 한 시민의 죽음을 애도할 때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핑크색 손수건을 주먹으로 꽉 움켜쥐었던 때가 떠오른다.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던 문예반을 전교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사실을 안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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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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